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acay -- boat 15min --> Caticlan -- air 1hrs --> Manila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북 루손, 마닐라 북부의 Angeles(앙헬레스)는 미국 주둔 시대의 대규모 공창으로 명성을 날렸다. 여전하다. 북 루손의 더 북쪽으로 세계의 여덟 번째 불가사의라 불리우는 rice terrace로 유명한 Banaue가 있다. 북 루손과 남 루손은 육로로 연결된다. South Luson에는 원뿔형의 mayon 화산이 있다. 남 루손 끝단에서 서쪽으로 Visayas 주의 섬들이 늘어서 있는데 Cebu 섬의 세부는 태국의 푸켓에 버금가는 필리핀의 주요 관광지다. 세부섬 옆의 Bohol 섬에는 괴상하게 생긴 Chocolate Hills가 있다. 세부섬 남쪽에 있는 거대한 Mindanao 섬에는 수많은 이슬람이 살고 있고 분쟁이 잦아 관광지로는 부적합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슬람에 대한 이런 기분나쁜 평가를 무시하면 아무도 안 가는 민다나오 섬이야 말로 가볼만한 곳일지도 모르겠다. 세부섬 북서쪽의 Panay섬 북단 끝에 위치한 Boracay 섬은 한국인들이 우글거리는 세계적인 관광지다. Panay 섬 서쪽으로 Palawan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던데, 어떤 작자의 말로는 한국의 해상 국립 공원과 태국의 코 피피 섬 부근을 합쳐놓은 듯한 곳이란다. 우리 여행의 첫번째 타겟이었지만 워낙 깡촌이라 카드가 안되고 교통편이 부실해서 안 갔다. 팔라완 섬에서 동쪽으로, 그러니까 파나이 섬 북쪽으로 Mindoro 섬이 있다. Puerto Galera를 중심으로 보라카이에 버금간다는 White beach와 나잇 라이프의 중심지인 Sabang beach가 있는데 마닐라에서 가까워 필리핀에 거주하는 한국인 유학생들, 또는 한국인들이 보라카이의 관광지스러움을 피해 가는 곳이다. 그곳도 가고 싶었지만 시간 때문에 가지 못했다. 그외에도 필리핀에는 알려지지 않은 무인도,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끝내주게 멋있는 개인 소유의 섬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다.
아내나 나는 섬 생활에 별다른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보라카이 섬에서의 며칠은 특히나 지겨웠다. 식사의 가격대 성능비가 형편없고 해변에 나가면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밤에는 바에서 틀어대는 음악으로 소란 스러웠다. 마침 그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딱한 일이지만 해변에 누워 별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전등빛이 사방을 밝혔다. 일부는 보라카이 섬이 주변 섬들과 가까워 충분한 고립감을 체험하기 힘든 탓도 있었다.
보라카이 섬을 빠져 나왔다.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로 향했다.
전날 asiatravel.com 사이트를 통해 Atrium hotel을 정가의 25%에 예약했는데 컨펌을 받지 못했다.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토요일, 일요일이었다. 아트리움 호텔에서 저렴하게 마닐라만의 전설적인 석양을 볼 수 있다. 전설적인 석양은 마닐라의 고질적인 매연 -- 대기중 부유물질 -- 때문에 생긴 것이다. 아트리움 호텔의 위치가 좋았고 가격대 성능비가 썩 괜찮았다. 아쉽지만, Malate 지구에서 아트리움 호텔보다 더 비싸고 시설은 후진 Adriatico 호텔을 대신 잡았다. 대략 26$ 짜리, 지금까지 잡은 숙소 중 가장 비싼 것이다.
마닐라에 도착하자 마자 호텔 맞은편의 hot pot 식당에 들어갔다. 신선로나 일본의 샤브샤브, 말레이의 hot pot은 재료가 조금 다를 뿐 기원이 같은 음식이다. 한국식 샤브샤브와 신선하고 맛있는 어묵을 넣는 말레이의 핫 폿을 좋아했다. 중국것은 기름기가 너무 많고, 일본 것은 맹숭맹숭했다. 식당 안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원래 계획은 곤지를 먹으려던 것이지만 식당 분위기를 보니 hot pot을 먹어야만 할 것 같다. 샥스핀으로 만든 딤섬도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입이 쩍 벌어지는 800페소 짜리 식사를 했다.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넣어 깔끔하고 담백한 맛은 없었지만 간만에 매운 소스를 만들어 건더기를 찍어 먹으니 땀이 나고 머리가 핑 돌았다.
