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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02 쓰시마 자전거 여행 2/5
어느새 잠들었는지, 밤에 깼다. 12시. 바람 소리가 요란하다. 곧 이어 쏴아- 비가 오는 소리. 억수로 비가 내린다. 다시 잠들었다. 쏴아- 하는 소리에 깼다. 2am. 여전히 폭우가 쏟아진다. 버킷으로 퍼부을 듯이 쏟아지는 빗물. 물이 튀겨 목재 바닥이 젖으니 춥다. 자전거에 빗물이 튀긴다. 자전거를 여자 화장실 안으로 끌어 넣었다.

텐트 안에 버너를 들여와 물을 끓였다. 금새 훈훈해졌다. 따끈한 물을 마셔 속을 따뜻하게 데웠다. 캠핑 중에 추울 때는 물을 끓여 먹는 것이 최고다. 체온을 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체내에 따뜻한 액체를 주입하는 것이다. 체온을 올리고 버너로 텐트 공기의 온도를 높이고 이미 한번 끓었던 물이 흡수한 잠열이 천천히 방사되는 동안 텐트는 따뜻하게 유지된다. 어렸을 적에 저런 아이디어를 냈을 때는 내가 참 꾀돌이구나 싶었는데, 산악인들 대개가 텐트 속에서 추위를 이기기 위해 물을 끓이고 커피, 차를 마셨다.

텐트 바깥에서 관리인이 뭐라고 웅웅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보니 어젯밤 관리인이 떠나기 전에 하치... 뭐뭐라고 그랬던 것 같다. 수첩에 일본어 숫자 발음을 적어둔 것을 어젯밤에 잠깐 읽었다. 하치는 8이었지. 잠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은 아침 8시... 좀 더 자자.

9am에 깨었다. 텐트 바깥으로 고개를 내미니 찬 바람이 휙 분다. 텐트 속으로 머리를 들여놓고 어젯밤에 코펠에 담아놓은 물을 끓여 사제 스프를 듬뿍 퍼 넣고 라면을 끓였다. 금새 텐트 내부가 훈훈해진다. 뜨거운 라면을 먹으니 살 것 같다.

새벽 내내 내리던 비는 이슬비로 바뀌었다. 간단하게 헛둘헛둘 체조를 하고 텐트를 접었다. 텐트 등속의 캠핑 장비와 오늘 주행에 필요한 장비를 제외한 나머지 물건을 바리바리 싸서 샤워실 옷장 칸 너머에 올려두었다.

관리인 아저씨가 나타났다. 그에게 텐트 등속을 저 위에 올려놓을테니 저녁 때 사정 봐서 텐트를 바깥에 치겠다고 말했다. 알아 듣는다. 햐, 거참 희안하다. 한국어, 영어로 되는대로 말하면 대충 말이 통한다. 따로 일본어를 배우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접자. 관리인이 '키요츠케테' 라고 말했다. 하핫. 아는 문장이다. 일본 애니에서 들었던 문장이다. '몸 조심하쇼'. 댕큐~


아소베이 파크를 빠져나와(9.30am) 만제키시바(시바가 다리라는 뜻인 듯)까지 단숨에 갔다. 쓰시마는 원래 하나의 섬이었는데 일본군이 배를 통과시킬 목적으로 산 하나를 박살 내어 물길을 틀고 그 사이에 다리를 올렸다. 다리가 조그맣고 별볼일 없는데 여기가 쓰시마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로 소개되어 있다. 설마 고작 40여m 폭의 물길을 내고 일본인들이 파나마 운하를 만든 것 같은 흐뭇한 착각에 빠진 것은 아니겠지? 이 다리만 보더라도 쓰시마에 얼마나 볼꺼리가 없는지 알만하다.

다리 옆 휴게소에서 담배 한대 빨고 한가하게 짐을 다시 정리했다. 가랑비가 폭우로 바뀌었다. 일본 야후 기상정보를 뒤져 찾아낸 어떤 기상 캐스터는 20년 동안 기상예보만을 전문으로 하던 아저씨인데 후덕하게 생긴 미소띤 얼굴에는 프로페셔널의 자신감이 만면에 철철 넘쳐흘렀다. 그 양반의 예보에 따르면 올해 장마는 어이없을 정도로 일찌감치 끝났고 오키나와와 규슈에서 장마전선이 멀찌감치 이동했으며 쓰시마의 날씨는 한 동안 흐리겠지만 앞으로 3일 동안 비올 확률은 40%가 안된다고 했다.

