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6.01 bystander 2

bystander

잡기 2008. 6. 1. 15:14
왕회장(정주영)과 이명박의 공통점: 둘 다 소몰이꾼이다.

5월 24일부터 아프리카TV로 시위 상황을 지켜보았다. 저번주에 있었던 강경 진압 와중 여자들이 '남자들은 어디갔냐'고 비명을 지를 때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클로버필드 보는 기분이었다. 일주일 내내 일 때문에 바빠서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지 못하다가 토요일 근무를 일찍 마치고 서울 광장으로 향했다. 몇 년 전에는 노무현 탄핵 반대하러 집회에 참석했는데, 이번에는 현직 대통령 탄핵 때문에 집회에 참석한다.
 
5월 31일 7.30pm 종각 근처에서 떡볶이 한 접시 먹고 소라광장으로 갔으나 아무도 없었다. 전경 부모들이 피켓을 들고 데모하는 자리에서 어떤 젊은 친구가 역성을 내고 있었다.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서울광장으로 향하니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사실 비장한 데모대라기 보다는 무슨 축제같은 분위기. 촛불이나 종이 쪼가리 한 장 가진 것 없어 촛불문화제 구경.
8pm 조금 넘어서 문화제는 대충 집어치우고 좀이 쑤신데 가두시위 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사회자는 오늘은 청와대로 가자고 외쳤다. 소라광장->서울광장->광화문->청와대는 당연한 수순아닐까? 문화제->가두시위로 문화제의 모습이 변질되는 것처럼. 그때까지는 그냥 돌아가려고 했지만 청와대라니, 구미가 당겨서 가두시위대를 따라 나섰다. 시위대가 떠난 자리는 깨끗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5월 31일 가두 시위대의 산발적인 이동 경로. 경복궁쪽 상황은 잘 모름.

광화문 쪽에 저지선을 쳐 놓아(보라색) 시위대는 두 파로 나뉘어 한 팀은 덕수궁을 돌아 경복궁 쪽으로 가고 다른 팀은 소공로를 통해 종각을 지나 안국역 방면으로 진행. 요르단 전이 끝나고 상암 경기장의 인파가 시위대에 합류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명동을 지나면서 인도변의 많은 시민들이 합류하거나, 성원했다. 구호는 '이명박은 물러나라', '민주 시민 함께 해요' 등등.
 
안국역이 가까워 지면서 선봉을 지나 선두에 섰다. 국민대책회에서 나눠주는 구호문('이명박 OUT')을 들었다. 어쩌다보니 시위대의 맨 앞에 섰다. 1차 저지선에 전경들이 방패를 들고 서 있다. 도로는 텅 비어 있고 나를 비롯한 대여섯명이 달려가기 시작, 수백명의 방패 앞으로 달려갈 때 이러다 두들겨 맞고 뒈질지도 모른다는 전율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우리가 들이닥치기 전에 전경들은 신속히 닭장차 뒤로 후퇴하고 닭장차가 후진하면서 도로를 차단했다. 

10pm 무렵까지 시위대가 속속들이 도착했고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와 아줌마 둘이 닭장차에 올라가 전경들을 향해 백팔배를 한다. 한 동안 소강 상태가 이어졌다. 조직적인 시위와 거리가 먼 탓에 구호는 산발적이고 자발적이고 즉흥적이지만 고시 철회, 협상 무효 보다는 이명박 퇴진을 외치는 구호가 주류를 이뤘다.
 
10.30pm쯤 전경들이 후퇴, 시민들이 저지선을 뚫은 것이 아니라 전경들이 막아놓은 닭장차를 내버려 두고 2차 저지선(빨간색)으로 후퇴한 것이다. 시위대는 닭장차 사이의 비좁은 틈을 지나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닭장차는 시동이 걸린 채였고 많은 시민이 지나간 후 퇴로가 차단될 것을 우려해 일부 시민과 나는 닭장차를 노변으로 끌어내기 위해 닭장차 문을 강제로 열고 숨어있던 전경 운전수를 끌어내렸다. 그 와중에 한 시민이 전경을 걷어찼고 다른 시민 몇몇이 비폭력을 외치며 뜯어 말렸다. 어쨌거나 이미 많은 시민들이 막아놓은 닭장차 사이로 빠져 나왔다. 다른 시위대는 경복궁역 방면, 사직터널 등지에서 전경과 대치 중이라고 한다.
 
