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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1.02.15 동남아시아#2: 라오스
카오산에 도착. 만남의 광장에 들르니 아직 문을 안 열었다. 근처 인터넷 까페에서 메일 구경이나 하다가 비누 하나 사고 만남의 광장 여행사에서 라오스 국경 부근으로 가는 버스를 알아 보았다. 불행히도 오후 16:00에 출발. 비자는 18:00에 나온다고 했다. 비자 생각만 하면 바보짓을 한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앞으로 비자를 여행사에 맡길 때는 신중히 생각을 해 봐야겠다. 괜히 좀 편해보려고 했다가 오히려 여행을 망치는 내가 한심했다.   

배낭을 만남의 광장에 놔두고 북부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에 가면 17:00 이후 표가 있을 것만 같았다. 친절한 경찰 아저씨의 도움으로 19:15분 표를 예매. 그것밖에 없다. 비자를 17:00에 받고 간신히 터미널에 도착할만한 시간이랄까... 에어컨 버스도 아니고 일반 버스라 예매라고 보기는 뭣했다. 터미널에 나가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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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딱지를 떼고 있다.

 
방콕에서 숙소를 안 잡아 마땅히 씻을 장소가 없어 화장실에 들어갔다. 허물이 벗겨지고 벌겋게 달아 염증이 생긴 코를 수선하고 카오산으로 귀환. 국수가 맛있다는 가게에서 국수를 먹고(맛있다. 아. 맛있다. 내 세포들이 치를 떨며 좋아했다) 만남의 광장으로 돌아왔다. 국수맛과는 상관없이 기분이 대단히 좆같다. 캄보디아와 라오스가 동시에 엿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두통이 생겼고 두통약 하나 먹었다. 근 일년동안 두통약을 거의 안 먹었는데 비자 때문에 두통약을 먹는게 더더욱 한심하게 느껴져 머리가 더더더 아파지는 듯. 만남의 광장에 배낭을 맡겨놓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죽치고 앉아 있으니 이모저모로 미안해 한국음식을 시켜 먹었다. 

카오산에 널려있는 환전소 중 한 군데에서 100불짜리 지폐를 환전. 4226밧. 그리고 여행사에 앉아 이제나 저제나 패스포트가 라오스 대사관에서 도착하길 기다렸다. 다섯시라니까 네시 반쯤에는 도착하지 않을까 싶어 안달해서 물어보니 아직... 이란다. 버스를 놓칠 지 몰라 남 속타는 줄도 모르고 매정하게 대꾸하는 그 인간의 멱살을 잡고 빨리 내 여권 내놓으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5:40pm, 누군가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사 앞에 도착하는 것을 보았다. 가방을 하나 들고 들어왔다. 쫓아가서 여권을 손에 쥐었다. 배낭을 짊어지고 사원 뒤로 빠른 걸음으로 가보니 6:00pm. 방콕의 교통 체증은 악명이 높다. 여기서 북부터미널까지 가는데 한 시간은 걸릴 것이다. 초조하게 버스를 기다리는데 30번 버스 한 대가 그냥 지나갔다. 다음 버스가 도착할 때 쯤에 도로의 거진 중간에 서서 손을 흔들어 버스를 세웠다. 눈가에 땀방울이 맺혔다. 더위 때문에 짜증이 났다.   

퇴근 시간과 겹쳐 시내의 교통 상황은 최악이었다. 아직 1/4도 못 갔는데 6:20pm이 지났다. 게다가 정류장마다 꼬박꼬박 버스가 선다. 악운이란 악운을 몽땅 몰고 다니는 사나이 정상돈의 오늘 운도 이전과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거리에 있는 모든 신호등마다 걸릴 수가 있는 것일까.
 
6:40pm.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반성했다. 도대체 여행을 어떻게 하려고 마음 먹었던가? 왜 이렇게 초조하게 서두르는가? 오늘 못가면 내일 가면 되지. 버스표 195밧이 아까워서, 시간에 늦을까 봐 허둥대는 꼴이 참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타이밍 칼 같이 맞춰서 승하차를 반복하던 승객들에 대한 적개심도 사라졌다. 늦으면 내일 가자. 운이 좋으면 버스를 놓치지 않겠지. 교통상황이 최악이었지만 버스는 꼼지락 꼼지락 거리며 시내를 빠져 나갔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마자 굉장한 스피드로 달리기 시작했다. 몸이 들썩일 정도로 급 브레이크를 밟아 정류장에 섰다. 갑자기 길이 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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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버스의 내부 모습. 모든 창문이 열려 있고 모든 문이 열려 있다.


도착하니 7:10, 출발시각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뛰다시피 플랫폼을 찾아갔다. 버스는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 물병을 하나 사들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7:30에 출발했다. 20분이나 늦었다. 한숨 돌리고 그제서야 버스를 살펴보니 완전 썩은 고물 버스였다. 에어컨은 물론 없었고 천정에 달린 선풍기들은 반쯤 고장난 상태, 그래서 창문과 앞문을 활짝 열고 달렸다. 좌석은 빽빽하니 왼쪽에 둘, 오른쪽에 셋 있는 것이 영락없는 시골버스였다. 고속도로에서 쌩쌩 달리는 차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이 창문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옆 좌석에 앉은 태국인들은 위스키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자리에 앉은 사람들 중에는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불현듯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첫 정거장에서 차장이 호객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잡상인들이 버스에 올라와 먹거리와 시계를 팔았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너무 잘 먹어 뱃살 나올까봐 아무것도 안 샀다. 첫 정거장에서 20분쯤 정차. 와우. 죽여주는군. 이거 정말 시골버스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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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 버스 정류장의 모습. TV를 보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

 
정거장처럼 보이지않는 곳에서 갑자기 버스가 섰다. 운전수와 차장이 내리더니 버스의 옆구리를 벌리고 공구상자를 펼쳐 렌치와 스패너로 여기저기 손보기 시작했다. 기름칠도 했다. 그동안 사람들은 버스 바깥에서 어슬렁거리거나 쭈그리고 앉아 버스를 고치는 모양새를 구경하고 있었다. 나도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태우면서 구경했다. 다 고쳤는지 운전수가 자리에 앉고 차장이 뭐라고 소리치자 사람들이 꾸역꾸역 버스 뒤로 걸어가 버스를 밀기 시작했다. 나도 버스를 밀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완전 인도하고 똑 같잖아!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이 썩은 버스는 인도의 타타 버스와 백퍼센트 일치하는 운행방식을 쫒고 있다. 운전석 앞에는 라마승 액자가 걸려있고 그 앞에 빨간 등이, 뒤에는 파란등이 퀴퀴하게 켜져 있다. 모든 정류장마다 버스가 꼬박꼬박 정차하며 호객행위를 했기 때문에 버스는 금방 만원이 되었다. 의자에 세 명이 끼어 앉아 있으니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다. 밤이 깊어지자 문이 열려있는 탓에 바람이 쌩쌩 불어와 에어컨 버스 못지 않게 추웠다. 

