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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27 태국 가족 여행 #2 방콕-꼬 쑤린 2
  2. 2014.02.27 태국 가족 여행 #1 방콕-치앙마이
  3. 2004.07.13 서울로 돌아와 1
  4. 2004.07.10 방콕으로 돌아와 2
  5. 2004.07.09 수코타이에서
  6. 2004.07.08 다시 방콕에서
  7. 2004.07.06 방콕에서 1
  8. 2004.07.04 크라비에서 1
  9. 2004.07.01 피피에서
  10. 2004.06.30 방콕에 내려 2

여행 전에 남부의 어떤 해변에 갈까 궁리했다. 푸켓? 꼬 피피? 아오낭? 크라비? 꼬 따오? 꼬 사무이? 꼬 창? 꼬 사멧? 파타야? 식상하다. 꼬 따오 정도가 괜찮았다. 꼬 창도 가볼만 하지 않을까? 기나긴 화이트 샌드 비치... 카약을 타고 섬을 왕복하며... 그러다가 인도네시아 여행 중 만났던 여행자로부터 태국의 어떤 섬에 관한 얘기를 오래 전에 들은 기억이 났다. 여행자들 하는 얘기는 일정 정도 정형화 되어 있다. 당신이 여행한 곳 중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아내와 아이를 그 섬에 데려가기로 마음 먹었다. 아직 때가 덜 묻은 섬, 무꼬 쑤린으로.


치앙마이에서 방콕 돈무앙으로 가는 녹에어의 비행기는 737-800으로 인천에서 방콕으로 올 때 타고왔던 비행기와 같았다. 그리고 녹에어쪽의 비행기는 앞좌석 간격이 다소 넓었다. 항공권 가격은 두당 1600B 가량. 800B 가량의 기차표는 미리 예약을 시도했지만 침대칸 좌석을 구할 수 없었고, 500B 짜리 버스로 12시간을 달려 방콕에 도착하자 마자 당일 저녁에 다시 9시간을 버스를 타고 가자니 아내의 눈치를 보게 된다.


10.45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만에 돈무앙 공항에 도착. 공항에서 35B 짜리 A1 버스를 타고 머칫 역에 도착. 머칫에서 아눗싸와리 까지 BTS를 타고 센트럴 플라자에 도착. 왜 이렇게 교통편이 분절되고 복잡하냐면 시위 때문에 길이 막혀서.


MK 수끼에 가 보고 싶어하는 아내에게 더 좋은 대안을 추천. 샤부시에서 수끼와 초밥을 먹었다. 1시간 10분의 시간 제한이 있다. 1시간 4분에 샤부시에서 나왔다. 그 동안 책상 밑의 아웃렛에 충전기를 달고 휴대기기들을 충전시키면서 식사를 했다. 


이번 여행에서 의외로 쓸모가 있었던 것이 Ankor 25W 5 port 충전기였는데, 어쩌다 Aliexpress에서 22$에 구매하고 깜빡 잊고 있었는데 6주가 지나 한국에 도착, 그 이틀 후에 여행을 갔으니 운이 좋은 셈. 이걸로 나, 아내, 아이 휴대폰과 여분 배터리 2개를 한꺼번에 충전할 수 있었다.


밤버스를 타고 가기 전에 셀트럴 플라자의 top super에 들러 필요한 물건을 구입했다. 컵라면, 빵, 따위 섬에서 사면 비싼 것들. 무꼬 쑤린(쑤린 섬)에 관한 정보가 태사랑이나 몇몇 한국 블로그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의외로 알려진 섬인데? 갔더니 관광객으로 버글거리면 어쩌지? 실없는 걱정을 하다가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식료품을 꽤 비싸게 파는 섬의 매점이 점심, 저녁 시간에만 잠시 문을 열고 스노클링 투어라도 갔다오면 식당이 문을 열지 않아 배를 곪는다는. 


아눗싸와리에서 물어물어 512번 버스를 타고 콘 송 사이 따이 마이(남부터미널) 까지 가는데, 12km 가량 되는 거리를 2시간이나 걸려서 도착. 위만멕 궁전에서 짜오프라야 강 근처까지 엄청난 교통체증으로 차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6시가 다 되어 남부터미널에 도착해 버스표를 받고 짐 정리를 한 후 버스에 올랐다.


저녁에 출발한 버스는 새벽 5시 무렵 쿠라부리에 도착했다. 사비나 투어에서 픽업이 나와 국립공원 입구의 여행사까지 데려다 준다. 방콕-쿠리부리 간 왕복 배편과 쿠라부리-꼬 쑤리 사이의 스피드보트 왕복 티켓 등이 포함된 투어 가격이 두당 2100B. 만일 티켓을 개별 구매한다면 대략 1700B 가량 되지 싶다. 좀 더 싸게 한다면 1500B 까지 가능하겠다. 나 혼자라면 아마 그렇게 갔을 것이다.


여행사 사무실에서 샤워를 하고 제공한 간단한 간식꺼리를 먹고 커피도 줬지만 안 마셨다. 생각보다 친절하다. 우연찮게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예전에 꼬 쑤린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부부가 아이스박스를 사 오길래 우리도 아이스 박스를 샀다. 중간 크기의 스티로폼 박스가 90B, 얼음 한 덩이에 7B x 4 덩이 = 28B. 가게 주인 아저씨 말을 들어보니 여기서 35B 하는 창 캔맥주가 섬에서는 80B 한단다. 그래서 맥주 몇 병과 아이 먹을 음료수 몇 병을 사고 수박도 한 통 사고 오이도 잔뜩 사서 아이스박스에 쟁여놓고 오징어 한 묶음도 샀다. 이렇게 하다보니 섬에 머물 이틀 동안 먹을 것만 잔뜩 챙긴 셈이다.


스피드 보트에 오를 때 어떤 아저씨가 내 딸을 귀여워 하며 이름을 묻길래 알려줬다. 아울러, 아내를 턱으로 가르키며 She's my heart, 그리고 딸을 턱짓으로 가르키며 And she's my soul. 이라고 말했다. 씨익 웃는다. 나도 씨익 웃었다. 하트와 소울은 보트 운전수 옆 상석에 앉았다. 


그러고보니 치앙마이 트래킹 중에 샘이 내 딸 더러 daddy's girl이라며 아빠랑 달싹 붙어 다니며,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강인하다는 류의 칭찬을 늘어 놓았다. 


한 시간쯤 달리자 에머랄드 색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와 섬이 나타났다. 


아름답다. 


슬로우 보트로 갈아타고 다른 쪽 해변으로 갔다. 


해변에 내려 아까의 한국인 부부가 찜해 놓은 손수레에 짐을 실었다. 이럴 때 경험이 빛을 발하는구나. 짐수레를 끌어 200m 쯤 오솔길을 가니 관리사무소가 나타났다. 우리가 일착으로 도착했고 아내 말대로 관리소에 가장 좋은 자리를 부탁했다.


그래서 가장 좋은 텐트 자리를 확보했다. 열 걸음을 걸으면 바다. 아이가 환호성을 지르며 바다로 달려간 동안 아내는 피로에 지쳐 잠이 들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짐을 풀고 텐트 구석에 아이스 박스를 놓아두고 배낭에서 덜렁거리는 자물쇠를 텐트 출입문에 달았다. 한국인 부부 말에 따르면 여기 섬에 온 사람들 중에 질 나쁜 사람들은 텐트를 털기도 하는데, 돈은 내버려 두고 음식만 털어간단다. 왠지 이해가 갔다. 이 섬에 관해 내가 아는 얘기는, 매 년 방문하는 장기 체류자들이 많다는 것, 일 년 중 6개월, 건기 때만 일반에 문을 개방한다는 것, 그리고 개발을 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우리 옆 텐트는 갓 결혼한 서양 부부였다. 텐트 사이트는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한적했다. 이게 내가 내심 바라던 바로 그런 곳이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기대와 달리 낙담스럽거나, 기대 수준을 뛰어넘는 멋진 곳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기대 수준에 딱 알맞는 장소는 생각 이상으로 적었다. 나는 여기에서 아이와 스노클링을 하면서 쉴 생각이다.


얕은 해변에서 아이와 아내에게 스노클링을 가르쳤다. 아내는 물을 싫어하고 무서워했다. 아이는 금방 배웠고 망그로브 숲 주변에서 스노클링을 하며 물고기를 쫓았다. 휴대폰 방수팩에도 불구하고 쓸만한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놀기 바쁘니까.


소울이는 해변을 사랑했다. 산호사에서 뒹굴고, 밀물에 몸을 맡기고, 썰물에 해변 멀리까지 걸으며 게와 망둥어와 갖가지 신기한 해물을 '발견'했다.


아침 식사 1시간, 점심 식사 1시간, 저녁에는 서너 시간 문을 여는 매점과 식당. 


식당의 각 끼니 때 세트 메뉴는 미리 주문을 해둬야 한다. 우리 식구는 두 번 디너 세트 메뉴를 예약했고 음식은 꽤 먹을만 했다. 두당 250B, 아내와 나만 주문해서 500B에 세 식구가 배불리 먹었다.


아이스 박스에서 차갑게 식힌 맥주와 음료수를 곁들여... 식당 한켠에는 50B 짜리 닭다리 튀김과 상당히 맛있는 70B짜리 솜땀을 팔았다. 


썰물로 바닷물이 빠져나간 망그로브 숲의 뿌리


놀랍게도 산호가 살아나고 있다! 대략 12년쯤 나는 태국에서 산호의 절멸을 목격했다.


식당의 아침식사. 숯불 토스터기. 설탕과 버터와 잼은 식당에서 무료로 제공.


딸애는 해변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오전에 스노클링 투어를 떠났다. 9am에 시작해서 12am쯤 끝난단다. 롱테일 보트를 타고 작은 섬 부근에 정박. 애와 나는 바다로 뛰어 들었다. 살아나기 시작한 산호 사이로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이 볼륨 댄스를 추듯 부드럽게 미끄러져 갔다. 정신없이 구경하다 내 등짝을 당기는 손길에 수면으로 얼굴을 드니 창백하게 질린 딸애가 배가 저 멀리 가 버렸다고 말한다.


우리를 내려준 배는 우리가 있는 곳에서 200m 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애가 무서워해서 배로 가려고 하는데 자꾸 고개를 들어 수면에서 어푸어푸 거리거나 내 손을 잡고 놔주질 않았다. 그 와중에 조류를 타고 천천히 흘러가는 배와 우리 사이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내 힘으로는 아이를 끌고 배까지 갈 수 없을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손을 흔들어 배를 불렀지만 이미 너무 멀어져 일렁이는 파도 속에서 흔들어대는 우리 손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아이는 점점 더 겁에 질려 울상이 되었다. 하는 수 없이 그나마 가까운 바위 투성이 해안으로 향했다. 조가비가 날카롭게 박혀 있는 바위 위로 아이를 올렸지만 내가 올라가긴 좀 어려웠다. 간신히 바위에 올라섰지만 이미 조가비가 다리와 손바닥 여기저기 살을 베었다. 내 발바닥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고 아이는 더더욱 공포에 질려 울먹였다. 피 냄새를 맡고 상어가 올 꺼에요. 


손을 흔들고 소리쳤다. Help me! 아이가 따라 했다. Help me! 5분 쯤 그러고 있으니 멀리 있는 배 중 한 척에서 사공이 우릴 알아차리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이와 나는 다시 바다로 뛰어 들었다. 배는 높은 파도 때문에 접안할 수가 없어서였다. 아참 아이가 무서워 한 것을 배가 너무 멀리 떨어진 탓도 있지만 얕은 바다와 달리 여기는 파도가 높아서인 탓도 있었다.


무사히 배 위에 올라왔고 조금 있다가 다른 일행들도 배 위로 올라왔다. 모두 핀을 챙겨 왔다. 핀을 대여해서 가지고 올 껄 하고 후회했다. 핀이 있었으면 소울이를 데리고 배까지 수월하게 갈 수 있었을텐데... 한 친구가 대략 1m 길이의 상어를 봤다고 흥분해서 말했다. 혹시 내 피 때문일까?


다음 스노클링 포인트로 이동했다. 아이는 파도가 높은 그 곳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여전히 조가비에 베인 발의 상처에서 피가 질질 흘러 나왔다. 우리는 그렇게 30분 쯤 다른 사람들이 자맥질을 하며 스노클링을 즐기는 동안 배안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내 뒷 자리에는 높은 파도가 무서워 바닷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남녀 젊은이가 묵묵히 앉아 있었다. 


아이에게 스노클링에 대한 안 좋은 트라우마를 심어준 것이 아닐까? 그게 걱정되었다. 왠 걸?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는 스노클링 장비를 챙겨 앞 바다에서 신나게 돌아다닌다. 


딸애 디즈니 공주님들 방수 밴드에이드로 도배한 한쪽 발. 다른 발도 저만큼 밴드에이드를 쳐발랐다. 내 처지가 좀 한심해 졌다. 발바닥, 허벅지, 손에 난 상처 때문에 기대거나 걷기가 힘들다. 어처구니 없어 웃음만 나왔다. 여기 와서 아침 저녁으로 신나게 스노클링을 하자는 계획은 반 나절 만에 날아가 버렸다.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 텐트 앞에 설치해 둔 해먹. 내가 누워있지 않은 동안은 다른 사람들이 앉거나 누워 있었다. 그렇게 해서 공공해먹이 되었다.


아내가 내 사진을 찍었다. 앞바다에서 딸애가 놀고 있고 난 저러고 뭘 읽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가 깨어서 읽다가 다시 잠이 들길 반복... 원숭이가 식당에서 식사중인 사람의 달걀을 훔쳐갔고, 그 원숭이가 누군가의 콜라와 먹거리를 훔쳐 나뭇가지 위에서 먹고 남은 찌꺼지를 아래로 던진다더라. 텐트에서 음식을 훔치는게 아마도 사람이 아닌 저 원숭이였지 싶다. 원숭이는 돈에 관심이 없으니까.


함께 꼬 쑤린에 도착한 한국인 내외 중 남자는 빅뱅이론의 레너드를 닮았다. 섬에는 샐든을 닮은 친구도 오락가락했다. 해먹에서 한가하게 흔들리며 잡지 따위를 보는 동안 아내나 한국인 내외 중 여자는 먹거리를 교환하면서 여행할 때 짐만 되는 남자들에 관한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았다. 여자들이란... 


아침 산책중, 고운 산호사가 깔린 해변에 게 다리 두 쪽만 남아 있었다. 산새가 게를 잡아 먹은 흔적이었다. 이 해변에는 소라게가 엄청나게 많다. 상어도 돌아다니고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게도 있고 별별 물고기들이 해변가 근처에서 어슬렁거렸다.


섬에서 잠을 잔 지도 이틀째. 이제 나갈 때가 되었다. 오후 배를 타고 쿠라부리로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환대해 주는 여행사에서 샤워를 하고 방콕에 숙소 예약을 했다. 아내 주장대로 이번에는 1650B 짜리 호텔로 간다. 예약은 수월하게 끝났다. 


여행사 직원이 우리 버스표를 미리 예약해 주고, 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 주었다. 버스표 예약하고 수수료를 챙긴게 아니라 예약 대행을 무료로 해 준 것. 저렇게 영업하니 매년 단골이 생길 수 밖에. 다음에 쉬러 온다면 다시 이곳에 들를 것 같다. 아무 생각없이, 무위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오고 싶은 곳이다.


이번 밤 버스는 VIP, 춤폰의 대규모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었다. 뻐 능과 VIP 버스는 티켓에 저녁이 포함되어 있다. 간단한 간식꺼리와 물을 나눠주고, 하룻밤 숙박비도 절약하게 해 준다. VIP 버스는 과연 편안했다. 


태국에 오면 맨날 쌀국수만 먹어대고 망고스틴에 집착하는 아내에게 다양한 먹거리를 소개해 줬다는 것이 이번 여행에서 유난히 보람스럽다. 


오전 5시 방콕 남부 터미널 도착. 11시 이전엔 체크인이 안 되니 미리 가 있을 수는 없고 방콕 근교 투어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담넌 싸두악 수상시장에 가서 시간을 때우리고 했다. 플랫폼에서 엔진을 공회전 시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담넌 싸두악 행 버스에 올랐다. 요금은 두당 73밧, 아이 요금은 받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태국 여행하면서 받아본 가장 긴 버스표를 받았다.


두 시간 가량 졸면서 버스를 탔다. 해가 떠오를 무렵 피어오르는 낮은 안개 위로 야자수가 마치 신기루처럼 평원에 둥실 떠서 흘러갔다. 


세 식구가 배 한 척 전세내려니 800B을 부른다. 아내가 500B 까지 깎았지만 아내가 협상에 별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내 기억에 두당 150B 정도 였으니 500B이면 뭐 그냥 수긍하고 말자.


9시 무렵의 수상시장에는 별로 배가 많지 않았다.


80B 가량 하는 망고 라이스를 사서 아내에게 맛을 보여줬다. 입 짧은 것은 두 모녀가 비슷한데 아내는 딸애가 음식을 잘 안 먹는다며 맨날 자기 가슴을 쳤다. 내가 보기엔 아내도 만만치 않았다. 망고 라이스가 맛이 없다니, 참 까다로운 입맛의 모녀다.


한 시간 가량의 수상시장은 예상대로 재미가 없었다. 관광객이 관광객을 구경하러 가는 곳이랄까? 암파와는 여기보다 좀 나으려나? 이번 여행에도 암파와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가지 못한다. 


방콕으로 돌아오는 편은 100B 짜리 롯뚜(미니버스)를 탔다. 1시간 10분이 채 안 되어 아눗싸와리 롯뚜 터미널에 도착. 호텔은 롯뚜 터미널에서 걸어서 5분이 안 걸리는 곳. 체크인 하고 잠깐 눈 좀 붙이며 쉬었다. 모녀는 잠이 들었고 나는 태블릿에서 크레마를 띄워 얼마 전에 구입한 소설을 읽었다. 크레마는 언제봐도 참 거지같은 앱이다.


내일 밤에 한국으로 돌아간다. 오늘과 내일 오전엔 그래서 쇼핑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지난 8일 동안 여행하느라 바빴다. 모녀를 데리고 걸어서 월텟 옆 BigC로 향했다. 아내는 빠두남 시장을 본체만체 지나쳤다. BigC에서 한국에 가져가 먹을 것 따위를 잔뜩 사고 아내는 심지어 호텔에서 먹겠다며 두리안까지 샀다. 호텔에서 두리안은 갖고 들어오지 말라는 사인을 못 봤단다. 어이구...


