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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05 쓰시마 자전거 여행 5/5

7am 기상. 숙취도 없고 말끔한게 기분이 좋다. 구름 사이로 얼핏 해가 보인다. 스프를 끓여 식빵을 찢어 넣고 아침으로 먹었다. 전에 여행할 때 어떤 여행자한테 배운건데 꿀꿀이 죽같지만 보기와 달리 맛이 그럴듯 하다.

누가 보기 전에 텐트를 걷었다.


론머맨 아저씨가 나타나 오늘 여기서 캠핑할 꺼냐고 묻는다. 이이에. 오늘 오후 부산에 갑니다. 캠핑은 유료라고 말하며 언덕으로 올라가 잔디를 깎기 시작한다. 4.40pm 배가 출항이라 적어도 3pm까지는 시간이 많아 남아 오늘은 한국 전망대에 가볼까 한다. 날이 맑으면 일찍 돌아올 생각이다. 텐트 등속을 화장실 앞 식수대 밑에 감춰두었다.


아침에 보니 해변이 더욱 맑아 보인다. 해수욕에 제격이다. 가벼운 짐만 꾸린 채 9am 출발했다.



아무 생각 없이 패달을 밟다가 '토요 포대 흔적'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발견했다. 비포장 도로로 10분쯤 올라가자 포대가 나타났다. 뭐하는 곳이지?



자전거 전조등을 뽑아 어두컴컴한 미로 같은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포탄 캐리어 같은 것이 보인다. 아, 이즈하라의 하치만구 신사에 있던 폭탄이 혹시 여기 쓰이던 것인가 보구나.


이곳이 설마... 저 정도 규모면 정말 엄청난 포가 있던 자리인데.. 흡사 아발론의 포처럼.


지도를 보니 쓰시마의 이 포대에서 부산과 큐슈 지방 사이의 적 이동을 방어할 목적으로 포대를 세운 것 같다.


포대에 관한 무슨 설명이 있는데, 다른 관광지와 달리 영어나 한글 병기된 설명이 없다. 게다가 일부 문장을 지웠다. 왜 지웠을까. 알아야만 하는 내용일까. 하치만구 신사의 대포알들이 호국의 의지가 담긴 신령한 대포알이었던가? 뭐가 캥기는지 문장을 지운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한국 또는 미국에 적대적인 포대였던 것 같다.

더 생각하지 말자. 조잔하기 그지없는 일본의 금리나 주식시장, 위안부 할머니들이 돌아가실 때까지 면피하며 기다리는 비겁한 일본 정부. 일본인들조차 원숭이라 부르는 아베. 도로에서 보곤하던 아베의 사진들. 눈을 마주치지 않는 일본인들. 비포장 내리막길을 흡사(?) MTB를 타듯이 내려갔다. 비포장 도로에서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전방 주시. 목덜미가 뻗뻗해진다. 자전거와 온 몸이 미친듯이 떨린다. 딴 생각하다가 삐끗하면 바로 자빠링이다.


해안도로를 따라갔다. 한국 전망대로 향하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길의 끝에는 전복 양식 공장이 있었다. 구경하다가 사진 찍기 뭣해서 나왔다.


거진 자동차 대시보드 콘솔 분위기 물씬 풍기는 '핸들바 콘솔' 지도나 웹 상에 소개된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 waypoint가 종종 달라 전복 양식 공장 등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GPS 덕택에 쓰시마 여행이 손쉬웠다. 전조등은 터널 주행시 필요해서 대낮에도 달고 다녔다.

카시오 손목시계(Casio PRG-70V3)는 자기 나침반, 기압계, 시계, 온도계 따위가 포함된 것이다. 터프 솔라 배터리를 사용해 배터리 교환이 필요없는 반영구적인 제품. GPS(110$)보다 더 비싼 17만원짜리. 2005년 2월 여행할 때 사용하려고 구입. 그런데 3일 동안 비를 펑펑 맞았더니 그... 알량한 생활방수가 견디질 못했다. 유리창에 낀 습기는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야 사라졌다. 저렇게 습기가 끼어 있으니 기압계가 엉망으로 작동해 일기 예측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10.30am. 한국전망대 도착. 건자재를 한국에서 공수해와 한국풍으로 꾸몄다는 건물. 다시 휴대폰에 전원을 넣고(안테나가 만땅으로 잡혔다) 아내와 통화를 시도했다. 빙고. 이번에는 된다. 거참 통화 한 번 하기 되게 힘드네.

