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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2.09.04 열대를 울면서 걷는 법
질의 일곱 천당 꼭대기에서 가브리엘은 마호멧에게 직관을 논한다. 읽어라. 읽어라. 네 몸을 읽어라. 그래서 가브리엘은 흔해빠진 여느 닭대가리들과는 달리 뭘 좀 아는 짱급 조류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화두. 제자의 기쁨. 아난다의 아난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듣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하기. 그중, 입에 난 상처를 치료한 후 바르게 말하기.

penny saved, penny earned. -- 절약정신!



예산 문제 때문에 길에서 휘청거렸지만 신화서점에서 요리책을 게걸스럽게 찾아 헤멨던 것은 맛을 향한 집념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두번째 어리석음을 이제와서 생각해보건대 카마, 또는 쾌락에 대한 우둔한 집중을 반드시 어리석음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들은 화기를 양념으로 사용했다.

한국인들이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코리안더와 타마린드와 후추와 고추가 버무려진 사천의 기름 속에서 지글지글 타오르며 깡총깡총 춤을 추는 재료들. 요리사의 개성만큼 각기 다른 노란 양념 불꽃과, 가가호호마다 50여종의 향신료를 사용해서 만드는 독특한 인도 커리는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인도 커리가 그래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음식인 것은 오미중 네가지 맛을 한꺼번에 낸다는데 있었다 -- 옛날에는 커리의 노란색을 내는 사프란 1g이 그 무게 나누기 2의 금값을 치뤄야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야채와 고기에 너울거리는 불꽃이 '인'을 짓는 동안, 혓바닥을 낼름거리는 불꽃에 도취된 채 마지막 식사를 가졌던 그날 저녁의 노천 식당을 특별히 기억했다. 외로움을 느꼈다. 이 많은 요리를 함께 나눌 모험심에 가득찬 파티 맴버가 없다는 것, 헌드레드 마일즈를 흥얼거리면서 값싼 여정에 값비싼 음식을 포식했다. 돈은 아깝지 않았다, 돈은 줄곳 아깝지 않았다. 영혼은 책과 말씀으로 살찌우고(웩!) 비유컨대, 무엇으로 채워도 부족한 영혼과 달리 생생하게 와닿는 육체의 허기는...

그래서 지폐로 배를 채웠다.

3개월이 지났다. 오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탄도리 치킨과 머시룸 수프를 먹었다. 그래서 398 루피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기쁘다. 행복하다. 지금은 맛을 향한 예지, 맛의 통찰에 도전하고 있다.

밤낮으로 하시시를 빠느라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것을 거부하는 지혜 마저 가지고 있었다. 아름답거나, 평소에는 바빠서 볼 시간이 없었던 희안한 풍경은 감각과 이성을 약물로 예민하고 세련되게 만들어 놓지 않아도 그 자체 만으로 시시각각 즐길만 했다.

'까마귀 울음 소리와 함께 상쾌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 햇살이 묵고 있는 방 앞을 환하게 비추었다. 방문을 활짝 열어 믿어지지 않는 강도로 마당을 비추는 질량 제로의 광자를 꼼꼼히 세어 보았다.' 아침에 깨었지만 딱히 할 일이 없었으니까. 갈 데도 없고...

오버차징으로 등골이 처참하게 파괴되어 케세라세라를 입에 달고 다녔다. 다리에서 만난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과의 대화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햇살이 따뜻하게 비추던 어느날 오전(날짜 감각이 없는 관계로...), 테이블에 마주 앉아 담배를 물었다. 간밤에 불어온 비바람에 그가 정성스레 재배하던 해바라기는 목이 꺾여 있었다. 해바라기의 목이 부러지자 그는 상심했다. 그는 전날 밤 나에게 상추를 주었다. 맛있던 상추가 생각나서, 다른 이에게 줄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문득 알았어요 라고 말했다.

난 너한테 상추와 고추를 줄 수 있어. 그래서 울컥 치밀었다. 어떻게 3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사람들에게 줄 상추 이파리 한 장 나에게 남아있는 것이 없을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줄 상추를 재배해 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다가 철학적인 의문이 떠올랐다. 만일 그 사람이 상추는 필요없다고 하면 어쩌지? 누군가가 말해 주었다. 무우를 주면 되잖아. 그렇다. 무우가 있었다. 이런 것은 책에 잘 안 나왔다.

테루의 이야기가 시작될 무렵, 그들이 주고 받은 대화는 용과 인간의 분리에 관한 전설이었다. 마법사라는 족속들에게 줄곳 다소의 경멸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그들이 현실에서 무언가를 대체하는 대체물임을 철 들고 나서야 알았기 때문이었다. 르귄은 글자가 주는 장엄함을 얄팍하게 우려먹었다. 모험과 역경도 중요하지만 평범한 삶의 위대함이라는 것도 있다는 둥. 글자는 본뜻과 신체가 같은 맥락을 유지하고 있을 때라야 빛이 나는 것 같다. 달리 말해, 돌대가리의 아무리 잘쓴 글은 시시껄렁 하다는 것이고, 모험심이 없는 세상은 늘 50% 부족할 수 밖에 없다는 점 등등.

명사는 신을 위한 것, 동사는 인간을 위한 것.

