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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acay -- boat 15min --> Caticlan -- air 1hrs --> Manila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북 루손, 마닐라 북부의 Angeles(앙헬레스)는 미국 주둔 시대의 대규모 공창으로 명성을 날렸다. 여전하다. 북 루손의 더 북쪽으로 세계의 여덟 번째 불가사의라 불리우는 rice terrace로 유명한 Banaue가 있다. 북 루손과 남 루손은 육로로 연결된다. South Luson에는 원뿔형의 mayon 화산이 있다. 남 루손 끝단에서 서쪽으로 Visayas 주의 섬들이 늘어서 있는데 Cebu 섬의 세부는 태국의 푸켓에 버금가는 필리핀의 주요 관광지다. 세부섬 옆의 Bohol 섬에는 괴상하게 생긴 Chocolate Hills가 있다. 세부섬 남쪽에 있는 거대한 Mindanao 섬에는 수많은 이슬람이 살고 있고 분쟁이 잦아 관광지로는 부적합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슬람에 대한 이런 기분나쁜 평가를 무시하면 아무도 안 가는 민다나오 섬이야 말로 가볼만한 곳일지도 모르겠다. 세부섬 북서쪽의 Panay섬 북단 끝에 위치한 Boracay 섬은 한국인들이 우글거리는 세계적인 관광지다. Panay 섬 서쪽으로 Palawan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던데, 어떤 작자의 말로는 한국의 해상 국립 공원과 태국의 코 피피 섬 부근을 합쳐놓은 듯한 곳이란다. 우리 여행의 첫번째 타겟이었지만 워낙 깡촌이라 카드가 안되고 교통편이 부실해서 안 갔다. 팔라완 섬에서 동쪽으로, 그러니까 파나이 섬 북쪽으로 Mindoro 섬이 있다. Puerto Galera를 중심으로 보라카이에 버금간다는 White beach와 나잇 라이프의 중심지인 Sabang beach가 있는데 마닐라에서 가까워 필리핀에 거주하는 한국인 유학생들, 또는 한국인들이 보라카이의 관광지스러움을 피해 가는 곳이다. 그곳도 가고 싶었지만 시간 때문에 가지 못했다. 그외에도 필리핀에는 알려지지 않은 무인도,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끝내주게 멋있는 개인 소유의 섬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다.

아내나 나는 섬 생활에 별다른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보라카이 섬에서의 며칠은 특히나 지겨웠다. 식사의 가격대 성능비가 형편없고 해변에 나가면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밤에는 바에서 틀어대는 음악으로 소란 스러웠다. 마침 그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딱한 일이지만 해변에 누워 별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전등빛이 사방을 밝혔다. 일부는 보라카이 섬이 주변 섬들과 가까워 충분한 고립감을 체험하기 힘든 탓도 있었다.

보라카이 섬을 빠져 나왔다.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로 향했다.


전날 asiatravel.com 사이트를 통해 Atrium hotel을 정가의 25%에 예약했는데 컨펌을 받지 못했다.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토요일, 일요일이었다. 아트리움 호텔에서 저렴하게 마닐라만의 전설적인 석양을 볼 수 있다. 전설적인 석양은 마닐라의 고질적인 매연 -- 대기중 부유물질 -- 때문에 생긴 것이다. 아트리움 호텔의 위치가 좋았고 가격대 성능비가 썩 괜찮았다. 아쉽지만, Malate 지구에서 아트리움 호텔보다 더 비싸고 시설은 후진 Adriatico 호텔을 대신 잡았다. 대략 26$ 짜리, 지금까지 잡은 숙소 중 가장 비싼 것이다.

마닐라에 도착하자 마자 호텔 맞은편의 hot pot 식당에 들어갔다. 신선로나 일본의 샤브샤브, 말레이의 hot pot은 재료가 조금 다를 뿐 기원이 같은 음식이다. 한국식 샤브샤브와 신선하고 맛있는 어묵을 넣는 말레이의 핫 폿을 좋아했다. 중국것은 기름기가 너무 많고, 일본 것은 맹숭맹숭했다. 식당 안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원래 계획은 곤지를 먹으려던 것이지만 식당 분위기를 보니 hot pot을 먹어야만 할 것 같다. 샥스핀으로 만든 딤섬도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입이 쩍 벌어지는 800페소 짜리 식사를 했다.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넣어 깔끔하고 담백한 맛은 없었지만 간만에 매운 소스를 만들어 건더기를 찍어 먹으니 땀이 나고 머리가 핑 돌았다.

너무 많이 먹어 움직이기 거북한 아내를 숙소에 남겨두고 거리를 이리저리 헤메다가 리잘 공원과 마닐라 박물관을 찾아갔다. 문을 닫았다. 중국 정원에 앉아 쉬다가 부산에 자주 갔다는 필리핀 아저씨를 만나 한 동안 얘기했다. 밤에 거리에 나다니지 말란다. 필리핀의 밤 거리가 약간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위험하다고 느낄 사람도 아니었다. 한국 여성 여행자들은 여행지에서 만큼은 위험에 대한 자각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어쩌면 동행이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그들이 혼자 낯선 도시의 밤거리를 걸어보기는 한 것일까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내에게 밤거리가 위험하다고 말하면 아내는 필경 날더러 겁쟁이라고 할 것이다 -- 겁쟁이 소리를 들어도 기분 상하지 않을 것이다.

선거 운동 때문에 광장이 시끄러웠다. 피노이들이 '글로리아'라고 부르는 현 대통령(글로리아 아로요일 것이다)을 밀어내고 선거에서 '에디'를 대통령으로 밀잔다. 광장에는 '에디 형제'의 사진이 그려진 노란 티셔츠, 수건, 모자를 입고 쓰고 두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에디 측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것인 줄 알고, 평소 에디 만이 필리핀을 구할 애국자라고 생각했기에 한 장 얻으려 했는데 티셔츠 한 장이 100페소란다. 그럼 저 많은 사람들이 자기 돈 내고 티셔츠를 샀단 말인가? 대단하군. 민중 봉기로 부패한 정부를 단죄한 실력 있는 국민들이다. 선거 운동을 축제처럼 재밌게 한다. 부럽다.


브라더 에디의 선거 유세.

