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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07 노래하던 뮤즈도 훨훨 날아가고 1
정령의 수호자 - 소위 말하는 누님물. 연출과 시나리오, 음악이 매우 괜찮았다. 사실 배경과 디테일만 봐도 26부작 애니 볼 맛이 난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작화 중에 사용한 여러 가젯들의 문화-인류학적 요소. 사소한 것까지 신경 많이 썼다. 티벳의 하늘과 일본의 정령 신앙과 애들 성장소설을 짬뽕했다. 요즘 판타지 애니가 이렇게까지 좋아진 줄은 몰랐다(조금 더 기다리면 괜찮은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 인상적이라서 뒤져봤다. 공각기동대 SAC의 카미야마 켄지 극본, 감독. 어째 주인공이 쿠사나기와 분위기가 비슷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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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무사. 창술의 대가. 레, 라닥, 티벳, 네팔 등 적어도 해발 4000m 이상의 고지가 배경인 듯한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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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훈을 위해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든 설악산으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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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도착한 곳은 태백산. 배경이 참 예쁘다. 해발 4000m가 넘어가면 화성스러워서 보기는 좋은데 살고 싶어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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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주목했던 것은 아보리진 분위기. 토착 문화에 대한 정교한 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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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상에 내놓은 식기는 덜어먹는 나무그릇과 대나무통밥, 그리고 옹기 속의 산마국, 가장 비싸 보이고 정성스러운 사기 접시에 담긴 고기와 야채 등. 이런 그림의 세심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게 뭔 대수냐고? 소수종족 마을에 가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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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분위기가 좋다. 흡사 태국이나 라오스 국경 부근의 소수민족의 생활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다. 수호자를 데리고 달아났다가 다시 마을로 돌아와 얻어맞을 찰나인 소녀를 롱테이크로 잡은 연출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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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을 담은 토기를 건네는 장면. 이거 정말 작화, 연출하는 작자들이 동남아, 티벳 여행했던 사람들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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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라. 정말 네팔/티벳 분위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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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참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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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그랜드 캐년 같은데?


일찌감치 가사가 나왔더라면 극 말아먹을 정도로 중요한 주제가(1:28) 역시 마음에 들었다. 단순하지만 안정적인 서사와 캐릭터, 연출, 시나리오, 작화, 음악 등 뭐 하나 빠짐없이 훌륭했다. 최근에 본 애니 중 가장 좋았다.

송씨가 얼마 전에 술집에서 오지의 길가메쉬에 관한 얘기를 했다. 읽은 기억이 없는데? 그래서 구하려고 했다. 아! 그러다가 기억났다. 길가메쉬가 괴상해 보였던 그 코메디? 그게 실버버그가 쓴 글이었나?
 
'당신도 해리포터를 쓸 수 있다' - 오손 스캇 카드, 스티븐 킹처럼  '베스트셀러형 작가'이고 재밌는 글을 쓰지만, 뭔가가 부족해 보이는 작가로 여겼다. 곧 내한한다는 드림 씨어터 앨범을 한 달 넘게 들으면서 특별히 기악곡의 구성이 재밌다거나 보컬이 괜찮다거나 연주 실력이 우수하다는 걸 느끼지 못했지만(드럼이 좀 이색적으로 튀는 편. 그래서 조사해봤더니 몹시 유명한 사람이었다. 아, 내가 막귀는 아니군 하고 흐뭇했다) '적당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카드의 글을 읽을 때 그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송씨가 그 다음 모임에서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의 한 귀절을 보여줬다. 1990년 osc가 쓴 글로, 91년 휴고상을 받았다. 원제는 how to write SF&F로, 그 제목 그대로 한국에서 번역 출간했더라면 판매부수 채우긴 힘들었을 것이다.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고 지은 제목 참 아스트랄하다.
몇몇 하드SF쪽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들이 SF를 발명했고, 모든 인류학이나 문학이나 모험 SF 작가는 모두 후발주자인 것 같다. ... 하드 SF는 다른 어느 과학소설들 보다도 더 충성스런 지지자들의 핵을 유지하고 있다.
아닌 것 같은데? 수렁에서 자기 부츠를 잡고 허우적거리는 와중에도 품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극단적으로 소수의 잘난체 하는 사람들이 보는 글이 하드SF라는 평이 지배적이지 않을까? (최소한 내가 수 년 동안 경험한 미국 팬덤의 하드SF를 위시한 장르의 정체성 논란은 한국과 놀라우리만치 똑같다)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에서 하드SF적 전통이라고 기술한 것
1. 독립적인 사색가가 위대한 착상에 도달. 하지만 관료들이 모든 것을 망처버린다. 독립적인 사색가는 그것을 모두 해결하고 관료들을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2. 무엇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독립적인 사색가가 나타나 그릇된 가설을 수없이 시험한 끝에 마침내 놀라운 대답을 발견한다.
3. 새로운 기계/장치/발견이 시험된다. 무엇인가가 잘못되고 모두 죽게 생겼다. 엄청난 노력 끝에, 모두가 죽거나 모두가 살아난다.
osc는 1980년 후반부터 융성한 '하드SF의 적자들'은 개무시하는 듯. 그는, 사변소설의 특징이 다른 세계를 통해 현실을 보는 새로운 시야를 준다고 한다. 공감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osc는 하드SF작가도 아니고, 하드SF에 별 취향이 없는 것 같고, 그걸 알면서도 2부 내내 하드SF를 희롱하길래 다소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70년대 구닥다리 삘이 나는 저 '전통'에 굳이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것(또는 osc가 스스로의 글빨에 흥에 겨워 살짝 무시했다고 할만한 것);
 
