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 Hogan'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11.11 반시계방향 인류 5
  2. 2007.11.08 how the mind works 1

반시계방향 인류

잡기 2007. 11. 11. 17:31
세계일주하며 80차례 맞선 -- 신부감, 신랑감은 원래 이런 방식으로 구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노출 기회를 확대해 적합한 배우자를 입맛에 맞게 고르는 것.강한 자기애에 유별나게 집착하던 과거 내 자신의 우스운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적령기(?)에 여자들과 맞대면하면 사귀거나 사귀지 않거나 상관없이(피차 무책임하게)  저울질하고 재는 느낌 때문에 불편했다. 나이든 여자는 아주 노골적이고 젊은 여자들 중 일부는 수상한 게임을 하고 낚시질은 보편적이었다(안 그러는 여자들은 존재감이 희미하던가 재미가 없고). 나도 똑같은 짓을 했으니 할 말 없다. 따라다니면 달아났다. 유부남이 된 후로 강력한 천연 AT 필드가 생긴 것 같아 숨통이 트였다. 이제는 즐길 수 있다. 아... 이건 아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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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초쯤 이 그림을 봤다. 시계 방향이면 오른뇌, 반시계 방향이면 왼뇌를 자주 사용한다고 하더라. 오락가락 한다. 이공계열에 좌뇌형 인간이 많다고 하는데, 이공도 인문도 아닌 상경계는 왼쪽, 오른쪽으로 오락가락 고속회전하던가 살색을 입혀 본 후,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력히 비난할 것 같다.

이씨가 어젯밤 모임에서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상경계를 다룬 우스개를 했다: 물리학자와 화학자, 경제학자가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도착했다. 통조림을 하나 발견했는데 통조림 따개가 없다. 물리학자는 뉴턴역학을 기억하고 돌덩이로 힘을 가해 통조림을 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화학자는 전공을 살려 바닷물로 통조림을 부식시켜 보려 했으나 택도 없었다. 그때 경제학자가 이렇게 말했다; '자, 여기 통조림이 있고, 통조림 따개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텔미 텔미 테테테테테 텔미 -- 리드믹하고 고저차가 별로 없는 쉬운 노래와 레트로 디스코 댄스가 결합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원더걸스. 유행에 딱히 관심이 없지만서도 길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이 장난 아니다. 흡사 목적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그저 독자 생존의 길을 걷는 막무가내 문화적 밈처럼 무섭게 번져간다. 좌뇌, 우뇌가 골고루 발달한 상경계라면(추정) 여기서 마진을 취할 방법을 제대로 집어낼 것 같다. 하루 빨리 상경계가 되어 대뇌를 백퍼센트 제대로 활용하고 싶다.

오마이뉴스 기사 중에 '한국어를 잘 쓰려면 '~의'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고 적혀 있다. 찾아보려니 기사를 찾을 수 없다. 요지는, ~의가 일본의 언어생활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한국어/한글에서 굳이 사용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한국어를 맵시있게 잘 사용하는 사람을 많이 본 적 없다.

최근 2주간 세미나에 보낸 직원들이 보여준 교재 내용의 수준이 상당해 교수자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니 박사 학위 따고 모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양반이란다. 교육 과제가 데이터베이스 튜닝에 관한 것인데 이론과 실무 운용 경험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말하자면 학교에서 이론 연구를 주로 하던 사람의 글솜씨치고 몹시 훌륭했다. 이런 수준 격차가 학교 교육 때문인지 아니면 개개인의 능력과 노력에서 비롯된 차이인지 잘 모르겠다.

수개월 전 직원들에게 한 달간 어플리케이션 매뉴얼을 작성시켜 보니 철자 오류/띄어쓰기 오류는 기본이고 아웃라인을 잡을 때부터 헤멨다. 장/절 나누기, 문장 기호, 단락 구분, 비문, 수동태,  접속사 오류, 부사구 사용 오류, 아스트랄한 서술, 시제 불량 등등 버그가 상당했다. 매뉴얼은 요령이 몸에 배면 서술형 글쓰기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체계적 글쓰기를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고 그럴 필요성을 이공계 학생들이 느끼지 못한 것일께다.

