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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ion

잡기 2007. 8. 8. 03:04
Movable Type에서 Tattertools로 블로그 툴을 바꿨다. 태터툴즈가 그다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 인터페이스를 강요한다. euc-kr에서 utf-8로의 변화로써 늦긴 했지만 발전적(?)이다. 무버블타잎이나 태터툴즈나 뭔가 좀 해보려면 코딩을 해야 한다. 태터툴즈의 코딩량이 상대적으로 눈에 띄게 적은 편이다. 올초부터 블로그 툴을 바꾸려고 했는데, 무버블타잎의 아티클을 변환하는 것이 번거러워 미뤘다.

며칠전 다운 받은 태터툴즈 1.1.3은 백업 파일을 xml로 저장하기 때문에 무버블 타잎으로부터 변환이 손쉬웠다. 여행기와 잡기를 편의상 통합했다. 지저분한 태터툴즈 로고, 스킨 로고, CC 로고 등등은 제거했다. 손쉬운 작업(?)인데 하루가 꼬박 걸렸다.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워낙 블로그를 폐쇄적으로 운영해 왔다. 이 블로그는 자비출판된 공개 일기장과 다르지 않다. 문득 안네 프랑크나 빨강머리 앤이 생각난다. 주접을 떨어대는 앤에게 혐오감을 느꼈던 어린 시절도 기억난다.

괄약근에 힘주면 혈압이 오른다. 는 얘기는 술자리에서 자주 나오던 얘기였다. 그것으로 군대 면제받을 수 있다는 얘기. 그런데 그거 하다 걸린 녀석들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었다.

 

'살아서는 돈 벌어오고, 죽어서는 보험금을 남기라' 는, 몹시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는 보험사 광고.

재테크 차원에서 저축보험에 들었다. 보장내역은 신경쓰지 않았다. 저축보험은 복리 저축의 효과가 있고, '죽어서 보험금'을 남기는, 사랑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훌륭한 애비가 될 수 있다. 교육비 상승률 연 7%를 감안하면 아이가 대학갈 때쯤 해서 대략 4년간 8000만원 가량이 학비로 필요하다. 아이를 무척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의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학비 지원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연구결과도 있다; 사랑은 건강에 해롭다.  합리적으로 연구결과나 세상을 믿지 못하고 살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다. 태어나기 싫었는데... 살아가기 싫었는데... 사랑하고 싶지 않았는데... 하고 훌쩍여봤자 이미 늦은 것이지만.

시세이도 샴푸 선전을 보다가 어디서 본 여자앤데 싶어 뒤져보니, 허니와 클로버, 훌라걸의 아오이 유우. 귀여워서 기억하고 있었다. 훌라걸은 묘하게 한국적인 분위기가 난다 싶더만 감독이 재일한국인이다. 훌라걸의 사투리가 강원도 정선 사투리랑 비슷해서 괴기스러웠다. 영화가 재미있었던가? 그게... 잘 모르겠다. 개마초(open macho)를 표방한 이후 허니와 클로버 같은 영화는 이해가 안 간다.  이런 것도 이해가 안 갔다;
... 여성들은 이런 부분에서 취향이 맞으면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라도 같이 살 수 있는 것이다.

시어머니 왈, "처자식 버리고 증발하는 아들을 키운 것은 나다, 내 탓이다, 사토코, 미안하다." 그렇게 사과하는 동시에 노부오를 매섭게 비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덜 되먹은 놈 같으니, 하면서. 화를 내기 시작하면 사과로 끝내고, 사과하기 시작하면 화를 내면서 끝냈다. 할머니가 감정을 발산하는 양상을 두고, 전에 고교생이던 쓰요시는, "그건 그냥 할머니의 취미에요. 거의 사는 보람이라고 할 수 있죠." 라고 말한 적이 있다. -- 미야베 미유키, 이유

