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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1.02.10 동남아시아#1: 태국
한국은 여전히 열혈냄비촌 같았다. 국적이 신통치 않아 자신이 트로피컬 프룻 칵테일같다는 기분을 항상 느끼고 있었다. 타이가면 타이 사람이고, 라오스 갔더니 라오스인이고 말레이인 취급도 당해보고 싱가폴에서는 차이니스 대접을 받았다. 오직 한국에서만 한국인 취급을 안해들 주셨다. 심지어 솜바디는 나를 외계인 취급했다. 별로 간 데도 없는데 경비만 오지게 깨졌다. 방콕, 푸켓, 위앙짱, 왕위앙, 쿠알라룸푸르, 카메론 하이랜드, 이포, 타이핑, 쿠알라 캉사르, 멜라카, 싱가폴, 기타 이름없는, 혹은 이름이 기억 안 나는 몇몇 깡촌들을 섭렵하고 20일 동안 나태하고 게으른 생활을 하다가 돌아왔다. 

42만원짜리 싸구려 항공 티켓으로 비행기 다섯번 갈아 타 봤고, (서울-오사카, 오사카-방콕, 방콕-쿠알라 룸푸르(이하 KL), 싱가폴-오사카, 오사카-서울) 그보다 싼 38만원짜리 티켓을 놓쳐서 후회했다. 

경비는 하루 평균 15000원씩 20일 정도, 그러니까 30만원 정도 되고 술값이나 비자 발행 덕택에 +12만원 더 들어갔는데 이 정도면 가히 황태자급 생활수준이었다고 볼 수 있다. 태국에서는 하루 평균 15000원, 말레이지아에서는 2만원, 싱가폴에서는 3만원을 계산했는데 역시나 술값 때문에 추가 경비가 만만치 않게 들었다. 

디지탈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삼성의 SDC-80. 14만원짜리 중고로 구입하여 그동안 유용하게 사용하던 것. 4MB로 30장 가량을 찍을 수 있다. 용산에서 3-4만원 주고 32MB짜리 MMC 를 하나 더 장만했고 덕택에 200여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작은 충전기를 들고 다녔지만 충전할 수 있는 컨센트가 있는 곳이 드물어 오히려 애를 먹었을 뿐이다. 그리고 PDA에 Bangkok과 Singapore City Guide를 설치. 그렇게 크게 유용하지는 않았다. 가끔 밤에 싼 레스토랑을 찾아보는 것 외에는 거의 쳐다보지도 않았으니까. 손목에는 시계를 찼다. 전지가 들어가는 것들은 이렇게 셋이었다. 이런 저런 한글을 쓸 수 있는 180MB 분량의 싱글판 크기 CD도 들고 갔다. 인터넷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별달리 쓸모를 느끼지는 않았다. 여행 내내 email을 확인만 하고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냉장고에 들어있던, 썩을만한 음식들은 빼내어 쓰레기 봉투에 담았다. 냉장고는 내 검소한 두뇌처럼 들은 것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컴퓨터의 전원을 제외한 전기 용품들을 모두 껐다. 컴퓨터의 전원을 켜 놓고 가서 다소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저러다가 꺼질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난 3개월간 한번도 정전된 일이 없으니, 믿기로 했다. 

삼성역 근처의 외환은행에서 환전을 했다. 빳빳한 백 달러 짜리 지폐 두 장과 50달러, 20달러 두 장, 10달러 한장. 경비가 모자라면 카드를 사용하기로 했다. 근처 서점에 들러 헬로 타일랜드 북부 편을 샀다. 배낭에는 티셔츠 두 벌과 수영팬티(팬티 대용으로 요긴), 반바지, 혹시 트래킹하다가 필요할 지 몰라 챙긴 침낭, 안티 모스키토 스프레이, 선 블럭 크림, 타월, 룽기, 가이드 북 두 권, 세면도구 약간, 아스피린과 두통약, 보조가방 하나, 디지탈 카메라, PDA, 기타 잡동사니들을 허술하게 쑤셔 넣었다. 짐은 얼마 안 되었지만 배낭이 원래 좀 무거웠다. 오사카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긴 바지를 입고, 긴 팔 면 셔츠 한 벌과 오버복을 그 위에 걸쳤다. 이것들이 여행중 짐이 될 것은 뻔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방콕 인, 싱가폴 아웃이라 겨울옷만 갈무리해 보관해 두기도 마땅치 않다. 걸리적거린다. 

그것도 몇 번 들락거리니까, 김포 공항이 낯설지 않았다. 인천 신공항 안내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남은 돈으로 가장 싼 여행자 보험을 들었다. 11000원. 인터넷으로 들었더라면 6-7000원이면 되는 것. 공항 사정으로 비행기가 약간 늦게 출발했다. 난바행 막차가 몇 시냐고 묻는 한국인이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생각해보니 저번에는 배낭을 짐으로 부쳐 오사카 공항을 빠져나와 난바 역까지 간 우스운 일이 있었다. 물가가 비싼 일본에서 여행경비의 거진 절반을 까 먹고 호텔 가격이 너무 비싸 결국 공원 한 복판에서 거지들과 함께 박스 깔고 잤던 기억이 난다. 그때 시장통에서 먹은 라면이 참 맛있었지. 그때 자판기에서 뽑아든 럭키 스트라익 담배 한 개피도 맛이 있었지. 그때, 잠시 부슬비가 내렸지. 
 
-*-
 
오사카 공항에 도착, 단 한번 밖에 온 적이 없음에도 무척 낯이 익다. 아니 이것으로 세 번째였다. immigration 앞에서 한국인 셋을 만났다. 트랜짓을 하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그저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쳐 관리들의 양해를 구하고 Immigration 창구의 옆으로 빠져나와 트랜짓하는 작은 출입구로 들어갔다. 그들이 따라왔다. 한국인 중 하나는 괌에 일주일 예정으로 가는 중이다. 마감에 쫓겨 3일을 까먹고 가자마자 간신히 이틀 정도 지낼 수 있는 형편이란다. 그것도 호텔에 짱박혀 노트북을 두들기게 될 것이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마도 스크립트 작가?   

술만큼은 안 먹겠노라고 결심했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트랜짓 하려고 밤에 덜덜 떨고 있는데 커다란 더플 백을 들고 나타난 사나이가 있었다. 그의 가방 무게가 장난이 아니라서 뭐가 들었냐고 물었다. 자신의 선배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말레이지아로 날아가고 있다고 말하던 이 친구는 4홉 들이 소주 일곱 병을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본 순사가 지켜보고 있었지만, 의무감에서 하는 수 없이 병을 깠다.
 
중국에 갔다 온 적이 있는 친구다. 계림 여자들이 예쁘지 않냐고 하니까 소주가 진짜란다. 가을에 중국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비자 만료로 쫓겨난 어떤 아저씨가 합류했다. 그는 회사내에서 권력투쟁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 병 마시고 알딸딸해 있는데 우리를 지켜보시던 일본 순사분께서는 패스포트 검사를 요청하셨다. 패스포트는 남에게 함부로 건네줘서는 절대 안되는 물건이다. 우린 고성방가도 안 했고 노래도 안 불렀으며 단지 물을 마시고 있었을 뿐이다. 순사 양반, 보시오. 이 투명한 '미네랄' 워터를! 그렇게 마셨다.
 
