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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D

잡기 2008. 12. 2. 16:17
이런 저런 신문 기사에서 탁신'만' 부패한 정치가인 것처럼 언급하는 글을 보다가 좀 아닌 것 같아서;  탁신을 반대하는 PAD는 국민 대다수가 너무 멍청해서 투표로 국사를 이끌 지도자를 선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던 왕당파다.

빨간 옷 입고 거리에 나선 탁신의 추종 세력이나 노란 옷 입고 공항을 점거한 귀족 취향 왕당파나 학살과 살인을 묵인했던 전력이 있고 부패의 정도 면에서는 발톱을 다투는, 그야말로 피차 똥 묻은 개들이다. 태국 지도층의 만성적인 부패는 명망높은 국왕의 힘이 십수년에 걸쳐 차츰 쇠잔해져 가기 때문일 것이다. 국왕은 사재 털어서 어려운 국민을 물심양면 도왔겠지만 그가 했어야 할 일은 '멍청하다는 국민을 깨우쳐' 입헌군주국가의 점진적인 정치적 근대화를 지지하는 일이었을 것이다(희망사항일테고, 그 방향은 현재 세계에서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빈민층은 일견 자유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주장하는 탁신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PAD는 국왕을 등에 업고 군부가 재차 쿠데타를 일으키길 바라고 있어 유혈을 조장한다는 평가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이걸 심각하게 들으면 나도 심각하다). 몇 년전 난데없이 튀어나온 PAD가 왜 저렇게 기가 살아서 설치는 지 자세한 사정을 알지는 못 하지만(PAD를 이끄는 다섯 지도자 중 몇 명은 옛날에 탁신과 결탁해서 사이좋게 떡고물을 나눠먹던 인간들이다) 아마도 푸미폰 국왕의 병세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오늘, 내일 하는 국왕이 죽으면 태국의 권력을 누가 차지하게 될 것인가 때문에 세력전을 벌이는 것으로 보인다. 사정 모르고 섣불리 추측할 수는 없지만 제 3자 입장에서는 그런 의구심이 든달까.

그런데 타이 국민들은 생각보다 그리 멍청하지 않다. 대다수 국민은(내가 며칠 전에 방콕신문에서 본 데이터로는) 58% 이상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고 있으며 유혈 사태를 (독실한 불교도들답게?) 타이 얼굴에 똥칠을 하는 수치스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PAD가 부러워한다는 한국 민주주의는 피비린내나는 50년을 보내고 나서 독재자의 목을 사시미 칼로 긋는 것이 법치국가가 할 짓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러므로, PAD가 빌미로 삼던 왕을 포기하고, 탁신파도 겁나서 안해 본, 국왕이 없어도 민주주의의 가치와 신념을 위해 일생 내지는 목숨을 바칠 자신이 있는지, 국왕과 국민과 군바리들 상대로 입바른 개소리를 하는 건지, 기사를 볼 때마다 (흡사 태국 시민들처럼) 의문이 드는 것이다.

본론은, 직원들과 펀드계를 들었던 것이 -19%의 손실을 기록하고(선방하고) 이번 12월에 끝나는데, 남은 잔액을 한 사람에게 몰아 태국 관광 보내주자고 했었다. PAD의 태국 공항 검거 농성 때문에 한동안 지켜보다가... 무산되었다.

택시를 거의 안 타기 때문에 택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최근 드물다. 어쩌다 하게 되는 얘기도 경기 침체 이전의 경기 침체를 경험하고 있던 탓에 흔히 택시기사 상당수인 이명박빠들에 대한 전반적인 교화(내지는 옥신각신)로 귀착되기 마련.  태국인이 멍청하지 않듯이 이명박을 선택한 한국인도 멍청하지 않겠지만 이 나라 시민은 탐욕과 허영을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고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 <-- 이 문장이 너무나 엉성하기 때문에 아이러니인 것이다.

