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Honduras'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3.04.28 La Ceiba에 있을 때 TV에서 1
  2. 2003.04.27 Tegucigalpa
  3. 2003.04.26 Isla Utila
  4. 2003.04.25 La Ceiba
  5. 2003.04.23 Copan Ruinas 1
  6. 2003.04.22 Honduras
La Ceiba에 있을 때 TV에서 farscape란 SF 드라마를 봤다. 대충 훌터보니 지구인 우주 비행사가 재수없게 웜홀에 빠져들어 엉뚱한 외계인들 한 통속과 돌아다니며 자기가 속한 세계로 돌아가기를 고대한다는... 그런 얘기인 것 같은데 재미있어 보였다. 돌아갈 곳이 없거나 돌아가는 일이 불가능해서 한가해진 사람이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온두라스 정보 정리. 온두라스 사진

한 프로그래머가 미국의 침략전쟁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어떤 잡지의 인터뷰에 밝히고 나서 DoD는 그가 손보고 있던 OpenBSD 개발자금을 중단했다. 그는 자신이 주도가 되어 만들고 손질하고 있는 openbsd가 국방성에서 미사일의 os로 탑재되는 것을 탐탁치않게 생각했고 그래서 국방성에 밉보여 한 마디로 짤린 것이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i love the universe. it doesn't love me back. but that's okay.

돌아다니다가 어느 홈페이지에서 본 말.

1. 우주가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2. 그냥 일 없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사랑하려면 보통 용기나 정성이 아닌 것 같다.
3. 나는, 지나가는 개미들은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실없이 히죽 웃으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타입이 아니다.
4. 사랑 받는 편이 사랑하는 편보다 편하지 않나? 사랑받지 않을 때도 생활에 별 무리는 없다. 여자들은 다소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지만.
5. 그래서 저 문장들을 다시 재구성해 보았다. the universe doesn't love me. that's okay/fine/even nice.
6. 5항을 적어 놓고 보니까 내 정신상태와 훨씬 접근한 것 같다.

꽃의 유혹/샤먼 앱트 러셀/이제이북스 - 샤먼 앱트 러셀은 화원 한 가운데 서 있다가 열정적으로 섹스를 나누는(거의 무차별적으로) 꽃들에 둘러싸여 민망해서 얼굴을 붉힌 채 몸둘 바를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꽃을 사랑한다. 꽃들이 그를 사랑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꽃들이 그에게 꽃잎을 유혹적으로 흔들려 애교를 떨었으리라고는 상상이 불가능) that's okay 내지는 no problem이었을 것이다.

우주나 꽃들에게 사랑받았던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했을까? 인류의 지성을 총 동원해도 아직은 밝힐 수 없는 문제다. 대개의 인류는 우주나 꽃들의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뿐더러 그들의 사랑이 없더라도 행복하게 잘 살아왔다. 음. 우주가 인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인류는 망했을 지도 모른다. <-- 이런 주장은 심지어 최근의 과학자들까지도 한다. 과학자들 버젼의 목적론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가능성 속에서 인간이 나타났다는 것이고 마치 인간을 위해서, 우주가 존재한다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기조차 한다. 왜냐하면 우주는 인간이 쳐다보지 않았더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같은 이유로, 꽃들이 더이상 인류를 사랑해 주지 않으면 인류는 멸종할지도 모른다. 나를 심하게 물어뜯은 개미들도 마찬가지다. 사랑하기에 물었다?

며칠 전에 후세인이 자신의 궁전 은밀한 곳으로 종종 외계인을 초청했으며 후세인이 갑자기 증발한 것은 외계인들이 그를 데려갔기 때문이라는 이라크인들 사이의 소문을 들었다.

꽃들이 나를 사랑한다거나 후세인이 외계인의 도움으로 탈출한 것이나 잠시 나를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주제에 관해 말하다보면 어느새 바보로 되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그런가 보다 하면 될 것을 생각한답시고 자꾸 말하다보면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같은 불쌍한 바보들을 위해서 '바보라고 말하는 것은 용기있는 행위이며 발전을 위해 우리 모두는 먼저 우리가 바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하다'... 라는 위로를 하자는 것인지 희롱하자는 것인지 하는 주장도 있었다.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시켜먹으면서 생각했다. 접시 한가득 나온 볶음밥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최소한 3인분은 되는 양이었다. 2인분까지는 어떻게 되었지만...

