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다 해수욕장'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07.05 쓰시마 자전거 여행 5/5
  2. 2007.07.04 쓰시마 자전거 여행 4/5

7am 기상. 숙취도 없고 말끔한게 기분이 좋다. 구름 사이로 얼핏 해가 보인다. 스프를 끓여 식빵을 찢어 넣고 아침으로 먹었다. 전에 여행할 때 어떤 여행자한테 배운건데 꿀꿀이 죽같지만 보기와 달리 맛이 그럴듯 하다.

누가 보기 전에 텐트를 걷었다.


론머맨 아저씨가 나타나 오늘 여기서 캠핑할 꺼냐고 묻는다. 이이에. 오늘 오후 부산에 갑니다. 캠핑은 유료라고 말하며 언덕으로 올라가 잔디를 깎기 시작한다. 4.40pm 배가 출항이라 적어도 3pm까지는 시간이 많아 남아 오늘은 한국 전망대에 가볼까 한다. 날이 맑으면 일찍 돌아올 생각이다. 텐트 등속을 화장실 앞 식수대 밑에 감춰두었다.


아침에 보니 해변이 더욱 맑아 보인다. 해수욕에 제격이다. 가벼운 짐만 꾸린 채 9am 출발했다.



아무 생각 없이 패달을 밟다가 '토요 포대 흔적'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발견했다. 비포장 도로로 10분쯤 올라가자 포대가 나타났다. 뭐하는 곳이지?



자전거 전조등을 뽑아 어두컴컴한 미로 같은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포탄 캐리어 같은 것이 보인다. 아, 이즈하라의 하치만구 신사에 있던 폭탄이 혹시 여기 쓰이던 것인가 보구나.


이곳이 설마... 저 정도 규모면 정말 엄청난 포가 있던 자리인데.. 흡사 아발론의 포처럼.


지도를 보니 쓰시마의 이 포대에서 부산과 큐슈 지방 사이의 적 이동을 방어할 목적으로 포대를 세운 것 같다.


포대에 관한 무슨 설명이 있는데, 다른 관광지와 달리 영어나 한글 병기된 설명이 없다. 게다가 일부 문장을 지웠다. 왜 지웠을까. 알아야만 하는 내용일까. 하치만구 신사의 대포알들이 호국의 의지가 담긴 신령한 대포알이었던가? 뭐가 캥기는지 문장을 지운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한국 또는 미국에 적대적인 포대였던 것 같다.

더 생각하지 말자. 조잔하기 그지없는 일본의 금리나 주식시장, 위안부 할머니들이 돌아가실 때까지 면피하며 기다리는 비겁한 일본 정부. 일본인들조차 원숭이라 부르는 아베. 도로에서 보곤하던 아베의 사진들. 눈을 마주치지 않는 일본인들. 비포장 내리막길을 흡사(?) MTB를 타듯이 내려갔다. 비포장 도로에서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전방 주시. 목덜미가 뻗뻗해진다. 자전거와 온 몸이 미친듯이 떨린다. 딴 생각하다가 삐끗하면 바로 자빠링이다.


해안도로를 따라갔다. 한국 전망대로 향하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길의 끝에는 전복 양식 공장이 있었다. 구경하다가 사진 찍기 뭣해서 나왔다.


거진 자동차 대시보드 콘솔 분위기 물씬 풍기는 '핸들바 콘솔' 지도나 웹 상에 소개된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 waypoint가 종종 달라 전복 양식 공장 등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GPS 덕택에 쓰시마 여행이 손쉬웠다. 전조등은 터널 주행시 필요해서 대낮에도 달고 다녔다.

카시오 손목시계(Casio PRG-70V3)는 자기 나침반, 기압계, 시계, 온도계 따위가 포함된 것이다. 터프 솔라 배터리를 사용해 배터리 교환이 필요없는 반영구적인 제품. GPS(110$)보다 더 비싼 17만원짜리. 2005년 2월 여행할 때 사용하려고 구입. 그런데 3일 동안 비를 펑펑 맞았더니 그... 알량한 생활방수가 견디질 못했다. 유리창에 낀 습기는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야 사라졌다. 저렇게 습기가 끼어 있으니 기압계가 엉망으로 작동해 일기 예측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10.30am. 한국전망대 도착. 건자재를 한국에서 공수해와 한국풍으로 꾸몄다는 건물. 다시 휴대폰에 전원을 넣고(안테나가 만땅으로 잡혔다) 아내와 통화를 시도했다. 빙고. 이번에는 된다. 거참 통화 한 번 하기 되게 힘드네.