와니우라 마을의 이팝나무 자생지에서 오락가락했다. 봄에 왔더라면 나무마다 하얗게 핀 꽃들을 구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맑고 작은 하천에 물고기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다. 이렇게 깨끗하고 맑은 하천이 집 앞에 있는 기분이 어떨까. 참 부럽다.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말았다.


미우다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VALUE에 들러 점심꺼리를 장만했다. VALUE에서 2007년 7월 7일 무슨 행사를 하나보다. 미신에 사로잡힌 미국인들과 일본인들은 21세기 첫 쓰리세븐 데이를 축하하거나 심지어 결혼까지 한다.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12pm. 날이 뜨거워 바다로 뛰어 들었다. 바다 속에서 자맥질 몇 번 하고 놀다가 텐트 세웠던 장소로 기어 올라와 맥주에 초밥(599엔)을 먹었다. 초밥이 의외로 맛있고 꽤 커서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샌달에 모래가 잔뜩 묻었다. 등산할 때 신으려고 몇년 전에 산 산악 트래킹용 샌달. 샌달의 특성상 앞 발가락들이 노출되어 산악 트래킹 중 자갈, 돌부리, 날카로운 잔가지나 풀뿌리에 취약하다. 발등을 보호해야 하므로 발등 부위는 두껍게 감싸 놓아 보통 샌달보다 통기성이 떨어진다. 꽤 애매한 제품이다. 그래도 40도 경사의 릿지에서 확실한 접지력을 보장하는 밑창 때문에 여름에 즐겨 신었다.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젊은 남녀가 한다발인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와 해변에서 플랭카드를 들고 기념 사진을 찍는다. 그들은 바닷가에 살짝 발만 담그고 나와 수돗가에서 발을 씻느라 부산을 떨었다.

시원한 기린 생맥주를 마시며 그 부산한 광경을 쳐다 보았했다. 한국인들이 내가 앉아 있는 쪽으로 몰려와 수다를 떤다. 자전거를 흘낏흘낏 쳐다본다. 나는 일본인이므로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수경을 끼고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빵 부스러기를 던지고 물 속을 노려보았지만 고기떼는 몰려오지 않았다. 시각이 시각인지라 물고기가 통 보이지 않는다. 스노클이 있으면 좀 더 깊은 곳까지 갈 수 있겠지만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장비도 없이 만용을 부리지 않았다. 등이 탈까봐 수영복 하의에 티셔츠를 입은 채 물에 들어갔다. 30분쯤 놀고 바깥으로 나오니 한국인들이 떠났다.

수돗가에서 웃옷을 빨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화장실로 들어가 재빨리 수영복을 벗어 세면대에서 빨았다. 자리에 앉아 남은 우롱차를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햇빛을 쬐는 도마뱀처럼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짐을 정리했다. 충전지에 녹이 잔뜩 슬었다. GPS의 자전거 마운트에 부착하는 뒷판은 방수 커버가 안 되어 있어 비맞는 동안 물이 새어 들어 충전지에 녹이 슨 것이다. 다음 번 여행 때는 대책을 세우자.

준비해간 충전지는 enelop 2000mAh 4알, 산요 2300mAh 2알로 완전 충전된 상태가 아닌데도 5일을 충분히 버텨줬다. 마지막 2알의 잔량이 반쯤(1000mAh) 남았다. 하긴 길어봤자 하루 8시간 정도 밖에 주행을 하지 않았으니 전지가 남는 것이 당연.

1pm. 자 이제 쓰시마에서 해 볼 마지막 관광 일정이 남았다. 자전거에 짐을 싣고 해수욕장 위의 캠프장 화장실 옆에 자전거를 숨겼다. 그리고 여권, 지갑, 수건, GPS, 시계 등 귀중품과 수건을 챙겨 캠프장 옆에 있는 나기사노유 온천장으로 향했다.

간혹 도로의 윗쪽에 은빛으로 빛나는 구조물을 보고는 했다. 온천수를 끌어올려 아마도 열병합 발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열병합 발전이 아니라면 다만 온수라도 모아놓았을 것이다. 일본인의 온천에 대한 강한 집착. 그 구조물을 볼 때마다 꼭 온천에 가자고 다짐했다.