두고 두고 생각해 볼만한 말이다. 그 말이 맞아 떨어지는 특정한, 그러나 광범위하여 이 시대에는 구차스럽게 언급할 필요가 없어진 지배 조건이 있었다. 때가 되면 어떤 사람들과 못다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욕설과 배타적인 거부가 아닌 불 필요한 사족을 싹둑싹둑 잘라내는 진중한 반성을.

반성은 비용이 안 들어서 좋다. 반성은 또한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는 관계로 추천할만 하다. 반성은 종종 각을 얻은 이 조차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로 얽힌 세상은 복잡하니까.

accidents will happen -- 호사다마!



호치민에서 앞니가 나가고 길바닥에 엎어진 순간 데자부를 보았다. 이빨이 제 위치에서 빠져 팜 구라오 거리의 아스팔트 바닥을 통통 튀어가는 동안, 안경은 구겨지고 얼굴과 팔 다리에는 무수한 상처가 남았다. 입에 피를 머금고 속으로는 낄낄 웃었다. 액땜이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익숙했다. 예정된 사건. 게스트 하우스에 쳐박혀 붓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나흘을 꼼짝않고 지냈다. 실링 팬이 덜그렁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동안 창 밖으로는 우울한 스콜이 수 차례 지나갔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나흘 동안 세 번 들렸다. 우유와 오렌지 쥬스와 여덟권의 책을 먹었다. 그리고 이빨 하나와 도난당할 뻔한 작은 가방을 저울질 해 보았다. 이빨 하나쯤 없는 편이 편했다.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면에서는 기쁘기까지 했다. 빠진 이빨 사이에 담배를 끼우니까 꼭 들어맞았다. 게다가 입을 활짝 열고 웃을 때는 더 이상 악어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쪼다같아 보였다. 쪼다는 내가 지난날 찾아 헤메던 어떤 정신상태와 일치했다.



물론, 데자부는 한 번 뿐이 아니었다. 운명을 잡아당기는 곧은 실은 어느 시점에서 각을 접고 들어갔고 그래서 위험이 지나갔다. 두번 째 데자부는 거진 유체이탈의 신비를 믿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이 장소에 와 본 일이 있었다. 나는 이 고개를 넘었을 때 어떤 풍경이 펼쳐질 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풍경은 거기 놓여 있었다. 시간 상으로 이 장소에 온 것은 앞으로 수백 년 후의 일이 될 것이다 등등.

길에서 만난 아저씨는 이곳으로 인도하는 길 중간쯤 누군가가 목이 잘려 죽었다는 전설같은 얘기를 늘어놓았다. 전조는 그것이었다. 길에서 만난 어떤 사람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던 일. 이제는 데자부에 심한 전율을 느끼지 않았다. 50억장의 슬라이드를 겹쳐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놓은 것 같은, 불행한 세계였다.

4200m의 산중에서 우박을 피해 이리저리 달아나다가 다 쓰러져가는 산막에 들어갔을 때 노인은 버터차와 술을 주었다. 밤에 무슨 재밌는 짓을 했는지 꾀죄죄한 애가 셋이나 되었다. 야크티는 공포심을 잊게 해 주었다. 야크티는 남의 인생들 만큼 따뜻하고 느끼했다. 새끼 손가락 만한 우박을 머리통에 여러 차례 지속적으로 맞는 결과 가끔 골치를 썩이는 각종 형이상학이 사실은 쓰레기였음을 새삼 깨달았다. 이런 것을 산중의 깨달음이라고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주위 사람들은 우박을 머리에 안 맞아도 진즉부터 그런 줄 알고 있었다. 맞으면 더럽게 아프고 썰렁한 우박을 피해 산토끼처럼 품위없이 팔짝팔짝 뛰는 동안(소용없는 짓이다), 살기 위해 제대로 발버둥쳐 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동해안에서 폭풍우 때문에 차가 뒤집혀 덮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파도에 맞아 뒤로 날아가는 동안은 그나마 즐겁기라도 했다.

눈 녹은 물로 얼굴을 씻는 순간 골이 얼얼했다. 고개를 들어 잔인하게도 아름다운 풍경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그때는 반쯤 미쳐 있었다. 내가 코윈이라고 생각했다. 산속에는 나 밖에 없었고 길 잃은 산양이나 야크처럼 아무데나 소변을 보거나 눈부시게 반짝이는 별빛 아래에서 똥을 싸고 잎사귀로 닦았다. 눈부신 별빛 아래서 똥을 싸본 적이 있는가?

개척자, 탐험가의 삶에는 독특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영생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얻은 댓가는 간단했다. 처녀성이었다. 종종 나는 처녀성이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반대 급부로 재생산 내지는 우려먹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담백한 삶에는 많은 말이 또는 생각이 필요치 않았다.

18m의 바닷속, 산호 쪼가리들이 무릅을 찔렀다. 허파에 공기를 채우면 뜨고 공기를 내뱉으면 가라앉았다. 물고기처럼 중성부력을 유지하며 바닥을 기어다녔다.

