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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less talk cost lives

잡기 2008. 9. 25. 14:05
블로그에 하루에 수십 개씩 스팸이 꾸준히 올라온다. Eolin Anti Spammer를 설치했더니 67% 정도 차단한다. 100개중 33개는 수동으로 삭제. 하는 수 없이 몇몇 정규(?) 스패머의 이름은 무조건 차단했다.

위기(危機)는 위험과 기회를 합친 말이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때문에 발생한 위험한 상황이 달갑지 않고, 돈이 없으니 기회도 없다.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두 번이나 펀드 환매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다가 망한 케이스랄까? 경우에는 안 맞지만 옛 격언이 있다; 악이 승리하기 위한 단 한 가지 필요 조건은 좋은 사람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못하는) 것이다.

트랙로그를 분석하려면 여러가지로 귀찮다. GPS Trackmaker는 쪼개진 유관 track log를 merge하는 기능이 없어 Garmin Map Source에서 트랙 로그를 합쳐야 한다.
 
GPS 관련 프로그램이 워낙 많고 다양하다보니 뭐 하나 하려고 해도 과정이 참 복잡다단하다. 어디서 줏어온 *.img map 파일을 gps에 올리려면 mapwel을 사용 하고(또는 sendmap) shp 파일이나 dxf 파일을 img로 변환하려면 mapedit와 cpgsmapper, dem2topo, wintopo, idl 따위의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한다.
 
포맷 변환은 gpsbabel을 많이들 사용. GPS Trackmaker는 Google Earth와 함께 사용하면서 route를 잡을 때 주로 사용. google earth에 naver 지도나 콩나물 지도를 overlay 해야 구글 어쓰에서 라우팅이 편해지는데 오버레이 맵은 아직 구하지 못했다. 어느 착한 분이 사이트로 만들어놓았던 예전 것은 사라졌고, 어떤 블로그에서 그 비슷한 것을 만들어 놨는데 구글 어스 용으로 변환하려면 스크립트를 짜야 하는게 귀찮아서 개기는 중. 기다리다 보면 누군가는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전에 홍씨가 지리학과 출신이라 이런저런 그쪽 방면 얘기를 한 기억이 난다.

스크립트 짜기: (얼마 전에 업그레이드된) 네이버 맵의 open API를 사용.  네이버 맵만을 가지고 GPS용 트랙 로그를 작성해 gpx나 kml로 저장하면 써먹을 데가 많다.
 
더더욱 좋은 케이스는 구글 코리아에서 제대로 된 지도를 구글 맵에 올리고 구글 맵을 구글 어스에 오버레이하는 것이다. 구글맵 오버레이는 이미 나와 있으니 구글 코리아가 한국 지도를 확보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자주 사용하는 Garmin Map Source나 GPS Trackmaker에서는 altitude profile이나 cartographical length 정도 외에 track에 관한 유의미한 통계를 뽑을 수 없어서 gpx를 파싱하는 프로그램을 하나 짤까 하다가 google 부터 뒤져봤더니 좋은 사이트가 이미 있다. uTrack - online GPX track report generator 여기서 2008/09/21 의정부를 거쳐 강북쪽 시가지를 지나는 56km 주행 궤적을 넣어봤다. 최고속도, 최저속도, 무엇보다도 평지 평균 속도와 구간별 속도 변화가 계산되어 나오는 것이 인상적. pdf 파일 출력을 지원한다(Garmin Map Source에서 gpx로 파일을 저장할 때 UTC offset이 적용되지 않는 버그를 발견했다.):
  • 고도 프로파일과 속도 변화 그래프를 겹쳐서 보여주면 더 좋겠고,
  • 웹 사이트이다 보니 작은 그래프 하나로는 자세한 정보를 얻기가 불편하다.
  • 주행 시간과 쉰 시간을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gps에 찍힌 평균 속도는 19.3kmh 이나 사이트에서 계산한 평균 속도는 19.6kmh로 나왔다. 계산에서는 주행시간과 쉰 시간을 분리해 놓은 것이다.
  • 최고 속도 출력할 때는 gps의 글리치 때문에 생긴 오류를 걸러주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상 여러가지 개선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을 짤 일은 없을 것 같다. 다른 프로그램을 찾던가 저 사이트를 그냥 계속 사용할 것 같다.

1-2시간 자전거를 탈 때는 티가 안 났지만, 오랫만에 4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 보니 지구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을 알았다. 뭐, 제작년에 5시간 20분 걸린 코스를 4시간에 왔으면 잘한거지 싶기도 하지만...