분명히 그랬다. 첨단 전자기술과 훌륭한 기상과학에 세계에서 몇 대 안 되는 고성능 슈퍼 컴퓨터, 그리고 20년의 내력이면 아무리 비선형 동역학중 가장 어려운 체계라는 기상현상 예측이라지만 이제는 일기예보를 제대로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20년을 해 먹었으면 그동안 쌓인 '감'으로 찍기라도 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본이 왜 한국하고 똑같은 거냐?

목구멍으로 욕설이 치밀었다. 참자. 나잇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좋지 않은 상황에 부닥치면 자동사처럼 튀어나오는 욕설을 자제해야지, 애도 있는데. 이제부터는 욕이 튀어나올 때마다 노래를 부르자.

폭우를 보자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기분이 저조해졌다.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섬이라서 하늘에 고작 구름 한 조각 떠 있어도 비가 내리는 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하루종일 비가 온다는 건 좀 심하지 않은가. 특이한 것은 이게 분명히 빗속에서 찍은 사진인데 빗자국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메라를 비롯한 작은 장비들은 집에서 음식을 쌀 때 쓰는 요리용 포장 비닐로 하나하나 쌌다. 요리용 포장 비닐은 무게가 거의 없을 뿐더러 크기가 알맞아 가방 속의 짐을 싸기에 적합했다.

텐트를 넣은 큰 배낭은 천몇백원을 주고 산 75리터짜리 쓰레기 봉투로 쌌다. 예전에는 김장용 비닐을 문방구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몇 군데 집 근처 문구점을 들러도 비닐을 팔지 않아 궁리 끝에 쓰레기 봉투를 생각해 냈다. 쓰레기 봉투는 그 목적상 비닐의 두께가 두껍고 튼튼하게 박음질되어 있어 내용물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가방을 쓰레기 봉투로 싸 놓으니까 정말 그럴듯 했다. 여차해서 우렁차게 노래가 튀어나올 상황이면 쓰레기통에 짐째 던져 버리고 아베 총리를 모욕한 후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노래는 그만 부르고 가자. 잘 가다가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어어...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는다. 어.. 이러면 안되는데... 어어... 흙길이나 빗물 아스팔트에서는 자전거로 드래프트가 가능하다. 고속으로 코너를 회전할 때 뒷 브레이크와 앞 브레이크를 적당히 밟아주면서 자전거 차체를 기울이면 자전거가 기운 채 움직이지 않는 타이어가 아스팔트에서 미끄러진다. 원하는 만큼 미끄러졌을 때 회전방향 반대편 패달을 강하게 반바퀴 밟으면서 브레이크를 풀어주면 코너에서 직각 회전이 가능하다. 어쩌다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죽지 않으려고) 다시는 써보고 싶지 않다. 얼마만한 속도에 얼마나 미끄러질지 가늠이 안된다. '진짜' 산악 자전거를 타고 비포장 다운힐을 60kmh로 내려가는 것을 신나해 하며 이니셜D처럼 자전거로 '공도최속이론'을 완성할 생각이 전혀 없다. 멀쩡하게 살아서 집에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관광이다.

그렇게 무서운 것은 아니지만 아내는 요 며칠전 내가 자전거 타다가 두 차례나 사고날 뻔 한 적이 있은 다음 날 왜 헬멧을 안 쓰고 다니냐고 바가지를 긁었다. 내가 죽으면 자기는 과부가 되는데 아이를 대체 어떻게 키워야 한단 말인가? 항상 감정이 앞서고 비논리적인 아내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조심하자. 아내가 여행가기 전 만원짜리 여행자 보험을 들어줬다. 보험 들기를 미룬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아내의 바가지 이후 안전 운행 하겠다고 마음 먹었고 그래서 60kmh 이상은 안 하련다.

헬멧을 썼더라면 빗속 주행이 힘들었을 것 같다. 자전거 주행할 땐 항상 캡을 썼다. 챙이 안경을 적당히 가려줘서 빗물이 안경에 덜 닿는다. 비올 때는 캡이 최고다.

폭우 속에서 내리막길을 53kmh로 미친듯이 내려가(다행히 헤어핀이 아니다) 패달링을 안한 채 오르막길 중턱에서 자전거를 자연 정지시켰다. 상황을 좀 더 살펴보려고 자전거에서 내렸다.

빗줄기 때문에 안경알에 빗물이 방울져 있다. 얼마전에 6만원 주고 산 초발수 코팅 렌즈란 건데 이런 비에는 거의 쓸모가 없다. 브레이크 패드가 거의 다 닳아 위어라인이 사라졌다. 브레이크 레버를 끝까지 당겨도 패드가 림에 얄팍하게 닿는 정도, 림은 패드의 합성 고무(alloy면 합금일텐데 재질이 왜 사각사각하는 단단한 합성고무처럼 느껴질까?) 가 남긴 검은 띠로 시꺼멓게 뒤덮여 있다. 흠... 문제군.