짐칸에서 배낭을 뒤져 오버복을 꺼내 걸쳐 입고 자다깨다를 반복하다가 대머리가 벗겨진 차장이 내리라서 내렸다. 새벽녁이다. 오전 6:00am. 농카이에 도착.
 
잠이 덜 깨어 어리벙벙해 있는데 삐끼가 뛰어오더니 국경가냐고 묻는다. 간다고 하니 50밧을 달란다. 히죽히죽 웃으며 말 한 마디 안하고 서 있었다. 알아서 30밧까지 떨어지길래 그의 툭툭에 올랐다. 매우 신나게 달린다. 국경 앞에서 정차. 여권을 자랑스럽게 들고 태국 국경을 통과했다. 소문과는 달리 국경은 아침 6시부터 열려 있었다. 잠깐 화장실에 들러 얼굴을 쳐다보니 새카맣다. 푸켓에서 탄 껍질은 거의 벗겨졌으므로 이상하다 싶어 얼굴을 문질러보니 숯검뎅이 같은 것이 묻어났다. 매연 때문이다. 

태국과 라오스의 국경인 메콩강을 가로지르는 우정의 다리가 있다. 걸어서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피곤해서 10밧을 주고 셔틀버스에 올랐다. 라오스 국경 근처에 가자 어쩐지 풍경과 공기 냄새가 미묘하게 바뀐듯한 기분이 들었다. 출입국 카드를 작성했다. 서너 명의 외국인들이 함께 국경을 넘었다. 그들은 툭툭에 합승해서 가려는 듯. 툭툭이 작고 비좁아 별로 내키지 않는다. 나는 협상 잘 해서 50밧에 택시타고 위앙짱 아침시장까지 가기로 했다. 아직도 졸음이 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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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으로 바라본 라오스 거리의 모습. 포근하고 시원하다. 앞에 보이는 조그만 점들은 자전거를 타고 '수도'로 출근하는 시민들


택시 운전수는 영어를 하는둥 마는둥 했다. 내가 하는 말 대부분을 알아듣지 못했다. 얼마 버냐고 물으니 자기 딸 얘기를 했다. 아침시장에 도착해서 돈을 주려고 주머니를 뒤져보니 아쁠사... 100바트 짜리 한 장에 20밧 짜리 한 장, 10밧 짜리 한 장과 동전 몇 개가 있었다. 환전 후 단위가 큰 돈만 남아 있던 것을 잊어버렸다. 게다가 환전소에서 얼마쯤 환전하는 것을 졸려서 잊어버렸다. 거스름 돈을 만드는 뾰족한 방법도 없고 어쩔 수 없이 그에게 100밧을 주었다. 아울러 행운을 빌어주었다. 


아침시장에서 태국돈을 써먹을 방법이 없어 일단 환전을 해야만 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고... 근처 식당에 들어가 손짓발짓 해서 쌀국수 한 그릇 시켜먹고 500밧을 내밀자 잔돈이 없다면 거절. 30밧을 건네 주었다. 물가가 잘 감이 안 잡히지만 30밧이면 많이 준 것 같다. 식당에 짐을 맡겼다. 조리실쯤 되는 듯 한데, 닭들이 활개치고 있었다. 식당 종업원들이 나를 외계인 쳐다보듯이 쳐다 보았다. 라오스 국경을 들어서자 마자 입만 다물면 난 거진 라오스인이었을텐데?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헤헤 거리는 것을 보니 외국인 구경 처음하나 보다. 사바디 하고 인사하니 헤헤 웃으면서 인사한다. 사람이 순해 보인다. 

터미널에서 주위를 느적느적 배회하며 은행이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8:00am, 30분쯤 걷다가 라오스 관광청에 들러 지도를 얻었다. 지도란 것이 달랑 복사지 한 장이다. 복사가 흐릿해서 뭐가뭔지 알아볼 수가 없다. 이런걸 어떻게 한 국가의 수도에 있는 관광청에서... 라고 생각했으나 아가씨가 생글생글 웃길래 나도 히죽히죽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하고 나왔다. 그래! 여긴 공산국가야! 가난한 사람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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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관광청에서 얻은 왕위앙 소개 책자. 자세히 안 보이지만 가운데 지도는 손으로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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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야채를 파는 채소장수들. 그런데 은행원이 은행에서 불쑥 걸어나와 야채를 사더라. 그 앞에 파라솔은 사탕수수를 짜내 음료수를 파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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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독립기념문. 그 앞의 황량한 도로. 라오스 최대의 번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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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사관 앞의 운치 있는 도로. 역시 라오스 최대의 번화가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길에 풀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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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kip 짜리 지폐. 100 kip은 돈도 아니다. 그래서 사용조차 하지 못했다.

라오스 최대 도시(수도)의 중심가는 썰렁하기 그지 없다. 몇몇 단층 건물들과 호텔 및 식민지풍의 관공서 건물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지방도시 외곽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다. 보행자용 신호등은 전기 절약을 위해서인지 꺼 두었고, 도로는 포장을 하다만 상태. 보행자 도로는 곳곳에 풀들이 블럭을 뚫고 솟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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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시장 부근의 버스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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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내부. 앞에 보이는 왼쪽 사람은 방물장수, 옆 사람에게 물건을 보여주고 있다.


은행이 8:30am쯤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가 가지고 있는 밧을 전부 킵(kip)으로 환전했다. 환전하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카운터 너머로 한 직원이 커다란 가방을 금고에서 꺼내 돈다발을 바닥에 쏟아 부었다. 화폐가치가 워낙 떨어져서인지 지폐 넉 장을 주고 건네받은 라오스 지폐는 3센티 두께의 한 뭉치였다. 왠지 은행이라도 턴 것처럼 흐뭇했다. 

영어는 애시당초 통하질 않으니 버스 터미널에서 '왕위앙'을 외쳤다. 프랑스식 발음으로는 위앙짱은 비엔짱, 왕위앙은 방비엔 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간신히 10시쯤 출발하는 009번 버스를 찾았다. 일본의 경제지원의 일환으로 받은 버스같다. 할 일도 없고 해서 길에서 라이터와 담배를 상자에 담아 목에 매달고 돌아다니며 파는 꼬마애와 흥정을 하면서 놀았다. 아무 것도 안 사니까 울상을 지어서 껌을 하나 사 주었다.
 
한 시간쯤 기다리자 사람들이 버스에 하나 둘씩 타기 시작했다. 버스는 금새 미어 터졌다. 차장이 통로에 의자를 갖다 놓아서 열 남짓 한 사람들이 앉고 통로 사이 사이마다 빽빽하게 콩나물처럼 사람들이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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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앙 가는 길. 논과 산은 한국의 그것처럼 정겹고 친숙하기 그지 없었다.

