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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1.02.17 동남아시아#3: 말레이지아
4:05pm 비행기 출발. 7:00pm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도착. 입국 서류가 무려 4장이나 된다. quarantine, arrival card, declaration, 정체를 알 수 없는 카드 한 장까지.
 
환전소 앞에 섰다. 앞에 서 있던 일본인은 만엔 짜리 지폐 한 장을 환전했다. 그 뒤에 2000밧 지폐를 모두 링깃으로 환전한 나는 177링깃을 손에 쥐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일본에서는 얼마 되지도 않을 것 같은 만엔 짜리를 달랑 한 장 내고 400링깃 가량을 환전해간 그 일본인에게 왠지 자존심이 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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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알라 룸푸르 국제 공항. 저녁 하늘에 몰려든 먹구름.


공항에서 budget taxi나 셔틀 버스를 찾고 있는데 영어 잘하는 시커먼 말레이인이 다가와서 50링깃에 협상. 공항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걸어가 그가 택시라 부르는 개인 차량에 승차. 영어가 통하니 말하기 편해서 좋다. 그래서 가는 내내 격렬한 토론과 대화를 주고 받았다.

마침 천둥, 번개가 치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쿠알라룸프르가 처음이냐고 묻길래 그렇다, 여긴 무척 현대화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어디서 왔냐? 한국에서 왔다. 바로 왔는가? 아니, 태국여행 하다가 왔다. 지금은 F1 그랑프리 시즌이라서 숙소 구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오늘이 주말이라 숙소는 거의 다 차 있을 것이다. 아, 재수없을 때 왔구나, 하지만 숙소가 다 차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뭣하면 내가 숙소를 소개해 주겠다. 차이나타운 근처인가? 걸어서 20분쯤 가면 차이나타운이 나온다. 얼마냐? 70링깃이다. 난 그렇게 비싼 곳에서 묵을 형편이 못된다. 하지만 싼 곳은 좋지 않다. 아니다 난 싼 곳이 체질에 맞는다. 나는 가난하다. 그러지 말고 내가 말하는 곳에 잠깐 들러 확인해 봐라. 마음에 안들면 차이나타운에서 내려주겠다. 당신 정말 친절하군. 좋다. 내려서 확인해 보겠다.   

톨 게이트 앞에서 택시가 섰다. 톨 게이트 비용을 내라며 내게 69링깃이라고 새겨진 디지털 미터를 손가락질 한다. 아까 50링깃에 협상이 끝난 것이므로 당신이 알아서 내라, 나는 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69링깃을 내지 않으면 차가 톨게이트를 지나가지 못하고 자기는 돈이 없다고 말했다. 노, 라고 말했다. 50링깃 이상은 줄 수 없고 그건 너와 내가 합의를 본 금액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신 차는 정식 공항 택시가 아니지 않느냐, 가외로 벌이를 하고 있는 것 다 안다고 하니까 자기는 공항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비행기 도착이 늦어져 할 수 없이 돌아가는 길에 나를 태운 콜택시라고 우겼다. 속으로 놀고 있네 라고 생각하면서 그럼 공항 택시 운행 허가증을 보여달라고 말했다.   

팔짱 낀 채 버티고 있다보니 내가 타고 있는 차 때문에 이쪽 게이트의 뒤로 차들이 늘어섰다. 적체. 나는 누가 옳은지 끝까지 가려보자는 심정으로 그와 토론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뒤에서 빵빵 거리는 차량과, 요금을 재촉하는 검표원 때문에 안절부절하던 운전수는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내고 차를 일단 출발시킨다.   

창밖으로 폭우가 내리고 있다. 양동이로 퍼 붓는 것 같다. 말레이지아는 지금 우기다.
 
운전수는 내가 리무진 영업 라이센스를 보여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하자 화가 났는지 글로브 박스에서 무슨 서류를 꺼내 흔들어 보인다. 내가 확인해 볼테니 달라고 말했지만 주지 않는다. 보나마나 그의 운전 면허증일테니까. 그래서 당신은 불법으로 영업하는 주제에 50링깃이면 충분한 비용을 19링깃을 더 얹어서 나를 등쳐먹으려 하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자기가 지금 거짓말장이로 보이냐고 오히려 소리를 지른다. 그렇다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라고 하니, 날더러 어떻게 살았길래 사람을 믿지 못하느냐고 말하면서 가이드북을 뒤져 보라고, 가이드북에 보면 공항에서 시내까지 80여km를 가는데 리무진 택시 비용이 얼마로 나와 있는지 똑똑히 보라고 말했다. 실은 가이드북이 있긴 했지만 거기 나온 공항은 KLIA가 생기기 이전 것이라 비교할 수 없다. 그걸 보여주면 20링깃이 채 안되는 비용으로 시내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그걸로 사기치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는 더 정확한 자료가 있었다. 나는 콧방귀를 뀌고, 화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비가 억수로 쏟아져 내려 앞을 분간하기 힘들 지경이다. 그는 내가 화를 낸다고 비난하기 시작한다. 돈 몇푼 때문에 화를 내고 있다고 말이다. 난 돈 몇푼이 아니라 당신이 나에게 거짓말을 해서 돈을 뜯어먹으려고 하기 때문에 화를 내는 거라고 말했다. 궁지에 몰린 운전수는 핑계거리가 떨어지자 중산층을 들먹이기 시작했다. 여행 가능한 사람들은 중산층 이상인데 당신은 중산층 이상이기 때문에 이곳과 태국을 여행할 수 있는 거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민족은 친절하고 거짓말을 안 하는데 일본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고 말한다.
 
논지를 보면 당신은 한국인이라 거짓말을 하고 돈이 있으니까 여행을 할 텐데 몇푼 더 내게 준다고 크게 손해 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푼돈을 주지 않겠다고 우기며 나와 싸우려 하는 것인가 라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운전수 버르장머리를 고쳐줄 필요성을 느끼고, 내가 여행하는 방식에 관해 조목조목 설명을 늘어놓고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를 알려 주었다. 나는 그 비용 이상을 쓰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내가 당신에게 지불하는 50링깃은 태국돈으로 500바트쯤 하는데 그 돈이면 내가 태국에서 5일을 지낼 수 있다고 말했다.   

운전수의 얼굴에 경멸과 조소, 그리고 환희의 표정이 떠올랐다. 당신, 지금 500바트로 5일을 살 수 있다고 말했지? 나는 태국에 가 보았다. 어림없는 거짓말 하지 말아라. 500바트로는 5일을 지낼 수 없다. 나 역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놈, 제대로 걸렸군. 그리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30바트 짜리 숙소에 묵으면서 20바트 짜리 식사를 두 끼하고 10바트 짜리 과일주스를 두 번 정도 마신다. 그것 외에 어디로 이동하거나 가외비용을 쓰지 않는다면 하루에 내가 쓰는 돈은 딱 100밧이다.   

