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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3.06.13 coming for to carry me home 2
  2. 2003.06.09 ...... 11
  3. 2003.06.08 Santa Cruz 4
  4. 2003.06.06 Silver Mine
  5. 2003.06.05 Potosi
  6. 2003.05.30 Oruro 12
  7. 2003.05.29 Valle de la Luna 항공권 4
  8. 2003.05.27 La Paz 2
산타 크루즈, 멕시코 시티, 엘에이, 도쿄, 지나친 도시들은 모두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왔다. LA에서 공항으로 갈 때는 심지어 Big Blue bus를 탔다.

멕시코 시티에서 엘에이로 갈 때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티켓을 발급한 로이드 아에로 볼리비아노 항공사에서는 자기들이 발급한 티켓이지만 항공사가 달라 연결편을 제공할 수 없다나? 세관을 통과해서 멕시코에 재 입국하여 다시 출국해서 짐 검사를 받고 비행기를 타라고. 흐음... 엿 먹어라. 한 시간쯤 델타 항공사와 나 자신에게 피차 기억하지 않았으면 싶을 시간이 지나갔다. 그렇게 해서 비행기 뜨기 바로 전에 보딩 패스를 손에 넣었다. 종이에 손으로 갈겨 쓴 것이었다. 산간오지에서 막 떠나려는 버스를 잡아 타는 분위기였다.

네 번의 항공기 이동에서 이번에 실험해 본 것은 과연 작은 가방에 칼을 넣고 공항 검색을 통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해냈다. 네 번의 검색 중에 걸리지 않았다. 테크닉은 간단했다. gps 리시버에 스카치 테잎으로 감아 붙이고 가방에 넣은 후 가방을 x-ray 검색대에 수직 방향으로 세워놓은 것이다. 그렇게 하면 칼의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 대사관에 칼을 들고 들어간 이후 두번 째 쾌거였다. 미국 대사관에 칼을 들고 들어갔다라... 어째 말이 좀 으스스하군.

공항 면세점을 기웃거리며 살만한 것들을 찾아봤다. 맛이 간 디지탈 카메라를 대체할 만한 것을 사려고... 그러려면 일단 한국의 웹 사이트에 들어가서 가격 정보를 알아봐야 한다. 면세점 가격이 더 비싸다. 그러다가 내가 호스팅을 하는 x-y.net이 시만텍 사이트 프로텍트 프로그램에서 블랙 리스트에 올라온 곳임을 알았다. 홈페이지에 들어갈 수가 없다. hotmail도 마찬가지였다. x-y.net에 perl 모듈을 좀 설치해 달라고 했더니 친절하게 돌아온 답장이, 귀하 한 분을 위해서 설치해 줄 수가 없다나... 돌아가는 대로 모종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LA에서 산타 모니카 비치에 하룻밤 묵었다. 하느라 했지만 그날 연결편은 오버부킹 된 상태였다. 계획에 없었으므로, 계획이 없었으므로 숙소 부터 찾아야 했다. 비지터 센터의 귀가 맛이 간 할머니에게 산타 모니카의 지도와 버젯 어코모데이션 리스트를 구한다고 얘기했다. 버젯 어커모데이션이 50불 부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헐리우드의 한인이 경영하는 게스트하우스로 가는건데... 해변의 벤치에 가방을 내려놓고 리스트를 훌터 보았다. 잔디밭에는 노숙자들이 누워 빈둥거리고 있었다. 노숙할까? 비가 온다. 젠장할. 유스 호스텔이 하나 있다. 도미토리 31불. 5불 짜리 햄버거와 7.5불 짜리 영화티켓과 9불 짜리 점보 팝콘과 반스앤 노블스에서 산 두 권의 sf 등등등을 합쳐 70불을 하루 만에 날렸다. 산타 모니카 피어에서 멸치를 미끼로 쓰는 낚시꾼들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지만 잡는 것들이 시원치 않았다. 말로만 듣던 운동화 따위가 잡혔다. 거의 하루 종일 반스앤 노블스에 죽치고 앉아 책을 읽었다. 그렉 이건의 singleton은 참 싱겁고 영양가 없는 단편이었다.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하니 10시, 도착하자 마자 전화는 딱 두 통 했다. 둘 다 받지 않았다. 얼씨구.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하니 열쇠가 없다. 담을 넘었다. 냉장고 속에는 온갖 것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냄비가 없어서 프라이팬에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젓가락이 없어서 철사 옷걸이를 적당히 끊어 젓가락으로 사용했다. 그릇을 씻으려니 세제가 없다.

새벽 5시에 애니메트릭스라는 진부한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워낙 진부해서 잠이 온 것 같다. 시차적응에 도움이 되는 영화같다.

방은 변한 것이 없다. 오히려 더 망가졌으면 더 망가졌지. 컴퓨터의 os를 새로 설치하고 pda를 되살렸다. 평소처럼 핸드폰을 뒷 주머니에 꼽고 머리방에 갔다. '언니'가 나를 기억했다. 파나미안 신성일 스타일은 그렇게 해서 잘려 나갔다. 샤워할 때 보니 여기 저기 벼룩에 물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벼룩에 뜯긴 자국이 사라질 때 쯤이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겠지.

배낭을 탈탈 털어 모든 옷을 빨았다. Tuesday Island라고 적혀 있는 웃도리는 가끔 거기가 어디냐고 묻는 여행자들의 호기심꺼리였다. 모르겠는데? 라고 대답하다가 서 사모아 북부에 있는 작은 바위섬인데 일년 중 절반은 수중에 잠겨 있다 라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걸 믿는 녀석도 있었고 그래서 로빈슨 크로소의 프라이데이 아일랜드의 배경이 되었으며 신밧드가 고래라고 착각한 섬도 그 섬이라고 말했다. 그 얘기가 새끼에 새끼를 거듭쳐서 언젠가 미국이 핵폭탄 실험을 한 장소가 되었다가 원주민들이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공물을 바치던 섬이 되었다가 약 300년 전에 드디어 풀 한 포기가 돋아나기 시작했고 꽃게로 뒤덮여 있기도 하고 바닷새가 태평양을 횡단하다가 쉬러 잠시 들르는 섬이기도 하고 펭귄도 있고(멕시코의 빠라까스를 방문한 후 추가) 해적들이 섬의 모습을 보고 달려 가다가 암초에 걸려 무수한 배가 침몰했던 장소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동대문 짝퉁 긴팔 웃도리에 새겨진 Tuesday Island라는 신비로운 장소가 탄생했다. 사실 그 Tuesday Island 라는 브랜드는 Thursday Island의 카피라고 말해줬어야 했는데... 목요일 섬은 어디냐고? 목요일 섬은 목요일 섬 나름대로 스토리가 있다. 세상에는 몇몇 모험심이 강한 뱃사람들의 기억에서만 희미하게 존재하는 전설 속의 무인도가 일곱 개 있는데... 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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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기/Bolivia 2003. 6. 9. 13:48
일요일이라 문 연 가게가 드물었다. 하릴없이 돌아다니다가 부페 집을 발견하고 들어가서 먹었다. 4000m에서 내려오니까 좋은 점이 하나 있었다. 제대로 익은 밥이 나왔다. 할 일이 없다. 공원에 가서 어제 만난 애들과 놀았다. 말이 안 통하지만... 볼리비아 에스빠뇰은 느리다. 충청도에 온 것 같다. 오늘은 신발을 공짜로 닦아준다. 꾀죄죄하지만 애들이 밝다. 노점에서 300원 짜리, 사과 껍질을 벗기고 카라멜인지 에나멜인지를 발라 놓은 것을 사줬다. 신발 닦는 비용보다 비싸다. 애들이 먹는 걸 보니까 맛있어 보인다. 먹어 본 적이 없다. 길거리에 사는 거지마저도 행복해 보였다.

오고 나서부터 날이 흐렸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 좋은 나라를 떠나게 되어 유감이다. 뻬루와 볼리비아 외에 남미의 다른 나라는 가보지 못했지만 볼리비아는 중미와 남미 일부를 통털어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볼리비아에 오기 전에 만난 장기 뛰는 친구들이 왜 웃으면서 말없이 썸스 업을 했는지 이해가 갔다.

영화 보기 전에 마지막으로 성당에 들렀다. 버릇처럼 성호를 그었다. 성당을 나오면서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좋은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광장에 선 장에서 피리와 삼뽀냐를 샀다. 망설이니까 알아서 깎아준다. 느긋한 일요일 오후다.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하는 tears of the sun을 봤다. 미군이 사지에서 고생하는 얘기로 추측된다. 나하고 상관없는 애들이라 뭔가 인도주의 같은 것을 보여주는 동안 고개를 비딱하게 하고 쳐다 보았다. 좋은 총이야... 극장은 사람들로 가득찼다. 여기저기서 샴푸 냄새가 났다. 10시 쯤 영화가 끝났다. 광장을 할 일 없이 배회했다. 분위기가 좋다. 연인과 젊은이들이 웃고 있었다. 부모를 따라온 꼬마애를 심각하게 쳐다 보니까(쥐를 줄에 묶어서 애완견처럼 데리고 다녔다) 나를 쳐다보고 까르르 웃는다. 즐거웠던 여행의 마지막 밤이란다 얘야.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LA에 도착해서 스케쥴 변경이 가능하면 바로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탈 것이다.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럼 3일 내내 비행기를 네 번 타는 셈이다.

서울에서 잘 할 수 있을까?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읽은 것 중 감명 깊었던 것. 재밌어서 낄낄거리며 세 번은 읽었다. 처음 보는 '신선한 표현들'은 강조체로.

-*-

미친년들.. 욕나오게 만드는군요..
이제부터 욕좀 하겠습니다.-_-;;


무뇌아도 정도가 있지..
멍청한 년들.. 씨부랄 유가 그냥 들어오려고 해서 이 난장치냐?
미국인이신 분께서 우리나라에서 돈 좀 만져보겠다고 취업비자로 들어오신다는데 그럼 한국국민은 절라 호구라 예~ 와서 돈 많~ 이 벌어가셔용~그 지랄 옘병해야 옳은거냐구.

