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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36a1

잡기 2010. 9. 3. 00:44
며칠 전부터 '두샨베'란 단어가 머리에 맴돌았다. 찾아보니 타지키스탄의 수도였다. 하루 정도면 더 볼 것도 없는 조그만 도시 이름이 착착 입에 감긴다. 무의식은 웹 크롤러처럼 이상한 단어들을 긁어모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녀 왔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할 지도 모르겠다. 덕택에 타지키스탄의 경제 사정도 알게 되었고 초거대 항성도 알았지만.

오랜 시간 기다려왔지만 블로그에서 사용하는 Textcube의 버전업이 생각보다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텍스트큐브 소갯글에서 이 문구를 보았다;  Omnis mundi creatura quasi liber et pictura nobis est, et speculum -- 세상의 모든 창조물은 우리에게 책이자 그림이자 거울이다. -- 세상의 모든 창조물 거의 대부분이 지저분한 패치워크일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 무언가 새로운 걸 만드는 사람들에게 별다른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못했다, 잘했다, 되게 잘했다 정도의 rating만 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고 평소의 시시한 삶로 돌아갔던 것 같은데?

자비심 부족한 문화예술 애호가, 범고래 영화 취향 -- 테스트 결과:  '좋다는 영화보다 싫다는 영화가 더 많은 편으로, 거장의 작품이라도 자기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욕을 하는 오만방자한 취향'. 질문 몇 가지로 뭘 아는 척하는 바보스런 설문이지만, 과한 자신감에 행성만한 자아를 지니고 있어 세상의 온갖 창조물 중 다수가 구미에 맞지 않아 히치하이커에 등장하는 녹색 외계인처럼 평소 입에 욕을 달고 사는 것은 맞다.

예: 교통사고 사망자는 하루 16명인데, 자살자 수는 하루에 35명이란다. 어떤 시인은 '죽음은 시공으로부터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라고 말했다. 내 오만방자한 견해 및 감정: @#$%$!!

이론의 여지없이 인간의 감정과 지능은 전적으로 생존을 위해 프로그램된 것이다. 사랑할 수 없는 자,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자는 생존경쟁에서 도태되었어야 하지만 적은 수라도 쏘시오패스와 싸이코패스는 의외로 잘 먹고 또 열심히 잘 살았다. 인간 사회가 병들었다는 증거일까? 그들의 삶은 눈에 띄는 확률, 가능성 높은 우연일 뿐이다.

담배 피우다가 제일 캥기는게 아이가 지나가는 것이다. 그럴 때는 옆으로 슥 비켜 갔다. 담배를 빨지 않았다 -- 입으로 담배를 빨아서 내뱉어야 풍부한 유독가스가 나온다. 며칠 전 퇴근길에서 담배로 적자생존 생태계는 구성할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진화가 확률적으로(또는 관찰되기에) 적자가 생존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100중 20은 적자가 아닌 운에 의해 생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진화가 그렇고 사는게 그렇지 뭐.

담배값을 8천원으로 올린다던가, 통일세를 걷는다던가, 나라가 궁상스러워지니 국민을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괴롭힌다'. 정부 및 정부 수반이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담배값이 올라 담배를 적게 피우면 -> 국민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므로 -> 노인 요양 비용이 증가하고 -> 따라서 건강보험료 부담과 국민연금 부담액이 늘어날 수 있다 . 농담.

옛날에 김부선은 대마초는 마약이 아니라 한약재라고 말했다. 무척 참신했다. 그럼 담배는? 세금 수거용 공인 독극물? 언젠가 종교인 여자와 사귀다가 헤어진 조씨가 이렇게 말했다; 독 중에 가장 지독한 독은 기독이래요. 기독교의 기독이요. 담배만 아니면 되지 싶다.

9월 첫 포스팅.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조건이 변할 뿐' -- 드문 경우겠지만 조건이 갖잖아 보일 수도 있겠다. 5개월 전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늬 평범한 쏘시오패스처럼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 설명에서 문득 '바탕화면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란 문구를  보고 301장의 풍경사진을 모아 450MB 짜리 바탕화면 테마를 만들어서 집과 사무실 컴퓨터에 설치했다.  음... 테이트나 구겐하임, 루부르의 작품들을 모아 통째로 테마로 만들어 돌릴까? 나라면 가능하다. 삽질의 대가인데다 비상식적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상태라서.

인간은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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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 비오는 날 놀러가서 팬션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건너편에 덕유산이 보이고, 그 건너편 저 멀리 지리산이 있다. 그 시각에 지리산 종주한다고 비를 맞으며 고생 중인 친구가 문득 생각나 전화했다. 잘 살아있다.  전북, 전남, 제주에는 호우주의보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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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다가 맛이 갔고 아침에는 비가 내린 개울가에 발 담그고 세수했다.
딸애가 나보다 잠자리를 잘 잡았다. 그것도 맨 손으로. 무주구천동엔 세 번째 왔다. 한 번도 '관광'이란 걸 못했다. 술 먹다가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그러고 다음 날 덜 깬 정신으로 버스를 기다리며 잠자리나 잡고. 이게 팔자인가?

낙원의 이방인
딸애와 미술관에 들렀다. '낙원의 이방인'이란 전시회였다. 어디든 지금과 다른 곳에서 평안을 느낀다면... 고향을 떠나 행복해진 이방인이겠지.

낙원의 이방인
재밌고 웃기는 작품들이 많았다. 딸애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예쁜 짓이라며 자기 얼굴에 손으로 꽃받침을 만들었다. 그래봤자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게 내 딴엔 흡족하다. 취향의 탄생이다.