체인을 살펴 보았다. 체인은 기름, 물, 먼지가 떡진 채 붙어 있다. 손가락으로 문지르니 쫄깃쫄깃한 본드같은 것이 묻어나온다. 체인이 뻑뻑하다. 한 3일 비를 맞았더니 체인도 맛이 갔다. 거참... 문제야.

일단 자전거를 질질 끌고 언덕을 올라가서 T자 도로 교차로의 인도에 자전거를 세웠다. 자판기에서 청량음료를 뽑아 마셨다. 하도 비를 맞아서 이젠 머리가 다 아픈 지경인데 음료수를 마시니 목부터 위장까지 시원한게, 평안해진다. 어떻게 할까. 이즈하라에 자전거 가게가 있을꺼야. 어디 마트에 들르면 체인에 칠할 방청제나 기름 정도는 구할 수 있겠지. 382번 국도는 비교적 평탄해서 브레이크를 심하게 잡을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비인데, 희망을 갖자.

자전거로 하는 첫 해외 여행이다. 앞으로 많은 여행이 내 인생 앞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수업료를 치르지 않고 낼름 얍삽하게 집어먹겠다는 생각은 버리자. 자전거는 정직하다. 자전거는 몸의 일부같은 것이라 버리고 떠날 수 없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이란 책은 주제가 여행이고 자전거는 부자재 내지는 까메오에 불과했다. 자전거이기에 가능했다는 여행에 대한 격찬과 화려한 감상적 너즈레는 넘쳐나면서도 끊임없이 손을 봐야 하는 자전거 정비에 관해선 거의 말이 없다시피 했다. 인문학적 감수성의 너저분한 나열이 자전거 여행을 이끄는 동인이 될지는 모르나, 워낙 재미가 없고 혼자 치는 딸딸이 같아 무의미해서 집어던진 책이 되었다.

회의론자의 철학적 성찰이 넘치는 zen and the art of motorbike maintenance 같은 책이나 '나는 걷는다' 같은 책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나는 걷는다의 주인공은 손수레를 끌면서 죽어라고 걷는다. 그의 손수레는 자주 고장이 나고 자주 손을 봐야 했고 손수레가 없으면 불가능한 여행이었고 그래서 손수레 때문에 여행을 멈추기도 한다. 그게 정상이다. 자전거 여행에 왜 자전거가 빠지냐?

우스개로, '자전거에서 가장 중요한 부속이 뭐냐'는 질문이 있다. 정답은 엔진이다. 자전거에 타고 있는 인간 엔진. 인간 엔진도 정비가 잘 되어 있어야 한다. 인간 마음의 정비는 건실하고 튼튼한 뚝심과 의지, 그리고 세계에 대한 건전한 회의를 갈고 닦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공학이 세계를 유지하고 개선하며 인류에게 새로운 비전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또한 믿는다. 그래서 쓰잘데기 없는 미사여구의 허튼소리 대신 생존에 필요한 자전거 정비 기술을 배웠다. 심지어 벽을 향해 치킨런을 하며 브레이크 감각을 익히기도 했다. 아스팔트에 납작하게 죽어있는 개구리같은 모양으로 벽에 아주 많이 박았다. no pain, no gain.

급경사의 다운힐 앞에서 자전거를 끌었다. 허허 웃음이 나왔다. 어떤 아저씨가 경험한 진부령의 그 눈물나는 사연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빙고. 커다란 VALUE 상점과 100엔 샵이 연달아 붙어 있다. 쓰시마 관광 안내지도에서는 100엔 샵도 쓰시마의 관광 포인트였다. 다이소와 뭐 다를 것도 없는 100엔샵이 관공지라니, 쓰시마, 너 정말 그렇게 볼 게 없는 곳이냐? 하여튼 100엔 샵에서 마땅한 물건을 구하지 못했다. 찾는 것은 방청/윤활제다. VALUE에도 없다.

그보다는 자전거에서 가장 중요한 부속인 엔진의 출력을 유지하기 위해 뭣 좀 먹어야겠다. 메가 밀크와 세일중인 빵을 사서 간단히 요기했다. 단시간에 에너지로 가장 잘 바뀌는 것은 탄수화물인데, 직접적인 경험이나 여러 문서를 살펴보더라도 바나나는 가장 극찬을 받는 음식이다. 포도, 감자, 고구마 따위도 마찬가지였다. 마땅한 대용물이 없을 땐 빵과 밥이 최고다. 운동이 끝난 다음에는 탄수화물보다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격렬한 운동으로 파괴된 근육을 재생시키고 에너지를 축적해 둬야 하니까?

