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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스트로스 타계

잡기 2009. 11. 17. 21:58
하도 바빠 블로그를 작성할 시간이 없었다. 생각난 김에 써버리고 퍼블리시 하자.

LCROSS 덕택에 달 표면에 상당량의 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달과 인연이 없으며,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내가 이런 얘기에 왜 환호성을 지르게 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기념으로 블로그에 달을 달았다. 달을 보니 올해 사자자리 유성우는 볼만 하겠는데?

'여기 원숭이, 팬더 그리고 바나나가 있다. 셋 중 두 개를 묶어야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택하겠는가?' -- EBS의 다큐 프라임에서 본 문구. 원숭이와 팬더를 묶었더니 서양식 사고방식이란다.

레비 스트로스가 돌아가셨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의 책을 읽을 무렵(한 15년 전이려나?) 대략 4-5년의 시기가  내 몸에 때처럼 끼어있던 서구식 사고방식 대부분을 재구성하던 시기였다 -- 말이 좋아 재구성이지 서구에 대한 혐오감이 상당했던 시기였다. 내가 내 자신의 바탕을 이루는 것을 그렇게나 싫어했지만 여전히 서구식 사고방식으로 현상과 사물을 대했다.

한 삼십년은 기술자가 되려고 애쓰느라 세상사에 관심이 없었다. 내 관심사는 먹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더불어 사는 공존공영의 문제도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력에 도달하느냐는 것. 그렇지만 기술적으로 비겁하게 살지 말자고 다짐하곤 했다. 말 그대로 꼼수를 부리지 않고 알고리즘과 로직으로만 승부하겠다고. 요즘은 절차, 공정, 효율의 문제로 생각보다 가슴아픈 타협을 하면서 근근이 기술자의 양심을 팔아먹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딜버트의 넌센스 시대는 가고 막되먹은 오피스의 시대가 왔다.

"짐은 내 적이죠. 하지만 짐의 가장 큰 적은 그 자신이라는게 밝혀졌죠. 내 적의 적은 내 친구니까 실제로 짐은 내 친구죠. 하지만 그의 가장 큰 적은 그 자신이기도 하니까 내 친구의 적은 내 적이고 그러니까 짐은 내 적이 되는 거죠. 하지만..." -- The Office, S6E7 논박의 여지가 전혀 없어 보이는 사무실 넘버쓰리 드와이트의 논리. 이참에 나도 dunder mifflin의 티셔츠를 구입해서 입고 다닐까? World's best boss 머그 잔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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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는 안 되지만 주말에는 지하철 양끝 칸에 자전거를 세울 수 있게 되어 있다. 사실 접이식 자전거라서 주중에도 얼마든지 들고 탈 수 있었다.

모토롤라에서 드로이드폰이 나왔다. 안드로이드폰의 국내 출시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 동안은 이 거지같은 애니콜 Windows mobile로 어떻게든 버티는 거다. 구글은 구글 내비게이터를 무료로 공개했고, 언제 망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Garmin과 Tomtom의 주가는 구글 내비게이터의 발표 즉시 곤두박질쳤다. 망해도 싸다.

주식투자를 시작한 지 3개월 가량 되었다. 어보브 반도체로 투자액의 50%를 말아먹고 하이닉스와 모두투어로 그 절반을 되찾았다. 올해 말이나 내년 중 투자하려고 생각하는 업체는 두 군데. 주식투자가 생각보다 재미가 없고(돈을 벌거나 말거나 그런 차원이 아니라 그냥 재미가 없다) 흡사, 흐르는 강물에 비친 굴절된 이미지를 좇아 헛발질로 송어를 낚으려고 애쓰는 듯한 기분. 대충하고 말자. 취향에 안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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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별 일 없으면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낙엽이 다 떨어지기 직전에 물향기 수목원을 방문했다. 갑자기 왠 메타세콰이어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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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마을, 딸기가 좋아. 에 가려고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갔다. 방콕 중심가의 백화점에 온 듯한 착각. 루이 비통인지 돌체앤 가바나인지 매장 앞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젊은이들을 보았다. 나는 키가 175cm 밖에 안 되는 루저라서 루이 비통 노트북 가방을 살 능력도 없고, 있어봤자 돼지목에 진주목걸이다. 세미나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노트북 가방은 튼튼하고 실용적이다. 매년 하나씩은 받아 잘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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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치고는 눈빛이 총총하게 생겼다지만 왼쪽의 또래처럼 '글자를 모르니까 답답해. 어서 글자를 배웠으면 좋겠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어린 가우스는 시계바늘을 보고 어른들이 시간을 말하는 것을 듣고, 순전히 유추만을 사용해서 시간 읽는 법을 깨우쳤다. 어린 가우스는 심지어 헬로키티 TV컴퓨터를 사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았다. 천재는 고사하고 다섯살도 안된 아이에게 그건 돼지목에 진주목걸이랄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물으니, 벨로시랩터가 되고 싶어요. 라고 말했다. 아이의 친구는 20여마리의 공룡 장난감이다. 아침, 저녁으로 공룡 책을 읽고 공룡들과 목욕하고 공룡 영화를 보고 공룡 장남감을 가지고 놀았다.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벨로시랩터처럼 크르릉거리며 위협한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공기 위를 걷는 사람들, 가브리엘 워커. 첫 장부터 재미있더니 마지막 장까지 흥미진진했다. 지구 대기를 다루는 이 과학교양서는 무척 지루하고 재미없는 주제를 관련 인물들의 격정적이고 열렬한 모험 연대기로 바꿔놓았다. 남극에 거주하는 괴상한 과학자들은 소문으로만 알고 있었다. 제임스 러브록이 과학사의 불운한 희생양이 되는 대목에서는 경악하기도 했고 마르코니의 뚝심과 열정은 감탄스러웠다. 타이타닉과 무선통신에 얽힌 이야기는 신선했다. 도서관에서 무작위로 책을 고르다가 단지, 차세대 과학저술가라는 가브리엘 워커의 평판에, 어디 얼마나 대단한가 좀 보자는 심술 때문에 빌려 읽었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심지어 여성 저술가들에게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유머 감각마저 있다. 책을 뒤적여 적당한 인용구를 당장 찾기 어려워(이를테면 밴 앨런의 결혼 스토리) 반납하기 전에 무작위로 둘 만.
문제는 우리가 산소를 호흡에 사용할 때마다 일부 전자가 떨어져나온다는 데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숨만 쉬고 있는데도 우리가 소비하는 산소 중 약 2%는 자유 라디칼로 변한다. 격렬한 운동을 할 때에는 그 비율이 10%로 커진다. 어떤 계산에 따르면, 1년 동안 단순히 호흡하는 데서 입을 수 있는 잠재적 피해는 흉부 X선 사진을 1만 번 찍을 때 방사선으로 입는 피해와 비슷하다.