의자에 드러누워 잠자는 동안 공항 내부 시설의 보수 공사 때문에 사방이 시끄러웠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눈을 떴다. 침을 흘리고 자다가 깨었을 것이 분명한 의자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아침.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간밤에 함께 술을 마시던 사람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화장실에서 이빨 닦고 세수한 후, 히죽 웃었다. 보딩 패쓰를 얻기 위해 ANA desk에서 전화를 걸어보니 게이트 앞에서 준단다.
 
비행기를 탔다. 술이 덜 깨 속이 아프다. 공사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이리라. 죽어라고 일본어로만 지껄이는 스튜어디스에게, 죽어라고 영어로 물만 시켜 먹었다. 4시간 동안의 지루한 비행. 이코노믹 클래스 신드롬이라던가? 그런 정신 병리 현상이 생각났다.
 
창 밖의 구름을 쳐다보며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애니들을 생각했다. 구름은 비좁은 섬의 답답함을 벗어난 자유다(아마도). 자유를 누리기 위해 이렇게 옴짝 달짝 좌석에 들러붙어 앉아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을 참는 것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에서 올 때 옆 사람이 다 본 신문을 가져온 것이 있는데(신문지는 탁월한 보온 효과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모포가 없을 때는 신문지가 그만) 읽다보니 한 광고가 눈에 띄었다. 서울문화사에서 DK(도링 앤 킨슬리?) 출판사의 가이드북이 한국 번역판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보았다. DK 출판사라면 illustrated sf encyclopedia를 팔아먹는 곳인데 박상준님 번역은 잘되가는지. dk의 가이드북이 나오면 한국의 유럽 여행 가이드북들은 수줍은 나머지 자살하게 될 것 같다.
 
내가 본 신문은 한국 4대 일간지(스포츠 서울, 일간 스포츠, 스포츠 조선, 스포츠 투데이)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정확한 루머를 생명으로 한국 최고의 신문임을 자처하는 '일요신문'이다. 일요신문을 보면 남보다 적어도 2개월은 앞서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른 신문들은 늘상 일요신문에서는 가볍게 다루는 시시한 가십꺼리 하나로 특종이라도 낸 것처럼 뒷북을 친다고 하더라.   

한심한 ANA의 기내식에 기분이 편찮아서 비행기로 지나가다가 내려본 거대한 정글 평원 한복판을 군달리니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흘러가고 있는 메콩강을 바라보며 저 강을 건너갈 것이다. 라고 다짐했다. 비행기의 속도와 경과시간으로 보건대(시속 900~1000kmh로 고도 15000m에서 항행중) 저건 분명 동남 아시아를 술취한 놈의 걸음걸이처럼 가로 지르는 메콩강이다. 가이드북을 펼쳐 보았다. 덮었다. 빙고. 맞았다. 고독한 여행자의 유일한 벗, 가이드북. 그 정확한 정보가 생명이기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 번 쯤은 읽어보게 되는 성서같은 책.   
16:00, 방콕의 돈 무앙 공항에 도착. 입출국 카드가 비치되어 있지 않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안내양(?)에게 한장 얻어 쓱쓱 작성하고 길다란 줄의 말미에 섰다.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국에서 세웠던 모든 계획을 때려치우기로 결심했다. 태국은 건기, 가장 여행하기 좋은 시즌이라 관광객들이 떼거지로 몰려왔기 때문. 그래서 본능에 따라 움직이기로 작정했다(거짓말). 환전소 앞에서 얼쩡 거리다가 달러를 환전하지 말고 ATM에서 뽑아쓰기로 했다. 3000 바트를 뽑아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3000바트의 카드 수수료가 무려 450바트나 되었다.  

공항 청사를 빠져 나오자 마자 소름끼치게 확 덥치는 강렬한 열기, 그 앞을 쌩쌩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서, 다시 왔구나, 이번엔 쉬러 왔다. 라고 중얼거렸다. 아무 것도 낯선 것은 없었다.
 
처음부터 3.5밧 짜리 에어컨도 안 들어오는 싸구려 버스보다는 그래도 멋지게 한번 방람푸로 진입해 보자는 생각으로 거금 100밧짜리 에어컨 버스에 올랐다. 제작년 고경환과 함께 한밤중에 방콕에 도착하여 벙쩌서 택시 기사한테 사기 당한 넝마같은 추억이 떠올랐다. 들르는 게스트 하우스마다 빈 방이 없어서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각에 홍익인간과 만남의 광장 문을 두들기며 문 좀 열어달라고 불쌍하게 소리지르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라 기분이 씁쓸했다. 7 eleven에서 컵라면을 사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그 괴상한 맛이 나는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모기에 물리면서, 거지같은 행색으로 거리를 떠돌았다. 그때도, 쉬러 왔다! 라고 주장하긴 했다. 방콕 시내의 악명 높은 교통 체증 탓에 2시간이 걸려서야 카오산에 다다랐다.   

친근한 카오산 여행자 거리, 어쩐지 고향에 돌아온 듯한 희안한 기분이 들었다. 오기 전에 The Beach라는 영화를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 보았다. 영화 장면 장면에 카오산 거리가 나오는 것을 보며 추억에 잠기던 기억이 떠올랐다. 값싼 항공권을 구할 수 있고, 위조 신분증도 만들 수 있다. 밤이면 술에 취한 파란눈과 게이들이 우글거리는 곳. 멕시코행 비행기표 가격을 알아보니 대략 78만원. 한국에서는 220만원. 죽여주는군.
 
동남아시아에 대형 허브 공항이 셋인데, 1. 방콕의 돈 무앙 공항, 2. 홍콩의 첵랍콕 , 3. 오사카의 간사이. 여기에 덧붙여서 인천의 영종도 공항이 끼어들락말락하고 있다. 이중에서 단연 방콕이 항공권 가격이 가장 싸다.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일대를 통과하는 주요 항공 루트의 중심에 있기 때문인 듯 싶다. 인천의 영종도 신공항도 아시아의 새로운 허브가 되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국제 공항 청사가 인천쪽으로 이동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인천 공항은 너무 멀다. 서울에서 국제선 탑승을 위해 그곳까지 가는데 대략 6000원 정도의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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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프라야 강의 선착장

가 경비가 발생한다.  
 
방콕엔 별 볼일 없으므로 트래블 에이전시에 패스포트를 맡기고 거금 750밧을 들여 라오스 비자를 신청한 후 홍익인간에 짐을 풀었다. 거리에서 최강의 닭똥집 꼬치구이를 사서 우적우적 씹으면서 강 바람을 쐬러 차오 프라야 강으로 향했다. 물 비린내가 풍겨왔다. 입가에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감방에서 탈출한 것만 같다.

