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이 안 좋은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파키스탄 북부 고원처럼 황량해지는 느낌이다.
pt 중에 문화의 사각지대에서 길을 잃고 헤메며 궁핍하게 살아온 직원들에게 몇몇 애니메이션을 맛배기로 보여줬다. 신카이 마코토의 '빛'나는 몇몇 작품과 다이버스터, 큐티하니, 유키카제와 마크로스 제로 정도 -- 마코토는 얼마전에 초속 5cm란 애니를 만들었다. 그나마 알아먹을 수 있는 작풍을 꾸준히 선보여주셔서(쉬워서) 마음에 든다. 그의 작품은 그런데 같은 레파토리에 온통 궁상 뿐이라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마크로스 제로의 항공전투씬은 언제봐도 멋지다. 준비한 pt는 슈퍼스칼라 파이프라인 CPU 설계에 관한 이론적인 것이라 꽤 재미가 없었다. pt를 만들면서도 지겨웠다.
얼마 전에는 '볼만한' 미국 드라마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이런 추천은 상호적이라, 볼만한 한국 드라마를 추천받기도 했다. 짜장면을 무척 좋아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처녀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감상했다. 드라마의 영향으로 마누라와 가끔 주말에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뉴월드: 저 여자는 혹시, 했는데 역시 미국에서도 명성이 드높은 깡촌 버지니아의 추장 딸인 포카혼타스였다. 미국 역사상 저렇게 미화된 인물이 있을까? 텍사스의 개망신이자 현재 미국 대통령인 조지 워커 부시가 포카혼타스의 자손이란 설을 예전에 들은 바 있다. 그럼 용비어천가? 갑자기 만사가 그 방면으로 이해되어 저절로 고개가 끄떡었다(그럴리는 없겠지만). 감독과 각본가의 '자기만의 세계관'은 그렇다치고, 카메라 시선을 즐길 수 있는 영화였다. 꽤 괜찮았다. 스미스 선장이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포카혼타스를 버리면서 친구에게 부탁한 말; "내가 떠난 다음, 한 3개월쯤 후에 내가 죽었다고 전해줘" 여자들은 스미스 선장같은 사람을 '개새끼'라고 부른다. 그건 그렇고, '당신이 바보 같다고, 바보짓만 일삼고 있다고 훌쩍훌쩍 울어주는 사람은 여자들 밖에 없다' 라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 여자는 이 세계의 필요악이다. 최근에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을 북돋아주는 바람에 느닷없이 최재천 교수가 인기를 끌었다.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이고 '통섭(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이란 그의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최재천 교수의 어떤 인터뷰에서 인상에 남는 댓구가 있었는데 정확한 인용은 힘들어 자신없지만(읽은지 꽤 되었으니) 분자생물학 등속으로 분지하기 이전의 생물학에서도 아직 배울 점들이 있다고 했던 것 같다. 글쎄다... '인문학과 과학의 유연한 결합'을 최재천 교수가 했다는 게 대체로 의아하다는 것. 제대로 알려면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다지 재미있을 것 같지가 않다. 인문학도 과학도 이도 저도 아닌 책을 읽어서 뭐하나 싶다. 공교롭게도 최근 읽은 책의 제목이 fragile science('달걀 껍질 속의 과학'이라고 번역한 센스는 다소 유감스럽다)였다. 역시 기분만 우울해지고, 재미가 없었다.
엄청나게 책을 많이 쓴 임석재 교수의 서양건축사 첫권 '땅과 인간'도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 읽다가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다음 권을 읽는 것이 망설여진다.
노부타를 프로듀스: 다른 많은 것들과 달리, 인간의 악의와 싸우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드라마 보고 기운이 났다. 인간은 변한다, 인간은 변할 수 있다. 에라곤에 나온 대사; "옛날에 어떤 노인네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용기 있는 일은 조금 밖에 하지 못하고 먹고 사는 일에만 온 힘을 쏟았다고..." 에라곤의 주인공은 왜 출현했나 싶을 정도로 존재감이 약했다.
일본의 (전투적) 애니메이션은 보통 이런 스토리라인을 따라간다;
주인공은 일단, 평범하다. (평범한 엔지니어, 평범한 전투기 조정사, 평범한 학생)
새로운 장난감들이 소개되며 전개된다.
평범하던 주인공은 새 장난감을 다루는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발견한다.
재능을 발견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멋도 모르고 그냥 싸운다.
적이 엄청 강해진다.
대체 왜 싸우는지 의문을 품는다.
동료들이 죽어가기 시작하면 빈정 상해 악에 받쳐 싸운다.
싸우기 싫어진다. 이때쯤 새로운 장난감들이 소개된다.
적에게 밀린다.
대체 왜 싸우는가 엄청 고민하고 현실도피한다.
왜 싸우는지, 존재의미는 무엇인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아울러 적의 실체는 자기 자신의 극복이라는 희안한 명제가 성립된다.
