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데리고 저렴하게 수원 인근에 놀러가 볼만한 데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아 작년부터 기회만 보고 있던 '착한 여행'을 이번에 다녀왔다. 화성의제21 에서 운영하는 화성 시티투어 중 하나인데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가이드를 동반하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코스가 여럿 있다. 그중 '자연의 숨결' 코스는 9:00am ~ 5:00pm까지 1. 공룡알 화석지, 2. 남양성모성지, 3. 우리꽃식물원을 버스로 돌아다니며, 점심을 제공한다.

2011/5/22,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고 병점역 앞에 있는 화성 출장사무소 앞에서 딸과 함께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수원에서 온 나/내 딸과, 서울에서 온 두 분을 빼고 대부분 화성 사람들이다.  사람이 많아 버스가 세 대 운행, 문화해설사가 동승했다 -- 동네 아줌마가 동네 마실 시켜주는 분위기라 편하다. 그런데, 아줌마가 착한 여행의 의의를 말씀하시는 도중에 '김밥을 안 먹으니까 피부가 고와지더라, 김밥에 첨가물이 그렇게 많더라'고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김밥 재료에 들어가는 성분 중 몇몇 식품 첨가물에 대해서 알아본 적이 있었다. 이를테면 아스파탐, 사카란, 아질산나트륨 따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다음부터는 아는 사람과의 단독 직접 대면 대화(비디오 컨퍼런스도 대면 대화이긴 한데 facetime 따위로는 커버가 안되는 20% 부족한 것이 있다)가 아니면 논쟁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온라인에서도 근거가 하도 바보같은 지경이 아니고, 내가 술에 취해 기분이 좋지 않으면 하지 않았다. 

시화호 근방에서 발견된 공룡에 이름을 붙였는데 뭔지 아냐고 질문했다. 맞추면 상품을 준다고... 나야 뭐 당연히 알고 있지만(공룡X --> 코레아노 케라톱스 화성엔시스) 딸애가 대답하길 기다렸다. 딸도 알고 있다. 상품은 서울에서 온 아줌마가 받았다.  


공룡알 화석지 입구. 시화호 방조제가 조성되면서 저들은 더 이상 섬이 아니게 되었다. 늪지는 폭신폭신했다. 늑대거미가 펄 여기저기를 기어다녔다.

클릭=확대 자생식물은 매해 다른 종류로 바뀐단다. 그 속도가 굉장하다. 방조제 구축 후 시화호가 썩어가자 방조제 일부를 갑문으로 교체하고 열었다. 이제는 여길 생태공원, 공룡 박물관 따위를 만들려고 계획중이다. 그러나 공룡화석지를 에워싼 거대한 습지를 지나가는 고속도로 건설현장은 흉물스러웠다. 고개를 돌리고 이쪽 사진을 찍었다. 문화해설사가 말했다. '습지를 보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습지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공룡알 화석은 어떤 사진작가가 처음 발견했다던가? 천방지축 날뛰는 어린 딸을 쫓아가느라 설명이고 뭐고... 사실 배경지식이 좀 있어서 설명은 뭐... 

공룡 좋아하는 딸애 보여주려고 온 곳인데 알 화석에 관심이 없다. 나라도 그렇겠다. 고생물학은 대단한 상상력이 필요한 학문이다. 다른 팀과 부대끼면 해설이 겹치니까 서두른다.
 

공개된 곳이 생각보다 적다. 습지를 가로지르는 나무길을 한바퀴 돌면 끝이다. 저 너머에 경비행장이 있고 저 너머가 안산. 자전거 타고 안산의 저 곳을 몇 번 오락가락했다. 자전거 타고 이 곳에 오려고 했었다. 

퇴적층 한 가운데 잘 안 보이는 공룡 알 껍질 화석. 해설 수준은 초등생에 맞춰 6살 짜리가 따라가긴 무리였다. 그저 깔깔거리며 여기저기 뛰어 다니기 바쁘다. 그 편이 낫지 싶었다. 

 공룡알 화석이 보이나? 난 보인다. 본 적이 있으니까. 한국의 공룡알 화석은 중요한가? 글쎄다. 중국에 엄청 많다. 한국의 공룡 발자국 화석은 유명했다. 화성은 국립자연사박물관 경쟁에서 거의 1조에 달하는 예산을 따낼 수 있을까? 따내면 지자체는 대박 나는 거고... 이 나라에 변변한 국립 자연사 박물관이 없다. 

여하튼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더 이상 인간을 몰고 오지 않을 때가 되기 전에 여기에 발자국을 찍었다. 시원하고 아름답다. 클릭=확대

문화해설사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원래 한국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모두 화염이었는데 일본인들이 생산성을 이유로 천일염으로 바꾸었단다. 

순두부집에서 모처럼 간수를 쓴 순두부를 먹었다. 맛있다고 하니 동석한 문화해설사의 꿈이 제대로 된 순두부집을 차리는 거란다. 그리고 간수를 사용하면 두부국물이 맑단다. 내가 먹고 있는 것은 탁했지만 강릉에서 먹곤 하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맛있다. 소울이에게 간수를 어떻게 얻는지 설명했지만, 알아듣는 것 같지 않았다. 같은 팀의 많은 아이들이 순두부를 먹지않아 신기했다. 그래서 남은 것은 우리 테이블에서 다 먹었다.
  

남양성모성지. 왠만한 도시는 이러저러 잡다한 것들을 붙여 소위 'xx팔경'이란 걸 만들었다. 화성 팔경 중 종교 사이트는 두 개란다. 여기 남양성모성지와 용주사. 성모성지는 아늑하고 편안한 꽃동산이다. 이런 곳을 만든 노력이 참 대단했다. 사랑과 정성이 느껴진다. 사진을 확대할 껄 그랬나? 성모 조각이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우리꽃 식물원에 들렀다. 울릉도는 물론, 제주 식물이 꽤 많았다. 생긴지 얼마 안되어 공간이 썰렁했다. 아이를 무등 태우고 식물원이 내려다보이는 동산에 올랐다가 내려왔다. 문득 산에 가고 싶어졌다. 산에 가서 막걸리 마시고 나무에 해먹 걸고 낮잠 자고 싶어졌다. 돌아갈 시간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재밌게 놀았다. 버스에서 내릴 때 쯤 500g 짜리 쌀 한 봉지를 나눠줬다. 기회가 되면 다음엔 제부도에 가고 싶다. 뭔가 참 괜찮은 여행이다. 특히 많이 걸어다녀서 좋았다. 어쩌다 우연히 본 어떤 블로그에서(출처 확인할 수 없음) 여행의 어원을 정리해 놓았다. 여행의 로마식 정의는 '고문'이고 프랑스식 정의는 '일'이었다. 중국에서도 여행은 고행이었다.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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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오늘 계획은... 음... 어젯밤 술 마시다가 얘기한 대로 두 가족이 함께 돌아다니며 여기저리 오름에 갔다가 우도에 들어가기로 했다. 술김에 뭔 얘기를 했었지? 제주도 와서 오름 안 올라가는 건 말도 안된다 뭐 그런 얘기였던가?

11시쯤 서귀포 외곽에 있는 중국집 아서원에 도착. 군만두, 짜장, 짬뽕을 시켜 먹었다. 각종 해물과 돼지고기에 특이하게도 숙주를 넣고 끓인 4천원짜리 짬뽕인데 느끼하지 않고 뒷끝이 깔끔하다.

차 타고 출발. 며칠 전에 갔던 길이라고 길이 낯익다. 다랑쉬 오름에 도착한 게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다랑쉬 오름 월랑봉
다랑쉬 오름(월랑봉) 382m. 가파른 오르막길은 폐쇄하고 지그재그로 다시 길을 낸 것이란다.  어른들이 뒤쳐져 있는 동안 아이들은 신나게 올라간다. 낮은 봉우리라 내 발걸음도 가벼웠다. 이런 산은 몇 개씩 올라도 별로 힘이 안 든다. 그나저나 우리 애 체력이 꽤 괜찮다. 북한산에서 조기교육을 한 덕택이다.

다랑쉬 오름
클릭=확대. 다랑쉬 오름이 오름의 여왕이란다. 아래에 아끈 다랑쉬 오름이 보인다. 야트막한 동산인데 사방이 확 트여서 뭐라 말할 수 없이 풍광이 장쾌하다.

다랑쉬 오름
다랑쉬 오름 정상. 아내가 걸어오고 있다. 저 뒤로 성산 일출봉이 보였다.

다랑쉬 오름
클릭=확대. 아래쪽은 며칠 전 스쿠터 타고 지그재그로 돌아다녔던 길들. 저 멀리 제주도의 북부해안선이 흐릿하게 보인다.

다랑쉬 오름 분화구
분화구(클릭=확대). 정상에서 분화구를 빙 에두르는 등산로(산책로?)가 있다. 갈대와 억세가 많고 홀씨만 남은 엉겅퀴가 바람에 흔들렸다. 눈 내리면 눈썰매 타고 분화구 밑바닥까지 내려가고 싶어지는데... 다랑쉬 오름에서 패러 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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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가족 사진을 찍어 본 적이 없다.

아끈 다랑쉬 오름
아끈 다랑쉬 오름에 올랐다(클릭=확대). 아끈이 작다는 뜻이었던가? 앞에 보이는 것이 다랑쉬 오름.

아끈 다랑쉬 오름
아끈 다랑쉬 오름에서 내려오는 길. 2:25pm.

시간이 별로 없어 아부 오름이나 용눈이 오름은 포기했다. 주인장 자가용은 성산 선착장까지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오후 세 시 배를 놓치면 네 시 배편을 기다려야 한다.

제주도 와서 무슨 계획을 가지고 움직인 적이 없었다. 자동차를 내버려두고(열쇠도 꽂아둔 채! 그래도 괜찮단다) 배를 타고 무작정 우도로 들어섰다. 요일에 따라 기착지가 달라진다. 오늘은 하우목동항에 배가 닿았다.

 배를 타기 전에 선착장에서 받은 광고지 한 장 들고 카트를 빌리러 갔다. 마침 항구 앞에 있었다. 첫번째 가게에서는 협상 결렬, 두 번째 가게에서 두 시간에 4만원이라는데 잘 깎아서 대당 2만원에 카트 두 대를 빌려 두 가족이 각각 탔다.

어 근데 한 15년 된 장농 면허증이 있을 뿐, 차를 몰아본 적이 없다. 전동 카트가 자동차와 조작이 비슷하다. 15년 전에 운전 면허 연습장에서 1톤 트럭을 닷새 동안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몰아본 경험이 있어 그거 믿고 몰았다. 핸들이 한 쪽으로 쏠리지만 금새 익숙해졌다.

카트 몰고 해안가를 돌아다니며 숙소를 알아봤다. 비수기에 일요일 저녁이라 돌아다니는 관광객이 거의 없어 을씨년 스럽다. 아내가 4만원 짜리 팬션을 알아놨다.

우도 카트
카트가 재밌는데? 내가 운전대를 돌릴 때마다 아내는 비명을 지르며 불안해 했다. 기껏해야 최고 속도가 25kmh 정도 밖에 안 나와 사고가 날 일은 없어 보였지만 박씨 가족 차를 앞으로 보내고 뒤따라 갔다. 그랬더니 길을 잃고 산으로 가더라. 하하.

우도 카트
제주도에 네 번이나 와 보았지만 우도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다. 우도 해안 도로는 줄곳 바다를 끼고 이어졌다. 카트를 몰며 올레 1-1길을 쉽게 쉽게 돌아다니니 참 좋다.


제주해녀
길에서 지나가는 해녀를 봤다. 법환동 숙소 옆에서 해녀들이 자맥질을 하며 소라고둥을 따 오는 모습을 어제 아침에 봤다. 젊은 해녀가 점차 줄어 해산물 가격이 점점 비싸질 것만 같다. 옛날에 JPNEWS에서 젊은 미녀 해녀가 등장해 일본에서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그 놈에 인기 때문에 물질을 그만뒀다는 기사를 봤다.

내 카트 모는 솜씨가 일취월장해 이제는 안심한(포기한?) 아내가 인어공주가 드라마가 아니고 영화라고 말해줬다. 채취한 소라 한 상자에 50만원 이상 한다던데 아내가 고소득 전문직 노가다인 해녀가 되면 어떨까 싶다. 고사리 채취보다 낫지 싶다. 감귤 채취는 돈이 안 된다.

우도를 한 바퀴 다 돌 때쯤 카트 배터리가 다 떨어졌다. 박씨 가족 카트에 짐을 몰아 싣고 졸고 있는 아이들을 태워 숙소로 먼저 보냈다. 박씨 남편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해안길을 걸어 팬션에 다다랐다. 팬션에서 자전거를 공짜로 빌려 준단다. 자전거를 카트에 실었다.

카트를 반납하고 나서 자전거를 타고 우도를 횡단하여 내륙 중심에 있는 마트에서 술과 안주꺼리를 샀다. 한가하게 자전거를 몰아 우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팬션으로 돌아왔다. 주문한 동태탕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치킨 한 마리 시켜 맥주를 마셨다. 아이들은 그새 잠들었다.

달근달근 취해 한밤중에 아내와 해변을 산책했다.

모기 때문에 잠을 설쳤다. 7시에 일어나 씻고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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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타러 가는 길. 날이 흐리고 바람이 살살 불지만 춥지 않았다.

서빈백사
서빈백사. 제주도에 와서 스쿠터 타고, 카트 타고, 자전거 타고, 올레길 걷고, 오름을 오르는 등, 참 다양하게 즐기면서 보람차게 휴가를 보내는 것 같다.

법환동으로 돌아와 박씨가 소개해준 식당에서 해물 뚝배기와 갈치국을 아침 겸 점심으로 먹었다. 문켠에는 손님더러 원하는 대로 가져다 먹으라고 감귤을 박스채 쌓아놓았다. 원하는 만큼 배낭에 쓸어담았다. :)

11시쯤 박씨 가족과 헤어졌다. 저녁에 박씨 남편을 공항에서 만나 짐을 건네 받기로 하고 우리 가족은 올레 10길로 가기 위해 서귀포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화순리에서 내렸다. 김밥과 물을 샀다.

화순 해수욕장
화순 금모래해변.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분다. 바람에 날린 모래가 볼을 따갑게 때렸다. 아이 옷을 입히고 아내와 나도 바람막이를 착용하고 12:00pm 출발했다.

소금막 너덜지대에서 아내가 발을 삐었다. 두고봐야 알겠지만 별다른 고통을 호소하지 않아 신발끈을 묶어주고 계속 걸었다.

소금막
여기가 소금막? (클릭=확대).

소금막
여기도 소금막? (클릭=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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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나쁜 버릇인 역광에 사진 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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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산 기슭에 거의 다 올라왔다. 자전거 타고 돌아다닐 땐 이런 길을 본 적이 없었다.

산방연대
산방연대.

용머리 해안
용머리 해안. 입장료를 받아 굳이 가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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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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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암인지 셰일인지가 보여 혹시 발자국 화석 따위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표지판에 화석 발견지라고 적혀 있었다. 이건 아니고...

사계화석 발굴지
클릭=확대. 사계화석 발굴지 부근. 멀리 보이는 것은 형제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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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 인근. 무슨 드라마 촬영지라는데 모르겠다. 실제로 팬션으로 운영된단다. 이런 곳엔 어김없이 여자애들이 떼로 몰려와 사진을 찍느라 야단 법석을 떨게 마련. 아니나 다를까...

모슬포까지 4km쯤 남았다. 아내는 발목이 아픈지 시간이 얼마 없다며 콜택시 불러 돌아가잔다. 아쉽지만 아내 말을 순순이 들었다. 택시로 모슬포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다음, 버스를 타고 제주시로 향했다. 공항에서 박씨 남편을 만나 짐을 찾아야 하므로 한라병원 앞에서 내려 공항까지 걸었다.

버스에서 까무룩 잠이 든 아이를 깨워 걷게 했더니 아이가 춥고 배고파서 칭얼댔다. 오뎅을 사 먹이러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주인 아저씨가 우리 모습을 보더니 본인이 제주 횡단을 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2박 3일이면 동쪽 끝 성산에서 서쪽 끝 협재 해수욕장까지 갈 수는 있는데 하루에 오름을 10개씩 오르기도 하는 등, 무척 지루하단다. 그럼 잠은 어디서 자요? 캠핑하지요. 캠핑장 아니래도요? 끄덕끄덕. 그러고보니 여늬 국립공원처럼 내륙 산간에서 캠핑한다고 잡으러 다닐 산림감시원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캠핑은 하지 않는게 바람직하지 싶다 -- 하고 싶다. 다음 제주 여행은 횡단 트래킹으로? 몹시 재미있을 것 같아서 왠지 득템한 기분이다.

아내가 우리 묵을 숙소가 있는 용두암 근처에 맛있는 횟집 있냐고 물으니 김해횟집을 가르쳐주고 자기가 전화해 주겠단다. '깔끔하게' 나온단다.

2010년 11월 22일 저녁 여섯시, 휘영청 보름달이 떴다. 저렇게 큰 보름달은 오랫만에 본다.

4km쯤 걸어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박씨 남편을 만나 짐을 건네 받고 감귤잼을 한 통 얻었다. 비행기 떠나기 전에 잠깐 얘기를 나누고 배웅했다.

택시를 타고 용두암 해수랜드 앞에 내렸다. 아내가 택시가 멀리 돌아가는 것 같단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읆는다고 제주 몇 번 왔더니 제주 지리를 대충 알아 택시가 제대로 최단 코스로 왔다고 말했다. 휴대폰 지도를 보고 김해횟집을 찾아갔다.

작은 가게인데 관광식당 분위기라 왠지 내키지 않았다. 선입견이었다. 오뎅집 아저씨 말대로 정말 깔끔하게 나왔다. 서귀포에 있을 때 그 유명한 쌍둥이 횟집에 가지 않았다. 엄청난 양의 츠키다시가 나오는데 먹기 부담스러울 뿐더러 괜히 이것 저것 줏어먹다가 본래 먹어야 할 회는 못 먹고 남기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그런데 쌍둥이 횟집도 예전같지 않아 돗대기 시장에 불친절함으로 악명을 떨치는가 보다.

하여튼 이 집에서는 부담스러운 양의 츠키다시 대신, 젓갈 네 접시, 갈치 회, 고등어 구이, 그리고 초밥용 밥과 김, 두툼한 회 한 접시 가득 나왔고 고추냉이를 직접 갈아 냈다. 뭐 하나 '빠짐없이' 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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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 1cm, 길이 15cm 짜리 회 한 점. 무슨 물고기인지 말해줬는데 이름을 잊어버렸다. 아내는 너무 크다며 가위로 잘라 먹었다. -_-

배불리 먹고 기분좋게 취해 첫날 나 혼자 묵었던 용두암 해수랜드로 향했다. 보통은 제주도에 오면 시내 중심의 밸리스 찜질방에서 묵었지만, 제주도를 찾는 여행객들이(관광객 말고...) 일부러 묵으러 용두암 해수랜드에 찾아 간다는 말을 듣고 이번에 처음 와 봤는데 그럭저럭 괜찮았다.

공항에 늦게 도착하면 여기 묵고 다음 날 용두암 근처에 여기 저기 있는 스쿠터 대여점에서 스쿠터를 빌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제주도를 여행하는 것도 괜찮지 싶다. 안 그래도 연인 둘이 달짝 달라붙어 20-30kmh 속도로 달달 거리며 달리는 모습을 간혹 봤다. 제주도가 작아 보여 맘 같으면 하루에 다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제주도가 의외로 넓다.

굳이 추천하자면 해안 도로 일주만 고집할게 아니라, 성산에서 1112번 도로를 타고 관광하다가 1136번 국도로 나와 제주시로 돌아가면 완벽할 것 같다. 오르막이 7~800m에 이르는지라 자전거로는 어느 정도 경험이 없으면 돌아다니기 어려울 뿐더러 헉헉 거리며 자전거 몰기 바빠 풍광을 즐길 여유가 별로 없다. 또, 자동차는 폭 1.2m 짜리 돌담길 사이로 돌아다닐 수 없다.

용두암 해수랜드
저 창 안에 사우나와 해수온탕이 있고 창 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아침에 찜질방에서 부시시 일어나서 고개를 돌리면, 그렇다. 바다가 보인다.

아내를 일부러 끌고가 용두암을 지나 용연에 갔다. 첫날 와서 밤에 보던 용연과 분위기가 달랐다. 바위 투성이 개천? 그런데 밤에 오면 조명빨 때문에 좀 괜찮은데. 아내야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녀서 왠만한 풍경에 잡스처럼 어썸 따위 연발하지 않는다. 그런 아내는 아구아 아술 같은 걸 본 적이 없다. 난 이과수를 본 적이 없고.

용연에서 택시 잡아 타고 도라지 식당에 갔다. 시청 옆에 있을 때와 달리 으리으리한 건물을 지어놨다. 갈치국과 해물 뚝배기를 주문했는데 음식이 예전만 못해 부러 찾아와 먹은게 아깝다. 맛없는 해물뚝배기 한 그릇이 12000원이나? 공항에서 접근성이 좋으나, 다시 가고 싶지 않다.

공항 면세점에서 25000원 하는 담배를 18000 가량에 두 보루 사고 12시에 이스타항공 비행기를 탔다. 올 때보다 좌석 간격이 더 좁았다. 비행기 내부가 흡사 닭장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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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부근 (클릭=확대). 신기하다. 비행기 창 밖으로 우리 집이 보였다 -- 화질이 꽝이라 사진으로는 안 보임.

아내 발목이 부어 지하철 타고 움직이기는 힘들 것 같다. 공항 리무진을 타고 의왕 고천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장을 봤다. 저녁으로 어묵탕을 시원하게 끓여 아내와 아이를 먹였다.

휴가가 끝났다.

여행기 끝내며 정리
  • 스쿠터 여행이 짱이다.
  • 조씨 말 듣고 11월 26일 추가: 주의: 이거 읽고 다섯살 박이 애 데리고 가서 하루도 빠짐없이 8~10km씩 애를 걷게 하는게 가능하다고 여기면 아마 안될 것 같다. 
  • 아내 말로는 항공료 포함해서 일주일 동안 총 경비가 50만원 가량 들었단다(횟집에서 회 먹은 것 빼고). 경비 적게 들어서 좋다.
  • 당신 생각이나 사고 방식에 관심없으니 나불나불 생략하고 사진이나 잔뜩 올리는게 바람직하다는 충고를 예전에 들었고, 그렇게 했다.
  • 휴대폰으로 대충 사진을 찍어도 풍광이 받쳐줘서 안심이다.
  • 하루도 빠짐없이 낮에는 돌아다니고 밤에는 술을 마셨다.
  • 8년 만에 처음으로 GPSr 쳐다보지 않고 여행했다.
  • 제주도 여행은 스마트폰에 여분 배터리와 충전기만 있으면 대충 다 해결될 것 같다. 지도, 웹 검색, 사진, 동영상, 문서 뷰어 등
  • 아내와 박씨가 만든 감귤잼이 꽤 맛있다.
  • 휴대폰에 넣어간 소설 볼 시간은 채 한 시간도 없었다.
  • 딱히 맛집 기행 안 했다. 다만 회를 덜 먹은 것이 아쉽다.
  • 아내와 아이에게 괜찮은 등산화가 필요하다.
  • 제주도가 좋았지만, 다음에는 꼭 인도네시아에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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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아내는 아침 일찍 게스트 하우스 식구들과 함께 나갔다. 어제처럼 늦잠을 잤다. 깨어보니 딸애와 나만 남아 있었다. 아이 밥 먹이고 할 일이 없으니 올레길이나 걷자.

게스트 하우스의 컴퓨터에서 네이버 지도를 열어 쇠소깍 가는 대중교통을 미리 알아두었다.

제주감귤
동네 어귀 돌담 너머 익어가는 감귤. 요새 한창 감귤이 무르익었다. 제주에서 한가하게 돌아다니던 기간 내내 감귤을 원없이 먹어봤다.

마을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5번 버스를 기다렸다. 20분쯤 지나 버스가 도착했는데 아뿔사 지갑에 천원 짜리가 하나도 없다. 버스 기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근처 가게로 뛰어가 돈을 바꾸려고 했는데 가게에 주인이 없다. 손을 흔들어 버스를 그냥 보냈다.

다음에 오는 버스를 타고 서귀포 시에 도착하니 벌씨 한 시간이 지났다. 8번 버스를 타고 효돈중학교 앞에서 내렸다. 쇠소깍까지 한가하게 걸었다. 날씨 좋고 경치 좋다. 아이 데리고 하루 20킬로씩 걷는 것은 무리여서 10km 정도만 걸을 생각이다.

쇠소깍
제주도 와서(이번이 다섯 번째다!) 번번이 지나치곤 했던 쇠소깍(쇠:소,소:연못,깍:끄트머리). 용연도 마찬가지다. 저번에 제주도 자전거 여행할 땐 하도 비가 퍼부어대서(지난 제주 여행 네 번 중 비가 오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길 그냥 지나쳐버렸다.

쇠소깍 테우
쇠소깍(클릭=확대). 테우라 불리는 저 배는 무척 재미가 없어 보인다.

쇠소깍 카누
딸 애가 타고 싶어해서 바닥이 보이는 투명한 카약을 탔다. 아이 5천원, 성인 7천원, 합쳐서 30분에 12000원. 그러고보니 보트는 주욱 여자하고만 탔다. 다시 생각해보니 보트를 혼자 타거나 남자랑 타는 건 이상해 보일 것 같다. 여러 번 타다 보니 보트 젓는 솜씨가 좋아진 것도 같다. 그러고보니 마누라하고는 보트를 타 본 적이 없다.

쇠소깍
쇠소깍이 바다와 만나는 곳. 검은 모래는 현무암이 풍화된 것. 올레 5길이 끝나고 올레 6길이 시작된다. 여기서 숙소까지 6길, 7길을 줄곳 걸어가면 되는데 거리가 꽤 되어 중간을 건너뛰고 6길 중간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올레길 시작점에 있는 매점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쇠소깍에서 다시 효돈 중학교 앞으로 가서 8번 버스를 타고 서귀포 시내에서 내렸다. 바닷가쪽, 그러니까 남쪽으로 걸어가 정방폭포에서 시작. 뭐 이미 4km는 걸었는데 아이가 아직 멀쩡하다.

천지연 폭포
천지연 폭포 가는 길(클릭=확대). 중국인, 일본인 관광객 밖에 안 보인다. 한국 관광객들 다수는 아마도 올레길을 걷고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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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교를 지나 새섬교 가는 길. 3:50pm 무렵.

새섬교
새섬교에서 시내쪽을 바라본 모습.  

새섬
올레길은 아니지만 새섬의 풍광이 훌륭했다(클릭=확대). 갯바위까지 펜스를 설치해놓았다. 올레6길이 서귀포 시내를 지나가는 것을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다. 정방폭포를 나와 서귀포 방면으로 틀어 천지연 폭포를 지나 새섬을 한 바퀴 돌고 외돌개로 지그재그 올라가는 것이 낫지 않나?

하여튼 올레길은 처음 만들어진 다음부터 조금씩 경로가 조정되었다.

범섬
아이가 지치면 무등을 태웠다. 무등 태우고 1-2km 걸으면 온 몸이 땀범벅이 된다. 무등을 탄 동안만큼 아이는 기운을 차리고 다시 팔짝팔짝 뛰어다니며 올레길 표지를 찾았다. 올레길 표지는 빨간색, 파란색을 함께 달아놓은 올레 리본, 사람 인자 모양의 올레 화살표, 제주 조랑말을 의미하는 간세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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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섬교를 나와 올레 7길을 걸었다. 멀리 보이는 저 범섬은 전체가 사유지란다.

외돌개
외돌개(클릭=확대). 5:20pm. 오늘 해 지는 시각은 5.17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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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돌개를 지나 돔베낭길을 걸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돔베낭길은 다섯살 짜리 아이도 지치지 않고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아이 때문에 올레 7길을 택했다. 나 혼자 돌아다녔으면 6,7길을 한 번에 주파했을 것 같다. 놀멍 쉬멍 가야 한다는 올레길 소개 책자에는 올레길 중 어느 길이 가장 아름다워요? 라고 물으면 어제 갔던 길이라고 말한단다.

해가 저물었다. 어두컴컴한데 등불 하나 없는 바윗길(일강정 바당올레)을 애 데리고 걷기는 무리라 잠깐 퇴근차량이 휭휭 지나가는 도로로 나와 걷다가 법환동 마을회관 근처에서 해안 올레길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일곱 시가 넘었다. 아이가 피곤한지 밥 먹고 씻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아이를 재우고 아시안 게임 축구와 야구를 보다가 게스트 하우스 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셨다. 별 안주 없이 김치만 먹었는데 김치맛이 워낙 좋아 술이 술술 들어갔다. 아내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도착한 다음날에 9코스를 아이와 걸었단다. 하루에 8km 정도는 충분히 걷는 것 같다.

어제처럼 푹 잤다.

11/20

아침에 일어났다. 어제 마신 막걸리 탓인지 다리가 무겁다. 오늘도 딱히 할 일이 없다. 게스트 하우스에 돌아다니는 강아지 이름은 '하루'였다. 하루만 맡아서 봐 주기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주인이 안 데리고 가서 하룻강아지가 되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중문 해수욕장 앞까지 픽업해 준단다. 아내는 게스트 하우스 사람들과 바삐 떠나고 아이와 나는 시작점인 월평마을이 아니라 중문 해수욕장에서 올레 8길을 계속 걷다가 대평리에서 아내와 만나기로 했다. 좀 이상한 휴가에, 가족여행이지만,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한 번도 티격태격하지 않고 넘어간 적이 없었는데, 아내와 여행 스타일이 워낙 달라 이렇게 따로 다니면 덜 싸우지 싶다.

중문 해수욕장
중문 해수욕장. 이렇게 보니 아름다운 걸? 십여 년 전에는 홧김에 소주 한 병 나발 불고 이 바닷가에 내려와 산 밑둥까지 덮쳐오는 폭풍을 향해 별별 욕설을 다 퍼붓고 혼자 발광하다가 다시 기어 올라가 비바람을 맞으며 꾸역꾸역 텐트를 세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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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아이와 여기에 다시 올 꺼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모래밭에서 놀다가 바지가 흠뻑 젖었다. 바닷물이 아직은 따뜻한 편. 귤을 까먹으며 햇볕에 바지를 말렸다.

하얏트 호텔
하야트 호텔 앞길이 사유지일텐데... 여기도 올레길인가? 의외다.

해병대길
해병대길 시작(클릭=확대). 아이 데리고 다니기에는 불편한 너덜지대. 아이 발이 작아 맞는 등산화가 없다. 사실, 하체와 발목 힘이 약해 등산화의 접지력만으로는 바위 사면에서 버티기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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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확대. 울퉁불퉁한 해병대길을 별 사고없이 지나고 마지막에 갯깍 주상절리(갯:바다, 깍:끄트머리)를 만났다. 경사가 완만한 동서 해안과 달리 남북해안으로 흐르던 빠른 속도의 현무암 용암류는 급속히 냉각되면서 주상절리를 형성했다. 중문 근처의 주상절리는 육각형 모양이지만 여기는 연필심 모양의 30~40m는 됨직한 수직 기둥을 형성.

해병대길
해병대길이 거의 다 끝나간다.

열리 해안길
열리 해안길.

논짓물 남자 노천 목욕탕
논짓물의 남자 노천 목욕탕. 여탕도 이렇게 생겼을 듯. 흘러내린 민물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수영장이나 목욕탕을 만들어 놓았다. 아이가 힘들어 해서 잘 걸으면 아이스크림 사준다고 꼬셨다. 물 마시고 아이스크림 먹고 준비해간 과자 따위로 허기를 달랬다. 나는 아침에 숙소에서 조금 떠먹은 미역국으로 버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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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년 전 일이 절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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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확대. 온도가 낮고 점성이 큰 용암이 느릿느릿 해안으로 흐르면서 외부는 굳고 내부는 계속 흘러 외부 표면이 파쇄되고 밀려드는 바닷물에 펑펑 터지는 지옥같은 장관이 상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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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리에 거의 도착했다. 길이 비교적 단순하고 표시가 잘 되어 있어 GPSr을 켜는 걸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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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만 돌아가면 대평리 마을이다. 카메라와 휴대폰 카메라를 번갈아 가며 사진을 찍었다. 팔자 좋다.

박수기정
박수기정 뒤로 산방산이 보인다. 박수기정 위는 사유지라 올레길이 돌아간다.

대평리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밥 먹을 곳을 찾다가 용왕난드르 음식점에서 보말국을 먹었다(보말=고둥). 특별한 감동(?)은 없고 성게미역국처럼 그저 그랬다(미역국이 다 맛있지 뭐).

아내가 숙소 주인장인 박씨와 친구인데(나도 옛날에 인도에서부터 안면이 있는 사람이고...) 대평리에서 집을 구입해 보수공사를 하느라 왔다갔다 하는 중. 옥상에 방수 페인트를 칠하기 전에 옥상 바닥을 쇠솔로 긁어 정리하는 작업 중. 아이와 나도 공사를 좀 도와주다가 대평리 마을 구경이나 할 겸 한가하게 동네를 돌아다녔다. 동네가 어느 모로 보나 장기 여행자들이 죽 때리기 좋은 외국의 어느 조그만 촌락을 떠오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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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에서 발견한 공사하다 만 집. 위치가 좋다. wuthering heights 같은 분위기도 마음에 들고. 뭐 하는 집인지 물어보니 주인이 미국에 가 있어서 거래가 안된단다.

빈둥거리며 놀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서귀포 emart에 들러 이것 저것 먹을 것들을 사고 숙소 마당에서 강아지와 놀다가, 숙소 손님과 함께 흑돼지 앞다리 살로 만든 수육과 굉장히 맛있는 돼지 김치찌게에 소주 잔을 기울였다. 마침 박씨 남편이 도착해 내일 두 가족이 함께 놀러가기로 했다. 숙소에 손님이 다 차서 우리는 월드컵 경기장에 있는 찜질방으로 이동했다.

제주 첫 여행 때, 지금은 4, 5, 6 코스라 불리는 올레길을 정처없이 걸었던 기억이 난다. 서귀포에서 표선 해수욕장 근처까지 열 댓시간을 아무 생각없이 해안길을 따라 걷고, 걷고, 계속 걸었다.

산티아고 길을 다녀왔던 서명숙이 제주 올레길을 기획했단다. 수도자들이 고생스럽게 장기간 동안 걷던 산티아고 길과 달리(내 취향) 한가하게 어기적거리며 걷자는 취지의 올레 길 사이에 딱히 유사점을 찾을 수 없으니 창조적 모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주도는 올레길에 힘을 쏟는 모양이다. 건강 트렌드와 제주행 저가 항공편까지 가세해 사실상 두 번째 제주 관광의 역사적 부흥기가 도래했다. 제주도를 일주하는 길이 모두 개척(?)되면 대략 300km 쯤 되지 싶다. 하루에 50km씩 물집을 터뜨리며 걷는 강행군을 한다면(12시간 동안 먹고 쉬고 걷는 것) 일주일 가량 걸릴 것 같다.

제주도에 온 첫 날부터 지금까지 줄곳 아무 생각없이 통나무처럼 잘 잤다.
이런게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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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부드르 유적과 화산을 보러 인도네시아에 가야 하는데...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화산이 터지고, 쓰나미가 몰려오더니 이번에는 화산 폭발/지진/쓰나미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렇게 재수가 없다.

제주도에 가기 전에 윙버스 제주 미니 가이드 pdf 파일과 제주 시외/시내버스 노선 정보 파일을 넣고, 버그 투성이 adobe pdf viewer를 설치했다. google 지도로 제주 맛집과 숙소 정보를 황급히 정리하고 휴대폰의 구글 지도와 연동되는지 확인했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 여행 계획을 짠 것이 아니라서 그냥 그 정도만 정리하고 말았다.

김포공항까지 공항 리무진 비용은 편도 6천원에 80분 걸리고 공항 리무진 타는 곳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 지하철도 80분 걸리고 버스+지하철 환승해서 1500원이다. 후자가 낫다.

이스타 항공기 보잉 737
ESTAR 항공의 제주행 보잉 737 항공기. 터보프롭일꺼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제트기네? 평일 편도 19900원. 얼마 전 대구에 다녀올 때 새마을-KTX 환승 편도 가격이 25300원이었다. 가격에 맞추느라 항공권을 아내와 따로 끊었다. 별로 제주도에 갈 생각이 없지만 막상 쉰다고 갈 데가 없어 아내가 제주 놀러가는데 꼽사리 끼었다.

아내는 내리자마자 셔틀 버스를 타고 박씨네 게스트 하우스로 갔다. 할 일이 없어 제주 공항의 관광객 안내 센터에서 올레길 팜플렛을 얻고, 제주 공항 안에 있는 시내버스 키오스크에서 몇 번 버스를 타야하는지 터치 스크린을 누르며 시간을 보냈다.

이스타 항공 제주 공항 내 카운터에서는 올레 패스포트를 15000원에 판다는데, 굳이 사고 싶은 생각이 없다. 국경을 이리저리 건너면서 출입국 스탬프 찍는게 재밌긴 한데, 여기가 무슨 외국이라고 애들 숙제 검사 맡듯이 스탬프 찍으러 동네방네 위치 찾아 돌아다니는게 우스워 보였다.

시내버스를 타고 제주시를 배회했다. 대부분의 버스 후불 신용카드가 안 먹는단다. 버스로 환승하려면 제주시 전용 T money 카드를 구입해야 하는데 카드 가격이 5천원이던가? 제주 시내/시외 버스를 자주 타는게 아니라서 딱히 쓸모가 없어 보였다.

92번 버스를 타고 돌고돌고 돌아 종착지 부근인 제주항에서 내렸다. 다섯시 반이 넘자 해가 지고 어두어졌다. 컴컴해질 무렵에야 사람들이 없는 을씨년한 길을 걸어 사라봉에 오르기 시작. 인적 없는 곳에서 배낭을 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오르는 것이 예전에 배낭여행 하던 때를 떠오르게 한다.

제주항
사라봉 중턱에서 휘황한 항구의 불빛을 보았다. 서울/경기와 달리 날씨가 따뜻해 점퍼는 일찌감치 벗었다. 예쁘게 생긴 산지 등대를 지나 내친 김에 별도봉까지 갔다. 야트막한 정상에 서니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땀을 식히며 내일 타고 갈 97번 국도의 궤적을 눈으로 쫓아 갔다.

별도봉에서 다시 사라봉 정상에 올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훌륭한 산책 코스다. 휴대폰을 꺼내 구글 지도를 열고 숙소로 정한 '용두암 해수랜드'를 찾아보았다. 약 6km 가량? 내일 스쿠터 빌릴 가게가 용두암 근처에 있고, 제주도에 놀러올 때마다 구경하지 못한 용연도 보고, 가다가 밥도 먹어야 해서 겸사겸사 더 걷기로 했다.

삼성혈 부근의 삼대국수회관에서 5천원짜리 고기국수를 시켰다. 돼지뼈로 육수를 내서인지 순대국에 수육 몇 점 얹고 국수를 말아 놓은 것 같다. 맛도 딱 순대국에 말아먹는 국수 맛이다. 생각보다 양이 꽤 많아 배가 든든하다. 계산할 때 아줌마가 잘 가라며 노래를 불러줘서 웃었다.

배낭을 메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구글 지도가 있으니 길을 헤멜 일이 없어 좋다. GPSr은 귀찮아서 꺼놨다. 아내, 딸 보내놓고 혼자 무슨 궁상이냐 싶겠지만 이 편이 한가해서 좋다.

용연
용연에 도착. 조명 때문인지 이무기 열 마리 쯤은 튀어나와 아웅다웅 다툴 것 같은 분위기다. 용연 부근이 올레길이라서 빨간색/파란색 리본이 보였다. 11월 중순의 늦은 시각이라서인지 관광객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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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암으로 가는 길. 길바닥에 적힌 제주 방언. 한글은 한글인데 대체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혼저옵서예' 하면, 그래 혼자 왔다 낄낄, 하고 말지. 인적 없는 용두암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며 관광했다. 갯바위에 걸터앉아 한치 회에 소주 한 잔 하기 딱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어떤 할아버지가 비닐봉투를 들고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아... 맛있겠다. 하지만 내일은 좀 일찍 일어나야 될 것 같아 소주는 관뒀다.

용두암 해수랜드
오션뷰가 호텔 뺨치는 용두암 해수랜드 찜질방에서 정신없이 자다 깨보니 10시가 넘었다. 어제 배낭 매고 한 12km쯤 걸었더니 피곤했나 보다.  이럴 때 요즘 애들은 '시망'이라고 탄식하던가? 7시엔 일어났어야... 뭐 그렇다고 무슨 변변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시망=시발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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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길거리 아이템. 태양전지 LED 조명등.

스쿠터 대여점에 도착. 면허증을 안 가져왔다. 하여튼 면허증 상관없이 빌려주는 것 같지만, 125cc는 무리고, 야마하 줌머를 고르니까 주인 아저씨가 속도가 50kmh 밖에 안 나온다며 다른 걸 권해줬다. 중국제인데 80kmh까지 나온단다. 이틀 쯤 스쿠터를 임대해 타다가 중문에서 반납하면 좋을 것 같아 물어보니 중문에 반납하려면 반납료 2만원을 따로 내야 한단다. 스쿠터 24시간 임대료는 2만원.

옛날에 처음 스쿠터를 타 보다가 울퉁불퉁한 논길에 자빠져서 발등 뼈가 부서졌다. 그리고는 태국의 어떤 섬에서 20여분 타본 것이 경험의 전부다. 속도가 좀 빠른 자전거하고 다를 것이 없어 겁이 나진 않았다.

배낭을 짐받이에 매고 조작 방법을 잠깐 배우고 시험 주행 해보라기에 몰고 나왔다. 나와서 가게로 돌아가지 않고 그냥 갔다. 속도 좀 내다가 택시와 충돌할 뻔 했다. 아무래도 속도감이 없어 불안하다. 하지만 여자들도 스쿠터 쯤은 탄다. 가다가 시동 거는 연습을  했다. 익숙해지니 자신감이 생긴다.

자전거 타던 버릇 때문에 번번이 도로 가장자리에 붙었다. 시내에서는 차량에 막혀 50kmh 이상 밟기가 쉽지 않지만 시내를 벗어나자 쉽게 70kmh까지 올라간다. 97번 국도에 들어섰다. 오르막에서는 55kmh 이상 나오지 않았다. 아, 이래서 다들 125cc를 타는구나.  

투어에 딱히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고, 같이 간다던 황씨가 오름에 가고 싶어해 그럼 스쿠터 임대해서 돌아다니자, 뭐 그런 막연한 생각을 어젯밤에 했다. 옛날에 자전거 타고 성산에서 1112번 국도 타고 성판악 근처까지 올라간 적이 있는데 꾸준한 오르막길이라 힘은 들었지만 풍광이 멋져 다음에 다시 제주에 오면 꼭 다시 그 길을 가고 싶었다. 사실 그땐 비가 쏟아져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황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 비행기표를 환불했다.

배가 고파서 수퍼에 들러 바나나 우유 한 병, 김밥 한 줄, 500ml짜리 물 한 병을 샀다. 목장갑도 하나 샀다. 스쿠터를 좀 타 보니 익숙해져서 속도는 낼 수 있지만 손이 시리다. 목 장갑을 끼고, 마침 가방에 버프가 있어 목에 둘렀다.

변변한 지도가 없어 툭하면 스쿠터를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 구글 맵으로 어디쯤인지 확인했다. 장갑을 끼고 있어 정전식 터치 스크린을 건드릴 수 없어 좀 불편하다. 그러고 보니 어떤 업체에서 정전식 터치스크린을 조작할 수 있는 장갑을 판매한다는 걸 며칠 전 기사에서 보았다.

97번, 1118번, 1112번 국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덜덜 떨면서 경치 관람하다가... 목적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바보스러워 휴대폰을 꺼내 거문 오름, 비자림, 만장굴, 다랑쉬 오름, 아부 오름, 용눈이 오름 정도로 코스를 잡았다. 사려니 숲길도 넣었다가, 울창한 숲길을 걷는 것이 내 정서를 안정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 적이 없어 뺐다(맨날 산에 가서 하던 거잖아?).

웹 브라우저로 검색해 보니 거문 오름은 가기 전에 예약을 필히 해야 한다더라. 전화하니 이틀 전에 예약을 했어야 한단다. 스쿠터 타고 다니는 김에 이번 여행의 테마를 황급히 정했다; 제주도 세계자연유산 지정 기념 관광이다. 테마 때문에 퍼뜩 떠오르는 것이 산굼부리, 거문 오름, 만장굴, 성산일출봉, 주상절리를 비롯한 남서부 해안 따위 였는데... 안가본 곳이 거문 오름과 만장굴, 이중 거문 오름은 아쉽지만 제끼고 일단 다른 오름들이 가까운 비자림 부터 가자.

비자나무
비자나무 단일 수종으로 이루어진 숲. 나무들이 피톤치드를 풍성하게 뿜어낸다고 선전하는데 코가 안 좋아서인지 잘 모르겠다. 집 진드기 등으로 아토피가 유발된 아이에게는 피톤치드가 직빵인데, 피톤치드가 잔벌레와 박테리아를 잡아줘서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고 언젠가 TV 다큐로 본 적이 있다. 피톤치드는 나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뿌리는 일종의 독소니까... 숲길이 생각보다 비주얼이 훌륭하다.

새천년 비자나무
일가족이 놀러와 '새천년 비자나무'를 한참 쳐다본다. 신선한 숲길을 걸으며 슬쩍 김밥을 꺼내 먹고 물을 마셨다. 사람이 거의 없어 더 좋았다.

비자나무
비자나무(클릭=확대). 분위기가 멋진 나무다. 번개맞은 비자나무가... 작년인가? 1억쯤에 팔렸다는 얘길 나중에 들었다. 번개가 100번 치면 100억이다. 번개 많이 맞길 빌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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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좋은 비자림에서 밥 먹고 흐뭇해서 셀프샷. 어? 근데 스쿠터 열쇠가 어디갔지?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아차 싶었다. 스쿠터에 그냥 꽂아두고 왔다. 주차장에 가보니 잘 서 있다. 휴대폰을 켜고 어디로 갈지 찾아 보았다. 그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마킹해 놓은 지도 보고 웹질 하며 갈 곳을 정하다니...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방식의 여행이다.

다랑쉬 오름
길 건너편은 390m 짜리 다랑쉬 오름. 다랑쉬 오름 입구까지 갔다가 올라갔다 내려오면 한 시간은 족히 잡아먹을 것 같아 포기.

용눈이 오름
용눈이 오름. 스쿠터를 입구에 파킹해두고 멀거니 쳐다보다가 스쿠터 타는 것도 의외로 지치는데 괜히 올라갔다 내려오면 피곤할 것 같아 포기.

오름을 열댓 개쯤 지나 제주 동부 해안의 지미봉에 다다랐다.

지그재그로 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한참 가다보니 기름이 다 떨어진 것을 몰랐다. 어쩌다가 올레1길 해안도로를 달리게 되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올레길을 한가하게 걷고 있다. 김밥을 먹은데다 오름에 안 올라서 체력이 남아 있어 '계획상' 전복죽을 먹고 가려던 오조 해녀의 집을 그냥 지나쳤다. 주유소를 찾았다. 성산 일출봉 부근에는 주유소가 없었다. 물어물어 읍내에 나와 기름을 넣었다. 밑바닥에서 꽉 채우니 4200원이다.

오름을 안 오르고 다 지나쳤더니 시간이 남는다. 어쩌다 성산까지 왔는데, 온 김에 올레1길 중간에 있는 멀미알 오름에는 올라가 보자고 마음 먹었다. 시흥초교 옆으로 난 소로를 따라 스크터를 타고 올라갔다. 걸었다.

올레 1길 멀미알 오름
잘못 왔나? 오름에 오르는 길이 막혀(줄로 막아놓아서) 되돌아가는 중 마누라의 전화를 받았다. 딸 애와 잘 지내고 있단다. 가족이 함께 놀러와서 혼자 돌아다녀 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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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스쿠터 타기가 의외로 재밌다. 속도를 70kmh까지 올리면 볼이 얼얼하고 양 눈에 바람을 맞아 따갑고 괴롭지만, 50kmh 정도면 달릴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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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프와 자전거 탈 때 착용하던 선글래스 때문에 그나마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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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굴 가는 길. 1132번 국도를 타다가 세화 해수욕장 부근에서 좌회전해 1112번 국도, 1136번 국도로 갈아타서 소로를 쫓아갔다. 만장굴에 가는 행로가 왜 이리 복잡하냐면, 순환도로(동회로)인 1132번 국도는 재미가 없어서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내륙의 소로가 워낙 멋지다.

다만, 사진을 거의 못 찍었다. 일단 춥고, 장갑을 벗어야지 휴대폰을 조작할 수 있어서...

만장굴 입구
만장굴 입구. 유감스럽게도 동굴 내부의 조도가 낮아 굴 안을 찍은 휴대폰 사진은 엉망이다.

만장굴 덕택에 화산섬의 내장을 들여다본 것 같아 매우 기분이 좋았다. 20~10만년전 점성이 낮고 유동성이 큰 현무암질 용암류가 흐르면서 용암동굴이 생성되었는데 용암유선(용암이 흐르면서 수위가 지속적으로 낮아지며 바위에 새겨진 수평선)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곳곳에 표석(천정에서 떨어진 굳은 바위가 용암을 따라 흐르던 것)이 널려 있었다. lava roll(용암이 지나간 후 바닥에 동글동글 말린 자국) 때문에 하이힐 따위를 신고는 걸을 수 없는 곳이다. 내부가 굉장히 넓다. 관람 가능한 만장굴의 마지막 지점에는 끝판왕으로 용암석주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드라마틱하다!!

지식은 물론 경험이 일천해 세상의 많은 것을 보고 배우지 못했지만 만장굴 때문에라도 제주지역이 마땅히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될만 했다. 다만 동굴 내부의 조명이 별로 안 좋아 제주관광청에 민원이라도 넣고 싶은 심정이다. 붉은 조명을 썼더라면 눈이 덜 피로하고 용암이 흘렀던 지옥같은 분위기도 제대로 났을텐데... 부글부글 크르릉 텅 철썩 쩌쩍 하는, 용암이 흐르고 표석이 움직이고 천정에서 녹은 광석이 흘러내리는 괴기스러운 소리로 분위기를 북돋아주면 금상첨화다. 이거 정말 민원 넣을까? 세계 최고 수준의 '관광자원'을 이왕이면 제대로 전시해야지.

오후 네 시가 넘었다. 숙소가 많은 성산에서 1박 하고 내일 서귀포로 갈까 하다가 가족이 함께 여행 와서 따로 떨어져 돌아 다니고, 모처럼 휴가인데 아이한테 아빠 노릇 못하는게 미안하기도 하고, 등등 사소한 문제들도 있지만,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게 많이 추운데다 생각보다 피곤하다. 스쿠터는 탈 만큼 탔으니 이쯤 해서 반납하고 편하게 버스를 타고 아내가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가자고 마음 먹었다.

미로공원과 김녕사굴을 지나쳤다.

김녕 해수욕장
김녕 해수욕장 (클릭=확대). 소로만 찾아 달리는 것에 지쳐 1132번 국도로 나왔다.

김녕 해수욕장
김녕 해수욕장. 여름에 제주에 여행 오면 여기 오고 싶었다. 에머랄드 빛 파도와 새하얀 백사장.

제주시에 도착할 때까지 무작정 밟았다. 시내에서 유턴하던 자가용과 충돌할 뻔 했다. 스쿠터 대여점에 도착하니 6시 30분. 약 7시간 동안 탔는데 피곤하고 다리가 후덜덜하다. 스쿠터 대여 때 일일 150km 이상 달리면 안된다는 조건이 있었고 연료도 빌릴 당시보다 많이 부족했지만 일찍 반납해서 점원과 타협하고 잘 넘어갔다. 어 정말 피곤하다.

시내 괜찮은 식당까지 걸어가다가 지도를 안 본 탓에 길을 잘못 들었다. 피곤해서 다시 돌아가기 뭣해 시외버스터미널 까지 걸었다. 빵 두어 봉 사먹고 오뎅으로 차가운 위장을 달랬다. 버스에 올랐다. 서귀포 월드컵경기장 앞에서 내려 emart에서 술과 안주를 사들고 아내가 묵고 있는 숙소로 터덜터덜 걸었다.

늦은 밤에 아내는 감귤잼 만든다고 장작불을 피워 놓고 커다란 주걱으로 가마솥을 휘적휘적 저으며 올레길을 찾은 게스트하우스 손님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랫만에 본 박씨는 메두사 머리를 하고 있었다. 썩 괜찮아 보였다.

딸애는 아빠가 왔는데 반기지도 않고 박씨 아들과 노느라 바쁘다. 어 젠장 그냥 성산에서 자고 슬슬 스쿠터를 몰고 올 껄 그랬나?

숙소 바깥에서 맥주와 통닭을 먹고 마셨다. 잔디밭 건너편으로 범섬이 보였다. 숙소 분위기가 참 좋았다. 씻고나서 지쳐 정신없이 잤다.

하루 종일 스쿠터 타고 싸돌아다닌 것 밖에 한 일이 없지만 하루를 참 잘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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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피천에 가고 싶어서 6월부터 기회를 엿봤지만 번번이 취소했다. 비 안 오는 주말에 가려고 계획을 짰는데, 주말마다 비가 왔다. 2개월 동안 그 모양이다가 8월 휴가철이 겹치면서 가고 싶어도 차에서 보낼 시간이 무서워 접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나 혼자 가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가기로 했다. 혼자 가면 가볍다.

8월 14일 이사하는 집 공사가 나흘 일정으로 잡혀 있어 며칠 동안 거처가 없다. 수완좋은 아내가 거처를 마련했지만 내친 김에 여행이나 가자고  마음 먹었다. 아침에 잔금을 치르고 점심에 사무실로 돌아왔다. 저녁 무렵 출발할 생각이었지만 퇴근시간대에 자전거 끌고 지하철 타는 것은 양심없는 짓이고, 그렇다고 자전거 타고 사무실에서 동서울 터미널까지 가려니 초장부터 이 더위에 땀으로 샤워하고 버스에서 땀냄새 풀풀 풍기기 뭣하다.

그래서 일찌감치 출발했다. 16:40, 사무실에서 자전거를 챙겨 지하철을 타고 동서울 터미널로 향했다. 환승역인 신도림역으로는 자전거를 끌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7호선 지하철을 갈아탔다. 뚝섬유원지역에서 내려 동서울 터미널까지 자전거를 몰았다. 휴가철 막바지에 무더위가 겹쳐 피서가려는 사람들로 터미널이 징그럽게 버글버글하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18:56 차를 탔다. 버스는 삼척을 거쳐 울진으로 내려갔다. 가는 내내 쉴 새 없이 떠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23:26 울진 도착. 자전거를 몰고 텅 빈 국도를 따라 강 건너편의 찜질방으로 찾아갔다. 왕피천 찜질방은 문을 닫았다. 한숨 한 번 쉬고, 다시 읍내로 돌아와 5년 전에 묵었던 명성 찜질방으로 향했다. 울진 친환경 농업 엑스포 기간 중이라 사람들이 많다. 배개 하나 달랑 베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여행자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여행정보를 교환하지 않을 뿐, 찜질방이 어떤 면에서는 유스호스텔이나 도미토리보다 낫다. 찜질방이 한국식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그러고보니 장기간 해외여행을 해보지 않아 날개가 부러진 기분이다.

7시 무렵 깨어 샤워하고 자전거를 점검했다. 저번 주말에 약 5시간에 걸쳐 물세척하고 기름칠한 보람이 있어 구동부에서 소리가 별로 나지 않는다. 잘 정비된 자전거는 주행 중 타이어 스레드가 아스팔트에 접지하면서 나는 찰진 고무 마찰음 밖에 나지 않는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정비가 썩 잘 되어 있어 만족스럽다. 반면 술과 스트레스로 찌든 몸은 그렇지 않다.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삼각김밥을 아침으로 먹고 읍내를 배회하며 트래킹 때 먹을 점심꺼리를 장만했다. 버스 터미널 부근을 지나가다 보니 왠 중국집이 아침 영업을 하는 것 같다. 괴이한데? 조그마한 읍내를 두어 바퀴 돌다가 아무래도 트래킹 중에 배낭이 젖을 것 같아 수퍼에 다시 들러 비닐 봉투를 얻었다. 인근에서 야영하던 사람들이 아침꺼리를 장만하러  자다 깬 얼굴로 수퍼 안을 좀비처럼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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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 출발. 읍내를 벗어나 망양 해수욕장 방면으로 달렸다. 안개가 짙게 깔려 강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다. 망양 해수욕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해도 안 난 아침인데 멸 킬로미터 달리지 않고도 땀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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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정으로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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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 중 제 1경으로 칭송받는 망양정. 현판은 대체 어디 갔을까? 아저씨들이 망양정 앞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나무를 잘라내고 있었다. 무더위에 이런데서 술 마시고 놀던 선비들이 어쩐지 가엾어 보였다. 바위에 제 이름과 싯귀를 새기는 등 자연 파괴를 일삼으며 계곡에 발 담그고 시원하게 노는게 낫지 않나?
 
안개 속에 가려진 망양 해수욕장과 별 볼 일 없는 망양정을 지나쳐 산포리 쪽으로 남행. 동해안 위쪽과 달리 인적이 드물어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간혹 민박 집과 이 나라의 금수강산을 사정없이 조져놓는데 열을 올리는 펜션들이 눈에 띄긴 하지만 그 수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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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바위... 옆으로 동해안에서 늘 보던 철조망. 길이 조용하고 아름답다. 자전거 하이킹하기에 딱이다.

해변을 따라 있는 캠핑장에 플랭카드가 걸려 있다. 해병제대 군인들이 독도 수호를 다짐하며 울진 앞바다에서 독도까지 특수영법을 사용해 릴레이 수영한다고 한다. 광복절 뉴스에 나오겠군. 저녁때 찜질방에서 아홉시 뉴스를 보니 정말 노해병들이 독도에서 만세를 부르는 뉴스가 나왔다.

산포리 앞바다(옆바다?) 구경을 잘 하고 나서 우회전해 진복리 부근의 울진학생 야영장 옆으로 난 농로를 따라 올라갔다. 특이하게도 흔히보던 다람쥐, 뱀 등의 로드킬과 달리 박쥐가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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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음리 근처. 보호수 팻말이 붙어있는 멋진 나무 아래 벤치.

큰길 교차로 부근에는 어김없이 길 안내하는 천막이 있다. 울진에서 열리는 친환경농업 엑스포를 안내하는 것 같다. 울진에서 준비를 참 잘해놓은 것 같다. 구름을 헤집고 해가 멀끔히 얼굴을 내밀어서 고갯마루에서 한숨 돌리고 팔 토시를 착용했다.

자전거 탈 때 입는 져지 대신  수영복에 얼마 전에 옥션에서 5천원 주고 구입한 파란 등산복 티셔츠를 걸치고 자전거를 탔다. 쿨맥스 등산복이라 잘 마른다. 수영복은 여차하면 바다나 계곡에 뛰어들 목적으로 입었다. 워낙 편한 복장이라 이러다가 버릇되겠는데? 폼은 안 난다. 그런데, 폼이 밥 먹여주나? 난 아저씨란 말이다.

굳이 GPS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쉽게 성류굴 가는 길을 찾았다.  강변을 휘돌아 성류굴 입구에 다다랐다. 입장료 3천원, 자전거는 굳이 열쇠를 채우지 않고 매표소 앞에 세워두고 메고 있던 배낭은 사물함에 맡기고 좁은 굴 입구로 향했다. 굴에 들어서자 마자 서늘한 냉기가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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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유굴 여기 저기 설치되어 있는 온습도계를 보니 온도는 16.7도, 습도가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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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내장 같아 보이는데? 어우 징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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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유굴을 볼 때마다 단테의 신곡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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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H.R. 기거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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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폿 조명을 받고 있는 종유석. 세계 어디서나 나무든 돌이든 남근이나 여근 모양이면 이렇듯이...

성류굴을 나와 농로를 따라 왕피천을 따라갔다. 저수지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울창한 숲 사이로 콸콸 흐르는 물 소리가 들린다. 간혹 좁은 길을 따라 내 자전거를 추월하는 자가용들이 지나갔다. 150m까지 올랐지만 내리막길에서 신나게 내려가긴 좀 무서웠다. 속도를 줄여 구산리 구고동에 다다랐다. 해는 쨍쨍 내리쬐고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32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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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천동까지 자전거를 몰고 가서 왕피천 트래킹을 시작할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날이 워낙 더워서 한시라도 빨리 물에 몸을 담그고 싶어 자전거를 대충 세워두고 자물쇠는 채우지 않은 채(이런 데서 누가 자전거를 훔쳐가겠나?) 왕피천에 발을 담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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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살이 거칠고 매우 빠르다. 언덕에서 볼 때는 별로 깊어 보이지 않았는데 개울에 들어가보니 허리춤까지 물이 찬다. 물살이 빨라 거의 둥둥 떠내려가다시피 하류로 흘러갔다. 간신히 중심잡고 건너편 기슭에 다다랐다. 날이 더워 부러 개울에 뛰어든 탓에 이미 온 몸이 젖고 배낭도 젖었다. 개울 트래킹이니까 일단 담그고 시작해야 속이 편하다. 비닐봉투에 넣은 배낭의 내용물을 꺼내 밀폐 여부를 다시 확인하고 출발.

어제 아침에 회사갈 때 깜빡 잊고 등산 샌달 대신 운동화를 신고 왔다. 몹시 후회된다. 바위가 뾰족뾰족해 신발을 벗을 수는 없고, 발과 신발과의 마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양말도 벗을 수가 없다. 그냥 이대로 개울을 따라 죽 올라가야 한다.


동영상으로 보는 것과 달리 물속에서 중심잡기가 몹시 힘들다. 신발은 죽죽 미끄러지고 물살에도 죽죽 밀린다. 건너편으로 건너려면 두어명이 한 조가 되어 자일을 끌어야 할 판. 동영상 마지막 부근에서는 물이 허리까지 잠겼다. 이건 도저히... 한가하게 동영상 찍을 분위기가 아니라서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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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쯤 걸어 올라서 상천동 근처의 보에 다다랐다. 오는 동안 두어번 미끄러졌다. 시원하게 물 먹었다. 보 저쪽 편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천막을 친 채 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물살 탓에 끄트머리가 붕괴된 저 보를 지나갈 수 없을 것 같다.  평화로운 사진과 달리 무척 으시시하다. 용소까지는 절반 정도 남았다. 차라리 자전거를 몰고 상천동까지 왔더라면 좋았을 껄 그랬나? 이 더위에 직사광선 아래 땀을 비오듯 쏟으면서 자전거 타긴 뭣하고...  그래 이쯤에서 포기하자.

내려오는 길에 배낭을 내려놓고 쉬었다. 온통 젖었다. 뭐 사실 여기까지 오는 길의 절반은 물 속에 푹 잠기다시피 했으니까. 오후 한 시. 점심을 먹으려고 배낭을 열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등산객 한 팀이 올라오는 중. 한 아저씨가 돌아오는 길이냐며, 용소까지 거리를 묻는다. GPS를 흘낏 보니 4km 가량. '여기서 한시간 반 정도 걸으면 용소까지 가고 넉넉 잡아 세시간 반이면 속사마을까지 갈 수 있는데, 여기서 30분 거리에 보가 하나 있어요. 자일은 챙겨오셨어요?' 챙겨왔단다. 이 팀을 따라갈까 하다가.. 돌아올 때 쯤이면 오후 3시가 될텐데, 또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끔찍해져서(아침 8시부터 5시간 동안 자전거 타고 걷고 해서 많이 지쳤다) 역시 관두기로.

점심 먹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몸으로 다시 개울을 따라 구고동으로 돌아왔다. 오후 2시. 33.7도. 구고동 다리 밑에 젖은 짐을 펴 놓고 산들바람이 부는 다리 밑 그늘로 기어들어가 누웠다.  오후 3시 무렵 깨었다.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많이 지쳤다. 이런 저질 체력 같으니라고.

짐을 바리바리 배낭에 쌌다. 배낭은 작년에 지리산 갈 때 산 38리터 짜리인데 3일 산행하기엔 공간이 넉넉치 않아 결국 지리산행 때는 써보지 못했다. 등판이 망사라 자전거 탈 때는 땀이 배이지 않아 아주 좋았다. 계획했던 용소까지 가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잊어버리자.

오던 길을 거슬러 성류굴 맞은편의 울진 종합 운동장까지 자전거를 신나게 몰았다. 자전거를 모는 내내 울진읍민들이 부러웠다. 읍내에서 조금만 나가면 왕피천이나 불영계곡같은 멋진 계곡이 있고, 읍내를 관통하는 왕피천도 무척 맑아 물놀이 하기 좋았다.

시간이 많이 남아도는데 딱히 할 일도 없어 친환경 농업 엑스포나 구경하러 갔다. 그 행사 때문에 조성한 넓은 엑스포 공원이 왕피천변에 펼쳐져 있다. 그런데 입장료가 무려 12000원이나 한다. 대체 뭐가 이리 비싼가 싶어 팜플렛을 뒤적여 보니, 입장권이 성류굴 무료관람, 불영사 관람 할인권, 백암/덕구온천 할인권, 민물고기 생태체험관 할인권, 엑스포 행사장내 아쿠아리움 무료 관람, 입체영화 무료 관람등을 포함하고 있다.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껄!

어젯밤 뉴스에서 친환경 농업 엑스포 관람자가 백만명을 돌파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보니 과연 그럴만 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즐기기에 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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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에서 본 시계꽃. 꽃잎이 뒤집혀 있고 시침, 분침, 초침 따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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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무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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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왕돌초라 불리우는 대륙붕 부근의 돌 섬에 조성된 생태계에서 산다. 왕돌초가 열대바다의 산호초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남획에 의해 고갈된 환경을 되살리기 위해 남해바다에 다량의 인공어초를 설치했는데 성과가 성공적이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울진에도 인공어초를 설치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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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털게, 대게, 왕게들이 바다 밑에 이렇게 떼지어 사는구나. 먹음직스럽다기 보단 징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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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중인 가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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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 공원 앞 왕피천. 건너편은 아침에 안개가 자욱했던 망양 해수욕장.

오후 6시. 대략 2시간쯤 엑스포 구경을 했다. '국제' 라는 접두어를 붙이기는 민망하지만, 행사 기획을 참 잘 했다.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 백만명 관람도 이해가 간다. 지치고 다리가 아파서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쭈쭈바를 빨아먹었다. 예전에는 자전거 탈 때 설레임을 자주 먹었는데 가격이 1500원으로 올라 먹기 부담스러워 그 대신 800원짜리 빠삐코를 자주 먹었다.

벤치에 놓고왔던 모자를 되찾고 충전을 위해 맡겼던 휴대폰을 되찾았다. 8시 무렵 저녁 행사가 있어(8월 16일이 폐회) 재입장용 스탬프를 팔목에 찍고 울진 시내로 자전거를 몰았다. 주말이라 자전거 가게가 문을 닫아 자전거에 바람을 넣을 데가 마땅치 않다. 아무래도 이대로 끌고 다녀야겠다.

읍내의 만나삼계탕에서 8500원짜리 삼계탕을 시켰다. 양해를 구하고 엑스포에서 산 5천원짜리 오미자와인을 삼계탕에 곁들여 먹었다.  오후 7시. 다시 엑스포 행사장으로 갔다. 행사장은 파장 분위기다. 잘못 알았다. 7시 시작해서 8시 끝나는데 8시에 시작하는 줄 알았다.마지막 행사는 불꽃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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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공연장에서 불꽃놀이를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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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구경한 것은 처음. 왕피천에서 불꽃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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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날레.

어제 묵었던 동명 찜질방 대신 강 건너 명성 찜질방으로 향했다. 엑스포 때문에 사람들이 워낙 몰려 읍내의 모든 숙소가 찼고 찜질방에도 사람들이 바글거릴테니 신발을 잘 챙기란다. 들어와서 30분이 채 안된 열시 반 무렵이 되자 돗대기시장처럼 붐볐다. 새벽까지 잘 자다가 깼다. 다시 잠들었다.

아침 7시 조금 넘어 일어났다. 샤워를 마치고 찜질방을 나왔다. 어제 삼계탕을 든든히 먹었더니 아침 먹긴 뭣하고 바로 출발. 5년 전 동해에서 울진까지 자전거 타고 올 때가 딱 이맘때였다. 날씨도 비슷하다. 한낮에 섭씨 34도. 코스는 동일. 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달라졌나 확인하고 싶어서 왕피천 트래킹과 울진-동해 자전거 주행을 패키지로 묶어서 여행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히죽히죽 웃었다. 이번에는 잘 될 것이다.

7번 국도를 따라 죽변으로 출발했다. 아직 더위가 들개처럼 몰려오기 전, 햇볕은 갓나고 공기는 선선하다. 해변을 신나게 달려 죽변에 다다렀다. 뭐 그래도 땀 나는 건 마찬가지다.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삼각김밥을 사 먹고 한 숨 돌린 후 죽변항을 돌아 '폭풍속으로' 세트장으로 향했다. 죽변항에 곰치국으로 아침먹을 만한 곳이 있었는데 바보같이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먹어서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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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속으로'란 드라마의 촬영지. 본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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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지 옆 빽빽한 대나무 숲과 옥빛 바다.

죽변항을 출발해 원자력 전시관 방면으로 향했다. 다음 지도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녹지로 나타난다. 그쪽으로 길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역시나, 원자력발전소를 가로지르는 길은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다시 되돌아와서 7번 국도와 나란히 이어지는 길을 따라 원자력 전시관에 다다랐다. 잠깐 쉬다가 다시 출발. 다음 목적지는 호산리.

길고 지루한 업힐이 이어지는 동안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땀이 비오듯 쏟아져내렸다. 호산리에 다다르기 전 문닫은 하늘휴게소를 지나 자유수호의 탑 바로 직전에 공터에서 자전거를 세웠다. 고갯마루까지 올라오니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오르막길 내내 힘들어서 기어비는 거의 1:3, 1:2에서 오락가락했다.

호산리에 다다라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도착해보니 10:46 밖에 안 되었다. 그래도 늦으면 밥을 못 먹을테니(5년 전에는 노변에 밥 먹을 곳이 없어서 무척 황당했다) 아직 음식점이 준비가 안 되었단다. 하는 수 없이 물만 얻었다.

오르막길 막바지에서 내려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 노곡 삼거리 앞. 맞은편 차선에서 내려오는 나를 미쳐 보지 못하고 좌회전하다가 자전거와 충돌했다.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만약 피했다면 내려오는 속도 때문에 삼거리 맞은편의 펜스에 자전거를 박고 절벽으로 굴러떨어졌을 것이다. 대신 브레이크를 잡고 좌회전하던 자동차 우측 범퍼를 그대로 박았다.

자전거 속도가 급격히 줄면서 정지했다. 몸이 붕 떠서 반 이상 회전할 때까지 핸들바를 놓지 않았다. 적절하다 싶은 타이밍에 핸들바를 놓고 왼팔을 안쪽으로 휘둘러 공중에서 몸을 돌린 후 왼쪽 어깨부터 아스팔트에 착지했다. 그리고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니까 액션대역처럼 무척 멋지게 2m 짜리 공중제비를 돈 다음 아스팔트에 떨어진 것이다.

자동차를 몰던 아줌마는 넋이 나가서 횡설수설했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가 다시 쓰러졌다. 차문이 열리면서 조수석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허겁지겁 뛰어온다. 자전거 위치를 확인했다. 범퍼에 부딛혔던 자전거는 내 앞쪽으로 멀리 튕겨 나가 있었다. 아저씨가 나를 일으켜 세우면서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운동신경이 좋아서 크게 안 다친 것 같군요.' 그러게 말이다. 자전거 타고 사고에 대비해 벽을 향해 쏜살같이 달리며 미친놈처럼 치킨런 연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두개골 검사. 집 전화번호를 떠올려 보았다. 기억 안 난다. 아참, 원래 집 전화번호를 기억 못했지. 파이를 12자리까지 외워보았다. 된다. 왼쪽 어깨가 욱씬거렸다. 감각은 다 느껴진다. 무척 더운 날씨고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볼이 간지럽다. 등골은 여전히 서늘하고. 아줌마 운전수는 안절부절하고 있고 아저씨가 나를 부축해 앉혔다. 괜찮아요? 글쎄요. 그점에 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편입니다.

앉아서 사고 경위를 따졌다. 그쪽이 잘못을 인정했다. 아줌마는 당사자인 나보다 정신없어 보인다. 명함을 받고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차 번호를 적었다. 사고 지점을 waypoint로 찍어 두었다. 자전거는 별 탈 없다. 브레이크 와이어가 이탈했고 한쪽 패달이 약간 찌그러졌다. 생각보다 브레이크가 잘 먹은 것 같다. 그래서 큰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다. 살아서 다행이다. 병원에 가자고 아저씨가 말한다. 살았으니까 일단 자전거를 몰고 싶다. 필요하면 연락할테니 먼저 가라고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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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지점. 도로변에 멍하니 앉아 아까 식당에서 얻어온 물을 마셨다. 나중에 돌아와서 GPS 로그를 분석해보니 저 내리막길에서 내려올 때 속도가 44kmh였고 브레이크를 잡아서 속도가 37kmh로 떨어졌다. GPS의 기록 시차를 고려하면 임펙트 순간의 속도는 대략 20~30kmh 쯤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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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및 비정상

삼척까지 35km 남짓 남았다. 어깨가 뻐근하지만 아드레날린 펌프 덕택에 자전거 주행은 비교적 수월했다. 임원을 지나 5년 전에도 쉬었다 갔던 신남 해수욕장 부근에 다다랐다. 예전에 없던 해신당 공원이란게 생겼다. 해신당이 남근 숭배인 것 같다. 날이 무척 더워서 햇볕에 쏘다니긴 좀 그렇고 파라솔 아래에서 800원짜리 빠삐코를 사먹고 다시 출발했다. 배가 슬슬 고파온다.

용화해수욕장을 지나 고갯마루의 작은 공원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그늘 아래 벤치에 누웠다. 옆에서 전라도에서 온 아저씨들이 회를 먹고 있다. 날더러 좀 먹어보겠냐고 묻는다. 대답하려고 일어서다가 갈비뼈가 결렸다. 아프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어째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은데? 아까 병원 가잘때 갈 껄 그랬나? 아니다. 오기다. 공원 위쪽에 설렁탕 집이 보였다. 식당에 밥이 떨어져서 막국수를 먹었다. 식사가 나올 때까지 근 한 시간을 기다렸다. 주인장은 싱글벙글한다. 밥이 떨어질 정도로 오늘 영업이 잘 되었단다. 하루 장사를 점심 한 때로 다 했다나?

