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3.10
황열병 주사를 맞으러 인천공항에 갔다. 주사를 놓는 사람은 오랫만에 보는 프로페셔널이었다. 그래서 주사 맞으러 가라고 일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얘기했다. 황열병 주사는 10년 동안 유효하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광견병 주사를 맞고 온 줄 알고 있었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음... 나도 걱정이긴 하다.
2003.3.12 서울 -> 인천 -> 나리타 -> LA -> 헐리웃. 22시간.
밤에 술 마시디가 아침 일찍 일어나 허겁지겁 짐을 쌌다. 김포공항까지 지하철로 가고 거기서 인천 국제공항행 버스를 탔다. 인천공항까지 가장 싸게 갈 수 있는 방법이다. 출근하는 직장인 틈에 끼어 배낭을 메고 가는 기분이 묘하다. 그들중 몇몇은 내 배낭을 보고 기분이 싱숭생숭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들이 열심히 일해줘야 나도 여행이 깨소금맛이 날 것 같다.
탑 항공 출장사무소에서 항공권을 받아보니, 6개월 오픈이어야 할 항공권이 3개월 오픈이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따지고 싶었지만 비행기 출발까지 한 시간 밖에 안 남았다. 입국 수속을 해야 한다. 항공사에 가서 오픈으로 되어 있는 날짜를 고정했다. 6월 6일 6시 비행기를 달라고 했지만 없단다. 6월 6일 12시 LAX -> NRT -> ICN 표를 준다. 기분이 매우 엿 같았다.
공항세가 만원인데 3만원을 찾아 2만원으로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를테면 배를 채운다던가... 하지만 300ml짜리 코카콜라를 4000원에 팔아먹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고심 끝에 담배 한 보루와 자일리톨을 샀다. 나리따 공항에서 4시간쯤 시간을 죽였다. 면세점에서 살만한 것들을 눈여겨 보았지만 쓸만한 것은 없어 보였다. 배가 몹시 고파서 680엔 짜리 라면을 카드로 긁어 먹었다. 오사카보다 맛이 없다. 화장실에서 롤화장지를 하나 슬쩍 했다. 허겁지겁 짐을 싸느라 못 챙긴 것. 다시 비행기 탑승. 지금까지 내가 타봤던 장거리 비행기중 가장 후진 비행기였다. 어떻게 태평양을 횡단하는데 좌석에 LCD도 안 붙어있고 화장실에 칫솔이 없단 말인가.
2003.3.12 -- 날짜 변경선을 지났기 때문에 하루를 벌다. 사실은 하루를 번다는 것을 깜빡 했다. 표 끊을 때 하루를 당겼어야 했다.
LA 공항에서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일없이 한 시간을 까먹었다. 가이드북의 지도는 스케일이 안 나와 있었다. 물어 물어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잔돈이 없어 민폐를 끼치면서 헐리웃에 도착했다. 체크인 하려니 무조건 기본이 2박 이란다. 1박에 16$. 이러면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데... 어쩔 수 없다.
패스트푸드는 별로 내키지 않아서 여행하는 동안 맥도날드 따위를 찾지 않았는데 미국에 오니 사정이 바뀌어서, 패스트푸드가 거의 그들 주식에 가까웠고 다른 음식들은 비싸서 어쩔 수 없이 햄버거, 조각 피자 따위로 끼니를 때웠다. 레스토랑에는 '저희 식당은 서빙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고 벽에 적혀 있었다. '셀프 서비스'라고 적어놨더라면 어감이 더 좋았을텐데...
엄청나게 큰 사이언톨로지 빌딩 앞에서 날더러 무료 성격 검사를 하라고 꼬셨다. 테스트 안해봐도 결과가 뻔할 것으로 짐작된다. 설문 문항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정신분열, 신경증, 편집증 운운하는 소리는 듣지 않을 수도 있었다. 건물 규모로 짐작컨대, 사이언톨로지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 만큼 훌륭해 보였다.