상처는 3주가 지나도 낫지 않았다. 두통, 몸살, 개미들이 물어뜯은 상처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가 밤낮으로 부스럭거리는 도미토리를 떠나 한적한 시골로 대피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여행자들이 모인 저녁은 생각만큼 유쾌하지가 않았다. 얼굴 상태가 영 말이 아닌 미국인 여자가 자신이 댕기열에 시달렸으며 한달여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안 보여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 간다고 말했다. 앞에 앉아 있던 남자 역시 댕기열 환자였다. 댕기열 치료제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옆에는 말라리아를 앓아본 경험자들이 수두룩 했고 이름을 알 수 없어 그저 자신은 열대병이라고만 하던 불길한 환자도 있었다. 하찮은 산호독은 끼일 자리가 없었다. 여행지 각국의 병원은 한번씩은 다 들러봤다는 이력이 큰 자랑꺼리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주로 3개월 이상은 린넨 침대 커버를 더럽혀 본 노련한 환자들이었다. 뱃속이 거북한 관계로 시급히 그동안 걸렀던 회충약을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18m의 바닷속을 헤메는 것은 그렇다치고 수영을 못할 뿐더러 제대로 떠 있지도 못하는 사람을 파도가 치는 물 속에 10분을 방치해 두는 scuba 라이센스의 마지막 실습 과정은 평생토록 유지했던 우아함을 처참하게 망쳐놓기에 충분했다. 한 바가지의 물을
마시는 동안 진정한 마초라면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그 말을 적어도 열 번 이상, 볼쌍 사납게 내뱉었다.

HELP ME!

(이성이 남아도는 관계로, 그 와중에도 다들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로 말했다)

advise with your pillow -- 심사숙고!



촛불 아래에서 하시시를 돌려 피웠다. 흔들리는 촛불 옆에서 그는 힌두의 창세 신화를 설명하고 있었다. 새로운 버전이었다. 촌부조차도 자기만의 창세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바닷가의 축축한 바람에 빨래는 통 마르지 않았다. 베란다의 긴 의자에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었다. 떠나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어떤 것은 없었다. 인연은 길게 요동치고 갈 길은 멀기만 했다. 시간은 과연 우주의 생성과 함께 시작할만 했다.

인문의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뻔뻔하게 주장하지만 이음새가 없는 자연스러움을, 또는 전이를 주도할 하이브리드형 사이보그는 이 시대에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윤기가 이 시대를 일컬어 '무통분만의 시대'라고 했을 때, 동구 밖에서 자리 펴고 앉아있던 노인네 둘이 박정희 시절이 좋았지... 하는 얘기를 늘어놓는 것과 별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비슷한 얘기가 있었다. 마지막 남은 잔류 적군파는 발악하면서 이런 성명을 냈다.

우리는 내일의 조다!

그런 사람들은, 말하자면, 그 시대의, 빨지산 구닥다리 확성기였다. 이윤기를 곱씹자면, '애들이 고생을 안 해봐서 그래'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데 그걸 적당히 기름칠을 하면 '무통분만의 시대'가 된다. 이런 류의 인문주의는 적당히 파란만장하게 시대를 풍미했던(?) 나같은 인간쓰레기에겐 메스꺼운 기름덩이에 불과하다. 기름덩이, 이윤기 글의 느끼함은 백만톤의 돼지기름에 견줄만 했다. 그런 인문주의 시대라면 사양이다. 뒈져라~

왕도사 이야기는 이것으로 세 번은 들어본 것 같다. 몸소 언급하기까지 했다. 서구 제국주의의, 고고학적 유물에 관한 전 시대의 강탈이 온당한 것인가 하는 류의... 타오르는 불꽃이라 이름 붙은 도시에서(그리고 그 도시의 글자는 내 이름에도 들어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타오르다인지 불꽃인지 늘 헷갈리지만) 서구인에게 농락 당해 수천 권의,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문헌을 고스란히 빼앗기고 중국의 문인들을 비분강개하게 했던 웃기면서도 구슬픈 이야기가 지닌 이중성을 생각했다. 피터 홉커크가 쓴 실크로드의 서양 악마들은 저자보다는 역자가 더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그의 견해에 동감했다. 이렇게 읽을 책이 늘어간다.

어떤 코미디언이 쓴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글을 읽었다. 그 글중에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100미터가 넘는 마른 강의 절벽에서 번지 점프를 하는 어린 학생들에 관한 얘기가 있었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인들이란, 나라 이름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아서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는 뭐 그런 류의 얘기였다. 한국인 여행자들은 여행을 참 잘한다. 한국에서는 아침 열시에나 일어나 대충 수업받는 둥 마는 둥 하고 밤이면 끼리끼리 모여서 술이나 마셔대는 놈들이 외국 여행 할 때는 아침 일찍 일어나 빨빨거리며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한푼이라도 아껴보려고 인상 긁으며 가격협상을 하고 가장 싼 속소들을 찾아 다니고 안되는 언어로 어떻게든 현지인과 백인들과 얘기하려고 애 많이 쓴다는 것. 그리고 그 와중에도 마리화나를 입에 대지 않고 한국인임이 쪽팔릴만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 등등.