근덕면에 바다로 흘러가는 개울이 있던 것을 기억한다. 이 망할 더위에 지쳐 나가 떨어질 것 같아 시원하고 맑은 개울에 몸을 담그고 싶다. 어제처럼 오늘 복장도 여차하면 물속에 뛰어들려고 수영복과 등산복 차림이다. 개울에 수풀이 우거졌고 수초와 녹색말이 보인다. 아... 5년이 지나는 동안 그 맑았던 물이 이렇게 흐려졌구나. 김이 새서 개울을 지나쳤다. 가다보니 '재동유원지'란 팻말이 보였다. 아이들이 물속에서 첨벙이고 있다. 빙고.

개울 한 가운데를 깊이 파서 위쪽과 아래쪽에 여울을 만들어 물을 고엿다. 그렇게 해서 천연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다. 자맥질 몇 번 하니 살 것 같다. 아까 사고날 때 왼쪽 팔굽 위와 어깨에 상처가 생겼다. 팔 토시에 피가 배었다. 개울물에 상처를 담궈두면 감염이 염려되어 천원 내고 샤워장에서 샤워하고 먼지묻은 옷들을 빨았다. 잔돈으로 빠삐코를 사 먹었다. 아내가 전화했지만 사고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 더위에 뭐하는 뻘짓이냐며 어서 돌아오란다. 이 더위가 아니면 안된다. 동해까진 가야겠다.

갈빗대를 비롯해 왼쪽 어깨가 많이 쑤신다.  아무래도 삼척에 들러 진료를 받아야겠다. 지나가다가 경찰서가 보여 삼척에서 응급진료가 가능한 병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사고처리에 관해 물어보니 당사자간 합의가 안되면 그때해도 늦지 않단다. 보험사에 연락해 진료 청구를 하라고 사고낸 아줌마에게 전화했다. 전화를 안 받는다. 일단 삼척의료원(삼척병원)까지 가보자.

상맹방 해수욕장에서 자동차 전용도로말고 구 7번 국도로 들어가는 길을 찾느라 헤멨다. 겨국 못찾고 자동차 전용도로로 들어가려고 그 입구에 가보니 자전거 여행자가 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자전거 여행을 해 보자 해서 경상남도에서부터 죽 올라오는 길이란다. 함께 자동차 전용도로를 올라가 터널을 통과했다. 안 따라오길래 뒤를 돌아보니 자전거를 세웠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펑크가 났단다. 타이어가 참 얇다. 벌써 펑크가 두번 났단다. 능숙학게 펑크를 때운다. 옆에서 도와줬다. 수리 중에 제주도에 꼭 가보라고, 해안도로 일주도 보람있긴 하지만... 성산에서 성판악까지 올라가 서귀포로 내려간 다음 시계 방향으로 해안도로 일주하는 코스를 알려줬다.

어깨가 많이 쑤셔서 먼저 출발했다. 삼척병원에 도착해 응급실에 진료 접수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뼈는 이상이 없단다. 이런 젠장 근육통인거야? 뼈라도 하나 부러져야 여행경비나 뽑아낼텐데... 사실 사고처리하던가 합의해서 합의금 뜯어낼 수는 있겠지만 양심상 그런 짓은 못 하겠다. 병원에서 한 시간을 보내니 벌써 4시 30분. 동해까지 가려니 왠지 김이 새서 관뒀다. 5년 전에 비해 체력은 훨씬 좋아졌다. 사고만 아니었으면 아마 오늘 강릉까지 갔을 것 같다.

삼척을 빙글빙글 돌며 구경했다. 삼척도 많이 변했다. 동굴 엑스포 타운이란 것이 생겼다. 삼척이 동굴의 도시란다. 낮에 먹은 맛없는 관광지 막국수로는 배가 차지도 않아 롯데리아에서 햄버거와 팥빙수로 배를 채웠다.

18시 동서울행 버스를 탔다. 차가 많이 밀려 서울에 도착하니 23시. 시내주행을 조금 하다가 중랑천 자전거도로로 접어들어 공릉까지 갔다. 치킨과 맥주를 사들고 마누라가 기다리는 임시 거처에 도착했다. 아이를 재우고 맥주를 마셨다. 올해 동해안 자전거 여행도 제대로 끝나지 않았다. 기분이 묘하다.

사고낸 아줌마와 연락이 닿아 진료비와 약값을 받았다. 망가진 패달 값을 받을까 하다가 그냥 수리해서 쓰기로 했다. 미안하고 고맙다며 바닷가에 놀러오란다. 시내 자전거 주행과 마찬가지로 자전거 여행도 살아서 집에 돌아가는 것이 목적이다. 살아서 집에 돌아와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아내와 아이가 자는 모습을 봐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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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2 ~ 2009/06/14 사이 서산에서 군산까지 자전거 여행을 했다.

금요일 저녁 출발. 서산가는 막차가 19:45. 사무실에서 17:30에 나와 집에 들러 후다닥 준비하고 반포의 센트럴 터미널까지 자전거를 몰고 갔다. 늦을까봐 30kmh대로 자전거를 몰았다. 오랫만에 자전거를 타서인지 터미널에 도착할 즈음에는 다리가 뻑뻑했다. 저녁 삼아 라면을 후루룩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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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 2009-6-16 해지기 바로 전.

21:20분 일반버스를 탔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옆자리 아줌마가 삼각김밥을 하나 나눠준다. 사양했다. 서산에 도착하니 23:30. 저녁때 먹은 라면 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배가 고파 시내에서 찜질방으로 가는 길에 치킨에 맥주 한 잔 할만한 곳을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보석 사우나 찜질방에 자전거를 놔두고 찜질방 옆 편의점에서 캔맥주 하나 마셨다. 담배도 한 대 피웠다. 그 와중에 주머니에서 지갑을 떨궜다. 영수증 챙기려고 주머니 뒤지다가 알았다. 하마터면 지갑을 잃어버릴 뻔 했다. 자전거를 잘 갈무리 해두고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날이 흐릴 꺼라더니 쨍쨍하기만 하다. 8:00에 일어나 대충 샤워하고 담배 한 대 피우고 9:00에 출발. 원래 계획은 평택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평택부터 안면도를 거쳐 군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었는데 거의 쉬지 않고 160km를 달려야 해서 부담스러워 서산 출발로 정했다. 태안이나 당진에서 숙박하지 않은 것은 서산에서 안면도 쪽으로 가는 길목에 굴밥집이 몰려 있어서다. 안면도에 들어가기 전, 그리고, 나가서 밥을 먹을 생각이다. 흔히 말하는 island price에 뭘 사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어젯밤에 오랫만에 무리해서 달려서인지 다리가 묵직한게 불안하다. 아침부터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22km를 달려 서산 A-B지구 방조제를 건넜다. 아침부터 가방을 맨 등짝에 땀이 흥건하다. 방조제를 건너자마자 왼편으로 식당들이 보인다. 당암리굴밥집에서 굴해장국을 시켰다. 반찬 예닐곱가지와 콩나물 해장국에 굴을 잔뜩 넣어 주고, 공기밥이 아닌 돌솥밥을 지어 주는데 꽤 맛있다. 꼭 전라도 음식 먹는 기분. 이렇게 맛있는 줄 알았으면 만 원짜리 굴영양돌솥밥을 시켜먹을 껄 그랬나?

그런데 어제 서산에 온 후로 가게나 식당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조선족이었다. 중국에서 보던 조선족과는 달리 한국의 식당에서 보는 조선족에 대한 인상이 좋은 편이다.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 당암리굴밥집 식당 주인에게 음식이 맛있다고, 가게 이름을 널리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리지? 사진 한 장 안 찍었는데. 웹질해서 찾았다. 남면 당암리 1-1. 041-674-1446. 영양굴밥 10000원, 굴해장국 6000원. 생각대로 역시 이미 알려진 맛집이다.

갓길이 별로 없는 649번 지방도를 따라 달렸다. 대부분 평지라 견딜만했다. 서산에서 AB방조제까지 고개가 셋 있는데 고저차가 50m 가량이라 우아한 주행이 가능하다. 볼만한 것은 없다. 길을 따라가다가 청살모 로드킬은 무려 다섯 번이나 봤다. 승용차가 논길 옆 진창에 코를 쳐박고 있는 모습도 봤다. 그러고보니 변산반도 자전거 여행 때도 승용차가 박혀 있는 걸 본 것 같다. 차체가 망가지거나,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게 혹시 길조인가?

649번 지방도를 타다가 77번 국도와 만나 우회전해서 안면 대교를 건넜다. 도로가 널찍하고 갓길도 잘 되어 있어 주행이 편하다. 백사장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길로 난 해안도로를 타고 갔다. 다리를 건너면서 오른편으로 바다가 어렴풋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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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 해수욕장에 들러 해변을 거닐며 잠시 쉬었다.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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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모래사장에 간간이 사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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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빠진 진흙처럼 고운 뻘모래 위로 조개들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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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충들의 꿈지럭거리며 뻘에 새겨놓은 그들만의 나스카라인. 그래! 얘들아 내가 지켜보고 있단다.

아직 해수욕장 개장 전이라 사람은 거의 없지만 해수욕장 앞 매점에서는 관광지 가격으로 물건을 파는지 뭔가를 사서 나온 아저씨가 물건값이 어처구니가 없다며 일행에게 투덜거린다. 안면대교가 있건 없건 안면도는 섬이니까. 관광지 섬의 경제 시스템은 좀 유별나니까. 발에 물을 묻히긴 이른 시각이라 꽃지 해수욕장까지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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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벗어나 해수욕장을 잇는 비포장길을 신나게 달렸다. 그늘이 적당히 드리워져 별로 덥지 않다. 오른편으로 바다를 보며 달리니 상쾌하다. 도요 해수욕장과 밧개 해수욕장을 지나 해발 50m짜리 저 앞에 보이는 야트막한 고개를 넘자 방포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딱히 쉴만한 그늘이 없어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잠깐 쉬고 방포항으로 갔다. 방포항에는 조개, 굴 따위를 따는 무수한 사람들이 해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안면도 꽃 축제가 끝난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꽃 축제장 철책 너머로  꽃이 잔뜩 피어 있다. 지나가는 시민을 위해 꽃축제장을 그냥 열어 놓으면 안되나? 돈은 벌만큼 벌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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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포 해수욕장. 역시 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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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포항 뻘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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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 해수욕장 말단에 있는 롯데 오션캐슬에 도착. 해변에 내려가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아직은 물이 차가워서인지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햇살은 따갑고 서풍은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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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한테 보여주면 좋아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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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캐슬의 해변가 흔들의자에 앉아 잠깐 쉬면서 해변을 구경했다. 대천행 배편 시각을 알아보려고 영목항 페리 터미널에 전화했다. 요점은, 배편이 14:20에 있으며 주말에는 사람들이 몰려서 선착순으로 배표를 주는데, 언제 마감될지 모른다. 전화예약은 안된단다. 얼마나 일찍 가야 배표를 구할 수 있냐고 물으니, 그건 자기도 모르니 알아서 하란다. 친절도 하시다. 어영 부영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자전거를 몰다보니 지금 시각은 12:00, 영목항까지 남은 거리는 20km 가량. 1시간 반 동안 달리면 13:30에 도착하는데, 배표를 구할 수 있을까?

젓산으로 묵직한 다리를 끌고(거의 한 달 반 동안 자전거를 안 탔다. 타봤자 아이 짐칸 안장에 태우고 찬찬히 몬 것이 고작이니 다리에 알이 배기는 건 시간 문제다) 하는 수 없이 영목항까지 달리기로 했다. 끝없는 팬션들을 지나치며 영목항에 도착하니 13:35이다. 허겁지겁 배표를 구하려고 들어가보니, 왠걸, 널널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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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 출발 예정인 영목-대천간 페리는 14:40쯤 출발. 한 시간쯤 멍하니 부두에 앉아 오가는 고깃배를 구경하며 배를 기다렸다. 안면도에서 사먹은 것은 7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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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끼떼처럼 관광유람선을 졸졸 따라가며 새우깡을 기대하는 갈매기들.

영목항 올 때까지 64.5km를 달렸는데 다리가 뻣뻣해서 군산까지 달릴 수 있을지 걱정된다. 배 안에 누워 30분쯤 자다가 깨어보니 대천항에 거의 다다랐다. 15:40분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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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항. 어 밋밋해.

대천항 앞에 있는 GS25 편의점에서는 도시락을 팔지 않았다. 대천항을 빠져 나오자마자 나타난 고개를 넘었다. 대천 해수욕장 앞 분수공원의 편의점에서도 도시락을 팔지 않았다. 해수욕장 구경을 하다가 해변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몰았다. 배가 고파서 힘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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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 해수욕장. 노변에 레게바, 고고바만 있으면 파타야 같겠는 걸?

대천 해수욕장 거의 끝나는 지점에 있는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사먹으려 했더니 무수한 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왠 외국인이 이렇게 많지? 롯데리아 아래에 있는 패밀리마트에서 제육덮밥 도시락과 포도쥬스를 3천원에 샀다. 전자렌지에 도시락을 데우고 있는데 옆에서 물건을 사는 외국인이 종업원이 예쁘다며 수작을 건다. 종업원은 영어를 모르는 척 한다. 편의점 앞 파라솔에서 도시락을 까먹었다. 왠지 처량하다. 편의점 도시락을 처음 먹어 보는데, 딱 그 가격에 걸맞는 품질이다. 경기불황 탓에 도시락이 인기라는데, 이게 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거지? 경기불황이면 입맛도 떨어지나? 밥은 썩 품질이 좋은데 반찬이라고 붙어있는 제육과 볶은 김치는 여름 날씨에 상하지 않게 하려고 별별 걸 집어넣은 듯한 괴이한 맛. 아, 다시 먹으라면 못 먹겠다.

밥 먹고 16:10 쯤 군산을 향해 출발했다. 군산까지 대략 70km인데, 1시간에 20km씩 꾸준히 달리면 해지기 전까지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지? 대충 관광이나 하면서 천천히 달리려고 했는데...

날이 더워 가방을 등에 메고 있자니 땀이 흥건히 배어서 가방을 짐칸에 묶었다. 아침부터 별로 안 한가하게 달리기만 한 탓에 김이 새서 사진 찍기도 귀찮아졌다. 무작정 달리자. 죽도를 지나치고 독산 해수욕장도 들르지 않고 지나쳤다.

외국 여기저기를 다닌 탓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 원없이 즐겼던 동해의 질 좋은 모래 해변 탓인지,저번 변산반도 때와 마찬가지로 안면도의 해변은 그저 그랬다. 돈 주고 그런 허름한(?) 곳에 가서 섬이랍시고 주야로 일 없이 돈을 뜯긴다는 것이 사실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 머리로 이해는 한다. 낭만과 꿈과 환상이 머리 속에만 머무는 관념이 아니라 시장에서 실거래되는 상품이니까.

그나마 자연 환경(?)이 해수욕장 같아 보이는 것은 대천 해수욕장 정도였다. 아무래도 워낙 좋은 해변만 봐서인지 다른 것들은 성에 안 찬다. 하지만 여름에 대천 해수욕장을 찾는 것은 미어터지는 인파 때문에 대략 정신나간 일처럼 보인다. 노련한 상인들이 어떻게든 등을 벗겨 먹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관광지다 보니 오고 싶은 생각은 안 드는 곳이다. 차라리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태국 해변에 가서 맛있는 음식과 저렴한 맥주를 편하게 즐기겠다.

장안 해수욕장과 춘장대 해수욕장을 들러가는 루트를 짰지만 해수욕장에 실망감이 커서 더 봐서 뭐하겠냐 싶어 가던 길을 돌아 논밭을 가로지르는 비포장길을 따라 갔다. 차라리 이 길이 훨씬 났다. 엉망진창으로 난개발해 놓은 관광지의 팬션들과 끝없이 이어지는 별 특색없는 해산물 식당들을 안 봐도 되니까. 시골주민이 뻔히 쳐다보면 연쇄살인범처럼 히죽 웃어주며 지나칠 수 있으니까. 서해안에 와서 해산물을 안 먹은 것을 후회하냐고? 천만에~

주욱 해안도로를 따라 갔다. 서풍이 계속 불어 자전거 주행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관광지가 끝나자 주행이 한결 즐거웠다. 비록 짧은 구간이지만 오른편에 해변을 끼고 소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평탄한 일차선 도로가 아름답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사먹을 가게 하나 안 보였다.  서천을 지나 장항에 이르자 이제 거의 다 왔구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배가 고프다. 물은 다 떨어졌다.

장항은 입구부터 시내까지 줄곳 황량했다. 장항항에서는 포장마차를 열어 해산물을 싸게 파는 모양이다. 장항항을 지나쳤다. 들러서 하다못해 갑오징어 안주에 소주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군산에 가서 저녁으로 우렁쌈밥을 먹고, 군산 해변에 즐비할 것만 같은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 기울이자고 마음 먹었다.

금강하구둑을 건널 때 쯤엔 파김치가 되었다. 대천항서부터 62km를 달렸다. 오늘 아침부터 133km를 달렸다.  금강하구둑을 건너, 탐조대 부근의 우렁쌈밥 식당(강촌마을식당이던가?)에 도착한 시각이 19:35분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혼자 먹기 미안한 식당이지만 일인분을 주문해도 한 상 가득 차려준다. 쌈야채에 밥과 우렁쌈장을 얹고 꽁치 한 점 얹어 쌈을 해먹으니 목구멍으로 한없이 술술 넘어간다. 정신없이 먹었다. 우렁무침에 우렁쌈장과 우렁된장찌게에 꽁치를 준다. 가끔 서울서도 이렇게 맛있는 꽁치를 먹을 때가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이런 걸 매일 먹고 사니까 심성도 고울 것 같다. 식당은 많이 허름하지만 밑반찬 하나하나도 빠지지 않고 맛있다.

배불리 먹고 식당을 나오니 20:10분. 어두컴컴한 해안도로를 따라 시내로 슬슬 주행했다. 내일 안면도 가기 전에 쇼핑을 해야 해서 emart에 들렀다. 내가 사는 동네의 emart는 날도둑놈들 같은데(타깃 고객층을 정해 그들의 가격민감도가 높은 일부 품목만 싸게 팔고 나머지는 비싸게 팔아먹는 수작질로 emart의 구매합산액이 재래시장은 커녕, 동네 수퍼만도 못할 때가 많다. 따라서 난 꼭 필요한 공산품 구매나 피치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대형할인점에 가지 않는 편)  군산 emart는 정말 할인을 한다. 막 장보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다. 물건을 들고 계산대에서 봉투 구입을 망설이니까 종이봉투를 드릴께요 하면서 알아서 건네준다. 종이봉투는 무료란다. 아, 그러고보니 대형 할인마트에서 종이봉투는 무료로 제공하게 되어 있는데, 말하지 않으면 주지 않고 종이봉투 무료라는 것을 선전하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기억이 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네 대형할인마트는 딱 재수없고 계산 빠른 서울놈들 답게 장사를 너무 얍삽하게 잘 한다.

군산 시가지가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주행계획 짠다고 군산 시가 지도를 이틀쯤 뚜러지게 노려본 탓인지 밤 늦은 시각임에도 어디가 어디인지 대뜸 알아먹겠다. 하지만 포장마차가 보이지 않는다.

회 한 접시에 맥주 한 잔 할 수 있을까 싶어 해망동의 횟집타운으로 향했다. 21:30이 넘어서인지 횟집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그 유명한 군산횟집만 광휘를 흩날리고 있었다. 횟집 들어가긴 뭣하고... 간단히 회 한 접시 먹을만한데가 없을까? 하지만 군산횟집과 몇몇 횟집을 제외하고 해망동 해변도로는 불이 꺼진 채 을씨년하다. 다시 시내로 발길을 돌렸다.

시내 중심가의 젊은이 거리에도 어디 노변에 앉아 맥주 한 잔 하기 적당한 곳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릴없이 시내를 배회하다가 피곤하기도 해서 (벌써 주행거리가 160km를 넘었다) 찜질방을 찾았다. 패밀리 스파는 망했는지 불이 꺼져 있어 금강레저타운으로 향했다. 찜질방을 찾아둔 후, 편의점에서 500ml짜리 캔맥주 한 병을 사서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냥 장항에서 갑오징어에 소주 한 잔 할 껄 그랬나? 그러면 맛있는 우렁쌈장은 영영 못 먹게 되는 거구나.

찜질방이 워낙 시끄러워 12시쯤 잠에서 깼다. 장소를 바꿔 사우나 수면실에 가서 잠자리를 청했다. 어떤 아저씨가 한 시간 반 내내 기침을 한다. 다시 잠에서 깨어 이번에는 찜질방 수면실로 갔다. 애들이 새벽 4시까지 게임을 하고 떠들어서 새벽녁까지 제대로 잠을 못 잤다. 애들한테 꽥 소리도 질러봤지만 한창 날뛸 나이인 개구장이들에게 소용이 있을리 없고. 대체 수면실을 시끄러운 게임실 옆에 만들어놓는 미친 센스는 어느 머리에서 나온 거야?

아침에 눈을 떠보니 8:30. 잔 것 같지가 않아 몸이 찌뿌둥하다. 잠을 설친 탓에 8:00 배를 타고 선유도 가는 계획은 물 건너갔다. 기운을 북돋을 겸, 아침이나 잘 먹자고 어젯밤에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본 횟집타운 입구에 있는 해장국집(시원복집 이던가?)으로 갔다. 원래는 해장국 거리에 있는 일해옥에서 진한 전주식 콩나물 해장국을 먹을 생각이었지만 이왕 먹을 꺼 좀 더 잘 먹어보자 싶어 부러 갔다. 목표는 매생이굴순두부, 가끔 매생이국을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매생이를 사다가 집에서 끓여 먹으면 번번이 실패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뜨거운 매생이국을 호호 불어 먹다보니 이상하다. 국을 헤집어 보았다. 눈 씻고 봐도 굴이 없다. 주인 아줌마에게 말하니,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안하고 굴을 물에 삶아 탁자에 놓고 간다. 매생이국에 그걸 부어 먹는데 굴 맛이 하나도 안 난다. 어제 아침 서산에서 먹은 굴해장국은 꽤 맛있었는데... 같은 냉동 굴이라도 이렇게 다르다니... 이건 뭐...
그래도 꾸역꾸역 배는 채웠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공단의 너른 길을 따라 군산항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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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짓고 있는 듯한 군산 산업단지의 어떤 공장. 군산 관광 팜플렛에는 군산 산업단지도 어엿한 관광지로 나온다. 산업시찰단 말고 일반인도 공장 견학이 가능하다는 뜻일까? 당면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여자들이야 공장 가면 구질구질한 환경에 먼지나 억수로 날리며 볼 것 없다고들 하지만, 거대한 기계가 무시무시한 파워로 작동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진 않았다.

10:20분에 쾌속페리표를 끊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아저씨들이 자전거에 관심을 보였다. 서산에서부터 주욱 내려오면서 만난 사람들이 내 자전거가 값비싼 것인 줄 안다. 여기저기 고장나서 손을 봐주지 않으면 끊임없이 징징 앵앵 비명을 지르는 유사 MTB인데.

11:55 안면도 도착. 호객하는 삐끼를 보자 흐뭇하다. 마치 인도에 온 것 같다. 하지만 아무도 나한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쫄쫄이 바지 입고 자전거 타고 와서 그런 것 같다. 관심을 안 보여주니 조금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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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명사십리도 옛말이다. 지나가는 카트에 귀동냥을 해 보니, 이 모래는 관광철을 앞두고 2주 전에 퍼다 놓은 것이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기 뿐만이 아니라 이 것이 바로 대한한국 모든 해변의 현실입니다' 라고 말한다. 동해안도 그렇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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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 해수욕장. 어우 썰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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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과 망주봉. 매년 수백톤의 모래가 유실되는 플로리다 해안도 모래를 해변에 퍼 나르는데,  상당한 예산을 쏟아붓는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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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하는 모양을 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등대. 그럴듯한데? 이왕 이렇게 만들었으면 관광객들 사진찍기 좋게 손바닥 직교 방향으로 방파제를 조금 연장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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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물이 얼마나 빠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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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도와 선유도를 잇는 다리 위에서 바라본 정경. 낚시배다. 어떤 아줌마가 '고기 많이 잡았어요?' 하고 소리치니까, '안 가르쳐주지!' 라고 말한다. 흘낏 지나가다 어떤 낚시꾼 아저씨의 휴대폰 통화내용을 들었다. '우럭이 그냥 막 잡혀!!!'.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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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도 가는 길에 바라본 망주봉과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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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풍광이 썩 괜찮지만, 썰물 때라 바닷물은 똥물 수준. 도저히 다리 담구고 물장구치면서 놀 엄두가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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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왜 찍었지? 갈매기야 뭐라고 말 좀 해다오. 

선유도는 아름답지만 멀리 볼 때나 그렇고... 해변은 별로...

큰 섬이라 그런지 한전에서 발전기를 설치해 놓았다. 해수 담수화 시설도 있다. 이왕이면 태양광 발전 플랜트도 만들어 놓으면 좋을 껄. 고군산군도에서 새만금 방파제까지 거리가 얼마되지 않는다. 곧 있으면 새만금 방조제와 붙어있는 신시도에서 무녀도/선유도 사이를 왕복하는 배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안면도나 선유도에 와서 느낀 점은, 두 섬이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는 옵션이 되기에도 멋쩍을 정도로 별 볼 일 없는 섬들이다 정도? 또는, 이런데 와서 별 잔 정이 느껴지지 않는(타협 불가능한) 바가지에 시달리느니, 사활을 걸고 관광 사업에 매달려 바가지를 조직적으로 뿌리 뽑은 제주도에 가는게 낫다.

두 섬에서 관광객을 상대하는 장사꾼들의 악명이 특히 높았다. 나야 삐끼 천지인 곳들을 워낙 돌아다니다 보니 그런 것에는 가치 중립적이다. 장사꾼의 악명은 이유없이 확대 과장되는 것이 보통이고 사람들이 제 돈 들여 부러 관광지를 찾아와서 갈망하는 것은 좋은 서비스와 사람 냄새나는 친절과 환대인데, 그 환상이 깨지면 악다구니만 남는 것이지 싶다.

섬 사람들 인심이 박해진 것이 어디 섬사람들이 원래 악당이라서 그랬겠는가 하겠지만 이건 마치 '경제학 콘서트'에서 중고차 시장에 왜 좋은 차가 안 나오는지 설명하던 부분과 같아 보인다 -- 시설이나 서비스가 가격에 비해 현저하게 질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아니 미친듯이) 섬을 찾아오기 때문에 공급과 정보를 쥔 측이 주도권을 가지게 되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서비스와 제품으로 이윤을 최대화하려고 시도한다.

수요가 줄어도 이 현상은 거듭 반복된다. 예를 들자면, 성수기에는 수요가 충분해 얼마든지 관광객을 뜯어 먹고, 비수기에는 비수기니까 관광객 한 명을 끝까지 정성스럽게 삥 뜯어 먹는다. 비수기에 숙소 가격은 떨어지지만 음식료 및 서비스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가격은 그대로고 음식료/서비스의 품질만 오락가락한다. 내키는 대로 해주면 그만이니까. 정보와 서비스의 공급을 쥔 쪽은 이쪽이니까. 서비스 프로바이더로서 점점 노련해진 섬 주민들이 간혹 생색이라도 내면 수요자는 양질의 서비스에 기뻐 날뛰지만 사실은 조삼모사다. 비용이 결국 같으니까. 선유도의 민박집은 어느 집이나 '수퍼, 낚시배 출항, 자전거 대여, 그런데 바지락 캐는 호미는 공짜' 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야말로 마음을 다잡는(옥죄는) 완스톱 토탈 솔루션인데 섬 주민이 노련해졌다는 증거라고  본다.

선유도와 안면도는 그 점에서 조금 다르다. 가격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숙박시설이 있는 선유도와 달리 안면도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고 길도 뻥뻥 잘 뚫린 비교적 큰 섬이라 차를 몰고 얼마든지 섬에 들락거릴 수 있으므로 공급자가 '토탈솔루션'으로 정보의 독과점을 통해 가격협상력의 우위를 가지기 어렵다. 그래서 팬션만 죽어라고 발달했다. 언제든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려면 숙박시설의 품질을 높이는 수 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이지 싶다.

선유도가 자전거 타기 좋은 섬이라고? 아니, 선유도에서 자전거 하이킹은 꼭 해볼만한 액티비티라고? 글쎄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두 발로 걸어서 세 섬을 오락가락하기 불편하니까 자전거 대여가 사업이 된 것이다. 수요가 공급을 견인한 것이지 공급이 친환경 어쩌구로 계획적으로 자전거를 미리 도입한 것 같지 않다. 자전거 도로나 자전거 통행에 필요한 편의시설의 질이 낮은 것이 그 반증이다. 해수욕장 부근을 제외하고, 울퉁불퉁 대충 만들다 만 콘크리트 도로에 해안의 아름다운 풍광이 잡목숲으로 가려져 있다. 아래 동영상 보면 느낌이 올 것이다.

안전 펜스는 설치되어 있다. 오른쪽 잡목숲을 잘라내고 길가로 나무숲 터널을 만들어 놓으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자전거 하이킹 코스가 된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땡볕이 내리쬐는 밋밋한 시골길이 되어 버렸다.

현명한 소비자라면 관광 산업이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부질없는 환상과 타협하지 말고, 적당한 가격에 질 좋은 풍광과 풍광을 더더욱 감칠맛나게 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즐기기 위해 , 쓸모있는 정보를 얻어 나은 대안을 찾던가, 기대 수준을 낮춰야 할 것이다. 난 너무너무 현명해서 가끔은 즐거운 관광이란 대의명분을 잊고 멍청해진 나머지 이런 섬에서 식사 한 끼, 맥주 한 잔 조차 하지 않은 채 무더위에 수도승처럼 자전거 타고 뺑뺑이를 돈다.

섬에서 서비스를 사지 않으니 마음 편하고 좋다. 시시한 서울 강변로 달리는 것보다 배경을 바꿔 바다를 보며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는게 즐겁고 기쁘다. 만족스럽다.

여기저기 자전거로 돌아다니다가 더 돌아다녀봤자 볕만 따갑고 재미는 없을 것 같아 대장도의 장자봉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왠지 전망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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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봉 오르는 길. 전망이 그럴듯하다. 나는 회 먹고 하룻밤 즐겁게 보내러 온 것이 아니라,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며 이런 것을 보고 싶어 왔다. 어디 가서 이런 걸 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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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메바위는 나무숲에 가려 잘 안 보이고...  멀리 모래 퍼다 부은 해변이 어렴풋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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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봉 정상에서 바라본 장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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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기타등등 고군산군도. 아... 시원스럽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오르니 힘들다. 등산객들이 꽤 많다. 대부분 전라도 사람들이다. 전망은 아주 좋다. 선유도의 모든 산에 올라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지만, 주말은 다 끝나가고 나는 아침 배를 놓쳤다.

어제 군산시내 Emart에서 구입한 빵과 오미자주, 쵸코바 따위를 점심으로 먹었다. 선유도에 들어와서도 워낙 현명한(?) 소비자이다 보니 풍광은 즐겨도 선유도에서 뭘 사먹을 생각은 없었다. 샤니 런치팩 블루베리&밀크는 emart 가격이 980원 밖에 안하는데 열량이 무려 330kcal나 된다. 국순당에서 나온 오미자주도 맛이 그럴듯 하다. 바닷바람을 쐬면서 정상에서 아름다운 섬 풍경을 바라보며 호젓하게 점심을 먹고 약주를 곁들이니 살짝 알딸딸한게 꽤 기분이 좋다. 정상에 올라온 사람들과 기분좋게 인사를 주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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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샤니 런치팩 블루베리&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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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순당 명작 오미자 포터블 버전(75ml). 14도로 그리 달지 않으면서 맛있다. 양이 딱 포도주 반 잔 분량인데, 오미자 와인이라 불러주마. 집에 잔뜩 쌓아놓고 하루에 한 병씩 가볍게 마시고 싶다. 별 안주가 필요없다.

점심 먹고 느긋하게 산을 내려왔다.  볕이 강하지만 해풍 덕에 크게 더운줄 모르고 돌아다닌다. 하지만 바람이 안 부는 곳은 무척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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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 줄 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관광카트. 삐끼 아저씨 말에 따르면 선유도의 70%가 산악이라서 자전거 몰고 다니기는 힘들고(헛소리!) 오토바이도 좋긴 하지만(시간당 3만원? ), 카트를 타면 관광 안내를 받으며 즐겁게 섬을 돌아다닐 수 있단다. 선유도, 장자도, 무녀도를 걸어서 다니기는 힘들고, 적어도 자전거(시간당 3천원)나 오토바이는 타야할 듯. 선유도 및 인근 섬을 다합쳐 도로 길이는 약 22km.

14:40 선착장으로 돌아와 돌아가는 배편을 알아봤다. 15:30 옥도페리가 출발한다. 날 더운데 자전거 몰고 돌아다니려니 지친다. 표 산 다음 남는 시간에 무녀도 둘러보려던 것은 관뒀다. 가봤자 서해 똥썰물 밖에, 별 것 없을 것 같다. 군산항 배편을 구입한 다음 근처 수퍼에서 8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뭍 수퍼보다 백원 비싸고 할인마트보다 55% 비싸다.

앉아서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구경했다. 주말에는 관광유람선 타고 오는 것이 정기배편을 타고 오락가락하는 것보다 나아보인다. 군산에서 떠나는 관광유람선은 군산항이 아니라 군산회타운 근처의 유람선 선착장에서 오고가는 것 같은데(지나가다 얼핏 보았다) 단체 손님만 받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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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선착장 주변은 온통 이런 패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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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 근처에서 조개/바지락을 낚아 끌고 오는 몹시 실용적으로 보이는 배. 어마어마한 조개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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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배는 더 실용적인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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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페리에서 바라본 낚시꾼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한국의 바닷가에서 낚시꾼은 ubiquitous한 존재인데, 도저히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곳에서조차 종종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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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산업단지에서 맥없이 돌고 있는 풍력 발전기. 참 기운 없어 보인다.

GPS 전지가 거의 닳았다. OSM에서 작업하려고 페리 루트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GPS를 계속 켜 두었다.  앉을 자리가 없어 바람 맞으며 선상 난간에 기대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새만금 방파제가 보인다. 요즘은 군산시와 인근 시가 새만금 간척지를 두고 땅따먹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17:00 군산항 도착. 스트래칭 하다가 무릎이 뱃전에 부딫혀 까졌다. 피 봤다.

바람을 등지고 시내로 돌아가는 길에 해망굴을 통과. 일제시대에 뚫은 터널인 듯. 대마도에서 보곳하던 종류다. 해망굴 옆으로 월명공원 입구가 있었다. 올라갈까 하다가 관뒀다. 일단 배가 고파서 밥부터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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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굴 맞은 편 미장원.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미장원을 운영하셨을까? 미장원 안에서 할머니가 마늘을 까고 있다. 손으로 쓴 글씨가 힘있고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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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굴. 일제시대때 일본군이 판 땅굴. 장항에서 해변도로를 따라 군산까지 오면서 느낀 거지만 군산항이 항구로서 정말 끝내주는 것 같다. 항구가 너무 끝내줘서 일제의 수탈 사업에 조금도 차질이 없었을 것 같다.

근처 편의점에서 AA 2개들이 건전지를 구입해 GPS에 갈아 넣었다. 무려 2550원이나 한다. 어쩔 수 없이 전지를 사야 했지만, 환경에 좋지 않은데다 비싸서, 건전지 사 쓰는 것은 어느 모로 봐도 바보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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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션에서 76000원에 판매하는 이런 풍력 발전기를 자전거에 달 수는 있는데, 값도 비쌀 뿐더러 실용적일지 의문. 사진을 무단 복제하면 안되지만 장사에 도움되는 것이니 이해해 주겠지 -- 옥션에서 '풍력발전기'로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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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rt 건너편 철로변에 늘어선 집들. 집 맞은편은 화장실이라고 하더라. 야밤에는 나름 스릴 넘치는 볼일이 될 지도. 남들 사는 모습 찍는게 미안하다. 레바논에 있을 때 건물에 난 총탄 자국을 호들갑을 떨며 구경하는 관광객과 달리 사진 찍는 것을 다소 불편하게 여겼다. 사진 폭력 뿐만 아니라 사진으로 '강조'된 풍광도 좋아하지 않았다. 블로그 사진으로 보는 음식 사진에 대개의 경우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차라리 공기중에 촐싹거리며 나풀거리는 언어를 믿고 말지. 풍광이 충분히 아름다우면 빛으로 환상을 빚어내지 않아도, 보기에 썩 좋다.

군산 오기 전에 군산에 가면 간장게장 백반을 3000원에 먹을 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호기심이 동해 부러 찾아본 집이 청기와아구찜집이다. 자전거로 그 지점을 찍고 찾아갔다. 일요일이라 군산 시내가 한가하다. 옷집이 몰려있는 시내 중심가에만 젊은이들이 돌아다녔다. 올해 유행한다는 치마바지를 입고 다니는 여자애들도 눈에 띄었다. 지역 사회 인프라 확충은 별로라도 옷 유행만큼은 어느 지방 도시나 거의 광속이지 싶다.

주택가에 위치한 청기와아구찜집 근처에는 생선구이 파는 고궁식당과, 진미식당을 비롯한 군산 3대 백반집이 모여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청기와아구찜집에 들어가서 혼자 3000원짜리 게장백반을 시켜 먹는게 미안하지만, 일인분이라도 서비스가 잘 나오면 정말 괜찮은 집인 거다. 3천원 짜리 치고는 많이 푸짐하지만 간장게장은 그저 그랬다. 되려 된장국이 맛있다. 게장에 밥 비벼먹고 된장국을 뜨는둥 마는둥 하며 적당히 먹고 나왔다.

버스 시간이 여유가 있어 일제 시대에 지어진 건물 몇 개를 구경했다. 마음 같아서는 해망굴이든 히로쓰 저택이든 구군산세관이든 다 밀어버렸으면 좋겠다 싶었다. 내가 비록 집 없는 설움, 나라 없는 설움을 직접 경험하진 못했지만 나를 비롯한 후세가 영혼을 잃었던 일제 시대를 기억하기 위해 그것들은 보전되어야 마땅하다.

저녁을 먹었음에도 배가 고프다.  군산회타운 근처의 유명 식당인 쌍화반점에 들러 짬뽕을 주문했다. 면발이 여늬 중국집과 다르다. 잔맛없이 생생하달까? 다른 해산물은 일체 없고 야채와 싱싱하고 쫄깃한 바지락만으로 낸 빨간 국물맛도 특이하다. 조미료가 없다. 무척 담백한 맛이 난다. 별로 맵지도 짜지도 않은 짬뽕이 마음에 든다. 다 먹고 보니 바지락이 산을 이뤘다. 짬뽕이 아니라 매운 바지락 쫄깃 칼국수랄까. 썩 괜찮은 식사였다.

아이 줄 앙금빵이나 사갈까 싶어 60년 동안 가게를 운영했다는, 유명 빵집인 이성당에 들렀으나 일요일이라서인지 문을 닫았다. 시내를 빈둥거리며 자전거를 몰고 돌아다니다가 고속 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표를 샀다.

19.40 출발. 천안 근처와 기흥 부근에서 잠시 막히고 3시간이 걸려 서울에 도착. 22:40분 자전거 몰고 집에 갈 생각을 하니 아득해서 자전거를 들고 지하철에 올랐다. 승객들이 많으면 자전거를 지하철에 싣기가 죄스러웠을 것이다. 집에 도착하니 23:20, 아내에게 미리 전화해 치킨과 생맥주를 시켜놓았다. 샤워하고 그것들을 먹고 마셨다.

군산에 가면, 군산맛집이란 곳에 들러 서울에서 보통보다 조금 잘 하고 저렴한 식당에서 먹는 것 보다는, 차라리 횟집에 들러 화끈하고 배 터지게 먹는게 나아 보인다 -- 혼자 주행하다 보니 제대로 된 횟집에서 먹기는 뭣하다. 8층짜리 휘황찬란한 군산횟집의 일 층 전체가 광활한 수족관이었다. 그렇게 큰 수족관이 있는 식당은 처음 봤다. 그래서 '군산횟집'이구나. 그래서 군산에는 군산횟집이 있는 거구나. 회타운의 실비집은 아마 '다찌집'인 것 같다. 그런데도 가보고 싶은데 혼자라는게 이럴 때 참 아쉽다.

GPS에 최근 작업한 지도를 넣고 다녔는데 쓸모없는 행정구역 이름이 너무 잘 보이고 쓸모있을 POI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개선이 필요하다. 등고선과 도로 데이터는 잘 맞았다. draw order가 잘못 되어 지형도가 다 나타난 다음에야 도로와 경로가 보인 것이 아쉽다.

주행 데이터:

집->센트럴터미널: 22km
서산->찜질방: 4km
찜질방->안면도 입구 굴밥집: 22.5km
굴밥집->안면도 영목항: 42km
대천항->군산: 62.4km
군산시내: 16.3km
안면도: 15.5km
군산시내: 20.5km
총 216.3km.

주행경로 중 어려운 곳이 없다. 고저차는 50m 이내이고(거의 평지), 북->남으로 이동 중 꾸준한 서풍 때문에 바람의 영향이 적었다. 대부분 갓길이 별로 없는 1차선 국도를 주행했다. 지방도  구간 대부분에서 차가 별로 다니지 않아 비록 갓길이 적어도 교통 흐름에 크게 방해되지 않았을 것이다(희망사항).

트랙로그 및 일정/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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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정 및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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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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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 자전거 여행 경로

변산반도는 서해-남해-동해로 이어지는 한 달 가량의 자전거 여행 중 지나치게 될 코스였다. 원래 계획은 한 달 짜리 자전거 여행이었다가 일주일 단위로 끊어 각각 서해, 남해, 동해로 나누었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되어 어쩌다 보니 변산반도만 떼어내 1박 2일 코스로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지난 3년의 이력이다. 잊어버리자.

17:30 집에서 출발. 내일 날씨가 맑단다. 18:45 강남 터미널 도착. 부안행 표를 끊었다. 버스는 천안을 조금 지나서 기름이 떨어져 차가 멎었다. 고속도로 갓길에 세운 버스를 살려보려고 갖은 애를 쓰던 기사 아저씨는 용케 시동을 다시 거는데 성공했다.

부안에 도착하니 11시 20분. 날이 쌀쌀해서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GPS를 켜고 뉴부안 찜질방에 갔으나 내부 공사 중, 5월 10일 이후 재개장한단다. 건강나라 찜질방으로 갔다. 작은 찜질방에 사람들이 꽤 북적인다. 여기저기서 경상도 사투리가 들린다. 전라도에서 전라도 사투리나, 서울 사투리가 아닌 경상도 사투리를 듣다니 무척 신기하다.

자리를 잠시 비워 담배 한 대 피우러 갔다 온 사이 누군가 내 자리를 차지했다. 자리가 없어 여기 저기 헤메다가 불편하게 잠들었다. 보통 새벽 2-3시에 잠들곤 하는데 12시부터 자려니 적응 안된다. 1시쯤 잠들었다. 8시에 깼다. 기분나쁜 꿈을 꾸었다. 샤워하고 찜질방을 나왔다. 전날 밤 살짝 비가 와서 체인이 떡졌다. 날이 흐리다. 오늘은 OSM 지도+지형도를 GPS에 넣어 처음으로 주행하게 된 날이다. 도로 윤곽이 희미해서 OSM으로 가민용 지도를 만들 때 신경 좀 써야겠다.

아담한 부안 시내의 할인 마트에서 빵과 우유를 샀다. 370kcal, 170kcal. 사실 빵, 우유 대신 백합죽을 먹을 생각이지만 가는 길에 백합죽 전문이라는 계화회관이 안 보이면 이걸로 점심까지 버틸 생각이다. 빵과 우유를 마트앞 벤치에서 먹어치우고 천천히 자전거를 몰아 부안 시내를 빠져 나갔다. 해가 안 떠서 날이 차갑다.

변산반도를 애두르는 30번 국도만 따라가면 된다. 길이 무척 쉽다. 부안 경찰서를 지나자 계화회관이 보였다. 빙고. 백합죽을 시켰다. 7000원 짜리 죽은 꽤 맛있지만 양은 좀 적은 편. 맛이 썩 좋았는데 맞은편의 경상도 가족은 '이건 약이야' 하면서 감탄한다. 나도 대충 만족하고 패달을 밞아 새만금으로 향했다.

부안

지나가다 민가 사진 한 장 찍었다. 폐가인지 사람이 사는지 잘 모르겠다.

지나가다 삐삐 인형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소방서 옆 가게에서 성인용품을 판매한다는 전단지가 전봇대마다 붙어 있었다. 일없는 겨울밤 놀고 있을 농촌 총각을 겨냥한 타깃 마케팅일까? 친환경 에너지 생산단지 인지가 새만금 뻘 근처에 건설되는 것 같다. 내가 알기로 군산에 소위 친환경 에너지 설비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다.

길이 참 편하다. GPS의 지형도를 봐도 고도차가 거의 없는 꾸준한 평지가 해변까지 이어진다. 새만금 전시관에 이르기 전 언덕에 오르니 새만금이 잘 보이는 곳이 있다. 어젯밤 찜질방에서 본 경상도 가족에게 새만금에 관해 아는 것도 많은 내가 침튀기며 설명해 줬다. 그 가족은 어젯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내 자리를 차지한 가족이었다.

새만금

이제 썩어가는 갯벌에서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백합에게 안녕을 고해야 한다.  이미 막은 뻘을 다시 살리기 위해 수조원이 투입된 공사를 되돌리기엔 늦었다 -- 이건 내 관점이다. 뼈저린 실수겠지만 새만금 방조제를 쌓을 당시엔 정치가나 일반 대중이나 생존에 바빠 장래 생태계가 어찌어찌될 것이라 예측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땅을 메워서 농지와 택지를 만든다는 그 계획이 꽤 그럴싸해 보였을 것이다.

새만금 방조제

전날밤 전주 뉴스에서 새만금 방파제 안쪽의 선박 소유주에 대한 보상이 시작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새만금 전시관에서 방조제 공사가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공사였는지 떠벌리는 비디오를 보았고 장래 그곳에 해양 레저와 친환경 어쩌구가 들어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방조제 길이 일반에게 공개되었을까? 모르겠다. 아직 군산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변산 해수욕장

고개를 몇 개 넘자 변산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아직 해가 안 떠 썰렁하다. 요즘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잘 맞는 편이라 그걸 믿는다. 백합 껍데기가 모래밭에서 군데군데 보였다.

변산 해수욕장

바닷가에서 캔맥주 쳐먹고 빈 병 버리고 가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종류의 사람들일까? 내 동포, 내 형제, 내 이웃이다. 그러니 주워서 버리고 갖은 욕설이나 마저 하자.

변산 해수욕장을 지나 30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고사포 해수욕장으로 빠지는 해안 도로로 방향을 바꿨다(우회전했다).  고사포 해수욕장을 지나쳤다. 고갯마루에 오르자 하섬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바로 나타났다.
하섬

하섬. 썰물 때면 육지와 섬이 연결된다. 물 때가 안 맞아 오늘 조개 따기는 글렀다.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이곳 해안에서 물이 빠지는 깊이가 대략 50cm 정도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바다처럼 보이는 저 곳을 걸어서 건너갈 수도 있겠다.

30번 국도

해변을 따라 고저차 30~40m 내외의 고개가 연이어 이어지는 해안 도로다. 변산반도를 반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는 터라 해안 도로의 우측 차선이 바다와 맞닿아 풍광이 좋다. 해가 뜨지 않아 덥지도 않고 기분좋은 측풍(시속 3~4m 가량의 서풍)이 불어와 땀이 거의 안 나와 라이딩이 무척 상쾌하다. GPS의 기압계를 보면 날씨는 점점 좋아질 것이다.

적벽강

하섬을 지나고 얼마 안가 적벽강에 이르렀다.
적벽강

사암, 세일로 보인다. 이암도 있는 것 같다. 산화철 때문에 색깔이 다른 부분. 단애가 별로 특이해 보이지 않지만 그 깊이가 상당하다.
적벽강

아직 물이 덜 차올라 저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적벽강

바닥. 설마 퇴적암 뿐일까? 밑에는 아무래도 화강암이 있을 것 같은데.
적벽강

책처럼 켜켜이 쌓인 층. 망치로 두들기면 부서진다. 언제 형성된 것인지 알고 싶은데, 쓸만한 안내문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내가 못 찾은 것일께다. 이거 애들 교육용으로 아주 좋은데. 어디가서 이런 규모로 보기 힘든 지층이기도 하고....

젹벽강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적벽강이 있는 곳은 자갈 해변으로, 떨어져 나간 셰일 덩어리가 조석에 의해 닳고 닳아 얇고 귀여운 판석을 만드는데, 각기 다른 퇴적층에서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색색이 조약돌을 이룬다. 해가 뜨거우면 바닷가에 들어가 물장구나 치면 좋으련만...

적벽강을 뒤로 하고 채석강으로 향했다.

채석강

채석강도 적벽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스러지기 쉬운 셰일과 이암 따위의 켜켜이 쌓인 퇴적 층이 해식에 의해 떨어져 나가고 마모되면서 해수욕장에는 조그맣고 반질반질한 조약돌들이 널렸다. 사람들은 떨어져 나간 판석으로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원탑을 쌓았다.

채석강: 적조

채석강에서 뜬금없이 적조를 보았다.

채석강

고개를 쳐들자 나타난 습곡. 요르단의 알 카즈네에서 더 멋지고 알록달록한 것들을 봐서인지(안데스에서도 마찬가지) 멋있어야 할 이것이 좀 시큰퉁... 하지만 세월과 연흔에 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지질학자는 층층마다 꽤 자세하고 재밌는 얘기를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지질학자에게 부탁해서 표지판을 하나 만들어 세워주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가 자식들 데리고 와서 멍청하게 바위만 쳐다보게 만들지 말고. 모처럼 바닷가에 왔으니 백합죽이나 회를 배불리 먹고 돌아가는 거야 기본이지만.

채석강

달팽이로 추측되는 것들이 진흙 바닥에 새긴 궤적. 척벽강과 채석강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참, 그러고 보니 적벽강이나 채석강의 퇴적층에서 화석 비슷한 것을 보지 못했다.  벌써 다 파갔나?

채석강

업자가 관광용 땅굴을 판 것이 아니라면 저건 해식동굴일텐데 그 위에는 '청상어횟집'이란 처절한 난개발의 흔적이 돋보였다. 개발을 하려면 제대로 하던가, 변산반도 오는 길 내내 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다. 어설프게 대충 되는대로 개발하다가 죽도 밥도 안되어... 내가 뭐라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보고 있으면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욕지기가 나왔다. 채석강, 적벽강에 관한 관광 지도의 설명은 '중국에 그 비슷한 것이 있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 꼴사납고 바보스러운 얘기 뿐이다.

채석강이 있는 격포 해수욕장이 변산반도에서 개발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관광지같다. 근처에 군산식당이란 곳에서 점심을 먹을까 했지만 아침을 9시에 먹고 12시에 여기 도착해서 점심 먹기가 뭣해 내소사 부근이나 곰소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전라 좌수영으로 향했다.  고저차 70m의 짧은 오르막길을 헉헉거리며 올랐다. 불멸의 이순신을 촬영지인 전라좌수영은 분위기가 그럴듯했다. 가까이 가서 벽을 두들기면 얇은 베니어판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 놓은 것이지만. 수십차례 촬영할 꺼면(불멸의 이순신을 안봐서 어떤 드라마인지 모른다) 이왕 만드는 김에 제대로 좀 만들지 싶었다 --  그러기가 쉽지는 않겠지.

전라좌수영

앉아서  바람을 쐬며 쉬었다. 분위기가 참 좋다. 그늘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한잠 잤으면 좋겠지만, 여차하면 무너질 것 같은 세트장이다 보니 기댈 자리가 마땅치 않다.

다시 패달을 밟았다. 30번 국도변에 있는 조각공원과 촬영장은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전라 좌수영 아래쪽에 있는 분위기 좋은 궁항을 지나고 상곡 해수욕장을 지나 다시 30번 국도와 만났다.  해가 떠서 날이 점점 더워진다.

모항 해수욕장

모항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항 해수욕장.  여기까지 네 개의 이름있는 해수욕장과, 여기 저기 쉬기 좋은 해안을 여럿 지났다. 흡사 제주도 남서부처럼 아기자기하고 썩 괜찮은 해변이다. 아침나절부터 날씨가 좀 괜찮았다면 해변에서 놀다 갔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모항 해수욕장도 그냥 지나쳤다.

햇볕이 따가워 강도처럼 버프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작년에 사서 한 번도 쓰지 않았던 팔 토시를 착용했다. 여자들이나 입는 낯 간지러운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전거 타려고 쫄바지 입고 다니면서 안 그래도 남의 눈 신경쓰지 않던 패션,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신경 쓴다는게 뭣하지 싶어 맨살에 달라붙는 팔 토시를 과감하게 착용했는데 통풍 잘 되고 햇볕 차단이 잘 되서 상당히 만족스럽다. 진작부터 팔 토시 입을 껄 그랬다.

모래밭이 깔린 해수욕장은 모항 해수욕장이 끝이다. 그 이후로는 주로 갯벌이 나타났다. 어쩌다보니 내소사로 들어가는 삼거리를 지나쳤다. 내리막길에서 한창 가속이 붙어 있는 자전거를 다시 되돌리기가 뭣해 그냥 지나쳐 버렸다.  내소사 가는 길에 캠핑 사이트도 있고 산장도 꽤 여럿 있다. 텐트 들고 장기 여행 중에는 하룻밤 자기 좋지 싶다. 아참, 절 통행료가 있지!

곰소 갯벌

곰소로 가는 길에 본 갯벌

내소사를 지나쳐 버리니 곰소까지 금새 다달았다. 곰소가 외변산 관광의 마지막 지점이다.  곰소에서 밥 먹기로 했으니 밥집을 찾았다. 곰소를 두 바퀴 돌아봤지만 젓갈 백반으로 유명한 '곰소쉼터'는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시장통의 조그만 식당에 들어가 백반을 시켰다. 찬 9가지에 된장국을 5천원에 내온다. 젓갈 3 종류가 식탁에 올랐다. 비싼 식사보다 차라리 이런 허름한 식당에서 백반 시켜 반찬 종지까지 박박 긁어먹는게 어쩐지 취향에 맞는다.

어젯밤 찜질방에서 봤던 사람들을 곰소에서 다시 보았다. 찜질방에서 하룻밤 자는 사람들 중에 유난히 경상도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희안하게도 광주나 목포, 전주 등 인근 지역 사람들보다 경상도 사람들이 유독 변산반도 관광 내내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았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젓갈이나 사갈까 물으려다가 관뒀다. 들고 가기 귀찮다. 곰소에서 난 천일염이 그렇게 좋다면 젓갈 뿐만 아니라 된장, 간장, 김치도 다 맛있을 것이다. 사려면 소금을 사야할텐데, 소금을 푸대 단위로 파는 것 같아 그것도 관뒀다.

곰소항

곰소항에서 소화도 시킬 겸 하릴없이 놀았다.
곰소항

...
곰소항

도시 비둘기처럼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갈매기도 구경하고...

곰소 염전

곰소를 빠져나오자마자 염전이 보였다. 염전 맞은 편에 '곰소쉼터' 식당이 보였다. 한참 찾을 땐 안 보이더니만...

등짝에 와닿는 햇볕이 상당히 따갑다. 전진속도와 뒤에서 밀어주는 미풍이 서로 상쇄되어 달리는 길이 거의 무풍 상태라 더 덥게 느껴지는 것 같다. 부안으로 되돌아가는 23번 국도가 나타날 때까지 쉼없이 달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갈림길에서 그늘이 드리운 버스 정류장을 찾아 자전거를 세우고 쉬었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국도변 버스 정류장만큼 좋은 휴식처도 드물다. 잠시 쉴 뿐만 아니라 비를 피하거나 낮잠을 즐기기에도 좋았다. 그런데 여긴 개미떼가 바글거린다. 3면이 막힌 버스 정류장 대신 보도에 털썩 주저 앉았다. 시원한 서풍이 땀을 식혀 주었다. 10분 쯤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고 시원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했다.

좀 바보같은 짓이지만 선운사 쪽으로 빠지는 고창 부근까지 가서 정읍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이가 내일까지 아플 것 같으면 선운사로 가 민박에서 하룻밤 자던가 내장산 국립공원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정읍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아내에게 아이 간병을 맡기고 나만 재미있게 놀러 돌아다니는 것이 도리가 아닌 것 같아(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았던 개마초 남성 중심 사회가 그립다) 오늘 중으로 집에 돌아갈 생각이다.

부안에서부터 이어지던 기나긴 유채꽃 길은 고창 교차로 앞에서 끊겼다. 외변산 길은 자전거 타고 다니기에 꽤 기분좋은 길이다. 갓길도 30~50cm로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고 팔을 스치는 유채꽃이 마치 마라토너를 반겨주는 시민처럼 정답게 바람에 흔들린다. 이 지점에서 정읍까지는 약 16km. 등짝에 쏟아지는 오후 햇살을 받고 뒤에서 밀어주는 선선한 미풍을 타고 쉬지 않고 정읍시까지 달렸다.

친구가 예전에 그런 말을 했다. 아직까지 새마을기가 펄럭이는 도시는 도시가 아니라 촌락(village)이라고. 정읍시에 들어서자 마자 수많은 새마을기가 펄럭였다. 장관이다. 친구와는 견해가 좀 다른데, 아마 시청 구석에 열박스쯤 쌓여있을 새마을기를 딱히 처치할 방법이 없고 도심에 남는 깃대는 많으니 되는 대로 꽂아놓은 것이지 싶다. 근 2년 지난 현 정권과 새마을기는 어쩐지 어울린다.

9시에 부안에서 출발해 17시 경 103km를 달려 정읍에 도착했다. 평속은 꾸준히 20kmh를 유지했지만 여기저기 쉬엄쉬엄 놀다가 오느라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정읍 시내에 들어서자 마자 식당부터 찾았다. 시청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수석영양돌솥밥'이 있다. 6천원 짜리 식사를 시켜 먹었다. 꽤 괜찮았다.

6시 강남 터미널행 고속버스를 탔다.  3시간 걸려 서울에 도착. 버스에서 한 시간쯤 눈을 붙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잠수교는 왜 찍었지? 아마 오세훈 시장 욕 좀 하려고 찍어뒀던 모양. 기분 좋은 날인데 그건 나중에.

터미널에서 집까지 꾸준히 패달을 밟았다. 어젯밤과 오늘밤 고속버스 터미널을 왕복한 거리는 46km, 변산반도에서 주행한 것을 더하면 148km를 달린 셈인데  기운이 남아 돌았다. 내 저질체력을 여태까지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것일까? 아무래도 세 끼를 꼬박 잘 챙겨 먹고 비교적 평탄한 도로를 바람을 등지고 달린 덕분인 것 같다.

집에 도착해서 치킨에 캔맥주 두 개를 먹고 마셨다. 몸이 그것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별로 피곤하지 않아 평소처럼 오전 3시30분에 잠들었다.

주행 전에 날씨와 기온, 풍향, 풍속 따위를 검토했다. 알아도 주행에 도움이 된다, 안된다 말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천상 기술자다 보니 데이터는 항상 쓸모가 있었다. 하루에 겨우 124km 달린 것으로 생색 내기는 뭣하지만, 예전에 변산반도 해안도로와 유사한 90km 가량의 동해안 도로를 달릴 때의 체력과는 비교가 안되는 그간의 질적 향상이 있었다. 주행 중간에 많이 쉬어서 그런 것인지도.

1-3 기어의 재발견: 이전 변속 패턴: 3-6, 2-6, 2-4, 2-2, 1-2. 이번 변속 패턴: 3-6, 2-6, 2-4, 1-3, 1-2. 경사도가 고만고만한 고갯길에서 1-3 기어로 케이던스를 2/3로 떨구고 약 8.3kmh 속력을 유지하면  별로 힘이 안 든다. 왜 유독 그 기어비에 그 속력에서 힘이 덜 들었는지 나중에 다시 테스트해 봐야겠다.

OSM GPS 지도는 지형도가 꽤 유용했다. 앞으로 가야할 고갯길이 몇 개이고 어느 지점에서 쉴까 흘낏 쳐다보는 정도의 유용함이니 다른 사람들에게 굳이 떠들만한 것은 못 된다. 그런 거 없어도 잘들 자전거 타왔다. POI가 보이는 zoom level의 조정이 필요해 보이고 도로 폭이 좀 넓게 렌더링되었으면 좋겠다 정도 나중에 개선할 것들도 알았다.

트랙로그와 SportTracks로 경로 분석을 해보니 상당히 유의미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안장 높이 조절하지 않고 20km 달린 구간의 평속은 조정후 달린 속도에 비해 1.7kmh가 떨어진다.

짧은 코스를 돌다보니 교통비와 숙박비가 아깝다. 전라도에 간 김에 밥만큼은 잘 먹자 해서 밥값으로 쓴 것은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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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에 깼다. 황씨가 피곤해 보여 6시에 깨웠다. 날은 흐리고 쌀쌀하다. 아침은 누룽지 탕과 어제 먹다 남은 스팸 반 통. 구수한 누룽지탕을 먹고 핫초코를 끓여 마시니 속이 따뜻하다. -- 이런 음식으로 배가 찬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원래는 2박 3일 동안 종주하려고 했으나, 어제 저녁에 종주 일정을 하루 단축해서 1박 2일로 수정했다. 그야 오늘 상태를 봐가면서 하기로. 황씨가 의외로 기운이 넘쳐 가능하지 싶다.


아침 먹고 출발 준비 중. 배낭에 마누라가 준 종을 매달고 딸랑거리며 다녔다. 곰의 습격을 방지해 준다나?

어제, 오늘 외국인을 네 명 보았다. 지리산 종주 코스가 외국인들에게도 알려졌다는 것이 신기하다. 사진 뒷편의 두 노인네는 트레일중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꾸준히 만났던 사람들이고 벽소령에서 함께 잤다. 악센트로 봐선 한 명은 독일인이고(독일인들은 산을 잘 탄다. 외국여행할 때 산길에서 늘 독일인들을 만났는데 한결같이 인상들이 좋았다) 그리고  한 명은 영국계같다. 두 노인네가 힘이 참 좋다. 동행하는 젊은 친구에게 짐 다 맡기긴 했지만 노인네들이 힘이 참 좋다고 말하는데 앞서가던 젊은 외국인 친구가 '먼저 가세요'라고 한국어로 말한다. 말조심하자. -_- 하여튼 저 양반들에게 영어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외국인 만나도 왠지 영어 쓰고 싶지 않다.


7:20 짐을 싸들고 선비샘을 향해 출발. 날은 흐리지만 시원한 바람 덕택에 땀이 덜 난다. 황씨는 자기 때문에 뒤쳐진다고 생각해서 미안한지 날더러 앞서 가란다. 황씨 때문에 속도가 안 난다는 생각은 안 했다. 몇 년 전에 비하면 그의 체력이 상당히 좋아졌다.

내가 앞서가봤자 기껏해야 한 두 시간 정도 빠를 뿐. 길이 워낙 좋아서 점심을 먹기로 한 장터목 대피소까지 완샷에 가서 황씨를 기다릴까 하다가 그건 좀 너무하지 싶어 쉬엄쉬엄 황씨 걸음에 보조를 맞추기로. 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좋은 풍광을 즐기러 왔다. 이렇게 한가하게 사진이나 찍으면서.
 
벽소령에서 장터목 대피소까지는 5시간 거리라고 게시판에 적혀 있다. 내 걸음걸이로는 3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셈(게시판에 기록된 평균 주행시간 곱하기 2/3하면 대략 맞는다).

시계의 기압계를 보니 기압이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 벽소령부터 장터목 대피소까지 꾸준히 오르막길이라 고도가 높아지면서 기압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해도 떨어지는 속도가 빠르다. 기압계의 기압 trend를 본 것이다.

해발 1500m에서 지오 포텐셜 고도는 850gpm인데 현재 GPS로 측정된 비교적 정확한 고도는 1620m(오차범위는 +-2m), 기압계에는 대략 820~830gpm쯤 나와야지 싶은데 현재 기압은 830hPa에서 815hPa로 팍 떨어졌다. 딱 비올 날씨 같다.  

지구과학은 상식 정도로만 알고 있어 정확하진 않다. 기압계는 기압차의 변화만으로 날씨 변화를 어설프게 예측할 때 사용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 17만원이나 주고 산 비싼 시계는 조난 상황의 예보 이외의 고도계로는 그렇게 쓸모가 없다. GPS의 altimeter 역시 기압 변화에 따른 고도 변화를 출력해 주는데, 시계의 기압계로 계산된 고도와 GPS 기압계로 계산된 altimeter 사이에 현저한 차이가 있고 GPS쪽이 훨씬 정밀하다. 뭐야 이 시계는?

카시오 솔라파워 나침반+기압계+고도계+온도계는 지금까지의 사용 경험상, 장난감 이상은 아닌 듯. 온도계는 체온의 영향으로 적어도 4-5도의 편차가 생긴다. 고도를 감안해서 현재 기온은 지상이 29C일 때 29-16x0.6 = 19.4C 정도가 나와야 하는데 24C가 나온다. 이 시계의 1년 누적 오차는 무려 5분 가까이나 된다. 50m 짜리 생활방수는 거진 헛소리에 가까웠다. 뭐 상당히 고가인 순토 시계도 그 지경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으니 딱히 할 말 없다.

장터목까지 봉우리 다섯개를 넘어야 한다. 하여튼 쉬엄 쉬엄 사진 찍어가면서 천천히 걸었다. 어제 오늘 GPS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그러다가 버튼이 눌려 두 번이나 꺼졌다. 바지 주머니 말고 배낭 멜빵에 달아둬야 하지 싶다.
 
산길 사이로 살살 빗물이 떨어진다. 장터목까지 얼른 가야겠다.

능선 코스라고는 하지만 울창한 숲 때문에 시야가 제한되어 있어 특별히 '전망좋은 곳(vista point)'라고 할만한 곳이 나타나지 않는 한 장쾌한 전망을 내내 즐기며 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지리산길이 재밌지는 않다. 암릉이 적고 너덜 지대가 많아 발 밑을 조심해야 한다.
 

여행중 트래킹을 수십차례 하면서 1600m의 광경이 그게 그거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마치 말레이지아 정글처럼 습하고(상대습도가 거의 87%) 소똥 냄새 비슷한 것이 난다. 말라죽은 주목과 바윗결에 낀 초록 이끼, 그리고 어두컴컴한 날씨에 간간이 비바람이 숲 사이로 불어와 등산객이 없는 길을 홀로 걸을 때는 괴괴한 기분까지 났다. 사실 나는 그런 귀신나올 것 같은 한적함을 몹시 즐기는 편이다.


그리고 종주 코스 트레일에서 내내 보게 되는 무성한 조릿대.


두번째 온 지리산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축축했다. 축축하고 울창하다. 시선을 분산시키는 다양한 식물군락으로 정신없이 복잡하다.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헬기가 오락가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헬기는 바위 푸대를 나르고 있다. 비 때문에 산길이 자주 유실되어 암석으로 길을 다지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암석 길은 다 좋은데 오래 걸으면 무릎이 아프다. 저간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리산이나 북한산이나 폭신폭신한 흙길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 섭섭하다.

남성적인 북한산과 달리 지리산은 비교적 여성적이다. 암릉도 적다. 하늘을 캐노피처럼 덮은 높다란 나무와 풀로 이루어진 다양한 식생대. 지리산이 백두대간의 마지막 결절로 기억하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전망 좋은 곳에서 땀을 식히며 황씨가 오기를 기다렸다. 배낭 패킹이 엉망이지만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배낭을 자주 싸다보면 요령이 생길 것이다.

길이 비교적 평탄한데다 스틱의 도움으로 상당한 속도를 낼 수 있어 좋다. 이 좋은 스틱을 그 동안 왜 사용 안 했는지 모르겠다. 발이 둘 더 생겨 네 발 짐승처럼 걷는 것이 가능하다. 싸구려 스틱인지라(옥션에서 개당 6900원 주고 구입) 마무리가 좀 어설퍼서 카바이트 팁이 바위에 닿을 때마다 딱딱 소리가 나고 몸체가 부들부들 떨리는 단점이 있다. 좀 사용하니까 굳이 스틱의 사용법을 배우지 않아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몸으로 느끼게 된다. 스틱은 하중의 1/3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내리막길에서는 스틱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어제 본 풍경에서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하다. 외계인 엑소스켈리톤 갈빗대처럼 켜켜이 이어진 산과 골. 골짜기 마다 물이 흐르는 곳을 따라 수백년, 수천년 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세석 산장을 지나치니 슬슬 천왕봉이 시야에 드러난다. 천왕봉 앞에는 널다란 고지 평원, 제석평전이 펼쳐져 있다. 십수년 전에 이것과 똑같은 광경을 빗속에서 우울하게 쳐다보았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은,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심지어 비옷까지 입고 간간히 내리는 빗 속에서 GPS로 앞으로 가야할 길의 궤적을 평가하고 이 광경을 디지탈 카메라에 담으며 즐기고 있다, 는 것일께다. 피로하지도 않고, 다리 양쪽에 생채기 하나 없이 말끔하다.

1600~1700 고지 부근이라 간간이 평지가 드러났다. 드러난 평지엔 어김없이 꽃이 피어있고, 날씨가 맑으면 어김없이 벌떼가 앵앵거린다.


천왕봉이 조금씩, 꾸준히 가까워진다. 오른쪽에 나타났다가 왼쪽에 나타났다가 오락가락하면서.


마녀의 산발머리를 닮은... 남미에서 보던 세이버 나무처럼 생겼다. 죽었다.


이제 고개 하나만 넘으면 장터목 대피소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  사진 중앙에 등산객 둘이 앉아 식사 중인데 잘 안 보인다. 삼도봉에서 본 연인들 같다. 천왕봉에는 구름이 드리워져 비가 내리고 있는 듯 하다.

오후 12:00, 느적느적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 황씨는 20분 후에 도착. 빗발이 거세져서 김치국밥을 끓이다 말고 취사장으로 철수했다. 비를 피해 몰려온 사람들 때문에 금새 취사장이 꽉 찼다. 황씨는 천왕봉 생략하고 바로 내려갈지 묻는다. 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정상에 굳이 올라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리산 와서 천왕봉 안 올라가는 것만큼은 바보짓이다. 더더군다나 황씨는 지리산에 볼거리가 없다고 내내 투덜거렸다. 비가 내리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꼭대기에 가야겠다.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점심으로 김치국밥과 미트볼을 끓여먹고 남은 라면도 마저 끓여 먹었다.  짜다. 천왕봉에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로 마음 먹은 이상 식량을 남길 이유가 없다. 비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내려가는 길이 피곤하고 힘들어진다) 소주 반 병쯤 마셨다. 비가 잦아들었다. 기압 동향을 살펴보니 한 시간쯤 후에는 비가 그칠 것 같다. 배낭을 싸고 비옷을 입었다. 출발.


운무가 낮짝을 간지럽히는 제석평전을 지나친다. 난 카메라 들고 여기저기 찍어대며 룰루랄라 놀고 있지만(술도 한 잔 했겠다) 꾸역꾸역 따라오는 황씨는 힘겹고 피곤해 보인다. 어이 황씨 힘내라고.

 
제석평전의 늪지대? 언제 이런게 생겼지?


제석평전. 말은 룰루랄라 라지만 장터목 산장에서 천왕봉까지 300m를 꾸역꾸역 기어 올라가야 한다. 아침부터 다섯 시간을 걸어와서 밥 먹고 다시 한 시간을 걸어가려니 힘든 것은 당연하지.


제석평전을 지나 통천문으로 가는 길. 천왕봉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어떤 사람은 비옷을 입고, 어떤 사람은 고어텍스 오버 트라우저를 입고 있다. 고어 텍스 할아버지라도 하루 종일 폭우를 맞으면 방수성이 현저하게 저하된다. 그 때는 차라리 천 원짜리 얇은 비닐로 된 비옷이 더 낫다. 그러다보니 트래킹할 때 무거운 오버 트라우저 대신에 가벼운 비닐 비옷을 챙겼다. 몹시 폼이 안 난다는 문제가 있지만.


천왕봉 정상 부근에 이르자 비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


운무가 '춤추는 광경'을 동영상으로 찍었어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네팔 같아 보이기도. 중간에 5000m 급 허연 영봉 하나만 버티고 있으면 이 광경은 네팔이 된다.


천왕봉 꼭대기. 1915m. 저 멀리 진주행 도로가 슬며시 보인다. 맑은 날에는 바다가 보이지 않을까? 부산에서 단체로 온 등산객들이 시끌벅적하게 점심을 먹고 있다. 무척 맛있어 보인다.


장엄한 운무와 코딱지만한 인간. 동영상으로 찍으면 후회했을 것이다. 마음에만 담아두자. 바람이 휘휘 불고 온 천지가 안개와 구름에 휩싸여 있다.


인증샷. 육포를 안주 삼아 정상에서 소주 한 잔 해서 대략 알딸딸. 비도 그치고 끝까지 다와서 기쁘다. 황씨도 정상에 오른 보람을 느끼는 듯.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

15:00가 다 되어서야 천왕봉에서 하산 시작. 증산리로 내려오는 길은 지루하다. 끝없는 돌계단과 미끄러운 바위 때문에 법제사를 지나 칼바위 부근에 다다랐을 때는 무릎이 슬슬 아파왔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열을 식혔다. 3일 동안 못했던 세수도 했다.

증산리에서 진주로 가는 버스 막차 시간이 19:40이기 때문에 18:00까지는 하산해야 한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황씨에게 타이레놀 두 알을 주고 먹으라고 했다. 하산길에 무릎이 들쑤셔도 한 동안은 진통제 약빨로 버틸 수 있을 것이다.

17:40에 증산리 안내소에 도착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앞으로 30분 거리. 증산리 안내소에서 15분쯤 걷자 막걸리 파는 집들이 나타났다. 황씨와 19:00까지 하산주를 마시다가 증산리 버스 정류장에서 19:40 진주행 막차를 타기로 했다.

딱히 고생한 것이 없는, 기분좋은 산행이다. 막걸리 두 항아리에 파전과 도토리묵으로 뱃속을 채우니 기분이 많이 묘하다. 술 마시면서 북알프스와 안나푸르나 서킷에 관해 얘기했다.

