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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stander #2

잡기 2008. 6. 8. 03:21

6월 1일 오후. gps에 경로를 입력하고 옷을 챙겨 입은 후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과연 청와대를 뚫을 수 있는지 궁금해서 사전 답사 하려고. 평속 19kmh.

동십자각
6월 1일 새벽 그 유명한 물대포 직사 및 과격 진압이 벌어졌던 동십자각 앞. 결론부터 말하면 청와대 돌파는 불가능하다. 오후 5시 무렵인데 전경들이 버스로 진입로를 막아놓고 검문 중. 지역 주민이라니까 통과시켜 준다. 길 양측으로 수 많은 전경들이 대기 중, 그들과 함께 엄청나게 많은 닭장차로 가득했다. 현실적으로 이들을 뚫고 청와대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접어야 한다.

경복궁역 부근 닭장차 블럭
비슷한 시간대에 경복궁역 앞에서는 구속자 석방을 주장하는 시위대와 전경이 대치 중. 자전거를 세우고 구경 중인데 어디서 많이 본 재수없는 복장이 후다닥 내 뒤에서부터 뛰어간다. 체포조. 자전거 세우고 중간에 끼려는 순간 시민들 자진 해산. 왠지 김이 새서 비좁은 골목길로 자전거를 몰고 들어갔다. 골목 곳곳마다 전경들이 길을 막아 놓았다. 말 그대로 모든 골목마다.

지역 주민인 체 하며 전경들 틈을 뚫고 지나갔다. 자하문 터널을 지나 상명대 앞까지 가는 동안 청와대 방면 소로는 모두 닭장차로 막히고 거리는 텅 비었다. 간혹 사복 경찰들이 무전기를 들고 길 사이를 오락가락 한다.

하여튼 6월 첫째주 내내 촛불집회 대책회의인지 집행부인지 하는 것들이 쪼다 같다는 생각만 계속 들었다. 동시다발적, 산개 도로 점거 시위가 답이다. 시위 장소는 조중동, 여의도 국회의사당 한나라당 당사, 이건 뭐 닭대가리 히피 모임도 아니고 띵가띵가 광화문에서 노래나 부른다고 들리냐? 이명박이 즐겨보는 조중동에서 위기감 팍팍 느껴지는 압박감을 전해줘야지. 평화적으로.

6월 5일 저녁. 사무실 직원들과 맥주 한 잔 하고 퇴근하는 길에 광화문에 갔다. 나는 방관자다. 소고기 협상에 별 관심 없다. 수 개월 전 대선에서 이명박 당선이 확실시 되자 얼이 빠져서 거리를 무작정 헤메던 기억이 난다. 시민의 뜻이 정 그렇다면 받아 들여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시민은 번쩍이는 황금(또는 부동산)에 눈이 멀어 자기가 또라이를 뽑았다는 것을 지금에야 깨달았지 싶다.

6월 5일 저녁. 나만 한 잔 해서 삘릴리한 것은 아니고, 광화문은 촛불 켜고 맥주 한 잔 하는 수많은 시민들로 이미 돗대기 시장이 되었다. 여기저기 MT라도 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둘러 앉아 쥐잡기 놀이를 한다. 아이들이 낭만 고양이 노래를 부른다. 이순신 동상 밑에 모인 사람들은 닭장차 타이어의 바람을 빼고 있다. 태반은 음주가무를 즐기고 적은 수가 전경들과 놀고 있고 나머지는 노래 자랑? 님을 위한 행진곡을 아주 지겹게 듣는다.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모였지만, 그 동안 제대로 된 축제(시위)를 함께 한 적이 없어 같이 부를만한 노래가 거의 없다. 그건 그렇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이제서야 간신히 쥐구멍에서 기어나온 대학생 애들 하는 짓거리가 왜 이리 재수 없어 보일까.

차량 위 방패 뒤에 숨어 꼼짝 하지 않는 전경들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방패 뒤에서 팔이 살짝 뻗어나와 닭장차를 흔드는 사람들 사진을 찍고 재빨리 사라진다.

