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나는 오히려 미스터 몽크와 비슷했지 싶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몽크처럼 온갖 종류의 공포증(phobia)에 시달리다가(더러움, 어둠, 추락, 분리, 고소, 폐소, 광장, 비존재, 절단, 물, 피, 불, 맹, 가스, 냄새, 짐승, 시체 등등), 성장하면서 하나둘씩 공포증이 사라진다. 볼 게 없을 땐 몽크를 짬짬이 봤다.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이젠 짜증이 안 난다.
Windows 7에서 가장 바람직하게 바뀐 것은 Index Service인 것 같다. 예전 인덱스 서비스는 시도 때도 없이 HDD를 긁고 사용자 process 자원을 소비했는데 이번에 깔끔하게 바뀌었다. 변경된 파일만 인덱싱을 하고, 상당히 빠른 속도로, 아웃룩 일정, 연락처를 포함해 200여종의 파일에 대한 내용 검색과 미리보기를 지원한다. XP에서도 돌아가는 버전을 다운받아 작업용 XP에서 한달 째 맛배기로 돌려봤는데, 정말 만족스럽다 -- 역으로 말하자면 왜 진작 이렇게 안 만들었나?
세 번째 geosynchronous 위성인 F3 런칭 후, 위성을 사용한 광대역 인터넷 통신망인 Imartsat BGAN 서비스가 2월부터 시작될 예정. KTInmarsat에서도 장비 임대가 가능한 듯. 외국에서는 분당 14$이라는 어마어마한 패킷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데...
집 컴퓨터를 24시간 켜 놓고 있는데, 대부분의 시간 동안 컴퓨터가 놀고 있어 가용 컴퓨팅 자원을 공공 이익을 위해 사용해 보려고 알아보니 SETI@Home 프로젝트에서 파생된 BOINC 라는 공개 네트웍 컴퓨팅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BOINC로 World Community Grid(댕기열, 에이즈 치료법 발견, 암 정복, 단백질 접힘 연구), Rosetta @home(말라리아, 탄저병, HIV, 알츠하이머 연구), Climateprediction.net (지구온난화로 21세기 닥칠 환경 변화 예측) 등에 subscribe했다. 사무실 컴퓨터에도 boinc를 설치했다. 사무실 직원들에게도 설치를 권유했다.
들고 다니는 가방이 꽤 마음에 들었는데, 알고보니 소재가 cordura plus 500사다. 지퍼가 멀쩡하고 박음질이 튼튼하다면 앞으로도 10년은 버틸 것 같다. 지금까지 2년 사용. 이렇게 마음에 드는 가방은 십여년 전에 산 밀러 배낭 빼고 없다. 여러 종류의 배낭을 사용했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무겁고 더러운 그 배낭을 여전히 사용 중.
신년 들어서 일거리가 줄어 격주 휴무에서 5일 근무로 자연스레 바뀌었다. 노는 날이 늘자, 흡사 인력 사무실에 새벽부터 출근했다가 일이 없어 돌아가기 뭣해 근처 선술집에서 아침부터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기분으로 사무실에 출근. IT 업종은 워낙 부침이 심해서 하는 일에 '언젠가 잘 되겠지, 지구가 공전하는 것처럼' 하는 믿음같은 것은 없다. 믿음이란 기도할 때나 필요한 것. 과학자의 93%가 무신론자 이거나 불가지론자 라고 한다. 그럼 엔지니어는?
TV 방송에서 30년 동안 가방을 만든 장인이 재료만 가져오면 진품과 똑같은 가방을 만들 수 있다고 장담했다. PD는 어둠의 경로를 통해 3만 5천원어치 재료를 사 왔고, 장인은 12시간에 걸쳐 91만원 짜리 진품과 거의 똑같은 가품을 만들었다. 대다수가 짝퉁과 진품을 구분하지 못했는데, 그의 실력이면 91만원짜리 뿐만 아니라, 587만원 짜리 가방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30년 장인질해서 그는 그만한 실력을 키운 것이다. 하지만 나같은 SW 엔지니어는 20년 장인질 해봐야 MS Office 짝퉁을 6개월이 걸려도 만들 가능성이 없다.
나란 엔지니어는 믿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실력도 안되는 것이다. 이 김에 값싼 믿음이라도 가져볼까?
내 친구 KLDP보고 왈 -- 하마터면 댓글 달 뻔 했다. 댓글 다는 순간 디겔 폐인 되는 것이다.