인권침해? 좋아하시네.
너네 우리나라 미혼여성이 미국, 일본갈때 얼마나 힘든지 알어?
(물론 관광이야 쉽다만.)
미국 가서 우리나라 돈 쓰면서 공부하러 가겠다고 해도 부모 직업이랑 연소득 평가해서
기준치 미달이면 짤탱없이 못가 이 개잡년들아.
이유? 우리나라같이 개발도상국의 미혼여성이 돈 많은 나라 미국 와서 돈벌어가구
나아가 미국새끼 하나 물고 눌러앉을까봐란다.

본인 일어전공하고 졸업후 워킹 신청했다가 무자비하게 짤렸단다. 마찬가지 이유지. 가면 곧바로 언어되니까 술집같은 데 가서 엔화 긁어갈까봐.-_-+(미쳤냐? 한국서 대학졸업하고 일본가서 술집나가게-_-근데도 그지랄이야-ㅁ-+)

그런데 이 일본보다 더한데가 미국이거든?
아무리 친미라도 미국대사관 한번 드나들면 골수 반미로 바뀐단다.
유학시도한 친구년들이 다 대사관 벽에 머리찧고 울더라.

세계인권 어쩌구 하는데.. 어느 나라든 자국의 이익을 중시하기 때문에, 취업비자를 그리 쉽게 내 주는 데가 없어.
그럼 개나소나 외국가서 돈벌어오게?-_-

울나라 사람이 외국에 돈 벌러 나가는 게 이지랄인데..
온국민 뒤통수 함몰되게 때리고 토낀 씨부랄 유새끼가 돈좀 만져보겠다고 취업비자 달라 그러는 거 안주겠다는 게
니넨 인권유린으로 보이냐? 이 여름철 쌀벌레같은 년들아.-ㅁ-+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지돈 쓰고, 그간 벌어간 돈 풀고, 백배사죄해도
광화문 네거리에 묶어놓고 투석하고 싶은 이마당에..
취업비자??? 어제도 얘기했지만.. 진짜 안 되는 허리로 허공에 좃질하고 있다.-_-+

글구.. 이 개잡년들아, 인권위원회랑 법무부에 왜 그 지랄옘병 도배를 하는거냐?? 엉?
씨부랄 유새끼는 미국인이야~!!!!
왜 울나라 인권위원회에 지랄이냐구.
씨바.. 내가 낸 세금으로 울나라서 고생하는 외국인 노동자도 못 챙기는데,
미국에서 잘 사는 미국인 인권까지 따지게 생겼어?? 엉??
외국선례 어쩌고.. 나 참..진짜.. 개 풀뜯어먹는 소리 하고 있네.-ㅁ-+

니들 생각해봤냐?
우리나라같은 특수성을 가진 국가에서 제일 좋은 시절에 군대가서 조또 좃뺑이쳤던 니들 아버지, 오빠들..
2년넘게 개밥먹고 눈치우고 봉와직염으로 발가락썩어간 대다수의 남자들은 ?
원래 가기 싫은 거 억지로 끌고 들어가는 게 더 큰 인권유린 아니냐?
미국땅에서 지 먹고싶은 거 쳐먹고 가족이랑 사는 새끼가
울나라 들어와서 돈 못벌어가는 거 하나 가지고 인권유린이라 개삽질하면,
2년넘게 가족이란 떨어져있고, 모든 행동에 다 제약받는 우리나라 군인들은 뭐냐구.
군대가는 인간들은 인권이 없어서, 천하의 호구라서 군대갔겠냐.
남자들이 왜 갔겠냐?? 응?
우리나라가 전시상황이고, 분단국가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특수성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의무로 가는 거 아녀. 씨바~!
국방의 `의무` 란다. 이 개빠순년들아.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랑 같냐구~!!
비교할 걸 비교를 해야 그러려니 하지~! 이 본드에 버무린 탕수육 같은 년들아~!!

씨부랄 유새끼가 미국 국민 되고 싶고, 가족이랑 같이 살고 싶어서,
미국 국민 됐다는데 언제 우리나라에서 말렸어? 아님 의무 어겼다고 감방에 처넣었냐?
이미 미국 국민인데 뭘 어쩌겠어.
관광비자로 들어온다고? 것도 머 어쩔 수 없지. 협약이 글케 돼 있는데.
(물론 공항에 내리는 그 순간부터 생명의 위협이 있겠다만. 들어온다 그러면 도끼들고 다닐거야 썅.-_-+)
근데 그냥 미국국민도 아니고, 한국인들 ? 19a 民堉?함몰시키고 간 미국인이
다시 돈벌어가겠다고 깝치는데 너넨 글케 기분 좋냐?
이 자존심도 없는 년들아~!!!

니들 나이들어 연애하고, 한참 좋아죽으려고 할 때 남친 함 군대보내봐라.
그때도 씨부랄 유 불쌍하단 얘기가 나오나.

글구 니들이 지랄옘병하는 얘기중에 하나..
`울 오빠는 군대간다 한 적 없어요~ 언론에서 오보한 거예요~`
미친년들.. 아예 내 귀가 먹었다고 그래라.
전국민한테 다 들리는 말이 니들 귀에는 안들리냐??
씨부랄 유새끼가 부르는 노래 듣는 니들 귀가 제대로 됐기를 바라는 건 너무 큰 희망인가보다만..
썅.. 전봇대로 귀를 파 줘야 정신들을 차리지.

울오빠 와서 국위선양? 진짜 조까네.
미국 국위선양하게?? 엉?
진짜 우리나라 위상을 알리고 싶으면 할리우드에서 성공하란 말이다.
유럽비자 받고 유럽가서 가수하든지. 아님 중국을 가든지.
그래서 절라 성공한 다음에 외국애들한테 한국 얘기해.
어케 국위선양을 우리나라 들어와서 할 생각이 난다냐, 그 씹새는??
여기서 붕어 딴따라 짓 해봤자 외국에서 알아주냐?
우물안 개구리에 불과한데.
진짜 썩은 닭대가리 티 글케 팍팍 낼래??-ㅁ-+

빠순이들아..씨부랄 유새끼가 지가 한국인이고 한국이 소중하다고 붕알 터지는 소리 한 걸 철썩같이 믿나본데..
진짜 한국인이고.. 한국 정서를 조금이라도 알면,
우리 나라의 특수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생각했으면
그 붕어주딩이로 절대 들여보내달라는 얘기 못한다.
난 그새끼가 들어와서 국위선양하네, 반성했네 하면서 인권을 위해 들여보내 달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그 씹자지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증거라 생각하거든??
한국인중에 병역의 의무를 기피한 인간은... 절대로 글케 지밖에 모르는 발언을 할 수 없단다. 이년들아.
절대로 앞으로 나서서 그 지랄 못하지.
에휴.. 전에도 그새끼가 가만히나 있었으면 중간이나 갔지.
남자라면 해병대 어쩌구 하면서 붕알 물고 옆돌기 하며 절라 나대던 건 생각 안나니?
참.. 나..옘병.. 이회창이 아들레미도 대선때마다 눈치보면서 소록도 봉사가는 이마당에-_-+
그 지랄해놓고 미국국민 된 주제에..참.. 좃껍데기같은 소리 한다.-_-+
확 자* 를 ㄹ자로 꺾어 후장에 박고 록타이트를 부어버릴 새끼.-_-

이 광빠년들아.. 제발 좀 정신차려라..
정신 못차리면 나대지나 말고.

같은 여자로서 쪽팔리다.
왜 사람 입에서 욕나오게 하냐.-_-+

아.. 씨바.. 짱나.-_-

(출처: 보배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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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a Cruz

여행기/Bolivia 2003. 6. 8. 16:27
Potosi -> Sucre -> Santa Cruz. 20hrs

시계가 맛이 가서 10.30am에 12.30pm인 줄 알고 차를 탔다. 4000m에서 420m까지 떨어졌다. 열대 도시가 의외로 을씨년스럽고 춥다. 한 시간 반을 숙소를 찾아 헤메다가 시장 한복판의 숙소를 값싸게 얻었다. 6시간쯤 걸었는데 다리에 피가 몰려 쑤셨다. 고도차 때문일까. 그 전에는 자다가도 숨쉬기가 힘들어 헉헉 거렸다.

점심때 아마존 생선을 먹었다. 이빨이 흉칙하게 돋은 80cm 짜리를 토막낸 것이었다. 튀긴 생선을 고추 간장 절임에 찍어 먹었다. 이 맛이지.

그 동안 못한 얘기를 하자. 아니, 안 한 얘기를.
그러고 보니 중남미 히피 얘기는 한번도 한 적이 없구나.

히피들아... 잘 지내고 있냐? 내가 만난 히피 중 단연 으뜸은 라 빠스에서 보고 오루로에서도 본 미국인인데 50대 아저씨였다. 네팔에 등반하러 갔다가 친구들이 그를 버려두고 떠나서 어쩌다가 놀러 갔던 파슈파티나트에서 사람을 만나 그를 찾아 돌아 다니다가 한 구루(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와 인연을 맺었다. 몇 개월 산 속에서 매일 매일 스승으로 부터 그에게 깨달음을 주려고 옮아 온 spritually fucking 벼룩을 잡으며 지냈다.

한 번은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 카트만두 시내에 갔다가 곤드레가 된 이후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고(그의 스승이 너는 나를 찾는데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했단다) '길'을 찾다 찾다 지쳐서 울면서 고국으로 돌아왔단다. 가 보니 자기 부모님들이 돌아가시고 마누라와 아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래서 자동차 한 대 끌고 발길 닿는 대로 가다보니(차가 고장나서 나중에는 걸었다. 그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어느새 비자도 없이 두 나라 국경을 넘었다.

경찰이 그를 잡았고 용케 대사관에 끌려갔다가 거기서 여행 서류를 만들어 돈 한 푼 없이 인디헤나를 따라 트럭을 타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방황했다. 여행자들이 그를 도와줘서 과떼말라에서 2년쯤 있다가 돈이 좀 되어 다시 여행을 시작한 것이란다. 도저히 백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검은 피부, 지속적인 영양 불균형 상태, 발달한 폐...