운전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기세를 늦추지 않고 말했다. 당신이 말한 중산층에 당신도 속한다. 하지만 나는 중산층처럼 여행하지도 않고 그래본 적도 없다. 내가 쿠알라룸푸르에서 숙소를 잡는다면 50링깃 짜리면 고급에 속한다. 마찬가지로 KLIA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셔틀버스가 어떤 것이 있고 가장 싸게 시내로 들어가는 방법도 알고 있다. 가장 싼 방법으로 들어가면 단 돈 3.5 링깃이면 충분하다. 나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50링깃을 지불하고 이 차를 탄 것이다. 왜냐? 고생스럽게 여행중이라 쉬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이틀간 변변한 숙소를 잡기는 커녕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비가 멎었고 그는 내게 형편없이 깨졌다. 하지만 그는 끝내 자기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우겼다. 그가 추천해주려던 숙소 앞에 차가 섰지만 나는 내리지 않았다. 약속대로 차이나타운으로 가자고 말했다. 그는 내가 자신을 못 믿는다고 궁시렁거리며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때마침 그의 모빌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가 끝끝내 자신의 거짓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통화 내용을 통해 확인했다. 전화는 자기 딸에게서 걸려온 것이었다. 그는 딸에게 지금 집으로 들어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만일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비행기가 연착되어서 나를 태웠다는 말부터 거짓이 된다. 비행기가 연착이 되더라도 손님을 내버려두고 나를 태운 채 들어왔으면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백화점처럼 보이는 건물 앞에 차가 멎었다. 그에게 차이나타운 푸드라야 터미널 앞에 세워달라고 말했었다. 그는 내리는 나를 향해 불쑥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것이다. 악수하면서 히죽 웃어 주었다. 얼굴이 시꺼먼 거짓말쟁이 새끼도 히죽 웃었다. 공항에서 차이나타운까지 50분쯤 걸렸다.   

내리고 나니 당황스러웠다. 4년 전에 만들어진 가이드북을 들춰봐도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왜 이런 책을 샀을까? 영문 보기 귀찮아서 한글로 된 책을 샀는데 정말 엄청난 실수를 한 것 같다. 간단히 말해, 4년 전부터 있었던 지명지물은 그대로 있지만 4년이 지난 후 없어진 지명지물들은 찾을 수 없었다. 가이드북의 지도는 축적이 표시되지 않은 한심한 것이었다. 인도와는 달랐다. 인도는 5년전 가이드북이나 지금 가이드북이나 금액만 다를 뿐 그게 그거였다.   

이곳 저곳 떠돌아 다녔다. 밤 아홉시가 넘자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트래블러스 문 롯지를 찾아 헤메다가 시간도 늦었고 해서 차이나타운 한 복판에 있는 차이나타운 Inn으로 들어갔다. 팬룸으로 59링깃이나 하는 호텔이다. 더블 베드에 TV가 있지만 창문이 없다. 샤워 했다. 뜨거운 물이 나온다. 돌아다니는 숙소마다 정말이지 호사스럽기 그지없다. 내 팔자에 무슨 호텔에 묵으려는 것일까, 오늘 하루만 벌써 100링깃 이상을 썼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나온 것이 타격이 컸다. 게다가 바보하고 논쟁까지 했다.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생각 좀 하면서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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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차이나타운 인의 입구. 1층은 Ground Floor. 우리식으로 2층이 그네들 1층이 되기 때문에 로비나 카운터는 보통 2층에 있다.


차이나타운을 돌아다니며 환전할만한 곳을 찾아 보았다. 은행이 몇 개 있다. 뭔가 좀 먹으려고 두리번 거리다가 로칼들이 가는듯한 노천 식당을 발견했다. 맥도널드 건너편 왼쪽 골목 구석탱이에서 뭘 시켜 먹어야 할지 몰라 고개를 갸웃 거렸다. 주방장이 큰 소리로 fried noddle을 먹겠냐고 묻는다. 화로에서 샛노란 불이 치솟아 오르다. 오케이. 그걸 먹겠다. 나온 모양을 보니 짜장면하고 꼭 빼닮았다. 한국 짜장면하고는 틀리지만 맛이 괜찮고 3(3*360=1080원) 링깃이라는 가격에 비해 양이 무척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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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인 주변 약도.



밥 먹고 숙소로 돌아와 그동안 밀린 빨래를 했다. 맞은 편 침대에 늘어놓으니 가관도 아니다. 가이드북이나 뒤져볼까 하다가 뒤져봤자 재미 없을 것 같아서 관두고, TV를 보았다. 영어 방송이 있다. 보다가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10:00am, 피곤했나보다. 시차 때문인가? 따지고 보면 태국 시각으로 9:00am에 일어난 것이 맞다. 빳빳하게 마른 옷가지들을 챙겨 짐을 꾸리고 짐을 호텔에 맡기고 근처 식당에서 나시 아얌과 콜라를 먹었다. 쥐꼬리만한 양에 7 링깃이나 했다. 너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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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의 거리 모습. 앞 아저씨가 호기심을 참지 못해 내 카메라를 한참 들여다 봤다.


아뿔싸... 오늘은 일요일. 은행이 문을 연 곳이 없다. 하여튼 여행 초기부터 재수가 없다. 돗대기 시장같은 푸드라야 터미널에서 13링깃에 카메룬 하이랜드 행 버스표를 사고 잠깐 인터넷을 사용했다. email 확인하기도 귀찮고 들락거릴만한 홈페이지도 없다. 서울에 있을 때와 달리 여행 중에는 인터넷이라던가 email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말끔히 사라졌다. 인터넷 중독도, 컴퓨터 중독 증세도 없다. 서울에서는 증세가 있었다.   

화장실을 찾아 우연히 올라간 터미널 3층에 문을 연 은행이 있었다. 80$을 환전하니 300 링깃. 거리에서 사람들이 즐겨 먹는듯한 milo를 1링깃 주고 사먹었다.   

바글거리는 카운터에서 버스표를 예매. 버스를 타라는 shell 주유소 앞으로 걸어갔다. 카메룬 하이랜드(CH)행 버스표를 팔고 있었다. 바보같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정신없는 버스 터미널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표를 샀는데...   

대도시에는 별 흥미가 없어 쿠알라룸푸르 관광은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실 둘러본 곳이라고는 차이나타운 밖에 없지만. 그래도 별로 후회할 것 같지 않다.
 
버스가 출발. KL의 시가지는 말끔하고 현대적이다. 어떤 면에서는 서울보다 더 잘 사는 나라처럼 보인다. 널직한 도로에 깨끗한 건물들, 사람들 대부분이 핸드폰을 들고 있다. 옷 입은 모양새들이 깔끔하다. 여행 한답시고 돌아다니는 내 모습은 KL의 골목에 앉아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는 거지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1시간쯤 버스가 달리다가 중간에 한번 정차했다. 근처 매점에 들어가 물건들의 가격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비싸서 아무 것도 안 사고, 안 먹고 그냥 버스에 올랐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2시간쯤 지나서 밀림으로 들어섰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버스는 오르막길을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럴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고산지대라서 그런지 한국의 자연환경과 흡사한 것 같다. 열대식물이 차츰 사라져 간다. 4시간 후 작은 촌락에 버스가 멎었다.   

카메룬 하이랜드에 도착. 거리가 한산하고 조용하다. 여행자들이 추천하는 다니엘스 롯지를 찾아갔다. 방은 모두 꽉 차 있었다.
 