너무 많이 먹어 움직이기 거북한 아내를 숙소에 남겨두고 거리를 이리저리 헤메다가 리잘 공원과 마닐라 박물관을 찾아갔다. 문을 닫았다. 중국 정원에 앉아 쉬다가 부산에 자주 갔다는 필리핀 아저씨를 만나 한 동안 얘기했다. 밤에 거리에 나다니지 말란다. 필리핀의 밤 거리가 약간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위험하다고 느낄 사람도 아니었다. 한국 여성 여행자들은 여행지에서 만큼은 위험에 대한 자각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어쩌면 동행이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그들이 혼자 낯선 도시의 밤거리를 걸어보기는 한 것일까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내에게 밤거리가 위험하다고 말하면 아내는 필경 날더러 겁쟁이라고 할 것이다 -- 겁쟁이 소리를 들어도 기분 상하지 않을 것이다.
선거 운동 때문에 광장이 시끄러웠다. 피노이들이 '글로리아'라고 부르는 현 대통령(글로리아 아로요일 것이다)을 밀어내고 선거에서 '에디'를 대통령으로 밀잔다. 광장에는 '에디 형제'의 사진이 그려진 노란 티셔츠, 수건, 모자를 입고 쓰고 두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에디 측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것인 줄 알고, 평소 에디 만이 필리핀을 구할 애국자라고 생각했기에 한 장 얻으려 했는데 티셔츠 한 장이 100페소란다. 그럼 저 많은 사람들이 자기 돈 내고 티셔츠를 샀단 말인가? 대단하군. 민중 봉기로 부패한 정부를 단죄한 실력 있는 국민들이다. 선거 운동을 축제처럼 재밌게 한다. 부럽다.
브라더 에디의 선거 유세.
Robinson Place의 2층, 3층, 4층 한쪽 wing의 대부분은 음식점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하루에 식사를 다섯 번 한다고 들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임은 알겠지만 건물의 3개 층을 오직 음식점만으로 채워 놓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내는 들짐승 고기를 안 좋아하기 때문에 해물만 애타게 찾아 다녔다. 그 많은 '저렴한' 식당들 앞에서 환희의 탄성을 내지르기도 전에 7일째 질리게 먹은 해물을 또 먹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아내가 해산물을 잔뜩 넣은 베트남 쌀국수를 그저 그리운 마음에 먹는 동안, 나는 중국식 패스트푸드점인 초우 킹에 들러 그동안 먹고 싶었던 곤지(피노이들은 고또 goto라고 불렀다)를 먹었다. 이름이 King's Gongee. 쌀죽에 잘게 썰은 생강과 파를 넣고 고소하기 짝이 없는 양곱창을 몇 점 넣었다. 별도의 접시에 나온 튀김을 하얀 쌀죽에 얹고 레몬즙을 살짝 뿌려 먹었다. 정말 맛있다. 깔끔하고 담백하다. 감동했다. 중국식 만두도 하나 시켜 먹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살사 소스와 치즈를 잔뜩 바른 나쵸스를 또 먹고 노점에서 샥스핀 딤섬(피노이식으로는 샤오마이)을 한 접시 주문해 먹었다. 마지막으로 차갑고 신선한 두유(라지만 설탕을 넣은 두부 국물)를 한 잔 들이켜 식사를 깨끗이 마무리하려다가 배가 불러서 먹지 못했다. 그렇게 배불리 먹어도 100페소(2$)가 안 되었다. 웰빙 한답시고 음식점에서 500-800 페소씩 주고 먹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보라카이 섬에서 먹은 음식들 때문에 이틀 동안 가벼운 설사를 했다. 보라카이 섬에서 채소, 과일, 육류 할 것 없이 모두 철이 지난 재료를 사용한 것인지 먹고 나서 속이 안 좋았다. 따뜻하고 담백한 곤지가 설사를 한방에 날려 버렸다.
