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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ama

여행기/Costa Rica 2003. 5. 5. 18:14
San Jose -> border -> Panama City

복사한 론리의 파나마 섹션을 들쳐 보았다. 가이드북을 살펴봐도 싸게 먹히지가 않는다.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많고 돈도 많이 들고... 하는 수 없이 투어 버스를 잡으러 갔다. 투어 버스의 가격은 17$, 내가 국경까지 버스를 타고(8$), 손수 국경을 건너고, 늦은 밤이라 차가 없으니 국경마을에서 1박 하고(6-7$) 다음날 파나마 시티로 가면(10$) 투어 버스 타는 편이 편하다. 표를 사는데 옆에 있던 멕시칸이 영어로 당신 왕복 티켓을 사야지 국경에서 쫓겨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알고 있지만 편도 티켓을 샀다. 왕복 티켓은 40불이나 해서 거지가 넘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돈이 별로 없다.


버스를 탔는데 옆 자리에 앉은 작자가 영어를 할 줄 안다. 아... 얼마나 오랫만에 들어보는 제대로 된 영어냐... 읽고 있는 책이 심상치가 않다. 중미 근현대사다.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 자락에는 소니의 MD 플레이어가 달려 있었다. 잘 사는구나... 꼬스따 리까 사람인데 직장이 파나마에 있단다. 그와 어쩌다가 중미의 경제 사정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가 생각하는 중미의 경제는 정치와 지나치게 맞물려 있어 암울하다는 것이다. 멕시코는 괜찮지 않나? 했더니 실실 웃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멕시코의 가장 큰 문제는 국부가 계속 외국으로 빠져 나간다는 것이었다. 멕시칸은 돈을 좀 벌면 모두 미국으로 가고 싶어했고 또 미국으로 넘어갔다. 또한 미국인의 투자러시가 지속되면서 멕시코 경제의 상당 부분을 이미 잠식했다는 것도 있었다. 멕시코인이 미국 비자를 받기가 워낙 까다로운 관계로 멕시코 부모들은 국경을 넘어 아이를 낳아 아이에게 미국 국적을 '선물'한다고 했다. 왜 자꾸 미국으로 가려고 하느냐 하면 정치적인 불안감 때문이란다. 멕시코 의회나 대통령의 권한이 워낙 약하고 빈부격차가 심해서 누가 방아쇠만 한번 당기면 곧바로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국경에서 이민국 통과와 짐검사 따위로 2시간을 보냈다. 이민국 관리가 징그럽게 생겼다. 빠나마 이민국에서 뜬금없이 날더러 한국 돈을 보여달란다. 여권만으로는 당신이 북한사람인지 남한 사람인지 믿을 수 없단다. 웃기고 있네. 웃기고 있었지만 내 뒤에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터라 실랑이만 벌이고 있을 수가 없다. 배낭에서 한국돈 5000원 짜리를 꺼내 보여주니 자기한테 달라고 한다. 줄 수 없다고 우겼다. 이 자식이 이런 저런 꼬투리를 잡으려고 애쓰는 동안 10분이 흘렀다. 내가 졌다. 한국 동전 100원 짜리를 던져주고 투어리스크 카드를 사서 다시 스탬프를 찍으려고 이민국 관리 앞에 섰다. 밤 9시다. 그 자식이 스탬프 찍어주길 망설이면서 시간을 질질 끌었다. 왕복 티켓 얘기가 나오면 어쩌나 속으로 좀 캥겼다. 날더러 인지를 사란다. 앞 사람이 사길래 별 생각 없이 1달러 짜리 인지를 샀다. 서류 작성비 2불을 내란다. 못주겠다고 말했다. 벌써 15분이 넘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다. 너 이름이 뭐야? 라고 물으니까 마지못해 여권을 건네주면서 실실 웃는다.

배고파 죽겠는데 돈은 없고... 남은 꼬스따 리까 동전으로 빵 두 개를 사서 먹었다. 버스에 앉아 곰곰히 생각해보니, 당했다. 인지는 꼬스따 리까 국민들이나 사는 것이다. 5불짜리 투어리스트 카드만 사면 되는 것이다.