도미토리로 기어 올라갔다. 벽돌 벽이 그대로 드러난 구석 자리, 허름해서 별로 마음에 안 들지만 이거라도 어디냐 싶어 짐을 풀어놓고 거리를 둘러보기 위해 숙소를 나왔다. 시내라는 것이 걸어서 150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직선 도로. 허기를 느껴 식딩에 들어가 나시 고랭 아얌과 티를 시켰다. 나온 차를 보고 기겁을 했다. 인도의 짜이하고 똑 같았다. 말하자면 밀크 티, 하지만 설탕을 넣지 않아서인지 맛이 다르다. 마치 KL에서 먹은 볶은 면이 모양은 짜장면 같지만 맛이 짜장면이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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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룬 하이랜드의 작은 공원에 걸려 있는 도시 개요


숙소에 돌아와서 무료라는 정글 트래킹을 신청하고 카메라를 충전하기 위해 침대로 올라가 벽을 더듬으며 콘센트를 찾았다. 없다. 옆에 누운 양키에게 ac outlet있냐고 물으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씩 웃으며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한다. 거참.
 
그와 얘기했다. 싱가폴에서부터 중고 오토바이를 하나 사서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는 친구였다. 음울한 표정으로 지도와 가이드북만 뒤적이는 모습을 보아하니 사람들 만나 대화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는 오토바이로 여행하는 것이 오히려 비용이 적게 나온다고 말했다. 내게 버터워즈를 통해 가는 국경 코스 말고 다른 길이 없냐고 묻는다. 아는 바가 없어서 모른다고 대꾸했다. 그의 말로는 태국과 말레이지아 사이에 비정규적인 국경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왜 그런 곳을 통해 가려 하냐고 물었다. 밀입국자가 되면 골치 아프지 않냐고. 그는 그런 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상한 친구다. 

침대 위에서 밍기적거리기가 지겨워 밖으로 나왔다. 탁자에 앉아 pda를 꺼내놓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greg egan의 distress. 우스운 것은 틈틈히 넉넉한 시간이 생기면 읽으려고 pda에 잔뜩 쑤셔 넣어두었던 소설을 여행 중에 거의 읽지 못했다는 점. 기껏 읽으려고 pda에 눈길을 주고 있노라면 어느새 졸기 일쑤였다.   

한 친구가 오늘 정글 트래킹에 관한 '모험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가 말하길, 자기는 오늘 코브라를 봤으며, 코브라에게 쫓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한 친구는 그걸 진지하게 들으며 자기는 평생 야생 뱀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숙소에서 일하는 친구가(그는 자신이 내일 트래킹 가이드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실거리며 웃었다. 뱀 같은 것은 없고(트래킹 코스에) 당신이 만일 뱀을 봤다면 딱 두 가지 길 밖에 선택할 수 없다고 말했다. live or die. 말하자면 가이드는 그 친구가 뻥을 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나도 그 녀석이 뻥을 친다고 생각했다.   

저녁. 시내로 걸어가 식당을 둘러 보았다. 말레이지아의 식당은 거의 전부가 food court 스타일로 운영되는 것 같았다. 말레이 음식, 중국 음식, 태국 음식, 인도 음식 등등 한 나라에 구겨져 살고 있는 다양한 인종 만큼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많기 때문에 여러 음식점이 커다란 한 지붕 아래에서 각각 코너를 맡아 영업을 하고 있다. steambot라는, 끓는 물에 갖가지 재료를 데쳐먹는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지만 혼자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양, 동행이 있어야 먹을 수 있어서 침만 꿀꺽 삼켰다. 사태 꼬치 몇 개 먹어봤다. 볶은 면을 시키면 여지없이 짜장면 같은 것이 나왔다. 차를 시키면 짜이가 나왔고 테이블에 있는 바나나는 공짜였다.   

다시 시내를 한 바퀴 둘러보러 나왔다. 가이드북을 본 바로는 10시만 넘으면 마치 중국처럼 가게들이 문을 닫기 때문에 거리가 조용하고, 나이트라이프가 없어서 여행객이나 관광객에게는 시시한 동네가 말레이지아 라고 소개되어 있다. 밤이면 떠들썩해지는 태국과는 사뭇 달라서 왠지 마음이 차분해진다. 술만 마실 수 있으면 된다. 문을 닫으려는 편의점에 들러 기네스 맥주를 한 병 사서 벤치에 앉아 마시며 간간히 보이는 산악 꼭대기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숙소로 돌아왔다. 모기가 많다. 노출된 살갗에 모기약을 뿌렸다. 라오스에서 태운 살갗이 아직 덜 벗겨져서 피부에 지도를 그려놓은 것 같다. 옆에 앉아 있는 녀석이 기타를 잡고 november rain 등등을 부르고 있는데 어디가나 이런 놈이 하나씩 꼭 있어서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는 점이 희안하다. 게다가 그 되도않는 노래를 옆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가 박수를 치며 앵콜을 외치는 미친놈도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정말 그랬다. 박수를 치며 앵콜을 외치더니 어느새 듀엣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 더더군다나 그러다보면 무슨 전염병처럼 옆엣놈, 옆엣놈들이 따라부르기 시작한다. 나도 따라 불렀다.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 그런데 troubled를 발음할 때 자꾸 travelled로 바뀌었다.   

무려 4일이나 밀린 일기를 썼다. 일기라기 보다는 그냥 시간표에 가까웠다. 몇월 몇일 몇시에 어디어디 도착. 어디어디 출발. 적기 귀찮아서 끄적여 놓은 것이 없다. 왜 적는가? 할 일이 없어서다. 잠들 때까지 소설을 읽었다. 간만에 여유다. 여기에 오길 잘했다.   

8:00am, 아침햇살에 잠에서 깨었다. 도미토리에 작은 창이 있었다. 자주 날짜를 잊어버려 pda를 꺼내 확인해 봐야 했다. 오늘은 2월 26일, 앞으로 대략 10일쯤 남았다. 캄보디아에 안 가고 대신 말레이지아로 온 것이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돈은 좀 들더라도 말레이지아가 말이 통하니까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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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 하우스에서 책 읽다가 문득 찍은 맑은 하늘


샤워를 하려고 배낭을 뒤져보니 수건이 없다. 아... 도착한 날 방콕의 홍익인간에 묵을 때, 수건을 말리려고 걸어놓고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 이제서야 생각난다. 그후로 줄곳 이동하느라 잠을 안 자거나 호텔같은 곳에서 지냈기 때문에 거기서 제공되는 수건을 쓰느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프론트에 가서 수건을 빌리니 하루에 1링깃, 걸레같은 수건을 하나 빌려준다. 주인은 중국인, 종업원은 말레이인. 말레이지아에 도착한 후 내가 본 가게들은 그런 도식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다.
 
