'자전거 사고'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0.05 detour 1
  2. 2007.10.04 자전거 사고 4
  3. 2007.06.25 prep. 1

detour

잡기 2009. 10. 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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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 배경음악: http://www.youtube.com/watch?v=mP6-j9pxTGI 사연: "어이 아줌마 여긴 청계산 꼭대기야. 생각나서 찍었어. 아내한테 보약은 역시 일없이 히죽히죽 웃는 남편 얼굴 아니겠어?난 주중엔 바쁘고, 바람 안 피우고, 행복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삼시세끼 먹으며 쓸쓸히 잘 지내고 있어. 소울이 끼니 거르게 하지 말고, 장모님이 아줌마 외국 나간 거 눈치채셨으니 알아서 잘해 봐. "

미팅하러 거래처에 갔더니 적외선 카메라가 입구에 있었다. 몇 개월 전에 신종플루 상황이 pandemic이라더니 드디어인가? 치사율이 독감보다 낮은 신종플루에 떨 것 없지 싶은데... 이럴때 항공권 싸니까 마누라/애 여행 보내고, 좀 있으면 노인네들 무료 백신 맞게 해 줄테니 관광주 뜰테고, 그러니까 하나투어 주식 사재기 해 둬야지 싶은데... 다들 벌써 그렇게들 했나? 바쁜 관계로 투자에는 까막눈이다.

바람 빠진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다가 다리에 알이 배겼다. 다리에 알이 배기다니... 신선했다. 잘 안 나가는 자전거를 식은땀을 흘리며 한밤중에 차들에 쫓기며 정신없이 몰았으니까. 쇼핑몰에서 2500원짜리 자전거 펌프를 주문했다. 배송료가 2500원이다. 1400원 짜리 Wheel light와 2400원짜리 백라이트도 샀다. 밤에 도로를 달리는 것이 으시시해서 대비를 제대로 해놓을 생각이다. 2500원짜리 펌프의 성능이 의외로 좋다. 그 전에 사용하던 25000원 짜리 펌프는 다루기도 어렵고 바람이 들어가지 않았다.

9/26 광교산에 올라갔다. 자전거를 타고 광교공원까지 갔다. 천천히 가도 20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것 같다.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잠궈놓고 출발했다. 입구를 잘못 알아 경기대 수원 캠퍼스 입구 옆으로 올라갔다. 광교산은 수원을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한 세 군데 화장실이 있는 곳이다. WSJ에 그 아름다운 화장실 사진이 실렸다던데, 아쉽게도 화장실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광교산은 가족 나들이로 올라가기 적합한 야트막한 육산이다. 수원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광교산에 MTB 싱글트랙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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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가 참 많다. 소나무는 피톤치드하고 상관이 없었나? 그럴리가. 하지만 숲에서 별 냄새가 안 난다. 산짐승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듯. 소나무 마다 아바멕틴벤조에이트 주사 날짜가 적힌 명패를 붙여 놓았다. 집에 와서 조사해 보니 소나무재선충 방재용인데, 아바멕틴과 emamectin benzoate를 헷갈리게 적어 놓은 듯. 아바맥틴은 솔입혹파리와 솔껍질깍지벌레 양쪽에 방재 효과가 있고 에마멕틴 벤조에이트는 솔껍질깍지벌레에 효과가 있단다. 요새는 그 약품을 난초에도 사용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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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쯤 올라가도 영동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차량 소음으로 시끄러웠다. 광교터널이 광교산 아래를 지나갔다. 아하, 이래서들 산에 터널 뚫지 말라고 아우성이군. 사람들로 북적이고 심한 차량 소음에 산새 소리가 들리지 않아 산이 영 마음에 안 든다. 형제봉을 거쳐 시루봉 근처에서 점심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백운산, 지지대까지 갈까 하다가 김이 새서 그냥 내려오기로 했다. 상광교 버스종점에서 13번 시내버스를 타고 자전거를 묶어둔 광교공원까지 내려왔다. 재미없는 산이지만, 상광교 버스 종점부터 산행로 초입까지 조성해 놓은 공원은 아이 데리고 놀러오기 괜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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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 병과 쪽파 좀 사다가 부침가루로 부친개를 해먹었다. 부친개 만드는 솜씨도 점점 나아지는 것 같다.

