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1.06.29 to infinity, and beyond 1
  2. 2011.01.24 mistletoe 2
  3. 2010.09.17 회색 고양이들의 시간
  4. 2010.01.11 2010
  5. 2009.10.05 detour 1

to infinity, and beyond

잡기 2011. 6. 29. 22:29
내 삶은 의지로 이루어져 있다. 의지는 글자로 이루어져 있고 글자는 시냅스의 접합 강도에 따라 형태와 의미가 변했다. 의지가 사라지면 삶도 사라진다.  주문이 떨어진 골렘처럼, 누더기를 기워붙인 사내처럼. 그래서 더럽게 기분이 나빴다.

Slutwalk -- 창녀처럼 입고 다니면 강간당할 수 있단다, 그래서 발끈한 여자들이 거리 행진을 시작. 

2011/5/30 구로. 가산디지탈단지역에서 내려 삼팔교자관을 찾아가는 길. 재개발 때문에 여기 모였던 조선족들이 뿔뿔이 흩어졌단다. 칭따오를 마시고 신림역 근처에서 양꼬치를 먹고 다시 맥주를 마셨다. 선배는 15년만 버티면 된단다. 성격이 워낙 좋은 사람이라, 굳이 존버정신으로 버틸 것 같지는 않았다. 즐기겠지.

2011/6/4 모처럼 산에 갔다. 상광교동 광교산 입구의 무허가 보리밥집들은 강제 철거될 운명. 북한산과 달리 상인들의 저항이 그리 거세 보이지 않는다.

2011/6/4 산에 올라가는 길에 애벌레를 보았다. 나비 애벌레 같은데? 꼬리에 긴 실을 매달고 등산로 복판에서 실낫같은 삶을 흔들흔들... 

맞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모처럼 방문한 안산습지공원 근처. 변함 없다. 저번에 저 맞은 편 공룡알 화석지에 갔다온 것이 생각났다. 기상청 자료를 뒤지다가 우연히 본 바람장미(windrose)에 따르면 예상대로(?) 수원엔 주로 서풍이 불었다. 

오이도 도착. 잠깐 들러 자전거에 기름칠을 하고 안산 시내로 향했다. 유명한 고향식당에서 쌀국수를 먹어 보려고... 베트남 청년이 주문을 받았다. 쌀국수에 고수를 안 가져다 준다. 달랄까 하다가 말았다. 매운 베트남 고추를 넣어 먹었다. 치킨스톡을 넣은 것 같은 닭육수.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펑크가 났다. 난감. 공단역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지만 문이 닫혀 펌프를 사용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역에서 펌프로 공기를 넣어 보니 타이어의 탄성이 유지되었다. 펑크가 아닌가? 타다 만 것이 억울해 좀 더 타 보니 타이어가 살금살금 주저 앉는다. 다시 바람을 넣고 집까지 간신히 타고 가서 펑크를 붙였다. 튜브에 전에 붙였던 패치가 보였다. 이것으로 두 번째다.

2011/6/12 몸이 근질거려서 다시 자전거를 탔다. 미사리 조정 경기장 근처에 있는, 작년에 갔던 초계국수집을 다시 방문했다. 전보다 닭 냄새가 덜 나고 덜 비리고 양이 어째 늘어난 것 같다. 닭고기 가슴살이 더 부드러웠으면 좋겠지만...

이로써 내 나름의 Noodle Triangle을 완성. 행주산성: 잔치국수(왕복 80km 가량), 미사리: 초계국수(왕복 100km 가량), 안산 중앙동: 베트남 쌀국수(왕복 70km 가량).

동네 수퍼에서 우연히 팔도에서 나온 부산밀면을 발견. 가끔 밀면이 생각나곤 했는데 잘 되었다. 먹어보니 그럴 듯 했다. 밀면 집이 수원에 하나, 안양에 하나 있었다. 수원에 있는 밀면집에서 밀면을 포장해 와 아내와 먹어봤는데, 아내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난 좋았다.

데리고 하도 여기저기 돌아다닌 탓인지 딸은 구내염에 걸려 일주일 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고생. 딸애는 아빠가 자기랑 집에서 놀아줬으면 한단다. 집에서 뭘 하지? 딸애는 실사 앵그리버드를 좋아한다; 이불을 방바닥에 깔아놓고 내가 배개로 몸을 가린 채 꿀꿀 거리고  있으면 팔짝 뛰어 부딪혀 아빠를 쓰러뜨리는 놀이다. 딸이라 힘이 없어 늘 감사했다.

서호천 생태계 복원을 위해 수 년간 애쓰던 사람들이 축제를 벌였다. 재미가 없지만 사람들은 꾸준히 자리를 지켰다. 광교산으로부터 서호에 이르기까지 변변한 토종 생물 하나 없지만 어쩌다 맑은 개천물을 한 번 보니 속이 시원해졌던 기억.

아이를 데리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본 시 낭송 축제. 민주당 출신의 수원 시장이 내 옆에서 비서관, 부인과 함께 막 자리를 뜨려고 하는 참이었다. 그쪽은 거들떠 보지 않았다. Happy 수원을, 뭔가 기억하기 힘든 이상한 구호로 바꿔놓은 거지 같은 센스 때문.




이제부터 나오는 사진들은 소위, 베란다 텃밭에서 자라는 식물을 여러 날짜에 걸쳐 찍은 것이다.

2011/6/4 나팔꽃, 봉선화, 분꽃. 딸애가 키우는 화분들. 햇볕이 부족해 웃자라는 듯. 아침이면 아이와 나는 화분에 물을 주고 작물을 돌보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2011/6/17. 봉선화가 꽃망울을 터뜨렸고 딸애는 환호작약.

2011/6/4 양은 냄비 바닥에 구멍을 뚫고 흙을 넣어 부추씨를 뿌렸다.  작아서 못 쓰는 신발에도 역시 구멍을 내고 흙을 넣어 나팔꽃을 키웠다. 

2011/6/14. 나팔꽃을 햇볕에 놔뒀더니 덩굴을 뻗기 시작. 

2011/6/14. 부추도 싹이 돋았다. 흡사 잔디, 아니 초록색 머리카락처럼 자란다. 

2011/6/4 대파를 다 잘라 먹고 뿌리를 심었더니 잘 자란다. 아내가 재미가 들렸는지 흙을 사와 이것 저것 더 심었다. 흙에 작물을 키우는게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어렸을 적에 해 봤고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흙에 키우면 벌레가 많이 꼬인다.

2011/6/14. 대파가 웃자라는 건지, 아니면 성장 한계에 도달해 더 이상 자랄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잘 자라던 줄기들이 축축 늘어지며 쓰러졌다. 쓰러진 것들은 잘라서 조리할 때 써 먹었다. 

2011/6/14에 찍은 것. 6월 4일, 아내가 감질맛 난다며 엽채류를 더 키우잔다. 이왕 하는 김에 남은 흙을 통에 담고 남은 청상추 씨앗을 뿌렸더니 7일 후에 싹이 돋았다. 하지만 직사광을 못 쬐서인지 다들 비실비실. 왠지 실패한 것 같아 씨앗들에게 미안하다. 며칠 베란다 바깥에 놓아 두었다. 좀 더 지켜보고 굳이 자랄 것 같으면 얼마쯤은 솎아낼 생각.



2011/6/4 방울토마토에 세 번째 꽃이 피었다. 방충 덧문이 달려 있는데, 방충 덧문을 닫아 두면 햇볕이 덜 닿는다. 그래서 아침에 출근할 때면 덧문을 열어놨는데, 저녁에 닫지 않아 모기가 날아 들어왔다. 아이가 여기 저기 물려 아내의 잔소리를 들었다.

2011/6/4 방울 토마토의 크기는 120cm. 햇살이 잘 닿으면 방울 토마토는 하루에 2리터의 물을 뿌리로부터 빨아들인단다. 10리터 가량의 굴 상자라 아직까지 그날 그날 물을 대줄 필요는 없어 보였다. 흐린 날에는 증산작용도 덜하고 물의 소비량도 적었다. 방울 토마토는 가지가 약해 줄에다 묶어 주어야 하고, 곁가지가 중구난방으로 자라는 편이라 가지치기를 해줘야 한다. 책을 보고 공부 한다고 할만큼은 했는데 가지치기를 하려고 보니 어디를 자를 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클릭=확대. 왼쪽은 6월 4일, 오른쪽은 6월 24일. 사진으로 보면 티가 안 나지만 오이와 방울 토마토가 엄청나게 자랐다. 오이는 내 키를 훌쩍 넘겼고(약 2m), 방울 토마토 왼쪽은 120cm, 오른쪽은 180cm까지 자랐다. 가지치기를 꽤 했는데도 잎과 가지가 무성했다. 어떤 방울 토마토는 한 뿌리에서 2만과를 수확하기도 했단다.


2011/6/4 첫 번째 방울 토마토. 단단하고 푸릇푸릇. 

2011/6/24 여물기 시작. 꽃이 지고 약 한 달. 아내가 방울 토마토 넷 중 하나를 따 먹었다. 때마침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춘향전은 춘향이 따 먹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2011/6/4 오이 꽃이 피었다. 암꽃.


