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밤은 여자 셋과 잤고, 둘째날은 다섯 명과 잤고, 세째날은 네 명과 잤다. 볼리비아 남서부 3박 4일 투어의 결과다.
적응이 안 된다.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넘어온 후 태양의 위치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동에서 떠서 북을 지나 서로 진다. 남위 20도다. 이성은 잘 알고 있다고 비명을 지르지만 길을 걸어갈 때 동서가 감각적으로 헷갈렸다. 북두칠성은 북쪽 지평선에 낮게 깔려 있다. 아... 미치겠다. 길 찾기는 거의 본능적인 것이다. 내 뇌의 오래된 부분은 아직도 북위 36도에 살고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학생들이 많아 공기가 상큼했던 오루로를 떠나 유우니에 도착하니 9.30pm. 내리자마자 여행사에 들러 채 1분도 안 되어 70불로 낙찰을 봤다. 다른 에이전시를 돌아봤지만 80불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밤 늦은 시각이라 눈에 띄는 아무 숙소나 잡고 들어가서 누웠다. 추웠다. 추워서 침대 바깥으로 나가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아침, 이런 저런 여행사에서 어중이 떠중이들을 모아 투어 팀을 후다닥 만든다. 투어 개시 시각인 10시에서 1시간 늦었다. 한두 번 해 보는 것도 아니고, 원래 투어란 것이 그러려니 생각하고 짐을 여행사에 맡긴 후 차에 올랐다. 어젯밤 리스트에는 아르헨티나인 3명, 그리고 국적이 불분명한 두 명이 기재 되어 있었다. 차량의 정규 수용 인원이 6명이니까 내 이름만 쓰면 리스트가 완성되는 것이다. 사기인 줄 알면서도 서명했다. 안 그러면 그 밤중에 투어 맴버를 찾으러 레스토랑을 전전해야 하니까. 아니면 하루를 까먹던가.
우리 그룹의 여섯 명 중 나를 뺀 다섯이 여자였다. 셋은 독일 출신, 하나는 스위스, 하나는 벨지움이었다. 차량에 차례차례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향후 나흘 동안 먹구름이 피어오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다 다를까, Salar de Uyuni(소금 평원)에 도착하자 마자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방사상으로 흩어졌다. '개성'이라면 나도 어디가서 한 몫 해내는 편인데... 정말 개성 만점 맴버들이다.
Salar de Uyuni와 개성 만점의 투어 그룹 맴버들
왜 그룹 맴버가 중요한가. 나흘 동안 숙식을 같이 하면서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그룹 맴버를 고르지 않고 그냥 투어를 한 것이 실수였다. 정력이 남아돌아 있는 힘껏 날뛰는 벨지움 여자는 그룹 맴버 중 처음부터 가장 두각을 나타냈다. 민폐를 끼치기 일쑤였다. 본인은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독일 여자애 셋은 독일어와 에스빠뇰을 주로 했다. 영어를 잘 못한다. 벨지움 처녀는 혼자 나돌아 다니고, 독일 여자애 셋은(편의상 독일 전차군단으로 칭함) 수퍼 본드로 붙여놓은 것처럼 찰싹 달라 붙어서 자기들끼리 독일어로만 얘기했다.
첫날 밤 식사가 끝난 후 그룹 맴버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서(대체 전기도 안 들어오는 그 깡촌에서 갈데가 어디 있을까) 스위스 애가 늘어놓는 수다 내지는 한탄을 들었다; 자기가 지난 5개월 남미를 여행한 경험 중에서 최악의 그룹 투어 맴버 구성이라고 한다.
스위스 여자애의 영어 솜씨가 워낙 유창해서 의아스러웠다. 너네 스위스 사람들은 독어를 하지 않니? 물었더니 지역 마다 다르단다. 프랑스와 맞닿은 부분은 프랑스어를 하고 독일어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자기처럼 영어를 하는 사람들은 희안한 케이스에 속한다고. 우리 둘은 하루 종일 붙어 다녔다. 나야 시간 많고 할 일은 없었으니까. 날더러 친절하고 매너가 좋다고 칭찬했다. 암, 그룹 투어는 매너로 하는 거지. 스물 네살. international relation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벨지움 여자는 독신이었고(그룹에서 유일하게 나는 다른 맴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회사에서 쫓겨난 후 퇴직금을 받아 3개월째 남미 여행 중. 서른 여섯, 말 끝마다 남자 친구 얘기를 늘어 놓았지만 남자 친구하고 헤어진 것 같다. 가족이 없고 의심 많고 겁도 많고 그룹 맴버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4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지만 취직 문제가 곤혹스러운지 걱정이 많았다.