생각해보니까 나도 한국인의 좋은 면을 보여주려고 알게 모르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언제나 공명정대하려고 하고 현지인들 등을 심하게 등 쳐먹지 말아야겠다고 자제하는 것도 그렇고... 흠. 그 코미디언의 견해 중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이 민간 외교사절 노릇을 한다는 얘기에는 별로 공감할 수 없었다. 그들이 그러는 것은 비좁아 터진 사회에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다감해진 한국인들이 뒤에 올 자신과 관계된 멀지않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던가 하는 이유일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이 정이 많고 다감하다는 정도인데 그 말이 입에 발린 말이고, 어느 나라 사람들이나 대체로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아니었다. 한국인은 어쩌면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눈치가 기가 막히게 발달하고 정서적 공감을 형성하는데 타고난 재질을 갈고 닦은 민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비좁아터진, 사람들과 부대끼어 자기주장을 삭여야 하는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주장은, 임어당이 중국인을 자화자찬하던 정신병자같은 얘기와 그닥 다르지 않아 입맛이 쓰다.

oath and egg are soon broken -- 달걀깨기!



인도에 도착하여, 3주 동안 두 번은 오토릭샤를 공짜로 얻어탔다. 기록갱신이다.

지금은 유럽 갈 생각이 사라졌다. 가서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총 여행 경비의 1/3 가량을 쓰고 장기체류하면서 서구 예술을 음미해보겠다는 생각이 사라진 것은 유럽이 내게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쪽에 별 관심이 없다는 점을 남모르는 눈물과 땀을 흘린 열대 속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게 팬더가 되어 있었다. 천적이 없는 팬더는 자기 인생의 3/4을 먹는데 소비하고 남은 1/4중 3/4을 자고 쥐꼬리만큼 남은 그중 1/4을 먹을 것을 찾아 다니는데 사용한다고 말했다.

남은 소주를 다 먹어 치우고 간신히 남은 한 병을 건네 주었을 때, 또는 2개의 컵라면을 다 먹고, 도네이션 받은 디스를 몽땅 피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지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고픈 표정으로 왜? 라고 물었다. 왜냐면 내가 그것들을 혼자 먹지 않고 나누어 먹으리라 생각하면 내 자신이 불행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코스를 다 뜯어 고쳤다. 이미 여행의 목적(사랑과 모험)은 사라졌다. 여행도 사라졌다. 생각도 사라졌다. 인생의 특정기간 동안 줄곳 나를 괴롭혀왔던 두 가지 문제, 빨래줄에 널어놓은 린넨 침대시트처럼 안팍이 깨끗해졌으면 하던 바람이 뜻대로 해소되고 심플 마인드라는 포레스트 검프적 정신상태에 도달하여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언어와 지식으로부터 등을 후련하게 돌리게 되었을 때, 다시 말해 걱정 근심 없는 아난다 상태가 되자마자 근심걱정은 사소하고 시시한 문제로 귀착되고는 했다. 오늘은 뭘 먹지? 같은 것이었다.

그가 방콕을 떠나기 전, 몇번인가 졸라 그가 애지중지하던 가방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전율을 느꼈다. 도굴꾼-고고학자-인디애나 존스를 짬뽕한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가 정체불명의 장소에서, 알 수없는 방법으로, 목숨이 오락가락 하면서 습득한 400-800년전의 산스크리트 고문서를 보았다. 펼쳐보는 동안 소름이 오싹하게 끼쳐왔다. 히나야나의 전래을 보전하고 있는 불경이었다.

한 때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로 세기말 희극을 연출하던 성철이 있었다. 주장도 희극이었지만 공방도 희극이었다. 거개 당사자들의 변명은 몹시 애절해서(돈오돈수를 이해하는 과정의 난해함 내지는 지면 관계상 학문적 배경을 설명할 수 없음을 애석해하며...) 더더욱 오만가지 풍미가 느껴진다. 성철은 그래서 웃겼다.

웃기는 정도로 따지면 백남준 못지 않았다. 여전히 백남준의 비디오아트가 그의 주도면밀한 사기극이었을 꺼라고 믿는 편이다. 그는 비디오아트같은 개쓰레기를 보여주기 전에는 스스로 아무리 예술 팔아먹는 사기꾼이라고 말해도 천재 같았다. 비디오아트를 비싼값에 처분할 정도면 못해도 천재 사기꾼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다.

성철은 그저 그래도 백남준은 존경스러웠다. 왜냐면, 성철의 쇼맨쉽은 상당히 멍청해 보이던가, 아니면 추종자들이 만들어 놓은 성철이란 비극적인 환상 때문일런지도.

묵고있는 파크랜드 호텔의 레스토랑은 왠간한 식도락가를 흡족하게 만족시켜 줄만한 상당한 실력의 요리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레스토랑에 느끼는 자부심은 메뉴판에 이렇게 적혀 있다.

Parklane is Parklane.

여행 경험이 별로 없어 파크랜드 호텔 레스토랑의 존재를 모르는 성철이 만약 맛의 의미론을 이해하고 맛의 형이상학과 맛의 도를 아는 사람이었고, 그가 그 레스토랑을 방문해서, 간단한 필라프 마저도 문턱을 넘을 듯 말듯 아슬아슬한 절학의 곡예 솜씨와 비범함을 선보이는 그 요리를 냄새맡고 혓바닥에 얹어 보았더라면, 그가 했어야 할 말은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파크레인은 파크레인이다.

