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Indonesia'에 해당되는 글 6건
ubud에서 새벽 1시가 다 되어 어쩔 수 없이 잡은 숙소. 방 크기가 거의 30평대. 내 평생 배낭여행 중 이런 넓이의 숙소는 처음.
숙소 가격 대략 16$(150000rp). 좀 비싸긴 한데 이렇게 럭셔리한 안마당을 가진 숙소라니...
1층 숙소의 샤워 꼭지로 물이 제대로 안 나와 2층으로 옮겼다. 더 좋다. 그런데 우붓에서는 이런 숙소가 그냥 배낭여행자의 숙소일 뿐이고... 아, 생각났다. 쥴리아 로버츠 주연의 eat, pray, love란 영화에서 그 여자가 발리에서 묵었던 숙소가 딱 이랬다.
세상에 무슨 화장실이 내가 평소에 묵던 싱글룸 크기냐...
9am, 별 생각없이 거리에 나왔다. 두리번 거리며 걷고 있으니 어떤 삐끼가 다가와 자전거 빌릴 꺼냐고 묻는다. 스쿠터는? 스쿠터도 있단다. 얼마? 하루에 70,000rps. 좋아요 40,000rps로 합시다. 50,000rps가 좋겠어요. 그럽시다. 라이센스 있냐고 묻는다. 없어요. 나를 다른 가게로 데려갔다. 조용히 말했다. 만일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경찰을 만나면, 수납통을 열어 꾸깃꾸깃 접힌 종이 쪼가리를 가리키며, 이걸 보여주라고 말했다. 이게 뭔데요? 그거에요. 그게 뭔데요? 라이센스 페이퍼요. 마음에 드는 헬멧이 나올 때까지 이것저것 써봤다. 다행히 냄새는 안 났다. 삐끼를 잡고 Gunung Kawi(Gunung은 산이란 뜻)에 가려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었다. 일단 기름을 여기 여기 가서 넣고, 거기서 죽 가다가 삼거리 만나면 좌회전해서 죽 올라가면 된단다. 거참 헷갈리는군. 해 보자.
오토바이 타고 비 맞으면서 gunung kawi에 갔다. 입구에서 본, 인도네시아 주요 관광자원 중 하나인 terrace rice paddy. 그러니까 계단식 논. -_-
이렇게 보니 베트남 분위기인데? 아, 그러고보니 계단식 논은 베트남의 주요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계단식 논의 관광자원화가 시급하다. 어쩌다가 쌀농사 포기하고 대농 정책 중심으로 나가다가 이런 귀중한 관광자원 개발을 소홀히 하게 되었을까 -_-
암면을 깎아 만들었다. 정글 한 가운데서 이걸 보니 인디애너 존스 분위기
인디아의 아잔타 석굴과 비슷. 단지 여긴 정글이고, 물이 풍부하다.
manual은 몰 줄 몰라 automatic을 빌렸다. 오토바이 없으면 돌아다니기 힘든 곳.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자전거는 우붓 지형 및 열대의 기온 때문에 좀 힘들어 보인다. 실은 자전거 투어가 있는데 그게 명칭이 'eco tour'라고... 전세계 어디가나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의 사업수완이란 정말...
다음 목적지는 Pura Samuan Tiga. 입장료 받는 곳에 사람이 없다. 관광객도 없다. 그늘에 한가하게 앉아 이끼에 뒤덮인 석상과 여기저기 떼지어 몰려다니는 닭들, 어슬렁 거리며 닭을 노리는 고양이들을 구경했다. 어떤 여행자가 자전거를 타고와 인사했다. 그의 사진을 찍어줬다. 멍하니 앉아 그가 사원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작고 방치된 듯한 사원이다. LP에 따르면 이들 사원은 축제 때가 되어야 사람이 찾아오고 활기를 띤단다.
Pura Samuan Tiga 입구의 도깨비. 힌두교에 이런 도깨비가 있었던가?
역사적으로는 천년이 넘은 사원이지만 지진 이후 복구 대신 renewal을 택함. 따라서 이 사원의 역사는 실질적으로 100년 정도?
