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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ama blues

여행기/Panama 2003. 5. 7. 15:36
킁킁. 어디서 한국인 냄새가 나는군. 혹시 중국인 냄새가 아닐까? 그러다가 거리에서 나부끼고 있는 태극기를 보고 놀랐다. '서울식당'이라는 간판도 보였다. 좀 살만하다 싶은 동네다 싶으면 한국인이 없을 리가 없지. 두세 시간 어디라도 외딴 거리를 걸어보면 한국인들이 살고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것 저것 뒤져보니 파나마 시티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살기좋은 나라 3위 안에 든단다.

반바지 입기를 꺼리는 편인데 옷들이 땀에 절어 할 수 없이 그걸 입고 돌아다녔다. 공원에 앉아 있으니까 말을 걸어오는 곱상한 녀석이 있었다. 내 다리를 보더니 걷는 근육이 아니라 뛰는 근육이라고 말한다. 음? 난 뛴 적이 없는데. 그가 해변을 따라가는 조깅 코스를 소개해 주면서 다리를 만졌다. 잘 얘기하다가 기분이 언짢아 져서 너 호모섹슈얼이냐 그랬더니 왜요? 그러면 안되나요?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쳐다본다. 어휴... 그러면 안되지 자식아... 녀석의 팔을 아프게 꽉 쥐고 여자는 그냥 슬며시 피하는 정도지만 남자는 싫다고 말했다. 자기는 여자도 좋고 남자도 좋단다. 그러면서 되레 설교를 늘어 놓고는 클럽에서 맥주나 한 잔 하자고 꼬셨다. 마침 어제 본 세구리가드(사설 경호원)이 아는 척을 해서 그를 벤치에 앉혔다. 셋이 앉으니까 벤치가 좁다. 세구리가드가 호머더러 뭐라고 비웃는 듯한 호통을 지르니까 그가 일어서서 사라진다. 담배 한 대 내놔 봐. 세구리가드한테 담배를 얻고 내것을 줬다. 내껀 켄트 라이트인데 비싼거다. 이렇듯이 난 거지는 아니다. 나한테 호모가 꼬이는 것이 우스운지 낄낄 웃더니 저 녀석들은 도둑이라고 말한다. 그래 보이진 않았다. 어느 대도시에나 널려있는 외롭고 쓸쓸한 '여자' 중에 하나였을 것 같다.

번개가 심하게 치더니 비가 왔다. 어제와는 달리 그리 심하진 않았다. 비를 맞으며 걸었다. 1.25$ 짜리 식사를 했다. 시장에서 간간히 25센트짜리 식사를 보긴 했지만 튀긴 바나나와 쌀밥 한줌이라 그거 먹어서는 가다가 멎을 것 같았다.

사람들 표정이 무뚝뚝하다.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은 표정이 대체 이 모양이다.

여행사에 들러 항공권을 예매했다. 내일 항공권을 손에 쥘 수 있을까? 부정적이다. 학생증을 내밀고 10% 할인된 가격의 항공권을 달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학생증이 가짜인 것이 탄로날 것 같다. 40불 아끼려다가 가짜 학생증을 빼앗길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40불이면 큰 돈이라 학생증을 내밀고 도박을 했다. 지금은 항공권 가격이 300불이었는지 400불이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심지어 항공권을 구매한 여행사 이름이나 위치가 기억나지 않는다. 여행사 아가씨가 예쁘고 수줍었던 것만 기억났다. 여행사를 이리저리 알아본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첫번째 여행사에 들어가서 덜컥 구매의사를 밝혔다. 경험상, 여행사별 항공권의 가격 차이가 5-10불 정도 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 물론 아주 생각없이 행동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고 싶어도 알고 싶어하는 본능이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내 마음속 구석탱이 어딘가에서 이 정도면 적정가격이다 라고 푸른 불이 들어왔었다. 내일 항공권을 손에 쥐면 웃을 것이다. 아가씨에게 25센트 짜리 사탕 하나 줘야지...

다음날 여행사를 찾아가니 돈을 돌려준다. 구멍을 뚫어놓은 가짜 국제학생증과 함께. 어... 이거... 15불이나 주고 만든건데... 어어...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눈물을 흘리면서 여행사를 나왔다. 원래 304$을 돌려줘야 하는데 학생증에 구멍을 내서 미안했는지 307$을 돌려줬다. 3$ 먹었다. 다른 여행사 가서 예매했다. 학생증을 안 돌려줄 것 같다는 예감은 들었지만...

오늘도 우체국을 뺑뺑이 돌았다. 물건은 오지 않았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지만 마음은 평화롭기 그지 없다. 광장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 보았다. 거지들이 지나다니며 담배를 달라고 하거나(없어 새꺄) 호모가 옆에 앉아 다리를 쓰다듬거나 가끔은 예쁜 아가씨들이 지나가다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오는데 그렇게 앉아 있었다. 모자 가장자리로 빗물이 뭉쳐 떨어졌다. 건물 처마에서 누군가 손짓한다. 이리와서 비를 피하란다. 그에게 머리 깎는 시늉을 하면서 이발소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5불 주고 머리를 깎았다. 한국에 잠깐 있을 때 미장원 아가씨가 여행 중에 머리 깎지 말고 돌아와서 깎으라고 신신당부했다. 자기가 깎아 주겠다고. 터키 괴뢰메에서 깎은 머리 모양이 영 아니었나 보다. 이발사는 마쵸 스타일로 깎아줬다. 뭐라고 해야 하나...