툭하면 여행 경험 자랑을 늘어 놓았고 그럴 때면 옆에서 기를 죽여놨다. 난 거기서 제일 싼 숙소에 묵었는데 120밧이었지 그러면 어? 난 90밧이었는데? 라고 말했다. 그녀는 동남아시아의 깡촌 오지를 안 가본 데가 없고 다음 목표는 엘 살바도르라며 엘 살바도르 얘길 구질구질하게 늘어놓길래 엘 살바도르 활극을 얘기했다. rubbery를 대낮 거리 한복판에서 두들겨 패고 발른 얘기. 사실 얘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워낙 꼬치꼬치 캐물어서... 날더러 칼 들고 설치는 것들이 무섭지 않냐고 물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모든 남자가 6개월에서 3년 정도 군 생활을 하며 some kind of killing skill을 익힌다고 떠벌렸다. 그러자 예전에 꼴까 계곡에서 총 한 자루만 주면 여기 있는 콘돌들을 싹슬이할 수 있노라고 떵떵거릴 때처럼 갑자기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killing skill이 아니고 some kind of killing skill이다. 거짓말 한 것은 아니다. some kind of..란 '거침없는 깡'과 '이유없는 개김성'을 말하는 것인데... 하여간 여행 하면서 뻥만 느는 것 같다.
독일 전차 군단은 그룹과 사교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라 빠스에 볼 일이 있어서 왔고 이번 투어는 좀 쉬어 볼 요량으로 무리하게 시간을 낸 것이다. 학교에서 전공이 social work라는데 영어를 잘 못해서 그들의 전공이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라 빠스에서 집 없는 애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가르치는 여자애들은 자기들이 딴 나라에서 왔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며 (문맥을 짐작컨대) 남자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싫다나... 내가 약간 노한 기운을 보이니까, 덧붙이길, 하지만 남자애들이라면 자기들이 먼 나라에서 왔다는 것을 여자애들에 비해 금새 이해햇을꺼란다. 당근이지. 우리 남자들은 비행기와 수세식 변기를 발명했고 심지어는 모두가 싫어하는 전쟁에도 재능을 쏟아 부으니까.
놀라운 것은 그들의 '자원 봉사'가 정부나 어떤 단체로부터도 보수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비행기 경비나 숙소 등도 자기들 돈을 들였다. 24~26세 사이. 오리지날 게르만족, 뽀사시한 피부에 금발. 명랑하지만 벨지움 여자를 거의 폭탄 취급했고 틈만 나면 뒤에서 그 여자 이바구를 깠다. 하여튼 투어 내내 온갖 우아를 다 떨었다. 가슴도 빈약한 주제에.
서양인들이 워낙 개성이 강하고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각각 개성이 워낙 뚜렷한 사람들, 특히나 여자들이 그렇게 모이니까 투어 내내 피곤했다. 말이 볼리비아 남서부 3박 4일 투어지, 사실은 '머슴 투어'였다. -_- 여자들이 차량에 꾸역꾸역 올라올 때부터 한숨을 쉬었다. 한국 여자들은 그나마 눈치라도 있어서 괜찮은데 서양 여자애들은 자기 생각 밖에 안 한다. 그 점이 별로...
우리 차는 8인승 은색 랜드 크루저였다. 운전수 겸 요리사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따라서 나는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여기서 볼거리가 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룹 맴버 중 유일하게 스위스 여자애가 가끔 날 위해 통역을 해 주는 정도였다.