그를 처음 만난 라 빠스에서 내가 똥 빠지게 찾은 숙소에서 체크인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내가 누굴 닮았다면서 말을 걸어왔다. 자기가 네팔에 있을 때 어떤 한국인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10년 넘게 수도를 하고 있다고. 수행? 글쎄다... 구루한테 영혼을 삥 뜯기고 있었을 것 같은데. 야금야금.

그가 가르쳐줬다. 당신 이름이 루크야? 응 그런데? 루크...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없을 껄? 응? 루코라고 하지 않아? 아... 그의 말을 들어보니 그런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왜 내 이름을 여기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기만 하면 그들이 깔깔 웃어대는지 평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묻고 있었다. 루코는 말이야... 에스빠뇰로 '미쳤다'는 뜻이야. 아... 그랬군. 6년을 넘게 돌아다녀서 꼬라지는 거지 같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간신히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미친 놈이었구나...

그를 오루로에서 다시 봤을 때, 나는 재키 찬이라는 맛없는 중국집에서 한 식사로 기분이 상해 공원에 앉아 시발시발 거리고 있었다. 그가 다가와, '어이 루코'(어이 미친놈) 이라고 말을 붙였다. 그는 신지학(그런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괴상한 학문이 있다)에 조예가 깊어서인지 나한테 장광설을 늘어놓다가 공원에서 요가 생쑈를 하며 애들 푼돈을 뜯고 있었고 난 졸지에 그의 친구가 되어 원숭이쇼에 동참하며 코카잎을 삥 뜯겼다. 코카잎으로 피리를 분다. 재밌다.

내가 네팔에 다시 갈 꺼라니까 너는 나와 '인연'이 있으니 다시 만날꺼다 라고 말했다. 그의 스승처럼 말하고 싶었다. 비틀비틀(zigzag) 걷기 때문에 나를 똑바로 찾아올 수 없을 꺼라고. 그가 그날 내게 준 가르침은 '오늘 벌지 못하면 끝장이야' 였다. 그는 내가 묵고 있는 뜨거운 물 펑펑 나오는 숙소같은 곳은 잡을 엄두를 못 냈지만 그렇다고 돈을 꾸지는 않았다. 일견 비장미가 넘쳐 보이면서도 거지로서 지녀야 할 최후의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중남미에서 만난 히피 중 유일하게 인터넷을 할 줄 아는 최신식 히피가 아니었다. 올드패션인 그의 이름은 에드먼드인데 언젠가 그 홀쭉한 180cm의 대머리를 만나면 오루로에서 '미친놈'에게 삥 뜯은 것을 갚을 때가 되었다고... 지금쯤 곧은 철길을 따라 비틀비틀 걷고 있지 않을까?

멕시코의 유스 호스텔에서 만난 노트북 히피도 있었다. 그는 자기가 만난 사람들의 대화를 끊임없이 노트북에 기록했다. 천천히 말하라고 강요했다. 왜 기록을 하냐고 물으니까 그게 자신의 삶을 찾는 실마리라고 말했다. 자기가 타인과 하는 말을 관조하는 것 같다.

내 생각에 그의 영혼의 실마리는 검색엔진에서 찾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것 같아서 구글을 사용해 봤냐고 물었다. (그런 류의 nerd들은 구글광이다) 그는 한참 딴 소리를 하다가 자신이 '인도에서 제작된 허접한 공산품'임을 고백했다 -- 인도에서 2년, 인도 정부에서 그에게 나가달라고 말했단다. 추방이다. 15년 전 얘기니까 인도에서 한참 바퀴벌레같은 히피들을 박멸할 때 얘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아무래도 드러그 트래피킹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고아, 파티, 영적이고 때로 육체적인 관계들.

중남미 히피 커넥션의 핵심은 인도에서 영혼을 찾아 헤메다가 영혼이 1/3만 발견되어 섭섭한 나머지, 남은 영혼을 찾으러 중남미로 넘어온 케이스들인 것 같다. 그는 내가 만난 히피 중 '유일하게' 산 스크리트어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혹시나 대학교수 쯤 되는 줄 알고 여러 차례 그를 추켜세우며 추궁해 봤지만 전력을 말해 주지 않았다. 말하자면 신비에 쌓인 보잘 것 없는 히피였다.

그런데 산 스크리트 어를 해독하는 히피를 본 적이 있나? 난 처음 봤다. 내 생각이지만 산 스크리트 어를 해독하면 깨달음이 백만 배 쯤 빨라지지 않을까 싶다. 그에게 여자 히피들과 성관계를 가져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 점이 늘 관심꺼리였다. 그는 나를 잠깐 노려보다가 뭐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날 저녁에 뒤가 캥겨서 그에게 맥주를 한 병 사 줬다. 나는 두 병을 마셨고 그는 한 병을 비운 후 더 사러 가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 동안 그의 노트북을 구경했다. 폴더에 내 이름은 있었는데 다른 사람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 열 받았지만 모른 척 하고 있었다. 이 자식 거짓말을 하고 있군.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노트북을 열어 자기가 기록한 것들을 조금 보여줬다. 내가 잘못 알았다. 다른 파일들이 있었다. 그는 나를 히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머리도 짧고 깔끔했으며 세상은 불행으로 가득차 있다고 믿는 편이었고 영적인 것들과는 아주아주 적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전생에 영적으로 지독한 샌드플라이한테 물렸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 점 때문에 내게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걔가 내 맥주는 안 사왔기 때문에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날 시끄러운 멕시칸 청년과 브라질 청년이 나가서 춤이나 추자고 꼬시고 있었고 나는 몸치인 것이 좀 쪽팔려서 화장실에 짱박혀 똥을 오래 누었기 때문에 기억이 잘 났다.

우리는 email 주소를 교환했는데 두어 번 안부인사를 묻고 감감 무소식이다. 그 후로 그가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왠지 그랬다. 산 스크리트어는 죽은 언어고 죽은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은 죽을 꺼라고 생각했다. 그게 주술과 마법이 죽은 이유다. email에서 그는 볼리비아로 갈 꺼라고 말했다. 내심 그를 볼리비아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꺼라고 기대했다. 그가 볼리비아에 와서 나를 만났더라면 우주 창생의 비밀을 알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다. :)

그에게 '기록'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처럼 내가 그에게 한 말들을 시간을 두고 읽어보고 싶었다. 얼마나 헛소리를 많이 늘어 놓았는지, 내가 살아가면서 한 헛소리들의 두께를 보고 싶었다. 이 blog도 사실 헛소리였다. 여행하면서 얻은 중요한 얘기는 하나도 적지 않았으니까. 적으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여기다가 구체적으로 적으면 어떤 그래피티가 나올까. 촘촘히 엮인 실이 아니라 스웨터를 만들 수 없는 잘못 짜여진 편직물에 비추어진 내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이 더더욱 처절하게 드러나겠지? 그럼 슬프겠지? 슬픈 짓을 왜 하지? 그래서 슬퍼지지 않으려면 그런 짓을 할 생각을 걷어야겠지? 울컥.

하지만 어쨌든 사진에 사람을 찍지 않듯이 사람 얘기를 별로 안 하게 된다.

그나저나 이상하게도 나한테는 어디서 거지같은 행색을 한 히피들이 똥에 꼬이는 파리처럼 많이 꼬였는데(전생에 팔자가 드센 증거) 히피 얘기라면 할 말 참 많다. 그들에게 나눠줄 네팔제 버팔로 뿔로 만든 피어싱 악세사리를 누군가에게 다 줘 버려서 그런 작자들을 만날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고는 했다. 그래도 히피를 만나면 재밌다. 영 우스꽝스러운 관광객이나 바쁜 여행자들 하고는 틀리니까. 하다못해 은하수를 보고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는 순진한 인간들이라... 아무리 그들이 철판 깔고 행복 외에는, 인류의 복지 외에는 딴 생각 해 본 적이 없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도, 하나가 되자는 허튼 소리를 늘어 놓더라도. 어쩌면 정서적으로 내가 그 피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멕시코 마리아치 히피도 있고 처녀귀신처럼 생긴 할머니 히피도 있고... 그들은 내 영혼을 갉아먹기 위해 네팔이나 인도에서 화물로 붙인 것 같았다. 어째서 히피들은 하나같이 옴나마 시바나 자이구루 나부랑이 따위를
중얼거리며 접근하는 것일까? 신기하도다. 그리고 왜 나만 괴롭히고... 지랄이야.

볼리비아 제 2의 도시임에도 싼타 끄로스는 지극히도 볼 것이 없다. 마침, 토요일, 일요일에 걸려 문을 일찍 닫았다. 가지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옷을 론드리에 맡겼다. 지금 입고 있는 옷으로 이틀을 버텨야 한다.

인터넷을 하고 밥을 먹고 공원에 하릴 없이 앉아 시간을 보냈다. 구두닦이가 내 신발을 닦아줬다. 1 Bs였다. 운동화를 닦을 수 있는지 몰랐다. 닦을 수 있었다. 까불까불 하는 구두닦이 녀석들과 시간을 보냈다. 오늘 밤에는 영화를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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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er Mine

여행기/Bolivia 2003. 6. 6. 14:31
뽀또시에 도착하자 마자 한 일이 은 광산 투어 신청이다. 주인장은 태권도를 하고 있었다. 메달과 상장 따위를 보여준다. 태권도를 할 줄 알고 해서... 10 Bs 깎았다.

숙소에 샤워실이 하나 밖에 없었다. 아침에 샤워 하러 가니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의 여자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서 수도 꼭지 만지면 감전된다고 충고해 줬다. 감전 당했다. 떨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220V적인 떨림은 아니었다. 고작 48V 가량쯤? 그럼 당근 누전이지.

투어하러 가니 운 좋게도 투어 참가자가 나 밖에 없다. 다른 팀은 모두 떼거지였다. 광산에 가기 전에 광부에게 줄 선물을 사야 한다나... 이왕 해 주는 거 좀 비싸더라도 10 Bs(1.5$) 하는 다이나마이트를 샀다. 다이나마이트를 만지작거리니까 기분이 좀 이상했다. 갑자기 자신감이 넘치고... 흐뭇하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야릇한 기분이... 어릴 적에 폭탄을 좋아했다. 군용 매뉴얼을 참고해 직접 만들어서 로켓을 날렸다.