2011/6/17 오이꽃은 줄기 마디마다 하나씩 피기 시작했다. 모종을 사서 흙에서 키우며 신경을 썼다; 가끔 양액을 물 대신 줬더니 무럭무럭 자란다. 오이 중 몇 개는 말라 비틀어지더니 툭툭 떨어졌다. 오이 수정에 관해 알아보니, 자가 수정이라 굳이 수정을 할 필요가 없단다, 아니, 수정을 해 주면 안 된단다. 오이꽃이 둘 그렇게 결실없이 떨어지는 꼴을 안타깝게 바라 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붓으로 수꽃에서 화분을 취해 암꽃에 발랐다. 둘을 그렇게 했는데 잘 한 짓인지 모르겠다. 

2011/6/24. 불과 3일 만에 이렇게 자란 오이가 생겼다. 이건 제대로 자랄 것 같다. 그런데 아뿔사, 이게 내가 수정을 시켜준 꽃인지 아니면 저절로 저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_-



2011/6/14 수박을 먹고 남은 씨앗을 발아시켜 보려고 스펀지에 씨앗을 묻고 양액에 담궜다. 6월 24일까지 싹이 트지 않았다. 종자에 무슨 조작을 가한 걸까? 조금 더 기다려 봐야겠다.

2011/6/4. 수경재배에 재미가 붙어 동네 꽃집에서 스킨답서스 화분을 3천원에 구입해 난도질을 해서 여섯 개의 물통에 양액을 넣고 키우기 시작. 음지에서 잘 자라고 넝쿨을 드리우면 그럴듯 해 보일 것 같아 시작했는데, 자라는 속도가 느려 감질맛 났다. 

 
Workaholics. 이런 jerk들을 봤나. 난 왜 jerk가 좋지?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일까?
 

Sinbad and the eye of tiger. 어린 시절에 아빠 손 잡고 극장에 가서 처음 본 영화. 검치호 외엔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Sinbad and the eye of tiger. 이런 조잡한 아티팩트가 골렘을 움직이는 심장... 재미가 없어 연신 하품을 했다. 


,

mistletoe

잡기 2011. 1. 24. 22:52
크리스마스 전후해서 필드 데모가 시작되어 송년회고 뭐고 챙길 여유가 없었다. 앞으로 3개월 동안 이럴텐데... 연말연초인데 겨우살이 아래 지옥 문 앞에서 일과 키스한 기분.

24일 밤 공짜표로 아이 데리고 뮤지컬 애니 관람. 25일에는 공원, 26일에는 경기도 박물관에 놀러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1-01-01. 광교산 백운봉을 지나다가 뒤돌아서서... 신년산행 인파를 피하려고 사람들이 적을 것 같은 길을 찾았다. 효행공원에서 출발, 백운봉을 거쳐, 하오고개를 넘어 청계산에 갔다가 내려온다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 멀리 청계산이 보인다. 날씨가 별로 안 춥다. 오히려 땀이 뻘뻘 날 지경이라 외투를 벗었다. 언더레이어 한 장 입고 그 위에 폴라폴리스 셔츠를 걸친 상태로 산행. 물론 이러다 멈추면 저체온증으로 바로 골로 갈 수 있다. 라면을 끓여먹으며 잠깐 쉬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얗게 얼어붙은 백운호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직 하오 고개에 다다르지 못했다. 하지만 청계산에 오르기엔 너무 늦은 시각. 15:10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냥 옥수수 스프나 끓여먹고 돌아가기로. 눈밭에 털썩 주저앉아 보온병의 뜨거운 물에 스프를 녹여 호호 불다가 후루룩 마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개울은 얼어붙었지만 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 들렸다. 돌을 들추면 개구리 몇 마리쯤 튀어 나올 것 같았다. 어렸을 적에 떼로 산을 돌아다니며 토끼 잡던 생각이 난다. 토끼 고기는 구워 먹던 끓여먹던 맛이 없었다. 질기고 냄새 나서 뛰어다니며 잡은 보람을 못 느꼈다. 그래서 토끼에 대한 인상이 별로 안 좋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왜고리(왜가리?) 눈썰매장. 이런 걸 뭣하러 찍었지? 논에 물대서 얼린 것. 강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던 어린 시절에 비하면 요즘 날씨는 따뜻한 편인데, 뉴스만 보면 춥다고 호들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남암문. 1월 2일 강추위가 시작되어 부러 아이를 데리고 화성에 놀러갔다. 눈이 적당히 있어 썰매를 태워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테인리스 팬은 길들이기가 어렵고... 해서 스테이크 구울 땐 이 팬을 사용했다. 그릴에서 구운 자국도 그럴듯하게 생긴다. 요새 유행하는 다이아몬드 코팅 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금과 통후추를 갈아 뿌리고 월계수 잎을 얹어 한 시간쯤 재웠다. 동네 정육점에서 구입한 손바닥 두 개 넓이의 한우 1등급 등심인데 고기가 별로 였다. 차라리 그보다 싼 호주산을 먹을 껄 그랬다.

대형 마트에 가면 싼 와인을 가끔 샀다. 와인 붐 덕택에 매대에 놓인 품종이 다양해 졌고, 와인 붐이 속절없이 꺼지면서 떨이로 판매되는 제품이 늘어 좋았다. 딱히 와인 매니아는 아닌데다 선호하는 제품도  없다. 맥주 마시자니 배 부르고, 혼자 소주 마시자니 한 병 따면 그걸 다 마시는게 부담스럽고, 와인이라면 저녁에 퇴근해 홀짝홀짝 한두 잔 마실 수 있어 별 부담이 안 되어 좋았다. 그나저나 와인과 궁합이 맞는 한국 음식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와인과 삼겹살이 궁합이 좋다지만 소주와 삼겹살에 비할 수 있을까? 와인에는 그저 치즈와 스테이크, 몇 종류의 샐러드, 느끼한 파스타 류가 맞는 것 같다.

1월 3일부터 1월 5일까지 엄청난 속도로 프로그래밍을 했다. 1월 6일 테스트 러닝 성공.  저녁 무렵에 사장님과 통화하면서 일이 잘 되간다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사장님이 퇴근 중 뇌일혈로 쓰러지셨다. 직원들이 도로에 정차된 차에서 사장님을 발견하고 병원으로 모셨다.

1월 7일 온사이트 일 좀 하다가 병원 방문. 중환자실 내방 시간을 넘겨 얼굴을 못 뵈었지만 별 걱정 안 했다. 1월 8일 아침 사장님의 혈압이 급격히 떨어져 임종을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다. 눈이 내렸다.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에 도착했다. 다행히 혈압이 다시 올라갔단다. 의식을 찾기만 하시면 된다.

사무실에서 일없이 멍하니 기다리고 있을 때 사모님으로부터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직원들과 함께 사장실을 뒤져 연락처를 챙겨 단체 문자를 보내고 당장 영정으로 쓸 사진을 뒤져서 찾았다. 담배를 연신 피웠다.

정신없이 삼일장을 치렀다. 대부분 알만한 거래처 사람들인 조문객들을 맞아 죽음을 매 번 설명했다. 월요일 아침 발인 전에 인사 드렸다. 울컥했다. 운구해서 화장장에 도착. 두 시간 동안 화장하고 납골당에 모시고 나서야 슬픔과 함께 피로가 밀려왔다. 지난 일주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사무실에서 간단히 대책회의를 하고 주주와 만날 회사측 대표자를 선임했다. 장례 기간 동안 연신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할 말을 잃고, 집에 돌아와 누웠다.

일주일 동안 감기몸살로 고생했다. 그래도 일은 계속 했고, 밥을 꾸역꾸역 먹으며, 병이 낫길, 슬픔이 가시길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2011-01-16. 여전히 몸 상태가 안 좋았지만, 오늘이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는 뉴스를 보고 집을 나왔다. 무리할 생각은 없었다. 마실 가는 기분으로 명학역에서 내려 수리산에 올라갔다. 날이 추운 탓인지 등산객이 거의 없어 좋았다. 관모봉-태을봉-병풍바위-칼바위-슬기봉 아래. 머플러로 입을 가렸는데 입김이 금새 얼어붙었다. 캡을 잠깐 벗은 동안에는 머리카락이 얼었다. 등산 기록 두 개:

광교산: 21.08km, 3h02m, 6.9kmh
수리산: 13.65km, 1h37m, 8.4kmh

아이젠을 착용한 상태인데도 어떻게 평균 속도가 저렇게 나올 수 있을까? 조금 있으면 지나가는 토끼를 앞서갈 기세다. 작년에는 등산이나 자전거 주행을 별로 하지 않아서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아니면 신년 들어 반쯤 미친 상태던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Wall Street: Money Never Sleeps. 그라운드 제로를 배경으로 오토바이 경주하러 터덜터덜 걸어가는 주인공. 버블로 시작해서 버블로 끝났다. 뭘 하자는 영화인지 모르겠다. 자본주의의 잔인함?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의도란 영화. 재미없고 무의미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The Extraordinary Adventures of Adele Blanc Sec. 나는 이런 걸 왜 보고 있을까? 시간을 때워야 하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하루히 시리즈는 뭘 봐도 재미가 없었다. 이유는, 음. 작화가 밥맛이라서?  보다 말고 더 안 봐도 될 것 같아 지워버릴까 몇 번 망설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끝까지 봤다.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가 SF란다. 그건 아무래도 농담 같다. 책은 국내에도 번역된 댄 시먼즈의 히페리온. 한국판 표지가 모처럼 나쁘진 않았지만 일판하고 표지가 비교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ummer Wars. 스즈미야 하루히의 똥같은(평범한) 그림을 보다가 이걸  보고 안구정화 했다. 스토리야 뭐... 대충 아구만 맞으면 되지. 최근 들어 일본 드라마/애니에 뭔가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끼. 만화책의 스타일리시한 그로데스크함은 다 어디로 가고... 200분 짜리 평범한 드라마/추리극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장 캐스팅은 영... 적응이 안된다. 설레설레.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영화가 재미있었다. 보기 나름이겠지만 영화가 상당히 정치적으로 이해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pendables. 낯익은 액션 스타들이 대거 등장. 단순한 줄거리에 노구를 이끌고 액션을 '거행'했다.  사실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나이 먹어 터미네이터 다시 보면 재밌을 것 같지만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록키나 퍼니셔도 재미가 없었다. 디어 헌터는 다시 봐도 재미 있었고 엔젤 하트나 이지라이더도 재미있었다 -- 감흥이 무뎌졌다기 보다는 자기 취향에 대한 견해가 뚜렷해진 것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Big Bang Theory. S04E12. 빅뱅이론에서 이웃집 처녀를 통해 너드/기크와 일반인 간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부적절한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것은 영 재미가 없지만, 카메라 들이대 수식을 인식하고 아마도 울프람 알파같은 엔진으로 해를 구해주는 앱을 작성하는데 열을 올리는 이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저거 만들면 정말 괜찮은 앱이 될꺼라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요는 뭐... 그런데 저 앱은  화난 새대가리들로 돼지를 때려잡는 게임보다 쓸모있고 공공의 이익에 큰 기여를 하잖아?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찌질 돋는 잉여물. 소 팔아서 여행이나 하려던 작자가 우여곡절을 겪는 홍상수 스런 이야기(홍상수 보단 궁상이 덜 하지만 오십보 백보 같다). 간혹 그림 좋은 배경이 나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혹할 정도로 멋있지는 않았다. 절 이름이 '맙소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동선이 좀 오락가락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소 대신에 돼지나 닭, 말을 데리고 돌아다녀도 대세에 지장이 없을 영화 같았다. 하지만 벚꽃 뜯어먹는 이 장면은 돼지로는 못해 먹겠지? 그러다가 감독이 뭔 생각이 있어서 소가 꽃 뜯어먹는 장면을 찍은게 아니라 소가 어쩌다 꽃을 뜯어먹는 장면을 찍은 것 같았다. 말하자면 돼지가 땅파서 뱀 잡아 먹는 광경이나 멧돼지와 고구마를 두고 다투는 장면을 의도한 연출로 찍을 것 같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부당거래. 검새와 짭새가 나와 누가 더 썩었나 자웅을 겨루는 영화?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 그러게 말이다. 호의를 계속 퍼 줘서 그게 당연한 권리인 줄 알게 되는 '복지사회'를 만들어야지. 왕개미. 카메라 좋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부당거래. 핵심장면에는 맥주크림샤워. 오, 이렇게 술마시는 방법이 있었어! 감탄해서 뒤져보니 디겔러들이 벌써 따라 했고, 결론 냈다. 석 잔 정도 따를 수 있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부당거래. 양아치 검새가 백 마디 쳐바르는 것 보다 류승완의 딱 이 각도가 딱 마음에 들었다. 이것하고 검새한테 끌려와 새벽까지 취조받고 검찰 빌딩을 터덜터덜 나오며 흩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씬...


,
건강검진을 받았다. 작년에 직원들의 상당수가 재검을 받았다. 그래서 연달아 나흘 동안 술을 안 마시고나서 그 다음날 '깨끗한 몸'으로 건강검진을 받겠다고 연초에 마음 먹었는데, 그러다보니 거의 6개월이 밀렸다. 달리 말하자면 나흘 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술을 마셨던 셈. 주변의 술 좋아하는 40살 먹은 아저씨 아줌마들은 대부분 자기가 40살 먹었다는 자각이 별로 없다. 시간의 흐름에 무관심하다.

30언저리 어딘가에서 시간이 멎은 만 40 먹은 시한폭탄 같은 작자들에게 생애 전환기라고 위장 내시경 검진을 무료로 해준다. 내시경이 목구멍과 위장을 헤집고 들락거리니 기분이 이상하게 더러웠다. 3만원 더 내고 수면 내시경으로 신청하고 잠이나 잘 껄 그랬다. 그런데 옆 침상에서 수면내시경 하는 사람은 으웩 악 어억 커컥 크킥 등등  별별 이상한 소음을 다 내고 있었다. 수면내시경이 더 안 좋은 걸까?

의사가 뭔가 문제를 발견했는지 십이지장 입구에서 조직 샘플을 채취했다. 1주일치 염증치료용 약을 받았다. 나흘은 좀 적고 한 일주일은 술을 참고 갔어야 했다. 하지만 의사는 술은 펑펑 마셔도 괜찮은데, 담배는 피우지 말란다. 좋은 의사다.

란타나
문병 가던 길에 찍은 꽃. 애용하던 노키아 휴대폰으로 찍은 마지막 사진. 사진 찍으면 알아서 꽃 이름을 알려주는 앱이 있을까? 깻잎 꽃이 이렇게 예뻤나? 하고 깻잎에 관한 내 기억이 의심스러워 구글질해서 알아낸 이름은 '란타나'였다. 그건 그렇고 구글의 이미지 검색이 최근 들어 전보다 좋아졌지만, 아직 bing.com 보다는 떨어지는 것 같다.

인테크: 작년 LG 파워컴 가입 해서 1년 하고 나흘 넘게 사용했다. 당시 인터넷+070+IPTV 해서 부가세 포함 36520원, 여기에 2대의 휴대폰을 파워 투게더로 엮어 4000원 가량의 기본료를 할인받았다. SK 브로드& 광랜은 아파트에 설치가 안 되어 KT Qook으로 시도. 사은현금 26만원, 인터넷 + 070 + IPTV=35690원. 이전 파워컴 위약금이 약 11만원. 따라서 26-11-(35690-36520-4000)*12=10만원 차익.

사용하던 노키아 N5800은 중고로 팔았다. 세티즌 중고시장에 매물로 내놓고 딱 1분 만에 팔려 나갔다. IT 기기 중고 직거래 개인사상 처음으로 할머니에게 팔았다. mp3p로 쓰신단다. 네고 안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5천원을 빼가셨다. 하여튼 이렇게 해서 19만원을 손에 쥐었다.

LG LU2300, 이상철폰 또는 옵티머스Q 오즈스마트 35요금, 할부원금 312000원, 가유, 채무, 부무 조건으로 1년 동안 매달 35000(부가세 포함 38500원)을 사용한다고 하고, 노키아 폰으로 사용하던 요금이 23000원(부가세 포함 25300원)이니까 (38500-25300)*12=158400원+새 휴대폰 분납 가입비 3만원 = 188400원 < 19만원이 되므로, 인테크로 통신업체 바꾸면서 추가 비용이 들지 않았다.

1년 후에 다시 인터넷을 교체할 것이다. 그러지 않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분위기를 통신 사업자들이 만들어 놓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장터 매복 7개월 만에 기다리던 안드로이드 폰을 산 셈이다. 9월 2일 주문해서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9월 3일 오후 늦게 도착했다. 주말에 놀기 바빠서 셋업할 시간이 없었다. 속도를 늦춰서 사용하려면 루팅을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뭘 잘못 본 건지 모르겠지만 아이폰 3GS보다 속도가 약간 더 빠른 것 같다. 옵티머스Q가 오타쿠폰이란 기사가 있다: 옵티머스 큐, '마니아폰'으로 뜨나 

이왕 하는 김에 아내 휴대폰을 스카이 이자르로 갈았다. 아내야 스마트폰에 관심없지만 5백만 화소에 DMB가 되고 가끔 인터넷과 지도를 보는 정도로 사용한다면 피처폰보다는 그래도 스마트폰이 낫다고 생각. 이자르를 만지작거리다보니 배터리 사용시간이 짧은 것과 DMB가 구린 것 빼곤 의외로 괜찮았다. 휴대폰 이름이 멋져서 혹시 파르시일까 해서 뒤져보니 아랍어다.

이자르의 무선랜 접속이 잘 안되어 최신 펌웨어로 업그레이드 했다. 900mAH 짜리 배터리로 하루 간신히 버틴다는 것이 결정적인 단점. 왜 이따위로 만들었는지는 의문.

인터넷+IPTV+070 비교:
* 인터넷: LG 100Mbps, KT 40~50MBps. 체감면에서도 LG쪽의 인터넷 품질이 낫다.
* IPTV: LG에는 PC 공유 디렉토리 연결해서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지만 KT에는 오직 VOD만 된다. VOD는 KT쪽이 더 많은 것 같다. 리모컨은 LG 것보다 KT 것이 사용하기 편하다.
* 070: 전화기는 대동소이

이전 작업:
내 휴대폰: Google Calendar Sync로 아웃룩 일정을 Google Calendar로 옮겼다. 컨택트는 마땅히 옮길 방법이 없어 gSyncIt을 사용하여 구글 이메일 컨택트로 옮겼다. 더 이상 귀찮아서 작업하지 않았지만 작업(todo)은 안 옮겨도 그만이다. 아쉬운 것은 메모인데, 구글 docs가 그 비슷한 역할을 하니까 GDocs로 때웠다.