빠나마 시티에 도착하니 새벽 3시 반. 썰렁하다. 어쩌라는거여... 물어물어 호텔 지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찍어둔 숙소 있는 곳까지 걸어가자니 너무 멀다. 택시 타기는 싫고... 하는 수 없이 일대를 샅샅이 뒤져 그럭저럭 쓸만한 숙소를 잡았다. 8불이나 들었지만 방에 TV가 있다는 점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한 잠 자고 일어나 인터넷 까페부터 찾았다. email을 작성해서 파나마 관광청과 이민국 앞으로 보냈다. 대통령 email 주소는 못 찾았다. 하자가 없음에도 인지 판매를 강요했다는 내용이다. 사실은 내가 멍청했다는 얘기지만 그런 낌새는 비추지 않았다. 국경 이민 사무소 놈들 어디 한번 엿먹어 봐라. 과연 엿먹을까? 엿먹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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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ta Rica

여행기/Costa Rica 2003. 5. 4. 11:34
Granada -> Rivas -> Panas Blancas -> border -> Costa Rica San Jose

5월 2일은 오이 먹는 날. 그래서 vitamin C가 풍부하고 피부미용에 좋은 오이를 먹었다. 니카라구아 오이맛은 최~악~이다.

나와 당신의 인생은 언제나 대박이다. -- 어느 음반 기획자가 로또 말고도 우리 인생이 행복해야 할 '망할' 이유들이 많다며 하는 말.

언제나 대박? 맛없는 오이를 먹으면서 세상을 긍정하기가 쉽지 않은데? 멜론을 먹고 싶어도 부담스러운 크기 때문에 과일 칵테일류만 먹었다. 오렌지 한두 쪽, 멜론 한두 쪽, 수박 한두 쪽, 파인애플 쪼가리가 비닐봉지에 1킬로그램쯤 들어있는 한화 300원짜리 비타민과 섬유질 덩어리. 천성적으로 과일과 야채에 '친화력'을 가진 여자들과 달리 남자애들이 여행하면서 말라가는 것은 영양소를 효과적으로 흡수하도록 도와주는 비타민의 섭취를 등한시하기 때문인 것 같다. 열대지방에서 열대과일의 비타민은 일종의 생명선 같은 것이다. 여자들이 과일과 채소에 집착하는 것은 그간 문명의 발달이나 인류 진화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듯.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봐주려는 노력이 있어서 일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당신 인생은 대박이고 내 여행은 쪽박이다. 이 더위에 살 빠지면 맛이 갈 것 같아서 밥은 걸러도 과일을 챙겨 먹는다.

국경 이동이 잦아 최근 늘 긴장해 있다. 긴장해 있으므로 현지인을 대하는 것이 뻣뻣하다. 한밤중에 지나가던 술 취한 아저씨가 내가 떨구고 잊은 담배를 줏어준다. 히죽 웃는다. 사람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니카라구아인은 친절했다. 니까라구아는 전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중에 하나니까 친절지수가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엘 살바도르나 온두라스보다 잘 사는 것처럼 보였다. 에스빠뇰만 좀 할 줄 알면 재밌을 것 같은 나라다. 수퍼에서 아줌마가 쇼핑에나 전념할 것이지 옆에서 이것 저것 꼬치꼬치 묻는데 하나도 못 알아 들었지만 대충 짐작해보니 어떻게 니카라구아에 왔냐는 질문인 것 같다. 말도 못하는 바보 취급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영어로 얘기하지는 않았다. 영어도 한국어도 스페인어도 안하고 그냥 바보같이 어버어버 거렸다. 친니, 라면서 아줌마들 끼리 무슨 놀라운 것이라도 발견한 양 자기들끼리 열심히 쑥덕거린다. 부질없는데 관심 두는 것이나 당사자를 바보로 만들어 소외시키는 것은 한국의 아줌마들하고 똑같다.