헐리웃 스타의 거리를 이틀 동안 여덟 번은 왕복했을 것이다. 그 동안 별들의 방향이 제각각 다른 이유에 관해 쓸데없이 골머리를 썩였다. 헐리웃 블루바드는 동에서 서로 뻗어있다. 불루바드는 동-서를 연결하고 에비뉴는 남-북을 잇는 큰 도로를 지칭하는 것 같다. 상징적인 도식에 따라 별의 방향이 동에서 서로 향해 있으면 사망한 유명 연애인을 나타내고, 서에서 동으로 향한 것들은 아직 살아있는 연애인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리가 없는 어떤 아저씨가 길을 돌며 스타들의 이름에 매일 광을 내고 있었다. 별들은 헐리웃 불루바드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북을 잇는 도로에도 있었다. 새로 나타난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북쪽(죽음의 자리)을 향한 것이 사망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만족하며 걷다가 아놀드 슈와제네거의 별자리가 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갖가지 경우의 수를 조합해 보았지만 별들의 모서리 위치가 왜 다른가는 알 수 없었다.
Mann's Chinese Theatre에서 Daredevil을 관람. 매우 훌륭한(세계 최고의 시설이라니까) 돌비 디지탈 사운드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신파조로 질질 늘어지고 있었다. 극장 안에는 나를 포함해 오직 다섯 명 만이 그 영화를 보고 있었다. 학생할인이 되는 줄 모르고 일반표를 10$나 주고 끊어서 속이 쓰렸다. 헐리웃의 유서깊은 극장에서 헐리웃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2003.3.13
LA 지하철은 표 검사를 하지 않았다. 코리아타운에 들러 마른 미역을 사려고 했는데 어디가 어디인지 헤메다가 종국에는 6km를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이럴 때는 GPS가 큰 힘이 되어준다. 덕택에 비버리힐즈 블루바드와 멜로즈 스트릿의 부자 동네부터 중류층의 집 모양까지 두루 관람했다. 곳곳에서 영화를 찍고 있었다.
Hollywood public library의 수준은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도서관을 찾는 가지각색의 사람들과 도서관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왠지 감동적이었다. 한국에서는 도서관 대신에 책방에서 돈 주고 만화책이나 잡지를 빌려보고들 있을텐데... 그러고보니 도서관을 확충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고 시민의식이 그 정도의 두께를 지녀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을 들렀다. 두 번 모두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 였지만, 잡지도 보고 SF도 뒤적였다. 분위기가 좋다. 관광지에 여행 와서 이틀 내내 도서관에 짱박혀 있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멕시코는 물론이고 중미에 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관계로(한국에 있던 2주 동안 낮에는 영화를 보고 밤에는술을 마셨다) 밤이면 호스텔에 짱박혀 '나머지 공부'를 했다. 일본인 몇명과 친해졌다. 뭐니뭐니해도 일본인들은 한국인과 정서가 맞는다. 그래서 음식을 얻어 먹었다. 호스텔의 위치가 환상적이다. 바로 밑에 와인샵이 있으니까. 하지만 호스텔에서 장기 때리고 있는 작자들은 왠일인지 99센트짜리 싸구려 와인 '댓병'만 마셨고, 맛이 영 똥 같아서 술판에 안 끼니까 이 호스텔에서는 술을 안 마시면 나가줘야 한다는 우스개를 들었다. 그 동안 술은 전혀 못한다고 사기쳤다. 녀석들은 물론 그 사기를 믿지 않았다. 친해진 몇 명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런 싸구려 마시다보면 몸이 망가진다... 한 방에 있던 멕시코 녀석은 완전히 고주망태가 되어 밤새도록 웩웩 대더니 다음날 아침에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한 방 사람들은 모두 잠을 설쳤는데... 그러다가 안 사실이지만 호스텔 주인이 한국인이었다. 하여튼 밤마다 술판이 벌어지는, 분위기 죽이게 막 나가는 호스텔이었다.