낙원의 이방인
산차이 짝퉁 같은 낸시 랭처럼 강아지 인형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아빠의 얼굴은 이렇게 반사경에만 비치는 것 같은데? -- 아이는 늘 엄마, 아빠가 빠진 독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네 아빠는 뼈 빠지게 돈 버는 취향은 아니야, 아참. 사내는 핑크다.

낙원의 이방인
이 작품을 어디서 본 기억이 나는데? 화살 맞고도 부조리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곰돌이. 곰돌이는 귀여워야 하니까 늘 그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 죽음 따위야 뭐 영생을 누리는 이마고보다 덜 중요하고.

8/21, 서울/경기도 지역에 폭염경보,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몇 주전 비슷한 폭염 속에서 자전거를 타던 날, 내가 더위에 약해 빌빌댄 것인지 아니면 체력이 떨어져 힘을 못 쓴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 이번에는 비슷한 조건에서 산행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하루중 가장 더운 때에 8봉 능선을 거쳐 6봉 능선쪽으로 내려오기로. 기온은 34도, 햇볕은 살인적으로 번쩍였다.

8봉 능선을 지나 육봉 능선으로 들어가는 갈림길 역할을 하는 국기봉에서 더위에 퍼졌다. 능선 그늘에 앉아 쉴 때 불어오는 바람의 기온이 30도였다. 국기봉 꼭대기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할머니한테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었다. GPSr 화면을 보며 고민 좀 하다가 6봉 코스의 중간 지점부터 능선을 내려 가기로 했다. 체력이 다해 다리가 후들거려 3봉의 가파른 경사로를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바보짓을 한 것 같다. 봉우리마다 있을 우회로를 타고 그냥 편하게 내려올껄 괜히 중간에 내려온답시고 옆으로 새서 길을 잃고 헤멨다. GPSr을 보았더라면 쉽게 찾았을텐데, 맞는 길인줄 모르고 오르락 내리락 반복했다. 그러다가 갑갑해서 등고선만 보고 등산로를 벗어나 내려갔다. 지칠대로 지쳐 시냇물에서 좀 쉬어가자는 심산이었다. 다행히 멀리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길이 없고 인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훌훌 옷을 벗고 발가벗은 채 물웅덩이에 들어가 15분쯤 냉탕을 하니 살 것 같다. 천국이 따로 없다. 옷에서 물기를 짜내어 다시 입었다. 갑자기 기운이 나서 과천역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10.8km  걸었다. 시장에 들러 맥주와 과일을 샀다. 집에 와서 맥주에 파닭을 시켜먹고 퍼졌다. 땡볕 아래서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따가운 암벽을 기어 오르내리느라 사지를 다 썼더니  그간 녹슬었던 온 몸의 근육이 신음했다. 그 때문에 잠을 설쳤다. 더위 먹어 빌빌거리고 필요한 때 필요한 근육은 없으면서 1년 전보다 체중이 2kg나 늘었다. 그야말로 저질체력이다. -_-

Merida Dakar 616
딸애 자전거를 샀다. 이번에는 어린이집에서 배운, '멋있는 포즈'란다. 코스터 브레이크가 달린 자전거를 사려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그냥 이베이에서 살 껄 그랬나?). Merida의 Dakar 616을 이십만 백원 주고 샀다. 핸들에 꽃술도 안 달렸고, 짐칸도 없고 핸들바에 장착하는 바구니도 없는 밋밋한  9.6kg짜리 유아용 알루미늄 프레임 MTB다. 다리 힘이 없어 평지에서 꾸역꾸역 지렁이처럼 기어가는 수준이다.  밥 많이 먹고 힘쎄져야 자전거를 잘 몰 수 있다는 핑계로 밥을 먹일 수 있을 것 같다. 자전거는 친지들의 각종 찬조금과 아이가 꾸준히 돼지저금통에 모아놓은 상당량의 동전으로 샀다.

빈 저금통을 다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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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 흐리고 간간히 비. 관악산에 다시 올라갔다. 저번 주와 같은 코스. 집을 나서는데 아내가 '괜히 없는 길 만들면서 다니지 말라'고 말해 캥겼다. 안 그래도 산을 타면 상처가 많이 생겼다.

넋 놓고 걷다가 무너미 고개 부근에서 길을 잘못 들어 8봉 능선 왕관바위로 오르는 길을 놓쳤다. 되돌아가긴 귀찮고 등고선을 보고 그냥 등산로를 개척했다. 비가 온 탓에 바스라진 나뭇검댕이 옷 여기 저기 묻고 잔가지가 드러난 살갗을 사정없이 할켰다.

버섯이 듬성듬성 돋아난 나뭇그늘을 지나 푹푹 빠지는 낙엽을 밟고 가시나무와 거미줄을 헤치고 손가락, 발가락 끝으로 바위에 매달리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간신히 200여 미터를 기어 올라 능선에 오르니 시원한 비바람이 불었다. 몰골이 말이 아니지만 젖은 바위에 앉아 아침에 만든 점심을 먹었다 -- 아내와 아이 아침밥을 차려주고 둘의 점심을 만들어주고 내 점심도 챙겼다. 계곡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다 흩어졌다. 비가 내려 허겁지겁 밥을 먹어 치웠다.

문원 폭포
문원 폭포. 오후 다섯시 무렵. 비가 와서인지 이 코스로 산행하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틈에 폭포에 몸을 담그고 씻었다. 더러워진 옷을 빨았다. 저번 주에는 더위에 지쳐 개고생 했는데 이번에는 룰루랄라 편하게 산행을 즐겼다.