미야베 미유키의 장광설을 좀 더 읽고 싶었는데 도서관에는 그의 책 거의 전부가 대출중이다. 뭐...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이번 여름에는 일본 추리소설을 읽어볼까? 라고 생각한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정보 소스가 박광규씨니까 그 양반이라면 재미없는 책을 설마 소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레몬'과 '환야'도 읽었다. 환야는 '백야'를 먼저 읽어야 아구가 맞을 것 같은데 대출중이다. 둘 다 재미있다. 레몬은 의아한 부분이 많았고 처녀생식에 관해 좀 더 치밀하게 묘사했으면 했는데, 히가시노가 과학 스릴러를 쓰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보다. 환야는 팜므 파탈 소설의 전형성을 그대로 보인다. 주인공 얼간이 남자가 조작되다가(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가) 결국 쓴웃음을 지은 채 자멸하는. 악녀 치고 머리좋은 여자는 없다는 고래의 진리가 잘 반영되어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여자는 본래 선악의 구분이 없는 존재다. 그래서 마음만 맞으면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은 여여, 남녀가 공존할 수 있다.

하여튼, 미야베 미유키의 책들이 거의 다 대출중이라 하는 수 없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을 빌렸다. 글빨은 있지만 엉성하고 재미없는(입맛만 다시게 되는) 이야기에 실망이다.  so what? (그래서?)라고 물으면 하루키는 why not?(안될 껀 뭔데?) 라고 지껄일 것 같다. 글에 구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상표를 줄줄이 나열하거나 시답잖은 얘기로 심지어 글을 출판까지 하는 그의 괴상한 취미도 여전했다. 하루키 글을 읽으면 일본인들은 원래 이리도 소심한가 싶다. 아니다, 문학이 원래 소심한 장광설인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 빌려 나오는 길에 분실물 보관함을 흘낏 보았더니 저번주에 잃어버린 가방이 버젓이 놓여 있다. 사무실에 가서 분실물을 찾으러 왔다고 하니 이 사람, 저 사람 말이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다가 정확히 12시 30분에 열쇠(를 가진 사람)가 도착하니 그때까지 기다려 달란다. 출근해야 되요, 라고 말하며 시계를 보니 11시 30분이다. 요즘 새벽까지 잠을 못 자서 출근이 늦다. 출근이 늦으니 퇴근도 늦다.

새벽에는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를 보았다. 실사를 만화와 똑같이 만들어 놓았다. 이틀 동안 새벽에 잠 안 자고 다운받은 드라마를 시청했다. 하하 자주 웃었다.

만화보다 나은 점은 줄기차게 어디선가 자주 듣던 클래식들이 줄줄이 튀어나온다는 점이랄까? 이를테면 Brahms, Symphony No. 1 in C minor op.68 (13:15)은 출근길 지하철에 앉아 책을 펼칠 때 흔히 시작하는 이른바,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은) '아침을 여는 음악'이다. Beethoven, Symphony No. 7 in A Major Op.92(13:31) 는 자전거를 타는 어느 시점에서 들려온다. 10대 시절에는 후까시가 왕창 잡힌 베토벤을 좋아했다.

'노다메 칸타빌레'는 썩 괜찮은 음악 드라마다. 원작이 원래 재밌다. 연주실력이 좋아서 유명 지휘자, 유명 레코드의 더빙인 줄 알았는데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오케스트레이션을 실제로 녹화했다는 얘길 듣고 신선했다. 제대로 하는군. 흔한 시쳇말로, 음악계는 천재들의 무덤이다.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그 주제가 여러 차례 변주된다.

오케스트레이션이라... 동시에 귀로 구분할 수 있는 악기 수는 기껏해야 6-7개 정도 뿐이다. 어린 시절에 클래식, 특히 교향곡을 많이 들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락과 헤비메탈이 쉬웠다. 락, 특히 프로그레시브 락은 대단했다 -- 온갖 (짜증도 가끔 나는) 음악적 실험을 눈도 한 번 안 깜빡이고 그야말로 미친듯이 시도한다. 요즘은 박상철, 무조건(3:36)이나 강진, 땡벌(3:11), MC몽, 아이스크림(3:36) 같은 최신가요도 디저트처럼 곁들였다.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특급사랑이야~~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꺼야, 무조건 달려갈꺼야.
짜짜라 짜라짜짜 짜짜짜