와니우라 마을의 이팝나무 자생지에서 오락가락했다. 봄에 왔더라면 나무마다 하얗게 핀 꽃들을 구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맑고 작은 하천에 물고기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다. 이렇게 깨끗하고 맑은 하천이 집 앞에 있는 기분이 어떨까. 참 부럽다.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말았다.


미우다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VALUE에 들러 점심꺼리를 장만했다. VALUE에서 2007년 7월 7일 무슨 행사를 하나보다. 미신에 사로잡힌 미국인들과 일본인들은 21세기 첫 쓰리세븐 데이를 축하하거나 심지어 결혼까지 한다.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12pm. 날이 뜨거워 바다로 뛰어 들었다. 바다 속에서 자맥질 몇 번 하고 놀다가 텐트 세웠던 장소로 기어 올라와 맥주에 초밥(599엔)을 먹었다. 초밥이 의외로 맛있고 꽤 커서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샌달에 모래가 잔뜩 묻었다. 등산할 때 신으려고 몇년 전에 산 산악 트래킹용 샌달. 샌달의 특성상 앞 발가락들이 노출되어 산악 트래킹 중 자갈, 돌부리, 날카로운 잔가지나 풀뿌리에 취약하다. 발등을 보호해야 하므로 발등 부위는 두껍게 감싸 놓아 보통 샌달보다 통기성이 떨어진다. 꽤 애매한 제품이다. 그래도 40도 경사의 릿지에서 확실한 접지력을 보장하는 밑창 때문에 여름에 즐겨 신었다.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젊은 남녀가 한다발인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와 해변에서 플랭카드를 들고 기념 사진을 찍는다. 그들은 바닷가에 살짝 발만 담그고 나와 수돗가에서 발을 씻느라 부산을 떨었다.

시원한 기린 생맥주를 마시며 그 부산한 광경을 쳐다 보았했다. 한국인들이 내가 앉아 있는 쪽으로 몰려와 수다를 떤다. 자전거를 흘낏흘낏 쳐다본다. 나는 일본인이므로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수경을 끼고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빵 부스러기를 던지고 물 속을 노려보았지만 고기떼는 몰려오지 않았다. 시각이 시각인지라 물고기가 통 보이지 않는다. 스노클이 있으면 좀 더 깊은 곳까지 갈 수 있겠지만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장비도 없이 만용을 부리지 않았다. 등이 탈까봐 수영복 하의에 티셔츠를 입은 채 물에 들어갔다. 30분쯤 놀고 바깥으로 나오니 한국인들이 떠났다.

수돗가에서 웃옷을 빨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화장실로 들어가 재빨리 수영복을 벗어 세면대에서 빨았다. 자리에 앉아 남은 우롱차를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햇빛을 쬐는 도마뱀처럼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짐을 정리했다. 충전지에 녹이 잔뜩 슬었다. GPS의 자전거 마운트에 부착하는 뒷판은 방수 커버가 안 되어 있어 비맞는 동안 물이 새어 들어 충전지에 녹이 슨 것이다. 다음 번 여행 때는 대책을 세우자.

준비해간 충전지는 enelop 2000mAh 4알, 산요 2300mAh 2알로 완전 충전된 상태가 아닌데도 5일을 충분히 버텨줬다. 마지막 2알의 잔량이 반쯤(1000mAh) 남았다. 하긴 길어봤자 하루 8시간 정도 밖에 주행을 하지 않았으니 전지가 남는 것이 당연.

1pm. 자 이제 쓰시마에서 해 볼 마지막 관광 일정이 남았다. 자전거에 짐을 싣고 해수욕장 위의 캠프장 화장실 옆에 자전거를 숨겼다. 그리고 여권, 지갑, 수건, GPS, 시계 등 귀중품과 수건을 챙겨 캠프장 옆에 있는 나기사노유 온천장으로 향했다.

간혹 도로의 윗쪽에 은빛으로 빛나는 구조물을 보고는 했다. 온천수를 끌어올려 아마도 열병합 발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열병합 발전이 아니라면 다만 온수라도 모아놓았을 것이다. 일본인의 온천에 대한 강한 집착. 그 구조물을 볼 때마다 꼭 온천에 가자고 다짐했다.


나기사노유 온천. 노천 온천. 1pm ~ 9pm 사이 오픈. 온천에 들어가 신발을 벗어 신발함에 넣고 신발함 열쇠를 들고 카운터에 가니 옆의 자판기에서 표를 뽑으란다. 한국인 전용 티켓이 500엔. 사람들이 시야에 없는 동안 살짝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한국의 일반 사우나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온탕, 냉탕이 있고...