버스 타러 내려가는 길에 지나가던 택시가 두당 만 오천원에 진주까지 간다고 손짓했다. 무시했다. 그 차가 손님을 하나 태우더니 내려가는 길에 두당 만 원에 진주에서 원하는 곳 어디에든 모셔준다고 말했다. 버스로 1시간 30분 길이면 차비가 4-5천원은 될터이니, 괜찮은 조건이라 두 말 없이 택시에 탔다.

기사에게 괜찮은 횟집을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본인도 처음 가 보는 식당에 데려다 주고 소개비 조로 식당으로부터 회밥을 얻어 먹는다. 식당 입구에 '모범음식점' 푯말이 붙어 있어 잔소리 안 하고 들어갔지만 황씨는 삐끼에게 당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열 아들딸 보다 잘 키운 삐끼 한 마리가 낫다는 속담이 있다. 회밥 얻어먹는 거야 우리 돈 나가는 것도 아니고, 제값에 맛있고 싱싱하고 푸짐한 회를(스끼다시로 전복이 나오더라) 먹었으면 된거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진주 맛집'을 키워드로 찾아봤더니 '안타깝지만 진주에는 맛집이란 것이 없습니다'는 답글을 보고 황당했다.  맛집이라... 횟집은 강남의 망경식당, 중앙시장 인근의 천황식당에서는 육회 비빔밥을 팔고, 촉석루 부근에는 장어구이집들이 몰려있다는 정도만 알고 왔다. 사실 시간 여유가 좀 있으면 아예 부산이나 여수에 가서 진짜 회다운 회를 먹어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어쨌든 회를 먹고 바에서 맥주 한 잔 했다. 황씨는 전화기를 꺼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술이 상당히 취한 상태라 걱정스러워 주변을 뒤져봤지만 찾지 못했다. 어련히 알아서 하겠거니 싶어 바에서 NGO 활동에 관심많은 젊은 처자와 노닥거리다가 소개받은 찜질방으로 향했다.

아침에 깨어 보니 골이 아프다. 어제 이것저것 술을 섞어 마셨더니 송곳으로 머리속을 들쑤시는 것 같다. 황씨와 연락이 닿아 육회비빔밥 먹으러 가다가 귀찮아서 포기하고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다. GPS가 있으니 느적느적 걸어 다리를 건넜다.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돼지국밥을 시켜먹었다. 경주에서 돼지국밥 먹었던 것만큼이나 맛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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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식당에 배낭을 맡긴 다음 터미널에서 촉석루까지 강변도로를 따라 슬슬 걸어갔다. 카메라를 배낭에 놔두고 와, 항상 사진 찍으면 거지같은 기분이 드는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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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마루에 앉아 있으니 시원하고 삼삼하다. 누워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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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강이 도시를 휘감아 도는 형태가 춘천과 비슷해서 언젠가는 한 번 들러보겠노라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도시가 예쁘다. 진주에서 30년 살았다는 택시 기사 말에 따르면 인구 33만인 진주에는 일제 시대에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재산을 챙긴 갑부들이 많단다. 논개가 왜구 수장을 죽인 애국충절의 고장에 친일파 갑부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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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시대상에 맞춰 2008년 다시 그렸다는 논개의 영정. 젊은 시절의  신사임당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신사임당이 멋내고 뽐내기 좋아했다면 논개와 달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촉석루 인근 어디를 둘러봐도 왜장을 껴안고 강에 뛰어들었을 때 왜장이 죽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런 의문은 이곳을 찾은 사람들 누구나가 한 번씩은 품어 보지 않았을까? 왜장은 물에 빠져 죽은 것이 아니라 머리가 깨져서 죽었다... 또는 사시미로 밀었다...

9월 7일 진주의 한낮 기온은 32.7도. 아침 나절부터 푹푹 쪄대서 뙤약볕 아래 관광은 더 이상 불가능할 것 같아 11시 서울행 버스를 탔다.

황씨 덕택에 매우 만족스러운 산행이 되었다. 나 혼자 였다면, 지리산에 안 왔을 것이다. 다음에 또 오겠냐면, 글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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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내가 갔던 지리산 종주 코스가 알고보니 화대종주였다.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 종주. 무척 힘들고 엿같고, 추운데다 빗물이 넘쳐 계곡길이 물에 잠겨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트레킹을 했기 때문에 지리산 종주는 생각이 깊은 사나이들이나 즐기는 레포츠라고 생각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준비해야지 싶어 구글에서 '지리산 종주'로 검색해보니 71만개의 문서가 나왔다. 지금은 7살 먹은 아이도 다닌다. 사실 구글 검색하고 나서야 내가 갔던 길이 보였다. 당시에는 반야봉에 오르지 않았다. 반야봉이란게 있는 줄도 몰랐다. -_-
 
이번 지리산 산행은 십수 년 전 종주와 여러 면에서 비교할 수 없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  등산 스틱도 한 쌍 구입했다. 몇 주에 걸쳐 북한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부족한 체력을 보충했다. 35리터짜리 배낭도 샀다. 그때 산장 처마에서 간신히 비를 피하며  새벽이 오길 뜬 눈으로 기다리며 서성이던 것이 생각나 침낭 커버도 구입했다.

9월 5일 새벽 3:30 기차가 구례구역에 도착. 지리산행을 계획하는 많은 사람들이 구례구역에 내린다. 역 건너편에 성삼재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다. 배낭을 버스 짐칸에 부리고 재빨리 올라탔다. 구례공영터미널에 일단 들렀다가 4:00에 성삼재로 출발한단다. 미처 구하지 못했던 헤드랜턴을 터미널에서 구입했다. 준비하지 못한 것들은 터미널에서 거의 모두 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다 -- 상인들이 새벽부터 가게를 열어 놓았는데 없는게 없다.

담배 한 대 피우고 버스에 올랐다. 구례구역에서 구례공영터미널까지 버스 운임은 1000원. 10분 쯤 버스가 달려 3:40에 도착. 4:00에 터미널을 출발해서 화엄사를 거쳐 성삼재에 도착하니 4:30. 중간에 무슨 절에서 입장료 라고 몇 천원을 받는 것으로 아는데, 새벽이라서인지 매표소(?)를 그냥 통과한다. 버스는 성삼재까지 헤어핀을 포함한 구불구불한 길을 잘도 달린다. 듣자하니 두당 만원이면 1100m에 이르는 성삼재까지 곡예주행을 하는 롤러코스터 택시를 탈 수 있다나?


성삼재. 출발 직전. 날이 쌀쌀해서 오버 트라우저 대신 옥션에서 9900원 주고 산 바람막이 옷(단체 주문용?)을 입었다. 많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두어시간 후면 빗물이 질질 새는 16만원짜리 고어텍스 오버 트라우저는 아까워서 안 산다)

오리온 별자리가 하늘에서 찬란하게 반짝인다. 정말 오랫만에 보는 '별이 쏟아지는 새벽'이다. 짐 무게가 의외로 가볍다. 며칠 전 옥션에서 구입한 35리터 배낭에 짐을 담다가 동행하기로 한 황씨에게 짐 무게를 물어보니 14kg가 넘는단다. 황씨와 식량을 나눠 가져 가려고 했지만 무게가 그렇다니 하는 수 없이 새로 산 작은 배낭을 포기하고 오랫동안 배낭 여행을 할 때마다 들고 다니던 45리터 배낭을 꺼내 짐을 다시 쌌다. 오랫만에 그 배낭을 짊어지니 옛날 생각이 났다. 짐 무게는 약 14kg 가까이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짐이 가볍게 여겨진다.

여명 무렵 성삼재에 도착. 노고단 대피소까지 올라가는데 황씨가 배낭 무게가 부담스러워 헉헉 거린다. 짐을 좀 잘못 싼 것 같지만 본인이 알아서 하겠거니 싶어 내버려 뒀다.

노고단 도착. 황씨더러 수퍼에서 '씻어나온 쌀'을 사오랬더니 집에서 쌀을 씻어왔다. 12시간이 지난 쌀에서 쉰내가 난다. 이틀 동안 먹을 쌀인데 몇 시간 더 들고 다니면 다 쉴 것 같아 가지고 온 쌀 전부 미리 밥을 지었다. 한 끼는 아침으로 먹고 코펠 두 개에 나눠 두 차례에 걸쳐 밥을 지은 다음 내 배낭에 넣었다. 그러고보니 황씨는 산에서 캠핑 경험이 없다.

6:20. 산안개가 피어올라 여러 산을 포근히 감싼다. 지리산, 하면 항상 떠오르는 이런 류의 이미지는 대체로 신물나게 본 것이지만. 돼지령과 임걸령을 그냥 지나치고 임걸령 샘가에서 잠시 쉬며 간식꺼리로 가져온 건빵과 땅콩 캐러맬을 먹었다.

건빵의 열량은 100g당 125kcal, 땅콩 캐러맬은 100g당 400kcal, 스니커즈는 36g당 140kcal. 150g짜리 라면 하나가 520kcal니까 4개에 천원 주고 사 온 땅콩 캐러맬 한 봉지의 열량이나 3개에 천원하는 스니커즈 100g의 열량은 대단한 것이다. 지구력이 필요한 장기 산행에서 에너지 전환이 쉬운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해야 하는데, 아침밥을 챙겨 먹어도 격렬한 운동을 하면 약 두 시간에서 세 시간이 지나면 절반 이상이 열량으로 소비되므로 중간중간 잊지 말고 꾸준히 먹어야 체력 손실과 저혈당에 따른 무력감을 방지할 수 있다. 해바라기씨, 육포 등 비상식과 행동식은 이것저것 준비해 두었지만 무게를 감안해 과일이나 오이 따위는 가져오지 않았다.


짐을 합쳐 14kg 짜리 배낭.  매트나 침낭커버, 스틱, 3일치 2인분 식량 따위 이번 산행을 위해 이것저것 산 것만 16만원 어치. 짐이란 자고로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좋은 거다. 매트는 폭이 워낙 커서 어깨 넓이 까지만 바닥을 커버할 수 있도록 잘라냈다. 의외로 짐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특이하다.


예전에 시간 관계상 그냥 지나쳐갔던 반야봉 정상에 올랐다. 이번에는 나도 산에 오르는 아저씨들처럼 상하 등산복을 사서 갖춰 입었다. 색깔이 영 꽝이라 몰골이 동네 아저씨 같다. 그래도 속건성 섬유 재질이라 발수와 통풍이 우수하다. 진작부터 입을 껄. 이리 좋은 줄 몰랐네. 색깔이나 모양이 좀 개선된 것들이 있으면 여름에 면 티셔츠 대신에 입고다니면 좋을 것 같다.

반야봉 꼭대기 부근에서 수많은 벌들을 보았다. 그래서 지리산 꿀이 유명한가 보다. 벌들과 하는 짓이 비슷한 개미도 구경했다 -- 여왕 개미의 처녀 비행을 보았다. 오뉴월 다 지나고 갑자기 개미떼들이 새까맣게 대기를 뒤덮고 있어 얘들이 철 모르고 날뛰나 싶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무성한 조릿대와 잡목림 때문에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저 골짜기를 뚫고 지나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멀리 보이는 저 마을까지 대략 15~20km는 될 것 같다. 족히 하루 이상 거리로, 그런 시도 자체가 엄두가 안 난다.

내년 여름엔 강원도 오지 탐방을 한 번 해볼까? 캠핑 기어를 갖추고 지도와 나침반에 의지해 오지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이야 GPS가 보편화되었으니까(오늘 산행 중에 Garmin 60CSX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봤다) 오지 탐험이 예전처럼 궁상스럽고 처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그런 오지 탐험을 고생이 아닌 즐거움으로 바꾸려면 지형도가 있어야 한다. 어차피 길 따위는 없으니까.
 

저 멀리 천왕봉이 어렴풋이 보인다. 24km 남았다. 평지와 달라서, 정말 징하게 멀어 보인다. 예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지리산 능선길이 교묘하게 북쪽 사면을 따라 나 있어 햇볕이 많이 닿지 않는다. 그래서 모자 쓸 일이 별로 없다.


삼도봉 도착. 우연찮게 다람쥐가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이 올라가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하여 '지리'산이란다. 그래서인지 다람쥐 마저 똘똘해 보인다.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지만 지상과 달리 이곳 기온은 24도 안팎. 꽉 끼는 신발에 두꺼운 등산 양말을 신고 있으니 새끼 발가락이 끼어서 살살 아파온다. 이대로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짐 무게 때문에 황씨 표정이 좋지 않다.

오후 2시가 다 되어 간신히 연하천 대피소에서 도착했다. 아침에 한 밥을 인스탄트 육개장 국물에 말고 반찬으로 김치 꽁치 조림을 곁들였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지친 몸에 허겁지겁 탄수화물과 소금을 채워 넣었다. 캠핑은 꽤 오랫만이지만 해 보니 옛날에 혼자 돌아다니며 밥해 먹던 기억이 나서 잠시 목이 메였다. -_-

황씨가 많이 지쳐서 대피소 인근 숲 속에 짱박혀 매트 깔고 세속에 찌든 어리석은 몸을 뉘였다. 산새들이 짹짹 울고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맑은 햇살이 흘렀다. 시원한 바람이 지친 몸을 위무한다. 황씨는 금새 코를 골고 잠이 들었다. 한 시간쯤 쉬다가 일어났다. 잠을 거의 못 잤지만 공기가 맑아서 인지 덜 피로하다. 새끼 발가락이 아파서 두꺼운 등산양말을 벗고 면으로 된 얇은 목양말을 신었다.

총각샘과 이름 없는 샘을 gps에 입력해 두었는데, 두 샘을 보물찾기 하듯 찾아보기로 했다. 총각샘은 수량이 워낙 적은데다 주위 환경이 열악해 식수로 쓰기 부적합해 보인다. 아무튼 병목으로 물을 넣을 방법이 없다. 총각샘 찾다가 길을 잘못 들어 하마터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뻔 했다. 두번째 샘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헤메다가 절벽을 만나 포기했다.  이래저래 쓸데없이 죽을 뻔하며 시간을 보낸 셈.


17:20 미리 숙박을 예약해 둔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 오는데, 샘을 찾는다는 둥 쓸데없는 짓을 하고도 1시간 30분 만에 도착. 이 속도라면 지리산 종주를 20시간 이내에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25킬로미터 종주 코스 중 첫날 10.5km 가량 걸었다.

대피소에 워낙 사람들이 많아 탁자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배수로 부근에 자리를 잡고 저녁을 준비했다. 라면 두개에 남은 밥을 말아 먹었다. 스팸을 고추장 푼 물에 볶아 황씨가 준비해온 소주에 안주 삼아 먹었다. 점심과 마찬가지로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테이블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사람들을 부럽게 쳐다보았다. 우린 그냥 거지 같았다 -- 그 이유의 대부분이 내가 옛날 캠핑하고 돌아다닐 때 워낙 거지꼴로 다녀서 그런 것 같다.

18:00 예약 체크를 한다. 구석 자리를 배정받았다. 예약한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오지 않았거나, 벽소령을 통과하여 지나간 때문인지 자리가 많이 남아 대기자들이나 예약하지 않은 사람들도 잠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18:30 좀 넘자 제법 공기가 쌀쌀해졌다. 19시 무렵에는 바깥 기온이 14도로 떨어졌다. 날이 흐려 침낭에 누운 채 별을 보며 잠들긴 글렀다. 비박하지 않고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 20시부터 잠을 청했다. 황씨는 눕자 마자 곯아 떨어졌다. 그가 워낙 심하게 코를 골아서 귀마개를 빌려 귀를 틀어 막았음에도 0시 무렵까지 뒤척이다가 견디지 못해 침낭을 싸들고 침실을 빠져나와 휴게실에 자리를 피고 잠을 청했다.

어제 저녁 늦게 출발해 새벽 4시까지 기차 안에서 거의 못 자고 12시간을 내리 걸었으면 꽤 피곤할텐데 선잠이 잠깐 들다 말다를 반복했다.

지리산에서 찍은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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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 일정 정리
  출발 도착 소요 목적지
2008-09-04 22:57 03:20   영등포->구례구역
2008-09-05 03:30 03:40 00:10 구례공영터미널
04:00 04:30 00:30 성삼재
04:35 05:35 01:00 노고단
07:00 07:34 00:34 돼지평전
07:34 08:19 00:45 임걸령 1320
08:28 08:42 00:14 임걸령 샘
08:42 09:21 00:39 노루목 1498
09:21 10:18 00:57 반야봉 왕복
10:33 10:50 00:17 삼도봉 1550
10:50 11:25 00:35 화개재
11:29 12:19 00:50 토끼봉 1534
12:24 13:46 01:22 명선봉
13:46 14:02 00:16 연하천 대피소
14:55 15:49 00:54 오침
15:49 17:21 01:32 벽소령
주행시간     09:55  
총 소여시간   12:46  
2008-09-06 06:00     기상
07:20 08:10 00:50 선비샘 1456
08:13 08:52 00:39 칠선봉 1563
08:52 09:58 01:06 영신봉 1651
09:58 10:11 00:13 세석산장
10:30 10:45 00:15 촛대봉 1703
10:45 11:40 00:55 연하봉 1730
11:40 11:58 00:18 장터목산장
13:34 13:54 00:20 제석봉 1806
13:54 14:11 00:17 통천문 1814
14:11 14:28 00:17 천왕봉 1915
14:54 15:19 00:25 개선문
15:19 15:51 00:32 법제사
15:51 16:44 00:53 개울가 쉼터
17:14 17:39 00:25 증산리 입산통제소
17:39 18:00 00:21 막걸리집
주행시간     07:46  
총 소여시간   10:40  
19:16 20:09 00:53 증산리->진주 택시
11:00 14:30 03:30 진주터미널->남부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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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코스 (12h4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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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코스(10h40m)

교통비: 54250원

  • 영등포->구례구역: 무궁화호 기차 20150원
  • 구례구역->구례공영터미널: 버스 1000원
  • 구례공영터미널->성삼재: 버스 3200원
  • 중산리->진주: 택시 두당 10000원
  • 진주->남서울 터미널: 우등버스 19900원

지리산 종주 코스 gtm file:



Google Earth용 사진 첨부 KML 파일:
 


블로그에 올린 올린 사진은 geo coding이 되어 있으므로 EXIF 정보에 GPS 좌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준비물

  • 기본 준비물: 배낭, 등산복, 바람막이옷(오버트라우저), 캠핑매트(발포 스트리폼), 침낭, 침낭커버, 스틱, 헤드랜턴, GPS, 코펠, 버너, 가스, 우비, 반장갑, 스포츠타월, 모자, 버프, 500ml 물병 2개, 칼
  • 식량: 즉석북어국, 즉석육개장, 스팸, 3분미트볼, 김치조림꽁치 통조림, 캔 김치 2개, 핫초코 8팩, 씻은 쌀(씻어나온 쌀), 라면 4개, 볶음 고추장 20g, 인스탄트 김치국밥 4개
  • 행동식&비상식: 보리건빵, 해바라기씨, 땅콩캐러맬, 스니커즈 3개, 육포
  • 기타: 3M 귀마개, 수면안대, 두루마리 화장지, 김장용 비닐 2m, wrap 비닐봉투(쓰레기 및 물건 수납용) 5장, 여벌 긴바지+상의, 양말, 타이레놀
지리산 탐방로 정보

화엄사 --7km(4h) --> 노고단(061-783-1507)
성삼재 -- 4.7km(1h) --> 노고단 -- 2.8km(1h15m) --> 피아골삼거리 -- 0.4km(5m) --> 임걸령 -- 1.3km(1h) --> 노루목[4.5km]
 
노루목 -- 1km, 1h --> 반야봉
노루목(4.5km) --1km, 20m --> 삼도봉[5.5km] -- 0.8km, 10m --> 화개재[6.3km]
 
화개재 -- 9.2km(4h) --> 반선
화개재 -- 1.2km(40m) --> 토끼봉[7.5km] -- 2.1km(1h) --> 연하천[10.5km](063-625-1586)
 
연하천  -- 2.1km(1h) --> 형제봉[12.6km] -- 1.5km(30m) --> 벽소령[14.1km](070-7506-7771)
 
벽소령 -- 6.7km(3h) --> 음정
벽소령 -- 6.8km(4h30m) --> 대성
벽소령 -- 6.3km(3h) --> 세석[20.4km](010-3346-1601)
 
세석 -- 6.5km(4h30m) --> 백무동
세석 -- 10km(6h) --> 청학동
세석 -- 3.4km(2h) --> 장터목[23.8km](010-2833-1915)
 
장터목 -- 5.8km(4h) --> 백무동
장터목 -- 1.7km(1h) --> 천왕봉[25.5km]
 
천왕봉 -- 2km(2h) --> 로타리 대피소(010-2851-1401) -- 3.4km(2h30m) -->중산리
천왕봉 -- 4km(3h) --> 치밭목[29.5km] -- 1.8km(40m) --> 삼거리 -- 4.4km(3h) --> 유평[35.7km] -- 1.5km(40m) --> 대원사[37.2km] -- 2km(50m) --> 유평탐방지원센터[39.2km]
 
* []안의 거리는 노고단 기점으로 누적거리
* 거리 및 ()안의 시간은 예상 소요 시간 (탐방로 구간 소요시간은 일반적인 평균치로 개인별, 기상별 여건에 따라 가감될 수 있음)
* ()안의 전화번호는 대피소(shelter)의 연락 전화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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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am 기상. 숙취도 없고 말끔한게 기분이 좋다. 구름 사이로 얼핏 해가 보인다. 스프를 끓여 식빵을 찢어 넣고 아침으로 먹었다. 전에 여행할 때 어떤 여행자한테 배운건데 꿀꿀이 죽같지만 보기와 달리 맛이 그럴듯 하다.

누가 보기 전에 텐트를 걷었다.


론머맨 아저씨가 나타나 오늘 여기서 캠핑할 꺼냐고 묻는다. 이이에. 오늘 오후 부산에 갑니다. 캠핑은 유료라고 말하며 언덕으로 올라가 잔디를 깎기 시작한다. 4.40pm 배가 출항이라 적어도 3pm까지는 시간이 많아 남아 오늘은 한국 전망대에 가볼까 한다. 날이 맑으면 일찍 돌아올 생각이다. 텐트 등속을 화장실 앞 식수대 밑에 감춰두었다.


아침에 보니 해변이 더욱 맑아 보인다. 해수욕에 제격이다. 가벼운 짐만 꾸린 채 9am 출발했다.



아무 생각 없이 패달을 밟다가 '토요 포대 흔적'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발견했다. 비포장 도로로 10분쯤 올라가자 포대가 나타났다. 뭐하는 곳이지?



자전거 전조등을 뽑아 어두컴컴한 미로 같은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포탄 캐리어 같은 것이 보인다. 아, 이즈하라의 하치만구 신사에 있던 폭탄이 혹시 여기 쓰이던 것인가 보구나.


이곳이 설마... 저 정도 규모면 정말 엄청난 포가 있던 자리인데.. 흡사 아발론의 포처럼.


지도를 보니 쓰시마의 이 포대에서 부산과 큐슈 지방 사이의 적 이동을 방어할 목적으로 포대를 세운 것 같다.


포대에 관한 무슨 설명이 있는데, 다른 관광지와 달리 영어나 한글 병기된 설명이 없다. 게다가 일부 문장을 지웠다. 왜 지웠을까. 알아야만 하는 내용일까. 하치만구 신사의 대포알들이 호국의 의지가 담긴 신령한 대포알이었던가? 뭐가 캥기는지 문장을 지운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한국 또는 미국에 적대적인 포대였던 것 같다.

더 생각하지 말자. 조잔하기 그지없는 일본의 금리나 주식시장, 위안부 할머니들이 돌아가실 때까지 면피하며 기다리는 비겁한 일본 정부. 일본인들조차 원숭이라 부르는 아베. 도로에서 보곤하던 아베의 사진들. 눈을 마주치지 않는 일본인들. 비포장 내리막길을 흡사(?) MTB를 타듯이 내려갔다. 비포장 도로에서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전방 주시. 목덜미가 뻗뻗해진다. 자전거와 온 몸이 미친듯이 떨린다. 딴 생각하다가 삐끗하면 바로 자빠링이다.


해안도로를 따라갔다. 한국 전망대로 향하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길의 끝에는 전복 양식 공장이 있었다. 구경하다가 사진 찍기 뭣해서 나왔다.


거진 자동차 대시보드 콘솔 분위기 물씬 풍기는 '핸들바 콘솔' 지도나 웹 상에 소개된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 waypoint가 종종 달라 전복 양식 공장 등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GPS 덕택에 쓰시마 여행이 손쉬웠다. 전조등은 터널 주행시 필요해서 대낮에도 달고 다녔다.

카시오 손목시계(Casio PRG-70V3)는 자기 나침반, 기압계, 시계, 온도계 따위가 포함된 것이다. 터프 솔라 배터리를 사용해 배터리 교환이 필요없는 반영구적인 제품. GPS(110$)보다 더 비싼 17만원짜리. 2005년 2월 여행할 때 사용하려고 구입. 그런데 3일 동안 비를 펑펑 맞았더니 그... 알량한 생활방수가 견디질 못했다. 유리창에 낀 습기는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야 사라졌다. 저렇게 습기가 끼어 있으니 기압계가 엉망으로 작동해 일기 예측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10.30am. 한국전망대 도착. 건자재를 한국에서 공수해와 한국풍으로 꾸몄다는 건물. 다시 휴대폰에 전원을 넣고(안테나가 만땅으로 잡혔다) 아내와 통화를 시도했다. 빙고. 이번에는 된다. 거참 통화 한 번 하기 되게 힘드네.

와니우라 마을의 이팝나무 자생지에서 오락가락했다. 봄에 왔더라면 나무마다 하얗게 핀 꽃들을 구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맑고 작은 하천에 물고기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다. 이렇게 깨끗하고 맑은 하천이 집 앞에 있는 기분이 어떨까. 참 부럽다.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말았다.


미우다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VALUE에 들러 점심꺼리를 장만했다. VALUE에서 2007년 7월 7일 무슨 행사를 하나보다. 미신에 사로잡힌 미국인들과 일본인들은 21세기 첫 쓰리세븐 데이를 축하하거나 심지어 결혼까지 한다.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12pm. 날이 뜨거워 바다로 뛰어 들었다. 바다 속에서 자맥질 몇 번 하고 놀다가 텐트 세웠던 장소로 기어 올라와 맥주에 초밥(599엔)을 먹었다. 초밥이 의외로 맛있고 꽤 커서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샌달에 모래가 잔뜩 묻었다. 등산할 때 신으려고 몇년 전에 산 산악 트래킹용 샌달. 샌달의 특성상 앞 발가락들이 노출되어 산악 트래킹 중 자갈, 돌부리, 날카로운 잔가지나 풀뿌리에 취약하다. 발등을 보호해야 하므로 발등 부위는 두껍게 감싸 놓아 보통 샌달보다 통기성이 떨어진다. 꽤 애매한 제품이다. 그래도 40도 경사의 릿지에서 확실한 접지력을 보장하는 밑창 때문에 여름에 즐겨 신었다.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젊은 남녀가 한다발인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와 해변에서 플랭카드를 들고 기념 사진을 찍는다. 그들은 바닷가에 살짝 발만 담그고 나와 수돗가에서 발을 씻느라 부산을 떨었다.

시원한 기린 생맥주를 마시며 그 부산한 광경을 쳐다 보았했다. 한국인들이 내가 앉아 있는 쪽으로 몰려와 수다를 떤다. 자전거를 흘낏흘낏 쳐다본다. 나는 일본인이므로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수경을 끼고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빵 부스러기를 던지고 물 속을 노려보았지만 고기떼는 몰려오지 않았다. 시각이 시각인지라 물고기가 통 보이지 않는다. 스노클이 있으면 좀 더 깊은 곳까지 갈 수 있겠지만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장비도 없이 만용을 부리지 않았다. 등이 탈까봐 수영복 하의에 티셔츠를 입은 채 물에 들어갔다. 30분쯤 놀고 바깥으로 나오니 한국인들이 떠났다.

수돗가에서 웃옷을 빨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화장실로 들어가 재빨리 수영복을 벗어 세면대에서 빨았다. 자리에 앉아 남은 우롱차를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햇빛을 쬐는 도마뱀처럼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짐을 정리했다. 충전지에 녹이 잔뜩 슬었다. GPS의 자전거 마운트에 부착하는 뒷판은 방수 커버가 안 되어 있어 비맞는 동안 물이 새어 들어 충전지에 녹이 슨 것이다. 다음 번 여행 때는 대책을 세우자.

준비해간 충전지는 enelop 2000mAh 4알, 산요 2300mAh 2알로 완전 충전된 상태가 아닌데도 5일을 충분히 버텨줬다. 마지막 2알의 잔량이 반쯤(1000mAh) 남았다. 하긴 길어봤자 하루 8시간 정도 밖에 주행을 하지 않았으니 전지가 남는 것이 당연.

1pm. 자 이제 쓰시마에서 해 볼 마지막 관광 일정이 남았다. 자전거에 짐을 싣고 해수욕장 위의 캠프장 화장실 옆에 자전거를 숨겼다. 그리고 여권, 지갑, 수건, GPS, 시계 등 귀중품과 수건을 챙겨 캠프장 옆에 있는 나기사노유 온천장으로 향했다.

간혹 도로의 윗쪽에 은빛으로 빛나는 구조물을 보고는 했다. 온천수를 끌어올려 아마도 열병합 발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열병합 발전이 아니라면 다만 온수라도 모아놓았을 것이다. 일본인의 온천에 대한 강한 집착. 그 구조물을 볼 때마다 꼭 온천에 가자고 다짐했다.


나기사노유 온천. 노천 온천. 1pm ~ 9pm 사이 오픈. 온천에 들어가 신발을 벗어 신발함에 넣고 신발함 열쇠를 들고 카운터에 가니 옆의 자판기에서 표를 뽑으란다. 한국인 전용 티켓이 500엔. 사람들이 시야에 없는 동안 살짝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한국의 일반 사우나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온탕, 냉탕이 있고...

창 밖으로 시원한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저 창문은 단지 방충망이라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오른편에 노천 온천이 있다. 낮에는 주로 노인들이 이용하는 듯.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관광 코스로 이곳에 들렀다. 간간이 한국어로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수건을 제공하지 않는 것 같다. 뭐, 그럴 줄 알고 스포츠 타월을 들고간 것이지만. 들어서면서 양 손으로 수건 끄트머리르 잡고 수건을 늘어뜨려 국부를 살짝 가렸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길래 나도 그렇게 했다.

따끈한 거품탕 속에 들어가 근육을 풀었다. SPF 27짜리 썬 블럭 로션을 발랐는데도 의외로 살이 많이 탔다. 적당히 씻고 일본인 할아버지들과 노천 온천에 앉아 바다를 구경했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가 들린다. 흐뭇하다.

그런데 캠핑장의 화장실이 오른쪽으로 살짝 보인다. 화장실 옆에 숨겨 세워두웠던 자전거 끄트머리가 보인다. 어? 그럼 저기서도 여기가 다 보이는 거잖아? 여탕은 엄폐가 잘 되어 안 보인다. 일본 만화책에서처럼 남여 노천탕을 대나무로 간단하게 구분지워 놓아 옆 여탕의 대화 소리나 깔깔 대는 웃음소리가 들리거나 하는 일은 없다. 실망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여탕에는 할머니들이 조용히 온천욕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실망할 것 없다.


적당히 씻고 한 시간 반쯤 있다가 온천을 나왔다. 엇, 그런데 GPS를 락커에 두고 왔다. 카운터에 가서 영어할 줄 모른다는 종업원에게 영어로 물어보니 락커 열쇠를 건네준다. 거기 지배인이 GPS를 알아본다. 잠깐 손짓발짓으로 서로 원숭이들처럼 대화하다가 웃으며 헤어졌다. 휴게소에서 야마네코 스티커를 한 장 챙져준다. 자전거 프레임에 붙여 놓으면 괜찮을 것 같다. 자기도 산에 갈 때 GPS를 들고 다닌단다. 첫날 히타카쓰에 떨어져 일정이 틀어지는 바람에 남 쓰시마를 돌지 못한 것이나 아리아케 산에 못 가본 것이 아쉽다. 다른 일본인과 달리 이 친구는 눈을 쳐다보며 말한다. 얼굴이 그을리고 다부진 체격이 스포츠맨이나 조폭 스타일이다. 마음에 든다. 웃쓰! 사요나라~

히타카쓰 항구의 2층에서 노란색 영수증을 탑승권과 교환했다. 3pm. 한 시간이나 남아 할 일은 없고 잔돈은 철렁거리고 해서 시내로 슬슬 자전거를 몰고가 동전을 털어 Life Value 수퍼에서 도시락과 환타를 샀다. 히타카쓰 항구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마지막까지 도시락을 먹는구나 -_-

환전한 10000엔 + 15000엔 중 남은 돈은 12067엔. 사용한 돈은 12746엔, 정산 중 어디론가 새버린 돈은 187엔(아마 뭔가 사 먹었을 것이다). 사용한 돈 중 숙박비는 단 돈 2000엔, 한화로 15200원. 700엔짜리 방청제 구입 및 온천 500엔을 제외하고 9733엔을 5일 동안 순전히 먹는데 사용했다. 한화로 73970원.


4.10pm. 출국수속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제일 먼저 출국수속을 마쳤다. 출입국장에서는 동작이 빨라야 한다.


4.30pm 배가 출발한다. 인구의 대다수가 노인들이라 노무원들 나이가 지긋하다.


히타카쓰 항 바로 옆은 해상자위대(또는 해안경비대; japan coast guard)의 배가 정박해 있다.


오징어 배가 일찌감치 출항한다. 쓰시마의 특산물 중에 오징어가 있었다.

6.20pm 부산 도착. 입국장에서 짐을 풀어 엑스레이 기기에 통과시키고 자전거는 별도의 문으로 뺀다. 부산항에서 중앙동 역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 검표기 앞으로 향했다. 검표원 아저씨가 친절하게 문을 열어준다. 장애인석에 자전거를 박아두고 mp3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아! 생각해 보니 집 열쇠가 없다. 아내는 내가 여행 가 있는 동안 처가에 가 있다. 서울에 돌아가면 집에 못 들어간다 -_-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텐트 등속해서 캠핑 장비가 다 있고 일요일까지 3일 남았는데 굳이 집에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부산 터미널에서 바로 울진으로 가서 양양까지 자전거 여행을 계속할까? 7.30pm 노포동 지하철 역에 도착. 부산 터미널의 매표소 앞 시간표를 살펴보았다. 마땅히 갈만한 데가 없다. 게다가 자전거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캠핑하다가 또 비를 맞으면 노래가 심하게 튀어나올 것 같다. 그래 그냥 처가집에 가자. 8.20pm 표를 끊어 대구행 버스를 탔다.

대구에서 장인장모님께 인사드리고 하룻밤 자고 다음날 서울행 버스를 탔다. 남부터미널에 도착. 덥다. 집까지 자전거를 몰고 가 짐을 내팽개쳐두고 간단히 세면만 한 다음 집을 나왔다. 동네 고깃집에 가서 김치 오겹살과 소주를 마셨다. 캬... 좋다. 바로 이거다. 맛있는 도시락이나 맛있는 생맥주로는 절대로 채울 수 없는 것.

주행거리: 315km (쓰시마에서만)
평속: 의미없다. 자전거 주행이 아니라 자전거 여행이다.

GTM Trackmaker file

Google Earth File
여행일정 및 경비내역 

쓰시마의 좋은 점:

* 풍경이 끝내주고 개울, 해변, 숲을 함께 즐길 수 있다.
* 도로가 텅 비다시피 해서 자전거 주행에 최적이다.
* 평균 2km마다 자판기가 널려 있다.
* 요소마다 대형 수퍼가 있어 먹거리 장만이 편하다.
* 맥주가 싼 편. 꿀맛이다.

나쁜 점:

* 사람이 적어 일본인들과의 접촉이 극히 적다
* 이즈하라를 나오면 음식점이 별로 눈에 안띈다.
* 볼꺼리가 별로 없다.

가볼만한 곳(가본 곳이 별로 없어 민망 -_-)

* 이즈하라: 반쇼인, 하치만구 신사
* 히타카쓰: 미우다 해수욕장, 나기사노유 온천
* 39번 지방도, 와타즈미 신사, 토요 포대 흔적

준비물 중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것

* 양말: 맑은 날 샌달을 신었을 때 발가락에 때가 끼거나 타는 걸 막아주고 사고 났을 때 발가락을 일차적으로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죈종일 비가 와서...

* 삼각대: 핸들바에 거치해서 움직이는 동영상을 찍으려 했다. 손에 들고 찍는 것이 더 편하다. 셀카 찍을 때도 써먹으려고 했는데 귀찮았다.

* 여권 복사본: 캠핑장에 등록할 때 여권 복사본을 제출해야 한다던데 무의미했다. 하지만 해외 여행할 때 여권 복사본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여행의 기본 상식.

* 테이프: 케이블 타이와 마찬가지로 거의 만능에 가까운 수리 도구. 찢어진 옷, 비옷, 찢어진 천, 부서진 도구의 고정 등 역할이 광범위. 장기여행 때는 실과 바늘처럼 거의 필수적인 아이템.

* 읽을 책 한 권: 보통 아홉시에 잠들어 아침 일찍 일어나 일정을 시작했으며 무료한 버스, 페리 이동 중 읽으려고 했는데 음악 듣고 지도 보고 계획 짜고 수첩에 메모하고 정산하기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거의 없었다.

* 의약품: 여행 중 필수 의약품은 진통제(두통약), 항생제, 항히스타민제(알러지 약), 반창고(밴드). 항히스타민제가 왜 필요하나 싶겠지만 개미, 진드기 따위에 물려 피부가 가렵고 부어오를 때 이것만큼 효과가 좋은 것이 없다.

없어서 아쉬웠던 것: 방청제, 여분의 브레이크 패드





아소베이 파크에서의 이틀째, 샤워를 마친 후. 여행이란 SF적인 비일상적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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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am 아침 일찍 일어났다. 세면을 하면서 라면을 끓였다. 이번에는 라면에 어제 먹다 남은 어묵 2장과 먹다 남은 김치를 넣고 끓였다. 김치가 달아서 먹기가 좀... 어묵을 다 먹고 면을 2/3쯤 먹다가 화장실 변기에 버렸다.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코펠을 씻은 후 찻물을 끓여 PET 병에 담았다.

정자 안에서 출발하기 전에 자전거를 손봤다.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출발해야 하나 망설여진다. 오늘은 대략 80km를 이동해야 한다.

어젯밤에 고민을 좀 했다. 밋밋한 382 도로로 가지 말고 첫날처럼 풍광이 아름다운 39번 도로로 가는게 좋지 않을까? 아니다. 그래도 382 도로로 가자. 39번 도로는 이미 가봤다. 382 국도는 가보지 않았다. 선택이 단순했다. 가본 길 보다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자. 여태까지 그래왔지 않았던가.

어제 하루 비를 못 뿌린 것이 억울했는지 비가 폭포수처럼 펑펑 쏟아져 내렸다. 담배를 물었다. 자전거 체인을 다시 한번 닦았다. 브레이크 이격은 이 정도면 충분히 버틸만 하다. 뭐 이젠 더 조이고 싶어도 조일 수가 없는 한계에 다다랐다.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꽉 쥐어도 바퀴가 슬슬 미끄러진다. 그래도 어제 날이 맑았으니 망정이지.

9am. 자판기에서 음료를 하나 뽑아먹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출발. 얼씨구 이젠 번개도 치네? 도로에 바짝 붙어 달렸다.


9.20pm. 비가 하도 내려 어제 지나온 쓰시마 패밀리 파크에 잠깐 자전거를 세웠다. 비닐봉투 안에 습기가 차서 지도가 너덜너덜해졌다. QAMM 가방 안쪽에도 물이 고여 있다. 져지 뒷주머니에 넣어둔 지갑은 완전히 젖었다. 지폐가 너덜너덜하다. 가방을 뒤집어 물을 퍼냈다. 농구대가 4개인 이 전천후 운동장은 과연 이용객이 얼마나 될까. 시설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 비가 잦아들길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려고 가방을 뒤져보니, 아차, 아침에 담배를 피우고 정자 난간 위에 담배를 그냥 두고 온 것이 생각난다. 지난 나흘 동안 담배 한갑을 피우고 새로 한 갑을 뜯어 겨우 세 가치 밖에 피우지 못했는데...

다시 출발. 어제와 달리 382 국도만 타고 와서 진행 속도가 무척 빠르다. 충분히 쉬면서도 한 시간이 안되어 미네에 도착했다. 미네 시내를 지나 니타로 향했다. 우비를 입은 채 내리막길에서 상체를 둥글게 구부리는 것이 의외로 브레이크 효과가 있다. 이젠 걱정없다.

아침에 라면을 먹다 말아서인지 배가 출출하다. 10시 조금 넘어 니타에 도착. 도로가 평이하고 커브가 거의 없어 브레이크 잡을 일도 없다. 이 속도라면 12시면 히타카쓰에 도착한다. 니타에서 잠시 멈춰 자판기에서 마일드 세븐 one 100s 1갑을 구입했다. 300엔. 대체 무슨 자판기이길래 마일드 세븐만 30종류가 있는거지?

예전에 오사카에서 럭키 스트라이크를 자판기에서 산 기억이 난다. 그 독하디 독한 담배를 그저 멋으로 피웠다. 근데 라이터가 없다. 자전거 타고 지나가다가 수퍼를 발견하고 들어가 삼각김밥과 삶은 달걀을 샀다. 라이터가 눈에 띄지 않는다. 설마 하면서 주인에게 담배에 불을 붙이는 시늉을 하며 '라이타, 도조' 하니까 라이타를 찾아준다. 캬... 짐작대로 라이타는 일본어 외래어였던 것이다.

신사 앞에서 무려 한화로 천원이나 하는 따뜻한 삼각김밥을 까먹었다. 한국의 삼각김밥에 비하면 맛이 없는 편. 역시 도시락을 사 먹을껄 그랬나? 삶은 달걀을 먹고 물을 몇모금 마신 후 다시 출발.

니타에서 줄곳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오르막길이 끝이 없어 보인다. 왠간한 업힐이라도 자전거의 앞뒤 기어비를 2:2 이하로 내리지 않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2:1이 되었고 다시 1:2가 되다가 흔히 막장 모드라 일컬어지는 1:1까지 내려왔다. 1:1은 걷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자전거를 타면서 기어비를 3:8, 3:7, 2:6, 2:4, 2:2, 2:1, 1:2, 1:1로 차례로 다운 시프트하고 업시프트는 그 역순으로 했다. 기어비를 제대로 맞춰 하는 것인지 잘 판가름이 안되었는데 남들도 다들 그렇게 하는 것 같다. 3:8에서 최고 속도는 35kmh 가량. 소위 2단 크루즈 기어를 사용하여 주로 평지 주행할 때 사용하는 2:6에서는 보통 25~27kmh 정도가 나왔다. 요즘은 3:6이나 3:7로 넘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3:6 정도면 평속 28kmh가 나올 것 같은데 근육이 받쳐주지 않는 것이다. 한 사흘 주행하니까 다리도 많이 피곤해져 젖산이 어느 정도 축적된 것 같다. 일주일에 고작 한 번 타는 정도론 올해에도 한 시간 동안 평속 30kmh를 유지하긴 어려울 것 같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간신히 간신히 최고점에 이르렀다. 해발 136m. 쓰시마에서 이 이상 높은 고도에 다다라 본 적이 없으므로 아마도 이 지점이 쓰시마 도로의 최고점이지 않나 싶다. (무슨 소리. 44번 지방도의 가미자카 공원을 못 가봤고 아유모도시 자연공원도 못 가 보고서 섣불리 말하긴 뭣하지 않나) 하여튼 382번 국도의 최고점은 이 지점이다. 평소라면 북악 스카이웨이의 고도차 200m도 별 걱정없이 올라갈 수 있었겠지만 며칠 동안 업힐, 다운힐을 수백번 반복하다 보니 근피로가 누적되어 고도차 136m에서 안간힘을 쓰다시피 하다가 결국은 정상을 얼마 안 남기고 끌바를 했다. 이제 다운힐이다.

10분쯤 신나게 내려오다 보니 (평속 54kmh) 널찍한 공원이 눈에 띄었다. 미타케 공원이다. 세우자! 끼끼끼긱... 대략 70m를 미끄러져 공원을 지나쳤다. 브레이크 같지도 않은 브레이크. 다시 올라갔다. 공원에 다다르자 마자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5분쯤 멍하니 앉아있으니 비가 잦아 들으면서 관광버스가 눈앞에 멈춰섰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내렸다. 내 자전거 앞을 오락가락 하면서 핸들에 붙어있는 GPS를 보고 속도계니 뭐니 하는 말을 주고 받는다. GPS에요. 그랬더니 한 아저씨가 오, GPS! 베리 굿, 베리 나이스!를 외친다. 아무래도 내가 일본인인 줄 아는 모양. 잘됐다. 말하기도 귀찮은데 입 다물고 있자. 단체 관광객들의 가이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골이 잔뜩 나 있었다. 한 아저씨가 '열 받았나봐' 라고 중얼거린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비 오지. 볼 거 하나도 없지. 뭐 이런 거지같은 섬이 다 있어?'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재미없는 관광지에 놀러와서 재미가 없다고 가이드에게 푸념을 늘어놓은 모양. 쓰시마에 볼 꺼 없다. 자전거가 아니면. 관광버스로는, 여러분들은 절대 볼 수 없는 것이죠.

나도 절대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쓰시마의 리아스식 해안을 카약으로 돌아보는 것. 카약을 못 탄 것이 못내 아쉽다. 쓰시마의 대다수 관광지는 5월의 이팝나무 축제를 제외하고 7,8월의 특정 시기만 성수기다. 심하게는 8월이 약 2주 동안만 성수기다. 카약을 타지 않아보고 쓰시마를 논할 수 없다 -_-

담배 한 대 피우고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아저씨, 아줌마들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앞자리에 앉아 있는 가이드를 뚜러지게 쳐다보았다. 딱딱하게 굳은 사무적인 표정. 그 여자도 나를 쳐다본다.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벤치에 앉아 자기를 쳐다보는 몰골이 처연한 남자. 씨익 웃었다. 내가 진실과 애정을 담아 웃으면 남들은 '기운내 멍청아'라고 번역했다. 그래서일까? 외면한다.

그러고보니 쓰시마에 와서 일본인들과 얘기할 때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들 얼굴을 쳐다보고 대화를 할라치면 고개를 공손하게 수그리거나 시선을 거두었다. 여행 중에는 선글라스를 쓰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쓰면 상대가 내 눈을 볼 수 없고 그럼 대화가 안되니까. 대화가 되려면 눈을 쳐다봐야지. 뚜러지게 쳐다볼 것 까지야 없지만서도.

친절하게 입바른 말을 늘어놓지만 눈을 쳐다보지 않으니 그다지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많은 일본인을 만나 본 적이 없으니 섣불리 단정하기는 힘들다.

애니웨이, 할 일이 있다.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마자 가방을 풀어 코펠을 꺼내고 화장실에서 '이 물은 먹는 물이 아닙니다'라고 적힌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어 코펠에 물을 담았다.


스프를 끓였다. 배 고프고 비를 계속 맞아 춥다. 물도 다 떨어졌다. 먹을 것이라곤 바나나 튀긴 과자 밖에 없는데 입안이 말라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다. 이제 라면도 다 떨어지고.


자전거와 가방으로 바람을 막아 옥수수 스프 두 봉지를 끓였다. 따뜻한 스프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살 것 같다. 후르륵 쩝쩝 입 천정과 혀가 데이는 것도 개의치 않고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비는 여전하지만, 그리고 머리속에서 끊임없이 왕성하게 노래가 샘솟았지만, 기운이 난다. 기운이 나니까 딴 생각이 들었다. 히타카쓰에 일찍 갈 필요가 있나? 관광하자.


미타케 공원 숲길 산책로. 이 길을 죽 따라가면 주차장이 나오고, 주차장부터 산꼭대기까지 숲길이 이어진다. 정말 아름다운 길인데 비가 퍼부어대니 걷기는 좀 무리다. 아쉽지만 되돌아 나왔다.

382 국도를 5-6km쯤 달리다가 오른쪽 샛길로 빠졌다. 버드워칭 공원이 어딘지 모르겠다. 하여튼 쓰시마에는 별로 없다는 논이 주욱 이어지고 곧 해안도로가 나타났다. 해안도로를 따라 사오자키 공원으로 향했다.


해안의 끝에 도달했다. 어? 사오자키 공원이 방금 지나쳐온 자그마한 공원이었나? 그럴리가... 테트라 포트가 널부러진 전형적인 방파제와 전형적인 바닷가 풍경.


조그만 공원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념비에 충신 박제상에 관해 잘 적혀 있으니 설명은 생략.


해변을 빠져나오는 길에 소철이 늘어서 있는 분위기 좋은 신사를 발견.


어렴풋이 소개서에서 본 기억이 난다. 사오자키 공원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운운. 공원에는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피할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다. 대규모 바베큐 식탁이 줄줄이 있고 아이들 놀이 기구와 작은 해변, 적당한 크기의 공원이 있다.


방향을 틀어 길을 되돌아가 다리를 건넜다. '이국이 보이는 언덕 전망대'로 향하는 길. 역시 비바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마법의 사진. 길이 흡사 제주도를 닮았다. 꾸준한 오르막길. 맞바람에 많이 지쳐서 끌바했다. 비바람에 시달리다 보니 악에 받쳐 노래가 저절로 흘러 나온다.


뭔 꽃인지 모르겠지만 토양의 산성도에 따라 색깔이 흰색, 파란색, 빨간색으로 다양하게 피어 있다. 간혹 미친 노란꽃도 있었다. 토양에 나트륨이나 황이라도 포함된 걸까?


전망대에 다다랐다. 전망대 건너편은 한국이다. 휴대폰을 꺼내 아내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역시 안된다.


셀카 한 장. 해발 103m.
관광은 역시 비바람과 함께 해야 제맛이다.
맥주 한 잔 하고 싶다.


앞으로 가야 할 길. 저 산너머에 '한국전망대'가 있다. 오늘은 한국 전망대에 안간다. 이국이보이는언덕전망대에서 이쿠치하마 해수욕장까지 갔다가 히타카쓰를 거쳐 미우다 해수욕장에 도착하면 오늘 일정은 끝이다. 지금 시각은 1.16pm


이국이 보이는 전망대. 역시 태양전지가 있다. 전력선을 여기까지 끌어쓰지 않고 자가발전을 한다니, 합리적이다.


심지어는 화장실에도 태양전지와 충전지가 있다.


이국이 보이는 전망대 아래 해변.

다시 출발. 커다란 트럭이 자전거를 피해 위험스럽게 추월한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전거를 아슬아슬하게 스쳐가며 라이더를 공포로 몰아놓는 그 쏠쏠한 재미를 놓치고 싶어할 트럭 운전수가 어디 있겠나. 일본인의 운전 매너가 훌륭한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자기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상호 믿음이 사회적으로 성립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3pm. 382 국도를 타고 별 볼 일 없는 이쿠치하마 해수욕장을 그냥 지나치다시피 하여 히타카쓰 부근까지 왔다. 히타카쓰에 도착하여 첫 식사, 그러니까 첫 도시락 식사를 하던 바로 그 지점에 다시 도착했다. 근처 VALUE 마트에서 기린 생맥주와 닭 바베큐, 생선가스 덮밥을 사와 궁상스럽게 먹었다.


그렇게 기름칠을 정성스럽게 했건만 종일 폭우를 맞으니 체인이 다소 뻑뻑해졌다. 둘쨋날 방청제/오일 anyway를 구입하지 못했더라면 여행이 과연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비 맞으면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다.


QAMM 가방의 벨크로가 걸핏하면 벗겨져 이틀 전에 한국에서 여행준비할 때 다이소에서 산 천원짜리 튼튼한 실로 고리를 꿰어 묶어 두었다. 이제는 안심하고 울퉁불퉁한 길을 달릴 수 있다.


4.50pm. 니시도마리 해수욕장을 미우다 해수욕장으로 잘못 알아 고개를 갸웃하다가 거의 2km를 더 달려 미우다 해수욕장을 지나쳤다. 다시 되돌아와 자세히 표지판을 살펴보니 고갯마루에 미우다 해수욕장이 있다. 그런데 캠핑장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미우다 해수욕장.

짐을 일단 내려놓고 쇼핑하러 갔다. 온 길을 헤멘 것에 비해 고개 하나 넘으니 히타카쓰가 바로 나타났다. 히타카쓰 시내 중심부의 Life Value라는 마켓에서 쇼핑을 하고 살짝 내리는 비를 맞으며 미우다 해수욕장으로 돌아왔다. 해수욕장에는 딱 한 사람이 멍하니 앉아 있다가 사라졌다. 쓰시마에는 왜 이렇게 혼자 노는 사람이 많은 걸까.


아무리 봐도 캠핑장 같지는 않은데. 맞은편 건물은 샤워시설. 오른편 건물은 대체 뭘까. 건물 뒤에는 화장실이 얼핏 보인다. 취사장이나 오토캠핑장이 보이질 않았다.



더 찾아다니기도 귀찮고 어차피 관리인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아 속 편하게 널직한 이곳에 텐트를 쳤다. 분위기가 정말 좋아 보인다.








해변 여기 저기 돌아다녔다. 일본의 청정 해변 100선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해수욕장이란다. 동굴이 보여 찾아가보니 얕은 동굴에 누군가 변기 뚜껑을 올려 놓았다. 센스 한 번 죽여준다. 작은 자갈을 덮은 산호 시체를 발견. 이건 이 여행의 기념물이다. 아내에게 선물해 주자! 아내는 내가 맨날 길에서 주운 것만 선물해 준다고 불만이 많았다. 길에서 주운 것들 중에도 좋은 것들이 많다. 7pm이 다 되었고 하루종일 비를 맞아 노곤해진데다 바닷물이 차가워 바닷속에 들어가긴 꺼려진다. 물이 참 맑았다. 발만 담그고 해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작은 해변이다. 작고 쓸쓸한 해변이다. 혼자 와서 깡소주에 오징어 발을 질겅질겅 씹기에 제격이다.


얼씨구? 이건 뭐야? 언덕을 오르니 갑자기 캠핑장이 나타났다. 텐트를 다 쳐놓은 상태니 다시 텐트를 걷어 여기까지 올리기가 귀찮다. 에라 그냥 무시하자. 저녁이나 먹어야지.


오늘은 특별히 와인샵에서 사케 작은 것 한 병 사왔다. 일반 수퍼에서는 술을 못 팔게 되어 있는 것 같은데 VALUE처럼 매장이 크면 매장 한 구석에 술만 따로 파는 매대가 있다. 히타카쓰 시내에는 큰 수퍼가 없어 와인샵이 따로 있다. 알콜 농도 25%.


여행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오늘 만큼은 도시락을 안 먹으려고 했는데 워낙 가격대 성능비가 좋고 마침 550엔 짜리를 100엔 할인해 450엔에 팔고 있어 낼름 집어들었다.

mp3를 들으며 날이 어두워지길 기다렸다. 한 시간쯤 지나 날이 어두워졌다. 술병을 따서 병나발을 불었다. 목구멍부터 위장까지 뜨뜻해진다. 와인샵에서 가장 싼 사케를 샀더니(525엔) 맛은 영 아닌데 그렇다고 큰 병을 사자니 다 마시려면 대책이 안선다. 일단 25% 짜리 술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 내리니 기분이 좋아진다. 도시락을 안주 삼아 천천히 술을 마셨다.

혼자 와서 3일 내내 비를 맞으며 이게 무슨 궁상인가 싶지만 한편으로는 아내와 아이를 데려오지 않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술병을 다 비우고 밥도 다 먹었다. 해변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다. 기둥에 몸을 기대고 알코올에 예민해진 정신을 파고 드는 음악을 들었다. 주로 클래식. 모처럼 히트 가요 백여곡을 mp3에 담아왔지만 들어도 순 사랑타령에 신세한탄이라 재미가 없었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술에 취하니 마음 속의 별들이 빛났다. Mendelssohn, Symphony No4 in A major op90, Andante con moto

10.24pm.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섬의 해변에 가면 항상 바람이 바뀌는 때를 기다렸다. 미소가 저절로 떠올랐다. 11pm쯤 잠자리에 들었다. 4am쯤 깼다. 들리는 거라곤 파도소리 뿐. 음료 한 병을 모두 비웠다. 근처 자판기에서 음료를 한 병 뽑아왔다. 해변을 한바퀴 돌고 텐트 안으로 기어 들어가 다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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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am. 새벽에 추워서 깼다. 텐트에서 버너를 켰다. 부러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면 사진의 EXIF 정보에 타임스탬프가 찍힌다. 집에 돌아가면 EXIF를 보고 시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디카의 또다른 용도를 개발해 낸 것 같아 흐뭇하다.


6.15am. 산 중턱에 해가 떠오르고 까마귀가 힘차게 날아오른다. 어슴프레 아침이 찾아왔다. 비가 안 온다!


6.28am. 아침은 역시 라면으로. 어묵 두 장을 얹어 변화를 주었다. 어묵이 무척 맛있다. 한국에서 처럼 포장용기에 파는 것이 아니라 그날 그날 두부처럼 만들어서 파는 것 같다. 어떤 것들은 가격이 상당하다. 라면을 다 먹고 설겆이를 한 후 코펠에 물을 끓이고 애플 티를 우렸다. 충분히 식은 다음 어제 다 마시고 빈 음료수 병에 담았다. 오늘 마실 물이다. 자전거를 타면 하루에 물을 2리터 이상 마셨다. 사막에서도 물을 거의 안 먹던 내가 그 정도면 보통 사람은 3-4리터 이상은 마셔야 할께다.

캠핑하면서 밥을 지어 먹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쌀은 한 주먹 반 정도가 대충 일인분이다. 한국에서 떠나기 전에 인스탄트 국 몇 개 사고, 천원에 두 봉지씩 파는, 물에 넣어 끓이기만 하면 되는 카레, 짜장 등의 소스를 사가지고 다니면 싼 값에 그럭저럭 다양한 식단을 꾸밀 수 있다. 맨밥에 고추장 비벼먹어도 되고.

여기 마트의 야채 코너에서 양파, 당근 따위를 보았을 때 야채밥을 만들어 먹고 싶어졌다. 야채밥이야 쉽지. 감자나 고구마, 버섯 따위를 쌀과 함께 끓여도 괜찮다. 사실 캠핑 음식은 간단하고 쉽다(하지만 가족, 친구들과 함께 가는 캠핑과 다르다). 카레 짜장 소스는 밥을 지을 때 둘둘 말아 코펠에 함께 넣어두고 밥이 다 되면 개봉해 밥에 부어먹으면 될 정도로 간단하다. 한두 홉 정도의 쌀로 짓는 밥은 평지에서 15~20분이면 조리가 끝난다. 밥 하고 나서 플레이트에 밥을 덜어놓고 밥알이 붙어 있는 상태 그대로 인스턴트 국거리를 넣고 물을 부어 끓인 후 코펠에 밥을 부으면 간단한 국밥이 된다. 아침에 점심에 먹을 계란이나 감자 삶아 두거나 아침에 밥을 넉넉히 한 다음 남은 밥은 소금과 섞어 주먹밥을 만든다.

여행할 때 미역처럼 영양가가 풍부하면서 보관, 이동이 손쉬운 식재료도 없다. 마른 미역 한 봉지면 1-2주 동안 질리게 먹을 수 있다. 야채에 고추장 넣고 그저 끓이기만 하면 되는 고추장 찌게도 있다. 돼지갈비 고추장 볶음은 돼지갈비에 전날 저녁 먹던 소주 좀 붓고 고추장 섞고 단과일 아무거나 으께 넣고 양파, 당근, 마늘 따위를 넣어 몇 시간 잼겨 놓았다가 볶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리조또도 만들어 먹는데. 이쯤되면 생존을 위해 억지로라도 밥을 꾸역꾸역 먹는 것이 아니라 '럭셔리 서바이벌'이 된다.

그런데 아침부터 라면이나 끓여먹고 있다.

7am. 이 닦고 세면 하고 텐트를 걷었다. 짐을 챙겨놓고 자전거 상태를 살폈다. 어젯밤에 체인에 기름을 듬뿍 먹여두어 체인 상태는 양호하다. 브레이크 패드의 안쪽 허브 나사 위치를 변경해 손아귀로 반쯤 브레이크 레버를 당겼을 때 앞 바퀴가 움직이지 않는 정도의 브레이크 이격을 확보했다.

뒷 브레이크 패드는 너무 닳아 이격을 좁혀도 브레이크가 잘 먹지 않는다. 오늘은 앞 브레이크만 써도 상관없을 것 같다. 뒷 짐받이에 짐을 싣고 체중을 뒤로 옮기면 뒷브레이크를 적게 잡고 앞브레이크를 잡으면 될 것 같다. 잠자가다 꿈속에서 브레이킹에 관해 좀 더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마치 활주로에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파라슈트가 펼쳐져 감속을 하듯이 몸을 활처럼 둥글게 구부려 공기저항을 증대시키면 비슷한 감속 효과가 나지 않을까? 우비를 걸치고 있으면 금상첨화다.

8.30am 관리인 아저씨가 화장실에 들러 짐을 챙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저씨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사요나라'를 외치고 떠났다. 9am. 날이 개이니 기분이 상쾌하다. 신화의 마을까지는 거리가 얼마 안되니 점심 전에 도착할 것이다.


쓰시마는 예전에 왜구들의 전진기지였다. 일부는 쓰시마에 거주하고 일부는 나가사키, 후쿠오카를 비롯한 규슈 지방에 거주하며 중앙 정부의 지배력이 약해져 내외로 곪아터진 조선에 노략질을 일삼았다. 대마도에서 쌀의 재배가 어려워 노략질 말고는 여기 사람들이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쌀이 있어야 초밥을 만들어 먹을 것이 아닌가! 웃음. 쓰시마 주민들은 심하게 말해 생계형 해적들의 후손이다. 쓰시마는 요즘 한국과의 선린우호, 화의와 평화를 가치있는 정책으로 삼았다. 기실 쓰시마는 일본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변방의 섬이고 쓸만한 부존자원이나 중대한 전략적 가치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다 대부분의 수입을 한국의 관광객을 통해 벌어들이고 있는 것 같아 보여서인지 한국과의 화의와 평화는 의미있는 정책처럼 보인다. (부정적으로 말한 것 같지만 그렇진 않다)


왜구 후손들의 마을이라고 생각하니 풍경이 새삼스럽다. 가난한 어촌 주민들치고는 복지수준이 높다. 이 작은 섬에 병원과 소학교, 중학교 등의 교육시설이 거의 2km마다 있고 문화센터와 편의시설이 온 사방에 널려 있다. 비록 도쿄나 인근 부산 만큼의 생활수준을 유지하지는 못하겠지만 젊은이들이 없어도, 부존자원과 개발여력이 없어도 여생을 부족함없이 살만한 환경이지 싶다. 그게 꼭 일본과 한국의 경제력 차이만큼이겠지?


오징어 배치고는 전등 수가 너무 적어 보이는데? 쓰시마는 낚시꾼들에게도 잘 알려진 곳인듯 하다. 전에 어디서 보니 쓰시마에 가면 하루 배를 빌려 참돔을 수십 마리씩 낚아 본전은 뽑고도 남는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낚시꾼들이 허풍이 좀 센 편이지만). 사장님을 설득해서 쓰시마로 낚시 관광을 오면 참 좋겠는데 말이야. 그런데 젠장 여긴 대체 어디지? 개짖는 소리만 요란한데.


야마네코 조심. 야마네코=산 고양이=삵쾡이. 쓰시마의 천연기념물인 듯 곳곳에서 보이는 표지판. 게들이 도로를 건너다가 납작하게 짜부러진 모습은 많이 봤지만 삵쾡이 시체는 통 보지 못했다. 제한속도 표지판이 있지만 차들이 워낙 느리게 달린다. 도로폭이 좁고 구불구불해 80kmh를 안 넘는 듯. 삵쾡이의 개채수가 100여마리 밖에 안 남았다는 말을 거의 믿지 못하겠다. 야생 고양이들의 대단한 번식력을 감안하면...


길가에 앉아 짐을 정리하는데 꽃밭에 손바닥만한 나비가 앉았다. 앗, 이놈은... 이놈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9.40am. 담배 한 대 피우면서 길가에 앉아 쉬었다. 혹시 비가 올지 몰라 뒷짐은 쓰레기 봉투로 감싸놓았다. 앞가방은 QAMM 사에서 나온 카메라 가방인데 몇 년 전 처음 출시되었을 때 운좋게 할인가로 싸게 구매했다. 핸들이 묵직해져 조향이 잘 안되는 단점과 핸들바에 고정시키는 고리가 바엔드에 안 맞아 별도의 찍찍이를 사용하는데 힘이 약해 충격을 받으면 종종 풀어지는 것, 방수가 안되는 것 빼고는 가방 자체는 훌륭하다.

훌륭한 이유: 비를 맞아도 금새 마른다. 주머니가 많아 물건 관리가 편하다. 내용적이 크다. 만약 뒷 짐받이를 제대로 된 것을 장착하면 뒷 짐받이에도 장착이 가능하다.

QAMM 홈페이지에서 QR 레버에 장착이 가능한 뒷 페니어를 3만5천원에 판매하고 있다. 뒷 짐받이는 자전거를 구매할 당시 구입한, 재질이 알루미늄으로 된 것인데 뒷짐이 무거우면 싯 포스트가 팩 돌아버려 아주 귀찮다. 싯 포스트가 돌아 싯 방향이 틀어지면 양 다리 패달링에 변화가 생겨 엉덩짝 한쪽 근육이 땡긴다. 게다가 10kg 미만의 짐만을 실을 수 있고 충격을 받으면 상하로 흔들려 여러모로 불편했다. 돈 주고 산 게 아까워서 아직 못 버리고 있다.

382에서 샛길로 빠져 고갯길을 오르락 내리락 반복했다. 땀이 뻘뻘 흘러 나왔다. 절벽이 무너져 돌조각들이 도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차량 통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사용하지 않는 도로인 것 같다. 빽빽한 삼림 탓에 시야가 도로로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지 말고 니이(도시이름)을 거쳐 들어올 껄 그랬나? 한참 GPS를 바라보며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가(GPS에 입력한 적이 없는 소로다) 신화의 마을 입구가 나타났다. 왼쪽은 신화의 마을. 오른쪽은 니이 시내로 향하는 길.


와타즈미 신사에 도착. 신화의 마을은 작은 고개 너머에 있다. 해신을 모시는 신사로 다섯 개의 문중 두개는 밀물 때 물 속에 잠긴다. 쓰시마의 대표적인 관광지.


세번째 문. 일본의 건국신화가 서려있단다. 설화 인용:


하늘의 신 니니기(彌徵藝)의 아들 히고호호데미(彦火火出見)가 잃어버린 형의 낚시 바늘을 찾아 바다를 헤매다가 용궁까지 가게 되어 용왕의 딸 도요다마히메(豊玉姬)와 결혼하여 3년간 지낸 후 낚시 바늘을 찾아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아내는 만삭이어서 같이 뭍으로 나오지 못했다. 며칠 뒤 풍랑을 타고 도요다미히매는 여동생 다마요리히메(豊依姬)를 데리고 남편을 찾아 뭍으로 나와서 바닷가에 손수 집을 짓고 들어가며 남편에게 절대로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런데 남편은 궁금증을 견디다 못해 이 약속을 어기고 안을 들여다보니 큰 뱀이 괴로워 나뒹구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에 화가 난 도요다마히메는 낳은 아이를 해변에 그대로 버려 둔 채 용궁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아이가 우가야우기아에스신이고 그 신이 다시 이모벌 되는 다마요리히메와 결혼하여 낳은 사람이 신에서 인격화된 진무텐노(神武天皇)로 일본의 초대 천황이라는 건국신화가 있다.
이곳에는 바다에서부터 도리이(鳥居)가 세워져 신사에 이르고 바닷물이 신사에까지 닿아 있는데 사실은 제사를 지내던 장소로 추정되며 여기에서 내려다보면 바다 가운데까지 도리이가 직선으로 다섯 개가 늘어서 있어 가히 용궁으로 들어가는 길을 연상케도 한다. 현재 와다쓰미 신사에서 모시는 신은 히고호호데미와 도요다마히메로서 하늘과 바다가 영합한 축복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도리이가 우리나라 쪽으로 뻗어 있어 고대 우리나라 사람이 이곳으로 온 것을 신처럼 모시지 않았을까 역사학자들은 추측하기도 한다.
신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도리이 말고도 용비늘이 떨어졌다고 용비늘 비슷한 울툭불툭한 돌이 있는 곳에 종이로 금줄을 만들어 쳐 놓고, 신성시하고 있었고, 손 씻고, 입 씻고 몸을 정결히 하고 들어오라는 바위샘도 꾸며져 있었다.



와타즈미 신사. 다른 각도에서 본 첫번째, 두번째 문. 흡사... 중국 지우자이거우의 호수 한 가운데 있던 정자를 연상시키는 분위기. 바다 속에 신사의 문을 설치한 아이디어가 훌륭하다.


이 여자는 누굴까. 앞에 동전 접시가 놓여있다. 100엔짜리도 눈에 띈다. 욕심이 생겼지만 동전을 집어둘지는 않았다.


선착장에서 셀카. 10.30am. 아소베이 파크에서 여기까지 1시간 30분. 도로가 마르니 타이어 접지력이 좋아져서 내리막에서 브레이크를 잡을 일이 없어 좋았다. 대부분 382 국도를 따라와서 커브가 완만하고 굴곡도 적어 도로는 평이한 수준. 아소베이 파크로부터 쉬지 않고 밟으면 30-40분 이내에 여기 도착이 가능할 것 같다.

옥션에서 각각 14000원씩 주고 산 져지 상/하의는 몹시 쓸모가 있다. 그전까지만 해도 살갗에 찰싹 달라붙는 져지는 민망해서 입기가 꺼려졌는데 져지를 입으니 확실히 편하다. 엉덩이의 두꺼운 패드는 안장으로 전해지는 충격을 흡수해 주고 기저귀처럼 불알을 감싸는 쿨맥스 패드는 열과 땀의 배출이 잘된다.

져지 하의를 입을 때 팬티를 입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져지를 입기 전에는 쿨맥스 팬티를 입고 그 위에 반바지를 걸쳤는데 아무리 쿨맥스 팬티라지만 한참 자전거를 타고 가면 불알이 척척해지는 찝찝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런 복장을 장시간 착용하면 엉치뼈 부근이 살살 아파온다. 져지의 가격에 거품이 너무 많이 끼어 상하의 한 벌에 보통 10만원은 우습게 나가 하이테크 로우라이프를 추구하는 21세기 테크노거지 생활을 하던 나는 애써 져지를 외면하고 있었다. 대체 져지가 왜 그렇게 비싼 거야? 이유가 없잖아?

한편으로는 자전거를 잘 타지도 못하는데 거진 선수복이나 다름없는 화려한 져지를 입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웠다. 져지를 입으려면 자전거를 잘 타야 한다...는 생각은 한강 강변로에서 자전거를 자주 타면서 사라졌다. 잘 타는 사람들에 비하면 평속 25kmh는 별로 대단한 것이 못되지만(잘 타는 사람들은 30kmh 이상 나온다. 평지 주행 평속 30kmh 란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3년 넘게 타도 그게 안 된다. 평균속도 35kmh 이상이면 자전거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인간이 아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짐승' 취급하는 것 같다) 왠만해서는 그런 '선수복장'을 추월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여겨지는 최근 상황 때문에 '내가 이제 당당하게 1~2kmh의 속도차에 연연하며 져지를 입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든 것도 사실이다.


아까 왜구, 왜구 했는데 왜인들이 고기도 잡고 틈틈히 노략질도 하던 배가 와타즈미 신사에 보관되어 있다. 야.. 말로만 듣던 그 배를 여기서 보게 되는구나... 농담이고, 설화의 주인공을 영접하기 위한 배일 것이다.


와타즈미 신사 내부. 건축 형태도 지진많은 나라치고 좀... 아니지 싶은...


무려 한글로 설명이 나오는 가이드 패널. 오른쪽 상단에 태양광전지가 보인다. '신화의 마을'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동네라고 말한다.


와타즈미 신사 앞. 신사 앞에 왠 스모장? 신사에 들어가기 전 형식적이나마 스모를 하고 들어가야 한단다. 누구하고? 도깨비하고?

신화의 마을 캠핑장 입구는 쇠사슬로 막혀 있었다. 아무도 없냐고 소리쳤지만 인근 산에 부딫혀 메아리가 되서 돌아올 따름이다. 거참 분위기가 신비스럽기 짝이 없군.

화장실은 있는데 샤워장이 없다. 수도꼭지는 죄다 뽑아놓았다. 즉 물이 나오는 곳은 화장실 뿐이다. 한 30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트럭이 한 대 도착한다. 자판기 음료 캔을 채운 후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황황히 사라진다.

이거야 원. 이 무거운 짐을 끌고 돌아다닐 수도 없고 해서 불필요한 짐을 풀어 상설 텐트 속에 감춰 두었다. 햇볕으로 땀에 절은 얼굴과 팔 다리에 물을 묻히고 간단한 짐만 자전거 뒷짐받이에 묶어둔 채 신화의 마을 캠핑장을 벗어났다. 니이 시내를 관통해 382 국도를 타고 잠깐 내려갔다가 39번 국도로 갈아타 엔쓰지를 거쳐 미네에 들러 미네마치 역사민속자료관 앞에서 오마에하마 공원으로 향한다는 계획. GPS의 경로 트랙백이 가능하므로 굳이 지도를 살펴보며 주행하지 않아도 된다. 햇살이 따갑다. 11.40am 출발.


1.20pm. 48번 지방도에서 미네로 들어서기 전 작은 개울에 멈췄다. 몹시 덥기도 하고 물이 맑아서 잠시 발 담그고 쉬어 가련다. 발만 담궜다가 손도 담궜고 머리도 거꾸로 담구고 에라 모르겠다 급기야 물 속에 온 몸을 담궜다. 우아! 정말 시원하다.

웃통을 벗어 젖히고 물 속에 드러누워 30분쯤 히히덕 거리며 놀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을 가로지르는 개울이란 이런 것일께다. 자전거를 멈추면 개울이고, 달리면 울창한 숲이고. 고개를 돌리면 바다가 나타나고. 쓰시마 만큼 자전거 여행하기 좋은 곳이 있을까? 있긴 있다. 강원도 홍천에서 인제로 이어진 길. 비록 바다는 없지만 참 호젓하고 좋은 길이다. 언제 시간내서 갔다와야겠다.


판타지 소설에서 야영할 때 토끼고기와 함께 삶아먹을 때 자주 등장하는 야생 양파? 아니면 구근식물의 일종? 토마토와 아스파라거스, 로즈매리, 코리안더 등등. 버터 한 덩이, 치즈 한 덩이, 밀 한 푸대만 들고 동부에서 황금을 찾아 서부를 향해 떠났다가 굶어죽은 사람들이 갑자기 생각난다.

