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렇군.
이어폰을 끼고 '기묘한 이야기'를 보면서 일기 쓰는 중.
완전 충전 상태에서 AC 전원을 빼면 15분 후에 즉사하는 노트북으로는 심심할 때 공원에 앉아 영화를 보긴 다 글렀다. 중고가 다 그렇지 뭐 시팔. 큰 맘 먹고 4만원을 들고 5282.com 신림 매장에 찾아가 배터리를 교환했다. 1800mA 짜리를 2200mA 짜리로 교체. 각각 3.4V짜리 리튬이온 전지 3개. 길고 얇은 강철띠를 스팟 용접(?) 해서 전지 세 개를 직렬로 연결하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추측컨대 충전 회로는 각 전지 사이의 전압과 전류를 측정하여 충전 완료 시점을 판단하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단자 전압의 변화를 추적하여 컴퓨터가 그것을 읽고 배터리 잔량을 평가하는 것 같다. 좁은 가게에서 쭈그리고 앉아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즐겼다. 전지를 갈면 5시간쯤 갈 줄 알았던 노트북은 4시간 정도... 그래도 그나마 이게 어디냐. 노천 화장실에서 오줌을 눗고 공원 벤치에 앉아 강북의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우산이 없다. 구름은 은빛으로 빛났다. 곧 우산이 필요할 것이다.
책은 지하철을 탈 때나 이동 중에만 읽었다. 그래서 크립토노미콘을 거의 2주에 걸쳐 천천히 읽게 된 셈이다. 1855페이지 중 200페이지가 남았다. 한 시간 분량이다. 마지막인데 피치를 올릴까? 아니야. 에비가 얼굴이 시뻘개져서 고토 덴코에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데 그 금을 사용하겠다고 소리를 질렀을 때 나도 모르게 골을 집었다. 빌어먹을. 닐 스티븐슨의 거의 모든 소설을 관통하는 공통점을 또다시 보게 된 것이다. 기술자 또는 마법사의 선한 의지는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내 생각은 달랐다. 비전이 있는 훌륭한 경영자를 만나 꿈의 기계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입 다물고. 하여튼 그전 까지는 좋았다. 토머스 핀천의 소설이 생각나기도 하고 조셉 헬러의 소설이 생각나기도 했다. 심지어는 쪼다 샤프토에게 감정이입이 되기까지 했다. 에비가 좋은 기분 다 망쳐놨다. 방전.
며칠 게으름을 피웠다. 급한 김에 몇 가지 재미없는 기술문건을 읽거나 무릎에 노트북을 펼치고 스펙을 적고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에 코드를 작성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신경 쓰지 않게 된 것 같다. 1280x600 짜리 풀밭에서 귀여운 도트가 뛰놀았다. 사각형 울타리를 치고 도트를 움직여 글자를 만들었다. 공중에서 그들을 조작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매스게임을 쳐다보았다. 엊그제 pdf 파일로 받은 몇몇 칩들의 데이타시트를 보면서 다른 쪽에 노트를 기록했다. 지하철 역을 환승할 때마다 번번히 지나쳐 엉뚱한 역에서 되돌아가는 차를 다시 타야 했다. 3일 동안 아홉 차례. 신경쓰지 않았다. 예전 생활로 돌아온 것 뿐이다. 입술에 담배를 물고 멍하니 앉아 양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화면 한쪽 구석에서 플레이되는 영화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방전.
존나게 커다란 닭을 사서 다리를 잘라 냉동실에 넣어두고 나머지 부분으로 삼계탕을 해 먹었다. 하루종일 닭만 먹었다. 그 다음날은 닭다리를 버터에 구워 내고 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워낙 잘 먹어서 허릿살이 생기기 시작했다. 충전.
그렉 이건의 쿼런틴을 조금 읽었다. 기술적인 부분의 오역을 살펴달라나? 몇 년 전에 읽어 기억이 가물가물 했는데 첫 문장이 시작되자 마자 자연스럽게 나머지 부분이 기억났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온 인류의 영원한 희망인 '기술'처럼. 흐음... 무슨 불평을 늘어 놓으려는지 안다. 닥쳐!
쿼런틴에서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적외선 트랜시버와 나노 머신으로 모기를 스파이로 '변환'하는 부분이었다. SOB 3부를 쓰려다가 때려치우게 된 것은 망막 텍스트나 그런 따위 mod를 환상적으로 묘사하는 수준이 나보다 나아서 였다.
한국어화 되면서 문체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번역자는 그렉 이건이 자기 글을 쓰면서 동료 기술자들에게 얼마나 즐거운 환상을 심어주고 싶어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렉 이건을 욕하는 사람들도 그 점에서는 비슷했다.