발리 엽서에 등장하곳 하던 동굴 사원의 입구. 아, 나도 가이드 끼고 설명 좀 들어봤으면 좋겠건만...
정글로 향하는 길
정글에서 길을 잃고 헤메다가 만난 음료수 파는 아가씨.
그저 산책로 정도에 불과한 밀림의 끝자락(?)에서 마을을 만났다. 어깨폭 정도의 미로를 이리저리 걷다가 길을 잃었다. 막다른 골목 끝에 가정집이 나타나 인기척을 냈다. 쪼르르 달려온 젊은 여자애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 오! 와! 오! 와! 대박!(한국어로 번역하면 그쯤 된다) 그러더니 자기는 슈쥬를 좋아한다며 혼자서 방방 뛰고 난리도 아니다. 휴대폰에 있던 멜론 TOP 100 히트곡 중 소녀시대나 원더걸즈, 2PM 따위를 몇 곡을 들려주니 이거 최신이냐며, 다운해달라고 성화다. 마루에 걸터 앉아 그 아이의 email을 적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최신 히트곡을 보내주마고 약속했다. 아이가 내 주위를 끌더니 거실 TV에서 흘러나오는 한국 드라마를 보여준다. 그 가족은 나도 모르는 무슨 한국 사극을 보고 있었다. 황당하군.
우붓의 관광명소(?) 기념품 시장. 꽤 크다.
쉽게 찾을 수 있을꺼라 생각했는데... 먹을만한 식당을 찾아 거리를 돌아다녔지만 소득이 없다. 엊그제 헤어졌던 뉴질랜드 박사 학위 소지자를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한 눈에 봐도 할 일 없이 무작정 거리를 헤메고 있다. 지독히 고독한, 나같은 타잎의 나이 든 여행자, 어쩌면 그게 그와 별로 말을 주고 받지 않았던 이유일 지 모르겠다, 인도나 페루의 깡촌 오지 같은 곳에서 로칼 버스를 전전하며 한가하게 돌아다니다 만났더라면 함께 히히덕거리며 돌아다녔을 지도 모르겠다. 나나 그나 이런 곳에서 편하게 관광객 요금 주고 투어 버스나 타고 다니는 사람들과 별로 같이 다니고 싶지 않을 것 같으니까. 나처럼 그도 나를 슬며시 외면했다.
길고 지루한 버스 여행 중. 인도네시아의 주요 관광 자원중 하나가 바로 이 논(rice paddy)라니 좀 웃기지도 않아서...
미니버스를 타고 지루한 여행 시작. 인도네시아에는 정녕 고속도로가 없단 말인가? 죽어라고 1차선만 달린다. 그런데 이 미니버스, 좌석이 꽤 넓어 편하다. 에어컨은 뭐... 이젠 포기했다. 내가 탄 좌석열에 스페인에서 컴퓨터 사이언스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연구원이 한 명 탔다. 전공이 Artificial Intelligence다. 왠지 이 친구에게만큼은 별로 말을 걸고 싶지 않다. 창백한 얼굴로 LP에 코를 박고 있다. 앞 자리에는 노르웨이인 남녀가 탔는데 하루에 물을 3리터씩 마시는 네덜란드 호걸이 여자에게 수작 걸다가 진실이 밝혀졌다. 노르웨이 남자가 그녀의 연인이었다. 버스에 정적이 감돌고, 왠지 웃겼다. 스리랑카 변호사만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연신 떠들어댔다.
gunning bromo(브로모 화산)을 보기 위해 소위 view point #1 지점에 올라왔다. 아직 날이 밝질 않아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왠걸. 빗발이 잦아들질 않는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 아래 사람들이 펭귄떼처럼 뭉쳐 웅성거렸다. 그 틈에 끼어 내키지 않는 채취와 비 냄새를 맡기보다는... 빗속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산으로 난 길을 보고 꾸역꾸역 올라갔다. 영국인 청년 친구들이(아니면 aussy겠지?) 서로를 향해 정답게 욕설을 주고 받다가 정상 부근에서 막막한 안개와 비바람에 이구동성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oh shit! fuck! 고개를 돌렸다.