4시간 동안 의외로 잘 포장된 길을 달렸다. 흑백사진으로 보았던 오랜 옛날 한국의 모습을 닮은 촌락과 붉은 논밭. 황소는 한국과 똑같이 생겼다. 차창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이 약간 차가웠다. 차만 타면 꾸벅꾸벅 졸았다. 내 앞에 앉은 부부의 아기가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날 쳐다보는게 즐거운 모양이다. 기괴한 모양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물댓 명의 여행객들과 함께 버스에서 내리니 내린 곳 앞에는 황량한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방위를 잘못 읽어 동쪽으로 가다가 남쪽으로 돌아왔다. 벌판은 비행장 터였다. 10분 가량 뙤약볕에서 걸었더니 벗겨지기 시작한 살갗이 다시 타기 시작했다. 논에 불을 놓아 연기로 눈 앞이 따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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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의 모습. 침대를 받치고 있는 것은 콘크리트 구조물. 매트리스를 들어보면 대나무로 얽어놓은 텅 빈 공간이 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여지없이 부실하다.

지치기도 했고, 눈에 띄는 게스트 하우스에 들러 가격을 물어보았다. 싱글룸은 없고, 4만킵. 비싸 보인다. 4000밧을 환전해 20만 킵 정도가 있었다. 이 정도면 라오스 여행에 무리가 없을꺼라고 생각했는데... 가이드북의 게스트 하우스 단가는 아무리 비싸봐야 2만킵 내외였는데 생각해보니 라오스의 극심한 환율 변동을 고려하지 않은 듯 싶다. 더 싼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볼까? 이틀간 차를 타고 돌아다녔고, 어젯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데다 아침부터 쏘다녀서 온 몸이 너절하고 나른하다. 오늘은 그냥 푹 쉬고 싶은 기분뿐이다. 덜컥 첵인하고 짐을 풀었다. 온수 샤워가 된다. 따뜻한 물에 샤워하니 피로가 조금 가시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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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바라본 비행장터. 비행장터 오른쪽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창문이 열려 있고 커튼이 없는 탓에 본의 아니게 벗고 자고 있는 서양 여자애를 창문 너머로 보았다.


잠깐 밖에 나가 강변을 산책했다. 다리를 건널 때 500킵을 받았다. 안 내려고 개기다가 피곤해서 그냥 주고 말았다. 다시 건너올 때도 500킵을 받으려고 한다. 다리에서 뛰어내려 강물을 첨벙첨벙 걸어갔다.
 
아이들이 물가에서 자맥질을 하며 대나무 작살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구경했다. 한쪽 구석에서는 불을 피워놓고 꼬치에 꿴 물고기를 굽고 있었다. 좀 달라고 하니까 화들짝 놀라며 도망간다. 꼬치를 들고 먹을까 하다가 말았다. 땅에 꽂아놓고 자리를 떴다. 여자애 둘이 강가에 앉아 노래를 부르면서 뜨게질을 하고 있었다. 평화롭다. 

버스 터미널 께로 향하는 길에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도 내가 한국인인임을 알아챈 듯 한데, 별로 말을 걸고 싶은 기분이 안들어 슬쩍 지나쳤다. 이국 땅에서 한국인을 만나도 반갑지 않은 것은 왜일까?
 
속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를 채운 바게뜨와 성분이 의심스러운 콜라 원액에 얼음을 타서 비닐봉지에 넣어준 것을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태국의 과일쥬스가 불현듯 그리워진다. 태국과 달리 열대과일들이 별로 없는 탓인지 과일쥬스가 성행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숙소에서 바게뜨를 우걱우걱 먹으면서 다음 일정을 계산해 보았다. 왕위앙에서 이틀, 루앙프라방에서 하루, 배를 타고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가 훼이싸이까지 이틀, 훼이싸이에서 국경을 넘어 메홍손으로, 메홍손에서 치앙라이까지. 치앙라이에서 하루. 짐을 맡기고 트래킹을 하다가 치앙라이에서 방콕까지 가는 여정을 궁리했다. 캄보디아에 갈까 말까 망설였다. 캄보디아에 들르면 말레이지아는 거의 그냥 통과하고 싱가폴로 바로 가야할 형편이다.
 
잠이 안와 멀뚱멀뚱 침대에 누워 있었다. 침대는 콘크리트로 바닥에서 50센티쯤 쌓아놓고 그 안을 대나무 줄기로 엮어놓은 다음 매트리스를 올려놓은 것이다. 객실 밖으로 나와보니 베란다에서 서양애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책 제목이 해리 포터길래 말 몇 마디 붙였다가 재밌다길래 할 말을 잃었다. 뭐가 재밌다는 건가. 

저녁 8시쯤. 여전히 잠이 안 와 잠깐 산책이라도 할 요량으로 오직 200여 미터 짜리 길 하나가 번화가의 전부인 시내로 나왔다. 누군가 '한국인이세요?'라고 묻는 말에 놀라 뒤를 돌아 보았다. 대낮에 길에서 보았던 한국인들이다. 고개를 끄떡이고 히죽히죽 웃은 후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번화가의 끝에는 외국인 여행자를 상대로 하는 술집이 여럿 있었다. 호텔로 다시 돌아오다가 음식점의 야외 벤치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한국인들을 다시 보았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피로회복에는 맥주가 그만이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들과 합류했다. 맥주 한 병에 6000킵. 오라지게 비싸군. 네 명은 각각 따로 여행하던 사람들인데 베트남에서 하나둘씩 만나 모이다가 어느새 동행이 되어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다고 한다. 그중 한명은 인도에서 왔다. 자칭 황태자라고 하는 남자애가 하나 있어 맥주 한 잔만 달랑 마시려니 감칠맛이 나던 참이라 한 잔 더하기로 하고 그들의 숙소 근처로 갔다. 

가는 길에 파파야를 샀다. 커다란 파파야를 4000킵 정도 했다. 내 생각엔 2000킵이면 충분해 보이는데. 맥주도 그렇고, 바게뜨도 그렇고, 숙소도 그렇고 왠지 마음에 안 든다. 가격들이 너무 비싸다. 위스키 한 병을 시켜 먹었다. 라오라오였다. 숙소에 관해 투덜거리자 자기들은 싱글룸에 22000킵 주고 묵고 있다고 한다. 황태자를 따라 숙소를 구경하러 갔다. 그럭저럭 괜찮아 보인다. 그가 자신이 혼자 마시던 위스키를 방에서 들고나와 그것도 마저 마셨다. 알딸딸한 정도가 지나쳐 꽤 취한 듯 싶다. 새벽 한 시쯤 되어 모두와 헤어져서 숙소를 향해 걸었다. 길을 좀 헤메고 나서야 제대로 찾을 수 있었다. 많이 취했다. 침대에 쓰러져서 죽은 듯이 잠들었다.   

