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이후

잡기 2003. 10. 25. 01:36
다윈 이후 -- 제목이 멋있어서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인 것 같은데. 훗훗훗.

코드 컴플리트와 저니맨 투 크라프트맨을 읽고 마음의 평안을 얻어야 할까? 그런 책들은 아무래도 프로젝트가 끝나고 한달쯤 태국의 섬에서 달콤한 휴가를 즐기며 느긋하게 읽는 종류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렇고 말구,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니깐? 라고 맞장구나 치면서.

지금처럼 밍기적거릴 때에는, 코드라도 한 줄 보는 것이 낫다. 어드레스 변환에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겨 이틀 쯤은 속이 쓰렸다. 간신히 회로의 최종 수정 전에 맞출 수 있었다. 빙산의 일각이다. 남은 할 일은 저 차가운 바닷속에 80퍼센트나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옆에서 뺑이치는 백조고.

어떤 책에서 본 '선택적 모순'이란 표현의 정확한 의미를 아직 모르겠다. 삽질과 자가당착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골때리지 않은가? 교육받은 식자들이 기본적인 과학 용어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는 사실이. 그런 골때리는 현상은 경제정책을 논하는 정치가에게도 나타나는가 보다. 폴 크루그먼의 팝 인터내셔날리즘에서 본 등가식: 저축 - 투자 = 수출 - 수입

크루그먼은 경제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이 식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가 국제경쟁력이 얼마나 허구의 가정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것인가, 정책 결정자들이 경제학에서는 기초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몇 가지 '검증된(?)' 룰을 무시할 때 얼마나 가공할 일들이 벌어지는가... 를 설명하다가 나왔다. 식에 따르면 경제강국이 개발도상국에 생산 투자를 할 때 개발도상국의 임금 상승이 생산이 지속됨에 따라 상승하면서 개발도상국의 싼 노동력과 양질의 공산품이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면서 딱히 미국 등의 '초'강국의 내수산업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도 말했다. 거듭 수식을 살펴봐도 설명이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같다. 안 그럼 클린턴 행정부의 강력한 무역제제 정책이 왜 틀려 먹었고, 국가 경쟁력 재고를 위한 여러 정책들이 왜 허구인가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니까. 미국의 경제정책 결정자들이 경제학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들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원할 따름이었다. 하여튼 국제무역이 전쟁판이 아니라는 크루그만의 견해에는 심정적인 안도감을 느꼈다. 왜 남들 괴롭혀? 자기 얼굴이나 후려칠 것이지.

프로그래머로서, 기술적 경쟁 우위라는 말이 무가치하다고 여겼다. 그 말은 기술을 세습화하고 특허권을 만들어 인류 복지 공영에 이바지하는 대신 이전투구를 위해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몸부림치겠다는 말 이상이 아니었고 자신의 이기심을 아주 뻔뻔한 방식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상대성 이론에 특허권을 걸자는 수작이지! 기술은 인류의 공동작업의 공동산물이라고 믿는 편이니까. 벌만큼 벌었으면 로얄티 같은 것은 없애야 한다. 그러다가 듀의의 십진 분류법을 사용하는 어떤 기관이던지 로얄티를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귀를 의심했다. 하여튼 저작권과 로열티를 없애버려야 한다는 철부지같은 주장이 한국을 바짝 뒤쫓는 중국 때문에 한국이 장차 망할 것 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씨알이나 먹혀 들어갈까? 오히려 철없는 헛소리로 치부하겠지.

세포는 어느날 체온을 36.5도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옆세포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수백억개의 세포들이 함께 살자고 맞장구를 쳤기 때문에 나는, 또한 인간은, 분해되거나 썩지 않고 살아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래서 별로 낭만적인 것이 못 되었다. 말로 하긴 상당히 귀찮은 설명이다. 그런데 이게 내 의지란 말인가? 내가 하는 어떤 생각조차도, 심지어 곧 자살하겠다고 결심한 후 손목에 칼을 긋는 것도, 세포들이 살겠다고 맞장구를 쳤기 때문이란 말인가? 흐흥. 도킨스가 있었지. 밈을 생각하면 왜 세포들이 갑자기 죽겠다는데 맞장구를 치는지 이해가 갔다. 갔던 것 같다.

한번도 자살할 생각을 못해 봤다. 도킨스의 '밈'은 날더러 살아남으라고 속삭였다. 밈의 거시적이고 은밀하지만 강력한(?) 영향력은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을 살아남게 했다. 고 사기를 칠 수도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은 진실보다는 '밈'같은 그럴듯한 것들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으니까. 이타주의는 적대적 생존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치고, 자살은 정말 희안한 생각 아닐까. 왜 죽어?

아예 홈페이지 제목을 reason to be meanful로 바꿔 버릴까? 알라 말씀 중에 아홉 지옥을 건너... 어쩌구 하는 댓구도 있는데. 알라께서는 삶은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하셨다. 라던가.

무슨 생각을 하든 욕지기 밖에 안 나왔다.

사이언스21이란 tv 프로그램의 어젯밤 주제는 유비퀴토스였다. 우연히 봤다. 뭔 소리하나 하고. 우려했던 대로 약장수 선전같은 방송이었다. 프로듀서는 자기가 뭔 방송을 만드는지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프로그램에 Kevin Warwick이 나왔다. 평소 좀 맛이 간 양반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자기 몸에 칩을 박아서라기 보다는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건 아닌데 싶은 구석이 있었다. 이번에는 자기 마누라한테도 칩을 박았다고 자랑을 늘어 놓았다. 팔뚝 근육의 운동 신경에 직접 연결한 칩인데 팔 아랫부분 근육의 운동(수의근)에 의해 발생하는 미약한 신경 전달 신호를 외부 증폭기로 증폭한 후 무선 회로로 날려 보냈다. 그럼 자신의 뉴런에서 전이되는 신경전달 신호를 마누라의 신경 조직에 전달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자신의 의도를 원격 전송할 수 있다. 워윅 교수가 손바닥을 구부리자 그의 마누라가 깜짝 깜짝 놀라면서 '어이, 어이 (, 어이 씨발)' 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녀는 짜릿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짜릿함(전기가 흐른다)이 다소 신경에 거슬린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집에서 맨날 워윅 교수가 손바닥을 구부릴 때마다 짜릿짜릿한 기분을 즐기고 있다고 보기는 뭣 했다. 그보다는 오르가즘 증폭기 같은 것이 상업성도 있고 백배 낫지 않을까?

다음번에 케빈 워윅 교수를 보게 되면... 음... 시상하부를 짜릿짜릿하게 해주는 칩을 박고 히죽히죽 웃으면서 출현할 지도 모르겠다. 죽을 때까지 패달을 콕콕 밟으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다가 게거품을 흘리며 죽은 모르모트가 생각났다. 케빈 워윅은 인류 중에 최초로 칩 박은 사이버네틱스 교수로 영원히 이름이 남을 것이다. 그건 실험을 위해 자기 위장에 암세포를 주입한 의사들의 이타 정신에 필적하는... 아, 내가 뭔 소리를 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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