가이드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가이드보다 내가 더 말을 많이 해서 좀 이상하긴 했지만. 은 광산은 거의 붕괴될 지경에 이른 상태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조사위원회가 몇 차례에 걸쳐 광산을 폐기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지만 8000명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는 것을 두려워 한 정부는 거의 아무런 수익이 없는데도 광산을 가동하고 있었다. 사실 이 나라 처지에서 뾰족한 수가 없었다. 광산을 박물관으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모르겠다.

다이나마이트 터지는 소리가 18번 들렸다. 쿵...쿵... 진동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비좁은 광산 안에서 방금 전까지 쾌활하던 가이드는 얼어붙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이나마이트가 터진 쪽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천정에서 우수수 흙자갈이 쏟아져 내렸다. 가이드는 정말로 겁을 집어먹은 상태였다. 그는 나가자고 말했다. 그전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광부들의 신 앞에서 담배 빨면서 97% 짜리 알코올을 홀짝 홀짝 마시고 입에 불 붙이고 장난하면서 한가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말이 투어지 그는 내 말벗이었다. 오랫만에 영어 할 줄 아는 현지인을 만났겠다...


겁을 먹은 그가 주변 광부들에게 물어보니 연 이틀을 쉰 건너편 광부들이 원래는 터뜨리지 말아야 할 다이나마이트를 오늘 한꺼번에 터뜨리고 있단다. 저번 주에 그러다가 한 명 죽었다. 말을 건네준 광부들도 움직이지 않았다. 일은 중단된 상태였다. 누군가 오늘 일은 종쳤다고 말했다. 다이너마이트가 너무 많이 터져 갱도에 먼지가 가득 찬 상태였다. 영 안 좋아 보여서 나왔다. 그래도 3시간은 채웠다.

작년에 광산에서 30명 죽었다. 작업 하는 모습을 보니 그럴만도 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정과 망치, 그리고 수레 정도였다. 갱도를 받치는 부목도 없었다. 워낙 파대서 발을 구르니 바닥이 무너질 것 같았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광산이다. 오리지날 자연산 석면을 보았다. 그거 만지다가 피부암으로 맛이 간 사람들이 좀 있단다. 어떤 광부가 기념으로 은광석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가이드가 말하길 그는 갱도에서 25년 동안 '살아 남은' 베테랑이란다.

투어가 끝나고 길거리를 하릴없이 배회했다. 은광석을 만지작거렸다. 햇살 아래에서 약간 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베테랑이라... 난 33년 동안 비좁은 갱도처럼 답답한 세계에서 질식하지 않고 살아 남은 베테랑 2.0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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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osi

여행기/Bolivia 2003. 6. 5. 15:31
Uyuni Tour에 관한 정보 페이지를 만들기로 했다. 300여장의 사진 중에서 추린 것들은 114장, 일정의 대부분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운전수는 영어를 할 줄 몰랐다. 멋 모르고 사진을 정신없이 찍었고 그 덕에 투어가 끝난지 3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료 정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

유우니 3박 4일 투어는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 본 투어 중 최고였다. 더럽게 추워서 그렇지.

아... 뽀또시는 해발 4000m. 지금 나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인터넷 까페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Bolivia Photos
Uyuni Tour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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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uro

여행기/Bolivia 2003. 5. 30. 13:55
첫날밤은 여자 셋과 잤고, 둘째날은 다섯 명과 잤고, 세째날은 네 명과 잤다. 볼리비아 남서부 3박 4일 투어의 결과다.

적응이 안 된다.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넘어온 후 태양의 위치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동에서 떠서 북을 지나 서로 진다. 남위 20도다. 이성은 잘 알고 있다고 비명을 지르지만 길을 걸어갈 때 동서가 감각적으로 헷갈렸다. 북두칠성은 북쪽 지평선에 낮게 깔려 있다. 아... 미치겠다. 길 찾기는 거의 본능적인 것이다. 내 뇌의 오래된 부분은 아직도 북위 36도에 살고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학생들이 많아 공기가 상큼했던 오루로를 떠나 유우니에 도착하니 9.30pm. 내리자마자 여행사에 들러 채 1분도 안 되어 70불로 낙찰을 봤다. 다른 에이전시를 돌아봤지만 80불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밤 늦은 시각이라 눈에 띄는 아무 숙소나 잡고 들어가서 누웠다. 추웠다. 추워서 침대 바깥으로 나가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아침, 이런 저런 여행사에서 어중이 떠중이들을 모아 투어 팀을 후다닥 만든다. 투어 개시 시각인 10시에서 1시간 늦었다. 한두 번 해 보는 것도 아니고, 원래 투어란 것이 그러려니 생각하고 짐을 여행사에 맡긴 후 차에 올랐다. 어젯밤 리스트에는 아르헨티나인 3명, 그리고 국적이 불분명한 두 명이 기재 되어 있었다. 차량의 정규 수용 인원이 6명이니까 내 이름만 쓰면 리스트가 완성되는 것이다. 사기인 줄 알면서도 서명했다. 안 그러면 그 밤중에 투어 맴버를 찾으러 레스토랑을 전전해야 하니까. 아니면 하루를 까먹던가.

우리 그룹의 여섯 명 중 나를 뺀 다섯이 여자였다. 셋은 독일 출신, 하나는 스위스, 하나는 벨지움이었다. 차량에 차례차례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향후 나흘 동안 먹구름이 피어오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다 다를까, Salar de Uyuni(소금 평원)에 도착하자 마자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방사상으로 흩어졌다. '개성'이라면 나도 어디가서 한 몫 해내는 편인데... 정말 개성 만점 맴버들이다.


Salar de Uyuni와 개성 만점의 투어 그룹 맴버들

왜 그룹 맴버가 중요한가. 나흘 동안 숙식을 같이 하면서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그룹 맴버를 고르지 않고 그냥 투어를 한 것이 실수였다. 정력이 남아돌아 있는 힘껏 날뛰는 벨지움 여자는 그룹 맴버 중 처음부터 가장 두각을 나타냈다. 민폐를 끼치기 일쑤였다. 본인은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독일 여자애 셋은 독일어와 에스빠뇰을 주로 했다. 영어를 잘 못한다. 벨지움 처녀는 혼자 나돌아 다니고, 독일 여자애 셋은(편의상 독일 전차군단으로 칭함) 수퍼 본드로 붙여놓은 것처럼 찰싹 달라 붙어서 자기들끼리 독일어로만 얘기했다.

첫날 밤 식사가 끝난 후 그룹 맴버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서(대체 전기도 안 들어오는 그 깡촌에서 갈데가 어디 있을까) 스위스 애가 늘어놓는 수다 내지는 한탄을 들었다; 자기가 지난 5개월 남미를 여행한 경험 중에서 최악의 그룹 투어 맴버 구성이라고 한다.

스위스 여자애의 영어 솜씨가 워낙 유창해서 의아스러웠다. 너네 스위스 사람들은 독어를 하지 않니? 물었더니 지역 마다 다르단다. 프랑스와 맞닿은 부분은 프랑스어를 하고 독일어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자기처럼 영어를 하는 사람들은 희안한 케이스에 속한다고. 우리 둘은 하루 종일 붙어 다녔다. 나야 시간 많고 할 일은 없었으니까. 날더러 친절하고 매너가 좋다고 칭찬했다. 암, 그룹 투어는 매너로 하는 거지. 스물 네살. international relation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벨지움 여자는 독신이었고(그룹에서 유일하게 나는 다른 맴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회사에서 쫓겨난 후 퇴직금을 받아 3개월째 남미 여행 중. 서른 여섯, 말 끝마다 남자 친구 얘기를 늘어 놓았지만 남자 친구하고 헤어진 것 같다. 가족이 없고 의심 많고 겁도 많고 그룹 맴버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4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지만 취직 문제가 곤혹스러운지 걱정이 많았다.

툭하면 여행 경험 자랑을 늘어 놓았고 그럴 때면 옆에서 기를 죽여놨다. 난 거기서 제일 싼 숙소에 묵었는데 120밧이었지 그러면 어? 난 90밧이었는데? 라고 말했다. 그녀는 동남아시아의 깡촌 오지를 안 가본 데가 없고 다음 목표는 엘 살바도르라며 엘 살바도르 얘길 구질구질하게 늘어놓길래 엘 살바도르 활극을 얘기했다. rubbery를 대낮 거리 한복판에서 두들겨 패고 발른 얘기. 사실 얘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워낙 꼬치꼬치 캐물어서... 날더러 칼 들고 설치는 것들이 무섭지 않냐고 물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모든 남자가 6개월에서 3년 정도 군 생활을 하며 some kind of killing skill을 익힌다고 떠벌렸다. 그러자 예전에 꼴까 계곡에서 총 한 자루만 주면 여기 있는 콘돌들을 싹슬이할 수 있노라고 떵떵거릴 때처럼 갑자기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killing skill이 아니고 some kind of killing skill이다. 거짓말 한 것은 아니다. some kind of..란 '거침없는 깡'과 '이유없는 개김성'을 말하는 것인데... 하여간 여행 하면서 뻥만 느는 것 같다.

독일 전차 군단은 그룹과 사교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라 빠스에 볼 일이 있어서 왔고 이번 투어는 좀 쉬어 볼 요량으로 무리하게 시간을 낸 것이다. 학교에서 전공이 social work라는데 영어를 잘 못해서 그들의 전공이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라 빠스에서 집 없는 애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가르치는 여자애들은 자기들이 딴 나라에서 왔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며 (문맥을 짐작컨대) 남자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싫다나... 내가 약간 노한 기운을 보이니까, 덧붙이길, 하지만 남자애들이라면 자기들이 먼 나라에서 왔다는 것을 여자애들에 비해 금새 이해햇을꺼란다. 당근이지. 우리 남자들은 비행기와 수세식 변기를 발명했고 심지어는 모두가 싫어하는 전쟁에도 재능을 쏟아 부으니까.

