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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사고

잡기 2007. 10. 4. 13:45
영화에는 국경이 없어도 영화팬에게는 조국이 있다. -- 변희재씨의 돋보이는 생트집.

'금단의 선'을 넘어 북쪽으로 걸어간 노무현 대통령은 배낭여행자들의 오랜 숙원을 이뤘다. 남북분단선을 육로로 건널 수 있으면 유라시아 대륙이 완전히 뚫리는 것이다. 내친 김에 중국, 몽골, 러시아, 유럽까지 기차타고 돌아다니면서 외교활동을 펼쳤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아무리 정치적인 쇼라고 하지만 '금단의 선'을 넘은 그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정치가 미래, 비전, 희망을 보여주는 쇼가 아니라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나.
 
추분이 지났다. 여름이 갔다. 여름처럼 맥주와 통닭을 먹지는 못할 것이다. 지방이 부족한 닭을 기름에 튀기면 기름옷에 지방이 배인다. 맥주에는 탄수화물이 많다. 따라서 맥주+통닭은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이 골고루 갖춰진 삼위일체 저녁식사다. 통닭에 맥주를 한 잔 하면서 밀린 드라마를 느긋하게 쳐다볼 때는 행복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가기 -- 우연한 기회에 본 다큐멘터리. 1부만 보고 2부는 보지 못했으나, 듣자하니 일본 가족은 1주일 만에 포기하고, 미국 가족은 하루인지 이틀만에 포기. 한국 가족은 한 달을 중국 제품 없이 살아남았단다. 중국 제품 없이 살아가기에서 조차 한국인의 우수한 개김성(은근과 끈기)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웃음.
 
10월 1일 자전거 타고 출근하다가 그랜저와 박았다. 손가락 사이에 긁힌 상처 뿐 다친 데는 없는데, 20kmh로 달리다가 골목에서 나와 서 있는 차를 2-3초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보지 못하고 그대로 박아 자동차 앞바퀴 사이에 자전거 바퀴가 끼었고 본넷에 몸뚱이가 부딫히면서 본넷이 일부분 찌그러지고, 범퍼에 긁힌 상처가 남았다. 자전거 앞 바퀴 림이 살짝 휘었다.

비가 살살 내리고 있었다. gps에 찍힌 당시 주행 속도가 20kmh(초당 5.5m)니까, 11m ~ 16m  앞을 보지 않고 진행중 갑자기 나타난 자동차를 발견하고(자동차가 서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으나 늦어서 자동차를 박은 것이다. (내가 자동차를 사지 않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운전중에 딴전을 피우거나 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걸 설득력이 없는 핑계로 여기는 사람들이 참 많다)
 
경찰 불러서 사고처리할까, 하다가 내 잘못이 크고 자동차의 흠집이 그리 크지 않은 수준이라(두 사람 다 놀랐다) 대충 합의하기로 하고 명함 건네준 후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출근. 10월 2일 전화가 왔는데 사고 차량의 견적가가 무려 40여만원 나왔다.
 
2일 밤 퇴근 무렵에 경찰서에서 회사로 전화가 왔단다. 뺑소니 신고가 들어왔단다. 내 명함의 전화번호로 자동차 주인이 전화를 해 봤는데 전화가 안되어 뺑소니 신고를 한 모양인데 이미 연락이 된 상황. 명함의 전화번호가 잘못 찍혀 있었고 휴대폰을 집에 놔두고 출근하지 않아 사정을 모르고 있었다.

합의 후 30만원을 물어주기로 했다. 좀 더 까칠하게 나갈 수도 있었지만(자동차-자전거 사고에서 자전거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도로상의 약자 이므로 일정 비율의 쌍방과실로 인정되어 합의가 가능) 내 자신이 그렇게 할 만큼 뻔뻔한 것도 아니고(전방주시 잘 하면서 직선로에서 잘 나가고 있었는데 골목에서 갑자기 차가 튀어나와 브레이크를 잡았으나 제동거리를 확보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박았다고 우기기) 최근 자전거 운행하면서 사고가 잦은 이유가 내 자신의 30만원 짜리 문제임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러다가 사람 치겠다.
 
공교롭게도 기어비를 평소의 2:6에서 3:6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28kmh 가량의 평속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최근에 도로에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는데(주행중 케이던스 유지가 아니라 이제는 근력 강화로 바뀌어 가는 듯) 그런 시점에서 난 사고라 뜻깊다.

덕분에 누구나 선망하는 매트릭스 액션도 해봤다. 핸들을 놓지 않았고 브레이크 잡는 순간 뒷바퀴가 들리면서 몸이 공중제비를 한 바퀴 돌아 본넷을 굴러(이때, 어깨로 둥글게 굴려 떨어지는 낙법 센스) 착지 순간 중심을 잃지 않고 체조선수처럼 등짝을 꼿꼿이 편 채 두 발로 서서 10점 만점의 착지에 성공한 것이다. 심지어 자전거도 자동차 바퀴에 끼어 똑바로 섰다. 사고 당시 주위 사람들 말로는 죽을 뻔 한 거 아니냐, 천만 다행이다 라고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사고 순간 우아했다. 만족한다.

최근 사고는 대부분 내 잘못이 크고 상처가 경미하며 PTSD를 남기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오히려 두어달 전에 자전거 정비하고 나서 멍청한 상태로 천천히 달리다가 그냥 픽 쓰러지면서 손목을 삔 것은 2개월이 지난 지금도 손목에 힘을 주기가 힘든 상태.
 
올해 들어 다섯번째 사고인데, 이쯤 되면 자전거를 타지 말자, 바보같은 자식, 이러면서 PTSSD(post traumatic self-torture stress disorder; 사고 후 자학성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려야 할텐데 되려 정신적 충격이 없는 이유는 뭘까, 장애를 현저히 상회하는 둔함/멍청함 때문이 아닐까 -- 이게 다 개마초 스피릿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사고난 날 밤에도 별다른 정신질환 없이 자전거 타고 집에 돌아왔다. 헤드라이트가 없어 밤길에 제대로 주행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저 잔걱정이라곤 집에서 정비하면서 앞바퀴 휠셋 교정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스포크 렌치로 니플을 조여 스포크 장력을 조절하면 되지 않을까, 많이 휜 것은 아니니 힘이 가해지는 휜 림의 반대편을 조절하면 되겠군 하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도, 한쪽 바퀴의 스레드만 다 닳은 줄 알았는데 양 쪽 바퀴의 스레드가 대부분 닳아 있어 바퀴 표면적이 넓어져 주행 중 부하가 커졌는데 타이어를 갈지 말고 이것을 근력 강화의 기회로 삼는 것이 어떨까, 여기저기 덜컹거리고 망가져 가는 자전거를 이참에 바꾸는 것은 조잔한 기회주의자 처럼 보일꺼야 하는 류의 생각을 했다.
 
사실 산악에서 자전거를 타지 않는 나같은 사람이 장애, 사고 운운하는 것은 자전거 사고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호들갑에 불과하다. 자전거 주행=인력+기술+정비+사고
 
전제: 상처(사고)가 없으면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
결론: 보다 큰 성장을 위해 정진하자.
부언: 마누라는 자전거 탈 때 이어폰 끼면 자전거를 부셔버리겠다고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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