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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ud

여행기/Indonesia 2011. 12. 29. 12:00
며칠 동안 새벽에 일어나곤 했더니 7am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침을 먹으려고 밖에 나가보니 내가 묵은 곳이 식당 겸 숙소다. 그것도 monkey street의 중심가였다. 아침으로 팬케잌과 티를 주문해 먹는데 Kuchi Kuchi Hotahe가 스피커에서 흘러 나왔다. 인도에 가고 싶다. 주인 할머니는 내가 자기 숙소에 묵은 몇 안 되는 south korean이란다. 우붓의 어디가 볼만하냐고 물었다. Gunug Kawi에 가보란다. 가이드북을 뒤져 보았다. 있다. 거기 가려면 대중교통으론 무리고 자전거로 가려면 상당히 멀다. 투어나 오토바이 밖에 옵션이 없어 보인다. 오토바이를 빌리기로 하고 그쪽 중심으로 어디 갈껀지 미리 경로를 잡았다. 방에 돌아와 샤워하려는데 샤워기가 말을 안 들어 물이 안 나왔다. 샤워기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두 말 없이 2층 방으로 바꿔준다. 어젯밤에 잡은 방보다 더 좋다. 

ubud에서 새벽 1시가 다 되어 어쩔 수 없이 잡은 숙소. 방 크기가 거의 30평대. 내 평생 배낭여행 중 이런 넓이의 숙소는 처음.

숙소 가격 대략 16$(150000rp). 좀 비싸긴 한데 이렇게 럭셔리한 안마당을 가진 숙소라니...

1층 숙소의 샤워 꼭지로 물이 제대로 안 나와 2층으로 옮겼다. 더 좋다. 그런데 우붓에서는 이런 숙소가 그냥 배낭여행자의 숙소일 뿐이고... 아, 생각났다. 쥴리아 로버츠 주연의 eat, pray, love란 영화에서 그 여자가 발리에서 묵었던 숙소가 딱 이랬다.

세상에 무슨 화장실이 내가 평소에 묵던 싱글룸 크기냐...

9am, 별 생각없이 거리에 나왔다. 두리번 거리며 걷고 있으니 어떤 삐끼가 다가와 자전거 빌릴 꺼냐고 묻는다. 스쿠터는? 스쿠터도 있단다. 얼마? 하루에 70,000rps. 좋아요 40,000rps로 합시다. 50,000rps가 좋겠어요. 그럽시다. 라이센스 있냐고 묻는다. 없어요. 나를 다른 가게로 데려갔다. 조용히 말했다. 만일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경찰을 만나면, 수납통을 열어 꾸깃꾸깃 접힌 종이 쪼가리를 가리키며, 이걸 보여주라고 말했다. 이게 뭔데요? 그거에요. 그게 뭔데요? 라이센스 페이퍼요. 마음에 드는 헬멧이 나올 때까지 이것저것 써봤다. 다행히 냄새는 안 났다. 삐끼를 잡고 Gunung Kawi(Gunung은 산이란 뜻)에 가려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었다. 일단 기름을 여기 여기 가서 넣고, 거기서 죽 가다가 삼거리 만나면 좌회전해서 죽 올라가면 된단다. 거참 헷갈리는군. 해 보자.


그 전에 근처 저가 숙소 골목에 들렀다. 세 군데는 리셉션에 물어보니 방이 없고 다른 곳들은 full 팻말을 걸어 두었다. 하이 시즌이라 방 구하기가 어렵단다. 어젯 밤에 벨지움 부부는 방을 구했을까? 두세 군데 더 들러보니 150,000~200,000rps 가량 했다. 몇 군데 숙소를 잡아보니 이제 감이 잡히는데, 인도네시아에서는 방값을 적어놓은 tarif를 의무적으로 비치하게 되어 있다. 메뉴판은 성수기 가격과 비수기 가격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니까 이들이 비수기 가격이 적힌 메뉴판을 잘못 내놓았다가 서둘러 바꿔도 딱히 사기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침에 방이 업그레이드 되었는데 굳이 옮길 필요 없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둘러본 숙소들이 자와섬 보다는 훨씬 나았다. 엊그제 브로모에서 만난 여행자 중에 한 명이 발리 섬이 숙소는 같은 가격이라면 자와섬 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라고 말한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그는, 엄청나게 비싼 물가와 특히 오버차징에 내내 시달려야 했던 발리섬에서 탈출하길 정말 잘했다고 주장했다. 어제 택시 생각하면... 으...