창 밖으로 시원한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저 창문은 단지 방충망이라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오른편에 노천 온천이 있다. 낮에는 주로 노인들이 이용하는 듯.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관광 코스로 이곳에 들렀다. 간간이 한국어로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수건을 제공하지 않는 것 같다. 뭐, 그럴 줄 알고 스포츠 타월을 들고간 것이지만. 들어서면서 양 손으로 수건 끄트머리르 잡고 수건을 늘어뜨려 국부를 살짝 가렸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길래 나도 그렇게 했다.

따끈한 거품탕 속에 들어가 근육을 풀었다. SPF 27짜리 썬 블럭 로션을 발랐는데도 의외로 살이 많이 탔다. 적당히 씻고 일본인 할아버지들과 노천 온천에 앉아 바다를 구경했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가 들린다. 흐뭇하다.

그런데 캠핑장의 화장실이 오른쪽으로 살짝 보인다. 화장실 옆에 숨겨 세워두웠던 자전거 끄트머리가 보인다. 어? 그럼 저기서도 여기가 다 보이는 거잖아? 여탕은 엄폐가 잘 되어 안 보인다. 일본 만화책에서처럼 남여 노천탕을 대나무로 간단하게 구분지워 놓아 옆 여탕의 대화 소리나 깔깔 대는 웃음소리가 들리거나 하는 일은 없다. 실망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여탕에는 할머니들이 조용히 온천욕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실망할 것 없다.


적당히 씻고 한 시간 반쯤 있다가 온천을 나왔다. 엇, 그런데 GPS를 락커에 두고 왔다. 카운터에 가서 영어할 줄 모른다는 종업원에게 영어로 물어보니 락커 열쇠를 건네준다. 거기 지배인이 GPS를 알아본다. 잠깐 손짓발짓으로 서로 원숭이들처럼 대화하다가 웃으며 헤어졌다. 휴게소에서 야마네코 스티커를 한 장 챙져준다. 자전거 프레임에 붙여 놓으면 괜찮을 것 같다. 자기도 산에 갈 때 GPS를 들고 다닌단다. 첫날 히타카쓰에 떨어져 일정이 틀어지는 바람에 남 쓰시마를 돌지 못한 것이나 아리아케 산에 못 가본 것이 아쉽다. 다른 일본인과 달리 이 친구는 눈을 쳐다보며 말한다. 얼굴이 그을리고 다부진 체격이 스포츠맨이나 조폭 스타일이다. 마음에 든다. 웃쓰! 사요나라~

히타카쓰 항구의 2층에서 노란색 영수증을 탑승권과 교환했다. 3pm. 한 시간이나 남아 할 일은 없고 잔돈은 철렁거리고 해서 시내로 슬슬 자전거를 몰고가 동전을 털어 Life Value 수퍼에서 도시락과 환타를 샀다. 히타카쓰 항구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마지막까지 도시락을 먹는구나 -_-

환전한 10000엔 + 15000엔 중 남은 돈은 12067엔. 사용한 돈은 12746엔, 정산 중 어디론가 새버린 돈은 187엔(아마 뭔가 사 먹었을 것이다). 사용한 돈 중 숙박비는 단 돈 2000엔, 한화로 15200원. 700엔짜리 방청제 구입 및 온천 500엔을 제외하고 9733엔을 5일 동안 순전히 먹는데 사용했다. 한화로 73970원.


4.10pm. 출국수속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제일 먼저 출국수속을 마쳤다. 출입국장에서는 동작이 빨라야 한다.


4.30pm 배가 출발한다. 인구의 대다수가 노인들이라 노무원들 나이가 지긋하다.


히타카쓰 항 바로 옆은 해상자위대(또는 해안경비대; japan coast guard)의 배가 정박해 있다.


오징어 배가 일찌감치 출항한다. 쓰시마의 특산물 중에 오징어가 있었다.

6.20pm 부산 도착. 입국장에서 짐을 풀어 엑스레이 기기에 통과시키고 자전거는 별도의 문으로 뺀다. 부산항에서 중앙동 역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 검표기 앞으로 향했다. 검표원 아저씨가 친절하게 문을 열어준다. 장애인석에 자전거를 박아두고 mp3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아! 생각해 보니 집 열쇠가 없다. 아내는 내가 여행 가 있는 동안 처가에 가 있다. 서울에 돌아가면 집에 못 들어간다 -_-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텐트 등속해서 캠핑 장비가 다 있고 일요일까지 3일 남았는데 굳이 집에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부산 터미널에서 바로 울진으로 가서 양양까지 자전거 여행을 계속할까? 7.30pm 노포동 지하철 역에 도착. 부산 터미널의 매표소 앞 시간표를 살펴보았다. 마땅히 갈만한 데가 없다. 게다가 자전거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캠핑하다가 또 비를 맞으면 노래가 심하게 튀어나올 것 같다. 그래 그냥 처가집에 가자. 8.20pm 표를 끊어 대구행 버스를 탔다.