나기사노유 온천. 노천 온천. 1pm ~ 9pm 사이 오픈. 온천에 들어가 신발을 벗어 신발함에 넣고 신발함 열쇠를 들고 카운터에 가니 옆의 자판기에서 표를 뽑으란다. 한국인 전용 티켓이 500엔. 사람들이 시야에 없는 동안 살짝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한국의 일반 사우나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온탕, 냉탕이 있고...

창 밖으로 시원한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저 창문은 단지 방충망이라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오른편에 노천 온천이 있다. 낮에는 주로 노인들이 이용하는 듯.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관광 코스로 이곳에 들렀다. 간간이 한국어로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수건을 제공하지 않는 것 같다. 뭐, 그럴 줄 알고 스포츠 타월을 들고간 것이지만. 들어서면서 양 손으로 수건 끄트머리르 잡고 수건을 늘어뜨려 국부를 살짝 가렸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길래 나도 그렇게 했다.

따끈한 거품탕 속에 들어가 근육을 풀었다. SPF 27짜리 썬 블럭 로션을 발랐는데도 의외로 살이 많이 탔다. 적당히 씻고 일본인 할아버지들과 노천 온천에 앉아 바다를 구경했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가 들린다. 흐뭇하다.

그런데 캠핑장의 화장실이 오른쪽으로 살짝 보인다. 화장실 옆에 숨겨 세워두웠던 자전거 끄트머리가 보인다. 어? 그럼 저기서도 여기가 다 보이는 거잖아? 여탕은 엄폐가 잘 되어 안 보인다. 일본 만화책에서처럼 남여 노천탕을 대나무로 간단하게 구분지워 놓아 옆 여탕의 대화 소리나 깔깔 대는 웃음소리가 들리거나 하는 일은 없다. 실망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여탕에는 할머니들이 조용히 온천욕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실망할 것 없다.


적당히 씻고 한 시간 반쯤 있다가 온천을 나왔다. 엇, 그런데 GPS를 락커에 두고 왔다. 카운터에 가서 영어할 줄 모른다는 종업원에게 영어로 물어보니 락커 열쇠를 건네준다. 거기 지배인이 GPS를 알아본다. 잠깐 손짓발짓으로 서로 원숭이들처럼 대화하다가 웃으며 헤어졌다. 휴게소에서 야마네코 스티커를 한 장 챙져준다. 자전거 프레임에 붙여 놓으면 괜찮을 것 같다. 자기도 산에 갈 때 GPS를 들고 다닌단다. 첫날 히타카쓰에 떨어져 일정이 틀어지는 바람에 남 쓰시마를 돌지 못한 것이나 아리아케 산에 못 가본 것이 아쉽다. 다른 일본인과 달리 이 친구는 눈을 쳐다보며 말한다. 얼굴이 그을리고 다부진 체격이 스포츠맨이나 조폭 스타일이다. 마음에 든다. 웃쓰! 사요나라~

히타카쓰 항구의 2층에서 노란색 영수증을 탑승권과 교환했다. 3pm. 한 시간이나 남아 할 일은 없고 잔돈은 철렁거리고 해서 시내로 슬슬 자전거를 몰고가 동전을 털어 Life Value 수퍼에서 도시락과 환타를 샀다. 히타카쓰 항구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마지막까지 도시락을 먹는구나 -_-

환전한 10000엔 + 15000엔 중 남은 돈은 12067엔. 사용한 돈은 12746엔, 정산 중 어디론가 새버린 돈은 187엔(아마 뭔가 사 먹었을 것이다). 사용한 돈 중 숙박비는 단 돈 2000엔, 한화로 15200원. 700엔짜리 방청제 구입 및 온천 500엔을 제외하고 9733엔을 5일 동안 순전히 먹는데 사용했다. 한화로 73970원.


4.10pm. 출국수속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제일 먼저 출국수속을 마쳤다. 출입국장에서는 동작이 빨라야 한다.


4.30pm 배가 출발한다. 인구의 대다수가 노인들이라 노무원들 나이가 지긋하다.


히타카쓰 항 바로 옆은 해상자위대(또는 해안경비대; japan coast guard)의 배가 정박해 있다.


오징어 배가 일찌감치 출항한다. 쓰시마의 특산물 중에 오징어가 있었다.