4. 하드SF는 트렁크와 브랜치로 이루어져있다. 세계관은 트렁크에, 그 세계관을 구체화하는 가젯과 주변 상황(그에 걸맞는 이야기들)은 무수한(무한한) 가지로 이루어진다. (이야기가 눈뜨고 못 볼 정도로 개판이라서) 독자가 참여하느냐 안하느냐는 전적으로 독자의 개인사정이다. 그럼으로써 인물/화자와 상관없이(심지어는 스토리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독자가 원하면 그 세계에 발 담그고 살만 하다. 소설이 끝나도(비극이든 희극이든), 인터랙티브하게. 월마트에서 세계관을 쇼핑하듯 참조하고 비교하며, 설계도에 첨삭도 하고 열렬한 독자들 끼리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면서.
 
osc는 애당초 하드SF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서사전통을 무시하고 이야기의 힘이 딸리는 하드SF를 점잖게 비웃는 동안 오직 설정 뿐이고 인간관계 묘사가 없어도 그만인 하드SF의 오타쿠 세계를 불쌍히 여긴 것일께다(인정!). 좋은 세계가 주어지면 독자는 작가의 글이 끝나도 그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세계에서 저들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나간다. 그래서 맛간 TV화면같은 치바현이나 메타버스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거나 케이즘 시티에서 돼지들과 소고기 안주로 맥주잔을 기울이고 에덴의 심바이언트와 육박전을 벌이기도 하는 것이다. 몇몇은 링월드에 짱박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그럴 땐 서사고 나발이고, 묘사-정보-트렁크가 생명이다. 독자는 듬성듬성한 간극을 기쁘게 인터폴레이션하고, 스토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무수한 곁가지에 붙은 작은 벛꽃 송이가 되어 봄바람에 화사하게 흩날린다. 사회,정치,종교 등의 제 문제에 관해 굳이 한바퀴 돌아야지 현세를 거리감을 두고 파악할 수 있으며 그것도 작가가 일정 부분 강요하는 사변적 시각(?)에 시달리는 불쌍한 사람들 참 많다. osc는 글 얘기를 한 거고 하드SF도 글이라느니 어쩌구 하는 너무 뻔한 얘기는 영양가 없고 재미가 없다.
 
하드SF팬은 교리에 벗어나는 것들을 배척하는 맹신도, 또는, 장르 편가르기로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따라서 보잘 것 없는 하드SF팬(이건 SF팬 중에서도 극단적인 소수파고 뭐라고 지껄이든 무시하면 그만이다)으로서, 굳이 한 마디 하자면, 한국에 번역된 SF 거진 400-500여권 중 하드SF는 열 권도 채 안 되는데 '이게 다 하드SF에 환장한 놈들 때문'이라고 툭하면 게시판에서 지랄들이야!!! 뭐 제대로 읽어보기나 하고 좀 지껄여주시지 않구선.

