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rek'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5.31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2. 2007.11.23 노인들의 전쟁 3
이명박 정권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검찰 및 언론과 합심해(?) 노무현의 모든 것을 말려죽이려고 작정하고 최근 1년여 동안 심하게 괴롭히다가 파이널 블로우로 비열하게 당사자가 아닌 가족을 학대함으로써 양심의 죄를 물어 사실상 '포괄적 살인'에 준하는 자살을 이끌어냈다.
 
그게 사실처럼 보이나? 하나가 빠졌다. 언론에 잘 놀아났으니 언론 탓이 크다고 말할 수 있지만 애당초 심지가 얇은 국민은 그에게 화끈하게 등을 돌렸다. 노무현도 해먹었구나 그럼 그렇지. 죽어버려 하면서. 노무현 꼴 보기 싫어서 노무현 탓하고 그러다가 범죄자를 대통령으로 뽑아 놓고서는 그가 싫다고 말하기도. 내심 캥기고 양심에 걸리적거리는 것도 있는 모양.
 
정서가 메말라서인지 현 정권에 대해 행동과 판단에 장애를 느낄 정도의 격렬한 감정을 드러내진 않지만 이명박이 당선된 후로 머리속에는 SF가 떠오르고는 했다. 그가 저격당하면 시나리오가 어떻게 전개될까 -- 증오 살해가 아니라, 근미래 판타지라고 해도 좋을 정치계의 재편을 의미. 말이 씨가 된다고 이런 걸 블로그에다 끄적이다가 떡찰에게 잡혀가 추궁 끝에 판타지 소설을 그들에게 자랑스레 나불거리고 남은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면서 아내와 딸아이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 -- 내 머리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하긴 하다.
 
목숨에는 언제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피우던 담배가 클라우드나인이었구나. 구운몽과 청춘가를 연상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거짓으로 판명났지만 담배 한 대 물고 꿈을 꾸는 것은 그럴듯 했다. 거짓으로 판명났지만, 그래도 죽은 자 대신 담배를 많이 피웠다. 노무현의 소원은 치열하게 서로 드잡이질하는 열린 토론으로써의 민주주의 구현이었지 싶다. 한국인의 정서에 안 맞고 어쩔 수 없는 민주시민 찌질이들의 다구리를 까부술 수 있는 제왕적 군림을 통한 사회통합과 경제 발전을 원하는 작자들이 많아서인지 그가 인생을 건 정치는 사정없이 배척당했다. 시끄럽고 정신 사납단다. 난 그의 회고록을 보고 싶었다. 구운몽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았다. 청춘가와 비슷할 것이다. 소울이가 자라서 내게 구운몽이 어떤 이야기인지 물어본다면 대답 대신 인터넷을 뒤져보라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
 
구글은 좀 그렇고... 천재 Wolfram이 만든 울프람 알파를 써보니 꽤 좋았다. 특이한 엔진이다. integral exp(1/x^2) 정도만 계산해 주는 것이 아니다. 시험삼아 이런 것을 입력해봤더니 답이 나온다: 70kg 30m terminal velocity -- 70kg의 정도 되는 사람이 봉화산의 30미터의 절벽에서 떨어질 때 최종속도는 어떻게 될까?
 
tonedeaf test에서 77.8% (Normal performance). 생각보다 점수가 안 나와 의아하다. 주의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후 일주일 내내 술만 퍼 마셔서 그런가.
 
마누라는 어딘가 놀러갔고, 기분이 우울해서 영화나 보자고 혼자 CGV IMax에서 하는 Star Trek: The Begining을 보러 갔다. 지금까지 스타트렉을 영화화한 것 중 가장 마음에 든다. 우후라 first name을 처음 들어봐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번 스타트렉에서 그녀의 이름이 처음 공개되는 것이 맞단다(훌륭한 팬 서비스). 각각의 인물이 화면에 소개될 때마다 기뻤다. 각 등장인물이 등장할 당시의 그 박수치고 환호성을 지르고, 다소 심하게 과장하자면 '교성을 질러야 할 곳'을 재대로 연출했다. 심지어 니모이도 모셨다. 빛나는 캐스팅에, 오리지널 시리즈의 마초스러움을 아무의 신경도 긁지 않으면서 세련되게 재현했다. 커크는 커크 스러웠고 스팍은 사랑스러웠다. 어떻게 된 것이 단 한 명도 미스캐스팅이라고 느껴지지 않다니 원! 실은 오랫만에 보는 스타트렉이라 뭐든 사랑스러운 것이다 -- 트집은 잠시 접었다. 시종일관 낄낄거리며 봤다. 하나둘셋넷, 영화의 첫 15분 동안 줄줄 이어지는 시퀀스는 스타워즈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강렬한 기쁨을 재삼 안겨주었다. 시원하다. 다시 보고 싶다. 속편이 기대된다.
 
