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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 2007. 6. 25. 11:46
Six Feet Under -- 훌륭한 드라마, '드라마'로써의 드라마. 이런 드라마를 모르고 있었다니... 이제는 시들어버린 수많은 고인들을 다루는 가운데, 싱싱 냉장고의 오이처럼 파릇파릇한 개개 인물의 성격 구현에 높은 점수를 주겠다. 수개월간의 지루한 미드질 끝에 하나 건졌다. Six feet under가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 라는 뜻인 것 같다. 땅밑 6피트가 아니라. (양키들은 죽어도 국제표준 미터법을 사용 안하네. 21세긴데 피트가 뭐야 피트가)

그곳은 지도에 나오지 않는다. 참된 곳은 지도에 나오지 않는 법이다. -- 백경, 허먼 멜빌

대뇌지도가 부실한 탓도 있지. 예전에 비하면 뇌과학은 많은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PET와 fMRI의 실시간 매핑이 가장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진단의학을 소재로 한 닥터 하우스에서는 fMRI를 사용하여 병력을 진단하는 모습이 나왔다. 망할 드라마들이 다 그렇듯 자세히는 안 나왔다.

학습에 간여하는 미러 뉴런의 존재로부터 유아기의 뇌 성장 방식(좌/우뇌가 교대로 성장), 뇌에 따른 성격 편향, 개성의 형성, 인격의 형성, 자아...의 형성. 그리고 지능의 발달. 아가의 iq와 제 양 부모의 iq 사이의 상관계수는 연구결과 0.72 정도 된다. 다시 말해 아이는 양 부모의 지능을 대략 51% 유전적으로 물려받는다. 그럼 나머지 49%가 환경과 성장배경? 그런 뜻은 아니고...


교사가 가진 능력은 인간을 변모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다. -- 에머슨 <-- '백만장자의 첫사랑'이란 재미없는 영화에서 본 다소 부질없는 대사. 교사가 인간을 감동시키고 그의 생에 질적인 변화나 계기가 되어줄 수 있다. 굳이 폄하하자면 에머슨의 확신은 희망일 뿐이다. nurture에 점수를 실어주는 수준급의 농담에 대응하자면; 프로그래머가 가진 능력은 세계를 보다 나은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다. 저렇게 앉아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노년이 평탄하지 않을 것 같은 불확실하고 불길한 예감이 든다. 물론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지만, 소울이는 가끔 네 개뿐인 이를 으드득 으드득 갈았다.

뇌에 관심이 많았는데, 한 사람의 개성과 인격, 심지어 자아와 내적 가치관을 형성하는 요인을 나름대로 두 가지로 규정했다.

1.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2. 면역체계

사회적 경험은 유전적 소인의 발현 강도만을 조절한다. 고 본다. 언제고 터질 일은 터지게 마련. 세계는 빠르게 수렴되어 가고 있으며 과거보다 더 많은 수의 어린이들이 경험의 가상 공유를 비롯하여, 동조된 자극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미국과 한국의 아이들이 같은 가수를 좋아하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게임을 하는 것처럼). 즉 유전자의 영향이 과거 어느때보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만 같다. 커즈와일의 주장을 각색하자면 폭발적인 기술적 발전은 경험과 감각의 세계를 극단적으로 확장하여 동조된 세계 자극은 부질없는 걱정이 된다. 물론 나는 그의 두꺼운 책에 그려진 싱귤라리티를 향해 치솟는 '발전속도' 그래프를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TV에서 인간시장을 보았다. 이외수의 감성마을이 소개되었다. 고생하는 사모님은 어느날, 어린 아들이 학교가기 싫다고 말하자 아이 손에 만원을 쥐어주고 인근 버스터미널에 가서 아무 차나 타고 놀러갔다가 저녁까지는 돌아오라고 일렀다. 공주처럼 자란 아내는 그걸 보더니 자기도 꼭 그래보고 싶단다. 좋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학교 가기 싫어서 할아버지 돈을 훔쳐서 동네 애들을 데리고 버스 타고 먼 곳으로 놀러갔다. 배가 고파서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니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혀 있었다. 눈물나는 가족상봉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영문도 모른 채 집에 끌려가 맞았다. 이외수의 사모님같은 분이 어머니였다면 나는 비뚤어져서 모범생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훌훌 털어버리고 아무 계획없이 여행을 가는 것을 낭만이라고 생각들한다. '아무 계획'없이 가다가 길에서 만난 사건과 우연을 즐기는 것이다. 10대가 가버린 후 대체 내 삶에 낭만이 있긴 했나 의심스럽다. 자전거 여행은 종종 주행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 열댓시간 뙤약볕에서 무미건조한 풍경을 보며 땀을 질질 흘리며 달리다보면... 여행을 하자고 자전거를 타는건지, 자전거를 타자고 여행하는 건지 헷갈린다.