11.30pm 무렵까지 대치 상황은 계속되었다. 최전방 전경들에게 시민들이 물을 나눠주거나 수고가 많다고 말을 걸었다. 매우 평화적인 시위였고 광화문 일대는 가두시위중인 시민들로 가득찼으며 보라색 차단선이 사라진 상태라 더 많은 시민들이 들이닥쳤다. 온다던 상암 응원단은 도착하지 않았고 사직 터널 쪽은 막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많은 시민들이 준법 시위를 외치는 와중에도 일부 시민은 경복궁 담을 넘고 들어갔다. 피곤해서 그쯤 해두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12am 에서 4am까지 아프리카 TV를 통해 시위 상황을 지켜보았다. 닭장차 너머로 물병이 날아왔다. 소화기가 터지고 살수차에서 물을 맞고 오들오들 떨던 시민들이 땔감을 구해 모닥불을 지폈다. 디씨음식갤을 비롯한 몇몇 단체, 개별 시민들이 먹거리와 담요, 옷가지를 싸들고 시위대를 지원했다. 끊임없이 물을 뿜는 살수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치기 시작했다. 상암팀이 지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람수가 좀 더 많았더라면 진압 때 밀리지 않았을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략 2-3만명이 처음에 그 자리에 있었고 12시가 넘으면서 많은 수가 집으로 귀환. 약 5-6천명의 시민이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105개 중대 약 만명 이상의 진압대가 투입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청와대는 여전히 조용하고, 시위대에서 청와대까지의 거리는 약 1.5km. 4.30am쯤 진압이 시작되어 시민들이 연행되고 방송하던 진중권도 잡혀 들어갔다. 시위대의 숫자가 현저하게 줄었다. 아침 무렵에는 남은 시민들이 서울광장으로 재집결했다.
 
6월 1일 오늘도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어젯밤의 상황으로 짐작컨대 촛불 켜고 소원이나 비는 '문화제'는 이미 물 건너 갔고 오늘은 대낮부터 주로 가두 시위가 이루어질 것 같다. 한밤중의 대치 상황은 서로에게 위협적이고 일부 객기가 지나친 시민들이나 며칠 동안 계속 동원되어 스트레스를 받은 전경들 사이에 감정적인 충돌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그걸 피하려면 시위는 낮에 하는 편이 낫다. 낮에 하면 아줌마, 어린이들을 비롯한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고, 텍사스 소떼같은 엄청난 수의 시민은 그들 스스로가 스스로의 방패막이가 되어 줄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이들 시위가 상상 이상으로 평화적이고 끝까지 자기 통제력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경들도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인 걸 아는 것 같다. 교통경찰도 이해하고,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를 보는 버스 운전수들도 짜증을 부리지 않았다.

일주일여 동안 밤마다 시위대의 실시간 동영상을 보면서 언론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주요 매체에서 시위의 양상이 제대로 소개된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80년대 식의 효과적인 언론통제? 지금은 아프리카TV, 라디오21, 오마이뉴스 생방송, 진보신당의 방송을 통해 알음알음, 지인들을 통해 소문이 번지고 있다.

어제보다 더 많은 인원이 참여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 기온이 조금 더 올랐고 살수차에 대비해 판초 우의와 우비, 우산, 가방에 여분의 옷가지, 식수와 간식꺼리를 담고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폰을 소지한(말하자면 단단히 무장한) 시민들이 서울광장과 광화문으로 몰려들 것 같다. 닭장차 앞 바퀴에 밧줄 달면 닭장차를 도로변으로 옮길 수 있단다. 밧줄 뿐만 아니라 사다리도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