돈오돈수를 '정치적으로' 해석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성철은 성철이고 조계종은 조계종이다.

18m의 바닷속은 무언가 달랐다. 물고기를 쫓는 동안 등을 하늘로 향하는 평범하고 시시한 자세는 드라마틱하게, 그러나 천천히 변해갔다. 나는 어느새 옆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뒤집혔다. 파도를 따라 햇살이 커튼처럼 너울너울 흔들렸다. 강한 조류에 밀려갔다. 중력과 부력의 미묘한 균형상태, 중성부력이라고 하는 것은 머리속에서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느낌은 충격적이었다. 무중량 상태에서 본 빛의 커튼은, 이틀만에 30여 만원을 날린 것이 전혀 후회스럽지 않게 했다.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개는 생각한다. 소도 생각한다. 사람도 생각한다. 물고기는 생각하지 않는다. because they just know.

all arts grow out of necessity -- 불요불급!



사진 찍기는 날이 갈수록 잘 되었다. 수평이나 황금비가 잘 맞았고 프레임에 가두면 사진기가 알아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내 탓은 아니었다. 면 분할은 아직 서툴렀다.

그러다가 성공했다. 성공했지만 찍은 것보다 놓친 것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언제나 빛이 문제였다. 빛은 항상 부족했다. 2000장이 넘는 사진중 잘 쩍었다고 생각하는 사진은 열 장이 넘지 않았다. 그중 2/3 이상을 버렸고 나머지는 평범하고 진부했다.

사진기가 점점 보기 싫어졌다. 내 자신의 무능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이기였다. 찍은 사진들은 이제 간신히 엽서용 사진을 넘어서는 정도였고 엽서용 사진은 비웃음 꺼리 밖에 되지 않았다. 사진기에 대한 통제력이 내게는 없었다. 차라리 수동 카메라라도 하나 사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건축물에 대한 시선이 예민해질수록 지엄한 신성과 권위에 대한 이질감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앙코르 와트의 메루산을 오르는 수직 계단은 오로지 오체투지하듯 네 발로 기어 올라갈 수 밖에 없다.

귓가가 앵앵 거리도록 내게 말을 걸어오던 앙코르 와트의 부조 회랑은 압도적인 스케일로 여러 권의 책 전 페이지를 나열해 놓은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거의 넋을 잃었다, 소름이 돋았다, 턱이 쩍 벌어졌다. 읽는 속도는 어쩔 수 없이 불규칙했다.

반쯤 열에 들떠서 정과 망치로 만든 그림책을 수 차례 반복해서 읽었다. 완벽한 각도를 얻었던 어떤 특정 지점에서 빛과 바람을 보았다. 하지만 그 사진을 보았던 어떤 사람도 내가 보았던 빛과 바람을 느끼지 못했다. 저녁이 되면 수백 년 전의 폐허 속에서 씁쓸한 절망감을 맛보아야 했다. 사진에는 셀 수 있는 빛이 없었다. 그래서 사진기에 무의미한 욕설을 늘어놓았다.

함피의 유적지나, 앙코르와트나, 자금성을 보면서 가끔은 가슴에 통증을 느끼곤 했다. 인류사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위대한' 건축물에 관해, 세계의 고건축에 정통한 건축학 관련자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첫번째로, 그 당시 그들이 건물을 지을 때 정성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물어보고 싶다. 이런 개 같은 부실 공사가 어째서 온갖 종류의 제국주의자들의 알량한 예술론에 의한 찬사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두번째는, 건축과 권력에 관한 것이다. 수백, 수천년이 지났건만 위대한 건축물에서 흘러내리는 인민의 피를 늘상 보고 있었다. 그것들이 지속적으로 마음을 아프게 했다. 홋날의 감상자들과 건축 전공자들은 어떻게 해서 그것들을 무시할 수 있었는지. 세번째는 양식론에 관한 것이다. 양식론 말고 건축물을 묘사하는 좀 더 직설적이고 세련된 표현방식은 없는 것인지. 양식론은 확실히 건축물에 엿보이는 당시의 문화가 지닌 독자성을 사정없이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네번째는 과학적, 기술적으로 냉정한 분석을 듣고 싶다. 그런 것은 '관광 팜플렛'이나 '가이드북' 따위에 나오지 않았다. 그저 어느 책을 봐도 예술적 가치와 연대기를 장황하게 떠벌릴 뿐. 의문은 의문으로 남기고, 팔미라에 뜨는 초승달을 보고 싶다.

8월 26일 마하라자의 궁전을 보았다. 줄곳 론리 플래닛을 읽었지만(지금까지 대략 16권?) over the top 따위의 무리한 표현을 동원하지 않던 이전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찬사를 바친 건물인데 이모저모 뜯어봐도 그것을 개축했다는 어윈이라는 영국 건축가의 '작품'에는 그저 그렇다 정도의 평가 밖에 내릴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건축물의 전이 공간에 관해 열띤 언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내 기본적인 견해는 영국의, 특히 열대 식민지에서 흔하게 보곳 하던 빅토리안 양식의 건축물 만큼은 무슨 짓을 해서 짓든 형편없다 라고 생각하는 편. 함피의 900년 된 폐허 중 사제관으로 짐작되는 어떤 곳은 현지인이 외양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딱이었다.

care's no cure -- 감정자제!