거리 상으로 얼마 안 남은 이즈하라에 가면 맛있는 거 많을테니 지금은 대충 때우자. 우유가 맛있다. 한국에서 지지리도 맛 없는 것으로 손꼽을만한 것이 우유와 오렌지 쥬스, 그리고 맥주다. 셋의 공통점은 물이라도 탄 것인지 맹숭맹숭해서 전혀 진한 맛이 안 나오고 특히 오렌지 쥬스는 단맛을 내려고 설탕 또는 아스파탐이라도 탄 것 같은 기분. 옆의 원예상가에 들러봐야 되는 거 아닌가 싶다가 이즈하라에 가면 자전거 상점이 있을테니 거기서 브레이크 패드를 교체하면서 기름칠도 하면 일석이조겠거니 싶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

교차로에 서 있다가 흘낏 뒤를 보니 건축용 자재를 판매하는 가게가 눈에 띄었다. 무작정 가게로 들어섰다. 히라카나, 가타카나 조차 읽을 줄 모르면서 선반에 놓인 스프레이 캔들을 살펴보았다. 옷! 우연찮은 발견. 용도를 그림으로 설명하는데 자전거 스프라켓이 그려져 있다. 방청제인지 자전거 오일인지는 모르겠다. 소레, 도조(이거 부탁합니다) 하니까 700엔이라면서 뭐라고 중얼중얼 거린다. 까막귀라 700엔을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냥 천엔 짜리 지폐를 건네니 300엔을 거슬러주면서 나나 하야쿠 라고 말했다. 하야쿠는 엊저녁 공부하기로 100이었다. 나나는 아마 7? 그러니까 700엔. 캬. 죽인다. 일본어를 하나하나 배워가는 이 맛.

가게 처마에 쭈그리고 앉아 작업 장갑을 껴고 체인 횡축을 앞뒤로 비틀어 보았다. 뿌지직 뿌지직 소리가 난다. 기름에 쩔은 모래 알갱이들이 강철 체인을 마찰하면서 나는 기분 나쁜 소리다. 불과 3일 전에 등유로 깨끗이 닦은 체인인데 이 모양이다. VALUE에서 슬쩍한 수건(가게의 포장대 앞에 비닐이나 박스로 포장하고 나면 손을 씻으라고 걸어둔 수건. 어쩔 수 없었다. 타월을 팔지 않는 것 같길래...)을 1/4 찢어 체인을 한번 죽 닦아주고 방청제 캔에 노즐을 꽂은 후 아낌없이 듬뿍 뿌렸다. 가스 압력이 높아 뿜어져 나오는 액체가 기름때를 밀어낼 땐 흡족했다. 스프라켓, 디레일러, 프리휠셋에 뿜어대니 기름때가 밀려나가면서 말끔해진다. 정말 기분이 째지게 좋다. 한참 작업하는데 가게 주인 아저씨가 나와 쳐다본다. 이것저것 묻길래 체인이 빡빡해서 기름을 치고 있다고 손짓발짓을 하니 자전거를 들어주며 기름칠을 도와준다. 아저씨에게 '자전거 가게'가 이즈하라에 있냐고 물었다. 어리둥절해 한다. '바이크 샵' 하니까 알아듣는다. 손가락으로 시내에 몇 개 있단다. 가서 물어보라는 것 같다. 댕큐 입니다.


드디어 이즈하라 시내 도착. 내 실수의 총합체인 이즈하라 항구에 들러 일단 눈도장을 찍었다. 오후 12.30pm.

문제 한 가지를 해결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져서 일단 가볍게 관광이나 하자고 마음먹었다.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 팜플렛에 다 적혀 있고 비문에도 적혀 있으니 기념물 설명은 생략. 꽃은 대체 누가 갖다 바치는 것일까? 이런 정성이라니. 결혼 축하 기념비 앞이 유적지라 한참 발굴공사가 진행중이다. 역사에 무지해 덕혜옹주는 듣도 보도 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비문 내용을 보니 정략결혼을 한 듯.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 앞에 있는 고려문. 야자수와의 묘한 조화. 조선의 통신사들이 쓰시마를 방문하면 이 문을 지나친 것 같다.



반쇼인 신사 입구


반쇼인: 쓰시마를 지배했던 여러 군주들의 위패가 세워진 사당. 쓰시마의 대표적인 관광지. 문이 닫혀 있어(휴관일?)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반쇼인


반쇼인


조선통신사비. 역시 관광사진은 재미가 없다. 조선통신사들이 오락가락 하던 시절에는 일본에 '햐쿠라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좋은 물건, 외래품을 뜻하고 어원을 살피면 백제에서 온 물건이란 뜻이란다.