아침 아홉시. 오랫만에 제대로 숙면을 취해 몸은 개운했지만 위장이 쓰려 속을 풀어줄 무언가가 애타게 그리웠다. 가이드북을 뒤져 똠얌빠(생선 똠얌)을 하는 곳을 찾았다. 똠얌빠와 쌀밥을 시켜 배를 채우고 시내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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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바라본 강 주변 정경

그리고 어젯밤 그들이 묵고 있는 숙소에 찾아가 주인에게 물어보니 방이 하나 있단다. 25000킵. 역시 더블 침대. 3000킵 정도 비쌌지만 22000킵 짜리와 달리 트윈 베드였다. 흥정할 기분도 아니고 얼른 어젯밤을 보낸 숙소에서 첵아웃 한 후(아줌마가 싱글룸이 하나 비었다며 25000에 해주겠다고 했지만 방금 갔던 곳은 include bath였고 이곳은 그렇지 않아 거절) 짐을 자전거에 싣고 첵인했다. 주인이 친절하고 방도 마음에 든다. 바로 옆방(2호실)에서 어제 함께 술을 먹은 한국인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간단히 짐을 챙겨 바깥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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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앙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의 모습. 기숙사를 갖추고 있다. 적어도 5-60명의 아이들이 조그만 공 하나로 축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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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앙 리조트에서 동굴로 가는 강 중간의 다리에서 바라본 상류의 모습. 평화롭다.


수박 쉐이크 한 잔 시켜먹고 동굴을 향해 떠났다. 자전거는 라오스적으로 삐그덕 거렸다. 포장이 안 된 도로를 따라 대나무로 지은 집들이 눈에 띄었다. 대나무를 얇게 통으로 벗겨내 그것을 엮어 벽을 만들어 놓은 집들, 태풍 한방이면 모조리 쓰러질 것처럼 보였지만 그간 태풍이 불지 않았는지 집들이 꽤 되어 보였다. 집 주위에서는 땅 속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깊은 생각에 잠긴 돼지들이 물끄러미 땅을 바라본 채 서 있었고 비호처럼 날렵한 수탉들이 휙휙 날아다녔다. 

물어물어 남쪽으로 내려가 왕위앙 리조트로 들어갔다. 리조트라는 것이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짓다만 흔적, 땅을 파헤쳐 시멘트로 구획을 잡아놓은 도로와 정원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있다. 다리를 건넜다. 몇몇 외국인들이 좀비처럼 그곳을 방황하고 일본인둘이 벤치에 앉아 있다. 안내판을 보니 11시부터 오후 1시 까지는 동굴이 영업을 하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어가니 노인네가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조그만 소쿠리에 들어있는 찰밥을 조금씩 떼어 입에 넣고 건포처럼 생긴 고기를 살짝 뜯어먹는 것이 식사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제스쳐와 웃음으로 대화를 했지만 서로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그는 밥 먹었냐? 안 먹었으면 이걸 좀 먹어볼래? 라고 말했고, 나는 속이 안 좋아 화장실에서 볼 일을 봐야 한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 문제 없다. 들어가서 일 보라. 화장지는 저기 있다. 라고 말했고, 아. 나한테도 있어요. 라고 말했다. 말했다? 그렇게 말한 거나 진배없다.
 
시원하게 일을 보고 다리를 건너 느적느적 걷다가 동굴에서 흘러나온 초록색 물을 쳐다 보았다. 맑은 물 속에 미끈하게 생긴 고기들이 유유하게 놀고 있었다. 발 담그고 앉아 시간을 보냈다. 사람이 별로 없어 좋다. 그 옆에는 스킨헤드 둘이 물고기들에게 돌을 던지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어디 가볼만한 곳이 없냐고 물으니 근처에 동굴이 많다고 말한다. 머리는 닭처럼 밀었지만 참 공손한 스킨헤드였다. 이래서 여행을 하며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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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앙 리조트 안 쪽에 있는 2층 폐가의 모습. 대나무를 엮어 벽을 만들었다. 게스트 하우스는 물론이고 가옥들이 대게 벽이 얇다. 대체 밤에 부부생활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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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 수심은 대략 2미터 가량.


동굴 근처에 다다르자 안에서 깔깔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미국인 커플이 튀어 나왔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아니 그들의 가이드북에 따르면 애들이 동굴 안내를 해주려고 따라 온다는데 아무도 없다며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주위에는 애들은 커녕 까마귀 한 마리 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그들과 동행이 되어 동굴을 이리저리 들어갔지만 마침 전등을 가지고 오지 않아 깊이 들어갈 수 없었다. 내가 잠시 바깥에 있을 때 그들이 안으로 기어 들어가 무슨 짓을 하는지 계속 킬킬거리고 있었다.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왠지 양가 집안의 어른들 몰래 이루어지는 청춘 로맨스를 지켜주기 위해 바깥에서 망을 봐주고 있는듯한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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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암 동굴 입구


미국인들과 헤어져 시꺼먼 동굴에 도전해 보았으나 역시 손전등이 없는 관계로 더듬다가 날카로운 모서리에 손등만 까졌다. 동굴에서 빠져나와 산 중턱에 있는, 리조트가 개발한 탐장 동굴로 향했다. 아직 한 시가 안되어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살짝 출구 쪽으로 들어가 가파른 계단을 올라 동굴 입구에 다다랐다. 전망이 좋다. 뒤를 돌아 정자를 바라보니 아까 동굴에서 함께 다니던 미국인 둘이 어느새 올라와서 서로 만지작거리며 키들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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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입구



문지기가 올라와 문을 열어주면서 입장료로 4000킵을 요구. 이 친구는 미국인들 앞에서는 알랑방구를 끼다가 내 앞에서는 얼굴 표정이 굳어진다. 