눈에 띄는 현상만 보건대, 중미인들이 숫자 계산에 약한 것 같다. 지난 3일 동안 경험한 것들; 케이스 1: 수퍼에서 10.25가 나와 20 짜리 지폐와 50짜리 동전을 주면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며 망설이다가 50짜리 동전을 돌려주고 9장의 지폐와 50짜리 동전과 25짜리 동전을 거슬러줬다. 딜버트를 보면 엔지니어들의 영 바보스러운 버릇 중에 하나가 상대방의 편의를 배려해준답시고 내가 하듯이 해서 계산을 더더욱 복잡하게 만든다던데, '숫자에 밝은' 엔지니어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한국인들이 다 그러지 않나 싶다. 동전이 싫다. 환전이 안되니까 거지한테 줘야 한다. 어떤 거지는 외국돈이라며 사절하기도 했다. -_-

케이스 2: 국경으로 가는 버스에서 계산이 잘못 되었다. 버스비가 얼마냐고 물으니까 15란다. 잔돈이 없어 100 짜리를 주니 20짜리 다섯장과 5짜리 동전을 건네준다. 100-15=105가 되었다. 왜 이러나. 돈도 남고 해서 버스가 잠깐 섰을 때 바구니를 든 아줌마에게 아구아 데 오차따(Agua de Hochata; 쌀 가루와 계피 가루를 타서 얼음을 넣은 물)를 샀다. 3 꼬르도바 짜리인데 잔돈이 없단다. 그래서 과자 2개를 더 샀더니 20짜리를 받아 11을 돌려준다. 13을 돌려줘야 맞지만 그 동안 중미인들이 보여준 친절에 보답할 겸 그냥 넘어갔다. 1 꼬르도바는 0.06896551724138 달러다.

케이스 3: 피씨방 주인이 계산을 잘못해서 콜라값을 빼먹었고 2시간을 사용했는데 1시간 10분 사용한 비용만 받았다. 다시 들렀을 때는 내가 얼마를 사용했는지 되려 나한테 물어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두 시간 썼지만 한 시간 비용만 냈다. 이렇게 돈에 연연하지 않고 항상 웃으며 고객에게 감사할 줄 아는 이들의 모습이 몹시 흐뭇하다. 피씨방에 그렇게 오래 있었던 이유는 에어컨 바람이 시원해서였다. 울컥.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내 오렌지 쥬스를 누가 다 마셨다. 여행자가 몇 명 있는데 가만히만 있으면 아는 척 하지 않아서 좋다. 다들 가만히 있는다. 그라나다 시내에서 외진 곳에 떨어져 있는 싼 숙소라 여기 들어오는 작자들은 대충 서로 서로가 어떤 사람들인지 말 안해도 알고 있는 것 같다. 혼자 다니고, 허름한 옷차림에 음식을 늘 해먹고, 일 없이 시간을 잘 때우는 모습을 보면 그간 얼마나 굴러 먹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냉장고에서 남의 재료를 조금만 슬쩍 해서 활용하는 것조차 '장기 여행자의 도'에 한치의 어긋남이 없다. 서로 여행 얘기는 입도 뻥끗 않는다. 오늘 숙소에서 상영하는 영화 제목이 하루 일정을 결정하기도 하고...

부엌을 남김없이 활용하는 재주 중 하나는, 냄비선점이다. 냄비에 뭔가를 남겨놓고 악착같이 내주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다. 나도 최근에 이들로부터 배웠다. 우리는 샤워실에 있는 누구것인지 모르는 작자의 비누를 돌려 가면서 사용했는데 어느새 다 닳아 버렸다. 세탁대의 세탁 비누도 마찬가지다.

숙소 중앙의 작은 정원을 가로지르는 형형색색의 빨랫줄만 봐도 그렇다. 피차 돈이 없으니까 빨래를 론드리에 맡겨 지출을 늘리지 않는다. 중남미에서는 론드리가 싸지만 이 숙소에 모인 거지들은 이 더위에 땀을 꾸역꾸역 흘려가면서도 빨래를 했다.