가는 길 내내 귓가에는 베토벤의 여러 교향곡이 줄기차게 흘러 나왔다. 마지막으로  Adiemus의 앨범 Vocalize를 들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편곡한 것과 7번 교향곡을 편곡한 것도 있어 이번 산행은 거의 100% 베토벤과 함께 오른 셈이다. 베토벤의, 9번을 제외한 여러 교향곡을 벤치마크한 결과, 노다메 칸타빌레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7번 교향곡이 산행할 때 가장 적합한 것 같다. 하이킹할 때는 6번 교향곡이 발걸음에 딱딱 들어 맞지만, 능선에서 하늘과 땅을 보며 걸을 때나 비에 젖은 바위에 지이익 미끄러질 때는 경쾌한 임펙트와 스윙감 있는 7번이 알맞았다.

과천은 복받은 도시다. 청계산과 관악산,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무수한 계곡들은 접근성이 매우 좋아 언제고 찾아가 놀고 즐기기 편해 보였다. 과천 시내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비를 맞고 있는 너덜너덜한 플랭카드가 보였다 -- 정부청사의 세종시 이전에 대한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었다. 공무원들이 빠져 나가면 과천이 삼류 도시가 되는 걸까? 집값 비싸고 여전히 생활 여건은 좋아 보이는데? 비 맞고, 푹 젖은 옷을 입은 채 돌아오는 버스에서 차가운 에어컨 바람을 쐬니 몸이 덜덜 떨렸다.

하늘의 물레, 우르술라 르귄:  딱히 재미는 없었던 그냥 '르귄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같은 소재를 다룬 적이 있는 젤라즈니와 어쩔 수 없이 비교가 된다. 이 글은 공감각 뿐만 아니라 비주얼이 너무 약하다. 인용:
역병이 누구러든 지 겨우 10년 만에, 결딴났던 인류문명은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서 지구 궤도로, 달로, 화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들을 만났다. 형태 없고 말 없고 분별없는 만행을, 우주의 어리석은 증오를.

그는 차로 돌아가는 그녀의 뒤쪽에 손전등을 비추어 주었다. 개천이 소리쳐 대고, 나무들은 말없이 늘어져 있고, 하늘에서는 달이 노려 보고 있었다. 외계인의 달이.
불가능은 없다 Physics of the Impossible, 미치오 가쿠: 오랫만에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은 책. 저자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SF를 좋아하는 작가가 SF 소재로써 자주 등장하는 불가능을 3단계로 분류한 솜씨가 몹시 좋았다. 인용:
새로 발견된 과학적 진실은 반대론자들을 설득하여 깨닫게 함으로써 성공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반대론자들이 모두 죽은 후  새로운 진실에 익숙한 신세대가 과학을 이어받았을 때 비로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수구꼴통이 다 죽어야 세상이 바뀐다는 뜻이다.
물체복사기가 기적의 도구 임에는 틀림없지만, 사실 자연에는 이와 같은 기적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고기와 야채를 9개월 동안 꾸준하게 공급하면 하나의 생명이 만들어지지 않는가! 생명이란 원자 규모에서 물질을 생체조직으로 변환시키는 천연 나노공장의 산물이다.
이렇듯이 미치오 가쿠는 고기와 야채같은 열정과 지성은 물론, 여제자들에게 사랑받을 귀여움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앞으로 생명체는 은하 전체, 또는 그 이상의 영역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오늘날 생명체는 우주를 오염시키는 사소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영원히 그런 존재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 -- Astronomer Royal Sir Martin Rees
그거 참 위안이 된다.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된 사람은 남의 집에 침입하여 물건을 훔치고, 개인적인 원한으로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있는 사람을 마음대로 풀어주는 등 방종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 투명인간이 되었는데도 이런 짓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불쌍한 얼간이라며 놀릴 것이다.
토리그비 에밀슨은 불확정성 원리를 놓고 다음과 같은 농담을 떠올렸다. "역사학자들은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다가 불확정성 원리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도 일리있는 주장이다. 어쩌다가 놀 시간이 나면 에너지가 부족하고, 시기가 적절하면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웃기는 과학교양서가 정말 좋다.

라이어, 존 하트: 해피엔드로 끝나는 시골 스릴러. 맹점에 속아 넘어가 범인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해 약이 올랐다. 나중에 같은 저자의 글을 읽어도 재미있을까? 한 권쯤 더 읽어봐야 알 것 같다. 뒤져봤더니 달랑 한 권 번역되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한 가지 더, 이오인 콜퍼: HHGTG 팬픽인데 원작삘이 잘 살아(심지어 더글라스 아담스를 능가하는 광기어린 오버질까지) 그럭저럭 즐겁게 읽었다. 더글라스 아담스는 죽어서 가죽을 남겼다. 많은 팬들과 함께...

제빵왕 김탁구: 시청율이 무려 40%나 되는 시리즈. 일본 드라마인 줄 알았다. 20개의 에피소드를 이틀에 걸쳐 봤다. 앞 몇 에피소드가 막장스런 아침 드라마 분위기지만 맥락은 일본 드라마처럼 진행되고, 일본인 캐릭터에 비하면 훨씬 감칠맛나고 매운 한국형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배역 이름은 김탁구 밖에 기억나지 않는데, 회장님과 사모님의 패션은 썩 좋은 눈요기꺼리였다. 드라마 탓에 빵 만들기가 만만해 보였다. 오븐을 구입할까? 저녁에 반죽을 만들어 놓고 아침까지 숙성시켰다가 오븐에 굽고 그 빵을 딸애한테 먹이는 것이다. 아이는 울면서 빵을 먹으며 '맛있어요'라고 말하고.