1pm. 비가 잠시 그쳤다. '호카호카테' 라는 도시락 전문점에서 450엔 짜리 도시락을 사서 그 앞 공원에 앉아 먹었다. 역시 밥맛이 좋다. 일본인은 음식을 일종의 소우주라 생각하여 음식에 칸을 쳐두고(서로를 분명하게 구분짓는 선을 그어) 하나하나 서로 다른 맛을 즐긴다고 했던가? (개뻥 같은데) 오전 내내 비 맞다가 따뜻한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니 살 것 같다. 구분은 시장기 해소와 별 상관없다. 음식의 양과 질은 음식 모양과 상관 없는 한 단계 높은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이다! 나는 영양가를 잘근잘근 씹어 먹는다! 이게 기쁨이고 삶의 의미이고, 고생 끝에 맛있는 밥을 먹고 오이시 하면서 오열하는 남자의 인생이다!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웠다. 나무 젓가락(와르바시?)이 한국에서 쓰는 것과 달리 목재의 밀도가 높고 나무 젓가락을 포장한 종이 안쪽에 이쑤시개가 들어있는 점이 한국과 다른 듯.


빗속에서 노래를 멈추게 해 준 이름모를 방청제/오일 anyway. 여러 가지 공구와 자전거 스프라켓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영어로 설명되어 있으면 더 좋았을텐데.

일본에서 어설픈 일어를 쓰는 것보다 영어를 쓰면 더 대접받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 말을 철썩같이 믿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개화 후 물밀듯이 들어온 서양문물 탓도 있고(일종의 화물숭배) 일본어에 상당한 비율로 편입된 외래어의 사용 밀도로 보건대 일본인들이 서양 것에 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쨌거나 영 단어와 한자 사용비중이 높은 한국어를 섞어 쓰는 것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비슷한 한자문화권인 중국 여행할 땐 성조 때문에 말이 안 통해 환장하는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면 일본과 한국이 참 가까운 나라인 것 같다.


하치만구 신사. 쓰시마를 주행하며 길가에서 무수한 신사를 접했지만 이 정도 규모는 처음. 일본의 신사는 애니미즘의 본거지. 모든 (움직이는, 또는 움직이지 않는? 정지도 애니메이션의 여러 동태 중 하나니까) 것에 정령이 깃들어 있단다.


그런데 신사가 둘로 나뉘어 있다. 둘이 하나인지 둘이 둘인지 모르겠다.


바로 옆나라지만 일본 문화에 관해 아는 것이 없다. 탑의 형태로 보건대 지배자/지도자/계급자의 신분과 지위에 걸맞는 일종의 위령탑이 아닐까 싶다.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구분하는 것일까? 둘이 둘이라면 하나는 실존했던 인물의 기념비가 되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민간 정령신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무언가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아닐까? 하치=8이니까 8신을 모시는??


뭐 일본의 정령신앙 체계에 관해 아는 것이 없다. 신사 입구 양 편에 여우 상이 많고 여우가 재물을 상징한다는 얘기 정도를 알 뿐. 사진의 해태 같이 생긴 짐승은 고마이누라 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 뜻이 '용감한 고구려개'라고 들었다. 말 타고 달리는 고구려인을 쫓아다니는 사납고 충직한 그... 맛없어 보이는 강아지구나.


왼편에 말이 보인다. 사람이 안 타고 있다. 그럼 혹시 대마도에 전래된 우수한 외래말에 대한 숭배...?


아. 이건 안다. 물을 떠서 왼손을 씻고 다시 오른손을 씻고 그 다음에 손바닥에 물을 담아 살짝 맛을 보고, 저 타월에 물 묻은 손을 닦는 것이지? 한국의 절간에서처럼 지나가는 과객의 목을 축이는 우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사에서 예의를 차리기 위한... 인간의 방법과 신령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겠지. 손은 씻는데 발을 안 씻는 것은 신령이 하도 신령스러워서 신전에 범접하지 못하게 아예 사전에 차단한다는 뜻이겠지. 같은 만신을 섬기는데 인도는 내부신전까지 사람의 발길을 허용하는 반면 일본은 내부 신전에는 사람이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고 사제만 접근하게 되어 있는 듯. 일본인들이 만신숭배에 관해 인도에 친숙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렇게 알만했다.


돌로 만든 위패인듯. 돌은 영원하니까. 그런데 순 김씨네. 하하


솔직히 말해 예술적인 감각은 좀...