대구에서 장인장모님께 인사드리고 하룻밤 자고 다음날 서울행 버스를 탔다. 남부터미널에 도착. 덥다. 집까지 자전거를 몰고 가 짐을 내팽개쳐두고 간단히 세면만 한 다음 집을 나왔다. 동네 고깃집에 가서 김치 오겹살과 소주를 마셨다. 캬... 좋다. 바로 이거다. 맛있는 도시락이나 맛있는 생맥주로는 절대로 채울 수 없는 것.

주행거리: 315km (쓰시마에서만)
평속: 의미없다. 자전거 주행이 아니라 자전거 여행이다.

GTM Trackmaker file

Google Earth File
여행일정 및 경비내역 

쓰시마의 좋은 점:

* 풍경이 끝내주고 개울, 해변, 숲을 함께 즐길 수 있다.
* 도로가 텅 비다시피 해서 자전거 주행에 최적이다.
* 평균 2km마다 자판기가 널려 있다.
* 요소마다 대형 수퍼가 있어 먹거리 장만이 편하다.
* 맥주가 싼 편. 꿀맛이다.

나쁜 점:

* 사람이 적어 일본인들과의 접촉이 극히 적다
* 이즈하라를 나오면 음식점이 별로 눈에 안띈다.
* 볼꺼리가 별로 없다.

가볼만한 곳(가본 곳이 별로 없어 민망 -_-)

* 이즈하라: 반쇼인, 하치만구 신사
* 히타카쓰: 미우다 해수욕장, 나기사노유 온천
* 39번 지방도, 와타즈미 신사, 토요 포대 흔적

준비물 중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것

* 양말: 맑은 날 샌달을 신었을 때 발가락에 때가 끼거나 타는 걸 막아주고 사고 났을 때 발가락을 일차적으로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죈종일 비가 와서...

* 삼각대: 핸들바에 거치해서 움직이는 동영상을 찍으려 했다. 손에 들고 찍는 것이 더 편하다. 셀카 찍을 때도 써먹으려고 했는데 귀찮았다.

* 여권 복사본: 캠핑장에 등록할 때 여권 복사본을 제출해야 한다던데 무의미했다. 하지만 해외 여행할 때 여권 복사본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여행의 기본 상식.

* 테이프: 케이블 타이와 마찬가지로 거의 만능에 가까운 수리 도구. 찢어진 옷, 비옷, 찢어진 천, 부서진 도구의 고정 등 역할이 광범위. 장기여행 때는 실과 바늘처럼 거의 필수적인 아이템.

* 읽을 책 한 권: 보통 아홉시에 잠들어 아침 일찍 일어나 일정을 시작했으며 무료한 버스, 페리 이동 중 읽으려고 했는데 음악 듣고 지도 보고 계획 짜고 수첩에 메모하고 정산하기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거의 없었다.

* 의약품: 여행 중 필수 의약품은 진통제(두통약), 항생제, 항히스타민제(알러지 약), 반창고(밴드). 항히스타민제가 왜 필요하나 싶겠지만 개미, 진드기 따위에 물려 피부가 가렵고 부어오를 때 이것만큼 효과가 좋은 것이 없다.

없어서 아쉬웠던 것: 방청제, 여분의 브레이크 패드





아소베이 파크에서의 이틀째, 샤워를 마친 후. 여행이란 SF적인 비일상적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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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am 아침 일찍 일어났다. 세면을 하면서 라면을 끓였다. 이번에는 라면에 어제 먹다 남은 어묵 2장과 먹다 남은 김치를 넣고 끓였다. 김치가 달아서 먹기가 좀... 어묵을 다 먹고 면을 2/3쯤 먹다가 화장실 변기에 버렸다.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코펠을 씻은 후 찻물을 끓여 PET 병에 담았다.

정자 안에서 출발하기 전에 자전거를 손봤다.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출발해야 하나 망설여진다. 오늘은 대략 80km를 이동해야 한다.

어젯밤에 고민을 좀 했다. 밋밋한 382 도로로 가지 말고 첫날처럼 풍광이 아름다운 39번 도로로 가는게 좋지 않을까? 아니다. 그래도 382 도로로 가자. 39번 도로는 이미 가봤다. 382 국도는 가보지 않았다. 선택이 단순했다. 가본 길 보다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자. 여태까지 그래왔지 않았던가.