BigC에서 쇼핑만 하는데 거의 3시간을 보내고 시위대가 점령하고 있는 씨얌까지 걸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밤 아홉시. 모녀를 데려다 놓고 보니 정작 맥주 안주로 먹을 것이 없어 아눗싸와리 쪽으로 걷는데, 문득, 숙소로 바로 가지 말고 매 번 방콕을 방문할 때면 들르곤 하는 섹소폰에 갈까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 이 시간이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할텐데... 하지만 아내와 딸을 내버려두고 나만 갈 수도 없으니... 오징어 꼬치를 사 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내는 오징어 꼬치를 처음 먹어보는 것 같다. 아내도 나 못지않게 태국을 자주 방문했는데 어쩌면 식생활에서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을까? 까오만까이 처럼 값싸고 어디에서나 흔한 음식조차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아내가 신기했다. 


다음 날 11시 무렵에 체크아웃 하고 짐을 호텔에 맡기고 씨얌에 왔다. 아내는 쇼핑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명품을 보는 눈도 없다. 무작정 시얌 부근의 백화점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뭐라도 걸리겠지 하는 심정으로 돌아다니는데, 당연히 성과가 있을 리가 없었다. 방수백 하나 달랑 건졌다.


방콕 번화가의 백화점 1층 무대에서 고산족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자는 자선 바자회가 열리고 있었다. 동갑내기 태국 아이.


'We need reform before election' 태국의 정치 상황을 설명하자니... 귀찮다. 관두자.

이 시각 무렵 바로 윗 거리에서 폭탄 테러로 어린이 둘이 사망했다. 


아내 수준(?)에 맞춰 MBK에 갔다. 맛있게 먹고, 배불리 먹고. 가열차게 쇼핑도 하고.


시간이 되어 호텔에 맡겨둔 짐을 찾고 바로 그 앞에 있는 파야 타이 역으로 향했다. 공항행 기차를 타기 위해서인데 아내더러 먼저 역에 올라가 있으라고 하고 아이와 마지막으로 수박쥬스와 꼬치를 먹어보자며 길거리 노점을 찾아 다녔다. 일요일이라서인지 그 많던 노점이 눈에 띄지 않았다. 섭섭하지만 발걸음을 돌렸다.



파야타이에서 city line을 타면 두당 45B. 태국에서 지금까지 찾은 돈이 모두 30000B, 남은 돈이 1150B 이었는데 city line 표를 세 장 끊고 나니 1000B 짜리 지폐 한 장과 각각 10B, 5B 동전 하나 씩이 남았다. 완벽한 예산이었다. 


수하물을 붙이려고 배낭 무게를 재보니 두 배낭을 합쳐 15Kg. 사실 나 혼자 였다면 이것보다 짐을 절반 가량 더 줄였을 것이다. 귀항편이 지연되었다. 비행기는 10pm 뜨려던 것이 1am으로 밀렸다.


항공사에서는 지연 이유로 250B 짜리 식당 이용 바우처를 두당 1매씩 제공했다. 우리 세 식구 것을 합쳐(750B) 피자 컴퍼니에서 피자와 샐러드와 치킨을 시켜 먹었다. 나는 공항 라운지에 가서 음료수 몇개를 가방에 넣어 가지고 나와 모녀를 먹였다. 아내와 나는 맥주를 한 잔씩 하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금도 나아진 것 없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지 지연 사유는 강한 맞바람 때문이란다. 그 시각대에 한국 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중 결항편은 우리가 타는 그 한 편 뿐이었는데, 내 생각에는, 연료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지연시키지 않았을까 싶다. 


하여튼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매우 피곤한 상태. 한국에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공항에서 씻고 사무실로 곧바로 가려고 했는데, 아뿔사, 바람막이 점퍼를 수완나품 공항에서 시간 보낼 때 그 자리에 두고 왔다. 그리고 샤워 좀 하려고 보니 출국장에는 priority pass를 사용할 수 있는 라운지가 보이지 않았다. 갈아입을 옷이 없어 꾀죄죄하고... 할 수 없이 집에 들러 샤워하고 출근해야겠다.


방콕에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천공항에서 아내와 나는, 겨우 10일 여행했을 뿐인데 어째 한 6개월 장기여행하다가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라고 공감했다. 하늘이 뿌옇다. 나라 꼴도 그랬다.


내 몸은 대충 이해한다. 한국 음식을 먹고 설사할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 


정리


  • 여행 경비 총계: 269만원 (9박 10일)
  • 항공권을 제외한 1일 생활비: 29000B/10일 = 2900B (9만 6천원/일)
  • 항공권: 인천-방콕 3인 138만원, 치앙마이-방콕 3인 21만원
  • 현지에서 찾은 돈: 30000B (997,002원, 33.23 won/B)
  • 숙박비: 3750B (3박) 
  • 교통비: 3557B 
  • 투어비: 13800B
  • 식비 및 쇼핑비: 789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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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아내와 태국에 가자고 약속했고, 올해가 결혼 10주년이라 휴가를 내서 10일 동안 태국을 여행했다. 결혼 10주년, 아내 생일, 발렌타인 데이, 딸애 봄방학. 뭐라도 액션을 취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항공편은 아내가 마련. 이스타 항공, 유류할증료와 세금을 포함해 두당 대략 50만원 가량, 3인 150만원. 비슷한 라인을 운영하는 제주 항공보다 이스타 항공이 조금 더 나은 점은 기내식. 이스타 항공의 기내식은 달랑 오이절임 하나를 속에 넣은 김밥 도시락. 


두꺼운 옷을 코트룸 서비스에 맡길까 하다가... 그다지 부피가 크지 않아 배낭에 패킹했다. 아내것과 내 배낭을 수하물로 보냈는데 합쳐서 12kg 가량. 이스타 항공은 두당 15kg 까지 수하물로 보낼 수 있다.


비행기가 착륙. 수완나품 공항에서 첫번째로 한 일은 ATM으로 돈 찾기. 얼마 전에 씨티은행의 국제현금카드 수수료가 많이 올랐다. 그래서 여행 오기 전에 은행에 들러 현금 카드를 새로 발급받았고 EXK 연동을 신청했다. ATM에서 20000B를 현금으로 뽑으니 수수료가 고작 500원! 와우!


그 다음에, AIS에서 판매하는 299B 짜리 1GB data SIM을 둘 구입해서 하나는 아내 휴대폰에, 하나는 내 휴대폰에 꽂았다. 개통은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이 카드는 1주일 동안 3G로 1GB data를 사용할 수 있고 무료 통화를 85B 제공한다. 1GB 데이터를 다 쓰고나면 속도가 느려지지만 그래도 데이터 통신이 가능했다. 여행 8일차 되는 날, 잔여 데이터가 700MB 가량 남아 있었지만 얄짤없이 통신사가 데이터 통신을 끊어 버렸다.


공항에서 카오산으로 가는 길: 3인 기준으로 (ARL 45B + 버스 30B) * 3 = 225B인데 뭐하러 밤 11시가 다 된 시각에 배낭을 메고 애 데리고 고생할까 싶어 400B 짜리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안 되었는데 여행을 한 1주일 한 기분이라고 말하니 아내가 공감한다. 매년 어떤 식으로든 해외여행을 하다보니 여행이 반쯤은 생활의 일부인 것 처럼 여겨진다.


2년 만에 방문한 카오산 로드. 여전하다. 카오산에 도착하자 마자 아내는 팟타이를 먹고, 예전에 태국에 온 경험이 있는 아이가 수박쥬스를 기억해서 그걸 사러 거리를 걸었다. 


홍익인간 지기와 안면이 있는 아내가 거길 통해 숙박을 미리 예약해 두었다. 보통 나 같으면 도미토리에서 묵지만 3인 도미토리 비용이 600B 인데, 에어컨 잘 나오고 화장실 딸린 트리플 룸이 800B. 아마 예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널찍한 스파르탄 더블룸을 주는 파아팃 거리의 피치 게스트하우스로 가거나, 삼쎈 거리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갔을 것 같다.


거의 십여년간 탈카오산을 부르짖었지만 카오산만한 곳이 없다. 이건 뭐 숙명같은 거랄까? 숙소에서 샤워하고 빈둥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문 연 식당을 찾다가 뿌라 쑤멘 거리에서 쪽을 시켜 먹고 홍익여행사에 들러 Siam Ocean World 표를 예약했다. 홍익인간 아저씨가 아내더러 오션월드에 왜 가냐고, 한국이 훨씬 낫다고 말했단다. 


택시 타고 싸얌으로 가려니 막힐 것 같고, 모처럼 방콕에 왔으니 수상보트를 타고 멀리 빙 둘러 가기로 했다. 파아팃 선착장에서 사톤 선착장 까지는 꽤 긴 거리였고, 거기서 BTS를 타고 싸얌 까지 갔다.


Siam Ocean World. 동남아시아 최대의 수족관은 아주 좋았다. 1200B 짜리 티켓을 여행사를 통해 구매하면 500B에 해 준다. 세 식구가 저녁까지 시간 때울 꺼리가 마땅치 않았는데 세 시간 보내는데 안성맞춤이었다.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망고탱고에서 망고 아이스크림을 사 주려니 다들 싫단다. 망고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망고 아이스크림보다 맛있는 것은 두리안 아이스크림인데, 이거 파는 데가 별로 안 보였던 기억. 두리안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어보고 감탄했던 것이 십년도 더 전, 달랏의 시장에서 였다.



싸얌 스퀘어 부근, 내셔널 스타디움 역 앞에서는 Bangkok Shutdown protest가 한창 진행 중. 한국으로 치면 싸얌 인근은 서울광장 같은 곳이다. 'No more election, No more corruption'이란 문구가 곳곳에 보였고 사람들은 연설이 끝날 때마다 호각을 요란하게 불거나 손뼉 치는 소리가 나는 작대기를 흔들었다. 시위 현장 출입구에 보안요원들이 인원 통제를 하고 있었고 현지인들의 짐을 검사했다. 하지만 외국인은 반기는 미소와 함께 시위 장소로 마음껏 진입 가능했다. 


방콕 여행할 때 빨간 셔츠나 노란 셔츠는 입지 말란다. 이들은 말하자면 반탁신파인 노란 셔츠 쪽인데, 보시다시피 노란 셔츠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테러 염려 때문에 이들도 노란 셔츠를 안 입는 것 같다. 시위장 인근은 인파와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가판대로 북적였고 별다른 위험을 느끼지 않았다.


카오산으로 돌아와 밤 버스를 타고 치앙마이로. 여행자 버스 티켓은 두당 500B, 1박 2일 트래킹 티켓은 1300B. 뭐하러 이렇게 하냐 싶기도 하지만 이 더위에 북부 터미널에 가서 치앙마이 티켓을 사고 치앙마이 도착해서 아침에 문을 연 여행사를 찾아다니며 트래킹 예약을 하는 과정이 식구들을 데리고 다니며 하기엔 뭔가 번거로웠다. 하여튼 치앙마이 행 여행자 버스에 올랐다.


새벽 5시 무렵 버스가 도착한 곳은 치앙마이 인근의 어떤 주유소 앞. 여행사 픽업을 기대했으나 썽태우 운전수는 서로 자기네는 픽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황당하달까. 구글맵을 살펴 보니 배낭 메고 터덜터덜 걸어서 10km 가까이 떨어진 시내에 가기엔 무리다. 어쨌든 시내엔 가야 하니 두당 60B 씩 내고(어린이는 40B?) 썽태우를 탔다. 자기들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세 이탈리아 처녀들의 길을 GPS로 찾아주고, 뉴욕 아가씨를 도와줬는데 아내는 우리 처지가 제일 한심한데 남들 돕기 바쁜 남편을 질타했다. 


썽태우 기사가 내려준 곳은 Nice guesthouse 앞. 영어가 안 통하니 썽태우 기사더러 뭐라 할 수도 없고 손짓으로 그가 가리키는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서 우리는 트래킹 예약을 했는데 여기다 내려 주더라, 여기가 맞냐 하니까 어디서 트래킹을 예약했냐고 묻는다. 홍익 여행사 라니까 알았단다. 아홉시 무렵에 픽업이 올테니 그걸 타고 가면 된단다. 그리고 샤워장은 2층에 있으니 사용하란다. 참 마음에 드는 주인이다. 널직한 수영장이 딸린 게스트하우스도 좋아 보였다. 숙소 예약을 하려니 full이란다.  


샤워하고 짐을 맡겨놓고 성곽 안쪽의 북동쪽 게스트 하우스 밀집 지역을 한가하게 걸어갔다. 내일 계획은 트래킹이 끝나자 마자 방콕행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것. 아내는 사람 잡을 일 있냐며 치앙마이에서 하루 묵잔다. 그래서 아침을 먹을 식당을 찾을 겸, 게스트 하우스도 알아볼 겸 걷는 중인데 찾고자 하는 게스트하우스는 안 보였다.


치앙마이는 세 번째. 저번에 라오스 여행할 때는 님만헤만 부근의 우유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에 묵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성곽 안쪽이 여전히 좋다. 아내는 여기서 며칠 묵었으면 바랬지만 우린 장기 여행자도 아니고 며칠씩 멍 때리면서 시간을 보낼만큼 여유도 없었다.


이 여행은 아내가 원하는 대로 계획되었다. 고전적인 코스인 태국 북부에 갔다가 남부에 가는 것. 아내나 나나 트래킹을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위해서 트래킹을 신청했다. 내가 트래킹을 안 하려는 이유는 뭐 별 건 없었다. 고산족을 관광 상품화 하고 코끼리를 괴롭혀서? 


트래킹 첫 코스는 이렇게 코끼리를 타는 것. 누구 말마따나 코끼리 먹이 주기 같았다. 아내가 기억하는 치앙마이 트래킹은 코끼리를 타고 강을 건너고 밀림 속을 걷는 것이었는데, 조그만 야산을 이렇게 코끼리 등짝에 편히 앉아 30분 가량 한 바퀴 도는 것이 다였다. 투어 맴버가 조촐해서 우리 가족 세 명과 한국인 대학생 두 명. 대학생들과 우리가 서로 사진을 찍어서 카카오톡으로 교환했다. 

그리고 걷기 시작. 건기의 막바지라 떡갈나무 잎사귀처럼 보이는 낙엽이 잔뜩 쌓인 길을 헉헉 대며 올라갔다.


우리 가이드는 샘, 48세 였던가? 카렌족. 목 긴 카렌족 말고 그냥 카렌 족. 아이에게 낙엽 모자를 만들어 주더라. 애는 더운데도 씩씩하게 잘 걸었다. 


중간에 만난 폭포. 폭포 아래서 물을 뒤집어 쓰고 물속에 푹 담궜다 나왔다. 학생 중 한 명은 감기로 골골 거렸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억지로 트래킹에 참가했단다.


10km 가량 걸어서 오늘 밤 묵을 카렌족 마을에 도착했다. 이 촌락은 15년 전에 버마에서 건너온 카렌족들이 만들었고 관광객을 받기 시작한 것은 5년이 안 되었단다. 


아이는 닭, 병아리, 풀어 키우는 돼지 새끼들 사이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먹이를 주고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했다. 그런데 흑돼지 잖아? 


아이가 닭들에게 모이를 주고 있을 때 지나가던 동네 아저씨가 장닭 한 마리를 가르키며 지금 모이를 주는 닭들 중 저 놈은 오늘 당신들의 저녁식사꺼리란다. 아이에게 알려주니 신이 나서 그놈에게만 모이를 준다.


화장실 겸 샤워실. 해가 져서 기온이 떨어지기 전에 얼른 샤워부터 했다. 샤워 꼭지가 달려있고 모터 펌프로 지하수를 끌어 쓴다니, 이 정도면 럭셔리 아닌가?


숙소. 매트리스를 깔았고 모기장을 쳐 놨다. GPS로 고도를 보니 1000m. 모기가 없단다. 저녁이 되자 기온이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벼룩, 빈대류가 염려스러워 폴리에스테르 재질의 깔개와 역시 폴리에스테르제 침낭을 들고 왔다. 벼룩, 빈대로부터 자유로워 지려면 아예 머리부터 발끝까지 폴리에스테르로 도배하면 장땡이다. 


부엌


골골대던 젊은 친구에게 약을 줬었다. 아세트 아미노펜 계열의 타이레놀과 오래된 인연을 끊기로 하고, 이번엔 이부프로펜 계열의 '이지엔6'를 가지고 다녔는데, 약효가 신속하고, 아이 한테도 먹일 수 있으며, 부작용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저녁 먹을 무렵엔 젊은이가 기운을 차렸다. 트레킹 중 너무 힘들어 해서 샘이 오토바이를 태워 미리 마을에 보냈었다. 산속 깊은 곳이라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다. 이들의 삶은 오토바이로 문명과 연결되었고 멧돼지에게 먹이를 줘서 집돼지로 키우던 수쳔년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았다. 다만, 화전은 안 했다. 


저녁을 먹으며 카렌족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별달리 새로운 얘기는 없었다. 아편 농사니, 카렌 반군이니, 미얀마에서 쫓겨나고 태국 정부에서도 쫓겨나고 유엔 캠프에서도 쫓겨나는 얘기들. 그런데 왜 소는 안 키워요? 뭐라고 그러는데 잘 못 들었다. 잠깐 빠져나와 어른들 얘기에 심심해 하는 아이를 데리고 어두운 길섶을 거닐며 은하수를 구경했다. 구글 별지도로 별자리 이름을 찾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모닥불 피워놓고 고기 궈먹게 시장에 들렀을 때 삼겹살을 사올껄, 후회되었다.


아침이 밝아오고 일찌감치 잠에서 깼다. 어젯밤에 8시에 출발하자고 말했다.


아침을 먹었다. 모이를 줬던 닭 요리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사탕외교. 마누라가 고산족 준다며 집에 있던 사탕을 그러 모으더니... 샘의 딸 중 하나는 아파서 밤새 고생했다더라. 샘은 장모님과 함께 살았다. 아, 모계사회였던가? 잊어버렸다.