허걱. 신사에 왠 폭탄들이지? 일본산 극우 원숭이들이 불현듯 생각났다. 이 사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저기 어디야.. 교토의 몇몇 건물들 빼고는 일본건물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없다. 그런데 왠 새끼줄일까... 새끼줄의 보편적인 의미는 차단과 금지 였던 것 같은데(한국의 경우) 저건 무슨 의미일까. 일본인의 상징 체계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바로 옆나라인데 아는게 전혀 없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분위기가 을씨년스럽다. 하치만구 신사에 마리아를 섬기는 사당이 있다던데 혹시 저것 아닐까?


하여튼 쓰시마(시마는 아마도 섬이란 뜻일께다. 다께시마, 쓰시마 등등) 여행중 여러 신사를 보며 느낀 점은 을씨년스럽고 괘괘하여 인간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 머무르거나 쉴 공간이 없어 보인다는 것. 저 나무는 아마 녹나무인 것 같다.

관광은 적당히 접고 자전거 가게를 찾았다. 근처 어딘가에 쓰시마 관광물산협회(visitor center)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찾아가 봤지만 보이지 않고 공사중인 건물만 보인다. 옆에 향토민속관에 들어가 비지터 센터가 어딘지 물으니 공사중인 건물을 가르킨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는 동안 인부들이 제지하지 않는다. 나와서 조선통신사 비석 옆 건물로 가니 문이 닫혀 있다. 뒤돌아서자 향토민속관에서 관광물산협회를 물어보았던 아가씨가 서 있다. 서로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해보니 이즈하라 항에 관관안내소가 있다고 가르쳐 준다. 예쁜 아가씨다. 아리가또 하니 활짝 웃는다. 얼기설기한 이빨이 보인다. 이빨이 그래도 친절이 예쁜 아가씨다.

이즈하라 항에 가니 수많은 한국인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관광 안내소의 할머니에게 바이크 샵을 물으니 항구 앞의 가게를 가르쳐 준다. 빗속을 달려 항구 앞의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진열된 가게로 갔다. 브레이크 패드를 보여주며 부품이 있는지 물으니 없단다(이이에). 그러면서 다른 가게를 가르쳐 주었다. 그 가게에 가니 일본의 전형적인 생활 자전거를 수리하는 곳이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내 자전거에 맞는 브레이크 패드는 자기 가게에 없단다. 친절하게 지도를 보여주며 382 국도에 면한 한 가게를 짚어 주었다. 가게에 들르니 역시 부품이 없단다.

여기저기 자전거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오후나에나 가미자카공원 등에는 들르지 못했다. 시간이 꽤 되어서 유타리랜드 쓰시마나 쓰시마후루사토 전승관, 가네다성유적지도 방문하지 못할 것 같다. 이즈하라 시내만 바둑판 훑듯이 샅샅이 쏘다녔다. 시내 구경도 할만하다. 쓰시마에 지진이 있던가? 건물이 나즈막하니 2층 이상 가옥이 아주 드물었다. 쓰시마에 별장 한 채 있어도 나쁘지 않겠다.

무가저택(사무라이 저택; 부케이시키) 부근을 두리번 거리며 배회했다. 자전거 가게가 통 보이지 않는다. 이즈하라 시내는 생각보다 크기가 작다. 시내 중심부에는 모스 버거 매장이 있다. 배가 불러서 모스 버거를 맛보긴 좀 그렇고. 3.30pm.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가다가 마트에 들러 저녁꺼리도 준비해야 한다. 아쉽지만 쓰시마 특산물이라는 메밀소바(이리야키소바)를 못 먹어봤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실망한 채 가게 앞에서 브레이크 패드의 허브 암나사와 브레이크 와이어의 긴장 정도를 조절해(이미 브레이크 레버의 앞 나사를 돌려 패드의 압박 정도를 조절하는 범위는 지났다) 어느 정도 브레이크가 말이 듣게 손봤다.

브레이크가 이 모양인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382국도에서는 크게 문제가 없다. 또는 날씨가 개이기만 해도 문제가 안 된다. 내일 신화의 마을 까지는 아소베이 파크에서 30km 안팎의 거리다. 브레이크 때문에 상당히 위험한 상황인데 마음은 그지없이 평화로웠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패달을 밟아 이즈하라 시내를 빠져나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VALUE에 다시 들러 저녁꺼리를 흡족하게 장만했다. 대형마트의 카운터 앞에는 식수대가 있다. 식수대에서 빈 물병이 판매된다. 빈 물병에 물을 얼마든지 담을 수 있다. 물은 찬 물과 뜨거운 물이 모두 나온다. 그런데 물은 별로 마시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대신 음료수만 마셨다.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른 쓰시마 그린 파크. 저 멀리 미쓰시마마치 해수욕장이 보인다. 쓰시마 그린파크 자체가 훌륭한 캠핑장이다. 여기저기 엄폐물을 잘 이용하면 돈 안 들이고 캠핑이 가능할 것 같다.