그렉 이건의 작품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사람들과 나는 어린 시절을 보낸 방식이 달랐다. 그들이 문학작품을 읽고 있을 무렵 나는 전자회로집을 뒤적였다. 그짓을 아홉살 때부터 하면 자라면서 뉴런 배선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엔돌핀, 멜라토닌, 세로토닌, 등등등등 스테로이드계 호르몬 역시 방출되는 방식이 현저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방전.
십대를 컴퓨터로 보내고 나서 여자 친구 하나 없이 20세를 맞았을 때, 문득 깨달음을 얻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시마저 읽었다. 시는 코드와 비슷했다. 그러나 코드는 시와 달리 막강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사정이 생겨(지구온난화, 남북 경협, 방사능 폐기물의 처리 등등) 두 자릿수 뺄셈 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아주 웃겼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문제의 80%가 여자들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누군가 그럴듯하게 설명하기만 하면 믿을 준비가 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런 말을 하니까 웃기는지 콧방귀를 뀌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너 어떻게 된거 아니냐?' 그는 95%라고 주장했다. 인생 그 자체지 라고도 말했다. 방전.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세상에 여성 문제란 것은 없다. 만사가 백 퍼센트 여성문제니까. 여자들이 자기들 걱정하고, 요즘은 남자들도 여자들 걱정해준다.'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싶다.
영등포 역 입구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마침 쏟아지기 시작한 폭우를 바라보았다. 배가 고파서 롯데리아 햄버거를 하나 사서 계단맡에 앉아 사람을 기다리며 꾸역꾸역 씹었다. 한 시간 동안의 기차여행, 노트북을 펼치고 얘기 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한밤중에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쳤다. 방전이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블로그를 썼다. CSI 3기 마지막 편을 봤다. 3시간 동안 이런 저런 빌어먹을 교통 수단에 갇혀 이리저리 이동하는 동안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 말고 할 일이 생기는 것, 이런 것을 생활이라고 부른다. 죽을 때까지 차를 사지 않을 것이다. 차를 몰면 책 읽을 시간을 잃고 술 마시기 힘들어질 따름이다. 책이야 잘 안 읽으니까 그렇다치고 술도 건강 때문에 마시기 힘들어지면? 형편없이 망가지면 하는 수 없이 차를 사야겠지. 방전.
담배가 떨어졌다. 잠이나 자자. 충전.
BatteryMon v1.2로 배터리의 예상 사용시간을 측정 중.
완전 충전, 완전 방전.
완전 충전, 완전 방전.
리튬 이온 전지는 메모리 효과가 없다.
내 몸은 메모리 효과가 있다.
그래서 인생이 피곤한 것이다.
그렇군.
이어폰을 끼고 '기묘한 이야기'를 보면서 일기 쓰는 중.
완전 충전 상태에서 AC 전원을 빼면 15분 후에 즉사하는 노트북으로는 심심할 때 공원에 앉아 영화를 보긴 다 글렀다. 중고가 다 그렇지 뭐 시팔. 큰 맘 먹고 4만원을 들고 5282.com 신림 매장에 찾아가 배터리를 교환했다. 1800mA 짜리를 2200mA 짜리로 교체. 각각 3.4V짜리 리튬이온 전지 3개. 길고 얇은 강철띠를 스팟 용접(?) 해서 전지 세 개를 직렬로 연결하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추측컨대 충전 회로는 각 전지 사이의 전압과 전류를 측정하여 충전 완료 시점을 판단하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단자 전압의 변화를 추적하여 컴퓨터가 그것을 읽고 배터리 잔량을 평가하는 것 같다. 좁은 가게에서 쭈그리고 앉아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즐겼다. 전지를 갈면 5시간쯤 갈 줄 알았던 노트북은 4시간 정도... 그래도 그나마 이게 어디냐. 노천 화장실에서 오줌을 눗고 공원 벤치에 앉아 강북의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우산이 없다. 구름은 은빛으로 빛났다. 곧 우산이 필요할 것이다.
책은 지하철을 탈 때나 이동 중에만 읽었다. 그래서 크립토노미콘을 거의 2주에 걸쳐 천천히 읽게 된 셈이다. 1855페이지 중 200페이지가 남았다. 한 시간 분량이다. 마지막인데 피치를 올릴까? 아니야. 에비가 얼굴이 시뻘개져서 고토 덴코에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데 그 금을 사용하겠다고 소리를 질렀을 때 나도 모르게 골을 집었다. 빌어먹을. 닐 스티븐슨의 거의 모든 소설을 관통하는 공통점을 또다시 보게 된 것이다. 기술자 또는 마법사의 선한 의지는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내 생각은 달랐다. 비전이 있는 훌륭한 경영자를 만나 꿈의 기계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입 다물고. 하여튼 그전 까지는 좋았다. 토머스 핀천의 소설이 생각나기도 하고 조셉 헬러의 소설이 생각나기도 했다. 심지어는 쪼다 샤프토에게 감정이입이 되기까지 했다. 에비가 좋은 기분 다 망쳐놨다. 방전.