Solar Water Disinfection -- 줄여서 SODIS, 오지에서 별다른 도구 없이 PET 병만으로 물을 소독해서 마시는 것. 수억의 목숨을 구하는 몹시 간단한 방법.
 
탈이념화된 후로는 때때로 내 인생 자체가 병신스러워 할 말이 많지 않다. 하지만 참호전을 해본 40대 386의 이야기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바다로 간 양들의 모험 처럼 로맨틱하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역할이 끝난 그들은 내 선배들, 꼬라지 한심해지고 째째해지고 비겁해진 선배들이었다. 그 다음이 내 차례다. 내 차례에는 드디어 피비린내가 가셔 어디 멀리 가서 전기를 가설하거나 SODIS 따위로 자원봉사나 하는 말년을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면 후배들에게도 30년 후의 미래를 기획하는 자기 차례가 돌아갈 것이다. 세대를 전승해도 인간에 대한 내 비웃음과 절망은 결코 빛이 바랜 적이 없지만, 민주주의가 뭐가 좋은지 제대로 체험해 본 적이 없는 탓에 누구나 얘기할만한 건더기가 없어도, 아무튼 서로가 비겁해지지 않도록... 모쪼록.
 
의기소침한 사람한테 내가 '기운내'라고 말해봤자 도움이 되는 경우는 못 봤다. 의기소침한 사람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내가 당차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역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치 불활성 가스처럼 타인과 상호작용이 거의 없는 나란 존재에 사뭇 신비감을 느끼며 감탄하다가...  아차... 그러고보니 타인과 섞이지 않겠다고 십여년 전에 결심하고 인연을 자근자근 끊은 것이 기억났다. 불량한 현재는 불량한 과거의 총합인 것이다.
 
요새 좋아하는 애니는 에린, 짐승의 연주자 에린이다. '에린'이 야생사과라는 뜻이란다. 초록색의 눈동자, 누가봐도 딸같아 보이는 착하고 명석한 소녀. 어쩌면 우리 소울이가 절대 다다를 수 없는 경지일지도 모르겠다. 옥션에서 5만원짜리 유아용 자전거 안장을 사서 주말마다 아이에게 자전거를 태워줬다. 아이가 자라서 아빠와 자전거를 타고 멀리멀리 바람맞으며 돌아다닌 것을 기억하게 될까? 논밭 길 미류나무에 걸려 있던 석양과, 짧은 삶에 본 적이 없던 괴상하고 흥미로운 세계에 매료된 채 길을 잃고 헤메던 유년의 기억은 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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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간지는 손주 이름을 노다지라고 지으려 했다지? 딸아이 이름 둘을 정해놓고 주변 사람들에게 투표를 받아 아이 이름을 지었는데 이름을 소여로 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다. 투표는 언제나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give me a cigalette, give me a sign. give me a reason to walk the fire. 이 정도는 해병대 구호로도 괜찮다. 군대 판타지의 극강을 보여주는 유닛. 관전 포인트는 미션이 아니라 캐릭터였다. The Unusuals와 마찬가지로 The Unit도 이번 시즌을 끝으로 종료되는가 보다. 김이 샜다.
 
you'll remember me when the west wind moves upon the fields of barley... 오래 전 가라오케가 붙은 바에서 술김에 스팅의 fields of gold를 불렀다. 내 다음으로 어떤 여자가 같은 곡을 에바 케시디 버전으로 불렀다. 그 여자가 노래를 잘 불렀지만 우린 기차놀이에 바빠서 인디헤나나 들락거리는 이런 로컬리 바에는 결코 들어오는 일이 없는 희귀한 그 백인 여자가 누군지 잊어버렸다. 그야... 여자는 많았다. 전날 밤에도 술을 마셨고 전전날 밤에도 낯선 사람들과 마셨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밤에 술을 마셨다. 출장갔다가 돌아온 저번 주 밤 술 먹고 집에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갑자기 스팅의 노래와 옛날 생각이 났다. 엊그제 술 마시고 택시를 탔을 때는 기사 아저씨가 자기가 지은 싯귀를 들려줬다. 여자애랑 헤어지고 나는 잠깐 불행했다. 그리고 오래오래 행복했다. 잠깐 보리밭에 바람이 스칠 때나, 내가 지나가는 중성미자 샤워에 당해 살짝 미쳤을 때를 빼고는. 아마 노무현도 그렇게 잊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것이다.
 