그런 까닭에 이공계 졸업생들이 레포트 작성해 놓은 것을 보면 애들 장난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 직원 중 뒤늦게 석사가 될 친구의 학위 논문 작성을 며칠 도와주었다. 이공계 논문 작성에 필수적인 '실험 데이터를 뜻대로 조절(조작)하여 대조군과의 변별성을 강조'하는 것을 제대로 못했다. 논문 심사할 때 디펜스 제대로 하려면 사전 지식도 많이 구축해 놓아야 하는데 잘 될런지... 리허설 해 준다니까 석사 논문은 그리 빡세지 않다고 사양한다. 빡세지 않단... 말인가?

송씨 말로는 이공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문계 역시 글쓰기가 심각한 수준이란다. 입말은 정황적/정서적 문맥 해석이 가능하지만 (별 관심없는 인문계 글쓰기와 달리) 이공계가 사용하는 글말은 정확성, 적합성, 간결한 서술, 구조적 완결성 등 갖춰야 할 간단한 규칙이 몇 가지 있다. 자나깨나 그런 종류의 문서를 밤낮없이 읽는 이공계라면 그런 규칙을 자연 학습할 법도 한데, 글쓰기, 글읽기, 말하기가 제각각 달라 돼지고기나 소고기처럼 대뇌도 부위별로 학습이 필요한 것인가 보다.

그건 그렇고 며칠 전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감자탕은 감자와 돼지고기 등뼈를 넣어서 감자탕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라, 돼지고기 중 '감자'라 불리는 부위가 들어가기 때문이란다. 황당하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이다지도 어려운 한국어를 공용어로 만들기는 바늘구멍에 낙타 집어넣는 만큼 힘들겠지만(대세는 영어, 그것도 미국이나 서구권 영어가 아닌 지방색과 뉘앙스를 제거한 공통상업영어) 작년인가? 사라져 가는 소수민족의 언어를 보전하기 위해 한글을 사용하자는 문자화 시도/제안은 매력적이다(영어권에서 소수민족의 언어를 기록해 놓긴 했는데... 영어가 워낙 한심해야 말이지, 나중에 제대로 재현해서 읽기 힘들 것이다). 그만큼 한글이 배우고 사용하기 쉬우며 유연하다는 뜻이겠지. 문서화, 전산화 등 보전/전수하기도 쉽고.

그렇다고 한글이 많은 언어의 음운/음가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국문학자나 인류학자들이 한글을 꾸준히 개량해서 적용범위를 넓히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영어마저도 한글로 표현하려면 확장이 불가피하다. 영어의 V/B, R/L, F/P, TH등의 음가를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까. 'Victor Flash really like go through' 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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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한글 고어보다 간단하고 멋지긴 한데, ER이 빠졌군. Flasher를 '플래셜ㄹ' 이나 쌍리을로 해결~ <-- 이게 바로 인문학/이학과 공학의 차이. 이론이나 학술적 배경에 관심없고 실무 적용 후 들어맞지 않으면 덕지덕지 갖다 붙여 외계어 체계를 대충 완성하고 만족. 때로는 이김에 관련 체계를 특허나 내 볼까? 라고도 생각해 보지만 현업과 무관하니까 관두자.

제임스 호건의 Giant 3부작 중 두번째, Gentle Giant from Ganimede를 마저 읽었다. 보스턴의 셜록 홈즈라 불리는 빅터는 이번에도 단체커 박사와 합심해서 가니메데에서 250만년 전에 사라진 평균 신장 2.4미터 외계인(자이언트라 불림)의 미스테리를 추적한다. 전통적인 추리 미스테리와 다른 점은 희박한 증거(지구와 가니미안의 세계 및 생태계에 나타난 변별성, 즉, 방사성 동위원소가 포함된 엔자임, 행성의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 희박한 태양 에너지, 가니메데의 왕성한 지질 활동) 를 바탕으로 한 (사변적 연역) 추리를 통해 250만년전의 사건을 재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자가 초기 가설을 만든 후 추가로 수집된 정보를 덧붙여 성립된 가설 중 부합한 것을 과학자 집단에서 토론을 통해 진화시키는(선택과 도태) 과정에서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두 세계의 기원과 실체에 접근한다는 점(추리기법이 도입된 SF). 물론 외계인과 음모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글의 중반쯤에 이르러 수집된 증거를 바탕으로 거의 동일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그래도 만약 번역이 된다면 호건의 소설은 수능 교재로 사용하기 적합해 보인다. 몇 가지 조건을 예시한 후 지구인의 기원에 관한 추리를 완성하던가, 소설의 절반을 읽고난 다음 가능한 가설을 제시하던가, 글의 끝에서 가니미안의 선택지를 추론해 보는 것이다. 결론: 제임스 호건의 SF는 학회SF이자 수능SF.