동굴은 시시하기 그지 없었다. 그저 작은 종유굴에 지나지 않았다. 멋있게 보이려고 빨간 등 파란 등을 달아 놓았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하지만 이 꼭대기까지 계단을 만들어놓은 리조트의 노력이 가상하게 여겨진다. 내려오면서 공들인 노력에 비해 결과가 형편없어서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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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짱 동굴 꼭대기에서 바라본 왕위앙의 전경 #1. 과거 라오스의 수도였던 왕위앙은 생각외로 작은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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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앙 전경 #2. 왕위앙 리조트의 건물과 다리가 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 길가에 물건 몇 가지를 내다 놓고 파는 집이 눈에 띄어 무작정 들어가서 먹을거 있으면 달라고 얘기했다. 얘기한 거나 진배없다. 대나무 잎으로 싼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를 건네준다. 그것하고 물을 함께 마시면서 그들의 시원스럽게 생긴 대나무 집에 들어가 TV를 보았다. 식구가 셋, 한 아줌마는 놀러온 것 같고 넷이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얘기 하다가 웃다가 나를 의식해서 입을 다물고 TV를 보기도 했다. 성격들이 워낙 순박하다 보니 외부인을 박대하지 않는 것 같다. 믹서와 오렌지를 발견하고 이걸 여기다 갈아서 먹고 싶다,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말한 거나 진배없다. 오렌지 주스를 만들어서 얼음을 띄워 갖다 주었다. 아줌마가 라오스말로 2천킵이라고 했는데 아저씨는 단호하게 3천킵을 불렀다. 그들은 잘 모르고 있을 테지만 나는 라오스 숫자 정도는 알아 들을 수 있었다. 관광객이라서 사기 당한다는 기분이 들어 씁쓸했지만 멀뚱멀뚱 모른 척 했다. 순박함은 희미해져만 가고 이들도 외국인 등쳐먹는 기쁨을, 돈 맛을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30분쯤 TV 보다가 나왔다. 순 태국 방송 뿐이다.  

자전거를 타고 북쪽으로 무작정 올라가기 시작. 길은 뜨거웠고 음료수 먹을만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간간히 뚝뚝이 쌩하고 지나갔다. 튜브를 뚝뚝에 싣고 강 상류로 올라가는 서양인들이다. 상류께의 동굴 입구 근처로 가보니 방갈로를 만드는 중. 왕위앙도 사람들의 때가 타기 시작하면서 관광지화 되어 가고 있는 것인가? 생각해보니 라오스에 오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 2년 전 일이다. 그리고 3년 전에 값싸고 빡세게 돌아다니며 고산족을 만날 수 있다면서 라오스 여행이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3년이 지나면서 라오스 역시 차츰 관광지화 되어가고 있었다. 특히 중국애들을 닮으려고 노력했는지 중국의 이중 요금제, 그러니까 중국인에게는 정상 요금을 받고, 외국인에게는 그 두 배 정도 되는 요금을 받는 체계를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잘 사는 놈들이 도와줘야 한다고 믿는 북한인들처럼 순진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남한인들은 하나도 귀엽지가 않았다. 어차피 핀트가 맞지 않는다.  

자전거를 나무 그늘 아래 세워둔 채 어슬렁거리며 강을 어떻게 건널까 궁리하고 있으니까(건너편의 동굴에 가기 위해) 강 건너편에서 사공이 손을 흔든다. 그와 대화를 한 것이나 진배없다. 배를 타고 강 건너편에 다다러 그에게 어디 볼만한 동굴 없냐고 물어봤다. 그는 이때다 싶었는데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동굴이 근처에서 가장 큰 것이며 다른 동굴 가봤자 볼 것도 없다. 여긴 박쥐도 살고(팔을 흔들어 보이며) 안에 수영할 수 있는 연못도 있고(팔을 저어 보이며) 거대한 석회암 회랑이 있다(팔을 입가에 대고 소리친다). 나를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다른 동굴에 간 여행자들은 다 바보들이다. 내가 왜 그의 영어가 0.1%쯤 섞인 라오스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아무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가 쥐어준 촛불을 들고 그를 따라가니 동굴이 나타났다. 그는 동굴 안내비와 뱃삵을 요구했다. 선선히 건네주고 그를 따라 동굴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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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입구. 동굴 속에서 찍은 사진은 카메라가 후져서 잘 나오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바람이 솔솔 불어와 촛불이 자꾸 꺼진다. 바닥은 석회석 가루가 수천년(?) 동안 쌓여 습기나 동굴 내부에서 흐르는 개울에 축축하게 젖어 미끌미끌. 촛불은 바람에 흔들리고 미끈거리는 진흙경사로를 더듬어 가다가 간혹 휘청거렸다. 라오스 안내인은 안되는 영어로 뭔가 설명하려고 애쓰면서 조명등을 비춰 종유석을 보여주었다. 

동굴 중간에서 다른 안내인을 따라온 서양인 커플을 만났다. 내 안내인은 나를 그들의 안내인에게 인계하고 입구로 돌아갔다. 여자애가 자길 여자 취급한다고 남자친구에게 투덜거리고 있었다. 별 걱정을 다 한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동굴 중간에는 수영할만한 장소가 있었다. 안내인은 동굴에 박쥐가 많다고 했지만 푸드득 날아올라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박쥐떼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박쥐 한 마리 조차 보이지 않아 박쥐는 어디 갔냐고 물으니까(관광객이 싫어서 떠난 건 아닐까?) 기가 죽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등 뒤로 따라오면서 찍찍 찍찍 박쥐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간혹, 피 빠는 소리도 냈다. 왠지 안내인이 불쌍해 보였다. 

적당치 않은 신발 때문에 고생했지만 여자애 뒤를 따라 다니며 여자애가 가는 길을 조명으로 밝혀주던 남자애는 나보다 고생이 더 심했다. 뒤에서 바위 접치는 소리가 나면 그 친구가 엎어진 것이다. 곧 이어, shit! god damn! 하는 신음소리가 들려오면 안내인과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기다렸다.   

박쥐 울음 소리를 내며 내 뒤를 따라오던 안내인이(어... 근데 왜 안내인이 나를 따라온 거지? 내가 그를 따라가야 하는 것 아닌가?) 장난기가 돌았는지 자신의 전등과 내 촛불을 껐다. 우리는 바위 뒤에 도사린 채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 보았다. 촛농이 손등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들이 비추는 불빛이 어지럽게 동굴벽을 기어갔다. 그리고 우리 쪽을 향해 전등이 비추었을 때, 나는 한껏 사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내인은 박쥐 소리를 냈다. 여자애 취급 받았던 여자애는 울먹울먹 웃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자애는 여전히 뒤에서 자빠지며 쉿! 댐!을 외치고 있었다. 전형적이라 장난에 흥미를 잃었다.  

강을 건너 자전거를 타고 마을로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걸 도시라고 부르기는 뭣했다. 집 앞에서 자전거를 반납하고 오후 1시 조금 넘어 숙소 앞 식당에서 두부 볶음밥을 시켜 먹었다. 어젯밤에 볼 때는 몰랐는데 베지타리안 식당이다. 식당 이름은 End of the World 였다. 식당 이름을 보다가, 세계여행을 꼭 가야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번 굳혔다. 두부 볶음밥을 맛있게 먹다보니 황태자가 숙소에서 나와 내 앞에 털썩 앉았다. 어젯밤 먹은 술 때문에 숙취로 고생한 것 같다.   

숙소 주인집 할머니와 아가랑 놀다가 잠시 낮잠을 잤다. 옆 방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스르르 잠들었나 보다.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바깥은 이미 어둠이 내려 앉았다. 똠얌을 먹고 싶단다. 그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갔으나 많이 실망한 듯. 식당 주인은 술에 취해서 주문 받는 것을 잊어 먹었다.   