며칠 게으름을 피웠다. 급한 김에 몇 가지 재미없는 기술문건을 읽거나 무릎에 노트북을 펼치고 스펙을 적고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에 코드를 작성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신경 쓰지 않게 된 것 같다. 1280x600 짜리 풀밭에서 귀여운 도트가 뛰놀았다. 사각형 울타리를 치고 도트를 움직여 글자를 만들었다. 공중에서 그들을 조작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매스게임을 쳐다보았다. 엊그제 pdf 파일로 받은 몇몇 칩들의 데이타시트를 보면서 다른 쪽에 노트를 기록했다. 지하철 역을 환승할 때마다 번번히 지나쳐 엉뚱한 역에서 되돌아가는 차를 다시 타야 했다. 3일 동안 아홉 차례. 신경쓰지 않았다. 예전 생활로 돌아온 것 뿐이다. 입술에 담배를 물고 멍하니 앉아 양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화면 한쪽 구석에서 플레이되는 영화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방전.
존나게 커다란 닭을 사서 다리를 잘라 냉동실에 넣어두고 나머지 부분으로 삼계탕을 해 먹었다. 하루종일 닭만 먹었다. 그 다음날은 닭다리를 버터에 구워 내고 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워낙 잘 먹어서 허릿살이 생기기 시작했다. 충전.
그렉 이건의 쿼런틴을 조금 읽었다. 기술적인 부분의 오역을 살펴달라나? 몇 년 전에 읽어 기억이 가물가물 했는데 첫 문장이 시작되자 마자 자연스럽게 나머지 부분이 기억났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온 인류의 영원한 희망인 '기술'처럼. 흐음... 무슨 불평을 늘어 놓으려는지 안다. 닥쳐!
쿼런틴에서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적외선 트랜시버와 나노 머신으로 모기를 스파이로 '변환'하는 부분이었다. SOB 3부를 쓰려다가 때려치우게 된 것은 망막 텍스트나 그런 따위 mod를 환상적으로 묘사하는 수준이 나보다 나아서 였다.
한국어화 되면서 문체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번역자는 그렉 이건이 자기 글을 쓰면서 동료 기술자들에게 얼마나 즐거운 환상을 심어주고 싶어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렉 이건을 욕하는 사람들도 그 점에서는 비슷했다.
그렉 이건의 작품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사람들과 나는 어린 시절을 보낸 방식이 달랐다. 그들이 문학작품을 읽고 있을 무렵 나는 전자회로집을 뒤적였다. 그짓을 아홉살 때부터 하면 자라면서 뉴런 배선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엔돌핀, 멜라토닌, 세로토닌, 등등등등 스테로이드계 호르몬 역시 방출되는 방식이 현저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방전.
십대를 컴퓨터로 보내고 나서 여자 친구 하나 없이 20세를 맞았을 때, 문득 깨달음을 얻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시마저 읽었다. 시는 코드와 비슷했다. 그러나 코드는 시와 달리 막강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사정이 생겨(지구온난화, 남북 경협, 방사능 폐기물의 처리 등등) 두 자릿수 뺄셈 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아주 웃겼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문제의 80%가 여자들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누군가 그럴듯하게 설명하기만 하면 믿을 준비가 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런 말을 하니까 웃기는지 콧방귀를 뀌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너 어떻게 된거 아니냐?' 그는 95%라고 주장했다. 인생 그 자체지 라고도 말했다. 방전.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세상에 여성 문제란 것은 없다. 만사가 백 퍼센트 여성문제니까. 여자들이 자기들 걱정하고, 요즘은 남자들도 여자들 걱정해준다.'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싶다.
영등포 역 입구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마침 쏟아지기 시작한 폭우를 바라보았다. 배가 고파서 롯데리아 햄버거를 하나 사서 계단맡에 앉아 사람을 기다리며 꾸역꾸역 씹었다. 한 시간 동안의 기차여행, 노트북을 펼치고 얘기 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한밤중에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쳤다. 방전이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블로그를 썼다. CSI 3기 마지막 편을 봤다. 3시간 동안 이런 저런 빌어먹을 교통 수단에 갇혀 이리저리 이동하는 동안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 말고 할 일이 생기는 것, 이런 것을 생활이라고 부른다. 죽을 때까지 차를 사지 않을 것이다. 차를 몰면 책 읽을 시간을 잃고 술 마시기 힘들어질 따름이다. 책이야 잘 안 읽으니까 그렇다치고 술도 건강 때문에 마시기 힘들어지면? 형편없이 망가지면 하는 수 없이 차를 사야겠지. 방전.
담배가 떨어졌다. 잠이나 자자. 충전.
BatteryMon v1.2로 배터리의 예상 사용시간을 측정 중.
완전 충전, 완전 방전.
완전 충전, 완전 방전.
리튬 이온 전지는 메모리 효과가 없다.
내 몸은 메모리 효과가 있다.
그래서 인생이 피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