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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17 제주도 여행 1/3
보르부드르 유적과 화산을 보러 인도네시아에 가야 하는데...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화산이 터지고, 쓰나미가 몰려오더니 이번에는 화산 폭발/지진/쓰나미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렇게 재수가 없다.

제주도에 가기 전에 윙버스 제주 미니 가이드 pdf 파일과 제주 시외/시내버스 노선 정보 파일을 넣고, 버그 투성이 adobe pdf viewer를 설치했다. google 지도로 제주 맛집과 숙소 정보를 황급히 정리하고 휴대폰의 구글 지도와 연동되는지 확인했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 여행 계획을 짠 것이 아니라서 그냥 그 정도만 정리하고 말았다.

김포공항까지 공항 리무진 비용은 편도 6천원에 80분 걸리고 공항 리무진 타는 곳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 지하철도 80분 걸리고 버스+지하철 환승해서 1500원이다. 후자가 낫다.

이스타 항공기 보잉 737
ESTAR 항공의 제주행 보잉 737 항공기. 터보프롭일꺼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제트기네? 평일 편도 19900원. 얼마 전 대구에 다녀올 때 새마을-KTX 환승 편도 가격이 25300원이었다. 가격에 맞추느라 항공권을 아내와 따로 끊었다. 별로 제주도에 갈 생각이 없지만 막상 쉰다고 갈 데가 없어 아내가 제주 놀러가는데 꼽사리 끼었다.

아내는 내리자마자 셔틀 버스를 타고 박씨네 게스트 하우스로 갔다. 할 일이 없어 제주 공항의 관광객 안내 센터에서 올레길 팜플렛을 얻고, 제주 공항 안에 있는 시내버스 키오스크에서 몇 번 버스를 타야하는지 터치 스크린을 누르며 시간을 보냈다.

이스타 항공 제주 공항 내 카운터에서는 올레 패스포트를 15000원에 판다는데, 굳이 사고 싶은 생각이 없다. 국경을 이리저리 건너면서 출입국 스탬프 찍는게 재밌긴 한데, 여기가 무슨 외국이라고 애들 숙제 검사 맡듯이 스탬프 찍으러 동네방네 위치 찾아 돌아다니는게 우스워 보였다.

시내버스를 타고 제주시를 배회했다. 대부분의 버스 후불 신용카드가 안 먹는단다. 버스로 환승하려면 제주시 전용 T money 카드를 구입해야 하는데 카드 가격이 5천원이던가? 제주 시내/시외 버스를 자주 타는게 아니라서 딱히 쓸모가 없어 보였다.

92번 버스를 타고 돌고돌고 돌아 종착지 부근인 제주항에서 내렸다. 다섯시 반이 넘자 해가 지고 어두어졌다. 컴컴해질 무렵에야 사람들이 없는 을씨년한 길을 걸어 사라봉에 오르기 시작. 인적 없는 곳에서 배낭을 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오르는 것이 예전에 배낭여행 하던 때를 떠오르게 한다.

제주항
사라봉 중턱에서 휘황한 항구의 불빛을 보았다. 서울/경기와 달리 날씨가 따뜻해 점퍼는 일찌감치 벗었다. 예쁘게 생긴 산지 등대를 지나 내친 김에 별도봉까지 갔다. 야트막한 정상에 서니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땀을 식히며 내일 타고 갈 97번 국도의 궤적을 눈으로 쫓아 갔다.

별도봉에서 다시 사라봉 정상에 올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훌륭한 산책 코스다. 휴대폰을 꺼내 구글 지도를 열고 숙소로 정한 '용두암 해수랜드'를 찾아보았다. 약 6km 가량? 내일 스쿠터 빌릴 가게가 용두암 근처에 있고, 제주도에 놀러올 때마다 구경하지 못한 용연도 보고, 가다가 밥도 먹어야 해서 겸사겸사 더 걷기로 했다.

삼성혈 부근의 삼대국수회관에서 5천원짜리 고기국수를 시켰다. 돼지뼈로 육수를 내서인지 순대국에 수육 몇 점 얹고 국수를 말아 놓은 것 같다. 맛도 딱 순대국에 말아먹는 국수 맛이다. 생각보다 양이 꽤 많아 배가 든든하다. 계산할 때 아줌마가 잘 가라며 노래를 불러줘서 웃었다.

배낭을 메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구글 지도가 있으니 길을 헤멜 일이 없어 좋다. GPSr은 귀찮아서 꺼놨다. 아내, 딸 보내놓고 혼자 무슨 궁상이냐 싶겠지만 이 편이 한가해서 좋다.