피곤해서 저녁 나절 부터 정신없이 자다가 한밤중에 깨어났다. 목이 말라 음료수라도 사 먹으려고 호텔을 나왔다. 여자들 서넛이 졸졸 붙어 다니며 한국어를 포함해 4개 국어로 사랑 한 번 하자고 중얼거렸다. 심지어 호모도 한 마리 붙어서 호텔까지 따라왔다. 경비원이 막아서지 않았다면(어느 가게에나 경비원이 있었다) 방까지 쫓아올 기세였다.
책을 몇 권 노트북에 들고 갔지만 읽지 않았다. 지금 읽는답시고 노트북에 넣어 둔 것은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마빈 해리스의 '작은 인간', 브라이언 버드의 '환자와의 대화', 임휘명의 '머리가 좋아지는 음식물 나빠지는 음식물' 등등. 진도가 참 안 나간다.
2004/2/23
아침부터 마닐라 만에 비가 내렸다. 그 유명한(글로리아 마리스 만큼은 안 유명할 지도 모르겠다) 합창 찻집에서 곤지와 국수로 간단히 요기했다. 항공권을 리컨펌하고(할 필요는 없지만 길 가는 도중에 항공사가 보여서 화장실에 갈 겸 들른 것) Kalesa라 불리우는 마차를 타고 Fort Santiago로 향했다. 가격을 몰라 마부와 적당히 협상하다가 30페소를 줬다. 2km 정도의 짧은 거리였으나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으니 비용 만큼의 효용은 있었다.
산띠아고 성은 스페냐드가 파시그강과 마닐라 만 사이의 전략적 요지에 지은 곳이다. 스페냐드에 저항하던 의사(Physicist면 의사 맞지 않나?)이자 작가인 호세 리잘 Jose Rizal이 처형 당하기 전까지 구금되어 있던 장소였다. 그는 자신의 감방으로부터 걸어서 Intramuros를 지나 Rizal Park의 한 장소에서 처형 당했다. 길이 몹시 길어서 뙤약볕 아래를 걸으며 갖가지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그의 처형은 애국의 거센 태풍을 일으켰다. 피노이들은 그를 Our hero, Sir Rizal 이라고 꼬박꼬박 경칭했다. 어렸을 적에 안중근 '선생'과 윤봉길 '선생'이 리잘과 마찬가지로 의사(doctor)인 줄 알았다.
일본군 점령 당시 산띠아고 요새는 포로 수용소로 쓰였다. 필리핀 애국자들(게릴라들)을 정기적으로 도살하던 장소였다. 총알이 아까워 스시칼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1945년 마닐라 대 공습 당시 일본군이 퇴각하면서 많은 수의 포로와 민간인을 죽였다. 미국인의 공습 역시 무고한 민간인을 무수히 죽였고 인트라무로스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퇴각하던 일본군과 미국군의 십자포화로 10만여명에 달하는 필리핀 민간인들이 죽었다. 상당히 지랄같은 경우였다(하지만 마닐라 공습은 한국의 6.25 전란에 비하면 세발의 피였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마닐라 대 공습(raid)이라고 하지 않고 마닐라 전투(battle of Manila)라고 불렀다. 인트라무로스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었다. 마닐라 시가지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닐 스티븐슨의 소설에서처럼 나는 gps를 가지고 산띠아고 요새와 인트라무로스를 돌아다녔다.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비를 맞았다. 리잘이 사형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따라 산띠아고 요새를 빠져나와 인트라무로스로 향했다.
호세 리잘이 처형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을 동판으로 땅에 새겨 놓았다. 엄숙한 역사 앞에서 숙연해야 한다. 장난치지 말고.
Manila Metropolitan Cathedral에도 역사가 있었다. 1571년 처음 지어진 후 태풍에 날아가고, 화재로 소실되고, 세 번의 지진에 차례차례 파괴되었다. 1945년 1월 마닐라 대 공습 때도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역사를 머금은 성당은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필리핀 시민들의 신심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저성장, 저개발, 또는 마르코스의 독재로 인해 성당 지을 돈이 부족했던 것 같다.