아내 휴대폰: 이전 휴대폰용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해 주소록을 vcf 파일로 백업하고, 그것을 구글 email 계정의 contact로 옮겼다. 주소록 포맷을 KT 인터넷 전화기에 맞춰 편집한 엑셀 파일을 KT 인터넷폰 주소록에 올렸다. 인터넷폰에서 주소록 내려받기를 했다. 이자르와 인터넷 폰의 전화번호부는 이렇게 완료.

곤파스란 태풍이 불어닥친 날 새벽에 잠에서 깨었다. 창문이 심하게 웅웅 거린다. 먼저 깬 아내가 걱정스레 눈을 부비며 TV를 보고 있었다. 소음이 심하게 나는 창문을 단단히 걸어 잠궜다. 바람에 나무 허리가 이리저리 휘어지고 잎새를 통과하는 바람 소리가 마치 신음, 비명소리 처럼 들렸다.

9월 3일 술을 너무 마셔 다음 날 아침에 변기에 업드려 속을 비웠다. 어질어질 했지만 점심 도시락을 만들어 산행을 하려고 버스를 탔다. 아직 술이 덜 깬 탓인지 버스를 타니 속에서 올라올 것 같아 중간에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니 참을만 했다. 수리산에 가려던 생각을 바꿔 인근 광교산으로 코스를 바꿨다. 날이 무척 더웠다.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지만 한낮 최고 기온은 31도 무렵이란다. 수리산은 능선코스라 직사광선을 피하기 어렵지만 광교산 코스는 대부분 산그늘이라서 쉽다. 사실상 산책 코스나 다름없다.

광교산, 곤파스
산길에서 죽은 나무와 풀 냄새가 났다. 이 정도는 약과다. 특히 동쪽 사면에 서 있던 무척 많은 수의 나무들이 두동강나거나 뿌리가 뽑혔다.

주먹밥
주먹밥 만들기 참 쉽다. 온기가 남아있는 밥에 냉장고에 있던 후리가케와 깨소금과 참기름 살짝 넣고 주물럭거려 어른 주먹만한 주먹밥을 만들었다. 놀러가는 아이들 것은 아이들 주먹보다 조금 더 크게 만들었다. 샌드위치는 햄, 치즈, 오이 저민 것, 양파 약간을 마요네즈와 캐첩만 발라 속으로 채워 넣었다. 그런데 이런 걸 과하게 술먹은 다음 날 먹으려니 무척 힘들었다. 생각없는 아내는 여전히 쌀에 현미를  섞어 밥을 지었다.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갑갑하다 -- 현미건 보리밥이건 소화가 안되면 말짱 황이라니까!

600ml 가량의 물을 홀짝홀짝 마시면서 가다 쉬다를 반복했다. 3km쯤 걸으며 쉴 때마다 준비한 주먹밥을 야금야금 오래오래 씹어 삼켰다. 위속에서 소화되어 대사되는데 30분쯤 걸릴 것이다. 땀이 비오듯이 쏟아지지만, 몸 상태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나아졌다. 6km 정도만 걷고 집에 가서 자려던 생각을 바꿔 10 km 짜리 코스로 변경했다. 주먹밥이 다 떨어져 샌드위치를 먹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9/11. 아직 다리 힘이 약해서 평지만 달렸다. 곧잘 속력을 냈다.

7월 30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어린이 미술관이 개관했다. 어린이 미술관 핑계로 애를 데려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현대미술관엔 데이트할 때나 와봤다. 적어도 8년 전 얘기다. 이곳을 아이와 함께 오게 되다니! 현대 미술관 어린이미술관은 별 볼 일 없었다. 전시품은 애들이 만질 수 없게 가둬놨고 체험 활동은 동네 어린이집 수준이었다. 백남준의 달토끼를 기획의도로 삼았단다. 입구에 들어서 출구로 나갈 때까지, 큐레이터가 예산이 부족해서 이런 멍청한 기획을 한 건지, 애들과 인연이 없는 밋밋하고 한심한 삶에 환멸과 회의를 느낀 나머지 기획 끝내고 낼 모레 자가용에 연탄 피워 자살할 예정이라 대충 한 건지 잘 모르겠다. 궁시렁거리는 아빠와 달리 아이는 잘 놀았다.

어린이 미술관은 글렀고, 본격적으로 여섯 개의 전시실을 돌았다. 생각보다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6천원짜리 특별전도 마저 구경했다. 미술관 뒷길을 아이와 한가하게 거닐었다. 아내에게 줄 문진을 샀다. 즐거운 하루였다.

애가 그림을 언제 그리기 시작했는지 잘 모르겠지만('돼지는 농부가 키우고 아이는 아내가 키운다'는 말을 언젠가 들었다) 그 동안 찍은 사진을 뒤적여 발달 과정을 정리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9/8/18 (30개월) 물 속에 사는 고래. 신경계가 미발달해서 직선이나 곡선을 그리지 못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0/4/7 (45개월) 언젠가 도화지에서 화이트보드로 변경. 문어인지 인간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0/4/27 (45개월) 원, 삼각형 등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0/5/8 (46개월) 집, 나무, 아파트, 식물 따위를 그림. 이때쯤 되면 그림이 있는 사진들을 도화지에 오려 붙여 스토리를 구성해서 설명해 보라고 교육하는 듯.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0/7/17 (48개월) 아빠. 팔을 머리에 갖다 붙였다는 것을 본인이 스스로 자각하고 있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0/8/5 (48개월) 빠르게 발전. 주제는 여전히 가족의 '존재'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0/08/10 (48개월) 유아에게 색칠을 시키면 어김없이 무지개색 평면이 나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0/8/28 (49개월) 한 달 새에 다시 진전.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0/08/28 (49개월) - 그림에 스토리가 생겼다. '아빠가 가방 들고 산에 가서 그곳에 사는 뱀을 만났다.' 아빠는 그날 산에 가서 몹시 고생 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한테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킨다며 아내가 9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겠단다.

제 애비가 하고 싶은대로 하다가 아이가 원치 않는데도 애비처럼 독고다이가 될까 봐 골똘이 생각했다. 그래서 여태 어린이집에 부러 보냈는데...  곰곰히 내 다섯살 때를 생각해보니 애들 틈에 거치해둔다고 사회적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당시에 나는 무척 사교적이고 비민주적이고 사회적이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사회질이 금방 시들해졌고  대신  재테크에 도움이 안되는 시시한 관심꺼리에 심취했다.  게다가 네 아빠는 사춘기 때 물론 부모말 안 듣고 집 나가길 밥먹듯이 하고 학교에 잘 안 갔고 학교 공부'만' 등한시 했으니 아이가 자라서 평범한 또라이 십대가 된다 해도 뭐라 말할 건덕지가 없다. 게다가 몹시 행복했다.

아내 말대로 했다. 돼지는 농부가 키우고 아이는 아내가 키운다.

찰리 휴스턴, 통제불능: 주인공이 바보같아서인지 전편보다 재미가 덜 하다. 그러고보니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첫 권 번역판 역자 해설에 뱀파이어물에 관한 분류가 적혀있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를 먼저 본 탓인지 그 책은 재미가 없었다. 휴스턴의 소설은 뱀파이어, 좀비, 늑대인간, 초능력자, 미친 과학자를 다루는 장르소설이다보니 늘 끼니를 때우듯이 기계적으로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개그물. 읽으면서 낄낄거렸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한 말:
"그래, 리지. 네 언니가 실연을 당했다지. 축하해야겠구나. 아가씨들이 결혼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이따끔 실연 당하는 거니까. 생각할 꺼리도 되고 친구들 사이에서 좀 튀어 보일 수도 있고 말이야."
실연도 안 당해 본 여자를 여자라고 할 수 있을까?

Planet 51
Planet 51. 이렇게 재미없는 애니가 다 있었나 싶었다.

Salt
Salt. 여배우 빼고 볼 게 없는 짝퉁 본 시리즈. 감독이나 등장인물들이 정말 이야기를 싫어하는 눈치였다.

Shutter Island. 대사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괴물로 장수하기 보단 착하게 죽고 싶다'고 말한 것 같다. 멍청하고 행복하게 사느니 알 것 다 알고 괴롭게 자살하겠다는 말도 있다. 음악이 하나도 안 들렸다. 화면이 좋았다. 배우가 괜찮았다.

Hurt Locker
Hurt Locker. 한 달여에 걸쳐 한 번에 10분씩 봤다.  오늘 새벽에는 이 장면이 나오는 부분부터 볼 생각.


,

2010

잡기 2010. 1. 11. 20:01
2010년 올해 소망도 전과 같다. 살람 팔레스티나!

그다지 깔끔하고 쾌적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가 내 인생이 한 해 만에 이렇게 찌질해진 것일까? 원인도 알고 해결책도 안다. 원인: 내 탓이다. 해결책: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닌 것 같으니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고 포기한다. 설령 찌질해졌어도 하던 거나 제대로 잘 하자.