어제 하루 비를 못 뿌린 것이 억울했는지 비가 폭포수처럼 펑펑 쏟아져 내렸다. 담배를 물었다. 자전거 체인을 다시 한번 닦았다. 브레이크 이격은 이 정도면 충분히 버틸만 하다. 뭐 이젠 더 조이고 싶어도 조일 수가 없는 한계에 다다랐다.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꽉 쥐어도 바퀴가 슬슬 미끄러진다. 그래도 어제 날이 맑았으니 망정이지.

9am. 자판기에서 음료를 하나 뽑아먹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출발. 얼씨구 이젠 번개도 치네? 도로에 바짝 붙어 달렸다.


9.20pm. 비가 하도 내려 어제 지나온 쓰시마 패밀리 파크에 잠깐 자전거를 세웠다. 비닐봉투 안에 습기가 차서 지도가 너덜너덜해졌다. QAMM 가방 안쪽에도 물이 고여 있다. 져지 뒷주머니에 넣어둔 지갑은 완전히 젖었다. 지폐가 너덜너덜하다. 가방을 뒤집어 물을 퍼냈다. 농구대가 4개인 이 전천후 운동장은 과연 이용객이 얼마나 될까. 시설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 비가 잦아들길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려고 가방을 뒤져보니, 아차, 아침에 담배를 피우고 정자 난간 위에 담배를 그냥 두고 온 것이 생각난다. 지난 나흘 동안 담배 한갑을 피우고 새로 한 갑을 뜯어 겨우 세 가치 밖에 피우지 못했는데...

다시 출발. 어제와 달리 382 국도만 타고 와서 진행 속도가 무척 빠르다. 충분히 쉬면서도 한 시간이 안되어 미네에 도착했다. 미네 시내를 지나 니타로 향했다. 우비를 입은 채 내리막길에서 상체를 둥글게 구부리는 것이 의외로 브레이크 효과가 있다. 이젠 걱정없다.

아침에 라면을 먹다 말아서인지 배가 출출하다. 10시 조금 넘어 니타에 도착. 도로가 평이하고 커브가 거의 없어 브레이크 잡을 일도 없다. 이 속도라면 12시면 히타카쓰에 도착한다. 니타에서 잠시 멈춰 자판기에서 마일드 세븐 one 100s 1갑을 구입했다. 300엔. 대체 무슨 자판기이길래 마일드 세븐만 30종류가 있는거지?

예전에 오사카에서 럭키 스트라이크를 자판기에서 산 기억이 난다. 그 독하디 독한 담배를 그저 멋으로 피웠다. 근데 라이터가 없다. 자전거 타고 지나가다가 수퍼를 발견하고 들어가 삼각김밥과 삶은 달걀을 샀다. 라이터가 눈에 띄지 않는다. 설마 하면서 주인에게 담배에 불을 붙이는 시늉을 하며 '라이타, 도조' 하니까 라이타를 찾아준다. 캬... 짐작대로 라이타는 일본어 외래어였던 것이다.

신사 앞에서 무려 한화로 천원이나 하는 따뜻한 삼각김밥을 까먹었다. 한국의 삼각김밥에 비하면 맛이 없는 편. 역시 도시락을 사 먹을껄 그랬나? 삶은 달걀을 먹고 물을 몇모금 마신 후 다시 출발.

니타에서 줄곳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오르막길이 끝이 없어 보인다. 왠간한 업힐이라도 자전거의 앞뒤 기어비를 2:2 이하로 내리지 않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2:1이 되었고 다시 1:2가 되다가 흔히 막장 모드라 일컬어지는 1:1까지 내려왔다. 1:1은 걷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자전거를 타면서 기어비를 3:8, 3:7, 2:6, 2:4, 2:2, 2:1, 1:2, 1:1로 차례로 다운 시프트하고 업시프트는 그 역순으로 했다. 기어비를 제대로 맞춰 하는 것인지 잘 판가름이 안되었는데 남들도 다들 그렇게 하는 것 같다. 3:8에서 최고 속도는 35kmh 가량. 소위 2단 크루즈 기어를 사용하여 주로 평지 주행할 때 사용하는 2:6에서는 보통 25~27kmh 정도가 나왔다. 요즘은 3:6이나 3:7로 넘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3:6 정도면 평속 28kmh가 나올 것 같은데 근육이 받쳐주지 않는 것이다. 한 사흘 주행하니까 다리도 많이 피곤해져 젖산이 어느 정도 축적된 것 같다. 일주일에 고작 한 번 타는 정도론 올해에도 한 시간 동안 평속 30kmh를 유지하긴 어려울 것 같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간신히 간신히 최고점에 이르렀다. 해발 136m. 쓰시마에서 이 이상 높은 고도에 다다라 본 적이 없으므로 아마도 이 지점이 쓰시마 도로의 최고점이지 않나 싶다. (무슨 소리. 44번 지방도의 가미자카 공원을 못 가봤고 아유모도시 자연공원도 못 가 보고서 섣불리 말하긴 뭣하지 않나) 하여튼 382번 국도의 최고점은 이 지점이다. 평소라면 북악 스카이웨이의 고도차 200m도 별 걱정없이 올라갈 수 있었겠지만 며칠 동안 업힐, 다운힐을 수백번 반복하다 보니 근피로가 누적되어 고도차 136m에서 안간힘을 쓰다시피 하다가 결국은 정상을 얼마 안 남기고 끌바를 했다. 이제 다운힐이다.