작년에 제주도에서 스쿠터를 타 봐서 쉽게 타겠거니 했는데, 왠걸, 덕지덕지 기운듯한 1차선 도로에서 쫓기듯이 달리다보니 불알이 오그라들어 속도를 못 내겠다. 도로 왼쪽에 바짝 붙어(맞다 여긴 좌측통행이다) 슬금슬금 달렸다. 속도가 60kmh를 넘지 않았다. 주유소에 들러 꽉 채워서 기름을 넣으니 16,000rps. 고작 2천원이라니!

비가 내렸다. 점점 빗발이 거세졌다. 헬멧을 쓴 머리만 빼고 쫄닥 젖었다. 두리번 거리다가 처마 밑에 스쿠터를 세우고 비가 그치길 멍하니 기다렸다. 건너편에서 젊은 처자들이 깔깔 대며 웃는다. 자와 섬에서는 저런 발랑까진 무슬림 여자애들이 여행객에게 시시덕 거릴 리가 없었다. 내 꼴이 한심해서 담배를 물고 뻑뻑 빨았다. 비가 잦아 들어 다시 스쿠터를 탔다. 40분쯤 달리니 비가 멎었다. 도로가 미끄러워 속도를 내기 겁난다. 

구능 카위에 도착. 주차료는 2,000rps. 싸롱을 파는 삐끼들을 물리치고 입구에서 싸롱을 빌렸다. 입장료는 무려 15,000rps. 밀림 속에 바위를 파서 만든 사원이다. 그럭저럭 볼만했지만 부러 찾아갈만 한 곳인지는 의문이다. 아내 말대로 인도에서 볼 걸 다 보고 나면 다른 어떤 관광지에 가도 시큰둥해지게 마련인지 모르겠다. 

오토바이 타고 비 맞으면서 gunung kawi에 갔다. 입구에서 본, 인도네시아 주요 관광자원 중 하나인 terrace rice paddy. 그러니까 계단식 논. -_-

이렇게 보니 베트남 분위기인데? 아, 그러고보니 계단식 논은 베트남의 주요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계단식 논의 관광자원화가 시급하다. 어쩌다가 쌀농사 포기하고 대농 정책 중심으로 나가다가 이런 귀중한 관광자원 개발을 소홀히 하게 되었을까 -_-


암면을 깎아 만들었다. 정글 한 가운데서 이걸 보니 인디애너 존스 분위기

인디아의 아잔타 석굴과 비슷. 단지 여긴 정글이고, 물이 풍부하다.


manual은 몰 줄 몰라 automatic을 빌렸다. 오토바이 없으면 돌아다니기 힘든 곳.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자전거는 우붓 지형 및 열대의 기온 때문에 좀 힘들어 보인다. 실은 자전거 투어가 있는데 그게 명칭이 'eco tour'라고... 전세계 어디가나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의 사업수완이란 정말...

다음 목적지는 Pura Samuan Tiga. 입장료 받는 곳에 사람이 없다. 관광객도 없다. 그늘에 한가하게 앉아 이끼에 뒤덮인 석상과 여기저기 떼지어 몰려다니는 닭들, 어슬렁 거리며 닭을 노리는 고양이들을 구경했다. 어떤 여행자가 자전거를 타고와 인사했다. 그의 사진을 찍어줬다. 멍하니 앉아 그가 사원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작고 방치된 듯한 사원이다. LP에 따르면 이들 사원은 축제 때가 되어야 사람이 찾아오고 활기를 띤단다.

Pura Samuan Tiga 입구의 도깨비. 힌두교에 이런 도깨비가 있었던가?