인구중 대다수가 노인과 어린이들 뿐이고 청년이 드문 쓰시마의 복지시설은 정말 훌륭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길래 이렇게 훌륭한 공원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인구도 별로 없으면서.


이건 뭐지? 애들 놀이기구 같은데?


한국 같았으면 사람들도 거의 방문하지 않는 저 작은 폭포의 수도꼭지를 잠궈 놓았을 터인데... 아내한테 전화하려고 전화기를 찾았지만 domestic 전용. 공중전화에 ISDN 외부 연결 포트가 달려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일본도 작년인지 제작년인지 FTTH가 도입된 상태인데 ISDN을 쓰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쓰시마 그린 파크에서 아소베이 파크까지는 30분이 채 안 걸렸다. 관리사무소의 문은 걸려 있다. 관리 사무소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소만 전경. 섬의 침강에 의해 리아스식 해변이 형성되었다. 제주도와 달리 섬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다. 날이 궂지 않으면 아소만에서 대여 카누를 타고 돌아다니고 싶었다. 두어 시간에 6900엔이나 하는 값비싼 투어지만 카누를 타본 적이 없어 한 번 쯤은 타 보고 싶었다.

십여분 관리인 아저씨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6시가 안 되었는데 벌써 퇴근한 모양이다. 캠핑장 화장실에 도착하니 어떤 중년 부인이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있다. 개가 날 보더니 반가운 나머지 미친듯이 짖는다. 중년부인이 던진 공을 줏어서 갔다주다가 중간에 꾀를 부린다 -- 공을 줏어 화장실 뒤편에 슬쩍 숨어 공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헉헉 숨을 몰아쉬다가 충분히 쉬고 나면 다시 공을 물고 부인에게 뛰어간다. 자식. 지능은 있어 가지고.

오늘도 아무도 캠핑하러 오지 않았다. 중년 부인은 캠프장이 문을 닫는 6시 무렵 강아지를 자동차에 태우고 떠났다. 어제, 오늘 가끔 공원에서 자전거를 세우면 거기에 차 한 대씩은 꼭 있는데 주로 남자나 여자 혼자 차 안에 앉아서 뭔가 멍하니 있다가 내가 나타나면 곧 차를 몰고 사라졌다. 일본에 혼자 노는 사람들이 많다던데 그것 때문일까? 왠지 외로워 보이는 사람들.

나야 뭐, 나를 따라 자신을 채찍질하는 마조히즘 투어를 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그렇지 혼자라서 외롭다는 등의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 되레 예전에 장기여행 때 사람들이 날파리떼처럼 꼬여 귀찮아 한 적이 많았다. 숙소나 술집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한 잔 하는 것에는 별로 거리낌이 없다. 하여튼 사람 만나는 것은 귀찮다. 세네카 말대로 아무리 여기저기 사방팔방 돌아다니고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봤자 끝끝내 맞부닥치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오늘은 쇼핑을 좀 과하게 했다. 라면 두 개, 어묵 한 봉지. 12가지 차 세트, 스프 4봉, 바나나 과자, 안주용 햄, 그리고 사뽀로 맥주 draft one.

'남자라면 입 닥치고 사뽀로 맥주를 마시자' 라는 옛날 광고문구 때문에 훗카이도에 가고 싶어졌다. 훗카이도에는 어쩐지 제대로 된 일본식 선술집이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재밌게 본 '마구로와 일본인'도 일본의 최북단 근처다. 눈 내리는 어느 추운 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 가기 전 얼핏 불을 밝힌 선술집에 들러 따뜻하게 데운 사케에 어묵 한 점 먹고 낯 모르는 사람들과 간빠이를 외치며 껄껄 웃어보는 것. 박여사는 예전에 말하길, 훗카이도에 가려면 꼭 겨울에 가란다. 눈이 30cm씩 올텐데 자전거는 어쩌라고?


500엔짜리 도시락. 이것만큼 가격대 성능비가 좋은 식사가 있을까? 한화로 3700원 가량. 먹으면 배부르다. 다만 나물 등의 야채 식단에 익숙한 만큼, 부실한 야채와 국이 없어 먹어도 뭔가 부족함이 느껴지는 식단. 끓는 물을 부으면 즉석으로 먹을 수 있는 미소된장국을 팔았지만 정작 수퍼에서 찾아 헤멨던 것은 어묵국이었다.


깨끗이 비웠다. 짜장면을 먹고 나면 다꾸앙으로 짜장면 소스를 긁어 깨끗이 먹어치웠다. 일부분은 절 음식 먹던 버릇 때문이고, 일부분은 음식을 남기면 안된다는 옛날 교육 때문이기도 하고, 일부는 그렇게 깨끗하게 비운 그릇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였다. 그런 습속을 다른 사람들은 다소 변태 취급해 주셨다.