'번역의 탄생'이 알라딘의 독자가 뽑는 2009 올해의 책 후보로 선정되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지 못했다만, 내 눈에는 후보 중 문학 분야에서 의외로 볼만한 책이 없었다. 실은 다섯 권 빼고는 뭐 이런게 후보일까 싶은 지경? 책을 예전만큼 읽지 못하는 형편이라 교양과는 거리가 멀어 불감증에 걸린 외계인 몽크 아저씨처럼 살지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첫눈을 천안에서 맞았다. 눈 오는 밤에 직원들과 망년회를 했다. 눈이 온 날 아이를 데리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망년회를 몇 번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대략 6~7번 한 것 같다. 연말인데 우울해서 술을 적게 마셨다. 12월 30일 종무식을 마친 다음 직원들을 데리고 횟집에 갔다. 12월 31일 쉬는 날이지만 회사에 나와 지도 작성으로 시간을 보냈다.

12월 31일 밤 시장 떡집에서 떡국떡과 만두를 샀다. 1월 1일 아침 떡만두국을 끓여 먹었다. 멸치, 다시마, 표고버섯으로 육수를 만들고 국간장 약간과 소금으로 간을 보고 만두를 넣고  만두가 떠오를 때까지 끓이다가 건져내고, 떡국떡을 넣고 역시 떠오를 때까지 끓이다가 만두와 떡, 파를 넣고 끓이다가 그릇에  내어 황백지단과 김을 고명으로 얹었다. 떡국떡은 괜찮지만 만두맛이 별로다.

쓰레기더러 쓰레기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예절에 어긋난다.

1월 2일 효행공원에서 출발해 지지대 고개를 거쳐 광교산을 종주했다. 이번에도 GPSr의 충전지가 방전되어서 경로를 잡지 못했다. 14.5km를 3시간 30분 걸려 주파했다. 인상적인 속도이긴 하다. 눈이 와서 아이젠을 착용했고, 아이젠 때문에 무릎이 아팠다. 아이젠을 벗고 두 번쯤 눈길에서 나자빠졌는데 그러다가 왼쪽 손목 인대가 늘어난 것 같다. 자빠질 때 왼손으로 받치는 나쁜 버릇을 없애야지 이거원 다친 데 또 다치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거의 10여년쯤 쓴 것 같은 4 점 아이젠을 버리기로 하고 제대로 된 아이젠을 스패츠와 함께 구입했다. 1월 9일 관악역에서 출발해 삼성산을 넘었다. 1주일째 녹다 말은 눈이 남아 있었다.

삼성산 바로 아래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보온병의 진공이 깨져 보온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빌어먹을. 미지근한 물을 컵라면에 붓고 혹시나 해서 가져간 밥을 미리 먹은 다음 전혀 익지 않은 컵라면의 면발을 부숴 억지로 위장에 밀어넣었다. 옆에서 오뎅 장사 하는 할머니 곁으로 어떤 등산객이 지나가며 '와 돈 많이 벌으셨겠네요'  라고 말하자 할머니가 버럭 성을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눈은 내리는데 삶이 고단하고 팍팍한 할머니가 말을 건넨 또 다른 등산객의 말을 들어보니 오늘 관악산에서 어떤 사람이 사고로 죽었단다.

배를 채워도 배를 채운 것 같지 않다. 잠깐 움직이지 않으니 춥다. 눈이 녹은 바짓가랭이와 땀범벅이 된 모자는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삼성산에서 내려가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했다. 해가 오후 5.30pm에 진다. 4.30pm까지만 연주대에 도착하면 사당 방면으로 하산할 수 있다. 4.30pm 까지 연주대에 도착하지 못하면 두 말 없이 서울대 쪽으로 하산하기로 마음먹고 출발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상예보와는 달리 오후 1시 출발할 때부터 눈이 왔다. 앞산이 안 보일 정도로 시야가 뿌옇다. 오후 4시가 넘으니 등산객들이 거의 없다. 약수물을 떠먹고 잃어버린 장갑을 찾으러 잠깐 돌아갔다가 무너미 고개 부근에서 관악산으로 향했다. 쉬지 않고 학바위 능선을 넘었다.  하얗게 눈이 얼어붙은 연주대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다. 쉬지 않고 사당 쪽으로 가다가  시계를 흘낏 보니 이런... 벌써 5시 30분이다. 해가 진 것이다. 사당 방면으로 하산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내린 눈 때문에 등산로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무릎까지 잠기는 눈 속을 헤치며 하산할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캄캄하다.

서두를 수 없고, 서두르지 않을 수도 없다. 눈발로 얼어붙은 GPSr의 액정 화면에 생명선처럼 가느다랗게 뻗은 등산로를 따라 박명에 그저 하얗게만 반사되는 눈밭에서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발을 디뎠다. 절벽을 지나고 눈밭에서 고꾸라지고 넘어졌다. 사지를 모두 사용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부르며 내려갈 길이다. 전화가 몇 번 왔다. 아내가 전화해서 저녁밥을 앉힐까 물었다. 제 남편은 지금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데 한가하시군. 먼저 밥 먹으라고 말했다. 어 지금 목숨 걸고 내려가는 중이야 라는 말은 생략했다. 그러고 보니 상황이 몹시 안 좋을 때면 어김없이 아내의 전화를 받고 일상과의 심한 괴리를 느꼈다. 전에도 비봉에 오도가도 못하고 매달려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응급실에서 엑스레이 찍을 때도 수화기를 통해 왜 전화를 안 받냐는 질책을 들었다.

금요일 저녁에 GPSr의 지도를 업데이트했다. 그간 꽤 많은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이번이 업그레이드 후 처음으로 지도를 검증하는 것이다. 만약 지도가 제대로 되지 않았으면 조난 상황이다. 지도의 등고선이 올바르지 않으면 눈으로 확인이 안되는 형편이니 아래는 절벽인데 절벽이 아니라서 떨어질 수도 있다.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까지 300m 이상을 내려가야 한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발을 뗄 때마다 되뇌였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니 집을 나설 때부터 있던 편두통마저 사라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달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화질이나 기타 등등은 무시하고, 그저 매우 의미심장한 기념사진. 제목은 살았다! 서울대 공학관 불빛이 보여서 안도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된다. 15분쯤 푹푹 빠지는 눈 속을 내려갔다. 눈이 하염없이 내린다. 아스팔트 길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버스 정류장에 다다를 때까지 멍하니 걷다 보니 아이젠을 벗지 않았다. 절그럭절그럭 쇠소리를 내며 걸었다. 몸에서 김이 펄펄 나고 물방울이 둑둑 떨어졌다. 꼴이 말이 아니다.

사당역에서 오뎅 국물로 속을 덥히고 유난히 오지 않는 버스를 줄서서 기다렸다. 채 마르지 않은 신발에서 발이 얼어갔다. 벌벌 떨면서 30분쯤 기다리다가 간신히 버스를 탔다. 길이 막혀 한 시간 넘어서야 집 근처에 도착했다. 아홉 시가 다 되었다. 통닭을 사들고 집에 도착해 샤워하고 맥주와 통닭을 먹었다. 새로 산 아이젠이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 했다. 일주일 새 눈이 반쯤은 녹았으리라 생각하여 스패츠를 안 가져간 것이 후회되었다. 죽을 뻔해서 그런지 정신이 또릿또릿하다.

GPSr의 로그를 살펴보니 5시간 동안 12km를 걸었다. 연주대에서 서울대로 내려오는데 걸린 시간은 30분 미만, 거의 미친 속도다. 작년 이맘 때도 관악산에 갔다. 내년에 또 갈까? 위기에 처하니까 리프레시가 제대로 되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온 몸이 뻐근했다. 어디에 부대꼈는지 허벅지에 멍이 들어 있다. 어제 일이 꿈만 같다. 아이를 데리고 일월 저수지로 놀러갔다. 아이를 눈밭에 굴릴 겸,  근육도 풀 겸 일월 저수지에서 emart까지 걸었다. emart는 며칠 전부터 할인행사가 시작되어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아이를 놀이터에 맡기고 매장 안을 여기저기 정처없이 헤멨다. 보온병을 사야 되는데... 어제 물에 말은 라면 스넥을 먹은게 한이 맺힌다. 대략 4시간쯤사람들에 치대면서 걸었다. 집에 돌아와 아내가 해준 홍게에 라면을 끓여 먹고 맥주 한 잔 하니 피로가 몰려왔다. 그야말로 통나무처럼 쓰러져 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꿈을 이룬 것과 꿈을 이루지 못한 것. 내 비극은 꿈을 이루지 못한 쪽. 아내는 아이와 함께 터키와 그루지아에서 즐겁고 신나게 지냈지만 난 인도네시아행 티켓 조차 알아볼 시간이 없었다. 왜 그렇게 어리석은 삶을 살았을까? 이유가 많지 않았다. 내가 한 약속을 지켰다. 올해는 지켜야 할 약속이 없지만 돈이 없다. 한 사장이 올해 계획이 있냐고 물었다. 정신줄 놓고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해도 탄약과 계획은 늘 챙겼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생의 두 가지 비극보다 실감나는 경구는 덱스터에 나왔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똑같다. 그들은 절대로 휴일에 당신을 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덱스터가 멀티 열심히 뛰는 4기가 생각보다는 재미가 없었다. 소재가 절여놓은 양념갈비니 만큼 특별한 기교 없이도 기본적으로 먹고 들어가는 것이 있는데, 이 시나리오 작가가 매 시즌의 피날레를 흡족스럽게 끝내는 것을 3년째 못 봤다. 마지막은 충격과 경악, 죄의식과 피바다였어야 했다(TV 드라마라서 그럴까?). 시즌 내내 인성 교육 하다가 deux ex machina와 하등 차이가 없는 '카르마'라니... 설령 '일정 품질'이 나와 청자 입장에서 불만스럽지 않더라도, 점입가경을 구현했어야 할  '게으른 작가'는 때려 죽여도 할 말 없어 보였다.