안개가 강한 바람에 휩쓸려 사라진 틈에 잠시 나타난 칼데라
그렇게 30분쯤 기다렸지만 안개는 가시지 않았다. 내려 오는 길에 경치가 좋은 곳이면 말레이 아저씨의 갤럭시S로 그의 인증샷을 찍어줬다. 나더러 찍겠냐고 물었다. 히죽히죽 웃으며 안 찍겠다고 말했다. 어두울 땐 잘 몰랐지만 내려오는 길이 온통 비에 뭉개진 말똥 투성이였다. 차라리 말을 탔더라면 찝찝하지나 않지. 아! 그래서 말을 타는 거구나...
칼데라로 내려와 브로모 화산으로 가는 길. 브로모 화산은 수 차례 폭발로 산의 형체가 거의 사라지고 분화구 밑둥만 남은 상태
수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말을 타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폭발 후 corn이 날아간 bromo 화산 남쪽으로 향했다. 야트막한 야산 같아뵈던 브로모 화산의 밑둥은 다가갈수록 높아졌고 구릉을 따라 단단한 검은 땅을 밟고 차근차근 오르다가 마지막에 가파른 계단을 접했다. 좁은 계단은 둘로 나뉘어 한쪽은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꾸역꾸역 오르고 상대적으로 한산한 내리막길로는 사람들이 조심스레 걸음을 옮긴다.
저 멀리 계단까지는 말을 타고 갈 수도 있다. 갈길이 별로 안 힘들어 설렁설렁 걸어갔다. 아참 이거 활화산이다. 여차하면 터진다. 2011년 분출 사진: http://photoblog.msnbc.msn.com/_news/2011/03/11/6244672-indonesias-mount-bromo-continues-to-erupt
이렇게 보니 흡사 피난민 행렬 같은데? 화산은 이걸로 세 번 째인데 언제나 비가 내릴 때 방문하게 되는 셈.
내 걸음으로 한 150m 되는 이 정도 야산은 성큼성큼 오를만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사람들로 앞이 꽉막힌 계단을 지루하게 올라 정상에 섰다. 난간이 없다. 급경사를 이룬 분화구 안쪽과 역시 급사면을 이룬 바깥쪽 사이에 폭 1m 가량의 길을 두고 사람들이 교차했다. 여차하면 떨어질 것처럼 위태위태하지만 사람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는다. 분화구 아가리는 여전한 비바람과 안개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폭 1m 미만의...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길. 엄청 으시시한게, 바람도 쌩쌩 분다.
칼데라의 저 굴곡은 화산탄이 파헤친 땅으로 빗방울이 시내를 이뤄 사면을 타고 내려가면서 물길이 만든 흔적
안개가 다 걷히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분화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탁한 색깔의, 미동도 않는 물이 고여 있다. 으시시. 누군가 칼데라에서부터 걸어 남서쪽 사면을 꾸역꾸역 올라갔다. 워낙 멀어 흰점과 노란점으로만 보였다. 애당초 사람들로 붐비는 돗대기 시장 같은 계단을 오르지 않고 저렇게 오르는 편이 나았을 껄 그랬다.
분화구가 아까보다 잘 보인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외국인(백인)만 보면 사진 같이 찍자고 우루루 몰려들곤 했다. 뭐 나한테는 사진 같이 찍자는 인도네시아인이 하나도 없었다. 저 검은 머리의 유럽계 외국인도 별로 외국인스럽지 않아 나와 같은 신세. 여기서 한 삼십분 비바람을 맞으며 혼자 온 저런 외국인들 기념사진을 찍어줬다.
어느 소외받고 용감해진 검은 머리 외국인이 기어코 모험을 하러 간다. 그가 리오의 예수같은 십자가 자세를 취하자 인도네시아인들이 환호성을 울리며 그의 사진을 찍었다. 나도 해볼까?