동-서남북 어디에서도 나-란 얼간이는 없다고-
그래도 너 하나만 사랑한다고-
쉽게 녹아버린 니 마음 상-처받은 엠씨몽
사랑은 아아아아이스크림

여기저기 전방위적인 '무조건'과 '아이스크림'은 여행을 연상케 한다. 노랫가사에 땡벌은 왜 나오는건지 뜬금없다. 들어보면 결국 찌질스런 사랑타령이지만. 뭄바이의 도미토리에서 만난 이란 출신의 치과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아이스크림이다. 녹아버리기 전에 낼름 먹을 것. 인생도, 사랑도 아이스크림인거다. 언젠가는 녹는다. mp3p에는 지난 8개월 이상 클래식만 저장해서 들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 한동안 드림 씨어터 앨범 전집을 관람할 생각.

세금논란, 사학 비리, 이랜드 사태, 아프간 피랍 등 가히 한국예수교의 수난 시대인 듯. 이랜드 사태와 관련해서 '파견의 품격'라는 일본 드라마를 소개받았다. 파견없이는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니 정사원과 파견사원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사이좋게 지내자. 는게 요점인 것 같다. 첫 화에서 정사원과 파견사원의 연봉을 줄줄이 보여주면서 자본사회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주는가 싶더만 회가 거듭될수록 사연많은 슈퍼걸의 고뇌와 인덕으로 회귀하는 것 같다. 드라마가 좀 더 천박하게 각을 세우길 바랬달까? 사회문제의 평범한 귀결인, 첨예한 대립과 피비린내 나는 투쟁으로 총인의 에너지를 소비한 후 정전 후 소강상태나 냉전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아무도 각자의 사정과 입장을 양보하지 않는 것이 소위 엿먹을 인지상정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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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norance is poor execuse

잡기 2007. 8. 6. 23:59
괴수영화 전문 매니아로서 '디워'를 평가한다 -- 특히 이 말이 감동적이다; '괴수영화는 기술 선진국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이다. 기술 후진국은 오로지 시나리오로만 승부한다' -- 그러게 말이다. 수많은 평을 상대화해보니, D-war는 '아나콘다'나 '킹콩'보다 재미있을 것 같다.

선교사들이 납치된 이후로 정부 욕하는 글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테러 위험이 있는 줄 알았으면 아프간 정부에 양해를 구해 입국을 금지시켰더라면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문제였다. 술자리에서 정치적으로 선교사들이 죽는 편이 더 많은 리스크를 떠안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테러리스트와 타협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현실적으로 탈레반을 상대로 제제나 보복을 가할 수 없다. 구호/봉사활동이 앞으로 입을 타격을 생각해보면 정말 우울해진다.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나누어준다고 세계가 사정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 구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돈이면 그 지역 사람들 수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 그들은 그저 운이 없어서 납치된 것 뿐이다. 방학을 맞은 초딩처럼 그런 사람들이 '죽는게 낫다'고 말한 것이 후회스럽다.

Garmin eTrex Vista HCx의 평이 비교적 좋은 편. 사소한 버그가 좀 있는 정도(WAAS off)인데 업뎃용 소프트웨어가 나와줄 것이다. 흥미롭게도 SiRF III보다 수신율이 낫다는 평을 듣는 MTK의 32채널 gps 모듈을 사용한다. 실내에서도 3-4개의 위성이 잡힌단다(경악). 기대했던 갈릴레오 위성 지원은 안하기로 했다. 미국의 gps보다 10배 이상의 정밀도로 설계된 갈릴레오 위성이 계획대로 2012년까지 궤도에 뜰 지도 의문이다.

다운받은 매뉴얼을 읽다보니 재미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SD 카드의 여분 용량에 매일 매일의 트랙로그가 자동으로 기록된다. gpx 포맷이라 여러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램에서 사용 가능하다. 그렇다면 여행 기간에 상관없이 사진과 트랙로그의 동기를 맞출 수 있다. gpx 포맷은 파일 크기가 큰 편이라(xml text) 장기간의 여행에는 부적합하지만...

일본 자전거/모터 바이크 여행자들의 성서나 마찬가지라는 mapple의 디지털 버전인 700MB 짜리 super mapple digital을 대략 일주일에 걸쳐 어둠의 경로로 천천히 다운받았다.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여행하는 수많은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들의 여행기를 읽어보니 한결같이 중간에 길을 헤멨다. 이 지도만 있으면 길을 헤메는 것이 불가능하다.

