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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dish privacy

잡기 2007. 2. 18. 11:52
신문기사를 읽어보니 스웨덴의 프라이버시는 점점 신경질적이 되어가는 미국이나 한국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자동차 번호를 컴퓨터로 검색하면 어디 사는지, 직업이 뭔지 다 나온단다. (달리 말해 스웨덴 사회는 편안한 익명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공포스러운 구석이 있다) 보험아줌마들이 다 알고 있는 신상정보에 흠결이 있다고 차별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을 못봐주겠다는 것이 한국, 미국식 프라이버시인 것 같다. 이력서에 사진을 못붙이게 하거나 성별, 생년월일, 피부색을 기입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던가? 그걸 기입해도 차별과 불이익이 없어야 까칠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게 아니고? 동키호테에서 쉽게 입수가 가능한 이력서나 개인 정보를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칠 수 있는데, 잠재적인 범죄자들은 훨씬 더 수준높은 상상력을 발휘해 그것을 이해관계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인지도... '사이보그라서 괜찮아'에 나온 말; '희망을 버려. 그럼 편해져. 대신, 밥 먹고 힘 내'. 프라이버시 침해로 피해를 당해본 적이 없어서인지(이건 그냥 삶의 조건이자 양육생장환경인 것이다) 프라이버시 문제에 딱히 상상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Michael Schenker Group, Lost Horizons (7:07) -- 워낙 게을러서 이제야 올리게 되었군.



생후 6개월이 지나서야 라자스탄 바보 공주 복장을 한 애가 뒤집기를 했다. 그 동안 뒤집기를 안하려고... 개겼다. 이 아이는 아빠,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는데 그다지 관심이 없어보인다. 사실 뒤집기를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게다가 나는 행복을 추구해야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성질상 로또같은 것이라서). 손가락이 다섯개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평범하다는 것이 축복이겠지만(다르지 않음으로 인해 어딘가에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끼고 안도함으로써) 그런 안도감이 공허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마찬가지로 그런 안도감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것도) 잦은 변화를 겪는 제 정신 상태에 따라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평범한' 인간에게 별달리 기대할 것이 없다는 점. 그리고 당신에게 삶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 안달하거나 관조하게 되는 어떤 대상이 된 점. 삶이 죽음을 비롯한 몇 안 되는 축약 가능한 존재론적 상태보다 굳이 나은 점을 여전히 발견하지 못한 점. 나나 당신의 하찮은 삶에 흥미를 잃어, 같은 이유로 친구를 여럿 잃게 된 점. 심지어 내가 염세주의자가 아니라는 점. 라 로시푸코가 주장했다 '태양과 죽음은 똑바로 응시할 수 없다'. 아이 머리의 챠크라(대천문)는 한참이 지나야 닫힐 것이다.

소주 한 병 먹고 다음날 아침 구토가 치밀고 식은땀이 흘러 병원에 가보니 급성 알콜성 위염이라며 일주일치의 약을 처방했다. 집에 돌아가서 종합검진을 제대로 받아보란다. 상태가 매우 안 좋았지만 그날은 독기로 일했다. 같은 날 약한 감기에 걸렸다. 작년 9월부터 매우 힘차게 일해왔다. cause and effect로 볼 때, 위염은 당연하다. 마누라를 친정에 보낸 후 며칠 동안 술을 마셨다. 어제는 9시간을 잤다.

영화, 프레스티지: 크리스토퍼 프리스트 소설 원작. 즐겁게 보았다. 테슬러는 여전히 비범한 변태 싸이코처럼 보였다. 흡사한 변태 싸이코였던 에디슨이 테슬라의 연구시설을 불태워 버렸다. 그런데 에디슨은 여전히 존경받고 있다. PR의 승리다.

아포칼립토: '모든 위대한 문명은 망하기 전에 이미 내부로부터 붕괴된다' 라고 시작한다. 멜 깁슨의 이 변태 사상은 영화 개봉 당시 많은 사람들을 열받게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나도 메소아메리카 여행 중 이 따위 문명은 일찌감치 멸망해 버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한심하고 미래가 없는 문명이라고 느꼈다(그 이유에서, 하던 역사(?) 공부를 접었는데, 어쩐지 뒤가 캥기긴 했다). 인신공양을 얘기하는 것만은 아니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대체 어떤 시대일까 궁금했다. 마얀 전고전기? 후고전기? 떼오티후아깐? 올맥? 아즈텍? 대체 저긴 어디야? 단서는 두 번 주어졌다. 제사장이 꾸꿀깐이라고 소리친다. 꾸꿀칸은 남미판 용인 털달린 뱀인데, 께찰코아틀이 신인격화되기 시작한 시대가 있었다. 태양이 뜨거운 동네다보니 께찰꼬아뜰같은 물의 신은 매우 중요해서 사람들 목을 잘라 신에게 생명수를 줘야지만 신이 생기를 얻어 부활한다. 제사장들 없으면 신들은 쉽게 말라 죽어버리는, 말하자면 무능한 신들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두번째로, 버려진 아이들을 떠나는 엄마는 익스첼에게 기도한다. 아, 유카탄이었구나... 그런데 마지막 장면을 보고 욕지기가 치밀었다. 코르테스로 보이는 작자가 접안중이다. 망하기 전에 이미 내부로부터 붕괴된 것은 좋은데, 저건 정말 멜 깁슨이 욕을 바가지로 먹을만했다. 디테일이 워낙 훌륭해서 영화 자체는 흠잡을 곳이 없다. 언제나 그렇지만, 철학이 문제인거다...

샤크가 대체로 기준 미달이라면(대두 변호사가 개과천선?해서 검사가 되어 범죄자들을 때려잡는다는 얘긴데 여러가지로 궁끼가 낀 드라마), 어쩌다가 우연히 다운 받아 1화를 보게 된 dexter는 남 얘기 같지 않아 재미있었다. 흠잡을 데 없는 캐스팅, 멋진 대사, 드라마 내내 적절한 자극을 적절한 장소에서 구사하는 능력 등, 프로파일을 교과서적으로 베낀 듯한 시나리오는 대체로 좀 밋밋한 편이다. 독특한 소재와 더블어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가는 사랑스러운 연쇄살인마는 4화쯤 드디어 어린아이 티를 벗어나 제대로 된(자기만의 철학을 가진) 살인마의 길을 걷게 된다. 덱스터는 연쇄살인마의 성장통에 관한 드라마다. 타이틀롤이 훌륭. 회를 거듭할수록 좀 더 많은 피가 튀겨 극에 감칠맛을 더했다. 그런데 경정맥을 절단해 피를 뽑는 건 멧돼지 잡을 때 하는 짓 아닌가? 시즌 1기의 마지막 남은 몇 편을 보기 전까지 나는 경쟁자(?)인 다른 연쇄살인마가 사냥꾼 출신이라고 생각했다. 바보같이.

잔잔한 피아노곡이 흐르며, 묘한 미소를 짓고 생각에 잠긴 덱스터 모건; '나는 내가 혼자인 척 하는 것이 좋다. 완전히 혼자. 흑사병 대참사 후이거나... 어쨌든. 정상적인 척 보여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내가 진짜 누구인지 숨길 필요가 없다면, 그건 해방일 것이다"
"병신 싸이코처럼 히죽대지 말고 일이나 해!"

블로그에다가 병신 싸이코처럼 잡담이나 이죽거리지 말고 일이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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