How I Met Your Mother:  코메디 맞지?
"You have to choose right now."
"I choose bimbos."
 "What?!"
"Hey, Lily, bimbos make me happy. Bimbos make me feel alive. Bimbos make me want to pretend to be a better man."
"No, no, this is just a defense mechanism. because you're afraid of getting hurt. You're just confused."
"Oh, I'm not confused, Lily. You know who is confused? Bimbos. They're easily confused. It's one of the thousand little things I love about them. I love their vacant, trusting stares; their sluggish, unencumbered minds; their unresolved daddy issues. I love them, Lily, and they love me. Bimbos have always been there for me, through thick and thin. Mostly thin."

EIDF가 시작되었다. 바빠서 한 편 제대로 감상할 새가 없었다. 일주일 만에 페스티벌이 속절 없이 끝나버렸다. 하지만  torrent가 있다.

스페이스 투어리스트
스페이스 투어리스트. 국민 세금을 탕진해 뽑기 이벤트를 해서 최종 선발한 어떤 한국인 행운아의 시시한 얘기에 관심이 없어 언론 기사를 제대로 본 적이 없지만(신문 연예면 가십 같달까?) , 이 다큐는 꽤 재밌다. 한국 정부 관료의 머리에 꽉 찬 똥이 우주개발사업을 뽑기운, 날림공사, 영성체험 또는 대국민 홍보사기극 따위로 만들어 버렸는데, 정부란게 하는 짓이 생각없고 병신같아야 진정 정부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민간 우주여행을 다녀온 안사리는 그 유명한 안사리 엑스프라이즈를 만들었고, 그게 훗날 구글 루나 엑스프라이즈(GLXP)로 발전했다. 다큐멘터리가 의외의 방향으로 진전되었다. 후반 40분은 그야말로... 아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찰스 시모니는 돈지랄로 우주관광하는 백만장자로 나와 늘그막에 훈련받느라 고생했다. 천칭의 무게 중심이 잘 맞았던 다큐였고, 러시아가 우주관광산업으로 살림이 나아졌는지 도표를 곁들여 보여줬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Sherlock
Sherlock. 셜록 홈즈의 현대판. 셜록홈즈의 미친 광팬들에 대한 예우도 갖췄고 현대적인 연출 솜씨도 그렇고 인물 조형도 흠 잡을 데가 없다. 영화판의 느끼한 BL물스런 분위기도 없었다. 왓슨이 좀 찌질해 보여서 안 쓰럽긴 한데, 그나저나 어디서 저런 매력적인 주연 배우를 구했지?

Warehouse 13
Warehouse 13 Season 2. 시리즈가 재개된 줄도 모르고 있었다. 등장하는 가젯 대부분에 고풍스런 역사가 스며 오덕향을 제대로 풍겨줘야 하는데 그렇질 못한데다 소재가 빈약하니까 수퍼내추럴같은 등신 콤비물로 만들 기미가 보여 2기 나오면 망할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SF 개그물은 우울한 인생에 빛이 되주는 관계로 뭐든 환영한다.

Warehouse 13
Warehouse 13. 빅토리안 스팀펑크스러운 안틱 통신기를 제대로 활용해 보라고. 디자인만 있지 그걸 받쳐주는 잘 연결된 고증과 스토리(덕후담)가 없잖아?

Warehouse 13
Warehouse 13. 에셔 볼트를 거니는 두 사람. Syfy 채널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라 그런가? 요즘 SF 추세일지도 모르겠는데, SF라는 어깨뽕을 빼고 아이디어나 소재, 주재가 생활밀착형 편재를 지향하며 대중에게 먹히는 드라마가 되기 위해 꾸준히 형변환을 해 온 몇몇 드라마가 있어왔다. Warehouse 13 뿐만 아니라 Eureka, Kyle, Fringe 등은 SF같지 않은 SF였다. 심지어 유레카의 컴퓨터 기크와 웨어하우스의 컴퓨터 기크는 기탄없이 서로의 세계를 방문하는 사이다. 없는 살림에 엔터테인먼트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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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tour

잡기 2009. 10. 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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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 배경음악: http://www.youtube.com/watch?v=mP6-j9pxTGI 사연: "어이 아줌마 여긴 청계산 꼭대기야. 생각나서 찍었어. 아내한테 보약은 역시 일없이 히죽히죽 웃는 남편 얼굴 아니겠어?난 주중엔 바쁘고, 바람 안 피우고, 행복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삼시세끼 먹으며 쓸쓸히 잘 지내고 있어. 소울이 끼니 거르게 하지 말고, 장모님이 아줌마 외국 나간 거 눈치채셨으니 알아서 잘해 봐. "

미팅하러 거래처에 갔더니 적외선 카메라가 입구에 있었다. 몇 개월 전에 신종플루 상황이 pandemic이라더니 드디어인가? 치사율이 독감보다 낮은 신종플루에 떨 것 없지 싶은데... 이럴때 항공권 싸니까 마누라/애 여행 보내고, 좀 있으면 노인네들 무료 백신 맞게 해 줄테니 관광주 뜰테고, 그러니까 하나투어 주식 사재기 해 둬야지 싶은데... 다들 벌써 그렇게들 했나? 바쁜 관계로 투자에는 까막눈이다.

바람 빠진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다가 다리에 알이 배겼다. 다리에 알이 배기다니... 신선했다. 잘 안 나가는 자전거를 식은땀을 흘리며 한밤중에 차들에 쫓기며 정신없이 몰았으니까. 쇼핑몰에서 2500원짜리 자전거 펌프를 주문했다. 배송료가 2500원이다. 1400원 짜리 Wheel light와 2400원짜리 백라이트도 샀다. 밤에 도로를 달리는 것이 으시시해서 대비를 제대로 해놓을 생각이다. 2500원짜리 펌프의 성능이 의외로 좋다. 그 전에 사용하던 25000원 짜리 펌프는 다루기도 어렵고 바람이 들어가지 않았다.