그러나 여행사에 맡겼던 패스포트가 재앙을 불렀다. 바로 라오스 대사관에 가던가, 국경 부근에서 웃돈 조금 더 주고 만들면 될 것을 그것 때문에 3일 깨지게 되었다. 다음날 언제 나오냐고 물어보니 주말이 끼어 있어서 5일이 걸린다나? 엿 먹을. 여권은 이미 라오스 대사관에 가 있고 나는 갑자기 꼼짝도 못하는 바보가 되었다. 게으름 피우려다가 오히려 시간을 손해 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캄보디아 행을 수정해 적당한 해변에서 놀아보기로 했다. 

게스트 하우스에 있는 여행자들에게 물어보니 한 친구가 푸켓에 간단다. 동쪽 해안은 폭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저녁 아홉 시가 넘어서 남부 터미널에 갔다. 매표소는 이미 문을 닫은 상태. 카오산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탈 때는 기분이 허탈했다. 차장이 버스비를 받지 않아 불러서 받아가라고 말했다. 방람푸를 못알아 듣더니 3바트만 받았다. 서점에 들러 Fall of Hyperion을 샀다. 헌책을 새책 가격만큼 팔아먹고 있어서 카오산 근처의 헌책방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지 않다. 그나저나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PDA에 읽을 책만 여섯 권이 있는데... 그저 책 욕심 때문에 책을 사다니...   

홍익인간에 돌아와 보니 인도에서 온 친구들이 있었다. 꾀죄죄한 복장에는 '인도표'라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 적혀 있었다. 인도보다 물가가 두 배나 비싸니 약간 어리둥절한 듯. 인도의 관광지 입장료가 많이 올랐다고 한다. 버스표를 못 구해 하루를 공친 기분이 들어 12시쯤 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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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앞 광장의 아침 모습


아침 일찍 일어나 죽집에서 계란 넣은 까오 뚬 무를 먹었다. 사원 앞에서 30번을 탔으나 남부터미널로 가지 않는다고 차장이 고개를 젓는다. 두 번 갈아타고 박물관 앞에서 간신히 30번에 탑승. 푸켓행 에어컨 1등석 티켓을 예약했다.
 
카오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왕궁에 들렀으나 복장불량으로 쫓겨났다. 패스포트를 제시하면 샌달을 빌려주는데 패스포트는 가게에 맡겼고, 주민등록증을 보여주자 영어로 쓰여진 신분증이어야만 한다며 거절했다. 그래도 인도 사람들보다는 똑똑한 편이랄까? 그땐 아무거나 보여줘도 통했는데. 사정을 했지만 완강하게 거절해서, 패스포트를 맡긴 나 자신을 저주하며 왕궁에서 나왔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입을 꾹 다물었다. 아마 내가 일본인처럼 보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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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Pillar와 그것을 담고 있는 사원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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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왜 도시의 상징적인 조형물에 아침부터 기도를 하러 오는지들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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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엔 뭐가 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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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인지 사원인지(왓 프라케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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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뭘까? 찍어놓고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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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의 사진. 분명히 노랑머리의 스웨덴인가 덴마크의 여성인데 나중 사진을 보면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었다. 왕이 재혼을 한 것일까? 아니면 머리를 검게 물들인 것일까?

 

배를 타고 차오프라야 강을 따라 내려갔다. 뱃전에 서성이고 있을 때 한국인처럼 보이는 친구가 있었다. 어딘가 가려고 태국인들에게 묻고 있는데 그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난감한 듯. 인사를 건네자 깜짝 놀라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여행 마지막 날이라고 방콕에 있는 대학교를 방문해 보고 싶다며 찾아가는 길. 태국인들에게 말을 거는 모양을 보니 붙임성이 있어 보였다. 그에 비하면 난 붙임성도 없고 대체로 조용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차이나타운을 구경했다. 별로 볼만한 것이 없다. 과일주스 먹고 과일을 먹으면서 매연이 지독한 거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싸얌 스퀘어로 향했다. 근처의 시장 거리를 헤메다가 싸얌 스퀘어 부근의 인도네시아 대사관 앞을 천천히 걸어갔다. 길에서 누군가 갑자기 악수를 청했다. 자신을 인도네시아 대사관에 근무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저런 말을 나누다가 언제든지 놀러 오라고 하면서 대사관으로 사라졌다.
 
나보다 한국의 사정을 더 잘 알고 있어서 놀랐다. 한국- 일본에서 2002년 월드컵이 열리는데 국가명 표기 문제로 양국간 감정이 나빠졌다나? 한국-일본으로 할 것이냐, 일본-한국으로 할 것이냐 하는 우스운 문제였는데 그거야 각 나라에서 열리는 경기에 따라 한국에서 열리면 한국-일본으로 하고, 일본에서 하는 경기면 일본-한국으로 하면 되지 않겠는가, 나름대로 잔대가리를 굴려 솔루션을 만들어 봤는데 세상 물정에 별 관심이 없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모르겠다. 애들도 아니고 뭐 그런 문제로 국민정서 운운하며 나라간에 싸움이 난다는 것인지 졸지에 인도네시아인의 입장에서 차분히 생각해 보았다. 그가 내게 악수를 청한 것은, 알고보면 나를 대사관에 볼 일이 있어서 찾아온 인도네시아인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거리에 홀로 남겨진 채 쓸쓸히 고개를 돌려 보았다. 국민학교 아이들이 똑같은 흰색 플란넬 교복과 감청색 주름 치마를 입고 학교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애들과는 달리 까무잡잡한 얼굴이 귀여워 보였다. 로리콘 이라는 것이 왜 생기는데 이해가 간다.
 
근처 극장에서는 '헐리웃 블록버스터 타이타닉을 침몰시킨' 영화, '쉬리'가 대낮에 버젓이 상영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배를 탔다. 배 타는데 재미가 들렸다. 도시 중심부를 거미줄처럼 지나가는 수로가 발달한 덕택에 버스보다는 배가 편하다. 위치가 불분명해서 옆에 있는 중에게 물어보니 방람푸까지 간다고 말해주었다. 영어는 못하는 것 같았다. 안심하고 있었는데 엉뚱한 강 건너편으로 배가 간다. 중에게 다시 물어보니 손가락으로 건너편을 가르키며 '방람푸'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배는 방람푸로 가지 않았다. 중은 그저 '방람푸는 저기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화딱지가 났지만 의사전달이 안된 내 탓이니 할 수 없이 강을 건너갈 방법을 찾아 보았다. 거리 어귀에서 빈둥빈둥 놀고 있는 모토사이(moto cycle)를 발견, 30밧이란 비싼 값을 치르고 흥정 한 번 안해본 채, 방람푸로 돌아왔다.   

30밧에 쪽발이 샌달을 사 들고 숙소인 홍익인간으로 돌아왔다. 첵아웃 시간을 넘겨서 미안했는데 그저 조용히 가란다. 여행자들끼리 봐주면서 사는 거란다. 샤워를 하고 미안한 기분이 들어 비빔밥과 콜라를 시켜 먹었다. 외국까지 와서 비빔밥과 콜라를 먹으려니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다. 그 지역에 가면 그 지역 음식을 먹어야지...   