장기 자랑(?) 끝나고 가두 시위 시작. 서대문 경찰서 앞에서 어청수 물러가라고 소리 질렀다. 휘날리는 학교 깃발들, 전에 시위할 때 봤으면 좋겠다 싶었던 수많은 깃발이 이제서야 휘날린다. 거의 대부분이  대학생들로 보인다. 학력 수준이나 이성적 사고 프로세스는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좋아졌지만 순수함을 잃어 왠지 변명을 늘어놓는 기회주의자 같아 보이는 대학생에게  정이 안 간다. 고삐리들이 촛불 들고 밤을 지샐 때 학교 축제에서 너도나도 원더 걸스 볼려고 몰려들다가 자빠지기나 하던, 꿈도 기개도 희망도 직업도 없는 88세대 탕아들이 이제야 시위할 마음을 먹어서 일까?

예비군이 중앙 분리대 부근에서 벨트를 형성. 쓸데없는 짓. 시민들처럼 신선하지도 않고, 한 삼십분 창의력 없고 넉살 없는 구호 떠들다가 돌아갈 것 뻔한 메가리없는 애들 구호를 들으니 시대 상황이 서글퍼져서 뒤돌아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예비군이나 나나, 그저 하드웨어로 때우는 몸빵질을 시대적 사명감 삼아 활활 태워야 하는데 이 놈에 평화시위에서는 주먹쥘 일이 없어 보인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 아프리카 TV로 이번주 내내 그랬듯이 생방송을 지켜보았다. 심심해진 시민들이 닭장차 상대로 줄다리기질 하고 전경들과 몸싸움하며 놀았다. 별다른 폭력은 없었다.

6월 7일. 아침에 일어나 애 먹일 닭곰탕을 끓였다. 닭곰탕은 자취생활 할 때 가끔 끓여 먹었다. 닭 한 마리 잘 씻어서 꼬리, 날개끝 자르고 큰 냄비에 넣고 마늘과 생강 넣고 한 20분 끓이다가 익은 닭을 건져내 뼈를 발라내고 살점은 결 방향으로 잘게 찢어 후추와 소금, 참기름으로 살짝 간해 둔다.

발라내고 남은 뼈는 다시 냄비에 넣고 국물이 뽀얗게 될 때까지 우린다. 마누라는 닭기름을 싫어하므로 채에 받쳐 걸러내어 기름기 없는 육수를 얻는다. 육수를 먹을 분량 만큼 냄비에 덜고 깍둑썰기한 무를 넣고 한 소끔 끓여 국 그릇에 담고 간해 둔 고기를 얹고 송송 썬 파를 살살 뿌리고 깍두기를 곁들이면 된다.

준비하는데 한두 시간 걸린다. 남은 육수는 페트병에 보관했다가 이런저런 국거리로 사용. 닭고기 수프나 곰탕이나 조리법이 거의 비슷해서 비교적 간단하게 준비해두고 4-5끼를 울궈 먹을 수 있으니 자취생 보양식으로 훌륭하다. 

곰탕 먹고 땀낸 다음 북한산에 올랐다. 오르는 길에 사장님과 전화 통화 하느라 등산로 입구에서 무려 한 시간을 보냈다. 향로봉, 비봉만 돌고 내려올 생각이었으나, 북한산에 예전처럼 자주 갈 수 없을 것 같아 오랫만에 백운대까지 올랐다. 민주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하느라 등산객이 현저히 줄어 평소라면 등산객으로 우글거릴 백운대가 한산하다. 발가락 부근이 늘어난 트래킹 샌달에서 발이 움직이면서 암반에서 두어 차례 미끄러졌다. 난 괜찮은데, 사람들이 그 꼴을 보더니 탄식과 비명을 질렀다. 북한산을 자주 올랐더니 그새 깡이 늘어난 건지 죽죽 미끌어져도 별로 무섭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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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 향로봉 정상 부근. 샌달이 좍좍 잘 미끄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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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 백운대. gps를 보니 트래킹 2:52:00, 쉰 시간 1:00:00 정도, 합해서 4시간 정도 걸렸다. 먹은게 별로 없어 기운이 빠져서 그렇지 큰 봉우리 3개를 오르는 꾸준한 오르막길을  4.0kmh라는 썩 훌륭한 속도로 움직였다. 지루한 우이동 아스팔트 길부터 gps를 껐다.