Robinson Place의 2층, 3층, 4층 한쪽 wing의 대부분은 음식점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하루에 식사를 다섯 번 한다고 들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임은 알겠지만 건물의 3개 층을 오직 음식점만으로 채워 놓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내는 들짐승 고기를 안 좋아하기 때문에 해물만 애타게 찾아 다녔다. 그 많은 '저렴한' 식당들 앞에서 환희의 탄성을 내지르기도 전에 7일째 질리게 먹은 해물을 또 먹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아내가 해산물을 잔뜩 넣은 베트남 쌀국수를 그저 그리운 마음에 먹는 동안, 나는 중국식 패스트푸드점인 초우 킹에 들러 그동안 먹고 싶었던 곤지(피노이들은 고또 goto라고 불렀다)를 먹었다. 이름이 King's Gongee. 쌀죽에 잘게 썰은 생강과 파를 넣고 고소하기 짝이 없는 양곱창을 몇 점 넣었다. 별도의 접시에 나온 튀김을 하얀 쌀죽에 얹고 레몬즙을 살짝 뿌려 먹었다. 정말 맛있다. 깔끔하고 담백하다. 감동했다. 중국식 만두도 하나 시켜 먹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살사 소스와 치즈를 잔뜩 바른 나쵸스를 또 먹고 노점에서 샥스핀 딤섬(피노이식으로는 샤오마이)을 한 접시 주문해 먹었다. 마지막으로 차갑고 신선한 두유(라지만 설탕을 넣은 두부 국물)를 한 잔 들이켜 식사를 깨끗이 마무리하려다가 배가 불러서 먹지 못했다. 그렇게 배불리 먹어도 100페소(2$)가 안 되었다. 웰빙 한답시고 음식점에서 500-800 페소씩 주고 먹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보라카이 섬에서 먹은 음식들 때문에 이틀 동안 가벼운 설사를 했다. 보라카이 섬에서 채소, 과일, 육류 할 것 없이 모두 철이 지난 재료를 사용한 것인지 먹고 나서 속이 안 좋았다. 따뜻하고 담백한 곤지가 설사를 한방에 날려 버렸다.

피곤해서 저녁 나절 부터 정신없이 자다가 한밤중에 깨어났다. 목이 말라 음료수라도 사 먹으려고 호텔을 나왔다. 여자들 서넛이 졸졸 붙어 다니며 한국어를 포함해 4개 국어로 사랑 한 번 하자고 중얼거렸다. 심지어 호모도 한 마리 붙어서 호텔까지 따라왔다. 경비원이 막아서지 않았다면(어느 가게에나 경비원이 있었다) 방까지 쫓아올 기세였다.

책을 몇 권 노트북에 들고 갔지만 읽지 않았다. 지금 읽는답시고 노트북에 넣어 둔 것은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마빈 해리스의 '작은 인간', 브라이언 버드의 '환자와의 대화', 임휘명의 '머리가 좋아지는 음식물 나빠지는 음식물' 등등. 진도가 참 안 나간다.

2004/2/23

아침부터 마닐라 만에 비가 내렸다. 그 유명한(글로리아 마리스 만큼은 안 유명할 지도 모르겠다) 합창 찻집에서 곤지와 국수로 간단히 요기했다. 항공권을 리컨펌하고(할 필요는 없지만 길 가는 도중에 항공사가 보여서 화장실에 갈 겸 들른 것) Kalesa라 불리우는 마차를 타고 Fort Santiago로 향했다. 가격을 몰라 마부와 적당히 협상하다가 30페소를 줬다. 2km 정도의 짧은 거리였으나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으니 비용 만큼의 효용은 있었다.

산띠아고 성은 스페냐드가 파시그강과 마닐라 만 사이의 전략적 요지에 지은 곳이다. 스페냐드에 저항하던 의사(Physicist면 의사 맞지 않나?)이자 작가인 호세 리잘 Jose Rizal이 처형 당하기 전까지 구금되어 있던 장소였다. 그는 자신의 감방으로부터 걸어서 Intramuros를 지나 Rizal Park의 한 장소에서 처형 당했다. 길이 몹시 길어서 뙤약볕 아래를 걸으며 갖가지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그의 처형은 애국의 거센 태풍을 일으켰다. 피노이들은 그를 Our hero, Sir Rizal 이라고 꼬박꼬박 경칭했다. 어렸을 적에 안중근 '선생'과 윤봉길 '선생'이 리잘과 마찬가지로 의사(doctor)인 줄 알았다.

일본군 점령 당시 산띠아고 요새는 포로 수용소로 쓰였다. 필리핀 애국자들(게릴라들)을 정기적으로 도살하던 장소였다. 총알이 아까워 스시칼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1945년 마닐라 대 공습 당시 일본군이 퇴각하면서 많은 수의 포로와 민간인을 죽였다. 미국인의 공습 역시 무고한 민간인을 무수히 죽였고 인트라무로스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퇴각하던 일본군과 미국군의 십자포화로 10만여명에 달하는 필리핀 민간인들이 죽었다. 상당히 지랄같은 경우였다(하지만 마닐라 공습은 한국의 6.25 전란에 비하면 세발의 피였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마닐라 대 공습(raid)이라고 하지 않고 마닐라 전투(battle of Manila)라고 불렀다. 인트라무로스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었다. 마닐라 시가지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닐 스티븐슨의 소설에서처럼 나는 gps를 가지고 산띠아고 요새와 인트라무로스를 돌아다녔다.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비를 맞았다. 리잘이 사형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따라 산띠아고 요새를 빠져나와 인트라무로스로 향했다.


호세 리잘이 처형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을 동판으로 땅에 새겨 놓았다. 엄숙한 역사 앞에서 숙연해야 한다. 장난치지 말고.

Manila Metropolitan Cathedral에도 역사가 있었다. 1571년 처음 지어진 후 태풍에 날아가고, 화재로 소실되고, 세 번의 지진에 차례차례 파괴되었다. 1945년 1월 마닐라 대 공습 때도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역사를 머금은 성당은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필리핀 시민들의 신심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저성장, 저개발, 또는 마르코스의 독재로 인해 성당 지을 돈이 부족했던 것 같다.

하여튼 1945년의 마닐라 대 공습(또는 전투) 때문에 마닐라는 볼 것 없는 도시가 되었다. 마닐라는 there is nilad라는 뜻. nilad는 망그로브. 가이드북에 보면 다 나오는데 어떤 친구의 필리핀 여행기에는 마닐라를 색다른 뜻으로 적어 놓았다. 뭐라고 적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LRT를 타고 가다가 EDSA 역에서 MRT로 갈아타고 Ayala 역에서 내려 SM 몰의 기념품 상가에서 기념품을 샀다. 필리핀에서 살만한 기념품은 조개로 만든 것들, 야자 섬유로 만든 전등갓 등의 수공예품과 자연산 진주인데 다른 열대 국가들처럼 손기술이 한국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편인 것 같다. 한국의 자개상감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것 같다 -- 적어도 필리핀의 자개 제품 중에 한국것과 경쟁할 만한 것들은 없어 보였다. 조개 제품을 자꾸 사들이면 환경주의자들에게 욕을 먹을 것 같다. 조개제품을 자꾸 사면(수요가 생기면) 바닷 속에서 잘 살고 있던 조개를 자꾸 따서 조개들을 죽인다고 한다. 마치 환경주의자들이 밍크 코트나 여우 코트를 입은 사람을 싫어하듯이, 사람 가죽을 벗겨 책 표지로 써서 일부 몰지각한 장서가들을 기쁘게 하면 증오심에 불타는 환경주의자들의 눈초리를 접하게 될 것이다.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밤. 어메이징 쇼를 보러 갈까... 하다가 남장 여자들이 춤추는 쇼인 것 같고, 20$씩이나 해서 관뒀다. pc방에 들어가 노트북을 쓰게 해 달라고 우겨보고, 맥주 한 병 마셔야겠다.