Google Earth에 Wikiloc이란 것이 보여 한국 지도에서 찾아봤으나 별로 없다. 자기가 돌아다닌 GPS 트랙을 등록/공개하는 사이트다. 가지고 있던 GPS의 트레일을 몇 개 등록했다.  Wikiloc에 donation한 것처럼 흐뭇하다. -- 그러고보니 위키록을 비롯해 지난 몇 년 동안 파노라미오, 구글 어스, 지오캐싱 등에 올려 놓은 것들이 이것저것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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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옮긴 사무실에서 바라본 음산한 바깥 풍경. 이전 사무실보다 환경이 열악해져서, 왜 사무실을 옮겼나 싶을 정도. 한 주 동안은 일이 거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 더워서.

28도가 넘어야지만 중앙냉난방실에서 에어컨을 틀어주는데 천정이 높아 공기 순환이 안되는 탓에 사무실 내부의 체감온도는 29~30도 가량. 오후 6시가 넘으면 에어컨을 껐다. 사무실 옮긴 후 팀원들이 더위 때문에 다들 맛이 갔다. 사무실이나, 새로 옮긴 건물에는 샤워 시설이 없어 자전거 출퇴근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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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생장 과정을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어 올려두는, 그나마 잘 나온 사진. 아내와 내가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은, '애가 인물은 좀 아니다' 였다 -- 날이 갈수록 아내를 닮아간다.

아내는 내가 가끔 버럭 화를 내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그 이전에 내가 왜 화를 내는지 물어본 적도 없고, 알고 싶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1. 한 말 또하게 하는 것, 2. 같은 실수를 무한히 반복하는 것, 3.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카운터(무의미한 대들기). 1, 2 번은 내가 조심하고 있지만 3번은 많은 날이 지나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 아내는 대다수의 여자가 지닌 논리적 오류를 반복했다. 범주화,  흑백논리, 순환논증, 부적절한 일반화, 논점이탈, 감정 및 권위에의 호소...

적어놓고 보니... 평소 내 관점과 일치했다; 여자는 별로 논리적이지 않다. 아울러 뚜렷한 인식과 비전을 지닌 여자는 인류 역사상 극히 드물었고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 이런 견해들을 여성에 대한 편견이라고 말한다. 나도 하루 빨리 편견을 깨고 싶다 -- 여성과 한 세상을 같이 사는 건, 칼 세이건의 책 제목처럼, 요술과 악령이 지배하는 세상에 사는 것 같으니까.

행복을 바란 사람은 행복해지고, 불행을 원했던 사람은 불행해진다. <-- 맞는 말이다. 전적으로 물리적인 측면을 배제한 채; 행복해지려면 삶에 대한 기대를 낮추면 된다. 또는, 재수없는 기억을 지우고 닭대가리가 되면 된다. 하지만 수행자들은 스스로의 지능을 낮추는 일 없이 삶에 관해 '착각'하지 않음으로써 최저 에너지 준위를 자기도 모르게(어느새) 유지한다. 사실 자기에게 관심없는 우주와 꽃들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아야 상태가 나아진다 -- 대다수의 사람/사물/외계인/인공지능은 내 행복에 관심이 없다. 나도 내 행복에 (특별히) 관심이 없을 뿐더러, 뚜렷한 우주애나 자기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물론 어쩌다가 나한테 관심없는 우주나 꽃들을 사랑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아울러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댓가로서, 비록 그 영향이 비록 미미하다 할 지언정, 엔트로피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 보존 법칙과 비가역적, 비대칭적 시간의 흐름, 깨달음을 포함한 귀납추리, 엔트로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나는 내가 왜 복스럽게 존재해야 하는지 다분히 회의적이다. 당신의 (행복한?) 존재도 마찬가지고.

주씨가 날더러, 애 키우면서 딸아이가 행복해지길 바라지 않느냐? 고 물으면 명색이 깨달음을 취미로 추구했던 땅거지 입장에서 이상과 같은 저간의 배경을 설명하기가 난처해진다. 간신히 변명처럼 얼버부릴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양육은 자식의 행복이나 부모의 행복과 상관없지 싶다.  내가 바란다고 아이가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끝-

아이와  내가 느끼는 서로의 행복은 n초 짜리 현재에서 상호의존적 감정 교류의 환시와 지속에 바탕을 두고 있고, 굳이 아이와 나 사이가 아니라도 다수의 인류가 느끼는 행복의 상당 부분은 스스로의 편의에 따른 기억의 조작, 노스텔지어, 자아/존재(감)의 영속성 따위를 주성분으로 한다. 드물게 학습한 자가  억수로 행복해지는 또 다른 길이 있긴 한데... 이 세계에 대한 뚜렷한 인식과 이해를 얻는 것이다.  깨달은 자는 그래서 행복할 가능성이 있으나,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은지 남이 그걸 객관적으로 평가할 방법은 없다.