10/2 추석 연휴 첫 날, 할 일은 없고 집에 붙어 있자니 근질근질해서 도시락을 싸들고 청계산으로 향했다. 가장 가까운 곳이 4호선 인덕원역. 박사장님은 입만 열었다하면 인덕원 근처가 술먹기 좋다고 갖은 칭송을 늘어놓았는데 사실 한 번도 술마시러 인덕원에 온 적은 없었다. 2번 출구에서 1번 마을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질려 택시를 타고 청계동을 지나 청계사까지 올라갔다. 택시 요금은 6300원, 인덕원역 앞에서 청계사까지 약 15분 정도 걸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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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사로 오르는 계단. 남들은 버스 타고 와서 청계동에서부터 청계사까지 지루한 평지를 꾸역꾸역 걸어오는데 청계사에서부터 시작하니 좀 민망하다. 산행 마치고 나서 생각해보니 청계사에서 시작하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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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일도 아닌데 마당에 색색이 걸려있는 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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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사의 볼꺼리가 극락보전이지만  절 뒷편의 난간에 잔뜩 올려 놓은 각양각색의 동자승 보는 것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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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봉안한 자갈로 만든 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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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불 옆의 본격적인 산행 코스. 저번 주에 간 광교산은 하나도 재미가 없었는데, 다짜고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업힐(?)을 하게되는 이 길이 마음에 들었다. 계단과 흙더미, 돌무더기를 밟으며 꾸준히 300m 가량의 표고차를 올라가면(거리는 대략 5-600m쯤?) 첫번째 전망대가 나타난다. 오랫동안 산에 안 올라왔지만 그래도 단련되어서 인지 별로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 쉬지 않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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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대공원과 맞은편의 관악산이 보였다. 길을 잘못 들어 이수봉까지 갔다가 이곳 전망대로 다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목마다 막걸리를 파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귀동냥으로 들으니 매봉 앞에 있는 막걸리 장사 아저씨가 진짜란다. 왜냐면 그 아저씨는 TV에 나왔고 다른 사람들은 TV에 나오지 않아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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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땀이 곧 말라 시원하다. 망경대 앞으로 올라가기 전 공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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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대에서 바라본 과천 대공원의 동물원 위에 있는 저수지. 망경대는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망경대 앞뒤로 있는 작은 봉우리가 정상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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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바위 앞. 여기서부터 하산길 내내 툭하면 '서초구가 등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어쩌구저쩌구 등산로/계단/공원'이 쉴 새 없이 튀어나왔다.  다른 곳에서는 그냥 입 다물고 등산로/계단/공원 만드는데 유독 서초구만 오두방정을 떨며 위화감 생기게 하는 이유가 뭘까? 서초구는 돈이 많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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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봉을 거쳐 화물터미널로 가면 소위 청계산 종주코스가 되는데, 그리 가지 않고 대공원 쪽으로 내려왔다. 돌아오는 교통편이 불편해서다. 그런데 의외로 이쪽 길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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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사람이 거의 없고 숲이 숲 같이 생겼다. 작은 개울을 따라 내려가면 작은 폭포도 눈에 띈다. 냇가에 앉아 발 담그고 놀고 갈 수 있는 호젓한 곳이다. 조금 더 내려가니 서울랜드로부터 떠들썩한 소음이 들린다. 현대미술관에 들렀다 갈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역으로 향했다. 미술관은 데이트나 하러 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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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본 포스터. 이게 뭐야? 지구를 구하려면 기도해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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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사세요' 집에 돌아와 세계적인 인도주의자인 칭하이 무상사의 비디오를 유튜브에서 부러 찾아 관람했다. 십여개국의 언어로 된 서브타이틀이 화면의 태반을 가렸다. 별로 틀린 구석이 없는 뻔한 얘기를 줄줄이 늘어놓는다. 그러게, 채식하고 육류 소비를 줄이면 지구를 구할 수 있지. 아무렴. 아무래도 대순진리회나 사이언톨로지와 비슷하지 싶다. 소정의 수수료를 헌금하면 칭하이 무상사의 위대하고 뻔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겠다.

추석 연휴 중 자전거를 타고 슬슬 시내 주행 하다가, 주유소 앞에서 사고가 났다. 주유소를 빠져 나오던 코란도가 나를 미쳐 보지 못하고 자전거 옆구리를 박았다(전방 주시 안 했음). 차가 덮치는 걸 뻔히 보고 자전거를 급히 틀었지만 그때까지 나를 보지 못한 자동차가 좀 더 밀고 들어왔다. 딴전 피우고 있었단다. 자전거와 함께 쓰러졌다. 골반 윗쪽 사타구니와 정강이 아래, 복숭아 뼈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절뚝거렸다. 왼쪽 손목 인대가 '또' 늘어났다. 차체가 낮은 승용차였다면 다리가 범퍼 밑에 자전거와 함께 깔리면서 부러졌을 것이다.