4일 내내 포장도로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차량이 그나마 다른 투어 팀에 비해 나아서 먼지를 덜 뒤집어 썼다. 투어 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고, 시작하자마자 잽싸게 가장 좋은 프론트 시트를 점령했다. 그리고 투어 내내 독차지 할 생각이었지만 매너가 워낙 좋다보니, 아니 여자 다섯 명 틈에서 머슴 노릇이나 하다 보니 그 자리에 앉은 적은 그 후로, 없었다.
우리 그룹 투어 차량. 오른쪽 산 밑의 조그마한 점은 우리 그룹 공식 폭탄, 미스 벨지움. 그녀는 대체 어디까지 갈 생각인가, 그리고 언제 돌아 오려는가... 아아...
밥을 해 먹을 시간이면(주로 야외에서) 가스통과 버너, 식기류를 루프에서 내려야 하는데 여자들이 무슨 힘이 있겠나. 운전수와 둘이서 내렸다. 허름한 숙소에 도착하면 운전수와 내가 짐을 부리는 동안 여자애들은 좋은 침대를 먼저 차지했다. 단촐한 내 짐과 달리 가방 세 개씩은 가져왔다. 내 자리는 3일 밤 내내 문 바로 옆에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침대였다. 걔들이 옷을 갈아 입을 동안에는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덜덜 떨었다. 다섯이다 보니 다섯배로 시간이 걸렸다. 두당 5분씩 잡으면... 뜨거운 물이 떨어지면 불을 지펴 물을 끓였다. 속이 메슥거린다며 자리를 바꿔달래서 이 자리 저 자리로 옮겨 다니다가 결국 뒷좌석의 짐칸으로 쫓겨났다. 여자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꽃동산 투어? 누군가 우리 팀을 보고 내가 부러워 죽겠다는 듯이 찬탄을 금치 못했다. 글쎄다... 그래서 다른 투어 차량이 보이면 담뱃불 꾸러 간다는 핑계로 거기 남자들과 이런저런 사나이스러운 얘기를 나누러 피난갔다.
이들 전부가 싸가지가 없다고 여겨졌던 것은 그 추운 날씨에(영하 15도다) 운전수 혼자 고생하고 있을 때 차량 안이나 숙소에 짱박혀 도와주러 나설 생각을 하지 않는 것 때문이었다. 운전수 손등이 거북이처럼 터졌고 우리 식사가 끝난 후에야 남은 음식 찌꺼지를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혼자 불쌍하게 먹고 있을 때 조차 한 번도 그나마 따뜻한 숙소 안으로 부르지 않았다. 한국 여자애들이라면 그렇게 내버려 뒀을까?
기껏 늘어 놓는 얘기가 여기가 문명화가 되면서 전통적인 삶들이 사라져가고 있어 무척 아쉽다나? 속으로 천한 것들이라고 중얼거렸다. 이들도 먹고 살아야 하고 이들도 문명을 누릴 권리가 있다. 이들도 TV를 보고 전기를 끌어오고 제대로 된 상수도 시설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 좆같은 전통적인 삶인지 빌어먹을 것인지 하는 것으로 원주민을 쇼윈도우 속에서 '전통' 나부랑이 하는 것들로 쇼를 하게 만든 것이 바로 우리 같은 관광객들이다.
여자애들은(유럽은) 현지인과 접촉하지 않았다. 흙바지를 입은 애들과 낄낄거리고 있으면 더럽다는 듯이 차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다시 한번, 한국 여자애들이라면 그랬을까? 그나마 한국 여자애들이 그런 면에서는 좀 나은 것 같다. 그나마.
한국 역시 불과 20년 전만 해도 볼리비아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말하자면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살았다. 30대 이상 이라면 이들 풍경이 낯설지 않고 정이 갈 것 같다. 그 황량한 벌판에 뻘쭘하게 서 있는 축구 골대 두 개가 왠지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흙바닥에서 굴러 다니다가 해거름이 다 되어 집집마다 굴뚝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면 엄마한테 혼난다며 하나둘씩 사라지던 친구들...
불행히도 볼리비아의 촌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사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흘 동안 돌아다닌 마을 중에서 전력선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을 본 것은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변변한 상수도 시설도 없었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꾀죄죄한 모습으로 가난하게 살았다. 그나마 투어 차량이 묵는 숙소는 태양 전지로 축적한 전기를 밤에 한시적으로 쓸 수 있는 정도 였다. 그리고 촛불과 끝없는 먼지...