저녁, 게스트 하우스에서 홍콩에서 죽을 쑤다왔다는 푸켓행 여행자가 먼저 터미널로 떠났다. 거리를 빈둥거리며 환전할까 망설이다가 버스 스톱에서 거의 30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아까 먼저 떠났던 푸켓 간다는 친구를 다시 만났다. 잠깐 가이드북을 보여줬더니 자신 것과 비교해보고, 입을 쩍 벌린 후, 푸켓 대신 크라비로 가겠다고 결정하고는 바로 표를 바꾸러 간다. 난 안 바꿨다. 그렇게 되면 크라비에서 경비 절감이라는 불쌍한 목적으로 더블룸에 그와 함께 묵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런 상상을 하니 고독하고 쓸쓸하지만 여유로운 여행 기분이 안 날 것 같았다. 푸켓 쪽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 분명하다. 물가도 크라비보다 비싸리라는 것이 뻔했지만 그래도 안 바꾸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난 관광객이야.  

VIP 버스에서 좌석이 남는지, 길에서 배낭에 주저 앉아 있던 나를 차장이 부른다. 이게 왠 떡이냐 싶어 VIP 버스에 올라탔다. 1분도 채 안되어 내가 앉은 자리의 좌석 번호를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 내렸다.
 
강력한 에어컨을 장착한 버스에 올랐다. 살갗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추워 룽기를 뒤집어 쓰고 시트에 웅크린 채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에어컨 일등 버스(뻐 썽)은 처음 타 본다. 늘 싸구려 버스만 타 봤다. 커피 두 팩과 과자, 그리고 물수건, 그리고 무료 야식이 있었다. 무료 야식의 제목은 '닭죽'이다. 맛있다.   

신경안정제(속칭 수면제)를 두 알 삼켰다. 밤낮 없이 미친 놈처럼 일만 하다가 멜라토닌과 세로토닌 밸런스가 무너진 상태라 최근 생활이 엉망이 된 후, 잠잘 시간을 어떻게든 지켜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최근에 수면제를 간혹 먹는 경우가 있었다. 이상한 것은 수면제를 먹으면 일종의 환각 상태에 빠진다는 점. 마치 누군가 옆에 있는 것 같고 그와 대화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면도칼로 도려낸 듯한, 경계가 뚜렷한 환상과 현실의 석양 속에 내 정신상태가 반쯤 잠겨있었다는 자각을 하고 깜짝 놀라 제 3의 상태, 그러니까 꿈도 현실도 아닌, 죽도 밥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경련하듯 서둘러 도망친 후 자신의 의식과 분리되어 관찰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나타난 환각 때문에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도망갔고 나는 내가 천사와 함께 굉장히 고상한 주제로 심각하게 토론을 했던 것 같은, 불쾌한 기분만이 씁쓸하게 남았다. 내가 어깨를 기댄 남자는 천사같이 생기지 않았다. 어린시절 읽은 동화책들은 왜 천사와 인어가 몽땅 female인 체 했던 것일까? 아마도 그들은 어린시절 로맨틱한 낙원속에서 순수함을 잃지 않고 심심하게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나보코프가 몹시 읽고 싶어지는군. 창백한 불꽃. 몽유병적인, 유리로 실을 뽑아 만든 듯한 소설. 반면 플로베르의 소설에서는 언제나 갓 구운 빵 냄새와 머멀레이드 향기를 느꼈다. 왜 일까? 그러고보니 오줌, 똥 냄새가 지독하게 났던 사드의 소설도 생각났다. 독도일식. 그래...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이야. 흥.   

푸켓타운에 도착하여 버스를 내리자 마자 삐끼들이 환한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옷차림이 깨끗한지라 내가 관광객임을 한눈에 알아봐준 그들에게 일단 고마웠다. 비몽사몽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충분히 햇빛을 쬐었다. 햇빛을 쬐면 엉망이 된 인체시계 역시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제대로 동기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특히 정수리 깊숙이 도사린 제 3의 눈, 또는 영혼의 자리라면서 카발라나 오컬트가 개똥같은 구라를 쳤던 부근, 칸트도 언급했지 아마? 아... 이름이 기억 안 나지만 하여튼 그 부근의 세포들이 일제히 동기화하여 배꼽시계가 제대로 맞아 들어가기 시작한다. 우울증의 치료에 햇빛이 좋은 이유와 관계가 있는듯. 수면 불균형은 확실히 우울증을 유발한다. 착한 어린이들 중에 우울증 환자가 거의 없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만. 착하지 못한 아이들이 밤늦게 책을 읽기 때문인지, 우울증은 문학적 재능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문학적 재능이 밤과 친연관계에 있듯이? 예술은 원래 밤과 친하니까. 떳떳치 못해 베일 속에서 퇴폐적으로 꼬리나 흔들어대고 있으니까.   

해변은 비싼 관계로 푸켓타운 근처에 숙소를 잡기로 했다. 온온호텔이란 곳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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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온 호텔

The Beach, 그러니까 내게 태국에서 보낸 지난 10여일을 추억케 해 준 영화에서 디카프리오가 묵었던 호텔이다. 당연히 바퀴벌레같은 여행자들로 꽉 차서 빈 방이 없었다. 그래서 거리를 동서남북으로 헤메며 싼 숙소를 찾아 다녔다. 방이 다들 꽉 찬 상태였다. 쌈러 기사에게 물어보니 30바트면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 데려다 주겠단다. 30바트는 못주겠다고 우기니까 10바트로 떨어졌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누구나 가기를 꺼리는 마지막 남은 숙소로 향했다.
 

적어도 타운에서 15분 이상이나 떨어진 자그마한 호텔에 들어가자 미군 베트남 상이용사처럼 보이는 작자가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인사를 했다. 베트남 상이용사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랬다. 방값은 180바트, 거참 비싸군. 그러나 벽에 도마뱀이 기어다니지 않아서 정말 좋았다. 팬은 싱싱하게 돌아가고 수건 두 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비누마저 다소곳이 얹혀 있다. 화장실을 열어보니 화장지까지 비치되어 있었다. 80바트 차이로 게스트 하우스와 수준이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 관광인 것이야!)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란 책에 보면 호텔같은데서 왜 여행자들이 부주의하게 깜빡 챙기지 못한 것들, 그러니까 칫솔과 치약을 비치하지 않는가 운운하는 배부른 소리를 늘어놓는 부분이 있다. 에코를 한국의 여관에 한번 모셔보면 그 청결함과 세팅 면에서 세계 최고의 숙소중 하나로 손꼽히는 한국의 여관에 깊이 감동하지 않을까 싶었다. 온돌, 30 채널 이상(거기에 가라오케까지 가능한)의 24시간 TV, 에어컨, 작은 냉장고, 무료 미네랄 워터, 온수, 칫솔, 치약, 타월, 전화기, 무드 조명, 물 침대, 24시간 음식 배달 서비스, 심지어는 히든 카메라까지 설치되어 24시간 숙박객의 안전을 자상하게 모니터링해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나 있을까? 한국에서 에코를 초빙할 때 그를 호텔에 재우기 때문에 그런 쓸데없는 글을 쓰는 것이다. 