엔진을 갖추면 어디든 갈 수 있을꺼라는 순진한 믿음은 버렸다. 엔진 보다는 엔진의 의지가 더 중요했다. 엔진의 의지는, 그래도 가자, 날이 덥거나 추워도 가자. 의문은 접어두고. 뭐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해 엔진의 의지는 삽질의 의지일 따름이다. 삽질하고 싶은 것이 여행의 의미? 그렇다.

애당초 내게 있어서 여행은 휴양과는 거리가 멀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혹시 공허한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빈둥거리고 있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빠삐용처럼 인생을 낭비한 죄를 짓는 것이 아닐까?

자전거 타고 출근하다가 자전거 도로에서 하수 시설 공사차 진행하던 용달차가 T자 도로에서 좌회전으로 빠져나와 급정거 하는 바람에 차량의 뒤를 박았다. 시속 25kmh.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완전 제동이 안되어서(완전 제동이 되면 뒷바퀴가 들려(잭나이프) 운이 좋으면 하늘을 훨훨 날던가 뒷바퀴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다가 슬립해서 차량 밑으로 기어 들어간다. 작년에 올림픽 공원에서 브레이크 잡는 연습을 좀 했는데(벽을 향해 치킨런, 급제동, 그리고 턴, 쾅!) 그게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어느 정도 제동이 된 상태에서 용달차 뒷 팔레트를 손바닥으로 짚었는데 가운데 손가락 손톱 밑에 팔레트 표면에 붙어있던 유리가 파고 들어 5mm쯤 찢어졌다. 키보드 두들길 때마다 손가락 끝이 따끔거린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새빨갛고 신선한 피가 핸들 사이로 뚝뚝 흘러내렸지만 출근길이라 귀찮아서 손가락을 쪽쪽 빨아 먹으면서 사무실까지 그냥 갔다.

저녁 퇴근길에 역시 하천에 작은 다리가 걸쳐져 있는 T형 자전거 도로에서 우회전 진입 중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직진하던 자전거가 나를 보지 못하고 고속 질주하다가 충돌할 뻔 했다. 사위가 어두웠다. 자전거 기척을 느끼고 순간 브레이크를 잡았다. 뒷브레이크 7, 앞브레이크 3, 교과서대로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 노면에 슬립해서 일부러 자빠링하여 충돌을 피했다. 자전거는 쓰러졌고 나는 한쪽 핸들을 잡은 채 도로에 멈춰섰다. 하아. 주행하던 그 자전거의 과실이지만 다친데도 없고 잘잘못 따져 친해져봐야 뭐하겠냐는 생각이 들어 암 말 않고 자전거를 보냈다.

하루에 두 건이라... 긴장이 많이 풀어진게다.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내 과실도 아니지만 속도가 전보다 약간 오른 후 위험도 그만큼 높아졌다. 재밌는 얘길 들었다. 타이어 펑크를 방지하기 위해 공기압을 대략 빵빵한 정도로 유지하고 다녔는데 더운날 내리막에서 브레이크를 과도하게 잡으면 림이 가열되면서 타이어 내 공기를 팽창시켜 펑크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운날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계속 잡다보면 림에 검게 녹아내린 브레이크 패드가 우중충하게 말라붙기도 한다. 그걸 볼 때마다 섬뜩했다. 패드가 다 녹아내리면 내리막에서 발바닥으로 브레이크 잡는 건 어림도 없고... 일부러 자빠링 해도 무사히 착지하리란 보장이 없다. 67kg+15kg, 60kmh. 인체의 대다수 뼈들은 저 정도 무게의 저 정도 속도에서는 그 경이로운 탄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부러진다. 내리막길에서 55-60kmh씩 밟는 짓은 안 하기로 했다. 물리학, 열역학적 사실 때문이라고 해두자.

초저속 주행시 스티어링과 사고 대비 자전거 탈출을 연습 좀 해야 할 것 같다. 알라딘에서 '혼자 배우는 산악자전거'라는 책을 주문했다. 설명은 단순하지만 그림이 많이 나와있어 흥미롭게 읽고 있다.