역사적으로는 천년이 넘은 사원이지만 지진 이후 복구 대신 renewal을 택함. 따라서 이 사원의 역사는 실질적으로 100년 정도?


Yeh Pulu를 찾으려고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었다. 동쪽으로 가다가 남쪽으로 틀어 서쪽으로 가서 다시 북쪽으로 가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할텐데, 동쪽으로 가다가 남쪽으로 쭉 가서 다시 동쪽으로 교차로 하나 없이 한 없이 이어진 도로를 달리다가 남쪽으로 틀어졌다가 동쪽으로 가다가 비스듬한 북쪽 길을 따라 가며 몇몇 교차로를 지나치고 외통수를 만나 갑자기 좁은 논길이 끝나면... 이런 젠장. GPS를 켰다. 아까 Pura Samuan Tiga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waypoint를 찍어 놨다. 이건 정말 좋은 버릇이다. 예전에 중남미에서 종종 길을 잃고 헤메던 잊지못할 기억 때문. 그래서 원래 있던 길로 안 가려고 다른 길로 헤멨다. 두어 시간 그렇게 헤메니 진이 다 빠졌다. 인도네시아의 열악한 도로 사정을 뼈저리게 느꼈달까? 가난한 시골 모습을 제대로 구경했다. 사람들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았는데 내가 외국 여행자란 생각은 안 하는 것 같았다. 단지 이런 곳에 올 사람이 아닌 타지인이 길을 잃고 헤메는 모습을 구경했던 거랄까? 어쩌면, gps가 없었더라면, 그들과 교통이 있었을 것이다.

어찌어찌 해서 두 시간 만에 다시 처음 삼거리로 돌아왔다. 삼거리 옆에 Goa Gajah가 있었다. 주차장 크기로 미루어 보건대 유명한 관광지 같다. 대뜸 삐끼가 접근해 자기를 따라가면 고아 가자의 숨겨진 밀림의 신비를 구경할 수 있단다. 어느쪽인데? 저기 저쪽에서 시작해서 저쪽 끝까지. 고마워요 내 힘으로 한 번 가볼께요. 혼자 가면 길을 잃는단다. 내겐 gps가 있어요. 휴대폰이에요? 아뇨 gps에요.

싸롱을 빌려 입고 우편엽서에서 보았던 동굴 입구의 거대한 바위 상을 보았다. 이전 사원에서는 본 적이 없었던 링감이 모셔져 있다. 이런 몹시 작은 링감이면 우주적인 신심이 제대로 우러나질 않을텐데, 발리의 힌두교에 의문이 생겼다. 

발리 엽서에 등장하곳 하던 동굴 사원의 입구. 아, 나도 가이드 끼고 설명 좀 들어봤으면 좋겠건만...


고아 가자 내 작은 사원에서 뿌자 중인 할아범(모처럼 보는 시바파였다) 옆에서 하레람! 하레람! 두 팔을 벌리고 꽥괙 소리 지르며 요란하게 기도했다. 이마에 빈디를 찍어주며 박시시를 요구했다. 거적데기를 들추니 관광객들이 선뜻 기부한 100,000rps 지폐가 보여 인도인에 버금가는 발리 힌두교 삐끼들의 역량에 감탄했다. 대체 어떤 미친 관광객이 영빨이 영 안 받는 보잘 것 없이 이런 작은 사원에서 이마에 빨간 점 하나 찍어줬다고 사제(사원 관리자)에게 100,000rps 씩이나 기부하겠나. 그런 거다; 남들이 이만큼 냈으니 너도 이만큼 내라. 지갑에 1,000rps 짜리가 있었지만 그걸 주면 모욕감을 느낄 것 같아 관뒀다.