그 돈을 아껴서 맛있는 바나나 스플릿 같은 것을 사 먹을 때 쓰는 것이다. 숙소에 있는 친구들을 시내에서 가장 싼 식당에서 얼굴을 다시 보게 되면 약간 머쓱하다. 어떻게 여길 귀신같이 알고 찾아왔지...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이 그 가게에서 제일 싸고 양 많은 똑같은 메뉴라는 점이다... 물을 공짜로 준다는 사실마저 알고 있으면... 으...

아이스크림 집이 문을 열지 않아서 몹시 안타까웠다. 값싸고 양 많아서 한끼 식사로 충분한 바나나 스플릿을 먹을 기회가 사라졌다. 바나나 스플릿은 아이스크림계의 꽃 중의 꽃인데 그라나다에서 틈틈이 여러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골고루 섭렵하면서 마지막까지 남겨 두었던 것이다. 거리를 샅샅이 뒤져 그 아이스크림의 본점을 이미 파악해 둔 상태였다. 각국의 바나나 스플릿을 먹어보는 것이야 말로 중미 맛따라 길따라의 기본 정석이라고 믿는다. 중미 아이스크림은 값이 싸면서도 품질이 수준급이다.

꼬스따 리까에 가면 엑스맨2를 볼 수 있을까? 마그네토가 인체의 철분을 뽑아서 무기를 만들어 감방을 탈출한다던데... 요즘 생체 자석이 말을 안 들어서 길에서 종종 헤멨다. 북쪽(자북)으로의 쏠림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체내에 철분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그라나다에 부동산 가게가 많은 이유를 꼬스따 리까에서 알게 된 것 같다. 꼬스따 리까는 살기 좋은 나라다. 그래서 정착해서 살고 싶어하는 미국인들이 많아 부동산이 활발하게 거래되었다. 여파가 니까라구아까지 건너간 것 같다.

-*-

다음날 국경을 건넜다. tica international bus를 타면 전처럼 편하게 넘을 수 있지만 비자 문제가 나 모르게 처리되는게 마음에 걸려 혼자 넘기로 했다. 버스 두 번 갈아 타고 니까라구아 출국장에 가니 이민국이 세 개가 있어 그 사이를 돌아다니느라 삽질했다. 꼬스따 리까 이민국에서 입국신청할 때 사람들이 리턴 티켓을 들고 있어서 불안했다. 리턴 티켓을 제시해야지만 입국시킨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국경에서 니까라구아행 티켓을 판다나... 돈 들어서 사기는 싫고, 종이 한 장 줏어와 반쯤 접어 마치 티켓인 양 다른 사람들처럼 손에 쥐고 있었다. 여권을 살펴보던 작자가 파키스탄 비자에 멈칫한다. 또야? 환장하겠군. 파키스탄 사람들 착하기만 한데... 창구 너머로 나를 흘낏 쳐다본다. 미소를 짓고 손을 들어 '티켓'을 슬쩍 흔들어보였다. 무사히 넘겼다. 티켓 검사를 하는 사람이 있고 안 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니 있어 보이는 티를 내야 할 것 같다. 그렇잖아도 국경 넘을 때와 대사관 갈 때는 깨끗한 옷을 입고 묻는 말에만 간단히 대꾸했다.

스탬프를 보니 꼬스따 리까 공짜 비자가 90일 짜리다. 비싸기만 하고 딱히 볼 것도 없고 그링고들이 우글거리는 나라라 2-3일 머물다가 파나마로 갈 생각이다. 휴게실 매점 아줌마의 영어 솜씨가 유창하다. 남은 동전은 환전할 수가 없었는데 아줌마가 음료수 사면 환전해 준단다. 아침부터 과일 칵테일 먹은 것 빼고 쫄쫄 굶었다. 숙소 냉장고에 있는 내 오렌지 쥬스와 우유를 누가 다 먹어서 콘플레이크를 그냥 먹기가 뭣해서 놔두고 왔다. 간만에 콘 플레이크 좀 먹어볼까 했는데...