미네에 도착. 니이보다 작은 마을. 아소베이 파크에서 관리인에게 니이에 자전가 가게가 있는지 물었다. 있단다. 미네에는? 미네에는 없을 꺼란다. 신화의 마을에서 니이 시내로 나와 돌아다녀봐도 자전거 가게 비슷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날씨도 맑으니 브레이크 걱정을 잊어 버리자. 타이어 그립이 좋아 헤어핀에서 어느 정도 고속 회전이 가능하다. 그래도 안전 운행.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평지라 자전거가 제법 잘 나간다.


Video: 쓰시마 미네에서 오마에하마공원 주행


작은 터널이 나타났다. 고갯마루에는 언제나 터널이 있었다. 터널이 나타났다는 것은 고갯마루에 이르렀다는 증거다. 흡사 무슨 법칙이라도 되는 양 항상 맞아 떨어져 신기하다. 일본 도로망의 규칙성을 발견한 것이다.

다른 터널과 달리 아주 오래 전에 지은 듯한 이 터널의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든다. 천정에서 빗물이 똑똑 떨어지고 그 소리가 이끝에서 저끝까지 낭랑하게 울렸다. 팅-잉잉, 팅-잉잉, 팅통-팅동-팅동, 팅-잉잉, 아침에 정비를 열심히 해 기름을 잘 먹여놓은 자전거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아늑하고 서늘한 터널, 위험하지 않은 터널 -- 뒤에서 차가 덮칠듯이 달려들어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지 않는 터널. 길지 않지만 짧지도 않아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터널. 천천히 즐기면서 통과했다. 터널이 길고 조명이 어두우면 전조등을 켜야 한다. 맞은 편의 밝은 쪽 때문에 눈 아래에 암맹이 형성되 바닥의 요철이 보이지 않는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은 자전거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382번 국도도 가끔은 좁아지는 편인데, 이런 지방도나 소도로에서는 터널 폭이 좁아 차 한 대 지나가면 간신히 지전가 한 대 지나갈 여유 밖에 없다.

터널을 통과하고 잠깐 주행하니 다시 해안 도로가 나타났다. 바닷냄새가 물씬 풍긴다. 여기는 쓰시마의 북쪽, 그러니까 한국의 남부 해안과 마주보는 면이다. 아소만이나 쓰시마의 동쪽 해변과 달리 파도가 제법 쳐서 제대로 바다 분위기가 난다.


오마에하마 공원 도착. 야영장. 수도꼭지를 틀어보니 물이 나온다. 오른쪽의 빨간 지붕의 화장실도 정상 작동한다. 관리가 허술한지 잡초가 우거져 있지만 화장실은 깨끗하다. 쓰시마에 와서 느낀 점이지만 화장실 옆에서 자도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화장실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가 없고 깔끔하게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일본 여행할 때 공원의 화장실에서 샤워도 하고 화장실 옆에 텐트를 치고 자기도 한다는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구나.


오마에하마 공원 앞 자갈 해변. 바다에서 기어 올라온 갖은 표류물 때문에 해변이 지저분하다.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것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인 듯. 바다 앞에 자갈 무덤 쌓아놓고 소원을 비나보지? 해변이 지저분해서 물이 맑은데도 발을 들여놓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다.


자갈밭이라 맨발로 돌아다니긴 힘들어 보인다.


공원을 빠져나와 옆길을 돌아 전망대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도 많고 할 일은 없고. 햇빛이 짱짱하니 오늘은 제대로 관광모드다. 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자전거 타고 지나온 길이 잘 보인다. 여기는 해발 80m. 끌바 안하고 여기까지 단숨에 올라오니 숨이 턱에 찬다. 올라오면서 헉헉대는 비디오도 찍었다. 소리가 묘해서 나름 19금이다.


Video: 오마에하마 공원 전망대 향하는 길


야생 조류의 숲 근처에 있는 추모비. 조선에서 오던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거친 조류와 파도에 떼죽음을 당해 이 비를 세웠단다. 별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다.


내 관심사는 저 맞은편에 틀림없이 있을 한국땅까지 휴대폰 전파가 닿느냐, 여기서 한국까지 휴대폰이 터지나 마느냐 하는 것이다. 그 동안 휴대폰의 배터리를 아끼려고 꺼 두었는데 켜 보았다. 안테나가 2-3개 잡힌다. 시험삼아 아내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안테나는 잡히는데 신호가 안 간다. 휴대폰을 껐다.


추모비 옆의 NTT docomo 안테나 시설물을 둘러친 철책 문을 향해 무인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아마도 움직임을 감지하여 누군가 시설물 내부로 침입하는 것을 기록하기 위한 것일께다. 그러려면 카메라를 안 보이게 설치해야지 저렇게 뻔히 보이게 설치해 두면 옆으로 돌아 다른 쪽으로 타 넘어 들어가 카메라 선을 뽑아버리면 그만이잖아? 시험 삼아 앞에서 헤벌쭉 웃으며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카메라가 움직임을 감지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나를 쫓는 기색이 없다. 저거 전원은 들어가기나 하는 걸까? 한국의 도로 이곳 저곳에 설치되어 있는 가짜 과속 방지 카메라처럼 순전히 위협용 목업이 아닐까...


일본의 유명한 영화 촬영지였다는 곳. 하! 여기서 저기까지는 고도차가 대략 100m. 내려갔다가 샛빠지게 다시 기어 올라갈 이유가 없으니 관광지고 뭐고 그냥 지나치자! 다운힐에 헤어핀이 많다. 브레이크를 살짝 살짝 잡았다. 소똥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 어쩔 수 없이 소똥을 밟았다. 소똥이 덜 말라 미끌미끌하다. 물컹거리면서 미끄러지자 머리털이 쭈볏 곤두선다.

이즈하라에 무료 족욕탕이 있는데 못 가봤다. 왠지 마음 아프다. '무료'인데.


어라? 이게 어떻게 된거지? 아까 안 올라가기로 한 길로 올라가야 하잖아? 헉헉 거리면서 올라갔다. 저 반대편에서 신나게 내려왔는데 탄력 한 번 못 받고 처음부터 순 패달질로 그 만큼 올라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을 구경이라도 하고 가는건데 -_- 절로 노래가 나오는군.


3pm. 오우미노사토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피둥피둥 살찐 황소. 흡사 serious sam에 나오는...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지축을 울리며 달려올 것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뭘 먹었길래 저렇게 근육이 우락부락한 것일까. 그러고보니 아까 내가 밟은 소똥이 바로... 황소가 빤히 노려본다. 흡사, 이봐, 거긴 길이 없어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오우미노사토 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길. 경사가 가파르고 계속되는 헤어핀 구간이라 어쩔 수 없이 끌바.


끌바하면서 찍은 오우미노사토 해수욕장의 모습. 해수욕장에 들를 생각은 없고 저 중간에 살짝 보이는 길 모퉁이를 돌면 미네로 가는 길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왠걸. 그 길은 막혔다. 끊겼다. 오우미노사토 해수욕장은 인적이 끊긴지 오래된 탓인지 수풀이 우거져 있고 길이 막다른 골목이다. 어쩔 수 없이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기어비 1:1로도 숨이 가쁘다. 오르다 말고 생각했다. 빌어먹을. 이렇게 힘들 바엔 해수욕장에서 놀다 가자. 다시 내려왔다.


저 바다 너머는 한국이다. 바닷물이 정말 맑다. 아무도 없는 해수욕장에서 혼자 생쑈를 하며 놀았다. 벌거벗고 물 속에 들어갔다. 뭐 보는 사람도 없으니. 성년이 지난 후 벌거벗고 물놀이를 한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다. 동해의 무릉도원 계곡에서, 중국의 창산에 말 타고 놀러갔을 때, 도미토리의 여자 샤워실에서 모르고 샤워하다가 벌거벗은 여자들과 마주친 정말 인상깊었던 기억 정도? 그래도 사진 찍을 때 아랫도리는 걸쳤다. 동영상도 찍었는데 카메라가 기울어 한참 쇼를 하고 난 후 플레이를 눌러보니 하늘만 찍혀 있었다. 거참. 다시 할 수도 없고.

해변에서 놀다보니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4pm 무렵 개울가에 옷가지를 빨고 힘겹게 끙끙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황소와 마주쳤던 곳에 다시 이르렀다. 왠 할아버지가 인사를 한다. 곤니찌와. 곤니찌와라니. 그거 점심 인사인데 저녁에 해도 되는건가? 부에나스 노체스가 무심결에 튀어나왔다. 워낙 이 나라 저 나라 인삿말을 배워 인사할 때면 몹시 헷갈린다. 아주 미치겠다. 옷가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겸면쩍어서 허겁지겁 지나갔다. 어쩐지 저 소새끼가 바닷가에서 나혼자 생쑈한 걸 노인네한테 일러바친 것 같은 쪽팔리는 기분이다. 근처에서 까마귀도 까악까악 울어댔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비가 올 것 같다. 도로는 끊임없는 오르락 내리락이다. 땀이 뻘뻘 흘러 내렸다. 고개 막바지에 이르렀다. 미네까지 쭉 뻗은 내리막. 신나게 내려갔다. 미네에서 쓰시마 패밀리 파크 쪽의 해변 도로를 따라갔다. 하루종일 별로 먹은 것이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니 배가 고프다. 자판기에서 레모네이드와 로얄밀크티로 배를 채웠다. 로얄밀크티는 인도에서 먹던 짜이와 맛이 같았다. 설탕을 덜 탄 듯 싶지만. 그리고 소로로 접어들어 줄곳 해변도로를 달렸다. 평탄해서 꾸준히 시속 25kmh가 나온다.


탄력을 있는 대로 받아 평지에서 속도가 무려 30kmh를 오락가락 한다. 저 멀리 고릴라 두상을 닮았다는 섬이 보인다. 쓰시마에서 석양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데, 유감스럽게도 구름이 많이 끼었고 5pm이니 해가 지려면 아직 멀었다. 힘차게 패달을 밟았다.

다시 오르락 내리락, 산 중턱을 싸고 도는 헤어핀 코스가 이어진다. 내리막길에서 고속 주행하다가 맞은편의 차를 보았다. 내쪽에서는 안쪽으로 90도 꺽어지는 코스다. 각을 줄이기 위해 차선 중앙으로 주행하고 있었다. 순간 방심해서 자전거 방향을 튼다는 것이 오른쪽, 그러니까 차쪽으로 틀어버렸다. 한국과 달리 차량의 진행 방향이 도로 왼쪽인데 지난 3일간 익숙해졌다고 믿고 있었지만 의식과 다르게 무의식적으로 평소처럼 도로에서 위험할 때는 오른쪽 구석으로 틀어버린 것이다.

브레이크를 잡았다. 자전거가 지지직 미끄러진다. 자동차도 브레이크를 잡는 것이 보인다. 자동차 왼쪽 본넷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탄력을 회복한 자전거가 왼쪽으로 기울며 자동차와 오른쪽 길 틈새 사이로 지나갔다.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죄송하다는 말이라도 해야 하지만 참 빌어먹게도 지금 브레이크가 제대로 안 먹는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완벽한 사고 케이스다. 차창을 통해 공포에 질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아줌마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방금 한 것이 자전거 드리프트다. 솔직히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타이어 타는 냄새만 살짝 맡았다. 희안한 것은 저 드리프트를 맨정신에서는 성공시켜 본 적이 없다. 공포 때문에 근육이 위축되어 브레이크를 너무 일찍 밟던가 너무 늦게 밞아 자전거가 휘청대기 일쑤였다.

뒤늦게 솟구친 아드레날린으로 머리가 멍하다. 내가 미쳤구나. 아아... 터널을 통과했다. 곧 니이 시내가 나타났다. 수퍼에 들러 쇼핑했다. 아직도 정신이 나간 것처럼 멍하다. 아줌마는 얼마나 놀랬을까? 그 자동차가 조금이라도 속도가 빨랐더라면, 그 자동차가 조금이라도 늦게 브레이크를 밟았더라면 나는 헤드라이트 모서리에 다리를 부딫히면서 (슬로우모션으로) 자전거 차체가 급격하게 왼쪽으로 틀어졌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틀어지면서 몸이 회전하여 한 바퀴 휘리릭 돌고 차체의 왼쪽 유리창에 오른팔을 부딫힌 다음(쾅!) 도로 오른편으로 튕겨 나갔을 것이다.


젤리를 샀다. 100엔이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쳤다. 정신 좀 똑바로 차리고 다니자.


생선까스도 샀다. 이제 주행 중에 mp3 귀에 꽂고 다니지 말자.


밥도 한 공기 샀다. 딴 생각하지 말자. 밥에 집중하자.


내가 정말 죽을라고 환장했지. 꽁치 간장 조림도 샀다.


아사히 생맥주 500ml. 5%, 김치 한 봉지. 김치에 어찌나 설탕을 많이 탔는지 달달해서 먹고 나면 인상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이게 무슨 김치야... 기무치지.


아무도 없는 캠핑장에서 안주, 반찬, 밥, 생맥주를 배불리 먹고 마셨다. 6.20pm.


관리인은 안 오려나 보다. 관리사무소 근처에 차가 한 대 섰다가 내 기척을 느꼈는지 황급히 사라진다. 캠프장에 바로 붙어 있는 일본 정원과 가옥 한켠에 불이 켜졌다. 화장실에도 불이 들어왔다. 비가 올까 염려스러워 정자 안에 텐트를 쳤다. 화장실에서 땀에 절은 져지를 빨았다. 자전거에 기름칠을 다시 했다. 브레이크 패드의 이격을 좀 더 좁혔다. 이제 거의 한계다. 사고 기억은 잊어버리자. 소심해 지면 더 큰 실수를 하게 된다.


7.50pm. 밥과 맥주를 다 먹었다. 원래는 조금 남겨 아침에 라면에 밥 말아먹고 반찬하려던 것인데 긴장하고 흥분한 탓인지 김치 약간을 빼고 그 많은 양의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었다. 신화의 마을 캠핑장 전경. 뒷쪽에는 아이들 놀이기구와 캠프 파이어장. 화장실 따위가 있다. 오토 캠핑장과 함께 미리 쳐진 천막을 대여하기도 하나 보다. 천막 안에 들어가보니 냄새가 퀴퀴하고 습해서 도저히 안에서 자고 싶은 생각이 안든다. 저 맞은편 끝은 선착장으로 바다와 인접해 있다.

8pm. 해가 완전히 졌다. 개구리 합창 소리가 왼쪽에서 들린다. 오른쪽에는 반딧불이가 깜빡이며 날아다닌다. 반딧불이를 대체 얼마만에 보는거냐... 삭막한 도시 생활이라니... 장작을 몇개 꺼내 캠프 파이어나 해 볼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 먹었다. 돈도 안 내고 캠핑하는 중인데 혹시라도 지나가는 사람의 이목을 끌어 좋을게 뭐 있겠나 싶다.

먹은 것이 별로 없어 그동안 완전 소화가 되었는데 오늘은 3일 만에 화장실에서 큰일을 봤다. 일 보는 동안 모기들이 엉덩이와 불알을 물었다. 거참 긁기 민망한 곳을 물어버리네.

9pm. 텐트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날이 비교적 맑아서 인지 별로 춥지 않다. 눈을 붙였다. 12시쯤 깨었다. 가랑비가 내리고 반딧불이가 좀 더 늘었다. 개구리는 우렁차게 울다 말다를 반복한다. 캠핑장을 산책했다. 2am. 폭우 소리에 설핏 잠에서 깨다. 4am. 쏟아지는 빗소리에 다시 잠에서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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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잠들었는지, 밤에 깼다. 12시. 바람 소리가 요란하다. 곧 이어 쏴아- 비가 오는 소리. 억수로 비가 내린다. 다시 잠들었다. 쏴아- 하는 소리에 깼다. 2am. 여전히 폭우가 쏟아진다. 버킷으로 퍼부을 듯이 쏟아지는 빗물. 물이 튀겨 목재 바닥이 젖으니 춥다. 자전거에 빗물이 튀긴다. 자전거를 여자 화장실 안으로 끌어 넣었다.

텐트 안에 버너를 들여와 물을 끓였다. 금새 훈훈해졌다. 따끈한 물을 마셔 속을 따뜻하게 데웠다. 캠핑 중에 추울 때는 물을 끓여 먹는 것이 최고다. 체온을 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체내에 따뜻한 액체를 주입하는 것이다. 체온을 올리고 버너로 텐트 공기의 온도를 높이고 이미 한번 끓었던 물이 흡수한 잠열이 천천히 방사되는 동안 텐트는 따뜻하게 유지된다. 어렸을 적에 저런 아이디어를 냈을 때는 내가 참 꾀돌이구나 싶었는데, 산악인들 대개가 텐트 속에서 추위를 이기기 위해 물을 끓이고 커피, 차를 마셨다.

텐트 바깥에서 관리인이 뭐라고 웅웅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보니 어젯밤 관리인이 떠나기 전에 하치... 뭐뭐라고 그랬던 것 같다. 수첩에 일본어 숫자 발음을 적어둔 것을 어젯밤에 잠깐 읽었다. 하치는 8이었지. 잠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은 아침 8시... 좀 더 자자.

9am에 깨었다. 텐트 바깥으로 고개를 내미니 찬 바람이 휙 분다. 텐트 속으로 머리를 들여놓고 어젯밤에 코펠에 담아놓은 물을 끓여 사제 스프를 듬뿍 퍼 넣고 라면을 끓였다. 금새 텐트 내부가 훈훈해진다. 뜨거운 라면을 먹으니 살 것 같다.

새벽 내내 내리던 비는 이슬비로 바뀌었다. 간단하게 헛둘헛둘 체조를 하고 텐트를 접었다. 텐트 등속의 캠핑 장비와 오늘 주행에 필요한 장비를 제외한 나머지 물건을 바리바리 싸서 샤워실 옷장 칸 너머에 올려두었다.

관리인 아저씨가 나타났다. 그에게 텐트 등속을 저 위에 올려놓을테니 저녁 때 사정 봐서 텐트를 바깥에 치겠다고 말했다. 알아 듣는다. 햐, 거참 희안하다. 한국어, 영어로 되는대로 말하면 대충 말이 통한다. 따로 일본어를 배우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접자. 관리인이 '키요츠케테' 라고 말했다. 하핫. 아는 문장이다. 일본 애니에서 들었던 문장이다. '몸 조심하쇼'. 댕큐~


아소베이 파크를 빠져나와(9.30am) 만제키시바(시바가 다리라는 뜻인 듯)까지 단숨에 갔다. 쓰시마는 원래 하나의 섬이었는데 일본군이 배를 통과시킬 목적으로 산 하나를 박살 내어 물길을 틀고 그 사이에 다리를 올렸다. 다리가 조그맣고 별볼일 없는데 여기가 쓰시마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로 소개되어 있다. 설마 고작 40여m 폭의 물길을 내고 일본인들이 파나마 운하를 만든 것 같은 흐뭇한 착각에 빠진 것은 아니겠지? 이 다리만 보더라도 쓰시마에 얼마나 볼꺼리가 없는지 알만하다.

다리 옆 휴게소에서 담배 한대 빨고 한가하게 짐을 다시 정리했다. 가랑비가 폭우로 바뀌었다. 일본 야후 기상정보를 뒤져 찾아낸 어떤 기상 캐스터는 20년 동안 기상예보만을 전문으로 하던 아저씨인데 후덕하게 생긴 미소띤 얼굴에는 프로페셔널의 자신감이 만면에 철철 넘쳐흘렀다. 그 양반의 예보에 따르면 올해 장마는 어이없을 정도로 일찌감치 끝났고 오키나와와 규슈에서 장마전선이 멀찌감치 이동했으며 쓰시마의 날씨는 한 동안 흐리겠지만 앞으로 3일 동안 비올 확률은 40%가 안된다고 했다.

분명히 그랬다. 첨단 전자기술과 훌륭한 기상과학에 세계에서 몇 대 안 되는 고성능 슈퍼 컴퓨터, 그리고 20년의 내력이면 아무리 비선형 동역학중 가장 어려운 체계라는 기상현상 예측이라지만 이제는 일기예보를 제대로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20년을 해 먹었으면 그동안 쌓인 '감'으로 찍기라도 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본이 왜 한국하고 똑같은 거냐?

목구멍으로 욕설이 치밀었다. 참자. 나잇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좋지 않은 상황에 부닥치면 자동사처럼 튀어나오는 욕설을 자제해야지, 애도 있는데. 이제부터는 욕이 튀어나올 때마다 노래를 부르자.

폭우를 보자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기분이 저조해졌다.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섬이라서 하늘에 고작 구름 한 조각 떠 있어도 비가 내리는 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하루종일 비가 온다는 건 좀 심하지 않은가. 특이한 것은 이게 분명히 빗속에서 찍은 사진인데 빗자국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메라를 비롯한 작은 장비들은 집에서 음식을 쌀 때 쓰는 요리용 포장 비닐로 하나하나 쌌다. 요리용 포장 비닐은 무게가 거의 없을 뿐더러 크기가 알맞아 가방 속의 짐을 싸기에 적합했다.

텐트를 넣은 큰 배낭은 천몇백원을 주고 산 75리터짜리 쓰레기 봉투로 쌌다. 예전에는 김장용 비닐을 문방구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몇 군데 집 근처 문구점을 들러도 비닐을 팔지 않아 궁리 끝에 쓰레기 봉투를 생각해 냈다. 쓰레기 봉투는 그 목적상 비닐의 두께가 두껍고 튼튼하게 박음질되어 있어 내용물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가방을 쓰레기 봉투로 싸 놓으니까 정말 그럴듯 했다. 여차해서 우렁차게 노래가 튀어나올 상황이면 쓰레기통에 짐째 던져 버리고 아베 총리를 모욕한 후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노래는 그만 부르고 가자. 잘 가다가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어어...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는다. 어.. 이러면 안되는데... 어어... 흙길이나 빗물 아스팔트에서는 자전거로 드래프트가 가능하다. 고속으로 코너를 회전할 때 뒷 브레이크와 앞 브레이크를 적당히 밟아주면서 자전거 차체를 기울이면 자전거가 기운 채 움직이지 않는 타이어가 아스팔트에서 미끄러진다. 원하는 만큼 미끄러졌을 때 회전방향 반대편 패달을 강하게 반바퀴 밟으면서 브레이크를 풀어주면 코너에서 직각 회전이 가능하다. 어쩌다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죽지 않으려고) 다시는 써보고 싶지 않다. 얼마만한 속도에 얼마나 미끄러질지 가늠이 안된다. '진짜' 산악 자전거를 타고 비포장 다운힐을 60kmh로 내려가는 것을 신나해 하며 이니셜D처럼 자전거로 '공도최속이론'을 완성할 생각이 전혀 없다. 멀쩡하게 살아서 집에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관광이다.

그렇게 무서운 것은 아니지만 아내는 요 며칠전 내가 자전거 타다가 두 차례나 사고날 뻔 한 적이 있은 다음 날 왜 헬멧을 안 쓰고 다니냐고 바가지를 긁었다. 내가 죽으면 자기는 과부가 되는데 아이를 대체 어떻게 키워야 한단 말인가? 항상 감정이 앞서고 비논리적인 아내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조심하자. 아내가 여행가기 전 만원짜리 여행자 보험을 들어줬다. 보험 들기를 미룬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아내의 바가지 이후 안전 운행 하겠다고 마음 먹었고 그래서 60kmh 이상은 안 하련다.

헬멧을 썼더라면 빗속 주행이 힘들었을 것 같다. 자전거 주행할 땐 항상 캡을 썼다. 챙이 안경을 적당히 가려줘서 빗물이 안경에 덜 닿는다. 비올 때는 캡이 최고다.

폭우 속에서 내리막길을 53kmh로 미친듯이 내려가(다행히 헤어핀이 아니다) 패달링을 안한 채 오르막길 중턱에서 자전거를 자연 정지시켰다. 상황을 좀 더 살펴보려고 자전거에서 내렸다.

빗줄기 때문에 안경알에 빗물이 방울져 있다. 얼마전에 6만원 주고 산 초발수 코팅 렌즈란 건데 이런 비에는 거의 쓸모가 없다. 브레이크 패드가 거의 다 닳아 위어라인이 사라졌다. 브레이크 레버를 끝까지 당겨도 패드가 림에 얄팍하게 닿는 정도, 림은 패드의 합성 고무(alloy면 합금일텐데 재질이 왜 사각사각하는 단단한 합성고무처럼 느껴질까?) 가 남긴 검은 띠로 시꺼멓게 뒤덮여 있다. 흠... 문제군.

체인을 살펴 보았다. 체인은 기름, 물, 먼지가 떡진 채 붙어 있다. 손가락으로 문지르니 쫄깃쫄깃한 본드같은 것이 묻어나온다. 체인이 뻑뻑하다. 한 3일 비를 맞았더니 체인도 맛이 갔다. 거참... 문제야.

일단 자전거를 질질 끌고 언덕을 올라가서 T자 도로 교차로의 인도에 자전거를 세웠다. 자판기에서 청량음료를 뽑아 마셨다. 하도 비를 맞아서 이젠 머리가 다 아픈 지경인데 음료수를 마시니 목부터 위장까지 시원한게, 평안해진다. 어떻게 할까. 이즈하라에 자전거 가게가 있을꺼야. 어디 마트에 들르면 체인에 칠할 방청제나 기름 정도는 구할 수 있겠지. 382번 국도는 비교적 평탄해서 브레이크를 심하게 잡을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비인데, 희망을 갖자.

자전거로 하는 첫 해외 여행이다. 앞으로 많은 여행이 내 인생 앞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수업료를 치르지 않고 낼름 얍삽하게 집어먹겠다는 생각은 버리자. 자전거는 정직하다. 자전거는 몸의 일부같은 것이라 버리고 떠날 수 없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이란 책은 주제가 여행이고 자전거는 부자재 내지는 까메오에 불과했다. 자전거이기에 가능했다는 여행에 대한 격찬과 화려한 감상적 너즈레는 넘쳐나면서도 끊임없이 손을 봐야 하는 자전거 정비에 관해선 거의 말이 없다시피 했다. 인문학적 감수성의 너저분한 나열이 자전거 여행을 이끄는 동인이 될지는 모르나, 워낙 재미가 없고 혼자 치는 딸딸이 같아 무의미해서 집어던진 책이 되었다.

회의론자의 철학적 성찰이 넘치는 zen and the art of motorbike maintenance 같은 책이나 '나는 걷는다' 같은 책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나는 걷는다의 주인공은 손수레를 끌면서 죽어라고 걷는다. 그의 손수레는 자주 고장이 나고 자주 손을 봐야 했고 손수레가 없으면 불가능한 여행이었고 그래서 손수레 때문에 여행을 멈추기도 한다. 그게 정상이다. 자전거 여행에 왜 자전거가 빠지냐?

우스개로, '자전거에서 가장 중요한 부속이 뭐냐'는 질문이 있다. 정답은 엔진이다. 자전거에 타고 있는 인간 엔진. 인간 엔진도 정비가 잘 되어 있어야 한다. 인간 마음의 정비는 건실하고 튼튼한 뚝심과 의지, 그리고 세계에 대한 건전한 회의를 갈고 닦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공학이 세계를 유지하고 개선하며 인류에게 새로운 비전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또한 믿는다. 그래서 쓰잘데기 없는 미사여구의 허튼소리 대신 생존에 필요한 자전거 정비 기술을 배웠다. 심지어 벽을 향해 치킨런을 하며 브레이크 감각을 익히기도 했다. 아스팔트에 납작하게 죽어있는 개구리같은 모양으로 벽에 아주 많이 박았다. no pain, no gain.

급경사의 다운힐 앞에서 자전거를 끌었다. 허허 웃음이 나왔다. 어떤 아저씨가 경험한 진부령의 그 눈물나는 사연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빙고. 커다란 VALUE 상점과 100엔 샵이 연달아 붙어 있다. 쓰시마 관광 안내지도에서는 100엔 샵도 쓰시마의 관광 포인트였다. 다이소와 뭐 다를 것도 없는 100엔샵이 관공지라니, 쓰시마, 너 정말 그렇게 볼 게 없는 곳이냐? 하여튼 100엔 샵에서 마땅한 물건을 구하지 못했다. 찾는 것은 방청/윤활제다. VALUE에도 없다.

그보다는 자전거에서 가장 중요한 부속인 엔진의 출력을 유지하기 위해 뭣 좀 먹어야겠다. 메가 밀크와 세일중인 빵을 사서 간단히 요기했다. 단시간에 에너지로 가장 잘 바뀌는 것은 탄수화물인데, 직접적인 경험이나 여러 문서를 살펴보더라도 바나나는 가장 극찬을 받는 음식이다. 포도, 감자, 고구마 따위도 마찬가지였다. 마땅한 대용물이 없을 땐 빵과 밥이 최고다. 운동이 끝난 다음에는 탄수화물보다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격렬한 운동으로 파괴된 근육을 재생시키고 에너지를 축적해 둬야 하니까?

거리 상으로 얼마 안 남은 이즈하라에 가면 맛있는 거 많을테니 지금은 대충 때우자. 우유가 맛있다. 한국에서 지지리도 맛 없는 것으로 손꼽을만한 것이 우유와 오렌지 쥬스, 그리고 맥주다. 셋의 공통점은 물이라도 탄 것인지 맹숭맹숭해서 전혀 진한 맛이 안 나오고 특히 오렌지 쥬스는 단맛을 내려고 설탕 또는 아스파탐이라도 탄 것 같은 기분. 옆의 원예상가에 들러봐야 되는 거 아닌가 싶다가 이즈하라에 가면 자전거 상점이 있을테니 거기서 브레이크 패드를 교체하면서 기름칠도 하면 일석이조겠거니 싶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

교차로에 서 있다가 흘낏 뒤를 보니 건축용 자재를 판매하는 가게가 눈에 띄었다. 무작정 가게로 들어섰다. 히라카나, 가타카나 조차 읽을 줄 모르면서 선반에 놓인 스프레이 캔들을 살펴보았다. 옷! 우연찮은 발견. 용도를 그림으로 설명하는데 자전거 스프라켓이 그려져 있다. 방청제인지 자전거 오일인지는 모르겠다. 소레, 도조(이거 부탁합니다) 하니까 700엔이라면서 뭐라고 중얼중얼 거린다. 까막귀라 700엔을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냥 천엔 짜리 지폐를 건네니 300엔을 거슬러주면서 나나 하야쿠 라고 말했다. 하야쿠는 엊저녁 공부하기로 100이었다. 나나는 아마 7? 그러니까 700엔. 캬. 죽인다. 일본어를 하나하나 배워가는 이 맛.

가게 처마에 쭈그리고 앉아 작업 장갑을 껴고 체인 횡축을 앞뒤로 비틀어 보았다. 뿌지직 뿌지직 소리가 난다. 기름에 쩔은 모래 알갱이들이 강철 체인을 마찰하면서 나는 기분 나쁜 소리다. 불과 3일 전에 등유로 깨끗이 닦은 체인인데 이 모양이다. VALUE에서 슬쩍한 수건(가게의 포장대 앞에 비닐이나 박스로 포장하고 나면 손을 씻으라고 걸어둔 수건. 어쩔 수 없었다. 타월을 팔지 않는 것 같길래...)을 1/4 찢어 체인을 한번 죽 닦아주고 방청제 캔에 노즐을 꽂은 후 아낌없이 듬뿍 뿌렸다. 가스 압력이 높아 뿜어져 나오는 액체가 기름때를 밀어낼 땐 흡족했다. 스프라켓, 디레일러, 프리휠셋에 뿜어대니 기름때가 밀려나가면서 말끔해진다. 정말 기분이 째지게 좋다. 한참 작업하는데 가게 주인 아저씨가 나와 쳐다본다. 이것저것 묻길래 체인이 빡빡해서 기름을 치고 있다고 손짓발짓을 하니 자전거를 들어주며 기름칠을 도와준다. 아저씨에게 '자전거 가게'가 이즈하라에 있냐고 물었다. 어리둥절해 한다. '바이크 샵' 하니까 알아듣는다. 손가락으로 시내에 몇 개 있단다. 가서 물어보라는 것 같다. 댕큐 입니다.


드디어 이즈하라 시내 도착. 내 실수의 총합체인 이즈하라 항구에 들러 일단 눈도장을 찍었다. 오후 12.30pm.

문제 한 가지를 해결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져서 일단 가볍게 관광이나 하자고 마음먹었다.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 팜플렛에 다 적혀 있고 비문에도 적혀 있으니 기념물 설명은 생략. 꽃은 대체 누가 갖다 바치는 것일까? 이런 정성이라니. 결혼 축하 기념비 앞이 유적지라 한참 발굴공사가 진행중이다. 역사에 무지해 덕혜옹주는 듣도 보도 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비문 내용을 보니 정략결혼을 한 듯.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 앞에 있는 고려문. 야자수와의 묘한 조화. 조선의 통신사들이 쓰시마를 방문하면 이 문을 지나친 것 같다.



반쇼인 신사 입구


반쇼인: 쓰시마를 지배했던 여러 군주들의 위패가 세워진 사당. 쓰시마의 대표적인 관광지. 문이 닫혀 있어(휴관일?)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반쇼인


반쇼인


조선통신사비. 역시 관광사진은 재미가 없다. 조선통신사들이 오락가락 하던 시절에는 일본에 '햐쿠라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좋은 물건, 외래품을 뜻하고 어원을 살피면 백제에서 온 물건이란 뜻이란다.


1pm. 비가 잠시 그쳤다. '호카호카테' 라는 도시락 전문점에서 450엔 짜리 도시락을 사서 그 앞 공원에 앉아 먹었다. 역시 밥맛이 좋다. 일본인은 음식을 일종의 소우주라 생각하여 음식에 칸을 쳐두고(서로를 분명하게 구분짓는 선을 그어) 하나하나 서로 다른 맛을 즐긴다고 했던가? (개뻥 같은데) 오전 내내 비 맞다가 따뜻한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니 살 것 같다. 구분은 시장기 해소와 별 상관없다. 음식의 양과 질은 음식 모양과 상관 없는 한 단계 높은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이다! 나는 영양가를 잘근잘근 씹어 먹는다! 이게 기쁨이고 삶의 의미이고, 고생 끝에 맛있는 밥을 먹고 오이시 하면서 오열하는 남자의 인생이다!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웠다. 나무 젓가락(와르바시?)이 한국에서 쓰는 것과 달리 목재의 밀도가 높고 나무 젓가락을 포장한 종이 안쪽에 이쑤시개가 들어있는 점이 한국과 다른 듯.


빗속에서 노래를 멈추게 해 준 이름모를 방청제/오일 anyway. 여러 가지 공구와 자전거 스프라켓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영어로 설명되어 있으면 더 좋았을텐데.

일본에서 어설픈 일어를 쓰는 것보다 영어를 쓰면 더 대접받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 말을 철썩같이 믿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개화 후 물밀듯이 들어온 서양문물 탓도 있고(일종의 화물숭배) 일본어에 상당한 비율로 편입된 외래어의 사용 밀도로 보건대 일본인들이 서양 것에 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쨌거나 영 단어와 한자 사용비중이 높은 한국어를 섞어 쓰는 것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비슷한 한자문화권인 중국 여행할 땐 성조 때문에 말이 안 통해 환장하는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면 일본과 한국이 참 가까운 나라인 것 같다.


하치만구 신사. 쓰시마를 주행하며 길가에서 무수한 신사를 접했지만 이 정도 규모는 처음. 일본의 신사는 애니미즘의 본거지. 모든 (움직이는, 또는 움직이지 않는? 정지도 애니메이션의 여러 동태 중 하나니까) 것에 정령이 깃들어 있단다.


그런데 신사가 둘로 나뉘어 있다. 둘이 하나인지 둘이 둘인지 모르겠다.


바로 옆나라지만 일본 문화에 관해 아는 것이 없다. 탑의 형태로 보건대 지배자/지도자/계급자의 신분과 지위에 걸맞는 일종의 위령탑이 아닐까 싶다.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구분하는 것일까? 둘이 둘이라면 하나는 실존했던 인물의 기념비가 되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민간 정령신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무언가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아닐까? 하치=8이니까 8신을 모시는??


뭐 일본의 정령신앙 체계에 관해 아는 것이 없다. 신사 입구 양 편에 여우 상이 많고 여우가 재물을 상징한다는 얘기 정도를 알 뿐. 사진의 해태 같이 생긴 짐승은 고마이누라 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 뜻이 '용감한 고구려개'라고 들었다. 말 타고 달리는 고구려인을 쫓아다니는 사납고 충직한 그... 맛없어 보이는 강아지구나.


왼편에 말이 보인다. 사람이 안 타고 있다. 그럼 혹시 대마도에 전래된 우수한 외래말에 대한 숭배...?


아. 이건 안다. 물을 떠서 왼손을 씻고 다시 오른손을 씻고 그 다음에 손바닥에 물을 담아 살짝 맛을 보고, 저 타월에 물 묻은 손을 닦는 것이지? 한국의 절간에서처럼 지나가는 과객의 목을 축이는 우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사에서 예의를 차리기 위한... 인간의 방법과 신령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겠지. 손은 씻는데 발을 안 씻는 것은 신령이 하도 신령스러워서 신전에 범접하지 못하게 아예 사전에 차단한다는 뜻이겠지. 같은 만신을 섬기는데 인도는 내부신전까지 사람의 발길을 허용하는 반면 일본은 내부 신전에는 사람이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고 사제만 접근하게 되어 있는 듯. 일본인들이 만신숭배에 관해 인도에 친숙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렇게 알만했다.


돌로 만든 위패인듯. 돌은 영원하니까. 그런데 순 김씨네. 하하


솔직히 말해 예술적인 감각은 좀...


허걱. 신사에 왠 폭탄들이지? 일본산 극우 원숭이들이 불현듯 생각났다. 이 사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저기 어디야.. 교토의 몇몇 건물들 빼고는 일본건물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없다. 그런데 왠 새끼줄일까... 새끼줄의 보편적인 의미는 차단과 금지 였던 것 같은데(한국의 경우) 저건 무슨 의미일까. 일본인의 상징 체계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바로 옆나라인데 아는게 전혀 없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분위기가 을씨년스럽다. 하치만구 신사에 마리아를 섬기는 사당이 있다던데 혹시 저것 아닐까?


하여튼 쓰시마(시마는 아마도 섬이란 뜻일께다. 다께시마, 쓰시마 등등) 여행중 여러 신사를 보며 느낀 점은 을씨년스럽고 괘괘하여 인간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 머무르거나 쉴 공간이 없어 보인다는 것. 저 나무는 아마 녹나무인 것 같다.

관광은 적당히 접고 자전거 가게를 찾았다. 근처 어딘가에 쓰시마 관광물산협회(visitor center)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찾아가 봤지만 보이지 않고 공사중인 건물만 보인다. 옆에 향토민속관에 들어가 비지터 센터가 어딘지 물으니 공사중인 건물을 가르킨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는 동안 인부들이 제지하지 않는다. 나와서 조선통신사 비석 옆 건물로 가니 문이 닫혀 있다. 뒤돌아서자 향토민속관에서 관광물산협회를 물어보았던 아가씨가 서 있다. 서로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해보니 이즈하라 항에 관관안내소가 있다고 가르쳐 준다. 예쁜 아가씨다. 아리가또 하니 활짝 웃는다. 얼기설기한 이빨이 보인다. 이빨이 그래도 친절이 예쁜 아가씨다.

이즈하라 항에 가니 수많은 한국인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관광 안내소의 할머니에게 바이크 샵을 물으니 항구 앞의 가게를 가르쳐 준다. 빗속을 달려 항구 앞의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진열된 가게로 갔다. 브레이크 패드를 보여주며 부품이 있는지 물으니 없단다(이이에). 그러면서 다른 가게를 가르쳐 주었다. 그 가게에 가니 일본의 전형적인 생활 자전거를 수리하는 곳이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내 자전거에 맞는 브레이크 패드는 자기 가게에 없단다. 친절하게 지도를 보여주며 382 국도에 면한 한 가게를 짚어 주었다. 가게에 들르니 역시 부품이 없단다.

여기저기 자전거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오후나에나 가미자카공원 등에는 들르지 못했다. 시간이 꽤 되어서 유타리랜드 쓰시마나 쓰시마후루사토 전승관, 가네다성유적지도 방문하지 못할 것 같다. 이즈하라 시내만 바둑판 훑듯이 샅샅이 쏘다녔다. 시내 구경도 할만하다. 쓰시마에 지진이 있던가? 건물이 나즈막하니 2층 이상 가옥이 아주 드물었다. 쓰시마에 별장 한 채 있어도 나쁘지 않겠다.

무가저택(사무라이 저택; 부케이시키) 부근을 두리번 거리며 배회했다. 자전거 가게가 통 보이지 않는다. 이즈하라 시내는 생각보다 크기가 작다. 시내 중심부에는 모스 버거 매장이 있다. 배가 불러서 모스 버거를 맛보긴 좀 그렇고. 3.30pm.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가다가 마트에 들러 저녁꺼리도 준비해야 한다. 아쉽지만 쓰시마 특산물이라는 메밀소바(이리야키소바)를 못 먹어봤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실망한 채 가게 앞에서 브레이크 패드의 허브 암나사와 브레이크 와이어의 긴장 정도를 조절해(이미 브레이크 레버의 앞 나사를 돌려 패드의 압박 정도를 조절하는 범위는 지났다) 어느 정도 브레이크가 말이 듣게 손봤다.

브레이크가 이 모양인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382국도에서는 크게 문제가 없다. 또는 날씨가 개이기만 해도 문제가 안 된다. 내일 신화의 마을 까지는 아소베이 파크에서 30km 안팎의 거리다. 브레이크 때문에 상당히 위험한 상황인데 마음은 그지없이 평화로웠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패달을 밟아 이즈하라 시내를 빠져나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VALUE에 다시 들러 저녁꺼리를 흡족하게 장만했다. 대형마트의 카운터 앞에는 식수대가 있다. 식수대에서 빈 물병이 판매된다. 빈 물병에 물을 얼마든지 담을 수 있다. 물은 찬 물과 뜨거운 물이 모두 나온다. 그런데 물은 별로 마시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대신 음료수만 마셨다.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른 쓰시마 그린 파크. 저 멀리 미쓰시마마치 해수욕장이 보인다. 쓰시마 그린파크 자체가 훌륭한 캠핑장이다. 여기저기 엄폐물을 잘 이용하면 돈 안 들이고 캠핑이 가능할 것 같다.


인구중 대다수가 노인과 어린이들 뿐이고 청년이 드문 쓰시마의 복지시설은 정말 훌륭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길래 이렇게 훌륭한 공원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인구도 별로 없으면서.


이건 뭐지? 애들 놀이기구 같은데?


한국 같았으면 사람들도 거의 방문하지 않는 저 작은 폭포의 수도꼭지를 잠궈 놓았을 터인데... 아내한테 전화하려고 전화기를 찾았지만 domestic 전용. 공중전화에 ISDN 외부 연결 포트가 달려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일본도 작년인지 제작년인지 FTTH가 도입된 상태인데 ISDN을 쓰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쓰시마 그린 파크에서 아소베이 파크까지는 30분이 채 안 걸렸다. 관리사무소의 문은 걸려 있다. 관리 사무소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소만 전경. 섬의 침강에 의해 리아스식 해변이 형성되었다. 제주도와 달리 섬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다. 날이 궂지 않으면 아소만에서 대여 카누를 타고 돌아다니고 싶었다. 두어 시간에 6900엔이나 하는 값비싼 투어지만 카누를 타본 적이 없어 한 번 쯤은 타 보고 싶었다.

십여분 관리인 아저씨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6시가 안 되었는데 벌써 퇴근한 모양이다. 캠핑장 화장실에 도착하니 어떤 중년 부인이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있다. 개가 날 보더니 반가운 나머지 미친듯이 짖는다. 중년부인이 던진 공을 줏어서 갔다주다가 중간에 꾀를 부린다 -- 공을 줏어 화장실 뒤편에 슬쩍 숨어 공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헉헉 숨을 몰아쉬다가 충분히 쉬고 나면 다시 공을 물고 부인에게 뛰어간다. 자식. 지능은 있어 가지고.

오늘도 아무도 캠핑하러 오지 않았다. 중년 부인은 캠프장이 문을 닫는 6시 무렵 강아지를 자동차에 태우고 떠났다. 어제, 오늘 가끔 공원에서 자전거를 세우면 거기에 차 한 대씩은 꼭 있는데 주로 남자나 여자 혼자 차 안에 앉아서 뭔가 멍하니 있다가 내가 나타나면 곧 차를 몰고 사라졌다. 일본에 혼자 노는 사람들이 많다던데 그것 때문일까? 왠지 외로워 보이는 사람들.

나야 뭐, 나를 따라 자신을 채찍질하는 마조히즘 투어를 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그렇지 혼자라서 외롭다는 등의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 되레 예전에 장기여행 때 사람들이 날파리떼처럼 꼬여 귀찮아 한 적이 많았다. 숙소나 술집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한 잔 하는 것에는 별로 거리낌이 없다. 하여튼 사람 만나는 것은 귀찮다. 세네카 말대로 아무리 여기저기 사방팔방 돌아다니고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봤자 끝끝내 맞부닥치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오늘은 쇼핑을 좀 과하게 했다. 라면 두 개, 어묵 한 봉지. 12가지 차 세트, 스프 4봉, 바나나 과자, 안주용 햄, 그리고 사뽀로 맥주 draft one.

'남자라면 입 닥치고 사뽀로 맥주를 마시자' 라는 옛날 광고문구 때문에 훗카이도에 가고 싶어졌다. 훗카이도에는 어쩐지 제대로 된 일본식 선술집이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재밌게 본 '마구로와 일본인'도 일본의 최북단 근처다. 눈 내리는 어느 추운 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 가기 전 얼핏 불을 밝힌 선술집에 들러 따뜻하게 데운 사케에 어묵 한 점 먹고 낯 모르는 사람들과 간빠이를 외치며 껄껄 웃어보는 것. 박여사는 예전에 말하길, 훗카이도에 가려면 꼭 겨울에 가란다. 눈이 30cm씩 올텐데 자전거는 어쩌라고?


500엔짜리 도시락. 이것만큼 가격대 성능비가 좋은 식사가 있을까? 한화로 3700원 가량. 먹으면 배부르다. 다만 나물 등의 야채 식단에 익숙한 만큼, 부실한 야채와 국이 없어 먹어도 뭔가 부족함이 느껴지는 식단. 끓는 물을 부으면 즉석으로 먹을 수 있는 미소된장국을 팔았지만 정작 수퍼에서 찾아 헤멨던 것은 어묵국이었다.


깨끗이 비웠다. 짜장면을 먹고 나면 다꾸앙으로 짜장면 소스를 긁어 깨끗이 먹어치웠다. 일부분은 절 음식 먹던 버릇 때문이고, 일부분은 음식을 남기면 안된다는 옛날 교육 때문이기도 하고, 일부는 그렇게 깨끗하게 비운 그릇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였다. 그런 습속을 다른 사람들은 다소 변태 취급해 주셨다.


7pm. 비가 멎어 소화도 시킬 겸 아무도 없는 캠핑장 주변을 배회했다. 앞 건물은 집회장.


호숫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닷물. 아소베이 만의 복잡한 해안선 구조 때문에 바다임에도 파도가 거의 없다. 흡사 호숫가 같다. 바다인데 마치 호수처럼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이색적인 모습.


선착장. 물고기가 가끔 튈 뿐 적막하기 그지 없다.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뭍과 바다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게들 중 하나.


밤에 출출할 때 라면에 넣어 끓여먹으면 어떨까. 아서라. 뒷발로 지긋이 밟아 게를 잡았지만 곧 놓아주었다.


Video: 아소베이파크 캠핑장 게


을씨년 스러운 화장실. 이층은 2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깔끔한 객사 또는 관리인 숙소.


7.20pm. 아소베이 파크 캠핑장 전경.


해가 졌다. 왠일인지 비가 안 온다. 버너에 불을 붙이고 햄을 볶아 맥주 안주로 먹었다. 일본 맥주들은 저녁 식사나 목욕 후 한 잔 가볍게 마시는 용도, 어느 음식에 곁들여도 그다지 튀어 보이지 않는 연한 깔끔함과 시원함이 특징인 것 같다. 한국 맥주의 몰개성함/특색없음에 질린 상태였고 그래서인지 한국 맥주가 베트남, 중국, 심지어 태국 맥주만도 못하게 느껴졌다. 브류어리 기술이 그렇게 형편없는 것일까? 왜 그렇게 '상대적으로' 맛이 없는 걸까.

일본 맥주 가격이 의외로 싸서(환율 때문이지만) 여행 기간 내내 마셔주기로 했다. 어제도 마시지 못한 것이 사뭇 안타깝기만 하다. 5% 500ml짜리니 대낮에 마셔도 부담이 없을 것이다. 중국 여행할 땐 하루에 서너잔씩 끼니때마다 7%짜리 500~1000ml의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면 세상이 아름답고 정말 좋았다. 그래서 노래가 절로 나왔다. 윌 아이 비 핸섬? 윌 아 비 리치? 아 텔 뎀 텐덜리. 케쎄라쎄라, 왓에버 윌 비 윌 비. 더 퓨쳐스 낫 아우워스 투 씨, 케쎄라 쎄라~ 당시 중국 여행은 말이 전혀 통하질 않아 될대로 되라 여행이었다.


8.30pm. 텐트의 플라이를 벗겼다가 다시 덮었다. 밤에는 쌀쌀할 것이다. 날이 어두워져서 뭐 할 것도 없다. 슬슬 잘 시간이다.

mp3를 들으며 가져온 얇은 소설을 한두 페이지 읽어보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김씨 아저씨한테 빌린 James Hogan의 1977년 작품인 Inherit the Stars인데 쌔근한 최신기술과는 거리가 먼 구리구리한 70년대 스타일의 SF다. 투과성이 좋은 뉴트리노를 이용한 스코프는 아직 개발되지도 않았고 또, 여전히 앞으로 등장할 최신기술에 속하는 것이긴 하나... 인류가 즐겨하던 취미생활인 전쟁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한마음 한뜻으로 세계 정부 구성을 목전에 둔 채 우주로 막 진출할 무렵, 5만년전의 우주비행사 시체가 뜬금없이 발견되는 것으로 얘기가 시작된다.

부산에서 비록 50여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이 괘괘하고 적막한 캠핑장에 나 혼자 앉아 기분좋게 취해 있으니 한국과의 거리가 거진 안드로메다 성운과 지구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듯하여, 분위기가 얼추 SF스러워 굳이 SF소설이 주는 실세계와의 주관적 거리감(소격화)의 확보가 필요없을 정도였다.

바르는 모기약을 팔 다리 여기저기 발랐음에도 집요하게 달라붙는 모기떼와 스르륵 스르륵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 그리고 강산의 적막감. 하루종일 비를 맞아 머리를 맑고 투명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아내, 딸아이, 일 등은 굳이 생각해야지만 머리 속에 떠오른다.


디지탈 카메라에 PC로 옮기다 만 아이 사진이 남아 있었다. 이 아이가 자라면 제 부모처럼 여행을 다니게 될까? 말 타고, 옆에 맛 없어 보이는 강아지를 데리고. 여행은 재테크, 노후설계에 도움이 안된다.

아무 생각없는 머리로 텐트로 기어들어가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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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5일간 휴가를 냈다. 2년만에 휴가인 셈인데 그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곤했다. 뭔가 머리를 식힐 것이 필요했고 휴가계를 내라길래 6월초에 낼름 제출했다. 금요일 미팅은 장시간 이어졌다. 끝날 때쯤에야 오늘이 환전 가능한 마지막 날이란 것을 깨달았다. 은행 마감 직전에 도착해 간신히 돈을 환전했다.

씨티은행이 날이 갈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환전 수수료 할인을 받으려고 전날 인터넷으로 환전 예약을 해놨더니 환전하려는 돈이 거의 쓰지도 않는 외환거래 통장으로 들어갔다. 어안이 벙벙. 시티은행의 홈페이지에는 그런 내용에 관해 일언반구 말이 없었고 아침에 찾으러 갔을 때 외환거래 통장이 없으면 인출이 안된다고 해서 되돌아왔다. 하루가 지나고 외환거래 통장을 들고가서 은행 마감 시간 전에 환전을 하려니 적지않은 환전 수수료를 내란다. 휴...

6/30 격주 휴일

여행 전 준비물: 여권, 여권 복사본, 캠프장 예약 복사본, 카메라, 미니삼각대, AA 충전지 4알, AAA 충전지 4알, 휴대폰, 작은 수첩, 볼펜, 테이프, 모포, 휴지, 얇고 큰 비닐 봉투, 읽을만한 작은 책 한 권, 사제스프.

의약품: 마데카솔 연고, 반창고 4장, 타이레놀 몇 알, 항생제 몇 알

구매한 물건: 1인용 텐트(35000원), 얇고 부피가 작은 은박 깔개(7000원), 튼튼한 실(1000원), 바르는 모기약(5000원), 선 블럭 크림(6800원), 여행용 세면 도구 세트(4200원), 미니 버너(17000원), 1인용 코펠(23000원), 가스 1통(?원), 쓰레기 봉투 75리터(?원), 100리터 (?원)

옷가지: 져지 상하의(28000원), 쿨맥스 반팔 상의, 수영복 하의, 비닐비옷, 양말 2켤레, 장갑, 모자(캡).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 케이블 타이, WD-40 조그만 것.

오전에는 자전거를 정비했다. 비 맞을 것에 대비해 양 바퀴 베어링에 그리스를 듬뿍 발라 주고, 주요 구동부에는 테프론 오일을 듬뿍듬뿍 쳐줬다. 야후 일본 사이트의 일기예보를 읽어보니 규슈 쓰시마의 날씨가 심상치 않다. 일요일 비, 월,화,수 흐림, 목 비. 첫날과 마지막 날에 비를 맞을 것 같다. 적어도 한국의 일기예보처럼 엉터리는 아니겠지? 아쉬운 것은 업무 때문에 시간에 쫓겨 구입하지 못했던 방청제(WD-40)와 테프론 오일.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경로 설정을 시간 내에 하지 못했다. 다음의 GPSGIS 동호회 자료실에 얼마 전에 대마도 DEM 지도가 올라왔다. 그것과 월초에 대마도 부산 사무소의 게시판에서 주문한 지도를 참조해서 간략한 경로 정보를 일단 구성했다. 구글맵과 GPS Trackmaker를 오가며 대강의 도로 윤곽을 만들었다.

아내는 휴가여행 간다고 오랫만에 고기 먹으로 가잔다. 준비할 것들이 아직 많은데... 아내가 먹고 싶어하는 눈치라 나가서 소불고기에 밥을 먹었다. 집에 돌아오니 오후 8시가 넘었다. 밤 10시 30분에는 출발해야 시간을 맞출텐데 뭐 준비해놓은 것이 있어야지. 일단 허겁지겁 전지를 충전기에 걸었는데 10시가 다 되어도 충전이 덜 되었다. 일단 빼내서 가방에 물건들을 우겨넣고 자전거에 실었다. 밤 10시 40분 무렵 황망히 출발.

강변 도로에 이르자 비가 살살 오기 시작한다. 뒷 잔차 두 대가 추월한다. 상대속도는 1~2kmh. 여행만 시작했다하면 다짜고짜 비를 맞는 것은 무슨 징크스일까? 라고 생각하며 한가하게 자전거를 몰고 가다가 능력도 안되면서 괜히 추월해가는 잔차를 보니 약이 올라 비 때문에 거의 인적이 없는 도로를 고속주행하기 시작했다.

두 친구는 쌔근하게 잘 빠진 값비싼 자전거와 자기 몸뚱이 뿐이지만 나는 15kg짜리 유사 MTB에 7kg짜리 짐을 얹어 상당히 중량감있게 움직인다. 하지만 시속 23kmh로 달리는 상대를 27kmh로 추월하는 것은 자전거 3년 탄 자존심과 관련이 있다. 쫓아오지 못한다. 하하하. 이런 부질없는 만족감이라니... 강남 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비를 흠뻑 맞았다. 1시간 35분 걸렸다. 경부선 버스 타는 곳을 찾느라 좀 헤멨다.

가만, 비상식량과 커피믹스를 챙기지 못했군. 아참, 집 열쇠도! 서두르다 보니 실수 투성이다.

창구에서 이틀 전에 예약한 표를 찾으려고 씨티은행 카드를 내미니 은행 사정으로 서비스가 중단되었단다. 씨티은행이 한미은행과 합병된 후부터 뭐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어 3-4개월에 한 번은 민원을 냈다. 예를 들면 기차 시간 임박해서 예매한 기차표를 뽑으려니 은행 전산망이 다운되어 차시간을 놓치거나, 서비스가 지금처럼 일시 중지되거나, 외국에서 거래하려고 보니 불법거래로 의심되어 카드 사용을 중단시키거나, 심지어는 현금이체를 하려는데 은행 전산망이 세 차례나 다운되었다.

예전에 장기 여행을 할 때 씨티은행의 현금카드가 외국에서 현금인출할 때 꽤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만든 적이 있다. 도움은 커녕 국제 현금 카드로 돈을 뽑을 수 있는 ATM을 찾느라 일정을 변경하는 등 갖은 고생을 다 했다. 환율이 일반 VISA 신용카드보다 나쁘면서 수수료는 수수료 대로 빠져나가 실질적인 이익이 없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주거래은행으로써 내가 받은 이익이 아무 것도 없다. 심지어 작년에 아시아나 마일리지 카드를 발급 받으려고 할 때는 주거래은행임에도 카드 한 장 만들려고 생쑈를 다 했다.

오전 12시에 간신히 백업용으로 가지고 있던 현대카드 동양종금 CMA 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아 심야우등 표를 구매했다. 32300원. 이틀에 걸쳐 씨티은행으로부터 엿먹고 나니 월급 통장을 갈아버리자는 결심이 섰다. 우대고객은 무슨 얼어죽을 우대고객이냐.

7/1

자전거를 버스에 실었다. 출발했다. 새벽 3시 버스가 휴게소에 멈춘다.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휴게소로 뛰는 동안 비를 흠뻑 맞았다. 오뎅 하나 사서 먹었다. 저녁이 부실해 배가 고프다. 다시 비를 흠뻑 맞으며 버스에 올랐다.

잠에서 깨니 오전 5시 30분. 부산에 도착. 비가 퍼붓고 있다. 도저히 자전거를 몰고 부산국제여객터미널까지 갈 엄두가 안 난다. 버스에서 내려 자전거를 빼내는 그 잠깐 동안 퍼붓는 비를 맞으니 몸이 으실으실 떨린다. 자판기에서 평생 거의 먹지 않던 따뜻한 커피 한 잔 뽑아 마시고 버스 터미널에 붙어 있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무거운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차곡차곡 내려갔다. 정말 무겁다.


자전거를 지하철에 싣는 것이 아직 법제화된 것 같지는 않지만, 검표기 앞에서 역무원이 제지하지 않는다. 자전거는 장애인석에 실으면 된다. 장애인석은 보통 지하철 마지막 차량 칸(주행 방향의 마지막 칸)에 설치되어 있다. 지하철역의 계단을 어떻게 내려가라는 것인지 몹시 의문이 생기지만 지하철 차량에는 잊지않고 장애인석이 설치되어 있다.

버스터미널과 인접한 노포동 지하철 역에서 부산국제페리터미널이 있는 중앙동 역까지 대략 40여분이 걸린다. 비 때문에 선로가 미끄러워 지하철이 서행한다는 메시지가 흘러 나왔다. 이왕이면 걸죽한 부산 사투리로 안내방송이 나왔으면 좋으련만.

차량 진동이 심해 자전거가 쓰러졌다. 콰당 하는 듬직한 소리가 차량내에 울려퍼지자 자다 깬 사람들이 놀라 흠칫한다. 히히 웃다가 바퀴 사이에 가방을 괘어놨다.

지하철 역 바깥에는 아직 비가 내리고 있다. 짐을 비닐로 싸고 우비를 입은 다음 역 바깥으로 나왔다. 국제 페리 터미널이 역에서 몇 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놈에 비.

대아고속해운(부산-대마도간 페리를 운행하는 회사) 에 며칠 전에 대마도행 편도 배편을 예약했다. 그들 홈페이지에는 부산->이즈하라 편도가 65000원으로 나와 있고 왕복이 13만원인데, 히타카쓰->부산 편도는 6900엔으로 적혀 있다. 최근 환율을 고려하면 왕복 배편을 끊지 말고 엔화로 계산해 돌아오는 배편을 히타카쓰에서 끊으면 훨씬 이익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무슨 착각을 했는지 창구 직원더러 왕복 배편을 달라고 했다.


3년 전에 자전거를 산 이유가 일본 여행 때문이다. 여러 나라 여행자들에게 듣기로는 뉴질랜드 다음으로 일본이 자전거 여행하기에 좋은 곳이란다. 몇 개월 자전거 사서 연습 좀 해보고 일본에 가려던 계획이 3년이나 미뤄진 셈이다.

첫번째 목표는 대마도, 두번째는 후쿠오카를 기점으로 한 규슈 원점 회귀 코스, 세번째는 후쿠오카에서 오사카/도쿄까지, 네번째는 훗카이도 일주 코스다. 나름 그렇게 계획을 세웠다. 맞은편에 후쿠오카 행 페리 창구가 보인다. 언제쯤 저 곳에 가볼 수 있으려나...

출입국 관리 직원이 자전거 타고 대마도 가냐고 묻는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히죽히죽 웃었다. 괜찮아요. (늘 있는 일인데요 뭐) 짐 엑스레이 검색 중 가방에서 가스통을 발견한 직원이 claim tag를 끊어준다. 가스통은 따로 선적하고 이 claim tag를 내리기 전에 배 승무원에게 보여주면 가스통을 돌려줄 꺼라고 한다.


출국 카운터를 거쳐 배에 올랐다. 십수 년 전에 전국일주를 한 적이 있다. 부산에서 돈이 떨어져 부산역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꿔 기차를 탔다. 하여간 그때는 돈 없이 잘 돌아다녔는데, 대학생 형들 흉내를 냈던 것이다. 그들에게 무전여행은 일종의 자랑스러운 무공훈장이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 이후 여행씬은 완전히 달라졌다 -- 국내에서 하던 거지짓을 해외로 확장한 것이다. 나는 그 10년 후에야 간신히 거지(또는 구도자)여행 대열에 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부산 방문은 무척 오랫만이다. 부산에 관해 기억 나는 곳이라야 해운대와 광안리 해수욕장, 자갈치 시장, 그리고 항구 부근의 러시아 간판이 전부지만.

생각해 보니 해운대 해수욕장(?)에 김씨 아저씨와 단 둘이 내려온 적이 있다. 해수욕장에서 썬텐을 해보자는 계획이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썬텐 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해변에 누워 비를 맞았다. 암울했다.

아무튼. 예전과 비교해 보면 부산이 엄청나게 큰 도시가 된 것 같다. 저렇게 많은 아파트가 있었나? 저 크레인은 독에서 배를 건조할 때 쓰는 것 아닌가? 아니면 컨테니어 하적용?


8.40am. 배가 출항한다. 빗물이 창가를 적신다. 바깥 풍경이 흐릿하다. 직원들 대화를 들어보니 손님은 모두 150명. 자리가 꽉 차지는 않았다. 그중 자전거를 끌고 온 사람은 나 혼자다. 직원이 좌석 뒷전의 물통을 쌓아둔 곳에 자전거를 거치하면서 원래 자전거는 못 싣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 빗 속에 어떻게 다닐꺼냐고 되레 걱정한다. 완전 무장한 아저씨 둘이 대마도로 낚시여행을 간단다. 나를 포함해 세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단체 관광객인듯 하다.

가이드가 단체관광객들에게 귀미테를 나눠준다. 내 뒷좌석의 아줌마는 배멀미로 혼쭐이 났다. 아이고, 윽, 아이고 하는 작은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배가 상하로 크게 흔들렸다. 뭐 나야 배멀미를 안 하니까 배가 크게 흔들릴 수록 재밌어 했다.

아침에 먹은 커피 때문에 정신이 말똥말똥 한 것이 영 안 좋다. 버스에서 잠을 좀 자두는건데.

멍하니 앉아 있었다. 1시간 40분이 지나 흐릿한 빗속에 섬의 윤곽이 드러났다. 왜 이렇게 빨리왔지? 2시간 40분 걸린다더만. 배가 정박하기 전에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카운터에 가서 클레임 태그를 보여주니 가스통을 돌려준다.

너무 일찍 도착해 약간 어리둥절한 가운데 이즈하라 항에 닿았다. 비가 내린다. 자전거가 걸리적거려 짐이 많은 낚시꾼 아저씨 둘과 함께 마지막으로 내렸다. 평소 입출국할 땐 다람쥐처럼 빨리빨리 움직였는데 이번에는 안하던 실수를 한 셈 -- 입국수속에만 40여분이 걸렸다.

입국장이 달랑 건물 한 동으로 두 명의 입국 심사관이 참 꼬치꼬치 살핀다. 건물이 허름하고 영어가 안 통해 흡사 제3세계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입국심사관이 어디서 묵을꺼냐고 묻는다. 프린트해 둔 '캠핑장 예약 신청서'를 꺼내 보여줬다. 손짓 발짓으로 미우다 캠핑장은 지금 문을 열지 않았단다. 이이에, 나이. 젠장. 일어 공부를 좀 해뒀어야 하는데. 뭔 소린지 알아먹을 수가 없잖아. 결국 고개를 끄떡인다.

입국장 바깥으로 여전히 비가 내린다. 짐을 비닐로 잘 싸고 우비를 챙겨 입었다. GPS를 켜니 아직 위성 신호를 잡지 못한다. 3-4분 빗속에서 기다렸지만 여전하다. 간신히 시그널이 잡혔다. 뭔가 좀 이상하다. 집에서 GPS Trackmaker로 입력한 waypoint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이즈하라 항도 나타나지 않았다. 시내 중심쯤에 위치한 화장실에서 져지로 갈아입고 우비를 걸친 후 짐을 다시 챙겼다. 지도를 살펴 이즈하라 항의 시내 윤곽을 그려보았다. 자전거로 시내를 서너바퀴 돌아봤지만 알만한 지명이 눈에 띄지 않는다. 뭔가 좀 이상한데?


다리에 올라 이즈하라 항을 쳐다 봤다. 시내가 지나치게 작다. 적어도 남북으로 1km 이상되고 시내를 관통하는 382번 도로와 몇몇 지방도가 겹쳐야 하는데...


이렇게 작은 항구가 이즈하라 항이란 말인가? gps에 aziro가 찍힌다. 아, 아는 지명이다. '아지로의 연흔'이구나. 일단 오늘은 아소베이 파크 캠핑장까지 갈 예정인데, 이즈하라 시내에서 30km 가량 떨어져 있고 자전거로 한두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니 이즈하라에서 관광 좀 하며 빈둥거리다가 천천히 가도 되겠지 싶어 일단 아지로의 연흔을 찾아갔다.


신선한 삼나무숲 한가운데 억수로 쏟아지는 비 때문에 범람한 작은 개울이 흙탕물을 튀기며 흐르고 있다. 사람의 흔적이 닿지 않은 원시 천연림에서 느껴지는 신선한 내음. 하늘을 가린 숲 속을 가로지르며 아기자기하게 이어진 구불구불한 도로가 꽤 재밌다. 재밌는 여행이 될 것 같다.


아지로의 연흔. 화강암에 새겨진 파도의 흔적. 멀리 항구를 떠나는 배(타고왔던 배)가 보인다.


파도가 약해 바닷가를 첨벙거리며 걸었다. 파도의 흔적이라고? 흠... 암석의 한층에 난입된 다른 층이 켜켜이 쌓이며 압축되다가 조산작용으로 일부분 바닷가에 노출되 약한 층이 파도에 깎인 것이 아닐까..


거대한 통짜 바위에 조가비 껍질이 다닥 다닥 달라붙어 있다. 물이 몹시 맑다.

이즈하라 항을 중심으로 지형지물을 파악하기 위해 시내 곳곳을 누비고 다녔지만 도무지 알만한 지명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쯤에는 반쇼인이 있어야 하는데, 이쯤에는 하치만구 신사가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네? 혹시 내가 GPS Trackmaker로 작업하는 도중에 waypoint가 엉뚱한 곳으로 옮겨가 버린 것이 아닐까?


골목길 사이를 헤메다 빗 속에서 찍은 사진. 바다로 향하는 저 작은 개울에 물고기들이 오락가락한다.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어 흡사 유령도시 같다.

한 시가 좀 넘어 시장기가 돌았다. 어젯밤부터 먹은 것이 거의 없어 배가 고프다. 이즈하라에서 헤메는 것은 관두고 이제 슬슬 아소베이 파크로 향해야겠다. GPS가 쓸모가 없으니 일단 382번 도로를 따라가보자. 그래서 시내를 뺑뺑이도는 짓을 그만두고 북쪽을 향해 무작정 달렸다. 가다보면 뭔가 나오겠지.

가는 길에 'VALUE'라는 커다란 할인매장이 나타났다. 아직 환율이 익숙치 않아 계산이 잘 안되지만 100엔을 대략 760원으로 계산해서 매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국의 물가와 비교했다. 의외로 한국의 물건 가격과 큰 차이가 없다. 파 한단에 140엔 즉 1000원 가량. 서울에서는 700원 정도. 인스탄트 라면 한 봉이 80엔 가량(600원). 도시락 500엔(3800원). 반찬이 대략 200-300엔. 밥 한 공기가 100엔 가량. 반찬 두어가지와 밥을 사느니 도시락 하나 사 먹는 것이 가격대 성능비가 좋아 보인다. 과일은 몹시 비싼 편이다.

음료와 도시락을 하나 사들고 카운터에 가니 계산해 주면서 예쁘게 포장 해주고 얼마얼마라고 큰 소리로 말한다. 계산대에 가격이 표시되니 굳이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상관없다. 사실 준비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내가 아는 일본어는 몇 개 되지 않았다. 딴지일보에 따르면, 일본어는 '도조' 한 마디만 알아도 여행이 가능하단다. 그보다 약간 더 많은 단어를 알았다.

스미마셍 (실례합니다)
이쿠라 데스까? (얼마에요?)
이치,니,산 (1,2,3, 그 다음은 모른다. 안 외웠다 -_-)
오하이오/곤니치와/곰방와(아침,점심,저녁 인사)
아리가또[고자이마스] (감사합니다)
혼또니 아리가또[고자이마스] (매우 감사합니다)

도조 (뭘요)
도조 (괜찮습니다)
라멘, 도조 (라면 주세요)
고레, 도조 (그거 부탁합니다 -- 뭔가 주문할 때)
이즈하라, 도조 (이즈하라가 어디에요?/이즈하라로 부탁합니다 -- 어딘가 가고 싶을 때)

사실 아는 일본어라고는 웃쓰, 야메떼, 이이에, 오네상, 이따이 정도였다.

근처 한적한 공터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일본에 대해 배운 상식 중 한가지는 콘비니(편의점)에서는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어 있어서 뭘 사든 바깥에 나와 쭈그리고 앉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인도 다 그렇게 하니까 거지같아 보여도 기죽을 것 없다. 그런데 아무도 공터에서 음식을 까먹지 않았다. 왠지 거지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꿋꿋이 밥을 먹었다. 이게 바로 문화적 차이란 거야.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문화에 적응해야지.

이즈하라 시내를 배회하다보니 왼쪽 차도로 가는 것도 대충 익숙해진 것 같다. 2년 만에 해외여행이라 기분이 달뜨기도 했고 점심 먹는 내내 마치 축복이라도 해주듯이 비가 멎어 아, 이제는 날이 개이는구나 싶어 앞으로의 4박 5일 여행이 기대되었다. 도시락이 아주 맛있다. 일본인들은 쌀밥을 참 정성들여 지었다. 이런 싸구려 종합선물세트 도시락의 밥맛이 평소 한국의 왠간한 음식점에서 먹는 밥맛보다 좋다니 참 어이가 없다.

밥도 다먹고 기분도 좋아 이제 슬슬 출발하려고 주위를 둘러봤다.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에는 내가 빠져 나온 곳이 'Hitakatsu'라고 적혀 있다. 히타카쓰 라니? 말도 안되잖아? 하하하. 그러다가 등골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혹시...? 지갑에서 배표를 꺼내보았다. 배표에는,


Busan -> Hitakatsu


라고 크게 적혀 있다.

허걱. 그럼 여태까지 헤메던 저 곳이 이즈하라 항구의 완전 반대편인 히타카쓰란 말이냐? 가슴이 철렁했다. 때마침 극적으로, 먹구름이 몰려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다시 VALUE의 처마 밑으로 허겁지겁 자전거를 몰고가 벤치에 앉아 대체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인지 되집어 보았다.

나흘 전, 인터넷으로 대아해운고속 사이트에 접속해 이즈하라행 토요일(6월 30일) 배편을 예약하려고 했다. 대마도행 배편은 아직 인터넷으로 예약이 안된다. 그날은 만석이란다. 그럼 일요일은요? 일요일엔 배편이 있단다. 오케이 그럼 그걸로 예매해 주세요. 몇 시에 출발이죠? 오전 8:40분입니다. 이즈하라행 배편은 보통 오전 10:40에 떠나는데 홈페이지에 적힌 스케쥴이 틀린 거였군. 아마 성수기에 접어들면서 배가 증편된 것이리라. 그보다 급한 것은 닷새 전에 예약한 캠핑장 3곳의 도착 일자를 수정해 다시 국제 팩스를 넣어야 한다.

1주일 전 대마도 부산 사무소에 문의해 보니 캠핑장에서 숙박하려면 캠핑장에 예약이 필수란다. 속으로 그럴리가, 하다가 어떤 여행기에서 캠핑장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을 때 관리인이 퇴근하고 없어서 캠핑을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인은 집요하게 룰을 중시해 룰에 어긋나는 것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라는 일본 문화 특유의 괴상한 풍속에 관한 글을 읽기도 했다. 문화적 차이니까 괴상하다고 말하지 말자.

사무실에 팩스가 없어 팩스를 보내려면 근처 문방구에서 한 장에 500원씩이나 하는 팩스를 보내야하는데(500원은 국내용 단가다. 해외는 단가가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 인터넷 여기저기 검색해 인터넷으로 국제 팩스를 보내는 사이트 몇 군데를 알아뒀다. http://fax.empas.com

그런데 그날 공교롭게도 국제팩스 보내는 사이트를 비롯한 다수의 사이트가 중국의 개떼같은 해킹 공격에 당해 사이트가 다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팩스를 보내는데 4시간이 걸렸고 그나마도 실패해서 그 다음날 다시 간신히 팩스를 보낼 수 있었는데(업무 시간에 이런 짓 하면 죄책감을 느낀다), 이제 그렇게 예약한 것을 취소하고 다시 팩스를 보내야 한다.