자전거가 박살났지만 어째서인지 응급실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저번처럼 뼈에 실금하나 보이지 않았다. 입원하겠습니까? 라고 묻길래 아니 라고 대꾸했다. 나이롱 환자가 될 생각은 없다. 이번 주에도 일 때문에 바빠서 그럴 여유가 없다. 주사 맞고 드레싱만 하고 병원을 나왔다. 최근에는 내가 먼저 사고낸 적이 없다. 그래도 몇 번 인가 연달아 죽을 뻔 하게 되니 간담이 서늘하다. 그렇게 조심했건만, 상대방의 과실로 벌어지는 사고는 어쩔 수가 없다.

가해자가 아는 바이크샵에 반파된 자전거를 맡겨 '하루종일' 수리했다. 하지만 프레임이 비틀린 것인지 영 주행감이 괴상하여 가해자 측과 협의해 비슷한 가격의 새 자전거를 사기로 했다. 치료비는 응급실 검사비+주사+약값 해서 75000원 가량 나왔다. 자전거는 30만원 안쪽에서 알아보기로 했다. 늘 그래왔듯이 살아서 다행이다.

10월 28일 보궐선거에 손학규는 끼지 않았다. 이재오 역시 이번 보궐선거에 나올 수 없게 되었다. 10월 28일 선거를 위해 찬찬이 정보를 수집중이다.

한동안 EIDF 다큐멘터리를 즐겼다. 내가 아는 베르너 헤어조크는 항상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의 독일 억양이 억세게 느껴지는 영어 나레이션에 묘한 중독성마저 있다. 이번에 EIDF에서 틀어준 헤어조크의 다큐멘터리 하나하나가 주옥같다.

헤어조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구두를 끓여 먹었다('베르너 헤어조크, 구두를 먹다'). 스페인 침략 당시의 그 유명한 광기의 기록을 드라마타이즈한 '아퀴레, 신의 분노'도 보았다. 식인종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주고받는 대화: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고기가 떠내려온다' . 마지막 장면과 첫 장면이 대단히 인상적인데, 알고봤더니 첫 장면은 와나픽추에서 찍은 것이었다(예전에 여행할 때 마추픽추보다 와나픽추에 기어 올라갔던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비롯한 여러 씬을 우르밤바 강에서 찍었다. 아퀴레, 신의 분노의 주연 배우 킨스키를 다룬 '나의 친애하는 적'도 재미있었다. 킨스키는 노스페라투에 나왔던 불쌍한 흡혈귀.

그 다음은 티모시 트레드웰의 죽음을 다룬 '그리즐리맨'을 보았다. 티모시 트레드웰은 자기가 그토록 좋아하는 그리즐리 곰에게 살해당했다. 그가 손수 찍은 비디오를 보면 자기가 곰들을 이해한다고 굳게 믿으면서 곰들 무리에서 일 년에 1-2개월 함께 살았는데, 그동안 안 죽은 것이 오히려 신기했다. 트레드웰은 곰들을 이해하겠지만 곰들이 트레드웰을 이해할 리가 없으니까. 북미지역에서 가장 무서운 곰이 내가 알기로 흑곰이다. 만나면 다짜고짜 죽이니까.

헤어조크가 ' 난 또다른 펭귄 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다'면서 찍은 것은 남극에 모인 가지각색의 사람들의 일상사를 다룬 '세상 끝과의 조우'였다. 뭐 그의 뜻대로 그럴 생각은 없었겠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렇다고 먹이를 사냥하러 바닷가에 가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다가 문득 결심을 굳힌 듯 갑자기 산으로 가는 미친 펭귄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아무 것도 없는 산에 가는 미친 펭귄을 보니 남 얘기 같지 않았다. 남극에 간 사람들과 산으로 올라가는 펭귄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헤어조크가 펭귄  농담을 한 것이다.

EIDF를 통해 이란 팔래비 왕조의 몰락과(뭐 아는 얘기라서 별 재미가 없을 것 같았는데 흘낏 본 장면에서 팔래비 왕조의 마지막 왕비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2007년 버마 항쟁의 기록도 봤다. 버마 생각을 하면 드라마 philanthropist 와 내가 미얀마에서 만난 사람들 생각이 나서 우울해진다.

양곤의 스웨다곤에서 데모가 시작되었다. 화면을 보아하니 스웨다곤의 남문이다. 버마에서 데모하던 스님들의 구호는  이랬다:
생명이 있는 자들은 모두 동쪽으로
삼라만상이 모두 자유로워지기를
두려움과 번뇌와 가난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기를
구호가 정말 마음에 든다. 데모를 주도하던 스님들은 심하게 구타 당했다. 맞아 죽기도 했다. 최근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 치 여사와 대화를 시도했다. 여전히 philanthropist란 미국 드라마가 위선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냈다. 도아님 같은 분이 통전선교를 한다고 비난하는 월드비전을 굳이 옹호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생활비하고 남은 돈이 있으면 마누라 몰래 월드비전 같은 곳에 기부하는 정도지.  세상의 정의 실현에 관심 없다. 철학에도 관심없다. 선교를 하건말건 애새끼 배나 채워줄 수 있으면 된다. 나처럼 인간성에 깊이 실망한 사람들이 아마도 행동을 자신에 맞춰 커스터마이즈하지 싶다. 얼터드 카본에서는 그것을 '복수의 개인화'라고 했다.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라고 설득하는데 소비하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지 싶다. 어렸을 적엔 말재주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던 적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사회복지 변호사 되겠다던 제이님은 요즘 뭘 하고 있지? 애 낳지 말고 개인의 행복을 희생하며 매진하라고 기회될 때마다 북돋워 줘야 하는 거 아닐까? 아니야 그냥 매너나 지키면서 가만히 있자.