자연 경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끝내줬다. 지난 1년 여행한 것을 모두 합쳐도 볼리비아의 altiplano(고평원쯤?)의 풍경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평균 고도 3800m(최저 3600, 최고 4900, 모두 gps로 찍어본 것들) 사이에 위치한 드넓은 평원과 그 높이에서 바라보는 '아기자기한' 6000~7000m의 설산과 아름다운 호수들, 얇은 대기를 뚫고 천연덕스럽게 쏟아져 내리는 자외선에 시꺼멓게 그슬린 자갈과 흙, 그 사이로 흐르는 실핏줄 같은 시냇물, 듬성듬성 자라난 고원 억새풀과 야마떼, 그리고 전기 조차 안 들어오는 숙소에서 바라본 지평선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찬란하게 펼쳐진 은하수...
지질학자라면 볼리비아의 알티플라노에 경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내 알량한 지식으로도 이렇게 풍부한 미네랄은 처음 봤다. 화산에서 쏟아져 나온, 말 그대로 엄청나게 다양한 광물질군이다. 준보석류 부터 화석, 온천수, 미네랄 때문에 다양한 색깔을 내는 호수들이 있었다. 예상치 못했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충격과 놀라움이 더욱 컸던 것 같다. 그냥, 볼리비아에 왔으니, 유우니에 왔으니, 유명하다는 투어나 하자는 심정이었다.
사진을 270장쯤 찍었다. 자연경관 만으로 사진을 270장 찍어보긴 처음이다. 그중 130장을 남겼고 파노라믹 뷰를 만들려고 별도로 10장을 더 찍었다. 360도 파노라믹 뷰 만드는 프로그램이 어디있더라... 한국에 가서 찾자.
카메라가 맛이 가서 잘못 찍힌 사진이지만, 이 분위기가 맞다. surreal!
밤이면 영하 15도~30도로 기온이 떨어졌다. 해만 떨어지면 거센 바람과 함께 추위가 밀어닥쳤다. 반면 해만 뜨면 살 것 같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바람은 줄기차게 불어왔다. 마치 화성이라도 되는 것처럼, 식물군은 무척이나 단조로웠다. 주로 해조류(algae)와 이끼류가 강력한 자외선과 칼바람, 기온차에 살아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그 풍광은 티벳 고원과는 많이 달랐다. 누가 볼리비아를 '남아메리카의 티벳'이라고 하는가. 바보 아냐?
수도가 없다보니 화장실에서 쓸 물 조차 부족해 나흘 동안 세수를 하지 못했다. 물론 머슴질 때문인 탓도 있었다. 2리터 짜리 여섯 개 들이 한 박스씩 들고온 생수로 우아하게 칫솔질을 하고 세수를 하는 독일전차군단을 보니 부럽긴 하드라. 난... 지나가다가 냇물이 보이면 얼굴이라도 씻었다. 자연공원이다 보니 비누를 사용할 수 없었다. 얼음장처럼 차갑다. 세째날 온천이 있어서 뛰어들고 싶었지만 여자가 다섯이다... 발 담그고... 그냥... 시시하게... 놀았다... 얼굴이 많이 탔다.
투어 둘째날 오전, 스위스 애가 맛이 갔다. 비포장 도로에서 춤추듯 달리는 차 때문에 화장실에 달려가 게웠다. 오후에는 독일전차군단의 전차 한 대가 연료 역류 현상으로 작동 불능 상태가 되었다. 연료 주입을 거부하고 밤새도록 게웠다. 그녀는 투어 나흘 내내 식사를 하지 못했다. 세째날은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깡촌을 두루 답사했다고 주장하는 벨지움 처녀가 감기와 멀미로 맛이 갔다. 비포장이 처음은 아닐텐데? 희안하게도. 아울러 마지막 날, 그동안 남은 2대로 튼튼하게 버티던 독일 전차군단 마저 궤멸 상태에 이르렀다.