하여튼 1945년의 마닐라 대 공습(또는 전투) 때문에 마닐라는 볼 것 없는 도시가 되었다. 마닐라는 there is nilad라는 뜻. nilad는 망그로브. 가이드북에 보면 다 나오는데 어떤 친구의 필리핀 여행기에는 마닐라를 색다른 뜻으로 적어 놓았다. 뭐라고 적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LRT를 타고 가다가 EDSA 역에서 MRT로 갈아타고 Ayala 역에서 내려 SM 몰의 기념품 상가에서 기념품을 샀다. 필리핀에서 살만한 기념품은 조개로 만든 것들, 야자 섬유로 만든 전등갓 등의 수공예품과 자연산 진주인데 다른 열대 국가들처럼 손기술이 한국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편인 것 같다. 한국의 자개상감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것 같다 -- 적어도 필리핀의 자개 제품 중에 한국것과 경쟁할 만한 것들은 없어 보였다. 조개 제품을 자꾸 사들이면 환경주의자들에게 욕을 먹을 것 같다. 조개제품을 자꾸 사면(수요가 생기면) 바닷 속에서 잘 살고 있던 조개를 자꾸 따서 조개들을 죽인다고 한다. 마치 환경주의자들이 밍크 코트나 여우 코트를 입은 사람을 싫어하듯이, 사람 가죽을 벗겨 책 표지로 써서 일부 몰지각한 장서가들을 기쁘게 하면 증오심에 불타는 환경주의자들의 눈초리를 접하게 될 것이다.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밤. 어메이징 쇼를 보러 갈까... 하다가 남장 여자들이 춤추는 쇼인 것 같고, 20$씩이나 해서 관뒀다. pc방에 들어가 노트북을 쓰게 해 달라고 우겨보고, 맥주 한 병 마셔야겠다.
런닝 바람에 수영복을 입고 쪼리를 질질 끌면서(마치 현지인처럼) 노트북을 들고 pc방에 왔다. -- 이 정도면 마닐라의 밤거리가 얼마나 안전한지 입증한 것 같은데? pc방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것 같다.
나머지 사진들: 필리핀 사진 2, 필리핀 사진 3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북 루손, 마닐라 북부의 Angeles(앙헬레스)는 미국 주둔 시대의 대규모 공창으로 명성을 날렸다. 여전하다. 북 루손의 더 북쪽으로 세계의 여덟 번째 불가사의라 불리우는 rice terrace로 유명한 Banaue가 있다. 북 루손과 남 루손은 육로로 연결된다. South Luson에는 원뿔형의 mayon 화산이 있다. 남 루손 끝단에서 서쪽으로 Visayas 주의 섬들이 늘어서 있는데 Cebu 섬의 세부는 태국의 푸켓에 버금가는 필리핀의 주요 관광지다. 세부섬 옆의 Bohol 섬에는 괴상하게 생긴 Chocolate Hills가 있다. 세부섬 남쪽에 있는 거대한 Mindanao 섬에는 수많은 이슬람이 살고 있고 분쟁이 잦아 관광지로는 부적합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슬람에 대한 이런 기분나쁜 평가를 무시하면 아무도 안 가는 민다나오 섬이야 말로 가볼만한 곳일지도 모르겠다. 세부섬 북서쪽의 Panay섬 북단 끝에 위치한 Boracay 섬은 한국인들이 우글거리는 세계적인 관광지다. Panay 섬 서쪽으로 Palawan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던데, 어떤 작자의 말로는 한국의 해상 국립 공원과 태국의 코 피피 섬 부근을 합쳐놓은 듯한 곳이란다. 우리 여행의 첫번째 타겟이었지만 워낙 깡촌이라 카드가 안되고 교통편이 부실해서 안 갔다. 팔라완 섬에서 동쪽으로, 그러니까 파나이 섬 북쪽으로 Mindoro 섬이 있다. Puerto Galera를 중심으로 보라카이에 버금간다는 White beach와 나잇 라이프의 중심지인 Sabang beach가 있는데 마닐라에서 가까워 필리핀에 거주하는 한국인 유학생들, 또는 한국인들이 보라카이의 관광지스러움을 피해 가는 곳이다. 그곳도 가고 싶었지만 시간 때문에 가지 못했다. 그외에도 필리핀에는 알려지지 않은 무인도,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끝내주게 멋있는 개인 소유의 섬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다.