4월 25일부터 멕시코에서 즉시 발급해 주던 과떼말라 비자가 약 3주 이상 소여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본국의 허가를 받는 기간이 그렇다는 얘기고 비자가 나올지 안 나올지는 본국의 심사 여부를... 기가 막혔다. 시리아 때도 그렇더니만 과떼말라 마저... 그럼 과떼말라를 마지막으로 통과한 사람이 나와 나 다음으로 다음 날 국경을 넘은 어떤 한국 아가씨, 둘 뿐이라는 얘긴데... 그러고보니 그 아가씨가 국경에서 나를 기억하고 내 얘기를 하더란다. 내가 운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액운을 몰고 다니는 것인가.

산 빼드로 라 라구나 같은, 배낭여행자에게는 환상적인 곳에 못가게 된 사람들이 왠지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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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gucigalpa

여행기/Honduras 2003. 4. 27. 12:02
San Pedro Sula -> Tegucigalpa

수년 전 태풍 미치가 온두라스의 국토를 초토화한 후 별다른 국가적 제도적 장치의 보호가 없었던 온두라스 시민들은 집과 닭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었다. 온두라스 수탉은 한국의 장닭처럼 멋있게 생겼다. 닭을 잃은 농부들이 대도시로 몰려들었고, 흉악한 절도/강도 사고가 무수히 발생하는 탓에 왠간하면 거리에서 걷지 말고 택시를 타길 충고한다. 주변국의 실정에 비추어 택시값이 워낙 싸기도 했다. 개중에서 콜렉티보라 불리는 '더럽게 싼' 택시들은 마치 이란의 사바리처럼 정해진 주행경로를 따라 움직였다. 1킬로미터쯤 가는데 0.2$ 가량. 대부분의 시민들은 언제 올지, 언제 떠날지 모르는 버스 보다는 택시를 더 많이 이용한다.

하지만 나는 걸었다. 택시비보다 음료비를 더 많이 쓰면서도, 땀으로 범벅이 되어 바닷물에 담궈놓은 듯한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도 뙤약볕 아래서 삐거덕 거리는 고물 로봇처럼 전진했다. 숙소로, 식당으로, 버스 터미널로, 광장으로.

태양이 가장 격렬하게 활동하는 오후 1시부터 3시까지가 가장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태양의 고도가 45도를 넘은 3시부터 해가 지기 1시간 전인 4시 반 정도까지가 가장 땀이 많이 흐르는 때다. 광선의 각도가 변화하면서 빛이 닿는 신체의 면적이 증가하고 대기를 뚫고 들어오는 태양광 중 자외선은 공기와 부유 입자에 부딪혀 사방으로 흩어지고 대기와 먼지를 뚫고 전진하는 적외선의 비율은 점점 높아지게 된다. 적외선은 쉽사리 몸을 뚫고 들어와 내장과 근육의 온도를 꾸준히 높이면서 몸을 행주 비틀듯이 땀이 흘러 나오기 시작한다.

땀으로 손실된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하루에 적어도 2리터 이상의 물과 음료를 마셨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딱히 건조한 날씨가 아님에도 흡수된 수분은 빠른 속도로 체외로 빠져나가 마셔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우기가 시작되면서 습도는 90% 이상 올라갔다. 피는 피를 부르고... 아니지, 땀은 땀을 부르고... 수분이 피부를 덥자 땀구멍으로 빠져나가야 할 열은 몸 안으로 되돌아간다. 덥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했다...

볼거리 하나 없는 가엾은 거리를 할일 없는 개처럼 배회했다. 이 동네의 볼거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주민들을 가난으로 몰아놓은 천연덕스럽고 아름다운 주위의 자연 환경이다. 전 국토의 80 퍼센트 이상이 가파른 산악이라 농작물을 키울 형편이 안된다. 열대 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보이는 과일은 극단적으로 종수가 적다. 바나나, 망고, 그리고 말라 비틀어진 사과가 거의 전부다.

개미한테 심각하게 물어뜯긴 팔다리가 가려워서 안티셉틱/안티히스타민을 구해야 하는데 마침 토요일, 일요일이라 문을 연 가게가 없다. 대체 얼마나 피곤했길래 섬에서 개미에게 그렇게 물려 뜯기면서도 곤히 잠들 수 있었을까. 피곤한 것이 당연한가? 왠만하면 무식하게 걸어 다녔으니. 하여튼 벼룩이나 모기도 아니고 개미한테 물리다니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모기, 벼룩은 그간의 풍부한 경험으로 콧방귀를 뀌면서 무시할 수 있었다. 벼룩이 찌를때는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온다. 아~! 하고. 그 지독한 개미산 때문에 빨갛게 부풀어오른 작은 종기가 시도 때도 없이 가려워 참느라고 더 미칠 지경이다.

