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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8

여행기/Taiwan 2004. 2. 27. 17:14
한식당(북경)에서 짬짜면(짬뽕과 짜장면)과 우동을 먹었다. 김치와 깍두기, 단무지와 양파 등이 밑반찬으로 나와 그럴듯 했는데 세 음식 모두 뭔가 맛이 좀... 어쨌든 듬뿍 들어 있는 야채와 '정상적인' 면발로 배를 채웠다.

간혹 한국인 남자가 필리핀인 여자의 팔짱을 끼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http://phillove.co.kr에 가면 필리핀의 나이트라이프에 관한 많은 양의 정보를 구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바에 한 번도 들어가보지 못했다. 아내가 옆에 있으니까...

아침 일찍 일어났다. 식비는 100페소 이상씩 펑펑 쓰면서도 마지막까지 4페소 짜리 지프니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네 번 씩이나 패스포트를 꺼내 검사 받고 줄을 서서 짐 검사를 두 번씩이나 했다. 시간이 많이 걸려 비행기 떠날 시간이 다 되어 탑승 승객을 찾는 final call 방송을 들으면서 비행기에 탔다. 그런 와중에도 짐 검사를 한 줄로 하더라. 비효율. 오랫만에 보잉의 7xx 시리즈가 아닌 에어버스 비행기를 타본다.

Manila -- air 2hrs --> Taipei -- bus 1hrs --> Hsinjoo -- train 15min --> Hsinfong

타이뻬이에서 42km 떨어진 창카이섹 국제 공항에 도착. 어리벙벙하다. 중국 여행의 경험이 생각나 왠지 숨이 막혀 왔다. 사전 지식 없이 공항에 올 때까지 가이드북도 안 읽었으니까. 공항->시내, 시내에서의 숙소, 3일 간의 일정을 잡고 있는 동안 아내가 유 신부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장난 전화기를 붙들고 헤메고 있었다. 간신히 통화에 성공, 하지만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대만인의 도움으로 공항 버스를 탔다. 15분쯤 달렸을까? 갑자기 승객들이 내렸다. 어리벙벙하게 따라 내렸다. 갈아타야 한단다. 가는 길 내내 즐비하게 늘어선 공장을 보았다. 신쭈우(新竹)에 내렸다. gps로 포인트를 찍어 보았다. 여차하면 타이뻬이로 돌아가야 하니까. 신쭈 근처에는 컴퓨터 생산 공장이 있다. 사이언스 파크도 눈에 띄었다.

내리고 나자 다시 황당.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는 도시. 물어물어 택시를 타고 간만에 들어보는 그 정겹고 이가 갈리는 이름, 후어처짠(기차역)으로 향했다. 중국에서 한 달 남짓 있는 동안 후어처짠을 4성에 맞춰 발음하느라 고생했다. 발음이 안 좋아 대다수 중국인들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신쭈에서 신퐁(新豊) 행 전철을 잡으면서 다시 헤멨다. 2시간 반 동안 정신없이 이동한 끝에 천주당(성당)에 도착했다. 천주당 입구에 김대건 신부가 갓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유 신부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사제관에서 머물도록 허락해 주셨다.

마치 도교 사원 처럼 생긴 중국식 천주교당에서 미사에 참가했다.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유 신부님에게는 실례된 말씀이지만, 마치 사이비 종교의 제례를 닮은 다소 희안한 미사를 구경했다. 수녀 중에 젊은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다.

유신부님이 자신의 월급의 1/5에 해당하는 돈을 경비에 보타 쓰라며 불쑥 건네 주신다. 아내는 안 받으려고 한사코 사양 했지만 난 누가 뭔가를 주면 거절하지 않는 타입이다. 평소에도 주는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편이다.

대만에서의 첫 식사는 샤부샤부 였다. 대만식 김치를 넣었다는데 얼추 김치찌게 비슷한 맛이 났다. 듣자하니, 신쭈와 신퐁에는 한국에서 반도체 도면을 빼돌려(산업 스파이) 그것을 대만에 팔아버린 한국인 기술자들이 모여 산다고 하더라. 밤에는 파푸아 뉴기니에서 오신 이 신부님과 합석해 술 먹고 노래를 불렀다. 이 신부님이 사람을 20여명이나 죽인 살인마에게 영세를 줬던 어처구니 없는 사연을 얘기해 주셨다. 신부에도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수용 신부와 수출용 신부. 아무래도 수출용 신부님들이 훨씬 재밌다. 하하하. 58이라 불리는 끝내주는 고량주와 여러 종류의 맥주를 섞어 마셨다. 새벽 5시쯤 파장.


대만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샤브샤브 가게. 이곳은 김칫국물이 육수였다!