엊그제 만난 만난 택시기사하고 나눈 대화는 사시미를 쑤실 때 어떻게 하면 그 분을 고통없이 보내드릴 수 있는가, 가 주제였다. '리만 브라더스' 얘기하다가 그렇게 흘러간 것 같다. 출소한지 얼마 안된 분인 것 같다. 갈비뼈 어디쯤 부터(일러줬는데 잊어버렸다)  사시미를 상방 25도쯤 기울여 오른쪽 가슴을 쑤시면 폐에 예쁜 구멍을 낼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곧 멀리 가실 분을 유언 한 마디 없이 조용히 보내 드릴 수 있다고 한다.

그 세계에서 널리 알려진 신장 쑤시기의 단점은 곧 가실 분께서 여남은 인생에 회한을 느낄 만큼의 여지를 남길 수 있어 비추란다. 하여튼 한 시간 반 동안 여러 가지 조언과 충고를 들었다. 전문 분야의 기술자를 만나는 것은 인생의 기쁨이다. 택시에서 내릴 때 '대화가 정말 즐거웠습니다' 하고 인사했다.

요즘은 많이 적어진 것 같은 '기술자'(전문가)를 만나면 존경심을 표한다.  A 차장이 그 케이스다. 그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기술자다. 그가 회사에서 욕을 먹고 있는 이유는 일을 제대로 하기 때문이다. 그가 없으면 심지어 회사가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욕을 먹기도 한다. 말하자면 핵심인재다.

이것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독보적 기술력과 일년에 70일이 넘는 밤샘 작업,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20년차 베테랑, 꾸준한 학습과 자기개발, 두터운 부하직원 및 거래처의 신뢰와 동종업계에서 쌓은 높은 수준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마저, 기술자로서  능력을 인정받기는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바닥의 일상다반사이기도 한, 잘못된 경영 판단으로 회사가 망하면,  기술자들은 회사에서 나와 치킨집을 차리거나, 택시기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과장이다.

사교 자리에 가면 박쥐 같이 오락가락하는 유연한 언변 때문에 호시탐탐 씹어 먹을 기회가 생기길 바래왔던 김씨가 어느 날 뜬금없이 계산이 맞는지 물은 적이 있다.

아는 친구에게 앤더슨의 타임 패트롤을 빌려줬는데(요새 애들 말로 '토나올 정도로' 거지같은 표지로 행복한 책읽기에서 타임패트롤이 복간되었다.) 며칠 전 그 친구가 특정 단편을 꼽아 구체적인 수치 얘기를 하길래 살펴보니, 그때 김씨가 돌다리도 두들겨가자는 심정으로 묻던 산법이었다.

타임패트롤 중 유독 재미가 없었던(오래 전에 읽었고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지브롤터 해협 관련 단편이었다. 그것 때문에 단편을 다시 읽었다. 물론 여전히 재미가 없었다. 지각 변동에 의해 육선이 붕괴되면서 대서양의 바닷물이 마침 메마른 지중해 저지대로 쏟아져 들어갈 때의 유량을 번역하는데, 그 계산이 맞는지 재판 간행 겸 확인한 것이다. 

막말로,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숫자 대충 끄적여놔도 문제 될 소지가 없었다. 그냥 막대한 양의 바닷물이 지금의 지중해로 쏟아져 내렸다. 이 정도만 해도 그만인 것이다. 어차피 주목할만한 글도 아니었다. 누가 원문 대조해서 따질 것도 아니고,  전문가라도 수억 년 전의 정말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지질학적 이벤트의 규모를 구체적인 수치로 가늠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바닷물의 비중을 생각않고 단위계가 등가하다고 알려줬는데 다행히 그건 안 적혀서 안도했다.