사진 찍고 페인트 샵으로 이리저리 노력을 기울여 봤지만 어떻게 해도 뽀사시가 나오지 않았다. 베트남 여행중에는 장동건 소리까지 들었는데 이렇게 망가지고 얼굴이 굳었구나... 생각하다가 얼굴이 더 굳어지고 말았다. 호모같은 자식이 집적대도 인상 긁지 말아야하나?

호주제가 폐지 된다니 기쁘다. 여성에게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법/제도는 다 뜯어고쳐야 한다. 완전한 평등이 실현되어야 나같은 여성 차별 주의자가 상황에 굴절되지 않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나저나 '유림' 분들이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것 같던데... 흠... 원래는 조선일보 전용 문구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또라이들이 소신을 가지고 있을 때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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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ama City

여행기/Panama 2003. 5. 6. 14:49
가물에 콩나듯이 가끔 말 붙여주는 현지인들 외에는 만나는 사람이 없어 심심하다. 담배가 있지만 거리에서 거지한테 담배를 얻어 피웠다. 그만큼 나도 줬다. 홍콩인들의 흡연 사스 예방론이라고 있다. '생고기는 쉽게 썩지만 훈제고기는 그렇지 않다'

깨보니 12시. 거리로 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다. 두말 할 것 없이, 공쳤다.

파나마시티는 우체국에서 집으로 우편이나 소포를 배달해주지 않는다. 우체국 안에 사서함을 개설해서 그리로 받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거리가 엉망진창이다. 번지나 건물 번호 같은 것이 아예 없었다. 길 이름이 두 블럭마다 바뀌었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길 이름을 잘 모른다. 걸어서 한 시간이면 종단할 수 있는 길을 다섯 시간 동안 비 맞으면서 오락가락했다. 비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물어물어 우체국을 찾아 거의 시 전역을 돌아다녔다. 옷이 흠뻑 젖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우체국 네 군데를 돌았다. 물건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세관을 아직 통과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세관이라... 통과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피나마 이외의 나라에서는 도난 사고가 잦아 받을 가능성이 낮았다. 이건 일종의 도박이다. 최장 3-4일은 더 머물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안 될 것 같다.

비가 오니 우울하다. 꼬스따 리까부터 꼬미다 부페가 보여 한두 번 들락거렸다. 2-3불 정도면 먹을만한 양이 되었다. 밥 먹으니 기분이 그나마 나아졌다.

배터리까지 맛이 가는 것 같다. 충전을 시키면 1/3 정도 충전되다 말았다. 충전기, 충전지 어느 것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카메라를 사용할 수 없다. pda가 다시 맛이 갔다. 기계들이 하나둘 맛이 가면서 나를 희롱하는 것 같다. 충전지를 뜯었다. 인덕터스가 맛이 갔다. 고칠 수 있을 것 같아 거리를 돌아다니며 전파상을 찾았다. 인두와 납을 빌려달라고 하니까 그가 불쑥 영어로 말한다. 네 직업이 뭔지 알겠어. 하지만 이건 내 프로페션이야. 기술자들이란... 그에게 어디를 고칠지 알려줬다.

무슨 놈에 여행이 rpg 게임의 search and quest가 되가는 것 같다. 당면 과제: 충전기라는 아이템을 수리할 것. 우체국을 찾아낼 것. 항공사에서 적당한 가격의 항공권을 알아볼 것. 페루 자료 수집.

길거리에서 대형 x-men 2 포스터를 보았다. 극장 이름이나 위치가 적혀있지 않다. 흠. 도전의식을 불러 일으키는군. 또다른 퀘스특 되려나. 거리 이름도, 극장 이름도, 극장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극장을 물어 찾아내서 한번 보고 싶다. 그럴 여유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물가가 상당히 비싸다. 그런데 인터넷은 시간당 0.5$ 밖에 안 한다. 거리에서 조그만 과일 쥬스 한 잔 마시는 가격이다. 중미 전역에서 가장 싸다. 호텔은 10불 정도면 묵을만한 곳들이 많다. 내일쯤 더 좋은 호텔로 옮겨볼 생각이다. 2불 더 주고 욕실과 에어컨이 달린 곳으로. 이럴 때 호강해보지 언제 호강한다냐... 나중에 예산 정리하면서는, 빠나마시티는 숙소값이 비싸서 어쩔 수가 없었지. 라고 자조하면 될 것 같다. 다음 날 호텔을 옮겼다. 전등에서 전기를 끌어썼다. 전화기까지 놓여 있었다. 글쎄.. isp만 알면... 인터넷을... 침대에 누워...

파나마에 왔는데 운하를 안 보고 갈 수 있냐?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운하 보려면 미라플로레스 락스로 가는 버스를 타다가 중간에 내려 걸어가면 된다. 쉽다. 운하는 이미 tv로 많이 봤다. 옛날 옛날에 자금성 만들었던 중국인들이 빠나마 운하를 만들었다. 안 봐도 훌륭하게 잘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홍콩인들은 알콜이 사스 균을 예방해준다는 낭설에 심취해 있다. 보라, 죽어라고 술을 마시는 한국인들은 사스에 안 걸리지 않냐? 하면서. 홍콩 사람들은 정말 멋지다.

빠나마에서는 요즘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 별걸 다 한다. 신호등이 있어서 거리를 횡단할 때 괴로움을 느꼈다. 중동에서 길들인 버릇 때문인지 차들이 달리는 거리로 뛰어들어 시간차를 절묘하게 활용하여 건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옛날에 하던 개구리 게임처럼.

게임에서 살아남은 개구리가 되고 싶다.
자,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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