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송년회 주최 해야 하는데 나흘 동안 참석자들에게 문자 한 통 안 보내고 뭐 하는건지 모르겠다. 올해 계획된 송년회는 여섯 차례.
26일 가족과 함께 영등포에 있는 씨랄라에 갔다왔다. 흡사 욕설처럼 들리는 '씨랄라 워터파크'는 서울 근교 워터파크 중 싸고 접근이 용이한 것을 찾다가 나온 것. 20% 할인해서 성인 주말 요금 2만원, 36개월 미만 아이는 무료. 흡사 2만원짜리 목욕탕 같았다. 영등포 문래역 근처 지하. 싸우나+실내 수영장 형태. 흐르는 물길은 약 130m로 짧은 편, 미끄럼틀은 무료, 온탕이 몇 개 보이고, 물이 따뜻한 편. 미역국 6천원. 음료수는 반입 가능하나 음식물은 반입 불가. 아내나 나 때문에 간 것은 아니지만 4시간 놀고 나니 지루해서 나왔다. 집에 와서 스테이크를 구워 먹었다.
"현대인이 하루에 하늘을 세 번 이상 쳐다볼 수 있으면 내면이 엄청 아름다운 사람이래." -- '싸우자 귀신아' 중, 하늘을 꽤 자주 보는 날더러 내면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마저도 내 마음이 아름답지 않을꺼라는 편견을 가졌다. 허영만의 '꼴'을 보면 답이 나온다. 내 얼굴은 고지식하고 고리타분한 골통처럼 보이고, 40대쯤 되면 재산을 깡그리 까먹을 관상이다. 그런 것들에 몹시 관조적인 편이다. 되레 나보다 더 '못'생겨서 40살이 되도록 총각으로 살아가는 마법사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내려다볼 수 있는 아래가 있다는 것은, 경쟁의 맥락에서 흐뭇한 일이다. 생각난 김에, 40살이 되도록 총각인 아저씨들, 메리 크리스마스.
목욕탕에서 아버지가 아이에게 말했다. "수건으로 머리부터 닦고 그 다음에 발을 닦어." "왜요?" "머리부터 닦는 거야. 발은 아래에 있는 거니까" 아버지가 아이에게 발이나 머리나 자지나 민주적이고 평등하다고 가르쳐 주지 않는 건가? 지저분한 발 아래 있는 물건을 던짐으로써 부시를 모욕하겠다는 문화도 있지만, 그런 문화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부시는 신발을 피한 후 낄낄낄 웃고 있었다. 말 잘하는 사람을 대하는 대중의 이중적인 태도, 똑똑한 여성에 대한 지나친 편견. 여성의 가슴과 힙 라인, S라인인지 하는 것들의 가치를 과하게 높게 평가하는 희안한 원시문화권에 살고 있어서인지 목욕하고 나와서 발 닦은 수건으로는 머리를 닦지 않는 비합리적인 아버지의 조언도 이상하게 들리진 않았다.
머리, 발의 지위가 다르다는 이상한 말을 아이에게 할 생각이 없지만 음식을 오른손으로 먹는 곳에 가서는 바보같은 짓을 못하게 해야겠지? 동네의 국립 보육원 순번 108번째 아이. 몇년을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사립 유아원/유치원 보내야 하는데 기본요금이 27만원이란다. 아이한테 뭘 배우길 기대하진 않지만(그림책 한 권 사준 적도 없고), 아내만큼은 전기톱, 망치질 하는 기술이라도 익혔으면 좋겠다. 아내가 일년 내내 DIY 사이트 돌아다니면서 뭔가 보긴 하는데, 실제로 뭔가 만드는 모습은 한 번도 못봤다.
올해의 사진. 얼핏 봐서... 이 사진들 중 그리스에서 사회에 불만이 많은 청년들이 데모 중 레이저 빔으로 경찰을 사격하는 것은 못 본 것 같다. 뉴스 사이트에서 처음 그 사진 보고 진짜 레이저인 줄 알고 놀랐다.