이번에야 조사해 본 호건의 이력: 1941년 출생. 전자공학과 디지털 시스템을 전공,  몇 년 동안 엔지니어로 지냈으며 DEC에서 메인프레임 영업을 하다가 (훌륭한) 기계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인간에 관해 배워 보고 싶어 2년 동안 생명보험 외판원을 했다(뭘 배웠을까?). 1977년 미국으로 이주해(36세) DEC에서 영업 교육 컨설턴트와 미니 컴퓨터 어플리케이션 개발 및 과학연구 활동을 했다. 지금은 그것을 기술영업이라고 부르는데, 요즘의 기술영업과는 다른 면이 있다. 그때가 DEC의 황금기 였고 애정 때문인지 소설에서 컴퓨터 시스템을 설명할 때 DEC가 언급된다.  2년 후(38세) 아일랜드로 옮겨가 전업작가가 되었다. 당시의 컴퓨터 엔지니어링 및 세일즈는 지금과 달리 커팅엣지 산업이었으며 그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광신도들로 구성된 폐쇄된 종교에 가까운 엘리트 사제 집단이었다. 한편에서는 기술을 통한 인간성의 개량에 관한 희망적인 믿음이 팽배했으며 깁슨처럼 기계를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출현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호건은 글쓰기에 좋은 경험을 많이 한 것이다. 혹시나 해서 알아본 배경은 예상대로다! 엔지니어링 마인드가 글 전체에 흠씬 묻어나 있어 (누구는 글이 최악의 수준이라지만) 읽기 쉽고 편했다. 대중의 요구를 정확히 해석할 줄 알았던 아시모프, 세이건, 클라크와 같은 간결한 글쓰기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지만, 대략 16년 이상 숙성된 훌륭한 엔지니어링 마인드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성없음(엔지니어의 말투가 모노톤인 점과 무관하지 않음)이나 당면과제와 문제점에 대한 집요한 집중력이 이해가 갔다.

최근 일본, 미국, 프랑스를 대상으로 엔지니어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어떤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기술자가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는 편인 것 같다. 특히 미국 기술자들중 많은 수가 기술직을 descent job으로 인식하며 자신의 자손에게도 기술직을 권고해주고 싶어했다(한국의 엔지니어중 자기 자식이 기술자가 되길 희망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일본의 경우 전체 기술인력 중 2%가 여성이다. 전반적인 통계로 보건대 세계적으로 여전히 여성은 기술직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혹자는 위선적인 유리천장이나 기술자 사회의 남성중심적 배타성 때문에 여성이 설 자리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뜻대로 생각하시길.

미국 등지 기술 선진국의 컴퓨터 엔지니어 초봉 수준은 4만달러(한국은 2만 달러대),  5-7년 경력직은 대략 8-10만 달러 가량을 벌어들이고 기술직의 한계 연봉은 (들은 바로는) 대략 20만 달러 가량이란다. 물론 몇몇 기업에서 스타급 엔지니어나 성장세가 유지되는 곳은 인센티브, 스톡 옵션 등을 합쳐 실질적으로 이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는다. 경력자로서 연봉 10만 달러를 받는다고 하면 세금은 대략 30% 가량, 주택 모기지와 적어도 한 대 이상의(보통은 2대) 차량 구입/유지비, 생활비, 아이들 교육비 등을 더하면 한국에서 연봉 4-5000만원 정도의 기술자와 비슷한 생활 수준이 된다.

한국의 컴퓨터 엔지니어 대부분은 퇴직 전까지 꾸준히 기술직으로 먹고 살았으면 하는 순진한 바램이 있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지난 20년간 툴은 수십 차례 바뀌었고 기반 기술이나 플랫폼이 뒤집힌 것은 대여섯 차례 가까이 되며 유행하는 사조 역시 셀 수 없이 변화했다. 개발 방법론도 조직 구조도 몇 차례 바뀌었다. 삼성 회장이 말했던가?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 안 그래도 그 지경이다.  컴퓨터 엔지니어는 전문직종 중 유난히도 꾸준히 학습해야 한다. 반면 좌뇌던 우뇌던 대뇌의 신경세포는 꾸준히 죽어 나간다. 스펀지처럼 쭉쭉 지식을 빨아들이던 십대, 이십대 머리는 점차 딱딱하게 굳어가 학습 곡선이 예전같지 않게 된다. 머리가 안 따라주고 겁만 늘어나니까 생뚱맞은 고집과 온갖 종류의 핑계만 늘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당신보다 값싸면서도 경험이 몹시 부족해 겁대가리가 없을 뿐더러 최신 기술을 익힌 젊고 혈기왕성한 엔지니어와 경쟁해야 한다.