인류가 멸망하고 지구가 녹아내리고 아이가 블랙홀 한 가운데 혼자 내팽개쳐져도 꾸준히 행복해지려면 그래도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굳이 생각했다. 그 깨달음이란게 누가 가르쳐 준다거나, 보리수 그늘 아래 한 30일 앉아 있다가 날로 먹는 건 아닌 것 같고. 쉬운 세 가지를 다시금 반복하자면, 1. 닭대가리가 되거나, 2. 기대 수준을 낮추거나, 3. 최면과 암시 등의 정신승리법, 존재감의 획득, 노스텔지어와 자기환시의 꾸준한 반복을 통해 행복감(고양감)을 얻는 것이 훨 쉽다 -- 함께 하면 좋은 사람이 있거나, 쉬려고 앉은 나뭇그늘 아래 들꽃을 바라보며 마침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땀을 식힐 때, 좋은 책을 읽거나 괜찮은 그림을 보거나 마누라나 강아지가 기특하게 굴 때 '행복해 한다'.

물론 자연계에 존재하는 여러 힘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설명하는 이론이 완성되면 엄청나게 행복해질 수도 있다. 또, 세계 증시 상황이 좋아지면 조금쯤 행복해질 것도 같다.

최근 Accelerando, Atrocity Archives, Jennifer Morgue, Glass House 등 Charles Stross의 책만 네 권을 읽었다. 말이 350p 짜리 소설이지 글자 크기가 워낙 작아서 이건 뭐 500p가량은 되어 보이는 정말 수다스러운 책들이라 네 권 읽는데 거진 한 달이나 걸렸다.

Atrocity Archives와 Jennifer Morgue는 컴퓨팅과 흑마술을 흥미진진하게 뒤섞어 놓았다. 튜링이 유니버셜 튜링 머신을 만들면서 동시에 프랙탈 차원 또는 플랑크 차원과의 수리적인 연결을 입증, 어떤 수식이나 알고리즘을 이용한 기어스(geas)를 사용하면 접혀 있는 플랑크 시공간의 악마를 소환할 수 있다는 기괴하고 별난 설정을 만들었다. 하나 더: observers are required to collapse the wave function. 그래서 아우슈비츠 학살은 나치가 아차원과 이 세계를 연결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파동함수를 붕괴시켰던 것이다 -_- 희대의 과학자들로부터(Today we performed Young's double-slit experiment upon Subject C, our medusa. The results are unequivocal; the Medusa effect is both a particle and a wave...) 온갖 종류의 별난 사람들이 수리적 한계를 논증하다가 발견하는 이러한 아차원 지옥을 막는 것이 주인공과 주인공이 소속된 첩보기관의 임무다 -- 간단히 말해 세계를 구하는 것.

워낙 배경이 별난 소설이기도 하지만, 소설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튀어 나오는 양아치 geek의 농담따먹기(didn't they know that the only unhackable computer is one that's running a secure operationg system, welded inside a steel safe, buried under a ton of concrete at the bottom of a coal mine guarded by the SAS and a couple of armoured divisions, and switched off?)가 꽤 골 때려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설정은 그렇다치고 정보기관의 관료주의와 부서간 알력, 정보기관에 고용되어 일하는 샐러리맨의 애환이 심금을 울린다.

엑셀러란도(김씨 말로는 아첼레란도라고 읽는게 맞단다. 아첼레란도든 엑셀러란도든 제목의 함의가 싱귤라리티를 향한 지수적 가속(?)이란 것에는 변함없음)와 글래스 하우스는 책 뒷편에 적힌 가드너 도조와 말대로 'where charlse stross goes today, the rest of science fiction follows tomorrow'에 걸맞는 훌륭한(읽으면서 지난한 SF 독자 인생에서 항상 부족했던 2%를 채워주는) 포스트 사이버 펑크물이다. 본격 싱귤라리티 시대의 태동과 싱귤라리티 이후 Urth(earth)를 떠난 인간의 이야기(Glasshouse)를 다룬다 -- 글래스하우스는 그닥 취향에 맞지 않았다.

책 두께와 분량이 점점 늘어나고 배경과 묘사가 복잡하게 얽혀버린(?) 요새 SF를 읽으려면 독자는 보다 많은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안 그럼 지루할 수도?). 스트로스가 스크립트 키드 세대이고(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 영유아시절부터 독실한 SF 신자였기 때문에 컴퓨터 공학과 양자역학, 그리고 현대 물리에 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읽다가 머리에 쥐가 날 수 있는 그런 소설을 썼다. 하다 못해 업계용어로 농담 따먹기하는 거 제대로 알아먹기도 힘들 것 같다.