모처럼 큰 맘 먹고 에어컨 버스를 타러 갔는데 일요일이라서 오후 3시 반 차 하나 밖에 없단다. 표 파는 아가씨는 도도했고 난 몹시 안타까왔다. 아픈데... 되돌아서 온 거리만큼 꾸역꾸역 다시 걸었다. 그나마 오전이라 땀이 많이 나지 않았다. 한 시간쯤 기다려 히터를 켜놓은 듯한 버스에 올랐다. 순서대로 약을 삼켰다. 기침/진해라고 씌어진 것 두 알과 진통제 500mg과 항생제 500mg. 감기 걸렸을 때 먹는 배합과 똑 같다. 이 품종의 기침/진해약(안티히스타민)은 단 한번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다. 한 방에 뿅 가는 액티피드가 내게는 아주 잘 맞았다.

항생제 기운이 퍼지면서 슬슬 행복해지고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차가 달린다. 10분도 안되어 시내를 빠져나간다. 차에 탄 사람들은 걱정 근심 없이 행복해 보인다. 지금 빠져 나온 도시는 온두라스에서 두번 째로 큰 도시다. 걸어서 25분이면 종단 내지는 횡단할 수 있다. 지금은 온두라스에서 첫번 째로 큰 도시인 떼구시갈빠로 향하는 중이다. 사람들이 떼구시갈빠라는 이름을 들어보기나 해 봤을까? 차창 밖으로 펼쳐진 cloud forest의 풍광은 더없이 위협적이고 아름답다. 차창 밖이라... 에어컨이 없어 창문을 열어 놓았는데 후덥지근한 열풍이 얼굴에 와 닿는다. 버스가 1초라도 멈추면 이마에서 주르륵 땀줄기가 떨어진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있는 시민들의 염원은 한결 같다. 제발 계속 달려주기를, 열풍이라도 좋으니까, 차 안에서 풍기는 각종 냄새를 날려주시고...

고개를 돌렸다.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온두라스는 마치 열대판 설악산 같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허리에 정글 칼을 찬 메스티소(스패니시+인디언)와 가리푸나(인디언+흑인)가 나란히 도로 옆을 걷고 있다. 정복자 스패니시의 체면과 지위를 가리지 않는 대단한 색욕에 삼가 경의를 표했다. 불과 다섯 세대 만에 온두라스 인구의 75%가 메스티소가 되었다. 첫 세대에 스패니시 한 마리가 몇 명의 토착 인디언 여성을 능욕해야지 2200만의 인구 중 75%가 혼혈이 될까. 세대당 평균 자녀수와 출산율과 사망율을 알면 계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약 기운에 기분이 좋아져서 만사가 귀찮다.

비몽사몽에 산자락 위로 떠오른 뭉게구름을 쳐다 보았다. 푸른색이다. 사진기를 더듬다가 관뒀다. 어차피 찍히지 않을텐데 뭐... 푸른색 구름을 두번째로 본다.

찢어지게 가난한 이 나라의 도로 시스템이 마치 전문가가 시공한 것처럼 정교한 이유를 알았다. 간단히 말해 미국이 개입한 피비린내 나는 역사 때문이다. 이 정교한 도로망은 미국이 깔아준 것이다. 이를테면 도로의 회전반경이라던가 슬로프, 아스팔트의 두께 따위를 유지하는 토목공사는 선진 기술, 특히 측량과 설계, 시공과 그만한 장비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돈이 없는 온두라스가 만일 도로를 자체적으로 건설했다면 동남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처럼 아스팔트를 깔긴 깔았으되 설계하지 않고 대충 깔은 울퉁불퉁하고 괴상한 도로였어야 한다. 정글칼과 소 달구지로는 도로의 속도 한계를 계산한 후 설계한 이런 종류의 도로를 만들지 못한다. 너무 무시했나? 이 도로는 온두라스의 비참한 미국 현대 식민 역사로 보여서 그렇다.