하지만 아까 A차장 예로 익히 알겠지만 '제대로' 일하면 병신 소리 듣는다. 실제로 번역자는 인터넷에서 '젤라즈니로 여태 입에 풀칠하면서 살았겠지만 젤라즈니 빼고는 번역도 제대로 못하는 등신'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 말을 여흥 삼아 김씨와 함께 낄낄거리고 이죽이긴 했지만 제 새끼같은 번역본을 씹는 그 양반에게 별 일 없으면 제대로 일하는 김씨가 내심 살해 욕구를 느끼진 않았을까? 또는, 김씨가 번역을 때려치우고 치킨집을 운영하거나 택시기사가 될 수 있을까? 사시미 쑤시는 각도나 연구하면서?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

얼마 전에 판타스틱이 폐간될 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하는 말: 한 줌 밖에 안되는 기사들 외에 볼꺼리가 없는 희안한 잡지라고 생각했다. 여기저기 블로그나 슬래시닷 읽는게 낫다. 아무리 골수(?) 장르(?)독자라지만 서점에서 기사 제목을 열람하고, 꼭지 첫 몇 문단 읽어보면 거의 매번 사고 싶은 생각이 증발했다. 서점에서 언제 들춰보더라도 일러스트부터 정이 뚝 떨어졌으니까. 그 빌어먹게 귀엽고 앙증 맞고 아스트랄해서 살해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일러스트 스타일은 죽어도 안 바꾸던데? 취향에 안 맞아...

첨엔 SF&F&무협 잡지인 줄 알았는데 편집기획자가 바뀐건지, 기사 뭘 봐도 비장한 장르정신(?)이 부족한건지, 전문성을 겸비한 토실토실 말빨 오른 쓸만한 원고의 만성적인 기근 때문인지, 기사를 보면 어쩐지 약해 보이는데다, 요즘 들어 죽은 고양이 경련하듯 파르르 떠는 현상에 특별한 애증이나 감상은 없다. 개념 탑재된, 장르에 미친 싸이코 오타쿠 기자단과 기고자들의 기버리시 같은 셀프 판타지와 격정의 오르가즘 속에서 메아리치는 울부짖음을 편집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뜯어 말리고 싹둑싹둑 가위질해야 정상인 것 같은 이 바닥 잡지가 메인스트림에 키치 취향을 MSG처럼 듬뿍 쳐바른 리더스 다이제스트나 코스모폴리탄 읽는 느낌이었달까? 폐간 직전 다음호 특집 예고:

지금, 가장 뜨거운  SF 드라마의 세계. 많이 나아지고 있긴 해도 아직 장르의 침투가 취약한 한국 드라마계와 달리 해외 드라마들에서는 장르물 아닌 것을 솎아내기가 더 쉽다. 우리에게는 낯선 SF 역시 영미권 TV 드라마계의 큰 주춧돌이자 인기 효자 종목. 새로운 시즌을 시작한 '히어로즈'를 비롯, '새라 코너 연대기' 등 SF 드라마의 최신 조류를 점검한다. 아울러 '닥터 후', '라이프 온 마스' 등 영국 SF 드라마의 독자적인 발자취 또한 살펴보고자 한다.

보시다시피 인트로만 봐도 흥미가 안 생긴다. 저런 글 자주 읽다 보면 발기 부전으로 평생 불구자로 살아갈 것 같다. 그래서 예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언제 발행될지도 모를 다음 호도 안 산다. 요샛말로 '포지셔닝'이 이상한 특집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SF뉴비가 기획한 것처럼 보인다. SF드라마의 역사적 지점을 상징하는 마일스톤이라고 찍어놓은 것도 없고 주목할만한 컬트도 없고, 장르의 내재적 특징을 대표하거나, 돋보이는 작품 선정과도 거리가 멀다. SF 드라마라고 제대로 본 것 없는 불행과 없는 집안의 가난함이 돋보일 따름이랄까. 흡사 장르문화를 수요일 외출복 악세사리처럼 달고 다니려는 사람에게나 먹힐 것 같은 특집이랄까 -- 어쩌면 그 것이 왠지 방향 못잡고 횡설수설하는 것 같아 보이는 이 잡지의 목적일 지도 모르겠다.

'본격 장르 잡지'란 것이 거의 폐간 직전까지 가서야 '악담'을 늘어놓는 이유는, 그래도 그런 프랑켄슈타인  출판물이나마 한 줌 밖에 안되는 업계 관계자들의 용돈 벌이 겸 대동단결로 쏠쏠했으니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잘 망했다고 씹는게 아니라, 이제 '거의' 완간 되었으니 그럴 때가 되어 재미 없었노라고 짤막한 감상평을 적어 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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