'하드SF 르네상스'를 읽었다. 그렉 이건의 reason to be cheerful을 빼고 별로 주목할만한 작품은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단편을 읽은 것이 십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내용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의 사정도. '갈릴레오의 아이들'도 읽었다. 피에 새겨진... 뭐라는 단편 정도만 기억났다.
 
하드SF 르네상스에서는 작가중 상당수가 90년 당시 혜성같이 등장하여 여러 사람 맛가게 만들었던 그렉 이건을 언급했다. 그의 단편을 처음 읽었을 때 나도 완전히 맛이 갔다. 정말 뛰어난 SF다,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게 바로 SF다, 이게 바로 SF가 한 20년 잃어버렸던 그것이다 란 느낌에 가까웠다. 그렉 이건의 몇몇 단편과 장편은 2009년인 아직까지도 그에 견줄만한 작품이 없다고 본다. 쿼런틴과 퍼뮤테이션 시티는 SF 장르에서도 보기드문 수작이다. 어쩌면 나처럼 SF에서 줄곳 언급하는 고전적인 경이감을 겪는 것이 아니라, 지구인이 외계인이 되는 심대한 소격화를 경험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렉 이건의 소설보다 더 하드한 것을 보려면 SF쪽에서는 특별히 기대할만한 것이 없지 싶다. 하드SF란 것들 절대 다수에서 묘사되는 물리학은 7-80년대 수준이고 생물과학은 80-90년대 수준, 정보과학은 21세기를 턱걸이 했달까? <-- 농담일 뿐.
 
리사 랜들의 '숨겨진 우주'같은 책은 왠간한 SF에 등장하는 우주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황당한 우주가 등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다수 과학교양서가 표준모형과 수퍼스트링, M이론에서 대충 마무리를 짓는데 랜들은 자신의 연구주제인 비틀어진 여분의 차원(5차원)을 대단히 그럴듯한 SF처럼 모델링했다. 놀랍도록 설득력 있다. 이론 물리학자나 실험 물리학자 사이에서도 워낙 흥미진진한 탓인지 그의 저술에 대한 논문인용수가 지난 십년간 3600회가 넘었다. 연초에 핑커의 책을 보고 히히덕거리며 올해 과학교양도서 1순위는 단연 핑커라고 확신했지만 랜달의 책을 읽은 후 생각이 바뀌었다. 리만 가설도 재밌었지만 미래가 캄캄했고, 핑커의 글도 그의 선구안이 입증되거나 그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보려면 한참의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랜들의 여분공간은 앞으로 십여년 동안은 LHC 실험을 통해 손에 땀을 쥐며 관전이 가능하다. 랜들의 책 때문에 정말 스릴이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하고 안도했다.
 
'황석영식 실용주의'에 대한 실용적 단평 -- 그렇다. 황석영은 낭만주의자고 환상주의자다. 그것보다는 그냥 소설가라고 생각. 하지만 '민족문학작가협회'인지 하는 단체의 '민족' 만큼은 시대착오적인 헛소리라고 평소부터 생각했다. 민족을 떼도, 문학이 남고 작가도 남고 협회도 남았다. 셋이나 남았는데 팔팔한 그것들이 민족 운운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문학은 젊고 열정적이고 푸르러야 하고, 시류를 사유하고 반영해야 하는데(?), 최근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열렬하게 유행하는 것은 민족주의다 아주 무섭다). 저간 사정 때문에, 선진 또는 급진 문학작가협회가 되려면(더 지독하게 퍼래지려면) 최신 유행을 한 발 앞서 구질구질한 '민족'을 떼어냄으로써, 또, 민족을 95km 상공에서 바라보며 더더욱 그것을 초월하여 시대를 리드하는 트랜드세터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아님 민족적으로다가 글도 못쓰고 유행을 앞서가지도 못하는 찌질이 집단으로 길고 가는 똥이나 싸대고 벽에 똥칠이나 하며 장수하던가.