놀라운 것은 그들의 '자원 봉사'가 정부나 어떤 단체로부터도 보수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비행기 경비나 숙소 등도 자기들 돈을 들였다. 24~26세 사이. 오리지날 게르만족, 뽀사시한 피부에 금발. 명랑하지만 벨지움 여자를 거의 폭탄 취급했고 틈만 나면 뒤에서 그 여자 이바구를 깠다. 하여튼 투어 내내 온갖 우아를 다 떨었다. 가슴도 빈약한 주제에.

서양인들이 워낙 개성이 강하고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각각 개성이 워낙 뚜렷한 사람들, 특히나 여자들이 그렇게 모이니까 투어 내내 피곤했다. 말이 볼리비아 남서부 3박 4일 투어지, 사실은 '머슴 투어'였다. -_- 여자들이 차량에 꾸역꾸역 올라올 때부터 한숨을 쉬었다. 한국 여자들은 그나마 눈치라도 있어서 괜찮은데 서양 여자애들은 자기 생각 밖에 안 한다. 그 점이 별로...

우리 차는 8인승 은색 랜드 크루저였다. 운전수 겸 요리사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따라서 나는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여기서 볼거리가 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룹 맴버 중 유일하게 스위스 여자애가 가끔 날 위해 통역을 해 주는 정도였다.

4일 내내 포장도로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차량이 그나마 다른 투어 팀에 비해 나아서 먼지를 덜 뒤집어 썼다. 투어 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고, 시작하자마자 잽싸게 가장 좋은 프론트 시트를 점령했다. 그리고 투어 내내 독차지 할 생각이었지만 매너가 워낙 좋다보니, 아니 여자 다섯 명 틈에서 머슴 노릇이나 하다 보니 그 자리에 앉은 적은 그 후로, 없었다.


우리 그룹 투어 차량. 오른쪽 산 밑의 조그마한 점은 우리 그룹 공식 폭탄, 미스 벨지움. 그녀는 대체 어디까지 갈 생각인가, 그리고 언제 돌아 오려는가... 아아...

밥을 해 먹을 시간이면(주로 야외에서) 가스통과 버너, 식기류를 루프에서 내려야 하는데 여자들이 무슨 힘이 있겠나. 운전수와 둘이서 내렸다. 허름한 숙소에 도착하면 운전수와 내가 짐을 부리는 동안 여자애들은 좋은 침대를 먼저 차지했다. 단촐한 내 짐과 달리 가방 세 개씩은 가져왔다. 내 자리는 3일 밤 내내 문 바로 옆에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침대였다. 걔들이 옷을 갈아 입을 동안에는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덜덜 떨었다. 다섯이다 보니 다섯배로 시간이 걸렸다. 두당 5분씩 잡으면... 뜨거운 물이 떨어지면 불을 지펴 물을 끓였다. 속이 메슥거린다며 자리를 바꿔달래서 이 자리 저 자리로 옮겨 다니다가 결국 뒷좌석의 짐칸으로 쫓겨났다. 여자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꽃동산 투어? 누군가 우리 팀을 보고 내가 부러워 죽겠다는 듯이 찬탄을 금치 못했다. 글쎄다... 그래서 다른 투어 차량이 보이면 담뱃불 꾸러 간다는 핑계로 거기 남자들과 이런저런 사나이스러운 얘기를 나누러 피난갔다.

이들 전부가 싸가지가 없다고 여겨졌던 것은 그 추운 날씨에(영하 15도다) 운전수 혼자 고생하고 있을 때 차량 안이나 숙소에 짱박혀 도와주러 나설 생각을 하지 않는 것 때문이었다. 운전수 손등이 거북이처럼 터졌고 우리 식사가 끝난 후에야 남은 음식 찌꺼지를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혼자 불쌍하게 먹고 있을 때 조차 한 번도 그나마 따뜻한 숙소 안으로 부르지 않았다. 한국 여자애들이라면 그렇게 내버려 뒀을까?

기껏 늘어 놓는 얘기가 여기가 문명화가 되면서 전통적인 삶들이 사라져가고 있어 무척 아쉽다나? 속으로 천한 것들이라고 중얼거렸다. 이들도 먹고 살아야 하고 이들도 문명을 누릴 권리가 있다. 이들도 TV를 보고 전기를 끌어오고 제대로 된 상수도 시설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 좆같은 전통적인 삶인지 빌어먹을 것인지 하는 것으로 원주민을 쇼윈도우 속에서 '전통' 나부랑이 하는 것들로 쇼를 하게 만든 것이 바로 우리 같은 관광객들이다.

여자애들은(유럽은) 현지인과 접촉하지 않았다. 흙바지를 입은 애들과 낄낄거리고 있으면 더럽다는 듯이 차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다시 한번, 한국 여자애들이라면 그랬을까? 그나마 한국 여자애들이 그런 면에서는 좀 나은 것 같다. 그나마.

한국 역시 불과 20년 전만 해도 볼리비아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말하자면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살았다. 30대 이상 이라면 이들 풍경이 낯설지 않고 정이 갈 것 같다. 그 황량한 벌판에 뻘쭘하게 서 있는 축구 골대 두 개가 왠지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흙바닥에서 굴러 다니다가 해거름이 다 되어 집집마다 굴뚝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면 엄마한테 혼난다며 하나둘씩 사라지던 친구들...

불행히도 볼리비아의 촌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사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흘 동안 돌아다닌 마을 중에서 전력선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을 본 것은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변변한 상수도 시설도 없었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꾀죄죄한 모습으로 가난하게 살았다. 그나마 투어 차량이 묵는 숙소는 태양 전지로 축적한 전기를 밤에 한시적으로 쓸 수 있는 정도 였다. 그리고 촛불과 끝없는 먼지...

자연 경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끝내줬다. 지난 1년 여행한 것을 모두 합쳐도 볼리비아의 altiplano(고평원쯤?)의 풍경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평균 고도 3800m(최저 3600, 최고 4900, 모두 gps로 찍어본 것들) 사이에 위치한 드넓은 평원과 그 높이에서 바라보는 '아기자기한' 6000~7000m의 설산과 아름다운 호수들, 얇은 대기를 뚫고 천연덕스럽게 쏟아져 내리는 자외선에 시꺼멓게 그슬린 자갈과 흙, 그 사이로 흐르는 실핏줄 같은 시냇물, 듬성듬성 자라난 고원 억새풀과 야마떼, 그리고 전기 조차 안 들어오는 숙소에서 바라본 지평선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찬란하게 펼쳐진 은하수...

지질학자라면 볼리비아의 알티플라노에 경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내 알량한 지식으로도 이렇게 풍부한 미네랄은 처음 봤다. 화산에서 쏟아져 나온, 말 그대로 엄청나게 다양한 광물질군이다. 준보석류 부터 화석, 온천수, 미네랄 때문에 다양한 색깔을 내는 호수들이 있었다. 예상치 못했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충격과 놀라움이 더욱 컸던 것 같다. 그냥, 볼리비아에 왔으니, 유우니에 왔으니, 유명하다는 투어나 하자는 심정이었다.

사진을 270장쯤 찍었다. 자연경관 만으로 사진을 270장 찍어보긴 처음이다. 그중 130장을 남겼고 파노라믹 뷰를 만들려고 별도로 10장을 더 찍었다. 360도 파노라믹 뷰 만드는 프로그램이 어디있더라... 한국에 가서 찾자.


카메라가 맛이 가서 잘못 찍힌 사진이지만, 이 분위기가 맞다. surreal!

밤이면 영하 15도~30도로 기온이 떨어졌다. 해만 떨어지면 거센 바람과 함께 추위가 밀어닥쳤다. 반면 해만 뜨면 살 것 같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바람은 줄기차게 불어왔다. 마치 화성이라도 되는 것처럼, 식물군은 무척이나 단조로웠다. 주로 해조류(algae)와 이끼류가 강력한 자외선과 칼바람, 기온차에 살아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그 풍광은 티벳 고원과는 많이 달랐다. 누가 볼리비아를 '남아메리카의 티벳'이라고 하는가. 바보 아냐?

수도가 없다보니 화장실에서 쓸 물 조차 부족해 나흘 동안 세수를 하지 못했다. 물론 머슴질 때문인 탓도 있었다. 2리터 짜리 여섯 개 들이 한 박스씩 들고온 생수로 우아하게 칫솔질을 하고 세수를 하는 독일전차군단을 보니 부럽긴 하드라. 난... 지나가다가 냇물이 보이면 얼굴이라도 씻었다. 자연공원이다 보니 비누를 사용할 수 없었다. 얼음장처럼 차갑다. 세째날 온천이 있어서 뛰어들고 싶었지만 여자가 다섯이다... 발 담그고... 그냥... 시시하게... 놀았다... 얼굴이 많이 탔다.

투어 둘째날 오전, 스위스 애가 맛이 갔다. 비포장 도로에서 춤추듯 달리는 차 때문에 화장실에 달려가 게웠다. 오후에는 독일전차군단의 전차 한 대가 연료 역류 현상으로 작동 불능 상태가 되었다. 연료 주입을 거부하고 밤새도록 게웠다. 그녀는 투어 나흘 내내 식사를 하지 못했다. 세째날은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깡촌을 두루 답사했다고 주장하는 벨지움 처녀가 감기와 멀미로 맛이 갔다. 비포장이 처음은 아닐텐데? 희안하게도. 아울러 마지막 날, 그동안 남은 2대로 튼튼하게 버티던 독일 전차군단 마저 궤멸 상태에 이르렀다.

유능한 운전수와 좋은 차 임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로 처참한 투어였다. 운전수가 얼마나 유능하냐면, 4륜 구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연료 절감을 목적으로?) 2륜으로 버텼다. 파워 스티어링 핸들도 아니었다. 우리 차는 다섯 여자의 밍기적거림(그들은 운전수가 게으르다고 하지만 식사를 한 시간 반 하고 이어 차를 마시며 채팅을 최소한 한 시간을 하는 그들이 어째서 운전수 탓을 하는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다른 차량을 추월하고 따돌리고 앞서갔다. 함께 머슴질을 하는 운전수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면서 그의 훌륭한 프로페셔널 서비스에 감탄했다(그가 알게 모르게 우리 팀을 위해 사소한 것 까지 챙겨주고 있다는 점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더더욱 처참했던 것은 이들 다섯 명이 모두 채식주의자라는 점이었다. 나 하나 때문에 고기 식단을 만들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풀을 씹었다. 아침은 달걀과 풀, 점심은 풀과 달걀, 저녁은 풀죽과 더 많은 풀과 더 많은 달걀이었다. 식사는 많은 양이 남았다. 채식주의자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소식을 하는 것 같다. 과일은 첫날 모두 해치워서 마지막 날에는 비타민이 부족했다. 우욱...