짐을 던져 두고 샤워 하고 안에 수영복을 입은 후 나오자마자 보이는 식당에서 엄청나게 싼 값에 한끼를 때우고(단돈 10바트) 여행사에 코피피 투어를 예약하고 가게를 나왔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 보았다. 여행사의 뚱뚱한 아줌마가 한참동안 나를 쫓아오며 부르고 있었는지 땀에 흠뻑 젖은 채 헉헉거렸다. 투어 결재를 카드로 했는데 깜빡 잊고 카드를 놔둔 채 사인도 안 하고 그냥 나온 것이다. 무안하고 쪽팔려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정신이 천당에 가 있을 때가 많아 실수가 많다. 아니다.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밸런스가 깨져 수면제를 복용하고 비몽사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절한 택시 삐끼들의 도움으로 값싼 썽태우를 타면 빠통 비치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을 뿌리치고 썽태우를 탔다. 관광지 푸켓, 관광객 정상도, 아침의 해변에는 청록색으로 빛나는 안다만 해가 펼쳐져 있었다. 파도는 잔잔하다.
 
잠없는 노인네들이 해변을 따라 드문드문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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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켓 타운에서 여러 해변으로 갈라지는 길

. 파라솔과 의자를 빌려 룽기를 깔고 누워 앙각 30도 정도 떠오른 태양을 흘낏 쳐다본 후 여유있게 선글래스를 썼다. 그리고 바이저를 꺼내 들었다. 8편의 소설과 하이텔 '세계로 가는 기차' 동호회에서 캡쳐해온 여러 다양한 지역들의 최신 정보가 수록되어 있었다.
 
그렉 이건의 distress를 펼쳐 보았다. 산들바람이 불어와 정강이에 난 털들을 가볍게 흔들어 주었다. 아줌마 삐끼가 다가와 맛사지를 하면서 음료를 주문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맥주를 한 병 시켜 목구멍을 축였다. 그리고 ebook을 쳐다 보았다. 몇 줄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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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보이는 초록색 바다는 안다만 해. 그리고 빠통 해변. 느긋하게 쉬고 있는 내 발가락들이 함께 찍혔다


깨어보니 해는 저만큼 떠 있고 비치보이들이 내 파라솔을 태양의 위치에 맞춰 알맞게 조절해 주고 있었다. 허여멀건 서양애들이 뜨거운 햇빛 속에서 아우슈비츠에 수감된 유태인들처럼 벌거벗은 채 해변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오랫동안 관찰해 본 결과(주로 토플리스의 젊은 여자들을 과학적으로 관찰했지만) 그들이 왔다갔다 왕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잠시 생각에 잠겨 보았다. 왜 저들은 할일없이 시계추처럼 해변을 왕복하는 것일까? 나 역시 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했다. 소거법을 이용해 가정을 하나하나 소거해 가다가 마지막으로 결론에 도달했다. 이들은 추운 북반구에서 온, 대부분 유럽인이다. 그들은 왔다갔다 하면서 살을 태우고 있는 것이었다. 의자에 누워 프라이팬에 올려진 죽은 고기처럼 팔짝팔짝 뒤집는 것보다 천천히 해변을 걸으며 온몸을 골고루 굽는 것이 덜 바보스럽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햇살이 뜨거워지기 시작해서 바다에 발을 담구었다가 목젓까지 파도가 찰랑이는 곳으로 천천히 이동해 개수영을 즐겼다. 그리고 유럽 흰둥이들처럼 나도 해변을 왕복했다. 문득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에 깨달음도 많았다). 걷기 때문에 시장의 아케이드에 도열한 과일가게들을 한가롭게 구경하며 걸어가듯이 죽은 생선처럼 누워있는 젊은 여자들의 다양한 몸매를 즐기기가 쉽다는 점을.   

다시 자리에 누워 맥주 한 병을 더 시키고, 지금쯤 추위로 몸을 떨며 옷깃을 여민 채 도심을 바쁘게 걸으며, 사무실에 멍청히 앉아 일을 하며, 세상의 온갖 바보들이 그들의 가장 하위의 공통적인 정신상태를 수천년간 집대성한 최악의 알고리즘 중에 하나인 비즈니스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며 일에 몰두하고 있을 꺼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고소한 나머지 히죽히죽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소설을 읽다가 잠이 들었고, 다시 깨어보니 해변의 1/3 이상이 파라솔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다. 두 시 방향의 앞을 보니 홀란드나 더치로 보이는 작자가 태국인 게이와 서로 희롱하며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역시 게이들, 뒤에도 게이, 어라? 보기가 민망해서 일어서서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수중에 남자 둘이 수달처럼 찰싹 달라붙어서 몸을 비벼대며 옹기종기 여기 저기 떠 있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남자들끼리 섹스를 하고 있었다. 제기랄. 어떻게 저 자세로 가능하지? 의문이 솟구쳤지만 무시하고 그들이 없는 쪽으로 이동하여 물장구를 치며 놀다가 다시 의자로 돌아와 관심을 끊고 글을 읽었다.
 
종종 일거리가(?) 없는 게이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해변을 둘러본 결과 한 떼의(대략 대여섯 명의) 일본인들을 제외하고 동양인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들 눈에는 내가 호기심거리였나 보다. 생각보다 그들은 영어를 잘했기 때문에 이것저것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에서였다면 이런 애들을 양아치라고 불렀을 것이다. 생각보다 수입이 보잘 것 없었다. 그저 노랑머리들과 놀아주면서 식사와 술을 해결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몸매가 좋다고 칭찬하니 날더러 만져 보란다. 소름이 돋았다.
 
돌아갈 시간이 되어 샤워실을 찾아보니 눈에 띄지 않는다. 경찰서에 들어가서 샤워실 어디냐고 물으니 경찰서 샤워실을 사용하란다. 친절에 감사했지만 샤워하면서 왠지 죄지은 것처럼 찜찜했다.   

아홉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정말 푹 쉬었다. 피부가 새까맣게 탔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까페나 술집마다 유럽 힌둥이들이 전날밤 술집에서 값싸게 꼬신듯한 그들의 애인과 식사를 하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생각을 말자. 재들은 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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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켓타운의 시장 모습


시장에 들러 싱싱한 과일(망고, 망고스텐, 두리안, 바나나, 파파야, 파인애플, 수박, 자두, 사과 따위가 있었다) 몇 개와 플라스틱 박스에 포장해주는 밥, 그리고 닭발을 사들고 호텔로 돌아와 샤워하고 식사 했다. 