다니엘스 롯지도 기실 운영되는 형태를 보면 중국인 여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금고 열쇠는 중국인 주인이 보관하고 있으며 종업원은 절대 손 댈 수 없다는 점, 체크아웃할 때 그래서 종업원에게 계산할 수 없고, 돈이 되는 물건들이 놓인 모든 장소에는 자물쇠가 걸려있어서, 담배같은 것은 종업원에게 살 수 없다. 전형적인 중국식이다. 전형적인 중국식 상술에는 이런 것도 있다; 그들은 합리적으로 고객을 설득하며 어디에나 금액이 붙어 있다.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는 과장이 없고, 또한 거짓이 없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는 지엽적인 한계와 내 주관적인 인상으로 중국식 상술을 특정짓자면 그것들 대부분이 생색내기였다. 하여튼 그들은 장사를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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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룬 하이랜드, 타나 라타의 중심 시가 전경. 여기서 저 끝까지가 시가지의 전부. 왼쪽은 식당가. 오른쪽도 식당가다. 간혹 기념품 가게나 우체국 따위가 끼어 있다.


 시내에 내려가 조그만 중국인 식당에 들렀다. 미 수프(noddle soup)와 티를 주문. 카메룬 하이랜드에는 티 농장이 있기 때문에 어디보다 차가 맛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주인 아저씨가 돈을 내고 돌아서려는 내게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해서 깜짝 놀라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얼른 정신을 차린 후 나도 히히히 웃으며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했다. 내가 한국인임을 금새 알아본 것이 놀랍다. 선물가게에 들러 엽서를 사서 한국에서 열심히 덜덜 떨며 일하고 있을 사람들이 충분히 약이 오를만한 간단한 메시지를 적은 후, 부쳤다.   

로비에서 10:05am에 중국식 여사가 제공하는 FREE guided trekking 출발. 개 두 마리가 까불거리며 따라온다. 두 놈 다 숫놈인데 한 놈은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면 눈알을 부라리고 한 놈은 얌전했다. 공원을 지나 폭포 같지도 않은 폭포를 지나 산으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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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고원의 모습

전망대 꼭대기에서 독일인이 갑자기 맥없이 풀썩 쓰러졌다. 두어 친구가 달려가 우려를 담은 주의깊은 표정으로 독일인을 돌봐주었지만 둘 다 응급처치 경험은 없는 것 같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독일인은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셔츠 앞 단추를 열고 그늘에 반듯이 누인 후 수건을 개서 얼굴을 식히고 맥박을 쟀다. 맥박을 재봤자 무슨 뜻인지 해석이 안된다. 맥박이 빠르긴 해도 규칙적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단지 체력이 딸리고 피곤해서 자빠진 것처럼 보인다. 상의가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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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Brinchang의 작은 시가. 대부분 리조트와 게스트 하우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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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킹 중에 찍은 사진. 워낙 느리게들 걸어서 사진 찍을 여유가 있었다.


 마침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데다 올라온 지 30분도 채 안 되었기 때문에 조금 쉬다가 내려가면 될 것 같다. 한 친구가 그를 따라 내려 가기로 했다.
 
일행이 열 댓명이나 되니까 무슨 애들 소풍 분위기가 난다. 굼벵이들처럼 걷다 보니 세 파트로 나뉘어서 너댓명씩 무리가 형성되었다. 선두그룹에 끼면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므로 그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앞에 걸리적 거리는 사람들이 있고 길이 좁고 미끄러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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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풍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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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풍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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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픙경 #3


독일인이 쓰러진 후 얼굴에 긴장감이 돌면서 쓸데없이 웃으며 말들이 많다. 1시간쯤 지나 너비 5-6미터쯤 되는 공터가 나타났다. 가이드는 가는 다리에 비쩍 마른 몸매지만 산길에 익숙한지 날렵하게 날아갔고 숨 한번 몰아쉬지 않았다. 일행중 숨 한 번 몰아쉬지 않는 친구는 가이드와 나 정도. 일행을 둘러보니 동양인은 나 밖에 없다.
 
담배를 꺼내 그 친구와 사이좋게 나눠피우자 서양애들 인상이 일그러졌다. 어떤 젊은 금발 여자가 담배는 건강에 안 좋다느니, 폐에 나쁘다느니 하는 따위의 말을 늘어 놓는 동안 가이드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이 바보야, 이런 트래킹 한 두번 해보냐? 하는 듯한 공모적인 미소. 가이드는 좀 더 일찍 이곳에 왔더라면 산길 마라톤에 참가할 수 있었을 꺼라고 말했다. 나는 맥주를 안 들고 온 것이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 친구가 날더라 무척 산길에 익숙하다고 하길래 고향에서 나를 squirrel boy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저 낄낄거렸다. 

산정이나 절간으로 갈 사람은 가란다. 다만 우기라서 가는 도중에 늦으면 비를 맞을 수 있다고 한다. 대부분 산길을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산정으로 갈까, 절간으로 갈까 하다가 길을 익혀둔 후에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아 나도 내리막길을 택했다.
 
내려가는 길 내내 짹짹거리는 앞 여자들에게 갈증을 느끼지 않냐며 물을 너무 자주 마시는 것은 좋지 않다느니 하면서 껌을 권해 주었다. 껌을 씹느라 그들은 한동안 조용했다. 

계속 걷다가 Mardi라는 곳으로 나왔다. 길을 따라 주욱 가면 시내가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방향을 틀어 다시 정글로 향했다. 오르막길을 '다람쥐 소년' 답게 팔짝 팔짝 뛰어 올라갔다. 땀 때문에 안경 시야가 뿌옇다.
 
뛰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멈췄다. 길 중간에 어떤 서양 여자애가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하마터면 부딫힐 뻔 했다. 혼자 낭만을 즐기고 있었나 보다. 앉아 있으면 나뭇가지에서 벌레 떨어질텐데? 오히려 나를 강간범이라도 되는 듯 두려운 표정으로 쳐다 보았다.
 
아까 잠시 머물렀던 교차로에서 땀으로 축축한 몸을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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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킹 코스의 중간, 갈림길에서 잠시 땀을 식히며...


산정 쪽으로 향하다가 길을 잃었다. 트래킹 코스 지도를 들고 오지 않아 길을 알 수 없다. 별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햇살이 약해지는 것을 보니 한두 시간 후면 비가 쏟아질 것 같다.
 