9/26 광교산에 올라갔다. 자전거를 타고 광교공원까지 갔다. 천천히 가도 20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것 같다.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잠궈놓고 출발했다. 입구를 잘못 알아 경기대 수원 캠퍼스 입구 옆으로 올라갔다. 광교산은 수원을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한 세 군데 화장실이 있는 곳이다. WSJ에 그 아름다운 화장실 사진이 실렸다던데, 아쉽게도 화장실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광교산은 가족 나들이로 올라가기 적합한 야트막한 육산이다. 수원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광교산에 MTB 싱글트랙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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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가 참 많다. 소나무는 피톤치드하고 상관이 없었나? 그럴리가. 하지만 숲에서 별 냄새가 안 난다. 산짐승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듯. 소나무 마다 아바멕틴벤조에이트 주사 날짜가 적힌 명패를 붙여 놓았다. 집에 와서 조사해 보니 소나무재선충 방재용인데, 아바멕틴과 emamectin benzoate를 헷갈리게 적어 놓은 듯. 아바맥틴은 솔입혹파리와 솔껍질깍지벌레 양쪽에 방재 효과가 있고 에마멕틴 벤조에이트는 솔껍질깍지벌레에 효과가 있단다. 요새는 그 약품을 난초에도 사용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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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쯤 올라가도 영동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차량 소음으로 시끄러웠다. 광교터널이 광교산 아래를 지나갔다. 아하, 이래서들 산에 터널 뚫지 말라고 아우성이군. 사람들로 북적이고 심한 차량 소음에 산새 소리가 들리지 않아 산이 영 마음에 안 든다. 형제봉을 거쳐 시루봉 근처에서 점심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백운산, 지지대까지 갈까 하다가 김이 새서 그냥 내려오기로 했다. 상광교 버스종점에서 13번 시내버스를 타고 자전거를 묶어둔 광교공원까지 내려왔다. 재미없는 산이지만, 상광교 버스 종점부터 산행로 초입까지 조성해 놓은 공원은 아이 데리고 놀러오기 괜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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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 병과 쪽파 좀 사다가 부침가루로 부친개를 해먹었다. 부친개 만드는 솜씨도 점점 나아지는 것 같다.

10/2 추석 연휴 첫 날, 할 일은 없고 집에 붙어 있자니 근질근질해서 도시락을 싸들고 청계산으로 향했다. 가장 가까운 곳이 4호선 인덕원역. 박사장님은 입만 열었다하면 인덕원 근처가 술먹기 좋다고 갖은 칭송을 늘어놓았는데 사실 한 번도 술마시러 인덕원에 온 적은 없었다. 2번 출구에서 1번 마을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질려 택시를 타고 청계동을 지나 청계사까지 올라갔다. 택시 요금은 6300원, 인덕원역 앞에서 청계사까지 약 15분 정도 걸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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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사로 오르는 계단. 남들은 버스 타고 와서 청계동에서부터 청계사까지 지루한 평지를 꾸역꾸역 걸어오는데 청계사에서부터 시작하니 좀 민망하다. 산행 마치고 나서 생각해보니 청계사에서 시작하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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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일도 아닌데 마당에 색색이 걸려있는 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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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사의 볼꺼리가 극락보전이지만  절 뒷편의 난간에 잔뜩 올려 놓은 각양각색의 동자승 보는 것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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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봉안한 자갈로 만든 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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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불 옆의 본격적인 산행 코스. 저번 주에 간 광교산은 하나도 재미가 없었는데, 다짜고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업힐(?)을 하게되는 이 길이 마음에 들었다. 계단과 흙더미, 돌무더기를 밟으며 꾸준히 300m 가량의 표고차를 올라가면(거리는 대략 5-600m쯤?) 첫번째 전망대가 나타난다. 오랫동안 산에 안 올라왔지만 그래도 단련되어서 인지 별로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 쉬지 않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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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대공원과 맞은편의 관악산이 보였다. 길을 잘못 들어 이수봉까지 갔다가 이곳 전망대로 다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목마다 막걸리를 파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귀동냥으로 들으니 매봉 앞에 있는 막걸리 장사 아저씨가 진짜란다. 왜냐면 그 아저씨는 TV에 나왔고 다른 사람들은 TV에 나오지 않아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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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땀이 곧 말라 시원하다. 망경대 앞으로 올라가기 전 공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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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대에서 바라본 과천 대공원의 동물원 위에 있는 저수지. 망경대는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망경대 앞뒤로 있는 작은 봉우리가 정상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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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바위 앞. 여기서부터 하산길 내내 툭하면 '서초구가 등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어쩌구저쩌구 등산로/계단/공원'이 쉴 새 없이 튀어나왔다.  다른 곳에서는 그냥 입 다물고 등산로/계단/공원 만드는데 유독 서초구만 오두방정을 떨며 위화감 생기게 하는 이유가 뭘까? 서초구는 돈이 많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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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봉을 거쳐 화물터미널로 가면 소위 청계산 종주코스가 되는데, 그리 가지 않고 대공원 쪽으로 내려왔다. 돌아오는 교통편이 불편해서다. 그런데 의외로 이쪽 길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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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사람이 거의 없고 숲이 숲 같이 생겼다. 작은 개울을 따라 내려가면 작은 폭포도 눈에 띈다. 냇가에 앉아 발 담그고 놀고 갈 수 있는 호젓한 곳이다. 조금 더 내려가니 서울랜드로부터 떠들썩한 소음이 들린다. 현대미술관에 들렀다 갈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역으로 향했다. 미술관은 데이트나 하러 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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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본 포스터. 이게 뭐야? 지구를 구하려면 기도해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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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사세요' 집에 돌아와 세계적인 인도주의자인 칭하이 무상사의 비디오를 유튜브에서 부러 찾아 관람했다. 십여개국의 언어로 된 서브타이틀이 화면의 태반을 가렸다. 별로 틀린 구석이 없는 뻔한 얘기를 줄줄이 늘어놓는다. 그러게, 채식하고 육류 소비를 줄이면 지구를 구할 수 있지. 아무렴. 아무래도 대순진리회나 사이언톨로지와 비슷하지 싶다. 소정의 수수료를 헌금하면 칭하이 무상사의 위대하고 뻔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겠다.