온두라스인은 혁명을 통해 나라를 독립시키고 미국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났다. 최소한 그래 보인다. 태풍 미치만 아니었더라면, 아니 근본적으로 미국과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부패한 군부 독재 정권만 아니었더라면 온두라스가 이렇게 찢어지게 가난했을까? 온두라스에는 혁명과 개혁을 짖밟은 미국이 있었다. 이 나라 걱정해 주러 여행온 것은 아니지만... 온두라스는 아마도... 레바논같은 나라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꼬라지로 봐서는 발전속도가 참으로 더딜 것 같아 보인다... 안된 얘기지만 별다른 기적이 없는 한 동남 아시아권역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자력갱생으로 향하는 길이 저 밀림과 산세를 뚫고 나아가는 것처럼 험난해 보인다...

우띨라 섬에서 허겁지겁 빠져 나온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날 저녁 무슨 파티에 초대 받았었다. 분위기가 이상한 섬이었고 그 이상하다는 분위기의 대부분이 온두라스와는 다른, 정상적이지 못한 것임을 막연하게 감지했다. 어쩐지 그 섬은 미국인이 사들이고 그들의 이기적인 커뮤니티를 배타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일찌감치 빠져 나와서(파티에 안 갔다)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없었지만 혹시라도 우띨라 섬의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변칙적인' '비온두라스적인' 부분에 관해 딴 사람들에게도 좀 들어봐야겠다.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것은 아니냐고? 중동 여행 끝나고 나서 그 동안 쓰고 다니던 노란 색안경은 버리고 지금은 색없는 안경 쓰고 다닌다. 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멕시코의 이슬라 무헤레스와 깐꾼은 서양, 특히 미국 여행자들이 판을 치고 다닌다. 그런데 그건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과떼말라의 치치까스떼낭고는 별명이 그링고떼낭고다. 그것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그 둘은 각자의 문화라든가 삶의 양식에서 그 나라의 보편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또한 미국적이라는 특성이 외부적으로 공개되어 있다. 우띨라에서는 거꾸로 '온두라스틱'하면서 온두라스의 보편적인 도시와는 아주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관광지라던가 그런 부분이 아니라 가끔 여행자를 잡아서 인신 공양을 드리고 증거가 안 남게 나머지 살과 뼈는 잘 갈아 쏘세지로 만들어 파는 듯한...

멕시코가 미국과 캐나다를 엮는 북미권 자유 무역 협정의 기본 골격을 마련하고 곧 실현할 단계에 이른 것 같다. 멕시코는 중미 국가가 아니고 북미 국가다. 멕시코는 그 나라가 지닌 수많은 불가피한 행운에 하나 더 역사적인 행운을 타고났다. 지정학적으로 '돈버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중미로부터 원자재 수입과 싼 노동력을 이용해 북미라는 거대한 하이엔드 마켓에 팔아 먹거나 또는 그 반대도 되고. 21세기에 멕시코만큼 희망찬 나라가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헤롱거리면서 이런 저런 잡상을 떠올리다보니 아무도 이름을 기억해 줄 것 같지 않은 온두라스의 수도 떼구시갈빠에 도착했다. 터미널에 내리자 마자 LA의 'HOLLY WOOD'라는 글자처럼 저 멀리 맞은 편 언덕 위에 하얀 글씨로 씌여진 대형 간판이 보였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Coca Cola


착취를 일삼았던 미국의 다국적 기업과... 미국의 군부 독재 정권 지원과... 내가 느낀 우띨라의 이상스러운 분위기에 대한 온두라스인의 답변은, Coca Cola Siempre(Coca Cola Always)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웃었다. 과거에 사로잡힌 내 편견이 웃음꺼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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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 Utila

여행기/Honduras 2003. 4. 26. 19:13
La Ceiba -> Isla Utila -> San Pedro Sula

선착장이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버스도 없고... 배 시간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50 렘피라(3$ 가량) 정도라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정가는 25렘피라였다. 이거야 원.

배 타고 섬에 진입할 때 부터 영... 꽝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스쿠버가 아니면 별로 오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 것 같은 섬이었다. 작은 해변이 한 둘 있고 근처에 점점이 흩어진 섬들이 볼거리였다. 해변에는 샌드플라이가 우글거렸다. 대낮에는 샌드플라이에게 뜯기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개미들에게 뜯겼다. 특히 개미한테 물린 정도가 워낙 심해 뭘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밤새도록 뜯겼다. 다음 날, 마침 배가 출발할 시간이 되어서 바로 짐 싸들고 섬을 나와 산 뻬드로 술라로 향했다.