두번째, 나이가 들면서 결혼도 하고 애도 갖고 이런저런 책임을 지게 되면 자연히 일과 상관없는 생활의 복잡성도 증가하게 마련이다. 하루 18시간씩 아무 생각없이 기쁘게 일에 매달리던 젊은 시절과 달라진다.

이런 저런 이유로 삶이 무한투쟁에 가까운 한국의 특수성 탓에 부스에 틀어박혀 행복하게 코딩만 하겠다는 순진한 생각은 나이가 들면 천천히, 슬며시 접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잖아도 한국에는 기술과 경영, 기술과 마케팅, 기술과 영업, 기술과 기획, 특히 기술과 기술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할 중간 기술 관리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가 예전처럼 스타 플레이어 한 두 마리가 전체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현하던 단순한 시대는 지나갔다.

선진국 기술이민에는 또다른 문제가 있는데, 단순 기술직으로는 연봉 상승에 한계가 있다. 단순 기술직->기술 관리직으로 업그레이드하게 되면 연봉이 상당히 올라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단순 기술직 까지는 언어에 불편함이 없지만 기술 관리직으로 넘어가면서 망할 언어적 뉘앙스를 비롯하여 다방면에서 문화 차이가 심각하게 드러나기 시작. (한국의 자회사나 한인교회의 끈끈한 우애나 한인사회 내부에서 안전하게 거주하지 않는 한) 뼈속까지 미국 외계인이 되지 않으면 기술전문직 또는 고위직으로의 이동이 그렇게 쉽지 않다.

등등의 이유로 단순 소득면에서 기술직 이민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또한, 아까 말했다시피 억대 연봉을 받아도 손에 쥐는 소득은 그렇게 많지 않아 여유자금을 이용한 금융투자 등으로 직업외 소득을 얻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기술자는 의사나 경영직과 달리 거의 쉬지 않고 학습해야 하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 미국에서 근무하면 주 5일에 나인투파이브 근무라고 하지만 전세계 어느 나라든 컴퓨터 엔지니어가 야근 안 하는 곳은 들어본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특히 다른 나라들 대개가 작업 강도가 쎄서, 한국에서처럼 웹질하며 탱자탱자 일하는 둥 노는 둥 하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세금을 많이 내는 만큼 사회 안전망/사회 간접 자본에 대한 투자가 한국에 비해 현저한 차이가 나므로 기술자로 먹고 살기로 결심한 이상 미국 등지에 취직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아내가 외국 나가 살고 싶어하기도 하고)  글쎄, 나는 이씨 아저씨의 표현인  '한반도 변태들'과 소주 한 잔에 스트레스를 풀고 날이 갈수록 SF&F 스러워지는 한국에서  (때로는 먹고 사는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스릴을 만끽하면서) 온갖 미친 리얼타임 인터랙티브 생쑈에 짜증을 내거나 즐거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는.

비록 대다수의 출연진이 로봇같은 개성빵점의 소설을 썼지만 호건의 이력과 그의 글에 몹시 친근감을 느꼈다. 그는 기술만능주의 시대의 풍요로운 결실과 희망을 맛본 순수한(순진한?) 작가이며, 무엇보다도 (컴퓨터 엔지니어의 숙명이기도 한 끊임없는 학습에 염증을 느꼈을 지도 모르겠지만) 38세에 직장을 접은 엔지니어 출신이다.

아쉽지만 엊그제 시작한 3부 Giants' Star 초반부는 많이 지지부진하다. Old man's war부터 읽어봐야지.