산 호세까지의 버스표를 샀다. 계산해 보니 티카버스는 22불인데 이렇게 혼자 넘으니까 8불 들었다. 흐뭇하다. 한 시간 반쯤 멍하니 앉아 산 호세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pda도 날아가고, 책이라고 있는 것은 가이드북 달랑 하나라 할 일이 없다. 암케가 꼬리를 세우고 나다니는 것을 보니 꼬스따 리까의 경제 사정이 좋고 국민들이 행복한가 보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 짐 검사를 좀 심하게 했다.

국경을 넘자마자 어쩌면 이렇게 풍광이 확 달라질 수가 있는지 신기하다. 시원스러운 들판이 펼쳐졌다. 모두 잔디밭이었다. 간간히 그 잔디밭 위에 축구 골대가 덜렁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잔디밭 만들기는 쉬울 것 같다. 풀밭에 소 한두 마리 풀어 놓기만 하면 다음날 말끔해지니까. 음... 축구장을 환경친화적으로 만드는 방법이랄 수도 있겠다. 관중들이 화장지를 던지면 그 사이를 소들이 지나다니며 줏어 먹는다던지... 해가 지고 있다. 고생스럽게 빨리 이동할 필요는 없는데, 버스 타고 지나가면서 경치 보는 것이 재미있다.

졸다 차가 멈춰 깨어보면 경찰의 검문, 가는 길에 검문만 다섯 번, 그래서 5시간 걸린다는 버스가 6시간 30분 걸렸다. 차에서 내리니 저녁 8시가 다 되어 거리에 사람이 없어 을씨년스럽다. 내린 곳이 어딘지 모르겠다. 고도는 1100m, 30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곳에서 연평균 기온이 24도인 곳에 오니 쌀쌀하다. 발걸음을 서둘러 한참 걸으니 중심가가 나왔고 사람들이 지나 다녀 안심했다. 가장 싼 숙소를 잡고 근처 중국집에서 광둥식 볶음밥을 시켜 먹었다. 식당이 보통 소란스러운 것이 아닌데 다르게 보면 사람들이 활기차달까. 바나 테이블에 빈 맥주병이 그득하다. 중국 음식점이 정말 많다.

테드 치앙이 상을 받았다. 처음 테드 치앙 글을 읽었을 때 상 받을 글 쓰는 타입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렉 이건을 좋아할 줄 알았다. 테드 치앙 같은 작가는 그렉 이건처럼 시대를 선도하는 오리지널리티를 생산하는 작가를 좋아할 것 같았다. 한 시대를 앞서간(지금은 아닌 것 같지만) 전격 하드보일드 막 나가자 sf를 썼던 그렉 이건의 폭력적인 상상력이야 말로 진정한 sf 사나이의 로망이다.

코드웨이너 스미스의 sf를 그닥 재밌어 하는 편은 아니었다. 단편집 보는 내내 하품을 했다. 구한말 공룡 씨나락 까먹는 구리터분한 얘기를 머가 지금 봐도 신선하다는 건지. 21세기에 불사판매주식회사를 읽는 것만큼 하품 나온다. 차라리 라엘리언 사이트와 안티 라엘리언 사이트를 찾아서 논쟁을 읽는 것이 더 나았다. 어서 빨리 라엘리언 재단에서 클론을 대량 생산해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엿먹여 주길 바라는 편이다. 라엘 재단은 장생, 불노불사(냉동수면 연구도 포함해서), 인간복제, 외계인과의 교류, 프리섹스 등 재밌는 것들만 콕 집어서 다 해먹고 있는 관계로 미워하기가 힘든 집단이다.