배가 몹시 고파 내려오다가 산장에서 막걸리에 두부김치나 먹고 가려고 지갑을 열어보니 어제 아내가 지갑을 다 털어가서 한 푼도 없다. 우이동 버스 종점까지 가는 길이 왜 이다지도 긴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기운이 다 빠져 내려왔다.

지하철을 타고 종로 3가에서 내려 광장시장으로 향했다. 오래전 추억이 생각나 연초부터 광장시장에 들르고 싶었는데 소원을 이뤘다. 6천원으로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 했다. 포장마차나, 바나, 시장 좌판에서 혼자 술 마시곤 했다.

내 팔자가 고독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아내와 애가 생겨도 고독하다. 되려 더 고독해진 것 같다. 일부는 서울에 올라온 후 거리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없어진 것과 관련있지 싶다. 20대 중반에 내 삶이 언터처블이 되고 방관자가 된 것과 상관있지 싶다. 내 자랑꺼리는 관찰에 바탕을 둔 개개 인간성에 관한 적나라한 통찰인데,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표현 방식에 상관없이 대부분 욕설이라 아무도 그런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길에서 돈은 많이 주워 봤지만 길에서 사람 만나는 일은 없다. 일을 할 때 운이 좋았던 적도 없다. 죽어라 삽질해서 얻는 소득은 항상 쥐꼬리만 했고 항상 악운의 어두운 그림자를 몰고 다녔다. 사람들 사이에서 얻는 평가는 기껏해봤자 카리스마 철철 넘치는 냉정하고 정 안 가는 악바리 정도? 종합해 보건대, 내겐 운이 없다. 다시 말해 재수 없는 놈이다.

재수없는 놈이라... 술김에 결정적인 팩트 한 가지를 발견한 것 같아 흐뭇. 막걸리 한 병 비운 다음 일어섰다. 배를 채우고 술 한 잔 하니 기운이 난다.

별명은 땅박 정책은 엇박
언행은 경박 부패는 쌈박
서민은 핍박 의리는 깜박
범죄는 해박 인상은 박박
그래서 씨박


5월 31일 저녁 때 본 웃기고 구구절절히 옳은 싯귀를 아내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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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첫 촛불집회에 참석한 아이. 아내야 말로 유모차 시위대 원조다. 소고기에는 그다지 관심 없지만 독재 타도는 적당한 명분만 있으면 솔찬히 보람 있는 일이다.

광화문으로 향했다. 이순신 동상 앞 닭장차 근처에 주저 앉았다. 날이 선선하다. 조선일보 전광판이 어스름이 깔리는 사거리 한 편에서 번쩍인다. 조중동 처단은 시대적 사명이다.

누군가 '집시법 철폐'라는 개념 피켓을 들고 지나간다. 바람직한 시위는 국회를 조지는 쪽으로 선회해야 한다. 시민들이 슬슬 모이고, 이미 한 팀은 종로 쪽으로 가두 시위중. 저쪽 서울 광장 방면에서는 사람들이 놀고 있다.

총 나흘 동안 촛불 문화제에 참석. 이틀은 맨 정신에, 이틀은 술 먹고. 집회에 가봤자 딱히 할 일이 없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콩나물 사오라고 하셔서 수퍼 문 닫기 전에 시위 현장을 떠났다. 내 시위 참여 행태가 참 어줍잖고 시답잖은게, 방관자 행태를 벗지 못한다. 시민발언대에 나가 청와대 삽질 집어 치우고 국회로 쳐 들어 가자고 선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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