오늘 블로그질 하면서 많이 호들갑스러웠다. 기분이 좋아서. 어제 일년 가까이 잡지 못하고 방치해 두었던 다른 사람 프로그램의 버그를 드디어 잡았다. 내가 넘겨받아 본격적으로 버그를 사냥하기 시작한지 나흘만이다. 장시간 운영중 무작위적으로 발생하는 랜덤 에러라 잡기가 무척 까다로운 버그였다. 시뮬레이션을 해서 거의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버그를 재현해 보니 결국은 간단한 스레드간 락킹 문제였다.

The Unit
헐리웃의 시나리오 작가들이 총파업. 2차 저작권 문제 때문인 듯. 한 동안 유닛, 덱스터 등이 지지부진하게 생겼다. 제이양처럼 스타트랙이나 다시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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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사진을 본 적이 없다고 해서 첨부. 아빠건 엄마건 음마로 통일해서 부른다. 일관성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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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사생활'의 그 영악스러운 아기처럼 책 읽는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집에서 책을 읽은 적이 없는데, 우유 배달부라도 왔다간건가? 그림책에서 뭘 보던 손가락으로 집으면서 '음마' 라고 부른다. 일관성인지 자기만의 고집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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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he mind works

잡기 2007. 11. 8. 00:45
스티븐 핀커의 저서가 국내에 여럿 번역되었다. 게을러서 안 읽고 게겼던 것 같다. how the mind works, language instinct, tabula lasa. 이중 빈서판은 작년에 읽은 것 같은데? 남은 두 권은 언제나 읽게 될까... 쥬디스 리치 해리스처럼 싸움닭스럽고 쥬이시, 스파이시한 주제로 글을 쓰는 매우 인상적인 학자 임에도 논란의 와류는 제법 요령있게 피해가는 듯. 어떤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그의 글을 읽으면 똑똑해진단다. DHA가 풍부한 교양과학서랄까.

술을 안 마시는 것은 인생에 대한 중대한 직무유기인 것 같아 일주일에 못해도 한두 차례는 술을 마셨다. 중이염 치료가 더뎠던 것은 뇌물에 찌들은 신경계 내지는 부패한 면역계의 외설스러운 반응이나 지방이 풍부한 안주를 곁들인 술 마시기 등의 바람직하지 못한 식습관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개중에는 상갓집에 가서 새벽 네 시까지 퍼마시고 출근한 최근 일도 있었다. 그럼 의사들은 잠꼬대처럼 왜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추측컨대 술을 마시는 것은 위장과 간에 무리를 주어 수면중 알콜 분해에 역량을 집중하느라 병균을 죽이고 인체를 재건하는데 열심히 삽질해야 할 세포들이 딴전을 피우는 것을 막기 위해서... 라고 생각했다. 그럴듯하긴 하지만 근거 없다.

2주 동안 병원을 들락거려도 도통 염증이 가시지 않다가(적은 양이지만 술은 마셨다) 갑자기 딴 생각이 들어 병원을 바꿨다. 유크라 정과 알콘시프로바이점이현탁액(퀴놀론계 항균제) 투약 후 약 2시간 만에 염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2주 동안 먹었던 각종 기분 나쁜 소염진통제, 항생제, 위장약 트리오가 아닌, 단 하나의  알약으로 기적같은 치료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날 밤(11월 2일) 편히 잤다. 의약품 검색은 http://www.kimsonline.co.kr/

의사의 진료행위에 대한 불신은 치료에 전혀 도움이 안 되야 정상인데, 나처럼 위약 효과가 별 의미가 없으며 현대문명, 특히 의학과 생물학에 대한 뿌리깊은 회의를 갖고 있는 사람은 병도 더디게 나을 것 같지만, 사실 그 반대였던 적이 더 많았다.

술 먹고 담배 피우고 매일 밤 늦게 자고 하루종일 정신없이 일하는 내가 불가해하게 건강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정신 상태가 가끔 심하게 멀쩡하기 때문. 멀쩡하다고 하긴 뭣하고 명료하다고 해야할지(하얀 눈밭을 에운 검은 숲처럼) 가끔씩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가볍게 한 대 맞은 것처럼(뎅~) 갑자기 의식이 뚜렷해 질 때가 있다고 해야 할지. 하루중 대부분이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런 순간은 짧고 단속적으로 한 두 차례 두서없이 나타날 뿐이다. 그보다는 형편없는 기억력이 생활에 많은 불편을 야기했다. 하여튼 그런 순간이 오면 섭취한 영양분이 삽시간에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비타민이란 괴상한 TV 프로그램에 따르면 건망증은 DHA가 풍부한 삼치로 치료하면 된다.
아니면 똑똑한 채 잘난척하기 좋은 책(이를테면 핀커류)을 몇 권 읽던가.