30분쯤 서서 사방을 둘러보다가 시시해져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칼데라 여기 저기 빗물이 내를 이루며 흐르다가 깊이 파인 땅 아래로 내려갔다. 사람이 없어 아늑하고 좋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누군가 소리쳐서 내 시선을 끌었다. 더 이상 갈 수 없단다. 무너지는 흙더미를 기어 올라가니 멀리 떨어진 주차장까지 걸었다. 먼저 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밭에 키우는 작물은 무려, 파! 파가 고냉지 식물이었구나!
함께 투어를 온 사람들과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더치 청년이 노트북을 꺼내 보여주며 자기가 이걸 사기 당해 사게 된 사연을 들려줬다. 삐끼를 통해 여행 중에 노트북을 구입한 사람은 처음 봤다. 다들 말 없이 이런 바보는 처음 본다는 깊은 이해의 눈초리로 그의 얘기를 경청했다.
브로모 화산 투어를 끝마치고 프로볼링고로 돌아가는 길. 산등성이, 사면의 비교적 심한 경사에서 작물을 재배. 아마, 파?
길가의 어떤 허름한 집 앞에 미니버스가 섰다. 이틀 동안 함께 투어를 했던 사람들과 여러 명의 외국인 여행자들이 벤치에 앉아 있다.
이들에 관해 예전에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 때 볼 때는 애들이었는데, 어느새 자라 이렇게 늠름한 거지들이 된 걸까?
어? 한글? 바닷바람이 차가워 선실로 들어가려는데 문 옆 탁자에 웅크리듯 앉아 LP 위에 종이를 얹어 두고 메모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인이세요? 그렇단다. 배가 출발할 무렵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모 외국계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한다는 그 친구는 자카르타에서 만난 현지인을 따라 족자행 버스에서 중간에 내려 보르부두르 유적지 인근의 현지인 집에서 하루를 머물렀고, 하루 밖에 안 머무른 것을 후회했다. 그 집 아줌마가 떠날 때 먹으라며 여러 가지 과자를 바리바리 챙겨주었다. 우리는 얘기를 나누면서 그 과자를 나눠 먹었다. 그는 브로모 화산에 이틀을 묵었지만 일출을 보지 못했단다.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광활한 칼데라를, 칼데라의 북쪽을 둘러 보았단다. 나도 그럴껄.
Borbudur 입구. 투어는 4.00am부터 시작. 2시간 동안 투어 버스를 타고 달려왔다. 지금 시각은 6.10am. sunrise tour는 이보다 비싸고 3.00am에 시작.
꿈에 그리던 보르부두르 사원이 보이기 시작.
아무 부조가 없는 기단부에 도착. 아쉽게도 유적 복구는 박정희 스타일로 한 듯.
회랑. 인도네시아의 높은 습도에 부조들 대개가 많이 손상되었다.
부조가 비교적 덜 손상된 곳은 해가 드는 쪽. 해가 들지 않거나 회랑의 안쪽은 높은 습기와, 돌 속으로 침투한 이끼의 침략으로부터 무사할 수 없었다.
곳곳에 난간에 올라가지 말라고 적어놨는데, 유적 보호 보다는 인명상해 때문인 듯. 일부 난간의 모르타르는 부식이 심각해 잘못 발을 디디면 바로 추락할 듯.
보르부두루의 최상단 meru(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을 상징). 사원의 상단 꼭대기는 천계에 해당하는데, 불교에서는 이런 형태로 meru를 stupa로 형상화한 듯... 아마도... bagan 유적지에서도 이것과 동일한 형태의 크고 작은 스투파를 무수히 볼 수 있었다.
저기 30여km 떨어진 곳에 보이는 위협적인 gunung merapi (메라피 화산). 메라피 화산은 활화산이라 입산이 통제되고 있으며 아직도 분화구에서 김이 모락모락... 여차하면 불을 뿜는 화산 인근 30km도 안된 곳에 사람들이 잘들 살고 있다.
부조의 표현 방식이 조금씩 차이가 났다. 아마도 아티스트가 수십 명 동원되었을테고, 그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발휘하도록 허락되지 않았겠지만 어떤 것은 멋있고 어떤 것은 그저그렇고...