유능한 운전수와 좋은 차 임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로 처참한 투어였다. 운전수가 얼마나 유능하냐면, 4륜 구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연료 절감을 목적으로?) 2륜으로 버텼다. 파워 스티어링 핸들도 아니었다. 우리 차는 다섯 여자의 밍기적거림(그들은 운전수가 게으르다고 하지만 식사를 한 시간 반 하고 이어 차를 마시며 채팅을 최소한 한 시간을 하는 그들이 어째서 운전수 탓을 하는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다른 차량을 추월하고 따돌리고 앞서갔다. 함께 머슴질을 하는 운전수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면서 그의 훌륭한 프로페셔널 서비스에 감탄했다(그가 알게 모르게 우리 팀을 위해 사소한 것 까지 챙겨주고 있다는 점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더더욱 처참했던 것은 이들 다섯 명이 모두 채식주의자라는 점이었다. 나 하나 때문에 고기 식단을 만들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풀을 씹었다. 아침은 달걀과 풀, 점심은 풀과 달걀, 저녁은 풀죽과 더 많은 풀과 더 많은 달걀이었다. 식사는 많은 양이 남았다. 채식주의자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소식을 하는 것 같다. 과일은 첫날 모두 해치워서 마지막 날에는 비타민이 부족했다. 우욱...
3800m의 희박한 대기 속에서 맞바람을 맞으며 '무산소 운동' 열심히 하다 보면 근육이 무척 좋아지는 것 같긴 한데, 영양 배급만큼은 제대로 해야 할텐데... 어느 정도로 심한가 하면 3일 동안 똥이 안 나왔다. 불쌍한 내 몸은 그나마 먹는 풀이라도 완전 연소 시켜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 같았다.
베지타리안 독일전차군단이 식사 중에 천연덕스럽게 한국에도 채식단이 있냐고 물었다. 있는 대로, 사실 대로 말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채식단을 가지고 있노라고. 그런데 한국인의 음식 문화가 최근 10년 새에 급격히 변해 채식단의 다양성이 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고. 내친 김에 한국에서는 식용 식물군 중 약재와 식재를 구분하지 않으며 약재가 곧 식재라고 얘기했다.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지만 전부 사실이다. 나물류의 다양성이 식단에 그나마 남아있는 곳은 절간 정도 밖에 없다. 독풀이 아닌 한 모두 먹으면서 수천년에 걸친 인체실험 끝에 탄생했던 '위대한' 채식단은 사실상 소멸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도 여전히 세계 최고의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 정도 채식단의 다양성을 세계 어느 깡촌에서도 본 적이 없을 뿐더러, 문명권은 문명권 나름대로 식단이 이미 평균화, 균일화 되어 가면서 단조로워 지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식재를 약재로 취급하는 나라라면 중국 정도인데 중국의 나물류가 한국만큼 발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금치를 주로 볶아대니까.
사실 이들에게 화산 지대의 생성과 미네랄에 얽힌 흥미로운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런 데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이들은 그리 냄새가 심한데도 호숫가에 퇴적된 인을 알아보지 조차 못했다. 그들에게 돌들을 보여주고 이게 바로 신석기를 이끈 주역들이라고 설명했지만... 음... 개무시 당했다. 난 머슴이니까?
여자들이 과학기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불평을 늘어 놓아서야 말이 안되는 것 같다. 미국의 '여성 과학 기술 인력 개발 위원회'에 따르면 과학기술계에는 보편적인 성 차별이 존재하며 대부분의 여성들이 과학기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내 생각엔, 여자들은 과학기술에 원래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의 진정한 관심꺼리는 네트웍과 소통인 것 같다. 그래서 유난히 뛰어난 화술을 구사하는 것 같다. 나와 함께 투어에 참여한 여자들은 각각 최소한 2개 이상의 언어를 아주 유창하게 구사했다. 난 모국어인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그러니까... 쓰잘데 없는 돌덩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보다는 쓰잘데없는 돌에 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알고 그와 대화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여자들이 소통을 중시해서 언어지향적인 대뇌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사회생물학의 여러 위험스런 주장과 마찬가지로 목적론적이다. 목적론은 아주 위험해서 이 우주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서슴치 않았다. 교육 받은 사람이라도 목적론과 자연선택을 종종 헷갈려 하는 케이스도 많은 것을 보면... 이 점에서도 여성은 그게 무슨 차이냐고 주장할 것 같다(무식 -_-). 목적론은 받아들이기가 아주 쉽다. 그리고 그것을 합리적이라고 판단한다.