해가 진 다음 오토바이 뒷자리에 비벼타고 다시 빠통 해변에 가보니 광란에 가까웠다. 술집마다 태국 여자들이나 게이들이 해변을 점령한 더치 가이들에게 달라붙어 알랑방구를 끼면서 싱하 맥주를 마시고 웃고 떠들고 있었다. 일부는 거리에서 야한 춤을 추거나 깔깔 거리며 점잖치 못하게 뛰어다니고 있었고 가와사키나 할리를 몰고 다니는 녀석들이 배를 내민 채 그들을 호객하는 여자들을 희롱하고 있었다. 일부는 취해서 지그재그로 걷고 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 와우! 개판이군. 혼자 덜렁 있으니 맥주 한 잔 하면서도 적적하다. 살갗이 따끔거리기 시작해 숙소로 돌아왔다. 

온몸이 쑤셔서 자다가 깼다. 새벽 5시. 호텔 로비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마시고 해럴드 트리뷴을 읽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살갗이 탄 것 때문에 아파서 인상을 긁으며) 어제 보았던 상이용사가 와서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꽤 오랫동안 투숙한 모양. 태국에 온지 2년,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짱박혀 있는 스타일. 조만간 이곳을 떠난단다. 그러고보니 어제 저녁 터미널에서 두 다리가 잘린 상이용사를 본 기억이 난다. 두 양반 모두 동양에서 팔 다리가 잘렸다. 베트남에 참전했던 한국군 용사들은 팔 다리 하나 잃을 때마다 잃은 팔 대신 받은 냉장고나 TV를 고향으로 부쳐 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얘기에 낄낄 웃었다. 나도 낄낄 웃었다. 웃음이 잦아든 후, 그는 말을 잃었다. 나도 입을 다물었다. 피부가 따끔거려 담배를 물고 고통을 잊었다.  

8시쯤 되어 썽태우가 호텔 앞에 도착했다. 코 피피 행. 푸켓 타운을 한 바퀴 돌아 6명의 사람을 태웠다. 베트남에서부터 골동품을 수집하며 온 덩치좋은 미국인 여자 둘, 부메랑을 든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닮은 잉글리시, 국적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두 화교 연인. 미국인 여자 둘은 여행은 자유 랍시고 떠들고 있었지만 골동품 수집이 돈이 꽤 되는 모양이었다. 그녀를 태우기 위해 섰던 곳은 비까번쩍한 호텔이었으니까. 여행은 자유라? 미국식 현실주의가 말하는 자유에 괜히 도끼눈을 뜰 필요는 없겠지. 화교 연인은 끝내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선글라스를 끼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푸켓항에서 딱지를 받아 붙이고 배에 올랐다. 사람들도 덱데글한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선실이 갑갑해 갑판으로 기어 나왔다.
 
해바라기처럼 햇빛을 쬐고 있는 서양인들을 비집고 들어가 선두에 앉아 있다가 온갖 물보라를 뒤집어쓰는 등 충분한 깨달음을 얻고 나서 선미에 짱박혀 쏜살같이 지나가는 바람에 옷을 말렸다. 여행은 자유라고 말하던 미국인 둘은 선두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바닷물을 뒤집어 쓰면서 바닷물에 쩔은 페이퍼백을 놓지 않았다. 여행은 어디까지나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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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에 의한 석회암의 침식작용으로 본의 아니게 멋있어진 섬들의 기묘한 모습

 
가만히 보니까 선미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태국인 선원이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것도 대한민국 병장옷이어서 기분이 언짢았다. 그에게 어디서 그 옷을 얻었냐고 물었지만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쫄딱 젖어 있었기 때문에 옷을 빌려 달라는 뜻으로 알았는지 옷을 벗어 주려고 한다. 담배가 젖어 그에게 담배를 빌렸다.  
 
코 피피 근처의 섬들 모양이 기괴했다. 코 팡안 부근은 더 기괴할 것만 같았다. 이미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코 팡안의 석회암 절벽을 보았다. 바닷물에 의한 엄청난 침식 작용 끝에 거대한 동굴과 깍아지른듯한 석회암의 섬들이 바다 한 가운데에 불쑥 불쑥 난데없이 솟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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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피섬의 남쪽 선착장 해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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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 모여든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은 관광객들이 던져준 빵 쪼가리에 꼬리를 흔들면서 모여들고 있었다


 한시간 반인지 두 시간쯤 걸려 코 피피의 한쪽 항구에 닿았다. 섬 해안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덱데글한 관광객들의 모습은 별로 환상적이지 않았다.

선원에게 물어보니까 12:45, 코 피피의 한 포인트에서 스노클링을 할 꺼라고 말한다. 스노클링 외에 배 타고 돌아다니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배에 탄 일부 승객은 코 피피에서 숙소를 구할 것이고 일부는 나처럼 코 피피에 잠깐 들러 구경하다가 시간 되면 스노클링하고 푸켓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섬의 물가가 비싸서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선착장을 느적느적 걸어가노라니 삐끼들이 반색을 하고 나를 환영해 주었다. 섬의 정경만큼 숙소 가격이 환상적이다. 하룻밤에 1000밧이라. 1000밧이면 26000원? 물가 비싼 방콕의 호텔 수준이다. 제작년 꼬 따오에서 주인장과 협상해서 300밧짜리 너무나 환상적인 코티지에 묵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이곳 숙소 가격은 장난이 아니다. 그야 물론 피피 섬을 뒤져보면 400밧 짜리 숙소도 있을 것 같다. 예상은 했지만 Beach라는 영화 때문인지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 탓에 준 관광지화 된 탓에 가격이 그렇게 높아진 듯.
 
주인공에게 코 피피 근처의 환상적인 해변이 그려진 지도(지도에는 동부 해안의 코 사무이가 그려져 있었지만 실제 영화는 서부 해안의 코 피피 부근이었다. 게다가 그가 투숙했던 카오산의 숙소는 실제로 푸켓타운에 있었다)를 건네 주었던 친구는 환상적인 해변을 타락한 문명으로 오염시키는 사람들을 이렇게 불렀다: 돼지들! 기생충들! 그는 정신이 어떻게 되서 마리화나를 빨다가 자기 팔을 그어 자살했다. 이해가 안 간다. 그가 스스로의 팔목을 그으려면 LSD 따위를 먹었어야지 먹기만 하면 행복해지는 마리화나가 자기 팔을 긋게 만들 수 있을까? 

느적느적 걸어다녔지만 여유가 없어 섬을 다 돌아보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해변 근처를 빙글빙글 돌았다. 수박주스를 사 먹었다. 수박쥬스의 맛이 끝내준다. 해골이 다 시원하다. 일본식 쪼리에 익숙하지 않아 벗고 돌아 다녔더니 훨씬 편하다. 몇몇 한국인 여행자들이 툭하면 게시판에 고발하고는 하던 Hippo 다이버샵이 해변 근처에 있다. 언젠가 다시 기회가 되면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고 싶다. 스노클링 만으로는 눈 앞에서 아른거리는 환상적인 산호초를 잡을 수 없으니까.   