요 며칠은 '얼음과 불의 노래' 성검의 전설 편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흥미로운 점은 내가 이 책을 수 년 전에 etext로 읽었다는 것이고, 더더욱 흥미로운 점은 읽은 기억이 나고 내용도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밀린 책이 9권이나 있음에도 1940페이지나 하는 책을 하릴없이 다시금 읽고 있다는 점이다. 더더욱 흥미로운 것은 일전에 영화 '파프리카'를 보고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 싶어 기시감에 고개를 갸웃갸웃 했는데 일요일 오후 멍하니 서가를 바라보다가 서가에 꽂힌 '파프리카'라는 쓰쓰이 야스타카의 책을 발견했다. 1994년 8월 20일 초판 2쇄 발행. 당시에는 SF다 뭐다 해서 이래저래 책을 찾아서 읽었으므로 1995년이나 1996년 쯤에 구입해서 읽은 책일 것이다. 11~12년 전에 읽고 새까맣게 잊었다. 심지어는 얼마전에 잘난 척하며 최재천의 글은 안 읽을 꺼라고 떠들어댔는데 그가 1999년 번역한 책이 서가에 버젓이 꽂혀 있고, 무척 재밌게 읽은 기억까지 나서 소름이 돋았다. 읽은 책을 또 읽는 일이 잦은 내 자신이 징그럽고 경악스럽다. 가끔 1999년부터 보전되어 있는 PDA의 일정을 탐색해 보면 내가 정말 이랬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기억이 인간을 규정하는 주요 지표중 하나라면, 난 뭘까?
세계 정복의 파릇파릇한 꿈마저 잃어버린 광우병 환자?

오늘 하루는 '대한민국 30대, 재테크로 말한다'라는 책을 빌려 읽었다. 출간된지 두 달 만에 4쇄를 찍었다. 책 앞 장에 재태크 점수를 메기는 질문지가 있다. 내 점수는 75점. '기본기가 탄탄하므로 대한민국 평균 이하로 가난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알고 있는 지식을 실천할 수 있는 추진력만 겸비한다면 재테크에 관한 한 남부럽지 않은 고수가 될 수 있다' 평가가 후한걸? 집을 사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이에게는 한 푼도 물려줄 생각이 없다. 금융자산과 부동자산의 비율을 8:2로 맞추고 싶다. 노후는 네팔이나 태국 북부, 중국 후난/쓰촨성의 산간지방에서 글이나 쓰며 하릴없이 보내고 싶다. 반품 전문 쇼핑몰이란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www.jaego.co.kr, www.refurbshop.co.kr, www.uniz.co.kr

12억을 모아야 죽기 전까지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은 처음이라 신선했다. 내용 중에는 앞으로 대형 평형의 아파트가 대세가 될 터인데, 그 이유는 대형 평형의 아파트라야지 가사를 도울 수 있는 로봇이 활기차게 움직일 공간이 확보된단다. 골든싱글이 사는 광활한 45평 아파트에서 낮에는 정숙한 가사 도우미로 활약하고 밤에는 침대를 따뜻하게 데워주길 기대해 본다.

그런데,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란 말인가? 베스트셀러라곤 파울로 코엘료의 책 몇 권 읽은게 최근 전부라서...

21세기를 주도한 세 가지 기술은 흔히 Genetics, Nanotech, Robotics의 두문자를 따서 GNR로 불린다. 이미 한물간 것으로 짐작되는 3대 기술, NT, BT, IT 다음에 요즘 유행하는 것이랄까? 빌 게이츠가 공공연하게 말한 후 로보틱스가 화제가 된 것 같은데, 말하는 암소가 손님들 사이를 걸어다니면서 자기 소개를 하고 어느 부위를 먹을꺼냐고 물어본 후 제 발로 도살장으로 들어가 자살하는 genetics를 선호하는 편. 아님 material compiler로 원소물질로부터 암소 안심 스테이크를 직접생산할 수 있는 nanotech도...

日 여성 선택받지 못한 ‘중년동정’ 너무해 -- 기사가 좀 우스워서.


이런 느낌? 2ch의 저 농담이 한동안 유행한 듯. 사방에 온통 저 그림이군.

이외수의 사모님같은 분이 어머니였다면, 어쩌면 모범생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비뚤어져서 수도승으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불가에 귀의한 후 25년 동안 로보틱스가 주는 육체적 쾌락과 마법의 세계를 탐닉하다가 절의 돈을 훔치고 절집에 불을 지른 후 인도로 떠나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헤멘다던지. 그러다가 신은 위대한 이원론속에 도사리고 있으며 수사학적 떠버리즘과 수학적 정교함의 애매한 어느 간극에 신이 스프링처럼 오락가락 진동한다는 것을 깨닫고 정보로서 존재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시공간이자 물질인 우주를 구성하는 비트의 진의를 이해하려고 프로그래머가 되어 '정진'하다가 해탈을 위한 고행의 길중 가장 어렵다는 결혼을 택하고 잃어버린 영혼의 대체재인 소울이를 낳은 후 재테크를 하며 고통스럽게 살았을 것이다.

지금과 다를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데우스 마키나가 난무하는 이 세계에서 눈먼 테이레시아스의 뒤늦은 증언(저주?) 같은 운명(천성; nature)은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양육(nurture)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세대를 이어온 유전자 칵테일, 스크류 드라이버가 될지, 모히또가 될지, 마가리따가 될지, 폭탄주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페이지를 앞으로 스크롤해서 애 얼굴을 다시 보면 모든 것이 명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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