대략 8km의 길을 걸어서 내려가는 도중 샘이 아내와 나를 위해 풀반지를 만들어줬다. 샘에게는 딱히 우리 부부가 결혼 십년차 기념으로 여행 중이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아내는 풀반지를 재밌어 했다.


대나무 뗏목을 타고 내려오기. 물에 엉덩이가 잠긴 채 한가하게 40분쯤 떠내려 갔다. 바람이 불자 낙옆이 하늘에서 춤을 추며 떨어졌다. 나같은 어른이야 이런 트래킹이 많이 시시하지만 아이는 코끼리도 타고 뗏목도 타고 아빠와 여행하는 것이 신이 났다. 


아내는 젊은 친구들에게 여행 정보나 팁을 알려줬다. 그들더러 맥주를 사란다. 내가 사오려니 말리며 눈치 빠른 젊은 친구들이 싸가지가 있단다. 아내가 하는 꼰대질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내가 젊은 시절 돌아다닐 때 받은 은혜를 나이 들어서 젊은 여행자들을 돕는 것으로 갚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니 자기는 은혜를 입으면 그때 그때 바로 바로 갚았단다. 


치앙마이로 돌아와서 어제 예약해 두었던 호텔로 갔다. 한국어로 인사를 하고, 무한도전의 메뚜기 아저씨를 좋아하며, 한국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어하는 아가씨가 리셉션에 있었다. 딸애가 수영장에서 노는 동안 벤치에 앉아 한가하게 책을 읽었다. 저녁을 먹으려고 거리로 나왔다. 


여행은 내게 영구적인 뇌손상에 버금가는 변화를 준다. 그것과 비슷한 영향력을 가진 것이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약, 술, 실연 정도? 나열 가능한 항목 중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것이 여행이다. 


야시장 까지는 걸어가기 애매한 거리라서 사원이나 돌자고 올드 시티를 한가하게 걸었다.


왓 쩨디 루앙. 아이에게 머리를 만지면 안 된다고, 왜 안 되는지 가르치고 와이도 가르쳤다. 태국도 많이 변해서 왠만한 시골이나 서비스 업종 종사자가 아니면 와이를 하지 않았다. 


왓 쩨디 루앙. 밤에 오니 분위기가 달랐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죽은 선사의 밀납인형을 봉납당 문틈으로 구경했다. 부처와 마찬가지로 깨달은 자는 태국에서 존경받으며 그래서 그의 밀납인형을 만들고 인형 앞에 그가 죽으면서 남긴 투명한 사리 항아리를 진열하고 기복한다고 아이에게 말했다. 


태국인은 점잖다. 그들이 서양인을 칭하는 파랑이란 단어에는 그런 점잖음과 다소의 모호한 경멸과 갖가지 향신료 같은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어쩌다 내가 까올리라고 말하면 친니를 대하는 태도와는 다른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중국인은 정말 많았다. 트래킹 중에 샘에게 중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오냐고 물으니 그들은 대개 치앙마이에서 머문단다. 적은 수의 중국인 배낭 여행자들이 산간오지를 방문한단다.


아내가 사원 관람이 진력이 났는지 나이트 바자에 가자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야시장에 갔다. 돌이켜보면 나나 사원 관광을 좋아했지 아내는 좋아한 적이 없다. 야시장엔 볼만한 물건이 별로 없었다. 주말시장은 어제 끝났고 치앙마이의 나이트 바자는 십수년전의 팟뽕 야시장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패션프룻과 드래곤프룻을 헷갈려서 마누라가 엉뚱한 쥬스를 마셨다. 아이는 변함없이 수박쥬스로 배를 채웠다. 


이번 여행에서 계획, 기획, 숙소 예약, 일정, 커뮤니케이션은 대부분 내가 했고 아내는 주로 협상을 했다. 아내가 내게 여기서 택시값은 보통 얼마야? 물으면 적정한 택시값을 알려주고, 아내가 흥정하는 식. 


아내는 날더러 길치라고 했지만 나처럼 길을 잘 찾는 여행자는 지극히 드물다. 길에 관한 동물적인 감각이 있달까? 그래서 바라나시의 좁은 골목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파리의, 무미건조하고 어디가나 똑같이 거지같은 도로에서는 길을 잃었다. 파리의 도로는 사선으로 비스듬히 누워있고 교차로 다섯 개 정도를 지나면 각 계산이 잘못 되어 옵티멀 패스에서 벗어나 어떤 식으로든 긴 우회 경로가 되어 버렸다. 문화예술의 도시인지 문화관광의 도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거지같은 도로 계획이 수백년째 이어지는 걸 보면 프랑스인들의 두뇌 구조가 의심스러워 진다. 반면 바라나시는 길의 접속과 분기가 예측 가능했고 거리마다 미묘하게 특색이 있어 분류가 가능했다. 


아내는 아마도 라오스 일주를 할 생각이었다. 수완나품 공항에서 늦은 저녁 무렵에 라오스 국경으로 출발하는 버스가 있어 여정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려고 했다. 나와 딸은 따로 여행하면서 남부의 한적한 시골 해변 마을을 한 바퀴 돌 생각이었다. 방콕에서 헤어졌다가 방콕에서 만나 귀국하는. 아내와 나는 여행 하는 스타일이 워낙 다른데다 피차 개성이 강해 같이 다니면 보통 티격태격 싸움이 났다. 


대부분 만실이라 한참을 여기 저기 걸어다니며 간신히 숙소를 구했던 루앙프라방에서 만난 나이  든 한국인 부부가 값싸게 유럽을 여행하는 방법이라며 까미노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라오스 여행 중 빈대에 심하게 당했고 한쪽 눈을 다친 남편을 아내가 보살피고 있었다. 부부의 말이 계기가 되어 작년에 까미노를 걸었다. 숙소에서 그날 밤 나는 주인장과 라오스의 땅 값, 사업 아이템 따위를 늦은 밤까지 얘기했고, 그 다음 날 몇 명의 여행자들을 그러모아 썽태우를 임대해 폭포를 구경하러 갔다. 폭포에서 한 친구가 거머리에 피를 빨렸다. 힘겹게 다리에 붙은 거머리를 떼어내고, 일행 중 한 명이 호기심에 통통해진 거머리에게 콜라를 부었더니 먹은 피를 다 토해내고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콜라에 이런 효능이 있을 줄이야. 그런데 왜 갑자기 콜라에 말라죽은 거머리  생각이 났지?


아침을 먹으러 들른 식당. 어제, 오늘 두 끼를 여기서 먹었다. 따지기 좋아하는 마누라가 주인장에게 쪽에 계란을 넣었느니 마느니 옥신각신 하는 동안 슬그머니 애를 데리고 나왔다. 


치앙마이 공항 가는 길. 썽태우 적정가는 60B라고 생각했지만, 100B 달라는 거 80B 주고 탔다.  


숙소에서 전날 밤 아내 얘기대로 고생해서 버스나 기차 타고 방콕에 가지 않기로 하고 녹에어의 비행기를 예약하려고 했다. 작년까지는 별 문제 없었던 기억인데, 결재 창에 갑자기 한국 페이지가 나타나 인증서 암호를 요구해서 결재가 안 된다. 망할 대한민국 정부다. 세금이 아깝다. 하는 수 없이 회사 컴퓨터에 원격 접속해 간신히 예약할 수 있었다. 두당 1650B짜리 항공권. 


방콕까지는 1시간 비행. 737-800. 빵과 음료수를 줬다. 터불런스 때문에 비행기가 요동을 치고 착륙을 참 지지리도 못 했다. 태국인들은 쿨해서 스페냐드처럼 착륙에 성공했다고 박수를 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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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

아내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한결같이 최근 여행자들은 예전만 못하게 질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일리가 있어 보였다. 뭐 대단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 나라 언어나, 문화, 역사조차 공부하지 않고, 중대 결심을 해야 나올 수 있던 소위, '해외여행'을 이제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옆집 애가 갔으니 나도 갈 수 있다 분위기. 그리고 머리가 나쁘다는 것. 뒈지게 더운 나라에 와서 뒈지게 덥다고 말하는 바보가 있는 것이 증거? 현지어는 한 마디도 모르고 영어만 사용하는 여행자나 그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자기가 살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워낙 교조적인 이야기이고 저마다 개성과 취향이 있지만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먹지 않거나(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벌레를 먹어야 한다) 오른쪽 차선 통행인데 죽어라고 왼쪽 차선으로 오토바이를 모는 것. 태국 같은 좋은 나라에 와서는, 외국에 나와서 한국음식을 먹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며 자기는 팍치도 잘 먹는다고 하면서 죽어라고 태국음식만 먹어대는 것도 이해가 잘 안가긴 마찬가지다. 이런 예를 보면 질이 떨어지는 지는 확실치 않지만 예전 여행자들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는 것 만큼은 확실했다.

저녁에 땅화생 백화점에 들러 쇼핑을 했다.

오징어에 대한 아내의 불가해한 정열로 인해: 오징어포 17, 생선포 16, 비스켓 스틱 9,
집에서 노상의 불량식품 스러운 수박 쥬스를 만들어 먹으려면 : 연유 18
꿰이띠오 남을 집에서 해 먹자: 쌀국수 3개 단가 6.75, 쁘라놈 소스 17.5, 고추 소스 11, 남 쁠라 18, 고추가루 15.25, 갈릭 파우더 27.5
아내가 월남쌈을 만들어 보겠단다 그래서 : 라이스 페이퍼 59
술먹은 다음날 꿀차? : 꿀 228
그리고 집에서 월남미로 카우 팟을... : 쌀 20

쌀 까지 산 것은 좀 너무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들을 아내와 내 배낭에 나눠서 차곡차곡 쑤셔 넣었다. 남 쁠라를 매번 느억 맘이라고 말하는 실수를 자주 했다. 남 쁠라는 참치나 멸치 등의 생선을 발효시켜(썩혀) 만든 생선 간장같은 것인데 태국의 모든 요리에 들어가는, 말하자면 핵심 컴포넌트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쁘라놈은 달고 시고 매운 소스인데 남 쁠라와 마찬가지로 식탁에 항상 놓여 있다. 국수 먹을 때 마다 내오는 다섯 가지 소스 중 빠진 것은 고추기름과 고추 식초 절임인데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고추 절임에 라임이 살짝 들어가는지 안들어가는지 확실치 않다. 수퍼 마켓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향신료가 있었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거리를 거닐다가 그리웠던 카우 카 무(족발덮밥)을 먹었다. 아내는 쌀국수 매니아다. 시공사의 Just Go 태국편을 잠깐 봤는데 대부분 나하고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음식 섹션 하나 만큼은 장관이다. 생판 듣도 보도 못한 음식들이 즐비하게 나와 있다. 어디서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태국 음식 기행은 할만한 것이다. 이렇게 싸고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태국 말고 다른 나라가 있을까 의문이다.

숙소에 들어왔다가 잠깐 나갔다. 빗속을 거닐어 홍익인간 앞에서 봉지 구아바를 샀다. 나보다 앞서 구아바를 산 용감한 한국인들이 이게 대체 무슨 과일인데 맛이 하나도 없냐고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판매상은 술에 취해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중인데 내가 '알로에 막막'이란 말을 제대로 발음하도록 갖은 애를 썼다. 얌마, 정신차리고 구아바나 제대로 깎아라. 니가 지금 발음이 안 되는거야.

7/11

새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월텟에 들러 몇 가지 쇼핑을 하고 돈이 남으면 영화를 보고 마사지를 하고 수끼를 먹기로 했다.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일반 버스 대신 에이컨 버스를 타는 바람에 빠두남 시장에서 내렸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의 용산 전자 상가에 해당하는 빤팁 플라자에 들러 일 없이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월텟으로 갔다. 지갑을 몇 개 사려고 들렀지만 백화점이다 보니 흔해빠진 가오리 지갑이 1000밧이 넘어갔다. 50% 할인을 하더라도 500밧 가량?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것이라고 해서 뭔가 남다른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디자인, 평범한 박음질.

원래 가려고 했던 MBK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국에서 뭔가 물건을 살 일이 있으면 마지막에는(본의아니게) 항상 MBK에 들렀다. 적당한 가격에 쓸만한 물건을 구할 수 있으니까. 선물, 기념품은 짜두짝 주말시장과 나라야 판, 이세탄, 센 백화점 따위를 전전했고 생필품을 살 때는 삔까오 다리 건너 있는 이름을 잊어버린 백화점과 짜두짝, 빠두남, 나이럿 시장, 카오산 옆 시장을 배회했다. 가격대 성능비가 가장 형편없는 곳은 언제나 카오산이었다. 카오산에서는 가짜 학생증을 만들거나, 가이드북이나 중고소설을 구매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도착하자마자 팟 타이와 바나나 팬 케잌(로띠)을 먹는 장소였다. 방콕에 가면 매번 숙소를 수쿰윗에 잡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어김없이 카오산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직 많은 여행자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때 그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MBK 6층 Thai Corporation 매장에서 코끼리 가죽 지갑을 샀다. 가오리 지갑이나 상어 가죽 지갑은 워낙 흔해빠진 아이템이라 희소성이 떨어졌다. 게다가 상어 가죽은 비싸다. 코끼리 가죽으로 밀어 붙이자.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선물하기로 했다 -- 휴가를 일주일 갔다오기로 했는데 일주일 더 놀았다. 지갑은 정가 600밧 가량 하는 것이고 잘 깎아봤자 300밧 정도 될 꺼라고 생각했는데 아내의 협상 솜씨는 여전히 눈부셨다. 개당 225밧 가량, 일곱 개를 샀다. 그리고 860밧 짜리 실크 삼각 베게를 600밧에 샀다. 협상이 가능하지만 마침 파는 곳이 거기 뿐이고 기념품 천지인(게다가 상점 점원들의 악어처럼 상큼한 미소) 나라야 판까지 가기는 이 더위에 거리가 멀다.

카오산에서 워낙 싸구려 같은 것들만 봐서인지 이 가게에서 산 것은 의외로 품질이 좋았다. 가진 돈이 얼마 없어서 아내가 가지고 있던 65$ 미화 짜투리를 다 환전해서 간신히 물건들을 구매했다.

거대한 비닐봉투에 삼각 베게를 담고 묵직해진 보조 배낭을 어깨에 맨 채 다시 센트랄 월드 플라자로 향했다. 제철이 아니라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다는 데도 아내는 망고스텐을 먹고 싶단다. 정 먹고 싶으면 빅 씨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빅 씨의 단 한 코너에서 망고스텐을 팔고 있다. 껍질을 보아하니 맛이 간 것 같다. 실패할 것이 뻔해 반 케이지(kg)만 샀다. 그리고 저녁 대신 먹을 이런저런 식품들을 샀다. 바나나빵 6개(13), 초밥 세트(99), 구아바 쥬스(10), 벨프룻 쥬스(10), 드래곤 프룻 반 토막(9). 초밥을 맛 때문에 먹는 것은 아니다.


싸얌에서 월텟 쪽으로 가는 길에서 보는 철사 공예품 판매상. 몇 년이 지났건만 매번 그 자리에 있다.


이세탄 백화점. 이런 사진은 대체 왜...


방콕의 악명높은 교통 체증... 가변 차선... 아니다. 이 구간은 체증이 없다.


Big C 수퍼마켓의 과일 판매대

시간이 너무 지나 초조하다. 카오산에 도착하니 6시 무렵. 서둘러 숙소에 맡겨 놓았던 짐을 찾고 복권청 앞에서 59번 버스를 기다렸다. 남은 돈은 34밧 뿐인데 59번 일반 버스는 올 생각을 안 한다. 돈이 모자라 탈 수 없는 59번 에어컨 버스는 벌써 두 대가 지나갔다. 기다린 지 50분이 지났다. 머칫까지의 교통 체증이 걱정되고 초조해서 하는 수 없이 다음에 오는 에어컨 버스를 탔다.

수중에 남아 있는 돈은 1034밧, 500밧 짜리 공항세 티켓 두 장을 사면 34밧 밖에 남지 않아 에어컨 버스 비용인 두당 20밧에서 6밧이 모자란다. 아내가 안내양에게 사정하자 옆에 있던 태국인이 10밧을 그냥 준다. 아내가 답례로 10밧 짜리 구아바 쥬스를 그에게 줬다.

나는 공항에 도착하면 가방에 잔뜩 들은 몇 가지 물건을 꺼내 태국인들에게 물건을 주고 모자란 돈을 얻을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한심한 기분이었다. 바로 전에 레몬티만 마시지 않았어도 59번 에어컨 버스에 진작 탈 수 있었을 터인데! 하지만 먹다 얼음만 남은 레몬티 봉지는 초밥을 차갑게 식히는데 쓸모가 있다. 초밥은 차가워야 한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카오산 옆 랏담넌 거리. 겁나게 피어오르는 구름.

아내는 짐을 부치고 나는 짐을 들고 비행기에 타기로 했다. 아내 비행기는 10.30pm에 떠나고 내가 타는 비행기는 11.15pm에 떠난다. 통로 옆 의자에 앉아 아까 BigC에서 산 음식들을 꺼내 펼쳐 놓고 먹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니들 99밧 짜리 럭셔리한 초밥 도시락 먹어봤냐? 주머니에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탑승대기실에 앉아 있다. pda를 꺼내 오늘 일정을 정리했다. 대기실은 한국인들의 수다로 시끄럽다. 지나가던 한국인이 아는 척 한다. 이전에 만났던 사람이다. 저장해 놓은 mp3를 들으며 이 글을 작성중이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리얼타임 로그는 여기까지다.


공항에 앉아. PDA 속에 담긴 내 여행 기록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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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와서 계속; 보딩 패스를 내밀고 문을 나와 셔틀버스를 탔다. 이런 저런 비행기가 창 밖으로 보인다. 예전 숙소에서 봤던 아줌마가 아는 척을 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간다. 버스가 비행기를 향해 공항을 한가하게 운행하고 있을 때 PDA에서 마침 Mascagni, Cavalleria Rusticana, Intermezzo (3:31) 가 흘러 나왔다. 대화를 중단하고 음악을 들었다. 뭔가 사무치는 감정이 일었다. 이런 것이다; 항공권 본전도 제대로 못 뽑고 이 좋은 열대를 떠난다는...