멍청하게 돌아다니다가 이 투어 패키지에 점심식사가 포함된다는 것을 뒤늦게 기억했다. 선착장에서 함께 배를 타고 온 사람들을 찾아 보았지만, 아뿔싸, 아무도 없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간신히 피피 호텔에서 부페식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찾아갔지만 점심시간을 넘겨 빈 그릇들만 즐비하게 남아 있었다. 식당 사람들에게 밥을 달라고 떼를 썼지만 히죽히죽 웃으면서 빈 그릇들을 치우며 애써 무시한다. 피피섬 구경한다고 얼이 빠져서 돌아다니다가 소중한 점심을 놓친 것이다. 아. 억울하다. 호텔 앞의 식당에서 돈 주고 카오 팟 까이를 사 먹으면서 속이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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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피섬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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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피섬 주변의 스노클링 포인트. 앞에 보이는 노란 배는 SCUBA 다이빙 강습을 온 배


피부에 햇빛이 닿을 때마다 견딜 수 없이 쓰라렸다. 해변을 돌며 빈둥거리다가 12:30쯤 선착장에서 배를 탔다. 승객이 많이 줄었다. 피피섬에서 숙소를 잡은 사람들이 많은 듯. 스노클링 포인트라고 간 곳에는 이미 여러 배들이 모여 있었다. 스노클과 구명의는 공짜지만 Fin은 50밧을 내고 빌려야 한다. 어이가 없었지만 지불한 후 구명의 없이 뱃전에서 다짜고짜 바닷물로 풍덩 뛰어들었다. 다이빙이라고 하는 것이다.

깊이는 10여 미터 정도 되는데 바닥이 다 들여다 보였다. 바닥의 산호 사이로 물고기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스노클 장비는 멀쩡했지만 코 부분과 눈 사이가 분리되지 않아 콧김 때문에 자꾸 김이 서렸다. 핀은 너무 물렁해서 전진이 잘 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배로부터 5-60여 미터 떨어져 나왔다. 핀이 물렁거려 허부적거리면서(구명의를 안 입은 것을 후회했다) 간간히 고글을 벗어 물칠을 해주기를 반복. 그러다가 바닷물을 몇 번 먹었다. 

아아... 그러나 바닷속은 환상이다. 정말 이 맛에 스노클링을 하게 된다니까...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푸켓타운에서 머물지 말고 돈이 좀 많이 들더라도 코 피피에 묵으면서(숙박비가 거의 5배) 스노클링 투어를 신청하는 건데... 아까 물어보니 투어가 300밧이란다. 그럼 1박 2일 묵으면서 하루 스노클링하고 저녁에 바에서 씨푸드에 메콩을 홀짝이고 다음날 오전에는 해변에서 놀면 1000+300+400= 2000밧(5만원) 가까이? 후아... 그건 좀 심하긴 하지만 죽여주게 논다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제작년 꼬 따오에서 1500밧 내외로 3박 4일을 놀았던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그래도 꼬 피피가 비싸다. 

핀과 고글 때문에 불편해서 40분쯤 하다가 배로 돌아갔다. 하나 밖에 없는 사다리 부근을 점령한 일가족 때문에 배 옆구리에서 첨벙이며 한참 차례를 기다렸다. 기다려도 비켜주질 않아 물을 한바탕 끼얹어 주고 선미를 간신히 기어 올라갔다. 짜증이 나서 한 짓이지만 그들은 장난치는 줄 알았는지 깔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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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본 피피섬의 여러 모습들. 정말 쓸데없는 사진 많이도 찍었다.

햇빛에 그대로 노출된 등짝이 무진장 쓰렸다. 어제 해변에서 서양애들 처럼 걸어다닌 것이 정말 후회막심이다. 담배 한대 빨면서 숨을 고르다가 등짝이 쑤셔서 더 이상은 스노클링을 못 하겠기에 바람을 쐬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사람들이 카메라나 사진기를 들이대고 그들의 일행을 찍고 있었다. 사람을 피해 눈을 돌리면 말 그대로 환상적인 곳이긴 하지만 나 같은 돼지들! 기생충들! 이 이곳에 우글거린다. 언제쯤이면 조용한 해변에서 즐길 수 있을까... 어쩌면 태국 해안과 섬은 완벽하게 관광지화 되어 이젠 싸지도 않고, 번잡한 인파에 묻혀 허부적 거리는 별볼일 없는 여행지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좀 더 일찍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배가 다시 출발했다. 코 피피의 다른편 항구에 잠깐 들러 더 많은 사람들을 태웠다. 무료로 주는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먹었다. 해가 남서쪽으로 차츰 추락해 갈 즈음에 푸켓 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숙소까지 데려다 준다는 미니 버스를 탔다. 아침에 봤던 화교 두 명은 여전히 무표정한 채 서로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미니 버스 운전수에게 부탁해 버스 터미널 앞에서 내렸다. 뻐썽(에어컨 클래스 2)을 예약하려 했으나 (그런 후진 버스는) 예약할 필요 없단다.
 
시장으로 나갔다. 비리야니 비슷한 것과 오징어구이를 샀다. 동양인 친구가 나처럼 시장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바나나 한 묶음을 사는데 그걸 어떻게 다 먹을지 걱정스럽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썽태우 기사가 맛사지 한 시간에 200밧을 부른다. 비싸다니까 여자를 찾냐며 혼자 낄낄거린다. 미친 놈. 수퍼에 들러 맥주를 샀다. 말이 안 통하니까 중국인처럼 얌전히 계산기를 내밀고 숫자를 두들겼다. 내가 그나마 아는 태국어 숫자로 웃으면서 징그럽게 금액을 말하니까 재미있는지 아이가 웃었다. 거리에서 아이들과 경찰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분명히 술집에서 사귀었을듯한 여자와 프랑스 인이 사원에서 팔짱을 낀 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황혼녁에 돌 의자에 앉아 있는, 여행객으로 보이는 친구에게 인사했다. 그는 아마도 내가 태국인일 꺼라고 생각했는지 당황해서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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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의 거리 모습. 한산하던 거리에 사람들이 조금씩 오고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 태국인들은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식당에서 밥과 몇 가지 반찬을 사다 먹는다.

옷을 빨려고 주머니를 뒤져 가진 돈을 꺼내 놓았다. 700밧 가량이 빈다. 아침에 남은 돈을 체크했고, PDA에 그걸 기록해 두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스노클링할 때 안내방송이 생각났다. 소지품 잘 챙기라는. 반바지와 웃통을 벗어 갑판 위에 그냥 던져 두었기 때문에 누군가 호주머니를 털어 훔쳐간 듯 싶다. 그런데 다 훔쳐가지 않고 일부만 훔쳐간걸 보니 참 희안하기도 했다. 워낙 거지꼴로 돌아다니고 있었던 터라 설마 털어 가겠느냐 생각했는데... 피식 웃고 말았다. 거지마저도 지나치지 않는 그들의 사려깊음은 진지한 프로의식에서 나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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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석양.


샤워하고 밥 먹고 맥주에 안주로 오징어 구이를 먹고 신문을 좀 보다가 밤 늦게 잠들었다. 온 몸이 화끈거린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조심스럽게 샤워하고(세수하는 김에 샤워까지...) 근처 거리를 휘휘 지나가다가 식당에서 딤섬을 파는 것이 보여 그걸 시켜 먹었다. 여행객들이 가는 식당은 죽어도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분명히 오버차징 할테니까.
 