용연
용연에 도착. 조명 때문인지 이무기 열 마리 쯤은 튀어나와 아웅다웅 다툴 것 같은 분위기다. 용연 부근이 올레길이라서 빨간색/파란색 리본이 보였다. 11월 중순의 늦은 시각이라서인지 관광객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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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암으로 가는 길. 길바닥에 적힌 제주 방언. 한글은 한글인데 대체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혼저옵서예' 하면, 그래 혼자 왔다 낄낄, 하고 말지. 인적 없는 용두암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며 관광했다. 갯바위에 걸터앉아 한치 회에 소주 한 잔 하기 딱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어떤 할아버지가 비닐봉투를 들고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아... 맛있겠다. 하지만 내일은 좀 일찍 일어나야 될 것 같아 소주는 관뒀다.

용두암 해수랜드
오션뷰가 호텔 뺨치는 용두암 해수랜드 찜질방에서 정신없이 자다 깨보니 10시가 넘었다. 어제 배낭 매고 한 12km쯤 걸었더니 피곤했나 보다.  이럴 때 요즘 애들은 '시망'이라고 탄식하던가? 7시엔 일어났어야... 뭐 그렇다고 무슨 변변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시망=시발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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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길거리 아이템. 태양전지 LED 조명등.

스쿠터 대여점에 도착. 면허증을 안 가져왔다. 하여튼 면허증 상관없이 빌려주는 것 같지만, 125cc는 무리고, 야마하 줌머를 고르니까 주인 아저씨가 속도가 50kmh 밖에 안 나온다며 다른 걸 권해줬다. 중국제인데 80kmh까지 나온단다. 이틀 쯤 스쿠터를 임대해 타다가 중문에서 반납하면 좋을 것 같아 물어보니 중문에 반납하려면 반납료 2만원을 따로 내야 한단다. 스쿠터 24시간 임대료는 2만원.

옛날에 처음 스쿠터를 타 보다가 울퉁불퉁한 논길에 자빠져서 발등 뼈가 부서졌다. 그리고는 태국의 어떤 섬에서 20여분 타본 것이 경험의 전부다. 속도가 좀 빠른 자전거하고 다를 것이 없어 겁이 나진 않았다.

배낭을 짐받이에 매고 조작 방법을 잠깐 배우고 시험 주행 해보라기에 몰고 나왔다. 나와서 가게로 돌아가지 않고 그냥 갔다. 속도 좀 내다가 택시와 충돌할 뻔 했다. 아무래도 속도감이 없어 불안하다. 하지만 여자들도 스쿠터 쯤은 탄다. 가다가 시동 거는 연습을  했다. 익숙해지니 자신감이 생긴다.

자전거 타던 버릇 때문에 번번이 도로 가장자리에 붙었다. 시내에서는 차량에 막혀 50kmh 이상 밟기가 쉽지 않지만 시내를 벗어나자 쉽게 70kmh까지 올라간다. 97번 국도에 들어섰다. 오르막에서는 55kmh 이상 나오지 않았다. 아, 이래서 다들 125cc를 타는구나.  

투어에 딱히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고, 같이 간다던 황씨가 오름에 가고 싶어해 그럼 스쿠터 임대해서 돌아다니자, 뭐 그런 막연한 생각을 어젯밤에 했다. 옛날에 자전거 타고 성산에서 1112번 국도 타고 성판악 근처까지 올라간 적이 있는데 꾸준한 오르막길이라 힘은 들었지만 풍광이 멋져 다음에 다시 제주에 오면 꼭 다시 그 길을 가고 싶었다. 사실 그땐 비가 쏟아져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황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 비행기표를 환불했다.

배가 고파서 수퍼에 들러 바나나 우유 한 병, 김밥 한 줄, 500ml짜리 물 한 병을 샀다. 목장갑도 하나 샀다. 스쿠터를 좀 타 보니 익숙해져서 속도는 낼 수 있지만 손이 시리다. 목 장갑을 끼고, 마침 가방에 버프가 있어 목에 둘렀다.

변변한 지도가 없어 툭하면 스쿠터를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 구글 맵으로 어디쯤인지 확인했다. 장갑을 끼고 있어 정전식 터치 스크린을 건드릴 수 없어 좀 불편하다. 그러고 보니 어떤 업체에서 정전식 터치스크린을 조작할 수 있는 장갑을 판매한다는 걸 며칠 전 기사에서 보았다.

97번, 1118번, 1112번 국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덜덜 떨면서 경치 관람하다가... 목적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바보스러워 휴대폰을 꺼내 거문 오름, 비자림, 만장굴, 다랑쉬 오름, 아부 오름, 용눈이 오름 정도로 코스를 잡았다. 사려니 숲길도 넣었다가, 울창한 숲길을 걷는 것이 내 정서를 안정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 적이 없어 뺐다(맨날 산에 가서 하던 거잖아?).