'밀림으로 가는 길(way to the jungle)'이란 푯말을 보고 주저없이 들어갔다. 콸콸 흐르는 시냇물, 미끌미끌한 길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왠 삐끼가 버르장머리 없는 어떤 늙은 서양 관광객이 자기들의 성소에 짐을 올려놓았다고 불평과 욕설을 늘어놓았다. 그것도 잠시뿐, 이 밀림은 하도 복잡해서 혼자 다니면 길을 잃으니 자신의 가이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갔다. 내게 관심을 돌리더니 자신의 가이드를 받으라고 말한다. 필요 없을 것 같아 사절했다. 길이야 늘상 잃는 거고.

나무 뿌리 사이로 난 길을 걷다가 아이스 박스를 내 놓고 음료수를 팔고 있는 처자를 만났다. 콜라? 노. 사이다? 노. 그런데 여기 길이 있어요? 이쪽으로 쭉 가면 되요. 인상이 좋아 보여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일어섰다. 아침 바람부터 비맞으며 싸돌아다녔더니 피로가 밀려온다. 그래도 걷자.

정글로 향하는 길

정글에서 길을 잃고 헤메다가 만난 음료수 파는 아가씨.

그저 산책로 정도에 불과한 밀림의 끝자락(?)에서 마을을 만났다. 어깨폭 정도의 미로를 이리저리 걷다가 길을 잃었다. 막다른 골목 끝에 가정집이 나타나 인기척을 냈다. 쪼르르 달려온 젊은 여자애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 오! 와! 오! 와! 대박!(한국어로 번역하면 그쯤 된다) 그러더니 자기는 슈쥬를 좋아한다며 혼자서 방방 뛰고 난리도 아니다. 휴대폰에 있던 멜론 TOP 100 히트곡 중 소녀시대나 원더걸즈, 2PM 따위를 몇 곡을 들려주니 이거 최신이냐며, 다운해달라고 성화다. 마루에 걸터 앉아 그 아이의 email을 적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최신 히트곡을 보내주마고 약속했다. 아이가 내 주위를 끌더니 거실 TV에서 흘러나오는 한국 드라마를 보여준다. 그 가족은 나도 모르는 무슨 한국 사극을 보고 있었다. 황당하군.

물 한 잔 얻어먹고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보니 길을 물으러 들어갔었지. 소득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미로 같은 골목을 헤메는데 아까 그 '신비로운 밀림'에서 만났던 처자를 다시 만났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란다. 입에 손을 대며 먹는 시늉을 한다. 밥 먹으러 가는 길이군. 어떻게 해야 고아 가자로 돌아갈 수 있어요? 이쪽 길을 따라 가면 되요. 여기 아스팔트 길이요? 네. 이 길을 따라 빙 돌아가면 고아 가자 입구가 나와요. 처자에게 감사의 뜻으로 음료수를 하나 샀다. 5,000rps를 부르길래 깍아줘요 했더니 3,000rps로 깎아준다. 내가 마음에 드는걸까? 나도 마음에 든다. 유부남이라 이걸로 끝이지만. 마누라 걱정대로 난 여행지만 가면 어떻게든 여자들을 만났다. 내가 못 생기고 나이 들어 보잘 것 없건 말건, 화학작용이 없을 뿐.

싸롱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걷다보니 Yeh Pulu라고 씌어진 표지판을 보았다. 그렇게 찾아 헤멜 땐 보이지도 않더니... 사원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대략 150여명 가량의 사람들이 차양 밑 의자에 차분히 앉아 있다. 내부로 들어가려니 어떤 젊은이가 부드럽게 길을 막았다. 여긴 지금 장로들의 회합이 벌어지고 있어 들어갈 수 없단다. 누군가가 나서서 설명해준다. 자기들 계급은 크샤트리아인데(황급히 부연설명하길, 요새는 계급 안 따지고 정말 중요한 것은 교육이란다) 지금 2012년 이 지역 마을을 이끌 지도자를 선출하기 위한 원로회가 안에서 '민주적으로' 벌어지고 있단다.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면서 연신 비디오를 찍었다. 음료수는요? 친절하게, 저 밖에 있는 가게에서 사 먹으면 된단다. 