GD의 heartbreaker가 표절이라고 한 동안 떠들썩했다. 훌륭한 표절(?)이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반성하는 차원에서 룸싸롱을 방문해 술 마시고 행패 부리다가 깨어보니 집이었다는 뮤직 비디오에 희안하게 공감이 간다(뮤직비디오는 그 옛날 에어로스미스 표절 같은데?).

2009년 내내 흥겹게 풍악을 울려대던 걸그룹들이 많았지만 2NE1 빼곤 그저 그랬다. i don't care i don't care 소녀시대, 원더걸즈, 카라, 모두 화무십일홍 같았다. mp3 무료로 듣기가 어려워 보였는데, youtube 따위 동영상 사이트 가니 인기곡은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요즘 아이돌 그룹 노래가 좋아졌다기 보다는 뮤직비디오나 사운드 프로듀싱 솜씨가 대단했다 -- 전면에 내세운 메이크 업 걸 그룹을 마리오네트처럼 조정하고 기획하고 프로듀싱하는 이면의 존재감을 훨씬 더 묵직하게 느낀다. 요점을 제대로 짚은 예술적인 타깃 마케팅을 보는 것 같달까? 그러니까 거국적으로 먹혀 들어가는 것이겠지.

Jeff Beck이 내한공연 온단다. 다른 뮤지션이나 그룹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대충 넘기고 말았지만... 젠장 갈 수 있을까? GD나 2NE1 등의 어린 애들 사랑 타령 따위를 아무리 들어도 제프 벡의 기타소리에서 느끼던  영혼의 솔리톤적인 떨림을 경험할 수 없으니까. 그게 라이브라고! 1월 20일 티켓 오피스가 열린단다. 고민하자...

서울, 세계 최악의 도시 3위? -- LP 설문에서 최악의 도시 3위가 나왔다고 서울시가 발끈할 이유가 없는데 이 기사가 나온 며칠 후 서울시는 NYT 선정, 꼭 가봐야 할 도시 3위에 올랐다. 무슨 로비라도 한 건 아닐까 싶었다. 가난한 여행자의 관점에서 보면 서울시는 정붙일 구석이 없는 도시다. 멍하니 죽때릴만한 데가 없고 어딜 가든 사람에 채이고 어딜 가든 쇼핑몰이니까. 청계천? 녹조가 낀 청계천 개울에 발 담그고 건너편 콘크리트 벽을 쳐다보고 있으면 괜히 처량해질 것 같은데... 맛이 갈 때까지 술 마시고 흥청망청 놀아도 밤거리가 안전한 도시라는게 뭐 대단한 장점일 리는 없고.

떠난 이상 서울에 관심 끊자. 여기 수원은 가진 떡도 제대로 활용 못하는 바보같은 도시다. 방만한 경전철 계획과 예산안으로 시의원에게 질타받던 수원시장은 단순히 열이 뻗친 나머지 경전철 계획을 전면 백지화한다고 발표했다(뭐야 이건?). 이왕 그렇게 말한 것, 그대로 밀어붙였으면 좋겠다. 1번 국도를 중심에 둔 수원 시내 도로 사정 상 경전철로 2-3년 공사하면 아비규환이 되고 만다. 여러 국책 연구 평가결과에서도 경전철보다는 BRT(Bus Rapid Transit) 도입이 수원의 도시계획 면에서 유리하다고 추천한다.

예전에 먹었던 인스탄트 짜장면 이름이 기억나지 않다가 마트에 가서 제품을 보고야 알았다. 팔도 일품짜장인데 그냥 먹으면 신맛이 나지만 양파를 미리 볶은 다음 짜장을 섞고 볶다가 면을 섞으면 먹을만 했다. 짜파게티의 면발은 꾸준히 적응이 안된다. 요즘은 짜파게티나 신라면이나 너구리나 쌀국수 뚝배기나 농심에서 나온 것들은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라면 안 먹었다.

스티븐 핑커, 언어본능: 한국인 중에 이 책의 전반부를 재밌게 본 사람이 과연 있을까? 전반부가 흥미롭긴 하지만 영미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이 아닌 이상 나와 상관없는 순수하게 학술적인 내용이다. 핑커는 사멸되어가는 언어의 죽음을 멈춰야 하는 이유로 언어학자로서의 자신의 욕심을 말했다. 다양한 언어가 있어야 자기가 제대로 학문할 수 있다나?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는 석기 시대를 떠나지 않았어도 된다. 중간계층에 속할 필요도 없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필요가 없다. 심지어 학교에 갈 만큼 자랄 필요도 없다. 부모의 언어 세례를 받을 필요도 없고, 부모가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도 된다. 사회구성원이 되기 위한 지적 수단이나, 집과가정을 꾸려나가는 기술이나, 확교한 현실 이해능력도 필요없다. 사실 이 모든 이점들을 다 가졌다 해도 유전자가 두뇌 일부에 결함이 있으면 우리는 유능한 언어 사용자가 되지 못한다.
그러게 말이야.

자연어 처리 등의 인공지능의 역사는 컴퓨팅의 역사와 동일한데, 지난 40여년 동안 컴퓨터 공학자는  핑커의 책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을 '이해'하는 인공지능을 만들지 못했다:
여자: 나 떠날 꺼야.
남자: 어떤 놈이야?
사람의 두뇌에는 태어날 때부터 언어를 해석하는 정교한 신경계가 존재한다. 지극히 사소한 차이를 제외하고 유전자가 거의 일치하므로 여러 인종간 신경계에 차이가 없어 보이고 따라서 영미 문화권과 계통상 거의 고립어로 간주되는 한국어와 오스트로네시안 등의 언어를 사용하는 두뇌는 차이가 없다. 따라서 S+O+V 형 문장과 S+V+O 형 문장은 인간의 두뇌에서 처리과정이 같아야 한다. 실제로 그렇다. 그리고 문법 상 차이 역시 그리 크지 않다. 핑커가 써 놓은 것이 공교롭게도 EBNF다 :
S := NP VP, NP := [det] N [PP], VP := V NP [PP], PP := P NP
명사구(NP)와 동사구(VP)는 거의 전문화권에서 동일한데, 동사구는 한 문장에서 단일하지만 명사구는 재귀되며 반복될 수 있다.

EBNF는 유한상태기계라 노이먼 머신에서 처리가능하다. 그런데 왜 자연어 처리가 어려울까? 앞으로 십 년 이상 자연어를 인식하고 발화하는 인공지능이 나올 가망은 거의 없다. 자연어가 어려운 것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자연어 조합 가능성과 불규칙, 광범위한 상식과 배경 지식을 요구하는 화용 면에서 의미구조를 해석하기 어려운 탓이다.

이희재가 번역의 탄생에서 밝힌 것처럼 한국어는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가 많은 영어와 달리 동사를 수식하는 부사구, 전치사구가 많고  격조사와 어미 변화가 심하다. 차이가 심대해 보이지만 번역의 탄생에서 보여준 변환 테이블은 그 변환 테이블을 만들기 까지의 과정이 어렵지(정리가 어렵지) 실제로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감탄스러웠다. 한국어가 영어보다 우월한 것도 없고 영어가 한국어보다 나은 것도 없다. 다만 아이의 두뇌는 어느 언어의 한 문법을 정확하게 익히면 다른 언어의 문법에 적응할 수 있다는 것과, 아이들 조기 교육은 주로 발성법을 가르치는 것이란다.