팩스를 보낸 후 confirm fax를 그쪽에서 보내주는데 팩스를 받을 형편이 안되니 대마도 부산 사무소로 컨펌 팩스를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대충 컨펌이 났는데, 어제 예약을 취소하고 예약 일자를 하루씩 미룬다는 것을 일본어로 어떻게 써야할 지 몰라 캠핑장 예약 신청서의 비고란에 영어와 일어를 뒤죽박죽 섞어 다시 작성한 것을 인터넷 국제 팩스 사이트를 통해 보냈다. 부가세 포함해 장당 220원이다. 그런 팩스질을 3차례에 걸쳐 3군데에 보내고 다시 컨펌받는 복잡한 절차를 거친 것이다. 이런 간단한 일거리인데도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팩스 보낼 걱정 때문에 배편이 이즈하라 도착인지 히타카쓰 도착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배표를 받아들었을 때도 확인하지 않았다. 어차피 도착하면 어떻게 되겠지, 뭐 준비한 것도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GPS에 입력한 좌표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을 때도 내가 좌표점들을 잘못 입력했거니 생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어젯밤부터 줄기차게 쏟아지는 재수없는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다. 기억이 맞다면 히타카쓰에서 아소베이 파크까지는 고저차를 고려하지 않고 대략 80km다. 하루에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다. 만약 여행일정을 변경해 히타카쓰에서 이즈하라로 역순으로 내려간다 해도 마지막 날에는 히타카쓰로 되돌아와야 한다. 차라리 그보다는 하루 일정 까질 각오로 아소베이 파크로 가서 히타카쓰로 올라오는 편이 낫다.

결심이 서자 자전거에 올랐다. 오후 2시다. 멍청하게 히타카쓰 시내를 한가하게 배회하지 않고 상황판단을 제대로 했어도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여행 나와서 기분이 좋아 헤벌레 하고 있다보니 이런 이런...

어차피 gps보고 미리 설정해 둔 경로를 트랙백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도를 보고 히타카쓰에서 아소베이 파크까지 가는 가장 편한 길로 보이는 39번 해안도로를 타기로 했다. 주욱 가다가 382번 국도와 만나는 지점에서 382번 국도를 타고 조금 진행하다보면 아소베이 파크가 나타난다. 출발했다.

비가 참 살벌하게 내린다. 쓰시마의 여름철 7,8월 평균 강수량이 350mm란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 속에서 사실 걱정꺼리는 하나 밖에 없었다. 자전거의 체인과 구동부에 스며든 물이 녹을 만들어 체인을 뻑뻑하게 해서 주행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39번 해안도로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비가 이렇게 억수로 퍼붓는데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삼나무 숲과 도로에 연접한 개울이 졸졸 흐르는 1차선(한국에서의 1차선 개념이 아니라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는 도로폭 정도의 1차선) 지방도는 제주도의 1100 도로, 516 도로를 연상시켰다. 아니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로는 처음 봤다. 해안선을 타고 가다가 숲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해안으로 나오는 길이 계속 반복된다. 표고차가 40m 이내라 주행이 쉽다. 흡사 자전거 여행을 위해 만들어 놓은 도로같다. 10분에 한 대 꼴로 간간히 지나가는 차량들은 친절하게도 속도를 늦추거나 물을 안 튀기려고 크게 우회해서 자전거를 지나친다. 일본인들의 운전 매너가 훌륭하다.


Video: 쓰시마 39번 국도

이렇게 훌륭한 도로가 있는데 어째서 한국의 자전거 동호회에서 대마도 원정 자전거 여행이 드문 것일까? 쓰시마의 39번 도로에 비하면 제주도의 12번 해안도로나 한국의 동해안 해안 도로는 고개를 수그려야 할 판이다.

잠시 쉬면서 개울에 손과 발을 담궜다. 비가 하도 내려 우비 속까지 척척하게 젖었다.

아소베이 파크 캠핑장에 시간내에 도착하긴 글렀다. 벌써 6pm. GPS의 sunset 타임을 보니 7.30pm에 해가 진다. 비가 잠시 그쳤다. 1km만 달리면 항상 나타나는 자판기 앞에서 잔돈을 꺼내 음료수를 뽑아 먹었다. 500ml짜리 탄산음료 한병에 150엔. 한국돈으로 1200원 가량. 물은 120엔. 그렇다면 누가 미쳤다고 물을 사먹나? 30엔만 더내면 비타민씨가 듬뿍 든 기능성 음료를 마실 수 있는데.

배는 고픈데 먹은 건 없고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니, 그야말로 서바이벌 분위기가 물씬 난다. 작은 어촌 마을에 멈춰 어느 창고 처마 밑에서 오늘 예정은 가볍게 관광이나 하고 즐기다가 별빛이 총총한 밤하늘 아래 텐트치고 누워 mp3나 들으면서 스르르 잠드는 것이 일정 아니었나? 내 팔자에 그런 로또같은 하루가 있을리가 없지 신세한탄 하다가 흘낏 옆을 보니, 수퍼가 있다. 빙고. 이것이 바로 서민의 5천원짜리 로또 당첨이 아니고 뭐겠나. 알맞은 때에 먹이를 구할 수 있게 되다니. 하하. 수퍼에서 롯데 크런치 초콜렛 2개를 사서 하나를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빗물 때문에 쫄닥 젖어 이건 뭐...

자전거 앞에 트럭이 멈춘다. 트럭 짐칸에 아무 것도 실려 있지 않다. 운전수에게 부탁해 자전거를 싣고 아소베이 파크까지 직행하는 방법이 있다. 자동차로 가면 얼마 걸리지도 않고 돈을 받아봤자 몇푼깨나 하겠나? 어쩌면 불쌍한 나머지 공짜로 태워줄 지도 모르지. 태워 달라고 해, 말어? 천둥번개가 콰과광 울렸다. 트럭이 떠났다.

아무리 빈둥빈둥 관광을 부르짖어도 지난 십수년간 써바이벌 아닌 관광은 해본 적이 없다. 빌어먹을 빗물과 함께 운명을 받아들이자. 히치하이킹은 관두고 그냥 가자.


비가 잠시 멎은 틈에 전봇대에 매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쓰시마에 온 후로 온 사방에 매와 까마귀 투성이다. 평생 매 울음소리는 몇 번이나 들어보게 될까? 어린 시절에는 시골에 살아 병아리를 채가는 매를 자주 보았다. 그후로 주욱 못 보다가 안데스의 산악 지방에서 매와 흡사하게 움직이는 콘도르를 보았다. 천미터가 넘는 절벽의 틈새에서 활강하는 콘도르. 매, 콘도르 따위가 상승기류에 저항하며 공중에서 stance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날개를 살짝 살짝 틀어가며 제자리에 멈춰선 채 지상을 기어다니는 먹잇감을 뚜러지게 노려보다가 갑자기 날개를 비틀어 쏜살같이 땅으로 쳐박히듯이 빠른 속도로 활강한다.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떠오르면 어느새 발톱 사이로 꿈틀대는 무언가를 낚았다. 그러고서는 석양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 이건 내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보곤 하던 광경이다. 서울 도회 촌뜨기들은 그런 우아한 모습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매의 눈에는 내가 땅 위를 꿈틀꿈틀 기어가는 조금 큰 지렁이처럼 보이지 않을까?

이제 좀 날이 개려나? 기지개를 펴고 자전거에 올랐다. 왠걸. 다시 퍼부어 대기 시작한다. 10분 쉬고 50분 퍼붓는게 참, 학교수업마냥, 또는 군바리 훈련처럼 주기적이다. 해안에 인접한 39번 국도는 비록 고저차가 40m 내외지만 급격한 헤어핀 구간이 많다. 차가 거의 안 다니니 날이 맑으면 평속 40~50kmh로 다운힐에서 브레이크 감속 안하고 주행이 가능하지만 빗길이 미끄러워 여지없이 브레이크를 잡게 된다.

쓰시마에 오기 전에 브레이크 패드 걱정을 했다. 뒷 브레이크의 패드가 거의 다 닳아 wear line이 거의 사라진 상태인데 이렇게 계속 브레이크를 밟아대면 나중에 브레이크가 듣지 않을 것이다.

시험삼아 평지에서 앞/뒤 브레이크를 끝까지 당겨 보았다. 빗물 코팅이 된 아스팔트 도로에서 주아악 미끄러지며 30m 이상 나간다. 그러고도 완전히 정지하지 않는다. 허걱. 이거 좀 위험한데? 여분의 브레이크 패드를 챙겨오지 않았다. 진부령에서 브레이크가 듣지 않아 신나야 할 다운힐 구간에서 끌바(자전거 끌고가기)를 해야만 했던 눈물겨운 사연을 자전거 동호회에서 본 적이 있다. 비지땀을 흘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꼭대기 휴게소까지 올라가서 자전거를 끌고 내려와 봐라. 그저 허허 웃음 밖에 안 나오지.

382 국도로 들어섰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382 도로로 들어서자 길이 넓어졌다. 갓길도 제법 있고 차량 소통량이 늘었다. 하지만 길은 밋밋하고 재미가 없어졌다. 흐린 날이라 금방 어둑어둑 해 졌다.

아소베이 파크 캠핑장 입구에 다다랐다. 7pm. 대략 5시간쯤 달린 셈이다. 비가 안 왔더라면 더 일찍 도착했을 것이다. 이즈하라에서 히타카쓰까지 대략 100km 가량, 자전거로 하루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다. 물론 그렇게 달리면 정말 재미가 없을 것이다. 자전거 '여행'을 온거지 자전거 '주행'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관광이란 말이다!

아소베이 파크 캠핑장 입구는 쇠사슬로 막혀 있다. 통행 금지. 6pm에 캠핑장이 문을 닫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예약을 했고 예약을 했으니까 관리인이 기다려주거나, 캠핑장 안에 들어가 캠프를 하는 것이 워낙 당연하게 여겨져 자전거를 쇠사슬 너머로 넘겼다. 일단 캠핑 후, 저간 사정을 빌자. 옆 샛길에서 짐차가 나타나더니 백밀러로 흘낏 보고 올라간다. 아, 저 아저씨가 관리인이구나. 저 트럭을 쫓아가면 되겠구나! 고개를 한 두 개 넘어 헉헉 거리며 올라가니 캠핑장 관리 사무소가 나타난다.

아저씨가 반겨준다. 일본어로 인사했다. 곰방와! 굿 이브닝! 자랑스럽게 캠핑 예약 신청서를 내밀었다. 말은 안 통하지만(나는 영어로, 그 아저씨는 일어로 서로 유려하게 말했다) 팩스, 레저베이션, 예야꾸(예약), 캠핑, 투데이, 투모로우 정도는 서로 대화가 통해 내가 여기서 2박을 머무를 예정이라는 것을 아저씨가 알아 들었다. 그런데 컨펌까지 받았는데 예약된 것이 없다. 다시 신청서를 작성했다. 뭐 예약에 무슨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캠핑장 예약 신청서'는 떳떳한 부적의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다.

1박 캠핑이 1000엔이란다. 600엔으로 알고 있는데요? 600엔은 없고 차량용 캠핑 코너가 1000엔이란다. 떨떠름하지만 오케이. 2박 2000엔을 건넸다. 아저씨가 차를 몰고 캠핑장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러더니 화장실을 보여준다. 샤워 오케이. 토이레(toilet) 오케이. 레인?, 레인!, 뭐 이런 제3세계 스러운 대사를 주고받았다. 아저씨 말은 비가 오니까 지붕이 있는 화장실 구석에 텐트를 치란다. 그러면서 비가 그치면 내일은 저기 오토캠핑장으로 텐트를 옮기라는 것 같다. 오케이. 하이. 예스.

빌어먹을. 제대로 된 일어 공부 좀 하고 오는 건데... 도서관에서 기초 일어회화 책을 빌려왔는데 '와따시와 한코쿠진 데쓰', '와따시와 나마에 산돈데쓰' 같은 하등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대사 밖에 없다. 시계가 있는데 시간은 물어서 뭣하고 뻔히 아는 물건 더러 '고레와 난데스까?' 하는 바보스러운 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 회화책, 하루 봤다. 하룻동안 외운 것은 아이우에오, 카키쿠케코의 히라카나 글자 모양이 어떻게 생겼나 하는 것 정도다. 비를 많이 맞으니까 이젠 기억이 안 난다. 그러니까 일본어 글자도 못 읽는다 -_- 그동안 업무에 시달리느라 바빴고 밀린 책들 읽느라 바빴다. 어떻게 되겠지 하고 왔는데 정말 어떻게 되긴 된다. 하지만 독도, 위안부, 일본의 최근 우경화 성향에 관한 현지인과의 진지한 토론은 못 하잖아?


노심초사 끝에 옥션에서 3만 5천원 주고 구입한 1인용 낚시 텐트. 15만원짜리 비박용 텐트가 있긴 하지만 누에고치처럼 안에 들어가면 꼼짝 달싹도 못하는 바보스러운 텐트에 눕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결정적으로 그런 텐트는 1kg이 넘는데 비해 이 텐트의 무게는 750g 밖에 안 된다. 750g인데 내부는 한 사람이 충분히 눕고도 여러 짐들을 안에 넣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다. 폴대만 밀어 넣어 교차시키면 모기장 텐트가 완성되고 그 위에 플라이를 씌우면 방수 커버가 된다. 텐트의 방수 성능을 순진하게 믿지는 않아서 넓고 얇은 비닐을 함께 들고 왔다. 여러 모로 흡족한 텐트다.


아소베이 파크 캠핑장. 기본적으로 오토캠핑장이다. 자동차 들여놓고 저 나무판 위에 텐트를 설치한다. 사이트 하나 마다 장작을 지필 수 있는 바베큐 그릴이 있고 그 옆에 110V 아웃렛이 달려 있다. 220V->110V 컨버터 플러그만 있으면 얼마든지 충전이 가능하다. 공동 취사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쓰시마가 그렇게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서 이용객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 관리 상태는 상당히 좋다.


무려 23000원이나 주고 구입한 1인용 산악 코펠. 달랑 냄비 하나, 플레이트가 전부인데 무게가 가볍고 길죽하게 생겨 짐을 챙길 때 용적을 덜 차지한다. 수저와 젓가락, 버너 등을 코펠 안에 넣을 수 있어 좋다. 군대에서 라면 끓여먹을 때 쓰는 짬빱통이 더 싸고 훌륭하지만 시장통 돌아다닐 시간이 없어 인터넷으로 값비싼 것을 구입했다. 물론 철밥통보다는 무게가 현저하게 가볍다.

그 위에 17000원 짜리 초소형 미니 버너가 있다. 이건 잘못 샀다. 히타카쓰에 도착해 여기저기 수퍼에서 가스통을 찾아 봤는데(없을꺼라 짐작하고 한국에서 가스통을 구입해 오긴 했지만) 한국에서 휴대용 렌지에 쓰는 가스통은 많이 있지만 버너를 돌려 나사로 결속하는 형태의 저런 둥근 가스통은 두 가게를 돌아보는 동안 보지 못했다. 낚시점은 안 가봐서 모르겠다. 차라리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형태의 가스통에 장착이 가능한 버너나, 일반 가스통을 장착할 수 있는 어댑터가 포함된 버너를 사는게 나았을 것 같다. 작은 크기임에도 화력이 꽤 좋아 성능에 불만은 없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도시락이 전부라 라면을 끓였다. 예전에 일본의 인스탄트 라면을 여러 종류 먹어봤는데 도저히 맛있다고는 할 수 없는 희안한 맛의 라면들이라 라면 맛은 기대하지 않았다. 공동 취사장의 그릴에는 장작을 뗄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장작들이 젖어 있고, 보통 캠핑장에서 장작은 공짜가 아니니 그냥 가스 버너로 해먹는게 낫지 싶다. 밥을 해 먹을 때는 가스버너보다 장작 쪽이 훨씬 맛있게 밥이 된다. 거기다가 소세지, 옥수수, 감자, 통 돼지고기 따위를 구워 먹으면... 츄릅. 생각만 해도 침이 넘어오네... 여행 중에 주방을 빌려 밥을 해먹은 적은 많지만 캠핑을 해 본 지가 십 년이 넘어서 캠핑용 기어를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요즘 캠핑 장비는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좋아진 것 같은데...


워낙 가난한 캠핑만 해봐서(어린 시절에도 혼자 다녔다. 얘들을 몇번 데리고 태백산맥을 헤메고 나면 다시는 같이 안 가려 들었다. 늘 비를 몰고 다녔고 늘 여지없이 개고생을 한 탓도 있다) 당시에 들고 다닌 음식이라곤 쌀 한 주머니, 고추장 한 덩이 정도가 고작이다. 나중에 생활이 펴서 라면도 들고 다니고 인스턴트 카레 따위도 들고 다녔다. 다 어린 시절 얘기다. 이건 사제 스프다. 멀쩡한 라면 뜯어서 스프만 챙겨 들고갈 수는 없고, 예전에는 라면 스프만 따로 팔았는데 요즘은 안 보이는 것 같고... 그래서 라면 스프를 만들었다. 마늘가루 있으면 넣고, 다시다 가루, 멸치, 다시마, 새우 약간, 소금 왕창, 후추 약간, 고춧가루 왕창 넣고 블랜더에 함께 갈아낸다. 거기에 마른 오징어, 표고버섯, 다시마 따위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넣으면 완성이다. 일종의 천연 조미료인 셈이다.


일본 면발에 사제 스프로 끓인 라면. 삼양라면 맛이 난다. 신라면같은 칼칼한 맛을 내려면 청양고추를 냉동 건조시킨 다음 바짝 말려서 블랜더에 같이 갈아야 하는데 뭐 그럴 시간은 없고 적어도 일본의 인스탄트 라면 같이 느끼하고 한 입 먹으면 괜히 먹었다 이 닦고 그냥 잘 껄 하는 기분은 안 나는 그럭저럭 괜찮은 맛이 나는 라면이 완성되었다.

라면 끓여먹고 젖은 옷을 빨아서 짰다. 9pm.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한 이틀 제대로 잠을 못잤더니 피곤하다. 잠이나 자자 누웠지만 말똥말똥. 평소 새벽 2-3시에 자던 사람이 9pm에 자려니 잠이 오겠나.

아소베이 파크에 오기 전에 마땅한 수퍼가 보였으면 술이나 몇 병 사오는 건데. 너무 늦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왔더니 달랑 라면 하나와 먹다 남은 크런치 초콜렛 밖에 먹을 것이 없다.


인터넷 어딘가에서 구한 지도. 요점 정리가 잘되어 있어 원작자에게 감사하다. 하타카쓰는 맨 위, 아소베이 파크는 중간 아래 '대산'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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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센트럴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5시 55분 해남행 표를 예매했다. 마누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니 이 더위에 어딜 가? 라고 묻는다. 기나긴 장마 기간 동안 칼을 갈았다. 아니 체인을 갈았다. 체인에 기름을 듬뿍 먹였다. 오후 4시무렵 짐을 챙겨서 집을 나왔다. 가는 길에 다리밑 행상에서 5천원짜리 반장갑을 샀다. 작년에 산 것을 잃어버렸다. 지난 장마에 떠내려갔던 성산대교 밑의 자전거 포는 어느새 건물을 다시 세웠다. 타이어에서 통통 소리가 날 때까지 자전거 펌프로 바람을 우겨 넣었다.

오후 네시 무렵인데도 찌는듯이 덥다. 반포대교를 건너 터미널로 진행, 평속 22kmh로 밟아 대략 1시간 안에 도착. 평창 여행할 때 봐두었던 개구멍으로 잔차를 몰고 버스 스탠드로 진입. 휴가철이라 창구마다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얼른 예매한 표를 끊고 십여분 시간이 남아 롯데리아에서 저녁으로 햄버거를 시켜 먹었다.

롯데리아의 날이 갈수록 한심해지는 불고기버거 세트를 먹고 있는데, 옆 자리에 앉은 외국인 둘이 한국인은 참 야만스럽다는 얘기를 늘어놓는다. 암, 야만스럽지. 미주알 고주알 늘어놓더니 자신감을 얻었는지, 옆 자리의 동료가 우리가 지금 한국에 와서 한국에서 살면서 돈을 벌고 있으니 그만 하라고 만류하는데도 걱정하지 말라며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앉아 그들을 욕하고 있는 것을 못 알아 들을 뿐더러 알아들어도 반론 한 마디 제대로 못할 꺼라고 떠벌렸다. 그 동안 재밌게 듣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푸훕'하고 웃고 말았다. 당황스럽게도 눈이 마주쳤다. 입에서 튀어나온 빵조각을 손가락으로 우겨놓고 천진하게 바라봤다. 외국 여행할 때 만난 서양인들 말로는 내 눈빛이 그다지 천진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내 눈빛은 '뭘 쳐다봐 ㅅㅂㄹㅁ' 라고 말하는 듯한, 안 좋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머쓱했는지 접시를 치울 때까지 그 둘은 석상처럼 굳어 한 마디도 안 했다.

자전차를 버스 짐칸에 밀어놓고 예약한 1번 자리에 가니 아줌마가 앉아 있다. 멀미 때문에 그러니 자기 자리로 가 줄 수 있겠냐고 한다. 설렁설렁 고개를 끄떡이고 그 자리에 가니 사람이 앉아 있다. 표를 보여준다. 그 자리가 맞다. 원래 내 자리에 앉아 있는 아줌마는 그럴리가 없다며 자기 표를 보여준다. 다음날 표다. 보통은 내렸다가 자리가 남으면 차에 오르는데 원래 자리 주인을 통로에 세워두고 자기는 자리에 앉아 승객이 다 찰 때까지 기다린다. 한국의 아줌마들은 그만큼 야만스럽다.



전라도에 들어섰다. 해가 지고 있다. 용광로에서 방금 꺼낸 동전처럼 새빨간 해가 산허리에 걸려 있다. 떠나온 서울의 최고 기온은 34.7도. 여러 차례 관찰한 결과 하늘에 해가 떠 있을 때는 해가 있는 방향에서 맞은편으로 바람이 분다. 그러니까 해를 향해 페달질을 하는 것은 도발적이다. 원래는 강진에서 내려 하룻밤 묵고 해남으로 가서 하룻밤 묵고 목포로 가는 코스를 생각했으나 해와 바람의 방향을 고려해서 순리대로 해남에서 출발해 강진에 도착하는 것으로 바꿨다. 대략 90km 가량이니 5시간 주행거리인데 아침에 나서서 정오가 되기 전에 땅끝을 통과한다. 그렇게되면 해를 등지고 한 두시간 더 가면 강진에 이르게 된다는 계산이다.

iSilo로 강진 정보를 담은 텍스트 파일을 열어보려고 애썼다. 잘 안된다. 파일을 UTF-8로 저장해 놓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십여분 삽질하고 나서 간신히 읽게 되었는데 휴대폰의 여분 배터리를 챙기지 않은 것이 그제야 생각났다. 그런데 숙소정보가 없네? 휴대폰의 배터리는 절반쯤 남았다. 아껴 써야지. 이번 여행에는 pda를 들고 오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일정관리를 하고 정보를 담고 사진을 찍을 것이다. 그런데 별 정보를 담지 않았다. 읽을꺼리 역시 챙겨오지 않았다. 장마 동안 내가 준비랍시고 한 일이 그렇지 뭐.

해남에 도착. 서울과 달리 선선하다. 맛집이라는 청운정이 버스 터미널 옆에 붙어있다. 터미널 옆에 찜질방도 보인다. 하지만 해남군 외곽의 녹주 맥반석 싸우나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으므로 잊어버리고 군 외곽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녹주 사우나에서 묵으면 아침에 7km를 세이브할 수 있다. 다, 계산한 것이다.

군 바깥으로 나오니 가로등이 하나도 없다. 야트막한 산 밑으로 가열된 대지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수증기가 안개처럼 펼쳐져 있다. 불빛 하나 없는 고적하고 어딘가 음산한 1차선 도로를 달리니 나도 모르게 심박수는 물론 패달질이 빨라진다. 가끔 자동차가 지나갈 때면 도로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기다란 빛의 경로가 새겨진다. 안개가 낀 밤, 노란눈을 한 늑대가 먹잇감을 잡으려고 달려오는 듯한. 키가 크고 음침한 가로수, 안개처럼 피어난 수증기 속에서 거뭇거뭇 보이는 숲. 녹주 싸우나는 시내에서 7킬로미터 떨어진 민박촌에 있다. 길이 잘 안 보여 도움이 안되는 전조등을 깜빡이며 컴컴한 길을 위태위태 달려 싸우나에 도착해보니 내부수리중이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낭패다. 아니 계산상 착오다.

근처에 민박집이 여럿 불을 밝혀놓고 있지만 몇만 원씩 하는 민박집에서 묵기는 좀 버겁고, 핸들을 돌려 시내로 향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가 건 안부 전화다. 아무도 나다니지 않는 컴컴한 도로 한 복판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전화를 받으니 기분이 묘하다. 시내에 도착해 터미널 맞은편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 김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 옆 찜질방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네 대의 자전거가 서 있다. 짐받이에 침낭 따위를 묶어놓은 것을 보니 여행중인가 보다. 들어가서 아는 척 해 봐야지. 하룻밤 자는데 6천원, 간단히 샤워하고 찜질방 안에 들어서니 발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꽉 차 있다. TV 뒷편에 자리잡고 눈을 붙였으나 애들이 PC에서 인터넷과 게임을 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담배 피우러 찜질방 옥상에 올라왔다.

7시에 일어났다. 간신히 두세 시간 잔 것 같다. 찜질방에 올 때마다 매번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찜질방 주인 아저씨에게 근처 먹을만한 밥집을 물었다. 식당에서 5천원짜리 백반을 시키니 13가지 반찬과 재첩국을 갖다준다. 반찬이 너무 많은데... 반찬이 약간 짜다. 단백질이라고는 조기 한 마리와 재첩국 달랑 둘 뿐. 생선젓 마저 보이지 않는 잔디밭 식단. 반찬 가짓수만 많아 남은 음식 쓰레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걱정되는 밥상이다. 남도의 한상 가득한 밥상이 있는 그대로 즐기기엔 부담스럽다.

밥 먹고 8시 출발. 어젯밤 찜질방을 찾으러 갔던 으시시한 그 길을 따라갔다. 그늘이 거의 없어 아침해가 옆얼굴에 그대로 햇살을 쏟아부었다. 아침나절부터 땀이 난다. 논밭이 즐비하게 펼쳐진 별로 인상에 남을 것이 없는 길을 달렸다. 가끔 습지가 보였다. 낚시 채널에서 어떤 아저씨가 나와 남도의 제 고향을 방문해 논밭 사이로 갈대와 억새가 무성한 습지에서 어린 시절에 하듯이 낚시질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가 하룻밤 동안 잡은 물고기는 붕어 서너 마리, 팔 다리에는 모기에 물어뜯긴 상처가 즐비하게 돋았고 아침해에 얼굴은 쾡하니 초췌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 추억을 곱씹으며 고향에 돌아와 낚시하니까 좋았노라고 웃는다. 낚시 채널은 늘 그랬다. 개고생하고 성과는 쥐꼬리만하지만 낚시꾼들은 웃는다.

이번 주행 복장 역시 수영복이다. 수영복에 상의만 져지를 입었다. 작년에 옥션에서 산 2만원짜리 싸구려 져지 상의인데 색깔이 등산복처럼 어둡고 탁해서 마누라는 영 없어 보이는 복장이라고 말한다. 방수가 잘되고 땀이 잘 마른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해외 여행을 가기도 하는데, 그깟 없어 보이는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 있어 보이려면 30-40만원 든다. 정말 있어야 입는 제대로 된 져지 말이다.

느적느적 갔다고 생각했지만 평속은 꾸준히 23-25kmh를 넘나들었다. 채 10시가 안되었는데도 땀이 비오듯이 흘렀다. 10시 조금 넘어 청호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묶어두고 해변으로 용감하게 걸어갔다. 상의를 벗어 모래밭에 던져두고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의외로 물이 맑다. 자맥질을 하며 몸의 열기를 식혔다. 아, 좋다.


30여 미터를 걸어도 물이 허리께까지 밖에 차지 않았다. 어젯밤에 통통한 반달을 보았다.


짐을 풀기 귀찮아 휴대폰의 130만 화소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데 영 구리다. 지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표정 곳곳에서 야만스러움이 넘치는 한국인 같다.

그늘에 앉아 몸에 묻은 물기를 말렸다. 즐겨먹는 폴라포를 하나 샀다. 관광지 스럽지 않게 제값(500원)에 판매한다. 들고갔던 MP3P에 새로 산 AAA 전지를 넣고 라디오 방송을 잡아보려 했지만 잡음이 심하다. 어쩔 수 없이 MP3를 틀었다. 가뿐하다. 상쾌한 몸과 마음으로 출발.

청호 해수욕장을 벗어나자 마자 해발 0m에서 55m까지 올라간다. 땀이 비오듯이 쏫아졌다. 아침부터 그늘 한 점 없는 도로에서 직사광선의 위력을 체감 중. 하지만 아직은 기온이 30도를 넘기지 않은 듯하다. 허덕허덕 헐떡이다가 기어비가 1:1까지 내려간다. 땅끝 까지 산 하나를 넘는 것이다. 1년여를 자전거를 탔어도 이런 언덕 하나 가뿐하게 넘지 못하다니 자괴감이 생긴다.

땅끝에 도착. 도로에 차가 밀려 서행 중. 이 더위에 땅끝 전망대에 굳이 갈 필요가 있나 싶어 차량 진행 관리 하는 사람에게 물어 완도쪽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비오듯 땀을 흘리는 내 얼굴에 안타까운 듯이, 여기서 내려 오신 길을 다시 올라가 중턱의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됩니다 라고 말한다. 중턱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올라왔다. 잠시 땀을 식히고 싶은데 그늘이 없는게 문제지.


도로를 따라가면서 '전망 좋은 곳 앞으로 300m' 같은 게시판을 자주 보았다. 땅끝 전망대 밑의 바글거리는 주차장과 달리 여기서도 남쪽 바다를 쳐다볼 수 있다. 뜨거운 날씨에 증발한 해수 때문에 어차피 먼 바다를 보기는 글렀다.


물론 여기도 땅끝이다.

완도쪽으로 방향을 틀어 보통 해발 20m에서 45m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햇살이 따끔거리기 시작한다. 그늘 한 점 없는 도로에서 본격적으로 쏟아붓는 열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니 냄비 속에서 황기, 대추, 마늘, 밤 등 갖은 양념과 함께 팔팔 끓고 있는 닭 한 마리가 생각난다. 어디 좀 쉬어갈 곳 없을까...

12시 조금 넘어 사구미 해수욕장 팻말이 나타난다. 갯펄과 흡사한 해변, 고운 모래 때문에 물이 탁해 보인다. 여기저기 수초가 돋아있고 바닥은 잔 진흙층으로 미끌거린다. 하지만 시원한 바닷 속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살 것 같다. 아까 송호 해수욕장에서 입고 있던 수영복 속으로 모래알이 박혀 엉덩이가 들쑤신다. 천원 주고 샤워장에서 옷을 빨고 샤워했다.


근처 가게 앞 시원한 그늘 평상에 앉아 담배 한 모금 빨았다. 휴대폰이 열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땅끝에서 사진을 찍은 후 계속 액정이 켜져 있어서인지 전지가 다 소모되어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셧다운되었다. 휴대폰을 사 놓고 충분한 튜닝을 거치지 않아 아직 불안정하다.

다시 출발해야지? 해가 하늘마루에 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 지나가는 차량을 제외하고 거리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도로 갓길에서 생태계의 놀라운 다양성을 목격할 따름이다. 뱀, 참새, 까치, 다람쥐, 청살모, 고양이 등등 다양한 짐승들이 배가 터져 죽은 후 가죽만 남은 채 말라가고 있다. 특히 장마 탓인지 말라서 바삭바삭해진 지렁이가 무척 많다.

사구미를 거쳐 완도 다리 앞 삼거리까지 가는 길이다. 태양은 진행방향에서 100도 무렵 위치, 등 뒤를 따뜻하게 가열한다. 기온이 얼마까지 올라간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표상의 온도는 대략 40도 가량 되지 싶다. 이 정도의 기온은 방콕 시내를 걸어다닐 때 일상적으로 경험한 수준이다. 다만 다리를 계속 저어야 하므로 땀으로 손실되는 체액이 상당하달까. 벌써 140ml 폴라포 1개와 500ml 물병 1.5병을 비웠다.

시간이 되면 완도에 들러보고 싶지만, 해남에서 강진까지는 대략 93km, 하룻동안 주파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지만 더위로 인한 체력 손실을 감안하면 완도는 지나치는게 낫겠다. 연료가 바닥이 나서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 점심을 먹을 때가 된 것이다. 여차하면 배낭 속의 비상식량인 건빵을 먹는다. 건빵이라니... 생각만 해도 입안이 바싹 말라온다.

완도대교 앞 3거리 앞에서 자전차를 세웠다. '김가네 식당'이 보인다. 오후 1시 30분. 이 집 백반이 유명하다길래 점심을 반드시 거기서 먹자 해서 일부러 들렀다. 별다른 메뉴는 없고 5천원 짜리 백반이 디폴트. 반찬이 너무 많아 커다란 쟁반에 2층으로 쌓아왔다. 세어보니 모두 16가지, 어이가 없군. 거기에 시레기 국과 밥, 돼지불고기를 싸먹을 쌈용 채소를 가져다 준다. 명불허전이다. 아침 식사와 달리 단백질 덩이 반찬이 많다.

온 몸에 열이 펄펄 나니 물부터 두 컵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내장이 뜨겁고 허기진 상태라 밥을 허겁지겁 먹기 십상이지 싶어 부러 밥을 꼭꼭 씹어먹었다. 하지만 찬의 절반도 채 먹지 못했다. 여전히 음식이 내 입맛에 약간 짠 편. 그런데 특별히 놀랍고 감동적인 반찬이 하나 있다. 고동 무침. 얼추 백여개는 됨직한 한 접시의 고동 무침을 내기 위한 정성과 노동력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식당 앞에 나와 잠시 쉬었다. 건너편 도로에서 이글이글 아지랭이가 피어오른다. 끔찍스럽다.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가야지 어쩌겠어.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다산초당이다. 별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렇게 목표를 정해둬야, 이 더위에 만사가 귀찮아져서 줄곳 패달만 밟으며 여기저기 지나치지 않을테니까. 담배 한 대 피우고 폴라포로 내장을 식히고 화장실에서 얼굴에 물을 뿌린 후(거울을 향해, 정신이 좀 드냐?) 출발.

등짝을 지지듯이 퍼붓는 광포한 햇살 때문에 출발하자마자 기가 꺽였다. 땀은 그야말로 비오듯이 쏟아져 내렸다. 작년 동해 주행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도로에서 어지럼증을 느꼈다. 어지럼증이 찾아오고 피부에서 땀이 마르면 그대로 쓰러진다 -- 일사병. 김가네 식당을 기준으로 불과 10킬로미터가 안되는 거리를 주행하면서 500ml 물병을 다 비웠다. 그늘 한 점 없다. 그저 벼들이 열심히 잘 자라고 있는 막막한 평야다. 등짝에 물을 쏟아 부었으나 찜통에서 익어가는 만두처럼 등짝이 뜨끈뜨끈하다. 이래선 도저히... 약 15km를 달린 후 부터는 눈을 두리번 거리며 그늘을 찾았다. 온 몸이 너절하다.

20km좀 넘어서자 건너편으로 숲 그늘이 있는 초등학교가 보인다. 방향을 틀어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분위기가 어째 심상찮다. 아, 국내에 이런 학교가 남아 있었나 싶다. 무성한 숲, 아기자기한 건물들, 그늘마다 지역 주민들이 돋자리를 펴놓고 더위를 식히고 있다. 학교 분위기가 참 좋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수돗가에서 웃통을 벗고 물병에 물을 담아 온 몸에 연거푸 퍼부어 등목을 했다. 지나가는 참새들처럼 아이들 몇몇이 다가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빨아 먹는다. 정겹기 그지없다. 등목을 해도 달아오른 몸뚱이의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는다. 고작 한 시간을, 그것도 해를 등지고 달렸는데 햇살이 이다지도 사람을 기운 빠지게 만들 수 있다니... 죄 없는 나그네를 튀겨버릴 것 같은 더위, 마치 길섶에서 말라죽은 지렁이라도 된 것 같은 심정.


열기가 좀 가라앉아 근처 대나무 숲 앞에 앉아 쉬었다. 대나무 숲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정말 살 것 같다. 뱀 한 마리가 한가하게 기어간다. 잡아서 껍질을 벗겨 구워먹기엔 좀 작은 크기다. 아, 자리가 너무 좋아서 자전거 그만 타고 열기가 누그러지는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가고 싶다.

그럴 수는 없지. 벌써 오후 3시 30분. 조금 있으면 다산초당에 입장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GPS를 살펴보니 다산초당까지 앞으로 4km. 여기서 푹 퍼져있지 말고 일단 다산초당까지 가서 쉬자.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학교를 조금 지나니 강진 / 다산초당 갈림길이 나타난다. 우측으로 꺽어 열지옥의 오르막길을 꾸역꾸역 올라갔다. 올라갈 때 무척이나 힘들어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GPS로그를 보니 23m에서 64m까지 올라가는 마치재라는 길이다. 표고차가 40여미터 밖에 안되는 야트막한 언덕길인데 왜 그리 힘들었을까. 한참 기승을 부리는 더위 때문이었지 싶다. 마치재 마루에서 잠깐 쉬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등을 돌리자 시원한 바람이 언덕을 넘어와 내 품에 안겼다. 좋아.

다산초당까지 순식간에 주파했다. 길섶에 배낭을 맨 젊은이가 보인다. 도보여행중인가? 버스를 기다리는 듯.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때문에 강진, 해남을 찾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늘었다(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책 때문에 여기에 온 것은 아니다. 하루 코스로 딱히 갈 데가 마땅치 않아서 온 거지.

다산유물 전시관 앞에 자전차를 세우고 그늘에 앉아 있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입장권을 어디서 사야 해요? 아저씨가 손사래를 치며 웃는다. 강진에서는 말이요, 표 사서 들어가는 곳이 없어요. 나도 웃었다. 강진은 아직 관광산업에 오염되지 않은 것일까? 마음에 든다. 여름에는 오후 6시까지, 겨울에는 5시까지가 관람시간이다.

다산초당은 여기서 800여 미터 거리에 있다. 기운이 없어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걸었다. 차나무가 꽃을 피웠다. 다산초당에 훈장 선생님 같은 분이 앉아 힘들게 올라온 아이들에게 선생님과 아버지는 하늘같은 존재라서 그림자조차 밟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어린 시절 나는 그 가르침 대로 어른들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고 도로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해 무척 난감해 한 적이 있다. 정약용 선생도 제자들을 그렇게 가르쳤을까? 아닐 것이다.

여기 물 마실 데가 어디 있어요? 처자에게 물으니 뒤로 돌아가면 마실 물이 있다고 한다. 약천이다. 정약용 선생이 이백년전 찻물로 사용하려고 만든 조그만 샘. 물맛이 맹숭맹숭하다. 이게 차 우리기 좋은 물인가? 퇫마루에 멍하니 앉았다. 울창한 숲속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살던 정약용 선생은 이곳에서 몹시 고독하게 지냈을 것 같다. 사위가 음침하고 우중충하여 상상과 많이 달랐다. 그야말로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서 있다'고 그가 말한대로의 유배지였던 것이다.

이곳에 앉아, 또는 동암에 앉아 차를 우리거나 책을 쓰고 가끔가다 헤장선사를 만나러 백운사를 간 것 빼고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음울한 유배지다. 기운이 빠진 상태고 어두컴컴한 숲속을 흔들거리며 걸어와 주저앉아서 남인의 한 선비가 이곳에서 느꼈을 적막감을 상상하니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게다가 다산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사나 찬양은 집어치우고 내가 쓴 글이나 한 줄 더 읽어라' 그는 실학파의 거장이다. 김정희의 글씨는 여전히 아름답다.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관뒀다. 약천에서 받은 물을 떠마시고 전혀 경건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다리를 여러 차례 식혔다. 나도 실학한다.

그대로 내려와 녹차 아이스크림으로 속을 식히고 다산 유물 전시관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었다. 얼마전 '정약용 살인사건'에서 본 내용 그대로의 다산의 일생을 요약하는 비디오를 두 번 보았다. 그의 지난한 삶에 대한 감동 때문이라기 보다는 에어컨이 무척 시원해서 그냥 죽치고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애들이 저그 떼처럼 오락가락 해서 계속 죽치고 앉아 있을 수는 없고, 바깥에 나와 해가 기울기를 기다렸다. 머리속으로 태양의 입사각에 따른 광량과 조사거리를 계산하며 졸았다. 6시가 되면 빛의 강도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계산이고 나발이고 필요없다. 지랄같이 날 더운데 그냥 6시에 해 기울면 출발하자. 수돗가 건너편 숲으로 적송이 보인다. 졸다가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 싶어 눈을 껌뻑였다. 나는 상상한 것을 생생하게 보는 특이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적송 세 그루가 맞다. 아, 적송이구나. 궁궐짓던 나무지 라고 중얼거렸다.

여섯 시다. 해가 기울자 하늘은 새파랗고 높아 보인다. 유물 전시관에서 조금 내려와 수퍼에서 폴라포를 사다가 마룻머리에 앉아 건너편의 동네 노인네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한가하게 바라보았다. 침을 꿀꺽이는 할아버지들이 쳐다보고 있어서인지 폴라포 맛이 평소보다 두 배는 맛있다. 눈치 빠른 주인 아줌마가 아이스 바를 꺼내 할아버지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 아줌마가 묻는다. 민박 안 해요? 강진가서 찜질방에서 자려고요. 땜질방? 찜질방이요. 혼자 자전거 타고 왔어요? 네. 왜 동무랑 함께 오지 않고 혼자 왔어요? 혼자 다니니까 좋기만 한데요, 내킬 때 서고 내킬 때 가고. 잘 먹었습니다.

강진까지는 순식간에 도착했다. 역시 더위 때문에 진도가 안 나간 것이었다. 다리 근육이 생생하게 잘 움직인다. 아까 길섶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친구가 땀을 뻘뻘 흘리며(아마도 숙소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 버스 터미널에서 내일 서울행 버스를 예매하려고 줄을 섰다. 내 앞의 아줌마가 창구의 아줌마에게 말한다. 아니, 그래도 말은 좀 곱게 하시지 않구선. 내 차례가 되자 창구 아줌마가 변명한다; 혼자 표를 팔래니 바빠서요. 신경질이 나네요. 아침 9시 30분 차는 사람이 꽉 찼단다. 그 다음 차는 우등이고. 그 다음 차는 오전 11시. 오전 11시 차로 주세요.

강진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숙소를 눈에 박아두고 군청 근처의 강진 맛집을 가자. 모텔이나 여관은 눈에 띄지만 찜질방이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강진에는 찜질방이 없단다. 근처에도 없어요? 없어요. 다시 버스 터미널로 돌아와 내일 서울행 버스표를 오늘 광주행 버스표로 바꿨다. 남도 음식은 두 끼면 충분하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남도 음식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맛없는 비타500을 사먹었다. 암, 비타민을 보충해야지. 광주행 버스에 올랐다. 7시 좀 넘어 출발해 8시 30분에 광주에 도착했다. 광주에서 묵을까? 광주에서 묵으면 내일 오전 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때는 오후다. 이 지랄맞은 더위에 또 자전차를 몰고 가야 한다. 밤 9시 출발하는 버스를 끊고 휴대폰을 충전시키면서 터미널 식당에서 가장 빨리 나오는 '밥'을 주문했다. 터미널 식당의 그 맛없는 음식을 상상했는데, 의외로 맛 좋은 비빔밥이다. 아쉽지만 5분 동안에 허겁지겁 해치우고 버스에 올랐다. 피곤한 나머지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서울 남부 터미널에 도착. 오전 12시 30분. 느적느적 강변도로를 따라 집에 도착했다. 한 시간 반 걸렸다. 샤워하고 잤다. 온 몸이 후끈거린다.

평속 17.2kmh, 최고속 52.7kmh, 순수 주행시간 5h16m, 주행거리 92.9km(gps), 99.074km(지표 길이). 터미널에서 집까지의 23km는 제외.

해수욕장 두 군데 들러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상 다리가 휘어질 것 같은, 눈이 휘뚱그레지는 점심을 흡족하게 먹고, 다산초당에 들러 관광유적지는 안 들러봐도 괜찮다는 실학의 깊이를 체험하고, 도암 초등학교의 대나무숲 그늘에서 선선한 바람에 더위를 식히며 보낸 시간이 다 합쳐 거의 다섯 시간에 이른다. 주행시간과 얼추 균형이 맞다. 야밤에 찜질방 찾아 돌아다닌 것으로 삽질은 딱 한 번 밖에 안 했다. 최근 들어 가장 보람찬 여행이 된 것이다.

조사한 식당 리스트:

* 해남 청운정: 061-533-6633. 해남 버스 터미널 옆. 아침식사 가능.
* 김가네쉼터: 061-535-2680. 완도로 들어가는 길목. 백반.
* 강진 둥지식당: 강진 군청 앞 작은 골목길 안에 위치. 강진 사람들이 자신 있게 권하는 맛집. 홍어 삭힌 것과 함께 나오는 한정식이 일품.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연중무휴. 061-433-2080
* 강진 동해회관: 짱뚱어탕. 푹 고아낸 구수한 영양탕. 전남 강진군 강진읍 프린스모텔 옆 061-433-1180

주행 로그:

* 해남, 강진 트랙로그 gtm file
* Google Earth Map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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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그 대부분 다 잡았고 기능 하나만 더 추가하면 된다. 한참 일하다 말고, 충동적으로 금요일 오후에 평창에 가기로 했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6.55pm 출발 12300원, 3h20m.

자전거 가방에 자전거를 넣어보니 들고 다니기가 참 뭣하다. 어쩔까 망설이다가 자전거를 타고 동서울터미널까지 가기로 했다. 간단한 옷가지 정도만 챙기고 집을 나섰다. 나서자 마자 비를 맞았다. 훗. 어련할라고. 항상 비님이 호들갑을 떨며 마중나와 주셨지.

쇼핑몰 처마에 우두커니 서서 담배를 태우며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그칠 기미가 안 보여 할인마트에 들어가 쵸코바와 우유 둘을 샀다. 30분 동안 내린 비 덕에 도로가 많이 젖었다. 물이 튈 때마다 출발 전에 기름을 먹여둔 체인에 물때가 끼고 녹이 슬까봐 걱정했다. 녹이 슬면 자전거가 안 나간다.

에라 모르겠다. 신나게 물을 튀기면서 강변도로를 질주했다.

출발 30분을 남기고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니 배가 고프다. 매번 터미널에 들를 때마다 앞에 즐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 음식이 형편없어서 안 먹는다, 안 먹는다 하다가도 먹게 된다. 떡볶이를 시켰더니 고작 한줌에 2천원씩 받는다. 배가 덜차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두 개를 사먹었다.

버스 짐칸에 자전거를 쑤셔넣고 버스에 올랐다. 졸다 깨다 하면서 pda로 음악을 들었다.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휴게소에서 내리는 바람에 자리에 편안히 앉아서 갔다. 휴게소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훗. 그럴 줄 알고 비옷을 준비해왔지.

장흥을 거쳐 대화, 평창에 도착했다. 해가 져서 사방이 깜깜한데 보슬비가 살짝 내린다.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잠자리를 찾아 시내를 배회했다. 출발 전에 민박집을 좀 뒤져보다가 관뒀다. 펜션이나 민박이나 평창읍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들 있는 듯 하다. 비가 올 지도 모르는데 한밤중에 가로등이 들어오지 않는 도로를 달리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찜질방을 찾아냈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나 듣는 종류의 사투리로 응답한다. 아줌마가 청소하다 말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대체로 여자들이 알려주는 길은 방향 외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지만 무척 친절하게 설명해주려고 애쓴다. 이 도로를 따라 읍 외곽으로 나가면 무슨 호텔이 하나 있는데 그 옆 샛길로 가다보면 있단다. 이름이 뭐에요? 그건 모르겠고... (정말 막연하지?) 어두컴컴한 도로를 달렸다. 비는 그쳤다.

청성애원 건강센터라는 곳이다. 사슴농장인데 골프장과 찜질방을 지어놨다. 자전거를 세울데가 마땅치 않다. 밤에 비가 내릴 것 같은데... 산등성이 너머로 번개가 번쩍인다. 경비실 앞 나무에 매어놨다. 들어가보니 손님이 거의 없다. 나를 포함해 일곱명의 남자. 사우나에서 간단히 샤워하고 맥주를 찾아서 이리저리 헤메다녔다. 냉장고에 맥주가 있긴 했다. 마시고 싶은데 사람이 자리를 비웠다. 그래 마시지 말자. 스카이라운지의 해먹에 누워 빈둥거렸다. 춥다. 안으로 들어갔다.

빨간색이 안 나오는 TV에서 월드컵 개막식을 한다. 여자들을 끈에 묶어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마치 공중 부양 하듯이) 월드컵의 신화를 이룬 역사적인 인물들이 입장한다. 입장이 꽤 오래 걸렸다. 호리병처럼 매달린 여자들은 14개의 각기 다른 대륙을 상징한단다. 좋은데, 그만 내려줬으면 좋겠다. 개막 행사가 끝날 때까지 매달아 놓았다. 마치 월드컵은 여자애들 목 매달아놓고 벌이는 마초 행사다, 뭐 그런 의미인 것 같다. 독일 친구들 유머감각이 별난 것 같다.


사람이 거의 없는 한산한 찜질방 구석의 어두컴컴한 땅굴 같은 곳에서 잠이 들었다. 경주의 이름모를 황토찜질방 생각이 난다. 거기도 아무도 없었지. 흡사 외국 여행지의 도미토리 같았달까. 새들이 짹짹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 어? 모두 어디 간거지? 시계를 보니 8am. 목욕탕에 아무도 없다. 깜빡 잊고 칫솔을 안 챙겨왔다. 제길. 체중을 쟀다. 67.5kg. 샤방하게 꽃단장 하고 출발준비를 마쳤다.


아침이 밝아온다. 찜질방 스카이라운지.

자전거 여행 중 들었던 곡: Gravy Train, Ballad Of A Peaceful Man, Alone In Georgia (4:33)

gps를 켜고 평창읍으로 달렸다. 흘낏 현수막을 보니 평창읍내의 장은 5일, 10일 열린단다. 오늘이네? 터미널 주변에 짐보따리를 내려놓은 장꾼들이 보인다. 규모가 작다. 평창읍에 상설시장이 생기면서 장 역시 규모가 작아진 듯 싶다. 시장에서 메밀부침을 지지고 있다. 식욕을 돋구는 고소한 냄새가... 안 난다. 올갱이 국수와 메밀부친개를 먹을까 하다가 편의점에 들러 그냥 삼각 김밥 하나와 우유, 그리고 컵라면으로 때웠다. 출발이다.


9.30am 평창강을 끼고 달리는 도로. 영월까지 내내 이렇다. 분위기 몹시 상쾌. 저 멀리 빌립보 환경친화 어쩌구저쩌구 단지의 흰 돔이 보인다. 풍력 발전기가 돌아간다. 풍력발전기가 소음이 요란하고 지나가는 새들 회 치는 것으로 악명이 높던데... 요즘은 많이 좋아졌으려나?

며칠 전에 눈 다리끼가 났다. 벌써 세번째다. 병원에 들르니 피곤해서 생긴 거란다. 피곤했지. 여의사가 눈이 에쁘시네요 하며 안심시키더니 갑자기 눈두덩을 잡고 있는 힘껏 고름을 짜낸다. 어어... 아파서 눈물이 핑 돌았다. 신음을 삼켰다. 정말 징하네. 그리고나서 내 생애 맞았던 주사 중 순위권 안에 들 정도로 프로페셔널한 엉덩이 주사를 맞았다. 언제 바늘이 들어갔는지 모르겠고 빠질 때도 느낌이 없다.

주사가 정말 좋았는데 한 30분 지나고 나서부터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면 엉덩이가 쭈볏거리며 쑤셨다. 이틀 내내 그 모양이라 자전거 탈 때 걱정했다. 그보다는 밥 먹고 이틀 동안 먹는 항생제가 골칫거리였다. 아직 부어오른 눈두덩이 덜 가라앉아 약을 먹는데, 먹을 때마다 머리가 핑 돌았다. 위궤양약, 진통제, 항생제, 안약, 연고. 의사들이 원래 상상력이 부족한건가? 세상에 약이란 것은 원래 저 다섯가지 뿐인건가?


길은 여전히 아름답다. 가끔 차가 지나다닐 뿐 한적한 도로. 있으나 마나한 갓길. 그 옆으로 언제든지 뛰어들어도 괜찮은 지방 1급수 하천 평창강. 이번에도 역시 수영복만 입고 자전거를 탔다.

한가하게 관광하듯 자전거를 설렁설렁 몰았다. 도로교통 표지판에는 '천천히'라고 쓰여 있었다. 천천히 즐기면서 갈만한 길이다. 우거진 신록에서 향긋한 풀내음이 난다. 십오년 전에 이 길을 걸은 적이 있다. 그때는 gps가 없었다. gps도 없이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마음에 드는 길이 나타나면 내려서 걸었다. 걷다가 지치면 주저 앉았다.


이쯤에서 빠지는 길이 있을텐데... 있다. 십오년전 그 도로다. 오른쪽으로는 새로 뚫린 영월, 제천행 도로가 이어진다. 핸들을 꺽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리로 비포장길을 한참 가면 길이 끊긴다. 길이 끊기는 지점에 나루터가 있고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는 도로가 있겠지?


간만에 나타난 포장길. 비포장길을 한 시간쯤 달렸다. 비포장 오르막길은 아스팔트 오르막길보다 1.7배 가량 힘이 더 드는 것 같다. 비포장에 이르러서야 MTB의 진가가 드러났다. 내 자전거의 두꺼운 타이어가 늘 마음에 안 들었는데 비쭉비쭉 튀어나온 자갈길에서 펑크 나지 않고 잘 나간다. 내리막에서 속도를 낼 때는 이를 악물었다. 안 그러면 도로의 요철 때문에 턱이 으덜덜덜 떨린다. 길가에 나비가 앉아 있다가 자전거가 지나가면 훨훨 날아간다. 나비가 참 많다. 그러고보니 오랫동안 나비 구경을 못했다.

길이 끊긴 곳에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새로 도로를 내려는지 아스콘을 치기 전 도로 토목 작업을 여기저기서 하고 있었다. 평창의 도시 구호가 해피700이던가? 인간이 생활하기 가장 좋은 고도가 700m인데 그 고도에 평창이 있다고 주장한다. gps에 찍힌 평창읍의 고도는 280m였다.

여기저기 메밀밭이 보인다. 늙은 농부들이 기도하듯이 고개를 숙인 채 김매기를 하고 있다. 자전거가 지나가면 농가에서 개가 짖는다. 개들은 사람을 닮아 말을 아낀다. 컹~ 컹~~ 하고. 마치, 왠일로 여기 왔대요? 그냥 가나요? 하듯이. 강가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고기를 잡거나, 물놀이를 하거나, 아니면 술을 마시고 있다. 평균 2km 간격으로 놀이팀이 있다. 누가 옆에 붙어 있는 걸 못 견디는 편이라 여름의 동해안 해수욕장에는 한 번도 놀러간 적이 없다.

강변의 몫 좋은 곳에는 여지없이 팬션이 보인다. 강가에는 수영금지 팻말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유속이 느리고 물이 얕아 수영이 가능하다. 자전거를 세우고 물가에 앉아 발을 담궜다. 차다. 어쩔까. 물에 몸을 적실까. 땀이 거의 나지 않았다. 게다가 날이 흐려 상대적으로 물이 더 차게 느껴진다. 신발을 도로 신었다. 그냥 가자.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사람들이 얍삽하고 성질 더러운 큰 도시에 옮겨온 지 십년이 넘었다. 여행은 나를 다시금 문명이 그다지 필요없는 생활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 비누와 치약, 컴퓨터 정도만 있으면 나름대로 살만하다.

간간이 감질맛나게 보슬비가 내렸다. 최종병기인 비옷을 입을까 말까 망설이게끔 하는 정도만.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서울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큰 비가 온단다. 그러길래 토요일에 출발했으면 엿될뻔 했지. 나만 괴롭히는 것 같은 날씨신을 엿 먹이려고 하루 땡긴 것이다. 그래서 눈 다리끼로 탱탱 부은 눈을 하고 항생제로 찌든 몸임에도 일찌감치 출발한 것이었지.

비야, 왜 안 오니? 이럴 땐 ㅋㅋㅋ 하고 웃어줘야지.

책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언젠가 영월 책 박물관의 홈페이지에서 책 박물관 인근 마을을 헤이온와이같은 고서 마을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본 기억이 난다. 게다가 가는 길에 책 박물관이 있다니 꼭 들러봐야 하지 않겠는가? 가는 길에 없다면 안 들러도 무방하지만. 길을 잘못 알아서 오르막길을 두번 오르락 내리락 하고 나서야 박물관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마땅히 세워둘 곳이 없어 계단 참의 난간에 매 두고 올라갔다. 왠 폐허가 나타났다. 흔히 폐교라 불리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책 박물관은 폐교를 수리해서 만든 것이구나. 분위기 좋아 보인다.

담배 한 대 빨고 입장권을 사려고 건물을 빙 둘렀다. 주인 아줌마가 차 닦다 말고 2천원짜리 표를 끊어준다. '철수와 영이'가 그려진 표다 -_- 신발을 벗고 달랑 교실 세 개짜리 분교 건물로 들어섰다.


정약용이 쓴 한글 언해본. 근데 제목이 뭐였지? 얼마 전에 소설 정약용 살인사건을 읽었는데 꽤 재미있어서 자전거 타고 해남에 갈 생각이었다. 며칠 전에 소설의 저자와 중국집에서 쿄코님이 극찬하던(?) 연태고량을 연거푸 퍼마셨는데(34도짜리 순한 술로 향과 맛이 일품인데다 뒷끝이 깔끔하다) 저자는 정작 책이 잘 안 팔려서 시무룩한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연태고량은 가을 저녁 길가에서 슬며시 잡아본 여인의 허벅지 아니 팔똑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온기가 느껴지는 술이다. 저절로 입맛을 다시게 되는군. 쩝쩝

3개의 전시실을 둘러 보았지만 별로 볼만한 것이 없다. 서종이 논리적이거나 치밀하거나, 다양하거나, 재밌지 않았다. 아직 두서가 없는 편. 그런데 영월책마을 프로젝트의 로드맵은 어딨는거야? 물어봐야지.

갑자기 애들이 저그 떼처럼 밀어 닥쳐서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 황급히 나왔다. 아! 책박물관을 나와서 한참 업힐을 낑낑거리며 오른 다음에야 주인장에게 직지 프로젝트 홈페이지 알려준다는 걸 잊어버렸다 -_-


한창 도로를 건설 중인 자갈길을 오르락 내리락했다. 원래 가려던 길이 아닌데 gps를 보니 가는 길인 듯 하여 선암마을이라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강굽이가 기이하게 틀어져 내려다보면 한반도 지형처럼 보이는 곳이란다. 저 멀리 이 지방 토박이들의 원성을 자아내고 있는 현대시멘트의 공장 건물이 보인다. 현대시멘트 가동 후 마을의 대기중 미세먼지 농도가 서울의 무려 4배 수준에 이르렀다. 묘하게도 중국 위치쯤이 되어서 중국에서 날리는 황사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한국처럼 보였다. 지도의 서해안 부분은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고통받고 신음하는 갯펄처럼 보이지 않나? 사진의 동쪽은 한국에서 내노라하는 오지 마을 중 하나(였)다.


한반도 지형은 그저 그런데 조망대가 아름답다. 시원한 솔바람도 불어오고. 올 봄 조망대 밑에 무궁화 묘목을 심어놨다. 옆에는 '일본 독도망상을 규탄한다' 라고 적혀 있다. 말 뜻 그대로 해석하면, 누가 망상이나 공상을 하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한 것처럼 보인다. 또는, 이념이 다르면 확 죽여버리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냥 '맨날 회나 쳐먹는 빌어먹을 원숭이 놈들아 독도는 우리 꺼야!' 라고 적어놓는게 훨씬 직관적이고 호소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플랭카드 한 장에도 센스를 담자 님들아.

공사한다고 길을 막아놨다. 길이 없고 요즘 생기는 중이다. 생기는 중인 길을 가는 것이야말로 여행자의 로망이지 싶어 턱이 으덜덜덜 떨리는 비포장 도로를 마구 달려갔다. 사우나 마다 설치되어 있는 벨트식 허리 진동기는 허리에 낀 지방을 제거하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 상하로 흔들어댄다고 지방이 분해될 리가 없지. 체지방이 분해되는 경우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소화된 탄수화물-당분이 다 분해되어 더 태울 것이 없어지면 체지방을 연소시키는 것. 그러니까 물과 공기만 마시며 허기져서 쓰러질 때까지 운동하면 된다.

땀방울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소금끼가 까칠한 맨살에서 먼지 알갱이처럼 굴러 떨어졌다. 체지방 연소도 좋지만 배가 고파서 어제 비올 때 편의점에서 사둔 초코바를 꺼내 씹어먹었다. 영월에 도착하면 그때나 밥을 먹자고 마음 먹었다. 어제부터 제대로 된 식사를 못했다. 지나가는 덤프트럭 때문에 먼지 풀풀 날리고 포크레인이 삽질하고 있는 길을 달리는데 현장감독쯤 되 보이는 아저씨가 승용차를 멈춰 세우고 '아저씨 저 길로 돌아가는게 좋을 겁니다' 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아, 예.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힐탑까지 올라가 도로를 탔는데 뒤에 경찰차가 따라 붙었다. LA라면 악셀을 밟아 뺑소니 치겠지만, 자전거를 갓길에 세우고 경찰차가 옆에 설 때까지 기다렸다. 경찰만 보면 왠지 캥겼다. '아저씨 여기 자동차 전용 도로라서 이리 가면 안되요.' 라고 말씀 하셨다. 열나 업힐해서 장마비처럼 땀을 흘리며 올라왔는데 내려가라니 억울하잖아요? 좀 가다가 옆길로 빠질께요. 라고 말해야 할 상황이지만, 얌전하게 네. 하고 대꾸하고 핸들을 틀었다.

강원도에서는 법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녹색 신호등이 점등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한다. 법이 광의적인 의미에서 사회적 합의라면, 사회라 부를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라면 굳이 규칙을 지켜야 하나? 오래 전 배낭여행자들이 숙소에 모여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싱가폴에서는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침을 뱉거나 술을 마시면 즉결로 넘어가 곤장을 맞고 추방당하는데, 이색체험이랍시고 태형을 한 번 당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여행자로서 색다른 관록 하나를 만든다? 할 짓이 없어서 자기 몸을 혹사하는 그런 일을 할까? 그런데 나는 그 세 가지를 다 해 봤다. 사귄 여자애가(물론 싱가폴 아가씨다) 가게에서 나오길 기다리며 가게 맞은 편에 놓여있는 오처드 로드의 한 벤치에 앉아 근처 수퍼에서 산 맥주를 홀짝이며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었다. 내 옆에는 경찰관이 서 있었다. 잡혀가지 않았다. 그날 밤 보트키에서 한물 간 디스코 리듬에 춤을 추고 술을 아주 많이 마시고 떡이 되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이국의 거리를 헤메며 비틀거렸다.

곤충박물관이 나타났다. 역시 폐교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입장료 2천원이 전혀 아깝지 않은 다양한 수집물과 정성어린 표제가 눈에 띈다. 잘 봤습니다 수고하세요 하고 나왔다. 음료수를 마시며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비가 올듯 올듯 하다가 오지 않는다. 해가 보일듯 말듯 하다가 구름 속에 숨었다. 어린 시절 즐겨 튀겨먹던 저것이 노린재 중에 하나였구나. 호랑나비보다 제비나비를 더 좋아했다. 어렸을 적에 번역된 존 파울즈의 소설은 거의 다 읽었다. 미란다, 마구스, 콜랙터, 꾀뜨미네의 사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그중 콜랙터는 몹시 인상에 남는 소설이었다. 박제를 볼 때마다 그 소설이 생각났다. 이제 출발해야지. 몇 안되는 업힐이지만 길고 지루해서 지친다. 평창강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업힐에서 자전거가 취한 것처럼 비틀거렸다. 앞뒤 기어비는 1:1. 입술을 핥았다. 짜다.


다 오르니 선돌이 100m 앞에 있단다. 오로지 주행만 할 생각이었는데 오늘 볼꺼리가 이것저것 꽤 되는 편. 선돌 앞에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한다. (어딘들 안 그렇겠나) 소원을 빌었다. 통일 되게 해주십쇼. 개마고원 함 달려보게. 남자가 순진한 여자애 꼬시는듯한 모습이네?

시원한 내리막이다. 오후 4시다. 여기저기서 길을 헤메지 않았더라면 좀 더 빨리 왔을텐데. 내리막 끝에는 유배 생활하다가 사약 받고 승하한 단종을 모신 단종대가 있다. 충절의 고장 영월이라고 하더라. 모험 관광의 출발지 영월이라고도 한다.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구경하다 갈까, 하다가 영월->서울행 버스 시간을 모르고 허기져서 영월에서 밥 한끼 먹는 것이 정서적 안정에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영월로 발길을 돌렸다. 어린 시절 대인관계와 성정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는 애착 이론에 따르면 나는 non-secure attachment 타잎의 삶을 살았다. 생후 일년 이내에 부모와 아이 사이에 형성되는 애착 형성이 훗날 대인관계에 아주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얘긴데, 비안정애착을 마치 안 좋은 성장 장애처럼 묘사하는 아동심리학을 약간 희안하게 여기는 편이다. 대인관계와 리더십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라고 말하면 나같은 놈을 dismissing avoidant attachment type이라고 불러 주신다. 대부분의 정치형 리더는 조직과 집단에서 공개된 희생양 내지는, 신성한 공물일 가능성이 더 크다. 안정애착형 대부분은 대인관계가 몹시 좋을진 몰라도 리더는 평생 못해 먹는 잡초같은 인생을 살아간다(잡초가 비아냥은 아니고 내 인생의 중요한 지향점이긴 하다). 대인관계는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우주의 크기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공상을 하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왜 애를 안정애착형 만들려고 전전긍긍하나? 타인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읽고도 대충 무시하고 살아가는 비안정집착 또는 자유방목형에는 나름대로 장점이 꽤 많다. 말은 못하겠군.

영월에는 김삿갓 박물관이 있고 동강이 평창강과 만나고 고씨 동굴이 있고 한겨울에 벌벌 떨면서 타오르는 화성을 구경했던 별마로 천문대도 있다. 그럼 먹을만한 밥집은?

오기 전에 곤드레 나물밥을 먹을 수 있는 청산회관과 평창식당(김인수할머니 순두부집)을 점찍어 두었다. 청산회관은 입구가 영 식당틱하게 생기지 않아 평창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반찬 14가지에 순두부 찌게 한 그릇. 밥맛은 훌륭한데 14가지 찬은 그저 그랬다. 하여튼 7가지 이상의 반찬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 더 드릴까요? 아네요 이것만 해도 너무 많은데요. 배불리, 맛있게, 잘 먹어서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나왔다.

강변에서 벌어지는 마을 잔치 구경하다가 버스 시간에 맞춰 터미널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버스에 우겨넣고 좌석에 앉으니 승객 수가 11명 뿐이다. 토고 감독이 보따리 싸서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다소 황당한 뉴스를 보았다.

차에 타고 좀 가다가 창밖으로 비가 퍼부을 기세로 내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가방에서 옷을 꺼내 갈아 입었다. 비옷도 꺼내 놓았다. 강남 터미널에 도착하니 비가 멎었다. 자전거를 타고 반포대교를 건너 빗물이 척척하게 고인 강변로를 따라 달렸다. 비 때문에 아무도 없다. 어두워지고 있다. 신나게 밟으며 집에 가서 뭘 먹을까 오직 그 생각만 했다. 두 시간 반 전에 배불리 먹었는데도 이틀 동안 워낙 먹은 것이 없어 여전히 배가 고프다. 살갗을 스치는 이 스산한 바람에 통닭과 맥주를 마시기는 그렇고, 고깃집에 혼자 가서 땟국물 좔좔 흐르는 이 복장으로 소주에 삼겹살 먹는 것은 청승맞고... 아내는 친구네 집에 놀러가고 없다. 자고 오라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 부대찌게를 만들어 소주 한 잔 곁들였다. 반 병도 채 마시지 못했다. 강가에서 찬 바람 쐬다가 뜨덧한 것이 목구멍에 들어가니 살 것 같다. 누워 노트북으로 영화 아르센 루팡을 보다가 그대로 뻗었다. 루팡이 의외로 재밌다. 루팡 2탄 꿈을 꾸었다.

점심 무렵 일어나 어제 먹다 남은 부대찌게로 밥을 해먹고 빗물과 먼지로 엄청 지저분해진 자전거를 장장 세 시간에 걸쳐 분해하고 정비했다. 기름때가 잔뜩 묻었다. 목욕탕에 가서 정성껏 때를 밀었다.


주행기록을 살폈다. 평창-영월 구간만 68km. 최대속력 51.7kmh. 주행시간 7h36m, 그리고 평속 9kmh(당연하지. 핏발 세우며 주행에 전념한 것이 아니라 거의 빈둥거리면서 갔으니까). 아닌게 아니라 정말 기가 막힌 길이다. 줄곳 내리막인 경관 수려한 자전거 관광 전용 도로라 할만 하다! 평창,영월군은 이 코스 필히 개발해야 한다.

* 평창->영월 GPS Trackmaker file
* 평창->영월 Google Map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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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이다. 5년 만에 제주 자전거 일주를 다시 한다.

여자 또는 인간의 어리석은 습성 중 하나는 학습 수준의 고저, 지성의 개발 과정에 상관없이 시시한 것에 쉽게 매료된다는 것이다. 잘나지 않아도 되고 잘 생기지 않아도 되고 가난해도 상관없다. 굳이 멋있어 보이지 않아도, 뭔가 설명하는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 미쳤다고 봐야지. 이런 관점은 천박하고 한심해서 씨알이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굳이 말할까. 심지어 모험조차 하지 않는 여자(인간)를 비웃고 싶어서다. 인간에게는 호기심도, 상상력도, 모험에 대한 열정도 거의 없다.

이틀 전, 황씨더러 자전거를 우리 집에 놔두고 가라고 했다. 아니면 그의 집에서 가까운 강변 터미널까지 잔차를 몰고간 후 버스를 타고 인천에서 내려 인천항까지 가라고. 후자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구기, 북악 터널을 넘어 힘겹게 자전거를 끌고 왔다. 언젠가는 그 혼자서 강변 터미널에 자전거를 싣고 가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를 통과해 해남 땅끝 마을까지 투어를 기획했으나, 강화도 여행에서 익히 드러난, 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 달 정도 부족한 황씨의 적은 연습량으로 감당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내가 제주 할인 배편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해 아무래도 죽어라고 달리기만 하는 서해안보다는 제주도가 나을 것 같다. 일단은 황씨를 강하게 키워야 갖은 악조건 속에서 벌어지는 내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마조히즘 투어가 가능하니까.

그래도 수요일에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무늬만 그렇지 직장인과 다를 것이 없어 지난 2년 동안 적어도 동업하는 직장인들과 만나고 연락할 수 있는 시간대에 일하는 생활이 되었다. 적당한 핑계를 궁리하다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오면 작년에 돌아가신 처가집 큰할아버지의 장례에 다녀온다고 말할 것이다. 아내에게는 늘 감사한 마음 뿐이다.

계획은 이틀 전에 짰다. 마침 GPS Trackmaker에서 불러다 쓸 수 있는 비트맵 지도를 자동으로 캡쳐해 GDI+ API로 이어 붙이고 좌표를 제시하는 알맵의 플러그인을 완성했다. 기반 지식이 없어(없다기 보단 업무도 아닌데 귀찮아서) GDI+로 팔레트를 만드는데 애먹었는데 vs.net 2005 베타버전의 preliminary help를 보면 GDI+ API에서 이미지를 다루는 함수들이 대폭 추가될 전망이고 그것들을 활용하면 프로그램을 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알맵 사이트에 무료 플러그인 등록을 했지만 감감 무소식 -- palm의 Pathaway나 GPS trackmaker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데 아쉽다. 망할 정부는 세금을 그렇게 뜯어가면서도 '제대로 된' 국어사전을 세납자에게 공개한 적이 없듯이(그건 학자들 책임도 크다. 왜 목숨을 걸고, 평생의 과업으로 만들 생각을 안 하는가? 그러고도 인문의 위기 어쩌구를 말한단 말인가?) 아직도 '제대로 된(말하자면 공짜)' 국가 표준 좌표 지도가 없다.

gps trackmaker에서 지도를 불러와 좌표와 비트맵 지도를 맵 매칭하고 네 개의 트랙과 하나의 루트를 짰다. eTrex 시리즈는 루트를 하나만 지정할 수 있어 아쉽다. 황씨는 제주의 관광지 좌표를 별도로 제작해 메신저로 내게 파일을 건네주었다.

황씨가 제주도에 가면 한라산에 반드시 오르겠다고 해서 나흘 일정 중 하루를 할애하고 남은 3일 동안 자전거로 해변도로를 완주해야 하는데, 소위 '마의 중문 코스'를 포함한 120km를 첫날 달리게 되었다. 계획대로 라면 둘째날은 63km, 세째날은 56km.

이번에 웨이 포인트를 입력하는 방식을 바꿨다. 대분류는 일자, 소분류는 위치순열, 마지막 postfix는 교차로에서 방향지시다. 예를 들어 D1-20R은 제주 투어 첫날 20번째 포인트, 진행로의 500m 후방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의미한다. V,E,S등의 문자도 부여했다. D1-V1은 뷰포인트#1(관광지), D1-E1은 eat place#1, D1-S1은 sleep(lodging)을 의미.

작성된 트랙에 주요 관광지 좌표를 병합하고 코스를 그에 맞춰 좀 더 수정해 루트 포인트 61개, 트랙포인트 541개, 웨이포인트 75개 짜리 거의 완전한 제주도 자전거 여행용 트랙로그 (3.2MB)를 완성했다. 그러나 알맵의 지방도는 갱신이 늦어 신뢰할 수 없다. 12시쯤 황씨가 집에 왔다. eTrex에 트랙로그와 루트 정보를 입력했다.