남쪽 사면을 따라가면 마을 사람들의 경작지가 나올 것 같다. 출발한 방향이 동쪽이었으므로 아침에 올라왔던 코스로 돌아가려면 서쪽으로 향해야 한다. 희미한 여러 갈래 길의 흔적을 따라 서쪽으로 진행하면서 한 번 남쪽으로 틀었다. 작은 오솔길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던 흔적이 뚜렷이 있었다. 비교적 산이 크지 않은데다 지나온 길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니라서 길을 발견하는데 그리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하늘이 어두컴컴해서 서둘러야 했다. 비를 피할만한 마땅한 곳이 없다. 우기에 비 맞으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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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풍경

뛰기 시작했다. 공기가 눅눅해지면서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진다. 개울이 나타나고 개울을 따라 계속 진행하다 보니 조그만 정자가 보인다. 빗줄기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간신히 정자에 도차했다. 정자에 짱박혀 앉아 숨을 고르는 동안, 점차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나중에는 마치 물의 커튼이라도 친 것처럼 맹렬하게 쏟아져 내린다. 떨어진 빗 줄기가 사방으로 튀었기 때문에 의자 위로 기어 올라갔다. 거센 바람이 불면서 빗 줄기가 휘어진 채 정자 안으로 비스듬히 떨어져 내렸다. 엄청난 비다. 순식간에 주변의 작은 잔디밭이 연못처럼 변하고 맨 땅에는 골이 파이면서 1~2cm 두께의 도로 넓이만한 빗물이 휘몰아치며 커다란 뱀처럼 꾸물꾸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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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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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친 후 마치 포연처럼 솟아오르는 안개


 
 
신발 속에 슬쩍 슬쩍 끼어 들어간 풀과 흙을 털어내고 PDA를 꺼내 소설을 읽었다. 한 시간쯤 지나서야 비가 멎었다. 비가 맞으니까 나무숲 사이에서 안개가 피어올라 하늘로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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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피해 정자로 날아든 벌레


미끄러운 오솔길을 따라갔다. 지금 내린 비로 이제는 어엿한 폭포같아진 폭포를 거쳐 시내로 돌아왔다. 8시간 동안 산길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더니 출출하다. 어제, 오늘 짜이 맛도 보고 했으니 이번엔 인도 음식이 그리워져서 인디언 레스토랑을 찾아다녔다. 타운 구석에 인도인 식당이 있었다. 간만에 '고향의 맛'을 보려고 탈리와 바나나 랏시를 주문했다. 짜파티 대신 조그만 과자 쪼가리를 줘서 서운했지만 맛은 좋았다. 다 좋았는데 7.3링깃이나 했다. 탈리를 먹어봤다는 하잘것 없는 사실로 자신을 위로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보니 카운터에 서 있던 트래킹 가이드가 한국인들이 왔다고 말해 주며 숙박계를 들춰 보인다. 웃었다. 한국인이라... 내일 떠난다고 미리 말하고 시내를 빈둥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와 샤워하고 라운지에 앉아 PDA를 꺼내 소설을 읽었다. 

누군가 다가와 한국인이냐고 영어로 묻는다. 예절바른 사람이구나 싶었다. 만나는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한국인이세요?' 라고 한국어로 물었다. 두 한국인은 부부였다. 둘 다 김영사의 가이드북 필자인데 마침 내가 산 책이 김영사의 헬로 시리즈라 이런 저런 얘기를 늘어 놓았다. 타이 북부와 라오스, 캄보디아 등을 엮은 책은 다 좋은데 앙코르와트 사진이 너무 많다. 오히려 그곳에 가면 사진에서 본 거기네? 라며 감흥이 반은 줄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게다가 사진작가의 '작품'인 탓에 사진이 지나치게 멋있게 나와 있다. 가이드북이 가이드나 잘할 것이지 무슨 사진 작품집 내는 것인가? 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남편이 술병을 사러 시내로 나갔다.   

그동안 아내되는 분과 얘기하다 보니 옆 자리에 앉아있던 서양애가 대화에 슬며시 끼어 들었다. 속으로 '염병할 놈'이라고 욕설을 늘어놓았다. 평소에는 나같은 동양인 남자가 말을 먼저 건네기 전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동양인 여자가 있으니까 대화에 얍삽하게 끼어드는 타입이랄까. 게다가 과자까지 주며 환심을 사려고 했다. 과자를 얼른 집어 먹었다. 염병할 놈이라고 말했지만 선량하고 순수하게 생긴 것이 무슨 영화에서처럼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종류의 사랑을 하다가 절망한 나머지 여행을 떠난 순수한 청년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아내'는 영어가 잘 안되는지 버벅거리다가(나보다 더 버벅거려서 반가웠다) 예절에 어긋나게도 그를 무시한 채 나와 한국어로 오손도손 얘기했다.   

남편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45도짜리 술. 한국인을 만난 세 번의 기회 모두 술을 마셨다. 한국인을 안 만나면 나 혼자 맥주라도 한 캔 씩은 꼬박꼬박 먹어줬다. 술 안 먹겠다고 결심했지만 어쩌다보니 계속 술을 마시게 된다. 한 병을 거의 나 혼자 먹은 셈이 되었다. 그들은 취재를 하면서 좀 쉬어 보려고 태국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에게 동남아에서 어디 가볼만한 곳 없냐고 물으니 필리핀을 추천해 준다. 기회 되면 그곳에 한 번 가보겠다. 부부의 도움으로 말레카와 싱가포르에서의 숙소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그렇잖아도 한심한 가이드북 때문에 골치가 아팠는데 잘 되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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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그려준 약도. 나중에 이 약도를 보고 이게 무슨 뜻일까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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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는 중에 설명을 들어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몰골을 보고, 내가 트래킹을 즐긴다는 사실을 안 후, 남편은 숙소에 들어갔다가 '엄마의 마지막 산, K2'라는 책을 건네주었다.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책이라서 준다고 말한다. 두 부부가 한번씩 읽었는데 재미있다고 하더라. 가이드북 얘기와 출판사 얘기하다가 시공사를 씹었더니 날더러 출판계 사정을 잘 안다며 놀라워 했다.   

약간 쌀쌀하다. 목이 말라 6시쯤 깨어 물을 마시고 다시 누웠다. 깨어보니 8:30am, 이빨 닦고, 세수만 했다. 1링깃 주고 타월을 다시 빌리려니 주인장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수건이 없어 물묻은 얼굴을 옷깃으로 대충 닦고 시내로 내려가 버스 시간표를 보았다. 그리고 비 훈 수프를 시켜 먹었다. 나쁘지 않다. 해장에 된다. 오늘도 인간들 복장을 긁어놓기 위해 엽서를 정성스럽게 써서 부쳤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의 주소를 적어올껄. 후회스럽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기고 한국인 부부에게 인사하고 버스 터미널로 갔다.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Tapah 행이 있다. 하루에 한 대 꼴로 KL로 가는 버스가 있다. 이틀전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며 인도차이나 반도를 횡단하고 있다는 친구가 내게 말하길, 쿠알라 캉사르에 가면 말레이지아 최고의 모스크가 있는데 오후 두시쯤 해가 천정에 떠올랐을 때 모스크를 바라보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고 한다. 숙소는 더블 라이온 호텔이 좋다. 그래서 그 친구 말을 듣고 카메룬 하이랜드에서 며칠 더 묵다 가기보다는 쿠알라 캉사르에 들렀다가 타이핑에 들렀다가 말라카로 가는 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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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찍어본, 새까맣게 탄 얼굴

10:20am, 타파로 출발. 뒷좌석의 10대 여자애가 워낙 시끄럽게 웃어대서 잠을 잘 수가 없다. 버스간에 앉은 외국인은 나를 포함해 다섯. 그중 한 친구는 뉴질랜드 교사인데 뒷좌석에 앉은 두 여자를 요리하느라 정신없다. 짜증이 나서 귀를 막고 있다가 슬슬 들려오는 그의 재담이 재미있어서 어느새 나도 그의 얘기를 들으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나도 저런 말솜씨를 가져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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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룬 하이랜드의 특산물인 차를 재배하는 차밭 풍경 사진 잘못 찍었다고? 전선 지나간다고? 그게 어때서?