우기가 밀어닥친 뿌리에서 지랄같은 옴나마 시바야 만트라 소리에 잠이 깨었다. 새벽 다섯 시였다. 인도에 도착한 후로는 팬티를 입지 않았다, 거의 발가벗고 다녔다. 대충 룽기로 몸을 가리고 해변을 향해 걸었다. 볼 때마다 다리를 절어 불쌍한 척 하는 강아지가 멀쩡한 네 다리로 가드라도 해 준답시고 시답잖게 뒤를 따라왔다.

해변에는 기백명의 사람들이 흐린 하늘과 바다를 뚜러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뿌리는 인도의 4대 성지중 하나였고 그래서 늘상 순례자를 볼 수 있는 곳이지만, 그 보다는 해산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팬더라면 가봐야할 순례지인 것이다.

졸린 눈을 부비고 비틀비틀 해변에 다다랐다. 원주민들이 통나무로 만든 배를 탄 채 1-2 미터의 파고를 뚫고 먼 바다를 향해 돛배를 띄우고 있었다. 파도에 부디쳐 배가 작살이 날 것 같은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그까짓 몇 마리 잡히지도 않는 고기를 잡기 위해 자기 생명을 담보로 강한 바람을 맞으며 나가는 동안 그들의 친지로 보이는 사람들이 입을 다문 채 배가 나가는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해변에는 똥을 싸러 나온 수십 명의 사람들이 엉덩이를 깐 채 마찬가지로 배를 쳐다보며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누군 죽고, 누군 목숨을 걸고, 누군 그걸 지켜보고, 누군 그 와중에 똥을 싸고,

자다 깬 외국인 여행자는 룽기를 펄럭이며 한 시간 동안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그 소름끼치는 장면을 똥 냄새를 맡으며 구경하고 있었다. 배가 무사히 다 나갔다.

해변에 면한 숙소에 돌아와 마이클 무어콕의 소설을 잡았다. 글자가 눈에 잡히지 않았다. 소설이 주는 임프레션보다 훨씬 강렬한, 장엄하고 희극적인 삶이었다. 웃겨서 가슴 아프고 눈물이 글썽이는.

순례자들이 긴 수염과 주홍색 장삼을 펄럭이는 뿌리에서 우연히 작은 사원을 방문했다. 전날은 먹거리에 미쳐 스토브를 사러 시장에 갔다가 죽은 시체를 나르는 모습을 보았다. 장작 틈에 앙상하게 뼈만 남은 시체가 놓여 있었다. 2m가 채 안되는 거리에서 시체 태우는 광경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불가촉천민들이 시체 잘 타라고 기름을 뿌렸다. 불 쏘시개로 불을 붙였지만 시체는 의외로 잘 타지 않았다.

시체 타는 모양을 구경하던 브라만이 천민을 하나 쫓아내고 불피우는 이에게 돌을 집어 던졌다. 천민은 비난조차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돌에 맞은 발이 몹시 아파 보인다. 한쪽에서는 태우는 비용을 흥정하며 핏대를 올리고 있다. 살 익는 냄새 때문에 주위에는 뭐 줏어 먹을 것 없나 하고 동네 개들이 떼로 몰려와 어슬렁거렸다.

한쪽 구석에는 아이들이 어제 다 태운 시체 틈에서 뼈조각이라도 건질만한 것 없나 찾고 있다. 불은 잘 타오르지 않았다. 보다못한 몇몇 사람들이 불길을 잡으려고 천민을 재촉하며 답답한 나머지 훈수를 두고 있었다. 하늘에는 수십 마리의 까마귀가 날았다. 열기 때문에 살갖이 차츰 벌어지며 익은 살을 드러낸다. 고개를 돌리자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가 망망하게 보였다. 서쪽 하늘로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갔다.

죽어서 태우기에는 안성맞춤인, 낭만적인 장소였다.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이런 장례라면 할 만 했다. 브라만이 뜬금없이 내 어깨에 손을 얹고 고맙다고 말했다. 뭐가 고맙다는 걸까.

살이 적당히 익어갈 무렵 자리를 빠져 나왔다.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렸다. 시체가 빗속에서도 잘 탔는지 걱정스러웠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닷가를 거진 한 시간 쯤 걸었다. 웃통을 벗었다. 천둥번개가 치고 강한 바람에 모래가 날려 정강이를 때려왔다. 하늘은 검고 해변은 포말이 남긴 하얀 안개에 휩싸였다.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인도에 도착한 지 3주째, 비자야와르의 두르가 사원에서 라이센스 사두에게 모종의 제식을 당하기 전까지 생각이랍시고 한 것은 대충 네 가지 정도 였다.

그러니까 카트만두에 안 가고 꼴까타로 가게 된 동기가 깔리 때문이었다는 것과, 우주론에 나타나는 뚱딴지같은 강한 인간중심주의와 그렉 이건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양자론과 의지의 개연성이 실은 한 뿌리여서 징그럽게 웃었다는 것, 히말라야 성자들의 인류에 대한 책임 문제와 달라이 라마를 왜 싫어했는지, 마지막으로 데자부와 평행우주 사이의 관계였다.