SF를 읽는 평균적인 한국 독자에게 그렉 이건의 소설에 등장하는 코펜하겐 학설이 어렵게 느껴진다는 얘길 몇 차례 들었다. 그 따위로 일반화하긴 곤란하지만, 최근에는 LHC 때문에 (정작 호킹은 그 발견에 부정적인) 발생할 수 있는 호킹 블랙홀로 인해 지구가 멸망할 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의 글이나 지구가 멸망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살충제를 먹고 자살한 인도 소녀, cern의 과학자들을 협박하는 작자들의 얘기를 보고 들었다. 이건 뭐...

하여튼 상황이 그렇다보니 스트로스의 아트로시티 아카이브 같은 소설은 나같은 사람에겐 웃기자고 마음 먹고 쓴 흥미진진한 본격 개그소설이지만(스트로스가 설마 SF계의 테리 프라쳇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종종 어떤 사람들에겐 그럴듯한 설득력(있을 수 있는 일이야!)과 미래와 현생 인류에 관한 멋진 인사이트를 갖춘 훌륭한 픽션이 될 수도 있다.

비근한 예로, 술자리에서 가볍고 로맨틱한 농담따먹기로나 할만한 얘기인 칼 세이건의 말, '이 우주에 오직 인간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공간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를 정말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고 (변수가 어설퍼서 확률 자체가 성립될 지가 의심스러운 숫자놀음이라는 생각이 드는) 드레이크 방정식을 들먹이며 외계인의 실재에 나름의 확신과 믿음을 갖는 사람들을 꽤 보았다.

안 그래도 인생 복잡한데, 다른 사람 이야기로 이 블로그를 오염시키는 것은 좀...
Initial D와 원작자가 같을 것으로 추측되는 완간 미드나잇, 애니판을 24편까지 봤다. 자막으로  '법 원리를 무시한 도로교통법 제 63조를 개정하라!'는 메시지가 가끔 떴다.  도로교통법 제63조가 뭔가 싶어 뒤져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도쿄 근처의 도로를 실제로 매핑한 것 같다. 완간 익스프레스(한국으로 치자면 강변북로, 올림픽 대로, 서울 외곽 순환 도로 및 자유로쯤 되려나?) 에서 새벽에 돈을 쏟아부은 튜닝카를 몰고 나와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폭주질을 하며 즐기는 다양한 사람들의 얘기를 다룬다. 사실 왜 그렇게 달려대는지 정확히 이유를 모르겠는데, 달리는 작자들도 자기들이 왜 달리는 지 모른다. 자기가 왜 사는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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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거짓말'. 첫 두 편을 볼 때는 desperate house wives의 짝퉁인 줄 알았다. 40대 아줌마들의 사쿠라 연애 얘기. 전남편의 시어머니에게 딸을 양자로 보내고, 치매 걸린 아버지를 끌고 건널목을 건너며 자기를 기다리던 전 애인을 뒤돌아보는, 이 위험한 여자의 하루살이같은 인생의 소망은 자기와 같은 꿈을 꾸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건대 -- 찰스 스트로스의 이야기 때문에 생각했다 -- 이 세계에서 배역을 맡은 좀비와 진짜 인간을 구분하기 점점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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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념의 잠드. 어째서인지 미래소년 코난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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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ekicker 2화. 한 고고학자가 고증을 맡고 있지만 이뭐병 내지는 여병추 같은 주요 출연진의 오버액션에 정이 안가서 보는 맛이 점점 떨어진다. 뒤져보니 BBC에서 본키커가 시작될 당시의 높은 시청율은 회가 거듭될수록 떨어졌단다. 1화에서 기독교 순수주의자가 영국에 정착한 이슬람 이민자의 목을 자르는 장면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입이 쩍 벌어졌던 기억이 난다.

2화에서는 독립전쟁 당시 워싱턴과 함께 영국군과 싸웠던 자유 흑인 집단이 밀항해서 영국의 어느 섬에 정착해 살았다는 얘기와 그들의 후손인 미국의 흑인 대통령 후보가 등장. 그건 그렇고 오바마 연설하는 거 들어보면 왠지 시장통 약장수 같아 보였다. 미국은 과연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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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Vs. Wild.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던 다큐멘터리. 스위스 아미 나이프와 부싯돌 정도만 주어진 채 낙하산 타고 오지에 떨어진 전직 SAS 출신의 아저씨가 쌩야생을 통과하여  문명으로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

모하브 사막의 45도 넘는 더위를 견디기 위해 티셔츠를 찢어 자기 오줌을 적신 후 머리에 뒤집어 쓰는 장면이 퍽 쓸모 있어 보였다. 아,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감탄하면서 무릅을 쳤다. 근데 이왕이면 수통, 칼, 부싯돌 없이 던져 버리지. 야생에서 생존법을 가르치면서 사람들이 평소에는 들고다니지 않는 것들을 가지고 다니면 불공평하지 않나? 아쉬운 것은 주인공이 운이 너무 좋아 계속 살아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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