좆데이(굿데이)가 어디서 줏어들은 기사를 인용한 것에 따르면 잘 생긴 남자는 정자의 활동력이 평범한 사람보다 활발하고, 잘 생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여러 가지 능력 면에서 뛰어나다고 한다. 과연 좆데이다! 우리 나라에 이런 신문이 하나 쯤은 있어서 장수해야 한다.
저 한심한 기사의 '그럴듯함'이 목적론이 지닌 '그럴듯함'과 같다. 왜냐하면 잘 생긴 여자는 많은 남자들이 뒤따르니까. 그래서 이런 의구심이 들겠지? 잘생긴 것과 자연 선택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을까?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여(굳이 통계적 조작이 아니더라도) 조사해 본 결과 정말 관계가 있었다! 그래서 저런 얘기가 나온다. 자연 선택이 '무지향성'이라는 것을 백날 강조해도 이런 데에서는 사실 씨알이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무미 건조 하고 재미 없으니까). 저런 기사는 근데 나도 사람들하고 말할 때 울궈 먹는다. 재밌으니까.
일정이 오후 4시에 끝나고 바깥이 몹시 추운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잠들기 전인 9시 까지는 그룹 맴버들이 모여 얘기를 나눠야 했다. 식탁에서 벌어지는 이 끔직스러운 대화는 영어와 에스빠뇰과 도이치, 때로는 프랑세즈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서로 서로 통역을 했다. 첫날은 그나마 다른 투어 차량들이 함께 있어서 다른 팀의 남자들과 얘기라도 할 수 있었지만 둘째날 부터는 창 밖으로 참새 한 마리만 날아가도 까르르 웃어대고 촛불 하나를 주제로 족히 한 시간은 떠들어대는 아가씨들과 얘기하는 것이 대체로 고역에 가까왔다. 벨지움 여자는 담배 알러지가 있었고 스위스는 케첩의 품질에 관해 정신병리적인 증세를 보였다.
독일전차군단의 도이치 진세를 돌파하는 것은 몹시 피곤했다. 그들은 투어 중에도 시즈 모드로 일관했다 -- 춥다고 차 안에 짱박혀 부동의 앉은 자세로 창 밖을 바라봤다. 그 와중에 벨지움 여자는 어디론가 사라져서 언제 돌아올 지 기약이 없었다. 스위스는 부루퉁하게 '중립'을 지키고 있었고,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찬 바람에 차량 주위를 빙빙 맴돌며 담배만 피웠다.
문을 잠그고 파수견처럼 문가 옆 침대에 눕는다. 촛불이 꺼지고 추위와 어둠이 찾아오면 전차 한 대가 괴성을 내며 overthrow를 시작했다. 밤새도록... 이런 저런 충고를 했지만 두 대의 독일 전차가 자기들이 해결하겠노라고 강경하게 막았다. 두 전차 역시 별 대책이 없어 보이는데도.
남미에 와서 최고의 민간 치료술을 배웠다. 코카잎이다. 코카잎은 고통을 비롯한 감각을 제거한다. 걱정근심도 없앤다. 믿기지 않았지만 코카잎은 거의 만병통치약에 가까웠다. '통'자가 들어가는 모든 질환에 효과가 있으며 심지어는 심인성 장애까지 치료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지역에 사는 인간들이 코카잎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페루의 현대 미술관에서 코카잎에 관한 무한히 다양한 용도를 묘사한 그림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독일전차군단은 코카잎을 싫어했다. 마약이라나... 마약 아닌데... 코카잎에서 알칼라이드를 고농도로 추출해 코카인을 만든다면 모를까. 코카 잎을 다린 차는 진통제나 두통약 보다 효과가 탁월했다. 다만 약간의 소화 장애와 식욕 감퇴가 있는 것 같다. 페루에 있을 때 코카잎을 가져갈 수 있냐고 물으니 세관에서 잡는단다. 벌금과 압수. 대신 코카잎으로 만든 차를 가져가라고 하는데 깜빡 잊고 사는 것을 잊었다. 바보.