별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한다. 싸움을 끝내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논리다.
최종전투가 남아있다. 막대한 희생이 뒤따른다.
보잘 것 없는 인간성에 서로 어깨를 기대며 극이 마감된다.
영화 '매트릭스'를 일본 애니식으로 번안하여 몹시 식상해진 '제가페인':
"70억의 생명과 인류가 쌓아온 역사를 댓가로 말인가?"
"그건 별 문제가 안된다. 우리가 새로운 인류가 되어 역사를 쌓을테니까."
"사라진 인간들의 추억은 어떻게 되는데? 당신은 죽은 사람의 고통을 모르는가?"
"아쉽게도 몰랐었어. 내 오리지날은 태생적으로 통각을 갖지 못했거든. 하지만 재생하면서 통각을 가지게 되었다. 과연 통각은 우수한 위험신호다. 그래서 너희들은 생존 본능으로 몸부림치는 거지"
새로운 인류가 되어 역사를 쌓아가겠다니, 건전한 사고방식이다.
"당신은 모르고 있어. 우리가 말하는 것은 마음의 고통이다."
마음의 고통?
"내 주먹이, 내 상완이두근이, 내 영혼이 분노하고 있어!"
지구는 여전히 원숭이 제국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생자필멸, 회자정리"
"사령관, 갑자기 무슨 귀신싸나락 까먹는 소립니까?"
그러게 말이다.
"어서 태어나... 세상의 빛이 얼마나 눈부신데"
그다지.
유레카7: 일본 애니 안 본지 꽤 되었는데, 그새 컴퓨터 그래픽이 안 들어간 것이 없는 듯. 그렉 위건이 나온다. 외골수 뚱뎅이 엔지니어로. -_- 도식을 충실히 따라갔지만 최근 애니는 별스러운 캐릭터에도 정성을 기울이는 듯. 딱 애들 보기 적당한 애니 수준. 주제는, 두 외계인의 사랑 타령. 나머지는 정말 부질없어서, 코드기아스 반역의 를루슈처럼 온갖 것들을 갖다붙여 금새 질린다. 만화책 '데스노트' 보다가 짜증이 나서 던져버리고 싶어지는 것처럼.
그건 그렇고, 오다기리 조가 '충사'의 주인공이라니... 그건 좀 아니잖어 -_-
'개판 오분전'의 개판이 똥개의 그 개가 아니고 open place의 그 개판이라고 들었다.
pt 중에 문화의 사각지대에서 길을 잃고 헤메며 궁핍하게 살아온 직원들에게 몇몇 애니메이션을 맛배기로 보여줬다. 신카이 마코토의 '빛'나는 몇몇 작품과 다이버스터, 큐티하니, 유키카제와 마크로스 제로 정도 -- 마코토는 얼마전에 초속 5cm란 애니를 만들었다. 그나마 알아먹을 수 있는 작풍을 꾸준히 선보여주셔서(쉬워서) 마음에 든다. 그의 작품은 그런데 같은 레파토리에 온통 궁상 뿐이라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마크로스 제로의 항공전투씬은 언제봐도 멋지다. 준비한 pt는 슈퍼스칼라 파이프라인 CPU 설계에 관한 이론적인 것이라 꽤 재미가 없었다. pt를 만들면서도 지겨웠다.
얼마 전에는 '볼만한' 미국 드라마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이런 추천은 상호적이라, 볼만한 한국 드라마를 추천받기도 했다. 짜장면을 무척 좋아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처녀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감상했다. 드라마의 영향으로 마누라와 가끔 주말에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뉴월드: 저 여자는 혹시, 했는데 역시 미국에서도 명성이 드높은 깡촌 버지니아의 추장 딸인 포카혼타스였다. 미국 역사상 저렇게 미화된 인물이 있을까? 텍사스의 개망신이자 현재 미국 대통령인 조지 워커 부시가 포카혼타스의 자손이란 설을 예전에 들은 바 있다. 그럼 용비어천가? 갑자기 만사가 그 방면으로 이해되어 저절로 고개가 끄떡었다(그럴리는 없겠지만). 감독과 각본가의 '자기만의 세계관'은 그렇다치고, 카메라 시선을 즐길 수 있는 영화였다. 꽤 괜찮았다. 스미스 선장이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포카혼타스를 버리면서 친구에게 부탁한 말; "내가 떠난 다음, 한 3개월쯤 후에 내가 죽었다고 전해줘" 여자들은 스미스 선장같은 사람을 '개새끼'라고 부른다. 그건 그렇고, '당신이 바보 같다고, 바보짓만 일삼고 있다고 훌쩍훌쩍 울어주는 사람은 여자들 밖에 없다' 라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 여자는 이 세계의 필요악이다. 최근에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을 북돋아주는 바람에 느닷없이 최재천 교수가 인기를 끌었다.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이고 '통섭(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이란 그의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최재천 교수의 어떤 인터뷰에서 인상에 남는 댓구가 있었는데 정확한 인용은 힘들어 자신없지만(읽은지 꽤 되었으니) 분자생물학 등속으로 분지하기 이전의 생물학에서도 아직 배울 점들이 있다고 했던 것 같다. 글쎄다... '인문학과 과학의 유연한 결합'을 최재천 교수가 했다는 게 대체로 의아하다는 것. 제대로 알려면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다지 재미있을 것 같지가 않다. 인문학도 과학도 이도 저도 아닌 책을 읽어서 뭐하나 싶다. 공교롭게도 최근 읽은 책의 제목이 fragile science('달걀 껍질 속의 과학'이라고 번역한 센스는 다소 유감스럽다)였다. 역시 기분만 우울해지고, 재미가 없었다.