10분쯤 신나게 내려오다 보니 (평속 54kmh) 널찍한 공원이 눈에 띄었다. 미타케 공원이다. 세우자! 끼끼끼긱... 대략 70m를 미끄러져 공원을 지나쳤다. 브레이크 같지도 않은 브레이크. 다시 올라갔다. 공원에 다다르자 마자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5분쯤 멍하니 앉아있으니 비가 잦아 들으면서 관광버스가 눈앞에 멈춰섰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내렸다. 내 자전거 앞을 오락가락 하면서 핸들에 붙어있는 GPS를 보고 속도계니 뭐니 하는 말을 주고 받는다. GPS에요. 그랬더니 한 아저씨가 오, GPS! 베리 굿, 베리 나이스!를 외친다. 아무래도 내가 일본인인 줄 아는 모양. 잘됐다. 말하기도 귀찮은데 입 다물고 있자. 단체 관광객들의 가이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골이 잔뜩 나 있었다. 한 아저씨가 '열 받았나봐' 라고 중얼거린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비 오지. 볼 거 하나도 없지. 뭐 이런 거지같은 섬이 다 있어?'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재미없는 관광지에 놀러와서 재미가 없다고 가이드에게 푸념을 늘어놓은 모양. 쓰시마에 볼 꺼 없다. 자전거가 아니면. 관광버스로는, 여러분들은 절대 볼 수 없는 것이죠.

나도 절대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쓰시마의 리아스식 해안을 카약으로 돌아보는 것. 카약을 못 탄 것이 못내 아쉽다. 쓰시마의 대다수 관광지는 5월의 이팝나무 축제를 제외하고 7,8월의 특정 시기만 성수기다. 심하게는 8월이 약 2주 동안만 성수기다. 카약을 타지 않아보고 쓰시마를 논할 수 없다 -_-

담배 한 대 피우고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아저씨, 아줌마들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앞자리에 앉아 있는 가이드를 뚜러지게 쳐다보았다. 딱딱하게 굳은 사무적인 표정. 그 여자도 나를 쳐다본다.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벤치에 앉아 자기를 쳐다보는 몰골이 처연한 남자. 씨익 웃었다. 내가 진실과 애정을 담아 웃으면 남들은 '기운내 멍청아'라고 번역했다. 그래서일까? 외면한다.

그러고보니 쓰시마에 와서 일본인들과 얘기할 때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들 얼굴을 쳐다보고 대화를 할라치면 고개를 공손하게 수그리거나 시선을 거두었다. 여행 중에는 선글라스를 쓰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쓰면 상대가 내 눈을 볼 수 없고 그럼 대화가 안되니까. 대화가 되려면 눈을 쳐다봐야지. 뚜러지게 쳐다볼 것 까지야 없지만서도.

친절하게 입바른 말을 늘어놓지만 눈을 쳐다보지 않으니 그다지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많은 일본인을 만나 본 적이 없으니 섣불리 단정하기는 힘들다.

애니웨이, 할 일이 있다.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마자 가방을 풀어 코펠을 꺼내고 화장실에서 '이 물은 먹는 물이 아닙니다'라고 적힌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어 코펠에 물을 담았다.


스프를 끓였다. 배 고프고 비를 계속 맞아 춥다. 물도 다 떨어졌다. 먹을 것이라곤 바나나 튀긴 과자 밖에 없는데 입안이 말라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다. 이제 라면도 다 떨어지고.


자전거와 가방으로 바람을 막아 옥수수 스프 두 봉지를 끓였다. 따뜻한 스프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살 것 같다. 후르륵 쩝쩝 입 천정과 혀가 데이는 것도 개의치 않고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비는 여전하지만, 그리고 머리속에서 끊임없이 왕성하게 노래가 샘솟았지만, 기운이 난다. 기운이 나니까 딴 생각이 들었다. 히타카쓰에 일찍 갈 필요가 있나? 관광하자.