물론 영어는 한국어로 완벽히 기계적으로 번역될 수 없다. 인지과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네 살 미만의 아이들이 문법은 90% 이상 정확하단다(나도 가끔 애 키우면서 잘못된 문장이 생각보다 적다는 것에 놀라곤 했다). 그런데 그 남은 10%의 오류 때문에 우리는 아이들이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고 한단다. 10년 전 아이디어회관 문고를 전자화하던 작업에서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OCR 프로그램의 글자 인식율은 평균 95% 가량 되는데, 수치상으로 높아 보이지만, 이것은 평균 100글자당 5 글자가 틀린 것이다 -- 따라서, 거의 엉망진창인 문장으로 여기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The Moon. 싸고 질좋은 SF 영화. 왜 공포물의 정석을 따르지 않는걸까 의아해하며 영화의 중반까지 봤다. 고전SF다. 그래서 시시한 트릭이나 추리물같은 반전을 사용하지 않은 것 뿐이다. 순리대로 진행해도 충분히 임팩트가 있으니까. 오랫만에 깔끔한 멸치국수같은 SF를 봐서 기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Terminator: Salvation. 옛날 옛날 처음 나온 터미네이터가 등신 인증 러다이트를 흥분시키는 공포물이었다면, 그 후속작들은 전작의 후광으로 빌어먹고 살았달까. 전작보다 점점 다운그레이드 되가는  모습이 특히나 애처러웠는데 salvation이 이 괴상한 시리즈물을 그나마 똥통에서 구제한 것 같다. 감독의 서비스 정신 덕택에(아, 플롯도 있다고 치고)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CG로 재현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andorum. SF로는 싼 티가 나는 전형적인 케이스. 청자를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똥대가리 취급해 미스테리와 공포를 떠먹여줄 때, 또는, 감독이 그냥 똥대가리 라서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을 때. 그럴 때 싼 티가 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에우레카 극장판. 아네모네와 에우레카7. '인간은 어리석어. 안이한 상상으로 미래에 대한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렸어. 그 결과가 이 세계야.' 엔딩 크레딧이(엔딩 크레딧만) 멋지다. 에우레카7 TV판도 일제애니에서 느끼던 구린내를 느끼지 않고 봤던 것 같다. 세상이 망하건 말건 내 사랑을 위해 적이건 아군이건 닥치는 대로 죽여도 상관없다는 사고방식은 '구린내'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vatar. 보는 내내 포카혼타스가 생각나서 잡친 영화. 디지탈 3D나 아이맥스로 보지 않아도, 좋은 영화는 좋은 영화인데, 이 영화는 좋은 영화 같지 않았다. 현란한 그래픽을 전혀 경험할 수 없는 캠 버전으로 봤기 때문인지 예전에 본 어떤 스패니시 개잡종의 남미침공기만 못하다는 느낌만 들었다. 재미가 없다. 페라리처럼 생긴 빨간 새 몰고 오면 여자들을 비롯한 원주민들이 한방에 훅 간다는 알만한 교훈을 반복했을 뿐이랄까? 어처구니가 없는 2012는 재밌었는데 이 영화가 재미없었던 것은 아무래도 영화의 메시징을 외면하기 힘들어서 였던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Up. 초반 할아버지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인상적인 부분, 중/후반부는 평범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Watchman. 미국 코믹스라서 로르샤흐(Rorschach)를 로어세크라고 읽는 건가?  주인공이 찌질해서 별론데...? 이게 그 유명한 왓치맨이구나 하고 봐서 그런 듯. 기회 되면 만화책을 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라르고 윈치. 붉은 돼지에 나올법한 섬으로 향하는 요트. 요트가 물살을 헤치며 나아가자, 마치 날개를 활짝 편 것 같은 모양새. 영화가 별로 재미가 없었지만 몇몇 장면 때문에 인상에 남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래그 미 투 헬. 오랫만에 보는 전설의 고향 류의 클래식 공포물. 요즘 공포물은 인과관계를 배제한 채 물어 뜯고 썰고 다지는데 초점을 맞춰 재미가 없어 부러 찾지 않았다. 감독 이름만 믿고 본 영화 치고 재미있었다.

,

detour

잡기 2009. 10. 5. 00:20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누라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 배경음악: http://www.youtube.com/watch?v=mP6-j9pxTGI 사연: "어이 아줌마 여긴 청계산 꼭대기야. 생각나서 찍었어. 아내한테 보약은 역시 일없이 히죽히죽 웃는 남편 얼굴 아니겠어?난 주중엔 바쁘고, 바람 안 피우고, 행복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삼시세끼 먹으며 쓸쓸히 잘 지내고 있어. 소울이 끼니 거르게 하지 말고, 장모님이 아줌마 외국 나간 거 눈치채셨으니 알아서 잘해 봐. "

미팅하러 거래처에 갔더니 적외선 카메라가 입구에 있었다. 몇 개월 전에 신종플루 상황이 pandemic이라더니 드디어인가? 치사율이 독감보다 낮은 신종플루에 떨 것 없지 싶은데... 이럴때 항공권 싸니까 마누라/애 여행 보내고, 좀 있으면 노인네들 무료 백신 맞게 해 줄테니 관광주 뜰테고, 그러니까 하나투어 주식 사재기 해 둬야지 싶은데... 다들 벌써 그렇게들 했나? 바쁜 관계로 투자에는 까막눈이다.

바람 빠진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다가 다리에 알이 배겼다. 다리에 알이 배기다니... 신선했다. 잘 안 나가는 자전거를 식은땀을 흘리며 한밤중에 차들에 쫓기며 정신없이 몰았으니까. 쇼핑몰에서 2500원짜리 자전거 펌프를 주문했다. 배송료가 2500원이다. 1400원 짜리 Wheel light와 2400원짜리 백라이트도 샀다. 밤에 도로를 달리는 것이 으시시해서 대비를 제대로 해놓을 생각이다. 2500원짜리 펌프의 성능이 의외로 좋다. 그 전에 사용하던 25000원 짜리 펌프는 다루기도 어렵고 바람이 들어가지 않았다.

9/26 광교산에 올라갔다. 자전거를 타고 광교공원까지 갔다. 천천히 가도 20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것 같다.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잠궈놓고 출발했다. 입구를 잘못 알아 경기대 수원 캠퍼스 입구 옆으로 올라갔다. 광교산은 수원을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한 세 군데 화장실이 있는 곳이다. WSJ에 그 아름다운 화장실 사진이 실렸다던데, 아쉽게도 화장실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광교산은 가족 나들이로 올라가기 적합한 야트막한 육산이다. 수원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광교산에 MTB 싱글트랙이 있는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나무가 참 많다. 소나무는 피톤치드하고 상관이 없었나? 그럴리가. 하지만 숲에서 별 냄새가 안 난다. 산짐승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듯. 소나무 마다 아바멕틴벤조에이트 주사 날짜가 적힌 명패를 붙여 놓았다. 집에 와서 조사해 보니 소나무재선충 방재용인데, 아바멕틴과 emamectin benzoate를 헷갈리게 적어 놓은 듯. 아바맥틴은 솔입혹파리와 솔껍질깍지벌레 양쪽에 방재 효과가 있고 에마멕틴 벤조에이트는 솔껍질깍지벌레에 효과가 있단다. 요새는 그 약품을 난초에도 사용하는 듯.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시간쯤 올라가도 영동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차량 소음으로 시끄러웠다. 광교터널이 광교산 아래를 지나갔다. 아하, 이래서들 산에 터널 뚫지 말라고 아우성이군. 사람들로 북적이고 심한 차량 소음에 산새 소리가 들리지 않아 산이 영 마음에 안 든다. 형제봉을 거쳐 시루봉 근처에서 점심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백운산, 지지대까지 갈까 하다가 김이 새서 그냥 내려오기로 했다. 상광교 버스종점에서 13번 시내버스를 타고 자전거를 묶어둔 광교공원까지 내려왔다. 재미없는 산이지만, 상광교 버스 종점부터 산행로 초입까지 조성해 놓은 공원은 아이 데리고 놀러오기 괜찮아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막걸리 한 병과 쪽파 좀 사다가 부침가루로 부친개를 해먹었다. 부친개 만드는 솜씨도 점점 나아지는 것 같다.

10/2 추석 연휴 첫 날, 할 일은 없고 집에 붙어 있자니 근질근질해서 도시락을 싸들고 청계산으로 향했다. 가장 가까운 곳이 4호선 인덕원역. 박사장님은 입만 열었다하면 인덕원 근처가 술먹기 좋다고 갖은 칭송을 늘어놓았는데 사실 한 번도 술마시러 인덕원에 온 적은 없었다. 2번 출구에서 1번 마을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질려 택시를 타고 청계동을 지나 청계사까지 올라갔다. 택시 요금은 6300원, 인덕원역 앞에서 청계사까지 약 15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계사로 오르는 계단. 남들은 버스 타고 와서 청계동에서부터 청계사까지 지루한 평지를 꾸역꾸역 걸어오는데 청계사에서부터 시작하니 좀 민망하다. 산행 마치고 나서 생각해보니 청계사에서 시작하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초파일도 아닌데 마당에 색색이 걸려있는 연등.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계사의 볼꺼리가 극락보전이지만  절 뒷편의 난간에 잔뜩 올려 놓은 각양각색의 동자승 보는 것도 재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9년 봉안한 자갈로 만든 와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와불 옆의 본격적인 산행 코스. 저번 주에 간 광교산은 하나도 재미가 없었는데, 다짜고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업힐(?)을 하게되는 이 길이 마음에 들었다. 계단과 흙더미, 돌무더기를 밟으며 꾸준히 300m 가량의 표고차를 올라가면(거리는 대략 5-600m쯤?) 첫번째 전망대가 나타난다. 오랫동안 산에 안 올라왔지만 그래도 단련되어서 인지 별로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 쉬지 않고 올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대공원과 맞은편의 관악산이 보였다. 길을 잘못 들어 이수봉까지 갔다가 이곳 전망대로 다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목마다 막걸리를 파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귀동냥으로 들으니 매봉 앞에 있는 막걸리 장사 아저씨가 진짜란다. 왜냐면 그 아저씨는 TV에 나왔고 다른 사람들은 TV에 나오지 않아서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땀이 곧 말라 시원하다. 망경대 앞으로 올라가기 전 공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망경대에서 바라본 과천 대공원의 동물원 위에 있는 저수지. 망경대는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망경대 앞뒤로 있는 작은 봉우리가 정상을 대신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매바위 앞. 여기서부터 하산길 내내 툭하면 '서초구가 등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어쩌구저쩌구 등산로/계단/공원'이 쉴 새 없이 튀어나왔다.  다른 곳에서는 그냥 입 다물고 등산로/계단/공원 만드는데 유독 서초구만 오두방정을 떨며 위화감 생기게 하는 이유가 뭘까? 서초구는 돈이 많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옥녀봉을 거쳐 화물터미널로 가면 소위 청계산 종주코스가 되는데, 그리 가지 않고 대공원 쪽으로 내려왔다. 돌아오는 교통편이 불편해서다. 그런데 의외로 이쪽 길이 마음에 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갈림길. 사람이 거의 없고 숲이 숲 같이 생겼다. 작은 개울을 따라 내려가면 작은 폭포도 눈에 띈다. 냇가에 앉아 발 담그고 놀고 갈 수 있는 호젓한 곳이다. 조금 더 내려가니 서울랜드로부터 떠들썩한 소음이 들린다. 현대미술관에 들렀다 갈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역으로 향했다. 미술관은 데이트나 하러 가는 곳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본 포스터. 이게 뭐야? 지구를 구하려면 기도해야 되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래 사세요' 집에 돌아와 세계적인 인도주의자인 칭하이 무상사의 비디오를 유튜브에서 부러 찾아 관람했다. 십여개국의 언어로 된 서브타이틀이 화면의 태반을 가렸다. 별로 틀린 구석이 없는 뻔한 얘기를 줄줄이 늘어놓는다. 그러게, 채식하고 육류 소비를 줄이면 지구를 구할 수 있지. 아무렴. 아무래도 대순진리회나 사이언톨로지와 비슷하지 싶다. 소정의 수수료를 헌금하면 칭하이 무상사의 위대하고 뻔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겠다.