크리슈나무르티는 그의 저서, 앎으로부터의 자유에서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배우려는 자는 언제나 중고 인간이 될 수 밖에 없다'고 가르쳤다. '믿음과 이상은 부정직한 삶을 만든다'고도 했다. 믿음과 이상은 '앎'이라는 '착각'으로부터 온다. 참고로 크리슈나무르티의 주장을 따르게 되면 중고가 된다. 최신판 인간이 되고 싶으면 그의 주장은 흘려들어야 한다. 크리슈나무르티가 슬쩍 하지 않은 말이 있다면, 사실 인간은 중고라는 점이다. 중고면 어때? 중고는 값이 싸고 부서져도 안타깝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하여튼 주관적인 인식으로 우주라는 패턴을 이해하게 되면(지난한 과정을 통해) 크리슈나무르티가 한 말이 그가 한 말이 아닌 자신이 한 말이 될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의 의도가 그것인 것 같다. 과연 그럴까? 크리슈나무르티는 항상 자유에 관해 이야기 했는데(그는 평생 자유를 추구했던 관계로 부인을 비롯한 여자 관계가 안 좋았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배움과 삶을 강박관념이 아닌(삶과 배움은 때때로 강박적이다. 심지어는 대박 운운 하며 예찬할 필요가 없는 삶을 예찬하는 행위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행위 등) 애시당초 '자유로운'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과 연결시키고 싶어했다. 각성을 통하여 자연스러움으로의 회귀. 글쎄다. '앎' 만큼이나 희망이자 착각으로 보인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언술은 껍데기에 설탕을 발라놓은 고급 궤변에 속한다고 보았다. 언어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언술을 포함하여, 제한적인 삶을 투영하는 제한적인 도구이다. 역으로 말해 언술이 삶 자체가 되고 힘이 되는 소수도 있게 마련이다.

말(앎)을 버리고 자유를 얻은 사람은 어떻게 자신이 자유로운지를 설명할 수 있을까?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자신이 안다는 사실을 자신이나 타인은 어떻게 인지할 수 있을까?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생각하면 된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그가 직관과 통찰을 얻었다는 뜻이 된다. 자신은 그렇다 치고 타인이 그가 자유로운지 아는 방법은 그럼 무엇일까? 간단하다. 타인 역시 직관과 통찰을 얻어 자유로운 자의 머리를 꿰뚫어보고 즉각적이고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인지하면 된다. 다시 말해, 자유로운 자는 자유로운 자를 알아볼 수 있다. 피차 초능력자들이니까. 인류가 모두 초능력자라면 기아나 전쟁은 없을 것이고 저 남자가 저 여자와 자고 싶어한다는 것을 전 인류가 다 함께 알게 될 것이다.

이렇듯이 자유로워 지려면 초능력자가 되어야 한다. 대개는 먹고 사느라 바빠서 그럴 일이 없으니까 자유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자유 없이도 만족할 만한 삶을 누릴 수 있으니까. 크리슈나무르티는 자신이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음에도 자유 운운 하고 말았다. 왜 했을까? 안 해도 되는데. 이왕 사는 김에 자유도 한 번 얻어 보자고 결심한 사람들이(수요가) 의외로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그는 '앎으로부터의 자유'를 써서 벌어들인 인세 수입으로 '경제적인 자유'를 얻었을 것 같다.

크리슈나무르티가 의도했던 것은 그런 길로 빨리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이드였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직관과 통찰은 누구의 도움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얻는 보석이니까. 이쯤 막 나가다 보니 갑자기 골다 메이어의 주장이 생각났다; 겸손할 것 없다. 당신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니까. 올더스 헉슬리도 그랬다. '45년 동안 끊임없이 연구하고 학습했는데, 이런 말을 하기가 조금은 부끄럽지만, 내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충고는 각자에게 조금만 친절하라는 것이다.' 두 양반의 말에 힘입어 하고 싶은 말은, 여행이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희안하게도 참 많아서 웃긴다는 것이고, 내가 30년 동안 갈고 닦은 직관과 통찰을 바탕으로 불친절하게 간단히 말하면, 조까고 있네 쯤이 되겠다.

nucleus(core) 라는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 음... 정말 이상한 영화였다.

한국 음식점이 있다는 가이드북의 '주장'을 믿고 어렵게 찾아갔는데 중국집이었다. 또다시 지긋지긋한 광둥식 볶음밥을 시켜 먹었다. 홧김에 맥주도 시켜 먹었다. 뭐 가장 값싸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배낭식이니까. TT 이놈에 가이드북의 레스토랑 섹션 만큼은 확 찢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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