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 the relativity

잡기 2003. 9. 9. 16:20
hedwig and a angry inch라는 영화를 틀었다. 5인치 짜리 성기를 잘랐는데 수술이 잘못되어 1인치가 남았다. 그래서 그는 성전환 수술을 한 보람도 없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이상한 놈이 되었다. 그래서 angry itch가 아니고 angry inch. RHPS같은 영화인데 노래가 영 취향과 안 맞아 중간까지 보다가 말았다. 독일 락이라... 어렸을 적에는 녹턴-스페이스-사이키델릭-락을 하는 몇몇 그룹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독일 락에 환상을 가졌는데. City, City, Der King vom Prenzlauer Berg

이데올로기 사이의 타협과 관용, 협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관용은 위선 여부를 판별하기 어렵다. 제대로 된 장치를 셋업하고 상대방이 가고 싶은 길로 가도록 인도하면서 상상력을 자극해 주다 보면 위선이 드러날 때가 있었다. 그것보다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사람들을 통해 충분히 벤치마킹 했는가 하는 점을 중시했다. 상대의 이데올로기는 없애거나 짖밟고 불태워야 할 어떤 것이 아니다. 이데올로기는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약화되거나 때로는 경멸 당하거나... 시대에 따라 잊혀지거나, 운이 좋아 감응되는 것이지.

논쟁에서 백 퍼센트 깨지면서 이상하게 내가 원하는 목적만큼은 건졌다. 예를 들어 나는 네 생각해서 이런 저런 걱정까지 하고 있었는데 네가 내 걱정은 할 필요 없다고 그렇게 선언해주면(목적) 나는 정말 고맙지 뭐야. 내가 하는 행동의 부담을 네 생각까지 해서 50%라고 하면 지금은 1%도 안되게 되잖아? 사실과 정의, 그리고 각자의 장미빛 미래를 외면하게 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날더러 기회주의자라고 불러도 웃으면서 받아들였다. 사실, 그랬다.

토끼 꿈을 꾸었다.

일과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에 관한 생각을 했다. 토끼 한 마리는 오른쪽으로 달아나고, 다른 토끼는 왼쪽으로 달아난다면 어떻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두 토끼가 같은 방향으로 뛰어 가도록 철저한 사전공작을 하는 수 밖에.

사전 공작은 매우 어렵다. 상황은 생각만큼 좋지 않았다. 토끼가 한두 마리가 아니고, '나'라고 인식되거나 불리우는 세계의 중심에서 토끼가 왼쪽과 오른쪽 뿐만이 아니라 사방으로 뛰어 달아난다면? 그리고 달아난 토끼는 정해진 수명이 있다면? 한 놈을 붙잡은 후 옆으로 눈길을 돌려 최단 거리에서 달아나는 토끼를 잡기 위해 움직이는 식이라면 2차원 평면에서 궤적은 나선 소용돌이 모양을 닮게 된다.

가정: 1. 각 토끼는 등속 운동하고 있다. 2. 각 토끼는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3. 토끼는 한 번에 한 마리만 잡을 수 있다. 이런 가정은 현실적으로(꿈속이긴 하지만) 무의미했다. 토끼들의 속도는 제각각이고 어떤 놈은 가다 말고 방향을 바꿀테니까. 기한은 또한, 무한정 주어진 것이 아니다.

홈월드2 데모판의 지대한 영향 내지는 보다 현실적인 상황을 만들어 보려고, 사냥터 우주를 2차원이 아닌 3차원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토끼를 잡으려면 뇌가 100% 다 돌아가도 모자라게 되었다. 사정을 더더욱 복잡하게 만들어서 스스로 공황 상태에 빠지는 악취미랄까. 주어진 시간 안에 토끼 잡는 일은 글른 것 같다.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내가 만일 광속의 99.999%까지 가속할 수 있다면... 상대론적 효과에 따라 토끼들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둔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었다. 토끼는 유통기한이 지나면 사라지는데 토끼의 시간과 내 시간은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른다. 상대론적인 토끼들이 심지어 광속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잡아놓고 보니 3톤 짜리 슈퍼토끼라면? 토끼 A를 잡기 위해 움직이는 동안, 토끼 B가 정 반대 방향으로 광속의 99.999%로 움직인다면? 또는 일부 미친 토끼들이 나를 향해 광속으로 달려오고 있다면 토끼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뼈도 못추릴 것이다. 광속 토끼들은 그만큼 치명적이다. 토끼들은 이제 단순한 토끼들이 아니었다. 토끼는 우주적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 -_-

일 토끼, 사랑 토끼, 상대론적 토끼 뿐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토끼와 성전환 토끼도 있었다.

꿈속에서 토끼떼에게 시달리다가 깨어났다.
빌어먹을 토끼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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