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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5.26 pot of doom

pot of doom

잡기 2007. 5. 26. 22:54
paprikamovie.com 구하는 중.

스파이더맨 3 감상문: 집사가 정말 나빴다. 진작 말했더라면 멀쩡한 젊은이를 찌질이로 만드는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 나중에야 진실을 말하는 걸 보니 그 동안 급료 및 처우에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젊은이는 팔자가 바뀌어 배트맨이 될 수도 있었다.

삼성 반도체에 예수 얼굴이 나타났다 -- 기사 밑에 달린 감동적인 리플: 에수 직업이 무슨 까메오냐? 그 밑에 달린 리플: 하이닉스 웨이퍼에서 사리 발견


저번 주에는 하늘공원에 애 데리고 놀러갔다. 해가 질 무렵까지 올림픽 공원을 빙글빙글 돌다가 올라갔다. 생각보다 석양이 얄팍하다. 일년에 한두 번쯤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석양을 구경했다. 그런데 매년 그런 석양을 같이 봤던 사람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석씨 말로는 내가 7년 전과 비교해 (외모가) 크게 변하지 않았단다. 환골탈태했다. 다섯 바다를 건너고 네 대륙을 지나면서 오덕함이 넘치던 고독한 책벌레 히키코마리에서 세월에 삭은 흰머리에 돛천 바지가 어울리는 개마초 사나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쟤는 왜 목이 없는거지? 카렌족의 목걸이를 구해서 달아 놓을까...


길고도 긴 길. 그래서 길은 길이로 말하는 길이 되었다. 길을 길이로 말하는 노래도 있다. 길에서 노래를 들었다. Sting, Shape of my heart (4:38) doesn't play for the money or respect, deals the cards to find a answer, sacred geometry of chance... spades are the swords of soldier, clubs are weapons of war, diamonds means money for this art, but that's not the shape of my heart. 길이 길이가 되는 것은 그 자의 영혼이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club) 쇠꼬챙이에 찔리고(spade) 돈에 무너져 버릴 때다. 그 자와 달리 길을 본 후로 play, act, find answer를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유난히 비인간적이란 평을 듣던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 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가 읽는 글을 보고 그가 보는 것을 보고 그가 듣는 것을 듣고 그가 느끼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지금은 사정이 나아져서, 그의 상태가 좋아 보이면 좋아했다. 어쩌면 '내 딸애를 좋아하는 자식은 없애버리겠다'로 바뀔 지도 모르겠다. 석탄일에는 어린 시절의 철없던 나처럼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며 하늘을 손가락질했던 싯달타를 섬기는 절집에서 밥을 얻어 먹은 후 즐겨 피우는 담배 the one을 피워 물었다가 아내한테 욕을 먹었다. 한 가치 밖에 안 피웠다.


주말을 맞아 집에서 밥하고 아내를 먹이고 나니 할 일이 없다. 갈데가 없어 geocaching 사이트를 뒤져 네 개의 포인트를 gps에 저장해두고 자전거를 몰고 나갔다. 숲은 모두 다르다. 숲속의 공터(clearing)는 예로 부터 신성한 만남의 장소(bloody joint)였다. 짐승들은 공터를 두려워했고 사람은 숲을 두려워했고 호랑이는 근처에 숨어 잡아먹으려는 짐승의 울음소리를 좀 어설프게 흉내냈다(용들도 그랬다).


어린 시절 나는 많은 숲을 돌아다녔다. 오늘의 퀘스트에서 세 야산을 헤메다녔지만 보물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급속한 문명화 탓에 숲길에서 흔적과 징후를 읽는 법을 제대로 몸에 익히지 못한 탓이다. 책은 감각을 둔하게 한다. 서생은 숲에서 길을 찾지 못한다. 별 일 없으면 숲에 들어간 서생은 죽는다.


흔적과 징후는 물론 보물을 찾지 못해 한심한 기분이 들어 자전거를 세워둔 곳에 쭈그리고 앉아 땀을 식히며 싯달타라면 아마 좋아했을 담배 the one을 피웠다. 숲속에서 마네킨을 보았다. 몸통은 강철 가시에 꿰여 있고 누더기가 된 옷가지가 찢어진 채 팔 다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여성 마네킨의 머리는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자전거 사진을 찍었다. 숲속에 정신병자가 왔다간 걸까? 마네킨이 난도질당한 숲을 향해 오줌을 누었다.


세번째 숲. 높은 나무들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진인사대천명 -- 제 할 일을 다하고 하늘에서 복이 떨어지길 기다려본다. <-- 이 기준에서 보자면 나는 필연적으로 복 받을 팔자다. 안 그런걸 보면 세상이 잘못된 것이다. 인연론으로 해석하면, 세상과 나는 안 맞는 것이다. 다른 세상은 맞을 지도 모른다. 특허 정리 좀 해달라길래 다섯 가지 항목을 만들어뒀다. 변리사를 만나 눈을 뜨고 나서 신청할 특허 갯수를 13개로 늘렸다. 모두 합하면 22개가 된다. 제 할 일 다했는데 하늘에서 복은 안 떨어지고 어쩌다가 이렇게 된거지? 신록이 이다지도 푸르른데, 앞으로 2주 동안은 망할 문서들로 정신이 없을 것 같다.


주행거리는 24km가 채 안되었지만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없는 수풀을 헤치면서 산길을 세 번이나 헤메고 나니 지친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데거라면 뭐라고 했을까. 신도 의지도 누구의 도구도 아닌 자유인의 오후 삽질 말이다. 힐튼 호텔 뒷편의 어느 산에서 외나무다리를 건너 길이 없는 덤불숲에 앉아 몹시 고독하게 담배 the lonely one을 피웠다. 네번째 망할 산이 남아있지만 벌써 오후 다섯시다. 집에 가서 마누라 밥해 먹일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골뱅이 소면을 만들었다. 마누라는 식사를 마치고 아이와 잠들었다.

오늘 대체 뭘 한거지?

매주 자전거를 탈 때마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머릿 속에 도사린 채 전등빛을 좇아 나방처럼 펄럭이는 잡생각들을 길가에 흘리고 다녔을 뿐이다. 쓰시마 부산 사무소가 운영하는 웹 사이트에서 신청한 지도가 도착했다. 6월이 가기 전에 쓰시마 섬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캠핑을 하고 아무도 없는 해변에 누워 별 구경을 할 수 있을까?

부정적이다. 담배나 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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