차라리 이끼를 긁어내지 않던가, 복구를 하려면 많은 시간 공 들여서 하던가 했으면 좋았을 껄... 아쉽다.
보르부두르 투어에서 관람에 허용된 시간은 2시간. 2시간에 이걸 어떻게 자세히 볼 수 있겠냐마는... 한 바퀴 더 돌며 이 멋진 부조를 다시 찍었다. 아쉽다. 관광버스로 돌아가야 할 시간.
시간이 얼마 없어 같이 온 일행이 대기하고 있는 집합 장소로 돌아왔다. 투어에 아침 식사가 포함된 사람들은 토스트와 간단한 과일로 된 아침식사를 먹고 나는 어젯밤 수퍼에서 사온 빵과 오렌지 쥬스를 먹고 마시며 얘기에 끼어 들었다.
한창 복구중인 힌두 사원과 거대한 보리수
쁘람바난 사원에 가는 길 내내 왼쪽, 오른쪽의 프랑스, 캐나다인은 연신 사진을 찍고 이죽이며 그걸 굳이 보여주며 나와 얘기를 나눴다. 흡사 여행 처음 하는 사람들처럼 천진난만하달까? 차가 족자 시내에 들어서고 보르부두르 유적지 투어만 하기로 한 사람들이 내렸다. 말레이인만 내렸다. 다시 출발. 차 옆으로 곡예하듯이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며 충돌 없이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다들 감탄했다.
Candi Prambanan(짠디 쁘람바난. Candi=사원) 입구
복구가 덜 되었거나 무너진 것들. 아무래도 지진 때 무너진 것 같다. 복구가 덜 된 형태가 아니라서...
주 사원의 압도적인 위용.
자세히 보면 벽감 속의 신상들이 거의 없다. 국립박물관의 수장고에 있겠지? 아니면 누군가 훔쳐가서 어느 부호의 집 장식으로 쓰이고 있던가...
사원 옆의 박물관에서 가멜란 연주를 하고 있다. 독창하는 아줌마를 비롯해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공연... 건기 저녁 무렵이면 국립 박물관 뒤쪽 식당에서 쁘람바난 사원을 배경삼아 디너쇼가 벌어진단다. 무척 로맨틱할 것 같다.
캐나다인이 옆에 달싹 붙어 같이 다녔는데 내가 영어가 잘 안 되니까, 사내 흉내 내며 bro, huh 하며 말 붙이는게 불편하고 귀찮았다. 그래도 쁘람바난이 인도의 힌두사원과 하나 닮은 건 있었다. 햇살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사원 유적지에 그늘이 하나도 없었다. 사원 관광을 끝내고 설렁설렁 투어 차량이 정차해 있는 주차장으로 걸었다. 연휴라서 유적지는 관광 온 인도네시아인들로 버글버글했다.
족자카르타의 유명한 식사 방법: 길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나시 구덱을 먹는단다. 나도 해봤다.
길거리 노점상. 아까 돗자리 깔고 먹던 곳 옆자리.
Mal Malioboro 지하 수퍼에 들러 맥주와 샌달 따위를 샀다. 식빵도 샀다. 내일 아침부터 이틀 동안 다시 강행군이다. 거리에 인터넷 가게가 보여 들렀다. 한 시간에 4000rps. 휴대폰에 찍어놓은 사진을 백업 차원에서 올리려고 했으나 너무 느리다. 값이 싸서 그런가? 항공권을 프린트 하는데 인터넷 까페에 프린터가 없단다. 하는 수 없이 어제 갔던 인터넷 까페에 들러 한 시간에 7000rps 짜리 인터넷을 사용하고 1000rps 주고 일정이 변경된 항공권을 프린트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 속도가 느렸다.
대낮부터 마사지 하고 가라는 손길을 뿌리치며... Yogyakarta Tugu Stasiun(족자카르타 투구역) 남쪽길 숙소 밀집 거리를 찾아 가는 중.