타파에 가면 Ipoh행 버스가 있다고 적혀 있는데 4년이나 지난 내 멋진 가이드북은 어디에서 이포행 버스를 탈 수 있는지 적어놓지 않았을 뿐더러, 타파에 가보니 이포로 가는 버스가 없었다. 멍청이처럼 서성이다가 챠도르를 뒤집어 쓴 꼬마애들에게 이포행 버스를 어디서 타느냐고 물으려 하니까 가까이만 가도 꺄르르 거리며 도망간다. 그래서 아무나 붙잡고 물었더니 이포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고 Kampar를 거쳐 가야 한단다. 여기서 기다리면 캄파르 가는 버스가 온다고 일러 주었다. 이빨이 거의 다 빠진 아저씨인데 묘하게 발음은 잘 나왔다. 외국인을 처음 보는 아저씨였다. 댕큐 스마일, 댕큐 베리 머치 앤 스마일.   

황인종 여자가 차도르를 쓰고 다니는 이유가 기억났다. 황인종 아가씨가 이슬람교도와 결혼하면 이슬람 율법에 따라 그걸 뒤집어 쓰고 다녔다. 그 집에서 태어나는 아가도 뒤집어썼다. 챠도르는 왜 쓸까? 목선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일까? 치마를 입어 허리와 다리선이 보이지 않게 하려는 것처럼? 맞다. 이슬람 여성 복식은 성욕이 전혀 안 생기는 패션이다. 정말 똑똑한 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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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좌석에 적힌 글귀: Mei Siong like to make 3-side sex! 어디가나 애들이란...


Kampar에 도착. 버스 터미널에서 물어물어 Ipoh행 버스에 올랐다. 로컬 버스 답게 모든 정거장에서 한번씩 섰다. Ipoh는 대도시 티가 났다. 내리자마자 타이핑행 버스를 찾아 보았다. 근처에서 Taiping행 버스가 바로 출발할 기세라 창구에서 재빨리 표를 사서 뛰어 올랐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다 썩은 버스다. 휘발유 냄새가 지독해서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 우연히 차창을 바라보다가 카메론 하이랜드에서 본, 오토바이 몰고 태국 간다는 친구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마침 오르막길이라 내가 탄 똥차는 거의 속도를 내지 못하고 헐떡이며 간신히 고갯마루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오토바이는 시원스럽게 버스를 추월한다. 나도 언젠가는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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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어서 찍은 캄파 부근 골목 어귀의 풍경. 앞에 놓인 것들은 가스통들.

졸다가 깨어 내리니 거리가 생소해서 어리둥절. 알만한 지형지물이 눈에 띄지 않았고 가이드북의 거리 모양과 다르다. 혹시 Taiping 위쪽에 있는 Kammuting이 아닐까? 10여 분쯤 북쪽을 향해 걸었다. 여기가 타이핑 이라면 2-3분도 채 안되어 저자거리가 나오고 사거리가 나와야 하지만 비포장 도로가 나온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버스 터미널로 돌아왔다.   

택시 기사들이 친절한 미소로 맞아 주었다.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카뮤팅이란다. 엿먹을. 타이핑 익스프레스를 탄 기억이 나는데 왜 카뮤팅에 온거지? 그걸 따지려고 버스 운전수를 찾으니 원래 여기가 종착지고 타이핑에서 내가 안 내린 거란다.   

한 택시 기사에게 타이핑까지 얼마냐고 물으니 5링깃을 불렀다. 대충 거리를 계산해 보고 4링깃에 가겠다니까 고개를 젖는다. 당신 여기서 노는 것보다 날 데려다 주는게 낫지 않냐고 하니 고개를 다시 젖는다. 똥배짱이다 이거지? 그럼 버스 타러 가겠다고 하니까 버스같은 거 없다고 오히려 배짱을 튀기더라. 콧방귀를 끼고 카뮤팅에서 타이핑 가는 버스를 알아보러 창구에 가서 슬쩍 여기서 타이핑까지 가는데 택시가 얼마냐고 물으니 4링깃이란다. 빙고! 손가락 넷을 자신있게 펴고 포 링깃! 하면서 택시 기사들 사이를 의기양양하게 걸어갔다. 아까 배짱을 튕기던 기사가 내 팔을 잡고 자제를 촉구하며 자신의 택시로 데려가 내 배낭을 손수 그의 트렁크에 넣어 주셨다. 아이구 고마워라.   

에어컨도 없고 라디오는 어디론지 사라진 썩은 택시다. 코너를 돌 때마다 차체가 비명을 지른다. 굴러가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담배를 꺼내 물었다. 타이핑 시내로 들어가면서 이것 저것 물었다. Maxwell hill까지는 짚차로 2.5링깃. 박물관과 형무소 등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형무소에 사람 있냐고 하니 없단다. 그럼 박물관? 고개를 끄떡인다. 버스 터미널에 내려주었다. 터미널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페킹 호텔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타이핑에 별다른 숙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들어가 가격을 물었다. 27링깃. 방을 보니 주인이 자랑스럽게 에어컨을 켜 보여 주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뜨거운 물을 틀어보였다. 1929년에 지어진 역사와 전통의 지독한 곰팡내가 나는 썩은 호텔이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초호화판 싱글 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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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킹 호텔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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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썩어가는 호텔 내부 모습


흡족한 마음에 이틀 묵을 꺼라며 깎아달라는 말을 깜빡 잊고 안했다. 그러다가 그들의 결재장부를 흘낏 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28링깃에 묵고 있었다. 1링깃 싼 것 때문에 기분이 좋아져서 이틀치를 한꺼번에 계산했다.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CH 보다는 그나마 큰 동네인데다 The Store라는 커다란 할인판매점이 있다. 시장, 학교, 경찰서, 박물관, 도서관 등등 없는 것이 없었다.
 
공원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길가를 따라 주욱 늘어서 있다. 길을 가로질러 벤치가 있는 잔디밭을 건넌 무수한 가지들이 물가에 음영을 드리우고 있다. 작은 시내와 아름다운 공원. 

잔디밭에 드러누워 찬찬히 지고 있는 태양을 얼핏 바라 보았다. 공원을 두른 작은 오솔길을 따라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서늘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물 위에는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소년, 소녀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땀을 식히며 pda를 꺼내 소설을 읽었다. 타이핑이라는 중국식 이름답게 정말 태평스러운 도시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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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호수 공원의 모습. 앞에 하얀 것들은 꽃. 저 멀리 보이는 산은 맥스웰 언덕.


하늘이 흐려져 비가 올 듯하여 시내로 천천히 걸어왔다.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커다란 food court로 향했다. 식사가 싸고 종류도 다양하고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3링깃 정도면 음료수와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아... 흡족하다.   