2003.3.14 LA -> San Diego -> Tijuana -> Los Mochis. 30시간.
호스텔에서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산 디에고로 향했다. 안 가본 녀석들조차 멕시코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해가 안 간다. 그레이하운드는 그동안 들었던 명성에 비하면, 웃기는 버스였다. 티켓에 내 이름을 잘못 적어 놓았다. 그래도 아무 문제 없었다. 왜냐하면 티켓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까. 2번 타는 동안 제시간에 출발한 적이 없었고 보안검사랍시고 짐을 몽땅 뜯어내 검사했다. 심지어는 지들 버스에서는 좌석 배정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어디에서나 '권리' 얘기를 보면 신경질이 났다. 먼저 온 놈이 좋은 자리 골라타라는 것이다. 그레이하운드는 차가 없는 가난뱅이, 히스패닉, 흑인, 노약자, 그리고 비행기가 무서워서 못 타는 사람들이 타는 것이다. 내 경우에 꼭 들어 맞았다.
태평양을 끼고 달렸다. 에너하임(디즈니랜드)을 지나고 La Jolla를 지났다. 멕시칸 에스파뇰을 좀 알게 되니까 La Jolla가 라 졸라로 발음되지 않고 라 호야로 발음된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다. 멕시코 루트를 거의 결정했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멕시코에 2주는 있어야 한다. 엄청나게 큰 나라다. ... 그리고 남미를 포기해야 한다. 속이 아련하게 쓰려왔다. 컬럼비아까지 안 가고 니카라과나 과테말라에서 페루로 직행하는 방법이 있긴 했다. 그러나 중미를 반쪽 내고 비용을 더 들이느니 중미만이라도 제대로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중미 3개월도 짧다. 그동안 중남미에 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버스 오른편으로 시퍼런 태평양이 하염없이 펼쳐져 있었다.
샌디에고는 멋진 도시다. 이렇게 멋진 도시는 처음 봤다. 멋지긴 한데 게스트북이 영 꽝이라서(이건 여행 초짜나 만드는 종류의 책이다) 인포센터를 찾아 멕시코 대사관 위치를 물어야 했다. 찾아가니 문을 닫았단다. 잠긴 문을 두들겨봐도 응답이 없다. 안에서만 열 수 있는 문. 누군가 들어가는 사람이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닫히는 문을 나꿔채고 고개를 자라 목처럼 디밀어 투어리스트 카드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물어보니 월요일에 오란다. 잠깐만 시간 내주면 안되냐니까 그게 시간이 많이 걸린단다. 그러면서 토요일, 일요일은 문을 안 연다나? 오늘이 금요일인데... 투어리스트 카드 없으면 멕시코 여행 못한다. 월요일까지 기다리면 3박, 최소한 100$이 일없이 깨진다. 후유... 100불이 깨져도 받아야지 어쩌겠나.
멋진 거리를 낙망한 채 걸어서 호스텔에 찾아가니 예약을 안했고, 또, 방이 꽉 차서 숙박할 수 없단다. 샌디에고의 모든 호스텔이 그랬다. 상황이 이럴진대... 사용할 수 있는 옵션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오션 비치 호스텔로 가보라며 친절하게 전화까지 해 주었다. 그에게 지금 국경을 넘을 수 있냐고 물으니 멕시코 영사관에 가서 어플리케이션을 작성한 후 투어리스트 카드를 받아야 한단다. 그건 월요일에나 가능한데? 벌써 오후 4시. 무거운 배낭을 메고 2시간을 넘게 걸었는데 쉬지도 못하고... 혹시나 해서 멕시코 영사관에 전화질 두 번, 자동 응답기가 받는다. 지난 3일 동안, 미국 사람들이 참 친절하긴 한데 '그들을 귀찮게 할 권리가 없기 때문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이를 갈다가, 되던 안 되던 국경에 가서 졸라 보기로 했다. 안되면 다시 샌디에고로 돌아와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 3일 머무르기로 하고 아름다운 트롤리를 탔다. 안 되면 밤 9시가 넘어서야 숙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악운의 연속이다. 별것이 다 사람 고생시키는구나 하고 시발시발 거렸다. 한떼의 경찰관들이 차안에 올라와 표 검사를 했다. 1시간쯤 지나 멕시코 국경에 도착.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물어물어 멕시코 이민사무실을 찾았다. 국경 구조가 이상하게 생겨서 끝내 미국 이민 사무소에 들르지 못했고 출국 스탬프를 찍지 못했다.
