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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의 탄생

잡기 2007. 12. 3. 17:34
"론, 어지러운 생각들은 고통으로써 정화시킬 수 있어" -- Life, 크루즈 형사가 정보를 얻기 위해 한 친구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며 한 말. 드라마로 별별 스릴러 물을 다 봤는데, 뇌사 상태의 형사, 외계인 형사, 아버지가 살인마인 형사, 경찰인 의붓 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교육받아 잡히지 않은 살인마, 지랄병에 걸린 형사, 죽은 사람과 얘기할 수 있는 형사, 자폐 형사, 그런데 크루즈 형사는 12년간 누명을 쓰고 복역하다가 무죄가 입증되어 백만장자가 되기에 충분한 합의금과 경찰 뱃지를 받은 형사다. 감방에서 12년 동안 두들겨 맞으면서 선도를 열심히 닦은, 복수심에 불타는 몽테 크리스토 백작 같다. 몽테 크리스토 백작보다는 베트맨이 되는게 백 번 나아 보이는데(복수심을 해소하기 위해 바퀴벌레같은 사회악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것이 좋다고 보는 입장에서), 하는 짓이 영 바보같다. 아직 뭔가가 진행되지 않아(8화까지) 좀 더 지켜봐야겠다.
 
"story of life: boy meet girl, boy got to be stupid, then boy and girl stupidly ever after" -- House, 존재감이 희미한 윌슨이란 종양전문의의 새겨들을만한 말씀. 사지 멀쩡한 슈퍼맨, 스파이더맨, 베트맨 등등도 결혼하면 모두 바보가 된다. 그중 많은 수는 목화 짐을 지고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슈퍼) 당나귀나 (슈퍼) 노새이기도 하다.
Dexter Season 2
반면, 덱스터는 요즘 인상을 구기고 다니며 쓸만한 말을 한 마디도 늘어놓지 못했다. 총각임에도.
 
블로그 타이틀을 바꿨다. '알라여,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짐을 주소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오래 전에 알게 된 꾸란의 기도중 일부. 꾸란의 기도문들은 아름답다. '알라께서는 누구에게나 능력 이상의 부담을 지우지 않으셨다' 라는 말은 하여튼 그래서 이슬람 문화권에서 유명하다. 누구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지옥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신의 뜻이고 신의 자비인데 그 때문에 화가 치밀면 '인샬라' 라고 말하면 된다. 인샬라는 석유로 재벌이 된 쿠웨이트와 사우디 사람들이 애들을 미국 학교에 보냈더니 마약질을 해서 속상하거나 기차를 놓쳤을 때 하는 말이다.

신의 뜻 중에 이스라엘이 지도 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근거없는 주장도 있다.
 
때때로 자기는 지옥에 살지 않거나, 이렇게 행복한 지옥이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실한 사람들이라면 잘 알다시피 댁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댁의 의지와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다. 신의 뜻이고 신의 농간이다. 신실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겸손하게 살다보면 자신이 무의미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무의미한 존재이면서도 무의미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데(그리고 그런 가없는 노력이 생각만큼 쓸모가 없음을 깨닫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다. 모든 노력이 허위로 돌아가고 존재감이 무의미해지는 그곳은 지옥이다. 하여튼 그래서 돌아가시기 직전 노인들의 원망 성취 여부, 또는 삶의 질, 또는 삶의 그간 만족도는 종종 퍼뜨린 자손의 숫자가 되는 것 같다.

소박하지 않은가...
그럼 아이없이 늙어가는 사람들은 생지옥에...?
이럴 때 바로 다목적 경구를 읆는거다.
알라께서는 누구에게나 능력 이상의 짐을 지우지 않으셨다.

하나님도 마찬가지고.