그나저나 EIDF 만세! 부디 장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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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고 프락시. 첫 편을 몇 년 전에 보고 기대했었다. 이제서야 전 편을 보게 되었는데, 이 애니의 레종 데트르가 뭔지 사뭇 궁금하다. 타이틀곡만 좋았다. 알고 보니 cogito, ergo sum으로 반병신스럽게 연명하는 평범한 쓰레기였다.

트랜스포머2. 딱 13세 수준의 영화같은데? 옵티머스 프라임이 옛날에 프랑스 병사들이 사격 연습용으로 쏴대던 스핑크스 옆에 듬직하게 서 있다. 화면이 정신 사나워서 전 편보다 재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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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e in the Wild. 처량하게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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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말고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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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에서 50일을 버티며 주린 배와 외로움에 울었다. 만약 내가 저 상황이면 잘해낼 수 있을까? 구호품만 주어진다면 90일은 문제 없이 버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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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으로 돌아와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며 카메라로 찍는다. alone in the wild는 3화로 끝났다. 그가 실패했다고 비웃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깨를 다독여주며 위로할 생각도 없다. 그저 이런 '산에 간 미친 펭귄' 프로그램이 또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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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사고

잡기 2007. 10. 4. 13:45
영화에는 국경이 없어도 영화팬에게는 조국이 있다. -- 변희재씨의 돋보이는 생트집.

'금단의 선'을 넘어 북쪽으로 걸어간 노무현 대통령은 배낭여행자들의 오랜 숙원을 이뤘다. 남북분단선을 육로로 건널 수 있으면 유라시아 대륙이 완전히 뚫리는 것이다. 내친 김에 중국, 몽골, 러시아, 유럽까지 기차타고 돌아다니면서 외교활동을 펼쳤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아무리 정치적인 쇼라고 하지만 '금단의 선'을 넘은 그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정치가 미래, 비전, 희망을 보여주는 쇼가 아니라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나.
 
추분이 지났다. 여름이 갔다. 여름처럼 맥주와 통닭을 먹지는 못할 것이다. 지방이 부족한 닭을 기름에 튀기면 기름옷에 지방이 배인다. 맥주에는 탄수화물이 많다. 따라서 맥주+통닭은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이 골고루 갖춰진 삼위일체 저녁식사다. 통닭에 맥주를 한 잔 하면서 밀린 드라마를 느긋하게 쳐다볼 때는 행복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가기 -- 우연한 기회에 본 다큐멘터리. 1부만 보고 2부는 보지 못했으나, 듣자하니 일본 가족은 1주일 만에 포기하고, 미국 가족은 하루인지 이틀만에 포기. 한국 가족은 한 달을 중국 제품 없이 살아남았단다. 중국 제품 없이 살아가기에서 조차 한국인의 우수한 개김성(은근과 끈기)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웃음.
 
10월 1일 자전거 타고 출근하다가 그랜저와 박았다. 손가락 사이에 긁힌 상처 뿐 다친 데는 없는데, 20kmh로 달리다가 골목에서 나와 서 있는 차를 2-3초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보지 못하고 그대로 박아 자동차 앞바퀴 사이에 자전거 바퀴가 끼었고 본넷에 몸뚱이가 부딫히면서 본넷이 일부분 찌그러지고, 범퍼에 긁힌 상처가 남았다. 자전거 앞 바퀴 림이 살짝 휘었다.

비가 살살 내리고 있었다. gps에 찍힌 당시 주행 속도가 20kmh(초당 5.5m)니까, 11m ~ 16m  앞을 보지 않고 진행중 갑자기 나타난 자동차를 발견하고(자동차가 서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으나 늦어서 자동차를 박은 것이다. (내가 자동차를 사지 않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운전중에 딴전을 피우거나 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걸 설득력이 없는 핑계로 여기는 사람들이 참 많다)
 
경찰 불러서 사고처리할까, 하다가 내 잘못이 크고 자동차의 흠집이 그리 크지 않은 수준이라(두 사람 다 놀랐다) 대충 합의하기로 하고 명함 건네준 후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출근. 10월 2일 전화가 왔는데 사고 차량의 견적가가 무려 40여만원 나왔다.
 