마지막 것은 섹스 구루였던 라즈니쉬와 더불어 영성 팔아 장사 잘 하고 있는 마하리시가 세운 아쉬람에 들어가려는 정열적이고 학구적인 어떤 수행자가, 내가 보기엔 사기꾼 내지는 인도 길바닥에 널려있는 개사두(Sadhu)같은 디팍 초프라를 인용하다가 데자부가 도대체 어떤 현상인가, 하시시 잘 빨다가 갑자기 나한테 질문을 해서 그랬다.

그 동안은 생각을 안 하니까 참 즐거웠다. 그동안은 여호와가 에덴에 사과나무 심은 이유에 관해 즐겁고 천박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과 하나 따먹은 걸로 대대로 죄를 뒤집어 씌운다는 점도 그렇지만 사제들이 악마의 개념을 제멋대로 만들어 낸 탓도 있어서 기독교는 정이 안 가는 편이었다. 기독교가 악마를 만들어내자 마니교를 쓸어버린 조로아스터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사실 기독교도와 얘기를 하다보면 그들이 신앙이 지닌 갖가지 언어적 도그마와 자신의 신심(이건 때때로 진실했다)을 뒤섞어 놓아 정직하지 못한 위선자라는 인상을 받고는 했다.

마하리시의 가르침을 받아보려는 수행자는 두번째 인도에 오면서 그의 오롯한 지성이었던 여호와를 버렸다. 개사두마저 짖어대는 인도식 맛살라 생철학(흔히 개똥철학이라고 한다) 앞에서는 여호와 말씀이 변비똥처럼 보이기 십상이었다. 개사두들은 속세에 가끔 깨달음을 전해주며 7천년 동안 그 품질을 유지했고 깨달음을 팔아 밥벌이를 했다. 어쨌거나 나는 관광 사두에게 꿈꿈 가루를 100루피 주고 받은 후 사틴처럼 깨끗하던 처녀성을 팔았다.

코코넛은 깨지지 않았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던 크리슈나 강변 언덕에서 삶이 쓸려가는 먼지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피곤하면 별 생각이 다 들게 마련이다.

every man has his humor -- 개성존중!



아이들로부터 이상한 것을 배웠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가르쳐준 인짓기는 서양에서는 흔히 악마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길거리에서 내게 관심을 보이는 인도인을 만나면 슬며시 검지, 중지를 구부리고 엄지와 약지를 곧게 펴는 사인을 지어보였다. 그러면 그들은 마치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가르쳐 준 녀석은 나를 바바라고 불렀다. 바바, 더 수퍼스타라고. 내가? 왜?

우연한 기회에 타밀 나두 주에서 동명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달짝지근한 거개 인도 영화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 아이가 태어난다. 히말라야에 살고 있는 전설적인 바바지로부터 축복을 받았던지, 아니면 바바지의 화신으로 태어난 아이였다. (바바지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다. 그냥 존재한다)

그는 시바의 화신인 크리슈나처럼 개망나니로 잘 살다가 어느날 자기 자신을 자각하게 되고 민중의 영웅이 될 뻔 했다. 사랑 얘기는 일찌감치 접었다. 볼리우드 영화와 다른 점이었다.

화면 상에서 여자가 사라진 후반부는 정치적 종교적 폭력적이 되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바바는 수행을 더 하려고 그를 숭배하는 13명의 사두와 도시를 떠나 히말라야로 향할 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죽고, 그의 어머니는 피살되었다. 그는 여자를 버렸다.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세속에 더 이상 미련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히말라야로 향하는 여정의 첫발이 시작되기도 전에 등을 돌리고 다시 돌아온다. 한 손에 칼을 들고 한 손에 바바의 인을 짓고.

그 마지막 장면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다. 히말라야에서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시발 새끼들에게는 도대체 정이 가지 않았다. 지들만 깨닫고 지들만 천당 맛을 보고 그냥 가 버리는(go up) 좆같은 새끼들은 악덕 정치가나 조직 폭력배 만도 못한 개자식들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바바는 그런 놈이 아니었다. 바바는 예수나 부처같은 친구였다. 그는 고통을 민중과 함께 나누고 워낙 돌대가리들이라 사랑과 자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여유가 없는 한심한 놈들과 함께 살려고 했다. 그래서 눈물이 글썽였다. 깨달은 놈들아, 세상을 구해다오.

그럼 이렇게 묻겠지? 세상에 뭘 더 구할 것이 있다고. 너 없어도 잘 돌아가는데...

생각없이 살기도 쉽지 않다.