옆 자리에 앉은 한국인 아가씨들은 CA(cabin attendant가 맞다)가 하는 영어를 당체 알아듣지 못했다. 시선이 느껴져 옆을 흘낏 쳐다보니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사람 같다. '줄거리'라고 씌어있는 문서 뭉치를 읽고 있다. 옛날 중국 여행할 때 따리에 짱박혀 뭔가를 쓰고 있다는 작가인지 시나리오 작가가 아닐까 싶었다.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았다.

이번 열대에서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다. 황가나 아내에게 부처 얘기를 해 줬다. 옛날에 부처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자신이 누린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자는 순수한 마음에서 설교를 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물 위를 걷거나 치료기적을 행하거나 하다 못해 공중 제비 돌기 등의 아크로바트 하나 변변히 할 줄 아는 것이 없는데다 쓸만한 제자 하나 없는 부처가 민심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인도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사두들이, 바바들이 있었다.

제자가 열댓명은 되야 그나마 한 가닥 하는 성자 축에 끼고 무슨 말을 하건 들어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자기 패거리를 늘리기 위해 제자를 수집(구걸)하고 다녔다. 똘똘한 제자를 거느려야 성자의 후광도 그만큼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다. 팔정도 같은 것은 부처가 만들지도 않았다. 비교적 역사화가 잘 된 예수의 예를 보면 알겠지만, 똘똘한 제자들이야 말로 성자의 값어치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영성사업의 흥망을 좌지우지하는 키 포인트가 된다.

제자 수집 사업을 열심히 하다보니 오버했다. 그의 밑에 따르는 무리가 한떼거지가 되니까 부처 및 제자 일동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떼거지를 몰고 다니면 패권을 다투는 지역제후나 동종 업종(영성 사업)에 근무하는 바바지들과 불편한 관계가 될 우려가 있으므로 그 수를 제한하기도 했다. 부처가 워낙 유명한 성자다 보니 그의 그런 궁상은 잊혀지거나 무시당했다. 내가 그 얘기를 하는 동안 황가는 슈렉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아내는 내가 또 신열에 들떠 헛소리를 늘어놓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NWD theory 같은 것을 차마 설명할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는 서양이 동양을 재평가하고 있다는 류의 얘기들이 즐비했다. 동양의 정신적 문화에 대한 서구의 관심에 관한 얘기다. 까보면 의외로 보잘 것 없는 정신성 나부랑이에 스스로 흡족해 하면서 과학기술에 비딱한 태도를 보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과학기술은 아직도 상당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동양에만 특이한 스피리튜얼리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 문화적 차이를 혼동하거나 착각했을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서양인들에게 동양인의 정신세계는 서양인들이 죽어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개뻥을 늘어놓았다) 내가 이렇게도 정신적인 것들에 부정적인 이유는 어렸을 적부터 지나치게 영적인 삶을 살아서 일께다. 마치, 청자라면서 흔해빠진 싸구려 개밥 그릇을 박물관에 전시해 놓고 서양인들이 그 개밥그릇을 보고 감탄하는 것을 옆에서 구경하는 것과 기분이 비슷했다. 아무튼 건강한 육신과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제대로 된 회의(skeptism)가 나온다.

아내가 오기 전부터 한 달 동안 고생하고 왔으니 편히 지내라고 먹을만한 식당을 물색했다. 황가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방콕에 있는 동안 사전답사도 하고 여기 저기 알아보고 있었다. 태국에 오기 전부터 내 PDA에는 방콕의 유명한 식당 리스트와 여차하면 호텔에 들어가려고(아마리 워터게이트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호텔 할인 바우처를 발급받을 수 있는 여행사 전화번호 따위를 저장해 두었다. 번번이 한 두 시간씩 일정이 늦어지고 호텔 대신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고, 유명 식당 대신 25밧 짜리 국수를 파는 식당이나 노상에서 음식을 해결했다. 아내는 가난한 배낭 여행자스럽게 돈 몇푼에 조잔해지는 내 궁상(?)을 미리 알고(게다가 심하게 영적이라서 욕심이 없기까지 하다) 편한 숙소나 맛있는 음식을 부러 마다했다. 일정은 수시로 변경되었고 쓸만한 레스토랑 리스트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번쯤은 호강시켜 주고 싶었지만 그 반편에는 돈을 쳐발라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적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1500밧 짜리 호텔에 들어간 다음 카드 결제액수를 보고 신경질을 낼 꺼라고 부러 짐작했다. D-flawless나 스바로프스키, fossil 매장을 쓰레기 봉투같은 짐을 질질 끌면서 빈티나게 돌아다닐 때 비교적 값싼 다이아몬드나 괜찮은 시계를 사주고 싶었다. 단가 100$ 내외면 심하게 동양적인 내 영혼이나 아내의 불가해하고 이니그마틱한 영혼이 동시에 만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보잉 777-200 이 떴다. 보잉 777의 엔진은 ETOPS 롤스 로이스 엔진(Extended-range twin-engine operations)이다. 777은 사연 많은 비행기다. 시시한 기내식. 하지만 시시한 비행기. 다섯 시간 비행 후 오전 6:40분 인천공항에 도착. 이미그레이션을 광속으로 빠져나왔다.

아내가 먼저 도착해서 어라이벌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6800원 짜리 602번 버스를 타고 신촌역에서 내렸다. 비가 추절추절 내리고 있다. 집에 돌아와 배낭을 풀어 헤치고 방콕의 수퍼에서 산 각종 '생필품들'을 정리한 다음 오후 7시까지 내리 잤다.

깨어나서 김치말이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냉장고에 드래곤 프룻과 밤이 있다. 배낭여행자는 세관에서도 검역에서도 잡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집이 불에 타 없어진 '파이트 클럽'적인 당황스러운 상황을 상상했다. 하지만 집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지금까지 쓴 태국 휴가 기록을 살펴봤다. 잘못 적어놓거나 모호한 것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실수한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여행 기간: 13일 (6.29 ~ 7.11)
항공료: 309000원 (세금 포함)
2주간 여행 경비: 420000원. 일평균 32300원(28$).
쇼핑(여행경비와 겹침): 3000 baht -> 8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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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8시 기상. 아내가 느적거려(쉬러 왔으니까... 란다) 9시쯤 체크아웃. 내가 짐 싸는 속도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2-3분이면 숙소 사방에 널부러져 있는 짐을 '순서대로' 차곡차곡 배낭에 쑤셔넣을 수 있다. 배낭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을 다년간 연구한 결산이다. 짐이 없기도 했다. 티셔츠 하나, 런닝 하나, 새로산 반바지, 팬티 두 장, 양말 두 켤레가 옷가지의 전부.

숙소 주인장이 카오산까지 바로 가는 여행사 버스는 없단다. 버스 터미널까지 픽업해줄테니 10분만 기다리란다. 아침을 먹기로 했다. 은근히 걱정되었다. 방콕에 오후 다섯시쯤 떨어지면 교통체증 때문에 머칫에서 방람푸까지 가는데 두 시간은 걸릴 것이다. 따라서 가능한 빨리 버스를 타는 것이 바람직했다.

종업원들이 밤이나 낮이나 묵고있는 손님을 대하면 생글생글 웃어서 괴기스럽다. 밥 먹으면서 숙소에 있던 코엘료의 eleven minutes를 잠깐 읽었다. 주인이 책이 마음에 들면 가져가란다. 도로 내려놨다. 꿈을 꾸게 한다는 코엘료의 소설은 다음에 읽자. 지금은 노트북에 있는 아즈망가를 마저 봐야 한다.

주인이 차로 데려다 주면서 TR 게스트 하우스에 식당이 생긴 다음 부터는 아침에 공짜로 주던 티가 없어졌고 대신 버스 터미널까지 프리 픽업을 투 웨이로 해준다며 가이드북에 꼭 그 내용을 업데이트해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한국인 여행자들 중 일부는 자기 숙소에 묵으면 말 한 마디 없이 앉아 있다가 그냥 간다고 한다. 여행 중 묵게 되는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은 보통 정보 수집의 1차 소스다. 그 다음은 삐끼. 그런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지 못하면 가이드북에 코박고 있어야 할텐데? 영어의 장벽이 그리 심할까? 믿기지 않는다. 그들은 과묵한 사람들이거나 나처럼 늘상 뻔한 대화가 귀찮고 지겨워서 안 하고 자력갱생하는 타잎일 것이다.

터미널에서 티켓을 끊으려니 250b란다. 올 때 2등 에어컨 버스를 200밧 준 기억이 나서 카운터에 물었더니 정부버스가 200밧, 자기들 wintour의 사설 버스는 1등 버스이고 요금이 250밧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999 또는 99번 창구에서 판매하는 정부 버스는 가격에 비해 서비스가 떨어지는 편이라서 내심 꺼리는 편. 두 말 없이 wintour의 1등 에어컨 버스를 끊었다. 빵과 우유, 음료를 두 번쯤 나눠준다. 티켓에 붙어있는 식권으로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고양이 머리띠를 한 안내양은 유니폼으로 입는 치마 폭에 다리가 걸려 뒤뚱뒤뚱 펭귄처럼 걸었다. 안내양은 손님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그들이 사용한 컵을 모아 휴게소 뒤켠에서 씻는다. 체크 포인트나 검문소를 만날 때마다 쪼르르 달려나가 사인을 받고 일지를 기록한다. 새로운 손님이 타면 자리를 안내해 준다. 손님들이 음료나 담요를 요구하면 갖다 준다. 안내군도 있다. 안내군은 노는 것 같다.


장거리 버스가 잠시 정차하는 휴게소. 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2년 전에 비해 눈부시게 발전했다. 눈부시게!

지루한 버스 여행 동안 노트북을 꺼내고 pda를 꺼내고 그동안의 일정을 정리했다. sony에 번들로 포함된 intellisync는 업그레이드를 안해서인지 outlook과 싱크할 때 엔트리를 자꾸 잃어버렸다. 그동안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일전에 메모리 스틱이 날아갔을 때 하드리셋을 한 후 싱크를 하니 최근 2주 간의 엔트리가 하나도 싱크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소니는 역시 소니스럽다. 하여튼 일정을 다시 입력했다.

6시간 걸린다던 버스는 방콕에 다 이르러 갑작스러운 교통체증 때문에 한 시간 가량 서행했다. 알고보니 교통 경찰 ten birds이 멀쩡한 도로를 막아놓았다. 어느 나라나 경찰 ten birds이 문제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에 시내에서 오토바이를 단속하던 경찰을 봤다. 과속은 아니고, 보호구를 제대로 착용했고 머플러를 개조한 것도 아니고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녀석을 잡아 세웠다. 면허증도 제대로 제시한다. 힐끔힐끔 쳐다봤지만 도무지 무슨 꼬투리로 멀쩡히 잘 가던 오토바이를 세웠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옆에 있던 황가가 '쯧쯔... 반바지로군' 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런건가? 잡힌 놈만 유달리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도착하니 5시. 끔찍스러운 교통체증 때문에 3번 버스를 타고 짜두짝 공원까지 가는데만 1시간이 걸렸다. 방람푸까지 가려면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 지 알 수 없다. 갈길이 멀다. 물론 이런 상황도 예상했다. 차야 가던말던 한가히 뵈는 아내와 달리 나는 '언제나' 대안이 있었다. 미련없이 머칫 역 앞에서 버스를 내렸다. BTS로 갈아 타고 Chit Lom으로 갔다. 여섯 정거장 밖에 안되는데 표값이 35밧이다. 서민이 이런걸 타고 다닐 수 있을까? 시민 한 사람이 평균적으로 한달에 400달러를 버는 나라에서. 벌이는 그렇지만 먹을 것이 워낙 많아 굶어죽는 거지는 절대 없다는 것이 태국의 '자랑거리'다.

방을 잡기 전에 먼저 아내에게 약속했던 대로, 야마네에 들러 김초밥과 오에코돈, 짬뽕을 먹고 오이시에서 80밧 짜리 초밥 세트와 35밧 짜리 날치알이 들은 삼각김밥을 샀다. 교통체증이 심화되기 전에 월텟 앞에서 2번 버스를 탔다. 복권청에서 내려 볼수록 정 떨어지게 생긴 카오산 로드를 횡단해 사원 뒷편 길로 이동. 러브호텔로 지역 주민들에게 명망높은 쑥바삿 게스트하우스에 투숙. 400밧, double, with bath, a/c, tv.

쑥바삿 게스트 하우스 바로 옆에 붙어있는 인터넷 가게에서 한 시간에 35밧 짜리 인터넷을 했다. 어제, 그제 쓴 로그를 올렸다.

오후 10시. 땅에 복수라도 하듯이 미친듯이 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고 세븐일레븐에 들러 맥주와 오징어, 물을 사왔다.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를 피해 사방팔방에서 바퀴벌레처럼 튀어나와 우왕좌왕 거리를 헤메는 여행자들이 보였다. 나는 '홀로' 우산을 쓴 채 그 모양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발바닥이 빗물에 잠긴다. 반바지 섶이 젖어든다. 우산을 뚫고 들어온 빗방울이 물안개를 이룬다. 비맞은 생쥐들이 처마 밑에서 벌벌 떨고 있다. 내 우산과 나를 쳐다본다. 거리는 텅 비었다. 비는 그칠 줄 몰랐다. 숙소로 돌아와 아내와 건배.

빨래하고 샤워했다. 11시가 넘었다.

7/10

9시 기상. 바깥의 습기는 60%가 넘지만 통유리로 막아놓은 방에서 에어컨을 밤새 틀어 놓으니 방이 몹시 건조하다. 아내가 홍익인간에 들러 아는 척 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아내가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만남의 광장을 싫어한다면 나는 홍익인간을 꺼렸다. 별 이유는 없다. 만나는 장기여행자마다 만남의 광장이나 홍익인간 얘기를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홍익인간은... 특별히 아는 사람이 아닌 한 노골적인 푸대접 때문인 듯. 장기여행자들 대개가 아는 사람이 많아서 한 사람 들어오면 떼거지로 우르르 몰려들어 좁은 일층 식당을 점령한 채 나갈 생각을 안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어쨌든 일 없으면 안 가고 안에서 개기지 않는 것이 타지에서 고생하는 교민을 돕는 길인 듯 싶다.

아내가 벌써 여러 번 한국에 통화를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전화카드를 구입하란다. 아내더러 인터넷 까페에서 인터넷으로 전화하라니 자주 끊긴다며 전화를 찾아 이리저리 카오산을 돌아다녔다. 걷다가 지칠 무렵 분당 15밧 하는 인터넷 전화를 걸었다. 통화 품질이 깨끗하고 전화도 잘 걸렸다. 15밧이면 그리 비싼 가격도 아니다.

땅화생 백화점 가는 길에 있는 국수집에서 25밧 짜리 꿰이띠오 남을 먹었다. 파쑤멘 거리에서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 위만맥 맨션으로 향했다. 47밧. 50밧을 내고 아내는 3밧을 거슬러 주지 않는다고 기사와 실갱이를 벌였다. 우수리는 보통 기사에게 그냥 주는 것이고 태국인들도 그렇게 한다고 말해줬다. 방콕 시내의 택시가 모두 미터로 바뀐 다음 sur-(over-) charge는 없어졌다. 방콕에 무수히 들렀지만 아내는 그런 세세한 것들을 잘 몰랐다. 카오산의 어딘가 숙소에 짱박힌 채 어디 돌아다닐 생각도 안 하고 식당과 숙소 사이를 전전하며 아는 사람들 만나는 장소 정도로 알고 있으니까 관광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내와 여행할 때 한번도 택시를 탄 적이 없다. 오늘 그 사실을 알았다. 택시란 3인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을 때 그들이 버스에 투자하는 돈을 다 합친 가격의 3배 이내일 때라야 내키진 않지만 탈만 하다고 본다. 위만맥 멘션까지 가는 버스비가 4밧이니까 둘이 합치면 8밧, 택시비가 50밧이니 무려 6배나 되는 가격이다. 50밧이면 쌀국수(25) 두 그릇 또는 꼬치(10) 다섯 개, 또는 계란(5)을 얹은 팟타이(15) 한 접시 먹고 고명을 얹은 밥 한 접시(20) 먹고 수박 쥬스 한 봉지(15) 마실 돈이다.

위만맥 멘션의 입장료는 100밧, 뭐 그리 대단한 볼꺼리가 있다고 이다지도 비쌀까 싶었는데 12군데의 전시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어? 이거 의외로 보람차네? 열한시 부터 두 시까지 여기저기 둘러 보았다. Royal Carriage Building, Suan Hong Residential hall, HRH(his royal highness) Princess Orathai Thep Kanya residential hall, HRH Princess Arunwadi Residential Hall, HRH princess Puang Soi Sa-ang Residential Hall 등 특히 공주들 방을 집중적으로 방문했다. 공주들은 하나같이 못 생겼다. 현재의 국왕이 재즈에 미쳐 있다는 얘긴 오래 전에 들은 바 있고, 그가 찍은 그저 그런 사진들도 구경할 수 있었다.


Suan Hong Residential hall


HRH princess Puang Soi Sa-ang Residential Hall. 공주집. 인형, 오래된 시계들.

오늘의 주요 관람꺼리인 Vimanmek mansion을 구경했다. 라마 5세가 기거하던 곳인데 들어가기 전에 짐 맡기는 곳에서 20밧을 삥 뜯겼다. 다른 곳은 돈 안내고 짐을 무료로 보관해 주는데 유독 비만맥 맨션에서만 돈을 받으니 확실히 이건 삥이 맞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짐을 다른 곳에 보관해 두는 건데! 10밧 짜리 동전 두개를 바꿔 코인락커에 짐을 넣은 후 잠그려는데 안 잠긴다. 직원을 불러 안 잠긴다고 말하니 동전을 넣지 않은 것 아니냐, 다른 동전을 넣은 것 아니냐며 되레 의심한다. 시간을 질질 끌면서 해결할 생각을 않길래 버럭 화를 냈다. 무슨 도둑놈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더니 우리 짐을 무료로 맡길 수 있는 곳에 맡기는 것이 아닌가. 나쁜...


티크목으로 만든 건물 중 세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인 Vimanmek Mansion을 방문한 중학생들. 300개의 창문, 200개의 문.