미타케 공원 숲길 산책로. 이 길을 죽 따라가면 주차장이 나오고, 주차장부터 산꼭대기까지 숲길이 이어진다. 정말 아름다운 길인데 비가 퍼부어대니 걷기는 좀 무리다. 아쉽지만 되돌아 나왔다.

382 국도를 5-6km쯤 달리다가 오른쪽 샛길로 빠졌다. 버드워칭 공원이 어딘지 모르겠다. 하여튼 쓰시마에는 별로 없다는 논이 주욱 이어지고 곧 해안도로가 나타났다. 해안도로를 따라 사오자키 공원으로 향했다.


해안의 끝에 도달했다. 어? 사오자키 공원이 방금 지나쳐온 자그마한 공원이었나? 그럴리가... 테트라 포트가 널부러진 전형적인 방파제와 전형적인 바닷가 풍경.


조그만 공원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념비에 충신 박제상에 관해 잘 적혀 있으니 설명은 생략.


해변을 빠져나오는 길에 소철이 늘어서 있는 분위기 좋은 신사를 발견.


어렴풋이 소개서에서 본 기억이 난다. 사오자키 공원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운운. 공원에는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피할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다. 대규모 바베큐 식탁이 줄줄이 있고 아이들 놀이 기구와 작은 해변, 적당한 크기의 공원이 있다.


방향을 틀어 길을 되돌아가 다리를 건넜다. '이국이 보이는 언덕 전망대'로 향하는 길. 역시 비바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마법의 사진. 길이 흡사 제주도를 닮았다. 꾸준한 오르막길. 맞바람에 많이 지쳐서 끌바했다. 비바람에 시달리다 보니 악에 받쳐 노래가 저절로 흘러 나온다.


뭔 꽃인지 모르겠지만 토양의 산성도에 따라 색깔이 흰색, 파란색, 빨간색으로 다양하게 피어 있다. 간혹 미친 노란꽃도 있었다. 토양에 나트륨이나 황이라도 포함된 걸까?


전망대에 다다랐다. 전망대 건너편은 한국이다. 휴대폰을 꺼내 아내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역시 안된다.


셀카 한 장. 해발 103m.
관광은 역시 비바람과 함께 해야 제맛이다.
맥주 한 잔 하고 싶다.


앞으로 가야 할 길. 저 산너머에 '한국전망대'가 있다. 오늘은 한국 전망대에 안간다. 이국이보이는언덕전망대에서 이쿠치하마 해수욕장까지 갔다가 히타카쓰를 거쳐 미우다 해수욕장에 도착하면 오늘 일정은 끝이다. 지금 시각은 1.16pm


이국이 보이는 전망대. 역시 태양전지가 있다. 전력선을 여기까지 끌어쓰지 않고 자가발전을 한다니, 합리적이다.


심지어는 화장실에도 태양전지와 충전지가 있다.


이국이 보이는 전망대 아래 해변.

다시 출발. 커다란 트럭이 자전거를 피해 위험스럽게 추월한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전거를 아슬아슬하게 스쳐가며 라이더를 공포로 몰아놓는 그 쏠쏠한 재미를 놓치고 싶어할 트럭 운전수가 어디 있겠나. 일본인의 운전 매너가 훌륭한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자기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상호 믿음이 사회적으로 성립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3pm. 382 국도를 타고 별 볼 일 없는 이쿠치하마 해수욕장을 그냥 지나치다시피 하여 히타카쓰 부근까지 왔다. 히타카쓰에 도착하여 첫 식사, 그러니까 첫 도시락 식사를 하던 바로 그 지점에 다시 도착했다. 근처 VALUE 마트에서 기린 생맥주와 닭 바베큐, 생선가스 덮밥을 사와 궁상스럽게 먹었다.


그렇게 기름칠을 정성스럽게 했건만 종일 폭우를 맞으니 체인이 다소 뻑뻑해졌다. 둘쨋날 방청제/오일 anyway를 구입하지 못했더라면 여행이 과연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비 맞으면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다.


QAMM 가방의 벨크로가 걸핏하면 벗겨져 이틀 전에 한국에서 여행준비할 때 다이소에서 산 천원짜리 튼튼한 실로 고리를 꿰어 묶어 두었다. 이제는 안심하고 울퉁불퉁한 길을 달릴 수 있다.