아내가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챙겨갈 것들 중 몇 가지를 빼놓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응암역 자전거도로를 지나 성산대교를 건너 강변남로 자전거 도로를 타고 가다가 안양천으로 들어서서 1호선 구일역 앞 다리에서 일반 도로를 타서 온수 - 부천 - 부개 - 부평 - 간석 - 주안 - 도화 - 제물포 - 도원 - 주안 사거리 - 인천항 사거리 - 인천항 연안 여객 터미널에 이르는 코스다. 성산대교 기점으로 트랙의 총 길이는 34km, 집에서부터 거리는 45km이다.

짐은 간단하다. 옷가지는 상의 한 벌, 반바지 하나, 팬티 하나, 입고 있는 수영복 하나(항상 피에르 가르뎅의 수영복처럼 생기지 않은 수영복에 감사한다), 스포츠타월, 작은 등산 손수건 한 장. 음식: 점심 주먹밥, 사과 하나, 진통제, 먹다 남은 견과류 봉투. 전자기기: GPS, PDA, PDA 충전용 어댑터, 충전지 4개, 디지탈 카메라. -끝- 영원한 여행의 벗인 칫솔과 때수건, 스카치 테잎을 챙기지 못했다.


성산대교 앞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건다. 자기는 누군가 안장을 훔쳐가는 바람에 안장 없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세상에는 희안한 사람들이 참 많다. 황씨가 좌판에서 장갑을 하나 샀는데 썩 괜찮아 보여 5천원 주고 내 것도 샀다.


안양천 자전거 도로. 일반도로로 진입하기 전에 잠시 쉬다.

한산한 안양천 자전거 도로에서부터 평속 25-30kmh로 힘차게 밟았다. 부평역 부근에서 싸온 도시락을 까먹고 잠시 쉬며 땀을 식혔다. 이어폰을 안 챙겨와서 pda에 기껏 챙겨놓은 음악을 들을 수 없어 섭섭하다.

인천시내에서 한두 번 헤메고 속도차 때문에 각기 다른 길로 가다가 바람과 먼지 회오리를 일으키는 거대한 컨테이너 트럭과 나란히 달려 인천항에 도착했다. 자전거는 물론 온 몸에 먼지가 자욱하다. 오후 5시. GPS가 없었으면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식의 길 찾기다. GPS가 없다면 아무 준비도 안한 황씨는 내 뒤를 쫓아오지 못하고 길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GPS 만세다.

줄곳 일반도로를 달린 탓에 얼굴이 시꺼매지고 자전거에도 먼지가 내려 앉았다. 전날 예매한 표를 찾으로 창구로 갔다. 아무도 없다. 5:40pm쯤 예매한 표를 찾았다. 금액은 안 나와 있고 30% 할인된 표라고 표시되어 있다. 30% 할인이라니, 몹시 기쁘다. 여행사를 통하면 이렇게 된다. 히죽.

인천 연안 여객 터미널 앞에서 빈둥거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제대로 된 유니폼을 갖춘 사람들이 최소한 수십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호화스러운 자전거를 몰고 속속 도착한다. 십만원대 싸구려 자전거를 몰고 온 우리는 구석에 찌그러져 담배나 빨며 앉아 있는데 명찰을 단 어떤 아저씨가 다가왔다.

제주도 자전거 투어 하세요? 네. 저분들도 제주도에 투어하러 가나 보죠? 예스. 그러더니 내 자전거와 황씨 자전거를 대충 훌터보고 나서 자기들은 청해진 해운의 초청으로 아주 저렴한 가격에 제주 자전거 투어를 하게 되었단다. 일인당 3만원씩 받고 오늘 저녁 출발해 내일 아침 도착해서 516 도로나 1100 도로를 타고 제주도를 횡단(종단?)한 후 저녁때 돌아와 다시 배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청해진 해운은 일종의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그 행사를 기획했고 앞으로도 몇 가지 제주 자전거 여행 상품을 만들 계획이란다. 4박 5일 일정의 자전거 투어는 대략 13만원 가량 하는데, 인천-제주 왕복 배편과 3박 펜션 숙박비, 아침 저녁 식사 제공 등 매력적인 조건이다. 30퍼센트라는 파격적인 할인율에도 불과하고 우리는 두 사람의 왕복 배편만으로도 13만원을 썼다.

그 아저씨는 자전거로 유럽을 여행한 적이 있다. 프랑스에서 독일까지 25박 26일 코스로 돌아다녔는데 독일에는 산마다 성이 있단다. 그랬던가? 속초까지 14시간 만에 완주하고 내가 해남마을까지 갈 생각이라고 말하자 자기는 25시간만에 거기 다녀 왔단다. 보통 그런 빡센 주행에서는 식사를 하지 않고 죽을 싸가지고 간단다. 산에서 다운힐 할 때 보통 60kmh, 최대 80kmh의 속도로 내려온다는 가공할 실력의 소유자다. 내가 사정이 훨씬 좋은 일반도로에서 무서워서 60kmh를 넘기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가 브레이크 잡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뒷 브레이크:앞 브레이크 비율은 7:4 정도가 좋단다. 내 자전거의 타이어로는 오프로드 등의 험로주행에서 애 많이 먹을 꺼라고 말한다.

자기가 맡은 투어 맴버 중에는 산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과 일반 도로 주행 목적으로 MTB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후자는 그렇게 비싼 자전거를 왜 타고 다니는지 자기도 이해하지 못한단다. 자기는 동네에서 돌아다닐 때는 중국산 싸구려를 타고 다닌다며, 산에 가는 것이 아닌 이상 굳이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값 비싼 자전거를 탈 이유가 없단다. 그러더니 당신들이야말로 여행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나는 (음식 빼고는) 갖은 궁상을 떠는 여행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하루만에 제주시에서 서귀포라? 가능하다고 위로해준다. 사실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나는 제주도에서 자전거를 탄 경험이 있고 120km 정도의 도로면 7시간 안에 주파가 가능하지만 황씨가 걱정이다. 여차하면 중간에 멈출 작정이다.

개찰시간이다. 자전거는 배에 공짜로 실을 수 있다. 화물칸에 자전거를 내려놓고 3등실로 올라갔다. 벌써 사람들이 들어차 남은 자리가 별로 안 좋다.


오하마나호. 일본에서 제작한 배같다. 선실의 플러그가 110V용이다.

배는 6:30pm에 인천항을 출발했다. 황씨는 여객선을 둘러 보더니 풀장이 없어 후졌다고 말한다. 나는 배가 기대 이상으로 참 럭셔리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이 내 네번째 제주 여행이다. 남들 신혼여행 때 간신히 한 번 가는 제주도를 무려 네 번이나 다녀가는 것이다.


출발에 앞서 짐칸의 내리문을 올리는 중.


인천연안항.


곧 어두워졌다. 식당 옆 갑판에 앉아 컵라면을 사다가 점심 때 먹다 남은 밥을 말아 먹었다. 아까 그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캬~ 자네들은 정말 여행을 할 줄 알아, 하면서 웃으며 지나간다. 그저 궁상이다. 사과를 깎아먹고 있는데 그 아저씨가 또 지나가면서, 이젠 후식까지? 껄껄 웃는다. 그저 궁상이다. 누구나 우리를 세상근심을 잊어버린 순진한 30대처럼 안 보고 학생처럼 봐준다. 장점 많다.

매점에서 캔 맥주를 하나 사다 마시면서 식당에서 벌어지는 무료 공연을 잠깐 관람했다. 필리핀 아가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길래 환하게 웃어주고 손을 흔들었더니 흘낏 쳐다보면서 살짝 눈웃음을 짓는다. 동향 사람인 줄 알았나 보다. 귀여운 아가씨라 웃음이 나온다.

상갑판에 올라갔다. 문근영이 '댄서의 순정'을 찍은 자리라며 커다란 포스터가 걸려 있다. 선두로 가는 길은 막아 놓았다. 선두에는 컨테이너들이 쌓여있다. 측풍이 심해 파도가 갑판을 적신다. 휘청거렸다. 춥다.


9/29

생일이랍시고 핸드폰에 문자가 찍힌다. 내 생일은 국가에게도 알려줄 수 없는 극비사항이다. 다른 많은 카리스마 철철 넘치는 '주인공'들처럼 내게도 출생의 비밀과 드라마틱한 성장 과정이 있다. 농담.

들락거리는 사람들 때문에(문 앞 자리다) 잠자리가 불편해 일찍 깼다. 파도가 높아서 예정보다 30분 늦게 제주항에 도착했다. 날이 흐리다. 시계(기압계)가 없어 비가 올지 안 올지 모르겠다. 강화도에 갔을 때 화장실에 남겨둔 시계를 부쳐달라고 민박 주인장에게 부탁했는데 투어 전날 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동막 해수욕장이 시골이라 택배가 늦게 온단다. 나는 어린 시절 걸어서 두 시간이나 걸리고 모내기 때문에 늦는 학생들이 있는 학교에 다녔다.


해가 뜬다. 날이 흐리다.

내리려는 사람들로 로비가 북적인다. 자전거 투어로 왔다는 할아버지와 잠깐 얘기했다.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그들은 오늘 산길을 타고 갔다가 저녁때 돌아와 인천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배 이름이 오하마나(Ohamana)인데 한 등산객 아저씨가 '오나마나'호라고 낄낄거린다. 승객은 등산객 절반, 자전거 투어 맴버 절반, 그리고 뻘쭘한 떨거지 우리 둘 정도.

내리자마자 짐칸에서 자전거를 꺼내 재빨리 나왔다. 여행 오래하다보니 이럴 때 요령이 붙어 늘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나온다.

담배 한 대 빨고 GPS를 조정했다. 서쪽으로 깃발이 펄럭인다. 바람을 굽어보는 하늘이 우리를 돕는다. 9am 출발.

칼 호텔을 지나 항구에 인접한 해안도로를 따라갔다. 잠깐 방파제에 멈춰 낚시 구경 했다. 용두암에 도착. 황씨 왈: 사진하고 똑 같군. 용두암에 무슨 슬픈 사연이 있는데 잊어버렸다. 승천하려고 끙끙거리는 형상이다. 해변에 인접한 까페 거리를 지나쳤다. 영화, 드라마 촬영 장소라고 선전문구들인 간간이 보인다. 그림같은 집들이다. 그러나 카페보다는 담배연기 자욱한 선술집 취향이다. 느와르의 주인공처럼 벽에 등을 기대고 슬며시 술집에 들어선 사람들을 훌터보며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며 혼자 홀짝이는... 음... 이상한 놈 같군.

패달을 밟았다. 지나가는 바이크 라이더가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애월항 부근 식당에서 멎었다. 아침을 먹으려고 해안도로를 따라 마땅한 식당을 찾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다. 나는 갈비탕을 주문하고 황씨더러 해물뚝배기 먹으라고 하니 해물을 별로 안 좋아 한단다. 그러더니 갈비탕을 주문한다. 제주도에서 갈비탕이라? 나야 몇번 방문했으니 상관없지만. 어쨌든 배불리 먹었다.


해안 도로

협제 해수욕장에서 멈췄다. 10:40분. 바람이 등을 밀어 진행이 아주 쉽다. 황씨는 아직 바람의 영향을 실감하지 못하는 눈치다. 샤워장이 문을 닫았지만 웃도리를 벗었다. 아래는 어제부터 줄곳 수영복을 입고 있다.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일렁이는 파도가 몸을 휩쓸고 지나간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수심이 얕아 한참 나아가도 물이 가슴 언저리에 미치지 않는다. 협제 해수욕장은 내가 알기로 제주도에서 가장 가볼만한 해변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기회가 되는 대로 '해수욕'을 즐겨야 한다. 해수욕장이 문을 닫아 공짜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 가을이 지닌 천 가지 매력 중 하나다.

적당히 해수욕을 즐기고 근처에서 샤워할 만한 곳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좀 난감하지만 바닷물에 젖은 채로 자전거를 타면 피부가 쓸리기 때문에 화장실에 들어가 세면대 앞에서 벌거벗고 손바닥에 물을 떠 몸을 씼었다. 마침 대변을 보러 온 사람이 외면한 채 조용히 칸 너머로 들어간다. 한쪽에서 똥을 싸고 한쪽에서 몸을 씼고 수영복과 샌들을 빨고 있는 아스트랄한 상황 되겠다.

야영장에 한 친구가 앉아 빵과 우유를 먹고 있다. 우리처럼 자전거 여행을 하는 친구인데 그 친구 모습을 보니 몇 년 전 자전거 여행을 할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궁상스러웠다.


해녀상. 제주 해안 도로 곳곳에서 해녀들이 출장 전후에 들락거리는 건물로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협제 해수욕장에 슬픈 추억이 남아 있다. 두번째 제주 여행 때 비행기를 늦게 타서 저녁 무렵 협제 해수욕장에 도착했는데 옆 야영장에 텐트를 치려고 보니 비바람이 송림 사이를 거세게 불어와 도저히 텐트를 칠 형편이 안 되었다. 악전고투 끝에 포기하고 근처 민박집으로 '대피'했던 기억이 난다. 어두컴컴한 동네 어딘가 다 쓰러져가는 '수퍼'에서 라면을 사다가 끓여먹고 있는데 주인 아줌마가 찬밥을 줬다. 참 맛있게 먹었다.

아내는 제주도 가면 유카리 아가씨를 만나라고 했다. 만나서 선물을 건네주라고. 한림에 산다는데 마침 근처이고 전화가 왔다. 술자리 한두 번 같이 한 것 빼고 잘 모르는 아가씨라 좀 뻘쭘한데 제주도 왔다고 대접한다고 하면 내가 좀 민망할 것 같다. 유카리는 유칼립투스의 일본어식 발음일까?


절리가 될뻔한 흔적. 섭씨 800도 부근에서 해안에 내려온 마그마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거북등처럼 갈라진다.


풍력발전 시범설비.

사실상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서해안을 모두 지났다.

수월봉을 지날 무렵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자전거 타는 사람이 보여 옆으로 가면서 말을 걸었다. 어제 저녁에 도착해서 한가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부산 친구다. 황씨는 뒤쳐졌다. 한참 기다리고 있는데 오지 않아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수월봉 앞에서 기다렸다. 자전거 타는 젊은 아가씨가 지나간다. 혼자 이런데 돌아다니다니 대견하다. 샌들을 벗고 핸들에 아까 빨아놓은 수영복을 말리며 황씨가 오길 기다렸다. 한참 후에 나타났다. gps 배터리가 다 되어 길을 잃고 잠시 헤멨단다.

바람이 거세 진행이 더디다. 그제서야 황씨는 제주 바람의 엄청난 파괴력을 실감하게 된 것 같다. 해변도로로 계속 내달렸다. GPS가 있기에 제주도의 해변도로를 샅샅이 훌터갈 수 있게 되었다. 대정에 도착한 것은 4시 무렵. 교차로에서 황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나쳐 가면서 나를 못 본 것 같다. 한참 기다리다가 전화로 좌표를 알려주고 그 앞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바람은 사진에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견과류를 씹어 먹으며 황씨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대정 시내에서 식당을 찾아 돌아다녔다. 내장이 등짝에 붙은 것처럼 허기가 졌다. 간신히 식당을 찾아 들어가 고등어 조림과 갈치 조림을 먹었다. 밥을 두 공기씩 먹었다. 황씨는 바람 때문에 많이 지친 것 같다. 대정에서 하룻밤을 보내던가 아니면 중문에서 숙소를 잡자고 꼬셨지만 가는데까지 가보겠단다.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출발할 때 시계를 보니 5:30pm. 관광이라고는 용두암에 한 번 들르고 협제 해수욕장에서 잠시 파도를 즐긴 것 밖에 없지만 진행이 더디다. 해 지기 전에 중문에 닿을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여차하면 민박을 잡자.

본격적인 맞바람이다. 황씨는 말 그대로 끙끙대고 있다. 내 뒤에 바짝 붙으라고 말했다. 내가 바람막이가 되는 동안 진행이 수월할테니. 해안도로를 타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산방산을 앞에 두고 오른쪽 도로를 따라갔다.

산방산으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맞바람까지 가세한다. 왠만하면 버티겠지만 확 끼치는 바람에 자전거가 갑자기 멈춘다. 앞뒤 기어는 2:1, 내렸다. 내려서 걸었다. 여기서 힘을 빼면 중문 앞의 연달은 고개에서 헐떡일 것이 뻔하다. 산방산 앞자락의 커다란 절 앞에 멈춰 쉬었다. 기억으로는 동양에서 몇째 가는 규모의 절이다. 이름이 보문사 였던가? 바람에 지치고 시간이 많이 늦어 황씨더러 들어가 보라고 말하기가 뭣하다. 보문사 맞은편 용머리 해안 쪽에 하멜이 제주에 표류해 왔을 당시의 배를 재현해 놓았다.


하멜 휴게소. 나는 어린 시절 왜 외국인이 한국에 떠내려와서 살다간 여행기를 읽었을까.

산방산을 에둘러 제주 조각공원 앞에 도착. 별로 볼 것도 없는 곳이니 지나가자. 12번 국도와 만나는 화순 삼거리를 향해 진행했다. 업힐 구간. 힐탑에서 황씨가 오기를 기다렸다. 많이 지쳤는지 언덕 시작부터 자전거를 끌고 온다. 괜찮겠어? 괜찮아요, 보기에 내가 맛이 간 것 같으면 세워줘요. 나는 네 엄마나 의사가 아니다. 하지만 안색이 변하지 않은 걸로 보아 아직은 괜찮은 것 같다. 담배 한 대 빨면서 잠시 쉬었다. 이제부터 업, 다운, 업, 다운이 연속되는 마의 중문 코스가 시작이다. 사실 산방산을 빙 둘러가는 코스는 관광도 되고 대정에서 중문에 이르는 그 소름 끼친다는 연속 업,다운힐을 반 정도 돌아갈 수 있다고 판단했는데 내 판단이 옳은지 긴가민가하다.

중문 앞 삼거리까지 대략 5km 구간.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플래시를 켜고 후미 깜빡이등을 켰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플래시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쓸모가 없다. 자동차 불빛에 의지해 나아갔다. 3km쯤 진행하고 황씨가 오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매번 쉴 때마다 담배를 피워 물었다. 황씨는 쉴 때면 담배를 두 가치씩 물었다. 나는 혼자 자전거 타고 다닐 때는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지만 황씨와 다닐 때는 담배를 피운다. 나는 아직 견딜만하다. 되레 맞바람 코스를 통과하고 저녁을 먹은 이후 부터는 원래 체력의 8할을 회복했다. 수 년 전 이 고개에서 헉헉 거릴 때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수월하게 진행하고 있다.

중문 앞에서 대기. 황씨가 오면 중문에서 하룻밤 보내자고 말할 생각. 황씨가 나를 지나쳐 중문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소리질러 불렀다. 괜찮아? 오늘만 벌써 몇번째 묻는 질문. 괜찮아요. 서귀포까지 갈 수 있겠어? 예스. 좋아, 가자. 7:30pm.

아름답다는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기 전에 들른 휴게소에서 핸드폰을 충전하며 시원한 얼음과자를 먹었다. 앞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말을 건넨다. 왜 그 고생을 하며 자전거를 타고 다니냐고. 차라리 오토바이를 빌려서 돌아 다니라고. 사실 별 고생을 안 했기 때문에 그냥 웃었다. 옆의 젊은 아저씨가 대화에 끼어 든다. 어디서 묵어요? 찜질방이요. 제주시에 가면 탑동에 3천원짜리 찜질방이 있어요. 아줌마들한테 물으면 다 알 겁니다. 오 그래요. 몽산포인지 모슬포인지 근처에 가면 자리물회를 파는 곳이 있다고 할아버지가 말해준다. 어 그거 6월에 먹는 거 아녜요? 냉동 자리가 있단다.

황씨가 지나가길래 불러 세웠다. 하드 하나 사먹고 가라고. 잘 가고 있는데 세운다고 투덜거린다. 서귀포시를 4km 남겨두고 끔찍한 업힐이 두 개 등장. 자전거에서 안 내리고 개기며 끝까지 올라갔다. 더럽게 힘들군. 이럴 줄 알았으면 중문을 통과해 서귀포시에 이르는 길로 가자고 하는 건데. 황씨에게 미안하다.

쉬엄쉬엄 서귀포시 도착. 8:30pm. 아내가 알려준 쌍둥이횟집을 찾아갔다. GPS 덕을 톡톡이 본다. 먼저 횟집에 앉아 황씨에게 횟집의 좌표를 알려줬다. 황돔과 광어가 싱싱하다길래 그걸 주문. 앞 자리에 앉은 아줌마가 머리에 꽃을 꽂더니 자기가 어때 보이냐고 묻는다. 미친년 같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어렴풋이 동막골이 생각난다고 대꾸했다. 좋아한다. 사소한 것에 기뻐하는 여자들에게 늘 경이감을 느낀다. 서로서로에게 꽃을 꽂아주는데 참 재밌게들 보인다.

에피타이저가 도착했다. 소라, 고둥, 갈치회, 한치, 문어, 오분자기, 그외 이름을 알 수 없는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심지어 스끼다시로 한치물회와 초밥까지 등장하셨다. 아내에게 들은 바가 있어 초밥을 제외하고 스끼다시는 가급적 손대지 않았다. 그거 먹다가 배가 불러오면 다른 것들은 먹지 못할 테니까.

9:10pm. 황씨가 도착했다. 건강하고 씩씩해 보인다. 우리는 '한라산 맑은 소주'를 기울이며 서귀포 시 진입할 때 갑자기 나타난 그 빌어먹을 업힐 둘로 얘기꽃을 피웠다. 전채를 다 먹을 때쯤 황돔과 광어가 나왔다. 두껍고 싱싱하다. 어이없을 정도로 푸짐하다. 배불리 먹고도 남았지만 우리는 끝까지 먹어보기로 했다. 매운탕과 밥이 등장하셨다. 매운탕을 다 먹고 나자 이번엔 팥빙수가 나타나셨다. 그야말로 배터지게 먹었다. 7만원이다. 분량으로 4인분 이상이다. 뭍에서는 먹어볼 수 없는 종류의 만찬이다. 진정한 회를 먹어본 것이다. 이 횟집에서 회 한 접시 먹기 위해 비행기 타고 서귀포에 오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

11:30pm, 배불리 먹었으니 이제 숙소를 찾으러. GPS에는 300m 전방에 있다고 한다. 서귀포 시내에 하나밖에 없는 찜질방인 '옥찜질방'을 간신히 찾았다. 여성전용이다. 간단히 엿됐다.

허전한 맘에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찜질방 없냐고 물었다. 중문에 있다고 한다. 아니면 여기서 자전거로 30분 정도 서귀포 북쪽으로 올라가야 한단다. 시간이 많이 늦어 시가지 중심에 있는 모텔로 갔다. 4만원 달란다. 협상했다. 3만 5천원. 3만원까지 떨궜다.


모텔 시설은 그럭저럭 괜찮다. 맥주 한 병 사서 마시다가 스르르 눈이 감겼다. 피곤했나 보다.

9/30

7시쯤 깨었다. 날이 흐리다. 중문에 널려있는 관광지를 하나도 보지못한 것, 그리고 숙소를 중문에 잡지 못한 것 때문에 후회스럽다. 중문에 찜질방이 있다는 정보를 얻지 못했다. 나야 벌써 한 번 씩은 다 본 것들이라 괜찮지만 황씨는 뭐 하나 제대로 본 것 없이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야 하는 피치못할 불상사가 되니까. 이대로 성산에 갈 수는 없다. 황씨한테는 오늘 코스가 아주 쉽고 바람도 우리를 도울 꺼라고 말했다. 황씨는 바람에 환멸을 느끼는 표정이다.

외돌개로 향했다. 비가 간간히 내린다. 황씨한테 전화해서 낚시점에 들러 비옷을 하나 사두라고 말했다. 외돌개에서 황씨가 올 때까지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스님 한 분이 눈 앞에서 왔다갔다 정신 사납게 하더니 are you chinese?라고 영어로 묻는다. 주변에 중국인 떼관광객이 엄청나게 많지만 자전거 타고 온 중국인은 처음 본다는 말투였다. 얼떨 결에 no라고 영어로 댓구했다. 장난끼가 돌아 no, i'm malaysian이라고 덧붙였다. 마누라는 중들을 많이 알아 중들한테 공손하게 대하는 편인데 난 안 그런 편이다. 말레이지아에서 한국 회사의 협력사에서 업무 배우러 왔는데 코리아가 원더풀하고 물가가 '의외로 싸다'고 말했다. 영어가 딸리는지 슬그머니 사라진다. 말레이지아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 나라 하나도 안 우습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이 관광지에서도 낚시질에 여념이 없는 아저씨는 어떻게 절벽을 내려가 저기서 낚시를 하게 되었을까. 멀어서 사람이 잘 안 보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제는 비까지. 황씨가 푸념한다. 말했다; 나하고 여행 다니면 늘 비를 보게 되거든. 일관성있게도. 그래서 나는 비옷을 들고 온 것이다. 천지연 폭포로 향했다. 황씨더러 천지연 폭포에서 표 끊을 때 학생이라고 말하라고 했다. 일반 2천원, 학생 천원이다. 우린 늘 배우는 관계로, 학생이 맞다.


천지연 폭포


관광 온 중국 학생

아침으로 럭셔리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전복죽을 시켰다. 벌써 11:30am이다. 유명인사들이 자주 방문해 주시는 유명 식당이다. 한 대접 가득히 나오는 전복죽은 색깔이 그럴듯하고 전복 쪼가리도 꽤 많이 들어있지만 생각보다 전복향이 안 나고 맛이 없다. 참기름을 너무 많이 넣었다. 이게 무슨 전복죽이냐, 참기름죽이지.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고 깔끔하게 비웠다.


전복죽 먹은 식당


무슨 나방이 전투기처럼 생겼을까. 혹시... 제비는 전투기처럼 생긴 나방을 두려워 했을 지도 모른다.

오늘부터 무슨 축제를 한다. 축제는 관심없다. 비 맞으며 정방폭포를 구경했다. 예전에 왔을 때는 샌달이 없어 물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샌달을 신고 왔다. 물을 첨벙이면서 폭포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다. 수심이 깊다. 황씨를 비웃었다. 갯벌 밖에 없는 강화도에 가서는 수영복을 입고 돌아다니더니 맨 바다 투성이인 이곳에 와서는 운동화를 신고 온다고.


정방폭포


정방폭포에 놀러온 중국 학생

서귀포 KAL 호텔을 지나 계속 나아갔다. 비가 많이 온다. 비옷을 입고 짐칸 묶는 줄로 허리를 동여맸다. 그래놓으니 타지에서 놀러온 각설이들처럼 보인다. 폭포처럼 비가 쏟아진다. 앞이 안 보일 지경이다. 비옷의 후드가 자꾸 벗겨졌다. 모자를 쓰고 후드를 덮은 후 그것을 고정하려고 손수건을 동여맸다.

감귤밭을 지나간다. 침을 꿀떡 삼켰다. 초록색 감귤은 덜 익은 것인지 아니면 제주에서 재배하는 여러 감귤 품종 중에 하나인지 알 수가 없다. 노변을 따라 주욱 늘어선 감귤 농장에서 하나 따 먹고 싶은 애처러운 표정을 짓고 있으면 마음 좋은 주인이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하나 따서 갖다주는 뭐 그런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천천히 자전거를 몰아갔지만, 아무도 없다. 비만 억수같이 쏟아지고...

감귤밭을 다 지나고 나니 비가 그쳤다.

신례리를 지날 때쯤 자전거 뒷부분이 푹 하고 꺼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주행이 안된다. 뒤를 흘낏 쳐다보니 타이어가 축 늘어졌다. 펑크다. 빌어먹을.

황씨가 다가왔다. QR레버를 제끼고 브레이크를 끌러 뒷바퀴를 완전히 떼어내고 타이어를 들어 올렸다. 빵구 때우는 것은 어렸을 때 몇 번 해 본 것 빼고 익숙치 않지만 어떻게든 해볼 참이다.

그럴 필요는 없지만 처음 하는 거니 타이어를 다 빼내고 타이어 속에 말려 들어간 튜브를 펴냈다. 펌프로 튜브에 바람을 흘려 넣으면서 세숫대야에 물을 담고 튜브를 돌려 넣으며 기포가 올라오는 부분을 찾는 '표준 수리방법'을 따를 주변 여건이 아니기에 밸브 조임 나사를 풀러 입으로 바람을 넣어 황씨더러 어디 구멍이 났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쉽게 찾았다. 구멍이 길쭉하다.

사포가 없는 관계로 콘크리트 바닥에 구멍난 부분을 비벼 꺼칠한 면을 만들고 본드를 바른 후 살짝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 펑크 패치를 붙였다. 잠시 대기. 타이어 한쪽을 림에 끼우고 튜브를 밸브쪽부터 끼워 맞춘 후 살살 밀어넣었다. 자전거 여행 중인 사람들이 흘낏 쳐다보고 지나간다.

타이어를 다 말아넣고 펌프로 바람을 넣었다. 잘 안들어간다. 십여분 해봤지만 바람은 1/3 밖에 차지 않았다. 이 망할 놈에 펌프는 그 허접함 때문에 믿음이 안 가더니 이제사 본격적으로 속을 썩이는구나. 애당초 장난감 같은 펌프를 산 내 잘못이지. 헉헉 숨을 몰아쉬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바람 넣을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황씨가 정찰을 나가 주변 마을에서 수소문을 한다. 나 역시 근처 철공소에 물었다. 위미 사거리 왼편 주유소 뒤에 농기계 수리점이 있단다. 고맙습니다. 황씨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그러더니 먼저 가 있겠다고 하면서 자전거를 몰더니 주유소 쪽에서 멎지 않고 마을로 들어가버렸다.

어 거기가 아닌데... 펑크 때우느라 거의 30분을 소비하고 농기계 수리소까지 가는데 다시 30분을 보냈다. 수리소 아저씨들은 오리지날 제주도 방언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뭔 소린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가 서울 말씨로 말하면 즉각 서울 말씨로 댓구한다. 바람 좀 넣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바람을 너무 많이 넣어주셨다. 하지만 바람 넣어준 것만도 고맙다.

펑크는 왜 나나? 왜 나는지는 모르겠고 타이어에 바람이 덜 들어가 있을 때 접지면적이 늘어 자주 난다.

위미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져 황씨를 찾았다. 그는 주유소에서 제 자전거 바람을 넣으려 했다가 주유소 직원이 황당하게 쳐다봐 민망해서 나왔단다. 달리자.


해안도로를 따라 신영영화박물관까지 밟았다. 비맞은 강아지 꼴로 데스크에 물었다. 사설 박물관인데 입장료가 6천원이란다. 건물 내외 규모로 봐서는 그다지 볼만한 꺼리가 없을 것 같다. 펑크 수리하느라 기름때가 낀 손톱과 숯검댕이라도 씻으려고 화장실을 찾았다. 화장실은 박물관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야 이용할 수 있단다. 에잇. 그냥 가고 만다.


12번 국도를 따라 이동했다. 국도 중간쯤에서 해안도로 진입로를 찾았다. 더 볼 것도 없어 12번 국도로 계속 이동하는 것이 편하지만 그래도 이왕 제주도에 온 김에 해안도로란 도로는 다 찾아가자. 초소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에게 인사했다. 얼떨결에 인사를 받는다.


제주민속촌박물관에 도착. 입장료 6천원. 황씨와 타협했다. 입장료 쓸 돈을 모아 저녁때 배터지게 먹자. 오늘은 제주 똥돼지로 하자고. 아침에 아내에게 전화해서 성산에서 제주 똥돼지 아니 흑돼지로 유명한 집을 알아 놓았다. 아내는 사무실 직원들과 제주 자전거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열댓 명의 사람들이 조리 도구를 들고 가서 제주도에서 자전거와 차량을 빌려 재밌게 놀다 갔다. 황씨와 나 둘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쓸쓸히 여행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사람이 모이면 그 규모 탓에 다양하고 풍요로운 체험을 할 수 있으니까.


5:30pm, 황씨가 올 때까지 횅한 탐라수산 직판장 앞에서 기다렸다. 황씨는 보통 나보다 뒤쳐지고 그럴 때면 짬짬이 바닷가 갯바위에 나가 게를 잡던가(잡으려 노력했다) 파도를 타고 흘러온 온갖 이상한 물건들을 건져 올리는 등 혼자 시간을 보냈다. 비 맞고 펑크나고 하늘은 구름으로 어둑어둑하고. 멀리 어슴프레하게 섭지코지가 보인다. 이제 다 온 셈이다.


황씨가 도착했다. 핸드폰 배터리가 거의 다 닳았다. 황씨더러 먼저 가서 숙소를 알아볼테니 천천히 오라고 말했다. 날이 어두워졌다. 평소에는 물론, 어제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음을 입증한 헤드라이트를 켜고 후미 깜빡이도 켰다. 섭지코지를 지났다. 오늘은 너무 늦어 섭지코지는 내일 갈 것이다. 내일은 아주 시간이 많으니까.

일출봉 도착. 민박집 몇 군데를 전전하며 가격을 알아보았다. 2만원 균일. 아내는 펜션에 묵으라고 하지만 펜션은 비수기에도 5-6만원씩 한다. 몇 군데 들르면서 따뜻한 물은 나오는지 방은 깨끗하고 넓은 지, 전망이 괜찮은지를 점검했다. 그리고 짐이 거의 다 젖은 상태라 말려야 한다. 황씨가 올 때까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흑돼지 집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농협 앞이라고 하는데 농협 앞에는 해산물 식당 밖에 없다.

민박에 짐을 풀고 자전거는 비 맞지 않게 현관 안으로 끌어놓았다. 민박 주인 아줌마에게 물어 흑돼지 잘하는 집을 찾아갔다. King mart 앞이다. 정육점과 식당을 겸업한다. 직접 돼지를 잡는단다. 아내 때부터 이구동성으로 그 집이 맛있다고 하는 걸 보니 괜찮은 집인 것 같다.


생각보다 별반 맛이 없다. 육질이 좀 다르고 오겹살이란 것 뿐 돼지고기는 역시 돼지고기인 것이다. 수입하는 고기는 껍데기를 벗기기 때문에 삼겹살은 수입인지 국산인지 알 수 없으나 오겹살은 확실히 국산이라는 정도. 어제 처럼 간단히 소주 두 병 마시고 생고기 2인분과 갈비 2인분을 시켜 먹었다. 그제서야 왜 고기가 별반 맛없게 느껴지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기는 확실히 괜찮다. 그런데 그걸 가스불 철판에 구우니 영 맛이 없는 것이다. 여름에 돌판과 숯불로 돼지고기를 구워먹어봐서 안다. 가스불에 고기를 굽는 집은 일단 피하는게 상책이다. 하여튼 배불리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어제처럼 맥주를 한병 더 사다 마시고 라면도 좀 사뒀다.

숙소 앞에서 젊은 친구가 자전거에 바람을 넣으려고 용을 쓰고 있다. 밸브가 희안하게 생겨서 바람이 안 들어간단다. 할머니 셋이 말 그대로 왈가왈부 하면서 입으로 침을 튀기며 각자의 견해를 밝히지만 해결 기미가 안 보인다. 여자들이란... 황씨와 둘이 바람 넣는 것을 도와줬다.


민박에 돌아와보니 모포가 적어 빈 옆 방에서 몇 개 슬쩍 했다. 배개하고 비누도 가져왔다.

10/1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4am. 다시 잠을 청했다.

밤새도록 선풍기를 켜 놓았지만, 어제 비에 젖은 옷가지 빨래가 다 마르지 않았다. 웃도리를 걸치니 시원하다.

6am, 황씨를 깨웠다. 비록 비가 내리고 있지만 일찌감치 일출봉에 올라갈 참이다. 전에 왔을 때 경험으로는 아침 나절이 좀 지나면 관광객들로 바글거리기 때문이다. 비옷을 챙겨 입고 한기가 스며드는 어둑어둑한 숙소 앞에 나왔다. 숙소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고 그 옆에 일출봉 입장로가 있다. 숙소 하나는 잘 잡았다. 용궁 민박이다. 숙소 뒷편으로 돌아가면 개구멍이 있을 법 싶다. 여기서는 확인이 잘 안된다.


말 옆에서도 변함없는 포즈를 취하는 중국 텔레토비 학생. 비는 내리고 어두워서 포커스가 안 맞는다.


특이한 포즈로 말 옆으로 접근한다.

자전거를 타서인지 다리가 뻣뻣하다. 오르는 길은 별 문제 없지만 내려올 때 슬며시 근육에 통증이 느껴진다. 알이 배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약간의 근육통뿐.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길가에 설치해둔 스피커에서 성산포 낭송가사가 흘러나온다. '성산포에서는 바람이 심한 날 제비처럼 사투리로 말한다. 그러다가도 해가 뜨는 아침이면 말보다 더 쉬운 감탄사를 쓴다. 손을 대면 화끈 달아오르는 감탄사를 쓴다' 언제 들어도 귀신 씨나락 까먹는 듯한 가사다. 일출봉 전망대에서 성산을 바라보던 황씨가 신음했다; 여긴 한국이 아니야. 그는 도착한 날부터 종종 '한국이 아니야'라고 입버릇처럼 중얼거렸다. 성산은 제주에서 가장 척박한 땅에 속한다.



플래시를 터뜨리면 이렇게 빗방울이 보인다.



일출봉 정상 전망대

배를 타던 날 만났던 아저씨는 성산포-제주 구간이 제주 자전거 투어에서 가장 재미없는 코스라고 말했다. 동감이다. 어젯밤 황씨와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성산포에서 516 도로까지 가는 코스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지도를 보았다. 꾸준한 업힐이다. 도로가 몇번의 교차로를 만나 복잡하다. 그 길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는 짐작할 수 없다. 그쪽 코스로 간 사람 얘기를 아직 못 들어 봤으니까.


일출봉에서 바라본 어슴프레한 서쪽은 끝없는 산과 고개의 연속이다. 가장 먼쪽에는 안개 속에 푹 파묻힌 한라산이 있다. 한라산은 보이지 않는다. 한라산이 거기 있을 뿐이다. 제주시에서 시작하여 한라산의 산 중턱을 따라 1100 도로와 516도로가 서귀포까지 이어진다. 어젯밤에는 다리 상태가 괜찮다면 그리 가겠노라고 황씨에게 말했다.


일출봉 산책로에는 쥐며느리들이 우글거린다.


비가 그치고 날이 밝았다.

생각이 바뀌었다. 다리 상태와 상관없이 가자. 하지만 황씨를 12번 국도로 혼자 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일단 GPS가 있으니 길을 따라가는 것은 쉬울 것이다. 56km, 업힐이 거의 없고 성산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12번 국도를 만나면 그저 주욱 진행하면 쉽게 제주시에 닿을 수 있다. 별다른 관광거리는 없고 용담과 만장굴, 흑모래가 깔린 삼양 해수욕장 정도? 아무리 늦어도 4시 이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생각했다. 내가 과연 저 길을 갈 수 있을까. 해발 600여미터까지 차츰차츰 고도가 높아간다. 얼마나 많은 고개가 있을지 알 수 없다. 고생을 부러 사서 할 필요가 있나.

라면을 끓여 밥 말아 먹고 제주 뉴스를 보았다. 오늘은 제발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 비가 오지 않는단다. 그리고 제주시에서 벌어지는 공청회 중계가 나온다. 주제는 제주 날씨 예보가 하도 잘 틀려 대책을 마련해 보자는 것이다. 제주도 날씨는 잘 맞았을 것이다. 그저 내가 와서 비가 온 것 뿐이다. 나는 레인맨이니까.


설법을 위해 산을 오른다.


길에서 찢어진 비옷을 줍다.


한 말씀 하신다.


비 맞고 바람 맞다 보면 이렇게 된다.


용궁민박


숙소에서 바라본 일출봉

9.30am, 숙소를 나왔다. 스니커즈 넷, 물 따위를 샀다. 제주에서는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되지만 어제 물병을 재털이로 활용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물을 샀다. 스니커즈 둘을 황씨에게 주었다. 점심은 궁하게, 저녁은 거나하게 먹자고 말했다.

자전거 상태가 말이 아니다. 체인에서 삐꺽이는 소리가 나고 페달질이 뻑뻑하다. 이틀 동안 바닷바람을 맞고 비를 맞으며 달렸더니 체인이 벌겋게 녹이 슬었다. 이틀 전 집을 나서기 전에 기름을 듬뿍 먹여 두었어야 하는건데... 교훈이다.


카메라를 노려보는 사마귀


섭지코지 진입로 앞에서 황씨와 헤어졌다. 황씨는 잘 갈 것이다. 황씨보다는 내가 걱정이다. 이번에는 GPS에 의존하지 않고 지도와 표지판을 확인하면서 가야 한다. 쓸쓸하다.

농기계 수리점이나 오토바이 수리점을 찾았다. 부탁해서 체인에 녹 제거제를 흠뻑 먹여야 할 것이다. 눈에 띄지 않는다. 지표가 되는 미니미니랜드를 표지판에서 찾았다. 우회전. 26km 가량. 수산리 방면으로 길을 잡았다. 길가다가 대형마트가 보이길래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왔다. 마트에서 녹 제거제를 팔고 있다. 하나 사서 녹이 슨 부위에 듬뿍 도포했다. 땟국물이 흘러 내린다. 브레이크를 조였다. 아저씨들 몇몇이 내가 자전거를 이리저리 손 보는 모습을 지켜본다.

성산에서 수산리로 향하기 직전. 아직은 완만.

10.30am. 쭉 뻗은 도로를 따라 고개를 몇 넘어 왔다. 금세 고도가 78m까지 올랐다. 속도는 별 의미가 없어 GPS의 디스플레이를 고도계로 맞춰 놓았다. 바람이 거의 안 불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살짝 비친다. 오늘은 정녕 하늘이 나를 밀어 주려는가.


그림같은 길. 한국이 아니야...


자기 최면: 이건 업힐이 아니야...

꾸준히 업힐이 계속되었다. 내리막이 없다. 전혀 없다. 고도는 120m까지 올라갔다. 주위 풍경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제주 주변에 널려 있는 오름(새끼 화산)들이 하나둘씩 사방에서 나타난다. 마을이 끝났다.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다. 허벅다리가 묵직하다.


마을을 벗어나자 금새 먹구름이 몰려왔다.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서둘러 비옷을 챙겨 입었다. 강 약약 중간 약약, 빗줄기는 굵어졌다 얇아졌다를 반복한다. 코끝에 빗방울이 맺혔다. 눈썹을 따라 옆 볼기를 타고 빗물이 흐른다. 빗줄기가 거세지자 눈물처럼 뚝뚝 떨어진다. 시야가 흐릿하다. 손가락으로 대충 안경의 물기를 닦았다. 업힐은 여전하다. 비옷 속은 훈훈하다. 비옷 속은 땀으로 절은 셔츠의 물기로 척척하다.


잠시 쉬며. 화면을 빼곡히 채운 제주도 일주 도로 웨이포인트. 직선은 성산에서 제주까지의 직선 경로.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가끔 한 두 대씩 차가 지나간다. 그들은 힘겹게 고갯마루를 향해가는 나를 위해 중앙선을 넘어 건너 차선으로 비켜간다. 제주도에서는 차량이 크랙션을 울리는 경우가 서울과 다르다. 서울에서는 '저리 비켜 이 자식아' 라는 뜻인데, 제주에서는 '제가 뒤에 있습니다 이제 지나갈께요' 라는 뜻이다. 고맙습니다.


저건 메밀 아닌가?


해안도로에서는 절대 구경할 수 없는 종류의 풍경


지긋지긋한 업힐

비바람이 후드가 자꾸 벗겨져 손수건으로 묶었다. 업힐은 여전하다. 340m까지 올라왔다. 길섶에 자전거를 세우고 스니커즈를 하나 씹었다. 물은 벌써 2/3를 마셨다. 이렇게 비를 맞는데도 땀이 많이 나나 보다. 다리를 눌러보았다. 괜찮다. 어쩌면 아침에 타이레놀을 삼켜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4km만 더 가면 산굼부리다. 산굼부리에서 남은 스니커즈를 먹고 좀 쉬자.

비가 억수로 퍼붓는다. 목장에는 말들이 비를 맞으며 몇몇씩 떼를 지어 우두커니 서 있다. 말 등 위로 파닥파닥 부딪혀 튀는 빗줄기가 보인다. 꼬리와 갈기가 젖어 축 쳐졌다. 콧구멍으로 푸드득하는 수증기가 뿜어 나온다. 그들이 내딛고 있는 땅은 물이 고여 진창을 이루었다. 저것들이 서러브레드 종일까? 하여튼 조랑말처럼 작은 토착종이 아닌 늘씬하게 잘 빠진 경주마다.


호기심 많은 녀석. 슬슬 다가온다.


그리고 옆눈으로 쪼개본다.

산굼부리가 나타났다. 비가 그쳤다. 비옷 소매에서 물이 후드득 떨어진다. 자전거 보관소를 찾았지만 안 보여서 매표소에 부탁해 매표소 뒷켠에 자전거를 세웠다. 쫄딱 젖었다. 가방을 열어 뒤집으니 물이 쏟아진다. 일부분 방수가 되는 가방이나 지퍼 틈새로 물방울이 스며들어가 바닥에 고인 것이다. 다행히 출발 전에 짐을 모두 비닐봉투에 싸 놓아서 젖은 것은 별로 없다.

길게 숨을 들이키면서 잠시 쉬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 가지고 들어가며 남은 스니커즈를 우걱우걱 씹었다. 산굼부리의 전체 조망은 거의 불가능하다. 북쪽의 햇빛이 비치는 아열대성 식물군과 남쪽의 온대성 식물군의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내심 기대하고 왔지만 빙 에두른 울타리는 특이한 화산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산굼부리 내부로의 진입을 막고 있다. 중앙에서 모락모락 김이 솟아 오른다. 대체... 아무리 보호해야할 관광지라지만 왜 이따위로 만들어 놓았을까 라고 생각했다.


특이한 화산 형태, 산굼부리.


억세밭을 터덜터덜 걸어갔다. 길을 막아 놓았다. 숲속의 공지를 돌아다녔다. 생태 체험장이라던지 자연수목림이라던지 따위로 불리는 것들에 가면 이런 곳에서 산림욕을 한다는 말을 한다. 내가 강원도 촌뜨기라서 그런지 영 정이 안가는 서구화된 도시민들의 가엾은 한숨처럼 들린다. 오죽이나 '숲'이란 걸 경험해보지 못했으면 그럴까 싶다.


'모든 숲속의 공터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어떤 신화학자(고고학자던가?)가 말했다. 누군지 기억 안난다. 공감하지만 이 공터에 이름 붙이기가 좀 민망하지 않을까.

음료수를 하나 사서 마셨다. 거의 수재민 꼴이다. 짐을 땅바닥에 풀어 헤치고 다시 정리했다. 비에 젖은 체인에서 물기를 닦아내고 녹 제거제를 듬뿍 뿌렸다. 녹이 벗겨지면서 금속이 삭아버리든 이제는 개의치 않는다. 짐을 싸고 비옷을 개어 짐받이에 묶고 짤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짰다. 사람들이 많아 땀에 절은 웃옷을 벗어 짜기가 좀 뭣하다.


다시 출발. 길이 아름답다. 숨막히게 아름답다.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고 이마에 땀방울이 벙글벙글 맺힐 지경이다. 430m에 이르렀다. 미니미니랜드를 지나쳤다. 힘들더라도 차라리 이 리듬 그대로 계속 올라가다 보면 끝이 보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페달에 힘을 주었다. 500m, '제주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정말 숨막히게 아름다운 숲길이었고, 이제 고생은 끝난 것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또 오르막이다. 대체 이놈에 오르막은 끝이 있긴 한건가 싶을 정도다. 이제 기어는 1:1, 거의 걷는 수준에 이르렀다. 560m, 516 도로와 교차점에 이르렀다. 아 살았다. 드디어,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내리막길이 뻗어있다.

어.. 내리막길을 다 내려가니 또 오르막이다. 대체 어디까지 오르막인가. GPS의 고도계가 640m까지 올라가고서야 겨우 오르막이 끝났다. 이제 제주시까지는 14km가 남았다. 1pm이다.

쉬지 않았다. 귓가를 무섭게 가르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60kmh로 미친듯이 내려간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업힐 지옥에서 구원받았다.


제주마 방목지 앞에서 자전거를 세웠다. 아직 땀이 덜 말랐다. 벤치에 드러누워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흐르는 듯한 햇살을 바라보았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깨보니 1:20pm.


햇살에 당하고 젖어 불은 발


젖어서 축 늘어진 가방

황씨는 제주시에 도착했을까? 나는 그에게 3pm에 전화할 꺼라고 불안하게 말했다. 아침에 헤어질 때에는 내가 3pm까지 제주시에 도착할 수 있을지 자신 없었다.

다운힐에서 60kmh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다. 그 이상은 무섭다. 돌 하나 튕길 때마다 마구 틀어지려는 핸들을 통제할 자신도, 연속된 굽이에서 제때 핸들을 꺾어 맞은 편 차량이나 이쪽 난간에 박지 않고 나아갈 자신은 아직 없다. 그러나 60kmh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보다 더한 긴장과 스릴을 맛보게 한다. 20분이 채 안되어 제주시, 시청 앞에 도착했다.

다시 자전거의 짐들을 꺼내 벤치에 펼쳐놓고 말렸다. 황씨에게 전화했다. 전화기가 꺼져있다. 배터리가 부족해 꺼놓은 것 같다. 어떻게 할까... 일단 시청에는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 짐을 펼쳐놓고 말리거나 자전거를 정비하기가 뭣하다. 삼성혈로 향했다. 삼성혈 앞 수퍼에서 작업용 장갑 한벌과 하얀 목장갑 한벌을 구입했다. 그리고 삼성혈 옆 주차장에 쭈그리고 앉아 공구를 꺼내 자전거를 분해하여 온갖 종류의 얼룩이 진 프레임과 디레일러, 체인 등속의 때를 목장갑을 찢어 깨끗이 닦고 다시 조립하여 녹 방지제를 뿌렸다.

다운힐에서 하도 브레이크를 잡아 림에 녹아내린 고무 흔적이 남아 있다.

황씨와 3pm 쯤 통화하고 GPS 포인트를 알려주었다. 3:30pm쯤 제주민속박물관 앞에서 랑데부하고 잠시 쉰 후 시청 뒷편의 오분자기 뚝배기로 유명한 식당에 갔다. 오분자기는 전복하고 비슷하게 생긴 놈인데 된장과 함께 뚝배기에 끓여 먹으면 민물 달팽이(다슬기?) 토장국처럼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난다.

배를 대충 채우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시청 앞에서 빈둥거렸다. 축제 행진을 하려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얼굴이 벌건 아저씨가 악수를 하며 돌아다닌다. 황씨는 재빨리 비켰는데, 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가 악수를 청해 얼떨결에 손을 잡았다. 그가 악수를 안 받으려는 나를 툭툭 치면서 한 말은 이랬다; 나는 제주 시장이요. 사람을 공손하게 대해야 하는데 잘 안되는 편이다.


갈옷을 입고. 두레기를 들고 춤추는 아줌마 아저씨들. 갈옷: 때가 안 타는 제주 전통 작업복이라니, 몹시 흥미가 생기는 옷이다.


저 멀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축제에 참가해 주셨다. 이들이 축제에 참가해 활짝 웃고 있는 동안 발리에서는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축제가 악화일로로 치닫기 전에, 그러니까 행진한답시고 인파가 거리를 메우기 전에 제주 신시가지의, 우리가 숙소로 정한 찜질방 근처 음식점으로 향했다. 고등어 구이와 한치물회를 시키고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마셨다. 청해원의 한치 물회의 양은 감동적이다. 고등어 구이도 맛있고 밑반찬도 풍성하다. 듣자하니, 황씨가 오는 길에 별다른 고생을 하지 않아 다행이다. 밥 먹고 술 마시는 내내 오늘 올랐던 성산-성판악 코스가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름답고 땀나는 도로다. 왜 이런 도로가 자전거 하이킹 코스로 소개되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술 마시면서 말했다. 내 생각에 제주도 자전거 하이킹 코스로 가장 이상적인 것은, 배나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여,

첫날: 자전거를 빌리고 자전거 빌린 김에 11번 국도와 1112번 지방도가 만나는 지점(교래 입구)에 데려달라고 해서 그 지점에서 출발하여 성산->서귀포까지 (시원하고 아름다운 숲과 대관령 필의 끝없는 내리막 길, 해안 도로에서 오징어에 소주 한 잔)
둘쨋날: 서귀포->중문->대정 (중문에 집중된 관광단지 관람)
세쨋날: 대정->제주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
네쨋날: 한라산 등반 (또는 여러 박물관들, 용담, 만장굴을 포함한 제주 시내 관광)

이다. 하지만 성산포에서 죽어도 해뜨는 걸 봐야 한다고 우기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해 뜨는게 신기한가? 해 뜨는 걸 지긋지긋하게 봐서 별로 흥미가 없다.

노곤한 몸을 이끌고 찜질방을 찾아갔다. 자전거를 주차장에 거치하고 욕탕에 들어가 비바람에 젖은 몸을 덥히고 근육을 풀어주자 살 것 같다. 휴일이라 사람들이 바글거려 시끄럽지만 그래도 편히 잠들었다.

10/2

황씨는 오늘 한라산에 올라간다고 한다. 난 안 간다고 어젯밤 말했다. 한라산은 재미 없다. 황씨에게 한라산 가봤자 별 거 없다고 몇 차례 얘기했지만 그의 제주 여행에서 한라산 등반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더 말리지 않았다. 만일 한라산을 포기했더라면 그는 제주 해안가에 퍼져있는 거의 모든 관광지를 다 둘러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알다시피 여행과, 사랑의 황금율은, 미련과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후회할 일을 꼭 해야 한다. 어떠한 댓가를 치르고라도.

제주식 한정식이 과연 어떤 것인지 맛보려면 오후 3시까지는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오후 3시에 돌아오려면 오전 6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산에 올라가는 것은 별 문제 없지만 내려올 때는 다리가 후들거려 고생이 심할 것이다. 진달래 대피소까지는 길이 평탄해서 쉽다고 말해줬다. 가기 전에 황씨는 내 핸드폰과 그의 핸드폰을 찜질방 프런트에 맡기고 충전을 부탁했다. 내일은 전화로 연락이 되어야 하니까.

정말 6am에 나갔다. 난 7am까지 잤다. 황씨라면 백록담에 살고 있다는 전설적인 흰 사슴을 안개 속에서 힐끔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애들 게임기 앞에서 잔 탓인지 밤새도록 게임 하려고 왔다갔다 하는 애들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잔 것 같다. 한라산에 가는 대신 나는 제주 시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음식을 먹고 박물관 구경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너무 일러 어제 미뤄두었던 빨래를 마저 하고 말리면서 '맛있는 관계'라는 만화책을 봤다. 꽤 재밌을 것 같은 만화였지만 역시 기본 포맷은 이리저리 얽혀있는 애정 관계다. 하품이 나올 때쯤 만화책을 덮었다.

9am, 충분히 쉬었으니 나갈 시간이다. GPS는 켜지 않았다. 해안도로를 도는 트랙로그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어제 출발전에 모두 지웠고 GPS에 성산-제주 까지의 산림로의 트랙로그를 길이길이 보전해서 집에서 한번 훌터볼 작정이다.

유리네 식당에 갔다. 똥돼지, 아니 흑돼지를 넣어 만든 김치찌게를 주문했다. 97년 유리네 식당을 방문한, 대통령이 되기 전 노무현 대통령의 수기 밑에서 식사했다.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0년 전 고향맛을 여기서 경험하게 되는군요.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노무현은 뭘 먹었을까? 갈칫국? 성게미역국? 이 집은 맛이 별로고 가격이 비싼데도 불구하고 인기가 넘쳐 아침부터 손님들이 바글거린다. 가까이 갈 데가 없어서 여기 왔지만 희안한 경우라고 생각했다. 김치찌게의 양은 꽤 되는데 맛은 별로다. 두 번 먹어서 두 번 실패한 케이스다.

그런데 왜 자꾸만 흑돼지라고 하는거지? 똥돼지를 똥돼지라고 부르면 안되는 이유가 뭘까. 환경연대 같은 곳에서는 사람 똥을 리사이클링해 먹고 튼실하게 살이 찐 그 맛있는 똥돼지를 친근한 이름 그대로 널리 보급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 흑돼지는 토종 돼지라서 근수가 수입돼지에 비해 모자라는 편이지만 제주도를 비롯한 몇몇 산간 지방에서 아직도 키우고 있다. 사람 똥은 소화가 되다만 영양의 보고다. -이상-

식사를 마치고 제주 종합 운동장에 들러 자전거를 다시 손 봤다. 기어가 뻑뻑해서 조이고 조정을 새로 하고 브레이크 이격도 제대로 손 봤다. 브레이크 패드가 많이 닳아 있다. 마음에 들 때까지 조정했다. 옆에서는 RC 카를 조정하는 아저씨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히히 웃고 있다.

느적느적 돌하르방이 쓴 모자처럼 생긴 제주국립 박물관으로 향했다. 돌하르방도 여러 종류가 있는 걸로 아는데 제주 전역에서 본 것들은 모양이 하나 같다. 모두 짝퉁 카피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으로는 제주 전역에 널려있는 용암-구멍이 뒤숭숭 뚫린 현무암 돌하르방이 동자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아는데... 확실치 않다. 황씨가 전화했다. 정상에 다다르면 전화하라고 말한 바 있다. 11:30am 그는 정상에 올랐다. 다음 전화는 성판악에서 제주시행 버스를 탈 시점에 하라고 말했다.

매월 첫번째 일요일은 박물관의 입장료가 없단다. 전시물의 수준은 그저 그랬다. 한라산이 120만년 전에 생성되었고 산방산이 70만년 전에 생성되었다는 것 정도를 배웠다. 신석기, 구석기 유물은 들르는 박물관에서 볼 때 마다 짜증이 난다. 전세계 거의 모든 박물관에서 항상 전시하는 그 흔해빠지고 심하게 말해 파렴치한 돌덩이들에는 아무 특색도, 신비감도, 심지어 재미 마저 없다. 어떻게 전 세계의 원시 인류는 하나같이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똑같은 방식으로 석기를 제작했을까? 어떤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인간이 호기심이 많고 창조적이라는 것은 대체로 헛소리에 가깝단다. 공감한다. 신석기 아인슈타인 한둘 빼고 나머지는 모두 클론 같은 놈들이다. 21세기에도 사정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면 신석기는 그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고고학자들이 자기들이 발견하고 싶은 것만 발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시물이나 전시관의 규모가 작아서인지 국립박물관임에도 한산하다. 어쨌거나 모든 여행의 출발점은 박물관이 되어야 옳겠지만 제주도에 하이킹하러 온 사람들에게 유물이 눈에 띌 지는 의문이다. 박물관에서 나름대로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박물관 바깥의 야외 전시장을 하릴없이 빈둥거리며 돌아다녔다.

12시가 좀 넘어 배가 출출해서 그 유명한 도라지 식당에 찾아갔다. 이번에는 갈치국이다. 갈치국을 끝으로 나는 제주도에서 먹어볼 수 있는 특색있는 식사 코스를 하나도 남김없이 경험한 셈이 된다. 지금 이 시간에 한라산에서 삽질하고 있을 황씨를 생각하다보니 목이 메어 맛있는 갈치호박국을 조금 남기고 말았다.

민속자연사박물관에 갔다. 오, 이거 예상 밖인걸. 전시물 수준이 훌륭. 비싼 값을 하는군. 전시물을 눈 높이에 맞춰 하향 배열한 디스플레이 방식은 수긍이 가지만 그래도 시점과 전시물 사이가 많이 벌어져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이 흠일 뿐, 전시물과 설명이 썩 괜찮은 박물관이다.


민속 자연사 박물관 외부 전시장


전시용 제주 똥돼지. 통시라 불린다. 제주도에서는 망자의 음식으로 돼지고기를 관에 올려놓기도 한다.


할매당이라고 하는데, 물색(나무에 걸어놓은 갖가지 천 쪼가리)이 별로 안 달려 있다.


박물관 야외를 돌아다니는 중에 바깥에 장터가 벌어졌는지 시끄럽다. 박물관 옆이 제주 민속 관광 타운인데 아마도 축제 때문에 장터를 벌여놓은 것 같다. 딱히 할 일도 없어 장터에 가서 놀았다. 이것 저것 공짜루 주는 음식들을 집어먹고 떡메도 두들기고 도자기 만드는 것 따위를 구경했다. 술도 몇 잔 얻어 먹었다. 그저 갈옷이 탐이 났는데 파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 황씨한테 전화가 와서 약주는 그만 마셔대고 만나기로 한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황씨 몰골이 말이 아니다. 내려오는 길에 죽죽 미끄러져서 여기저기 생채기가 보이고 팔 다리 할 것없이 온통 흙 투성이다. 내가 '맛따라 길따라'를 하며 한가하게 시내를 배회하는 동안 그는 온통 자갈밭 투성이인 한라산을 샌달을 신고 등반하며 어리버리 올라온 많은 사람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었다고 한다. 안개와 심한 바람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한라산 정상 부근에서 앞 사람의 발 뒤꿈치만 쳐다보며 올라갔다가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정상에서 멍하니 20분을 보내고 다리가 풀린 상태로 악전고투 끝에 산을 내려왔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그가 먹은 것이라고는 아침에 먹은 컵라면 하나, 초코바, 아침에 사간 물은 일찌감치 떨어졌다.

여행과 사랑의 황금율은 미련과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후회할 일을 꼭 해야 한다. 어떠한 댓가를 치르고라도. 다시는 한라산에 안 간다고 말한다. 그가 한라산을 내려오면서 품은 실낫같은 희망은, 그래도 내려가면 맛있는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담배 한 대 빨고 잠시 쉰 다음 꽤 유명하다는 한정식집으로 향했다. 서귀포에서 먹었던 회를 기억하며 이번에는 스끼다시는 콧방귀를 뀌며 쳐다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제주도 한정식은 뭐가 다를까, 기대하며 밥상이 나오길 기다렸다.

나왔다. 해물뚝배기 각자 한 그릇, 한치회, 오징어조림, 한치와 새우를 넣은 해산물 샐러드, 고등어 조림, 그외 언급하고 싶지도 않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정식 상차림의 시시한 반찬류. 어떻게 된 일인지 제주 밥상의 감초격으로 빠지지 않는 생선젖이 없다. 이건... 전국 어디서나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그런 한정식이다. 이건 제주도 음식도 아니다. 그냥 20세기 이후 한국에 정착한 정체불명의 빌어먹을 '정식', 웃기는 '관광정식' 바로 그것이다. 때마침 창 밖으로 관광버스가 들이 닥치는 것이 보인다. 그럼에도 이런 걸 먹으려고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들어차 있다. 놀랍다. 어쩌겠나. 먹어야지. 나는 아침, 점심, 간식까지 먹어 배가 불렀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먹었다. 황씨가 불쌍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건너편의 물항식당으로 가는건데. 아내는 물항식당이 제주항 부근에 있다고 말했지만 이번에 내가 두 번째 확인한 바로는 제주항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 같다. 물항식당에 가면 회라도 실컷 먹었을텐데!

그래도 황씨한테 미안한 것은 없다. 그는 제주도에 아무 생각없이 왔다. 만일 내가 빵과 우유만 먹고 돌아다녔더라면 그 역시 빵과 우유만 꾸역꾸역 먹고 돌아다녔을 것이다. 맛따라 길따라에 괜히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은 오히려 내 쪽이다. 먹는데 돈을 많이 썼다.

자, 배를 채우고 자전거 정비할 겸 식당에서 물수건을 몇 장 얻었다. 제주항으로 출발했다. 제주공항과 평행한 좁은 도로를 질주했다. 비행기가 때마침 활주로를 지나가고 있다. 미친듯이 패달을 밟았다. 제주항에 도착하니 5:50pm. 간단히 컵라면 둘을 사들고 들어갔다. 수속이 바로 이루어져 자전거를 끌고 탑승구를 지나쳤다.


자전거를 타고 항구를 가로질러 배의 화물칸으로 그대로 들어갔다.

올 때보다 사람이 많다. 엄청나게 많다. 분위기도 좋다. 온 사방에서 술판이 벌어지고 고스돕 판이 벌어졌다. 우리는 컵라면에 물을 부어 갑판에서 궁상스럽게 먹었다. 맥주 대신 백세주를 마셨다. pda로 책을 읽다가 열한시쯤 스르르 눈이 감겼다.

10/3


날이 밝아온다.

당산 화력 발전소를 지나간다. 저번 주에 우럭 낚시를 하던 곳이다. 배의 속도는 19노트 가량. 조류가 거세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한단다. 배가 많이 흔들린다.

샤워를 마치고 책 좀 읽다가 배에서 내렸다. 역시 가장 빨리 내렸다.


인천연안항 청사 앞에서 자전거를 정비했다. 깨끗이 닦고 녹 제거제를 뿌리니 자전거가 훨씬 잘 나간다. 녹 방지제는 황씨에게 줬다.

원래는 제물포역부터 차례로 훌트면서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에 타려고 했는데 김씨 아저씨가 점심 한 끼 사준다길래 송내역으로 자전거를 몰고 가기로 했다. 빵과 우유로 아침을 때웠다. 길을 몇 번 헤메고 황씨와 한 번 헤어졌다. 간신히 다시 만나 송내역 근방까지 왔다. 인천 도로는 오고 갈 때마다 개판이라는 생각. 황씨는 지갑을 두 번 떨구고 사고도 한 번 났다. 긴장이 풀린 탓일께다.

송내에서 김씨 아저씨와 형수님을 만나 소주에 삼겹살을 먹었다. 다 먹고 나니 우리가 9인분을 먹었단다. 엄청나게 먹어댔군. 김씨 아저씨와 헤어져서 김포공항 역으로 향했다. 평균 25~30kmh로 나갔다. 자전거 진입이 금지된 도로지만 무시했다. 그럼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 달란 말이다. 한강시민공원을 통해 강변 자전거 도로로 진입했다.


성산대교 앞에서 황씨와 헤어졌다. 나는 성산-성판악 주행을 통해 이전보다 근육이 업그레이드 되었다. 더 이상 근육이 아프지 않다. 황씨도 그렇다. 다음 여행은 지금보다 수월할 것이다. 다음 여행에서도 맛따라 길따라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 사람 더 꼬시면 텐트와 코펠을 들고 야영하면서 다닐 수 있다. 황씨는 김씨 아저씨를 꼬셔보려고 열심이다. 글쎄? 안 먹힐텐데... 나나 황씨나 자전거 얘기만 늘어놓으니까 만나기를 꺼리는 것 같다.

사람들로 버글거리는 자전거 도로를 갑갑할 정도로 느린 속도로 지나가고 집에 도착했다. 4pm을 넘겼다. 집에 쌀이 떨어져서 피자를 시켜 먹었다. 영화 몇 편 다운 받아 차례대로 구경했다. 성산-성판악 코스의 트랙로그를 다운받아 살펴보고 낄낄 웃었다. 내가 미쳤지.


이렇게 해서 언제나 변함없이 비땀으로 얼룩진, 비비린내 나는 여행을 마쳤다.

꽃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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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씨에게 자전거 가방을 건네주려고 만났다. 근처 통닭집에서 맥주 한 잔 하다가 내일 강화도에 가기로 했다.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강의 야경이 마치 로트렉의 그림처럼 볼만하다. 알딸딸해서 그럴까?

다음 날 12시 20분쯤 출발. 도시락을 쌌다.


잠수교에서 본 오리떼

미리 가는 곳까지 트랙백 자료를 만들어 두었다. 이렇게 해두면 자동차로 하는 도로 내비게이션처럼 때 되면 어디서 방향을 바꾸라는 지시가 나온다. 웨이포인트만 몇 군데 찍어 라우팅을 하는 방식보다 정교하다. 강변남로 자전거 도로 끝단에 두 번 갔고 한 번은 보물찾기 하러 간 적이 있어 그 자료를 사용하니 그 이후부터 작업할 수 있어 쉽다. 코스: 집 -[자전거도로]-> 불광천 -> 올림픽공원 -> 성산대교 -[자전거 도로]-> 방화3동 -[일반도로]-> 방화역 -> 개화산역 -> 김포IC -> 김포시 -> 석산교 -> 초지대교 -[강화도]-> 길상공설운동장 -> 온수 -> 전등사 -> 함허동천(마니산 입구) -> 분오리돈대 -> 동막해수욕장 (64km)

성산대교를 건너 바람을 등지고 평균 25kmh의 속도로 달릴 때 기분이 몹시 상쾌했다. 전날 맥주 마시고 객기 부리며 50km를 달려 집으로 도착한 것 때문에 황씨 아저씨는 다리가 뻐근하단다. 왠간하면 20kmh로 달리기로 했다. 갑옷처럼 두른 것 같은 내 허벅지 근육은 기특하게도 이제 평지에서 순간적으로 35kmh를 낼 수 있다.

발산역부터 김포시까지 순조로왔고 컵라면을 사서 아파트 공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싸온 도시락이 남年? 편의점에서 물을 보충했다. 날이 흐려 덥지 않아 주행이 편안하다.

알맵이 오래전 지도인건지 석산교는 실제로 석산 인터체인지였고 인터체인지에서 강화도 초지대교 방면으로 널찍한 3차선 도로가 뚫려 있다. 갓길이 넉넉하다. 구릉이 얕아 주행은 쉬운 편이다.

자전거 타는 아저씨를 만났다. 그는 평속 35kmh로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사이클 선수의 평속이 40kmh임을 감안하면 더 무겁고 두꺼운 타이어가 달린 MTB로 35kmh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황씨를 버려두고 갈 수 없어 속도 경쟁을 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나보다 빠른 사람은 모두 스승이다. 속도는 힘만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다운힐에 약하다. 속도가 심리적 수용 한계를 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에 손이 가니까.

길 한 번 헤메지 않고 쉬엄쉬엄 초지대교에 도착했다. 트랙백 자료를 만들 때 지도 매핑에 문제가 있어 gps를 보니 실제로 우리는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 초지진 안에 자전거를 끌고 들어갔다가 뒤늦게 입장료를 냈다. 낚싯대로 게를 낚는 사람이 있다. 갯벌에는 신발 신고 들어갈 수 없다. 갈매기들이 갯벌을 뒤뚱뒤뚱 걸어간다. 갈매기들은 신을 신지 않았다. 한 아저씨가 신을 신고 들어가 있다. 갈매기나 그 아저씨나 내가 볼 땐 천연하다.


초지대교에서 바라본 강화도. 감상평: 정말 특색없게 생긴 서해안 어느 섬.


초지대교. 자전거 주행의 꽃은 업힐이다. 업힐을 만나도 눈쌀을 찌푸리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여행 가능한 인종으로 거듭날 수 있다. 아마도.

강화도로 들어오면서 굽이굽이 언덕이 나타났고 황씨는 힘들어 한다. 강화도 들어서기 전까지는 거의 평지라 2시간 반 만에 초지대교까지 왔지만 강화도로 들어온 다음 부터는 업힐이 여럿이라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남아 관광하면서 돌아다니자고 농짓거리를 하기도 했지만, 40분쯤 달리다 쉬다를 반복하니 그럴 시간도 없고, 황씨 안색이 변했다. 평지 주행에서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지만 업힐에서는 차이가 벌어진다. 한 시간 반쯤 더 달려 분오돈대를 돌아 동막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썰물이라서인지 모래밭은 조금 밖에 안 보이고 너른 갯벌이 드러나 있다. 황씨를 편의점 앞에 쉬게 해두고 민박집을 알아보려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여기저기 민박 가격을 물어보니 3만원으로 어디나 일정해서 언덕배기에 무늬만 팬션인 민박집으로 향했다.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저녁 먹었냐고 대뜸 물어본다. 안 먹었다니 해수욕장 중간에 있는 칡냉면집이 그나마 싼 집이라고 가르쳐준다. 갯벌을 눈 앞에 둔 바닷가에서 왠 칡냉면? 아니요, 회 좀 먹어보려고요. 일단 샤워부터 하기로 했다. 황씨는 안쓰럽게도 다리가 거진 맛이 갔다. 나왔다. 6시 반. 어둡다.


약수터 팬션(민박) with 갯벌 뷰. 팬션이라고 하기는 민망했는지 괄호 열고 닫고가 간판에 적혀 있다. 동해안을 따라 잡겠다고 부르짖는 서해안의 발악에도 불구하고 강화도에서 팬션이 들어선 것은 극히 최근의 일.

대하나 전어를 먹으려고 주인 아저씨에게 물으니 대하는 킬로그램에 3만5천원씩 한단다. 전어도 몇 마리 해서 3만원? 허걱했다. 어떻게 서울보다 더 비싸냐. 주인 아저씨 말로는 동막 해수욕장의 횟집은 같은 가격을 받으면서 무게를 속인단다. 강화도에 정착한지 8년 되었단다. 아저씨의 도움으로 그나마 전어회 무침을 싸게 샀지만 그래도 2만 5천원이나 한다. 굳이 음식점에서 먹을 것 없이 민박집에서 먹기로 하고 싸들고 왔다. 아저씨 말로는 강화도의 횟집에서 판매하는 수산물을 가락시장에서 사 온단다. -_- 그럼 강화도에서 전어 따위를 먹는 것은 정말 바보짓이겠네요? 라고 물으니 선도가 틀리단다. 선도라... 우리가 전어를 산 '그나마 싼' 가게는 커다란 수족관에 대하와 새끼 손가락만한 전어를 키우고 있다. 선도만큼은 죽이겠지.

아저씨더러 함께 먹자고 하니 아저씨가 소주 두 병과 사이다를 들고 나왔다. 공짜로 준다. 한참 즐겁게 술 마시고 있는데 주인 아줌마가 나와 주방에 밥 차려 놨으니 아저씨더러 들어가서 먹으란다. 아저씨가 들어가서 아줌마한테 한 소리 들은 다음에는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주인 아저씨는 보통 술을 마셨다 하면 고주망태가 될 때 까지 마시고 그렇게 마신 밤이면 아무데나 풀밭에 쓰러져 잠을 자는데 자기는 모기가 안 문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모기가 안 문게 아니라 모기가 물어도 감이 안 올 정도로 마신 거겠지. -_- 전어무침이 남아 밥을 비벼먹으니 그럴듯하다.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아저씨는 끝내 나오지 않으셨다.

PDA로 마야에 관한 글을 좀 읽다가 11시쯤 불 끄고 잤다. 모기가 극성이다. 어디선지 쿵-쿵- 하는 대포소리가 들린다. 병자호란인가? 천둥소리다. 모기들한테 물어뜯겨 잠을 설치다가 선풍기를 틀었다. 열대 지방을 여행할 때는 잘 때 실링 팬을 켜두는데, 그래 두면 모기가 회오리 바람에 휩쓸리느라 제대로 식사할 틈이 안 생긴다.