시장에서 썽태우를 기다리다가 시계를 수리했다. 일제 가죽은 160밧, 모조 가죽은 80밧, 두말없이 모조 가죽을 선택. 공짜 시계에 너무 공을 들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희안하게도 옆이 깨졌지만 물속에서 방수가 완벽하게 되었다. 참 좋은 시계다. 팜 전시회 갔다가 공짜로 얻은 것.
과일 하나 먹고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도무지 썽태우가 출발할 생각을 안한다. 사진이나 몇장 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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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켓 타운의 갖가지 이국적인 형태의 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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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으로 떠나는 썽태우에 앉아있는 사롱(치마)을 입은 할머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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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켓 수족관의 입구


10:10 무렵 출발. 10:40am에 푸켓 수족관에 도착. 잔대가리를 잔뜩 굴려 푸켓 근처에서 가장 저렴하게 시간 때울 장소라고 찾은 곳이 고작 수족관이다. 고카트도 있고, 번지 점프도 있고 사파리도 있고 별에 별 것들이 다 있지만, 해변에서 조차 600밧이 비싸 젯스키 안 타고 전 지구상에 무료로 쏟아지는 햇살에 살이나 태운 나다. 한 시간쯤 수족관을 둘러보고 택시 기사들과 수퍼 앞에서 잘 통하지도 않는 영어로 잡담을 늘어 놓았다. 내 영어가 형편없다고 투덜거렸지만 네 놈도 거진 내 수준이다 임마. 건너편 무슨 섬에 가는데 1000밧이라고 꼬신다. 거기가면 뭐가 있냐고 했더니 딴전을 피우며 스노클! 피싱!을 외친다. 얘까지 내 가슴을 찢어 놓는구나. 내겐 시간이 충분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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얜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지만 하늘을 향한 저 자세로 꼼짝도 안하고 있다. 도 닦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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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같이 생긴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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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던가? 오랑우탄) 닮은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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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큰 놈. 사람 두 배 정도의 몸집. 저 눈으로 나를 한참 동안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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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냐. 물 속에 가만히 멈춰서서 아무 짓도 안 한다. 헤엄도 안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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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피시. 몸이 투명해서 건너편이 비친다.


  구아바(Guaba) 쥬스가 맛있다. 용기 재활용을 한 건지, 포장이 원래 형편없는 건지 잘 모르겠다. 태국의 경공업이 원시적인 수준이고 거의 대부분의 생활 소비재를 수입하는 형편이다. 그중 만들어보려고 애쓴 가공 식료품들은 포장 상태가 조잡했다. 하지만 워낙 농수산물이 풍족한 탓에 과일쥬스 만큼은 진짜 과일을 갈아서 집어 넣기 때문에 뭘 먹어도 맛있다. 아. 맛있다. 내 세포들, 특히 뇌세포들이 과일 쥬스에는 환호성을 지르는 것 같다. 물병은 작은 것 하나 마시는 정도지만 하루에 적어도 두 번에서 세 번은 과일을 먹던가 과일 쥬스나 과일 쉐이크를 먹었다. 10밧, 300원 정도면 250ml 짜리 몸에도 좋고, 정신 상태도 긍정적으로 개선시켜 주는 싱싱한 과일 쥬스를 먹을 수 있으니 이만 저만한 행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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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한국 영화 '용가리'를 상영중



무척 매운 점심을 먹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극장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모토 사이가 다가왔다. 내 숙소까지 가면 얼마냐고 물으니 50밧을 부르길래 걸어 가겠다고 말했다. 흥정하다 보니 30밧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30밧에 숙소에 들렀다가 버스 스테이션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30밧이면 꽤 많이 준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내 숙소가 좀 멀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잔잔한 미소로 때웠다. 30밧이면 많이 주는 거다 임마 하면서. 아침에 첵아웃하면서 맡겨놓은 배낭을 숙소에서 찾아 터미널에 도착해 오후 차를 찾았다. 근처 술집에서 왠 미친놈이 가라오케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특색이라는 것이 나름대로 있지만, 노래 못 부르는 놈들은 전 세계 어디가나 똑같이 못 부른다. 게다가 가사나 곡을 전혀 몰라도 그걸 구분할 수 있다니,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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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켓을 떠날 때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 아줌마는 땅콩을 팔고 있다. 대략 20분 동안 하나도 못 팔자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났다. 그때 똥개 한 마리가 바닥을 킁킁 거리며 다가와 땅콩 껍질을 줏어 먹었다. 아... 대체 뭔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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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켓 버스 터미널 근처의 거리 모습. 낮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태국의 현재 유가는 리터당 16밧 정도. 가난한 사회지만 기름값이 싸다. 정말 싸다. 자가용 줄일려고 유가를 올린다는 핑계를 대며 기름값에 세금을 왕창 포함시켜서 국민의 증오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어떤 나라와는 질이 다르다.
 
태국이 자국의 주요 산업을 관광업으로 삼은 것은 열대 지방 사람들 다운 느긋함 때문이 아닐지. 더워서 일하긴 힘들고 천연자원 풍부하겠다, 먹고 살 걱정 없으니 놀면서 느긋하게 할 수 있는 관광사업을 하게 된 것이랄까? 문화재야, 태국 어디에나 널려있는 사원들이면 되고, 사람들이 원체 친절하니 어디가나 지내기는 편하고,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산악과 아름다운 해변들은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알아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자원도 없고 돈도 없고 배알도 없는, 기름값 더럽게 비싼 나라는 사람들이 그저 독기만 남아 발악하듯이 살면서, 그걸 당연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러다가 창밖으로 조림을 한 숲을 보고 무슨 이유에서 조림을 할까 궁금했다. 자세히 보니 고무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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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모습. 저녁 때가 되자 가게들이 문을 열기 시작.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보니 춤폰. 뻐썽(에어컨 2등 버스)은 탈만한 것이 못 되었다. 하도 자주 정류장에 멈추어서 제대로 잠을 자기가 힘들다. 수면 리듬이 정상으로 돌아온 덕에 수면제를 먹고 싶은 생각은 없고. 춤폰이라... 제작년에 왔을 때는 시내의 조그만 터미널이었는데 시외에 다시 짓고 무진장 커졌다. 동부 해안의 섬들이 거의 관광지화 되다 보니까 그런 섬들에 가기 위한 선착장이 있는 춤폰도 절로 커진 것이 아닐까? 그저... 코 따오에서 보냈던 이전의 좋았던 시절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환경을 가장 많이 오염시키는 것은 역시 사람 그 자체였다.   

코가 아파서 견디기 어려웠는데 화장실에서 얼굴을 살펴보니 꼴이 말이 아니다. 막 벗겨지기 시작한 피부, 껍데기를 까면 빨갛게 달아오른 새살이 있다.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마치 때처럼 피부 껍질이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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