외국인들이 바글대는 생맥주집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인도에서 장기체류한 탓에 몰골이 꾀죄죄한 일본인을 만났다. 녀석은 떨만 빨다 왔는지 헤롱헤롱 거리며 일행 중에 유독 여자에게 집적대었다. 황태자가 왠일인지 나서서 그 친구를 상대했고 일본애는 흥미를 잃었는지 입을 닫았다.   

내가 술을 산다고 그랬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숙소에 들러 돈을 가져왔다. 맥주집에 죽치고 앉아 있는데 황태자가 안 왔다. 함께 왔는데, 잠시 한눈 팔다가 길을 잃은 듯. 술 먹으면서 사람들 신원 파악. 한 여자애는 가고 맥주가 다 떨어졌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마시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주인장에게 내일 떠난다고 말하니 오늘 저녁에 지불해 달라고 한다. 아가와 할머니랑 놀았다. 아가에게 지구본을 돌려가며 지명을 가르쳐 주었다. 할머니는 뭐가 좋은지 내 얼굴만 보면 낄낄낄낄 웃었다. 한쪽 눈은 실명했고 꼬부랑 허리에 거미같은 손으로 정원에서 꽃을 따다가 빨간 꽃과 노란꽃 무더기를 만들어 내게 건네 주었다. 나는 그 꽃을 들고 돌아다녔다. 그래도 여자가 준 꽃이다. 한국에서는 생전 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꽃을 받은 적이 있었다.   

왕위앙 레스토랑 근처를 돌아다녔다.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보았다. 숙소로 돌아와보니 숙소 앞 탁자에 한국인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에게 내 가이드북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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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앙에서 만난 세 한국인 여성. 다들 베트남에서 만나서 라오스까지 정처없이 흘러왔다. 내가 찍은 것은 아니고, 내 카메라로 서로서로 찍었다.

남은 사람들은 알아서 하기로 하고 황태자와 나는 tube를 빌리러 가게에 갔다. 툭툭을 타고 5-6km 상류로 올라가 튜브를 타고 내려오니 기분이 끝내줬다. 백조처럼 우아하게 신발짝으로 노를 지었다. 하늘에는 해가 떠 있었고 강물은 천천히 흘러간다. 이렇게 뻔한 일들이 낭만적인 기쁨이 되다니... 자다 깨다 하면서 강물을 따라 유유히 흘러갔다. 책을 안 가져온 것이 후회된다. 담배도 없었고 모자도 없었다. 약간의 돈을 들고 왔더라면 중간 중간 동굴에 들러 휘적휘적 돌아볼 수도 있을텐데... 실수다.   

홀랜드나 더치로 보이는 여자 5명으로 이루어진 시끌벅적한 팀을 만났다. 황태자는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강물에 떠내려오는 속도가 서로 차이가 있었고, 나는 틈틈이 백조처럼 우아하게 신발짝으로 노를 저어 나아갔다. 여자애들과 어쩌다 경쟁이 붙었는데, 나를 이겨보려고 시끄러운 오리들처럼 법석을 부렸다. 난 우아해야 하므로 천천히 노저어갔다.   

3 시간쯤 걸려 내려오니 다리 앞에서 통행세를 받고 있었다. 젖은 옷가지를 흔들며 돈 없다고 개겼다. 그들끼리 수군거렸다. 서로에게 돈이 없다는데 어쩌지? 하는 표정들이다. 정말 재밌게도 순진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담배 한 대 달라고 하니 한 친구가 뛰어갔다. 그는 다리를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한 개피를 건네주었다. 황태자가 떠내려올 때까지 기다릴 참이었다. 간신히 껍데기가 벗겨지기 시작한 살이 하루종일 햇볕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시 탔다.   

그들이 라오라오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관심있는 표정으로 쳐다보니 라오스어로 뭐라고 말한다. 마시겠냐고 묻는 것 같아 고개를 끄떡이자 다리에 앉아 있던 현지인 셋이서 술을 주느냐 마느냐로 싸우기 시작했다. 어쩌면 대낮부터 무슨 술을 마시냐고 싸우는 것 같기도 했다. 그중, 술병을 가로채 완강하게 버티던 한 노인네가 술병을 잡고 안 놔주길래 술 먹긴 글렀다 싶었는데 그 노인네가 지저분한 컵을 한켠에서 꺼내더니 손수 술을 따라 내게 한 잔 건넸다. 완샷했다. 한 잔 더 따라 주었다. 45도 짜리 술을 완샷 했다. 현지인들이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알딸딸한게 기분 정말 좋다. 현지인들끼리 한 잔씩 돌리다가 내게 다시 한 잔 따라 주었다. 이번에는 천천히 홀짝홀짝 마셨다.   

용기를 얻은 현지인들은 다리를 지나가는 외국인들에게도 권해 주었으나 다들 거절했다. 내가 나서서 한 잔 마셔보라고 했지만 마시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내가 마셨다. 황태자가 안 오길래 떠나려 하니 내일 또 오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통행세도 안 내고 담배 한 개피와 술 넉 잔을 공짜로 얻어 먹었다. 전날 오렌지 주스 먹고 오버차징하는 라오스인에게 느꼈던 불쾌한 기분이 깨끗이 날아갔다.   

튜브를 반납하고 숙소로 돌아가려니 튜브를 어깨에 건 채 황태자가 터덜터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왜 걸어오냐고 물으니 저녁 때가 가까워지니까 물이 차가워서 잠이 깨어 중간에 걸어왔다고 말한다. 우리는 시장통에 쭈그리고 앉아 정체불명의 면류를 먹었다. 여기서 먹는 음식은 재료가 미스테리였다. 프랑스 여자 둘이 짹짹거리며 노판으로 다가왔다. 그들에게 맛있는 것이니 먹어보라고 권했다. 안 먹고 개긴다. 그중 모험심이 강한 한 처자가 하나 먹어보더니 묘한 표정을 짓고는 친구의 손을 잡고 슬금슬금 사라졌다.   

숙소에서 샤워하고 나서 술 먹으려고 한국인 여자들을 찾아 돌아 다녔다. 서양애들은 별로 재미가 없어 보이는 우리 동양인 남자들을 길가의 널린 돌맹이 쳐다보듯 하기 일쑤였다. 내가 말을 걸기 전에는 그쪽에서 말을 거는 일이 없었고, 동양인에게 두려움이라도 느끼는지 겁먹은 표정이 역력했다. 아니면 내 인상이 드러워서 그런 것일까? 여자들을 찾지 못해 우리 끼리 어제 갔던 바로 갔다. 생맥주가 떨어졌단다. 병 맥주 두 병 마시고 인류학의 장래에 관해, 인문학의 위기에 관해 떠들었다. 맨정신인 대낮에는 먹고 살기 바빠서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맥주가 모자라 더 시키려니 병 맥주도 다 떨어졌단다. 술집에서 술이 떨어졌다니? 아무래도 우릴 내 쫓으려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바에 동양인은 우리 둘 밖에 없었고 어젯밤에도 비슷한 냉대를 당한 기억이 났다.   