런닝 바람에 수영복을 입고 쪼리를 질질 끌면서(마치 현지인처럼) 노트북을 들고 pc방에 왔다. -- 이 정도면 마닐라의 밤거리가 얼마나 안전한지 입증한 것 같은데? pc방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것 같다.


나머지 사진들: 필리핀 사진 2, 필리핀 사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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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카이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를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코코망가스 식당을 찾아갔다. 피자를 제대로 만들긴 하지만 14가지 토핑을 얹어준다던데, 맛이 가고 기름이 질질 흐르는 참치를 포함해 토핑 수가 일곱 가지 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리 피자가 찌꺼지 음식으로 만드는 것이라지만 다 시들은 피망 따위를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용서가 안된다. 297 페소 짜리 미디엄 사이즈 피자를 거의 혼자서 꾸역꾸역 먹었다. 보라카이 해변 중심에 독일인이 운영하는 steak house라는 집이 유명하다던데 갈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스테이션 2 피어 근처에 앉아 한국인들이 내리는 모양을 구경하고 있었다. 젊은 필리핀 친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일랜드 호핑 투어를 5시간 동안 1200 페소에 해줄 수 있다고 한다. 그에게서 한국인 가이드에 관한 얘기를 또 들었다. fun diving 원래 단가가 50$, 라이센스가 있으면 25$ 가량인데 한국인 가이드를 통하면 100$ 이란다. 아웃트리거 보트 1시간 타는데 10$ 받는 것을 두당 20$씩 따로 받는단다. 그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한국인 가이드와 한국인 업소가 그들의 일을 빼앗아 가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정말 그런지 궁금해서 아내가 한국인 다이빙 업소에서 바삐 뛰어 나오는 직원에게 가격을 물어 봤다. fun diving 2시간에 100$란다. 다음은 독일인이 하는, 나이트록스 장비를 제대로 갖춘, 꽤 괜찮은 다이빙 샵에 들어가 물어봤다. 50$를 불렀다. 글쎄다... 태국의 한국인 다이빙 샾은 그런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데... 필리핀에서는 한국인 다이빙 강사를 모셔 오기가 무지 힘든 관계로 단가를 두 배 받아야 하는가 보다. 한국인 관광 가이드나 한국인 다이빙 샵이나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150 페소 주고 트라이시클 타고 Luho 산에 올라갔다. 전망이 끝내준다는 곳인데 생각보다 별로였다. 트라이시클을 타거나 물건을 살 때나, 필리핀 사람들이 기본적인 바가지 이외에 별다른 사기를 안 치고 독한 면이 없어서 대하기가 편했다. 오직 이 동네에서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들은 한국인 업소, 한국인 가이드 뿐인가 보다.


가랑비가 살살 와서 하루종일 빈둥거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저 그것 밖에 하지 않고 한가하게 시간을 보냈다. 필피피노 컵라면을 먹다가 워낙 맛이 없어서 버리고 시장에서 과일과 채소를 사다가 먹었다. 섬에서 별로 먹을만한 것이 없다. 어젯밤에 부페를 먹을 때는 해산물이 신선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채소나 과일을 사도 신선한 것을 찾아보기가 힘들 뿐더러 가격 마저 비싸다. 이제 그만 섬을 나가고 싶다.

아내는 살이 쪄서인지 사진 찍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아내가 나온 사진은 지웠다.

보라카이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나이트에도 안 가고, 밤에 바에 앉아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칵테일 한 잔 기울여 보지도 못했다. 시시하다. 수퍼 가서 맥주나 사 들고 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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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여행자 보험을 들지 않았다. 크게 쓸모가 있다기 보다는 값싸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외국에서는 의료보험이 안되기 때문에 들어두는 것이 바람직했다. 여행중 인터넷으로 들 수도 있지만 저번에 8개월 짜리 여행할 때도 귀찮아서 안 들었다. 동부화재던가? 3개월 짜리가 3만원. 남미 여행 중에는 들었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보통 연수 명목으로 보험을 들지 않고 3개월 짜리 여행자 보험을 들고 나중에 재가입하는 식이었다.

어젯밤에 진통제를 먹고 잤다. 마치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피부가 당기고 화끈거려서 저녁 9시 이후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산책이라도 할 요량으로 거리를 걸었는데, 어제 탄 부위에 햇살이 닿으니 욱신욱신 거렸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신혼 부부 중에 새까맣게 탄 피부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은 보지 못했다. 아웃트리거의 오른쪽 날개에 엎어져 낚시줄을 드리우고 바닷속을 뚜러지게 쳐다보고 있었던 30분, 오후 1시 30분에서 2시 사이에 숯불 그릴에 올려놓은 꼬치구이처럼 피부가 익었다.

상당히 비싸 보이는 리젠시 호텔 레스토랑에서 로미와 국수, 달랑 다섯 개 나오는 참치 초밥을 시켜 먹었는데 먹은 양에 비해 터무니 없는 가격(600페소)을 불렀다. 음식 먹을 때마다 일로일로와 자꾸 비교가 된다.

난 필리피노의 영어를 잘 알아 듣는 편인데 아내는 잘 알아듣질 못했다. 발음... 때문이라고 하지만 c,t를 강하게 발음하고, 엑센트가 거의 없이 줄줄 이어 붙어 가지만 그네들 발음에 딱히 문제는 없다고 본다. 가게에서 가끔 그들은 스패니시 숫자를 사용했다.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때 '뜨레인따' 라고 말했다. 마치 라틴 아메리카의 어떤 나라를 여행하는 것처럼 반자동적으로 30페소를 꺼냈다.

미용실 아가씨는 날더러 가이드냐고 묻는다.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은 보통 한국인 관광객을 이끌고 오는 가이드라고 한다. 가이드들이 단지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시장에 데리고 온 한국인 관광객의 등을 쳐먹고 산다고 말했다. 옆 아줌마도 지리한 예를 들어가며 맞장구를 쳤다. 이틀 내내 한국인 가이드의 바가지에 관한 얘기를 듣다보니 그들이 순 사기꾼 같아 보였다.

일주일 전쯤 어느 게시판에서 필리핀 정보를 수집하던 차에(필리핀 여행 정보가 별로 없다) 한 배낭 여행자가 보라카이 섬의 한국인 관광 가이드의 횡포를 언급하자, 자기는 가이드라며 2개월 동안 필리핀에 관해 고시공부 하듯 두문불출하며 빡세게 공부하고 나름대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가이드를 하고 있다는 이가, 섭섭했는지 일부 가이드들의 행태를 대다수의 '좋은' 가이드에게 같은 혐의를 뒤집어 씌우지 말아 달라고 적어 놓았다. 유명한 여행 사이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논쟁이고, 좋은 가이드도 있고 나쁜 가이드도 있으니 이런 걸로 논쟁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 정도로 보통 결론이 난다. 웃겼다.