허무하게도 멕시코 이민국에서 투어리스트 카드를 바로 발급받을 수 있었다. 가이드북, 호스텔 주인, 투어리스트 오피스 사무관, 심지어는 멕시코 영사관 직원까지,
모두 잘못 알고 있었다. 국경에서 그냥 발급받을 수 있다! 180일 짜리를 받으려고 옥신각신 하다가 내 미국 체류가 11월에 끝난다며(6개월짜리) 90일짜리를 주려고 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개기면서 우겼더라면 180일 짜리도 가능할 것 같았지만(180일 짜리를 얻기 위해 멕시코를 정말로 사랑할 마음의 준비까지 되어 있었다)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오후 6시. 국경을 나오면서 환전하고 근처에 즐비한 토플리스 바의 삐끼들과 환담하고(이렇게 인상 드러우면서 친절한 삐끼들은 처음 봤다) 물어 물어 다운타운으로 가다가 마음이 바뀌어 900km 떨어진 Los Mochis행 버스에 올랐다. 그후 19시간 동안 타코스 하나 먹은 것 빼고는 쫄쫄 굶었다. 의자가 푹신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집채만한 선인장들이 도로 양쪽에 늘어서 있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것이라고는 작살처럼 내리꽂는 햇살과... 오직 선인장 뿐이었다. 샌 디에고가 자꾸 눈에 밟혔다. 그렇게 좋아보이는 도시에서 하루도 있어보지 못했다. 버스는 일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2003.3.15 3pm
이런 적이 없었는데, 모치스에서 한참 길을 헤메고 나서야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가이드북(이번 것은 제대로 된 것이지만)의 주장에 따르면 멕시코의 버스 터미널은 배낭 여행자를 엿 먹이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혼란스럽단다. 이해가 간다. 이 조그만 도시에 버스 터미널만 여섯 개가 있고, 나는 내가 어느 터미널에 내린 것인지 30분 동안 거리를 헤메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여하튼 게스트하우스는 토플리스 바 위층이다. 환상적이다. 두 말 없이 체크인 했다. 달러로 환산해서 9.5$ 가량. 싱글룸 without bath. 번번이 입구를 헷갈려 토플리스 바로 들어가다가 멈칫했다. 김유신이 된 기분이다.
싸다는 멕시코지만 미국 물가의 1/2 수준이다. 인터넷 1$/hr. 우유 0.8$, 물 500ml 0.3$. 타코스+샐러드+소다 2$. 여러 면에서 보건대 멕시코는 터키보다 잘 살았다. 그 점이 놀라웠다. 그동안 멕시코에 관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중동인 처럼 친절하고 왠지 재미있었다. 인상을 쓰고 있다가도 낄낄 대고, 점잖은 척 하다가도 낄낄 대며 장난을 쳤다. 아무나 보고 아미고(친구)라고 불렀다. 아미고, 화장실이 어디야? 다섯 블럭 떨어져 있는데 내 택시를 타고 가지 그래, 아미고? 아미고, 나는 돈을 사랑해.
멕시코에 오자마자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을 했다. 오렌지를 샀다. 1킬로그램에 0.3$. 한국에 있던 2주 동안, 오렌지가 무척 먹고 싶었지만 비싸서 못 먹었다. 오렌지 쥬스가 아니라, 까 먹기가 귀찮은 오렌지가 먹고 싶었다. 아... 그런데 저녁 바람이 불자, 바에서 마리아치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밴드가락이 흘러 나왔다. 게스트 하우스에는 나 말고 투숙객이 아무도 없다. 다들 밑층이 밤새 시끄러워서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다른 곳에 가는 모양인데, 이렇게 바에서 '아미고들'이 연주하는 음악 소리를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곳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코로나 맥주 한잔? 오늘은 피곤해서 그만 자련다.
2003.3.16
자다 깼다. 아침 6시. 거리에 안개가 잔뜩 끼어 있다. 꿈을 꾸었다. 깨었을 때는 내가 한국에 있는 것으로 잠시 착각했다. 많이 피곤했나 보다. 어깨가 많이 뻐근하다. 얼굴이 벌써 새까맣게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