신은 없다(Religulous). 코메디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기독교인들을 엿멋이는 다큐멘터리. 신랄한 조크. 상당한 무례함. 그 바닥에서 신성모독으로 명성을 떨친 탓인지 주인공은 취재 중 바티칸에서 쫓겨난다. 바티칸과 로마의 경계 금줄 바깥에서 전직 신부와 농담따먹기를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사람들이 찾는 여러 성인들의 순위를 메겼더니 예수가 6위 란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저 무슬림 사원은 네덜란드의 어느 축구 경기장 옆에 세워진 것으로 알고 있다. 건축 당시부터 지역 사회로부터 상당한 거부와 반대를 불러 일으켰다(건축 허가는 법대로 난 것일까?). 사원이 멀쩡한 걸 보니 네덜란드인들이나 사원을 출입하는 무슬림이 아직 서로를 해꼬지 하지 않은 것 같다. 오랫만에 다시 보니 반갑다.
많은 책에서 인간은 지난 1만년 전에 비해 육신과 정신 상태가 거의 달라지지 않았으며, 인류는 그 동안 그들이 만들어 놓은 훌륭한 이상과 문명에 훨씬 못 미치는 정신 지체 상태로 일생을 마감한다고 말한다. 혹자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종교 현상을 꼽는다.
Outlander. 특별히 따지고 볼 것도 없고, 시간 때우기 적합한 SF 액션 영화. 발달된 외계문명인이 바이킹과 손 잡고 외계 괴물(또는 그렌델?)을 물리치는 이 영화가 드라마가 되려면 청자가 알아먹을 수 있는 인간 드라마(증오, 사랑, 투쟁, 용기, 눈물 따위)가 되어야 한다. 나도 인간이라 인간 외의 것에 감정이입할 자신이 없다. 나도 인간이라 타인의 믿음과 소망과 꿈과 사랑을 폄훼할 자신이 없다. 물론 정신 지체와 종교도 마찬가지.
내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여기 안 적고, 내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방법을 10년 후에도 기억하고 있을 지 두고 보자. 그런데 10여년 전에도 이 짓을 한 것 같은데?
번역출간 된 것을 알고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Fritz Leiber Jr.의 '아내가 마법을 쓴다(Conjure Wife)'를 읽었다.
'이것이 마법이다. 마법은 우스꽝스러운 중세의 도구를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손으로 하는 손쉬운 속임수도 아닌, 오직 상징만을 조작해서 '소환된 힘'을 조정하는, 매우 힘들고 긴장된 싸움이다' -- 부끄러운 얘기지만 철없던 시절 나도 인터넷 곳곳에서 recipe를 찾아 돌아다녔다.
'문명은 빛으로 된 물건이다. 빛이 사라지면 문명은 꺼져 버린다.' -- 그러게 말이다.
"오, 노먼. 당신이 얼마나 용감하고 영리했는지 알아. 당신이 어떤 위험을 감당했는지 알고, 나 때문에 어떤 희생을 했는지도 알아. 당신은 일주일 동안이나 합리적이지 못한 삶을 살았고, 그 여자의 적나라한 야수성을 견뎌냈어. 당신은 이블린 소텔과 거니슨 부인을 '정당하게' 이겼어. 그 여자들과의 게임에서 이겼어..."
아내의 파우더룸을 훔쳐본 댓가로 무려 일주일이나 합리적으로 살지 못하고, 여자들의 발톱으로 여자들과 싸우는 등,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그건 그렇고 오랫만에 보는 훌륭한 코믹 장르 소설이다. 겉장에는 심지어 이런 문구도 있다; 위대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프리츠 라이버는 직접 물 위를 걸어보였다 -- 할란 엘리슨.
책 다 읽은 후, 리만 브라더스가 아니라, 리만 시스터즈나 리만 브러더스 앤 시스터즈 였다면 금융 위기가 없거나 완화되었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기사를 보았다. '여성이 주도했다면 금융위기 왔을까?' -- 요즘 여자들은 마법 수련을 게을리 하는 것 같다. 경제위기를 매듭과 부적으로 막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법으로 남편을 보필하는 등 본분을 게을리하였으니 진정 분개할 일이다.
John Updike가 폐암으로 별세했다. 그의 못 다 읽은 토끼 시리즈가 생각난다. 혹시 해서 알라딘과 교보문고를 뒤져 보았는데 토끼 소설은 한 권도 없었다. 뒤져보니 조셉 콘라드, 노먼 메일러, 필립 로드, 리처드 브라우티건, 귄터 그라스, 토머스 핀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예브게니 자먀찐, 가브리엘 마르께스(야 신기하네? 이런 이름들이 마구 생각나는게) 등속은 그들의 썩 괜찮은 작품이 다만 한 권이라도 남아 있다. 괴수 작가가 많았던 근/현대 문학이 요즘은 인기가 없는 듯. 업다이크의 소설이라고 읽은 것이라곤 '달려라 토끼야' 달랑 한 권 뿐인데, 서정적인 묘사가 한 편으로 인상적이었지만, 서가에 마침 있는 옛날 책 표지에 실린(쌍팔년도 범한 출판사 현대 세계문학 전집 중) 그의 사진이 참 토끼 같아 보여서 더더욱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