산 뻬드로 술라에서 괜찮은 숙소를 싼 값에 잡고 샌드플라이와 개미한테 얼마나 물렸나 살펴보니 이건 좀 심했다. 왼팔에만 80방쯤, 오른팔, 다리, 허리, 목 부위까지 합치면 수백군데를 뜯긴 것 같다. 육보시 한 번 징하게 했다. 개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섬이 좀 실망스러워 만사(스쿠버, 스노클링, 해변에서의 한가한 오후) 다 포기하고 나왔다. 원래 계획은 적어도 4-5일은 짱박혀서 논다는 것. 멕시코의 이슬라 무헤레스에서 그래보지 못했으니까. 거기서 뭘 기대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뭔가, 여태까지 가봤던 섬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걸 해변이라고 부를 수 있나 싶은... 보잘 것 없는 해변에서 한숨이 나왔달까...

캐리비언 최고의 섬 중 하나라는데 왜 이 모양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라... 인터넷 가격이 시간당 5$~10$로 지난 1년 가량의 여행 중 최고의 물가를 자랑했다. 스쿠버 비용이 가장 싼 곳 중 하나라는데 여러 모로 비교해봐도 뭐가 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이빙을 안 한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워낙 섬이 마음에 안 들어서 후회스럽지는 않다. 가까운 태국에서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으니까.

무척 덥다. 남미로 내려갈 때 까지는 이 더위에 한동안 정신 못 차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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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eiba

여행기/Honduras 2003. 4. 25. 12:10
Copan Ruinas -> San Pedro Sula -> La Ceiba

어제 만났던 한국인은 과테말라 비자를 국경에서 받으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돌아왔다. 남미 쪽에서 비자 받아 올라오기가 힘든 듯. 방을 같이 썼다. http://www.wowlife.net

꼬빤 루이나스에서 중국 음식점을 발견하고 저녁을 거기서 먹었다. 중국 음식점들은 하나같이 양과 맛에서 사람을 감동시킨다. 지금까지 먹은 중국 음식 중 접시를 다 비운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La Ceiba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으러 배낭을 매고 한 시간 반을 돌아다녔다. 싼 숙소가 안 보이거나 싼 숙소는 너무 싼 탓인지(2$ 가량) 머물기 꺼려졌다. 구멍이 숭숭 뚫린 판자로 사면 벽을 대충 막고 천정을 덮은 로맨틱한 방인데 아름답고 지저분한 침대가 하나만 달랑 놓여있고 창문이 없다. 전등이 없다. 바닥은... 환경친화적인 흙바닥이었다. 문명의 도시에서 날문명 내지는 비문명을 힐끗 쳐다본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막연히 시내를 헤메다가 그라스를 파는 잘 생기고 자메이카식 영어를 하는 믈라토의 도움으로 찾아보려던 숙소를 포기할 수 있었다. 그의 영어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마치 레게를 듣는 것처럼 리드미컬한 영어였다. 토킹을 뮤직으로 만든 것 같다. 하여튼 믈라토의 말에 따르면 그 숙소는 시내에 있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헤메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시내와 버스 터미널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가이드북이 깜빡 잊고 안 적어 놓았기 때문인데, 이렇게 땀으로 걸죽하게 목욕하며 운동 하니까 건강은 점점 좋아지기만 한다. LP의 지도를 보고서 경이로움을 느꼈다. LP에는 길 이름도 없었고 길 위에는 아무 것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길을 찾을까. 택시를 탈까? 택시를 딱 한 번 타봤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이국의 거리를 이해하고 싶었고 그렇게 해야지만 내가 먹은 음식들도 위장 속에서 보람을 느끼며 소화될 것 같았다.

몹시 더웠다. 흠뻑 젖었다. 어깨가 쑤신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시내를 돌자 하다가 운 좋게 100 (5.8$) 짜리 아주 깨끗한 더블을 얻었다. 시내의 더럽고 지저분한 방이 10$ 가량이었는데 훨씬 낫다. 멋진 실링팬과 TV가 있었다. TV 있는 방에서 자보기는 중미 여행 중 처음이다. 호텔 부페에서 음식을 사와 베란다에서 garafono라는 사람들의 삶을 쳐다보면서 밥을 먹었다. 가이드북을 보니 내가 택한 숙소 근처의 거리는 더럽고 지저분해서 하룻밤을 간신히 잘만 하다고 적혀 있었다. 그럴듯한 말이다. 판자촌 한가운데니까. 밤이 되자 한 가라포노가 다른 가라포노를 때렸다. 남자 가라포노는 여자 가라포노를 울리기도 했다. 여러 여자 가라포노가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바가지를 긁는 모습도 보였다.