투구역 앞 저렴한 숙소가 몰려있는 골목을 돌았다. 여러 숙소를 전전했지만 마음에 들거나, 가격이 싼 곳은 보이지 않았다. 연말이라 방이 꽉 차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 골목길을 한 시간쯤 전전하다가 twin bed, bathroom inside를 100,000 루피아에 얻었다. ISTI 라는 곳.
음... LP를 안 봤다. 봐도 별 무소용이라 그냥 발로 뛰는 형편. 게스트하우스 주인장과 대화를 하는데 숙소에 묵고 있던 일본인 아가씨 둘이 옆에 앉아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 주인장은 지금 쁘람바난에 가면 늦을 꺼란다. 오후 다섯시면 돌아오는 버스 타기가 힘들고 연휴라 관광지인 그곳에 사람이 지금 엄청나단다. 한숨... 아닌게 아니라 오는 길에 본 족자 시내는 엄청난 차량과 인파로 미어터졌다.
Jalan Malioboro(말리오보로 거리)의 인파로 붐비는 상점들. 연말연시 탓인지, 아니면 족자카르타가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서인지 하루종일 인파로 북적거렸다.
박물관과 kraton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숙소거리에서 약 1.6km 정도. 인파로 미어터진 Jalan Malioboro를 걷다가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사람이 방글방글 웃으며 손을 흔들어 반겼다. 지금 가봤자 kraton이 문을 닫았을 꺼란다. 영어가 유창하고 사람 좋게 생겨서 한 동안 대화를 나눴다. 결론은 자기가 아는 사람이 하는 어떤 바틱 전시장에 가서 훌륭한 예술품을 감상하라는 것. 바틱에 관심이 없어 그냥 가겠다고 했다. 아까 듣기론 끄라톤은 그래도 따만사리는 그냥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다고 들었다.
마스지드에서 기도 중인 사람들. 손과 발을 씻고 신발을 마당에 벗고 마스지드에 들어갔다. 기도할 시간. 같은 이슬람 국가인 옆 나라 말레이지아와도 사뭇 다른 내부 분위기. 마치 흔한 동남아의 불교 사원 분위기랄까...
끄라톤은 문을 닫았다. 배가 고파서 자리를 접고 떠나려는 미 아얌 포장마차를 잡아 음식을 시켰다. 맛 없다. 마스지드에 들러 손발을 씼고 잠시 쉬다가 따만사리로 가니 자칭 경비(security)라는 친구가 벌떡 일어나 다가오더니 날 안내해 주겠단다. 혼자 가면 길을 잃는다나? 돈을 줄 수 없다고 하니 무료란다. 한 눈에 봐도 삐끼인데 이렇게 아는 척 해주시니 고맙다. 난 삐끼가 없으면 여행이 안 되는 타잎이라서...
삐끼의 아버지는 끄라톤에서 근무하는 공무원(government officer)인데 여전히 잘 살고 있으며 족자에서 심하게 존경 받는 술탄을 위해 봉사하고 있고(공무원이?) 엄마는 와양극 가수란다. 자기 집은 따만 사리 옆에 있단다.
그림자 인형극에 사용하는 인형을 만드는 장인. 버팔로 가죽에 세공
따만사리의 목욕탕. 술탄의 부인들이 여기서 목욕.
길을 잃기 딱 좋은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술탄의 목욕탕을 구경하고 골목 어귀의 kakilima에서 과일을 사서 나눠 먹었다. 까끼리마는 다섯(lima) 다리(kaki)라는 의미로 노점의 두 바퀴와 스탠드, 그리고 주인의 두 다리를 뜻한다. 나시 고랭, 미에 고랭, 박소(bakso, baksu), 과일 등을 파는 간단한 노점상인데 인도네시아 어디 가나 널려 있다. nasi는 rice, mie는 noodle, goreng은 볶았다는 뜻. 논에서 자라는 벼는 padi라고 부르고 시장에서 파는 쌀은 beras, nasi는 찐(끓인) 쌀.