4.50pm. 니시도마리 해수욕장을 미우다 해수욕장으로 잘못 알아 고개를 갸웃하다가 거의 2km를 더 달려 미우다 해수욕장을 지나쳤다. 다시 되돌아와 자세히 표지판을 살펴보니 고갯마루에 미우다 해수욕장이 있다. 그런데 캠핑장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미우다 해수욕장.

짐을 일단 내려놓고 쇼핑하러 갔다. 온 길을 헤멘 것에 비해 고개 하나 넘으니 히타카쓰가 바로 나타났다. 히타카쓰 시내 중심부의 Life Value라는 마켓에서 쇼핑을 하고 살짝 내리는 비를 맞으며 미우다 해수욕장으로 돌아왔다. 해수욕장에는 딱 한 사람이 멍하니 앉아 있다가 사라졌다. 쓰시마에는 왜 이렇게 혼자 노는 사람이 많은 걸까.


아무리 봐도 캠핑장 같지는 않은데. 맞은편 건물은 샤워시설. 오른편 건물은 대체 뭘까. 건물 뒤에는 화장실이 얼핏 보인다. 취사장이나 오토캠핑장이 보이질 않았다.



더 찾아다니기도 귀찮고 어차피 관리인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아 속 편하게 널직한 이곳에 텐트를 쳤다. 분위기가 정말 좋아 보인다.








해변 여기 저기 돌아다녔다. 일본의 청정 해변 100선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해수욕장이란다. 동굴이 보여 찾아가보니 얕은 동굴에 누군가 변기 뚜껑을 올려 놓았다. 센스 한 번 죽여준다. 작은 자갈을 덮은 산호 시체를 발견. 이건 이 여행의 기념물이다. 아내에게 선물해 주자! 아내는 내가 맨날 길에서 주운 것만 선물해 준다고 불만이 많았다. 길에서 주운 것들 중에도 좋은 것들이 많다. 7pm이 다 되었고 하루종일 비를 맞아 노곤해진데다 바닷물이 차가워 바닷속에 들어가긴 꺼려진다. 물이 참 맑았다. 발만 담그고 해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작은 해변이다. 작고 쓸쓸한 해변이다. 혼자 와서 깡소주에 오징어 발을 질겅질겅 씹기에 제격이다.


얼씨구? 이건 뭐야? 언덕을 오르니 갑자기 캠핑장이 나타났다. 텐트를 다 쳐놓은 상태니 다시 텐트를 걷어 여기까지 올리기가 귀찮다. 에라 그냥 무시하자. 저녁이나 먹어야지.


오늘은 특별히 와인샵에서 사케 작은 것 한 병 사왔다. 일반 수퍼에서는 술을 못 팔게 되어 있는 것 같은데 VALUE처럼 매장이 크면 매장 한 구석에 술만 따로 파는 매대가 있다. 히타카쓰 시내에는 큰 수퍼가 없어 와인샵이 따로 있다. 알콜 농도 25%.


여행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오늘 만큼은 도시락을 안 먹으려고 했는데 워낙 가격대 성능비가 좋고 마침 550엔 짜리를 100엔 할인해 450엔에 팔고 있어 낼름 집어들었다.

mp3를 들으며 날이 어두워지길 기다렸다. 한 시간쯤 지나 날이 어두워졌다. 술병을 따서 병나발을 불었다. 목구멍부터 위장까지 뜨뜻해진다. 와인샵에서 가장 싼 사케를 샀더니(525엔) 맛은 영 아닌데 그렇다고 큰 병을 사자니 다 마시려면 대책이 안선다. 일단 25% 짜리 술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 내리니 기분이 좋아진다. 도시락을 안주 삼아 천천히 술을 마셨다.

혼자 와서 3일 내내 비를 맞으며 이게 무슨 궁상인가 싶지만 한편으로는 아내와 아이를 데려오지 않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술병을 다 비우고 밥도 다 먹었다. 해변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다. 기둥에 몸을 기대고 알코올에 예민해진 정신을 파고 드는 음악을 들었다. 주로 클래식. 모처럼 히트 가요 백여곡을 mp3에 담아왔지만 들어도 순 사랑타령에 신세한탄이라 재미가 없었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술에 취하니 마음 속의 별들이 빛났다. Mendelssohn, Symphony No4 in A major op90, Andante con moto

10.24pm.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섬의 해변에 가면 항상 바람이 바뀌는 때를 기다렸다. 미소가 저절로 떠올랐다. 11pm쯤 잠자리에 들었다. 4am쯤 깼다. 들리는 거라곤 파도소리 뿐. 음료 한 병을 모두 비웠다. 근처 자판기에서 음료를 한 병 뽑아왔다. 해변을 한바퀴 돌고 텐트 안으로 기어 들어가 다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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