스푹스는 3기에 들어서 메가리가 없어졌다 심하게 말하면 스파이들이 꼴갑 떨고 있다. 자전거 타기처럼 드라마란 업이 있으면 다운이 있게 마련 -- 영화와 달리 드라마란 것은 원래 너저분할 수 밖에 없게 마련. 덱스터는 2기에 접어들어 자신의 어둠을 드러내는 방법을 서서히 배워가는 중이다. 내게도 덱스터같은 어둠이 있던 시기가 있다. 심연을 뚜러지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당신을 쳐다본다 고 니체가 말한 적이 있다. 30대 초반까지의 고민과 30대 중반 이후의 고민은, 설령 그것이 프로그래머의 것이건 살인마의 것이건, 질적인 면에서 확연히 다르다. 덱스터가 바로 그 과정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자신이 살해한 18구의 시체가 발굴되면서 화면은 빙글빙글 돌아가고 그동안 별고없이 행복하게 살았던 덱스터는 자신의 인생을 강제로 되새김질하게 되었다. 씹은 것 또 씹는 무슨 황소도 아니고, '나는 뭘까?' 참고로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일관적이다.

애매한 정신세계는 단속적인 성장 상태  또는 지지부진한 답보 상태, 이도저도 아닌 상태  등 몇 안되는 state에서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내가 가끔은 성장했다고 잘난 척 할 처지가 못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나 인간에 관해 그렇게 많이 알아봤자 써먹을 데도 없고 실제로 어떻게 써먹어야 할 지도 모르는 그런 류의 지식을 갈고 닦아봤자 뭐하겠나 싶다. 가끔 당신에 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나 놀래키는 용도? 어떤 면에서는 인간에게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조씨 아저씨는 평소 저 혼자 일하면서 연락도 안하고 사무실에도 가끔 안 나오는 등 나름대로 자유를 만끽하며 지내다가 사람들이 자기를 왕따 시키는 것 같아 한편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동시에 한편으로 소외되어 화가 치밀어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자기는 소외되어서 기쁘다며 화를 내는 것이다. 그는 그가 응당 받아야 할 대접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 쓸모도 없이 버려지거나 웃음꺼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인 듯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조씨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살아야 할 이유를 늘 오락가락하는 결의와 사회에서의 위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해와 인정, 감정적 결속(사랑, 신의, 우정 등속) 속에서 굳이 찾아냈다. 그런데 왜 그런 것에 관해 의문을 갖고 다른 것이 있는지 찾아보지는 않으려나? 그런 고민없이 정말 어처구니없게 행복하게 사는 나는  뾰족하게 뭐라고 위로해 줄 수도 없다.

나이가 들면서 주윗 사람들의 고집이 밑도 끝도 없이 늘어나고, 마찬가지로 자존심도 밑도 끝도 없이 커져가면서 머리는 점점 나빠지고 감정적 격앙 등의 정서 반응이 점점 십대스러워지는 모습을 본다. 

AR의 Pushing Ice를 10일에 걸쳐 읽고 감상문을 쓰지 않았다. 레널즈는 드디어 하드SF가 아닌 SF를 쓸 수 있게 되었다. 하-드한 묘사의 파격적인 생략과 지저분한 인간관계를 전면에 내세우는 센스, 그러면서도 상대론적 속도로 은하계 저 먼 곳까지의 로-맨틱한 여행(만 오천년이던가? 십만년이던가?), 커다란 드럼통에 은하계에서 긁어 모은(흡사 지나가는 강아지를 쏘세지로 꼬시듯이)  각종 외계인을 수집하여 동물원을 꾸미려는 미스테리한 외계인스럽게 밑도 끝도 없이 장려한 계획, 살아남기 위해 피차 발버둥치는 외계인들 간의 처절하고 궁색한 생존 경쟁, 나노테크는 시시해졌는지 이제는 펨토테크가 대세다!  라마와의 랑데뷰 + 링 월드 + 타우 제로 + 영화 아마겟돈 을 합치면 이런 SF가 나온다. 누가 코치라도 해 준 건지 날이 갈수록 글솜씨가 좋아졌다.

 

인터뷰 사진은 시끄러운 옆집 노파를 토막 살해 후 입 닦은 모습이었더랬는데...