추석 연휴 중 자전거를 타고 슬슬 시내 주행 하다가, 주유소 앞에서 사고가 났다. 주유소를 빠져 나오던 코란도가 나를 미쳐 보지 못하고 자전거 옆구리를 박았다(전방 주시 안 했음). 차가 덮치는 걸 뻔히 보고 자전거를 급히 틀었지만 그때까지 나를 보지 못한 자동차가 좀 더 밀고 들어왔다. 딴전 피우고 있었단다. 자전거와 함께 쓰러졌다. 골반 윗쪽 사타구니와 정강이 아래, 복숭아 뼈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절뚝거렸다. 왼쪽 손목 인대가 '또' 늘어났다. 차체가 낮은 승용차였다면 다리가 범퍼 밑에 자전거와 함께 깔리면서 부러졌을 것이다.

자전거가 박살났지만 어째서인지 응급실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저번처럼 뼈에 실금하나 보이지 않았다. 입원하겠습니까? 라고 묻길래 아니 라고 대꾸했다. 나이롱 환자가 될 생각은 없다. 이번 주에도 일 때문에 바빠서 그럴 여유가 없다. 주사 맞고 드레싱만 하고 병원을 나왔다. 최근에는 내가 먼저 사고낸 적이 없다. 그래도 몇 번 인가 연달아 죽을 뻔 하게 되니 간담이 서늘하다. 그렇게 조심했건만, 상대방의 과실로 벌어지는 사고는 어쩔 수가 없다.

가해자가 아는 바이크샵에 반파된 자전거를 맡겨 '하루종일' 수리했다. 하지만 프레임이 비틀린 것인지 영 주행감이 괴상하여 가해자 측과 협의해 비슷한 가격의 새 자전거를 사기로 했다. 치료비는 응급실 검사비+주사+약값 해서 75000원 가량 나왔다. 자전거는 30만원 안쪽에서 알아보기로 했다. 늘 그래왔듯이 살아서 다행이다.

10월 28일 보궐선거에 손학규는 끼지 않았다. 이재오 역시 이번 보궐선거에 나올 수 없게 되었다. 10월 28일 선거를 위해 찬찬이 정보를 수집중이다.

한동안 EIDF 다큐멘터리를 즐겼다. 내가 아는 베르너 헤어조크는 항상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의 독일 억양이 억세게 느껴지는 영어 나레이션에 묘한 중독성마저 있다. 이번에 EIDF에서 틀어준 헤어조크의 다큐멘터리 하나하나가 주옥같다.

헤어조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구두를 끓여 먹었다('베르너 헤어조크, 구두를 먹다'). 스페인 침략 당시의 그 유명한 광기의 기록을 드라마타이즈한 '아퀴레, 신의 분노'도 보았다. 식인종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주고받는 대화: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고기가 떠내려온다' . 마지막 장면과 첫 장면이 대단히 인상적인데, 알고봤더니 첫 장면은 와나픽추에서 찍은 것이었다(예전에 여행할 때 마추픽추보다 와나픽추에 기어 올라갔던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비롯한 여러 씬을 우르밤바 강에서 찍었다. 아퀴레, 신의 분노의 주연 배우 킨스키를 다룬 '나의 친애하는 적'도 재미있었다. 킨스키는 노스페라투에 나왔던 불쌍한 흡혈귀.

그 다음은 티모시 트레드웰의 죽음을 다룬 '그리즐리맨'을 보았다. 티모시 트레드웰은 자기가 그토록 좋아하는 그리즐리 곰에게 살해당했다. 그가 손수 찍은 비디오를 보면 자기가 곰들을 이해한다고 굳게 믿으면서 곰들 무리에서 일 년에 1-2개월 함께 살았는데, 그동안 안 죽은 것이 오히려 신기했다. 트레드웰은 곰들을 이해하겠지만 곰들이 트레드웰을 이해할 리가 없으니까. 북미지역에서 가장 무서운 곰이 내가 알기로 흑곰이다. 만나면 다짜고짜 죽이니까.

헤어조크가 ' 난 또다른 펭귄 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다'면서 찍은 것은 남극에 모인 가지각색의 사람들의 일상사를 다룬 '세상 끝과의 조우'였다. 뭐 그의 뜻대로 그럴 생각은 없었겠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렇다고 먹이를 사냥하러 바닷가에 가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다가 문득 결심을 굳힌 듯 갑자기 산으로 가는 미친 펭귄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아무 것도 없는 산에 가는 미친 펭귄을 보니 남 얘기 같지 않았다. 남극에 간 사람들과 산으로 올라가는 펭귄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헤어조크가 펭귄  농담을 한 것이다.

EIDF를 통해 이란 팔래비 왕조의 몰락과(뭐 아는 얘기라서 별 재미가 없을 것 같았는데 흘낏 본 장면에서 팔래비 왕조의 마지막 왕비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2007년 버마 항쟁의 기록도 봤다. 버마 생각을 하면 드라마 philanthropist 와 내가 미얀마에서 만난 사람들 생각이 나서 우울해진다.