웹 브라우저로 검색해 보니 거문 오름은 가기 전에 예약을 필히 해야 한다더라. 전화하니 이틀 전에 예약을 했어야 한단다. 스쿠터 타고 다니는 김에 이번 여행의 테마를 황급히 정했다; 제주도 세계자연유산 지정 기념 관광이다. 테마 때문에 퍼뜩 떠오르는 것이 산굼부리, 거문 오름, 만장굴, 성산일출봉, 주상절리를 비롯한 남서부 해안 따위 였는데... 안가본 곳이 거문 오름과 만장굴, 이중 거문 오름은 아쉽지만 제끼고 일단 다른 오름들이 가까운 비자림 부터 가자.

비자나무
비자나무 단일 수종으로 이루어진 숲. 나무들이 피톤치드를 풍성하게 뿜어낸다고 선전하는데 코가 안 좋아서인지 잘 모르겠다. 집 진드기 등으로 아토피가 유발된 아이에게는 피톤치드가 직빵인데, 피톤치드가 잔벌레와 박테리아를 잡아줘서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고 언젠가 TV 다큐로 본 적이 있다. 피톤치드는 나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뿌리는 일종의 독소니까... 숲길이 생각보다 비주얼이 훌륭하다.

새천년 비자나무
일가족이 놀러와 '새천년 비자나무'를 한참 쳐다본다. 신선한 숲길을 걸으며 슬쩍 김밥을 꺼내 먹고 물을 마셨다. 사람이 거의 없어 더 좋았다.

비자나무
비자나무(클릭=확대). 분위기가 멋진 나무다. 번개맞은 비자나무가... 작년인가? 1억쯤에 팔렸다는 얘길 나중에 들었다. 번개가 100번 치면 100억이다. 번개 많이 맞길 빌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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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좋은 비자림에서 밥 먹고 흐뭇해서 셀프샷. 어? 근데 스쿠터 열쇠가 어디갔지?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아차 싶었다. 스쿠터에 그냥 꽂아두고 왔다. 주차장에 가보니 잘 서 있다. 휴대폰을 켜고 어디로 갈지 찾아 보았다. 그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마킹해 놓은 지도 보고 웹질 하며 갈 곳을 정하다니...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방식의 여행이다.

다랑쉬 오름
길 건너편은 390m 짜리 다랑쉬 오름. 다랑쉬 오름 입구까지 갔다가 올라갔다 내려오면 한 시간은 족히 잡아먹을 것 같아 포기.

용눈이 오름
용눈이 오름. 스쿠터를 입구에 파킹해두고 멀거니 쳐다보다가 스쿠터 타는 것도 의외로 지치는데 괜히 올라갔다 내려오면 피곤할 것 같아 포기.

오름을 열댓 개쯤 지나 제주 동부 해안의 지미봉에 다다랐다.

지그재그로 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한참 가다보니 기름이 다 떨어진 것을 몰랐다. 어쩌다가 올레1길 해안도로를 달리게 되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올레길을 한가하게 걷고 있다. 김밥을 먹은데다 오름에 안 올라서 체력이 남아 있어 '계획상' 전복죽을 먹고 가려던 오조 해녀의 집을 그냥 지나쳤다. 주유소를 찾았다. 성산 일출봉 부근에는 주유소가 없었다. 물어물어 읍내에 나와 기름을 넣었다. 밑바닥에서 꽉 채우니 4200원이다.

오름을 안 오르고 다 지나쳤더니 시간이 남는다. 어쩌다 성산까지 왔는데, 온 김에 올레1길 중간에 있는 멀미알 오름에는 올라가 보자고 마음 먹었다. 시흥초교 옆으로 난 소로를 따라 스크터를 타고 올라갔다. 걸었다.

올레 1길 멀미알 오름
잘못 왔나? 오름에 오르는 길이 막혀(줄로 막아놓아서) 되돌아가는 중 마누라의 전화를 받았다. 딸 애와 잘 지내고 있단다. 가족이 함께 놀러와서 혼자 돌아다녀 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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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스쿠터 타기가 의외로 재밌다. 속도를 70kmh까지 올리면 볼이 얼얼하고 양 눈에 바람을 맞아 따갑고 괴롭지만, 50kmh 정도면 달릴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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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프와 자전거 탈 때 착용하던 선글래스 때문에 그나마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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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굴 가는 길. 1132번 국도를 타다가 세화 해수욕장 부근에서 좌회전해 1112번 국도, 1136번 국도로 갈아타서 소로를 쫓아갔다. 만장굴에 가는 행로가 왜 이리 복잡하냐면, 순환도로(동회로)인 1132번 국도는 재미가 없어서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내륙의 소로가 워낙 멋지다.