따만사리의 미로같은 골목길을 가다가 만난 과일장수 아저씨. 1달러 정도(10000rp)면 한끼 식사 대용으로 열대 과일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삐끼가 족자에 왔으니 Nasi Gaduk을 먹어 보란다. 한참 친절하고 싹싹하게 군 다음 가족이 운영한다는 바틱 매장에 나를 데려갔다. 자기 친형님이란 분이 나와(그럴 리가 없겠지만) 물건을 이것저것 보여주신다. 훌륭하고 아름답다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하지만 바틱이나 그림자 연극 소품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형님이란 사람은 하지만 왜? 왜 물건을 안 사냐? 이렇게 훌륭한데? 라고 의아해 하며 안타까워했다. 나는 눈으로 찰칵찰칵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찰칵찰칵. 조카, 아우가 운영하는 다른 매장을 두어 군데 더 돌며 찰칵찰칵 눈으로 사진을 찍는 시늉을 하니까 삐끼는 실망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가이드해 줘서 고마웠다.
지나가다 본 인터넷 가게(wartel). 30분에 보통 2000rp. 정도, 1시간에 3000~4000rp 가량인데, 여행자 거리에서는 시간 당 7000~10000rp 사이. 256 Kbps ADSL 라인이라 속도는 어느 정도 나온다.
왕궁 앞 광장으로 천천히 걸었다. 놀이기구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장터에 널린 자자난(길에서 파는 여러 종류의 간식꺼리를 총칭)을 몇 개 사 먹었다. 하나당 2000~4000rps. 시골 장터 구경하는 기분. 티셔츠 하나가 10000~20000rps. 품질이 조악. 단기 여행이라 굳이 옷을 살 필요가 없었다.
놀이터에서 파는 잡다한 간식꺼리들(대개 0.5달러 미만)을 주워 먹으며 한가하게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70~80년대 한국의 모습을 보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기도 21세기다.
해 질 무렵 동네 한 바퀴 도는 기분으로 말리오보로 거리를 벗어나 크게 외곽으로 걸었다. 거리는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볐고 어제처럼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이 1차선 도로에 한데 뒤엉켜 심한 교통체증으로 정체되어 있다. 가는 길에 과학관으로 보이는 건물을 바깥에서 구경했다.
족자카르타(Yogyakarta)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 같은 고적지이자, 문화예술의 중심 도시. 한낫 신호등 제어기에도 까꿍 괴물같은 수묵 그래피티를 그려놨더라. 그 때문에 도시가 지저분해 보였다.
말리오보로 거리의 한 복판에 있는 커다란 쇼핑몰(Mal Malioboro) 꼭대기 층의 food court에서 박수 세트 메뉴를 주문. 1층에서 바비걸 경진대회가 벌어졌다. 조그만 아이들이 저마다 미를 뽐내며 날카롭게 짹짹 거리는 소음을 들으며 거리에서 먹는 음식보다 현저하게 맛없는 음식을 꾸역꾸역 삼켰다. 테이블에서 흡연이 가능했다. 카운터에서 재떨이를 들고와 딱히 할 일도 없고 담배 한 대 빨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 라이온 에어 항공권의 스케쥴을 12/31에서 1/1로 변경.
- 가루다 인도네시아의 귀국 항공편 스케줄을 12/31로 하루 댕기기.
- 그게 안되면 라이온 에어 항공권을 환불하고 1/1 다른 항공편으로 자카르타로 간다. 연휴인데 가능할까?
- 그마저 안되면 라이온 에어 항공권을 환불하고 인천행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편을 jakarta to incheon에서 denpasar(bali) to incheon으로 변경한다. 생각해보니 가루다 인도네시아에 출발지 변경을 문의했었고 답변을 준다고 했는데 답변이 없었다. 바빠서 다시 연락할 틈이 없어 떠나기 전 날 밤 갑자기 생각나서 백업으로 라이온 에어 항공권을 구입한 것이다 -- 요새 하도 바빠서 경황이 없다.