돌아 오는 길에 여자애 하나를 만나 숙소 앞 레스토랑에 앉아 뭔가 먹는 동안 황태자가 먹다남은 라오라오를 가져와 박쥐 고기를 안주 삼아 마시는데 다른 일행이 도착. 라오라오를 맥주에 섞어 들이키면서 박쥐 고기를 먹으니 맛이 그럴듯 하다.   

숙소에 돌아와 자려고 하는데 한국인 일행이 시장에 가서 따끈한 맨밥을 사왔다. 마침 출출하던 참에 잘 되었다 싶어 거기에 고추장을 비벼먹으니 맛이 끝내준다. 한국에 있을 때는 줘도 안 먹는 고추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일행중 내일 나와 함께 위앙짱으로 돌아가기로 한 여자애에게 5:30am에 깨워달라고 부탁하고, 가이드북을 한국인 중 한 명에게 주기로 했기 때문에 가이드북에 적힌 버스 번호를 옮겨적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5:30am, 도대체 여행할 때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고 뭘 해도 별로 안 피곤하고 건강하기만 한 것일까? 충분한 햇빛으로 합성된 비타민D 때문일까? 샤워하고 숙소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짐을 싸고(시간이 좀 걸렸다) 인사하고 나갈 때쯤이 6:05am, 버스 정류장에 나가보니 마침 버스가 도착해 있다.   

남는 자리가 없어 각기 떨어져서 비좁은 좌석에 끼워타고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10시쯤 위앙짱에 도착. 지금 국경을 넘어봤자 태국에서 저녁 때까지 할일 없이 방콕행 버스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구경이나 더 하다 가기로 했다. 마침 동행은 위앙짱 구경을 못해 보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삐끼가 환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에게 국경까지 얼마냐고 물으니 3만킵을 달란다. 히죽히죽 웃으면서 웃기고 자빠졌네 하고 돌아서니까 가격이 차츰 떨어지기 시작했다. 2만킵쯤 떨어졌을 때 우리 관광 좀 하고 돌아와서 네 차를 타겠다고 말했다. 삐끼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환한 표정으로 사라졌다.   

스테이션 앞의 식당에서 간단히 국수로 식사, 도시라기 보다는 마을에 가까웠던 왕위앙에 있다가 돌아와서 인지 문명세계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닭들이 날뛰는 식당 뒷켠에 짐을 잠시 맡기고 독립문 꼭대기로 올라갔다. 허우대는 멀쩡한데 독립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짓다만 콘크리트 건물이다. 처량하기 짝이 없다. 라오스 최고의 번화가에 있는 신호등들은 '절전'을 목적으로 여전히 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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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 내부의 선물가게. 심심해 보이는 아이.


은행을 찾아 달러를 baht로 환전. 20 달러만 했다. 환율이 매우 형편없다. 가이드북을 뒤져 사원을 찾아 보았다. 이미 볼품 없다는 말은 들은 바 있다. 1:00pm에 문을 연다고 적혀 있다. 지나가는 중들과 놀았다. 의외로 영어를 잘 하는 친구가 있어서 대화에 그다지 지장은 없었다. 뭔가 철학적인 주제로 얘기해 볼까 골똘히 궁리해 보았으나 불교에 관련된 단어가 마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애들이 나뭇 그늘에 앉아 우리를 빤히 쳐다보길래 애들과 놀아 주었다. 여자애가 애들 음식을 뺏어 먹으려다가 실패했다. 난 가이드북을 꺼내 사진들을 보여주며 살짝살짝 구슬려 껌과 과자를 뺏어 먹었다. 꿀맛이었다.
 
화장실에 들러 속을 비우고 시간이 되어 사원으로 들어갔다.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하면서 라오스의 불상 사이를 거닐었다. 사팔뜨기 부처들이 많았고 부처에게 선글래스를 끼우고 사진을 찍어보자는 둥, 부처와 하이 파이브를 하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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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입은 모양으로 보아서는, 라오스의 있어 보이는 집안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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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한 컷. 계급은 높은 것 같은데 영어는 잘 못했다. 꽤 점잖은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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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들이 여자와는 사진을 안 찍는다는 통념 때문에 여자애가 바짝 얼어 예의를 지키려는지 선글라스를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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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에 늘어선 불상들... 매우 희안하게 생겼다. 대부분 사팔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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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내부 정경. 한국의 절간만큼 단아하고 넉넉해 보인다. 태국의 사원처럼 화려해서 왠지 볼썽 사납지도 않다. 금칠한 부처만큼 보기 싫은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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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 잘린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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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과 하이파이브?

 
천천히 걸어서 터미널로 귀환. 배나 채울까 하다가 시장에서 사기당했다. 음료 두 잔을 시켜먹고 일어서려니 8000킵을 달란다. 그럼 한 잔에 4000킵? 죽여주는군. 얼빠진 표정으로 고스란히 지불하고 속을 채운 바게뜨 두 개를 사고, 식당에서 닭들을 헤치고 배낭을 찾아와 느적느적 국경까지 타고 갈 것을 찾다보니, 아까 우리와 2만킵에 협상했던 친구가 나타났다.
 
라오스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국경 가는 길 역시 황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꾸만 인도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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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앙짱의 차분한 거리 모습


 출국할 때 20밧이나 2500킵을 달라고 한다. 그렇잖아도 음료수 먹다가 돈을 다 날려서 툭툭 기사에게 1000킵을 못줘 낭패를 당했기 때문에 눈이 홱 돌아, 왜 출국할 때 출국세를 내냐고 출국소 관리에게 악을 썼다. 그런데 그건 출국세가 아니라 셔틀버스 승차비였다. 낯 뜨거워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태국에서 라오스 올 때에도 셔틀 버스를 탔고 분명히 돈을 냈기 때문이다.   

태국에 입국, 농카이로 귀환.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16:30 차 밖에 없다. 현재 시각은 16:00. 가이드북에 나온 시간표가 틀리는 거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라오스 물가를 킵으로 적어놓은 점과, 불과 일 년 만에 환율이 폭락하여 체류 비용 계산에서 엄청난 차이가 났고, 덕택에 라오스 남부로 들어가 루앙프라방을 거쳐 북부의 훼이사이를 통해 태국으로 돌아온다는 계획은 물 건너가고 만 것이다. 가이드북을 순진하게 믿은 탓이다. 그것보다는 여행자들에게 현지 정보를 수소문하지 않은 내 탓이 더 컸다.   

