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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주행

잡기 2009. 3. 1. 02:57
2월 22일 주행이 당혹과 자괴감으로 점철되어 원인이 어디에 있나 살펴보려고 2월 28일 자전거를 탈 생각이었다. SF&F 도서관 개장식이 마침 같은 날이라 그 곳에 살짝 들러 표도기님과 얘기 좀 하다가 개업식 하기 전에 나와 '주행테스트'를 계속 해 보기로.

아내는 져지에 츄리닝 입고 나가니까 정말 그 몰골로 돌아다닐 꺼냐고 한숨을 푹 쉬었다. 이거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이 트레이닝복 입고 벌건 대낮에 인천공항에서 출국한 적도 있다. 옷가지 만큼은 타인의 눈에 굳이 신경쓰지 않았다. 개소식 하는 곳에 가는 것이 좀 거시기하지만 그 곳 사람들도 적응하면 금새 익숙해질 것이다.

오후 2시 8분 출발. 잊지 않고 지하철 역 앞에서 자전거에 바람을 넣었다. 강변로까지 22kmh 정도로 워밍업하듯 달리다가 강변로에 진입해 28~31kmh로 줄곳 달렸다(평소 22~25kmh로 달리던 구간이다. 2월 22일에는 타이어에 바람이 좀 빠졌다고 평속이 18kmh가 나왔다). 바람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속도가 더 났다. 그나저나 한강변에서는 35kmh쯤 되면 아무도 추월하지 못한다.

이명박 시장 시절엔 한강에 오페라 하우스 세운다고 하다가 갖은 욕을 먹었는데, 오세훈 시장은 임기 초부터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반포대교를 자전거 전용 도로로 만들고 그 앞에 수상 레저 타운 같은 것도 만들 계획이란다. 어쨌거나 반포대교로 차량 통행이 중지되고(가능할까?) 한강변 자전거 도로가 정비되면 꽤 볼만한 예산 낭비 작품이 나올 것 같다. 뭘 하는지 자세하게 관심은 없지만 이래저래 공사가 한창이다.

사당역을 지나 SF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GPS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찾아갔다. 14:08출발, SF 도서관에는 15:50 도착. 아직 손님이 없어 서가에서 책들을 들쳐보며 운영 스태프들과 시간을 보냈다. 표도기님이 도착해 리허설을 했다. 고삿상을 옮기던 도중 살짝 내용물을 보고 웃었다. tai0님을 처음 만났다. 오래 전에 tai0님 글이 이상하다고 내가 말했단다(옛날옛날에 내가 그 바닥에서 빼먹고 욕하지 못한 사람은 없지 싶다 -_-). 곧 결혼할 이씨와 이웃사촌이 될 것 같단다.

예정보다 30분 늦게 개소식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행사 준비로 바쁜 표도기님과 따로 이야기할 시간을 만들긴 힘들 것 같다. 저녁을 함께 할 시간도 안 되지만, 다스베이더 헬멧과 광선검이 올라온 웃기는 고삿상이 서로 뻘쭘한 사람들에게 아이스 브레이킹 챈스가 되었길 바란다.

한가할 때 살짝 들렀다 일찌감치 빠져 나가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자전거 타러 나가야 한다. 해지면 춥다. 많이 늦었다. 하는 수 없이 질의응답 시간에 직지 얘기를 하고(그것도 포멀하게!) 개소식이 끝나자마자 SF도서관을 나왔다. 사이파이님한테 사이트 알려준다는 걸 잊었다. http://www.beerschool.co.kr/

머문 한 시간 동안 물 한 컵과 포도주 반 병, 치즈케익 한 조각, 빵 두 조각, 쿠키 세 개를 먹었다. 어쩌다가 '짐승의 연주자 에린'의 원작이 '야수'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랬군. 라이드백 만화책을 봤고, 블레임 이전 세계를 다룬 바이오메가 1권을 봤다. 보고 싶었던 만화책들이다. 도서관에 있는 SF들 대개는 본 것들. 어쩌다 기회를 놓쳤을 뿐, 현재 가지고 있지 않아도 88년 이후 출간된 SF 중 못 읽어본 것은 극히 드문 것 같다. 한국에 출간된 SF의 총수는 500여권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행사전 스타워즈 아동용 요약판을 보고 변사를 동원해 스크린 깔고 코스프레 복장으로 연기하면 재밌을 것 같다며 스태프들과 히히덕거렸다. SF 읽는 사람들과 SF 얘기 하는 것이 오랫만이라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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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 출발. 꽉꽉 막히는 차량 틈을 요리조리 통과해 신림역을 거쳐 가산디지털단지역에 다다랐지만 건너편 안양천변으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탐험주행이라 온 길로 가지 않으며, 돌아가는 길을 모른다 -- 때문에 요즘 OSM에 정진한다.

전철로와 평행한 좁은 도로를 따라 차량과 함께 구로역까지 올라가서 가까스로 안양천변에 다다랐다. 오금교에서 성산대교까지 고속주행했다. 성산대교를 건너 산책객들이 한가하게 돌아다니는 불광천을 따라 응암역까지 다다른 후, 다시 시내에서 차들과 나란히 달리며 집에 돌아왔다. 주행거리 55.6km, 2h49m 주행, 30m 휴식. 평속 19.7kmh. 제 속도다. 시내 주행 구간이 길던가 맞바람을 받으면 평속은 18-19kmh 사이가 된다.