그의 말마따나 몇 푼 벌지도 못하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오직 보람과 자부심만 가지고 일할 정도로 생각있는 친구라면 관광 가이드 일을 그만두고 주변의 가이드들 역시 그만 두라고 권유하거나, 그 배낭 여행자 편을 드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작 2개월 공부한 걸 가지고 뭘 할 수 있을까. 한 나라의 문화와 정서, 언어를 이해하는데 2개월 고시공부로 될까? 글쎄올시다.

아내는 가이드 일을 잠시 했다. 가이드가 아니라 길잡이라고 불렀다. 교통과 숙박편을 원래 가격 그대로 거래를 성사시켜 주면서 함께 다니다가 여행객들이 그 나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자신감이 생기면 서약서를 쓰고 '독립' 시켰다. 앞으로 벌어지는 일에 관해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서약서다. 그들은 참, 별로 돈 안 들이고 재밌게 여행했다. 옆에서 보기에도 퍽 바람직한 시스템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즐거워 하고 길잡이 일이 끝나면 받는 약간의 보수로 자신의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이, 희안한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한다는 한국인 관광 가이드와 다르기 때문에 아내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을 길잡이라고 불렀고 어디 가서도 떳떳했다. 그들은 길잡이 이전에 여행자였고 여행의 고충을 이해하며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다른 여행자들이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했다.

태국이나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관광 가이드와 그 점이 달랐다. 가이드는 관광객을 이끌어 숙소를 잡아주고 그들 대신 투어를 예약하고 협상하는 일을 하면서 커미션을 받는다. 그들은 커미션이 얼마인지 공개하지 않았다. 아까 글을 쓰는 작자들이 흔히 자신의 실명을 언급하지 않고 '대다수의 좋은 가이드'라고 말하거나, 남에게 자신의 퍼포먼스를 입증하기 위해 가격을 언급하지 않았기에 그의 말은 신뢰할 수 없다. 가격은 얼마든지 검증받을 수 있고 정당한 커미션과 깨끗한 거래는 누구나 환영한다. 그리고 그 가격은 혼자 하는 배낭 여행자보다 싸야 맞다.

게시물을 쓴 그 배낭여행자가 자기는 배낭 여행(요즘은 자유 여행이라고 하드만) 중 아일랜드 호핑 투어를 40$에 했는데 한국인 가이드를 끼면 80-100$로 펄쩍 뛴다고 했다. 가격은 단순 비례가 아니다. 인원수가 늘면 현저하게 단가가 떨어진다. 참고로 그 배낭여행자와 달리 우리는 20$ 가량에 했다. 가격이 워낙 낮아 길에서 호객하던 뱃사공 마저도 그 가격에는 맞출 수 없다고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관광 가이드란, 인원수를 무기 삼아 아일랜드 호핑 투어를 두당 15$에 성사시키는 사람이지 호핑 투어의 단가가 80$라며 두당 60$의 삥을 뜯어 현지인 여행사와 한국의 여행사와 자신이 나눠 먹으며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다.

간단할 수 있음에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기 때문에 가이드는 필리핀 현지인, 한국인 관광객, 여행자들에게 십자포화를 당하는 일이 당연했다. 가이드는 없어지는 것이 바람직했다. 밤마다 술 퍼먹으러 돌아다니고, 사고나 치고, 여자를 찾아 혈안이 되어 있지만 스스로 사귀는 것은 못하는 한국인 남자들 때문에 인간에 관해 메스꺼움을 느끼면서 과연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까?

수요가 있으니 관광 가이드질도 할 만한 것이겠지. 한국이란 나라는 3면이 바다고 그나마 땅덩이가 붙어있는 북쪽은 갈 수 없는 나라다. 섬이다. 땅덩이가 붙어 있는 인접국이 없으니 해외여행의 기회가 드물고 그것 때문에 외국에 나가는 것이나 외국인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반대 급부로, 그래서 외국에 나가야 한다. 비행기 타고 바다 건너 나라에 혼자 가서 사기 당하고 삥 뜯기고 상처 입고 두들겨 맞으면서(심했나?) 돌아다녀 봐야 한다. 가이드 없이, 겁 먹지 말고.

5일째 해산물만 먹었더니 슬슬 해산물 식단이 질리기 시작한다. 필리핀 먹거리 중에는 투포투포, 이하우이하우, 라푸라푸 등 재밌는 이름이 많다. 말레이 음식처럼 코코넛 밀크를 사용하기도 하고 스패니시의 영향 때문에 많은 양의 음식을 내놓았다. 해산물 요리는 중국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먹는 국수는 뭘 먹어도 꽝이었다. 아내와 누워서 천정을 바라보며 각 나라의 맛있던 음식을 떠올렸다.

필리피노 퀴진은 극단적으로 야채를 적게 사용한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설마 했는데 고기가 담긴 접시에 야채라고는 오이 한 조각 뿐인 식이다. 먹을만한 과일이 별로 안 보여 열대과일이 풍성한 이 좋은 나라까지 와서 수퍼에서 후르츠 칵테일 통조림을 사먹을 때는 비참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저녁은 야채를 잔뜩 진열해 놓은 부페 식당에 들어가 고기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야채를 왕창 먹었다. 웨이터가 음료수를 마시라고 권했지만 사양했다. 음료수 마시면 배가 금방 차서 몇 접시 먹지 못하니까. 둘이서 여섯 접시를 비웠다.

옆방에 묵고 있는 필리피노 연인이 작업 중이라 야자잎으로 엮어 놓은 숙소 전체가 좌우로 흔들렸다.

숙소 벤치에 앉아 산들 바람에 맥주를 들이키며 노트북에 들어있는 John Cusac 주연의 High Fidelity를 보았다. 아내는 재미가 없는지 일찍 잠이 들었다. 야자잎으로 만든 숙소에는 개미가 우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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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들이 소란스럽게 울었다. 게으른 장기 배낭 여행자 답지 않게 오늘도 아침 7시 30분에 어리벙벙 깨어났다. island hopping 하는 날이다. 알란과 선장을 만나 시장통에서 생선(120p)과 오징어 반 킬로그램(65p), 굴 1kg(20p), 조개 1kg(25p) 따위를 샀다. 양파와 양념, 숯 등등도 잊지 않고 샀다.