새벽에 설핏 잠에서 깨니 창밖으로 비가 억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일곱시에 깨었다. 여전히 비가 온다. 아홉시까지 기다렸지만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쏟아졌다. 핸드폰에 기상청에서 보낸 문자가 찍혀 있다. 서울, 경기 호우 주의보 발령. 재난 발생 상황이면 문자가 오게 되어 있는데 어디 멀리 놀러갈 때면 늘 오는 친근한 메시지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빗물이 들어왔다. 창밖은 지붕이 있는 베란다지만 바다 쪽에서 바람이 거세게 불어 지붕이 쓸모없다. 황씨의 시집이 젖어 있다. 어젯밤에 약 2줄쯤 읽고 펼쳐둔 채 그대로 뻗은 것 같다.

라면 둘을 끓여 어제 싸온 도시락의 먹다 남은 밥을 말아 먹었다. 9시가 되었는데 TV에서는 뉴스를 틀어주지 않는다. 대신 코메디언들이 나와 무의미한 노래를 부르며 뭐가 그리 재밌는지 서로 깔깔대고 있다. 아내한테 전화해 인터넷에 들어가 오늘 서해쪽 날씨가 어떤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응답이 왔다. '비!' '비?' '비!' 자전거를 맡겨두고 몸만 오란다. 싫다.

비가 내리는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창밖 전선에 까치가 조용히 앉아 있다. 뭔가를 시도하려는 것 같다. 까치는 날아보려고 퍼드득 날개짓을 한다. 강풍에 휩쓸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날개에 묻은 빗물을 털어내고 바다 쪽을 바라본다. 내쪽을 바라본다.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날개를 퍼득여본다. 제자리다. 빗물을 털어낸다. 고개를 여기저기 돌린다. 난감해 보인다.

별 대책이 없어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비가 살짝 잦아든 틈에 민박집 아줌마에게 가까운 시외버스 터미널을 알려달라고 어제 초지진에서 받은 관광지도를 펼쳐 보였다. 강화 종합 시외버스 터미널은 여기서 너무 멀고 화도 버스 터미널이나 온수 버스 터미널이 가깝단다. 일단 거기까지만 가면 어떻게 되겠지. 아줌마는 버스에 자전거를 실을 수 없을 꺼라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더니 비가 저렇게 오는데 정말 갈 수 있겠냐고 걱정스레 묻는다. 별 수 없잖아요. 가야지. 아줌마가 트럭으로 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 준단다. 속으로 얼씨구나 그 말을 기다렸어요 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래주면 정말 고맙겠다고 말했다. 아줌마한테 비닐봉투를 구해 배낭 속의 짐을 쌌다. 비에 쫄딱 젖어 기분이 엿 같아 잠시 자전거를 세워 두고 담배 한 대 피우려고 하는데 담배 마저 젖어있으면 심하게 우울해지니까. 가는 길에 어제 전어무침을 산 가게에 들러 일회용 비옷을 샀다. 어차피 서울에 돌아가더라도 빗속을 달리려면 필요하니까. 아줌마는 우리가 서울에서 왔다니 놀란다. 읍내에서 자전거 빌려 한가하게 돌아다니는 줄 알았나 보다. 어제 아저씨는 여자 여섯명이 자전거 타고 왔다가 완전히 퍼져 트럭으로 집까지 데려다 주고 7만원 받았단다. 황씨나 나는 가난해서 그럴 일 없다.

종점인 화도 터미널에 세워준다. 고마워서 돈을 좀 드리려니 안 받으려고 한다. 어제 공짜로 먹은 소주값, 밥값으로 받아달라고 말했다. 강화->신촌행 버스표를 사고, 비 맞으면서 버스 짐칸에 자전거를 실으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처마 맡에서 담배를 피우며 우리가 삽질하는 모습을 웃으며 구경한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두 자전거의 앞 바퀴를 빼니 잘 들어간다. 처마 밑에서 담배를 한 대 빨았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쉴 때마다 사나이들의 구순기 영양간식인 담배를 자주 피웠다.

버스 라디오의 일기예보를 들어보니 서해 인근에 풍랑 주의보가 발령되었고 경기, 서울 등지는 여전히 호우주의보가 내린 상태다. 하지만 강화도를 벗어나니 비가 오다 말다 한다. 젖은 옷에 에어컨 바람을 맞으니 서늘하다. 한숨 놓고서야 숙소 화장실에 시계를 벗어놓고 온 것이 기억났다. 이런 낭패가. 민박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어 택배로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버스의 라디오에서 우울한 노래가 흘러 나왔다. 어디로 가느냐 내 아들아, 어디로 가느냐 내 딸들아. 나는 비 내리는 개울가로 돌아갈래요. 뜨거운 사막 위를 걸어서 갈래요. 빈손을 쥔 사람들을 찾아서 갈래요. 내게 무지개를 따다준 소년 따라 갈래요.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 없이 비가 내리네. 밥 딜런은 세상의 종말을 폭우로 표현했다.

신촌에 내렸다. 한 시간 반 걸렸다. 어제 갈 때 네 시간 반 걸린 거리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일단 점심이나 먹고 출발하자고 했는데 황씨가 벌써 저만치 갔다. 갑자기 장대비가 마구 퍼부었다. 상가 처마로 허겁지겁 대피했지만 벌써 다 젖었다. 심지어 마음 마저 젖었다. 허접한 일회용 비옷을 꺼내 입었지만 앞 여밈에 틈새가 많아 통쾌하게 젖을 것 같다. 스카치 테잎을 꺼내 붙였다. 여행할 때 스카치 테잎을 들고 다니는데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황씨가 또 뒤도 안 돌아보고 먼저 출발한다. 광흥창에서 300m만 가면 바로 강변 자전거 도로인데 정말 양화대교까지 가려는 것 같다. 먼저 내려가 전화질 하면서 기다렸다. 양화대교로 내려온다. 너덜너덜한 비옷을 스카치테잎으로 붙여 재무장했다. 비닐봉투에 곱게 넣어 둔 담배 한 대씩 나눠 피우고 헤어졌다.

119 차량, 경찰차량, 그리고 해상구조대가 강가를 어지럽게 돌아다닌다. 자전거를 세우고 살펴보니 웃통을 벗어제낀 어떤 아저씨 시체가 뱃전에 놓여 있다. 뛰어내리고 바로 건졌는지 배가 안 부풀었고 비를 맞으며 잠자듯이 누워 있다. 편안히 가시길. 광화문 지하보도에서 '자살하지 마세요' 라는 광고를 본 기억이 난다. 내 맘이다.

강변 자전거 도로는 텅 비어있다. 힘껏 속도를 내려고 했지만 비바람이 심해서 잘 안 나간다. 불광천 길로 들어섰다. 콸콸 흐르는 냇물의 수위가 자전거 도로와 높이가 같다. 불안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길이 잠겨 있다. 크랭크 축이 잠기더니 이번에는 상행 패달까지 잠겼다. 정강이 깊이의 구정물 속에서 용쓰며 패달질을 했다. 뭔가가 앞에서 헤엄쳐 지나간다. 곧 멸종할 수달인가? 아니다. 쥐다. 쥐가 안간힘을 쓰며 수영하고 있다. 안간힘을 쓰다 지치면 다리질을 멈추고 배를 수면에 드러낸 채 둥둥 떠다닐 것이다. 쥐는 살아야 하고 나는 집에 가야 한다. 쫄닥 젖은 회색 시궁쥐와 함께 온갖 잡것들이 둥둥 떠 다니는 똥물에서 함께 안간힘을 쓰고 있어서인지 기분이 별로다. 델리와 꼴까타가 생각났다. 그때도 이랬지.

물에 푹 잠긴 자전거가 걱정이다. 기껏 수리한 BB에 물이 들어간 것은 아닌지. 집에 돌아와 구정물을 휘젓고 다닌 발로 방안을 가로지르려니 민망하다. 샤워부터 했다. 핸드폰에 빗물이 들어가 뿌연 수증기가 끼어 있지만 제대로 작동한다.

GPS의 트랙로그를 살펴보았다. 좀 이상한데? 어제 만든 트랙을 따라 갔더니 샘플링이 매우 성기게 되어 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garmin 제품은 트랙로그를 저장하면 날짜가 리셋되어 버린다고 한다. 70여km 밖에 안 되지만 자료를 잃은 셈이다. 그렇게 해서 1004개의 계단이 있다는 마니산 한 번 못 올라가보고 제철임에도 맛없는 회를 비싸게 주고 먹고 비를 억수로 맞은 1박 2일의 여행을 끝냈다. '자전거 여행'이다. 도보와 자동차의 중간 쯤에 위치한 자전거 여행은 시야의 잊혀진 가장자리를 보는데 큰 도움이 된다.

반복되는 갖은 '시련'을 통해 전보다 더더욱 건강해졌다. 힘든 신체활동은 고통을 차단하기 위해 뇌 속에서 엔돌핀의 분비를 촉진하고 한번 분비되기 시작한 호르몬의 맛을 못 잊어 조건강화를 반복하게 된다. 마라톤 하이나 근육통 뒤에 찾아오는 멍한 평화는 중독성이 있는데 다른 모든 마약과 마찬가지로 중독된 행복감은... 그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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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핸드폰 사진과 gps를 꺼내 데이터를 뽑았다. 출장 다니고 살 찌우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여행 기간 중 나름대로 신경 쓴 주행 복장. 굳이 말 안 해도 애들이 흉내낼 것 같지는 않다. 모자가 황이었다. 바람에 펄럭여 시야를 가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보자. 눈빛 만큼은 그래도 싱싱하게 살아있지 않은가??



경주 동대 황토 찜질방. 나흘 여행하고 사진을 너무 안 찍은 것 같아 막판에 두 장 정도는 찍어주는 센스.



멕시코 티후아나 동쪽으로 278km 떨어진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 홀로 위치한 라쿠카라차 황토 찜질방 분위기로 바꿔 봤다.



긴 여행을 마치고 라쿠카라차 황토 찜질방의 미딛이 문을 열고 들어선 자전거 강도는 어깨에 묻은 모래먼지를 툭툭 털고 모자를 살짝 들어 찜질방 안을 둘러본다.

장난은 그만하고,
동해안 주행의 실패 요인을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한 반성.

1. 지구력 -- 연습 중 기어 변속에 문제가 있었다. 앞 기어를 2단으로 놓고 꾸준히 밟아주는 연습을 했어야 하는데 3단에 놓으니 높은 기어비를 가지게 되어 무리하게 힘을 가하면서 근육이 쉽게 피로해지고 안정적인 케이던스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기어 변속이 잘 안 이루어지니 업힐이 연속되는 구간에서 힘의 분배가 고르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구력 보강은 물론 충분한 유산소 운동을 지속적으로 계속해야 할 것이다.

2. 음식과 수분 -- 2-3시간의 주행으로도 쉽게 허기를 느꼈다. 주행 1-2시간 전에 충분한 음식을 섭취하고(탄수화물:지방=6:4) 에너지바나 쵸코바를 몇 개 준비해 가는 정도의 대비는 있어야 할 것이다. 10시간 동안 4-5kg의 체중이 빠진 것이 애들 말대로 '어의'가 없다. 더위 속에서 주행을 계속해 가기 위해 시간당 450ml 분량의 수분을 꾸준히 섭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보았다. 과도한 수분 섭취가 오히려 몸을 무겁게 할 꺼라는 오해 때문에 물 섭취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 햇살이 쨍쨍한 35도의 더위에서 무슨 깡으로 버텼는지 모르겠다.

희안한 것은 동해-울진 간 10시간 주행 후 찜질방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도 그 다음날 알이 배기거나 근육의 피로 등으로 고생하지 않았다. 햇살에 다리가 타서 욱신 거리는 것이 귀찮은 정도? 적어도 3주 동안 하루에 한두 시간씩 자전거를 탄 것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다만 지구력을 키우고 업힐 연습을 좀 더 하자. 돌아오고 나서 체중은 아주 빨리 회복되었고(아마도 체중이 감소한 것은 수분의 증발 때문인 것 같다) 옆구리와 뱃살의 지방층도 현저하게 감소했다. 놀랍다.

GPS trackmaker를 사용해 GPS에 남아있는 tracklog를 다운 받고 구간을 제대로 정리한 후 살펴 보았다.



8/15 남부 고속터미널에서 불광천 자전거 도로가 끝날 때까지의 약 18km 동안의 주행 중 고도 변화 그래프. 강변 자전거 도로는 해발 20m 수준의 평탄한 지형이다. 6km와 8km 지점, 다리 밑에서 쉬면서 gps가 시그널을 받지 못해 고도가 잘못 표기되어 있다. 집에서 남부터미널까지 22.45km, 주행시간은 1시간 30분 가량.

gps의 성능 향상을 위해 보조 안테나의 장착을 고려해 봐야겠다. 오차가 크고 빌딩숲이나 산간 트래킹 중에는 토끼 현상이 일어나서 gps에 찍힌 최고속도가 113km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주행 중 순간속도가 45kmh를 넘은 일은 없다. 일부분은 모르는 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굽이굽이 마다 브레이크를 잡은 탓도 있고 일부는 자전거 핸들 바에 장착한 가방에 부딪이는 바람의 저항으로 자연감속 되기도 했다. 맞바람에 저항하느라 체력의 2-30%가 (실없이) 소비된다는 글을 읽었다. 핸들이 무겁고 공기 저항이 있는 등 자전거 가방이 그리 좋아뵈지 않는다. 차라리 짐을 줄이고(옷가지를 없애고) 간단한 전용 자전거 가방을 등에 메는 것이 훨씬 나아 보인다.



8/14 경주 불국사-보문관광단지-경주 시내 코스. 고도 변화가 비교적 완만하며 업힐 구간은 2km에 이르는, 단 하나 밖에 없다. 시내-불국사 구간은 gps를 켜지 않아 트랙 로그가 남아있지 않으나 대략 18km, 거의 평탄하고 토함산 부근에 이르러 오르막길. 즉, 이 반토막짜리 그래프에 따르면 경주-불국사-보문관광단지-경주 라는 코스가 가장 이상적이다.

불국사에서 보문관광단지를 거쳐 시내에 이를 때도 대략 18km, 합계 36km 가량으로 3시간 정도면 경주 시내 전역의 유적지와 불국사를 주파할 수 있는, 상당히 편하고 훌륭한 코스다. 경주에 놀러 가면 터미널 앞에 즐비한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 한 대 빌려 하룻 동안 여기저기 둘러보고 하룻밤 묵고 다음날 올라오는 코스로 괜찮아 보인다. 자전거 대여료가 비싸니(하루가 14000원 이던가?) 나 같으면 자전거를 버스에 실어 가겠지만.



8/13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는 자료로 남기려고 부러 맵 매칭을 하고 고도추이도를 붙여 만들어 봤다. 동해시에서 울진군 시내까지 주요 언덕구간은 총 11개, 거리는 81.76km(이 거리는 지도 평면상의 단순 거리(78.5km)가 아닌 실제 고도 고저차가 반영된 아주~ 정확하고 훌륭한 거리다), (내 경우) 주행시간 7시간 30분 가량.

그림 한 장 만들어 놓으니 한 눈에 확 들어와서 좋구나. 그나저나 이런 자료는 국내 웹에서 찾아봤는데 안 보인다. 티벳-카트만두 사이에는 훌륭한 자전거 지도가 있더라. 사실 자전거 타고 연습 좀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 티벳-카트만두 구간을 자전거로 간다는 기획을 올린 한 여행사의 야심찬(항간에는 미쳤다는) 기획안을 보고, 또 어떤 회장 아저씨가 빌려준 멋진 네팔, 티벳 자전거 지도를 보고 나서다.

자전거 타는 친구들이 통 gps를 사용하지 않는 것 같고, 자전거 도로를 편찬하는 회사가 국내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주먹구구식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 같은데,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그 모양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비록 자만심을 비롯해 여러 가지 요인으로 동해안 일주에 실패했지만, 나름대로 즐겁고 신나는 경험이었다. 특히 주문진에서 삼척 아래까지 즐비하게 널려있는 해수욕장들은 사람들이 바글거렸지만 울진 부근의 해수욕장은 사람도 없고 접근도 편하고 심지어 입장료도 안 받아 마음대로 들락거렸다 -- 왜 삼척 윗 부분에서만 바글거리는지들 모르겠다 좋은 해수욕장이 아랫 지방에 즐비하고 같은 '동해안'인데. 비록 하루 뿐이지만 물놀이는 네 차례나 즐긴 셈이 되었다.

7/28: 39.900km (2h43m) max: 32.3kmh, avg.: 14.6kmh
8/17: 30.185km (1h38m) max: 55.1kmh, avg.: 17.9kmh

이런 것을 발전이라고 한다 -- 오늘은 내리막길에서 좀 밟았다. 60kmh가 충분히 나올 수 있겠구나 싶다. 그러나 평지에서 아무리 페들링을 열심히 해도 50kmh를 넘기지 못했다. 덕분에 젖산이 생성되었을 것이다. 젖산은 심하게 근육을 움직이면 15~18초 후부터 생성된다고 한다. 이 값을 잘 알아두면 인터벌 트레이닝할 때 쓸모가 있다. 15초 이내로 업힐에서 전력 질주, 3분 쉬고 반복, 을 계속 연습하는 것.



자주 가는 송추계곡의 주행 고도 변화도. 계곡까지 왕복하고 돌아오는 코스이므로 대칭을 이루는데 양단의 가는 코스와 돌아오는 코스가 조금 다르고, gps의 오차로 완전한 대칭은 아니다. 아무튼, 이 따위로 딱 하나 밖에 없는 업힐로 하루에 고작 한 번 연습했더니 실전에서 작살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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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

술자리에서 부른다. 스티프(stiff, 시체)를 읽으며 낄낄 거리다가 버스를 잘못 탔다. 간만에 웃기는 책이다. 택시로 갈아 타면서 그 동안의 트레이닝이 효과가 있는지, 내일 연습 삼아 동해안에 가볼까 생각했다. 황가는 50cc 오토바이로 방향을 바꿨다. 함께 자전거 타이어로 일본 땅을 밟아보자는 계획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 같이 갈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 나 혼자 라도 가야지. 부슬비가 내렸다.

8/12

느즈막이 일어나 아침밥을 해먹다가 휴일 나흘 동안 멍하니 집에 틀어박혀 건강에도 안 좋은 컴퓨터만 들여다 볼 것이 아니라 어제 술집에서 헛소리 한 대로 동해안에 가기로 했다. 누나한테 전화하니 동생 때문에 방문하기 힘들단다. 숙소 하나가 날아가는군. 홀씨 지도로 위치 검색해 좌표를 찍어보다가 데이텀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고양시 중남미 문화원을 gps에 입력해 놓고 찾아가다가 200m 정도 어긋났다. 아무래도 데이텀을 Japan을 사용하는 것 같다. 국토지리원도 거의 표준인 wgs84 대신에 japan을 사용해서 데이텀 변환이 아주 귀찮았다. 홀씨 지도는 그러니까... 무료라는 점 이외에 거의 쓸모가 없었다. 다행히 알맵 딜럭스는 wgs84인 것 같다.

12:20pm, 얼른 준비해야 할텐데, 찜질방 닷 컴과 '야후 거기'를 뒤져 숙소를 알아내고 그것을 알맵 딜럭스에서 다시 검색해 경위도를 얻었다. 야후 거기는 의외로 쓸모 있다. 그렇게 해서 두 시간에 걸쳐 동해, 울진, 포항, 경주의 찜질방 좌표를 얻은 것이 작업의 전부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서울시 지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동서울 터미널까지 자전거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준비를 끝낸 시각이 3:00pm.

짐:

* 전자기기: gps, pda, 모바일폰, pda 충전 어댑터. 이것들을 넣을 비닐봉투.
* 자전거관련: 휴대공구, 예비튜브, 펑크 패치 셋, 백라이트, 휴대용 에어펌프
* 옷가지: 반바지 한 벌과 쿨맥스 팬티 하나는 비닐봉투에 쌌다. 그리고 입고 있는 수영복 바지, 쿨맥스 긴팔 티셔츠, 등산 손수건, 손가락 끝을 잘라낸 작업 장갑, 모자
* 기타: 스카치 테이프, 가위 -- gps를 스템에 고정하기 위한 것.

저울로 무게를 달아보니 가방 포함해 3.4kg, 별 것 없는데 의외로 무겁다.

BB나 패달, 또는 스프라켓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일단 점검을 받아보려고 동네 자전거 포에 들렀는데 문을 닫았다. 두어 군데 들러 봤지만 자기들 제품이 아니라고 손봐주기를 거절한 채 산 곳에 가서 물어보라고 한다. 야속한 주인들이지만 그 중 한 아저씨가 미안하다며 말릴 틈도 없이 wd-40을 기어에 뿌려준다. 어, 뿌리면 안되는데...

중랑천 입구까지 잘 나갔다. 그런데 지루하다. 중랑천 건너편으로 넘어가니 자전거 도로가 끊겼다. 어디로 가야 자전거 도로가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2호선 지하철 역을 따라 강변 역까지 간신히 갔다. 도착하니 6:30pm, 집에서 버스 터미널까지 가는데만 3시간이 걸렸다. 중간 중간 길을 헤메고 자전거 포가 보일 때마다 들렀더니만... 어이가 없군. 자전거를 터미널 앞에 묶어놓고 얼른 동해행 표를 끊었다. 강원도 가는 사람들이 창구마다 바글거린다.

버스에 자전거를 싣겠다고 하니 어떻게 실을 꺼냐고 묻는다. 잘 실을 수 있다고 웃으며 대꾸했다. 자전거는 버스 짐칸에 쉽게 들어갔다. 배가 고파서 김밥과 바나나 우유를 사 먹었다. 버스는 3시간 조금 넘어 동해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11시가 넘은 시각이라 사방은 컴컴하고 터미널이 시 외곽에 위치한 탓인지 참조할만한 지형지물이나 길을 물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 와 본 도시라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gps를 스카치 테이프로 스템에 고정하고 스위치를 켠 후 첫번째 목표로 내비게이션을 시작했다. 말하자면 악천후 계기비행인 셈이다. 10여분 화살표를 따라가니 오차 범위 20m 이내에서 화정원 찜질방을 가르켰다. 알맵 지도에도 안 나온 장소를 어림잡아 찍었지만 gps는 아주 양호했다.

자전거 여행할 때 찜질방을 전전한다는 얘기를 동호회에서 익히 들었지만 자전거 보관을 어떻게 하는지가 궁금했다. 창구 여직원에게 물으니 지하 기계실에 놓아 두란다. 찜질방에 들어서니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술 먹고 들어와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올라온 관광객들인 것 같다. 배가 고파 미역국 하나 시켜먹고 잠을 청해 보려고 했지만 사위가 시끄러워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마치... 난민 구호 캠프 같다.

8/13

선풍기 옆 구석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사람들이 오락가락 하며 선풍기를 껐다 켰다를 반복하느라 부스럭 거리고(이 선풍기 어떻게 켜는 거에요? 라고 깨워서 묻기도 한다...) 가끔은 허벅지나 발을 밟고 지나갔다. 잠을 설치며 뒤척였다. 햇살이 눈부셔 일어났다. 멍하니 앉아 있었다. 별다른 계획은 없고 오늘부터 그저 아래로 내려가면 된다.

정신 차리고 샤워 한 후 체중을 재어 보았다. 어제는 66.6kg, 오늘도 66.6kg, 언제나 그렇듯이. 그리고 어째서 수년 전부터 저울로 몸무게를 잴 때마다 별일 없으면 66.6kg가 나오는지 의아하다. 내가 바로 정신이 육체를 제어한다는 살아있는 증거? 아마 몇 년 전에 공교롭게도 몸무게가 66kg였는데, 이왕이면 600그램만 더 더해서 분위기 로맨틱하게 만들어보자고 작심했다. 그렇게 되더라.

8:30am 출발. 햇살이 '소름끼치게' 싱그럽다. 시계를 보니 기압은 1010밀리바, 약한 측풍, 아침 기온은 음지에서 27.5도 가량. 양호하군. gps를 트래킹 모드로 맞추고 목표지점2, 3, 4를 route로 맞췄다. 이렇게 해두면 3일 동안 울진, 포항, 경주를 차례로 거치게 된다. 부산에 가려다가 경주가 자전거 하이킹 하기 좋다기에 수십년 전 수학여행 가서 어리버리 둘러보다가 지나친 유적이나 한가하게 둘러보는 것도 좋겠지 싶어 부산 대신 경주로 최종 목표를 변경했다.

몇 번 검토해 봐도 마찬가지다; 동해안 도로는 7번 국도를 따라 주욱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쉬운 루트도 없을 것이다.

찜질방을 나오자 마자 uphill, 아침부터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업힐, 다운힐, 업힐, 다운힐을 반복했다. 1차선, 2차선을 왔다갔다 하는 도로임에도 뒤쫓아오는 버스가 위협적으로 크랙션을 울리며 빵빵 거리지 않고 조용히, 슬며시, 배려 하면서 멀찍이 옆에 거리를 두고 지나쳐갔다. 역시 강원도야. 빌어먹을 서울 시내 같지 않다고.

동해시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한참을 지나도 삼척이 안 보인다. 겨우 삼척 동쪽 외곽에 다다라 수퍼 앞에 쭈그리고 앉아 우유와 빵으로 허기를 때우고 물을 한 병 샀다. 잠시 쉬었다. 기온은 29도. 7번 국도는 삼척 외곽을 따라간다. 다리를 건너 삼척역을 지나 아래로 내려갔다. 업힐, 다운힐이 계속 반복되었다.

다시 한 시간이 지나 다리 옆에서 쉬었다. 싯포스트가 자꾸 덜렁거려 조여야 할 것 같다. 트럭들이 쌩쌩 옆으로 지나간다. 담배 한 대 물고 열심히 휴대용 공구로 작업하고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던 친구가 옆에 섰다. 어디까지 가세요? 묻는다. 울진이요. 아 저도 오늘 울진 가요. 그런데 이 길 맞아요? 글쎄요 이 길 맞는 것 같은데...

7번 '국도'가 갑자기 자동차 전용도로로 바뀌는 지점이다. 그래서 차들이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하는 곳이다. 좀 물어봐야겠네요, 하더니 사라진다. 멋진 자전거다. 한달 내내 거리에서 자전거만 보이면 물끄러미 쳐다보는 버릇이 생긴 탓에 그의 자전거가 최소한 60만원 이상 가는 '그럭저럭 쓸만한 수준', 그러니까 델로어급은 된다는 것을 대충은 알았다. 상의, 하의 모두 저지를 갖추고 등에 달라붙는 전용 가방을 매는 등 복장이 나하고 엄청 비교되었다.

여행 다닐 때 쓰는 구깃구깃한 모자에 인부들이 작업용으로 쓰는 고무 밑창 달린 장갑을 가위로 손가락 나오게 잘라 내고 등산 상의에 수영복 하의를 입은 나하고는 참 비교 많이 된다. 자전거는 또 어떻고. 어설픈 MTB에 억지로 갖다붙인 짐받이, 정체불명의 잡동사니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gps를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 놓았으니 참 없어 보이는게, 마치 유럽 배낭 여행자와 인도 배낭 여행자만큼이나 격차가 컸다. 어쩌겠어, 자전거 여행은 장비가 아니라 근성으로 하는거지, 암!

그 친구가 돌아와서 말한다. 이 길 말고요, 저쪽 해수욕장으로 나는 구도로로 가는 것이 낫대요. 하긴 그렇겠다. 자동차 전용 도로에 들어가서 갓길에 짜부러든 채 오들오들 떨면서 갈 수야 없으니까. 아 고마워요, (장비 때문에 기가 죽어서) 먼저 가세요. 라고 말했다. 예 그럼 수고 하세요. 그 친구가 멀어진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패달질을 시작했다. 시작하자 마자 업힐이다. 언제 끝나는건지 원. 해는 중천에 떠올라 기온이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다리가 뻗뻗해진 무렵에 업힐이 끝났다. 언덕 아래로 바다가 새파랗게 보인다. 지평선 너머는 경계가 불투명하다. 구름이 띠엄띠엄 흘러가고 그 위에 군림하는 태양이 성질을 갈군다. 고갯마루에 이르자 시야 중앙 아래에 하얀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신나는 다운힐이다. 바람이 귓가로 스쳐가고 모자가 펄럭였다. gps의 속도계에는 45kmh가 찍혔다. 길이 구불구불해서 속도를 더 올리는 것은 겁이 난다. 브레이크를 간간히 잡았다. 앞서 가던 친구와의 격차는 10분 정도 밖에 안 되는데 벌써 한참 지나갔는지 그림자도 안 보인다.

넘은 고개는 한치이고 언덕에서 본 아름다운 백사장은 한치밀 해수욕장이다. 다운힐이 끝나자 기분좋은 평지가 주욱 펼쳐졌다. 하맹방 해수욕장을 지나 개천이 보이길래 잠시 쉬었다. 11시 무렵. 자전거를 제방에 자빠뜨리고 다리밑 그늘로 기어들어가 웃도리를 벗고 개울로 뛰어 들었다. 시원하다. 20분쯤 물속에 몸을 담그고 물장구 치고 놀면서 담배 한 대 빨다가 올라왔다. 너무 기분 낸 것 같군. 자, 다시 출발해야지.

어? 그런데 아까 본 친구가 버스 정류장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정류장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사 하고 먼저 간다고 빙긋 웃었다. 바로 옆에 시원한 개울 있는데 왜 버스 정류장 처럼 사방이 막혀 바람 한 점 들어갈 틈이 없는 곳에 홀로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일까? 아, 그렇지. 그는 져지를 입고 있었지. 나야 수영복 입고 나돌아다니니까 개울만 보이면 뛰어들어도 괜찮지만 그 친구는 좀 그렇겠지. 아마 수영복 입고 자전거 여행 하는 사람 없을꺼다. 하하하.

한참을 갔는데 쫓아오는 기색이 안 보인다. 평지는 끝났다. 업힐, 다운힐을 반복했다. 지긋지긋하다. 근육이 뻑뻑해지기 시작한다. 해는 하늘 천정에서 화살촉같은 햇살을 쏘아대고 있다. 도로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상의는 쿨맥스 임에도 다 배출하지 못한 땀이 배어 나면서 축축하게 젖었다. 힘겹게 업힐을 끝내면 다시 짤막한 다운힐이 이어지고 패달을 밟아도 밟아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언덕이 연이어 이어지면서 지쳐갔다. 대체 어디까지 온 것일까... 지도가 없으니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황영조 기념 공원을 지나칠 때 앞서가는 자전거가 보였다. 앞에 누군가가 있으면 그를 목표로 삼으면 덜 힘이 든다. 리듬을 그에게 맞추고 천천히, 천천히, 간신히 고갯마루에 이르니 그가 그늘에 자전거를 세우고 앉는다. 옆을 지나쳤다. 쉬었다 가요. 아, 예. 해죽 웃으며 쳐다보니 나이는 들었지만 호리호리한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다. 좋은 자전거다. 다운힐에서 보니 항력이 없어 잘 나가기 때문에 다음에 이어지는 업힐 중간까지는 무난하게 올라가는 것 같다. 내 자전거는 앞에 자전거 가방을 달아 바람의 저항이 있어 잘 나가지 않는 편이고 브레이크가 무겁게 걸린다. 고작해야 자전거와 짐을 합쳐 그 '좋은 자전거'들과 7-9kg 가량의 차이지만 그 차이는 무시못할 지경이다. 자전거 경량화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 하면, 자전거 차체 무게 1kg 줄이는데 못해도 50만원은 든다. 3킬로 줄이면 150만원이다. 그래서 필요도 없는 1kg가 넘는 짐받이를 굳이 붙이고 온 것이 후회될 지경이다.

아침에 우유 하나, 빵 하나 먹고 500ml 짜리 물병 하나 사온 처지라 지나가다가 수퍼라도 보이면 들르려고 했는데 잘 안 보인다. 일기예보의 기온은 34도 라는데, 실제 도로에서 내 시계로 찍은 온도는 35~36를 오락가락 했다. 쉬었다 가야 한다. 저 멀리 언덕에서 아지랑이가 이글이글 피어 오르고 아스팔트는 더위에 녹아 길 옆으로 몇 센티미터 밀려 있다. 지긋지긋한 업힐, 다운힐이 반복되는 가운데 도저히 더 이상은 기어올라가지 못할 것 같아 자전거에서 내렸다.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여기 언제 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기시감을 느꼈다. 신남 해수욕장이라? 마을 입구에 멀쩡한 간판까지 달려있는 것이 영락없는 관광지 같다. 아주 오래전에 동해안을 거침없이(?)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 들렀던 곳인 것 같다. 반가운 마음에 내려갔다. 동네 전체가 민박촌으로 변했다. 포구 하나와 작은 해변이 있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싶지만 기껏해야 10여미터가 안되는 그 중간의 모래밭을 지나갈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친다. 살 타면 여행 끝이다.

대신 민박집 주인 할머니에게 부탁해 수돗가에서 한참 동안 흐르는 수돗물에 머리를 틀어박았다. 수퍼에서 메로나 하나를 사먹었다. 툇마루에 앉아 할머니와 노가리를 풀었다. 할머니가 옆에 쭈그리고 앉아 마늘을 까면서 이 더위에 왜 자전거를 타고 사서 고생이냐고 징한 영동 사투리로 타박한다. 영동 사람들은 나같은 영서 사람들의 서울말 닮은 '얍삽한' 사투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내 말이 그 말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연습을 충분히 한 건지, '비교적 쉽다는' 동해안 도로를 대상으로 현지 검증을 하려고 온 것이지 땀을 바가지로 흘리면서 여름을 저주하고 한국도로공사를 저주하고, 개처럼 혀를 내빼고 헥헥 거리는 품위 안 서는 바보짓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동네가 다 민박촌으로 바뀌었지만 인심은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수퍼 아줌마는 이 더위에 미쳤지 쯧쯔 라고 도움 안되는 걱정을 해주기도 했다.

그래도 가야지 어쩌겠나.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씩씩하게 일어섰다. 일어서서 고갯마루로 올라가는데 다리에 힘이 안 생긴다. 손수건을 꺼내 물에 적셔 팔다리를 닦고 목에 둘렀다. 십여분쯤 멍하니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조금 있으면 두 시다. 두 시 넘기 전에 반은 가야지.

이 놈에 업, 다운, 업, 다운은 언제 끝나나. 이제 두 시다. 열파가 악마떼처럼 도로를 휩쓸고 지나갔다. 눈썹에서 떨어진 땀방울이 안경을 타고 공공연하게 흘러내렸다. 볼이 미끈거리고 입안이 타들어갔다. 졸립다. 바야흐로 신경계의 셧다운이 일어나려 하는 것 같다. 업힐 몇 개 하고 지쳐 나가떨어져 잼버리 공원인지 하는 곳의 송림 속으로 자전거를 들이받듯이 몰고 들어갔다. 급제동하다가 페달의 뾰족한 모서리가 허벅지를 긁어 피가 맺혔다. 신경 안 쓴다.

피서 나온 몇몇 가족이 돗자리를 펴고 고기를 구워먹으며 한가하게 즐기고 있다. 고기 굽는 냄새를 맡으니 머리가 확 돌아버렸다. 마침 전화가 울려 김씨 아저씨가 밥 맛있게 먹고 술 한 잔 하며 잘 놀고 있다고 안부 전화를 걸었다. 그래... 염장을 질러라.

생각해 보니 아침에 우유, 빵 쪼가리 하나 먹은 걸로 지금까지 버틴게 기적이지. 밥을 안 먹어서 그런거야. 아니야, 그 동안 업힐 연습을 게을리 한 거지. 이쯤이면 충분하다고 자만한거지, 고작해야 30분짜리 업힐 연습을 하루에 한번 한 걸로 지구를 다 정복할 수 있다고 뻔뻔하게 군거야, 그런데, 드라군이 출동하면 어떨까? 별별 잡 생각이 다 든다. 비좁은 벤치에 몸을 다 누이지 못한 채 그 나마도 벤치가 기울어 몸도 절로 반쯤 기우뚱한 자세로 누워, 먹을 꺼라고는 자일리톨 껌 두엇과 미지근한, 1/3쯤 남은 물을 아끼느라 홀짝이면서 이러고 있으니 처량하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얼음물을 마셔도 안 시원하다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으며 남은 음식을 바리바리 싸서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고기를 쩝쩝, 물을 꿀꺽꿀꺽 맛있게 먹는 그 소리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담배 한 대 빨았다. 담배는 pain killer다.

오후 3시. 심장이 헐떡이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업힐, 온 몸이 타는 것 같다. 이번에는 목표가 분명하다. 눈에 보이는 첫번째 음식점에 들어가 밥을 먹자. 첫번째 음식점이 해장국집이다. 작은 마을을 거쳐가는 운전수들이 끼니를 해결하는 곳 같다. 열량이 제일 높아 보이는 해장국을 주문했다. 꽁꽁 얼린 물을 내준다. 1.5리터 들이 병의 반을 비웠다. 대체 땀이 얼마나 흐른건지 알 수가 없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니 밥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밥 더 줘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물이라도 더 마셔요, 여기 물이 아주 맛있어요. 정말 맛있네요. 그러더니 내 빈 병에 물을 채우라고 물을 한 통 더 꺼내준다.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업힐이다. 언덕만 보이면 아주 돌아버리겠다. 구름이라도 해를 가려줬으면 고맙겠고만. 방금 음식 먹은 것들이 소화되면서 더위와 더해져 체온은 점점 높아져만 가는 것 같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쿵쿵 뛴다. 안장에서 내렸다. 한 친구가 내 옆을 스르르 지나쳐 간다. 가볍게 눈인사를 주고 받았다. 고갯마루에 이르니 그가 그늘에서 자전거를 세운 채 헉헉거리고 있었다. 우리 둘 다 땀을 비오듯이 흘렸다. 짐받이를 보니 흘낏 지도가 보인다. 대체 이 길이 언제쯤 끝나요? 내가 물었다. 원덕 까지는 계속 이렇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디까지 가세요? 울진이요. 탄식하듯 대꾸했다. 저는 오늘 울진까지 가려고 했다가 원덕에서 쉬려고요. 원덕? 원덕은 어디지? 얼마나 먼 거지? 얼마나 먼지 무슨 상관이겠어 일단 나는 울진까지는 갈 것이다. 힘 냅시다. 내가 먼저 인사하고 출발했다.

그 친구와 나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한동안 같이 달렸다. 나하고 체력이 비슷한 것 같다. 딱히 말하자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 젊은 친구는 근육질 몸이고 내 몸에는 근육 비슷한 것을 찾아보기가 힘든 형편이다. 그와 내가 비슷한 체력이라는 점에서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체중 대비 머슬 파워인 것 같다. 대략 70kg 쯤 되어 보이는데, 그가 울퉁불퉁한 근육을 가지고 있을 지언정 여분의 4kg을 부양하려면 나만큼이나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w/kg라는 단위는 썩 잘 들어맞는 것 같다. 마라톤 선수들이 닭처럼 바짝 말랐고, '갸날픈 몸매로 세계를 여행한 여자들'이 부지기수인 것을 보면.

맛있는 물이 다 떨어졌다. 다운힐중 휴게소가 보였다. 빙과류중 폴라포를 집었다. 탁월한 선택이다. 폴라포는 500원에 거의 얼음덩어리와 당분이 주성분이고 용량이 140ml 밖에 안된다. 메로나 같은 것은 한 입에 꿀꺽 삼킬 수 있지만 폴라포는 얼음 덩이 때문에 140ml를 입에 다 넣으려면 5분은 걸린다. 급해도 천천히 먹을 수 밖에 없고 다 먹어도 그 용량이 140ml 밖에 안되니 액체로 된 음료수보다 몸을 식히고 수분을 섭취하는데 이상적이다. 왜 예전에는 이걸 몰랐을까. 폴라포를 맛있게 쪽쪽 빨아먹고 있는데 아까 그 친구가 언덕을 질주하는 것이 보인다. 씨익 웃어 주었다. 고개를 끄떡이며 마주 웃는다. 세워서, '폴라포를 먹어요. 이거 끝내줘요'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원덕에 이르렀다. 개울이 보인다. 웃통을 훌렁 벗고 개울로 뛰어 들어가서 몸을 식혔다. 기분 끝내준다. 동네 사람들이 개울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어 흡사 미친놈처럼 보일까 두려워 얌전히 '냉탕'을 즐겼다. 아, 정말 살 것 같다. 개울이 계속 나타났으면 좋겠다.

길 옆에 있는 임원 해수욕장에 다다르니 오후 4시다. 이번엔 해수욕을 즐겼다. 차갑고 짭짜름한 물 속에서 열을 식혔다. 나곡 해수욕장에도 들렀다. 오후 5시. 혼자 놀아도 상당히 재밌다. 자맥질을 몇 번 반복하고 나니 몸에 소름이 돋는다. 해가 서편으로 멀리 가 버리자 해수욕장에는 그늘이 드리워졌다. 바닷물은 상대적으로 차갑다. 여기서 민박을 할까 아니면 울진으로 들어갈까 고민했다. 그래도 울진까지는 가보자. 다시 출발. 이번에는 웃통을 벗고 그야말로 수영복 차림으로 달렸다. 땀이 나서 다시 입었다. 쿨맥스 긴팔 티셔츠, 성능 끝내준다. 왜 진작 이걸 안 입었나 싶다.

7번 국도를 벗어났다. 앞에 개천이 보여 몸을 담그고 싶어서 개천가까지 갔다. 발을 담그니 물 비린내가 물씬 풍긴다. 2급(하)수다. 얼른 다리를 뺐다. 강원도를 벗어나자 마자 하천이 이 모양이 되다니 거참 신기하네. 울진 원자력 발전소를 지나쳤다. 울진 원자력 스포츠 센터에 들렀다. 비타500 한병을 자판기에서 뽑아먹고 안면 몰수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팔다리를 씻었다. 샌달도 박박 씻었다.

다시 출발. 터널을 지날 때마다 뒤쫓아오는 차량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온다. 무섭다. 마치 눈알을 히번뜩이며 이빨을 자근자근 가는 나쁜 늑대들에게 쫓기는 기분이다. 내장과 심장이 덩달아 쿵쾅거려 서둘러 패달을 밟았다.

7번 국도에서 한참 벗어났기 때문에 길 찾기가 어렵다. gps의 나침반은 진행방향이 맞다고 표시하고 있지만 어딘지 을씨년스럽다. 차 한 대 안 지나가는 외진 도로의 차량 정비소에 이르니 사방에서 개들이 미친듯이 짖어댄다. 이리 가면 맞아요? 가다가 길이 막히면 공항로로 우회하면 됩니다. 도로가 끊긴 지점에 이르렀다. 새 도로로 우회하면 되지만 공사중이라고 도로를 막아놓은 쪽으로 들어섰다. 얕은 오르막 경사가 이어지는, 시원하게 죽 뻗은 도로 중간에 폭주족 애들이 썩 훌륭한 오토바이를 모아놓고 앉아서 노닥거리고 있었다. 이 길로 죽 가면 울진 나와요? 네. 그중 한 친구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그들 옆을 고작 시속 14kmh로 스쳐가는 나를 보더니, 대단하십니다 존경스럽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빌어먹을 자식들 누굴 놀리나. 이렇게 체통을 구기면서 발질 또는 지랄하고 있는 나 보다는 니들이 훨씬 더 멋있어 보인다. 라고 안 들리게 중얼거렸다.

gps를 보니 울진까지 8km 남았다. 거의 다 온 셈이다. 막힌 도로 마지막 지점에서 풀밭에 대자로 누웠다. 잠시 후 모기와 날파리들이 몰려와 살갗을 물어 뜯었다. 풀잎이 정강이를 베고 있어도 신경쓰지 않았다. 힘들다. 정말 힘들다. 이래 가지고서야 포항까지 갈 수 있을까.

일어섰다. 해가 지고 있다. 미등이 있긴 하지만 시원찮아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고 헤드 라이트도 없다. 해가 지는 시각은 7:17pm. 여명을 고려하면 7:30pm. 그전까지는 울진 시가지에 도착해야 한다. 7시다. 해가 곧 진다. 해 지면 가로등 하나 없는 지방도에서는 좆된다. 패달을 힘차게 밟았다.

다행히 울진 시가지에 도착했다. 차분한 시가지다. 마음에 든다. 가면서 저렴한 가격에 단백질을 효과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반짝, 햄버거가 떠올랐다. 햄버거집을 찾자. 시내 중심부에 이르니 롯데리아가 보인다.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가 불고기 버거 셋에 콜라 대신 오렌지 쥬스를 시키고 감자칩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콜라를 한 잔 더 시킨다는 것이 직원이 리필로 알아듣고 돈도 안 받고 채워준다. 이게 왠 횡재냐? 원래 롯데리아에서 리필이 되나? 단백질과 수분 보충을 끝내고 gps 지시에 따라 찜질방을 찾아갔다. 찜질방에서 맥주 한 잔 하기로 하고 해바라기씨도 샀다.

욕탕에 들어가기 전에 몸무게를 재어봤다. 64.4kg, 사우나를 마치고 나오니 64.1kg, 그새 2kg이 빠졌단 말인가? 햄버거 200g, 오렌지 쥬스+콜라 하면 500g은 족히 될 터이고 그동안 먹은 음식과 물의 양을 생각하면 실제 빠진 것은 10시간 만에 4~5kg? 전율을 느꼈다. 아내에게 꼭 권해줘야겠다.

찜질방이 어째 동네 목욕탕 스러워 보인다. 찜질방이 돗대기 시장같다. 안에 식당이 없어 전화를 걸어 동네 가게에서 냉국수를 시켜 먹었다. 메뉴는 냉국수, 온국수, 미역국 뿐이란다. 대낮 동안 수분을 섭취하고 배출하는 것은 그렇다치고, 염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먹은 음식만으로는 부실하고 충분치 않은데. 이틀째 제대로 염분을 섭취하지 못했다. 눈 딱 감고 세포들이 뽀드득해지길 기원하면서 목욕탕의 이빨 쑤시는 소금을 한 모금 집어 삼켰다.

8/14

이번에도 잠을 설쳤다. pc 방이 없어 포항까지의 도로 사정을 조사하지 못했다. 나와보니 자전거가 어째 좀 이상하다. 누군가가 세자리 숫자로 돌아가는 키락을 열어놨다. 하지만 훔쳐가지는 않은 것이 장난 치면서 키락을 깬 것에 스스로 흐뭇해진 것 같다. 자식.

근육이 욱신거린다. 울진 시가지를 빠져 나가면서 옆에 터미널이 보였다. 가지 말자. 더 이상 가면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다. 실험은 끝났다. 실험 결과: 아직 여행할 수준이 못 된다. 지구력을 강화하고 업힐 연습을 더 많이 하자. 포항행 7번 도로에서 방향을 틀어 터미널로 돌아섰다. 서울행 표를 끊으려다가 경주 가는 차가 보이길래 얼떨결에 경주행 버스표를 끊었다. 아무래도 대미는 '관광'으로 장식해야지 싶다.

울진에서 포항까지 가는 길은 비교적 완만하다. 가는 길에 키락의 바뀐 번호를 알아내려고 000-999 사이의 조합을 시도했다. 쉽게 풀린다. 이런 종류의 자물쇠는 원래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동해에서 울진까지 gps에 찍힌 주행거리는 78.5km다. 이래저래 쉰 시간을 빼면 8시간 동안 78.5km를 달린 것이니 시간당 10kmh로 잡으면 울진에서 포항까지 117km면 10시간에 충분히 주파할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생각했지만 오늘도 어제처럼 10시간 넘게 35도를 넘는 더위 속에서 주행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교만한 것이다.

원래 계획은 포항까지 가서 하룻밤 자고 포항에서 경주까지 30여 km를 달려서 경주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다. 남들 다 하는데 나는 못하는 것 뿐이다. 체력이 안되니까.

경주 시외 버스 터미널에서 내렸다. 자전거를 꺼내는 도중에 서두르다가 다시 페달에 정강이를 긁혔다. 피가 맺혔다. 관광 안내소에서 자전거 도로 지도를 얻었다. 불국사까지 얼마나 걸려요? 안내 데스크 아가씨는 불국사까지 18km이며 2시간 걸린다고 말했다. 희안하네? 18km 가는데 2시간이나 걸린다니. 그럼 대부분 그 지긋지긋한 업힐, 다운힐 반복이란 말인가? 그것은 경주 도로가 거의 평지나 다름없다는 '사실'과 배치된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나왔다.

터미널에서 출발해 대릉원, 첨성대, 계림, 석빙고, 안압지, 국립경주박물관 코스를 밟았다. 자전거로 돌아다니기 정말 딱 좋다. 경주 박물관 가는 길에서 주행 중 물병을 꺼내 마시다가 물병에 햇살이 반사되어 눈이 부셔 왈칵, 사래 걸려 컥, 핸들이 틀어지면서 내리막길에서 가로수와 들이받았다. 핸들을 놓을 새도, 물병을 던질 생각도 못하고 미련하게 오른 팔과 다리로 나무를 밀다가 긁혔다. 이런 젠장. 오른 팔 소매가 찢어지고 팔이 긁히고 다리도 긁혔다. 양쪽 정강이와 팔 다리에 무수한 상처와 멍이 생겼다.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나 많은 상처가 생기다니... 욱씬거린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화장실부터 찾았다. 수건에 물을 적셔 피를 닦아내고 돗대기 시장처럼 바글거리는 박물관 구경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나왔다. 사람이 많으니 집중이 안된다. 날은 오지게 덥다.

상처가 쓰리고 아침부터 먹은 거라고는 바나나 두 쪽 뿐이라 허기가 져서 불국사행을 포기하고 시내로 들어섰다. 뭘 먹을까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가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식당이 보여 무작정 들어갔다. 아... 이게 그 경주 밀면이구나. 4천원이란 저렴한 가격에 얼음덩이가 송송 뜬 푸짐한 국수가 나왔다. 면발이 쫄깃하고 국물이 시원하면서 얼큰한 것이 그럴듯 하다.

배가 부르니까 갑자기 희망적인 생각이 들어(방금 전에 바보같은 짓을 하다 팔 다리가 상처 투성이가 되어 스스로를 자책하며 의기소침했는데) 불국사를 향해 패달을 밟았다. 새삼스럽게 음식의 소중함을 느꼈다.

자전거가 어째 무겁다. 뒷바퀴를 흘낏 쳐다보니 바람이 없는 것 같다. 불국사 초등학교 앞에서 지나가던 할아버지한테 내가 앉아 있을 때 뒷바퀴가 어떻냐고 물어보니 빵꾸났단다. 어, 펑크인 거냐? 펑크 패치가 있지만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펑크를 때울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자전거 가게를 찾았다. 마침 장터 근처에 있어 장기 두고 있는 자전거 가게 아저씨한테 3천원 주고 때웠다. 내가 때우려고 노력했더라면 아마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구멍이 워낙 미세해 튜브를 물에 담그고 한참을 이리저리 굴려서 간신히 찾아낸다.

그 동안 장터를 구경했다. 시골장 같다. 거참 신기하다. 경주는 관광 산업으로 꽤 큰 도시라고 믿고 있었는데. 아침에 본 여러 관광지보다 장터 구경과 동네 청년들이 8.15 기념 운동회 하는 걸 구경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술과 음식을 동네 사람들에게 거저 나눠주는데 점심을 배터지게 먹은 것이 아쉽다.

불국사까지 주행시간만 1시간 20분, 펑크 때우고 구경하느라 1시간, 족집게 처럼 정확하게 시간을 맞춘 관광안내소 안내양에게 경탄했다.

불국사 주차장에 자전거를 대충 세워두고 가방도 그대로 놔뒀다. 훔쳐갈만한 것도 없으니까. 훔쳐가봐라. 그냥 확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겠다.

화장실에 들러 웃통을 벗어 빨았다. 소금끼가 묻어 하얀 자국이 나 있다. '옷가지 빨지 말 것'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내친 김에 팔 다리도 깨끗이 씻었다. 절집에 가는데 옷차림이 단정해야지 무슨 헛소리야?

불국사는 어렸을 때 본거나 지금 본거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볼거리는 많지 않다. 울궈먹기도 이런 울궈먹기가 없을 것이다. 다보탑과 석가탑은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답다. 한국문화의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는 그 담백함과 깔끔함은 한국인의 개같은 민족성과 심하게 배치되어 보일 때도 있다. 음, 이를테면 아시아나 항공의 기내 서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 걔네들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된 이유는 개같은 한국인들을 워낙 많이 상대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라고 믿는다. 그런 아름다움인 것이다...

석굴암까지 가는데만 50분 걸린다기에 덥고 지쳐서 그냥 근처 잔디밭에 앉아 그저 빙과류 마시면서 시간을 때웠다. 가이드북을 들고 다니는 일본 애들이 보여 광복절인데 한국에 찾아와 관광을 즐기는 일본애들의 깡에 경탄했다. 불국사 관람한 소감이 어떻냐고 물으니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헤헤 웃더니 그냥 달아난다. 얘들아, 내가 비록 몰골은 심하게 없어 보여도 불교면 불교, 이슬람이면 이슬람, 힌두교면 힌두교, 조금씩은 다 안단 말이다. 일본 갈 때 두고보자. 말 걸었는데 무시하다니... 영어로 해서 그런가... 일본인들이나 한국인들이나 우물안 개구리라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해 보였다. 한국에는 심지어 신문의 국제면에서 쓸만한 기사가 거의 하나도 없다고 볼 수 있었다. 그저 해외토픽 수준이지.

보문관광단지로 향했다. 야트막한 업힐이라 길은 아주 쉬웠다. 그래도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려 휴게소에 들러 폴라포를 하나 사 먹었다. 수분을 섭취한 세포들이 몹시 기뻐한다. 맛있어 보이는 팥빙수를 먹고 싶지만 배가 무거울 것 같다. 한가하게 오리배 떠다니는 모습을 관람했다. 보문관광단지의 마스코트는 아무래도 오리배와 현대xx건물 인 것 같다.

전혀 발 담그고 싶은 기분이 안 드는 2급수 형산강변을 따라 시내로 천천히 주행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멈추지 않고 경주 주변을 내내 돌고 있다. 대나무숲이 물결치면서 피리 불듯이 낮게 부우부우 우는 소리를 낼 것만 같다. 그야말로 서라벌에 부는 바람이다. 자전거 모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지만 더위 때문에 지친다. 대교 눈높이 전국 축구대회가 마침 벌어지고 있었다. 대회장 식수터에 가서 물과 차를 얻어 마시고 잘한다고 박수도 쳐줬다. 애들 축구 잘하네?

시내로 들어서니 오후 5시. 여전히 덥다. 돈을 찾으러 은행의 ATM에 들어가니 시원해서 신발 벗고, 음, 아예 드러누었다. 왜 진작 이러지 않았을까, 무료로 시간 보내면서 더위 식히기 딱 좋은 장소인데. 감시 카메라에 어떻게 찍혔을 지 가관도 아니겠다. 감시 카메라를 고려해서 엉덩이를 잠시 까 보였다.

gps의 좌표만 믿고 찾아가보니 시외버스 터미널이 나온다. 어? 이게 아닌데... 찜질방은 어디간거지? 아뿔싸, 이 좌표는 시외버스 터미널 좌표다. 찜질방 좌표를 입력하지 않은 것이다. 관광 안내소는 문을 닫았고 지나가는 택시 기사한테 물어보니 경주 시내에는 찜질방이 없다는 것이다. 찜질방은 시 외곽으로 나가야 있다나? 어떻게 찾아 가야 하는지 지도를 내밀고 물으니 그 따위(!) 지도로는 찾아갈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이 지도 괜찮은데?

어쩐다. 날이 어두워지는데 자전거 몰고 다니며 찾을 수는 없고 시내 구경도 하고 싶고, 어차피 내일 터미널에 다시 돌아와야 하니 터미널 주변에 즐비하게 널린 자전거 가게를 찾아 다니며 자전거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한 가게가 5천원 주면 맡아 주겠단다. 자전거를 맡기고 시내 구경을 했다. 중심가란다. 롯데리아에 들러 에어컨 바람 쐬면서 단백질 보충하고 콜라 리필해서 두 번쯤 더 마시고 나왔다. 에어컨 앞에서 기체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찜질방이 어딨냐고 물으니 동대 부근에 있단다. 이런... 동국대면 아까 경주 시내로 들어오면서 지나친, 다리 건너편인데. 뭐 그게 어렵다고 택시기사들이 안 알려준건지?

동대 황토 찜질방에 택시 타고 갔다. 버스 타고 가면 되는데 어쩌나 보려고 택시를 타 봤다. 택시 기사가 한참 헤메면서 찾았다. 3500원 나왔다. 택시 기사가 일부러 헤멘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음... 왜냐하면 나는 경주 시내 지리를 안다. 자전거 타고 한 바퀴 돌아 봤으니까. 다음날 아침 우연히 동대 앞에서 시내로 돌아가는 택시를 다시 타게 되었는데 그때는 1900원 나왔다. 경주 택시 기사 양반들이 그 따위로 하면 그네들 인상만 구겨질 뿐이란 것을 제주도 관광택시들이 오래전에 이미 전례를 만들었다고 보는데.

찜질방이 다소 생각외다. 목욕탕은 없고 샤워실에 수건 하나 달랑 준다. 내일 아침에는 어쩌라고? 물론 찜질방이 가동중이지도 않았고 에어컨 조차 켜지 않았다. 그냥 7천원 짜리 도미토리다. 그래도 경주 시내의 값비싼 호텔이나 여관에 비하면 감지덕지다. tv로 남-북 축구 보면서 주인 아줌마와 노가리 까고 가게도 봐주면서 맥주 한 잔 하고 아무 방에 들어가 누웠다. 새벽 두 시까지 한 사람 두 사람, 사람들이 꾸역꾸역 찾아와 아무데나 널부러져 잤다. 분위기 참 마음에 든다. 나는 유일하게 선풍기가 달려있는 넓은 회의실을 통째로 차지하고 방바닥을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돌바닥에 오래 머무르면 미지근해 지니까 포지션을 바꿔서). 아무도 안 들어와 혼자 편히 자고 있는데 여자애들 셋이 한꺼번에 들어와 회의실의 반을 차지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반만 굴렀다.

8/15

요란하게 한방 황토 찜질방임을 과시하는 이곳은 들창으로 아침이 가차없이 침투하는 구조라 6시에 어쩔 수 없이 깨어났다. 3일 내내 제대로 잠을 자 보지 못했다. 샤워하고 짐을 챙겨서 숙소를 나와 동대 앞까지 걸어가 택시를 타고 시외 버스 터미널에 도착. 자전거 가게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아 돼지국밥 한 그릇 시켜 먹고 터미널 의자에 앉아 시간을 죽였다.

자전거 가게 주인 아저씨가 내 자전거가 괜찮은 자전거란다. 글쎄, 그다지 안 좋다. 거의 한 달 타고 돌아다녔더니 BB나 페들 어딘가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어쩌면 스프라켓을 통째로 갈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프레임은 괜찮지만 디레일러만 빼고는 어쩐지 부속들이 싸구려 같다. 최근 며칠 타고 다니는 동안 걸리적 거리는 소음이 들려 서울 올라가면 자전거를 제대로 한 번 점검 받아야겠다.

자전거를 싣고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16300원. 울진에서 경주로 오는 온갖 군데 다 서는 시골 완행 버스를 13500원 주고 타고 왔는데 그보다 낫다. tv에서 노무현이 광복절 기념사를 하고 있었다. 60주년을 맞은 이번 광복절은 여러 행사가 덧붙여 지면서 나름대로 특별해진 것 같다.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남부 터미널에 도착. 어떻게 강북으로 가야할지... 무작정 반포대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침 반포대교 밑으로 자전거 도로가 나 있다. 이렇게 해서 서울시를 빠져나가는 두 가지 주요 경로를 다 알게 되었다. 동서울 터미널과 남부 터미널까지 가는 길.

평균 20kmh 속도로 꾸준히 14km를 달려 집에 도착했다. 중간에 폴라포도 하나 먹어줬다. 보약이다. 팔 다리가 상처 투성이다. 코끝과 다리가 새카맣게 탔다. 약국에 들러 약을 사서 바르고 여행 내내 먹고 싶었던 복숭아를 사먹었다.

자전거 타고 혼자 다니는 사람들을 여럿 봤다. 자전거 여행은 타지 여행과 참 많이 비슷하다. 서로 만나면 아는 척도 하고. 수고 많으시다.

그런데 돌아와서 보니 살이 좀 타서 화끈거리는 것 빼고 다리에 근육통이나 뭐 이런 것이 없다. 신기하네...

뻔뻔하게 나흘 내내 수영복만 줄곳 입고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개울이나 바다에 마음껏 뛰어들 수 있어 아주 좋았다는 것 빼고, 이번 자전거 여행에서 건진 것은 고작, 건강 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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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리지가 좀 남아 있어 저저번주부터 머리 식힐 겸 제주도에 가려고 했다. 제주도에 가긴 가는데, 별달리 뾰족한 테마가 생각나지 않았다. 제주 날씨; 안 좋다. 다시 다음주로 미룰까 하고 아시아나 홈페이지에 들어가 발권 상황을 보니 시간 맞는 것이 없다. 다음주는 본격적인 장마니까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좌석이 없어 일요일 아침에 도착해 월요일 오전에 돌아오는 표를 끊었다.

6/25, 간단히 짐을 싸두고 자명종을 맞춰 두고 자료 수집 시작. 주로 '야후 거기'의 콩나물 지도를 참조. 별다른 테마가 없고, 있다 해도 돈이 들 것 같아 그냥 한라산에 가보자고 마음 먹었다. 제주를 두 번 갔지만 번번이 한라산에 갈 기회가 없었다. 한라산, 어떤 코스로 가도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항공권 사정상 일정이 이틀 짜리라 시간이 남아돈다. 제주에 사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코스는 영실(어리목)에서 올라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어리목(영실)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경치가 괜찮다는데 등반 시간이 짧다. 남은 시간에 뭘 해야 할지. 게다가 비가 오니 경치 관람은 별 의미가 없다. 성판악에서 출발, 관음사로 나오는 코스는 10시간 가량. 길이 평탄하고 지루하단다. 그래도 10시간 동안 줄창 걸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처음 제주에 간 것은 십 년도 전의 일이다. 그때 아마 전국 여행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목포까지 가서 어디갈까 궁리했다. 갈데가 없다. 그래서 배를 탔다. 그날 바다에는 폭풍이 몰아쳤다. 커다란 배가 기우뚱 기우뚱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을 때 갑판에 나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거대한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을 보며 공포에 질렸다. 바다의 무서움을 그때 처음 느꼈다. 제주항에 도착했을 때 항구에서 노란 비옷을 입고 있는 여자가 다가와 하룻밤 같이 보내잔다. 창녀였다. 제주의 첫인상이 그랬다.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닌 그냥 첫인상이다. 우중충한 선창에서 선명하게 반짝이던 노란색 비옷. 매킨토시? :)

두번째 제주 여행은 4년 전, 그때도 폭풍이 몰아쳤다. 3일 밤낮으로 폭풍을 뚫고 자전거를 타고, 끌고, 밀며 해안도로를 일주했다. 제주에서는 빗방울이 수평 궤적을 그리더라, 하니까 믿지 않는 작자도 있었다. 폭풍이 제주도를 유린하던 그 와중에 텐트 치고 자기도 했다. 매우 고생했다.

6시 집에서 출발, ATM에서 10만원을 찾았다. 7시30분 김포공항 도착.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350ml짜리 물(1400원)을 사 먹었다. 그리고 초코바를 세개 샀다. 8시 비행기를 탔다. 기내에서 나눠주는 사탕을 한웅큼 집었다. 캐빈 어시스탄트가 헤~ 하고 웃었다. 배낭여행만 해서인지 이놈에 거지 근성은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남아있는 것 같다.

9시 5분, 제주공항 도착. 교통 경찰에게 물어 시내 버스 타고(850원)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 도착. 5분 걸렸다. 최근 제주 시내버스가 파업에 돌입했다. 최저 생계 보장을 외치고 있다. 시내버스 타고 다니기 힘들겠구나 싶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터미널에서 1700원 주고 표를 샀다. 담배 한 대 빨고 성판악행 버스에 올랐다. 9시 25분 출발. 간간이 안개를 통과했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속으로 엿됐다 중얼거렸다. 성판악에 도착하니 매표소가 어딘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와 안개가 잔뜩 끼어 있다.

오버 트라우저로는 아무래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비닐로 된 일회용 우의를 샀다. 3천원. 이리저리 헤메다가 매표소를 발견. 1600원. 오후 한 시까지는 진달래 대피소에 다달아야 정상에 올라갈 수 있단다. 기상 상태가 안 좋단다. 슬슬 비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별 걱정하지 않았다. 제주의 '지랄 비바람'은 익숙한 것이다.



한라산의 동서 사면은 기울기가 비교적 완만해 3-5도 사이, 남북은 5-7도 사이다. 거의 산책로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그렇게 편한 길이지만 한라산에서 한 달 평균 3-4건의 탈진, 부상 사고가 발생한다. 사고가 나면 별다른 방법이 없어 안전요원이 산에 올라가 들쳐 업고 내려온다. 운 나쁘게 정상 근처에서 사고가 생기면 왕복 10시간 거리다.

등산객이 거의 없어 호젓한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여기저기 해송과 산꽃나무가 보였다. 귀찮기도 하고, 카메라를 꺼내 찍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빗방울이 굵어지고 비바람이 숲을 뚫고 몰아쳐서 오버트라우저가 흠뻑 젖었다. 그걸 벗고 대신 비옷을 걸쳤다.

오후 한 시가 한계라 발걸음을 빨리 했다. 앞에 놀러온 부산 아가씨들이 씩씩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깔깔거리며 제주도에 왔으니 백록담을 꼭 보고 가겠다고 호언장담한다. 빗물에 홀딱 젖은 티셔츠로 브라 끈이 비쳐 보인다. 길이 편하긴 하지만 준비없이 빗 속에 올라가는 것은 무리인데... 지방층이 두터우니까 추위를 잘 견디겠지. 나야 애당초 백록담 볼 생각은 없었다. 그냥 비바람을 '즐기자고', 뭐 그런 마음을 품었다. 아까 비행기에서 얻은 사탕을 나눠주고 지나쳐 올라갔다.

안개와 비바람에 휩싸인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하니 11시 40분, 사람들이 대피소 안에서 바글거렸다. 얼른 컵라면(1600원) 하나와 포카리스웨트(1000원)을 사서 먹었다. 뱃속이 따뜻해지고 액체를 섭취하니 좋다. 하산하는 등산객들 중 몇몇 사람들이 정상 부근에서 비바람이 심해 올라가다 돌아왔단다. 별다른 대비없이 무작정 올라왔던 사람들은 홀딱 젖어서 아까 본 아가씨들처럼 비맞은 강아지 꼴이었다. 오들오들 떨고 있다. 정상 부근은 추울텐데? 왜 올라왔나 싶다. 아이까지 데리고 올라온 사람들은 또 뭘까. 성판악에서 정상까지 4시간 30분 걸린다. 왕복만 해도 10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인데 아무리 길이 편하다지만 애들 데리고 10시간 동안 걷는 것은 무리다. 앗. 애들한테 빗 속에서 열시간 산행을 시키는 것이 혹시,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12시에 출발. 1570m 지점에서 gps를 찍었다. 시계를 살펴보니 기압계는 830 헥토 파스칼, 비는 한 동안 계속 올 것이다. 우의를 벗고 비에 젖은 오버트라우저를 다시 입고 그 위에 우의를 걸치고 배낭을 바깥에 매고 배낭 끈으로 우의 바깥을 단단히 조였다. 초콜렛 바를 두개 우걱우걱 씹어먹고 실개천에서 손으로 물을 받아 마셨다. 차고 달다.


개울로 변한 등산로. 신발에 물이 차서 질퍽거리지만 찬 개울물에 발 담근 것처럼 시원하고 기분 좋다. 이래서 사고가 나는 걸까...

진달래 대피소를 나오자 길이 조금씩 가파라지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이면서 1800까지 구상나무 숲을 지나쳐갔다. 빗속이지만 특유의 테르핀 향내가 풍긴다.

개활지에 이르자 광포한 비바람이 남남서에서 불어닥쳤다. 풍속이 10~20m/sec에 이르는, 내가 두번째 제주 자전거 여행에서 익히 그 맛을 보았던 바로 그 지랄풍이었다. 반갑다 지랄풍. 제주의 참맛은 역시 지랄풍이지. 빗방울은 수평으로 날아다니고 피부에 빗방울이 닿자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비닐 우의는 미친듯이 파다닥거렸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람이 벽으로 몰아 세웠다. 비틀비틀, 시계가 겨우 1m 정도인 막막한 계단길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갔다. 죽이는군.

정상에 다달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재수 좋으면 백록담에서 한가하게 뛰노는 노루떼를 구경할 수 있다는데 온 사방이 그냥 하얀 백지 상태였다. 한라산 중턱에는 버려진 밭이 있는데, 밭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어느날 한라산 자락에 공들여 풀어 놓은 노루 중 새끼를 잡아 먹었단다. 그래서 노루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밤마다 밭에 내려와 작물을 망쳐 놓았다.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밭을 포기한 채 산을 내려갔다는 민담이 있다. 정상에서 이히히, 이히히 웃으며 노래 부르고 있는데 옆의 오두막에서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뛰쳐 나와 그만 내려가란다. 관음사로 내려갈 꺼라고 소리 질렀다 -- 서로 말이 안 들린다. 계곡에 물이 불기 전에 빨리 내려가란다. 서 있기가 곤란한 처지라 얼른 바람을 피해야 겠기에 정상에서 겨우 5분 남짓 있었다. 올라오는데 3시간 걸렸다. 관음사에서 정상까지 5시간 가량, 하지만 내리막이니 3시간 정도면 될 것 같다.

내려 오다보니 무릎이 욱신거리고 사타구니 양쪽이 아프다. 사타구니를 만져도 엄밀히 그곳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런가 싶더만 몇 년간 줄곳 쿠션이 있는 운동화를 신고 다니다가 이번에 밑창이 그냥 고무 한 장인 아쿠아 뭐라는, 집에서 슬리퍼로 신던 신발을 신고 와서 뒷꿈치와 발끝으로 전해오는 충격이 무릎과, 넙적다리와 골반을 연결하는 부위로 직접 가해져서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거 안 좋은데? 타이레놀을 한 알 삼켰다. 내리막이니 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한가하게 천천히 내려왔다. 골반, 무릎이 쑤셔서 무리하게 발가락에 힘을 주고 걸어서 이번에는 정강이에 알이 배겼다. 잘 한다. 내 정강이는 왠간한 여자들의 것보다 미끈하게 잘 빠졌다니 관리 잘 해야지.

기압이 1000헥토 파스칼로 정상 회복되었고 곧 비도 멎을 것 같다. 정상 부근에서 불어대는 바람 때문에 배낭 커버가 살짝 벗겨지면서 그 사이로 빗물이 비집고 들어와 배낭에 넣었던 여분의 티셔츠가 흠뻑 물에 젖었다. 다행히 pda는 젖지 않았다. repligo를 깔아서 제주 정보를 넣어 둔 것이다.

두 시간 쯤 걸려 2/3를 내려왔다. 비가 멎었다. 잠시 쉬면서 신발의 물기를 닦아내고 두번째 휴식을 취하면서 남은 초콜렛 바를 먹으며 10분쯤 쉬었다. 까마귀가 까악까악 울어댄다. 까마귀들은 조류 중에 유난히 머리가 좋아서(그래봤자 새대가리지만) 데리고 놀기 딱인데 사람 손을 많이 탔는지 초코바를 조금씩 뜯어서 뿌려 두었는데도 관심을 안 보인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갈 때마다 울창한 숲속에서 쏴아 쏴아 파도치는 소리가 들린다. 분위기 좋다.


산수국. 토질의 산성도에 따라 색깔이 바뀐다. 분홍색, 흰색, 또는 푸른색으로.


산수국. 겉의 네 잎 달린 것은 헛꽃(무성화). 내심 한라산의 꽃과 나무에 기대를 걸고 올라왔지만 본 것이 몇 안 된다.


건천은 건천답게, 이날 내린 비가 33mm 가량이나 되는데도 비가 그치지 마자 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건천 주위에 널린 화성암, 퇴적암 등에는 침식 등 기계적 풍화작용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하류 부근에서는 깎인 바위의 침적에 의해 얕은 물이 고인 물 웅덩이가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공질의 화성암 사이로 스며든 그 방대한 양의 물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깊은 지하로 스며들어 해안가의 용천에서 솟아나온다? 그렇기도 하고, 수퍼에서 '제주 삼다수'로 잘 팔린다. 마시자, 제주 삼다수!

이리저리 미끄러지면서 딱 6시간 걸려 등산을 마쳤다. 비가 안 오면 5시간대에 주파할 수 있을 것 같다. 골반이 쑤셔서 관음사 휴게소로 어기적 어기적 기어 나왔다. 장소가 썰렁한 것이 버스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관리인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여기서 오른쪽으로 4km쯤 걸어 나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단다.

길가에 주저앉아 짐을 풀고 옷가지들을 말리며 담배 한 대 빨았다. 바람이 많이 불어 옷가지는 금방 마를 것 같다. 젖은 옷가지를 배낭에 매달았다. 그리고 슬슬 걸었다. 아침 6시부터 일어나서 돌아다녔더니 녹초가 되었다. 걸어가려니 힘들다. 앞은 목장인지 말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어 먹고 있다.


얼마나 열심히 뜯어 먹었는지 신록의 계절인데도 땅바닥에 녹색이 안 보인다. 그 뒤로 초속 12m/sec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먹구름'떼'.

히치가 된다. 사람 태우면 해꼬지 한다고 히치하이킹을 안 해주는 각박한 인심이 없는 곳이 강원도와 제주도다. 처음 제주도 여행 할 때 절반을 히치로 다녔다. 역시 좋은 곳이야.

아줌마는 주말이면 관음사 코스로 한라산을 자주 오르는데 오늘은 비바람이 심해서 중간에 포기했단다. 오늘, 내일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분단다. 공교롭게도 내심 내가 불만스럽게 생각하던 것, 관광객들이 아이들 데리고 한라산 오르는 것을 성토한다. 아줌마 말에 따르면 성판악-정상-관음사 코스가 보통 10시간 걸리는데 애들을 그런데 데리고 다니면 제주도에 무슨 좋은 인상이며 추억이 남겠냐는 것이다. 그러더니 버스 정류장에 안 세워주고(그곳은 버스가 자주 없다면서) 목석원 앞에 세워 주면서 이왕 제주도에 왔으니 다만 목석원이라도 구경하고 가라신다. 아, 정말 고마워요.


목석원. '갑돌이의 인생'이 있다.