저 비슷한 얘기를 얼마 전에 어떤 동호회 게시판에 올린 적이 있었다. 오타쿠 사이비 종교 집단같은 하드SF팬들이(그런 작자들이 있긴 한건가?) 영롱하게 빛나는 수 많은 SF를 국내에서 볼 기회를 가로 막고(어떻게?) 저희끼리 악의어린 비아냥이나 주고 받으면서 티격태격 하는 바람에 SF팬덤이 엉망진창 시궁창으로 변했다느니 하는 것에 대한 나름 전투적인 댓구였다 -- 수년 전, 활달한 처녀들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던 리버럴한 소똥 분위기의 정크SF의 사이트 컨셉과 '철학'을 내가 만들었고 심지어는 음지 기생충같았던 미국 SF 팬덤의 쓰레기장같은 분위기를 완벽하게 사대주의적으로 재현하고 그것을 초월(?)해서 독랄한 루이스 샤이너와 옴니 아베리타스의 뺨을 칠 지경인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 써놓고 보니 괜찮은 실험이었지, 쓸만한 자랑은 아닌 것 같군. 글을 쓰고 나서 누구든 댓글을 달면 모처럼 친절하게 응대해서 난도질해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12시간쯤 후에 그 게시판에 올린 글에 대한 응답을 확인하러 들어갔다. 답글이 12개쯤 달려있었다. 그런데, 댓글들이...
* 혹시 예전 하이텔의 luke님 아니세요?
* 오랫만입니다.
* 어, luke님이었어요?
* 말빨은 여전하군.
허걱. 당황. 며칠 동안 SF가 이렇다느니, 저렇다느니 떠들던 사람들이 까대는 댓글이나 달라고 멍석 깔아줬더니 그런 것은 하나도 안 달고 안부인사를 묻고 있었다. 안부라니... 변방에서 정정하게 살아있는, 잊고 지냈던 오타쿠를 다시 본 듯한 말투잖아 -_- 동호회 db가 날아가서 다시 복구한 다음 재가입을 받았는데, 그덕에 내 아이디가 예전 대화명으로 복구된 것을 그제야 알았다. 십년전이나 지금이나 luke로 게시물 쓰면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글을 재빨리 지웠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 그 다음 장에는 글쓰기의 구체적인 스킬과 방법론 따위를 다룬다. 다루는 방식이 마치 유치원 갓 졸업한 아이한테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는지 가르치는 양태다.
물론 이야기가 정말로 의문에 대한 대답을 발견하려는 인물의 투쟁에 대한 것이라면 괜찮다. 그러나 그 투쟁을 하고 있는 쪽이 인물이 아니라 독자들이라면 끔찍한 일이다. 이런 경우 수수께끼는 하나가 아니다. 누가 이 사람을 죽였는가? 이 행성은 왜 이렇게 중력이 낮은가? 와 같은 의문이 아니라 독자가 느끼는 의문은 더욱 단순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왜 내가 이걸 읽고 있지?
'왜 내가 이걸 읽고 있지?' 공감. 요즘 소설을 보면 자주 그런 기분을 느낀다. 수천년 동안 같은 주제, 같은 소재에 조리법까지 공개가 되었음에도 먹을만한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듯. 아무나 글을 쓸 수는 있지만 글을 잘 쓰기는 정말 힘들다.

그건 그렇고, 조그만 자취방 하나 잡아 적당히 먹고 살면서 수도승처럼 글을 쓰자고 마음 먹고 서울 올라온 것이 십여년 전 일이다. 글쓰기는 거진 20년 가까이 노력하다가 말았다. osc는 3,4장에서 왠지 가슴 한 구석이 절절해지는 얘기를 많이 늘어놓았다. 뮤즈는 아직 떠나지 않았지만, 글쓰기를 관두길 잘 했다.  인생에는 자기 영혼과 심장을 뜯어내는 자학과 자기희생 말고도 해볼만한 것이 아주 많다.
 
신경 끊고, Alastair Reynolds의 완전 소중한 하드SF인 pushing ice나 심혈을 기울여 읽자. 이게 얼마만에 먹어보는 특식이냐... 그런데 내가 뭔 얘기를 하려고 한 거 였지?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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