아내나 나는 섬 생활에 별다른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보라카이 섬에서의 며칠은 특히나 지겨웠다. 식사의 가격대 성능비가 형편없고 해변에 나가면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밤에는 바에서 틀어대는 음악으로 소란 스러웠다. 마침 그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딱한 일이지만 해변에 누워 별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전등빛이 사방을 밝혔다. 일부는 보라카이 섬이 주변 섬들과 가까워 충분한 고립감을 체험하기 힘든 탓도 있었다.
보라카이 섬을 빠져 나왔다.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로 향했다.
전날 asiatravel.com 사이트를 통해 Atrium hotel을 정가의 25%에 예약했는데 컨펌을 받지 못했다.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토요일, 일요일이었다. 아트리움 호텔에서 저렴하게 마닐라만의 전설적인 석양을 볼 수 있다. 전설적인 석양은 마닐라의 고질적인 매연 -- 대기중 부유물질 -- 때문에 생긴 것이다. 아트리움 호텔의 위치가 좋았고 가격대 성능비가 썩 괜찮았다. 아쉽지만, Malate 지구에서 아트리움 호텔보다 더 비싸고 시설은 후진 Adriatico 호텔을 대신 잡았다. 대략 26$ 짜리, 지금까지 잡은 숙소 중 가장 비싼 것이다.
마닐라에 도착하자 마자 호텔 맞은편의 hot pot 식당에 들어갔다. 신선로나 일본의 샤브샤브, 말레이의 hot pot은 재료가 조금 다를 뿐 기원이 같은 음식이다. 한국식 샤브샤브와 신선하고 맛있는 어묵을 넣는 말레이의 핫 폿을 좋아했다. 중국것은 기름기가 너무 많고, 일본 것은 맹숭맹숭했다. 식당 안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원래 계획은 곤지를 먹으려던 것이지만 식당 분위기를 보니 hot pot을 먹어야만 할 것 같다. 샥스핀으로 만든 딤섬도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입이 쩍 벌어지는 800페소 짜리 식사를 했다.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넣어 깔끔하고 담백한 맛은 없었지만 간만에 매운 소스를 만들어 건더기를 찍어 먹으니 땀이 나고 머리가 핑 돌았다.
너무 많이 먹어 움직이기 거북한 아내를 숙소에 남겨두고 거리를 이리저리 헤메다가 리잘 공원과 마닐라 박물관을 찾아갔다. 문을 닫았다. 중국 정원에 앉아 쉬다가 부산에 자주 갔다는 필리핀 아저씨를 만나 한 동안 얘기했다. 밤에 거리에 나다니지 말란다. 필리핀의 밤 거리가 약간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위험하다고 느낄 사람도 아니었다. 한국 여성 여행자들은 여행지에서 만큼은 위험에 대한 자각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어쩌면 동행이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그들이 혼자 낯선 도시의 밤거리를 걸어보기는 한 것일까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내에게 밤거리가 위험하다고 말하면 아내는 필경 날더러 겁쟁이라고 할 것이다 -- 겁쟁이 소리를 들어도 기분 상하지 않을 것이다.
선거 운동 때문에 광장이 시끄러웠다. 피노이들이 '글로리아'라고 부르는 현 대통령(글로리아 아로요일 것이다)을 밀어내고 선거에서 '에디'를 대통령으로 밀잔다. 광장에는 '에디 형제'의 사진이 그려진 노란 티셔츠, 수건, 모자를 입고 쓰고 두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에디 측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것인 줄 알고, 평소 에디 만이 필리핀을 구할 애국자라고 생각했기에 한 장 얻으려 했는데 티셔츠 한 장이 100페소란다. 그럼 저 많은 사람들이 자기 돈 내고 티셔츠를 샀단 말인가? 대단하군. 민중 봉기로 부패한 정부를 단죄한 실력 있는 국민들이다. 선거 운동을 축제처럼 재밌게 한다. 부럽다.
브라더 에디의 선거 유세.