기괴한 형상의 말라 비틀어진 나무와 바위를 전시하는 곳.


아이를 안은 천사같은 엄마


목석원의 여러 전시물에 제목을 단 사람은 SF적인 센스는 전혀 없었다. 한눈에 봐도 전시물 대개가 SF&F로 완벽하게 번역되는데.


이 바위는 일러스트로 본 적이 있는 형상이다. 용암이 식으면서 겉 표면과 속의 식는 속도가 달라 밀도차가 생겨 연필심 모양으로 속이 빈 바위가 화산지대에 생긴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목석원 구경을 끝내고(입장료 2000원) 길가에 앉아 옷을 말리다가 시내 버스가 와서 탔다. 자리에 앉아 pda를 꺼내 주린 배를 채울만한 곳을 찾았다. 일단 그 유명한 도라지 식당에 가보기로 하고 시청 앞에서 내렸다.

시청 앞 작은 광장에서 관중이 모여 노래를 듣고 있다. 잠깐 벤치에 앉아 보다가 식당을 찾아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헤메다가 찾아가니 오늘은 영업을 안한다. 온몸이 삐꺽인다. 17시. 해는 세 시간 후에 지니까 식사를 마치고 해변가의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하고 숙소를 찾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만 몸이 노곤하니 만사가 귀찮다. 택시를 타고 신제주 시가지로 향했다(3700원). 두번째 후보로 삼았던 '용꿈돼지꿈' 식당은 엄청 푸짐하다는 한정식 집이다. 혼자라서 곤란하다기에 몹시 안타까웠지만 지친 다리를 끌고 인근의 '청해원'으로 걸어갔다.


지친다...

자리물회를 시킬까 하다가 술안주로는 안 어울려 보여 한치물회를 시켰다. 밑반찬이 나오는데 생선젓도 맛있고 수북히 담아오는 간장게장을 안주삼아 반 병을 비웠다. 게장이 좀 달긴 하지만 이건 거의 한끼 먹을 분량을 주니 허겁지겁 먹을 밖에. 한치물회를 안주 삼아 소주 한 병을 순식간에 비우고 해물 뚝배기를 달라니까 종업원이 눈이 동그래서 쳐다본다. 아침부터 굶었어요. 말투가 조선족 아줌마 같다. 종업원이 조선족 아줌마나 아가씨면 왠지 기분이 좋다. 조개와 오분자기, 성게, 게 따위가 수북하게 들은 해물 뚝배기를 다 먹으니 배가 터질 것 같다. 한치물회 6000원, 해물뚝배기 8000원, 소주 한 병 3000원. 혼자온 탓에 옥돔, 고등어, 갈치 따위를 못 먹는 것이 좀 아쉽긴 하다.

느적느적 걸으며 숙소로 찍은 밸리스 불가마로 향했다. 도착하니 8시, 7000원 짜리 표를 끊고 사우나에 푹 잠겨 딱딱해진 근육을 물렁하게 풀었다. 냉탕에 머리를 박았다. 지나치게 근육을 풀어 온 몸이 흐늘흐늘해졌다. 빈둥거리며 pda에 담아온 시리즈물 비디오를 보다가 미역국 한 그릇 먹고 아이스크림 따위를 사 먹고 두 시까지 pda 비디오를 보다가 땅굴에 기어 들어가 잠들었다.

밸리즈 불가마가 한국에서 1등 먹은 곳이라는데 시설이 과연 훌륭하다. 놀이방, 아이스방, 헬스 시설, 노래방 등등, 특히 벽면을 보면 엄청난 돈을 들인 것 같다. 그렇지만 특별히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사우나만 놓고 보자면 살고 있는 동네의 수양탕 만한 곳은 찾기 힘들었다. 온탕에 몸을 담그고 tv를 보거나 폭포수에 편안히 몸을 식히는 것이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이벤트 탕' 따위 여러 개 두는 것보다는 다 년간 사용자의 편의를 도모한 UI면에서 실용적이고 충실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수양탕의 TV는 몇몇 사우나에서 드물게 본 적이 있지만 수양탕의 폭포수 냉탕에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 있다. 위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와 함께 사타구니 사이로 강력하게 뿜어 올라오는 두 개의 냉류, 회음부를 그 냉류에 맡기고 허벅지 사이를 부르르 떨다보면 온갖 근심걱정이 사라진다 -- 그것이야말로 장기간 목욕탕을 경영하여 소비자의 니즈를 철저히 분석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노하우인 것이다.

8시 기상. 자던 땅굴에서 어기적 어기적 기어나왔다. 온 몸이 뻐근하다. 사우나 몇 번 들락거리며 땀을 뺐다. 어제, 오늘 합쳐 600g 감량. 내 몸은 제주도의 건천처럼 금새 말라버려, 어제 그처럼 배불리 먹었건만 아직도 배가 고프다. 인근의, 유명하다는 유리네 식당을 찾아갔다. 성게 미역국을 시켜 먹었다. 명성에 비해서 맛은 별로 였다. 벽면에는 온갖 유명한 사람들의 사인이 붙어 있다. 어젯밤에도 그랬지만 제주에서 미역국 먹는 것은 바보짓인 것 같다. 그냥 갈치국이나 시켜먹을껄 -_- 밑반찬은 훌륭했지만 아무리 성게가 들어갔다고 해도 미역국이 8000원이나 하는 것은 좀 그랬다.

엇. 밥 먹다가 생각났다. 불가마에서 나눠준 옷에서 어젯밤 이것 저것 사먹고 남은 돈 4000원을 빼놓지 않았다. 자신의 실책을 갈구고 채찍질한다는 의미에서, 택시비를 날렸으니 공항까지 걸어가자. 일단 온 몸이 뻑적지근하고 심난하니 담배 한 대 빨고.

담배 사러 수퍼 들어갔더니 아줌마가 날더러 대학생...이죠? 라고 묻는다. 울컥 하고 속에서 북받쳐 올랐다. 민증 보여드려요? 서른을 넘긴 지가 몇 년 전인데, 아무리 간만에 사우나에서 때 빼고 광을 냈지만 그건 좀 심한거다. 그런데 두 번째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담배를 내주면서, 담배값이 얼마지 학생? 하고 묻는다. 내가 고삐리처럼 보일 수도 있단 말인가... -_-

제주 시내에는 가히 돌풍이 몰아쳤지만, 목덜미로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푄 현상인 것 같다. 이런 바람이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난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걸어 가면서 내내 그 생각을 했다; 변변한 게스트하우스가 드믄 실정에서 7~8달러의 저렴한 가격에 각종 레저,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불가마가 있기에 비로서 한국에서 배낭여행이 할만한 것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달리 말해 한국에서 게스트 하우스는 불가마라는 강력한 라이벌을 만난 것이다. 외국인들이 이 중요한 사실을 알기나 할까? 한국에는 전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럭셔리한 도미토리에서 7~8달라에 묵을 수 있다는 것을.


제주공항에 거의 도착. 언제 그렇게 비바람이 몰아쳤나 싶다.


땅에 떨어진 이게 뭘까. 설마, 감귤?

저기압 탓인지 엄청난 측풍 때문인지 롤러 코스트처럼 덜컹대는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만에 서울에 도착. 비행기 타면서 추락을 걱정해 본 것은 참 오랫만이다. 비행기를 타면 언제나 보게 되는 도우미의 착륙시 비상 행동 요령 율동이나 안내 책자는 감성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2만 피트 상공에서 비행기가 지상에 추락하면 뼈도 못 추리는 것이야 당연하고, 마치 바다에 떨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구명의 착용 요령을 가르쳐 주는데, 시속 500 마일로 날아가는 수백톤 짜리 비행체가 2만피트 상공에서 바다로 추락하면 지상에서와 동일한 효과가 난다. 비행기에서 엔진 2기가 모두 꺼지면 그냥 무거운 쇳덩이가 되는 것이다. 2층 창문에서 떨어진 화분처럼 와장창. 살기를 바라는 것이 럭셔리한 착각이지.

서울에 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쩔은 옷들은 벗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한라산의 간략한 정보 정리

여행 일정: 1박 2일
경비 내역: 총 56200원 (하루 평균 28100원)

* 항공권 - 마일리지로.
* 숙박 - 불가마 7000
* 식비 - 3끼(한치물회 6000, 해물뚝배기 8000, 소주 3000, 미역국 4000, 성게미역국 8000) = 29000
* 간식 - 컵라면 1600, 아이스크림x2 2000, 쵸코바x3 1500, 샌드위치 1400 = 6500
* 교통비 - 시내버스x2 1700, 시외버스 1700, 택시 3700 = 7100
* 기타 - 우의 3000, 한라산 입장료 1600, 목석원 입장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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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행 (12/31 ~ 1/1)
6:10pm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가 버스 시간에 맞춰 동서울 터미널로 향했다. 일단 털모자를 6000원 주고 샀다. 기차표는 구할 수 없었고, 차표 예약을 같이 가겠다던 동료에게 맡겨두고 수일간 술독에 빠져 있었다. 30일 밤에 거하게 술을 퍼먹었다. 3차까지 갔다. 용케 일어났다. 언젠가는 술 안 퍼먹고 산에 갈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많이 좋아진 것 아닌가? 이제는 구둣발로 잠바떼기 하나 걸치고 술냄새 풀풀 풍기며 허우적 거리며 올라가지는 않으니까.

하루종일 굶었기 때문에 간단히 김밥과 군것질거리를 사들고 버스에 올랐다. 최근 한달 반 이상을 줄곳 한끼만 먹고 나머지는 술을 먹던가 라면을 먹어 체중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았다. 머리가 대단히 맑아서 새벽에 늦게 잤다. 심심해서 카메라에 지하철 풍경을 담았다.





6:30pm 출발, 11:30 태백시에 도착. 간만에 다시 와본다. 전에는 태백산이 놀고 있던 나를 불러서 갔지만 이번에는 안 불러도 알아서 왔다. 전에는 왜 태백산이 날 불렀다고 생각했을까? 그땐 기가 허해서였을 것이다. 영빨이 부족했던 시기였다. 그때는문수봉의 돌더미 속에서 마녀들이 쭈그리고 앉아 젯밥을 나눠먹고 있었다. 영기충전.

그다지 춥지는 않았으나 한잠 자고 출발하는 것이 낫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여관에서 자빠져 자기에는 시간이 아깝고 돈도 아까웠다. 태백 기차역 2층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TV로 들었다. 퀵사리 난 한국 경제 마냥 종소리도 퀵사리가 나서 뎅~ 하고 점잖고 은은하게 울려야 할 것이 띵 하고 울렸다. 산 사람의 피를 뽑아 이글거리는 쇳물에 섞으면 혹시 소리가 맑아질까?

기차역 대합실에 있다가 지루해서 담배 피우러 나갔다. 차갑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니 맛이 예사롭지 않다. 불순물이 별로 함유되지 않은 맑은 산소인 탓에 담배의 연소상태가 좋아서인 듯 하다. 담배를 피우는 와중에 옆에 있던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태안반도에서 통발어선을 타고 고기 잡다가 심심해서 태백에 놀러왔다고 한다. 산에 올라가 해뜨는 꼴을 구경하고 싶다길래 그의 복장을 훌터보았다. 부실한 옷차림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녔다. 그렇게 가면 얼어죽어요.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인다.

TV에서 10대 가수상인지 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상당수가 모르는 가수들이었다. '핑클'의 옥씨 성을 가진 아가씨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고 윙크하면 그 그룹의 팬들이 500명씩 떨어져 나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럴듯 하다.

달리 시간 때울 방법이 마땅치 않다. 게임방에 들어가 시간을 죽였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니 12/31 태백산에 올라가 해돋이 구경하는 사람들이 엄청나다고 말한다. 해돋이? 해 뜨는 거 처음 보나? 그 인간들 때문에 줄줄이 줄서서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매우 끔찍하여, 게다가 마침 게임방에 앉아 죽치고 있는 것도 지루해서 예정보다 일찍 오르기로 했다. 2:10am, 동료는 겨울산행도 처음이라 아이젠이나 랜턴을 안 가져왔다. 준비가 부실한 상태여서 걱정이었으나 2:50am 쯤 택시 타고 매표소에 도착해 보니 등산 장비 파는 가게에 불이 켜져 있어 아이젠을 샀다.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것이 심상치 않아 발걸음을 서둘렀다. 동료는 15분쯤 오르막길을 올라가다가 숨을 헉헉대며 왜 이렇게 옷을 두껍게 입고 오라고 했냐며 내 탓을 하더니 훌훌 옷을 벗어 던졌다. 말리지 않았다. 올라가면서 계속 궁시렁거리길래 내버려두고 가던가, 밀어서 계곡 밑으로 데굴데굴 굴릴까 궁리했지만 별빛이 매우 아름다웠다. 헤드램프의 전지가 닳아 전지 갈아끼우느라 애 먹었다. 랜턴을 이빨로 깨문 채 맛이 간 전구를 갈아 끼웠다. 잠깐 앉아 있었지만 그새 엉덩이가 시렸다.

사람들이 잘 안올라갈듯한 길로 올라갔다. 유일사를 빙 둘러 휴게소 부근에 도착하여 잠시 쉬었다. 우리 보다 늦게 출발한 사람들이 먼저 와서 라면을 먹으며 왜 이리 늦었냐고 물었다. 매표소에서 그곳까지 30분 거리인데 동료 때문에 열 번은 더 쉬었다. 플래시를 안 가져와 헤드램프를 빌려주고 앞장세웠다. 그는 죽어라고 궁시렁거렸다. 아마 내가 즐거운 산행이 되도록 힘써주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세상에... 눈이 별로 안 와서 발목이 빠지지 않아 좋고 등산 코스가 완만해 개나 소나 오를 수 있음에도, 앞장 세우니 길을 못찾아 우왕좌왕하기 일쑤였다.

장군봉에서 몇몇 사람들이 별 말 없이 모여 물을 끓이고 앉아서 개기고 있었다. 동료는 옷을 꾸역꾸역 겹쳐 입기 시작했다.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발가락이 굳고 손가락이 저리고 뺨이 뻣뻣해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지만 오늘은 그래도 날씨가 따뜻한 편이라 쾌적하다. 작년 소백산에서는 칼바람 때문에 얼어죽을 것 같았다.

천제단에 다다랐다. 정상은 평탄하고 널찍했다. 검은 밤하늘에 총총이 떠오른 별을 배경으로 거무스레한 전신을 드러낸 제단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저절로 신심이 우러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소주 한 잔 붓고 절이라도 올릴까 했지만 참았다. 절 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바이저를 꺼내 별자리를 맞춰 보았다. 제단은 북극성을 향해 놓여 있었다. 이번에 그걸 꼭 확인해보고 싶었다. '제단은 과연 북극성을 향해 있는가?' 신위로 보이는 돌 비석의 바로 머리 위에 북극성이 찬란하게 빛나고, 그 주위를 북두칠성을 비롯한 별자리들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별똥별이 산발적으로 떨어졌다. 가만히 서서 별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한 시간 내내 구경했다. 아름다웠다.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별빛은 천연덕스럽게 반짝이고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주책없이 떨고 있었다.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동료는 무감동했다.

6:00am, 바이저로 확인해보니 앞으로 1시간 40분 후면 해가 뜬다. 그래서 이왕 올라온 김에 기다려보기로 했다. 바람이 심해서 금방 말수가 적어졌다. 산막이 없는 탓에 사람들이 제단 안에 모여 발을 구르고 있었다. 음산하게 촛불이 켜져 있고 찬바람에 입이 얼어붙어 말수가 적어진 사람들이 박자 맞추듯 발을 구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비밀 사교 집단의 의식에 참가한 기분이 들었다. 야호! 라고 누군가 제단 바깥쪽에서 소리쳤다. 주위 사람들이 궁시렁거렸다. 야호 하면 총맞을 것 같은 분위기 였다. 제단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심지어 세 시간째 바들바들 떨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야호? 놀고 있네. 라고 심히 회의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북두칠성이 꽤 회전했다. 어림잡아보니 1시간 반쯤 흐른 것 같다. 별자리의 운행을 보고 이제는 대충 시간을 어림잡을 수 있었다. 부단한 연습의 결과다. 동녁이 밝아오면서 어슴프레하게 산 사이를 휘감아도는 운무를 볼 수 있었다. 서서히 해가 뜨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대략 300여명 정도의 사람이 모여 웅성이고 있었다. 이건 아니다, 판단하고 해돋이 관람은 때려 치우고 서둘러 내려 가려던 참에 갑자기 사람들이 소리쳤다. 해가 뜬다! 해가 뜨기 시작했다.

신세기 해돋이
2001/1/1 6:00am, pure dark
2001/1/1 6:39am, some light appears at the horizon
2001/1/1 6:41am
2001/1/1 6:49am
2001/1/1 6:51am
2001/1/1 7:11am
>
2001/1/1 7:11am, crowd
2001/1/1 7:34:05
2001/1/1 7:34:11
2001/1/1 7:34:32
2001/1/1 7:34:40
2001/1/1 7:34:52
2001/1/1 7:35:02
2001/1/1 7:35:12
2001/1/1 7:36am
2001/1/1 7:37am
해가 떠오르는 동안 동료가 준비해온 술을 병째 들고 마셨다. 선운사 복분자주? 하여튼 해 뜨는 거 보면서 술 마시는 기분이 죽여줬다. 술은 차갑게 냉각되어 목구멍으로 시원하게 흘러 들어갔다. 조금 알딸딸해졌다. 카메라에 광선의 흔적이 뚜렷이 보였다. 싸구려 디지탈 카메라치고는 괜찮았다. LCD는 추위 때문에 자동으로 셧 다운 되었다. 핸드폰의 액정은 맛이 간 상태였다. 다행히 바이저는 품안에 갈무리해 둔 탓에 액정이 맛이 가지 않았지만, 추위에 노출되면 맛이 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몇몇 사람들의 카메라가 맛이 가서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럴 줄 알고 손목시계를 가져온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건 추워도 맛이 가지 않았다.

북적대던 사람들이 북치고 장구치면서 올해 소원을 빌고 있는 동안 재빨리 천제단을 벗어나 능선을 타고 달아나듯이 걸었다. 입이 얼어붙은 동료는 물을 못 먹어 메가리가 없었고 기운이 다 빠졌는지 게속 뒤쳐졌다. 천제단 밑의 용정에 잠깐 들러 약숫물이라도 마시고 가자니까 그냥 가자고 손짓했다. 그의 걸음걸이에 기복이 심했다. 지친듯 하다.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늦추다보니 아까 북치고 장구치던 패거리들이 우리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동료에게 간단한 산행 예절을 가르쳐 주었다.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수고 하십니다' 라고 인사할 것. 올라오는 사람이 보이면 잠시 멈춰서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대기할 것. 쓰레기 버리지 말 것. 그는 예절을 지켰지만 올라오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추월하는 자들도 그렇게 하지 않자 내게 왜 저러냐고 물었다. 싸가지가 없어서 그렇다고 대꾸했다. 아침 햇살에 산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눈이 오지 않아 눈꽃은 구경하지 못했다.

2001/1/1 7:28am, 백두대간
2001/1/1 7:30am 태백산의 서쪽 능선
* 포토샵으로 두 장의 그림을 약간 손봤다. 디지탈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평면적이라는 말을 했다. 그런 말은 믿을 수 없다. 사진이 약간 손상되었지만 미드톤을 조절해 심도를 어느 정도 주고 파노라마처럼 보이도록 사진의 하늘 부분을 조금 잘랐다. 워낙 카메라가 후져서 이 정도 나온 것만 해도 감지덕지.

문수봉에 다다랐을 때, 동료는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아울러 산을 잘 탄다느니 하는 말이 모두 개뻥이었음을 고백했다. 줄곳 내리막길이라 그를 안심시켰다. 왜 거짓말을 했을까? 산행을 재미있어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해가 안 간다. 산행할 때 길 한번 잘못 들어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다. 추운 날에는 핸드폰도 안 터진다. 질질 끌고 내려오다가 껴안고 얼어붙은 사이좋은 시체들이 되는 수도 있다.

선글래스를 꼈다. 햇빛이 눈에 따가웠다. 태양은 저만치 떠올라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사진 한장 찍었다. 눈이 내리면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말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내게 말레이지아의 풀라우 레당 섬의 풍경을 email로 보내 주었다. 그곳을 '천국'이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 여름에 과연 그곳에 갈 수 있을까? 어떻게든 가는 방향으로 해봐야지.

2001/1/1 9:10am, 자작나무 숲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당골 근처에 다다른 것 같다. 엉덩이를 깔고 눈썰매를 타면서 내려오고 싶었지만 아까 추월 당하느라 앞에 사람들이 많아 소원성취 제대로 못했다. 남대문 시장에서 5000원 주고 산 땀복은 값비싼 윈드 실드보다 훨씬 나았다. 바람을 완벽하게 차단해 주었다. 게다가 그런 값비싼 옷을 입고 있으면 땅바닥에 주저앉아 눈 썰매 타는 짓은 꿈도 못꿀 것이다. 저번에 산 오버 트라우저에 구멍이 났을 때 얼마나 돈이 아까웠던가.

2001/1/1 9:30am, 당골 무당

무당 둘이 나무 아래서 제를 올리고 있었다. 징을 칠 때마다 까마귀가 까악까악 울어댔다. 까마귀 보는 재미가 이만 저만한 게 아니다. 저 산까마귀들은 누구의 시체를 뜯어먹고 영악하게 빨간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게 되었을까? 혹시 태백산에는 티벳에서처럼 죽은 시체를 갈아 콘돌에게 던져주는 남모를 풍습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당골 입구에서 태백시가 제공하는 감자를 장작불에 던져 넣고 눈에 연기가 들어가 눈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구워 먹었다. 그동안 동료는 넋이 나가 피곤에 지쳐 멍한 표정을 지은 채 근처에서 우두커니 서성이고 있었다. '걱정말라구. 다음엔 안 데려올꺼야 친구. 하하하!' 라고 말하며 어깨를 다독여 주고 싶었다. 산길을 걸은 거라고는 고작 5시간 남짓이고 한 두 시간쯤 추위에 바들바들 떨긴 했지만 그래도 힘든 산행은 아니었다. 태백산 만큼 오르기 쉬운 산도 드물다. 게다가 예년과 달리 올해는 포근하다. 눈이 안 와서 다소 아쉬웠다. 12/23 무렵 한번 떨어진 눈이 녹지 않고 남아있을 뿐.

이것저것 구경도 못해보고 바로 시내로 돌아왔다. 시내는 썰렁하기 이를데 없었다. 문을 연 식당이 눈에 띄지 않아 시내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헤멨다. 그러다가 어젯밤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던 어부를 다시 만났다. 산행은 포기하고 술을 마셨단다. 그러다가 그라면 어쩐지 해낼 수 있을 꺼란 생각이 들었다. 단지 일출 보려고 구두짝을 질질 끌고 올라가던 친구들을 도중에 몇 만나기도 했다. 그들은 전날 밤 먹은 술이 덜 깨 입가에서 술냄새를 풍기면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문수봉을 향하고 있었다. 그건 과거의 내 모습이었다.

간신히 밥집을 찾아 고기를 시켰다. 태백에서 사육한 소들은 모기에 물리지 않아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적혀 있었다. 그렇게 이것저것 필요한 내용을 메모한 쪽지를 집에 남겨두고 왔다. 게다가 전기로 도살하지 않고 고전적인 방법, 즉, 도끼로 죽이기 때문에 육질이 부드럽고 쫄깃쫄깃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지만 고기맛은 그저 그랬고 값이 비쌌다. 차라리 시원한 라면 국물에 밥 말아먹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밥먹고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어젯밤에 일찍 도착해 태백역 대합실에서 죽치고 있던 친구는 우리와 다른 코스로 내려온 듯 싶다. 나도 문수봉을 지나 당골에 다다르는 코스 말고 그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동료가 파김치가 되어 참았다. 산행을 마친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곤에 지쳤는지 금새 잠들었다. 차가 밀려 2시간쯤 더 가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선잠이 들었다가 깨었다가 하기를 반복했다. 머리가 맑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하자, 가로등불 사이로 마침 짓눈깨비가 날리고 있었다. 간단히 요기하고 헤어진 후 집으로 돌아왔다.

2001/1/1 8:51pm, 신촌 집 근처

경비: 15400*2(왕복차비), 12000(태백역->유일사 입구 택시비), 30000(식비 및 기타). 합계: 7만원 정도? 지출이 많아서 어이가 없다. 새벽에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택시를 탄 것이 실수였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음식을 싸갖고 다녀야겠다. 겨울 산행에서 보온병과 물통을 가져가지 않은 것도 실수였다. 다음번 겨울 산행에는 각반을 반드시 가져갈 것.

코스: 유일사 매표소->장군봉->천제단->문수봉->당골 (4시간 가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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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일주 자전거 하이킹

'아름다운 폭풍의 계절, 관광은 관광객에게 맡기고 자전거에 몸을 실은 채 씨원한 바람 맞으며 제주도 해안을 돌자' 라는 생각으로 제주 자전거 하이킹을 생각했다. 씨원한 비바람, 죽도록 맞았다. 아드레날린이 솓구치던 나날들이었다. 9/13~9/16 사이의 공교로운 제주 여행기는 어떤 야한 싸이트에서 제주 하이킹 사이트를 소개한 것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http://www.chejuhiking.co.kr

김훈이 지은 에세이집, '자전거 여행'의 소갯말에 이런 것이 적혀 있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빈곤하고 보잘 것 없는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후, 두말 않고 그 책을 샀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모금 주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대목이다.

9/13 12:00

아침부터 비가 올 기색이었다. 전날밤엔 부러 술을 자제했다. 술이 들어가면 근육이 뻑뻑해서 잘 움직이지 않으니까. 아침에 깨어났을 때 짐을 챙겼다. 여벌의 티셔츠, 반바지 각각 한 벌, 침낭 하나, 알콜 램프, 칼, 룽기, 모자 하나, 수건 하나, 칫솔, 치약, 비누, 오버 트라우저 한 벌, 비상식량으로 쵸코바 두 개, 혹시나 해서 판초우의, 그정도였다. 그런데도 짐이 무거웠다.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 사먹고 램프에 넣을 알코올을 사러 돌아 다녔지만 구할 수 없었다. 늦기 전에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탔다. 칼기보다 스튜어디스가 예쁘고 비행기가 깨끗하다는 이유로 만원 더 주고 산 아시아나 항공권을 잘 샀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우유도, 맥주도 없었고 고작 캔디 하나를 더 줬다. 팜 파일럿을 꺼내들고 소설을 읽었다. 5400m까지 올라가자 우중충한 지상과는 달리 솜덩이같은 구름 위로 밝은 해와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9/13 16:00

제주항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열대 수목의 허리가 휘어졌다.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내게 제주도는 그닥 이국적인 곳이 아니었다. 모자를 쓰고 오버 트라우저를 걸쳤다. 그리고 자전거 가게에 전화했다. 텐트와 자전거를 빌리고 싶다고 하니 공항까지 픽업하러 나와주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공항 내의 관광센터에서 렌트카 회사에서 만든 듯한 관광지도를 한 장 가져오고 담배 한 대 피우며 여정을 짚어 보았다.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태풍 사오마이는 아마도 오끼나와를 거쳐 동해안 쪽으로 빠질 것이다.

2000/9/16 태풍 사오마이는 동해안을 거쳐 빠져 나갔다. 그 빌어먹을 것이 여행 내내 나를 괴롭혔다.

픽업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현금지급기에서 10만원을 뽑아 주머니에 구겨 넣어두었다. 봉고가 왔고 자전거 가게로 안내해 주었다. 타고 갈 자전거를 점검했다. 자전거를 타 본 지도 벌써 6개월이 넘었다. 작년 여름에 자전거를 타고 이국을 돌아다닌 기억이 얼핏 머리속을 스쳤다.

마침 일정을 다 마친듯한 두 사람이 비닐로 된 비옷을 걸치고 가게로 돌아오고 있었다. 다 돌았어요? 라고 물으니 부끄러운 듯이 성산에서 하이킹을 포기하고 버스 타고 돌아왔단다. 비바람 때문인 듯 싶었다. 자전거 가게 주인 아저씨는 추석이 끝나고 10월 초 무렵까지 비수기라고 말했다. 비수기라니까 괜히 기분이 좋았다. 배낭 커버로 배낭을 싸고 텐트를 달라고 하니 이런 날씨에 야영은 불가능하다고 말렸다. 그래도 달라고 우겼다. 아줌마는 텐트값을 받지 않았다. 텐트를 칠 일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주인 아저씨는 몇 번이나 괜찮겠냐고 물었다. 태풍 때문에 완주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힘들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하라고, 그럼 데리러 가겠다고 말했다. 전화할 생각은 없었다. 태풍은 내일쯤 남쪽을 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다섯 시, 가게를 나오면서 다짐하듯이 인사했다; 완주하고 오겠습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바람을 등지고 순조롭게 출발했다. 추석 연휴 때문인지 거리는 한산했다. 시내를 빠져 나와 공항을 끼고 돌아 해안도로로 접어들었다. 마침 착륙하는 비행기가 머리 위를 날아갔다. 비가 몹시 내렸지만 바다를 끼고 달리는 해안도로는 풍광이 볼만했다. 간간이 어디로 갈지 길에서 우왕좌왕하며 무작정 헤메는 신혼부부의 렌트카가 보였다.

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어촌을 따라 좁은 골목길로 나다녔다. 길이 아주 쉬워서 해안을 끼고 돌다가 내륙 쪽으로 돌아서면 제주 일주도로인 12번 국도가 나타나고는 했다. 여행 내내 12번 국도를 타고 다니게 될 것이다.

비는 멈출 기색이 없이 줄곳 내렸고 바람도 자꾸 거세졌다. 태풍인가? 길다란 오르막길을 올라 갑작스럽게 나타난 가파른 내리막 경사길에서 자전거 바퀴가 도로에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중간 쯤에서 왼쪽으로 크게 꺽어지는 도로였다. 바퀴의 휠에 밀착된 브레이크의 고무가 비명을 질렀다. 양쪽 브레이크를 모두 잡았지만 자전거가 미끄러지며 좌우로 요동을 쳤다. 페달을 박차고 펄쩍 뛰었다. 뛰면서 '나는 닭이다' 라고 생각했다. 자전거는 도로의 가이드 펜스에 맞고 핑그르르 돌았고 내 몸뚱이는 닭처럼 땅바닥으로 고꾸라지면서 주욱 밀려나갔다. 몸이 두세바퀴쯤 구르다가 중앙선을 침범했다.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나는 도로의 왼쪽에 와불상처럼 누워있었고 자전거는 오른쪽에 널부러져 있었다. 다행히 지나가는 자동차가 없었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일어서보니 특별히 뼈가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았다.

비 때문에 마침 입고 있었던 방수의가 약간 찢어지고 왼쪽 팔꿈치와 왼쪽 엉치뼈가 도로에 미끄러지면서 긁혔다. 반청바지가 찢어져 구멍이 뚫렸다. 피부가 벗겨진 팔꿈치 상처에서 피가 맺혀 뚝뚝 떨어졌다. 도로변으로 흐르는 빗물에 상처를 씻었다. 상처가 안 아픈 것을 보니 체내의 비상 경보체계가 제대로 동작하고 있다. 도시 생활에 찌든 허약하고 병신같은 몸뚱이지만 아직은 그럭저럭 쓸만한 듯 싶다. 빗줄기 덕택에 휠에 빗물이 묻어 제동이 제대로 안 된 것이다. 자전거를 점검해 보았다. MTB라서 그런지 휠도 휘지 않았고 핸들도 꺽이지 않았다. 기어도 멀쩡했다.

천천히 가자. 해안의 촌락으로 들어서자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태풍이 불어와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충고했다. 해안을 따라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다. 두어번 파도를 뒤집어 쓰니까 방수의도 쓸모가 없었다. 쫄딱 젖었다. 안경에는 바위에 부서진 파도의 포말이 내려앉아 종종 시야가 희뿌옇게 변했다. 안되겠다 싶어서 12번 국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계속 논밭만 나왔다.

날이 일찌감치 저물어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허허벌판의 중심이다. 사방에서 바람이 밀어닥치고 전신주의 전선을 통과하면서 찢어졌다. 허공에 비명 소리가 남았다. 마파람 탓에 페달에 힘을 주어도 자전거가 나가지 않았다. 기를 쓰고 페달을 밟았다. 결국 페달의 플라스틱 발판이 한쪽 방향으로 부러졌다. 바람과 비가 교대로 나를 우롱했다. 첫날부터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쪽에 12번 국도가 보였다. 거리는 50여 미터가 되지 않았지만 포장이 되지 않은 자갈 도로라서 20분 이상이 걸린 것 같다. 이번에는 도로를 따라 제대로 갈 작정이었다. 도로에는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웠고 인가의 불빛마저 보이지 않았다.

저녁 7시,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것은 이쯤 해두고 해수욕장을 찾아 보았다. 예정으로는 그곳 야영장에서 야영 생각이었다. 해수욕장은 불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하고 인적은 보이지 않았다. 파도가 너비 20여 미터 정도 되는 해변 끝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해수욕장 옆의 야영장에는 소나무를 통과하는 바람 소리가 귀곡성처럼 음산하게 들려왔다.

날이 어두워 텐트를 치기가 힘들 것 같아 근처 민박집을 찾아 돌아다녔다. 쉽지 않았다. 무작정 집의 문고리를 두들겨 이집 저집을 전전하다가 간신히 하나 발견하고 들어갔다. 25000원을 달랬다. 비수기니까 15000에 해달라고 말했다. 20000원에 해주겠다고 말했다. 15000원이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비바람에 지쳐 다른 곳을 찾아볼 형편이 아니어서 불안했다. 주인 아줌마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흔쾌히 수락하고 이불을 가져다 주었다.

생각해 보니 하루종일 컵라면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근처 식당들이 모두 문을 닫아 민박집 주인 아줌마에게 물어 수퍼에서 라면과 맥주 한 캔을 사왔다. 아줌마가 식은 밥과 김치를 가져다 주었다. 라면을 이렇게 맛있게 먹어보긴 처음이다.

밥먹고 짐을 정리했다. 오는 길에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로 젖은 옷들은 선풍기 바람에 말렸다. 배낭은 젖지 않아서 다행이다. 자기 전에 파일럿으로 소설을 마저 읽고 잤다.

9/14

눈을 떴다. 사방에서 덜커덕 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문틈으로 바람이 비집고 들어왔다. 커튼을 들춰보니 밖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 기온이 대략 20도 안팎일텐데 바람 때문인지 생각보다 서늘했다. 그나저나 태풍은 거의 지나갔나? 비가 안 오네?

짐을 자전거에 싣고 물병에 수돗물을 채우고 복장을 단단히 여민 채 도로로 나섰다. 제주도에서는 수돗물을 그냥 식수로 사용한다고 어젯밤에 주인 아줌마가 자랑했다. 히죽 웃고 수돗물을 마셨다.

7시 밖에 안되어 지나가는 사람이나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한림공원이라? 공원 따위는 흥미가 없어 들르지 않았다. 어제는 용두암도 그냥 지나쳤다. 배가 고팠지만 뭘 사먹을 만한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해안 도로 곳곳에는 추석 연휴 탓인지 태풍 탓인지, 아니면 비수기라서 그런지 평소라면 쥐치와 한치회를 파는 작은 방갈로같은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아놓았다. 비상식량으로 한두 개 준비해 온 초코바를 꺼내 씹어 먹었다.

간간히 비가 오다 멈추다가 했다. 기온은 그럭저럭 따뜻했지만 바람은 어제보다 심했다. 해안도로랍시고 따라간 도로는 종종 이유없이(?) 끝나기 일쑤였다. 비가 왔지만 자전거를 멈추고 해변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거나 느적느적 늦장을 부렸다. 풍경이 삼삼하다.

어째어째 해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야트막한 산 정상이었다. 산 기슭의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여자가 슬금슬금 기어나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텐트가 있었다. 제주도의 대부분이 화산을 중심으로 한 평야이기 때문에 바람이 머물 곳을 찾지 못해 이래저래 개떼처럼 돌아다녔고, 바람이 마치 고인 것처럼 한 곳에서 머물러 소용돌이 치는 곳을 바람코지라고 불렀던가?

수월봉, 바다 건너편으로 차귀도가 보였다. 해안에서 대략 100-200 미터 거리 밖에 안되어 보였다. 제주도와 그 작은 섬 사이로 큰 파도가 마치 마녀가 사틴 드레스를 펼치고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듯 우르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곳곳의 어촌에는 배가 나가지 않고 있었다. 태풍은 이미 지나가고 그 흔적만 남아 바람이 몰아치는 것은 아닐까?



날이 맑다면 저녁 때 석양을 보기 좋을 것 같다. 비록 70여 미터 밖에 안되는 야트막한 오롬이지만 전망이 좋았다. 내가 바라본 곳은 서쪽이었고, 그리로 해가 질 것이다.

길을 따라 내려와 논밭 사이로 지나갔다. 흙은 검고 작물은 이미 수확했는지 밭에는 이랑질만 되어 있었다. 왠일인지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줄곳 진행해도 구멍가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촌락의 검은 논밭 사이로 구비구비 뻗은 한적한 농로와 촌락의 을씨년스럽게도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골목길을 더듬어가는 짓은 그만두고 다시 12번 국도로 돌아왔다.

도로에는 맞바람이 강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경사가 4- 5도 정도 되는 내리막길에서조차 자전거가 가속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나아가질 않고 뒤로 밀려갔다. 평지에서 가만히 있으면 맞바람 때문에 자전거가 스멀스멀 뒤로 기어갔다. 페달을 밟아야 했다.

오르막길에서 닥친 맞바람은 이중으로 피곤했다. 페달을 밟다가 지치면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갔다. 그것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구름이 매우 빠른 속도로 흘러갔다. 검은 구름이 밀려오면 어김없이 비가 한바탕 쏟아졌다. 구름이 다 지나가면 갑자기 햇빛이 쨍쨍 내리쬐었다. 짐칸에 묶어둔 방수의를 풀어 입었다가 다시 벗어 짐칸에 묶기를 반복했다. 돋아나는 땀 때문에 햇볕 아래에서 방수의를 입고 있기는 힘들었다.

간간히 읍리 정도의 거리가 보였다. 노변에 늘어선 가게들은 강원도 산골의 전형적인 촌락의 단층짜리 건물과 많이 닮아 있었다. 제주도의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개발이 되지 않았던가 주요 산업이 농업과 수산업, 그리고 관광업이 전부인 점도 강원도와 닮았다. 관광산업은 강원도를 극도로 망쳐놓았다. 제주도 인심이 좋다던데, 제주도만 좋을라고. 한국인들은 어디가나 인심이 좋다. 물으면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같이 따라와 주고, 물과 음식을 나누어 준다. 거리에서 사람들을 쳐다보면 마주 쳐다보았다. 그다지 웃음이 없는 편이라 그들에게 표정을 지어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미소를 지었다.

미친년 지랄하는 것 같은 날씨였다. 오르막, 내리막, 어느 경우에나 강한 맞바람, 그래서 다리에 차츰 알이 배기기 시작했다. 바람의 저항이 이다지도 거셀 줄이야... 지쳐 쓰러질 지경이 다 되어서야 문을 연 구멍가게를 발견해 우유와 빵을 각기 두개씩 사서 가게 한켠에 앉아 말 그대로 게걸스럽게 우걱우걱 1분 만에 먹어치웠다. 아줌마에게 물어보았다. 여긴 늘 바람이 이렇게 쎄게 불어요? 아줌마가 태풍 때문이라고 말했다. 태풍은 어떻게 되었죠? 제주도 남쪽 바다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바로 여기군요. 고개를 끄떡였다. 왠지 재수가 없는 것 같았다.

한림에서 중문까지가 가장 힘들다는 코스였다. 대부분 이 코스에서 기진맥진해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타거나 자전거를 대여해 준 가게에 전화해 포기하겠노라고 항복선언을 할까말까 망설이게 되는 코스, 아마도 전날 오랫만에 자전거를 타면서 다리 근육이 뻣뻣하게 굳은 데다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보니 근육이 피로해져 견디기 힘들어진 탓일게다.

면밀히 검토를 거듭해 제주시 서쪽에서 시작해 남쪽의 서귀포를 거쳐 서쪽의 성산 일출봉을 지나 다시 제주시로 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처음 힘들고 나중에는 편하게 가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듣자하니 그 코스면 맞바람 안 맞고 갈 수 있다고도 했다. 12번 도로의 일주거리는 대략 180km 안팍, 해안도로나 이것저것 관광지를 둘러보며 다닌다면 220km 정도, 자동차로는 서너시간이면 돌겠지만 시간당 12km씩 잡아서 자전거로는 18시간 가량 소여된다. 하루에 6시간씩 잡으면 3일 정도의 거리가 되는 셈. 첫날은 한림까지, 둘째날은 중문, 세째날은 성산까지, 네째날은 제주로 돌아오는 일정을 잡아놓았다.

오전 중으로 중문에 도착하면 오후 내내 '해수욕'을 즐기기로 했다. 간간히 반복되는 강한 비바람을 헤치고 정작 중문에 도착하고 보니 중문 관광단지로 이어지는 심상치 않은 내리막길에서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내리막이 이렇게 급하면 올라올 때는 힘든 법, 길을 잘못 들어 하얏트 호텔과 신라 호텔, 롯데 호텔 구경은 신나게 했다. 하얏트 호텔의 직원들에게 해변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 있냐고 물었더니 폐쇄되었다고 한다. 한 친구는 폐쇄되지는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듣자하니 이상해서 그들 말을 무시하고 다시 기어올라갔다.

두세 번쯤 오르락 내리락 하니까 파김치가 되어 중문 관광 단지 입구의 소공원 앞 수퍼에서 우유 하나 사 먹고 오버 트라우저를 맞은 편 벤치에 펼쳐놓고 이쪽 벤치에 누워 헉헉거렸다. 다시 몸을 일으켜보니 샌달과 담배, 파일럿, 오버복 등등이 공원 저쪽으로 낙엽처럼 굴러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바람은 아침부터 오후가 된 지금까지 꾸준히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더 나아가려니 힘들고 날도 더워 여미지 식물원에서 시간을 죽였다. 이런저런 열대 식물들이 있었지만 딱히 흥미를 끄는 식물이라고는 여인초 하나 뿐이었다. 일정한 방향으로 자라기 때문에 여인초가 자라난 잎새의 방향으로 여행자들이 방위를 알 수 있고, 그 잎둥지를 뜯으면 물이 나와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마음에 드는 실용적인 식물이다. 그것 외에는 몇가지 유실수를 제외하고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꽃들은 화려했지만 왠지 씁쓸해 보였다.

어제 비행기를 같이 타고 온 외국인 몇몇이 식물원 아케이드 사이를 떠돌고 있었다. 일본 여자애에게 한국에 놀러 왔냐고 영어로 물으니 어쩔 줄을 몰라했다. 식물원 꼭대기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다지 볼만한 풍광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전형적인 관광지에 이것저것 제주 특유의 자연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 손으로 잡을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바람이 지나갔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내게 길을 물었다. 어디 가나 그곳 현지인처럼 보이는 것도 심심치 않은 경험이다. 되는 대로 가르쳐 주었다. 이쪽, 저쪽, 그쪽, 오던 방향, 가는 방향, 기타 등등. 길도 못찾나? 바로 앞에 관광센터를 앞에 두고도? 귀찮아서겠지.

중문 해수욕장에서 서귀포 시가지로 올라가 민박을 찾아볼까 했지만, 오후 2시, 너무 지쳐서 그냥 그대로 퍼시픽 랜드에서 '돌고래쑈'나 보며 시간을 죽이기로 했다. 한가해 보이는 사람들,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표를 끊고 있었다. 어쩐지 정이 안가는, 나하고는 거리가 먼 관광객들로 보였다.



평상시의 중문 해수욕장

해수욕장으로 내려가보니 집채만한 파도가 해변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도저히 '해수욕'을 즐길 형편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태풍. 아까 들렀던 하얏트 리젠시 호텔이 저 멀리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었다. 해변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태풍 때문에 위험하다고 해수욕장을 폐쇄해 놓은 것 같다. 공짜라는 탈의실, 샤워실도 자물쇠를 채워 놓았다. 샤워할 형편이 안되었다. 그저 식수대에서 얼굴에 물을 묻혔다.

'돌고래쑈'를 다 보고 팔자좋게 빈둥거리고 있는 물개와 펭귄들을 약올려서 길길이 날뛰게 만들고 나니 허기가 져서 이번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해 보자고 식당에 들어갔다. 이틀 동안 라면, 우유, 빵 따위만 먹어서 도저히 힘이 안났다. 텅 빈 식당에서 종업원은 '관광지 가격'이 적힌 메뉴판을 불쑥 내밀었다. 식당에는 한물간 70년대 팝송이 줄기차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쩌다보니 그걸 따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비싼 것은 꿈도 못꾸고 그나마 '해산물(단백질)'이 다수 들어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해물 뚝배기'를 시켰다. '조개밭'이었다. '모래'도 간혹 씹혔다. 밑반찬으로 나온 무의미한 '야채들'은 한켠으로 제껴두고 밥 한 톨,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해치웠다. 머릿속으로는 포도당, 단백질, 탄수화물, 단백질, 그 생각만 했다.

식사가 힘이 되주지 않아 다시 자전거를 몰고 언덕을 올라갈 기운이 없었다. 야영에 대비해 호롱불의 연료를 사려고 '관광지 가격'으로 감귤을 팔고 있는 할마시에게 물어보니 산등성이에 있는 콘도에 가보라고 했다. 산등성이까지 힘겹게 올라가서 물어 보았지만 그런 것은 취급하지 않는단다. 콘도의 옥외 수영장에는 물 한방울 없었고 비수기여서 인지 빨래가 널린 베란다는 셋 정도 밖에 보이지 않았다. 파리를 날리고 있는 관광상품점에 들러 플래시라도 사려고 하니 플래시만 있고 전지가 없었다. 알이 배겨 내치기도 힘든 다리를 끌고 이런저런 가계들을 이 잡듯이 뒤져보았지만 시내로 가야 구할 수 있을 꺼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다리가 몹시 아팠다. 가슴도 아팠다.

짐과 자전거는 야영장에 내팽개쳐두고(누가 훔쳐갈 걱정은 안했다) 물어물어 시내로 향하는 좌석버스를 탔다. 좌석에는 호텔이나 관광단지의 상점 점원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몇몇 올라탔다. 시내에 내리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쫄닥 맞은 채 낚시점을 전전하며 연료를 구해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플래시를 간신히 구해 중문 해수욕장 옆의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오가는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오늘 태풍이 부니까 여기서 야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한 마디씩 마치 녹음기처럼 얘기했지만 묵묵히 텐트를 쳤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어 텐트 치는데만 한 시간 가량 걸렸다. 대부분은 주변에서 무거운 바위를 낑낑 매고 들고와 고이거나 줄을 찾아 다니느라 소비한 시간이다. 스위스제 아미 나이프는 구입한 지 일년이 지났건만 녹 한번 안슬고 생생하게 날이 살아 있어 그나마 흡족했다. 고단한 허리를 들고 야영장을 둘러 보았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야영장에 텐트를 친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간간이 아베크족들이 야영장 근처를 배회하다가 차량점검을 하던가 2-30분쯤 음악을 즐긴 다음 슬며시 떠났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자 주위에서 인적이 완전히 사라졌다.

어젯밤 비탈길에서 넘어진 상처는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오거나 팔꿈치를 굽힐 때마다 상처가 벌어지고 그 사이로 빗물이 스며 들었지만 약을 바르지 않았다. 내버려두면 나을 것이다. 그점에서는 일말의 확신이 있었다.

텐트 바깥의 주차장 옆에 놓인 벤치에 앉아 가로등 밑에서 시내에서 사온 맥주를 꺼내 마시고 알이 베긴 다리를 한 시간쯤 정성껏 주물렀다. 바람은 여전해서 안주가 몇개씩 날아다니고는 했다. 배가 고팠지만 근처에 문을 연 가게는 없었다.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 해변에 나가 다시 소주 한 병 깠다. 파도가 허벅지까지 기어 올라오고 강한 바람 때문에 여러번 휘청거렸다.


올라오는 길에 물개한테 플래시로 눈을 집요하게 비추어 놈이 미쳐 날뛸 때까지 약을 올렸다. 물개는 정말 개처럼 '컹컹'하고 짖었다. 재미있었다.


어제 다친 상처 때문에 평소 왼쪽으로 돌아눕지는 못하고 텐트에 반대로 기대 누웠다. 텐트 안은 완벽하게 어두웠다. 밤이 되자 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냥 비가 아니라 비바람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몰아쳤다. 텐트가 좌우로 흔들리다가 그짓도 식상해졌는지 동서남북으로 흔들렸다. 낌새가 안 좋아 빗줄기를 맞으며 밖으로 나가 텐트에 묶인 줄을 점검하고 다시 한번 조였다.

플래시를 켜놓고 파일럿을 꺼내 소설을 읽었다. 플라네타리움 프로그램으로 확인해 보니 그믐달이다. 사리 때이므로 물이 불어날 것 같다. 플래시를 끄고 텐트에 누웠다. 쉬익, 슈웅, 바다다다, 투둑투둑, 두다다다, 부드득 부드득, 쏴아, 펄러덕, 핑, 태풍의 비바람 속에 놓인 텐트는 별에 별 소리를 다 내며 상하좌우로 카오틱하게 흔들렸다.

새벽 두 시쯤 추워서 잠이 깼다. 소리는 여전했고 포닥포닥 쌔앵 철컥 지이이이 하는 새로운 소리가 추가되었다. 나무 곁에 세워둔 자전거가 자빠져서 바퀴가 헛도는 소리인 듯 싶었다. 파도는 이제 폭음에 가까웠다. 퍼엉, 츄아아아 하는 소리가 4-5초 간격으로 꾸준히 들려왔다. 텐트가 무너질까봐 줄곳 걱정스러웠다. 낮 동안 줄곳 비바람과 싸우느라 알이 베기고 뼈 마디마디 마다 땅의 냉기가 스며들어 쑤시고 결렸지만 다시 잠을 청했다.

9/15

6시쯤 잠에서 깨었다. 텐트 밖으로 비가 내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화장실 옆의 급수장에서 칫솔질을 하고 머리를 감았다. 수건이 비에 젖어 한번 빨고 쥐어 짠 다음 머리를 문댔다. 세수와 멱감기는 적어도 25년 이상 지속되어온 관례적인 행사일 따름이다. 따라서 멱감기가 끝난 머리에 빗물이 떠러져 내려도 신경쓰지 않았다.

망할 놈에 비 때문에 새로 갈아입은 옷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할 것 다하고 텐트를 걷었다. 텐트에 물기가 잔뜩 배어 상당히 무거웠다. 옷가지, 침낭 등이 조금씩은 젖어 있거나 습기로 묵직했다. 비가 계속 오기 때문에 말릴 처지도 안되었다. 밤새 추워서 덮고 잔 룽기는 기특하고 쓸모있는 여행의 컴패니언이었다. 이놈은 수건으로도 쓸 수 있고 샤워타월로도 쓸 수 있고 치마로도 쓸 수 있고 때로는 보따리로도 쓰였다. 지난 새벽에는 이불로 요긴하게 쓰였다.

물개 우리에서 인기척을 느낀 물개가 컹컹 짖어대기 시작했다. 자식 깨어났군. 다가가자 몸을 황망히 비비 꼬으며 우리의 구석으로 피했다. 나랑 놀고 싶다는 뜻이지? 사람들이 오기 전에 녀석을 마지막으로 놀려주었다. 해변의 풍광을 바라 보았다. 어제보다 심하면 심했지 파도와 바람은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었다. 어젯 밤 해변을 걸으며 선명하게 찍어놓은 내 발자국들은 모두 사라졌다. 소나기인가? 태풍은 어떻게 된거지? 해수욕장에 몰아치는 파도는 기세가 여전했다. 오끼나와에 가 있어야 할 태풍이 아직까지 설치고 있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 갔다.

자전거를 몰고 일찌감치 주상절리로 방향을 틀었다. 서귀포에 몇 개 있는 폭포 따위는 이전에도 보았고 지금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다. 주상절리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어쩌면 폭풍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좁은 어귀로 밀려들어온 파도는 갑자기 용솟음쳐서 소나무 꼭대기까지 치달았다가 잦은 포말이 되어 밀어 닥쳤다. 덕택에 전신이 다 젖었다. 아직 관광객들이 얼마 찾아오지 않는 탓인지 사람 때를 별로 안 탔다. 호박엿 파는 양반에게 물어보면 서귀포로 15분은 빨리 갈 수 있는 해안도로를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인지 아무도 없었다. 맞은 편에 컨벤션 센터를 한창 짓고 있었다. 여기도 곧 관광지가 되겠군. 컨벤션 센터 공사현장의 수위 아저씨에게 가는 길을 물었지만 잘 모르는 듯 했다. 주상절리의 입구이기도 한 민속 마을은 내 관심사 밖이고 관광객들이 열심히 봐줄 것이므로 지나쳤다.

평상 시의 주상절리

하아, 한숨 한번 쉬고 빗속을 뚫고 자전거를 몰아 서귀포 시내까지 올라갔다. 다리가 묵직했다. 문득 배가 고파서 식당에 찾아가 '고단백질 영양 만점 선지 해장국'을 시켜먹었다. 3일만에 하는 제대로 된 식사였다. 어쩐지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식사가 끝났을 때, 비가 잠시 그친 하늘 사이로 얼핏 보이는 파란 하늘이 기분 좋았다. 오늘은 의외로 시작부터 기분 좋은 출발이 될 것 같다. 다리는 알이 배겨 있었지만 그럭저럭 나아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30분쯤 지나자 하늘이 어두워지고 다시 그 빌어먹을 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오늘 성산까지 가려면 적어도 4시간 이상은 꾸준히 달려야 하는데... 어제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아니 빗줄기와 바람은 어제보다 더 심했다. 한 시간도 안되어 온 몸이 젖었다. 무시무시한 강풍은 중력의 손아귀에서 빗줄기를 이리저리 끌어당겼다. 빗방울들이 비행하기 시작했다. 거의 5-60도의 각도로 비스듬히 날아온 빗방울의 타격은 마치 쌀알로 피부를 강하게 두들기는 것처럼 따끔따끔 했다. 그것도 익숙해지자 드러난 얼굴, 팔, 다리가 마치 맛사지를 받는 것 같았다. 빗방울이 우박처럼 여겨지는 것은 처음이다. 바람은 적어도 7~10m/s 정도의 속력으로 불어오는 것 같다. 빗방울은 더 이상 '떨어진다'는 상식에 부합되지 않았다.

도로의 낮은 곳에는 간혹 물웅덩이가 형성되어 자전거 중심축까지 푹 잠길 지경이었다. 어젯밤 비로 무거워진 텐트 사이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어 짐들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짐칸에 매어둔 배낭이 젖기 시작했다. 핸드폰은 물에 푹 젖어 동작 불능 상태였다. 파일럿 역시 물기가 스며 들어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담배와 라이터 역시 젖어 이 모든 비바람을 저주한 후 한숨 한번 길게 쉬며 길가에 주저앉아 담배 한 대 피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사실 앉을 형편도 안되었다. 비를 가려줄 처마는 커녕 사방이 뻥 뚫린 길이 훤한 평야로 펼쳐져 있었다. 그러고보니 3일 동안 담배 한 갑을 다 피우지 못했다. 그럴 여유가 없었을 뿐더러 담배를 피우면 입안이 건조해져서 피료 이상으로 수분을 많이 섭취하게 될 터였다. 아침에 채워둔 물병의 반은 이미 먹어치웠다.

다행히 바람은 동서남북 차례대로 불어주었다. 빗줄기가 잦아들 쯤에는 간간히 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튀겨대는 물 때문에 당하는 피해가 심각했다. 브레이크는 지속적으로 생긴 수막 때문에 거의 작동하지 않았고 팬티 속까지 흠뻑 젖어 들었다. 3일 내내 자전거를 탔기 때문인지 똥고 부근(회음부라고 하던가?)이 이래저래 쑤셨고 이쪽에 뭉치고 짓눌린 근육은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나 비 덕택에 다리 근육에서 나는 열이 상당히 잘 식었다. 공냉식에 비하면 냉각효과는 꽤 탁월해서 근육을 피스톤처럼 움직이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게다가 훌륭한 아침 식사 덕택에 몸에서 힘이 났다.

고개를 스무 개쯤 넘었을까? 서서히 숨이 막혀 오면서 머릿속에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머리가 하얘졌다. 그저 기계처럼 막연하게 패달을 밟고 있었다. 강풍이 불어오면 자전거에서 내려 질질 끌고 갔다. 간간히 돌풍에 자빠지기도 했다. 바람에 밀려 오도가도 못하게 되면 바닥에 자전거를 포개고 납작하게 엎드려 가로등을 붙들고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BB탄알처럼 따끔따끔한 빗방울이 안경에 자주 부딛혀 시야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안경을 벗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빗방울이 눈알에 정면으로 맞았을 때를 생각하면 끔찍했다.

바람을 등지고 고갯마루를 달려가다가 가속으로 힘을 받았을 때는 자전거가 잠시 공중에 떴다. '자전거도 나도 닭이다' 라고 생각했다. 철커덩 하고 떨어졌을 때는 소화가 촉진되는 듯 싶었다. 그러고보니 이틀 내내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그저 방귀만 한두번 피식 하고 김새듯이 흘러 나왔다. 음식물은 거의 완전하게 연소된 것이다. 이제 그 동안의 게으른 문명 생활로 축적된 지방이 연소될 차례였다.

브레이크를 쓸 일이 없었다. 제대로 들어먹지 않았고 항력이 매우 쎘다. 어차피 자전거가 빨리 달려봤자 시간당 30km 미만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비바람이 회오리처럼 온몸을 감쌌을 때는 세탁기 속의 빨래가 된 기분이 들었다.

도로공사 중인 곳을 주로 다녔다. 도로는 멀쩡한데 공사중이라고 막아놓은 곳이다. 가끔 보이는 다리 아래로 보이는 건천은 콸콸 거리며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말라있다가 바가 오면 건천이 흐르기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다. 차량 한 대,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공사중인 도로를 빠져 나와 어떤 작은 읍내로 들어갈 무렵 빗줄기가 다소 약해졌다. 긴장이 풀린 순간 그동안 치뤘던 비바람과의 씨름으로 맥이 탁 풀리며 거의 탈진할 지경이었다.

핫 브레이크 두 개는 이미 먹어치웠고 물도 한 방울 남지 않았다. 수퍼에 들어가려고 생각해보니 가게에 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갔다가 나와 다시 복장을 저미는 과정이 귀찮았다.

다시 해안 도로로 접어 들었다. 성산까지는 20여 킬로미터가 남았다. 언제나 목숨을 내놓고 다니는 용감한 낚시꾼들이 휘청거리는 비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갯바위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파도가 무척 거세서 도저히 도로로는 치밀어 오르지 않을 것 같은 파도가 간혹 도로까지 혓바닥을 낼름 거리고 있었다.

해변을 따라 간간이 부대 초소가 보였다. 초소에서 기르는 듯한 강아지가 세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 짖어대기 시작했다. 지친데다가 허탈하고 가소로운 기분이 들어 자전거를 멈추고 노려보았다. 세 놈 다 비를 맞아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다. 코가 발달한 짐승들은 다른 짐승들로부터 공포의 냄새를 맡는다. 상대가 공포를 느끼면 기고만장해서 달려드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개한테 한 번 물린 이후로 개에 대한 두려움을 조직적으로 없앴다. 이제는 그런 유치한 행동을 취할 필요가 없었다. 개들은 내가 자기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짖어봤자 소용없다는 것도 눈치챘다. 누가 더 쎈가도 눈치챘다. 물론 예외는 있다. 덩치 큰 녀석들은 언제나 기고만장했다. 맞장을 뜨고 싶어하는 것이다. 녀석의 공격무기래봤자 입 밖에 없다. 겁먹지 않고 침착하게 옆구리 한번 걷어차면 대부분의 개는 깨갱 거리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내가 개한테 유난히 유감을 느낀 적은 없었고 개들을 귀여워 해주는 편이었다. 힘 없고 불쌍한 녀석들이다.

해안도로를 가도가도 구멍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지쳐서 국도로 접어들려고 한 순간 갑자기 기적처럼 가게가 나타났다. 컵라면을 주문했다. 꾀죄죄하게 비에 젖은 새앙쥐같은 몰골로 달랑 컵라면을 주문하며 휘청거리는 내 몰골이 불쌍했는지 아줌마가 밥과 김치를 떠다 주었다. 보잘것없는 포장으로 콧방귀를 뀌게 만드는 농심 새우탕면이 이렇게 맛있는 라면인 줄은 처음 알았다. 정신없이 먹었다. 만일 밥이 없었더라면 막걸리를 한 병 주문했을 터였다.

아줌마가 태풍 소식을 전해 주었다. 사오마이 태풍은 어제 한동안 제주 남부 바다에서 정체되어 있다가 갑자기 내 생각이 났는지 제주도를 향해 빠른 속도로 기어 올라오고 있으며 지금은 제주도 전역에 태풍경보가 발효중이라는 것이다. 지난 이틀 동안 남다르지 않은 값진 교훈과 악천후 공수훈련 및 생존술의 기회를 선사해준 '닝기미 시부랄 좆도 사오마이 태풍'은 내일까지 제주도를 유린한 후 내륙으로 진출할 예정이란다.

아줌마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후 이빨을 악다물고 해안도로를 달렸다. 오늘 오후까지, 성산 일출봉까지 미친듯이 달려간 다음, 내일 일정을 완벽하게 마무리 하고 자전거 가게에 들러 '완주하고 왔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작정이었다. 해안도로를 달려가는 내내 생리혈에 밥 말아먹을 미친년 같은 태풍에 욕설을 퍼부어대는 무의미한 짓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휴가를 갈 때면 어김없이 비가 왔다. 적어도 지난 10여년 동안 줄곳 그랬다. 어린 시절 소풍가서 맑은 하늘을 본 적이 없었다. 몇주 전에 무릉계곡에 잠시 머리 식히러 갔을 때도 그랬다. 그날도 등반을 포기하니까 비가 멈추었다. 지난 여름 초에 용추 계곡에 놀러갔을 때도 계곡에서 물장구를 치는 동안 비가 내렸다. 작년에 인도에 갔을 때는, 하!. 그때는 우기였다.

원래 이번 제주 여행 계획은 이랬다: 오후 중 제주항에 도착, 제주시 서쪽으로 출발, 장렬한 석양을 바라보면서 한림 협재 해수욕장에 도착, 그리고 호롱불을 밝히며 낭만적인 야영, 다음날 아침에는 선 블럭 크림을 바른 채 느긋하게 해수욕, 제주도 흑돼지 갈비로 영양 보충, 다시 중문으로 출발, 중문 해수욕장에서 파도를 희롱하며 오후를 보낸다, 맛있는 해물 찌게를 먹고 나서 야영, 다음날 아침, 서귀포로 가다가 해녀가 방금 잡은 문어를 초고추장에 찍어 소주를 한잔 곁들이고 도로에서 내다파는 시큼한 감귤을 한웅큼 씹어 비타민을 보충하며 낭만을 구가, 그리고 성산에 도착, 전복죽 한 그릇 먹고 이틀간 여행의 피로를 날려버리기 위해 오늘은 특별히 민박, 따뜻한 물로 샤워한 후 시큼한 소주 한 잔, 그리고 다음날 아침 5시 기상, 성산 일출봉으로 떠오르는 감격스러운 해돋이를 바라보며 그것을 뒤로 한 채 제주시를 향해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태풍 때문에 다 틀어졌다.

성산에 도착했다. 관광이고 나발이고 중간에 있는 모든 볼거리들은 무시하고 지나쳤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다리 근육이 몹시 뜨거워진 상태였다. 오후 3시,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완벽한 비바람이 몰아치는 섭지코지에서 그저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다가 자신이 한심스러워져 물어물어 민박집을 잡았다. 주인 아저씨에게 했던 첫 마디가 '뜨거운 물 나옵니까?' 였다. 그는 고개를 끄떡였고 안심하고 들어갔으나 뜨거운 물은 물론 나오지 않았다. 지치고 귀찮아서 보일러 켜달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온 몸이 물에 젖은 상태라 샤워부터 했다. 차가운 물줄기 덕택에 전신에 소름이 돋았고 근육이 더더욱 뻣뻣하게 굳어지는 것 같았다. 저녁먹고 소주 한 잔 마시고 올림픽 개막식을 멍청하게 구경했다. 성화대에 불을 붙일 때에도 물이 콸콸 흘렀다. 3일 내내 나를 엿먹인 '빌어먹을 날씨' 소식을 듣다가 잤다.

9/16

나흘째, 마지막 날이다. 거의 10시간을 잤다. 방구석을 쳐다보았다. 한쪽 구석에 이불이 있고 방의 대부분은 말리려고 펴놓은 옷가지와 짐 투성이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선풍기는 밤새 돌아갔다.

공동 샤워장에서 칫솔질을 하며 창 밖을 바라 보았다. 어젯밤에 태풍이 지나가면서 심하게 할퀸 자국이 역력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밭 작물들은 한결같이 모로 누워 있었다. 쉬이익 하는 칼바람 소리가 불길하게 들렸다. TV를 켜고 뉴스를 들어보니 태풍은 제주도를 통과했다고 나왔다. 이제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서쪽으로 갈 참인데 태풍이 제주도를 올라간 바람에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또 마파람을 맞고 가게 생겼다. 좌절감에 탄식이 흘러 나왔다.

아침을 간단히 먹었다. 4000원짜리 백반은 밥 한 공기와 풀 국 한 그릇,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희안한 물고기 구이, 그리고 죽은 채소 무더기 다섯 접시로 구성되어 있었다. 관광지 음식은 이래서 싫다. 돈을 더 들여서라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할 껄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성산을 빠져나가기 전에 수퍼에 들러 우유를 하나 들이켰다. 빙그레 바나나 우유, 양과 질에서 만족스러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유.

제방을 건널 때 바람 때문에 자전거가 휘청거렸다. 지난 이틀 동안 거의 마파람을 상대하느라 파곤죽이 되었는데... 마지막까지 이 모양인가? 해안도로 구석에 자전거를 눕혀 놓고 망연히 거센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도는, 참, 요란하게도 치는구나.

다시 출발했다. 성산에서 북으로 이어진 4 킬로미터 가량의 해안도로는 지옥이었다. 도저히 자전거를 끌고 갈 형편이 안되었다. 게다가 어제 너무 무리하게 나아가는 바람에 근육에 힘이 없었다. 오르막길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 거의 끌고가다시피 했다.

어제 바람은 비와 함께 오느라 세력이 약했지만 오늘은 비는 거의 안 오고 바람만 미친듯이 불어댔다. 힘에 부쳐 10분을 채 못가고 주저 앉아 담배를 피우고는 했다. 담배는 30초도 안되어 꽁지까지 타들어갔다. 미처 한 모금 빨기도 전에 바람이 대신 담배를 태웠다. 다 탄 담배는 바람에 날려 바다에 떨어졌다.

고개를 숙여 바람의 저항을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갯지렁이 한 마리가 길을 횡단하며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녀석은 바퀴에 깔려 짓이겨져서 죽었다. 태풍이 안 불었더라면, 내가 9월 16일 오후 5시에 출발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아침 성산에서 10시 무렵에 출발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밥공기에서 마지막 밥알을 다 먹었더라면, 내가 중간에 잠시라도 한번 쉬지 않았더라면, 이런 무한한 우연이 단 하나라도 겹치지 않았더라면 녀석은 무사히 길을 건넜을 것이다. 너는 오늘 성불하고 나는 오늘 집으로 돌아가겠다.

도로에서 지난 나흘 동안 배가 터져 죽은 뱀 한 마리, 짜부러져 깃털만 남은 새 두 마리, 내장이 터진 쥐 한 마리를 보았다. 도로 중간중간에 말리려고 내어놓은 미역들은 바람 때문에 반은 휩쓸려 도로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지옥의 해안 도로를 통과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내륙의 촌락으로 향하는 좁은 길을 따라갔다. 야트막한 돌담이 자전거 높이까지는 바람을 가려주어 진행이 수월했지만 곳곳에 도사린 물웅덩이에 고인 흙탕물 덕택에 드러난 맨살과 샌달에는 흙탕이 튀겼다. 길은 종종 막혔다. 도시였다면 거의 모든 도로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갑자기 길이 끝나면 당혹스러웠다. 썬컴퍼스로 대략의 방위를 알 수는 있었지만 그 방위에 있어야 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도저도 안되어 힘겹게 패달을 밟아 간신히 작은 시가지에 들어섰다.

어제부터 '고기국수'라는 것이 궁금했는데 마침 그것을 파는 분식점이 보였다. 들어가니 점심 시간임에도 손님은 나 밖에 없었다. 물끄러미 아줌마가 '고기국수'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1. 냄비에 물을 붓고 냉장고에서 지방이 잔뜩 낀 돼지고기를 꺼내 끓인다. 2. 배추와 당근을 썰어 끓기 시작한 냄비에 넣는다. 3. 국수를 넣는다. 4. 내온다. 무슨 맛이 이런지 모르겠다. 쓰잘데기 없는 야채도 그렇고 당장 열량으로 바뀌지 않는 지방도 그렇고 너댓번 젓가락으로 짚자 없어지는 밀가루 국수도 그랬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었는데 점심마저 이 모양이라니...

아침 10시에 출발해서 해안도로만 통과하는데 2시간이 걸렸다. 가늠잡아 두 시간 동안 더 바람하고 싸워서 6킬로 남짓을 나아갔다.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어젯밤 비에 젖어 너덜너덜 해진 지도를 정성스레 말려 놓았는데, 지도를 살피려고 꺼내 들었다가 바람 때문에 반이 찢어지면서 두쪽이 난 채 날아갔다. 날아가는 지도를 잡기 위해 허벅지가 얼얼함에도 뛰었다. 반쪽만 잡았는데, 이미 지나쳐 온 부분이었다. 돌아갈 길이 적힌 남은 반쪽은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갔다. 우두커니 서서 지도가 날아가는 모양을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12번 국도는 그렇다치고 제주시내의 지리를 통 알 수가 없다.

갑자기 지긋지긋한 비가 또 내리기 시작했다. 금방 개었다. 바람 때문에 비가 내린 도로는 금새 말랐다. 바람 때문에 제주도 곳곳은 무척 깨끗했다. 바람이 도로의 잡 쓰레기들을 모두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물병이 바람에 날아가 갈증이 심했다. 바람 때문에 땀이 나오자마자 신속하게 증발했다. 날씨가 맑아 살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바람이 땀을 말리면 피부에는 결정화된 소금만 남아 벅벅 긁혔다. 돛단배도 아니고, 바람에 이렇게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도록 신경 써보기는 처음이다. 배 고픈데 빵이라도 사먹게 근처에 구멍가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램과 달리 도로는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건너편 길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두 친구가 보였다. 인사할 기운이 없었다. 바람을 등지고 힘차게 나아가는 그 친구들이 내심 부러웠다. 나는 맞바람 속에서 기진맥진해 페달을 밟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인상을 찡그린 채 그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멀뚱히 쳐다 보았다. 뭐가 좋은지 히죽히죽 웃으며 지나갔다. 여행 내내 나를 앞서간 팀도 없었고 마주친 팀도 없었다.

자전거를 고단으로 맞추어 놓고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전진했다. 태풍 때문인지 수업을 안하는 작은 분교에 들러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흙탕으로 얼룩진 정강이와 샌달을 깨끗이 닦은 후 수도꼭지에 입술을 붙인 채 오랫동안 꿀꺽꿀꺽 물을 삼켰다. 물배라도 채울 심산이었다. 오줌을 눗기 위해 화장실에 들렀다가 거울을 흘낏 쳐다보니 팔 다리 얼굴 할 것 없이 제주도 흑돼지처럼 새까맣게 탔다. 흑돼지도 전복죽도 먹어보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볼거리도 대부분 그냥 지나쳤다.

선글래스를 꺼내 썼다. 얼굴에 묻은 물은 바람에 금새 말라버렸다. 맞바람은 제주시까지 오는 동안 지속되었다. 차들이 횡횡 지나쳤고 제주시까지 가는 길은 비좁았다. 시내에서 우왕좌왕 했다. 눈에 띄는 사람들마다 거리를 물었다. 시내에는 그래도 바람이 심하지 않아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자전거 가게 앞에서는 기운 찬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후 다섯시였다. 일곱시간이 걸려서 고작 36킬로를 온 것이다.

나는 웃고 있었다. 가게 주인이 자전거 탄 사람들을 보았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떡였다. 그 친구들은 어제 도착해 태풍이 잦아들길 기다렸다가 하루가 지나 출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속으로 배짱이 부족했군 하고 중얼거렸다. 주인이, 댁은 여행 경험이 많은 것 같아 완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진정시킨 후 가게를 나와 맥없이 터덜터덜 걸었다.

쇼윈도의 거울같은 유리에 몰골을 비추어보니 예상대로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입가에 야비한 미소를 지어 보았다. 한참 만에 수퍼를 찾았다. 거기서 빵과 우유를 사다가 놀이터에서 게걸스럽게 먹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도대체 여기와서 뭘하다 간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배가 좀 차자 기운이 났다. 집에 가야지.

택시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택시기사가 잘 놀다 가냐고 물었다. 히죽히죽 웃었다.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탔다. 스튜어디스가 재난 발생시 승객이 해야할 안전 사항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동작이 우스워보였다. 산소 호흡기를 내려 입에 갖다 붙인다? 파이팅 클럽에서 주연 배우는, 산소 호흡기를 끼면 순수한 산소가 흡입되면서 뇌가 일시적으로 현기증을 일으키고 환각상태에 빠진다고 말했다. 산소 호흡기를 끼는 것은 곧 닥칠 죽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서울에 돌아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오버 트라우저를 뒤집어 쓰고 얕게 내리는 빗속을 거닐다가 포장마차에서 닭꼬치와 오뎅을 사 먹었다. 아줌마에게 물었다. "여긴 언제부터 비가 왔어요?" "나흘 전부터. 댁은 딴데서 왔어요?" "예." "어디서?" "딴데서요." 다른 곳, 태풍이 휘몰아치던 곳.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진 한 장 안 찍었지만 정신이 오락가락 할 정도로 태풍을 온몸으로 체험했던 위기의 나흘,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던 나날들이었다. 이번 자전거 하이킹의 교훈: 음식은 맛보다 열량이 훨씬 중요하다.

제주 하이킹 후 새까맣게 탄 얼굴, 지쳤다.

3박 4일 제주도 하이킹 경비 총액: 220,000원
제주 왕복 항공료=141,000원
민 박 2회=30,000원
자전거 4일 대여료=20,000원
나머지는 식비, 기타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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