장기 배낭 여행자 답게 옷은 다국적이었다. 이집트 다합에서 산 얇고 긴 여성용 바지와 터키 이스탄불에서 산 팬티, 영등포에서 산 수영복, 필리핀의 보라카이 시장통에서 3달러 쯤 주고 산 빨간색 러닝 셔츠, 스님이 줬다는 소림사 티셔츠 따위를 챙겼다. 일반 배낭 여행자들은 열대에서 짧은 팔에 반바지, 샌들을 신고 다니지만(한국인의 표준 복장이랄까?) 우리는 긴팔 바지와 긴 팔 셔츠와 운동화나 쪼리를 질질 끌면서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녔다. 꾀죄죄하고 초라하고 허름해 보이긴 하지만 그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번 투어 동안은 줄곳 젖을 예정이라서 투 피스(수영복, 티셔츠)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살 타는 것은 정말 끔찍하다.

아웃트리거 보트를 타고(이거 참 재밌다) 보라카이 섬 남단을 지나 크리스탈 섬과 크로커다일 섬을 둘러갔다. 알란은 우리가 만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로지른 최초의 한국인이라고 주장했다. 파도가 높아서 신혼여행 코스로는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죽여줬다. 선장은 올해 1월에 열린 아웃트리거 보트 대회에서 7위를 했다. 그가 피우는 담배는 hope였고 말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척 보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보트의 평균 시속은 어림잡아 40kmh 가량이었다. gps를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 바다에서야 말로 gps가 대단한 힘을 발휘하는데 말이다. 모터 보트보다 빠른 속도였고 달아놓은 돛대 만으로 그 정도의 속도가 난다는 것이 놀라웠다. 로맨틱하지 않냐며, 알란이 또 말하길, 이 배를 타고 한국까지 갈 수도 있다고 허풍을 떨었다. 나는 시속 40kmh로 주욱 달리면 한국까지 직선 거리로 대충 70일쯤 걸린다고 말해 찬물을 끼얹었다. 수치는 나의 사랑스러운 벗이다. 알란은 지지 않고 고기 잡으면서 가면 된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동남아에는 인간을 잡아 귀중품을 빼앗고 고기밥으로 바다에 던져 버리는 해적이 판을 친다. 리얼리티 역시 나의 오랜 벗이다.


만조 때 였고, 까띠끌란과 보라카이 섬 사이에 형성된 작은 해협으로 강한 조류가 흘러 바람을 안고 가는 동안 큰 파도가 몰아쳐 여러 차례 물 보라를 뒤집어 썼다. 아내는 바닷물 샤워를 할 때마다 비명을 질렀고 나는 배의 균형을 잡으려고 오른쪽과 왼쪽 윙으로 아슬아슬하게, 바삐, 움직였다. 여차하면 추락이고 뼈도 못추릴 것 같은 파도에 조류였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 낄낄거렸다.

몽키 아일랜드에 멈췄다. 선장이 시장에서 사온 해산물을 요리하는 동안 우리는 스노클링을 했다. 알란이 아내의 손을 잡고 바다 쪽으로 나가는 동안 나는 멕시코의 무헤레스 섬에서 공짜로 얻은 스노클과 돗수 있는 선글라스 겸용 수영 안경을 끼고 코를 노출 시킨 채 느적느적 그들 뒤를 따라갔다. 고글이 코를 가리지 않아 생각만큼 헤엄치기가 쉽지 않아 콧속으로 바닷물이 자꾸 들어갔다. 핀이 있으면 좀 더 속도를 내서 해변에서 상당히 떨어져있는 몽키 섬까지 왕복할 수 있을 테지만 파도가 높아 여의치 않았다. 아내가 비명을 질렀다. 해파리에게 물렸단다. 그들은 돌아갔고 나도 그들이 있던 자리까지 헤엄쳐 가다가 해파리에 쏘였다. 다리가 굳었다. 잠시 쉬면서 산호초 사이에서 뛰노는 물고기들을 구경하며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쉬었다. 물고기가 참 많다. 아침에 빵 사오는 것을 잊어버려 물고기들을 내 손으로 유인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스노클링 할 때마다 번번이 잊어버렸다.

만조라서 먼 바다에 있던 해파리들이 가까운 해변까지 떠밀려 왔던 것이다. 아내는 해파리에 쏘여 아마도 난생 처음으로 근육 경직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해파리는 거미처럼, 평소 작은 고기들을 독으로 마비시켜 싱싱하게 살려둔 채 소화기로 빨아들여 천천히 녹여 먹어 치우는 것 같다. 말하자면, 자기 소화기로 빨아 먹을 수 없는 커다란 인간에게 독을 허비하는 바보짓을 한 것이다. 그들은 왜 여름이면 한국의 동해안에 바글거리는 인간을 먹어치우기 위해 거대하게 진화 하지 않는 것일까? 가오리나 오징어는 뭔가 깨달았는지 금새 커졌더만.

해파리 때문에 더 이상 스노클링은 어려울 것 같아 선장이 불을 피우고 생선을 굽고 있는 자리에 갔다. 보기 보다 엄청나게 큰 생선이다. 그들은 오징어의 내장을 빼지 않고 그릴에 그대로 올려 구웠다. 먹물이 뚝뚝 떨어진다. 다소 원시적이랄까. 간장 소스처럼 보이는 것에 하얀 소스를 넣고 거기에 레몬즙을 타고 양파를 잘게 썰어 맛깔스러운 소스를 만들었다. 선장이 현지인에게 밥을 사 왔다. 넓은 바나나 잎에 구운 해산물과 소스에 버무린 약간의 야채, 그리고 밥을 얹고 동굴 곁 자리로 옮겼다. 코코넛 나무 자른 것을 의자 삼아 앉아 식사했다. 선장, 알란, 나, 아내, 그리고 개 두 마리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알란이 따온 코코넛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배 터지게 먹고 음식을 남겼다. 다시 출발. 아까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 거대한 파도가 사방에서 밀려왔다. 보트는 공중에 떴다가 떨어지길 반복했다. 아내는 무서웠는지 공포에 질려 벌벌 떨었다. 나는 그저 너무 기뻤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코티지 열쇠가 사라졌다. 얼씨구?

보라카이 섬의 북부 해변에 도착했다. 인적없는 해변은 우리가 묵고 있던 화이트 비치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멋졌다. 그 멋진 해변에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올 때 CF 메모리를 가지고 나오지 않아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가 정말 멋진 곳일까?

몰디브와 사모아 제도의 몇몇 섬들의 해변을 가보지 못해 어떤 해변이 세계 최고라고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여전히 태국의 꼬 따오에서 롱 보트를 타고 들어가는 꼬 낭유안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꼬 낭유안은 지금까지 여행하며 돌아다녀 본 섬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아내의 손을 잡고 해변에 앉아 발가락 주위로 모여드는 물고기를 구경하고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면서 신혼 여행 때 해야 한다는 장래 계획을 잡아보는 것이 좋을 성 싶다. 우리도 어젯밤에 장래 계획에 관해 고민한 후 결론을 내렸다; 왠만하면 잘 먹고 잘 살자. -끝-

마지막으로 닻을 내리고 바다 한 가운데서 낚시를 했다. 아내는 고기 한 마리를 잡고 해파리 한테 다시 쏘였다. 나는 그 망할 해파리 두 마리만 낚시줄에 달라 붙어 있엇다. 여지 없이 쏘였고, 선장은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보라카이 스테이션 3 피어로 돌아왔다. 2시 30분. 다섯 시간 반 동안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피부를 태웠다.