6.20pm 부산 도착. 입국장에서 짐을 풀어 엑스레이 기기에 통과시키고 자전거는 별도의 문으로 뺀다. 부산항에서 중앙동 역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 검표기 앞으로 향했다. 검표원 아저씨가 친절하게 문을 열어준다. 장애인석에 자전거를 박아두고 mp3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아! 생각해 보니 집 열쇠가 없다. 아내는 내가 여행 가 있는 동안 처가에 가 있다. 서울에 돌아가면 집에 못 들어간다 -_-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텐트 등속해서 캠핑 장비가 다 있고 일요일까지 3일 남았는데 굳이 집에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부산 터미널에서 바로 울진으로 가서 양양까지 자전거 여행을 계속할까? 7.30pm 노포동 지하철 역에 도착. 부산 터미널의 매표소 앞 시간표를 살펴보았다. 마땅히 갈만한 데가 없다. 게다가 자전거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캠핑하다가 또 비를 맞으면 노래가 심하게 튀어나올 것 같다. 그래 그냥 처가집에 가자. 8.20pm 표를 끊어 대구행 버스를 탔다.

대구에서 장인장모님께 인사드리고 하룻밤 자고 다음날 서울행 버스를 탔다. 남부터미널에 도착. 덥다. 집까지 자전거를 몰고 가 짐을 내팽개쳐두고 간단히 세면만 한 다음 집을 나왔다. 동네 고깃집에 가서 김치 오겹살과 소주를 마셨다. 캬... 좋다. 바로 이거다. 맛있는 도시락이나 맛있는 생맥주로는 절대로 채울 수 없는 것.

주행거리: 315km (쓰시마에서만)
평속: 의미없다. 자전거 주행이 아니라 자전거 여행이다.

GTM Trackmaker file

Google Earth File
여행일정 및 경비내역 

쓰시마의 좋은 점:

* 풍경이 끝내주고 개울, 해변, 숲을 함께 즐길 수 있다.
* 도로가 텅 비다시피 해서 자전거 주행에 최적이다.
* 평균 2km마다 자판기가 널려 있다.
* 요소마다 대형 수퍼가 있어 먹거리 장만이 편하다.
* 맥주가 싼 편. 꿀맛이다.

나쁜 점:

* 사람이 적어 일본인들과의 접촉이 극히 적다
* 이즈하라를 나오면 음식점이 별로 눈에 안띈다.
* 볼꺼리가 별로 없다.

가볼만한 곳(가본 곳이 별로 없어 민망 -_-)

* 이즈하라: 반쇼인, 하치만구 신사
* 히타카쓰: 미우다 해수욕장, 나기사노유 온천
* 39번 지방도, 와타즈미 신사, 토요 포대 흔적

준비물 중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것

* 양말: 맑은 날 샌달을 신었을 때 발가락에 때가 끼거나 타는 걸 막아주고 사고 났을 때 발가락을 일차적으로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죈종일 비가 와서...

* 삼각대: 핸들바에 거치해서 움직이는 동영상을 찍으려 했다. 손에 들고 찍는 것이 더 편하다. 셀카 찍을 때도 써먹으려고 했는데 귀찮았다.

* 여권 복사본: 캠핑장에 등록할 때 여권 복사본을 제출해야 한다던데 무의미했다. 하지만 해외 여행할 때 여권 복사본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여행의 기본 상식.

* 테이프: 케이블 타이와 마찬가지로 거의 만능에 가까운 수리 도구. 찢어진 옷, 비옷, 찢어진 천, 부서진 도구의 고정 등 역할이 광범위. 장기여행 때는 실과 바늘처럼 거의 필수적인 아이템.

* 읽을 책 한 권: 보통 아홉시에 잠들어 아침 일찍 일어나 일정을 시작했으며 무료한 버스, 페리 이동 중 읽으려고 했는데 음악 듣고 지도 보고 계획 짜고 수첩에 메모하고 정산하기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거의 없었다.

* 의약품: 여행 중 필수 의약품은 진통제(두통약), 항생제, 항히스타민제(알러지 약), 반창고(밴드). 항히스타민제가 왜 필요하나 싶겠지만 개미, 진드기 따위에 물려 피부가 가렵고 부어오를 때 이것만큼 효과가 좋은 것이 없다.

없어서 아쉬웠던 것: 방청제, 여분의 브레이크 패드





아소베이 파크에서의 이틀째, 샤워를 마친 후. 여행이란 SF적인 비일상적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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