3800m의 희박한 대기 속에서 맞바람을 맞으며 '무산소 운동' 열심히 하다 보면 근육이 무척 좋아지는 것 같긴 한데, 영양 배급만큼은 제대로 해야 할텐데... 어느 정도로 심한가 하면 3일 동안 똥이 안 나왔다. 불쌍한 내 몸은 그나마 먹는 풀이라도 완전 연소 시켜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 같았다.

베지타리안 독일전차군단이 식사 중에 천연덕스럽게 한국에도 채식단이 있냐고 물었다. 있는 대로, 사실 대로 말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채식단을 가지고 있노라고. 그런데 한국인의 음식 문화가 최근 10년 새에 급격히 변해 채식단의 다양성이 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고. 내친 김에 한국에서는 식용 식물군 중 약재와 식재를 구분하지 않으며 약재가 곧 식재라고 얘기했다.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지만 전부 사실이다. 나물류의 다양성이 식단에 그나마 남아있는 곳은 절간 정도 밖에 없다. 독풀이 아닌 한 모두 먹으면서 수천년에 걸친 인체실험 끝에 탄생했던 '위대한' 채식단은 사실상 소멸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도 여전히 세계 최고의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 정도 채식단의 다양성을 세계 어느 깡촌에서도 본 적이 없을 뿐더러, 문명권은 문명권 나름대로 식단이 이미 평균화, 균일화 되어 가면서 단조로워 지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식재를 약재로 취급하는 나라라면 중국 정도인데 중국의 나물류가 한국만큼 발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금치를 주로 볶아대니까.

사실 이들에게 화산 지대의 생성과 미네랄에 얽힌 흥미로운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런 데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이들은 그리 냄새가 심한데도 호숫가에 퇴적된 인을 알아보지 조차 못했다. 그들에게 돌들을 보여주고 이게 바로 신석기를 이끈 주역들이라고 설명했지만... 음... 개무시 당했다. 난 머슴이니까?

여자들이 과학기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불평을 늘어 놓아서야 말이 안되는 것 같다. 미국의 '여성 과학 기술 인력 개발 위원회'에 따르면 과학기술계에는 보편적인 성 차별이 존재하며 대부분의 여성들이 과학기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내 생각엔, 여자들은 과학기술에 원래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의 진정한 관심꺼리는 네트웍과 소통인 것 같다. 그래서 유난히 뛰어난 화술을 구사하는 것 같다. 나와 함께 투어에 참여한 여자들은 각각 최소한 2개 이상의 언어를 아주 유창하게 구사했다. 난 모국어인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그러니까... 쓰잘데 없는 돌덩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보다는 쓰잘데없는 돌에 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알고 그와 대화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여자들이 소통을 중시해서 언어지향적인 대뇌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사회생물학의 여러 위험스런 주장과 마찬가지로 목적론적이다. 목적론은 아주 위험해서 이 우주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서슴치 않았다. 교육 받은 사람이라도 목적론과 자연선택을 종종 헷갈려 하는 케이스도 많은 것을 보면... 이 점에서도 여성은 그게 무슨 차이냐고 주장할 것 같다(무식 -_-). 목적론은 받아들이기가 아주 쉽다. 그리고 그것을 합리적이라고 판단한다.

좆데이(굿데이)가 어디서 줏어들은 기사를 인용한 것에 따르면 잘 생긴 남자는 정자의 활동력이 평범한 사람보다 활발하고, 잘 생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여러 가지 능력 면에서 뛰어나다고 한다. 과연 좆데이다! 우리 나라에 이런 신문이 하나 쯤은 있어서 장수해야 한다.

저 한심한 기사의 '그럴듯함'이 목적론이 지닌 '그럴듯함'과 같다. 왜냐하면 잘 생긴 여자는 많은 남자들이 뒤따르니까. 그래서 이런 의구심이 들겠지? 잘생긴 것과 자연 선택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을까?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여(굳이 통계적 조작이 아니더라도) 조사해 본 결과 정말 관계가 있었다! 그래서 저런 얘기가 나온다. 자연 선택이 '무지향성'이라는 것을 백날 강조해도 이런 데에서는 사실 씨알이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무미 건조 하고 재미 없으니까). 저런 기사는 근데 나도 사람들하고 말할 때 울궈 먹는다. 재밌으니까.

일정이 오후 4시에 끝나고 바깥이 몹시 추운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잠들기 전인 9시 까지는 그룹 맴버들이 모여 얘기를 나눠야 했다. 식탁에서 벌어지는 이 끔직스러운 대화는 영어와 에스빠뇰과 도이치, 때로는 프랑세즈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서로 서로 통역을 했다. 첫날은 그나마 다른 투어 차량들이 함께 있어서 다른 팀의 남자들과 얘기라도 할 수 있었지만 둘째날 부터는 창 밖으로 참새 한 마리만 날아가도 까르르 웃어대고 촛불 하나를 주제로 족히 한 시간은 떠들어대는 아가씨들과 얘기하는 것이 대체로 고역에 가까왔다. 벨지움 여자는 담배 알러지가 있었고 스위스는 케첩의 품질에 관해 정신병리적인 증세를 보였다.

독일전차군단의 도이치 진세를 돌파하는 것은 몹시 피곤했다. 그들은 투어 중에도 시즈 모드로 일관했다 -- 춥다고 차 안에 짱박혀 부동의 앉은 자세로 창 밖을 바라봤다. 그 와중에 벨지움 여자는 어디론가 사라져서 언제 돌아올 지 기약이 없었다. 스위스는 부루퉁하게 '중립'을 지키고 있었고,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찬 바람에 차량 주위를 빙빙 맴돌며 담배만 피웠다.

문을 잠그고 파수견처럼 문가 옆 침대에 눕는다. 촛불이 꺼지고 추위와 어둠이 찾아오면 전차 한 대가 괴성을 내며 overthrow를 시작했다. 밤새도록... 이런 저런 충고를 했지만 두 대의 독일 전차가 자기들이 해결하겠노라고 강경하게 막았다. 두 전차 역시 별 대책이 없어 보이는데도.

남미에 와서 최고의 민간 치료술을 배웠다. 코카잎이다. 코카잎은 고통을 비롯한 감각을 제거한다. 걱정근심도 없앤다. 믿기지 않았지만 코카잎은 거의 만병통치약에 가까웠다. '통'자가 들어가는 모든 질환에 효과가 있으며 심지어는 심인성 장애까지 치료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지역에 사는 인간들이 코카잎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페루의 현대 미술관에서 코카잎에 관한 무한히 다양한 용도를 묘사한 그림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독일전차군단은 코카잎을 싫어했다. 마약이라나... 마약 아닌데... 코카잎에서 알칼라이드를 고농도로 추출해 코카인을 만든다면 모를까. 코카 잎을 다린 차는 진통제나 두통약 보다 효과가 탁월했다. 다만 약간의 소화 장애와 식욕 감퇴가 있는 것 같다. 페루에 있을 때 코카잎을 가져갈 수 있냐고 물으니 세관에서 잡는단다. 벌금과 압수. 대신 코카잎으로 만든 차를 가져가라고 하는데 깜빡 잊고 사는 것을 잊었다. 바보.


화산과 야마와 호수

독일전차군단에게 있어 투어는 재앙에 가까웠다. 세 대 모두 궂은 날씨와 도로 사정으로 고장났다. 그들은 거의 아무 것도 본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투어가 만족스러웠다고 자구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misty from orient를 제외하고 서로서로가 최악의 맴버라고 흉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잠결에 이렇게 노래 불렀다.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the life~ 아, 그 노래. 안다. monty python이라는 정신병자들이 만든 영화의 주제가다.

여행 1년 동안 이렇게 개성이 강한 구성은 처음 봤다. 독일전차부대는 3일에 투어를 마치고 돌아가고 싶어 했지만(난 별 이유 없이 찬성) 벨지움의 독기 어린 반대로 무산되었다. 벨지움은 독일전차부대 앞에 대놓고 지금 투어를 마치는 것은 무척 멍청스럽다고 말했다. 독일전차부대는 벨지움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와우! 스위스는 여전히 자기와는 상관없다며 '중립'을 지켰다. (그러니 스위스가 3류 국가가 되가고 있는 것 아닐까?)

틈 나는 대로 그들 각각에게 투어 비용으로 얼마를 줬냐고 물어봤다. 그들 모두 에스빠뇰이 유창했고 내가 에스빠뇰 한 마디도 못하는데 어떻게 사기 안 당하고 여행할 수 잇냐며 의아스러워 했지만, 흐흐흐, 모두 80불씩 주고 투어에 참가했다.

내가 아는 생존 에스빠뇰...

버스 터미널이 어디에요?: 부스 터미날, 아미고?
피삭까지 버스비가 얼마에요?: 피삭 부스, 꾸안또 에스, 아미고?
꾸스꼬에서 뿌노까지 몇 시간 걸려요?: (손가락을 쥐락 펴락 하면서) 꾸스꼬, 뿌노, 꾸안또 띠엠뽀, 아미고?
버스가 우로스에 도착하면 내려 주세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우로스! 아미고! <-- 몇번 반복.
여기가 우로스인가요? : 우로스? 아미고?

안녕하세요? 홀라! 아미고!
방 있어요? : 홀라, 아미고!
방값이 얼마에요? : 꾸안또 에스, 아미고?
싱글룸이 얼마에요? : 솔로! 꾸안또 에스! 아미고!
체크아웃 타임이 언제에요? : (먼저, 시계를 가리키며) 꾸안또 호라, 아미고? (자는 시늉에 이어서 손가락으로 걸어 나가는 표현)
짐 좀 맡아주세요. : 이뀌빠헤! 아미고!
짐 찾으러 왔어요. : 이뀌빠헤! 아미고!
화장실이 어디에요? : 바뇨! 아미고! 바뇨!
화장실 달린 방 주세요: 바뇨! 아미고! 바뇨!