1시 15분 영문 안내를 받으며 맨션을 돌아다녔다. 안내원이 한쪽 구석을 가르키며 여기는 2차대전 중 일본이 폭탄을 떨구어 파손된 부분입니다 라고 말하니 어떤 노인네가 'fuck japan'이라고 중얼거렸다. 안내원: 여기 일본사람 없지요?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맞아요 fuck japan이에요. 라고 말한다. 중국에서 보내온 썩 괜찮은 청자가 온전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었다. 눈여겨 보면 볼만한 것들이 꽤 많지만 후다닥 해치우려는지 머물 시간을 안 준다. 설명을 들으면서 다니려니 영 지겨웠다. 위만맥 맨션은 라마 5세가 5년만 살고 주욱 잊혀져 있다가 현재 국왕의 왕비가 82년에 리노베이션해서 박물관으로 열어놓은 것.

두 개의 운하에는 똥물이 흐르고 있지만 두씻 정원은 시원한 열대를 보여줬다. 맨션에서 창밖으로 바라보는 풍경도 그럴듯 했다. 그 기분에 왕 노릇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밧 내고 뙤약볕 아래서 여기저기 땀을 펑펑 흘리며 구경하는 왕궁 보다는 두씻 정원과 맨션이 훨씬 나았다. 왕궁은 일반에 공개된 장소가 별로 없어 사실상 볼꺼리가 없는 곳이다.

오후 두 시부터 위만맥 맨션 옆 스테이지에서 타이 전통 춤 공연을 했다.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다. 여기저기서 한 부분씩 훌쩍 떼어내 맥락없는 내용을, 약간 솜씨가 떨어지는 것 같은 춤꾼들이 공연한다. 이들 공연중 볼만한 것은 라마야나인데 오래되어서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다섯이나 여섯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아내에게는 라마야나 얘기를 몇 차례 해줬지만 관심없어 보였다. 라마는 나쁜 놈이라고 몇 번쯤 말했던 것 같다. 고생스럽게 구한 아내가 악마와 놀아났다고 그녀를 버린 놈이다. 그녀가 불 속에 뛰어들어 자신의 순결을 증명했지만 라마는 끝끝내 아내를 믿지 않았다. 그래서 인도놈들은 마음에 안드는 아내를 태워 죽이거나 자발적으로 뛰어들어 열녀가 되는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불에 태웠는데도 타 죽지 않고 살아 남아야 '정품 인증' 마누라다. 옛날옛날에 자기 마누라를 마녀로 고발해 태워 죽인 유럽인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몹시 궁금해지는군.


라마와 시타. 기쁨의 춤.


그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보낸 나날(라마야나의 앞부분? 또는 시타를 구한 뒷부분?). 나도 내가 왜, 어떻게, 어째서 이들의 춤이 라마야나의 한 장면 임을 추측도 아니고 확신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재주부리는 얘는 하누만 같다.


두씻 정원의 한가운데 쯤 있는 거대한 나무. 매력적.

abhisek dusit throne hall을 구경했다. 대관식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안을 꽉 채운 것은 공예품들 뿐이었다. 하지만 수공예품의 손기술 수준은 비교적 높은 편. 저런 물건을 시장통에서 구할 수는 없겠지 싶다. 그런데, 이란의 보물들을 구경한 다음 부터는 왠간한 보석들은 시시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어 건축 양식으로부터 확연한 영향을 받은 것 같은 Abhisek Dusit throne hall의 입구.

어느 건물에 들어가나 건물을 지키는 사람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는지, 물건을 훔쳐가는지 감시했다. 사진은 기회가 되면 찍었다. 반도 채 보지 못했지만 오후 3시가 넘었고 배도 고프고 지쳐서 궁전 옆에 임시로 가설한 건물에 들어선 오이시에서 초밥(65)과 샐러드(40)를 사 먹고 방람푸로 돌아가는 택시(41)를 탔다.

꼬치를 먹고 싶은데 아직 때가 일러 꼬치구이가 노변에 보이지 않아 계란을 넣은 팟타이(20; 비싸네?)를 사 먹고 구아바(10)과 수박(10)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구아바를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별 맛이 없다는 이유로), 비타민의 황제, 열대과일 중 가격 대 성능비가 가장 뛰어난 과일이다. 구아바 3개는 지각있는 여성의 하루 두 끼 식사로 더 바랄 나위가 없을 정도다. 태국 여성들의 건강한 피부는 구아바가 책임지고 있다. 구아바는 그렇고,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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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9시에 일어났다. 죽과 쌀국수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썽태우를 타고(10b) 므앙까오(수코타이 역사공원)로 갔다. 자전거를 빌리고(하루 20b) 아내를 뒷자석에 태워 공원 입구로 향했다.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입장권(150b)을 샀다. 그리고 역사공원을 동에서 서로 관통해 성벽을 지나 Wat Si Thone 까지 달렸다. 별 것 없다.

자전거 체인이 빠져 애를 먹었다. 어느 도시에서건 자전거 탈 때 마다 한 번씩은 체인이 빠졌다. 지나가던 서양 소년이 체인을 다시 달도록 도와줬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소들이 풀을 뜯어먹는 한가로운 농촌을 유람했다. 150밧이나 주고 왔으니 뭔가 봐야겠기에 다시 역사공원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더 이상 살이 안 탈 꺼라고 생각했는데 살이 조금씩 더 타들어갔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왠 태국인이 한국인 여성을 데리고 돌아다니는 줄 알았단다. (뭐야? 부러운거야?) 수코타이 역사공원이 원래 생긴 모양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말레이지아의 타이핑처럼 노동자들을 동원해 대단위 인공 호수를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얕은 인공호수는 대량의 물을 증발시키면서 다소간 더위를 식혀주었다. 돌은 여전히 뜨겁다. 시원하게 생긴 나무그늘에 앉아 워터멜론 쥬스를 쪽쪽 빨아먹으며 누워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자전거를 타지 않고 뙤약볕 아래 걸어다니면서 유적지를 관람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종종 그런 사람들이 보였다. 가엾다. 땀흘리며 빌빌 거리는 가엾음이다.

람캉행 대왕의 동상을 얼핏 보고 지나갔다. 더워서 자세히 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얼굴은 봐줘야 할 것 같았다. 태국어를 만든 왕이다. 동서로 엄청나게 영토를 넓힌 알렉산더 더 그레이트 같은 놈팽이는 별로 대단한 인간 취급을 안 하지만 글자를 만든 선행을 한 왕이라면야...

오후 1시쯤 돌아가기로 했다. 입구의 가게에서 얼어 붙은 수박쥬스를 급히 마시다가 골이 띵하더니 줄곳 두통이 달라 붙었다. 숙소에 돌아가기 전에 인터넷 가게에 들렀다. 두 가게 모두 windows 98이라 메모리 카드 리더의 usb storage 가 잡히지 않았다. 캐논의 생각없는 엔지니어들은 WIA(windows image acqusition) 드라이버와 twain만을 지원했다. removable drive를 지원하지 않아 메모리카드에 텍스트 파일이나 실행 파일 따위에 접근할 수 없다. 그래서 수 년 전에 싼 맛(9900원)에 구매한 메모리 카드 리더기를 이번 여행에 들고 왔다. 하여튼 windows 98 용의 usbstor.inf 파일만 있으면 쉽사리 해결될 문제인데 아쉽게 되었다. 다른 곳에 가보니 usb 포트가 없다. usb 포트가 있는 곳을 부러 알려준다며 방금 나온 가게를 손짓했다. 아내는 메신저질을 하면서 재밌는 방식을 사용했다. 메신저에서 한글 입력이 안 되니까 내 블로그 페이지를 열어 놓고 거기 코멘트의 텍스트 창에 한글로 문장을 입력한 다음 메신저 대화창에 컷앤 페이스트 했다. 그런 방법도 있구나 싶다.

점심 먹으러 시장통으로 갔다. 그린 커리와 밥을 시켰는데 평범한 덮밥이 나왔다. 어째 커리와 밥을 합쳐 20 밧 밖에 안 하는 것이 이상하다 싶었다. 양이 안 찬다. 가판에서 태국식 팬케익을 사 먹었다. 7밧이다. 이 동네 사람들이 참 착하고 순한 것 같다. 관광객 상대로 도무지 사기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근처 사원(wat rajthanee)에서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중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쳐다보다가 두통이 심해서 숙소로 돌아와 타이레놀을 삼키고 잤다.

동네를 둘러봐도 마땅히 식사할 만한 곳이 없어 숙소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타이 커리와 밥(60b), 야채볶음과 밥(60b), 수박쥬스(20b), 싱하(35b)을 주문했다. 레드 커리가 나왔다. 커리(깽인데, 까리라고도 하는 것 같다)는 갖가지 향신료와 야채, 코코넛 밀크를 넣고 끓인 것이다. 태국의 대표적인 음식인 똠얌꿍보다 어떤 면에서는 맛있고 여러 향신료 때문에 시큼하면서도 담백하고 또한 깊고 은근한 매운맛이 난다 -- 태국 음식은 본질적으로 맵다. 깽이 한국인 입맛에 잘 맞을 꺼라고 확신하지만 대부분 여행자들은 볶음밥과 쌀국수만 죽어라고 먹었다. 음식점에서 볼 수 있는 깽의 징그러운 첫인상 때문인지 잘 안 먹는 것 같다. 편의상 색깔로 나누어 레드, 그린, 옐로우 커리가 있고 해산물이나 닭고기, 소고기 따위를 넣는다. 벌써 두끼를 먹은 숙소의 음식 솜씨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추천해도 되겠다.

주인장이 밥 먹는 동안 tv를 틀어주었다. YTN이 나와서 화들짝 놀랐다. 주 5일 근무제에 관한 토론 방송이 나오는 중이다. 뭐 다른 것은 모르겠고 일한 만큼만 임금을 지급했으면 좋겠다.

맥주 한 잔 하면서 이 글을 작성중. 대체 왜 이렇게 시시콜콜한 여행기를 작성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주인장이 게스트북을 들고와 82년생 아가씨가 혼자 와서 외로워 하고 있다며 방 번호를 가르쳐준다. 맥주 다 마실 때까지 안 오면 방으로 들어갈란다.

누군가 방문을 발로 걷어차는 소리가 들려 밖을 내다보니 아까 그 한국인 아가씨다. 방에 놀러오라고 했다. 여행 처음 하고 한 달 일정이고 치앙라이, 치앙마이, 치앙센 등을 다녀왔고 북쪽에서 방콕까지 슬슬 내려가는 중이고 18명이나 되는 엄청난 떼거지와 함께 트래킹을 했고(그중 15명이 한국인) 캄보디아와 푸켓 등에 갈 예정이란다. 오늘이 생일이라 케잌을 들고 왔는데 잘 안 먹어서 내가 세 조각 중 두 조각을 먹었다. 아내는 남은 과일을 다 줬다. 딱히 더 할 말이 없다. 그러고보니 우리 부부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여행중 눈이 맞아 사랑의 행각을 벌이는 커플이라고 알아두면 될 듯 싶다.

아내가 pda에 있는 여자들 이름을 가지고 트집을 잡았다. 옛 여자친구 전화번호를 보더니 연락할 필요 없으니 지워버리겠단다. 놔두라고 했다. pda에는 6년 동안의 지난 기록이 있다. 언제 누구를 만났고 어디를 여행했으며 누구와 술을 마셨나 따위. 최근 1년 동안은 거의 아무 것도 적지 않았다. 결혼, 신혼여행, 이번 여행 기록 정도 밖에. 지난 1년은 지지난 1년에 비해 사건이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을 흔히 생활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생활, 죽을 때까지 하게 될 일.

일찍 잔다. 더 볼 것이 없고 심심해서 내일 아침 일찍 방콕에 내려가 식도락이나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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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 Si Thone. 스리랑카에서 불교를 공부한 고승이 남쪽 망고숲 옆의 Si Thone에 살았다는 말이 왓 파마무앙에 적혀 있다. 남은 것은 무의미한 폐허 뿐.



호수 공원.


눈 감고 걷는다.


갖가지 '양식'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700년 전의 석조 유적.


비정상적인 손가락 길이. 비정상적인 귀의 길이. 머리에 난 뿔 등등,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고, 거대로봇류 처럼 생겼다. 악당에 대한 자비심으로 그들을 지옥에 보내주는 마징가 제트같은 거대 로봇.


특이하게 생긴 입술. 열반의 끝없는 기쁨 때문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반쯤 감은 눈으로 반은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고 그 반은 사바세계를 보고 있다. 늘어진 귀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으며... 부처 머리에 난 뿔은 깨달은 자만이 누리는 크나큰 기쁨, 완전히 열린 차크라를... 맞나? 열반이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흡족한 나머지 눈을 게슴츠레 감은 채 입가에 미소를 짓는 상태와 비슷해 뵌다.


피사의 사탑? 동남아 열대 문명의 건축은 왠일인지 다 이 모양이다.


부처가 즐거워 보인다. 뭐 당연한 일이겠지만. 유적지에는 거대로봇이 많았다. 부처들끼리 벌떡 일어나 한판 붙어 폐허가 된 것은 아닐까. 슈로대(슈퍼로봇 대전)


호박


Wat Mahathat. 스님 한 분이 단체사진을 찍고 짐을 챙겨 나가는 중.


제단에서 향을 피우고 절 했다.


폐허를 배경으로 한 골프 코스는 없는 것일까? 부처님 머리에 맞을 지도 모르겠군.


금색 매니큐어, 푸른 눈물. 지긋이 감은 눈.


매부리코, 달관.


악마들을 무찌르러 금방이라도 출격할 것만 같은... 손 길이.


SD 몽크


어딘가 모르게 크메르 양식을 생각나게 하는... 벽돌을 굽지 않아서인지 습기를 먹어 눌려 탑들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일쑤였다. 그나마 반반해 보이는 것들은 '완벽하게' 시멘트로 복구한 것.



등 돌린 부처


등과 힙 라인의 저 섹시함이란...


부처의 팔 다리에는 근육이 없다. 그가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


Wat Mahathat의 스투파.


유적 공원에서 Wat Mahathat만 봐도 전체 유적지의 절반은 본 것 같다.


표정만 봐도 흐뭇한걸.


반석을 받치고 있는 도깨비


반석 밑에 거꾸로 매달린 도마뱀


해골을 든 인간?


골프 코스로 정말... 딱이다.


Wat Sasi.


우유 먹다가 흘렸나?


필라가 제각각.


새집. 가짜 새까지..


구운 거위 모양의 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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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쇼핑하러 간다길래 싸얌 스퀘어에서 황가와 헤어졌다. 앞에 보이는 건물에 커다랗게 적혀있는 MBK가 무슨 뜻일까. 선경을 SK라고 하고, 럭키 골드스타를 LG라고 하듯이 아마도 마분콩을 MBK라고 하다가, 마분콩이란 이름은 SK나 LG처럼 자연소멸할 것 같다. 더워서 움직이기 귀찮아 MBK에서 oishi에 들러 품질에 비해 심하게 비싼 뎀뿌라 라멘(89)을 먹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일식이 먹고 싶다.

태국 전역은 바겐세일 중이다. 의류 매장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690밧 하는 반바지를 50% 세일가인 345밧에 샀다. 디자인은 꽝이지만 품질은 만족스럽다. 닷새째 수영복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짓을 이제 그만 하게 된 것이다.

MBK의 SF Cinema City에서 스파이더맨 2(100b)를 봤다. 그저 더위에 바깥에 나가기 싫다. 그래피컬한 스파이더맨의 움직임이 재미있고 동전 빨래방에서 유니폼을 빠는 '영웅'의 일상사가 재미있다. 여하튼 영화의 분위기를 망치고 '영웅'이란 것들을 궁상 떨게 만드는 것들은 항상 여성이다. 그놈에 궁상은 끝이 없다.


불 지르고 왼쪽으로 튀어라?


석쇠에 남녀를 가지런히 올려 구운 후 오른쪽으로 서빙

저녁은 뭘 먹을까. 일식집에서 초밥을 먹자고 결심을 굳히고 Big C 4층의 Yamane에서 오코노미야키(59b)와 마키모노모리(130b)을 시켜 먹었다. 마요네즈를 잔뜩 처바른 오코노미야키는 영 꽝이고 김초밥 맛은 평범했지만 간만에 찰밥을 먹으니 위장이 즐겁다. 그러나 잘 만든 인디카종 쌀밥 맛과 향기좋고 단맛이 강한 자포니카 쌀밥의 맛에 굳이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문화 때문이지. 중국의 일부 지역, 한국, 일본만이 자포니카 종을 소비하는 별종들이다. 태국식 찰밥의 이름이 카우 니여우란 것이 갑자기 생각났고 라오스와 태국 북부에서도 먹었다. 손가락으로 돌돌 뭉쳐 먹는 찰밥의 맛이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월텟 앞에서 미어터지는 2번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9시다. 일반 시내버스 요금은 0.5밧씩 올라 각각 4밧(주야간), 5.5밧(심야)씩 했다. 에어컨 버스의 가격은 올랐다가 내렸다. 황가는 쇼핑한다고 젓가락 몇 개를 사고 7시에 돌아 왔는데 내가 방 열쇠를 가지고 있어 샤워를 못하고 있었다.

숙소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낄낄거리면서 어제 하다만 여행 얘기를 계속 했다. 젊은이들 셋이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말레이지아, 싱가폴을 25일 동안 주파한다는 말에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말레이지아에서의 정글 트래킹과 산악 트래킹은 사나이의 피를 끓어 오르게 하지만, 말레이지아를 루트에서 빼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충고하면서 뒤가 캥겨 멈칫멈칫 했다. 여행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 나같은 사람들 몇 명에 둘러 싸여 미주알 고주알 경쟁적으로 자기가 아는 만큼만 늘어놓는 '경험담'을 들어 좋을 것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 여행일진대 가이드북에 나오는 도시 중에서도 특히 그곳을 지나간 경험이 있어 어디를 가고 어디를 빼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다 보면 사서 고생하는 여행의 '진미'를 제대로 맛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험자의 그런 말을 듣고 여행을 하다 보면 늘상 뻔한 코스 밖에 안 나온다. 25일 일정 중 거의 10일을 차 안에서 보내게 되는 가엾은 상황이라도 애당초 계획했던 일정대로 해볼만한 가치는 있다. 낯선 도시에서 헤메고, 졸다가 엉뚱한 장소에서 내리고, 연속적인 실패로 좌절하고, 피치못할 사고로 일정을 드라마틱하게 변경하게 될 때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심하게 말하자면 그렇지 못한 나머지는 관광과 다를 것이 없다고 봤다. 모험심이 별로 없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한국문학에서 상상력을 기대하지 않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해봐야 하지 않을까, 남들 안가는 별난 도시의 시시함과 진부함을 진중히 견디며 문명의 결절점인 도시의 내재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 말이야 그럴듯 하지만 난 피곤해서 그렇게 안 한다.