2일 밤 퇴근 무렵에 경찰서에서 회사로 전화가 왔단다. 뺑소니 신고가 들어왔단다. 내 명함의 전화번호로 자동차 주인이 전화를 해 봤는데 전화가 안되어 뺑소니 신고를 한 모양인데 이미 연락이 된 상황. 명함의 전화번호가 잘못 찍혀 있었고 휴대폰을 집에 놔두고 출근하지 않아 사정을 모르고 있었다.

합의 후 30만원을 물어주기로 했다. 좀 더 까칠하게 나갈 수도 있었지만(자동차-자전거 사고에서 자전거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도로상의 약자 이므로 일정 비율의 쌍방과실로 인정되어 합의가 가능) 내 자신이 그렇게 할 만큼 뻔뻔한 것도 아니고(전방주시 잘 하면서 직선로에서 잘 나가고 있었는데 골목에서 갑자기 차가 튀어나와 브레이크를 잡았으나 제동거리를 확보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박았다고 우기기) 최근 자전거 운행하면서 사고가 잦은 이유가 내 자신의 30만원 짜리 문제임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러다가 사람 치겠다.
 
공교롭게도 기어비를 평소의 2:6에서 3:6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28kmh 가량의 평속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최근에 도로에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는데(주행중 케이던스 유지가 아니라 이제는 근력 강화로 바뀌어 가는 듯) 그런 시점에서 난 사고라 뜻깊다.

덕분에 누구나 선망하는 매트릭스 액션도 해봤다. 핸들을 놓지 않았고 브레이크 잡는 순간 뒷바퀴가 들리면서 몸이 공중제비를 한 바퀴 돌아 본넷을 굴러(이때, 어깨로 둥글게 굴려 떨어지는 낙법 센스) 착지 순간 중심을 잃지 않고 체조선수처럼 등짝을 꼿꼿이 편 채 두 발로 서서 10점 만점의 착지에 성공한 것이다. 심지어 자전거도 자동차 바퀴에 끼어 똑바로 섰다. 사고 당시 주위 사람들 말로는 죽을 뻔 한 거 아니냐, 천만 다행이다 라고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사고 순간 우아했다. 만족한다.

최근 사고는 대부분 내 잘못이 크고 상처가 경미하며 PTSD를 남기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오히려 두어달 전에 자전거 정비하고 나서 멍청한 상태로 천천히 달리다가 그냥 픽 쓰러지면서 손목을 삔 것은 2개월이 지난 지금도 손목에 힘을 주기가 힘든 상태.
 
올해 들어 다섯번째 사고인데, 이쯤 되면 자전거를 타지 말자, 바보같은 자식, 이러면서 PTSSD(post traumatic self-torture stress disorder; 사고 후 자학성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려야 할텐데 되려 정신적 충격이 없는 이유는 뭘까, 장애를 현저히 상회하는 둔함/멍청함 때문이 아닐까 -- 이게 다 개마초 스피릿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사고난 날 밤에도 별다른 정신질환 없이 자전거 타고 집에 돌아왔다. 헤드라이트가 없어 밤길에 제대로 주행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저 잔걱정이라곤 집에서 정비하면서 앞바퀴 휠셋 교정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스포크 렌치로 니플을 조여 스포크 장력을 조절하면 되지 않을까, 많이 휜 것은 아니니 힘이 가해지는 휜 림의 반대편을 조절하면 되겠군 하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도, 한쪽 바퀴의 스레드만 다 닳은 줄 알았는데 양 쪽 바퀴의 스레드가 대부분 닳아 있어 바퀴 표면적이 넓어져 주행 중 부하가 커졌는데 타이어를 갈지 말고 이것을 근력 강화의 기회로 삼는 것이 어떨까, 여기저기 덜컹거리고 망가져 가는 자전거를 이참에 바꾸는 것은 조잔한 기회주의자 처럼 보일꺼야 하는 류의 생각을 했다.
 
사실 산악에서 자전거를 타지 않는 나같은 사람이 장애, 사고 운운하는 것은 자전거 사고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호들갑에 불과하다. 자전거 주행=인력+기술+정비+사고
 
전제: 상처(사고)가 없으면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
결론: 보다 큰 성장을 위해 정진하자.
부언: 마누라는 자전거 탈 때 이어폰 끼면 자전거를 부셔버리겠다고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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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p.