-*-

아내가 아홉시에 깨웠다. 어젯밤 술을 섞어 마셔 술이 안 깬다. 얼른 씻고 나왔다. 아랫배가 찌부두둥해 가게에서 우육면 비슷한 것을 시켜 먹었다. 머리가 아파 전철에서 줄곳 눈을 감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물을 마시는 건데...

기룽까지 2 시간 동안 전철을 타고 갔다. 그동안 아까 먹은 느끼한 국수 때문에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꾹 참고 있었다. 기룽에 도착해 화장실에서 먹은 것을 토하니 속이 시원하다. 두통약(아세트아미노펜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브루펜인 듯. 아내의 말로는 아세트아미노펜을 주성분으로 하는 타이레놀보다 브루펜 계열이 부작용이 적고 좋단다)을 사다 먹느라 1시간을 소비했다. 좀 진정이 되는가 싶더니만, 이번에는 아내가 보리 음료를 마신 후 피부가 견딜 수 없이 가렵단다. 다시 약국을 찾아 돌아다니며 안티 히스타민 약을 샀다. 늘상 보아오던 zirtec(하이드로클로라이드)이었다. 우리 둘은 약 먹은 병아리처럼 골골 대다가 이대로는 도저히 버스 타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비정성시를 찍은 골목길이 있는 그 도시에 가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정을 포기하고 근처 중산 공원으로 향했다. 약기운이 퍼지기 시작한 아내는 중산공원 꼭대기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진통제 때문에 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아, 그나마 3일 밖에 안되는 일정 중 하루를 이동하고 술 마시느라 보내고 그 다음날은 전날 숙취와 희안한 알러지 때문에 날려보내는구나 싶었다.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꾸며놓은 절에 들러 시주하고 사이좋게 기대 졸다가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은 것이 없다. 벌써 오후 3시다. 거리에서 음식을 사먹으며 기운을 좀 차렸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아내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지룽의 명물은 구경도 해 보지 못하고 터미널로 돌아왔다.

터미널에서 신퐁행 버스가 눈에 띄었다.별 생각없이 차표를 구입해서 시내버스(?)에 올랐다. 2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로 가는 버스가 시내버스라는 점이 이상하긴 했지만 대만이 워낙 작은 동네고, 금액이 얼추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고, 우리 부부는 맛이 간 상태였다.

버스에서 졸다가 깨어보니 보여서는 안 될 해안선이 보였다. 머리 속의 자석은 버스가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지시했다. 우리는 서쪽으로 가야 한다. 어쨌거나 바다가 보이니 기분이 좋았다. 졸았다. 깨어보니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버스가 멎은 채 우리만 남았다. 운전기사 아저씨와 손짓 발짓으로 얘기해 보니 우리는 신쭈 근방의 신퐁에 온 것이 아니라 지룽 근교의 신퐁이라는 똑 같은 이름의, 한창 건설이 진행중인 신 도시에 온 것이었다. 얼레벌레 엉뚱한 표를 사고 엉뚱한 버스를 탄 것이다.


여기가 대체 어딜까... 말도 안 통하고... 무작정 버스를 기다리며.

잠이 다 깼다. 정신 차리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왔다. 하루 일정을 망친 것도 모자라서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하다니... 아내는 환불 받아야 한다며 버스 터미널 매표소로 가서 아저씨들한테 따졌다. 일단 한 번 산 표는 환불이 안된다고 말하지만 아내가 우기면 안 되는 일이 왠일인지 잘 되는 경향이 있었다. 240위엔(8400원) 주고 산 표를 시내 버스 두 번 타고 아내의 말에 따르면 '약간 손해를 보면서' 150원(5250원)을 환불 받았다.

배가 고파 이것 저것 사 먹으면서 전철에 올라 또다시 꾸벅꾸벅 졸면서 신퐁에 도착하니 밤 아홉시 무렵이다. 배가 고프던 차에 신부님이 남은 해물탕과 밥을 주셨다. 밥 먹고 잠깐 중국인의 구린 정신 세계에 관해 얘기하다가 잠들었다. 어제, 오늘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어 허전하다.

-*-

아침 일찍 일어나 신부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타이뻬이로 향했다. 오늘은 기필코 일정대로 하자고 다짐했다. 먼저 온천에 들러 온천을 한다, 그리고 나서 장제스가 중국 본토에서 날라온 70만점의 유물이 있다는 고궁 박물관 National Palace Museum에서 공들여 중국 문화의 진수를 맛본다. 그리고 쇼핑하고 공항으로 향한다.