밴 앨런은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방사능 구름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그렇지만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1973년, 무인 탐사우주선 파이어니어 10호의 청정실에서 작업을 하던 밴 앨런은 은밀히 흰 장갑을 벗고 거기에 지문을 남겨놓았다. 알데바란을 향한 200만년 이상이 걸리는 이 우주 여행에는 밴 앨런의 지문도 함께 승선하고 있다.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  -- '아무래도 지금 미사와 학원은 과학 숭배를 축으로 한 사이비 종교로 변한 듯하다' 이 애니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과 마찬가지로 주제와 목적이 없는 듯. 요즘 애니의 추세인가? 아무리 빙하기라지만 일본 SF 애니는 다 어디로 사라진걸까...

혼블로워 시리즈를 이제야 모두 읽었다. 하루 30분, 주 4일 독서로는 제대로 책을 읽기 어렵다. 는 것을 알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일곱 개나 되었다. 그래서인지 혼블로워 시리즈는 전쟁 역사서에서 보곤 하던 제너럴십에 관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내가 매정하고 냉정하며 목표를 위해서 타인과 나를 희생하고 채찍질하고 엄격한 기준을 들먹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쩌면 사이코패스 아니, 리더에 적합했다. 그렇지만 내가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Stargate: Universe. 시작이 좋았지만 5화에 이르러 stargate의 고질병인 닭대가리 저질 각본이 다시 재연되는 것을 보고 이 시리즈도 보다 말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기우 -- 흐리멍텅하고 흐지부지한 아틀란티스는 끝까지 보지 못했다. 캐릭터 중 일부는 밥맛떨어지게 BA를 닮았다. 스타게이트 시리즈는 군인과 과학자에 관해 바보스럽고 허황된 스테레오타잎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그런 캐릭터나 각본이 재밌을 리가 없다. 누가 대충 함량만 지키면, 말하자면 중국산 대두를 92% 사용하고 메주 페이스트는 고작 23% 가 안 되는 그런걸 된장이라고 시장에 내놓으면서 된장이라고 우기는 것을 인정하는 종류의 '일반인'이 아니라, 100% 국산 메주와 천일염을 사용하는, 친정에서 얻어온 된장이 된장이라고 믿는 종류의 순혈주의를 지향하는 SF 원리주의 오타쿠라서 한국에서 대부분이 SF라고 주장하는 갖잖은 것들에 내심 콧방귀를 즐겨 끼며, 가식적이고 위선적이고 정치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럼 100% 메주에 버금가는 SF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에 관한 친절한 설명은 비평가에게 맡기는 비겁함마저 제대로 갖췄다고 스스로 생각. 다만, 'SF 원리주의 오타쿠'란 1970년대 과학만능시대의 기억이 돌이킬 수 없게 임프린트 되어 서사의 형태로 주어진 매체에 대한 적절한 반응과 행동양식을 반사조건으로 할 뿐만 아니라 그의 내적 가치체계가 심대한 영향을 받아, 예를 들어 안타레스행 우주선에 탑승할 자격이 주어진다면 기꺼이 가족과 친지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밑도 끝도 없는 항해에 지원할 정도로 종교적 열광 상태에 빠져버린 미치광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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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나 미덕이 없는 스타게이트 시리즈지만, 스타게이트: 유니버스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고작 하루 더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정치가다. 더더욱 마음에 드는 것은 극 초반의 아이캐치 역할을 할 뿐 곧 잊혀질 인물이란 것. 파이어플라이 이후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사용하는 카메라웍과 연출은 뭘 봐도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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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re in the Blood: 아무래도 내가 이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 같다. 이런 도서관이 동네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숨을 쉬며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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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기에 들어 헤르미온느가 얼굴이 이 모양이 되어서... 오 쉣! 아줌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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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ying Gravity. 최초로 금성 표면에 발을 내려놓으며 여자가 말했다. 'Mark the day with a footprint. A step forward in the path of man.' 행성에 발을 들여놓을 때 할만한 썩 좋은 대사다. Defying Gravity는 2기까지 가지 못하고 커튼을 내렸다. 로스트식 전개와 휴머니티로 많이 찌질해 보여도, 각본이나 원작, 연출, 음악 등이 나쁜 것은 아니어서 어떻게든 잘만하면 괜찮은 드라마가 될 뻔 했는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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