오전 0시, 아내를 마중나갈 시각. 동대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여행객 말을 들어보니 동대문은 오후 10시 30분쯤 문을 닫는단다. 어쩌다 그렇게 된걸까. 카오산이 변하긴 했지만 오전 두 시까지 안 변하는 것 하나 쯤은 남아 있었으면 했는데. 그뿐만 아니라 사원 옆길의 장황한 노상 주점도 사라졌다. 길거리에서 칼부림하고 웩웩 거리며 지나가는 취객들이 못마땅한 나머지 사원에서 철거를 요구했을 지도 모른다. 동대문 역시 취객들의 소란이 귀찮아서 일찌감치 건전하게 문을 닫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동대문이 일찍 문을 닫아 하는 수 없이 옆 술집에 앉아 땀냄새, 몸냄새 풀풀 풍기는 서양인들 틈에 끼어 한가하게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미 술을 많이 마신 듯 혀가 꼬부라졌다. 서양인들이 불교 얘기를 하는 것은 언제 들어도 신기했다.

황가와 싱하 한 병(90b) 시켜놓고 히주그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나타나 자리에 앉았다. 어? 새벽 2시쯤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열시 좀 넘어 도착했는데 승객이 거의 없어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자마자 짐도 바로 찾을 수 있었고 그대로 택시 잡고(200b) 카오산에 왔단다. 그 좋은 59번 버스 놔두고 값비싼 택시는 왜 혼자 타는지, 게다가 150밧에 올 수 있는데... 등등 조잔하게 궁시렁거렸다.

황가에게 줄 선물로 석류즙을 인도에서 사왔다. 아침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여성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되고, 에스트로겐과 유사하다던지 그것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수단이라고 떠들어 댔다. 아침 방송의 주부들을 상대로 하는 건강 코너는 순 구라 같아 보였다. 궁금해서 여기저기 뒤져보니 석류즙이 여성 성인병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입증된 적이 없다. 희안한 민간 전승 대로라면 지네나 고양이 먹고 허리가 튼실해졌다는 말도 주부들에게는 먹혀 들어간다는 뜻이겠지. 이 나라의 주부'님'들은 과학적 사고방식과 무관한 인생을 살아왔을 지도 모른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 궁금하지 않은건가?

아내에게 쌀국수를 먹이고 시원한 수박 쥬스를 사주고(그래, 이 맛이야! 라고 감탄한다) 숙소로 돌아오니 아까 화기애애하게 떠들던 무리는 사라졌다. 방 안에서 잡담을 늘어놓다가 야심한데 떠든다고 빈축을 사고 오전 두 시쯤 잠들었다. 팟뽕 갔다 돌아온 옆방 아가씨들이 그때쯤 방에 돌아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방과 방 사이가 베니어 판이라 온갖 소리가 다 전도되니까 아내가 왜 이런 방을 잡았냐고 궁시렁 거렸다. 필리핀에서의 '허니문' 첫날밤도 베니어판으로 지은 방에서 잤는데 새삼스럽게 뭘... 에어컨 펑펑 잘 나오고 사위가 조용하고 창문과 발코니까지 달린 방을 카오산에서 300밧에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지 않던가?

7/7

황가는 아침 일찍 공항으로 떠났다. 문을 두들기지 않았고, 일어나기에는 좀 피곤했다. 황가 생각을 하면 미안한 맘 뿐이다. 일주일 내내 나같은 놈하고 같이 다니느라 된통 걸어다니기만 했다. 택시는 딱 한 번 탔는데, 아가씨들 둘이 있어서 일행이 넷이라 쉐어하니 두당 10밧 정도 밖에 안 나올 것 같아 눈 딱 감고 잡았다. 개중 하일라이트는 거의 40도에 육박하는 숨 막히는 더위에서 길이 1.6km짜리 빠통 비치를 네 번 왕복한 후 저녁에 다시 세번 왕복한 다음 몇 시간 못자고 아침에 일어나 섬에 들어가 한 시간 반을 길을 잃고 헤메다가 간신히 숙소를 잡고 퍼진 일이다. 밥도 안 먹이고 온 사방으로 걸어다녔다. 건강한 육신에 건강한 회의가 깃든다. 어쨌건 미안한 맘 뿐이라(히히 웃음이 나왔다) 한국에 돌아가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 사야겠다.

아홉시 조금 넘어 일어나니 할 일이 없다. 그저 방콕을 탈출해야 만사가 지겨워지는 이 망할 방콕병에서 벗어날 것만 같아 어젯밤 그렇게 좋다는 수코타이로 가기로 했다. 가이드북에는 오전 중에 차편이 하나 정도 나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가이드북을 믿지 않았다.

숙소에서 나오는 길에 아내가 이틀 전에 숙소에서 나와 함께 얘기하던 아저씨를 아는 척 한다. 3년 전 베트남에서 만났단다. 베트남?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사람에 대한 아내의 기억력은 종종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는 하노이에서 아내에게 고추장을 줬고 아내는 라오스의 방비엥에서 나를 만났다. 방비엥에서 전날 술을 먹고 완전히 뻗어있던 나를 깨워 시장에서 사온 찰밥에 그가 준 고추장을 비벼 줬다. 꿀맛이었다. 우리 셋은 고추장으로 연달아 맺어진 인연인 셈이다. 고추장에 비빈 밥이 영 맛이 없었다면 한국에서 아내를 다시 안 만났을 것이고 혼인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가 준 맛있는 고추장 때문이다. 그는 오늘 라오스에 간단다. 길지 않은 대화 였지만 이런 사정이 꽤 재미있었다.

버스터미널에서 콘송 머칫 마이(북부 터미널, 이런 단어가 갑자기 메모리에서 팝업되는 것도 놀랍다. 대체 이런 기억들은 어디 숨어있다가 나타나는 것일까) 행 버스 번호를 물었다. 3번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 28번인지 29번 창구에서 수코타이 행 2등 에어컨 버스표를 샀다. 7시간 30분이 걸린다. 터미널에 가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왔는데 버스표가 있었다. 수코타이가 안되면 아유타야나 깐차나부리, 또는 롭부리, 정 안 되면 치앙마이나 치앙라이로 갈 생각이었다. 이런 '낙천적인'(될대로 되라) 사고방식은 여행이 내게 가져다 준 부작용이자, 덧없는 즐거움이다. 간단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차에 올랐다.

오후 열두시 출발. 태국어로 화장실이 헝남이란 것마저 떠올랐다. 급하면 뭔가 머리속에서 하나씩 떠올랐다. 정말 신묘하다. 아내와 나는 버스 뒷좌석에 불량(?) 청소년처럼 편한 자세로 널부러져 쉴새없이 떠들었다. 오후 7시 30분 수코타이 터미널 도착.

대충 협상하고 좀 많이 준다 싶은 기분으로 쌈러를 타고 20밧에 숙소로 찍어준 TR 게스트하우스까지 갔다. 이 사람 저 사람이 깐차나부리나 아유타야를 말리면서까지 추천한 도시에다가 숙소까지 꼭 거기 가보라고 찍어 주던데, 생글생글 웃는 아가씨나 체크인이 끝나기 무섭게 지도 한 장 펼쳐놓고 수코타이 시내와 유적지를 일일이 설명하는 친절한 주인 아저씨 덕택에 인상이 좋다. 방도 널찍하고 그럭저럭 훌륭했다. 전화하면 버스 터미널에서 픽업까지 해준다던데... 그 점을 잊고 있었다.

짐을 풀고 곧장 밥 먹으러 나갔다. 호텔 식당에 들러 79밧 짜리 부페 수끼 2인분과 싱하 큰 병(65b)을 시켜 먹었다. 재료가 많지 않아 약간 맛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아내는 오랫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먹어서인지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참 잘 먹는다. 비가 살살 와서 우산을 쓰고 과일시장에 들러 sallaca(0.5kg, 15b)와 람부탄(1kg, 40b)을 샀다. 망고스틴은 보이지 않았다. 부직포같은 껍데기를 벗기면 시큼한 알맹이가 들어있는 살랏(sallaca)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먹어보는 열대과일이다.

사람들 표정이 순하고, 도시가 작아 마음에 든다. 오랫만에 유적지를 볼 생각을 하니 두근거리기도 했다. 오래전에 여행중 태국 역사를 공부할 때 얼핏 기억하고 있는 수코타이는 아마도 태국의 최초 왕조였던 것 같다. 태국에 와서 유적지를 구경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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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서

여행기/Thailand 2004. 7. 6. 16:26
7/5

그래서는 안되는데, 일찍 일어났다. 배편은 오후 1:30에 있고 일어난 시각은 7:00am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노트북 가지고 장난치다가 클리에에 꽂아두었던 렉사 128MB 메모리 스틱을 망가뜨렸다. 포맷을 해야겠는데 인식이 안되니 똥줄이 탔다. 포기했다. 방콕 가서 고치자. 소니는 역시 소니스럽다.

피피섬의 세븐 일레븐 앞에서 만난 친구는 가슴에 한자 세 글자를 문신으로 새겨 놓았다. 그게 무슨 글자인지 아느냐고 물어보니 놀랍게도 서양인스럽지 않게 선, 의, 애를 제대로 설명한다. 뭐하는 친구일까 의문은 생기지 않았다. 한눈에 태국에서 굴러먹은 히피... 라고 나왔다.

배에 올랐다. 그는 나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배 꼭대기 '선텐하는 서양인들'을 교묘하게 피한 좋은 자리, 말하자면, 여행 노하우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석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우리는 뜬금없이 브라흐마에 관해 얘기했다. 브라흐마는 힌두교에서 가장 인기없는(을) 신인데 우주를 만든 것 외에 그가 딱히 한 일이 없다. 우주를 만든 행위조차 별로 감동적이거나 영웅적이지 않았다. 한무더기의 쓰레기를 생산한 것이 기뻐해야 할 일이라도 되나? 히피가 내 의견에 공감해줘서 기뻤다. 그는 개구리같은 자세로 앉아 줄담배를 피우며 눈알을 이리저리 히번뜩이고 있었다.

'다빈치 코드' 상권을 다 읽었다. 베스트셀러용으로 제작한 소설인듯 싶은데 내용이 3류스럽고 번역은 꽤나 버벅거렸는데,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비슷한 역자들을 생각해보니 비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모르겠으면 차라리 영어 병기를 해 놔라.

크라비의 선착장은 기억하고 있던 그 모습이 아니다. 선착장이 시 외곽에 위치해 있는데 그 위치가 어디인지 몰라 난감하다. 배에서 뒤늦게 나오는 바람에 썽태우는 이미 떠난 상태고 배에서 내린 찌꺼지들을 어딘가로 날라주고 왕창 뜯어먹을 심산으로 보이는 몇 안되는 삐끼들이 가격 담합을 끝낸 후 선택의 여지를 없애버렸다. 크라비 타운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아니, 여기가 대체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다. 어... 여기가 어딜까. 택시에 30밧을 주면서 내심 속이 쓰렸지만 크라비타운으로 들어섰다.

300밧 짜리 여행자 버스를 거절한 채 버스 터미널에서 에어컨 2등 버스를 황가에게 경험시켜 주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에어컨 2등 버스는 일반버스보다 한 등급 위로, 고장이 극히 적고 길 한 가운데서 연료가 떨어져 세워야 하는 일반버스처럼 차가 퍼지거나 뒤에서 밀어야 할 일이 없어 보이는 고급 버스다. 여행사에서 예약하면 300밧에 카오산까지 갈 수 있음에도, 380여밧을 주고 게다가 방콕의 남부 터미널에서 시내 버스를 타야 카오산에 도착하는 귀찮은 코스를 선택한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 그리고 남는 시간 동안 별로 관광지스럽지 않은 순박함이 아직은 조금쯤 남아있는 크라비를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내 뜻과는 상관없이 타운의 어떤 인터넷 까페에서 주인장에게 마우스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컴퓨터를 손봐 주었다. 그래서 out of time. 썽태우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나서야 황가가 내일모레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말하자면 크라비에 오래전부터 하루쯤은 묵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푸켓이나 파타야와는 달리 이곳에는 그나마 순진한 사람들이 살았고 인사라도 할라치면 수줍어서 어쩔 줄 모르는 여자애들도 있었다. 그 재미에 여행하는데 말이다.

섬에 있는 동안 섬 개미들이 내 몸을 물어뜯어 알러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미산이 침투해 부풀어 오른 조그만 몽우리가 서서히 몸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다. 개미에게 물리면 항상 일어나는 현상이다. 옛날에 섬에 있을때 같은 숙소에 묵고 있던 녀석이 말하길, 가끔 sweet body가 있는데 개미들이 그런 사람들에게 꼬인다는... 달콤해? 약을 사먹어야 겠는데, 크라비 타운에서 이러저런 이유로 시간을 지체하다보니 약국 찾아갈 시간이 없다. 어쨌건 가지고 있던 약을 몇 알 삼켰고 그래서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크라비 타운에서 방콕으로. 열두시간 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도착, 30번 버스를 타고 카오산에 도착. '정글뉴스'를 찾아 파아팃 거리 건너편으로... 새벽의 카오산은 굴러 다니는 송장도 안 보이고 의외로 얌전했다. 죽집이 사라져서 기분이 비참했다. 서양인 둘이 밤새 술을 쳐먹고 비틀거리다가 건널목에서 말을 걸어온다. 한국의 붐붐걸들은 리얼리 썩스라고 말한다. 동감이라 고개를 끄떡이다. 한국의 여자들이 외국인들에게 따먹히든 말든 어린 시절에 느끼던 분노와 증오심은 사라졌다.

정글 뉴스 게스트하우스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키가 바깥에 있으니 문을 열고 들어와 쉬고 있으란다. 주변은 주택가로 조용하다. 여덟시 조금 넘어 체크인.

짐을 내려놓고 카오산으로. 해가 떠오르면서 갓 생긴 시장통이 활기를 더해간다. 하지만 옷 가게들은 아직 문을 덜 열어 바지를 살 수 없다. 빠통 해변의 토니 리조트에 혁대를 두고 왔다. 반바지는 혁대가 없으면 지퍼가 자꾸 열리고 그렇잖아도 다 낡아 더 입고 다닐 수 없어 버렸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작은 바지 빼고는 입을 옷이 없어 그후 하루종일 시내에서 수영복을 입고 돌아다녔다. 수영복 만이 내가 가진 유일하게 제대로 된 옷인 셈.

약국에서 zirtec을 사고 인터넷을 한 시간쯤 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황가의 피부에서 발진이 생겨 지르텍을 먹였다. 샤워하고 '다빈치 코드'를 마저 읽었다. so what? 소설에 묻고 싶은 질문이다. 왠 얼간이가 이것저것 억지로 짜맞춰 써놓은 시시껄렁한 소설 같아 뵌다. 퍼즐 대부분이 따분하기 그지 없는 것들. so what? 베르베르의 '뇌'에게도 묻고 싶은 질문이다. 잘 쓰지도 못하고, 재미 없는 소설인데 베르베르가 썼기 때문에 잘 팔리는 것일까?

한두 시간 쯤 자고 일어나 15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갔다. 가는 길에 길이 막혀 버스에서 내렸다. 마침 내린 곳이 Jim Tomson's house 앞이었다. 내린 김에 들렀다. 짐 톰슨은 실크 수입상인데 어느날 행방불명되었다. 미수금을 갚지 않으려고 토낀 것은 아닐까 싶다. 그에 관한 몇가지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별 관심없다.

아내에게 주려고 코끼리 그림이 있는 480밧 짜리 연분홍색 실크 스카프를 샀다. 썩 괜찮은 제품들이 눈에 띄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정작 관광해야 할 톰슨의 집은 입장료가 100밧 씩이나 해서 들어가지 않았다.

피피에서 제비집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황가가 제비집과 샥스핀을 먹고 싶단다. 별 맛이 없음을 미리 경고했다. 걸어서 학생들이 우글거리는 싸얌까지 갔다. 싸얌의 한 중국식 레스토랑(scala restaurant)에서 무려 800밧이나 하는 샥스핀과 500밧에 종지 하나 달랑 나오는 제비집을 시켜 먹었다. 맛있냐고 물으니 맛있단다. 내가 먹어본 샥스핀 중 지느러미의 양이 가장 많았다. 게살과 계란, 녹말가루로 적당히 얼버무려 양을 늘려놓지도 않았다. 제비집은 그저 그랬다. 제비집이 쥐꼬리 만큼 밖에 없다. 후루룩 쩝쩝 먹어치우고 한끼 식사로 1300밧이라는 거금을 카드로 긁었다. 그다지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먹을 일도 없을 것이다.

황가가 말했다. 다음 식당은 어디에요? 그래 오늘, 내일은 맛따라 길따라 하기로 했다. 뿌 팟뽕 까리(fried crab with curry)를 먹여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롬까지 슬슬 걸어갔다. 뿌 팟뽕 까리를 방콕에서 가장 맛있게 한다는 somboon seafood는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밖에 영업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한 시간 동안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노점상에서 만들어준 10밧 짜리 차갑고 맛있는 레모네이드를 마셨다. 솜씨가 예술이다.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빵 속에 넣어 팔고 있다. 고소한 바베큐 냄새가 거리에 진동했다. 그런것들을 먹고 싶지만 뿌 팟뽕 가리를 먹기 위해 한 시간을 넘게 걸어왔으니, 참자. 최고급 식당 중 하나인 부사라쿰이 근처에 있다. 그곳에 수영복 입고 입장이 가능할지 늘 궁금했다.

실롬까지 가는 길에 소니 간판이 보여 무작정 들어가 메모리를 포맷해 달라고 부탁했다. 클리에에서 정상적으로 인식한다. 기쁘다. 거리에서 이것저것 사 먹었다. 거리음식이 레스토랑에서 비싼 돈 주고 먹는 음식들보다 항상 맛있었다.