아내가 새카맣게 탄 피부 때문에 고통스러워 했다. 약국에서 약(care for sun burn)을 샀다. 글리세린과 비타민 A, 비타민 D가 들어있는, 근본적으로 보습제에 약간의 피부 영양 성분을 함유한 것이다. 알란의 말에 따르면 피부가 타면 시장에서 식초를 사서 문지르는 것이 좋단다. 음. 냄새 나잖아. 옷집으로 원피스를 사러 들어갔다. 아가씨들이 실실 웃어 낯 뜨거워서 허겁지겁 원피스를 사서 나왔다. 언제든지 빤스는 빨아서 널어줄 수 있지만 원피스를 사 가지고 오라는 등등의 민망한 짓은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사진은 찍지 못했다. 특히 파도가 좋았다.


Boracay, Island hopping tour를 마치고 코티지에 돌아오자 마자 찍은 사진.

숙소로 돌아오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섬은 섬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숙소 앞 의자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아쉽게도 숙소에 해먹이 달려 있지 않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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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ilo -- bus 4hrs --> Kalibo -- minivan 2hrs --> Caticlan -- boat 15min --> Borcay

나는 지금으로부터 8개월 전, 아내는 7개월 전에 마지막 해외 여행을 마쳤다. 다시 말해, 게스트 하우스의 욕실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궁상스럽게 팬티와 양말을 빨아본 것이 적어도 7개월 전이 마지막이다.

호텔에서 '공짜'로 준다는 아침 식사를 챙겨먹기 위해 일어났다. 새소리가 들린다. 또 아침 7시다. 이러다가 아침형 인간들과 친구 되겠다. 해산물을 간절히 기대했지만 쓸데없는 날짐승, 들짐승 류 따위가 나온 부페식 이침 식사는 실망스러웠다.

짐을 챙기고 체크아웃 하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버스 터미널로 걸어갔다. 에어컨 버스는 10시 20분에 있고 논 에이컨 버스는 15분 마다 있단다. 두 말 할 것 없이 논 에어컨 버스에 탔다. 값싸고 신선한 시골 공기를 흠뻑 마실 수 있고 서는 정류장 마다 떼거리로 버스에 올라와 물건을 파는 행상들이 있어 여러 모로 이익이다. 시골 버스의 또다른 장점은 서스펜션/쿠션이 상당히 안 좋아 심하게 덜컹이는 관계로 고급 버스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전신 운동이 골고루 되고 내장도 함께 흔들려 소화 촉진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에어컨 버스 같은 고급 버스를 타면 쿠션이 너무 좋아 자세가 고정되어 졸다가 목이 아프다거나 허리가 결리고 배가 더부룩해 지는 등 건강에 안 좋다고 본다. 건강을 생각하는 시대이니 만큼 이제는 시골 버스를 타야 하는 것이다.

네 시간 동안 평균 50kmh의 속도로 달려 칼리보에 도착했다. 칼리보는 예상했던 대로 썰렁한 도시였다. 물어물어 까띠끌란행 미니밴을 찾았다. 사람들이 다 차야 출발한단다. 시간이 남고 승객이 더 생기려면 한참은 걸릴 것 같아 보여 아내를 놔두고 거리를 이리저리 헤메다가 초우 킹의 쇼 윈도우에 달싹 붙어 상당히 맛있어 보이는 곤지(congee)를 군침을 흘리며 쳐다 보았다.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처럼 필리핀에도 중국음식점이 많았다. 언젠가는 저 곤지를 꼭 먹고 말겠다. 미니밴 터미널로 돌아오니 운전수, 차장, 승객들이 모두 바깥으로 나와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까띠끌란 항에는 한국인들이 우글거렸다. 배표가 17.5페소인데 항구 이용료가 20페소라니 웃기잖아? 닐 스티븐슨의 크립토노미콘에서나 보던 아우트리거 보트(out-trigger boat)를 탔다. 모터가 달려 있다. 여기저기서 전라도 사투리가 들렸다. 20분쯤 뱃전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섬에 도착했다. 이런 저런 코티지, 팬션, 게스트 하우스를 둘러 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시장 뒷편에 있는 코티지를 잡았다. nipa hut이라고 불리우는 야자잎으로 얽기섥기 엮어 만든 오두막을 하룻밤 400페소에 잡았다.

보라카이 해변이 세계 최고라고? 이런 저런 여건을 보건해 보라카이가 태국 해변에 비하면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2km에 달하는 하얀 모래 해변은 인상적이었다. 하얀 모래 해변은 아마도 산호가 바스러져서 생긴 것일께다. 대낮에 해변을 돌아다니면 눈이 아플 것만 같다. 게스트 하우스 주인에게 물어 값싸게 해산물을 잔뜩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을 알아두었다. 시장통에 있었다.


Boracay, 게스트하우스를 잡고 한숨 돌린 후 해변에서...

해변에서 빈둥거리다가 arlan이란 18살 짜리 꼬마와 모래로 장난치면서 협상을 시작했다. 2-30분쯤 떠들면서 어르고 구워 삶아서 3시간에 1000페소 짜리를 5시간에 1200페소(22$ 가량)에 합의했다. 세 가지가 다른 패키지와 달랐다. 1. 내일 아침에 알란을 데리고 시장에 나가 해산물을 현지인 가격으로 사 준다. 2. 고여사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3. 우리 둘과 캡틴, 보조 딱 4명만 배에 타고 간다. 가이드가 붙어있는 한국 관광객의 경우 80-100$ 주고 열댓 명이 떼거지로 하는, 소위 Island hopping이란 것이다.

알란은 한국인 가이드가 엄청난 커미션을 챙긴다고 말했다. 또, 한국인 관광객이 없으면 보라카이는 망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의 말대로 보라카이에는 맨 한국인들만 보였다. 특이하게도 어느 여행지를 가나 바퀴벌레처럼 꾀죄죄한 몰골로 돌아다니는 일본인 여행자들이 필리핀에서 만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피노이들한테 일본 식민지 시절의 증오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럴 리가 없다. 돈 이면 안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해산물 식당을 못 찾아 상하이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나마 싸고 맛있다는 평판을 듣고 있는 상하이 레스토랑의 식사는 한심했다. 일로일로에서 워낙 잘 먹은 탓에 이런 평범한 배낭여행자의 식사가 이제는 한심해 보이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더 이상 가난하고 꾀죄죄한 배낭 여행자가 아니란 말이다, 지난 날의 고생을 딛고 다시금 새롭게 태어나 두 사람이 하루 평균 40-50$씩 쓰는 21세기형 웰빙 배낭 여행자란 말이다.