관세청 웹페이지를 뒤져보았다. gps는 8526.92 (무선측정장치)에 해당하기도 하고 8526.91-9000 (자동차 내비게이션 시스템), 8471.30(PDA등의 자동 자료처리 기계)에 해당하기도 한다. 관세율이 모두 다른데 8471.30으로 분류되면 무관세가 가능하다. gps의 입력장치, 처리장치, 출력장치(lcd)를 감안하건데 8471.30의 기타 장치로 분류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불친절한 관세청 웹페이지는 그러나, 8%에 상당하는 '기본세율' 이란 것이 국가간 교역관세에 더해지는 것인지에 관한 설명을 하지 않은 것 같다(못 찾았던가). 250$ 미만의 기기를 수입해올 때는 무관세가 적용된다는데(전에는 100$로 알고 있었는데 바뀐건가?) 부가세 10%와 '기본세율' 8%, 우송료 60$ 가량을 감안하면 Garmin eTrex Vista HCx(250$ 가량) 구매 비용은 대략 33만원 수준. 원가에 10만원이 더 붙는다? 허걱!

gift 표시해서 관세 안 물고 수입하면 28만원 가량. 출시된지 며칠 밖에 안되어 기기 단가의 디스카운트는 고려할 수 없으므로 일본 여행을 당장 갈 것이 아닌 이상 gps를 지금 사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garmin의 정식 수입판매처인 네베상사에서는 60CSx를 110만원에 판매한다. 한국 디지털 지형도(11만원)와 도로지도(5만원)을 합친 것인데, 순수한 기기 단가는 94만원. ebay에서는 330$(대략 31만원)에 판매하는데 우송료 60$을 합치면 대략 37만원 가량. 국내 판매가격이 무려 2.5배.

네베상사가 하는 일은 기기의 한글화(별 의미없음)와 애프터서비스 정도? 초기불량 없으면 기기에 고장이 발생할 가능성이 극히 적은 튼튼함이 가민 gps의 장점이므로 별 의미 없음. 수요가 적어 가격이 그 모양인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저 가격은 좀... 네베상사가 지금 가격의 절반 정도로만 판매하고 마케팅, 영업을 좀 열심히 한다면 달리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전거 속도계 시장 말아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garmin의 forerunner 시리즈나 etrex 시리즈는 그만한 포텐셜을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해 시장 개척을 제대로 안 하면서 그 단가의 상당 부분을 구매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예전 한국 애플처럼 망하기 딱 좋은 방향이다.

여행할 때 들고다닐 소형 컴퓨터로, 곧 출시 예정인 ASUS eee가 상당히 쓸모있어 보인다. 막 굴리며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은 200$ 미만의 완전한 컴퓨터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주중에 한두차례 출근길 자전거 주행을 했다. 책을 읽으려면 건강을 포기해야 한다. '책이란 건 너무 많이 읽으면 좋을 게 하나도 없어. 여자는 시집을 늦게 가고 남자는 근성이 없어지거든.' -- 미야베 미유키, 마술은 속삭인다. 에서. 같은 책에 이런 귀절도 있다. '구사카, 난 유전을 믿지 않는다. 개구리의 자식이 전부 개구리가 된다면, 주위는 온통 개구리투성이라 시끄러워서 견딜 수 없을 거야. 난 평범한 체육 교사라서 어려운 건 잘 모른다' -- 이 세상이 다양성으로 충만한, 다양성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의지와 환상은 체육교사 뿐만이 아니다.

퍼언 시리즈를 발간한 북스피어의 글을 찾아 읽다보니(그래서 미야베 미유키의 글을 읽었다) 번역의 변에 이런 것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좋은 책을 번역할 기회를 주신 북스피어의 대표님, 편집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다고 이렇게 좋은 분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온다 리쿠의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은 열매'도 읽었다. (거지같은) 소녀 미스테리 판타지는 취향에 안 맞는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책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가방을 잃어버렸다. 평소처럼 100원짜리 동전이 없어 열쇠사물함 위에 가방을 휙 던져놓고 책을 고르고 나와보니 가방이 없어졌다. 그 가방에는 반쯤 피운 담배 한 갑과 라이터, 안경닦이, 휴대폰 이어폰 밖에 없었다. 닳고 닳은 빈 가방을 훔쳐간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마누라가 스님에게 얻은 그 가방이 그 동안 정말 마음에 들었다. 크기에 비해 대단한 내용적, 수많은 주머니들, 이중 지퍼 때문에 여행할 때 보조가방으로 그만이었는데, 아깝다. 시장에서 좋은 가방을 찾기가 참 어렵다.