달라이 라마에게 후광이 보이지 않아 그 양반을 성자 취급 안한다니까 은조 아저씨는 그 천박하고 시답잖은 관점에 뜨악해서 방탄유리 탓에 후광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은조 아저씨랑 동양철학 얘길 하다가 엄청 씹혔다. 말하자면 그에게 있어 과학은 이전부터 익히 알려져 있었던 여러 사실들에 관해 뒷다마나 까고 있는 한심하고 덜 떨어진 오랑캐 문물 같은 것이었다. 실은 내가 양자론과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또다른 도그마에 관해 시끄럽게 혼자만 떠들어대자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어쨌거나 별다른 기적 없이 중생을 거느린 부처는 정말 신비스러운 인물이었다. 대가섭은 부처의 열반 소식에 슬퍼했다. 파드마 삼바바도 신비한 인물이었다. 죽어라고 윤회를 거듭하는 라마들 역시 희안한 인물들이긴 했다. 신비한 파드마 삼바바의 주장에 따르면 윤회의 고리를 끊어야 제대로 깨달아 열반에 들 수 있다고 하는데(옴마니밧메훔) 그의 주장은 티벳밀교의 견해고 티벳불교의 계승자인 라마 시리즈는 아직 덜 깨달은 탓인지 후광도 변변찮고 죽어라고 윤회를 거듭하고 있었다(옴마니밧메훔).

파드마 삼바바의 또다른 주장에 따르면 자꾸 그렇게 깨닫지 못하면 나중에 짐승이 된다고 했다. 아직 짐승은 되지 않았지만(주로 개가 된다던데) 달라이 라마가 육식을 중단했다는 얘기를 예전에 들었고 그래서 건강이 나빠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심지어 기적도 일으킨 적이 없었다. 성자 주제에. 후광도 없고, 기적도 못 일으키고, 티벳을 그 꼴로 만들어 놓고. 잘 하는 짓이다. 그의 시시껄렁한 유머감각은 좀 아니다 싶지만 그래도 그의 '개성'을 존중하려고 애쓰고 있다.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을 읽다가 왜 내가 달라이 라마를 싫어하는지 새삼스럽게 느꼈다.

은조 아저씨가 수행을 했으며 희말라야 사두들과 하시시를 빨며 맞짱을 떴다는 얘기는 믿어지지 않는다.

무림의 대혈겁이 지나가고 이제는 꺽인 깃발과 이름없는 무수한 무덤 만이 남아있는 무림 12대파 중 한 곳의 근거지였던 창산의 어느 골짜기에서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발가벗고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동행한 조선족 아저씨는 내 승마 솜씨에 약간 기가 죽어 있었다. 하지만 발가벗은 채 차갑고 맑은 물 속에서 아이처럼 첨벙이는 동안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한 것 같았다.

그의 몸끝이 내 것보다 크고 굵었기 때문이었다. 오랫만에 사타구니 사이를 햇볕에 태워 기분이 상쾌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인류의 몇 퍼센트가 성인이 된 후 사타구니 사이를 태워 보았겠는가. 괴성을 지르며 밀림을 누비던 타잔 조차도 그러지 못했다.

4가지는 분별력으로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 물, 불, 바람, 흙. 그래서 물 불 안 가리는 바보를 싸가지가 없거나 부족하다고 말한다. 4가지가 부족하다고 쉽사리 얘기할 수 없지만 오만가지 개성은 오만가지 희극의 온상이다. 그런데 4가지는 있지만서도 2% 부족한 인간은 의외로 많았다. 담대하게 개무시하자니 각자가 지닌 중력에 의한 섭동이 신경을 건드린다. 4가지 없음은 다른 많은 증세(symptom)과 달리 좋은 음식과 기후로는 치료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생각을 멈추었을 때 과거는 사라진다. 지식과 경험으로 축적된 과거는 때때로 나 자신인 것처럼 여겨져 논쟁을 통해 얄팍한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착각을 멈추면 깊이와 두께를 잃고 광자를 세고 있는 얼간이가 남았다.

수년 동안의 수련으로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는 절전형 명상 상태였다. 위대한 수도자들이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자기 자신을, 또는 세계를 바라보기 위해 머물러야 하는 극단적으로 멍청하고 예민한 자각 상태다. 하시시는 다른 모든 '현재'와 마찬가지로 부수적인 보조수단일 따름이다. 그래도 사고 작용은 지속된다. 명상이 위험한 것은 때가 되면 부교감 신경계를 직접 제어해서 자신의 심장을 멈출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죽음 내지는 열반이다. 사고 작용이 지속되는 덕택에, 부교감 신경계는 저 나름으로 살기 위해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으므로 돈 다발을 셀 수 있었다.

2주가 지난 후 더 이상 약물을 빨지 않았다. 두뇌 개발에 필수적이었던 알콜이나, 커피 한 잔 마시고 느꼈던 강렬한 카페인 충격이나, 길고 긴 죽통으로 피우던 담배 연기 역시.

기억에는 반감기가 존재한다. 기억은 신뢰할 수 없는 비이성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유일한 지성은 보고 느끼는 현재에 대한 직관이다. 선각자들의 말씀인데 요새는 육을 입지 않은 이 말이 사방에 나돌았다. 하여튼 남은 지폐를 세어 보았다. 이런 식이라면 2년도 버티겠군. 허비할 인생은 남아 있지도 않았다. 할만한 생각이 존재하지 않듯이, 사라진 아름다운 여자들과 함께.

better leave it unsaid - 지성 현실 철학 인생 사랑



떠날 때를 안다.

떠날 때가 있다.

떠난 적도, 머문 적도 없다.

목적지가 없다.

떠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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