오후 4시를 3분 남겨놓고 솜분식당에 들어갔다. 뿌 팟뽕 까리 두 접시와 작은 밥, 그리고 맥주를 시켜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게를 즐겼다. 이런 저런 기회 때문에 먹어봤지만 이렇게 살이 토실한 게는 처음 봤다. 커리가 너무 진해 게 맛을 압도하지도 않았고 양념과 잘 어울렸다. 생각해보니 상하이 게 요리 스타일이다. 기름이 워낙 많아 끝맛은 약간 느끼한 편. 황가가 말하길, 여자들이 좋아하겠다고. 너가 여자 마음을 알아? 라고 쏘아 붙였다. 절대 모를껄 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난 알지 라고 생각했다.

15번 버스를 타고 카오산 로드까지 가는데 1시간 20분이 걸렸다. 태국이 경제난으로 위기에 처한 후 서민들이 신분과시용으로 구매했던 자가용을 다 팔아버려 교통체증이 완화되었다던데, 경제 사정이 나아져서 이 사람들이 다시 신분 과시에 열을 올리는 것일까?

숙소로 돌아와 한국인 여행객들과 얘기를 하며 꼬치에 맥주를 마셨다. 69년생 아저씨는 날더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리는 타잎인 듯 하여 생섬(럼주)를 권하지 않았다고 미안해했다. 그가 제대로 본 것이다. 사람보다는 생섬에 관심이 더 많았다.

게스트하우스 복도에서 연주씨가 남긴 메시지를 보았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열두 시가 조금 넘어 잠들었다.

7/6


아침에 에어컨 룸으로 방을 옮겼다. 황가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자기와 여행 다닐 때는 죽어라고 팬룸만 가더니 중얼중얼... 내 방은 2층 W2, 보라색 침대시트, 큼지막한 창틀, 베란다, 시원한 에어컨이 특히 마음에 든다. 겁먹은 고양이가 베란다의 귀퉁이에서 얼굴만 살며시 내민 채 쳐다보고 있었다. 푸른 눈.

511번 에어컨 버스를 타고 수쿰윗으로 향했다. 날도 더운데 움직이는 일이 귀찮다. 방콕병 증세가 나타난 것 같다.

수쿰윗 쏘이 23을 주욱 올라가면 유명한 베트남 식당인 Le Dalat이 나온다. 그 맞은 편이 Baan Kanita, 2001년, 2003년 태국 요리 부문 베스트로 선정된 식당. 길 하나 건너 쏘이 24에는 명성이 하늘을 찌를 것 같긴 하지만 쥐꼬리만한 음식이 나오는 레몬 그라스가 있다. 레몬 그라스를 가느니 골목 귀퉁이의 꼬치집에서 꼬치를 200개 사 먹고 만다. 세트 메뉴 가격은 2년전 그대로 380밧이었다. 맥주 한 병에 잘 먹고 배를 채웠다. 보기 드문 종류의 소박하지만 기품있고 은근한 맛, 그래서 다시 찾은 곳이지만 태국 음식하면 이 집 음식이 떠올랐다.

TAT 부스에 대고 영어를 정말 유창하게 늘어놓는 아가씨에게 이 근처(쏘이 23)에서 가장 좋은(best) 타이 마사지 가게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니 타임 스퀘어 지하를 가르쳐 준다. 타임 스퀘어 지하에 있는 맛사지 가게의 이름은 'best thai massage'였다. -_-;

황가가 오일 맛사지를 받는 동안 나는 이층의 한국인 사장님이 만든듯한 인터넷 까페에 앉아 이렇게 로그를 작성중. 이제 나가자. 나가서 바지를 사자. 수영복을 입고 며칠째 벌건 대낮의 시내를 활보했다. 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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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한 시에 잤다가, 새벽에 잠깐 깨어 여명이 끼어든 새벽을 관람했다. 전깃불 덕택에 원시적인 새벽은 기대할 수 없었다. 아침에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얼굴만 문대고 어리벙벙한 상태로 숙소에서 일하는 친구를 따라 450밧 짜리 스노클링 투어를 신청했다. 항구 앞에서 사람들이 모이자 커다란 녹색 배를 타고 피피 레를 향해 배가 나아갔다. 피피 돈과 피피 레 사이에서 강한 해류가 흘렀다. 조류라고 해야할지 해류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배가 치솟다가 가라앉길 반복했다. 왼쪽으로 기울었다가 오른쪽으로 기울기도 했다. 앞으로 고꾸라졌다가 고물이 치켜 올라가기도 했다. 상석에 앉아 있었던 관계로 거진 바이킹 놀이기구에 가까왔다.

사진기나 현금은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 장비를 챙겨 입수. 이번 스노클링은 '빵'과 함께 했다. 빵을 부숴서 뿌리니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 들었다. 어, 정말 재미있다. 빵을 자꾸만 뿌려 내 주변은 온통 물고기떼로 가득 찼다. 봉투 안에서 빵을 떼어 내려니 더 이상 빵이 없다. 대신 소세지가 잡혔다. 물고기들이 소세지를 좋아할까? 좋아한다. 훨씬 좋아했다. 백 빵 보다 소세지 하나가 더 낫다. 소세지를 흔들며 물고기를 희롱하면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소세지 하나로 한 30분을 잘 놀았다. 소세지가 1/3 토막 밖에 남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손 바닥으로 소세지를 잡고 살짝 손바닥을 펼쳐 물고기떼가 미친듯이 몰려들 때 재빨리 손가락을 오무려 소세지를 감췄다. 이거 정말 재미있다. 물고기는 지능이 낮은 탓인지 그렇게 놀려대는 데도 쉴 새 없이 몰려 들고 흩어졌다. 물고기떼는 마치 삐끼들처럼 행동했다.

스노클링 한 번, 밥을 먹고, 다시 두 번 더, 각각 한 시간씩 하니 기진맥진했다. 황가는 겁을 집어먹고 스노클링을 하다가 말았다. 입수하자 마자 10-20m 깊이여서 혈압이 솟구치고 팔다리가 뻣뻣해 진단다. 배 위에는 여러 국적의 여자들이 비슷한 이유로 우아하게 썬텐을 하고 있었다. 스노클링은 깡으로 하는 거야. 말했다. 내가 두번째 스노클링을 할 때는 함께하는 여행자가 없었다. 롱 테일 보트에서 뱃사공과 함께 바다에 나가 그냥 막무가내로 떨구고 (살아서) 헤엄쳐 돌아오는 것이었다. 수영은 전혀 할 줄 몰랐고 라이프 자켓이라고 준 것은 어설픈 스티로폼이었다. 어쨌거나 살기 위해 버둥거렸다. 그 다음부터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캐러비언 씨에서의 스노클링은 개중 가장 멋졌고 가장 무서웠다. 1-2미터씩 오르락 내리락 하는 파도의 골과 용마루 사이를 왕복하면서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내팽개쳐지고 수도 없이 튜브로 물이 들어왔고, 목구멍으로 쓰디쓴 바닷물을 넘겼다. 라이프 자켓을 벗으면 무서워서 못할 것이다. 그 이후로 절대로 라이프 자켓을 벗지 않았을 뿐더러 핀을 벗어 던지는 등의 만용도 부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자신의 한계를 안다.

배 갑판에 누워 살이 타들고 가고 있을 때 황가에게 도가 사람들이 단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관해 얘기해줬다. 어제는 부처 얘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태국이나 필리핀의 무인도로 가는 왕복 배편을 만들고 현지 여자들을 몇명 사들여 섬에다 풀어놓은 다음 사냥해서 잡아 먹는 계모임에 관한 얘기도 했다.

네번째 스노클링은 하지 않았다. 조류가 거세 사람들이 이리저리 떠내려갔다. 그렇잖아도 지쳤는데 그 조류에서 버틸 재간은 없었다. 스노클링 투어는 오전 열 시에 시작해서 오후 네 시에 끝났다. 세 시간쯤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여섯 시간이나 했고, 밥도 주고 물은 무제한 공짜였고, 과일 쪼가리도 몇 개 준다. fin을 빌리려면 별도로 50밧을 내야 할 꺼라고 생각했는데 그 비용도 투어 비용에 포함되어 있었다. 450밧에 여섯 시간을 잘 놀았으면 괜찮은 투어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선실로 몰아놓고 우리가 투어를 할 동안 비디오를 찍던 친구가 찍었던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DV로 찍은 것으로 화질이 생생하고 스노클링 하면서도 미처 보지도 못했던 것들을 보여준다. 말미잘, 산호 사이를 오가는 물고기들, 바닷속에서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여러 생물체들이 그야말로 총천연색으로 하늘거리는 멋진 비디오였다. 500밧에 cd로 떠 준단다. 필요없다. 내가 나오는 장면은 고작 두 컷 뿐이었고 소세지를 든 채 대마왕처럼 물고기떼를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기가 막히게 멋진 모습은 누락되었다.


물 빠진 해변

시장통에서 40밧 짜리 쇠고기 국수를 먹고 숙소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입구에서 어제 방을 안내해준 직원이 불러 세웠다. 오늘 방값을 지불하란다. 어제 이틀치 600밧 다 줬잖아? 아니란다. 600밧은 하루치 방값이란다. 무슨 소리냐, 너가 어제 방 하나에 300밧이라서 여기 온 거잖아. 코 피피에서 방 안에 냉장고, 온수를 제공하고, 해변에서 이렇게 가까운 숙소가 300밧 짜리는 없고, 두당 300밧이란다. 어제 분명히 너가 그렇게 말해서 따라온 거지 안 그랬으면 내가 미쳤다고 따라오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영수증을 보여줬다. 영수증에는 어제 하루치 방값 600밧을 지불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황가 얼굴을 쳐다 봤다. 황가는 숙소를 잡아본 적이 없다. 지불할 때 확인을 안 한 것이다. 직원의 말이 괘씸해서 더 따져볼까 하다가 600밧 더 주고 그냥 숙소로 걸어갔다.

여행사에 들러 200밧 짜리 크라비행 배편을 예약했다. 해변을 가로질러 뷰 포인트로 올라갔다. 해가 지는 모습이나 구경하자 싶어서 였다. 다들 올라가는 계단으로 안 가고 반대쪽 로달람 비치 쪽으로 난 비스듬한 산등성이를 기어 올라갔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해가 지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해가 지기도 전에 사진을 다 찍은 태국인들이 먼저 내려가고, 그 다음으로 사진을 다 찍고 볼일을 마친 일본인들이 내려갔다. 지평선에 떠 있는 구름의 형태로 보건대 오늘 '끝내주는' 석양을 구경하기는 다 글렀다고 생각한 우리도 해가 지기 5분 전에 내려왔다. '로맨틱' 운운하며 끝내 남아 있는 떨거지들도 있었다. 석양은 필리핀의 보라카이가 드라마틱하고 멋졌다. 아무래도 보라카이가 석양 만큼은 최고같다.



내려오는 길에 '활달하게' 뛰어가는 무슬림 아가씨가 있었다. 어쩌다가 말을 해 보니 난생 처음 보는 '타이 무슬림'이었다. 타이 무슬림 여자는 남자와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나 보다, 무척 신기했다.

다시 시장통에 들렀다. 황가에게 해변의 해산물 요리를 사주기는 커녕 시장통에서 밥 사다가 숙소에서 먹는 궁상을 차마 더 하기에는 미안한 나머지 혹시나 해서 수년 전 추억의 맛집에 들렀다. 음식은 여전히 맛있다. 주인은 여전히 친절했고 그 친절한 주인은 여전히 날 보고 '곤니찌와'라고 말했다. 바나나 쉐이크 25밧 짜리 2개, 코코넛 밀크로 만든 커리 50밧, 플레인 라이스 10밧, 카오 팟 까이 40밧 이렇게 해서 135밧을 지불했다. 주인은 15밧을 덜 계산했다. 오래오래 추억의 맛집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니 8시 30분. 냉장고에는 물병만 다섯개가 있었다. 샤워하고 맥주 한 잔 하면서 쉬었다. 살은 끔찍하게도 많이 탔다. 더 뭔가를 하기에는 지친 하루다.

'다빈치 코드'를 읽기 시작. 나는 책 한 권 들고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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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피에서

여행기/Thailand 2004. 7. 1. 18:43
7/2

선라이즈 게스트하우스의 젊은 아저씨 말을 믿어 무궁한 옵션을 스스로 제약한 것은 전적으로 내 탓이다. 토니 리조트 맞은편에는 아침 포함 400밧 짜리 숙소가 있었다. 선라이즈 직원이 말한, 싸다는 해산물 가게에서 오징어 두 마리, 새우 네 마리, 생선 한 마리, 카우 팟 둘, 맥주 한 병을 먹고 무려 900밧을 냈다. 사실 직원이 말 못한 사실도 더 있었는데 푸켓에 가면 먹을만한 음식이 솜찟 국수라는 것. 그가 일러준 무에 타이 경기장은 옛날에 사라졌고 한국 식당 주인에게 물어서 찾아간 무에타이 경기장도 역시 사라진 상태였다. 타이거 바에서 한 숨 돌릴 때까지 주 도로를 두 번 왕복했는데, 약 한 시간 반 동안 거리를 헤멘 셈이고 그 동안 쏟아지는 비를 피해 이리 쫓기고 저리 쫓겨 다녔다. 아무튼 그 '잘난' 배낭여행자 주제에 그저 좀 귀찮다는 이유로 '관광사 직원' 말을 듣고 있었으니 잘될 일이 없었다.

토니 리조트에 바우처를 주고 방을 잡을 때 아침 식사 티켓을 주지 않아, 왠지 이상해서 방으로 돌아갈 때 프론트에 아침을 언제 먹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제서야 티켓을 슬며시 준다. 피곤에 지쳐 숙소로 돌아와 맥주 한 잔 하고 곧바로 골아 떨어졌다. 밤 열시쯤, 빠통 비치의 끝내주는 나이트라이프는 완전 무시한 채 잠이 든 것이다. 황가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 보였고 사실 별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봉쑈, 게이바, 사이몬 쑈, 이런 것들은 이제 졸업한 것이다. 선라이즈 직원 말에 따르면(그는 누가 들을까봐 목소리를 낮췄다) 아가씨는 1500밧이란다. 어? 방콕은 2000밧인데? 글쎄다. 예전에 왔을 때도 빠통 비치에 괜찮은 계집은 통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방콕의 나나 플라자가 나은 것 같다. 콧구멍이 돼지처럼 벌렁 제껴지고 바싹 마르고 새까맣고 조그만 남부 아가씨들보다는 방콕 북부를 비롯한 태국 전역에서 제발로 온 예쁜 아가씨들이 많으니까. 북부 유럽 놈들은 바통의 그런 아가씨들에 환장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네들의 미적 기준은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저렇게 못생긴 여자를 옆에 끼고 가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

방안의 알람 시계는 고장난 상태였고 두 번이나 부탁했던 모닝콜은 울리지 않았다. 픽업 봉고가 온다는 바로 그 시각이라 허겁지겁 짐을 꾸렸다. 기껏 얻어온 티켓으로 아침을 챙겨먹기는 커녕, 세수도 하지 못하고 봉고에 올랐으니 그 시각이 7시 30분. 봉고는 5분 동안 지체했다. 그 와중에도 리조트 직원들은 방 키를 들고 냉장고에서 뭐 먹고 계산을 덜 한 것이 있나 뒤지러 방으로 올라갔다. 바쁘다 바뻐.

봉고 안에는 한국인 부부 둘과 중국인 부부가 타고 있었다. 한 팀은 푸켓에 온 적이 있거나 어디서 얻은 정보(선라이즈 게스트하우스가 아닐까?)를 다른 부부에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스노클링 투어 하면 '정가'가 600밧이니까 알아서 잘 깎아보라고 정성어린 충고를 해 준다. 나도 한 마디 할까 하다가 괜히 친한 척 할까봐, 잘 알지도 못하는 피피섬에 관해 이것 저것 물을까봐 관뒀다; 스노클링 투어는 정가가 450밧이고 점심, 물, 과일 포함이고, 큰 배로 가는 편이 작은 배로 가서 작열하는 햇살 아래 고생하는 것보다 낫다 라고.

파도가 거칠어서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내리기도 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배멀미로 고생하거나 토할 것만 같은 상황을 꾹 참고 버티고 있었다. 의외로 거친 파도다. 안내 방송이 나왔다. 파도가 높아 피피 레는 갈 수 없다고 한다. 거친 파도 위에 먹구름이 삽시간에 드리우고 폭우가 쏟아졌다.

돌아가는 길의 파도는 조류를 거슬러 가기 때문에 더 거칠텐데 사람들이 견딜 수 있을까? 황가에게 크라비로 가자고 말했지만 그도 배멀미 탓에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지 나중에... 라고 말한다.


피피 섬의 톤사이 만에 이르자 파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졌다.


이 고깃배들이 왜 여기있나 싶어 의아했다. 나중에야 이유를 알았다.

피피섬에 다다르자 마자 황가를 scv처럼 섬 이곳저곳으로 보내 숙소값을 알아보라고 하고 나는 세븐 일레븐 옆에 앉아 삐끼들과 노가리를 깠다. 황가가 가이드북에서 찝은 숙소는 짚시2 게스트 하우스였다. 싸긴 싼데 벌레가 우글거릴 것 같고 내부가 어두울 것만 같다. 손톱깍기를 꺼내 발톱을 깎으면서 숙소 가격을 흥정했다. 어찌된 일인지 황가는 한 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적어도 숙소 열곳은 둘러 보라고 했더니 정말 그러나 보다. 한가하게 앉아 있다가 온수가 나오고 냉장고가 있는 안다만 리조트를 300에 합의했고 그 정도면 적당하다 싶었는데 황가는 여전히 안 왔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돌아온 SCV는 섬을 한 바퀴 돌다가 길을 잃고 헤멨단다. 어쨌거나 짐을 픽업해서 핫 야오의 숙소로 향했다. 숙소가 그럴듯 했다. 아니 이런 숙소를 300밧에 얻어 내심 뛸듯이 기뻤다. 황가를 괜히 고생시키지 말고 그냥 앉아 있다가 가격을 물어보고 올껄 그랬구나 싶다. 난 정말 나쁜 놈인 것 같다.


창문에 방충망이 없다. 모기가 없다는 증거일까?