마누라, 애한테 잘 보이려고 주말에는 가급적 자전거를 안 탔다. 타봤자 2-3시간 거리의, 바람이나 쐬며 녹슨 근육을 풀어주는 정도였다. 마누라가 불편하다고 이사 가자고 하는데, 부동산에 관해 전혀 아는 것이 없고, 하다못해 내가 한 달에 얼마를 벌어오고 그 돈이 어떻게 분배되고 소비되는지 몰라, 집 장만이나 앞으로 수 년 동안의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것이 마누라 입장에서는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자산과 현금 흐름 경향 쪽은 문서로 정리해두고 시간날 때 보라고 했지만 마누라가 부러 찾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마누라는 지난 3년간 한 달 평균 생활비가 얼마인지 모르는데, 나는 안다. 나는 일 때문에 바빠서 집 보러 다닐 시간도 없고 집 장만 등등의 장기 계획을 단계적으로 실행하고 검토할 시간이 없다. 집이야 마누라가 편한 것이 좋은데 늘 내 눈치만 봤다. 마누라는 집A와 집B의 장단점을 늘어놓고 집B가 집A보다 왜 나은가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자기가 앞으로 살아야 할 집이 이혼했을 때 반타작할 재산이라는 개념이나, 굳이 책임을 져서 욕 먹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그러고 보면 마누라는 직장 생활은 물론 각종 분쟁과 분투, 격렬한 감정과 이성이 오락가락하며 얻을 것(사람), 잃는 것(사람), 지킬 것(사람), 버릴 것(사람), 시간을 들일 것(사람)을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해 본 적이 없다. 공주님 이다.

내가 일없이 종횡사해하던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한 것이다!
대략 감개무량.

평지라면 대략 하루에 100~300km를 이동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렴풋이 지금 이 몸으로 그게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일주일 이내? 올 가을에는 바빠질 것 같아 어디 놀러다닐 생각은 접은 상태. 관리자로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 처지라 작년 가을부터 꼬박꼬박 출퇴근을 했다. 대체로 웃겼다. 프리랜서인데 출퇴근이라니...

올해도 기계 3-4대 납품하는 정도로 끝날 것 같다. 먹고 살 수는 있지만 몇년 후 먹고 살기 위한 연구비용 조달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라 조금 걱정이 되었다. 가을에 인원을 둘쯤 더 늘리고 작업할당을 조절해서 3개의 조직을 만들어 한 팀은 전방지원, 한 팀은 연구개발, 한 팀은 TFT 하려고 하는데 프로그래밍은 가끔 하거나 멘토링 하는 정도고 요새는 매니징과 문서 작업, 교육 등을 주로 했다.

고집대로 밀어붙이는 탓에 사람들에게 그다지 좋은 소리를 못 듣고 있다. 엊그제는 직원들 10일 정도 교육 보내는 문제로 좌절스런 디베이트를 해야 했다. 한달 전에는 사원들 강제로 휴가계를 쓰게 했다. 이걸 주고 저걸 잃고 저걸 주고 이걸 잃고... 내 월급은 안 올려도 좋으니 직원들 월급이나 올려주세요, 저 친구는 인센티브를 받아야 해요, 앞으로는 지금 현업으로 회사를 먹여살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회사를 먹여 살릴 것입니다, 놀지 않으면 아이디어는 안 나와요, 이런 따위의 말을 진심으로 한다고 해서 회사 및 직원들이 쓸모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반대로 현실과 괴리가 심한 이상을 쫓는 순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란 착각을 하지 않았다. 4명을 교육 보내려고 했는데 2명 밖에 보내지 못한다. 못 가는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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