심난해 술을 많이 마셔서인지 횡설수설만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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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오후 12시 아이를 데리고 대한문에 도착. 두 시간쯤 기다려 분향했다. 김이 좀 많이 새지만, 뒤는 남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편안히 가세요 노짱. 잠잠해지면 당신 비석에 절하러 갈께요.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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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전쟁

잡기 2007. 11. 23. 18:11
어디서 본 것인지 기억할 수 없는, '혼자 밥먹기 최상위 레벨'이란 글에 달린 리플들에 대한 해당 사항 체크:
  • 삼겹살집 -- ok
  • 패밀리 레스토랑 -- ok
  • 부페 -- ok
  • 모텔방에서 맥주와 족발 -- ok
  • 유명 음식점 줄서서 기다리다 혼자 테이블 차지하고 먹기 -- ok
  • 프랑스 요리집 풀코스 -- ok
  • 중국음식 풀코스 -- ok
  • 도시락 -- ok
  • 길가에 주저앉아 먹기 -- ok
  • 술집에서 혼자 술 마시기 -- ok
  • 구걸 -- ok
  • 무전취식 -- ok
  • 산속에서 굶주리다가 이것저것 줏어먹기 -- ok
  • 결혼정보회사 주최 디너쇼 소개팅 이벤트에서 혼자 먹기 -- 여기서 좌절
볼 마음이 없었지만 나아졌다길래 하우스 4기를 보기 시작. 3기에서 워낙 찌질거려 문 닫을 줄 알았던 드라마가 4기에서 별난 병력으로 다시 차도를 보인다. 2화 제목은 Right stuff(같은 제목의 영화에 등장하는 앗싸가오리판쵸클럽(자막 번역 센스가 훌륭)이나 원숭이와 경쟁하는 정신병자 척 예거가 지금도 생각난다), 우주에 가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병을 감추고 어처구니 없는 유방확대 수술을 받는 테스트 파일럿 얘기다. 2화를 감상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평했다(2화를 보기 전에 그의 평을 먼저 보았다). 테스트 파일럿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가 그 자신 때문에 기회를 잃게 되는 누군가를 생각지 못한 것 같다. 글쎄다, 기회를 균등하게 주려고 인간이 할 만큼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까닭은 기회가 애당초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인데, 그의 평은 여러 모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번에 버그 잡은 것을 마지막으로 올해 기획했던 일들은 사실상 모두 끝났다. 연말쯤 '책임과 반성의 시간'이 온다. 경험상 선의가 사람들에게 이해될 정도로 쉬웠던 적은 평생 없었다.
 
작년 9월에 SW팀을 별도의 사무실로 독립하여 연구소를 설립하고 그쪽의 실질적인 운영책임을 맡았다. (그러니까, 서류상으로는 이사고, 직함은 과장이며, 실제로는 프리랜서인데 하는 일은 연구실장이자 프로젝트 메니저였고 거래처 사람들은 나를 '관계자외 출입금지' 라고 적힌 문 앞에 서 있는 안드로메다 다크호스로 알았다) 연구소를 만들면서 약속한 것은 1년 안에 지정한 과업을 완수하겠으며, 그 기간 동안 내게 연구소의 전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 2개월 지체로 끝맺지 못했다. 그간의 과정과 지체 사유야 어떻든 책임질 시점이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올 연말이 유난히 포근하게 느껴진다.
 
그만 두는 것이 가장 좋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런 짓을 하면 당신들 엿 먹어보라는 수작 밖에 안되니까 타이틀을 반납하고 예전처럼 개별 고용된 용병 자격으로 일하며, 제반 업무에서 손을 떼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9월부터 어떻게 해야 이것을 부드럽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사장님에게 9월부터 언질을 줬더니 굳이 책임 안 져도 된다고, 연구실은 유지될 것이라고 말렸다. 사임하면 무슨 일이 생기나? 일단 연구실을 접고 연구원들은 본사로 귀속된다 -- 본사의 개발부서로 편입된다. 업무 결정권이 소실되므로 사실상 나는 자유의 몸이 된다. 연봉은 변화가 없다. 즉,  무척 좋은 일이다. 작업량이 1/2로 줄고 연봉은 그대로면서 가외시간이 늘어난다. 
 
그래서 반드시 책임을 지고 싶다.

나이 들면서 고집이 늘었다. 안타까운 것은 나만 나이를 먹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는 누구의 고집이 더 센가 자웅을 겨루는 꼴이랄까. 내 견해를 관철시키기가 그래서 어렵다.

11월 10일 토요일 밤에 먹은 멕시카나 치킨은 최악이었다.
 
John Scalze의 Old man's war. 하인라인의 적통을 잇는 훌륭한 밀리SF란다. 웃길 줄 아는 소설가와 웃길 줄 모르는 소설가 중 웃기는 소설가는 글을 좀 못써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후자는 글을 못쓰면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자연의 섭리다. 스칼지는 웃기는 소설가다.