아무튼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사이엔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존재한다. 그 반대는 아닌데, 무신론자가 왜 유신론자를 경멸하거나 증오 해야 하는지는 납득하기 어렵다(맨날 유신론자를 놀려대는 나로서도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신없이 살 수 없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여기면 되지 않을까? 아니다, 장애인, 소수자, 외계인 차별은 본래 생득적인 그루피인 인간(어떤 깃발 아래 뭉쳐 깃발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멸시하고 살인을 깃발의 가치를 빛내는 스포츠처럼 즐기는 종족)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일 지도 모른다.

세상을 냉소함으로써 얼마나 쿨한 놈인지 잘난체 하려는 이유가 아니라면 시도 때도 없이 인간을 경멸하는 질 나쁜 버릇을 버려야 한다? 버릇이 오래고 절망도 그만큼의 연륜을 쌓아왔던 것 같다. 지금은 절망하지 않았다. 골이 텅 비어 아무 생각 없다. 다만 자기통제력이 대단히 강한 종류의 멍청이라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평생 안 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자알 알고 있다. 뜻깊은 멍청함은 그대로 놔두고, 버릇이 된 말투는 차츰 고쳐가야 할 것이다.
차마고도: 순례의 길
차마고도 2편 순례의 길. 하다를 들고 생불의 축복을 받고자 기다리는 사람들. 그렇다, 티벳에는 살아있는 부처들이 차 타고 이 고을 저 고을 돌아다닌다. 티벳에 별로 갈 일이 없다고 여겨 안 가고 버텼는데 스님이 얼마 전 티벳 가서 찍어 온 불상과 탱화를 보고 뻑 갔다.
차마고도: 생명의 차
차마고도 3편 생명의 차. 중국에 있는 천년 묵은 차나무 신. 매년 한해 차농사가 잘 되길 기원하며 제물로 닭을 잡아 바친다. 사람도 돈도 믿을 수 없고 줄곳 떠나가지만 차나무는 대대로 남는다는 그네들 속담이 있는 것 같다. 한국에도 그 비슷한 속담이 있다; 부동산 불패.
 
차마고도: 생명의 차
차마고도 3편 생명의 차. 티벳에서는 주로 중국에서 수입한 싸구려 차로 버터티를 끓여 마신다. 라마가 마시다가 일반에 널리 퍼지게 된 말린 찻잎 때문에 티벳 경제가 파탄났다. 티벳에는 차가 자라지 않고 비타민을 섭취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티벳이 말을 팔아 차를 사온 그 길이 차마고도다.
 
쥬디스 리치 해리스, '개성의 탄생' -- 책의 전반부에서는 자신의 양육가설에 반대가 심한 학자 한두 명을 골라내 집중적으로 보살피며 사지를 찢어 놓은 다음 도끼로 머리통을 부수고, 잊을만할 때쯤 다시 그 시체를 꺼내 내장을 들짐승 먹이로 던져준다.

정리가 다 된 것 같다고 여길 때쯤 다시 묻어놓은 시체를 파내어 그 썩은 몸을 동네방네 끌고 다니다가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누벽에 걸어 전시했다. 자신의 가설에 반대하는, 자료도 논증도 부실한 학자의 반박을 듣고 그들을 삼세번 살해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남편과 사이좋게 지내며 손녀딸에게는 한없이 인자한 학자 같다. 심지어 읽으면 DHA가 샘솟는다는 천재 스티븐 핑커와 친한 사이인 것 같다.  처음으로 읽은 해리스의 저서 임에도 흡사 오래 전에 알던 사람처럼 친근감이 들었다.
 
툭하면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고 본문에서 느긋하게 말하는(노인네가 자기 가설에나 충실할 것이지) 해리스의 책을 읽은 것은 그래서 커다란 기쁨이다. 해리스의 견해에 상당 부분 공감(?)하고 많은 것들을 배웠다. 오래 전부터 나는 우연찮게도 아이들이 어린 시절 겪은 정서적 장애와 혼란에도 불구하고 별 탈 없이 잘 자라 정상적인 성인이 된다고 우겼다.  또, 유아기의 애착 유형에 관한 글을 읽고 콧방귀를 심하게 뀐 다음 그것을 비난한 적이 있다.