샤워하고 땀에 절은 옷들을 빨았다. 창밖으로 빗방울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비 떨어지는 소리가 멎은 것이 8시쯤. 선선해진 바깥으로 나가 막 들어선 저녁 시장을 구경했다.   
정력제 선전은 어디가나 똑같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거진 실물같은 자지를 꺼내 어디가 어떻고 이래서 좋다는 말을 하는 듯. 6시쯤 저녁을 먹었음에도 시장을 돌아다니며 나시 아얌과 옥수수를 마가린에 버무린 것, 그리고 air tofu라는 것을 샀다. KL에서 air tofu를 보고 공기가 잔뜩 들어간 치즈같이 생긴 두부를 연상했는데 air=ice, 즉 차가운 두부, 정확하게는 아이스 두유같은 것이다. 대단히 맛있다. 들고 숙소로 가져오는 도중에 다 마셔서 수퍼에서 국화차를 하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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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원 짜리 저녁 식사. 시장에서 사온 나시 고랭(밥에 닭을 얹은 것), 옥수수, 그리고 차.


숙소에서 맛있게 식사. 그렇게 다 해도 4.7링깃 밖에 들지 않았다. '엄마의 마지막 산 K2'를 다 읽으니 새벽 한시쯤. 10시부터 읽었으니 3시간 걸린 셈. 재미 없고 그다지 얘기하거나 권해주고 싶은 책은 아니다. 

자기로 하고 실링 팬은 끈 채 에어컨만 돌렸다. 새벽에 에어컨 바람이 추워서 깨어 에어컨을 껐다. 이 무슨 호사란 말인가!!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때를 벗겼다. 두 번이나 탄 살이지만 껍데기를 벗겨도 안쪽 역시 타서 피부가 붉은 갈색을 띠고 있다. 보온병에 들어있는 물이 아직 따뜻해서 커피를 타 마셨다. 몇몇 모기 물린 상처가 보인다. 잘 때 팬이라도 켜 놓고 자야겠다.   

옷을 줏어 입고 관광 안내소를 찾아 갔으나 문이 닫혀 있다. 박물관인 줄 알고 찾아간 곳은 정부청사.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는 빌어먹을 가이드북은 안들고 다니기로 했으므로 물어물어 박물관을 찾아가기로 했다. 꼬마 여자애(인도애 같은데)에게 물어보니 길을 알려주고 얼른 도망가더라. 박물관 쪽으로 걸어갔다. 강아지보다 겁들이 많다. 아까 길을 알려준 여자애가 자기 가족들에게 외국인에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고 자랑을 늘어놓으며 나를 손가락질 했다. 할 일 되게 없는 곳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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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정부청사. 1898년 오픈. 햇빛이 들어오는 정문은 닫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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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에 지어진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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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지어진 Perak Museum. 페락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나 내용은 보잘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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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장식 칼들. 사진을 찍을 수 없다지만 그냥 개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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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 아슬리(원주민)이 제작한 탈들. 탈에는 조상의 얼이 스며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물론 식인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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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형편없게 생긴 경찰서 물론 가장 최근에 지어진 듯.


박물관은 아담했다. 별로 볼만한 것들이 없었고, orang asli(원주민)의 박물을 보아도 아무 감상이 생기지 않았다. 다만 게스트북을 뒤져보니 방문객중에 외국인이 거의 없었다.   

형무소에 들러볼까 하다가 날이 더워지기 시작해서 공원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김에 다시 관광 안내소에 들렀다. 이번에는 문을 열었다.   

10:00am, 안내원을 꾸짖으려다 말고(9:00am에 문을 연다고 바깥에 적혀 있었다) 지도를 좀 구할 수 있겠냐고 물으니 싹싹하게 이것저것 건네주면서 다음 목적지를 묻고 그쪽 지역 관광 안내도까지 주었다.
 
그녀가 일정을 묻는다. 이곳에서 rest in peace 하려고 한다니까 수줍게 웃었다. 귀여운 아가씨다. 게스트북에 사인하려고 보니 최근 타이핑을 방문한 외계인은 나밖에 없었다. 어쩐지 신났다. 그간 여행객들과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동네만 돌아다니다보니 정신세계가 날이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었는데 비록 동물원 원숭이처럼 사람들이 한참 쳐다본다 해도 별로 사람 때가 타지 않은 곳에 왔다는 것은 크나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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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C(관광 안내소).


이전에는 경찰서 였고, 소방서 건물이었다고 한다.

각 도시의 안내서를 잔뜩 나왔다. 인사를 정말 귀엽게 하는 아가씨다. 잡아먹고 싶다. 생각난 김에 공원 부근에 있는 동물원에 잠깐 들러보기로 했다. 

지도에는 꽤 가까운 것처럼 보였지만 땡볕 아래서 한 시간쯤 땀을 질질 흘리며 걸어서야 동물원이 나타났다. 그나저나 공원을 일주하는데 한 시간 반쯤은 걸릴 것 같았다. 공원의 규모가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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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어디 가든, 공원 구석구석에 용을 심어놓길 즐기는 듯. 저건 용의 잔등 쯤 된다.


동물원 입장료 4링깃, trem을 타려니 2링깃짜리 표를 끊어야 한다. 걸어다니느라 지쳐서 타기로 했다. 마침 국민학생들이 동물원 견학을 와서 트렘을 거의 통째로 전세내다시피 했다. 아이들이 무척 짹짹거려서 시끄러웠다. 선생 마저 짹짹거렸다. 오히려 선생이 동물들을 보고 더 흥분한 것 같았다. 선생이 아이들에게 동물 이름을 가르쳐 줄 때 우리에 있는 명패를 슬쩍 쳐다보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는 모습을 보았다. 하긴, 선생이라고 다 알 수는 없는거지. 나도 한국어로는 동물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영어나 학명으로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동물이 하도 많아서 어이가 없다. 

아이들이 종이 한 장 펼쳐놓고 자신이 본 동물에 체크 마크를 열심히 해 나가고 있었다. 몇몇 동물은 그 종이쪽지에 적혀 있지 않았다. 유난히 귀여워 보이는 아이에게 선심 쓸 요량으로 이런 저런 동물들 이름을 가르쳐 주고 어디어디 있다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물속에서 한가하게 떠 다니고 있는 거북을 가르키며 저건 거북이야(터틀)라고 가르쳐 주었다. 아이는 트렘 난간에 기대 터를!, 터를! 하고 소리쳤다. 왠지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의 발음이 나보다 낫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가 그 애가 모르는 짐승의 이름을, 그것도 r이나 v, f 자가 들어간 짐승 이름을 잘못 발음해서 가르쳐 준다면, 교육상 안 좋을 것 같다. (빌어먹을!)
 
트렘에서 내렸다. 입 다물고 선생과 아이들이 짹짹대는 그 속에서 느려터진 트렘을 타고 가다보니 길가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나를 정신지체아라도 되는 것처럼 희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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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 혼자서 시꺼먼 코끼리가 수도를 코로 틀어막으며 장난을 치고 있다.


사진기는 없다고 속였기 때문에 입장료 외에 추가 비용은 들지 않았다. 몇몇 동물들 사진을 찍었다. 의미없는 사진들이다.
 
