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와 송화가루를 넣은 동동주를 마셨다. 나흘 만에 가게 문을 열었다며 우리가 운이 좋았단다. 가게 문을 닫고 지리산으로 간단다.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어머니 수술 때문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서울에 올라왔단다. 삶의 무게에 관한 고리타분한 얘기가 오갔다. 황가는 그런 얘기를 개무시했다.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귀중한 기술이 사라졌다는 악평을 그가 듣고 있었다. 아니다. 이미 같은 얘기를 수없이 들어 식상하고 지겨워졌을 뿐이다. 생각났다. 일주일 전쯤에 만난 선배한테 농짓거리로 사기를 한번 쳐 봤는데 깜빡 넘어갔다. 지난 10여년 동안 그는 내 거짓말에 언제나 변함없이(성실하게?) 넘어갔다. 희한하다.

한밤에 거리에 앉아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홀짝였다. 지나가던 거지가 다가와, 스님, 싸우면 안되요... 싸우지 마세요... 라고 말하고 꾸벅 인사를 한 후 휘청휘청 걸어갔다. 함께 앉아 있던, 시찌푸스처럼(아틀라스가 더더욱 적합한 표현일 것 같다) 찡그린 채 앉아 있는 슬리퍼와 남의 말이라곤 한 마디도 안 듣게 된 스님은 맥주에 오징어를 씹으며 묵묵히 앉아 있었다. 괜찮은 밤이었다.

타즈마할에서 부페식 인도 음식을 먹었다. 값은 좀 비싸지만 난을 무제한 주었고 음식이 의외로 맛있다.

애비 북스토어에는 별로 눈에 띄는 책이 보이지 않았다. '원서를 읽지 않고도 번역할 수 있다'는 아저씨의 잘난 척을 듣고 그 더위에 낄낄낄 웃었다.

1100페이지 쯤에서 일단 스토리라인을 추측하기 위해 멈췄다. 거리에 앉아 바람을 쐬면서 지나가는 아이들을 구경. 파란색 아이새도우가 올해 유행인가? 흠. 그게 말이지... 낯빛이 창백해야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데. 두께가 1cm 쯤은 될 것 같은 방탄 파운데이션 파우더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무더위를 느낀다.

굴다리에서 까마귀, 박쥐, 닭아이, 고이즈미, 가고일 등등을 만나 소주잔을 기울였다. 비가 왔다. 그 동안 그 '떨거지들'이 서로서로 자주 안 만났단다. 그들이 덜 정정하고, 생업에 시달리면서 뇌세포를 파괴하길 기원했다.

equalibrium을 추천하길래 다운 받았다. 건 카타라는, 총질에 최적화된 괴이한 무술을 창안. 아... 이거 주요 장면은 본 것들이잖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 나오는 어둠 속의 총질, 달아오른 총신이 서서히 식어가는 모습이 썩 괜찮았다. 그후로는 스토리를 비롯해 줄곳 쓰레기 같았다. 모나리자를 태우는 모습에 왜 나는 희열을 느끼는 것일까... 마지막 총질 장면을 두 번이나 리플레이 해서 봤지만, 정교함이 없다.

속이 뒤집히고 맛이 간 지경 임에도 엉금엉금 기어서 밥을 짓고 북어국을 끓여먹는 어제 아침의 나 자신을 재삼 회상컨대, 이다지도 강한 의지력으로 밀어 붙이면 안되는 일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고 여기면서도 한편으로, 그렇게 악다구니로 끓인 북어국이 맛이 없었더라면 눈물을 흩날리면서 창 밖으로 몸을 던지는 편이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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