잡기 2007. 6. 25. 11:46
Six Feet Under -- 훌륭한 드라마, '드라마'로써의 드라마. 이런 드라마를 모르고 있었다니... 이제는 시들어버린 수많은 고인들을 다루는 가운데, 싱싱 냉장고의 오이처럼 파릇파릇한 개개 인물의 성격 구현에 높은 점수를 주겠다. 수개월간의 지루한 미드질 끝에 하나 건졌다. Six feet under가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 라는 뜻인 것 같다. 땅밑 6피트가 아니라. (양키들은 죽어도 국제표준 미터법을 사용 안하네. 21세긴데 피트가 뭐야 피트가)

그곳은 지도에 나오지 않는다. 참된 곳은 지도에 나오지 않는 법이다. -- 백경, 허먼 멜빌

대뇌지도가 부실한 탓도 있지. 예전에 비하면 뇌과학은 많은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PET와 fMRI의 실시간 매핑이 가장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진단의학을 소재로 한 닥터 하우스에서는 fMRI를 사용하여 병력을 진단하는 모습이 나왔다. 망할 드라마들이 다 그렇듯 자세히는 안 나왔다.

학습에 간여하는 미러 뉴런의 존재로부터 유아기의 뇌 성장 방식(좌/우뇌가 교대로 성장), 뇌에 따른 성격 편향, 개성의 형성, 인격의 형성, 자아...의 형성. 그리고 지능의 발달. 아가의 iq와 제 양 부모의 iq 사이의 상관계수는 연구결과 0.72 정도 된다. 다시 말해 아이는 양 부모의 지능을 대략 51% 유전적으로 물려받는다. 그럼 나머지 49%가 환경과 성장배경? 그런 뜻은 아니고...


교사가 가진 능력은 인간을 변모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다. -- 에머슨 <-- '백만장자의 첫사랑'이란 재미없는 영화에서 본 다소 부질없는 대사. 교사가 인간을 감동시키고 그의 생에 질적인 변화나 계기가 되어줄 수 있다. 굳이 폄하하자면 에머슨의 확신은 희망일 뿐이다. nurture에 점수를 실어주는 수준급의 농담에 대응하자면; 프로그래머가 가진 능력은 세계를 보다 나은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다. 저렇게 앉아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노년이 평탄하지 않을 것 같은 불확실하고 불길한 예감이 든다. 물론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지만, 소울이는 가끔 네 개뿐인 이를 으드득 으드득 갈았다.

뇌에 관심이 많았는데, 한 사람의 개성과 인격, 심지어 자아와 내적 가치관을 형성하는 요인을 나름대로 두 가지로 규정했다.

1.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2. 면역체계

사회적 경험은 유전적 소인의 발현 강도만을 조절한다. 고 본다. 언제고 터질 일은 터지게 마련. 세계는 빠르게 수렴되어 가고 있으며 과거보다 더 많은 수의 어린이들이 경험의 가상 공유를 비롯하여, 동조된 자극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미국과 한국의 아이들이 같은 가수를 좋아하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게임을 하는 것처럼). 즉 유전자의 영향이 과거 어느때보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만 같다. 커즈와일의 주장을 각색하자면 폭발적인 기술적 발전은 경험과 감각의 세계를 극단적으로 확장하여 동조된 세계 자극은 부질없는 걱정이 된다. 물론 나는 그의 두꺼운 책에 그려진 싱귤라리티를 향해 치솟는 '발전속도' 그래프를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TV에서 인간시장을 보았다. 이외수의 감성마을이 소개되었다. 고생하는 사모님은 어느날, 어린 아들이 학교가기 싫다고 말하자 아이 손에 만원을 쥐어주고 인근 버스터미널에 가서 아무 차나 타고 놀러갔다가 저녁까지는 돌아오라고 일렀다. 공주처럼 자란 아내는 그걸 보더니 자기도 꼭 그래보고 싶단다. 좋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학교 가기 싫어서 할아버지 돈을 훔쳐서 동네 애들을 데리고 버스 타고 먼 곳으로 놀러갔다. 배가 고파서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니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혀 있었다. 눈물나는 가족상봉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영문도 모른 채 집에 끌려가 맞았다. 이외수의 사모님같은 분이 어머니였다면 나는 비뚤어져서 모범생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훌훌 털어버리고 아무 계획없이 여행을 가는 것을 낭만이라고 생각들한다. '아무 계획'없이 가다가 길에서 만난 사건과 우연을 즐기는 것이다. 10대가 가버린 후 대체 내 삶에 낭만이 있긴 했나 의심스럽다. 자전거 여행은 종종 주행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 열댓시간 뙤약볕에서 무미건조한 풍경을 보며 땀을 질질 흘리며 달리다보면... 여행을 하자고 자전거를 타는건지, 자전거를 타자고 여행하는 건지 헷갈린다.