양곤의 스웨다곤에서 데모가 시작되었다. 화면을 보아하니 스웨다곤의 남문이다. 버마에서 데모하던 스님들의 구호는  이랬다:
생명이 있는 자들은 모두 동쪽으로
삼라만상이 모두 자유로워지기를
두려움과 번뇌와 가난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기를
구호가 정말 마음에 든다. 데모를 주도하던 스님들은 심하게 구타 당했다. 맞아 죽기도 했다. 최근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 치 여사와 대화를 시도했다. 여전히 philanthropist란 미국 드라마가 위선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냈다. 도아님 같은 분이 통전선교를 한다고 비난하는 월드비전을 굳이 옹호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생활비하고 남은 돈이 있으면 마누라 몰래 월드비전 같은 곳에 기부하는 정도지.  세상의 정의 실현에 관심 없다. 철학에도 관심없다. 선교를 하건말건 애새끼 배나 채워줄 수 있으면 된다. 나처럼 인간성에 깊이 실망한 사람들이 아마도 행동을 자신에 맞춰 커스터마이즈하지 싶다. 얼터드 카본에서는 그것을 '복수의 개인화'라고 했다.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라고 설득하는데 소비하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지 싶다. 어렸을 적엔 말재주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던 적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사회복지 변호사 되겠다던 제이님은 요즘 뭘 하고 있지? 애 낳지 말고 개인의 행복을 희생하며 매진하라고 기회될 때마다 북돋워 줘야 하는 거 아닐까? 아니야 그냥 매너나 지키면서 가만히 있자.

그나저나 EIDF 만세! 부디 장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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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고 프락시. 첫 편을 몇 년 전에 보고 기대했었다. 이제서야 전 편을 보게 되었는데, 이 애니의 레종 데트르가 뭔지 사뭇 궁금하다. 타이틀곡만 좋았다. 알고 보니 cogito, ergo sum으로 반병신스럽게 연명하는 평범한 쓰레기였다.

트랜스포머2. 딱 13세 수준의 영화같은데? 옵티머스 프라임이 옛날에 프랑스 병사들이 사격 연습용으로 쏴대던 스핑크스 옆에 듬직하게 서 있다. 화면이 정신 사나워서 전 편보다 재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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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e in the Wild. 처량하게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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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말고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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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에서 50일을 버티며 주린 배와 외로움에 울었다. 만약 내가 저 상황이면 잘해낼 수 있을까? 구호품만 주어진다면 90일은 문제 없이 버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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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으로 돌아와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며 카메라로 찍는다. alone in the wild는 3화로 끝났다. 그가 실패했다고 비웃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깨를 다독여주며 위로할 생각도 없다. 그저 이런 '산에 간 미친 펭귄' 프로그램이 또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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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a vista

잡기 2008. 9. 29. 16:13
약 두 달 전쯤 컴퓨터에 비스타를 설치했다 -- XP가 단종되고 앞으로 개발할 SW의 호환성 여부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가상머신에 vista를 설치해서 작동 여부만 체크하는 정도로는 안될 것 같았다.

설치하고 나서 주욱 써 본 결과, 이 놈에 OS에 처음 가졌던 인상, 어쩐지 기분나쁘다, 은 바뀌지 않았다. 유려한 UI 빼고는, 줄이고 줄여도 늘 1GB의 주 메모리를 잡아먹는다 -- 2GB 밖에 없는 주 컴퓨터 메모리 보다 종종 더 많은 메모리가 사용한다. 그래서 평소처럼 열댓 개의 창을 띄워 쓰는게 불가능하다. 1. 내가 모르는 뭔가가 배후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기분 나쁜 것이고, 2. 모르기 때문에 알려고 해도 정보가 부족한데다, 3. 그 모르는 것을 지워 나가다가 맛가서 세 번째로 vista를 설치했다.
 
정품 인증 메시지가 나와서 지웠다. 비스타 쓰다가 XP 사용하니까 컴퓨터가 두 배는 빨라진 것 같다. 흡사 새 하드웨어를 구입한 효과를 맛보았다. Windows 7이 내년 중에 출시된다면 Windows Vista는 아마도 사라지겠지.

9/3, Google이 Chrome 베타 버전을 런칭했다. 사용해보니 Firefox보다 낫다. sandbox와 secret 모드가 바로 내가 필요했던 것. multi processing이 뭔 대단한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 javascript 가상 머신인 v8의 성능은 생각 이상으로 만족스럽다. 그 때문에 구글 아이, 구글 리더, 지메일 등등 크롬과 궁합이 잘맞는 사이트에 자주 들락거렸다.

8살엔 '칭찬', 12살 이후엔 '꾸중'이 효과적
-- -- 실험을 위해 그런 불편한 모델을 만들어 놓고 '아직 알 수 없다'느니, '아마도 두 가지가 함께 작용한 결과'라느니 말하는게, 참, 여러 모로 성의가 없어 보인다.

中, 우유 1톤으로 50톤까지 불려 -- 오, 천잰데?

Macross Frontier 마지막 장면. 이건 뭐... 툭하면 튀어나오는 삼각형부터... 막장에는 민메이 로켓까지 등장하시고... 이전 마크로스 시리즈를 이것 저것 갖다 붙여 총정리한 느낌이랄까? 음악이 워낙 칸노 요코 스타일이라 (이젠) 물린다. 감상평: 잼없다.

Art of Travel
Art of Travel이란 영화를 보았다. 'Do not go where the path might lead, go instead where there is no path and leave a trail' 라는 랄프 왈도 에머슨 형님의 한 말씀으로 시작한다(나같은 Mr. Plan에게도 계획대로 여행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하, 저 곳은 내가 라파즈에서 하루에도 몇차례 오르락 내리락 하던 곳, 볼리비아 최대의 번화가. 저 위 언덕으로 시장과 여행사 골목과 게스트하우스 촌이 있다.

