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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18 my lady's fair

my lady's fair

잡기 2007. 1. 18. 00:37

얘가 여자애일까? 늘 의심이 들지만 기저귀 갈아줄 때면 여자애가 맞다. 책상 앞에 앉아 아이를 앞에 앉혀두고 키보드를 두드릴 때, 아이는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기호와 상징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몇몇 닭대가리들의 주장에 따르면 성은 사회적으로 결정되기도 하는가 보다(세기 전 보봐르가 주장한 걸 여지껏 울궈먹는 걸 보면 이뭐병이 생각난다. 이뭐병=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여자애를 원한다면 머리에 꽃무늬 리본을 달아주고 '너는 여자야' 라고 우기거나, 머리에 꽃무늬 리본을 달고 '나는 여자야' 라고 주장하면 된다. 그 신념과 믿음의 강도가 여자, 남자를 결정하는 듯 싶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 같은(죽도 밥도 아닌 것 같은) 유전적/생물학적 존재들이 특별한 예외가 아닌 다양성의 여러 모습중 하나라면... 로봇처럼 생식이 불가능한 존재이므로 나중에 권리 찾기 운동은 휴머노이드,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이주 외계인, 기타 등등과 함께 하면 알맞을 것 같다.

연합세력이 다수가 되거나 용인되기 전에 그들은 소위 소수자가 응분 당하는 핍박과 설움, 그리고 럭셔리한 고독을 함께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난 어린 시절, 병신도, 등신도, 트랜스젠더도 아닌 지극한 정상인이란 이유로 남과 같아지거나 최소한 같아 보여야 한다는 핍박과 구속을 당했다. 강도가 상당히 쎘다. 그런 처지라서 그들을 동정하거나 경멸하지 않았다. 사실 '나의 투쟁'에 바빠서 그들 신경쓸 시간이 없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여자가 되고 싶어 씨름을 하던 녀석은 제 친구에게 상기한 이뭐병 이데올로기나 '다양성으로 대충 감싸면 만사 오케이 되는 기가 막힌 정치적 공정함 테크닉' 따위에 관심이 없었고 제 비루한 현실에 눈물을 흘리며 'i don't have any luxury on that. i just want to live'라고 말한다. 이순신 장군은 살기를 바라면 죽음을 각오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죽기를 각오하고, 정말로 죽기를 각오하고 팔딱팔딱 생생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시다. 옳지 않은가?


엄마가 아이에게 여자애같은 머리띠를 해주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이 옷, 저 옷 입혀보는 코스프레를 하며 즐거워 하자는 생각 같은 것도 없다. 애가 사이보그가 되거나, 또는 이주 외계인으로 여생을 마감하게 되더라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 것도 없을 것 같다. 이뭐병 생각나게 이상한 주장과 구호를 스스로의 정체성에 부여한다면...

그땐 장엄하게 매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엊그제 읽은 이성의 황홀한 향연(splendid feast of reason)이란 책에서 한동안 얍삽한 생쥐처럼 대충 사회 적응해 살려고 하는 나 같은 xx주의자에게 늘어놓는 훈계를 잔뜩 들었다. 아니 부탁이었다. 이 괴상하기 그지 없는 세계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경멸하거나 냉소적이 되지 말아달라는...

늘 마음 한구석이 어두웠다.
인류에게 희망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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