엄청나게 책을 많이 쓴 임석재 교수의 서양건축사 첫권 '땅과 인간'도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 읽다가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다음 권을 읽는 것이 망설여진다.
노부타를 프로듀스: 다른 많은 것들과 달리, 인간의 악의와 싸우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드라마 보고 기운이 났다. 인간은 변한다, 인간은 변할 수 있다. 에라곤에 나온 대사; "옛날에 어떤 노인네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용기 있는 일은 조금 밖에 하지 못하고 먹고 사는 일에만 온 힘을 쏟았다고..." 에라곤의 주인공은 왜 출현했나 싶을 정도로 존재감이 약했다.
일본의 (전투적) 애니메이션은 보통 이런 스토리라인을 따라간다;
주인공은 일단, 평범하다. (평범한 엔지니어, 평범한 전투기 조정사, 평범한 학생)
새로운 장난감들이 소개되며 전개된다.
평범하던 주인공은 새 장난감을 다루는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발견한다.
재능을 발견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멋도 모르고 그냥 싸운다.
적이 엄청 강해진다.
대체 왜 싸우는지 의문을 품는다.
동료들이 죽어가기 시작하면 빈정 상해 악에 받쳐 싸운다.
싸우기 싫어진다. 이때쯤 새로운 장난감들이 소개된다.
적에게 밀린다.
대체 왜 싸우는가 엄청 고민하고 현실도피한다.
왜 싸우는지, 존재의미는 무엇인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아울러 적의 실체는 자기 자신의 극복이라는 희안한 명제가 성립된다.
별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한다. 싸움을 끝내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논리다.
최종전투가 남아있다. 막대한 희생이 뒤따른다.
보잘 것 없는 인간성에 서로 어깨를 기대며 극이 마감된다.
영화 '매트릭스'를 일본 애니식으로 번안하여 몹시 식상해진 '제가페인':
"70억의 생명과 인류가 쌓아온 역사를 댓가로 말인가?"
"그건 별 문제가 안된다. 우리가 새로운 인류가 되어 역사를 쌓을테니까."
"사라진 인간들의 추억은 어떻게 되는데? 당신은 죽은 사람의 고통을 모르는가?"
"아쉽게도 몰랐었어. 내 오리지날은 태생적으로 통각을 갖지 못했거든. 하지만 재생하면서 통각을 가지게 되었다. 과연 통각은 우수한 위험신호다. 그래서 너희들은 생존 본능으로 몸부림치는 거지"
새로운 인류가 되어 역사를 쌓아가겠다니, 건전한 사고방식이다.
"당신은 모르고 있어. 우리가 말하는 것은 마음의 고통이다."
마음의 고통?
"내 주먹이, 내 상완이두근이, 내 영혼이 분노하고 있어!"
지구는 여전히 원숭이 제국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생자필멸, 회자정리"
"사령관, 갑자기 무슨 귀신싸나락 까먹는 소립니까?"
그러게 말이다.
"어서 태어나... 세상의 빛이 얼마나 눈부신데"
그다지.
유레카7: 일본 애니 안 본지 꽤 되었는데, 그새 컴퓨터 그래픽이 안 들어간 것이 없는 듯. 그렉 위건이 나온다. 외골수 뚱뎅이 엔지니어로. -_- 도식을 충실히 따라갔지만 최근 애니는 별스러운 캐릭터에도 정성을 기울이는 듯. 딱 애들 보기 적당한 애니 수준. 주제는, 두 외계인의 사랑 타령. 나머지는 정말 부질없어서, 코드기아스 반역의 를루슈처럼 온갖 것들을 갖다붙여 금새 질린다. 만화책 '데스노트' 보다가 짜증이 나서 던져버리고 싶어지는 것처럼.
그건 그렇고, 오다기리 조가 '충사'의 주인공이라니... 그건 좀 아니잖어 -_-
'개판 오분전'의 개판이 똥개의 그 개가 아니고 open place의 그 개판이라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