그건 그렇고,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은 서점에서 읽는 내내 what a waste, what a sucks를 연발했다 -- 내 보기엔 갖가지 눈꼴사나운 지랄을 떤다.

별 기대하지 않고 보기 시작한 영화, 여행의 기술은 신선했다. 예전 자극과 영감에 관한 추억이 떠올랐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결혼 하게 된 친구가 결혼을 취소하고 식장을 뛰쳐나와 캐리어 하나 달랑 들고 공항에서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니카라구아의 마나구아에 도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에스빠뇰 한 마디 모른 채, 전형적인 바보 그링고처럼 게스트 하우스에서 숨겨둔 돈을 털리고 강도를 당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럭저럭 여행에 적응할 때쯤, 파나마시티에서 우연히 만난 한 부부와 콜럼비아의 다리엔 갭 최단 기간 통과에 도전한다. 그리고 정말로 마체테 한 자루 들고 정글을 336일만에 뚫고 나온다. 오오!!

중남미를 돌아다니는 병신같은 그링고에 대한 욕설을 포함해 이 영화의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갔다. 이렇게 배낭여행자와 여행을 다루는 영화는 레오날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The Beach 이후 아주 오랫만인 셈이다. 63년 마다 한 번씩 용출한다는 전설의 ulti geyser를 찾아 인생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한 좋은 여자를 버리고 어렵게 볼리비아의 살라 데 유우니를 찾아 가지만, 가보니 친구들한테 사기당한 것이다.

여행자들의 개뻥이 가득 섞인 이바구를 믿고 자기 삶을 바꾸어 찾아간 비스타는 흔히 그 모양이다. 정말 엄청 공감 가는 대목이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영화는 이렇게 말했다; mastering the art of travel. ... It's way of life(그렇다. 삶의 방식이다). unknown to the majority. it's almost impossible to convey to your friends back home over the course of a single conversation(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여행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않았다/안할 것이다). The art of travel is to deviate from one's plan. 여행은 길을 벗어나면서 시작한다. 자의든 타의든. 난 길에서 벗어나는 바람에 지금 아내와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살게 되었으며,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예측가능한 삶에 천착한다. 그것이 지금은 내가 생각하는 부에나 비스타가 된 셈이다.

Amazing Race
Amazing Race Season 12. 두 친구가 우승하길 바랬다. 우승했다. 이들만 유일하게 '배낭여행자' 같이 생겨서랄까? 이 재밌는 프로그램은 11개 팀에게 목적지와 경비를 주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미션을 수행하다가 가장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팀에게 상금 백만불을 준다. 참 아쉬운 것은 여기 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니느라 여행을 제대로 즐길 틈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것. 아내와 내가 팀으로 출전하면 꽤 잘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잘하는 것은 둘째치고, 아내나 나는 피차 같이 여행하고 싶은 생각들이 없지만, 프로그램이 몹시 매력적이다. 어메이징 레이스 아시아판에 한국인 형제가 출연해 우승했다는 뉴스를 얼마 전에 보고 찾아본 것이다.

Man Vs. Wild: Cooper Canyon. 이전 편까지는 부싯돌, 칼 따위를 들고가는 것을 야유했지만, 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의 악어 투성이 늪지대를 통과하는 편과, 얼음과 불의 나라인 아이슬랜드 편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렇게 주인공이 고생하거나, 제작진이 주인공을 학대하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설정이라느니 어쩌구 얘기들이 많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인간대 야생이란 프로그램의 목적은 애당초 주인공이 꽃미남 서바이버 먼치킨을 보여주는 데 있는 것 같지 않다 -- 그러기에는 주인공이 너무 못 생겼다. 마누라와 자식도 있다. 게다가 매 회 마다 기어다니는 온갖 벌레를 목구멍으로 삼키고(살기 위해) 똥구덩이를 굴러다니고 짐승이 덮칠까봐 늘 밤잠을 설치는데 그런 것 때문에 주인공을 부러워하고 대리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따뜻한 집에 누워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이렇게 한가한 얘기를 늘어놓는 것에 늘 감사한다.

당장 써먹을만한 것으로, 인간 대 야생을 통해 냇가에서 티셔츠를 이용해 물고기 잡는 것이나, 신발끈을 묶어서 나무 타는 것을 배웠다. 눈을 파서 쉘터를 만들 때 차가운 공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구멍을 파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정말 뼈저리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일요일에는 아내가 놀러 나가서 혼자 애 보며 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발(EIDF) 참가작들을 하루 종일 보았다. 볼만한 것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볶음밥을 잘하는 비결을 깨달았다. 저녁으로 맛있는 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양파로 단맛을 조절. 당근과 양파를 잘게 썬다. 햄, 피망, 오징어, 새우 따위 부재료가 있다면 그런 것들도 썰어 넣던가. 기름에 마늘향이 배이게 하고 계란을 까 넣어 스크램블 하듯 섞다가 식은 밥을 넣고 센 불에 볶는다. 밥에 코팅이 적당히 되면 당근과 양파를 투입. 부재료에 따라 30초~2분 정도 익히다가 불 끄고 마지막에 소금과 후추를 투입해 한 두 번 뒤섞는다. 여기에 생선 간장 뿌리고 오이를 얹으면 태국식 볶음밥이 된다. 그 동안 볶음밥을 하면 뭔가 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황금 볶음밥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볶음밥이 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이었다(볶음밥에는 무조건 계란이 들어가야 한다). 라면 끓여먹는 시간이나 볶음밥 해 먹는 시간이나 그게 그거라서 조금씩 변주해가며 자주 해먹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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