어쩔 수 없이 16:30 차에 올랐다. 우리야 걱정 없지만, 우리처럼 루앙프라방 행을 포기한, 왕위앙에 남아있는 한국인들은 저녁 차 시간으로 알고 느적느적 오다가 차를 놓칠 염려가 있어 걱정된다. 차 안이 널널해서 각기 널찍하니 한 칸씩 차지하고 다리 뻗고 잘 수 있었다. 옆자리에 여자애가 앉아 있으면 졸다가 기대기 때문에 불편하다.  

새벽 5:30am, 방콕 북북 터미널에 도착. 짹짹거리는 택시기사들을 뿌리치고 대신 그들에게 시내버스 터미널 위치를 물어 첫 차로 방콕 시내로 갈 예정. 여자애가 네스티와 커피가 섞인 야릇한 음료를 가져와 나눠 먹었다.  

카오산에 도착하니 6:30am, 만남의 광장에 슬쩍 짐을 올려놓고 거리를 헤메다가 본의아니게 죽 한 그릇 먹었다. 오렌지 쥬스를 달랬더니 죽과 오렌지 쥬스를 가져다 주었다.
 
메일을 확인하러 인터넷 까페에 들렀다. 농카이-방콕 행 시간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왕위앙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알려주려는 목적도 있었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에어컨 클래스 2였고, VIP나 에어컨 클래스 1은 버스 터미널에서 찾을 수 없었다.   

전화접속 네트워킹을 사용하는 인터넷 카페의 컴퓨터들은 hotmail.com에 접속이 되지 않았다. 아침 일찍부터 찾아와 메일을 사용하려던 외국인들이 우두커니 컴퓨터 앞에 앉아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난 내 홈페이지로 들어가 내 컴퓨터의 ip address를 알아낸 후 vnc viewer로 내 컴퓨터에 원격 접속해 집의 컴퓨터로 hotmail에 들어갔다. 옆에서 보고 있던 친구들은 내가 핫메일을 쓰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되는 줄 알고 시도했으나 안 되지. 약 오를꺼야.  

메일을 확인했다. 3-40통의 메일이 와 있었다. 그중 회사 동료의 메일을 열었다. 투자 유치에 실패했고, 기한을 넘겼으니 이제 일을 접자, 미안하다는 내용이다. 별로 씁쓸하거나 기분 나쁜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서울에 돌아가면 땡전 한푼 없는 알거지가 되지만 그것도 걱정하지 않았다. 뒷 일은 그때 가서 걱정하기로 하고 일단 여행을 왔으니 마음을 편히 가지고 즐기기로 했다. 여기와서야 건강을 되찾았다. 그동안 찌들었던 머리통은 오직 여행이라는 목적 한 가지 만으로 가득 차 있었고 사실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일정이나 계획이 도중에 사라졌기 때문에 그냥 떠돌아다니는 것 이상은 되지 않았다. 지출과 비용을 계산하지 않았고 절약을 한다던가, 시간을 잘 맞춘다거나, 아니면 관광지를 요소요소 돌아다니며 구경하지도 않았다. 그저 할 일이 정 없으면 움직이는 식이랄까? 하고 싶은 대로 하니까 마음이 편하고, 건강상태가 지극히 좋은 것 같다.   

여자애는 오늘 만남의 광장에서 자기 친구를 만나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 여행 일정은 40일 정도인데 여행경비로 1000$쯤 준비한 것 같다. 그중 500$이 남았고, 그중 일부를 환전하여 짜두짝 시장이나 기타 백화점에 들러 엄마 속옷이라도 사줄 생각인 것 같다. 그녀에게 이것 저것 정보를 가르쳐 주었다. 국제 전화는 잘 안되었고, 환전은 카오산에 널려 있는 은행 출장소/환전소에서 했다. 싸얌 스퀘어로 가는 버스 번호와 버스 정거장을 가르쳐 주고 헤어졌다. 돌아가면 서울에서 만나 술 한 잔 하기로 약속했다.   

오후 한 시, 음흉한 목적을 가지고 맛사지를 받으러 갔다. 30분에 150밧, 전통 맛사지 대신 오일 맛사지를 택했다. 맛사지사가 등짝에 올리브유를 바르고 힘을 주어 문지르자 새까맣게 탔던 살거풀이 죽죽 벗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30분 동안 나는 맛사지사를 때밀이로 고용한 셈이다. 맛사지를 마치니까 기분이 상쾌했다. 희안한 일은 그렇게 꾹꾹 눌러대는 맛사지를 하는 동안 뼈 마디 중에 우두둑 소리 나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는 점.   

카오산의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목걸이 줄을 만들어줄만한 곳을 찾아 다녔다. 마침 가죽 제품을 파는 곳에서 가느다란 끈을 발견하고 그에게 목걸이를 내놓고 줄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 목걸이 모양 때문에 낄낄 거렸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목걸이가 되었다.   

만남의 광장에 들러 짐을 찾아 슬쩍 빠져 나왔다. 미안한 기분 탓에 100밧 정도나 되는 한국 음식을 시켜 먹기도 했지만 이미 두 번을 그렇게 하니 차라리 하룻밤 자는 것이 나을 듯. 다음부터는 짐 보관소에 짐을 맡겨야 하겠다.   

복권청 앞에서 파인애플을 사서 우걱우걱 먹고 있으니 반쯤은 거지가 된 기분이 들었다. 옷차림도 그렇고 앞뒤를 훌터보면 사실 무척 없어보였다. 59번 에어컨 버스가 자나간다. 더 기다릴 것도 없이 차도로 맹렬하게 뛰어나가 버스를 가로막듯이 세운 후 기어 올라갔다. 그러니까 왠지 더 거지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탈리아 놈으로 보이는 녀석이 자꾸 짜두짝 시장이 어디냐고 버스간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앞에 앉아 있는 곱상하게 생긴 태국 태생 중국 청년은 겉모습만 얼핏 봐서는 부잣집 아들처럼 보였다. 태국도 태국인과 중국인의 소득격차가 심하게 나는 것 같았다. 나와 피부색이 같은 중국인 부류는 대게 돈이 많고 까무잡잡하고 느긋한 태국인들은 돈은 없지만 인생을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것 같다.   

차장에게 공항이 다음 정거장이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내리니까 허허벌판. 다음 정거장이 아니라 다음 다음 정거장이었다. 가르쳐주려면 똑바로 가르쳐 줄 것이지. 혹시, 내가 묻는 방법이 잘못된 것일까? 빌어먹을. 살타는 소리가 심하게 들려온다. 공항 터미널 3층으로 올라가 보딩패스를 얻으려고 하니 컨펌이 아직 안되었단다. 다시 데스크에서 확인해 보니 컨펌이 된 상태. 엿먹을 놈, 깜짝 놀랐잖아. 남은 동전으로 구아바 주스와 빵을 사들고 출국장에서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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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무앙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에서 바라본 방콕 외곽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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