싼 걸로 주세요: 바라또! 아미고!
깎아 주세요: 디스꾸엔또! 아미고! 마스 디스꾸엔또! 아미고! (그리고 애원...)

화장지 있어요? : 띠에네 빠펠, 아미고?
식사 되요?: (말없이 숟가락질 하면 된다)
이해가 안가는데 영어로 말해 주시면 안 될까요? : 노 엔띠엔도. 잉글레스, 아미고?
인터넷 한 시간에 얼마에요?: (손가락 하나만 펴고) 꾸안또 에스, 아미고?

지난 3개월 동안 몇 안 되는 단어로 여행했다. 내가 아는 에스빠뇰은 꾸안또 에스(how much)와 숫자들, 그리고 길에서 줏어들은 몇 단어 정도 뿐. 단무지 정신이라고 하더라. 단순, 무식, 안되면 지랄.

안경 코 받침이 부러졌다. 강력 본드로 붙였다. 전지 케이스가 부서졌다. 망가질 만한 것들은 한 차례씩 다 망가져서 앞으로 망가질 것이 더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내심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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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le de la Luna

항공권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너무 비싸다.

속이 쓰려서 밥이나 먹어야 겠다고 마음 먹고 이름 모를 식당으로 들어갔다. menu especial dia de la madre라... entrada(전채)로 Huevitos de cordorniz, soup은 Chairo paceno, segundo(main dish)로 arroz chaufa와 ensalada classica, pollo a la naranja, 그리고 고구마 한 조각, postre(후식)으로 mouse de chocolate를 먹었다. 10볼리비아노, 1.2$였다. 먹으면서 울었다. 페루에서 시급히 볼리비아로 넘어 왔어야 했다. 세상 어느 나라에서 풀 코스를 2달러가 안되는 돈으로 먹을 수 있나.

점심 시간 무렵에는 사무실들이 문을 닫아 애를 먹었다. 볼리비아의 점심시간이 2시간 가량 되고 여행사나 은행 따위는 12시에 식사를 시작해 3시나 되어야 사무실 문을 꾸역꾸역 열었다. 재개장 시각을 몰랐다. 성수기가 시작되면서 항공권 가격이 오르고 있어 조바심이 났다.

어제까지 640$ 가량 하던 항공권이 오늘은 720$ 정도 되었다. 라 빠스의 중심가 부근의 여행사를 이 잡듯이 뒤졌다. 이틀 동안 안 가본 여행사가 없다. 저렴한 항공권 구매에 관한 몇 가지 방법을 이번에 배웠다. 하지만 하루 차이로 80-90$이 그냥 날아갔다. 망설였기 때문이다. 이 방법이 통할까 하고.

라 빠스의 여행사들은 할인이 무지막지하게 이루어지는 multi carrier combined ticket에 관해 그다지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알아낸 방식은 로이드 아에로 볼리비아노의 산타 크루스->메히꼬시티 티켓과 컨티넨탈이나 델타 또는 유나이티드 에어의 메히꼬시티->로스 앤젤레스 구간 티켓이다. 이 조합이 가장 저렴하고 스톱 수가 적은 방식인데 대개는 직항 노선이나 연결구간 사이에 협약을 맺은 항공사 끼리의 연결편을 제시했다. santa cruz -> miami -> (atlanta) -> los angeles 하는 식으로. 그들이 제시한 티켓 가격은 그래서 1080~1340$ 정도였다. 다시 말해 국제적으로 거의 모든 여행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항공권 예약 프로그램은 일부 유명한 구간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최적화된 항공권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두번째는 여행사마다 그 온라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숙달도가 달라서 최저 항공권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애가 타서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지시를 해주기도 했다. 세번째, 각 여행사가 취급하는 항공권은 특정 항공사로 제한되어 있다. 이를테면 여행사를 고를 때 여행사 윈도우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항공사 스티커를 유심히 살펴봐야 발품을 줄일 수가 있다.

내가 제시한 조합보다 여행사가 제시한 티켓이 더 쌀 거라고 믿었다. 그런 일에는 닳고 닳은 사람들일 테니까. 그런데 첫날 열 댓 군데를 돌아봐도 항공권 가격이 1080$ 이하로 떨어지지 않아 낙심했다. 그럴 리가 없다. 중남미는 그링고들이 떼거지로 놀러 오는 곳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LAB와 UA를 임의적으로 조합한 티켓 가격을 알려 달라고 했다. 750$ 까지 떨어졌다. 다음날 아침부터 뒤져 720$까지 떨궜다. 그들이 제시하는 최저선인 1080$에서 무려 360$이나 가격을 떨굴 수 있었다. 그럼에도 속이 쓰리다. 항공권 예매에 관한 보다 세련된 지식을 갖고 있었더라면, 게으름 피우지 말고 라 빠스라는 도시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있었더라면(지금처럼 좌충우돌하면서 배우는 식 말고) 70-80$을 더 세이브할 수 있었다. 하루 만에 가격이 올랐다. 이집트에서 항공권을 구할 때 망설이다가 하루 차이로 몇백불 날렸을 때는 욕할 놈이라도 있었지만(부시 십새) 지금은 내 머리를 벽에 박아야 한다.

항공권 예약에 관한 몇 가지 기본적인 상식을 알게 되었다. 첫번째, 월요일은 다른 주일보다 항공권 가격이 싸다. 최대 100$ 정도 차이가 난다. 두번째, 국적기는 이국기에 비해 구간 요금이 저렴하다. 이를테면 조합 항공권을 구하려 할 때 해당 국가의 국적기를 이용해 트랜짓(트랜스퍼?)을 조합하는 것이 유리하다. 세번째, 최소한 1개월 전에 예매해야 싼 티켓을 구할 수 있다는 상식이 있지만 버킷 티켓(할인 티켓)은 출발 며칠 전에야 구할 수 있다. 네번째, 여행사가 제시하는 가격만 믿을 것이 아니라 항공사 시간표를 참조하거나 인터넷 항공 티켓 구매 사이트를 참조해 조합 가능한 항공편을 미리 알아두어 여행사에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주 유리하다.

항공권을 구매하기 위해 돌아다닌 시간은 이틀에 불과하지만 항공권 구매에 관해 생각한지는 일주일이 넘었다. LA로 돌아가는 길은 세 가지가 있었다. 1. 유우니 투어를 마치고 국경을 넘어 칠레를 종단해 산 티아고에서 LA로 가는 방법, 2. 루레나바께에서 정글 투어를 마치고 브라질로 넘어가 상 파올로나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마이애미를 거쳐 LA로 가는 방법, 3. 볼리비아 여행을 마치고 라 빠스로 돌아와 국제버스를 타고 페루의 리마로 돌아가 LA행 티켓을 구하는 방법(항공권은 500$ 가량). 세 가지 방법 다 장단점이 있다. 일정이 빡빡한 처지라 여행 경로가 방법 따라 워낙 다양하고 무궁무진해서 네 번째 방법을 택하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서울-LA 왕복 구간 티켓이 원래대로 6개월 짜리였으면 이런 고생 안 해도 되었다. 그래서 내게 항공권을 사기 쳐서 팔아먹은 탑 항공의 그녀가 다시 생각났다. 그녀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돌아가서 종이 비행기 백만개를 접어 그녀의 얼굴에 집어 던질까?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른다.

침대에 누워 허접스럽게 생긴 티켓을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볼리비아에서 미국으로 날아가는 이 티켓에 붙은 세금은 무려 120$ 씩이나 된다. 원래 항공권 가격은 600$ 가량이다. 모험심을 발휘해 산타 크루스에서 하루 정도를 남겨두고 티켓을 구해보는 건데, 그러다가 저렴한 티켓을 구하지 못하면 300$ 가량을 일없이 날리게 되니까 무서워서 시도할 엄두가 안 난다.

이렇게 일이 안 좋게 풀려 나갈 때는 맛좋은 음식을 먹고 기분을 푸는 것이 바람직했다. 멕시코에서부터 간혹 살떼냐를 볼 수 있었다. 중미 스타일의 만두인데 멕시코, 중남미를 지나면서 먹을 때는 그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 허기나 지우려고 길에서 우연히 먹었다.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고국에서 삽질하고 계신 동포 여러분들을 제껴두고 나 혼자 먹고 있으니... 살떼냐 두 개면 배가 찼다. 고작 300원 돈이다. 살떼냐에 여섯 가지 소스를 발라 먹고 마무리로 120원 짜리 오렌지 쥬스를 들이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어젯밤에 바나나를 사려고 시장에 갔다가 잠시 딴 생각하는 바람에 바나나 두 뭉치를 가슴에 안게 되었다. 어? 왜 이렇게 많이 주지? 3kg, 200원 어치였다. 무슨 생각으로 그 많은 바나나를 샀는지 모르겠다... 바나나 때문에 다른 음식을 못 먹게 생겨서 상심했다.

바나나를 먹고 다시 유쾌해졌다.

훌륭한 식사를 하는 민족이니 볼리비아 사람들이 제정신일 수 밖에 없다.
밤거리는 놀랍도록 한국과 흡사했다 -- 안전하고 시끄럽다.

밥을 거나하게 먹고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여행사들은 오후 3시나 되어야 문을 열테니. 그래서 Valle de la Luna(valley of the moon)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감으로 찍어서 내렸다. 시내에서 대략 10km, 골짜기 아래. 정확한 위치다. 적도 부근부터 남반구로 내려 오면서 태양의 위치 때문에 종종 방위 감각을 잃었다. 북반구에 너무 오래 산 탓인 것 같다.

오늘 달의 계곡을 방문한 사람은 다 합쳐서 10명이 안 되었다. 미니 카파도키아 같다. 별 다른 감상은 없었다. 터키에서 훨씬 오래되고 장엄한 카파도키아 버섯을 이미 본 처지라. 한 시간쯤 거닐다가 적당한 곳을 찾아 오줌을 누어 제대로 마무리를 하고 라 빠스로 돌아왔다.