7pm. 비가 멎어 소화도 시킬 겸 아무도 없는 캠핑장 주변을 배회했다. 앞 건물은 집회장.


호숫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닷물. 아소베이 만의 복잡한 해안선 구조 때문에 바다임에도 파도가 거의 없다. 흡사 호숫가 같다. 바다인데 마치 호수처럼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이색적인 모습.


선착장. 물고기가 가끔 튈 뿐 적막하기 그지 없다.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뭍과 바다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게들 중 하나.


밤에 출출할 때 라면에 넣어 끓여먹으면 어떨까. 아서라. 뒷발로 지긋이 밟아 게를 잡았지만 곧 놓아주었다.


Video: 아소베이파크 캠핑장 게


을씨년 스러운 화장실. 이층은 2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깔끔한 객사 또는 관리인 숙소.


7.20pm. 아소베이 파크 캠핑장 전경.


해가 졌다. 왠일인지 비가 안 온다. 버너에 불을 붙이고 햄을 볶아 맥주 안주로 먹었다. 일본 맥주들은 저녁 식사나 목욕 후 한 잔 가볍게 마시는 용도, 어느 음식에 곁들여도 그다지 튀어 보이지 않는 연한 깔끔함과 시원함이 특징인 것 같다. 한국 맥주의 몰개성함/특색없음에 질린 상태였고 그래서인지 한국 맥주가 베트남, 중국, 심지어 태국 맥주만도 못하게 느껴졌다. 브류어리 기술이 그렇게 형편없는 것일까? 왜 그렇게 '상대적으로' 맛이 없는 걸까.

일본 맥주 가격이 의외로 싸서(환율 때문이지만) 여행 기간 내내 마셔주기로 했다. 어제도 마시지 못한 것이 사뭇 안타깝기만 하다. 5% 500ml짜리니 대낮에 마셔도 부담이 없을 것이다. 중국 여행할 땐 하루에 서너잔씩 끼니때마다 7%짜리 500~1000ml의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면 세상이 아름답고 정말 좋았다. 그래서 노래가 절로 나왔다. 윌 아이 비 핸섬? 윌 아 비 리치? 아 텔 뎀 텐덜리. 케쎄라쎄라, 왓에버 윌 비 윌 비. 더 퓨쳐스 낫 아우워스 투 씨, 케쎄라 쎄라~ 당시 중국 여행은 말이 전혀 통하질 않아 될대로 되라 여행이었다.


8.30pm. 텐트의 플라이를 벗겼다가 다시 덮었다. 밤에는 쌀쌀할 것이다. 날이 어두워져서 뭐 할 것도 없다. 슬슬 잘 시간이다.

mp3를 들으며 가져온 얇은 소설을 한두 페이지 읽어보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김씨 아저씨한테 빌린 James Hogan의 1977년 작품인 Inherit the Stars인데 쌔근한 최신기술과는 거리가 먼 구리구리한 70년대 스타일의 SF다. 투과성이 좋은 뉴트리노를 이용한 스코프는 아직 개발되지도 않았고 또, 여전히 앞으로 등장할 최신기술에 속하는 것이긴 하나... 인류가 즐겨하던 취미생활인 전쟁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한마음 한뜻으로 세계 정부 구성을 목전에 둔 채 우주로 막 진출할 무렵, 5만년전의 우주비행사 시체가 뜬금없이 발견되는 것으로 얘기가 시작된다.

부산에서 비록 50여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이 괘괘하고 적막한 캠핑장에 나 혼자 앉아 기분좋게 취해 있으니 한국과의 거리가 거진 안드로메다 성운과 지구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듯하여, 분위기가 얼추 SF스러워 굳이 SF소설이 주는 실세계와의 주관적 거리감(소격화)의 확보가 필요없을 정도였다.

바르는 모기약을 팔 다리 여기저기 발랐음에도 집요하게 달라붙는 모기떼와 스르륵 스르륵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 그리고 강산의 적막감. 하루종일 비를 맞아 머리를 맑고 투명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아내, 딸아이, 일 등은 굳이 생각해야지만 머리 속에 떠오른다.


디지탈 카메라에 PC로 옮기다 만 아이 사진이 남아 있었다. 이 아이가 자라면 제 부모처럼 여행을 다니게 될까? 말 타고, 옆에 맛 없어 보이는 강아지를 데리고. 여행은 재테크, 노후설계에 도움이 안된다.

아무 생각없는 머리로 텐트로 기어들어가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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