엔진을 갖추면 어디든 갈 수 있을꺼라는 순진한 믿음은 버렸다. 엔진 보다는 엔진의 의지가 더 중요했다. 엔진의 의지는, 그래도 가자, 날이 덥거나 추워도 가자. 의문은 접어두고. 뭐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해 엔진의 의지는 삽질의 의지일 따름이다. 삽질하고 싶은 것이 여행의 의미? 그렇다.

애당초 내게 있어서 여행은 휴양과는 거리가 멀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혹시 공허한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빈둥거리고 있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빠삐용처럼 인생을 낭비한 죄를 짓는 것이 아닐까?

자전거 타고 출근하다가 자전거 도로에서 하수 시설 공사차 진행하던 용달차가 T자 도로에서 좌회전으로 빠져나와 급정거 하는 바람에 차량의 뒤를 박았다. 시속 25kmh.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완전 제동이 안되어서(완전 제동이 되면 뒷바퀴가 들려(잭나이프) 운이 좋으면 하늘을 훨훨 날던가 뒷바퀴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다가 슬립해서 차량 밑으로 기어 들어간다. 작년에 올림픽 공원에서 브레이크 잡는 연습을 좀 했는데(벽을 향해 치킨런, 급제동, 그리고 턴, 쾅!) 그게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어느 정도 제동이 된 상태에서 용달차 뒷 팔레트를 손바닥으로 짚었는데 가운데 손가락 손톱 밑에 팔레트 표면에 붙어있던 유리가 파고 들어 5mm쯤 찢어졌다. 키보드 두들길 때마다 손가락 끝이 따끔거린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새빨갛고 신선한 피가 핸들 사이로 뚝뚝 흘러내렸지만 출근길이라 귀찮아서 손가락을 쪽쪽 빨아 먹으면서 사무실까지 그냥 갔다.

저녁 퇴근길에 역시 하천에 작은 다리가 걸쳐져 있는 T형 자전거 도로에서 우회전 진입 중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직진하던 자전거가 나를 보지 못하고 고속 질주하다가 충돌할 뻔 했다. 사위가 어두웠다. 자전거 기척을 느끼고 순간 브레이크를 잡았다. 뒷브레이크 7, 앞브레이크 3, 교과서대로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 노면에 슬립해서 일부러 자빠링하여 충돌을 피했다. 자전거는 쓰러졌고 나는 한쪽 핸들을 잡은 채 도로에 멈춰섰다. 하아. 주행하던 그 자전거의 과실이지만 다친데도 없고 잘잘못 따져 친해져봐야 뭐하겠냐는 생각이 들어 암 말 않고 자전거를 보냈다.

하루에 두 건이라... 긴장이 많이 풀어진게다.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내 과실도 아니지만 속도가 전보다 약간 오른 후 위험도 그만큼 높아졌다. 재밌는 얘길 들었다. 타이어 펑크를 방지하기 위해 공기압을 대략 빵빵한 정도로 유지하고 다녔는데 더운날 내리막에서 브레이크를 과도하게 잡으면 림이 가열되면서 타이어 내 공기를 팽창시켜 펑크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운날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계속 잡다보면 림에 검게 녹아내린 브레이크 패드가 우중충하게 말라붙기도 한다. 그걸 볼 때마다 섬뜩했다. 패드가 다 녹아내리면 내리막에서 발바닥으로 브레이크 잡는 건 어림도 없고... 일부러 자빠링 해도 무사히 착지하리란 보장이 없다. 67kg+15kg, 60kmh. 인체의 대다수 뼈들은 저 정도 무게의 저 정도 속도에서는 그 경이로운 탄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부러진다. 내리막길에서 55-60kmh씩 밟는 짓은 안 하기로 했다. 물리학, 열역학적 사실 때문이라고 해두자.

초저속 주행시 스티어링과 사고 대비 자전거 탈출을 연습 좀 해야 할 것 같다. 알라딘에서 '혼자 배우는 산악자전거'라는 책을 주문했다. 설명은 단순하지만 그림이 많이 나와있어 흥미롭게 읽고 있다.