경로 짜야 하는데 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제한된 시간에 남미에서 하나만 제대로 본다면 페루가 나온다. 엄한 곳에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페루와 볼리비아만 가자고 일단은 정했다. 이 재미없고 시시한 중미는 어쨌거나 빠져 나가야 하는데, 정말 귀찮아 죽겠다.

멕시코의 깐꾼에서 운이 좋았다. 버스를 타던 날 섬머타임을 실시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한 시간 일찍 가서 막 출발하려는 버스를 탔다. 아구가 맞아 떨어진다. 빨렝게에서 과떼말라로 넘어올 때 왜 한 시간 일찍 깨우러 왔는지... 같은 투어 버스를 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기습적으로 섬머타임을 실시한 멕시코 정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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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an Ruinas

여행기/Honduras 2003. 4. 23. 19:29
어제 여행 중 두번째로 한국인을 만났다. 그는 남미에서 중미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맥주를 좀 마시면서 남미의 가볼만한 곳들을 들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다 까먹었다. 아아... 형편없는 기억력이란...

꼬빤 유적지가 중요한 것은 마야 유적지 중에서 가장 정교하다는 sculpture 때문인 듯 싶은데 그저 그랬고 폐허의 규모가 아담해서 2시간 정도면 유적지 전체를 꼼꼼이 둘러볼 수 있었다. 유적지의 입장료만 10불, 터널의 프레스코인지 아니면 부조인지를 보는데 12불을 더 내야 하고 박물관 관람에 다시 10불, 온두라스가 꼬빤 유적지로 관광객을 등쳐 먹으려고 작정한 것 같다. 이렇게 조그마한 유적지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마야 유적 중 입장료가 가장 비싸다는 점이 희안하다. 내가 모르는 뭔가 중요한 것이 있는건가. 1830년에 발견되어 카네기 재단의 지원을 받아 일부 복구가 진행되다가 온두라스 정부가 맡기 시작, 그런데 지난 170년 동안 대체 뭘 했다는 것인지... 입장료가 비싸서 유적지만 보았다. 워낙 조그마한 유적지라 유적지 전체를 철조망으로 막아 놓았다. 마땅히 낮잠을 즐기고 쉴만한 곳을 찾지 못해 일찌감치 나왔다.


유적지 입구에서 본 앵무새들

지금까지 돌아본 마야 유적지 순위 메기기: 띠깔, 치첸 이사, 빨렝게, 우스말, 꼬빤. (뚤룸, 보남빠크 등은 안 갔는데, 안 가길 잘했다)

우리나라 남자 직장인의 40.5%는 주 1회 이상 폭음하고, 7.3%는 거의 매일 폭음한다? 폭음의 기준이 고작 소주 한 병 또는 맥주 네 병을 마시는 것이라고... 그랬구나. 어제 맥주 네 병을 마시고 푹 잤던 이유가.

체질량지수 : 21.72(kg/m^2. (과체중 23이상, 비만 25이상. 비만관련 질활은 23~27 사이에서 급격히 증가) 혈압 120/75. 수치로 나타낸 내 건강은 극도로 좋다. 그래서 모기들이 내 피를 좋아하는 것 같다.

비타민은 어쩐지 체내에 축적 되지 않는 것 같다. 오늘 비타민을 왕창 먹어도 내일은 내일의 비타민이 필요한 것이던가, 비타민 소비량이 매우 높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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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duras

여행기/Honduras 2003. 4. 22. 18:53
San Salvador -> El Poy -> Honduras 국경 -> Ocotepeque -> La Entrada -> Copan Ruinas.

미친 가이드북의 횡설수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지도를 그렸다. 잘만 하면 꼬빤까지 하루에 꾈 수 있을 것 같다. 아침 일찍 일어나 (5.30am) 버스 터미널로 걷다가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국경으로. 거기서 정신없이 입출국 수속과 환전을 마치고 버스를 세 번 갈아탔다. 온두라스에서 탄 두 번째 버스의 운전수는 중간에 내려 어딘가로 사라졌다. 길 건너편을 보니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반가운 정경인데... 배고픈데 아침에 쿠키 다섯 개와 오렌지 쥬스 반 병을 먹었고 오는 길에 남은 포도로 끼니를 때웠다. 삶은 옥수수 하나가 0.1$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치고 산악을 휫감아도는 도로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그 훌륭한 도로 위로 말들이 지나간다. 가끔은 버스 같은 것도 지나갔다. 엘 살바도르와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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