Valle de la Luna. 달의 계곡이라서 로맨틱한 곳인 줄 알았는데 영 황량한 것이... 달 표면 같다.

매트릭스를 보러 갔다. 매표원과 한참을 싸웠다. 그녀는 티켓을 줬다는데 나는 좌석 배정표만 받았다고... 티켓 달라고... 옥신각신 하다가 영화가 시작되어 정직하지 못한 그를 한껏 비웃은 후 지갑을 꺼내 표를 다시 사려고 했다. 어? 그런데 티켓이 지폐 사이에 끼어 있었다. 거스름돈을 받다가 중간에 끼인 것 같다. 망신살이 뻗쳤다. 민망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여러 차례 사과 했지만 토라진 얼굴이 풀리지 않았다. 극장은 의외로 돌비 디지탈이었다.

네오가 개폼 잡고 하늘을 날 때부터(he's doing superman thing)알아봤다. 다음에는 부활일 꺼라고. 뱀파이어들이 누리는 가장 큰 호사가 예수의 몸에서 줄줄 흘러나오는 포도주를 성배에 부어(천사들이 거들 것이다) 우아하게 마시고 거듭 생명을 유지하고 생명을 재생하는 것일께다. 따라서 뱀파이어 구전의 원흉은 창에 찔려 포도주를 펑펑 쏟아내는 예수가 맞다고 본다. 네오는 코드를 사용해 트리니티를 부활시킨다. 그 과정이 좀 더 극적이고 하이테크하게 묘사되었다라면 얼마나 좋을까. 잔 말도 많고... 시스템은 버그 투성이고... 매트릭스의 소스를 들여다보니 아니 이럴수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것이잖아? 이러는 거 아니야? 열쇠쟁이라니. 어쩌면 크립톨로지의 은유가 그렇게 한심하다냐... 매트릭스의 우주관, constructor(generator). 시온의 거리에는 크리슈나(destructor)의 포스터가 팔리고 있었다. 워쇼스키 형제는 그렉 이건의 sf를 봤어야 했다. 창조자에 의해 거듭 '릴로드' 되는 한 사나이의 비극을 봤어야 했다. 새로우 우주의 탄생과 프로세스 랙으로 느려진 시간 속에서 외우주와 상관 없이 영원히 거주하게 된 인간 정신의 복제본을 봤어야 했다. 하다 못해 인과율의 모서리가 부서져가는 우주의 지평선이 등장하는 그의 충격적인 단편이라도... 쌈마이 패치워크로 충만한 영화가 마음에 안 든다. 철학서 몇 권 봤다는데 시나리오가 고작 그거냐? 어떤 영화에서 인가, 크리스토퍼 월큰이 늙고 염세적인 뱀파이어로 나와 지껄이는 웅변적인 몇 마디가 훨씬 더 그럴듯 하다.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를 쓰레기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말하자면 cause and effect에 따라 머리 속에 든 게 없어서 그렇다는 결론이 나온다. 쌈마이 워쇼스키. 아... 정말, 현대과학기술의 철학적 액기스가 가득 담긴 성배를 맛보고 디지탈 영생을 얻고 싶다. 액션 뽕짝 쌈마이 (짜가) 시뮬라시옹 말고. 액션도 많은데 영화가 왜 이렇게 구질구질해 보일까. to be concluded. 그건 멋졌다. 하하하. 거지같이 만들어 놨어도 결론을 내리겠다는 정신은 정말 훌륭하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 왈, "광신도 집단들이 미래의 위험한 전쟁을 준비 중인 파키스탄이 바로 악마의 집"이라고 주장했다. -- 신문 기사 중. 어렸을 때 앙리 레비의 소위, '철학서'를 읽은 적이 있었다. 취향에 안 맞는 작자로 여기고 있었다. 악마의 집? 여전하군.

"여행상품 : 7월 17일까지 스리랑칸 항공을 이용한 특별상품이 출시됐다. 목요일 출발 5일 상품(128만원)과 월요일 출발 6일 상품(144만7000원). 정상가보다 15% 이상 할인된 가격이다. 숙소에 따라 요금 차이가 있다. 클럽메드 코리아(www.clubmed.co.kr)" -- 어, 생각보다 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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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Paz

여행기/Bolivia 2003. 5. 27. 18:34
Puno - border - Bolivia Copacabana - La Paz 12hrs.

아침 일찍 일어나 La Paz행 버스를 탔다. 왠 일로 아무 사고 없이 버스가 잘 가나 싶더니만 경찰 체크포인트에 차가 멈춰서 조사랍시고 설문지를 돌린다. 문항을 살펴보니 외국인 여행자들을 상대로 페루의 관광 시스템에 관한 만족도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대체 어느 나라가 공권력을 앞세워 관광객 설문 조사를 한다며 잘 가던 버스를 한 시간 넘게 세워둘까. 설문지를 신랄하게 작성하고 나니(그래도 페루는 좋았다) 고생 하셨다면서 기념품을 준다. 버스가 가다가 다시 멎었다. 창밖으로 수떼! 수떼!를 외치는 걸 보니 또 데모구나... sute는 suit가 아닐까 싶다. Puno 사람들은 좀 무서웠다. 아스팔트에 돌 뿐만 아니라 깨진 유리병 조각을 깔아놓았다. 4시간 지체.

국경에서 여권 복사본을 달란다. 볼리비아는 과떼말라와 더불어 한국에 대한 감정이 아주 안 좋은 나라로 알고 있다. 이민국 사람들이 어째 다소 희극적으로 보였다. 군복 탓일까.

여행 하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지나온 국가들의 색채 이미지: 미국 노랑, 멕시코 낡은 주황, 과떼말라 회초록, 엘 살바도르 검정, 온두라스 황금색, 니까라구아 연두, 꼬스따 리까 은색, 빠나마 엷은 하늘색, 뻬루 짙은 초록, 볼리비아 채도가 낮은 빨강. 지나가면서 색깔이 바뀌었다.

꼬빠까바나에 하루쯤 묵어보는 건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라 빠스(라 빠스는 어두운 녹색)까지 버스표를 끊어놓은 것을 후회했다. 띠띠까까 호수에 면한 조용하고 편한 도시 같다. 아름답다. 베리 매닐로우의 노래가 여기를 무대로 한 것인가? 로라라는 이름의 쇼걸이 있었습니다 라고 시작하는 노래. 꼬빠까바나에서 내려 눈에 띄는 호스텔에 들어가 뒷일을 보고 관광버스 차장의 지시로 버스를 갈아탔다. 그 동안 옆 자리의 에쿠아도르 인한테서 벼룩이 옮았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벼룩은 통했고 그의 출입국 카드 작성을 도와줬다. 워낙 많이 작성해 봐서 빈칸 채우기에 불과했다.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넘어오면서 풍광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설산들이 열을 맞춰 왼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페루의 어떤 현대 화가가 설산을 인격화 해 표현한 그림이 떠올랐다. 설산은 그의 그림처럼 생겼다. 히말라야 같이 위압적이지 않고 마치 흰 머리와 흰 수염이 얼굴을 덮은 늙은 할아버지처럼 평원을 말 없이 지켜보고 있는 듯 했다. 늙었지만 죽지 않은, 죽을 것 같지도 않은 정정한 노인네 같다.

흙벽돌로 지은 뒤숭숭한 가옥들이 눈에 띄었다.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보트로 호수를 건너는 동안 내가 탔던 버스는 별도의 목조선에 올라 호수를 건넜다. 가라앉을 것처럼 위태위태한데 용케 건너온다. 띠띠까까 호수는 변함없이 맑았다. 호수 중간에서 엑스칼리버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오... 라 빠스... 저 멀리 황금색으로 물든 설산을 배경으로 석양 속에서 라 빠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가지를 형성한 비탈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진 허름한 콘크리트 건물군은 다마스커스를 연상시켰다. 어째서 도시 이름이 평화(paz = peace)일까. 평화가 없기 때문인가?

7시간이면 와 닿을 곳을 12시간 걸려서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를 전전했다. 아직 성수기가 시작되지 않았을텐데 숙소 구하기가 힘들다. 거리에는 그링고가 우글거렸다. 한 시간 넘게 비탈을 오르락 내리락 하니 기진맥진했다. 간신히 25 볼리비아노 짜리 숙소를 잡았다. 3.3$짜리 치고는 깔끔했다. 배고프다. 짐을 내려놓고 식당을 찾아 돌아 다녔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밥 먹으려면 시장에 가라.' 라고 LP에 적혀 있었다. 시장에 서서 접시를 받아들고 이름 모를 음식을 먹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거리에서 이젠 딱히 신기하게 여길 만한 것이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투어 만이 남았을 뿐이다.

가이드북을 읽어보니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가 최후를 마감한 곳이 볼리비아의 어떤 작은 도시 근처에 있는 광산이라고 하더라. 아, 잊지못할 그 영화의 한국어 제목과 마지막 프리즈가 떠올랐다. 그때 흘렀던 노래가 raindrops falling on my head였던가?

선댄스: 오늘은 내가 쏠께. 내일은 니가 쏴라.
부치: 좋은 생각이야. 넌 명사수니까.

-_-

볼리비아는 그러니까,

1. 체 게바라가 빨지산을 하다가 볼리비아군에게 죽음을 당한 곳
2. 베리 매닐로우가 젊은 날의 잊지못할 추억을 노래한 곳
3. 전설적인 강도단 부치와 선댄스가 볼리비아군에게 벌집이 된 곳.

이렇게 슬픈 사연이 많은 곳 임에도 옆 방에서는 이스라엘리 남녀가 헉헉대고 있었다.

투자의 세계에 엔지(NG)는 없다 - 김준형
옆집은 뭘해먹지 - http://wwww.menup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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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 페테르부르크 - 세계3대 박물관 에르미타지 박물관.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삼위일체 다리 등. 삼위일체 다리?

부산∼광주 통일호 운임 8,300원. 우등고속 18,700원과 일반고속 12,700원의 절반. 8h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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