첫 30페이지까지 살만큼 산 노인들의 자발적인 고려장 내음이 물씬 풍기지만, 노인들의 끝없는 사르카즘과 위트가 SF로써는 지루했어야 할 전반부를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해 준다. 시트콤 풍의 아메리칸 조크라서 크게 기대할 것은 아니었다. 스칼지의 첫 작품이라는데, 당황스러운 노련미를 풍길 뿐더러 완급 조절이 수준급이고 글 자체가 무척 재밌다. (Conquering the universe was beginning to get to me <-- 일본 개그 아니메에 나올법한 문장이 천연덕스럽게 등장)

그리 많은 SF를 읽은 것은 아니지만 40p쯤에서는 이들에게 시술될 기똥찬 의술이 어떤 것인지 감 잡을 수 있었다 -- 그나저나 홍씨나 김씨 처럼 일평생 많은 SF를 읽고도 정신이 멀쩡할 수 있음을 평소 무척 신비스럽게 여긴다. 농담. 

SmartBlood,  CatsEye, UncommonSense, HardArm, BrainPal 등을 장착한 노인네들이 외계인과 땅따먹기를 하며 묻지마 살육전을 벌이는 스토리인데 밀리SF치고 SF novice와 오타쿠들 양자를 잘 배려했으며 (나중에 그의 인터뷰를 보고 나서 아하, 무릅을 쳤다) 첫 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SF가 지녀야 할 미덕(SF가 SF인 이유)을 유지한다.

김씨 말에 따르면 작가 본인이 SF 왕팬이란다. 그래서인지 SF에 등장하는 여러 가젯을 매우 능숙하게 다룬다. 얼마 전에 김씨와 그런 얘기를 나눴다. 나올만한 가젯은 이미 다 나왔다. 그것들을 조합해 어떻게 짜맞추어 그럴듯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가가 21세기 SF의 대중적 성공을 좌우하는 필수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Old man's War를 읽은 것이다. 대박날 작품이다.

2년 전부터 노인의 전쟁이 대박감이란 걸 알고 있던 김씨가 어떻게 이런 작품을 놓쳤는지 의아하다. 지금 말하는 대박은 팬덤에서 2-3천권 소비되고 2쇄 간신히 찍는 대박(?)이 아니라 스타쉽 트루퍼급, 은영전급 대박을 말한다. 작가가 아예 작정하고 그렇게 쓴 소설이다. 김씨 사정을 들어보니 단순히 게을렀던 것 같다.

한국은 합리적인 이성이나 문장을 틀리지 않고 제대로 쓸 수 있는 작가는 물론, 문화란 것이 거의 없는 야만국가인 관계로 국가의 형태를 그나마 유지하기 위해  서구문명 수입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처지인데 국민성이 천박하고 교활하여 체면을 엄청 따지고 개개인의 인격이  본인의 수입과 광활한 학식과 인맥의 폭으로 측정된다. 그중에서도 서구 문물에 대한 감응도 랄까, 감수성이 높고 서구 문명에 대한 깊이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 존경받는다. 말하자면, 좋은 작가를 선별하고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소개/번역하는 역자들이 명망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김씨가 그나마 지금까지 '명망'을 누릴 수 있던 것은(명망은 종종 기회를 뜻한다) 옛날 옛적에 번역한 젤라즈니의 소설 몇 권 때문이다. 이제 약빨이 다 닳아 새로운 보약이 필요한데, 최근에 소개 번역한 것들 대개는 그저 그렇거나, 시시껄렁하거나, 단순히 재미가 없다. 예를 들면 pern은 한 권만 내긴 뭣한 책이라 세 권을 내다 보니 엄청난 두께가 되었으나 그 두께만큼의 포스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게다가 Science Fantasy라지만 Fantasy쪽에 무게 중심이 쏠려있고 1권에서 나올만한 설정과 장치는 모두 끝난 상태다.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첫 권 역시 마찬가지, 또 경계소설인지 뭔지 추리소설도 아니고 스팀펑크 흉내 조금 낸 소설류도 마찬가지. 유일하게 쓸만한 글이랄 수 있는 것이 테드 치앙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다. 테드 치앙을 대체로 기묘한 양반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글을 못 쓰는 것도 아니고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흥미로운 작가임에도 그의 글을 읽으면 흡사 영혼이 빠진 락 음악을 듣는듯한 기분이 든다. djuna의 글을 읽을 때마다 드는 느낌이기도 하다.