올해 읽어야 했을 책 목록 중 무려 47권을 읽지 못했다. 지하철에서 누군가 '경제학 콘서트'를 읽는 것을 보고(도서관에서 2년 내내 항상 대출 중인 이상한 책) 최근에 '행동 경제학'을 읽었다.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보람을 느낀 저술이다. 간결명료, 유연한 연결. 매 찹터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적절한 구성, 애당초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인간과 사회의 상호작용, 사회적 행동의 학문적 재구성.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재미없는 책들 때문에 욕지기가 올라왔는데 '행동경제학'을 읽으니 본래의 착한 심성으로 되돌아오는 느낌이다.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첫 번째 파트에서는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전통적 경제학의 모순, 두 번째로 노벨 경제학상 받았다는 프로스펙트 이론을 설명, 세 번째로 행동경제학의 커버리지 및 최근의 빛나는 연구 성과를 나열한다. 꽤 재밌어서 책을 사야 하나 망설이게 된다.
그 책에서 Monty Hall dilemma을 또 봤다. 벌써 몇 번째 보는 걸까? 무수한 논쟁, 그리고 두번째 문을 선택하는 것이 왜 확률을 증가시키는가(1/2이 아니라 2/3이 되는가)에 관한 여러 친절할 설명과 식을 보고도, 실제 확률이 1/2로 수렴하지 2/3가 되지 않겠냐고 어린 시절 프로그래밍을 해서 시뮬레이션을 한 적이 있다 -- 이해를 못했던 것이다.
'행동 경제학'의 첫 파트에는 아마도 마틴 가드너가 쓰던 종류의 책에서 보았던 재밌는 퍼즐이 여럿 나왔다. 예: 노트와 연필을 샀는데 합계 1100원으로 노트가 연필보다 1000원 비쌌다. 연필이 얼마인지 5초 이내에 답하라.
코스의 정리(Coase's Theorem)같은 흥미로운 주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주의깊게 언급된다. 요약 및 정리:
코스의 정리는 두 명의 당사자 사이에서 이해가 대립함으로써 발생하는 거래관계에 관한 정리다. 공장주 a와 강을 소유한 주민 b가 있다고 가정하자.
a가 소유한 기업은 공해를 발생시키는 재화를 생산하고, 이로 인해 강의 주인인 b에게 피해를 끼치게 됨으로써 a와 b의 이해가 대립하게 되었다. a는 공장주 입장에서 생산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강에 오염된 물을 방출할 권리를, b를 강 주인으로서 오염된 물이 강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을 권리를 갖고 있다. 결국 b는 a를 만나 협상을 할 것이고, 누가 자신의 권리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거래가 형성될 것이다. 예컨대 b는 돈을 주고 폐수 방출권을 살 수 있다.
코스의 정리는 당연히 wta(willingness to accept)와 wtp(willingness to pay)가 일치한다는 암묵적인 전제를 바탕에 두고 있다. 그러나 현재 코스의 정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즉 기업a가 공해를 발생시켰더라도 a가 그 재산을 생산할 권리를 소유하고 있는지, 또는 주민b가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지, 그 출발점의 차이가 보유효과에 따라 결정적으로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로, wta는 wtp의 약 7배에 달한다.
보유효과에 의해 발생하는 wta와 wtp의 괴리는 공공정책의 이론적 기초인 비용편익분석(cost benefit analysis)에 중대한 의문을 던진다.
상호 이해의 충돌과 경쟁 뿐만이 아니라, 호혜적 인간(Homo Reciprocans)과 경제적 인간의 괴리를 보여주는 것도 있다.
최종제안 게임. 2명의 참가자가 있다. 제안자는 초기금액 중 임의의 금액을 응답자에게 건네준다는 제안을 한다. 그 다음 응답자는 그 제안을 수락할지 거부할지를 결정한다. 수락한다면 제언대로 분배되고, 이익은 제인자가 700원이고 응답자는 300원으로 게임은 종료된다. 응답자가 제안을 거부했을 경우에는 양쪽 모두 이익은 제로인 채 게임이 종료된다. 양쪽 모두 경제적 인간이었다면 응답자는 1원의 제안이라도 0보다는 낫기 때문에 수락해야 한다. 제안자는 이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1원을 준다는 제안을 한다. 따라서 이익은 제안자가 999원, 응답자는 1원을 가질 것이다. 제안자의 평균제안액은 45% 전후, 최대치는 50%, 또한 30% 이하의 제안중 반 정도는 응답자에게 거부되었다.
제안자중 자폐증 환자의 1/3은 0을 제안했다. 자폐증 환자는 타인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하는 특징이 있어서, 응답자가 거부할지 말지를 대부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얄궂게도 이것이 경제적 인간의 행동 예측에 가장 잘 합치되는 예이다. 또, 경제학을 배우면 이기적이 된다는 통계도 있다. 죄수의 딜레마 실험 결과, 배신을 선택한 비율은 경제학 전공 학생이 60.4%, 기타 전공 학생이 38.8%.