비교적 쉽게 타이뻬이 근교의 온천을 찾아갔다. 간판이 모두 한문 일색이라는 점을 빼면 타이뻬이가 마치 서울 같아 보였다. 10:20분 도착했는데 온천이 잠시 문을 닫았다가 12:00pm부터 다시 문을 연단다. 1시간 반을 공중에 날리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밥을 먹고 근처를 떠돌며 시간을 보내다가 노천탕이 문을 열자 마자 들어갔다. 유황 냄새가 코끝을 징하게 달군다. 필리핀에서 검게 태운 살 껍질이 사정없이 벗겨졌다. 온천이 뜨거워 1분 이상은 제대로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어 정말 시원하다.



계획대로 고궁 박물관으로 향했다. 시간이 별로 없어 버스 정류장 앞에서 택시를 잡아 탔다. 오디오 가이드를 구할 수 없어(기계를 이미 모두 대여 중) 아쉽지만 별다른 설명을 들어 보지 못한 채 유물을 관람해야 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예전에 책에서 본 중국 최고의 보물들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 1,2,3층을 뒤져 보았다. 문가에 놓인 어느 팜플렛을 뒤적이다가 전시물 중 아주 귀한 것들은(특히 서화류) 10월에서 11월 사이에만 공개한다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3시간 이상은 구경해야만 제대로 볼 수 있다던 고궁 박물관 관람은 2시간이 채 안 되어 끝났다. 딱히 볼만한 것들이 없었다. 전시 상태가 훌륭하지만 중국의 박물관에서 보았던 것들 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몇몇 물품들은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전에 봤던 그 많은 보물들은 다 어디 쳐박혀 있는건가. 2004 taiwan touch your heart라면서 타이완이 관광진흥책을 펴고 있었다. 가슴을 그렇게 건드려대니 가슴이 아플 수 밖에. 고생해서 왔는데 화가 치밀고 입가에 욕설이 슬며시 맴돌았다. 이런 잡동사니를 보려고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3일 내내 닭짓 하다가 고작 이걸 보려고... 뭐 그런 것이었다.


찍으면 안되는데, 찍었다. 서화는 찍지 말란다.

아내가 급하게 서둘러 타이뻬이 시내로 돌아오자 마자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가이드북에는 안 막힐 때 1시간 가량 걸린다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40분 가량 걸렸다. 볼 때마다 희안한 생각이 드는 가이드북이었다. 이 책은 배낭여행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대부분 중고급 호텔을 숙소로 소개해 놓았고 관광 포인트의 지도가 부실했다. 교통편은 그걸 정보라고 적어놓은 것인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만한 정보량을 축적한 한국인이 쓴 가이드북이란 점이 존경스러워 저자 부분을 살펴 보았다. 어... 그런데, 이거 일본 가이드 북 번역하고 어니홍이란 사람이 감수한 것이잖아? 살 때 미처 보지 못했다. 악, 하고 말았다.

면세점에서 이것저것 선물을 샀다. 필리핀에서도 사고 대만에서도 샀다. 술만 다섯 병을 샀다. 이것 저것 합치면 대략 200$ 가량이 선물 값으로 나간 것 같다. 950$을 환전해 들고다니면서 그중 720$을 썼다. 선물값 200$을 빼면 520$ 가량을 순수 경비로 사용한 셈이고 그중 200$이 필리핀에서 비행기를 2번 타는데 든 비용이다. 그럼 대략 320$ 가량을 10일 동안 쓴 셈이 되나? 계산을 제대로 안 해 봐서 정확하지 않지만, 큰 비용을 들이지는 않았다.

열흘 동안 비행기를 여섯 번 탔다. 잘한 짓은 아니다.

일정이 짧아 제대로 구경조차 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여행 준비를 소홀히 한 것은 그 동안의 짬밥 때문에 생긴 자만심 탓이리라. 여행 기간이 짧으면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하고 여행 계획을 정교하게 짜야 한다.

타이완에서 세계 최고의 철도 코스 중에 하나인 아리산 철도를 못 타본 것이나 요리 한 접시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대만은 여행하기 참 편한 나라다. 중국처럼 영어가 전혀 안 통하는 것도 아니고 인프라가 잘 발달되어 있어 별 고생없이 여행할 수 있는 나라인 것 같다. 언제 한 번 다시 가 보고 싶다.

9:30분쯤 한국에 도착. 인천 국제 공항에 비행기 타고 돌아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착륙하고 나서 한참 동안 비행기를 자동차처럼 굴려 게이트로 향하는 과정이 몹시 지루하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 앞으로 걸어가다가 눈보라를 만났다. 황당했다. 오뎅국을 만들어 소주를 한 병 마시고 잤다. 소주가 쓰다.

대만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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