주제 넘게 이러쿵 저러쿵 떠들 얘기는 아니지만 김씨가 명망있는 번역기획자로서 명망을 유지해 줄만한 '메이저급' 작품은 당분간 없을 것 같아 보인다. 게다가 김씨가 명망을 따지는 부류인지는 의문이다.
 
“북극곰 멸종위기 허풍” -- 신문 과학기사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철지난 얘기를 잊을만하면 내보낸다. 몇 개월 전, 심하게는 몇 년 전 외국에서 나온 얘기를 올리는 기자는 정말로 낯 뜨겁지도 않은 걸까?

‘한때 위대했다·영국’냉소적 국가 모토 속출 -- 찌질국가가 되가도 과연 영국이다. 기대 이상의 모토들:  
  • 최소한 프랑스는 아니다!
  • 내 온 힘을 바치겠습니다. 뭘 해도 잘 안되는 나라니까!
  • 실컷 술 쳐먹고 로또나 사자!
관음증적 '미녀들의수다'와 경박한 미디어  '자밀라의 섹시함을 부각시키는 ‘미녀들의 수다’가 한국사회가 외국여성을 바라보는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 우즈베키스탄 처녀들은 예쁘다는 대중적 편견을 조장했다는 뜻이지? 애인 구하기가 힘들어 울부짖는 한국 청년에게 우즈베키스탄은 꿈의 나라가 되었다. 사진에서 도미니크의 가슴 크기를 보면 그런 안 좋은 편견이 마구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진 올려놓은 센스가 뛰어난 경박한 미디어다.

우즈베키스탄이란 전설의 나라를 묘사하는 말: 김태희가 소 몰고 한가인이 밭 메고 샤라포바가 감자 캐는 나라.  어떤 유학생의 또 다른 증언. '우즈벡은 김태희 정도 되면 (외모가 안 따라주므로) 고등학교때 공부에 모든 걸 겁니다. 한가인 정도 되면 기술을 배웁니다.  옆집 전지현씨랑 매일 눈인사 하고 다녔어요. 김아중 정도급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 노처녀입니다'  -- 훌륭한지고.

스타트렉 TNG를 다시 보기 시작.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다. 타이즈를 입고 한물간 고물같아 보이는 우주선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저 정다운 촌스러움이란... 김C란 연애인은 시골 춘천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레 생각했다. 나도 그렇다. 날 때부터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인생에 길이 남을 경험을 그닥 많이 접해 보지 못한 것 같다.
도로로
영화 '도로로'의 한 장면. 어린 시절에 반딧불이로 가득한 저런 계곡을 하릴없이 돌아다녔다. 그래서 반딧불이를 한 가득 모아 그 빛 아래 책을 읽었다는 개뻥을 일찌감치 비웃을 수 있었다. 서울에 올라와서야 저런 반딧불이 떼를 본 사람들이 지극히 드물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말이 안 통하는 것일께다. 어린 시절에는 반딧불이를 못 봤거나, 스타트랙을 안 보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갔다.

도로로
꽃미남이 나와도 영화가 재미 없다. 내가 네 애비다. 나는 네 애비가 아니다. 다 자라서 이런 말을 듣고 심란해진 아이들은 제대로, 올바르게 성장해 자신의 길을 가게 마련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가 시련이라니 우스운데, 아임 유어 파더 변주극들은 60년대 양육을 제대로 못한 부모들에게 죄의식을 심어주던 행동주의자나 프로이트주의자들의 견해를 반영했을 뿐, 순 거짓말이라고 여겼다. 또는 60-70년대 미국에서 문란하고 자유로운 연애가 성행하던 시절 차 뒷좌석에서 벌인 우연한 섹스로 태어난 아이를 훗날 찾아간 남자가 할 법한 대사일 것이다. 자신과 부모의 관계에서 비롯된 갈등 및 희비극이 고대 그리스 비극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서사적 원형으로 지지되는 것을 그래서 꼴 같잖게 여기는 편이다. 간단한 이유 때문에; 애들은 보통 그리스 비극 속에서 처럼 잠재의식 속에 영원히 뿌리 박힌 트라우마를 지닌 채 성장 장애를 겪으며 자라지 않는다. 그들은 보통의 평범한 아이들과 똑같이 자란다.

도로로
도로로는 데츠카 오사무 원작의 만화다. 2편, 3편을 연달아 제작한단다. 기대감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일본인은 원작을 망치는데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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