Robinson Place의 2층, 3층, 4층 한쪽 wing의 대부분은 음식점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하루에 식사를 다섯 번 한다고 들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임은 알겠지만 건물의 3개 층을 오직 음식점만으로 채워 놓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내는 들짐승 고기를 안 좋아하기 때문에 해물만 애타게 찾아 다녔다. 그 많은 '저렴한' 식당들 앞에서 환희의 탄성을 내지르기도 전에 7일째 질리게 먹은 해물을 또 먹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아내가 해산물을 잔뜩 넣은 베트남 쌀국수를 그저 그리운 마음에 먹는 동안, 나는 중국식 패스트푸드점인 초우 킹에 들러 그동안 먹고 싶었던 곤지(피노이들은 고또 goto라고 불렀다)를 먹었다. 이름이 King's Gongee. 쌀죽에 잘게 썰은 생강과 파를 넣고 고소하기 짝이 없는 양곱창을 몇 점 넣었다. 별도의 접시에 나온 튀김을 하얀 쌀죽에 얹고 레몬즙을 살짝 뿌려 먹었다. 정말 맛있다. 깔끔하고 담백하다. 감동했다. 중국식 만두도 하나 시켜 먹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살사 소스와 치즈를 잔뜩 바른 나쵸스를 또 먹고 노점에서 샥스핀 딤섬(피노이식으로는 샤오마이)을 한 접시 주문해 먹었다. 마지막으로 차갑고 신선한 두유(라지만 설탕을 넣은 두부 국물)를 한 잔 들이켜 식사를 깨끗이 마무리하려다가 배가 불러서 먹지 못했다. 그렇게 배불리 먹어도 100페소(2$)가 안 되었다. 웰빙 한답시고 음식점에서 500-800 페소씩 주고 먹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보라카이 섬에서 먹은 음식들 때문에 이틀 동안 가벼운 설사를 했다. 보라카이 섬에서 채소, 과일, 육류 할 것 없이 모두 철이 지난 재료를 사용한 것인지 먹고 나서 속이 안 좋았다. 따뜻하고 담백한 곤지가 설사를 한방에 날려 버렸다.
피곤해서 저녁 나절 부터 정신없이 자다가 한밤중에 깨어났다. 목이 말라 음료수라도 사 먹으려고 호텔을 나왔다. 여자들 서넛이 졸졸 붙어 다니며 한국어를 포함해 4개 국어로 사랑 한 번 하자고 중얼거렸다. 심지어 호모도 한 마리 붙어서 호텔까지 따라왔다. 경비원이 막아서지 않았다면(어느 가게에나 경비원이 있었다) 방까지 쫓아올 기세였다.
책을 몇 권 노트북에 들고 갔지만 읽지 않았다. 지금 읽는답시고 노트북에 넣어 둔 것은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마빈 해리스의 '작은 인간', 브라이언 버드의 '환자와의 대화', 임휘명의 '머리가 좋아지는 음식물 나빠지는 음식물' 등등. 진도가 참 안 나간다.
2004/2/23
아침부터 마닐라 만에 비가 내렸다. 그 유명한(글로리아 마리스 만큼은 안 유명할 지도 모르겠다) 합창 찻집에서 곤지와 국수로 간단히 요기했다. 항공권을 리컨펌하고(할 필요는 없지만 길 가는 도중에 항공사가 보여서 화장실에 갈 겸 들른 것) Kalesa라 불리우는 마차를 타고 Fort Santiago로 향했다. 가격을 몰라 마부와 적당히 협상하다가 30페소를 줬다. 2km 정도의 짧은 거리였으나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으니 비용 만큼의 효용은 있었다.
산띠아고 성은 스페냐드가 파시그강과 마닐라 만 사이의 전략적 요지에 지은 곳이다. 스페냐드에 저항하던 의사(Physicist면 의사 맞지 않나?)이자 작가인 호세 리잘 Jose Rizal이 처형 당하기 전까지 구금되어 있던 장소였다. 그는 자신의 감방으로부터 걸어서 Intramuros를 지나 Rizal Park의 한 장소에서 처형 당했다. 길이 몹시 길어서 뙤약볕 아래를 걸으며 갖가지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그의 처형은 애국의 거센 태풍을 일으켰다. 피노이들은 그를 Our hero, Sir Rizal 이라고 꼬박꼬박 경칭했다. 어렸을 적에 안중근 '선생'과 윤봉길 '선생'이 리잘과 마찬가지로 의사(doctor)인 줄 알았다.