요 며칠은 '얼음과 불의 노래' 성검의 전설 편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흥미로운 점은 내가 이 책을 수 년 전에 etext로 읽었다는 것이고, 더더욱 흥미로운 점은 읽은 기억이 나고 내용도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밀린 책이 9권이나 있음에도 1940페이지나 하는 책을 하릴없이 다시금 읽고 있다는 점이다. 더더욱 흥미로운 것은 일전에 영화 '파프리카'를 보고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 싶어 기시감에 고개를 갸웃갸웃 했는데 일요일 오후 멍하니 서가를 바라보다가 서가에 꽂힌 '파프리카'라는 쓰쓰이 야스타카의 책을 발견했다. 1994년 8월 20일 초판 2쇄 발행. 당시에는 SF다 뭐다 해서 이래저래 책을 찾아서 읽었으므로 1995년이나 1996년 쯤에 구입해서 읽은 책일 것이다. 11~12년 전에 읽고 새까맣게 잊었다. 심지어는 얼마전에 잘난 척하며 최재천의 글은 안 읽을 꺼라고 떠들어댔는데 그가 1999년 번역한 책이 서가에 버젓이 꽂혀 있고, 무척 재밌게 읽은 기억까지 나서 소름이 돋았다. 읽은 책을 또 읽는 일이 잦은 내 자신이 징그럽고 경악스럽다. 가끔 1999년부터 보전되어 있는 PDA의 일정을 탐색해 보면 내가 정말 이랬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기억이 인간을 규정하는 주요 지표중 하나라면, 난 뭘까?
세계 정복의 파릇파릇한 꿈마저 잃어버린 광우병 환자?

오늘 하루는 '대한민국 30대, 재테크로 말한다'라는 책을 빌려 읽었다. 출간된지 두 달 만에 4쇄를 찍었다. 책 앞 장에 재태크 점수를 메기는 질문지가 있다. 내 점수는 75점. '기본기가 탄탄하므로 대한민국 평균 이하로 가난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알고 있는 지식을 실천할 수 있는 추진력만 겸비한다면 재테크에 관한 한 남부럽지 않은 고수가 될 수 있다' 평가가 후한걸? 집을 사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이에게는 한 푼도 물려줄 생각이 없다. 금융자산과 부동자산의 비율을 8:2로 맞추고 싶다. 노후는 네팔이나 태국 북부, 중국 후난/쓰촨성의 산간지방에서 글이나 쓰며 하릴없이 보내고 싶다. 반품 전문 쇼핑몰이란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www.jaego.co.kr, www.refurbshop.co.kr, www.uniz.co.kr

12억을 모아야 죽기 전까지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은 처음이라 신선했다. 내용 중에는 앞으로 대형 평형의 아파트가 대세가 될 터인데, 그 이유는 대형 평형의 아파트라야지 가사를 도울 수 있는 로봇이 활기차게 움직일 공간이 확보된단다. 골든싱글이 사는 광활한 45평 아파트에서 낮에는 정숙한 가사 도우미로 활약하고 밤에는 침대를 따뜻하게 데워주길 기대해 본다.

그런데,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란 말인가? 베스트셀러라곤 파울로 코엘료의 책 몇 권 읽은게 최근 전부라서...

21세기를 주도한 세 가지 기술은 흔히 Genetics, Nanotech, Robotics의 두문자를 따서 GNR로 불린다. 이미 한물간 것으로 짐작되는 3대 기술, NT, BT, IT 다음에 요즘 유행하는 것이랄까? 빌 게이츠가 공공연하게 말한 후 로보틱스가 화제가 된 것 같은데, 말하는 암소가 손님들 사이를 걸어다니면서 자기 소개를 하고 어느 부위를 먹을꺼냐고 물어본 후 제 발로 도살장으로 들어가 자살하는 genetics를 선호하는 편. 아님 material compiler로 원소물질로부터 암소 안심 스테이크를 직접생산할 수 있는 nanotech도...

日 여성 선택받지 못한 ‘중년동정’ 너무해 -- 기사가 좀 우스워서.


이런 느낌? 2ch의 저 농담이 한동안 유행한 듯. 사방에 온통 저 그림이군.

이외수의 사모님같은 분이 어머니였다면, 어쩌면 모범생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비뚤어져서 수도승으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불가에 귀의한 후 25년 동안 로보틱스가 주는 육체적 쾌락과 마법의 세계를 탐닉하다가 절의 돈을 훔치고 절집에 불을 지른 후 인도로 떠나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헤멘다던지. 그러다가 신은 위대한 이원론속에 도사리고 있으며 수사학적 떠버리즘과 수학적 정교함의 애매한 어느 간극에 신이 스프링처럼 오락가락 진동한다는 것을 깨닫고 정보로서 존재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시공간이자 물질인 우주를 구성하는 비트의 진의를 이해하려고 프로그래머가 되어 '정진'하다가 해탈을 위한 고행의 길중 가장 어렵다는 결혼을 택하고 잃어버린 영혼의 대체재인 소울이를 낳은 후 재테크를 하며 고통스럽게 살았을 것이다.

지금과 다를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데우스 마키나가 난무하는 이 세계에서 눈먼 테이레시아스의 뒤늦은 증언(저주?) 같은 운명(천성; nature)은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양육(nurture)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세대를 이어온 유전자 칵테일, 스크류 드라이버가 될지, 모히또가 될지, 마가리따가 될지, 폭탄주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페이지를 앞으로 스크롤해서 애 얼굴을 다시 보면 모든 것이 명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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