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담배 세 갑, 냉장고는 텅 비었다.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집에서 짱박혀서 나가지 않았다. 짜장면 한 그릇 배달해 먹지 않았다. 음. 짜장면 배달해 먹지 않은 것이 그동안 제일 억울했던가? 비가 오고, 밤이 가고, 날이 밝으면 깨어 샤워하고 18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잠은 네 시간에서 여섯 시간만 잤다.

그러면서 놀았다. 오늘은 '트릭' 1기 1편부터 10편까지 쉬지 않고 봤다. 주인공 여자애가 바보라도 귀여워서 용서가 된다. 프리스트의 프레스티지와의 유사점을 억지로 뜯어 맞추려고 애썼지만 드라마의 통속성이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질질 끄는 에피소드보다는 얼핏 스쳐가는 두 주인공의 개그가 재미있어 보는 것 같다. 자기 사진을 연구실에 걸어놓고 있는 바보 물리학과 조교와 벌이가 신통치 않은 역시 바보 마술사라... 왜 좀 더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를 만들지 않았던 것일까? x-file에서 몇 가지 신통찮은 기법들을 배운 것 같다. 너의 트릭은 간파당했다 에헤헤헤 하고 웃는 절벽 가슴 마술사와 어디 하나 신통한 구석이 없는 대물 물리학자의 귀염성 정도면 된거지. 암.

"난 이성 밖에 없는 인간이야"
이런 대사를 들으면 좀... 서글퍼졌다. 그걸 자랑이라고 말하냐 바보야?

일은 안 하면서 빈 서류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잘 하지도 못하는 연애질에 몰두하는 한국 드라마를 생각하니 그런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이 가엾게 여겨졌다.

냉장고를 채우러 바깥에 나갔다가 2층 창문에 불이 켜 진 내 방을 보고 별 이유없이 눈쌀을 찌푸렸다.

아아... 대살에 꽂혀 석쇠 위에서 지글지글 끓고 있는, 먹음직스러운 진실들. 푸른 구름이 어떻게 생기는지 알았다. 그래도 나는 시를 쓰지 않았다. 이성 밖에 없는 바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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