인도네시아 국적기(?)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기. A330
도착 1시간 전. 자와해 보르네오 섬 부근
깨보니 기내식을 나누어 주고 있다. Garuda Indonesia 항공기 기내식은 halal을 따랐고 그래서인지 맛이 없었다. 순한 필스너인 bintang 맥주 한 캔 마셨다. 자바 커피는 맛있었다. VOA(visa on arrival)을 기내에서 받았다. 25$. 인천공항 가루다 인도네시아 카운터 옆에서 바우처를 구매하고 그걸 내밀면 기내에서 비자를 주는 식. 아니면 공항에서 긴 줄을 기다려 비자를 받아야 한다.
Bloem Steen Hostel. Jalan Jaksa 북쪽 입구에서 얼마 안 가서 왼쪽 골목(Gang) 안쪽에 있는 숙소. 휴일 성수기라 방이 없어 double 80,000rp에 잡았다. 옆 Kresina Hostel은 거지같은 single room이 80,000rps.
National Monumentum. 줄여서 Monas. 입구는 지도상 좌하단 하나만 개방되어 있다. 입구 찾아 돌아다니느라 진이 다 빠졌다. 개구멍이 있다는데 수선을 다 해놨는지 안 보이고... 왼쪽의 빨간 차는 유료 화장실.
거리는 차량과 오토바이로 시끄러웠다. National Museum까지 걸어갔다. 아무렴 여행의 시작과 끝은 박물관이지! 아이들이 바글거려서 신관부터 구경. 말로만 듣던 Homo Florensis를 감동적으로 쳐다봤다.
Homo Floresiensis. 2003년 Flores의 Liang Bua 동굴에서 발견된 이 난쟁이 유골은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 사이 인간 진화의 연결 고리로 추정되어(9만년에서 10만년 전)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옆에 적힌 설명이 그렇다는 얘기고...). 내가 알기론 플로레시엔시스는 현재는 현생인류와 다른 종류로 분류된 걸로 알고 있음. 어쨌거나 박물관에 온 보람을 느낀 화석
국립박물관 구관. 카이로 박물관처럼, 박물관의 유물 보관하는 유리 케이스가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져온 듯. 저게 모두 티크목.
마하바라타의 한 장면. 크리슈나가 마차를 몰며 활을 쏘는 아르주나를 재촉한다. 죽여라, 저들을 모두 죽여라
무대인사 중인 배우들. 인도네시아 여행 중에 인형극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미디어를 통해 가멜란 음악이나 와양극을 어린 시절에 본 적이 있어서... 본 적이 있다는 이유로, 니벨룽겐의 반지나 오페라의 유령 등도 직접 보는 일은 없지 싶어지는데?
도자기 박물관과 자카르타 역사 박물관은 가지 않았다. Mandiri bank Museum에서 오래된 컴퓨터를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애플 ][다. ][+도 아니고! caps lock이 없어 대문자만 가능했던 기억이...
Plaza Indonesia 부근의 skyscraper. 부러 열흘 휴가를 내서 이런 곳을 관광하는 타잎은 아니라서...
Plaza Indonesia 내부를 헤메다가 발견한 서점의 romance 코너. paperback을 한 권, 한 권 정성스럽게 비닐로 포장해 놔서 페이지를 열어볼 수가 없다 -_-
다시 버스를 타고 Monas 근처에서 내려 잘란 작사까지 걸었다.
거리 입구의 포장마차에서 미에 고랭을 시켜 먹으며 동네에서 축구하던 애들과 얘길 나눴다. 계산할 때 아저씨가 8000rp를 부르니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나도 눈치가 있다. 오버차징이구나. 수퍼에서 산듯한 인스탄트 라면을 끓여 풀데기 몇 개 얹은 것을 외국인이라고 비싸게 받으니 같이 먹던 애들이 할 말을 잃어 조용.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지금 먹고 있는 이 인스탄트 미에 고랭은 어떤 작자가 세계 10대 라면 중 하나라고 꼽던 것이다. 계산하고 어제 묵었던 숙소로 돌아가 짐을 찾으며 샤워 좀 하자고 부탁했다. 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