화산과 야마와 호수
독일전차군단에게 있어 투어는 재앙에 가까웠다. 세 대 모두 궂은 날씨와 도로 사정으로 고장났다. 그들은 거의 아무 것도 본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투어가 만족스러웠다고 자구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misty from orient를 제외하고 서로서로가 최악의 맴버라고 흉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잠결에 이렇게 노래 불렀다.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the life~ 아, 그 노래. 안다. monty python이라는 정신병자들이 만든 영화의 주제가다.
여행 1년 동안 이렇게 개성이 강한 구성은 처음 봤다. 독일전차부대는 3일에 투어를 마치고 돌아가고 싶어 했지만(난 별 이유 없이 찬성) 벨지움의 독기 어린 반대로 무산되었다. 벨지움은 독일전차부대 앞에 대놓고 지금 투어를 마치는 것은 무척 멍청스럽다고 말했다. 독일전차부대는 벨지움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와우! 스위스는 여전히 자기와는 상관없다며 '중립'을 지켰다. (그러니 스위스가 3류 국가가 되가고 있는 것 아닐까?)
틈 나는 대로 그들 각각에게 투어 비용으로 얼마를 줬냐고 물어봤다. 그들 모두 에스빠뇰이 유창했고 내가 에스빠뇰 한 마디도 못하는데 어떻게 사기 안 당하고 여행할 수 잇냐며 의아스러워 했지만, 흐흐흐, 모두 80불씩 주고 투어에 참가했다.
내가 아는 생존 에스빠뇰...
버스 터미널이 어디에요?: 부스 터미날, 아미고?
피삭까지 버스비가 얼마에요?: 피삭 부스, 꾸안또 에스, 아미고?
꾸스꼬에서 뿌노까지 몇 시간 걸려요?: (손가락을 쥐락 펴락 하면서) 꾸스꼬, 뿌노, 꾸안또 띠엠뽀, 아미고?
버스가 우로스에 도착하면 내려 주세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우로스! 아미고! <-- 몇번 반복.
여기가 우로스인가요? : 우로스? 아미고?
안녕하세요? 홀라! 아미고!
방 있어요? : 홀라, 아미고!
방값이 얼마에요? : 꾸안또 에스, 아미고?
싱글룸이 얼마에요? : 솔로! 꾸안또 에스! 아미고!
체크아웃 타임이 언제에요? : (먼저, 시계를 가리키며) 꾸안또 호라, 아미고? (자는 시늉에 이어서 손가락으로 걸어 나가는 표현)
짐 좀 맡아주세요. : 이뀌빠헤! 아미고!
짐 찾으러 왔어요. : 이뀌빠헤! 아미고!
화장실이 어디에요? : 바뇨! 아미고! 바뇨!
화장실 달린 방 주세요: 바뇨! 아미고! 바뇨!
싼 걸로 주세요: 바라또! 아미고!
깎아 주세요: 디스꾸엔또! 아미고! 마스 디스꾸엔또! 아미고! (그리고 애원...)
화장지 있어요? : 띠에네 빠펠, 아미고?
식사 되요?: (말없이 숟가락질 하면 된다)
이해가 안가는데 영어로 말해 주시면 안 될까요? : 노 엔띠엔도. 잉글레스, 아미고?
인터넷 한 시간에 얼마에요?: (손가락 하나만 펴고) 꾸안또 에스, 아미고?
지난 3개월 동안 몇 안 되는 단어로 여행했다. 내가 아는 에스빠뇰은 꾸안또 에스(how much)와 숫자들, 그리고 길에서 줏어들은 몇 단어 정도 뿐. 단무지 정신이라고 하더라. 단순, 무식, 안되면 지랄.
안경 코 받침이 부러졌다. 강력 본드로 붙였다. 전지 케이스가 부서졌다. 망가질 만한 것들은 한 차례씩 다 망가져서 앞으로 망가질 것이 더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내심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