Alastair Reynolds
푸싱 아이스의 책 날개 사진은 한 십년쯤 집에 틀어박혀 가사와 사이버세계에 전념해 온 88세대같은 모습이었다. 레빌레이션 스페이스 시리즈가 끝난 후 우리(?)가 포근하게 느껴왔던(?) 그의 고딕 스타일 우주는 그렇게 끝장난 것이다.

레널즈가 이번에 특별히 가볍게 과학기술을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SF 업계에서 네임벨류는 거의 없지만 위대한 하드SF의 거장답게) 디테일의 일부는 어쩔 수 없이 하드했다. 벨라와 스베틀라나의 역학 관계의 이동 중심추가 무식하고 힘만 쎈 웨일즈 촌뜨기 광부를 모티브로 삼은듯한 얼음청소부인 것은 사실 정해진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는 극 전개를 예상하게 하지만 부담 없으면서도 깔끔한 전개와 결말을 비교적 짧은 500 페이지 가량에 균형있게 배열했다. 아무래도 누군가 그에게 작법 지도를 하던가, 편집 쪽에서 상당한 파워를 가했던가, 레널즈가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자고 정신 차린 것으로 보인다. 엔터테인먼트 면에서나 SF 함량 면에서나, 읽기 좋고 즐거운 소설이었다. 떠오르는 작가의 주특기가 몽땅 거세당하고 나서야 소설은 나오게 되는 것인가? 이런 토크플레이러브스러운...

제임스 호건의 giant series중 첫 권인 inherit the star도 마저 읽었다. 7월에 반쯤 읽다가 말았는데 어느 페이지에서 펼치더라도 상관없이 주욱 읽을 수 있는 정말 희한한(rare) 하드 SF다. 극 초반에 달 표면에서 발견된 5만년전의 인류를 쏙 빼닯은 외계인 시체의 미스테리를 푸는 과학자들의 논쟁을 다룬다. 7월에 더 읽을 맛이 안 났던 것이... 결말이 이렇게 저렇게 날 것이라고 예상해서(너무 뻔히 보여서) 흥미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증거와 논란 주제를 여러 개 나열하고 그걸 짜맞추기 하다보면 피할 수 없는 단일한 결론이 나온다(그리고 그 논란에 부속된 전개가  이 소설의 전부다). 그게 책의 딱 절반에 모두 제시된다. 마지막 한 둘 쯤은 꼬불쳐 두었다가 클라이막스에 써먹었어야 하는데, 이 책은 도대체가 클라이막스란 게 없다.

그러다가 무릅을 탁 쳤다 / 깨달음이 왔다 / 대뇌피질에서 포도당이 왕성하게 소비되는 느낌이 왔다. OSC가 예시하던 하드SF가 바로 이거였구나. 그러니 OSC가 하드SF의 'ㅎ'도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 바보 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는거지.

아울러, 김씨 아저씨던가?  호건을 지지리도 글 못쓰는 얼간이라고 놀리던 기억이 난다. 산소가 부족한 우주선, 가니메데 캠프에서 공기 오염 걱정 없이 툭하면  담배를 뻐끔뻐끔 빨아대는 것, 주인공이 지구에 화상 메일을 보내는 극히 촌스러운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외계인의 지구기원설을 강력하게 주장하던 단체커 교수가 많은 미스테리가 풀린 후 그것을 축하하는 칵테일 파티장에서 인간성을 씹어대는 연설을 멋지게 해 내는 장면이었다. 분위기 정말 cool(썰렁)한 것이, 호건은 '학회SF'라는 소설업계에선 존재해선 안되는 장르를 제대로 개척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고 싶어졌다. 그게, 70년대 소설임에도 별로 촌티가 나지 않았다 -- 학자들 세계는 백만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테니까.

Danchekker가 이렇게 끝맺었다. "Let us go out, then, and claim our inheritance. We belong to a tradition in which the concept of defeat has no  meaning. Today the stars and tomorrow the galaxies. No force exists in the Universe that can stop us."

피를 끓게 하는 연설같아 보이겠지만... 천성적인 개망나니 인류가 우주로 나가 무슨 짓을 할런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을 뿐더러 말려도 소용없다 라는 뜻이다 -- 단체커는 cool할 수밖에 없는 학자기 때문에 인류가 그러다 멸종해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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