추석 연휴 중 자전거를 타고 슬슬 시내 주행 하다가, 주유소 앞에서 사고가 났다. 주유소를 빠져 나오던 코란도가 나를 미쳐 보지 못하고 자전거 옆구리를 박았다(전방 주시 안 했음). 차가 덮치는 걸 뻔히 보고 자전거를 급히 틀었지만 그때까지 나를 보지 못한 자동차가 좀 더 밀고 들어왔다. 딴전 피우고 있었단다. 자전거와 함께 쓰러졌다. 골반 윗쪽 사타구니와 정강이 아래, 복숭아 뼈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절뚝거렸다. 왼쪽 손목 인대가 '또' 늘어났다. 차체가 낮은 승용차였다면 다리가 범퍼 밑에 자전거와 함께 깔리면서 부러졌을 것이다.

자전거가 박살났지만 어째서인지 응급실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저번처럼 뼈에 실금하나 보이지 않았다. 입원하겠습니까? 라고 묻길래 아니 라고 대꾸했다. 나이롱 환자가 될 생각은 없다. 이번 주에도 일 때문에 바빠서 그럴 여유가 없다. 주사 맞고 드레싱만 하고 병원을 나왔다. 최근에는 내가 먼저 사고낸 적이 없다. 그래도 몇 번 인가 연달아 죽을 뻔 하게 되니 간담이 서늘하다. 그렇게 조심했건만, 상대방의 과실로 벌어지는 사고는 어쩔 수가 없다.

가해자가 아는 바이크샵에 반파된 자전거를 맡겨 '하루종일' 수리했다. 하지만 프레임이 비틀린 것인지 영 주행감이 괴상하여 가해자 측과 협의해 비슷한 가격의 새 자전거를 사기로 했다. 치료비는 응급실 검사비+주사+약값 해서 75000원 가량 나왔다. 자전거는 30만원 안쪽에서 알아보기로 했다. 늘 그래왔듯이 살아서 다행이다.

10월 28일 보궐선거에 손학규는 끼지 않았다. 이재오 역시 이번 보궐선거에 나올 수 없게 되었다. 10월 28일 선거를 위해 찬찬이 정보를 수집중이다.

한동안 EIDF 다큐멘터리를 즐겼다. 내가 아는 베르너 헤어조크는 항상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의 독일 억양이 억세게 느껴지는 영어 나레이션에 묘한 중독성마저 있다. 이번에 EIDF에서 틀어준 헤어조크의 다큐멘터리 하나하나가 주옥같다.

헤어조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구두를 끓여 먹었다('베르너 헤어조크, 구두를 먹다'). 스페인 침략 당시의 그 유명한 광기의 기록을 드라마타이즈한 '아퀴레, 신의 분노'도 보았다. 식인종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주고받는 대화: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고기가 떠내려온다' . 마지막 장면과 첫 장면이 대단히 인상적인데, 알고봤더니 첫 장면은 와나픽추에서 찍은 것이었다(예전에 여행할 때 마추픽추보다 와나픽추에 기어 올라갔던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비롯한 여러 씬을 우르밤바 강에서 찍었다. 아퀴레, 신의 분노의 주연 배우 킨스키를 다룬 '나의 친애하는 적'도 재미있었다. 킨스키는 노스페라투에 나왔던 불쌍한 흡혈귀.

그 다음은 티모시 트레드웰의 죽음을 다룬 '그리즐리맨'을 보았다. 티모시 트레드웰은 자기가 그토록 좋아하는 그리즐리 곰에게 살해당했다. 그가 손수 찍은 비디오를 보면 자기가 곰들을 이해한다고 굳게 믿으면서 곰들 무리에서 일 년에 1-2개월 함께 살았는데, 그동안 안 죽은 것이 오히려 신기했다. 트레드웰은 곰들을 이해하겠지만 곰들이 트레드웰을 이해할 리가 없으니까. 북미지역에서 가장 무서운 곰이 내가 알기로 흑곰이다. 만나면 다짜고짜 죽이니까.

헤어조크가 ' 난 또다른 펭귄 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다'면서 찍은 것은 남극에 모인 가지각색의 사람들의 일상사를 다룬 '세상 끝과의 조우'였다. 뭐 그의 뜻대로 그럴 생각은 없었겠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렇다고 먹이를 사냥하러 바닷가에 가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다가 문득 결심을 굳힌 듯 갑자기 산으로 가는 미친 펭귄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아무 것도 없는 산에 가는 미친 펭귄을 보니 남 얘기 같지 않았다. 남극에 간 사람들과 산으로 올라가는 펭귄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헤어조크가 펭귄  농담을 한 것이다.

EIDF를 통해 이란 팔래비 왕조의 몰락과(뭐 아는 얘기라서 별 재미가 없을 것 같았는데 흘낏 본 장면에서 팔래비 왕조의 마지막 왕비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2007년 버마 항쟁의 기록도 봤다. 버마 생각을 하면 드라마 philanthropist 와 내가 미얀마에서 만난 사람들 생각이 나서 우울해진다.

양곤의 스웨다곤에서 데모가 시작되었다. 화면을 보아하니 스웨다곤의 남문이다. 버마에서 데모하던 스님들의 구호는  이랬다:
생명이 있는 자들은 모두 동쪽으로
삼라만상이 모두 자유로워지기를
두려움과 번뇌와 가난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기를
구호가 정말 마음에 든다. 데모를 주도하던 스님들은 심하게 구타 당했다. 맞아 죽기도 했다. 최근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 치 여사와 대화를 시도했다. 여전히 philanthropist란 미국 드라마가 위선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냈다. 도아님 같은 분이 통전선교를 한다고 비난하는 월드비전을 굳이 옹호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생활비하고 남은 돈이 있으면 마누라 몰래 월드비전 같은 곳에 기부하는 정도지.  세상의 정의 실현에 관심 없다. 철학에도 관심없다. 선교를 하건말건 애새끼 배나 채워줄 수 있으면 된다. 나처럼 인간성에 깊이 실망한 사람들이 아마도 행동을 자신에 맞춰 커스터마이즈하지 싶다. 얼터드 카본에서는 그것을 '복수의 개인화'라고 했다.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라고 설득하는데 소비하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지 싶다. 어렸을 적엔 말재주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던 적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사회복지 변호사 되겠다던 제이님은 요즘 뭘 하고 있지? 애 낳지 말고 개인의 행복을 희생하며 매진하라고 기회될 때마다 북돋워 줘야 하는 거 아닐까? 아니야 그냥 매너나 지키면서 가만히 있자.

그나저나 EIDF 만세! 부디 장수하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에르고 프락시. 첫 편을 몇 년 전에 보고 기대했었다. 이제서야 전 편을 보게 되었는데, 이 애니의 레종 데트르가 뭔지 사뭇 궁금하다. 타이틀곡만 좋았다. 알고 보니 cogito, ergo sum으로 반병신스럽게 연명하는 평범한 쓰레기였다.

트랜스포머2. 딱 13세 수준의 영화같은데? 옵티머스 프라임이 옛날에 프랑스 병사들이 사격 연습용으로 쏴대던 스핑크스 옆에 듬직하게 서 있다. 화면이 정신 사나워서 전 편보다 재미가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lone in the Wild. 처량하게 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말하다 말고 울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야생에서 50일을 버티며 주린 배와 외로움에 울었다. 만약 내가 저 상황이면 잘해낼 수 있을까? 구호품만 주어진다면 90일은 문제 없이 버틸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문명으로 돌아와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며 카메라로 찍는다. alone in the wild는 3화로 끝났다. 그가 실패했다고 비웃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깨를 다독여주며 위로할 생각도 없다. 그저 이런 '산에 간 미친 펭귄' 프로그램이 또 나왔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