해변에 밀려온 뗏목이 보였다. 아내를 태워 바다로 밀었다. 멀리 떠나 보내고 제 2의 인생을 살아보자는 계획이었다. :)

보라카이 해변 북쪽에는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가게가 여럿 보였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리조트 등의 비싼 숙소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1박에 100$ 이상씩 하는 호텔 수준의... 아내가 저런 숙소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아 다행이다.

워낙 생각없이 온 탓에 준비한 것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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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la -- air 1hrs --> Iloilo

다시, 오전 6시 반에 일어났다. 피곤한지 택시를 잡고 싶어하는 눈치지만, 난 별 일 없으면 택시를 타지 않았다. 건강을 생각해서 걸어야지. 한 시간쯤 거리를 헤멨다. 어제 오랫만에 무리하게 움직였더니 물먹은 솜뭉치처럼 몸이 무겁다.

오전 7시 10분, 근처 공사장에서 인력시장이 열렸다. 고양이들이 웅크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어제 LRT(light rail transit)를 탈 때는 몰랐는데, LRT 차량 앞쪽은 여성 전용이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필리핀에서 '헐리우드가 놀란 blockbuster' 쉬리를 개봉했다. 동남아 국가 중에서는 상당히 늦은 축에 속할 것이다.

국내선 터미널까지 걸어갔다. 돈이 아까와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건강을 위해서다. 터미널에는 많은 한국인 신혼부부들이 있었다. 가슴에 여행사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가이드북을 보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자기들이 가게될 까띠끌란과 보라카이가 궁금하지 않을까? 필리핀의 애국지사가 누군지, 필리핀이 어째서 특이한 저성장 구조를 가지고 있고 관광 사업에 목숨을 거는지, 그들의 지난한 역사를 반영하는, 영어와 스패니시가 뒤죽박죽 섞인 따갈로그에 관해서도, 복잡한 인종 구성을 가지게 된 배경도 아는 바가 없겠지. 25만년 전 얘기니까. 하다못해 나를 향한 사랑 뿐, 거의 아무 것에도 관심없는 내 아내도 그쯤은 기본적으로 안다. 어리고 값싼 술집 여자들과 하얀 백사장이 펼쳐진 해변 이외에 그들에게 필리핀은 뭘까? 게을러 터진 나무늘보같은 사람들이 사는 그저그런 저개발 열대 국가?

한국이 동남아의 모든 국가에서 왕따 당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길 희망한다. 나라 밖에서 사고 치지 말고, 한국과 동남아시아가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그럴 여지는 충분하다.

iloilo 행 비행기를 탔다. 두당 43$, 1시간 운행. 싯 벨트를 끌르자마자 스튜어디스가 마이크를 잡더니 자리에 앉은 승객들 더러 나와 노래를 불러 보라고 한다. 두어 사람이 나가서 마이크를 잡고 정말 노래를 불렀다. 어, 관광버스 같은데?

택시는 대충 무시하고 물어물어 지프니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탁월한 방향감각에 힘입어 제대로 찾아가서 20$ 짜리 호텔을 잡았다. 파나이 주의 프로빈셜 오피스가 있는 일로일로의 중간급 호텔 중에서는 최상급이다. 에어컨, 케이블 tv, 냉장고, 그리고 아침 포함. 여행 중에 이런 호텔에 묵어본 적이 없었다. 허름한 게스트하우스를 돌아 다니다가 두고 두고 핀잔 듣고 싶은 생각이 없다. '신혼 여행'이니까.

시내 중심가에서 불이 났다. 강한 북풍 때문에 불길이 순식간에 번졌다. 주민들 틈에 끼어 전망 좋은 곳에서 30분쯤 불구경을 했다. 남의 재산이 활활 타 들어가는 불구경은 역시 지역 주민과 함께 봐야 제맛이다.


일로일로, 강한 북풍으로 불이 삽시간에 번졌지만 20분 만에 진화되었다.

박물관에 갔다. 전시한 것들은 구석기 시대부터 근세의 원주민, 식민 시대 좌초한 배에서 '출토'한 중국 도자기 등등 보잘 것 없었다. 한국에서부터 필리핀의 고대사에 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32도의 뙤약볕 아래서 어려운 걸음 해 주셨는데 전시 수준이 신석기 수준이었다. 우리는 심지어 아이들이 그린 창의력이 철철 넘치는 그림을 보기도 했다.

일로일로는 별 볼 일 없는 도시다. 알고 있었다. 옆에 붙어 있는 마다가스카르같이 생긴 섬에는 별 볼 일이 있지만 MTB를 빌려 산악길을 달려야 재미가 나는 섬이라 아내에게는 상관없는 섬이었고 그래서 나한테도 상관이 없어졌다.

그럼 일로일로에 왜 왔을까? 일로일로에는 영어 연수를 받으러 오는 한국인들이 많다. 일로일로는 1200만의 인구가 바글거리는 마닐라처럼 지저분하고 온갖 문제가 발생하는 대도시와 달리 소박한 지방 도시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일로일로는 파나이 섬의 가장 큰 도시다. 다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얘기다. 그저 일로일로를 묘사하는 가이드북에서 seafood paradise라는 것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마치 형광펜으로 밑줄이라도 그어 놓은 것처럼 상당히 환하게 눈에 띄었다.

그랬다. 8.4$ 짜리 값비싼 식사를 하고 나서 여행 중 드물게 성공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24개의 엄청나게 신선한 굴이 단돈 40페소(880원) 였다. 믿어지지 않는 가격이다. 8.4$ 짜리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의 식사를 했지만, 웨이터에게 1. 광둥 스타일의 해산물 수프, 2. 한 접시 가득한 spicy drunken shrimp, 3. 전복, 버섯, 오징어, 새우 등의 재료를 듬뿍 넣어 굴 소스로 조리한 mixed seafood, 4. 평범한 fried rice 한 접시, 5. plain steamed rice 한 접시, 6. 신선한 pineapple juice를 주문했다.


사람들이 친절했다. 일로일로에는 관광객이 거의 없다. 오직 우리 같은, 음, 맛따라 길따라나 오는 곳이 아닐까 싶다. 아쉽게도 하루 밖에 머물지 않는다.

인터넷 접속을 시도했다. high speed internet이라지만 초당 3.2kB/sec 짜리였다. 인터넷 사용에 대비해 뭔가 적절한 준비를 해 오지 않았다. 따라서 이 여행기는 상당한 시일이 지나야 인터넷에 올릴 수 있게 될 것 같다.