주행 평가: 타이어에 충분한 공기가 없어 접지면적이 늘어나면 다리에 상당한 부하를 가한다. 안장에 체중을 실으면 절반 정도 짜부러드는 뒷 바퀴로 주행할 때 평균속도는 3kmh 저하되었다.
그 동안 시간이 없어 못하고 있던 OSM 도로 지도 제작을 하고 있다. 틈틈이 potlatch를 이용해 yahoo aerial map을 참고해서 서울 주요 도로를 만든다. 이 작업이 제대로 결실을 맺게 되면 트랙로그를 일일이 만들지 않고도 GPS 만으로 전국 주행이 가능하게 된다.

potlatch는 정교하거나 대량의 데이터를 다루는 작업에 적합치 않아 JOSM과 merkaartor를 같이 사용했다. 몇몇 사이트에 OSM을 소개한 후 자신이 가진 트랙로그를 올리는 사람들이 생겼다. 작년에 농조로 디지털 대동여지도 프로젝트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다. 외국에서는 OSM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하다. '아마추어 지도 제작자의 모임'이다.

한국 도로 지도 만들기 삽질 모임 같은 공공 프로젝트를 이끌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OSM은 대단한 포텐셜을 지녔다. 그리고 매력적이다. 작년에 처음 알았을 때 wikipedia에 버금가는 이 대단한 공공 프로젝트가 왜 여태까지 항간의 소문으로 들어본 적이 없나 놀랐다.

일하다가 쉬는 시간이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며칠 전 꿈을 꾸면서 OSM으로 지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전체 윤곽을 스케치하기도 했다. 심지어 사제 맥주를 들고 아마추어 지도 제작자들과 거나한 뒷풀이를 하는 꿈도 꾸었다. 우리는 UTC 시각과 경위도로 약속을 잡아 만난다!

* OSM에 사람들이 널리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겠다. 트랙로그만 수집해 놓기만 하면 지도 편집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할 수 있다.

* OSM 도로 지도는 다음, 네이버, 구글 한국 지도보다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
 - 다음, 네이버, 구글 지도는 사용자가 수정할 수 없다.
 - 업데이트 반영이 OSM처럼 실시간이 되지 못한다.
 - 해당 지역 주민은 그 지역에 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 OSM은 전세계를 아우르는 데이터베이스다.
 - 데이터베이스 뿐만 아니라 데이터베이스 구현(응용)도 공개되어 있다.
 
* 전국 주요 고속도로(highway)와 주요도로(primary road, trunk)를 확보한다. 지도 제작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참고 지표가 된다. 아무래도 전국도로지도 책을 구해야 할 것 같다.

* 내비게이션 시스템이나 무료 공개지도보다 나은 훌륭한 응용 분야가 있다. 트래킹 트레일(footway)과 바이크 트레일(cycleway)이다. 파란 맵이 등산 지도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정교한 등산로 지도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GPS를 사용하는 산악동호회와 자전거 동호회에 꽤 축적된 트랙자료가 있다.

* POI의 확보 방법: 네이버/다음/구글 지도 중 네이버 것이 POI가 가장 풍부하다. 그것과 yahoo 항공사진(2006년 판)과 구글 어스(2009년 판도 일부 있음)의 항공 사진을 참조해 POI를 수작업으로 만든다(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아직은 유출된(?) 자료가 없으니까). 이중 가장 실용적이고 우선적으로 구축해야 할 POI는 기차역, 지하철/전철역, 버스터미널(이하 transportation)이다.

* POI의 구축은 현재로선 구글 어스 외에 방법이 없다. GPS waypoint로는 제한적이고, 아직 네이버 맵 오버레이를 이용한 ajax 소프트웨어를 내 손으로 만들 정도의 시간이나 실력은 없다. 누가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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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황량했던 한국이 불과 며칠 사이에 몇몇 사용자들의 참여로 이렇게 변했다. 흡사 내 손으로 도시를 건설하며 문명을 일으켜 세우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작업 진행 후 결과물을 흡족하게 바라볼 때면 좋은 SF 읽은 후에나 찾아오는 포만감을 느낀다.  요즘 내가 하는 작업은 지하철/전철역 총정리다.

최근 읽은 넌픽션 중 가장 재밌는 책은 토니/모린 휠러의 '론리 플래닛 스토리'다. 나와 마찬가지로 토니 휠러 역시 이스라엘리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지랄같은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여행할 때 점잖고 좋았던 친구들은 내 경우, 하나 같이 독일인이었다. 그들은 말수도 적다. 영어를 못하는 작자면 '친절한 원주민' 분위기까지 나서 금상첨화다. 토니 휠러도 독일의 여행 문화가 가장 선진화되어 있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독일 배낭 여행자들에게 딱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일광욕에 환장해 있다는 것. 어? 그런데 휠러가 그것도 똑같이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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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바가 몇 년전 아내에게 선물한 것. 서재에 높이 걸려 있는 이 것을 볼 때마다 비비디 바비디 부가 생각난다.

론리 플래닛 스토리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구는 환경 운동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떠들어대는 것, '범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Thinking Globally, Acting Locally)' -- 주변에서 자주 보는 흔한 문구다. 토니 휠러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증오와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OSM은 외국에 알려지는 첫번째 상세 한국 영문 지도가 될 가능성이 있다 -- 천연 비누 만드는 건 지루하고 귀찮다, 지도 만들기야 말로 범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할만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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