30분쯤 걷자 고아 가자 주차장이 나타났다. 싸롱을 그대로 가져가도 될 것 같지만, 고아 가자 입구에 다시 반납했다. 지친다. 밥도 못 먹고. 아까는 몇 차례나 길을 잃고 헤멨지만 돌다보니 의외로 우붓 중심가가 가까워져서 돌아가는 길은 15분이 채 안 걸렸다.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교통체증이 심해졌다. 오토바이를 더 끌고다니자니 지친다. 3pm에 오토바이를 반납했다. 

우붓의 관광명소(?) 기념품 시장. 꽤 크다.

쉽게 찾을 수 있을꺼라 생각했는데... 먹을만한 식당을 찾아 거리를 돌아다녔지만 소득이 없다. 엊그제 헤어졌던 뉴질랜드 박사 학위 소지자를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한 눈에 봐도 할 일 없이 무작정 거리를 헤메고 있다. 지독히 고독한, 나같은 타잎의 나이 든 여행자, 어쩌면 그게 그와 별로 말을 주고 받지 않았던 이유일 지 모르겠다, 인도나 페루의 깡촌 오지 같은 곳에서 로칼 버스를 전전하며 한가하게 돌아다니다 만났더라면 함께 히히덕거리며 돌아다녔을 지도 모르겠다. 나나 그나 이런 곳에서 편하게 관광객 요금 주고 투어 버스나 타고 다니는 사람들과 별로 같이 다니고 싶지 않을 것 같으니까. 나처럼 그도 나를 슬며시 외면했다.

LP에는 도움되는 정보가 없다. 무려 10,000rps에 세금 10% 별도인 스프라이트를 마시며 휴대폰으로 주변 정보 검색. Dewi warung을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warung Lokal('로칼' 식당)에 우연히 들렀는데(메뉴판을 보고 자동으로 멈췄다) 나시 고랭이 9,000, ice tea 3,000. 지금껏 먹어본 나시고랭 중 가장 양이 많고 맛있다. 게다가 무선 인터넷이 된다. 아내와 skype로 통화했다. 식당 참 좋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 천정에서 돌아가는 팬을 멍하니 쳐다봤다. 이상하게도 열대 지방에 오면 에어컨은 '추워서' 안 틀게 된다. 잠시 그렇게 누워 쉬다가 다시 나왔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들러 내일 Kuta 행 suttle bus 표를 예약하고 시장을 하릴없이 돌아다녔다.

벌써 해가 졌다. 피곤에 지쳐 아까 식사를 한 거리에서 눈에 띄는 아무 가게나 들어가 한 시간에 60,000rps 가량 하는 전신 마사지를 받았다. 아로마 오일을 몸에 발라줬다. 마사지 자체는 생각보다 별로 였지만 피곤한 탓인지 선잠이 들었고, 몸이 나른하다. 8pm. bintang supermarket에 가 보기로 했다. 그리 멀지 않아 뵈는데 시 중심가에서 무려 25분을 걸었다. 빈탕 맥주 큰 것과 음료수 등속을 사서 완전히 껌껌한 거리를 걸어 중심가로 돌아왔다. 낮 동안 교통혼잡으로 도로가 거의 마비되다시피 하는데, 발리의 각지에서 머물다가 민속 공예품 따위를 사러 우붓에 잠시 들러 쇼핑을 마친 사람들이 저녁이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우붓 시내의 저녁에는 왕궁을 중심으로 고급 레스토랑들이 널려 있고 식당 마당에서 디너쇼가 벌어졌다. 그럴 돈도 없고, 디너쇼는 재미없어 보이고, 그래서 이렇게 시내 중심가에서 한참 떨어진 수퍼까지 힘들게 걸어가서 사온 맥주를 숙소에 돌아와 혼자 마신다. 샤워하는데 마사지 가게에서 칠한 기름이 잘 안 진다. 바보 같으니라고. 마사지샵에서 샤워를 하고 나올 껄.

맥주 마시며 내일 계획을 잡았다. 계획이랄 것도 없었다. 쿠타 해변에 도착하면 숙소 잡고 해변에 가서 논다.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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