숙소에서 해변까지 걸어서 15초 가량 걸렸다. 경험한 가장 해변이 가까웠던 숙소는 97년 꼬 따오에서 잡았던 이름모를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바로 앞이 바다였다. 그후 그런 숙소는 다시 보지 못했다.

식당을 찾아 다녔다. 내 기억에 피피호텔 뒷편에 로칼리 식당이 있다. 찾다 지칠 무렵 나타났다. 어제 900밧 씩이나 주고도 한심한 식사를 한 탓에 다운시프트 웰빙 트래블 한답시고 스마트 애스인 척 하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120밧에 카우 팟 꿈, 카우 팟 까이 각각 한 접시, 팟씨우 한 접시를 먹었다. 새우가 매우 싱싱했다. 섬이라 물가가 비싸다는 것을 고려하면 한 끼 40밧 짜리 식사는 어쩔 수 없는 가격이다. 물론 남 깽 쁠라우(얼음물)는 공짜였다. 푸켓 사람들이 돈에 미쳐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뭍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싼 과일을 좀 샀다. 황가는 어제 람부탄과 망고, 그리고 뭔가 열대과일을 먹었다. 오늘은 어제 빠통 해변에서 태운 피부가 땡긴다고 해서 엄청나게 비싼 애프터 선 로션과 선 블럭 크림을 샀다.

할 일이 없어 해변에 누워 있다가 비를 맞거나 고양이와 놀다가 비를 맞거나 숙소 의자에 앉아 오는 비를 쳐다 보았다. 황가는 책을 읽다가 자거나 멍하니 앉아 있다가 자빠져 잤다.


지나가던 고양이를 불러 놀았다. '야옹'이라고 말하면 '야옹'이라고 대꾸했다. 애꾸 고양이도 있었는데 그 놈은 눈을 잃은 후 정신 상태가 이상해진 탓인지 '야옹'이라고 말하면 묵묵무답이다.


숙소에 고양이들을 재웠다. 검은 놈은 나이가 어려 어리석다.


해변에 룽기를 깔고 누워 '칼의 노래'를 읽었다.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진 해변에 먹구름이 밀려 왔다. 곧 광기어린 비가 쏟아져 내렸다.

오후 3시가 지나자 썰물 때문에 톤사이 만의 물이 만 바깥쪽 저 멀리로 밀려갔다. 그제서야 해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고깃배들이 왜 그곳에 정박해 있나, 이유를 알았다. 발목까지 찰랑거리는 바닷물을 따라 만 입구까지 걸었다. 해변의 모래가 찰져 발바닥에 달라붙는다. 한 시간쯤 걷다가 조개를 잡는 아가씨들과 노닥거렸다. 옷이 바닷물에 흠뻑 젖었다.

오후 6시까지 책을 마저 다 읽고 저녁 꺼리를 준비하려고 해변에서 일어섰다. 시장통에서 10밧 짜리 밥을 둘 사고 10밧 짜리 반찬을 둘 사고 Took BBQ에서 새우 꼬치와 닭똥집 튀김을 각각 2개씩 90밧에, 내일 스노클링할 때 쓸 10밧 짜리 고기 먹이(빵 찌꺼기)를 제과점에서 사고 세븐 일레븐에서 50밧 짜리 창 맥주와 85밧 짜리 메콩 위스키를 샀다. 뭘 사건 비싸다는 느낌이다. 심지어 냉장고에 넣어둔 코코넛을 20밧에 팔았다. 섬 여기 저기 그저 매달린 채 할 일 없이 익어가는 그것들이 이제는 돈을 받고 판매되는 상품이 된 것이다. 워낙 자연적인 수순인지라 안타깝지 않았다. '칼의 노래'를 빌어서 표현하면, (나는 자본주의의) 그 공허함을 견딜 수 없다.

프론트에 부탁해서 숟가락을 얻었다. 왠지 장기여행자스러운 이런 궁상이 황가에게 미안스러웠다. 하지만 어제 식으로 돈을 펑펑 쓰게 되면 일주일에 이삼십만원은 우습게 깨질 것이다. 웰빙 여행의 공허함을 견딜 수 없다.

밥은 몹시 맛있었다. 비단 20밧에 한끼를 해결했다는 담백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원한 코코넛 수액을 반쯤 먹어 없애고 그 자리에 메콩을 반쯤 부었다. 옛날에 고씨가 그렇게 만들어서 참 희안한 칵테일이다 싶었는데, 정말 그렇게 마시는 놈들이 있었다. 해적들은 럼을 코코넛과 섞어 마셨다. 수상쩍은 맛 때문에 다 비우지는 못했다. 그래도 알딸딸했다. 해변에 누워 있다보니 밀물이 밀려와 발가락을 간지럽혔다.


고양이들이 식사를 함께 했다. 메콩 코코넛 칵테일을 빨대로 빨아 먹었더니 몹시 알딸딸했다.

이 소상한 일지는 이순신이 난중일지를 적던 그 시절의 정밀함에 필적했다. 그러나 내가 적는 이 한푼 어치도 안 되는 보잘것 없는 사실들의 기록은, 베어버릴 적도, 수사의 공허함도, 죽음을 향해 진군하는 삶의 덤덤한 묘사하고도 하등 관계되지 않았다. 김훈의 '칼의 노래', 그의 문장 스타일을 하나하나씩 깨우쳐 갈수록, 그의 글에서 푹력에 버금가는 상상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도 함께 깨우쳐 갔다. 그의 글에 상을 준 심사위원들은 그의 글을 젊다고 표현했다. 그렇게나 잘 만든 음식에서 나는 지랄스러운 청춘을 느끼지 못했다.

밥 먹고 해변에서 밀물이 발바닥을 희롱할 때까지 누워 궁상을 떨었다. 시간의 느림, 정지를 가끔씩 체험했는데 이번에도 그것이 보였다. 신체와 마음의 시간이 느려지면 사물의 상대적인 속도가 빨라지는데, 그럴 때면 달의 움직임이 보였다. 달이 움직인다. 지금쯤 꼬 팡안에서는 LSD를 빨면서 미쳐 돌아가지 않을까? 지금쯤 치앙마이 트래킹의 한 지점에 머문 여행자들을 아편으로 꼬드기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달이 달 같지 않고 바다가 바다같지 않고 해변이 해변같지 않은 무의미한 사진.

섬을 한 바퀴 돌았다. 돌아오니 열시가 넘었다. 열시 반부터 불쑈를 숙소 바로 앞의 히피 바에서 한다던데 별로 구경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봉 양쪽에 불을 붙이고 빙글빙글 돌리는 묘기인데 그런 걸 봐서 뭘 하나, 지겹기만 하지. 바에 들러 술을 마시려다가 황가를 내버려두고 가는 것도 왠지 꺼림직스러워 관뒀다. 바와 몇몇 가게를 제외하고 섬의 대부분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참, 평화로운 하루였다. 이 맛에 섬에 들어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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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비닐 봉투에 담은 쥬스를 들고 입가에 Krong Tip을 물고 카오산 거리를 돌아다니던 것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다른 많은 것들은 바뀌었다.

황가는 어디로 가야할 지 갈팡질팡 했다. 처음에는 라오스 일주를 계획했으나 시간이 없어 포기, 그 다음에는 북부 트레킹과 남부 섬 일정을 계획했지만 편히 쉴 곳을 간절히 원하는 직장인에게는 맞지 않는 듯 했다. 그래서 푸켓을 거쳐 꼬 피피에 들러 며칠 푸욱 쉬다 오는 일정으로 다시 잡았다. 나야 뭐 아무데나 가도 상관없다. 여기가 거기같고 저기가 여기 같았다. 아무데나 가서 아무렇게나 돈을 쓰다 보면 날짜란 흘러가게 마련 아니었던가.

비행기를 탈 때 짐 무게를 달아보니 5kg이 나왔다. 배낭 무게만 해도 1-2kg은 나갈텐데,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싶었다. 티켓은 타이항공 것이지만 아시아나 부스 옆에서 출입국 신고서를 레이저 프린터로 깔끔하게 출력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식으로 태국음식이 나왔고 간만에 먹은 탓인지 먹자 마자 곧바로 화장실로 갔다. 태국의 첫 맛은 늘 설사였다. 태국 음식에 사용되는 향신료 때문이 아닐까 싶다.

28만원짜리 항공권은 97년도에나 나올법한 가격인데다 방학이 겹쳐 기내에는 외국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입국서류는 말 그대로 20초도 안되 다 채워 넣었다. 지루한 비행 후 돈 무앙 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 서둘러 입국 수속을 마쳤다. 이력이 생긴 탓인지 저절로, 퍼스트클래스보다 늦게 나오고도 퍼스트 클래스 보다 일찍 나왔다. ATM에서 카드로 3000밧을 찾았다. 이번 여행에는 현금(달라)를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다.

공항 오른쪽으로 주욱 가서 5밧 짜리 59번 버스를 탔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엄청나게 많은 한국인들 중 59번 버스를 타고 카오산으로 가는 작자들은 나와 황가, 이름모를 한국인 한 명 뿐이었다. 혹시 그들은 그 버스가 24시간 운행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나저나 그들이 한결같이 들고 다니는 '헬로 태국' 분홍색 책은 2년 전의 것이고 정보 대부분이 out of date된 것들이다. 인세 문제로 저자가 더 이상 책을 업데이트 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이라면 한국 출판사는 변함없이 한심해 보였다.

버스는 후덥지근한 공기를 가르며 광포하게 한 시간을 달려 민주 기념탑, 복권청 맞은편에서 내렸다. 카오산으로 걸어갔다. 카오산 거리는 2년 새에 많이 바뀌었다. 마치... 바뀐 인사동 같았다.

숙소 찾기를 황가에게 맡겼다. 홍익여행사는 자리를 옮겼고 만남의 광장도 자리를 옮겼다. 사원 뒤로 돌아 홍익인간 골목으로 들어가 peachy guest house에서 직원을 깨워 160밧 짜리 팬 더블룸을 잡으니 새벽 2시 10분. 그나마 그 동네에서 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땅히 술 한 잔 할 곳이 없어 닭꼬치 셋과 맥주 두 병을 사들고 숙소로 다시 돌아와 샤워하고 마셨다. 눈을 붙일 때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30분이다.


Peachy Guesthouse. 팬이 잘 안돌았지만 자는 중에는 그리 덥지 않았다.


6/30

몇 시간 자지도 못한 채 뒤척이다가, 아침에 일어나 항공기 날짜를 바꾸러 홍익 여행사에 들렀다. 홍익여행사에는 한국인들이 바글거렸다. 저 줄을 기다리려니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내가 직접 타이항공에 전화를 걸어 항공권 일자를 바꾸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타이항공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TAT에 들러 지도를 얻고 타이항공까지 걸어갔다.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홍익여행사에서 이전에 이집트 다합에서 만난 적이 있는 한국인 아가씨를 만났다. 그녀는 최근에 버스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고 경찰서에서 몇 시간을 보냈으며 태국 방송에도 나왔다고 한다. 여전히 사건사고를 몰고 다녔다. 만나고 다시 만나고 또 만나고 카오산 같은 곳에서 인사를 하게 되는 것이 여행자들의 운명 같은 것일까? 아무래도 비슷한 고생을 한 동병상련의 감정 탓일께다. 다른 한국인들과는 사실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나 욕을 먹던 만남의 광장이 없어진 탓에 사람 만나기는 더더욱 힘들어졌다. 식당을 하고 있는 홍익인간에 앉아 만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물어보며 죽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영업방해다. 그래서 그곳에는 가고 싶지 않다. 홍익인간 역시 한국인이 적었을 당시에는 재밌는 곳이었을 것이다. 만남의 광장 사장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나 들어와 다다미방에 누워 만화책을 읽고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던 것을 참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기 뛰는 여행자들이 잘난척하며 영웅담? 고생담?을 늘어놓으며 여자애들에게 껄떡대는 모습이나 노련한 경험?으로 그들에게 약간의 은혜를 베풀고 날로 먹으려는 수작질을 보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닐진대, 만남의 광장 사장만이 유달리 자기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예쁜 아가씨들에게 껄떡댄다고 볼 수도 없었고 여행 나와 제대로 마음 단속 하지 못하는 여자애들에게 똑같은 책임전가를 한다는 것을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것 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쨌던 구설수는 참 무서운 것이다. 수년 전 악당처럼 생긴 만남의 광장 사장이 참담한 표정으로 내게 묻던 일이 생각났다. 여기 있는 컴퓨터 전부가 바이러스 먹어서 인터넷은 못해. 누가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30번 버스를 타고 콘송 사이따이(남부터미널; 이름을 잊은 줄 알았는데 용케 기억하고 있었다)에 들러 푸켓행 VIP 24석 버스를 755밧 주고 예약했다. 이렇게 비싼 버스는 처음 타 본다. 예전에 푸켓에 갈 때는, 아니 태국의 어디를 가던 창문을 열고 다니며 온갖 지점에서 서는 일반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래서 세수를 하면서 코를 풀면 콧구멍에서 검정색 땟국물이 나왔다. 일반 버스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타는 버스라서 여행자들이 잘 타지 않았는데 뒷자석에 대자로 누워 잠자기 좋았다. 가끔은 탑승한 현지인들이 위스키를 권해 주기도 했고 야심한 밤에 기어 올라와 흔들어 깨우는 잡상인들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나이가 드니 그런 짓은 다시 못 하겠다.

다시 511번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가로 이동. 수쿰윗의 반 카니타에 가서 태국 궁중식을 먹어보려 했지만 오후 두 시가 넘어 포기했다. 가게 문을 닫았을 것이다. 대신 월텟의 MK restaurant에서 오랫만에 수끼를 먹었다.


World Trade Center는 World Plaza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 맞은편에 Gaysorn 백화점이 공사를 마치고 새로 개장했다. 센과 이세탄 백화점 앞에는 밤이면 밴드 연주를 하며 맥주와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노천식당이 생겼다. 지나가는 태국인 중 아무도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고 그들은 2년 전에 볼 때보다 얼굴 표정이 굳어 있었다. 급속한 문명화의 부작용일께다. :)

카오산으로 돌아와 tanning oil과 mosquito repelant를 구입하고 한 시간쯤 인터넷을 했다. 홍익 여행사에 맡긴 짐을 찾아 남부 터미널에 가서 버스에 올랐다. 난생 처음으로 태국에서 VIP 버스를 타 본다. 상당히 넓은 좌석이고 항공기보다 편한 리클라이닝 시트다. 들어가자 마자 빵 세트와 우유, 물 따위를 나눠주었다.


남부터미널로 가는 도중 시내 버스 안에서. 왼쪽의 서 있는 작자는 차장. 버스에 차장과 운전수 체계로 운영하는 것이 운전수 혼자 돈 받고 운전도 하는 한국식 시스템보다 나아 보인다. 비록 비용은 더 들겠지만 운전수는 운전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새벽 한 시쯤 버스가 멎고 VIP 전용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했다. 감격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VIP 버스구나 싶었다. 버스에서는 비디오로 Torque를 틀어주었다. 뒤척이면서 자다가 깨보니 푸켓에 도착했다. 7:30pm 출발해서 6:30am 도착.

7/1

어젯밤 인터넷으로 뒤져 알아낸 선라이즈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황가는 까말라 비치에 가길 원했고 인터넷을 뒤졌지만 마땅한 정보가 없어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서 물어볼 생각이었다. 방은 3일치 예약이 꽉 찼다. 이것저것 물어보니 게스트하우스의 점원으로 보이는 젊은이도 배낭여행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저렴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까말라 비치에 fantasea가 있다는 것 정도? 빠통 해변의 지도 위에 갈만한 곳을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그리고 푸켓에는 볼꺼리가 없어 비치에 숙소를 잡는 것이 좋다고 한다. 글쎄다. 볼 것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수년 전에 푸켓타운에 묵을 때는 150밧에 혼자서 샤워가 달린 더블룸을 잡았다. 아마 그때 숙소에서 베트남 상이용사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것 같다. 숙소를 푸켓타운에 잡아두면 그곳을 기지삼아 여기 저기 돌아다니기 좋다.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비치에서 아무리 싼 숙소라도 400-500밧 이상이 나온다. 그가 권해준 토니 리조트는 게스트하우스가 아니었고 무려 1100밧이나 했다. 황가의 의향을 물으니 서슴없이 그곳에 묵잔다. 직원이 바우쳐를 뽑아올 동안 이번에도 역시 관광이 되는구나 탄식했다. 푸켓타운에 볼꺼리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푸켓타운의 시장이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중국 화교 및 이슬람의 영향, 씨 짚시들, 거기에 포르투갈 양식의 건물 등등을 나름대로 흥미롭게 관찰할 수도 있을텐데... 싸게하려면 얼마든지 싸게 할 수도... 모르겠다.

선라이즈 사장님이 우리를 국수집 까지 태워 주셨다. 25밧 짜리 바미 남을 시켜 먹었다. 상당히 훌륭한 맛이다. 라농 거리에서 빠통 비치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옆에 앉아있던 할마시가 친절하게도 버스는 두당 15밧이라고 가르쳐준다. 썽태우는 20밧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시내에서 중국인들처럼 중국식 아침을 먹을 수도 있고 딤섬도 먹을 수 있다는 것, 시장통에서 밥과 반찬을 사먹던, 이런저런 기억들이 떠올랐다.

버스가 빠통 비치에 접근해 가는 동안 집채만한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오는 것을 보고 속으로 '좆됐다' 라고 중얼거렸다. 피부를 올리브 빛으로 태우려는 열망으로 이곳에 온 황가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숙소는 상당히 좋아보였다. 짐을 풀고 샤워하고 빨래를 하니 피곤이 몰려왔다.



간단히 짐을 챙겨 해변에 나갔다. 의자 하나 빌리는데 50밧, 태닝 오일을 몸에 바르고 누웠다. 하늘이 수시로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 가끔 비가 오기도 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피부를 태웠다. 갑자기 비가 와서 해변을 떠났다. 첫번째 ATM에서 돈을 뽑는데 실패, 그 옆의 것에서는 다행히 돈을 뽑을 수 있었다. 빗줄기가 굵어져 숙소로 황급히 대피했다. 비는 한 시간 내내 미친듯이 내리다가 말끔하게 개었다. 지구 온난화에 발맞춰 태국의 우기도 점점 지랄스러워 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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