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전후해서 필드 데모가 시작되어 송년회고 뭐고 챙길 여유가 없었다. 앞으로 3개월 동안 이럴텐데... 연말연초인데 겨우살이 아래 지옥 문 앞에서 일과 키스한 기분.
24일 밤 공짜표로 아이 데리고 뮤지컬 애니 관람. 25일에는 공원, 26일에는 경기도 박물관에 놀러갔다.
2011-01-01. 광교산 백운봉을 지나다가 뒤돌아서서... 신년산행 인파를 피하려고 사람들이 적을 것 같은 길을 찾았다. 효행공원에서 출발, 백운봉을 거쳐, 하오고개를 넘어 청계산에 갔다가 내려온다는...
스테인리스 팬은 길들이기가 어렵고... 해서 스테이크 구울 땐 이 팬을 사용했다. 그릴에서 구운 자국도 그럴듯하게 생긴다. 요새 유행하는 다이아몬드 코팅 팬.
소금과 통후추를 갈아 뿌리고 월계수 잎을 얹어 한 시간쯤 재웠다. 동네 정육점에서 구입한 손바닥 두 개 넓이의 한우 1등급 등심인데 고기가 별로 였다. 차라리 그보다 싼 호주산을 먹을 껄 그랬다.
대형 마트에 가면 싼 와인을 가끔 샀다. 와인 붐 덕택에 매대에 놓인 품종이 다양해 졌고, 와인 붐이 속절없이 꺼지면서 떨이로 판매되는 제품이 늘어 좋았다. 딱히 와인 매니아는 아닌데다 선호하는 제품도 없다. 맥주 마시자니 배 부르고, 혼자 소주 마시자니 한 병 따면 그걸 다 마시는게 부담스럽고, 와인이라면 저녁에 퇴근해 홀짝홀짝 한두 잔 마실 수 있어 별 부담이 안 되어 좋았다. 그나저나 와인과 궁합이 맞는 한국 음식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와인과 삼겹살이 궁합이 좋다지만 소주와 삼겹살에 비할 수 있을까? 와인에는 그저 치즈와 스테이크, 몇 종류의 샐러드, 느끼한 파스타 류가 맞는 것 같다.
1월 3일부터 1월 5일까지 엄청난 속도로 프로그래밍을 했다. 1월 6일 테스트 러닝 성공. 저녁 무렵에 사장님과 통화하면서 일이 잘 되간다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사장님이 퇴근 중 뇌일혈로 쓰러지셨다. 직원들이 도로에 정차된 차에서 사장님을 발견하고 병원으로 모셨다.
1월 7일 온사이트 일 좀 하다가 병원 방문. 중환자실 내방 시간을 넘겨 얼굴을 못 뵈었지만 별 걱정 안 했다. 1월 8일 아침 사장님의 혈압이 급격히 떨어져 임종을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다. 눈이 내렸다.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에 도착했다. 다행히 혈압이 다시 올라갔단다. 의식을 찾기만 하시면 된다.
사무실에서 일없이 멍하니 기다리고 있을 때 사모님으로부터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직원들과 함께 사장실을 뒤져 연락처를 챙겨 단체 문자를 보내고 당장 영정으로 쓸 사진을 뒤져서 찾았다. 담배를 연신 피웠다.
정신없이 삼일장을 치렀다. 대부분 알만한 거래처 사람들인 조문객들을 맞아 죽음을 매 번 설명했다. 월요일 아침 발인 전에 인사 드렸다. 울컥했다. 운구해서 화장장에 도착. 두 시간 동안 화장하고 납골당에 모시고 나서야 슬픔과 함께 피로가 밀려왔다. 지난 일주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사무실에서 간단히 대책회의를 하고 주주와 만날 회사측 대표자를 선임했다. 장례 기간 동안 연신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할 말을 잃고, 집에 돌아와 누웠다.
일주일 동안 감기몸살로 고생했다. 그래도 일은 계속 했고, 밥을 꾸역꾸역 먹으며, 병이 낫길, 슬픔이 가시길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2011-01-16. 여전히 몸 상태가 안 좋았지만, 오늘이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는 뉴스를 보고 집을 나왔다. 무리할 생각은 없었다. 마실 가는 기분으로 명학역에서 내려 수리산에 올라갔다. 날이 추운 탓인지 등산객이 거의 없어 좋았다. 관모봉-태을봉-병풍바위-칼바위-슬기봉 아래. 머플러로 입을 가렸는데 입김이 금새 얼어붙었다. 캡을 잠깐 벗은 동안에는 머리카락이 얼었다. 등산 기록 두 개:
광교산: 21.08km, 3h02m, 6.9kmh
수리산: 13.65km, 1h37m, 8.4kmh
아이젠을 착용한 상태인데도 어떻게 평균 속도가 저렇게 나올 수 있을까? 조금 있으면 지나가는 토끼를 앞서갈 기세다. 작년에는 등산이나 자전거 주행을 별로 하지 않아서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아니면 신년 들어 반쯤 미친 상태던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영화가 재미있었다. 보기 나름이겠지만 영화가 상당히 정치적으로 이해되었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동선이 좀 오락가락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소 대신에 돼지나 닭, 말을 데리고 돌아다녀도 대세에 지장이 없을 영화 같았다. 하지만 벚꽃 뜯어먹는 이 장면은 돼지로는 못해 먹겠지? 그러다가 감독이 뭔 생각이 있어서 소가 꽃 뜯어먹는 장면을 찍은게 아니라 소가 어쩌다 꽃을 뜯어먹는 장면을 찍은 것 같았다. 말하자면 돼지가 땅파서 뱀 잡아 먹는 광경이나 멧돼지와 고구마를 두고 다투는 장면을 의도한 연출로 찍을 것 같지 않았다.
부당거래. 검새와 짭새가 나와 누가 더 썩었나 자웅을 겨루는 영화?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 그러게 말이다. 호의를 계속 퍼 줘서 그게 당연한 권리인 줄 알게 되는 '복지사회'를 만들어야지. 왕개미. 카메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