수퍼에서 맥주를 샀다. 호텔의 텅텅 빈 냉장고에 넣어두고 한 시간쯤 급속 냉동했다. 작전 시각은 6시 40분. 비극의 '아폴로 13'를 보면서 맥주를 마셨다. 일로일로의 또다른 특산물은 '끝내주게 맛있는 세계 최고의' 망고다. 망고 수확철은 4월이다. 우리는 '끝내주게 맛있지만' 덜 익어 떫은 망고 두 개와 피넛, 피스타치오를 안주 삼아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산 미구엘 필센과 산 미구엘 라이트를 마셨다. 산 미구엘 라이트는 독일산 맥주의 공세에서 산 미겔의 매출이 떨어지자 2년전 등장해 필리핀을 휩쓴 맥주다. 마치 맥시코의 테카테 같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데, 맥주라기 보다는 청량음료에 가까웠다. 330ml 짜리 캔이 18페소(대략 400원)다. 알딸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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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 subway 1hrs --> Kimpo Domestic Airport -- shuttle bus 30min -->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 air 2hrs --> Taipei -- air 2hrs --> Manila

전날 밤 짐을 싸뒀다. 큰 배낭 하나, 작은 배낭 하나, 힙쌕 하나, 10.95kg. 버릴만한 옷들을 입고 챙겨 가져갔다. '신혼 여행'을 앞 둔 우리의 결심: 이번에는 빈티 내지 말자. 다운시프트 웰빙하자.

아침 7시에 일어나니 피곤하다. 걷고, 뛰고, 지하철을 옮겨 타고, 버스를 타는 등 가장 저렴하게 공항으로 갈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비행기 출발 40분 전에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 사람들이 많이 밀려 보딩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늘 있는 일이니까 늦는 것 정도로는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싸구려 항공권이라 오고갈 때 트랜짓을 했다. 좋다. 2만원을 더 주고 돌아오는 편을 트랜짓에서 스탑오버로 변경했다. 왕복 항공권으로 필리핀과 대만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좀 더 신경 썼더라면 38만원 미만의 항공권을 구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신혼 여행'이니까 돈에 연연하지 말자.

서울->타이뻬이 2시간, 1시간 트랜짓 대기, 타이뻬이->마닐라 2시간, 4시간 비행에 기내식을 두 번이나 줘서 흡족했다. 누군가의 경험에 따르면 필리핀 사람들(pinoy)이 워낙 굼떠서 조금이라도 이미그레이션에 늦게 도착하면 처리 시간이 두어 시간씩 걸린다는 말을 듣고 인천 공항에서 발권할 때 앞자리를 달라고 하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뛰다시피 걸었는데, 왠걸, 순식간에 처리되어 맥이 빠졌다.

인천공항을 빠져나갈 때 아내의 패스포트에 문제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인적 사항이 기록된 여권의 첫 장이 떨어져 나갔다. 까다로운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에 잘못 걸리면 본국으로 송환될 우려가 있다. 위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 첫 페이지가 손상되어 고생하던 외국인 여행자를 본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조하기 간편한 여권을 만든 이들이 대한민국 외교통상부다. 자기 나라 국민이 다른 나라에 불합리하게 억류되면 왜 그런 지역에 가서 사서 고생하느냐고 팔짱을 끼고 호통을 치는 바로 그 외교통상부였다. 예를 들어 이라크에서 사람이 잡혔다고 치자. 미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 여행자들은 갖은 수를 다 써서 여행자들을 귀환시키는데 한국 외교통상부는 감방에 갇혀 3개월이 흐르고 나서야 뭔가 조처를 취하는 식이다. 가끔은 여행자들을 통해 라면 배달도 시킨다. 외교통상부 덕택에 한국인 여행자들은 문제가 생기면 알아서 해결하는데 익숙한 것 같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고 해 두자. 때로는 이렇게 지독한 인간들을 만들어 주시는 외교통상부가 고맙다. 요즘은 서사모아 제도의 이름모를 무인도 한 귀퉁이에 떨구어 놓아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시장을 지나가다가 강력접착제를 샀다. 숙소를 잡고 나서 짐을 풀자 마자 여권을 정말 튼튼하게 붙였다. 외교통상부 덕택이다.

인천 공항, 타이뻬이 공항, LRT 스테이션, 필리핀 도메스틱 에어포트 등을 거치는 동안 기내 반입이 금지된 칼을 배낭 속에 넣어 두었다가 인스펙션에 걸려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그 동안 갈고 닦은 탁월한 솜씨 덕택이다.


대만, 타이뻬이 공항, 트랜짓 대기 시간 동안 가이드북을 읽는 아내

필리핀의 첫 인상: 꼬모에스타라는 인삿말이 있고 우노,도스,트레스,꽈뜨로,씽꼬라는 숫자가 있다. 거리 이름과 사람 이름은 에스파뇰이고 거지 마저도 영어를 알아 듣고 말했다. 일부 거지는 '한국돈 만원 오케이' 라고 당당하게 외치기도 했다. 메스티소와 인상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 비슷하게 살이 쪘고 무표정한 것 마저도 비슷했다. 바둑판 모양의 거리는 깨끗했다. 거지들이 개, 고양이와 함께 땅바닥에서 굴러 다니며 자더라도 쳥결에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마닐라에서의 첫 식사는 만족스러웠다. 150페소(3300원)짜리 간장 소스에 볶은 굴 요리를 포함한 세 가지 요리를 시키고 시원한 산 미구엘 맥주를 곁들였다. 케이블 방송에서 '겨울연가(?)' 따갈로그 더빙판을 보면서... 90페소쯤 슬쩍 바가지를 씌우려고 했지만 그들 뜻대로 되지 않았다. 거리를 헤메다가 간신히 게스트 하우스를 찾았다. 아직 거리 개념이 잘 안 잡힌다. 거리 구조도 스페인식 바둑판이었다. 단지 필리핀 인들은 n blocks라는 개념은 없는 것 같다. 무조건 over there이란다.

밤 10시. 식당을 나와 걸었다. 아니 숙소를 못 찾아 헤멨다. 구걸하는 사람들과 거리에 아무렇게나 나자빠져 자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전에는 별 일 없어 보이던 가게들이 모두 bar로 변한 것만 같다. 필리핀에는 두 종류의 바가 존재했다. 웨스턴 바와 girlie bar라는, 여자가 나오는 나가요 분위기의 술집. 바 앞에 여자들이 앉아 초롱초롱 눈알을 빛내고 있었다. 한번쯤 들어가 보고 싶지만 뜻대로 잘 될 것 같지는 않다. 숙소에 돌아오자 마자 나가 떨어졌다. 피곤하다.

아내는 자기 사진을 보고 심한 충격을 받아 식음을 전폐한 채 다이어트에 몰두해 있다. 세 접시를 깨끗이 먹어 치우고 침대에 누워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않는 특이한 다이어트였다.

벽은 얇고 창문은 안 닫히고 복도의 불빛이 환하게 12$짜리 게스트 하우스를 비춰주었다. 피곤한 관계로 첫날밤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서 묻지마 첫날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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