동물원은 동물원답지 않고 무슨 방목장 같았다. 배꼽 높이의 철창이 달랑 우리와 도로를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기린과 타조와 놀았다. 구경하던 학생들과 중국인 여자애들이 동물들과 사이좋게 잘 놀고 있는 나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흐뭇하다. 4링깃이 그다지 아깝지 않았다. 간혹 아무 것도 없는 빈 우리를 보고 있으면 그 동물의 사후 처리가 문득 궁금해졌다. 호랑이와 사자 새끼는 기껏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온 손님을 개무시한 채 낮잠을 자고 있었다. 서비스 정신이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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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정신이 부족한 코뿔소들


동물원을 나와 아름다운 정원을 정처없이 떠돌다가 지쳐서 나무 그늘에서 쉬며 타이핑 소개 소책자를 뒤적였다. 공원은 본래 주석 광산이었던 것 같다. 중국인 주석 채굴 노동자들이 말레이 반도로 끌려와 열심히 삽질해서 만들어놓은 땅에 물을 채우고 잔디를 심고 관리해서 이런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대부분 정강이 높이 정도 밖에 안된다. 그 사이로 비단잉어같은 물고기들이 돌아다녔다. 수심을 얕게 해 놓은 것은 증발을 돕기 위해서인 듯. 그래서 공원 주변은 시원한 편이었다.
 
거의 중국인들로 구성된 이 도시는 과거 페락 주의 주도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시에 한 번 큰 불이 난 후 건물을 새로 짓고 도로 정비를 하면서 심은 나무들이 적어도 100년 이상의 나이를 먹게 되었다. 봄에는 그 나무에서 아름다운 꽃들이 활짝 피고, 마치 벚꽃처럼 꽃잎이 휘날린다고 한다. 볼만한 광경일 것이다.
 
인도 펀잡 지방 사람들을 지역 경찰로 고용했다는 것이 특이했다. 영국 식민지 였으므로 인도인들을 수입(?)해 오는데 어려움이 없었던 영국 귀족들은 펀자비들의 전형적인 특징인, 훌륭한 떡대와 얼굴을 뒤덥은 구렛나루, 그리고 머리를 두른 커다란 푸른색, 붉은 색 터번에 적당한 권위를 부여했던 것 같다. 그들은 정말 경찰로 어울렸다. 아무도 덤비고 싶은 기분이 안 들테니까.
 
마음에 드는 도시, 마음에 드는 공원이다. 그늘에 누워 책을 읽거나 졸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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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공원의 경치. 잔물결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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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즐겨 앉았던 공원의 나무 그늘.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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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나무들(Pterocarpus indicus)이 호수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다. 말레이지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로수지만 타이핑의 가로수는 100년 이상 자라왔다. 긴 가지들은 도로를 가로질러 호수에 닿아 있다.


오후 느즈막히 다리께에서 빈둥대다가 현지인과 얘기를 나눴다. 그의 말로는 페킹 호텔에서 매춘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슬람 국가라 매춘이라면 꽤나 쎈 처벌을 받을 것 같은데, 매춘이라던가 매춘부가 오락가락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가 그렇다고 우겼다. 사실 그 호텔 꼬라지를 보건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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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신혼부부. 그림같은 배경은 좋은데 신랑, 신부가 팍삭 늙었다.

근처 식당에서 밥을 시켜 먹었다. 차까지 합쳐 3링깃으로 떡을 친다. 숙소에 잠깐 들러 샤워하고 관광안내소에서 받아온 안내서를 뒤져보니 가이드북보다 나았다. 다음 여행지의 숙소 문제가 걸리적거리긴 하지만 카메룬 하이랜드에서 한국인 부부에게 얻은 정보로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시내 주변을 돌아 다니며 사진을 몇장 찍었다. 이들의 건축양식이 흥미롭다. 모르고 볼 때는 그저 그랬지만 타이핑의 역사를 소상히 알게 되니까 건축물의 세세한 차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사와 건축물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면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한번은 여자를 이해하려고 난리쳤고, 이번에는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고 애쓰고 있다. greg egan의 마침 읽고 있는 책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오는데, 중간에 주인공이 세속적인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다소 재미가 없었다. 그래도 어제 읽은 제임스 발라드의 '엄마의 마지막 산, K2'처럼 위선적인 냄새는 풍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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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지어진 킹 에드워드 7세 학교 운동장. 올 잔디 그라운드. 축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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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식과 식민지 식이 섞인 부실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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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애드워드 7세 학교 건물. 잘못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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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3가지 양식이 섞여 있는 듯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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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에 지어진 Halaman Pasar. 파사르는 광장이라는 뜻인 것 같은데 말레이지아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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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말레이지아에서 닭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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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앞에 있는 것은 주차기 미터. 건물은 썩었어도 거리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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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건물.


 다섯시쯤, The Store 앞에 앉아 빈둥거렸다. 언제 비가 올지 몰라 공원에 갈 수는 없고(어제도 이맘때쯤 비를 피해 숙소로 돌아왔다) 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미국만 다인종 국가가 아니다. 말레이지아는 말레이, 인디언, 차이니스, 타이 등 동남아인들의 집결지로 보이는데, 매우 사이가 좋아 보인다. 그런데 차이니스는 적응을 잘하는 종족일까? 동남아 어딜가나 중국인이 있다.   

어떤 아줌마가 내게 다가 오더니 손을 불쑥 내밀며 동전을 건네 주고 걸어갔다. 뭐라고 할 새가 없었다. 생각해보니까 그 아줌마는 날 거지취급한 것 같다. 동전을 살펴보니 20센트짜리였다. 어이가 없군.   

버스 터미널에 들러 Kuala Kansar행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식당가에서 2.2링깃짜리 닭밥 하고 닭 다리(1.5) 하나, 에어 토푸(0.6)을 사 갖고 숙소에 와서 먹었다. 오늘도 '싸고 맛있고 푸짐한 현지 식사'에 성공한 것이다.   

방에 물이 떨어져서 물 달라고 말해놓고 담배 사러 The Store에 갔다. 주인이든 점원이든, 싱글싱글 웃기만 한다. 왜 나한테는 여자를 방에 들여다 줄껀지 안 물어보는 걸까? 외로워 죽겠는데.
 
줄 서서 기다리느라 담배 하나 사는데 30분이 걸렸다. 담배 한 갑에 4.9링깃, 내 앞에는 엄청나게 큰 아이스크림 한 통을 사 가는 아이가 있었다. 흘낏 가격을 보니 4.5링깃이었다. 정상적인 기준에서 보더라도 식비로 4링깃을 쓰고 음료수 사느라 1링깃 정도 소비하는 이 여행은 지나치게 가난한 것이다. 하루에 숙박비를 합쳐 50링깃이면 뒤집어 썼다. 대략 17000원 수준. 그런데 아이가 10링깃~20링깃 쯤은 우습게 사용하는 듯 싶다. 화폐 감각으로는 1링깃이 천원 정도 되는 것 같다. 말레이지아가 상대적으로 잘 살거나 내가 가난해서 4.9링깃짜리 담배를 사 들고, 4.5링깃 짜리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아이에게 경악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pda를 뒤져보니 14일 동안 30만원 가량 썼다. 그중 절반이 술값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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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콘센트에서 220V 전원을 사용하려면 윗 구멍을 저렇게 쑤셔야 플러그가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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