해리스도 그랬다. 확증을 얻고 싶었던 것은 부모의 존재가 아니라 부모의 양육 모델이나 롤플레잉이 아이의 성장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쓸데없이 돈을 안 써도 아이는 이상없이 자랄 수 있다는 점이다(지금까지 아이에게 장난감이라고 사준 것은 지하철에서 산 천원짜리 고무덩이가 전부다).
 
하지만 해리스가 제시한 여러 증거와 정황을 종합해 보건대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라려면 peer group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어야 하며,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 나와 시집 잘 가기 위한 (뚜렷하고 합리적인) 목적도 아니면서, 단지 또래와 함께 있어야 발육이 되기 때문에 애들이 많이 드나드는 '학원' 같은 곳에 보내야 한다는 돈 드는 결론이 나온다.
 
사회가 날이 갈수록 야만스러워져 예전과 달리 돈 안 들이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 같다.

소울이 애비는 그 또래 집단이라던가, 완전히 자라기 이전의 소셜 클럽이란 것들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기에 사회화 대신 어둠의 길인 비사회화로 나아갔다. 게다가 제 애비처럼 소울이가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 대부분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성의를 가지고 교미와 번식(말하자면 사랑)에 임한다. 소울이도 교미와 번식에 충실하며 별달리 지랄맞은 개성이 느닷없이 발현하지 않길 빌어본다. 아내와 내 유전자만을 생각하면 아이의 장래가 몹시 암울해 보인다.
 
'육아'에 관한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훌륭하고 영롱한 조언을 얻었던 해리스의 책을 읽은 마무리: '개성의 탄생'에서 해리스는 침대에 누워있는 형사 흉내를 내며 가설군의 후보를 하나하나 제거해 나간 다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검증은 다른 사람 몫으로 남겼다. 아카데믹 고어물 수준이던 전반부와 달리 개성에 관한 그의 책 후반부, 가설에 관한 설명은 재미없다. 그뿐 아니라 쓸데없이 복잡해서 머리가 아프다. 그가 말하길, 앞으로 나올 가설들은 단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해리스 본인 생각에는 책 쓰면서 문제와 경로를 웰 디파인 했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김새는 시시한 결론이었다.  

최근 몇 년간 읽은 육아 관련 서적들에서 얻을만한 것들이 별로 없었다(과학자가 저술한 극소수를 제외한 상당수가 근거 없이 나불대는, 시간 낭비나 하게 만드는 등 언급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들이었다). 해리스 역시 대다수 유아/청소년 대상 실험의 데이터 처리 방식이나 대조군 설정에 상당한 문제가 있음을 그의 책에서 빈번하게 지적한다.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쪽 실험이나 데이터 중 제대로 된 것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을 해리스가 어느 정도 확증해 줬다. 그의 견해가 옳고 지지할만한 근거가 충분하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방법론적 접근 방식이 옳기 때문이다. 합리적 접근 방식이 차근차근 옳다면 인간성도 무척 좋은 것은 당연하다.

책: 번역 품질이 양호하다. 룰도 잘 지켰으며 심지어 기대하지도 않았던 부록으로 한/영 인명 대조표까지 들어 있다. David Rowe를 본문에서는 로위라고 표기하고 인명대조표에는 로 라고 표기했다. 나는 데이빗 로우로 알고 있다. 시시콜콜한 트집을 잡으려는 것은 아니고 인명대조표의 효험이 이렇게 좋더라는 것 뿐. 옮긴이 주석의 위치가 책 읽을 때 시선을 교란해 좀 기분나빴다. 동녁 사이언스,  곽미경의 번역. 곽미경이 폴 블룸의 '데카르트의 아기'도 번역했다. 나이스. 그런데 데카르트의 아기가 '개성의 탄생' 어딘가에서 언급되었던 것 같은데 인명 대조표와 찾아보기에서 찾지 못했다. 유명한 저자라서 당연히 블룸이 있을꺼라고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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