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er Dimension

잡기 2003. 6. 24. 12:47
방송이 끝난 TV에 나타나는 노이즈, 빅뱅이 일어난 다음 최초의 우주의 잔광을 맨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그 중요한 배경 복사를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것인지도. 24시간 케이블 방송 때문에. 케이블을 뽑고 봤다. 저 랜덤 노이즈 패턴 중에는 반드시 선구문명의 초광속 우주선 설계도가 들어 있을 꺼야 하는 웃기는 희망도 품어 보았다. 어쩌면 칼 세이건의 그런 식의 대책없는 낭만이 그가 설명한 우주보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과학에서 낭만은 수퍼스트링에서 밖에 찾아볼 수 없을 수도 있다. 수퍼스트링을 거론하는 학자치고(이제는 M-theory지) 감정이 격앙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욕설을 늘어놓건, 찬미하건, 아니면 머리를 굴리며 회의적인 체 하건. 다행스럽게도 머리가 굳어 M-이론에서 사용하는 수학은 전혀 해석이 되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다.

그보다는 신문의 정치, 경제, 사회면을 보고 먹고 살 걱정을 주로 했다. 먹고 사는 걱정은 플랑크 시간의 10^43 이상의 규모로 일어났다. 먹고 살 걱정을 할 때는 양자 요동이나 네 가지 힘의 통합,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상상이 안 되는 11차원의 복잡한 토폴로지와 수학 등등은 필요 없었다.

게다가 주요 변수를 제거하고 마음을 단단히 잡아 놓으면 얼마든지 1차원 적으로 살 수도 있었다. 걱정 근심 없이 간단하게. 하지만 뭔가 중요한 생각을 할 때는 바람을 쐬면서 2차원이나 3차원에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였다. 이를테면 3차원의 현상은 시간이 개입된 4차원의 문제로 평가함으로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겠지' 라고 생각하면 된다.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5차원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5차원이란 현상계의 복잡성으로 인해 파생한 바람직하지 못한 문제들은 '운에 맡기는 수 밖에 없다' 라고 보는 것이다. 5차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6차원도 있고, 7차원도 있다. 11차원까지 안 가도 대개의 문제는 해결되리라 본다.

간단하다.

2/3쯤 읽은 Alastair Reynolds의 Chasm City는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뒤통수를 쳤다. 간만에 SF 읽는 재미가 느껴졌다. JunkSF에서 홍인기 아저씨가 프리스트의 글을 설명할 때 문뜩 프리스트의 글을 읽고 싶어졌다.

Sex and the City를 보았다. 보다가 잠이 들고는 했다. 어쩐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Sex 버전 같았지만 이런 류의 정신없는 '수다'에도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았다. 그동안 조선일보를 꾹 참고 읽은 보람을 느꼈다.

TV 드라마 식의, 아니면 TV 식의 한심한 일반화나 무책임한 방조(지가 떠들어 놓고 설명과 해석의 책임을 면하려고 시청자에게 슬그머니 떠넘기며 세상에는 이런 류의 다양성도 존재한다는 등의)에는 사실 놀라움을 많이 느꼈다. '옥탑방 고양이'라는 드라마를 잠깐 보고 나서 어째서 저런 류의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드라마에 사람들이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할까 라고 의아해 하면서도 한편으로 조선일보로부터 배운 교훈이 생각났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편안함(level of comfort)에 집착하는 성향이 아주 강할 뿐더러 때로는 그것을 위해서 죽기 살기로 덤비기도 한다는 것.

대책: TV 드라마를 보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 신문을 매일 매일 좀 더 맹렬하게 읽고 적응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산다.

windows script 5.6을 설치한 다음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엉망이 되었다. 안 깔고 버티고 있었지만 os를 다시 설치하고 말았다. 설치하면서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각각 1시간 씩 걸렸다.

Oreiss님에게 감사 말씀: 덕택에 태스크 바가 툭하면 멎는 현상이 없어졌습니다. 그 현상을 없애려면 service pack을 설치해야 한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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