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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5.06 omphalos 1

omphalos

잡기 2007. 5. 6. 01:00
사람들에게 잘 못하는 것은 그들을 위로하고 기운을 북돋아주고 다독여주는 것이다. '어렵더라도 조금만 더 참고 기운내 홧팅' 보다는, '기운내 병신아' 쪽이 더 가깝지 싶다. 케세라세라다.

최근 읽은 어떤 신문기사에서 '행복학'의 권위자가 주장하길(행복학에 권위가 있다는 것이 다소 수상쩍지만 신문은 늘 오버하고 연구자는 겸손했다) 행복의 본질은 '행운' 그러니까 '운명'에 가깝단다. 그러면서 happyness의 원형이 'happens'라나? 거봐라, 졸라 연구해봐도 행복=로또같은 것이다 라는 내 지난 일 년간의 주장과 다른 점이 없지.

덕,진,지,의,명,화,애.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글자들이다. 이 글자들은 모두 하나의 글자로 수렴한다. 전. 돈이 있으면 베풀 수 있고, 거짓없이 살 수 있고, 사교육도 할 수 있고, 어려운 친구에게 보태줄 수도 있고, 찰스 시모니처럼 우주여행을 할 수 있고, 업수히여김을 당하지 않고 조잔한 것들로 고뇌하거나 싸우지 않게 된다. 사랑은 돈 주고 사면 된다. 물론 돈이 없을 때에도 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글자들이지만 황금빛이 반짝여야 비로서 진가가 발휘된다. 이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중국인들은 정말 대단하다. 이런 중국인들과 싸워서 이길 생각을 하지 말고 동반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다. 동반상생은 중국인들에게 무례한 표현인 듯 하니, 어떻게 꼽사리라도 끼어서 개평이라도 받아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중국인들을 본받아, 계산과 이치에 밝아지자. 운명을 극복하는 또다른 행복의 갈랫길이다.

예전에 술자리에서 요즘 공학도들이 지구의 반지름이 6300km쯤 되는데 위도 30도에서 지구의 둘레가 어떻게 되는지 학교에서 12년씩이나 배운 간단한 계산도 못한다고 개탄하다가, 거기 앉아 있던 프로그래머들이 그걸 계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젠장 실수했군 했던 적이 있다. 비슷한 실수를 최근에 다시 한 번 했다. 아무 도구 없이 지동설을 입증해 보라고 했다. 정말 꼬질꼬질하게 입증해 보라는 얘기가 아니라 과학적 프로세스와 기본적인 개념을 알지 못하면 과학적으로 입증된 가설이나 이론들이 사실상 종교적 도그마나 이데올로기와 같다는 것을 반증하기 위해서였다. 과학 역시 맹신과 종교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놀라운 것은 지동설을 입증하기 위해 사실상 필요한 무척 다양한 지식과 방법론을 대개가 학교에서 이미 배웠으며 인문계나 이공계, 상경계 이런 전공선택은 그런 것과 무관하며, 70년대 이후 출생자 거의 전원이 교육을 받았는데(일부 불우한 청소년이나 비행 청소년은 빼자. 그런거 지적하는 양반들 귀찮다) 흡사 MIB에게 집단최면 시술이라도 당한 것처럼 아예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별 보면 아무 생각 안드는건가? 구닥다리 그리스, 그러니까 오랑캐 설화밖에 생각 안나나? 그저 좋아?

굳이 이런 얘기를 찌질스럽게 늘어놓는 까닭은, 생각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어, 얼마 전에 교보문고의 아동도서 코너에서 과학 관련 어린애들 교재를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서 였다; 이런걸 창의력, 사고훈련이라고 하는건가? 팩트 나열에 지능개발 수준인 이런 것들이 어떻게 창의력과 유연한 사고방식하고 연관이 되는거지? 특히 유연한 사고는 일정 정도의 지식의 폭발적 결합과 유추에 의존하는데, 훈련한다고, 익숙해진다고 습득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지금껏 함께 일한 프로그래머중 열에 아홉은 프로그래밍에 대한 감각을 타고난 사람들이 아니다. 그건 집단 최면이 아니라 대다수의 인간은 받아들일 수 없거나, 흥미가 없는 변태적이고 소수자적인 두뇌의 이상에 기여한 돌연변이 탓이 아닐까 싶다.

* 과학적 소양은 충분한 훈련과 학습에 의해 배양될 수 있다.
* 과학적 소양을 오랫동안 갈고 닦은 이런 재원은 시다바리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 아이디어는 자신의 비상식적이고 변태적인 재능을 감추고 기구하게 살아야 하는 소수자 찌질이들이나 내는 것이다. (드디어 내가 케세라세라 철학의 중심을 가닥 잡은 것 같다)

[MTBing] 서울 한복판 북악산 넘나들기 -- 서울시내에서 자전거를 몰고 가다가 길을 잃고 이 길을 지나간 적이 있다. 그때는 몰랐는데 기사를 참고삼아 시내 지도를 쫓다보니... 허걱. 나는 작년 9월쯤 그곳에서 야간 라이딩을 했다. 길을 잃고 헤메다보면 선구자가 된다.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1권 '마일즈의 전쟁'이 최근에 출간. 어둠의 속도, 쌀과 소금의 시대 등 한동안 잠잠하다가 SF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마치 설사똥 싸듯이?


애를 업고 인근 산(인근 산이라봤자 북한산 밖에 없지만)의 공터에 올라가 1/3쯤 읽었다. 이렇게 쭈그리고 앉아서.

코믹 밀리물로 개마초 하드보일드하고는 거리가 좀 있었다. 아예 작정하고 개그물로 만들 생각이었던 듯, '마법사의 제자'를 차용한 듯한 구성으로, 문제아가 문제를 봉합하려다 문제를 눈덩이처럼 즐겁게 키워놓고 좌충우돌하다가 황당하게 해소하는 방식이다. 죽을 사람은 죽이고 불가항력은 적당히 방치한다. 비슷한 포맷의 소설을 여럿 읽어서인지(단지 SF라는 차이만 있을 뿐) 양식과 구성이 식상하지만, 서양 SF무협지같은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를 즐기는 다른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재밌게 완샷에 읽었다. 머리가 좋은 곱추 병신이 정상인 병신들 틈에서 삐대지 않고 정치적 완급을 배워가는 성장소설로 이 소설의 뼈대는 '적을 기습하기 위해 괴성을 지르며 돌격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면 넌 당혹한 표정으로 '아니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를 외치면서 죽어가겠지."
"아니,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이반이 분개한 어조로 말했다.


바보를 이렇게 바보같이 묘사하는 건 좀 마음에 안 드는데? 라고 생각하다가, 아! 바보는 바보같이 묘사하는게 맞구나. 하고 고개를 끄떡였다. 요즘은 정말 머리가 안 돌아간다.


자전거 타고 싶은데...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올림픽 공원까지 가려 했다. 오후 3시 30분이라 너무 늦어 집에 돌아와 얌전히 낄낄거리며 부졸드의 책을 마저 읽었다.

안 팔려서 재고 떨이로 내놓은 책같은 인상을 주는 레널즈의 century rain을 읽기 시작. 5$짜리 하드커버라니... '하드SF 취향'은 피골이 상접한 소아에 기형적인 성애를 보이는 것만큼이나 비일상적, 변태적, 소수자적 '취향'(말이 취향이지 범죄)인지라 그런 책을 읽거나 그런 책이 시장에서 팔리는 것은 심지어, 비윤리적이지 않을까?

비윤리적이라도 하드커버는 좋다,
큼직한 글씨와 손에 착 감기는 질좋은 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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