'몰입(commitment)수단으로서의 감정' 절에서는 알아두면 유용한 생활의 지혜가 소개된다.
궁지에 몰린 유괴범 이야기: 유괴범이 겁이 나서 인질을 풀어주고 싶지만, 인질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쉽게 풀어줄 수 없다. 인질은 신고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 인질범이 믿을까? 유괴범은 어쩔 수 없이 인질을 죽일 지도 모른다. 인질은 어떻게 해야 할까?셰링의 제안은 이렇다: 숨겨야 할 정도의 비밀을 유괴범에게 고백한다. 없다면 유괴범 앞에서 부끄러운 행동을 해서 그 장면을 사진으로 촬영하게 한다. 그렇게 하면 설혹 인질이 경찰에 고발하여 유괴범이 잡히더라도 자기 자신의 비밀이나 부끄러운 행동이 밝혀지기 때문에 '경찰에 고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신뢰성이 높아지게 된다.
400회 100분 토론. "글쎄, 이 사람더러 좌익이래요!" 오랫만에 진중권과 유시민이 박터지게 싸우는 광경을 보나 싶었는데 보수 진영의 자중지난으로 쓸만한 이벤트 없이 무산되고, 개그콘서트보다 웃기는 방송 프로그램이 되었다.
웹에 떠도는, 언제 봤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래된 사진. 내년 전망이 너무 암울해서.
Dexter. 얼마 전에 3기 종영. 이 드라마 만큼은 몰아서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종영을 기다렸다. 전반부에서 저 양반이 죽을 줄 알았다.
Dexter. 어쩐지 남 얘기 같지 않은 연쇄살인범의 성장 드라마. 심지어 마지막에는 결혼도 한다. 3기의 주제는 everybody has little secret쯤 되려나? 2기의 말도 안되는(억지로 뜯어다 맞춘 듯한) 결말과 달리 덱스터는 제 할 일 잘해 가면서 사회인으로 거듭난다. 이쯤에서 막을 내렸으면 좋겠는데, 내년에 4기가 나올 모양.
007, Quantum of Solace. 전통 마초 스피릿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007처럼 잘 보여주는 시리즈가 있을까? 짝퉁 제이슨 본으로부터 역류했다고 하지만, 그게 원래 시대 흐름이다. 양복 입고 벌이는 첫 격투 장면은 흡사 자신의 나와바리에서 생사를 걸고 격투하는 사무종합기 상사의 두 샐러리맨을 연상케 했다.
블러디 먼데이: 항상 울먹울먹한 표정을 짓는 꽃미남 해커가 몹시 신경에 거슬리지만(너무 비현실적이라!) 그래도 얼핏 얼핏 보이는 해킹씬은 자문을 받아서 한 것 같다. 매가 날아다니는 CG가 나올 때마다 그 바보스러움에 온 몸이 뒤틀렸다. CG를 포함한 한심한 연출과 기복이 심한 갈등구조 때문에 재미 없는 드라마지만, 해커가 주연인 드라마라는, 정이 가는 소재 때문에, 끝까지 봤다.
Flight Of The Conchords. 두 명의 loser가 나와 눈물나게 거지같은 생쑈(뮤지컬)을 하는 드라마. 별 내용은 없고, 이유없이 처절하기만 한데 이 친구들(실제 뮤지션이라 함) 음악이 이상하게 쫀득쫀득 해서 계속 보게 된다.
Flight Of The Conchords. 어떻게 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상식있는 일반 시민으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두 실패자가 주인공이다. '뭐 이런 것까지' 볼리우드 스타일 뮤지컬 드라마로 만드는 흔치 않은 용기와, 열연을 펼치는 두 뮤지션의 열정에 탄복했다기 보다는... 뭐랄까, 음악은 rap이 바탕인데 이건 뭐, 하고 싶은대로 그냥 막 해 내는 프로그래시브다. 작사, 작곡도 이 두 주인공이 하는 것 같다. 웃기려고 웃기는게 아니라, 그냥 웃긴다. 안 보면 생각난다. 실존 인물들이 실재하는 자기 역할을 모델 삼아 시키면 안 하는 것 없이 하나도 안 쪽 팔려하고 다 해내는 이런 작자들이야말로 종합 예술가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