다만, 사진을 거의 못 찍었다. 일단 춥고, 장갑을 벗어야지 휴대폰을 조작할 수 있어서...

만장굴 입구
만장굴 입구. 유감스럽게도 동굴 내부의 조도가 낮아 굴 안을 찍은 휴대폰 사진은 엉망이다.

만장굴 덕택에 화산섬의 내장을 들여다본 것 같아 매우 기분이 좋았다. 20~10만년전 점성이 낮고 유동성이 큰 현무암질 용암류가 흐르면서 용암동굴이 생성되었는데 용암유선(용암이 흐르면서 수위가 지속적으로 낮아지며 바위에 새겨진 수평선)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곳곳에 표석(천정에서 떨어진 굳은 바위가 용암을 따라 흐르던 것)이 널려 있었다. lava roll(용암이 지나간 후 바닥에 동글동글 말린 자국) 때문에 하이힐 따위를 신고는 걸을 수 없는 곳이다. 내부가 굉장히 넓다. 관람 가능한 만장굴의 마지막 지점에는 끝판왕으로 용암석주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드라마틱하다!!

지식은 물론 경험이 일천해 세상의 많은 것을 보고 배우지 못했지만 만장굴 때문에라도 제주지역이 마땅히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될만 했다. 다만 동굴 내부의 조명이 별로 안 좋아 제주관광청에 민원이라도 넣고 싶은 심정이다. 붉은 조명을 썼더라면 눈이 덜 피로하고 용암이 흘렀던 지옥같은 분위기도 제대로 났을텐데... 부글부글 크르릉 텅 철썩 쩌쩍 하는, 용암이 흐르고 표석이 움직이고 천정에서 녹은 광석이 흘러내리는 괴기스러운 소리로 분위기를 북돋아주면 금상첨화다. 이거 정말 민원 넣을까? 세계 최고 수준의 '관광자원'을 이왕이면 제대로 전시해야지.

오후 네 시가 넘었다. 숙소가 많은 성산에서 1박 하고 내일 서귀포로 갈까 하다가 가족이 함께 여행 와서 따로 떨어져 돌아 다니고, 모처럼 휴가인데 아이한테 아빠 노릇 못하는게 미안하기도 하고, 등등 사소한 문제들도 있지만,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게 많이 추운데다 생각보다 피곤하다. 스쿠터는 탈 만큼 탔으니 이쯤 해서 반납하고 편하게 버스를 타고 아내가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가자고 마음 먹었다.

미로공원과 김녕사굴을 지나쳤다.

김녕 해수욕장
김녕 해수욕장 (클릭=확대). 소로만 찾아 달리는 것에 지쳐 1132번 국도로 나왔다.

김녕 해수욕장
김녕 해수욕장. 여름에 제주에 여행 오면 여기 오고 싶었다. 에머랄드 빛 파도와 새하얀 백사장.

제주시에 도착할 때까지 무작정 밟았다. 시내에서 유턴하던 자가용과 충돌할 뻔 했다. 스쿠터 대여점에 도착하니 6시 30분. 약 7시간 동안 탔는데 피곤하고 다리가 후덜덜하다. 스쿠터 대여 때 일일 150km 이상 달리면 안된다는 조건이 있었고 연료도 빌릴 당시보다 많이 부족했지만 일찍 반납해서 점원과 타협하고 잘 넘어갔다. 어 정말 피곤하다.

시내 괜찮은 식당까지 걸어가다가 지도를 안 본 탓에 길을 잘못 들었다. 피곤해서 다시 돌아가기 뭣해 시외버스터미널 까지 걸었다. 빵 두어 봉 사먹고 오뎅으로 차가운 위장을 달랬다. 버스에 올랐다. 서귀포 월드컵경기장 앞에서 내려 emart에서 술과 안주를 사들고 아내가 묵고 있는 숙소로 터덜터덜 걸었다.

늦은 밤에 아내는 감귤잼 만든다고 장작불을 피워 놓고 커다란 주걱으로 가마솥을 휘적휘적 저으며 올레길을 찾은 게스트하우스 손님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랫만에 본 박씨는 메두사 머리를 하고 있었다. 썩 괜찮아 보였다.

딸애는 아빠가 왔는데 반기지도 않고 박씨 아들과 노느라 바쁘다. 어 젠장 그냥 성산에서 자고 슬슬 스쿠터를 몰고 올 껄 그랬나?

숙소 바깥에서 맥주와 통닭을 먹고 마셨다. 잔디밭 건너편으로 범섬이 보였다. 숙소 분위기가 참 좋았다. 씻고나서 지쳐 정신없이 잤다.

하루 종일 스쿠터 타고 싸돌아다닌 것 밖에 한 일이 없지만 하루를 참 잘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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