일본군 점령 당시 산띠아고 요새는 포로 수용소로 쓰였다. 필리핀 애국자들(게릴라들)을 정기적으로 도살하던 장소였다. 총알이 아까워 스시칼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1945년 마닐라 대 공습 당시 일본군이 퇴각하면서 많은 수의 포로와 민간인을 죽였다. 미국인의 공습 역시 무고한 민간인을 무수히 죽였고 인트라무로스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퇴각하던 일본군과 미국군의 십자포화로 10만여명에 달하는 필리핀 민간인들이 죽었다. 상당히 지랄같은 경우였다(하지만 마닐라 공습은 한국의 6.25 전란에 비하면 세발의 피였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마닐라 대 공습(raid)이라고 하지 않고 마닐라 전투(battle of Manila)라고 불렀다. 인트라무로스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었다. 마닐라 시가지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닐 스티븐슨의 소설에서처럼 나는 gps를 가지고 산띠아고 요새와 인트라무로스를 돌아다녔다.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비를 맞았다. 리잘이 사형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따라 산띠아고 요새를 빠져나와 인트라무로스로 향했다.
호세 리잘이 처형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을 동판으로 땅에 새겨 놓았다. 엄숙한 역사 앞에서 숙연해야 한다. 장난치지 말고.
Manila Metropolitan Cathedral에도 역사가 있었다. 1571년 처음 지어진 후 태풍에 날아가고, 화재로 소실되고, 세 번의 지진에 차례차례 파괴되었다. 1945년 1월 마닐라 대 공습 때도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역사를 머금은 성당은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필리핀 시민들의 신심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저성장, 저개발, 또는 마르코스의 독재로 인해 성당 지을 돈이 부족했던 것 같다.
하여튼 1945년의 마닐라 대 공습(또는 전투) 때문에 마닐라는 볼 것 없는 도시가 되었다. 마닐라는 there is nilad라는 뜻. nilad는 망그로브. 가이드북에 보면 다 나오는데 어떤 친구의 필리핀 여행기에는 마닐라를 색다른 뜻으로 적어 놓았다. 뭐라고 적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LRT를 타고 가다가 EDSA 역에서 MRT로 갈아타고 Ayala 역에서 내려 SM 몰의 기념품 상가에서 기념품을 샀다. 필리핀에서 살만한 기념품은 조개로 만든 것들, 야자 섬유로 만든 전등갓 등의 수공예품과 자연산 진주인데 다른 열대 국가들처럼 손기술이 한국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편인 것 같다. 한국의 자개상감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것 같다 -- 적어도 필리핀의 자개 제품 중에 한국것과 경쟁할 만한 것들은 없어 보였다. 조개 제품을 자꾸 사들이면 환경주의자들에게 욕을 먹을 것 같다. 조개제품을 자꾸 사면(수요가 생기면) 바닷 속에서 잘 살고 있던 조개를 자꾸 따서 조개들을 죽인다고 한다. 마치 환경주의자들이 밍크 코트나 여우 코트를 입은 사람을 싫어하듯이, 사람 가죽을 벗겨 책 표지로 써서 일부 몰지각한 장서가들을 기쁘게 하면 증오심에 불타는 환경주의자들의 눈초리를 접하게 될 것이다.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밤. 어메이징 쇼를 보러 갈까... 하다가 남장 여자들이 춤추는 쇼인 것 같고, 20$씩이나 해서 관뒀다. pc방에 들어가 노트북을 쓰게 해 달라고 우겨보고, 맥주 한 병 마셔야겠다.
런닝 바람에 수영복을 입고 쪼리를 질질 끌면서(마치 현지인처럼) 노트북을 들고 pc방에 왔다. -- 이 정도면 마닐라의 밤거리가 얼마나 안전한지 입증한 것 같은데? pc방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것 같다.
나머지 사진들: 필리핀 사진 2, 필리핀 사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